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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주일에 한번은 찾게 되는묘한 매력이 있는 바가 있다. 카테나 미군기지 게이트2 입구에 있는 “아메리카도오리”라고 하는 곳으로 매주 화요일에는 아저씨 밴드들의 멋진 라이브가 열린다.

오키나와는 전쟁이 끝난 1945년부터 1972년까지 미군의 통치를 받았다. 그 시절에 미군들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음악을 접하게 되고 특히 시대의 재즈나 락 그리고 컨트리 뮤직과 포크등 문화의 흐름도 참 다양했다. 그 시절 젊음을 즐겼던 지금의 백발 아저씨들이 매달 마지막주 화요일이 되면 아메리카 도오리라고 하는 바에 모여 기타를 치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때론 아와모리 술 한잔에 흥겹게 춤을 추기도 하며 멋진 라이브를 즐긴다. 지난번에 친구와 찾았을 때 한국사람이라면서 임진강이란 곡을 불러주던 것이 인상깊었던 곳인데 이번에 초대를 받아 월례 라이브에 참가를 했는데 역시나 서정적인 목소리와 왠지 다양한 추억을 마음으로 부터 끄집어 올리게끔 만들어 주는 기타 선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류큐 글래스로 만들어

진 아와모리 술잔을 부딛히며 인사를 하고 또 리퀘스트를 던지며 노래를 부탁하고 다양한 연령대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런 자리였다. 이날은 마치 가족들이 모여 피크닉의 기분으로 서로 만들어 온 음식을 나누기도 하고 내가 시킨 술 니가 시킨 술 없이 그냥 다 같이 흥겹게 옛 노래를 즐기는 그런 모습이 너무나 좋았다. 한편 나보고 한국노래 한곡 들려달라고 하기에 고등학교때 통키타 매고 돌아다니며 노래 한 껏 불렀던 나로서 한곡 할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키타 코드와 당시 즐겨 불렀던 노래들의 가사들을 떠올리고는 맨붕에 다음기회에...라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고 반면 팝 뿐만 아니라 일본노래의 모든 가사들과 키타코드를 외워서 연주하며 부르는 어저씨들이 정말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노래방과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좋아하는 노래는 꼭 가사를 외우고 다녔고 중요한 전화번호는 꼭 기억하고 다녔던 그 때 그 시절이 정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로 느껴지는 좀 이상한 기분도 함께 했던 시간이었다. 아버지 삼촌 뻘 아저씨들과 함께 있으니 생각이 많아진건가....어쨋든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오키나와의 오키나와시가 참 좋다.

Old man Band @ 亜米利加通り동네 아저씨들의 멋진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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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맛있는 안주가 있어도 그 안주보다는 좋은 사람들과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더 좋다”

Diving @ blue cave 요즘 여름 휴가를 앞두고 다이빙관련해서 문의를 하는 한국사람들이 참 많이 늘은 것 같다. 예전에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다이빙과 스노클링이 렌터카를 타고 다니는 개인 자유여행자들이 늘어 나면서 이제는 오키나와 여행에서의 필수 코스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오키나와 속 한인들 이야기동네 골목대장 형님이 개인적인 일이 있어 오키나와를 비우고 한국에 갔다가 다시 오키나와에 컴백하니 그날 바로 번개모임부터 만들어진다.

왠지 무슨 핑계를 대서 만나고 싶고 술한잔 하면서 이야기하고 싶고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오키나와시 중부지역에 살고 있으면서 결코 적지 않은 번개모임으로 술자리를 갖는 우리들일 것이다. 좋은 일이던 좋지 않은 일이던지 서로 만나 삶을 나누는

그런 만남으로 오키나와를 떠나고 다시 오는 사람들로 조금 멤버가 바뀌긴 하지만 몇 년째 동네 골목대장 역할을 해 주시는 형님을 중심으로 그 맥을 이어나가고 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서로 인연이야 당연히 없었던 남이었겠지만 이 작은 오키나와 섬에 와서 그것도 더 작은 일부 지역에 가까이 모여 살면서 서로 의지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참 소중하고 행복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때론 직장의 고민으로 때론 육아의 고민으로 때론 그냥 아무런 이유없이 만나 오키나와의 아와모리 술 한잔 마시며 옛날 추억을 떠올르기도 하고 여러가지 잡다한 이야기

들을 나누면서 남자들만의 수다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이 취하는 지도 모르고 함께 하는 시간을 마냥 즐기곤 한다. 남자들의 로망인 아지트를 만들어 우리들만의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비지니스까지 이어가 보자는 광대한 꿈을 꾸며 마지막으로 라면집 찾아 어깨동무 하며 가는 그런 사이. 이런 오키나와 중부 한인 아저씨들의 털털한 일상들이 있어 행복한 오키나와의 삶이다.

