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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여행기 영국 , 프랑스 , 스위스 , 이탈리아 , 바티칸 , 오스트리아 , 독일

서유럽 여행기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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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6학년의 유럽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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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여행기

영국 , 프랑스 , 스위스 , 이탈리아 ,

바티칸 , 오스트리아 ,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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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출발일 :4/17 도착일 :4/28 여행기간 :12 일

여 행 국 가 : 영 국 , 프 랑 스 , 이 탈 리 아 , 바 티 칸 ,

오스트리아 ,

독일 총 7 개국

여행도시 : 인천 , 런던 , 파리 , 인터라켄 , 융프라우 , 밀라노 ,

피사 , 로마 , 폼페이 , 소렌토 , 카프리 , 나폴리 , 피렌체 ,

베니스 , 인스부르크 , 하이델베르크

호 텔 : st.giles( 런 던 ),kyriadvliy( 파리 ),kyriadbelfort( 벨 포 트 ),Lodi( 밀 라 노 ),tobruk(

피우치 ),antile( 파도바 ),ibis budget( 아우구스부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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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 전내일 부터 12 일간의 유럽여행을 하게 되는데 유럽여행의 목적은 유럽의 낭만과 문화 , 예술 , 역사를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 5 학년 때 국사를 배운 이후 세계사에 관심을 갖게 되어 떠나게 된 여행이다 .

유럽은 나의 소원이었다 . 유럽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찼다 .

유럽 하면 여러 도시가 떠오르게 된다 . 런던 , 파리 , 밀라노 ,

로마 , 베네치아 , 프랑크푸르트 등은 누구나 다 떠올리게 되는 도시이다 . 유럽 여행을 위해 300 만원을 투자 했으니 여행이 내 추억으로 잘 남았으면 한다 .

2013 년 4 월 16 일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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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도시 런던

4 월 17 일 , 인 천 국 제 공 항 에 서 런 던 히드로국제공항 까지 국제선을 타고 갔다 . 13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서 아주 고단했다 .

히드로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받고 짐을 찾아갔다 . 히드로국제공항의 크기는 인천국제공항처럼 크기가 크지 않았다 . 바로 나 와 서 호 텔 로 이 동 하 여 투 숙 했 다 . 시 차 적응이 되지 않아서 매우 고단하고 , 힘들고 ,

머리가 아팠다 .

4 월 18 일 , 호텔에서 일어나서 간단하게 호텔 조식을 먹고 런던시내로 이동했다 . 30 분 정도 이동하자 런던 시내에 왔다 . 먼저 영국은 세계최초로 산업혁명이 일어난 국가이다 . 19

세기에는 전세계의 4/1 을 다스린 나라 이기도 하다 . 그리고 영국은 헨리 8 세의 성공회를 따르고 있다 .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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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국 인 남 성 들 은 신 사 적 이 라 고 한 다 . 항 상 약 자 를 양보하고 자신의 명예를 중요시 하기 때문이다 . 영국의 정부는 국민을 가장 무서워 한다 . 국민의 세금을 잘못 사용하면 물러나고 국민들을 갑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

이런 민주화된 정치가 잘 되어있기 때문에 크게 발달된 나라가 된 것 같다 .

영국은 전통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 런던은 옛날의 마차길을 이용하여 좁은길이 많은데 넓히지 못하는 이유는 오래된 건물을 부셔야 하는데 건물들이 100~150 년 정도 된 건물들 이어서 허물지 않고 옛날에 있던 마찻길을 차도로 이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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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던 의 국 회 의 사 당 에 도 착 했 다 . 이 건 물 이 바 로 세계민주주의 의 상징이다 . 1295 년에 지어졌지만 1834

년 화제로 손실되어서 다시 재건된 모습이 지금의 모습이다 .

오 른 쪽 끝 쪽 에 는 커 다 란 시 계 탑 이 있 는 데 벤 저 민 프랭클린의 이름을 따서 ‘빅벤’ 이라고 한다 . 사진에서만 보던 국회의사당을 보니 더 웅장하고 빛나 보였다 .

아래에는 탬즈강이 흐르고 있는데 갈색이고 작아서 실망을 하게 되었다 .

국회의사당의 전경이제 런던시청으로 향하였다 . 런던시청을 보니 참으로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볼품없어 보이는 건물처럼 보였다 . 그래도 앞과 옆에는 세계적인 건물이 있었다 . 둘다 유네스코에 지정된 타워브리지와 런던탑의 모습이 잘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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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브리지는 개폐교이고 탬즈강을 건너기 위해 지어졌다 .

궁처럼 보이기도 해서 사람이 안에 있을 듯 하다 .

건너편의 런던탑은 중세시대 때 지어진 성이다 . 런던을 방어 하기 위해 지어진 성이었지만 14 세기때 장미전쟁 포로가 된 왕세자가 리처드 공작에게 죽음을 당한 끔찍한 성이다 . 이후에는 동물원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관광객 들에게 공개되는 성이다 . 아쉽게도 시간이 없어서 보고만 오고 직접 가지 못하였다 .

런던탑

타워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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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킹검 궁전으로 이동했다 . 이곳은 왕들이 머무르는 궁전이다 . 현재 국왕인 엘리자베스 2 세 여왕도 이곳에서 머무르며 정치를 하고 있다 . 운이 좋게 지금 시간에 2 일에 한번하는 교대식을 하고 있었다 . 그런데 막상 보니 덕수궁 대안문에서 하는 교대식 보다 못하였다 . 사실 영국은 정직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고 , 세계 교대식의 원조 이다 .

그리고 대안문 교대식은 버킹검 교대식을 따라한 것이다 .

그 래 도 세 계 최 초 의 교대식 을 본 것 에 의 의 가 있 다 고 생각한다 .

근위병 교대식 버킹검 궁전

점심으로 로스트 비프를 먹고 웨스트민스터로 이동했다 .

지나가면서 시민들의 휴양공원인 하이드 파크를 지나갔다 .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단순한 성당이 아니었다 . 역대 영국 국왕이 즉위한 곳으로 왕세자인 찰스와 왕세자비인 다이애나가 결혼한 곳이다 . 웨스트 민스터가 희면서 아름다운 성당모습 이었다 . 지금은 기독교인들이 아닌 청도교 들이 사용하는 교회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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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대영박물관으로 이동했다 . 대영박물관은 세계 3

대 박물관중 하나로 규모도 매우 크고 그리스 신전 같았다 .

대영박물관은 그리스 , 터키 , 바빌로니아의 유물이 많이 있었다 . 다들 훔쳤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원래 영국에서 그 지역에서 싼 값에 산 것이다 . 로제타 스톤에서 미라와 크레타 유물 , 바빌론 성문이 대표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 가이드와 둘러보다가 한국관이 나왔다 . 한국관은 한국의 것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우리나라가 기증한 것이다 . 청자와 그림 등으로 우리나라의 미술을 그대로 보여준다 . 한국관을 뒤로하고 대영박물관을 나왔다 .

웨스트 민스터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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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박물 관 을 뒤로 하 고 런 던 을 떠 나 기 전 에 차 를 타 고 런 던 시 내 를 둘러 보 았 다 . 자연사박물 관 , 서 커 스광장 ,

쇼핑거리 등을 차타고 보았다 . 이제 킹스 크로스역 으로 이동했다 . 나는 이곳에서 유로스타 타고 파리로 이동할 것 이다 . 킹스 크로스역은 유로스타의 기차역으로 런던 , 파리 ,

브뤼셀과 연결되어 있다 . 유로스타는 시속 300km/h 의 속도를 가진 초고속 열차이다 . 나는 파리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 출국심사를 받았다 . 테러 방지를 위해서 유로스타 기차역에서는 공항처럼 꼼꼼히 입출국 심사를 본다 .

자연사 박물관 서커스광장

런던의 쇼핑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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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엑스레이 까지 찍고 대기실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

기차는 8 시 1 분 열차였다 . 이제 들뜬 마음으로 기차 타러 올라갔다 . 도버해협해저터널 (33.7km) 와 노르망디를 지나서 파리 까지는 2 시간 이지만 그라나치 천문대를 지나가기 때문에 1 시간을 시차로 손해 본다 . 야간기차의 풍경은 계속 어둡기만 했다 . 해저터널에 들어가서도 계속 어두워서 지하철 타는 듯 하였다 . 이제 해저터널을 빠져 나왔다 . 드디어 프랑스 땅에 온 것이다 . 기차는 유유히 밤길을 달리다가 파리의 노드역에 멈추어 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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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나라 프랑스프랑스 하면 예술 , 패션 , 와인 , 음식 등이 떠오르게 된다 . 프랑스는 넓은 평야지대와 동남쪽의 몽블랑을 포함한 알프스 , 서남쪽의 보르도 , 동북쪽의 알자스지방 , 서쪽의 노르망디를 끼고 있는 넓은 땅을 가지고 있다 . 알프스 지방에서는 치즈 , 우유 같은 신 선 한 유 제품이 많 고 보 르 도 와 중 부 의 보르고뉴에서의 최고급 포도주 등의 술과 알자 스 의 기 름 진 땅에 서 나온 곡식 들 과 노 르 망디의 수산 물 등 이 합쳐져서 세 계 최고급의 프랑스 음식 만들어 지게 된다 .

그래서 프랑스가 와인 , 음식이 유명해진 것이다 . 프랑스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하다 .

옷 , 가방 , 부츠 , 모자 등을 늘 유행에 맞추어 입는다 . 특히 , 20 세기에 샤넬이 등장한 이후 프랑스의 패션은 더욱더 발달이 되었다 .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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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예술가의 천국이다 . 수 많은 예술가들을 양성 하 였 으며 , 많 은 예 술 가 들 이 활동 하 여 세 계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 프랑스의 역사로 돌아가 보면 기원전 1000 년경 부터 갈리아인 들이 들어와 살았다 . 이후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로마의 땅이 되었다 . 하지만 AD476 년 , 로 마 가 게 르 만 민족에 게 멸망 하 면 서 게르만족이 세운 나라 중 하나인 프랑크족의 프랑크 왕국의 중심이 되었다 . 서기 843 년 , 베르됭 조약이 체결되고 서프랑크 왕국 , 즉 , 프랑스 왕국이 되었다 .

이후 프랑스는 십자가군 원정에 참전하고 , 백년전쟁의 승전국이 되면서 점점 강해져 갔다 . 루이 14 세 때는 전성기를 누리고 , 최고의 왕권을 가진 나라가 되었으나 왕족들의 사치가 너무 심하여 돈을 빌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 1776 년 , 세 왕비인 마리앙투아네트와 황제 루이 16 세 는 정치를 하지 않고 방탕하게 생활하자 1789 년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되었다 . 왕비와 국왕이 처형 당 했 다 . 이 후 나 폴레옹은 혁 명 으 로 어수선한 프랑스를 바로 잡았으나 독재 정치로 쫓겨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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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 년 , 나폴레옹 3 세 때에는 프로이센이 쳐들어 와서 파리를 함락 시켜서 파리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

프로이센 에게 알자스 로렌 지역을 빼앗기고 왕의 시대가 끝이 나서 지금의 프랑스를 이루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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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도시 파리오늘은 파 리 투 어 를 할 것 이 다 .

파리시내에 개선문을 보았다 . 개선문 앞에 서 파 리 가 이 드 를 만났다 .

개선문은 나폴레옹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40 년 동안 지었다 . 개선문을 중심으로 12 개의 거리가 있는데 12

시 방향에 샹젤리제가 있었다 . 뒤에는 콩코드광장의 오벨리스크 탑이 보였다 .

개선문 안에는 불이 피어 있었다 . 이 불은 꺼지지 않는데 , 프랑스에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피우고 있다고 한다 . 높이가 56m 나 되어서 꾀 크게 보였다 . 다음주에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보아도 이렇게 클 것 같지는 않다 . 이제 트렁카 대로로 이동했다 .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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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

트렁카 데 로 는 에펠탑 이 가 장 잘 보 이 는 곳이 다 .

개선문에서 트렁카 데로 까지 가는데 바스티유 광장을 보았다 . 바스티유 광장은 프랑스 혁명 당시에 점령된 바스티유 감옥을 기념하여 만든 광자이다 . 드디어 프랑스 혁명의 첫 번째 흔적을 보았다 . 트렁카 데로에 다다르자 에펠탑이 보였다 . 만국박람회를 위해 에펠이 만 들 었 는 데 흉물 스 럽 다며 무너뜨리려고 하 였 으 나 에디슨이 위에 송신탑을 세워서 유명해 졌다 . 지금도 여전히 멋을 잃지 않은 상태로 멋지게 파리를 대표하는 것 같다 . 송신탑이 하늘을 찌르듯이 높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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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에펠탑 모형을 산다면 노점보다 들고 다니면서 파는 흑인 상인들에게서 사면 경제적이다 .

가격 : 상점 :1~3 유로 / 서서 파는 상인 : 6 개에 1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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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코드 광장으로 이동했다 . 콩코드 광장은 1793 년에 국왕인 루이 16 세와 왕비인 마리앙투아네트 가 혁명군에 사로잡혀서 단두형을 당한 끔찍하고 잔인한 곳이다 . 지금은 이런 끔찍한 단두대가 없고 이집트 에서 수집한 오벨리스크 탑이 있다 . 직접 보니 아주 높아 하늘을 찌를 기세인것 같다 .

탑에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가 적혀 있고 꼭대기에는 피라미드 모양의 황금 사각뿔이 있었다 .

이제 식사하러 이동했다 . 가면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거장이 살아 숨쉬는 오르세 미술관이 보였다 . 아쉽게도 시간관계로 오르세 미술관은 가지를 못하였다 . 다음에 파리에 오면 꼭 가보고 싶다 . 점심식사로 에스카르코와 보르고뉴 소고기를 맛보고 몽마르트로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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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은 프랑스어 로 언덕이고 , ‘ 마르트’는 순교자 이다 .

이곳에서 많은 순교자가 죽었다고 한다 . 200 년 전에는 파리의 많은 예술가들이 활동을 했고 지금은 많은 노상과 카페가 있다 . 몽마르트는 파리에서 제일 높지만 정상의 사크레 쾨르 성당 까지는 해발 125m 밖에 되지 않는다 .

정상에 올라가서 사크레 쾨르 성당을 보았다 . 1914 년에 이성당이 지어졌을 당시 반대가 아주 심했다고 한다 . 이제 내려가서 몽마르트를 구경했다 . 카페와 노점이 많았으나 너무 변두리 같았다 . 내가 변두리를 싫어해도 몽마르트는 아주 예술적 이었다 . 카페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가지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어 이동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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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프랑스 최대의 왕가 부르봉 왕가를 알아보기 위해 파리를 빠져 나왔다 . 파리에서 30 분 가자 베르사유가 나왔다 . 꿈의 궁전 베르사유궁전은 화려함으로 관광객들을 사로 잡았다 . 베르사유궁전에 도착해서 바로크 식 궁전과 부르봉 왕가에 대해 가이드에게로 부터 설명을 들었다 .