엔화는 여전히 아래를 향하고 있구나. 달러로 월급받는 사람들은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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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on

‣오키나와현의 오나가지사와 일본정부와의 미군기지를 놓고 벌어지는 다툼. 몇만명이 참가해 미군기지 이전 에 반대하는 현민대회를 열어 더이상의 미군기지는 오키나와에서 필요없다는 민의를 보여줬다며 오키나와는 여전히 미군기지 문제를 놓고 뜨겁게 달궈져 있는 듯 하다.

‣오키나와현 문화관광스포츠부가 발표한 외국인관광객실태 조사에서 1인당 오키나와 여행에서 소비하는 비용이 작년대비 9.8%증가한 10만6051엔으로 10만엔대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그 중 중국인의 1인당 평균 소비액이 15만5천으로 외국인관광객 중에 1위를 기록했고, 외국인들은 쇼핑, 숙박, 식사 등의 순서로 여행비용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오키나와의 4대 소매업종의 기업으로 대표되는 산에이, 류보그룹, 이온류큐, 카네히데 등의 마트, 슈퍼들이 과거 최고이익을 기록하면서 또다른 수요를 검토중이라고 오키나와 타임즈가 보도했다. 원인으로 관광객들의 증가도 한몫을 했다고 밝혔다.

‣일본의 전기전자 매장인 야마다전기가 5월중 46개점포를 폐쇄한다고 한다. 다행히 오키나와의 점포는 해당이 없다고 한다. 오키나와는 정말 전자매장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

‣오키나와현이 중점사업으로 구상하고 있는 기업미팅, 기업인센티브 관광, 회의, 전시 등의 유치사업인 MICE (meeting+incentive travel+convention+exhibition/vent)의 중심지로 남부 동해안에 위치한 니시하라와 요나바루의 마린타운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동해안지역의 경제발전을 통한 지역발전 균형을 고려한 대책이라고 하는데 이게 뭔지 뭘하려고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2만명 수용규모의 이벤트, 스포츠, 국제회의 등의 시설로 년간 77만명 수용에 뭘 해서 돈을 번다는 건지 이해가 안간다. 나하에서 가깝다고 하나 길도 외길이고 막힐 게 뻔하고 숙박시설도, 외식시설도 별로인데.......

Mystery of Okinawa 동굴이나 토굴에 살면서 바다에서 조개나 물고기를 잡아 먹거나 동물을 수렵해서 살아가던 그 옛날의 오키나와부터 450여년의 류큐왕국의 역사 그리고 현재 오키나와로 불리우는 남국의 관광지. 여러 변모의 모습 속 추측과 예상 가득한 다양한 미스테리를 지닌 오키나와.

오키나와의 명절이 되면 처가집 가족들은 큰집에 모여 불단의 조상들에게 기도를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집안의 역사를 물어보니 멀고 먼 옛날 중국으로 부터 넘어온 조상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오키나와는 작은 주변섬들을 다 합쳐도 제주도 보다 조금 큰 면적의 작고 작은 섬이다. 이런 섬의 한 왕국이 450년 통치를 하기도 했고 작은 배를 타고 동남아시아와 인도, 그보다 더 멀리 중개무역을 하면서 먹고 살아간다. 류큐왕국 이전에는 크게 남부, 중부, 북부로 나뉘어 각기 지역을 통치하는 군주들이 있었고 그 이전의 역사는 잘 알려져 있지도 않는다. 13세기 고려의 멸망과 함께 삼별초로 대표되는 고려인들이 오키나와로 넘어