베르사유궁전은 1682 년에 루이 14 세에 의해 지어진 궁전으로 황제의 본궁으로 씌었다 . 이전의 루브르 궁전에서 베르사유궁전 으로 왕의 거처를 옮긴 것이었다 . 하지만 1789 년에 프랑스 대혁명으로 혁명군에 의해 함락되어 이후에는 파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 베르사유궁전에 들어가서 내부를 보니 아름답고 화려한 그림들이 천장에 그려져 있고 ,

여러 장군의 황제의 대리석상과 여러 개의 장식품 들이 많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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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방에 들어갔다 . 전쟁의 방은 전쟁과 승전을 뜻하는 그림과 유물이 많았다 . 이 방에는 타원 모양의 부조 작품에 말을 타고 적을 물리치는 위엄있는 루이 14 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

왕의 침실로 이동했다 . 이곳은 루이 14 세 ,루이 15 세 ,

루이 16 세가 잠을 자던 침실 이다 . 침대가 아름답고 귀족스러운 카펫이 깔려 있어서 방 전체가 화려 했다 . 내 취향과 맞아서 이런 방에서 잠을 자보고 싶었다 . 하지만 너무 화려해서 잠을 자지 못 자고 계속 천장화와 카펫만 볼 것 같기도 하다 . 왕비의 침실로 이동했다 . 왕의 침실은 가운데 정면에 있었지만 왕비의 침실은 정면이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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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침실은 빨강색이 많아서 조금 어둡게 느껴 졌지만 , 왕비의 침실은 살색 , 흰색을 많이 써서 밝게 느껴지고 꽃 문양이 많았다 . 왕비의 궁도 마음에 들었다 . 이곳도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

특히 샹젤리에가 기억에 잘 남는 것 같다 .

왕의 침실은 빨강색이 많아서 조금 어둡게 느껴 졌지만 , 왕비의 침실은 살색 , 흰색을 많이 써서 밝게 느껴지고 꽃 문양이 많았다 . 왕비의 궁도 마음에 들었다 . 이곳도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 특히 샹젤리에가 기억에 잘 남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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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베르사유궁전의 하이라이트인 거울의 방에 갔다 .

거울의 방은 황제와 귀족들이 무도회를 열던 곳이다 .

이곳은 거울이 많아서 거울의 방이라고 불린다 . 루이 14

세 이후 루이 15 세와 루이 16 세는 이곳에서 너무 무도회를 자주 열어서 세금을 낭비했다 . 거울의 방 위에는 화려한 천장화와 아름다운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샹젤리에도 보였다 . 거울의 방은 길이가 매우 길었다 . 그런데 가는 길마다 화려한 장식품들이 있어 절대 지루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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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의 방을 보고 나서 밖으로 이동했다 . 궁전을 나오면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베르사유정원이 나온다 . 베르사유정원은 가 로 , 세 로 가 3.4km 인 대운 하 와 쁘띠 트 리 아농궁전 과 아름다운 꽃들과 조각상 들이 베르사유정원을 화려하게 했다 .

무료 정원 기차도 운영했으나 시간이 없어서 타보지는 못했다 .

기차비는 입장권만 있으면 무료였다 . 대운하로 이동했다 .

대운하가 십자가 모양이었고 아주 컸다 .

저 멀리 트리아농궁전이 보였다 . 하지만 너무 멀고 가는 시간이 길어서 가지 못하였다 . 베르사유정원을 구경하고 나서 가이드와의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 이제 베르사유를 떠나서 파리 시로 돌아갔다 . 파리에 도착해서 저녁식사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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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 으로 이동해서 에펠탑 전망대에 올라가려고 했다 .

에펠탑에 올라가려고 했으나 갑자기 파업을 하는 바람에 에펠탑을 올라가지 못해 아쉬웠다 . 내일 올라간다고 하니 내일을 기다렸다 . 세느강 유람선을 타러 서쪽에 있는 선착장에 갔다 . 유람선을 타고 내 취향의 낭만적인 파리를 보려고 하니 마음이 들떴다 . 파리의 야경은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로맨틱 하고 예술적 이며 화려했다 . 동쪽으로 가면서 황금빛의 에펠탑을 보고 더 가서 노틀담 성당을 보았다 .

TIP

세느강 유람선과 에펠탑은 낮보다 밤이 50 유로 정도 더 받으나 파리의 야경은 그것에 따른 가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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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야경은 모두를 감동 시킨다 . 파리의 모습은 낮보다 밤이 더 예술적이며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

파리의 야경을 보고 나는 시 하나를 적어 보았다 .

나는 파리의 예술에 빠져버렸다

파리에서 나의 마음이 헤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젠 헤어나야 한다

또 다른 유럽의 도시가 발걸음을 재촉한다

사실 또 다른 유럽의 도시를 보려면 파리에서 헤어나야 한다 .

시를 생각하며 유람선 관광을 마쳤다 . 오늘의 파리의 관광이 끝났다 . 이제 호텔로 돌아갔다 . 다행스럽게도 파리 투어는 2

일 이여서 내일이 남았다 .

내일에는 루브르 박물관 , 에펠탑 , 백화점에 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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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 시에 일어나서 파리로 향했다 . 파리 시내에 도착해서 어제 올라가지 못한 에펠탑을 올라갔다 . 엘리베이터가 매우 낡았으나 보이는 경치는 멋있었다 . 에펠탑은 에펠이 세운 탑이다 . 구스타프 에펠은 만국박람회를 기념해서 세운 탑이다 .

파리의 배경을 해친다고 비난을 많이 받아서 철거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토마스 에디슨이 위에 송신탑을 세워서 유명해 졌다 .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에펠탑을 올라가려고 파리를 찾는다 .

에펠탑 2 층 전망대 에서 파리 시내를 한눈에 보았다 . 정말 아름답고 멋있었지만 좀 높아서 무섭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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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 . 루브르 박물관은 백년전쟁 이후에 지어져서 황제의 본 궁으로 씌었다 . 그러다가 루이 16 세 때 베르사유궁전 으로 천도했다 . 루브르 박물관은 이후 나폴레옹이 박물관으로 쓰이게 되었다 . 루브르 박물관은 박물관이 된지 200 년 정도 되었다 . 루브르 박물관도 대영박물관 처럼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데 그림이 많아서 미술관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루브르 박물관에서 대표적으로 < 모나리자 >, < 가나의 결혼식 >, < 비너스 상 > 등이 유명하다 . 많은 작품들이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 라파엘로가 그린 그림이 많 았 다 . 루브르 박물 관 은 가 운 데 의 유 리 피라미드가 유명한데 안은 지상이 아닌 지하였다 .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 앞에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있는데 크기는 매우 작았다

내 동생이 찍힌 루브르 박물관 입구 비너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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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피라미드 내부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

나폴레옹 대관식

루브르 박물관은 그림이 많이 있어 르네상스 , 바로크 ,

로코코 , 낭 만 주 의 화 가 들 의 작품을 볼 수 있 었 다 .

비너스의 상으로 갔는데 사진 그대로 팔이 잘려 있었다 .

루브르 박물관을 마무리로 파리 여행이 끝났다 . 이렇게 끝나서 너무 아쉬운 여행 이었지만 다음에 아빠가 파리에 가야 하는 일이 있다고 하시니 그때 가봐야 겠다 .

파리 동역에서 기차를 타고 벨포트로 갔다 . 왜냐하면 내일 스위스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 벨포트만 지나면 바로 스위스 이었다 . 아쉬운 마음으로 파리를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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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포트 위치

스위스 바로 앞에 자리잡은 벨포트는 프랑스의 작은 주도 이다 . 파리에서 유로 레일을 타고 5 시간 30 분 거리로 많이 외졌다 . 알프스 산지와 가까워서 인지 날씨가 파리보다 더 추웠다 . 오늘 이곳에서 경유하여 하룻밤 자고 내일 스위스로 갈 것이다 . 스위스 국경까지는 차를 타고 숙소에서 20 분 거리인데 목적지인 인터라켄 까지는 3 시간 거리이다 . 스위스 산악열차가 내일 아침 8 시 5 분에 출발하니까 새벽 4 시 30 분에 출발해야 했다 . 잠을 자다가 4 시가 되자 모닝 콜이 왔다 . 잠이 깨지 않았는데 스위스로 가야 하니 스위스 가는 길이 매우 힘들었다 . 그래도 스위스의 아름다운 만년설을 기대 하면서 가니 설래 였다 . 6 시 30 분이 되자 아침이 밝았다 . 지나가는데 에메랄드 빛의 호수가 나왔다 .

바로 툰호수 이었다 .

사방은 온통 만년설로 되어 있으니 이제야 스위스에 온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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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설의 나라 스위스Switzerland만년설의 나라 스위스는 전국토의 70%

이상이 알프스로 되어 있다 . 사실 알프스 지역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나라는 스위스가 아닌 이탈리아 이다 . 그런데 스위스가 알프스로 가장 유명한 이유는 알프스에 관광 시설을 많이 만들고 알프스의 자연을 많 이 지켜와 서 이 다 . 옛 날 의 스위스는 알프스를 매우 무서워 했다 . 많은 사람이 알프스를 오르다가 죽었기 때문 이 었 다 . 스 위 스 의 역 사 를 알아 보 면 스위스에서는 수많은 산악 민족이 살아가고 있었다 . 그러다가 갈리아인 들이 차지하게 되지만 율리어스 카이사르에 의해 로마의 땅이 된다 . 로마는 스위스에 살던 민족을 알프스에 가두어 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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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는 게르만의 땅이 되었다가 신성로마제국의 영토가 된다 .

스 위 스 는 계속해 서 식 민 지 배 를 받 았 으 나 30 년 종교전쟁 으로 독립되었다 . 그리고 강대국이 침입하지 않는 중립국이 되었다 . 이렇게 하여 지금의 스위스가 이루어 졌다 . 지금의 스위스는 매우 부자이다 . 국민 총소득은 우리나라의 3 배 정도 이다 .

이제 본격적으로 스위스 여행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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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만년설 융프라우

융프라우에 올라가기 전에 인터라켄에서

기차를 타러 갔다 . 인터라켄은 툰호수 와 브리엔츠호수 사이에 있는 도시 이다 .

독일어로 ‘ Inter’ 은 사이 이고 , ‘Raken’

은 호수이 다 . 즉 , 호수 사 이 라 는 의미이 다 . 인 터 라 켄 오 스 트 역 에 서 출발했다 . 다행스럽게도 융프라우요흐 까지는 힘 하나 들지 않고 기차를 타고 융프라우요흐역 까지 갈수 있다 . 기차를 타고 2 시간 동안 올라간다 . 인터라켄 오 스 트 역 의 해 발 고 도 가 567M 인 데 융 프 라 우 요 흐 역 은 3453M 이 고 ,

융프라우요흐 전망대는 3561M 이니 기차 타고는 약 2900M 나 올라간다 . 인터라켄 오스트 역에서 출발하여 가는데 풍경은 아주 아름다웠다 .

Jungfr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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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에서는 소들이 풀을 뜯어 먹고 만년설이 녹아서 생긴 폭포도 흘렀다 . 이 모습 때문에 스위스에서 살고 싶기 까지 하였다 . 40 분 정도 타고 기차를 갈아탔다 . 하지만 이번 기 차 부 터 는 고 통 이 심 해 졌 다 . 바 로 고 산병 때문이다 . 이제 높이는 2000M 를 넘어섰다 . 다른 일행들 까지도 앓게 했다 . 이 일로 고산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었다 . 올라가다가 터널을 만나게 되 었 다 . 이 터널은 1400M 를 9.3KM 의 거리 로 뚤었다 .

이 터널을 지나는데 50 분이나 걸린다 . 이 터널을 만든 사 람 은 아 돌 프 구 에 르 첼 러 이 었 다 . 1893 년 뱅겐알프철도가 개통되어 많은 사람들이 융프라우를 찾았으나 체력이 좋은 사람들만 융프라우를 볼 수 있었다 .

아돌프 구에르 첼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융프라우를 찾게 하기 위해서 융프라우요흐 까지 철도를 설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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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을 뚫고 톱니로 된 철도를 연결하여 8 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노동자들이 자주 파업을 하여 16 년이 걸려서 1912 년에 완성되었다 . 내가 힘 하나 들지 않고 3454M 까지 올라갈수 있었던 것에 아돌프 구에르 첼러 에게 감사했다 .

드디어 융프라우 역에 도착하였다 .

융 프 라 우 역 에 도 착 한 후 기 차 에 서 내렸다 . 3454M 나 올라와서 머리가 어지럽고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

내 부 는 동굴 같 았 다 . 더 가 보 니 영 상 물 이 있 었 다 .

융프라우요흐의 스핑크스 전망대 에서 찍은 영상 이었다 . 더 가보니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 이 엘리베이터는 108M

를 18 초 만에 올라간다 . 전망대에 올라가니 아이거만 보이고 묀히와 융프라우가 보이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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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이곳은 융프라우와 묀히 사이에 있는 융프라우요흐 이여서 이다 . 융프라우요흐 란 융프라우의 어깨라는 뜻이다 .

야외로 나가보았다 . 나가 보니 시원하기는 했으나 눈보라가 아주 강해 서 따가웠다 . 융프라 우요흐 에는 자연이 만든 스키장과 설매장이 있었다 . 그런데 내가 지금 고산병에 너무 심하게 걸려서 아쉽지만 타지 못하였다 .

TIP

융프라우요흐 스키장 , 설매장 에서는 토요일에는 만 15 세 이하 어린이 대여 , 이용료가 무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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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건강이 나빠져서 융프라우요흐 스핑크스 전망대 에서 계속 앉아 있었다 . 내 동생은 얼음동굴까지 갔다 왔다 . 일행 중에서도 갔다 온 사람이 많지 않다 . 왜냐하면 고산병 때문이었다 . 다행스럽게도 내 동생이라도 갔다 와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 얼음동굴은 여러 개의 얼음작품이 있다고 한다 .

이제 하산하러 내려갔다 . 이번에는 그린델발트로 내려갔다 .

그린델발트는 해발 1034m 의 작은 도시이다 . 내려오니 고산병 증세도 가라앉았다 . 그린델발트는 전형적인 알프스의 도시였다 .

그린델발트 에서 내려가 인터라켄 오스트에 도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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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켄에 도착하여 식사를 했다 . 식사는 스위스의 전통 음식점에서 했다 . 퐁듀 , 치즈 , 아이스크림을 맛보았다 .

인터라켄에서 식사를 하고 나서 인터라켄 투어를 했다 .

인터라켄의 모든 상점은 모두다 면세점 이다 . EU 국민이 아니면 무조건 공항에서 부가가치세를 돌려받을 수가 있다고 한다 . 나의 친구에게 선물할 스위스 종과 초콜릿을 샀다 .

시계상점에 가보았다 . 시계의 가격들은 꾀 비싸지만 고급스럽고 화려하다 . 대체적으로 80 프랑에서 300 프랑 정도 보통 하지만 비싼 것은 훨씬 더 비싸다 .

상점구경을 마친 3 시 30 분에 밀라노로 출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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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반도 이탈리아Italy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같이 반도국가

이다 . 한국과 지리적으로 공통된 부분이 있다면 한국과 같이 사람들이 매우 성질 급하고 고집이 세다 . 그리고 한국처럼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간다 .