왔고 성을 쌓고 도자기를 굽고 벼농사를 하며 터전을 만들어 살았다는 내용이 역사추적이라는 방송에서 보도가 되기도 했고, 조선시대 홍길동이 지금의 하테루마라고 하는 최서남단섬에 정착을 해 율도국을 만들었고 홍가와라라는 성과 오오아케하치라는 이름으로 류큐왕국의 인두세에 항거해 싸웠다는 전설 또한 전해지고 있다. 나하의 차전놀이와 같은 줄다리기와 오키나와 스모라고 하는 씨름과 같이 삿빠를 매고 하는 가쿠리키, 일본 본토에는 없는 돌이 되면 돌잡이를 하는 풍습의 기원도 궁급하고, 류큐왕국 시절 잘 나가는 집안들이 누구나 가지고 있었다는 중국이름과 당시 중국 사신들과 무역상인들이 잠시 거주했던 곳이 유곽화가 되어 지금도 여전히 러브호텔과 룸사롱등이 가득한 나하의 츠지, 그 옆에 중국사람들 거주하던 구메이촌, 그리고 과연 류큐왕국을 통일했던 쇼하시집안은 왜 뜬금없이 최북단섬이 이헤야섬에서 지금의 난조시 오자토, 사시키지역으로 넘어와 세력을 키웠을까. 일본에 복속이 되고 전쟁을 겪고 미군땅이 되었다가 다시 일본이 되어 미군기지 문제로 골치아픈 복잡하고 복잡한 역사를 가진 오키나와의 미스테리한 모습은 오키나와 살아가면서 하나 하나 추측과 예상으로 지루해하지 말라고 만들어 주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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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루트의 오키나와 생활기 okinawa journal vol.51 www.yukuya.com

Happy life정말 아이들은 빨리들도 커간다. 그만큼 나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소리인데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을 때면 그런 사실은 새까맣게 잃어버리게 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녀석들이 장난치고 뛰어 노는 소리가 시끄럽게 집에 울려 퍼진다. 올해부터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첫째 시유는 또래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개그맨들의 유행어를 쓰면서 시끄럽고, 둘째 유나는 오빠가 유치원 간 사이 혼자 심심해 하던 것이 오빠가 돌아오는 순간 부터 친구가 생긴 것처럼 때론 오빠를 괴롭히기도 하고 때론 친구처럼 다정하게 놀아주기도 하면서 시끄럽고, 막내 유리는 요즘 무언가를 잡고 일어서기에 재미를 붙였는지 의자나 작은 테이블을 잡고 일어서면서 넘어질까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녀석들과 여전히 행복해 하며 오키나와에서의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요즘 부쩍 움직임이 많아지고 자신이 울면 누군가 자신이 원하는 것

을 들어준다는 것을 알아채린 이제 9개월이 지난 유리 때문에 와이프는 힘들어 하고 있지만 울음 보다는 웃음이 가득한 녀석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나로서는 그냥 흐믓해진다. 이번주 평일에도 약속이 있어서 며칠 늦게 들어가서 놀아주지 못했더니 아들 녀석이 엄마의 핸드폰을 통해 아빠랑 같이 놀고 싶다는 메세지를 보내와 어느날 저녁 조금 이른 퇴근을 하면서 디스카운터 샵 돈키

호테를 찾아 장난감을 찾아본다. 요즘 게임을 좋아하는 녀석이기에 옛날 8비트 게임기가 하나 있길래 같이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과자와 함께 집으로 향해 시유

에게 보여줬더니 성격상 고맙고 좋다는 이야기를 못하는 녀석인지라 그냥 묵묵히 게임을 하면서 즐긴다. 낮음을 자다 일어난 둘째 유나는 오락을 하고 있는 오빠의 모습을 보면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고 그 둘을 뒤에서 바라보는 막내 유리는 게임 화면과 오빠와 언니의 그런 모습이 왠지 신기하다.요즘 군것질에 맛을 들린 둘째 유나는 아빠가 사간 과자를 먹으며 시익 하고 행복한 웃음을 보여준다. 어렸을때 자주 만들어 놀았던 나무젓가락 고무총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뚝딱 만들어서 줬더니 자식이 멋진 웃음을 선사해 준다. 사소한 일상이지만 그런 사소한 일상이 있어 행복한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