이탈리아는 통일이 된지 130 년 정도 된다 . 이탈리아의 역사를 살펴보면 476 년 ,

로마가 멸망한 이후 이탈리아는 도시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 도시끼리 경쟁도 서슴지 않았다 . 쳐들어 가거나 죽은 사람을 대포로 쏘기까지 했다 . 이 도시국가 중에서도 많이 발달된 도시들도 있었다 . 바로 밀라노 ,

피렌체 , 제노바 , 피사 등이 국력이 강했다 . 하지만 15 세기에 들어서 이탈리아 북부에 오스트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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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자주 쳐들어 갔다 . 이탈리아 북부지역은 이탈리아의 통일을 원했다 . 가리발디 셔츠로 유명한 가 리 발디 장군은 빅 토 리 아 엠마 누엘 과 함께 이탈리아를 통일시켰다 . 북부 이탈리아는 쉽게 통일이 됬지만 남부이탈리아의 나폴리 왕국은 통일을 바 라 지 않 자 무력으 로 나 폴 리 왕국 을 차 지 하 고 교황령의 땅도 빼앗았다 . 이렇게 해서 이탈 리아가 통일되었다 . 이때가 1860 년 이니 통일이 된지 150

년 정 도 되 었 다 . 1 차 세 계대전 에 서 는 중립을 지켰으 나 이 후 파 시즘의 무솔리 니 가 쿠데 타 를 일으켜서 총통이 되었다 . 무솔리니는 히틀러와 일본 천왕과 손을 잡고 2 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 하지만 1943 년 시칠리 아 까 지 연합군 손 에 들 어 가 자 이탈리아는 항복을 했다 . 다행히 분단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 이렇게 해서 지금의 이탈리아가 되었다 .

지금의 이탈리아는 볼 것이 매우 많다 . 왜냐하면 이런 역사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유적지가 많을 수 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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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내가 이탈리아에 있을 기간도 5 일이나 되는 것 같다 . 이탈리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많다 대표적으로 샐러드 , 피자 , 스파게티 등이다 .

이제 밀라노 부터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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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도시 밀라노인터라켄에서 약 5 시간 정도 걸렸다 .

오면서 아주 긴 터널을 만났다 . 길이가 무려 20KM 이 고 건너는 데 25 분 걸렸다 . 그 리 고 이 탈 리 아 에 와 서 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코모호수를 보았다 .

코모호수 는 로마제국 때 부터 로마의 귀족과 황제들이 경치가 아름다워서 별장을 많이 지었다 . 나도 이곳에 별장 하나를 지었으면 한다 .

코모호수 는 밀라노에서 1 시간 거리이다 . 저녁 7 시 반쯤에 도착해서 식사를 하였다 . 간단히 식사를 한 뒤 밀라노 투어를 하였다 . 밀라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자도시 이다 . 예로 부터 알프스 넘어 서유럽의 강대국들과 무역을 많이 해서 이고 수많은 패션 업체들의 본사가 자리잡은 도시이다 .

Mi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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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는 건축물 들이 화려했다 .

이곳에 오 니 파 바 로 티 의 공연이 보 고 싶어 졌 다 .

파바로티의 고향은 아니지만 밀라노에서 많이 활동했다 .

이처럼 수 많은 오페라 작곡가 , 가수 들이 활동한 곳이다 .

그래서 인지 내 마음에 쏙 든 도시 중 하나였다 .

밀라노는 오페라로 도 유명하다 . 이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인 주세페 베르디 , 자코모 푸치니 , 조아키노 안토니오 로시니 등이 있고 성악가로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이 많이 활동했다 .

주세페 베르디 조아키노안토니오로시니

자코모 푸치니 루치아노 파바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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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먼저 라 스칼라 극장에 갔다 . 라 스칼라 극장은 세계 3

대 오페라 극장이다 . 그런데 직접 가 보니 정말 작았다 .

크기는 상관없이 많은 작곡가와 성악가들이 활약했던 장소에 왔다는 것 조차도 실감이 난다 . 라 스칼라 극장은 화려하지는 않았다 . 앞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상이 있었다 . 이 동상은 빈치시 에도 있다고 한다 .

라 스칼라 극장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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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스칼라 극장의 바로 옆에는 쇼핑센터인 빅토리아 엠마누엘 2

세 겔러리 가 보였다 . 빅토리아 엠마누엘 2 세 겔러리 안에 들어가 보니 화려하고 수많은 카페와 옷 가게와 고급 레스토랑이 있었다 . 안타깝게도 늦은 저녁시간 이여서 많이 문닫아서 많이 구경하지 못하였다 . 그런데 바닥에 로물루스 와 레무스가 늑대의 젖을 먹는 그림이 있었다 . 이곳에 이런 그림이 있을 줄 전혀 몰랐다 .

빅토리아 엠마누엘 2 세 겔러리는 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다음에 또 오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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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엠마누엘 2 세 겔러리 옆에는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이 있다 .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은 14 세기에 건축하기 시작하여 20 세 기 중반에 완공 되 었 다 . 중 간 에 잦은 오 스 트 리 아 ,

프랑스군의 침략으로 전쟁준비를 하거나 1,2 차 세계대전으로 짓는데 중단이 된 적이 많기 때문이다 . 그래서 짓는데 600 년이 넘은 것이었다 . 밀라노 두오모 성당은 높고 화려하게 지어져 있다 . 밀라노 두오모 성당은 높고 화려해서 밀라노의 상징이 되었다 . 밀라노 두오모 성당을 관람하고 나서 밀라노를 떠났다 .

오늘은 참 고단했다 . 3500M 넘는 고지에 갔다가 온 다음에 차를 타고 4 시간 30 분이나 가서 아주 힘든 날 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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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

Pisa밀라노에서 하룻밤 자고 나서 피사 현으로 떠났다 . 피사 현은 토스카나 주에 위치해 있어 내가 지금 있는 애밀리아로마나 주 에서 3 시간 거리 이다 . 드디어 이탈리아 반도에 들어서는 것이었다 . 이탈리아 라면 평지 인 것 같았는데 , 피사 까지 온통 산이었다 . 우리나라의 산 과는 달리 산이 아주 울퉁불퉁 하고 산 중턱 에는 구름이 껴 있어 신비해 보였다 . 산 위가 평평한 언덕에는 구릉도시가 발달해 있었다 .

토스카나 주는 구릉도시로 유명하다 . 피사 현에 다다랐을 때는 평야였다 . 드디어 피사 현에 도착 했다 . 먼저 피사 의 역사를 살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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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시절 피사 는 로마가 다스렸다 . 2 차 포에니 전쟁 때는 한니발의 동생이 형인 한니발을 돕기 위해 에스파냐 에서 배를 타고 피사 에서 배를 세우고 형을 도우려고 했으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가 에스파냐로 쳐들어 와서 침략하지 못했다 . 476 년 , 로마가 망한 후 피사는 도시국가로 발전 하게 된다 . 바다가 있어 여러 나라와의 무역으로 발전 하게 되었으나 제노바가 해상권을 빼앗아서 약해 지다가 피렌체에 의해 합병됐다 .

피사 에 도착해서 피사의 사탑 으로 향했다 . 피사에 서 피사의 사탑 있는 곳 까지 걸어서 갔다 . 피사의 동네를 걷다 보니 집들이 2 층 단독주택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

길을 걷다 보면 흔히 라일락 꽃을 볼 수 있었다 . 향까지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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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분 정도 걷다 보니 꾀 높은 성벽이 보였다 . 높은 성벽 안에는 피사의 사탑과 피사 두오모 성당 , 세례당이 있었다 .

피사의 사탑을 보니 생각보다 매우 기울어져 있었다 . 다행히 성수기가 아니 여 서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 오늘은 운이 좋았다 . 2 유로 하던 두오모 성당 입장권이 오늘은 무료였다 .

즉 , 8 유로 아낀 셈 이었다 . 두오모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이다 .

두오모 성당이란 , 지방의 주교가 있는 성당을 두오모 성당이라고 한다 . 어제 봤던 밀라노 두오모 성당 도 이런 뜻인 것 같았다 .

피사 두오모 성당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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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당으로 가 봤다 . 세례당의 앞쪽 지붕은 빨간 타일이 위에 있었지만 뒤쪽 지붕은 청동 색 타일로 되어 있었다 .

둥근 모양으로 되어 있지만 크기는 생각한 것보다 컸다 .

다시 피사의 사탑으로 돌아갔더니 피사의 사탑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들었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실험하고 길 울어 져 있어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 손 꼽힌 건축물인데 삭제 되었다 . 그 이유는 피사의 사탑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땅속에 지탱하는 대리석이 56M 인 대리석 탑을 견디지 못해서 기울고 있는 것이다 . 피사의 사탑 역사는 중세시대인 12

세기로 돌아가야 한다 . 12 세기 에는 피사 와 피렌체가 도시국가로 경쟁 했는데 이 두 도시는 무역 , 문화 , 물건 ,

건축물 , 국력 등으로 경쟁을 했다 . 피사는 피렌체의 성당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피사 두오모 성당을 짓고 더 화려하게 하기 위해 피사의 사탑을 지었다 . 급하게 만들어서 받침을 약하게 하여 탑이 이때 부터 기울어 진 것이었다 .

이렇게 해서 피사 관광을 마치고 로마로 향했다 . 로마로 가면서 운이 좋은 일이 있었다 . 가는 중에 무지개가 1 개가 아닌 쌍무지개가 뜬 것이었다 . 오늘은 운이 좋은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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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영광 로마로마 인근의 피우치 라는 마을에서 자고 나서 로마 시내 까지 메트로를 타고 갔다 . 로마를 알려면 먼저 로마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 로마제국은 로마의 초대 황제인 로물루스 가 세웠다 . 로물루스 에 대한 신화도 전해 온다 . 마르스 라는 신이 있는 데 마르스가 인간과 사랑을 하자 제우스 신은 화가 나서 그 소녀를 죽이기로 했다 . 하지만 그 소녀는 두 쌍둥이가 있어서 쌍둥이 만큼은 죽음을 당 하 지 않 게 하 기 위 해 쌍둥이 를 바 구 니 에 담아 테베레 강 에 떠 내려 보냈다 . 테베레 강 에세 물을 마시던 늑대가 이 쌍둥이를 발견 하고 새끼 처럼 키웠다 . 젖도 먹 이 고 음식 도 갖 다 주었다 . 그러다가 한 양치기가 이를 발견 하고는 양아들로 삼아서 키웠다

R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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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쌍둥이는 자라서 훌륭한 리더가 되었다 . 로물루스는 테베레 강변의 7 언덕 중에서 팔라티노 언덕을 선택하여 튼튼한 성을 쌓았다 . 레무스는 팔라티노 언덕 남쪽에 성을 쌓았다 . 그런데 레무스가 형인 로물루스 에게 불만이 있어 팔라티노 언덕에 가다가 형인 로물루스 에게 서 죽임을 당하고 로물루스는 로마를 혼자 다스렸다 .

BC509 년 에트루이아 족 출신인 타르퀴니우스 황제가 죽임을 당한 이후 로마는 공화정으로 들어가게 된다 . 이후 500 년간 공화정 국가로 발전 하게 되다가 카이사르의 아들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 가 새로운 황제가 되어 로마가 망할 때 까지는 제정 시대가 이어졌다 . 하지만 잦은 게르만 민족의 침입으로 AD476 년 결국 로마가 함락되고 황제 인 로 물루스 아 우 구 스툴루스 가 게 르 만 대표인 오로아케르 에게 항복하여 서로마 제국의 역사가 망하지만 동로마는 비잔티움 제국으로 1000 년간 더 이어졌다 .

이후 중세의 암흑기가 찾아오고 많은 사람들이 흑사병으로 죽었고 크리스트교의 교황 중심의 세계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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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는 교황령 땅이 되고 이탈리아가 여러 나라로 갈라지게 된다 .

가리발디 장군이 1870 년에 통일을 이루었으니 즉 ,

통일이 된지 약 140 년 정도 밖에 안되었다 . 로마는 로 마 제 국 의 수도 이 자 중 심 지 이 었 다 . 그 래 서 로마제국의 유적지가 유럽에서 가장 많이 남아있는 도시 이다 . 로마에는 2000 년이 넘는 건물들도 흔히 볼 수 있었다 . 이 건물들은 카이사르나 옥타비아누스 시절에 만들어 진 것들이 많다 . 건물을 대리석으로 지었기 때문에 2000 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많은 것 같다 .

우리나라의 건축물도 대리석으로 지었다면 지금 까지도 많이 남았을 텐데 나무 건물은 수명이 짧은데 나무로 지어서 고대 건물이 없는 것 같다 .

로마는 두 가지의 얼굴을 지닌 도시 인 것 같다 . 거대한 로 마 제 국 , 또 하 나 는 바 로 크 리 스 트 문 화 이 다 .

크리스트 교의 중심지는 예루살렘 다음으로 손 꼽히는 곳이 바로 로마이다 . 로마에는 크리스트 교를 대표하는 교황이 살기 때문이다 . 13 세기에는 교황청이 로마 말고 아비뇽 에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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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로마 교황청이 승리를 해서 로마에 크리스트 교 문 화 가 발 달 이 된 것 같 다 . 르 네 상 스 시대에 는 미켈란젤로 , 라파엘로 , 레오나르도 다빈치 , 보티첼리 ,

도나텔로 등의 훌륭한 화가들이 로마 교황청에 많은 작품을 남겨 피렌체 다음의 르네상스 도시가 되었다 .

자 , 이제 본격적 으로 로마 투어를 해 보자 .

로마에 도착해서 먼저 바티칸에 갔다 . 걸어서 이탈리아 국경을 걸어서 넘으니 참 흥미로웠다 . 바티칸 박물관에 먼저 갔다 . 바티칸 박물관의 유물들은 아주 화려하고 빛났다 . 나 같 은 크 리 스 트 교인 에 게 는 더욱더 흥미로웠다 .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멋지게 장식해 두었기 때문 이다 . 바티칸 박물관은 세계 3 대 박물관중 하나이다 . 이번 여행으로 세계 3 대 박물관을 다 가본 것이다

뱀에 물리는 라오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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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티칸 박물관 에서 가장 화려한 지도의 방으로 갔다 . 지도의 방의 길이는 자그마치 500M 나 되고 안의 천장은 천장화가 그려져 있고 나머지 천장 부분은 금색으로 되어 있어 더 화려하게 느껴졌다 . 벽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카펫에 그려져 있어 더욱더 실감이 났다 . ‘ 어떻게 해서 카펫에 그려놓을 생각을 했을까 ?’ 하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 이 화려한 구간이 500M

나 되서 방을 지나는데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지도를 보며 갔다 . 지도에는 이탈리아 지도 , 로마 시 지도 , 바티칸 지도 ,

유럽 지도 등을 그려 놨는데 똑같은 곳의 지도 라도 다른 느낌이 들었다 . 이 지도의 방은 지도의 고정관념을 없앤것 같고 지도에 대한 새로운 화려함을 더한 작품 인 것 같다 . 이제 시스티나 소성당 으로 내려갔다 .

지도의 방 내부의 천장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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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소성당에 들어가니 경비원 여러 사람이 소성당 안에 있었다 . 시스티나 소성당 에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었다 . 이 두그림은 전 세계 적으로 유명 하기 때문에 소음이나 사진을 찍어서는 안되었다 . 이를 어기면 아까 말한 경비원들이 밖으로 쫓아 낸다 . 이곳 에서는 찍소리 내면 안되기 때문에 이곳에 들어온 한국 할머 니 들 이 나 아 주 머 니 들 은 화 가 난 다 고 한 다 .

시스티나 소성당 처럼 성경의 말을 그림으로 넣는 이유는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백성들 까지도 크리스트교를 믿어야 했다 . 그런데 백성들은 글을 읽지 못해서 쉽게 성경을 알려주 기 위 해 서 성경의 말씀을 그림으 로 표현하는 것이다 . 이렇게 하면 백성들에게 크리스트 교를 교리 할 수 있고 후세 에게는 훌륭한 작품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은 메디치 가의 양아들인 미켈란젤로가 그린 작품이다 . 시스티나 소성당 의 천장은 천지창조가 그려져 있고 제단의 벽의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었다 .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그리고 나서 얼굴이 삐뚤어 졌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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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가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림만으로도 이해가 갔다 . 이 그림에서 교훈을 주는 것 같다 .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는 큰 고생을 하겠지만 고생을 할수록 그림은 더욱더 완성도 높은 그림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 같다 . 시스티나 소성당을 보고 바티칸 박물관에서 나왔다 . 아쉽게도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은 촬영 하지 못했다 . 이제 미켈란젤로가 건축한 성 베드로 대성당에 갔다 .

성 베 드 로 대성 당 은 크 리 스 트 교의 중 심 이 되 는 성당이다 . 성 베드로 대성당은 현재 교황 프렌체스코 1

세가 머물고 있는 성당이다 . 나에게는 이곳이 성스러운 성당인 것 같다 . 들어가기 전에 광장 모양을 봤더니 꼭 열쇠 구멍 모양이었다 . 안으로 들어가니 아주 화려한 제단과 어두운 모습이 인상 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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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자 마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가 있었다 . 피에타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자 성모 마리아가 슬퍼하는 모습이다 . 피에타 상이 아주 우울해 보였다 . 스테인드 글라스는 제단이 있는 벽 에세 가장 위쪽에 있었다 . 오늘은 운이 좋게 일요일이 아닌 이유로 성 베드로 대성당을 관람할 수 있었다 . 일요일 에는 미사를 봐서 성 베드로 대성당을 들어갈 수 없고 박물관만 이용할 수 있다 . 이렇게 해서 바티칸 여행을 마쳤다 .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성베드로성당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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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의 점심식사를 한 뒤 로마 시내를 둘러보며 여행을 했다 . 로마는 참 볼 것이 많다 . 바티칸 외의 로마를 둘러 보았다 . 먼저 히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지어진 판테온을 보았다 . 판테온은 2000 년 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터만 남은 것이 아니라 건물이 완전히 남아있었다 . 로마 제국에서는 크게 신 7 명을 믿었다 . 판테온은 황제들이 이 7 신 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 하지만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4 년에 밀라노 칙령을 내린 후 부터 사용을 많이 하지 않았다 . 로마제국이 망한 이후 교황령 땅이 되면서 판테온을 크리스트 교회가 차지 했다 . 지금도 성당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 판테온은 이것으로 유명하기 보다는 위의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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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시대로 돌아와서 보면 제사를 지내는데 향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에 머물러 있자 히드리안 황제는 천장에 큰 구멍을 뚫으라고 했다 . 신기한 것이 구멍에 비가 쏟아 지지 않는 것이었다 . 왜냐하면 향을 피우면 공기가 대워 지는데 데워진 공기 안에 빗물이 들어올 수 없기 때문 이었다 . 판테온 안에는 무덤이 있었다 .

이 무덤에는 천재 화가인 라파엘로의 시신이 묻혀 있었다 . 판테온은 정말 신기한 곳이었다 . 우리나라 에도 이런 2000 년 된 건물이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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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온을 보고 나서 르네상스식 분수인 트레비 분수로 갔다 .

트레비 분수에는 가운데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 이 있고 옆에는 포세이돈의 아들이 있는데 포세이돈 아들의 두 가지 모습을 담고 있었다 . 트레비 분수 에서는 동전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다 . 트레비 분수에 동전 1 개를 던지면 자신의 사랑이 이어지고 2 개 던지면 로마에 돌아 올 수 있고 3 개 던지면 사랑과 헤어질 수 있고 4 개 던지면 새로운 사랑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 나는 동전을 2 개 던졌다 . 왜냐하면 로마로 다시 또 여행 오고 싶기 때문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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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비 분수 앞에는 젤라또 가게가 많다 . 나도 젤라또를 하나 사 먹었다 . 작은 사이즈로 시켰는데 너무 많았다 .

나는 2.50 유로 젤라또를 사먹어서 2 가지 맛이 섞였다 .

다시 트레비 분수로 돌아 갔더니 사람들이 더 많아 졌다 .

트레비 분수 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젤라또를 먹는다 .

시원한 분수 앞에서 젤라또를 먹으니 로마에서 먹은 더 위 가 날 아 갔 다 . 4 월 말인 데 도 날씨가 30 도 에 가까웠다 . 한 여름에는 45 도가 넘는다고 한다 . 트레비 분수는 화려한 대리석으 로 지 어져 있 어 서 더욱더 아름다웠다 . 문제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

하지만 겨울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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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분수를 꺼 놓는다고 한다 . 트레비 분수를 보고 스페인 광장으로 이동했다 . 트레비 분수에서 스페인 광장 까지는 멀지 않았지만 로마 벤츠 투어를 이용했기 때문에 아무런 힘 안 들고 차 타고 갔다 .

스페인 광장 앞은 계단이 무수히 많았다 . 스페인 광장은 스페인 대사관 앞에 있는 광장 이라고 해서 스페인 광장 이라고 한다 . 스페인 광장은 계단 위에서 보면 여기가 어딘지 모르지만 계단을 내려가면 스페인 광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 스페인 광장 계단에 앉았는데 대리석이 너무 데워져서 앉지 못하고 내려갔다 . 스페인 광장에도 집시 같은 사람이 돗자리 펴고 계 단 에 서 장 사 를 했 다 . 스 페 인 광장 은 아 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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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에 야자수가 있어 여기가 로마인지 착각하게 된다 .

스페인 식 계단과 건물이 있어서 스페인 느낌이 난다 .

스페인 광장을 보니 다음에는 스페인을 가고 싶었다 .

스페인 광장의 계단을 내려가자 스페인 광장 꼭대기로 올라가야 할 것 같아서 한 숨을 쉬다가 마침 벤츠가 스페인 광장 아래쪽에 와 있었다 . 운전자가 매너 있었던 것 같다 .

이제 진실의 입으로 향하였다 . 팔라티노 언덕 아래에 자리잡은 진실의 입은 산 발레스타인 성당에 있었다 .

진실의 입 앞에 가자 모든 사람들이 긴장했다 . 진실에 입에 손을 넣는데 거짓말을 하면 손이 잘린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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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번 손을 넣었더니 잘리지 않았다 . 사실은 진실의 입은 원래 하수구 뚜껑 이었다 . 손을 넣었을 때 진실의 입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 것 같았고 안에는 비어있고 벽돌만 있었다 . 생각보다 꽤 실망이었다 . 산 발레스타인 성당에 들어 갔다 . 안에 가보니 산 발레스타인 성인의 해골이 있었다 . 진짜 해골을 봐서 너무 무서웠다 . 산 발레스타인 성인의 성일은 2 월 14 일 이다 . 초콜릿 파 는 상 인 들 이 참 한 심 했 다 . 장 사 를 하려고 산 발레스 타 인 성 인 의 성 일 을 이 용 한 것 이 었 다 . 산 발레스타인 성당 안에서는 성가가 미사 때 빼고는 계속 나온다고 한다 . 이 성가들은 라틴어로 나와서 성가 이름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 산 발레스타인 성당에서 나와 바로 옆이 포로로마노로 향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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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로마노는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가 세운 팔라티노 언덕 바 로 아 래 에 지 어져 있 다 . 포 로 로 마 노 안 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팔라티노 언덕 위에서 봤다 . 팔라티노 언덕 위에서는 포로로마노가 한 눈에 보였다 . 포로로마노는 라틴어로 포로로마늄 이라고 한다 . 포로로마노는 로마의 가장 큰 심장부 라고 할 수 있다 . 로마제국의 정치적 , 문화적 , 경제적의 중심지로 원로원과 민회가 자리잡은 곳이다 . 2000 년 전을 떠올려 보면 로마의 장군들이 깃발을 꽂고 승전을 기념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 로마는 1200 년간 지중해를 상대로 무역을 하거나 차지하기 위해 여러 나라와 싸워 이긴 나라 이다 . 북으로는 영국 남쪽으로는 북아프리카 서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차지한 제국 이었다 .

그런 로마였기 때문에 로마의 중심지인 포로로마노가 더 멋지 지 않 았 을 까 라 는 생 각 이 들 기 도 한 다 . 이곳 포로로마노 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죽었던 곳이기도 한다 . 포로로마노를 둘러보면 2000 년 전의 로마 속으 로 빠져들 게 된 다 . 우 리 는 로 마 의 것 을 많 이 사용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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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을 때 시멘트로 짓는데 이것은 로마의 건축에서 나온 것이다 . 영어를 쓸 때도 마찬가지 이다 . 영어는 라틴어 에서 비롯되었는데 로마제국이 라틴어 국가였다 . 책을 읽을 때 우 리 는 책을 넘겨서 읽는 데 이 런 책도 로 마 에 서 비롯되었다 .

이런 사소한 것도 로마에 비롯되었으니 로마의 역사는 우리에게 중요할 수 밖에 없다 . 물론 자국의 역사도 중요하다 . 팔라티노 언덕은 로마의 역사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 팔라티노 언덕은 로물루스 황제 때부터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까지 오랜 시간 동안 발달이 된 언덕이기 때문이다 . 여행의 비수기에는 혼자서 조용히 걸을 수 있지만 성수기에는 시끄럽다고 한다 .

팔라티노 언덕은 다른 로마지역에 비해 아주 시원해서 좋았다 . 사이프러스 나무와 오랜지 나무가 팔라티노 언덕에 많이 있는데 사이프러스 나무와 오랜지 나무는 로마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 이제 팔라티노 언덕에서 내려와 로마의 대전차 경기장을 갔다 . 언덕에서 내려가서 얼마 안 가면 바로 대전차 경기장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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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차 경기장으로 내려가니 타원형 모양의 대전차 경기장 모습이 나왔다 . 로마제국 에서는 오락시설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로마의 서민들은 경기장에서 경기를 즐겼다 .

전차경주도 그 중 일부였다 . 대전차 경기장은 길이가 길지만 선수들은 한 바퀴를 도는데 자그마치 1 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

나도 한번 전차 경주를 보고 싶어 졌다 . 대전차 경기장은 땅을 파서 지은 것 같았다 . 대전차 경기장을 보고 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으로 향하였다 .

대전차 경기장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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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파시우스 황제가 콜로세움을 건축하였다 . 콜로세움은 AD80 년에 건축되었다 . 베스파시우스 황제의 아들 티투스 황제가 콜로세움에 첫 번째 주인공 이다 . 티투스 황제 때부터 시작한 경기는 매우 잔인했다 . 검투사들은 서로 다른 검투사들을 죽이면서 경기를 했다 . 황제는 경기에서 패한 검투사의 운명을 결정하였으나 대부분의 로마 시민들은 검투사의 죽음을 원했다고 한다 . 이때 당시에는 콜로세움이 3층 이었고 지하가 없었으나 티투스의 동생인 도미티아누스 황제 는 콜로 세움에 없었 던 4 층을 짓고 검투 사 들 의 대기실인 지하를 만들었다 . 검투사들은 무대로 올라 갈 때 도르래가 달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 콜로세움은 시멘트 와 화산재를 섞어서 지어졌다 . 콜로세움은 지금 예전의 3/2 만 남아있다 . AD432 년에 로마에 대지진이 일어나 일부가 붕괴되었고 기독교회에서 많이 떼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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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에 저녁에 가니 사람들이 많이 없어 구경하기 편했 다 . 콜로 세움은 내 가 예 상 한 것 보 다 컸다 .

콜로세움을 끝으로 로마투어를 마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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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지중해의 보석 ,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이 제 로 마 에 서 3 시 간 남 쪽 에 있 는 캄파니아 주의 나폴리로 갔다 . 3 시간 정 도 내려가 더 니 나 폴 리 가 나 왔 다 .

하 지 만 우 리 의 목 적 지 는 나 폴 리 가 아니었다 . 1 번 고속도로 종점에서 빠져 나와서 베수비오 화산 을 향해 갔다 . 30

분 정도 베수비오 화산을 향해 가니 폼페이 고대 유적지 가 나왔다 . 폼페이는 기원전 2 세기 부터 로마의 큰 고대 도시였다 .

항 구 가 가 까 워 서 빠른 속도 로 발전을 했지만 기원후 79 년 8 월 24 일에 화산 폭발로 잿더미가 되었다 .

폼 페 이 고대 유 적지를 들어 가기 전에 가 이 드 에 게 로 부 터 설명 을 들 었 다 .

이번에도 로마 가이드가 설명해 주셨다 .

Camp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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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큰 항구가 있어서 폼페이에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 로마제국의 황제와 귀족들 에게는 휴양도시 였다고 한다 . 로마의 다른 지방에서 온 상인들로 넘쳐나고 항구로 무역을 해서 큰 이익을 벌었다 .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부유해 져 가자 술이나 빵을 사먹는데 돈을 많이 써서 전 재산을 탕진 하기도 할 만큼 돈을 쓸데 없는 데에 허비를 했다 .

폼페이 입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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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폼페이 유적지 안으로 진압했다 .

폼페이 고대 유적지는 꾀 컸다 . 동과 서의 길이가 3km 나 된다고 한다 .

먼저 목욕탕으로 갔다 . 목욕탕은 온통 프레스코화 로 되 어 있 었 다 . 커 다 란 수조가 있고 수도 꼭지 가 있어서 우리가 지 금 생 각 하 는 목욕탕과 비슷했 다 .

프레스코화 가 아 름답고 욕조 가 크 고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서 목욕탕 안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고 싶었다 .

빵집에 갔다 . 화덕도 보이고 방아도 보였다 . 지금의 빵집과 매우 비슷했다 . 이 빵집의 빵은 어떤 맛일지 궁금하고 유럽여행 하면서 매일 빵을 먹었는데도 빵이 입에 당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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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폼페이 시민의 여가 공공장소인 경기장에 갔다 . 이 폼페이 경기장이 세계 최초의 원형 경기장 이었다 . 이곳 에서는 검투사가 칼을 겨누고 서로 싸우거나 포식자와 붙는 경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 이곳에서 수 많은 검투사들이 싸우다가 죽었다고 한다 . 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은 내가 어제 갔던 콜로세움 에서도 자주 일어났는데 왜 이런 경기가 재미 있었던 지는 이해가 않간다 . 당시 사람들은 칼로 사람들 죽이고 하는 경기가 재미있었나 보다 .

폼페이의 골목을 걷다가 바를 발견했다 . 과일이나 술이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이다 . 이 그림을 보니 갑자기 과일이 먹고 싶어 졌다 .

폼페이의 시민이 살았던 집에 들어 갔다 . 집은 넓지 않고 좁았다 . 돌 침대가 있었지만 성 매매 하는 프레스코화가 있었다 . 당시 혼자 사는 남성들은 돈 주고 여자들을 사서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고 한다 . 이 일은 지금의 성 매매 와 똑같았다 . 폼페이 사람들이 이런 성범죄자 들인 줄 몰랐다 .

신이 벌을 주려고 베수비오 화산을 폭발 시킨 것 같기도 하다 .

이제 식당으로 이동했다 . 가면서 후추나무를 발견했다 . 내 평생 처음 본 후추나무에 놀라고 말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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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소렌토로 가기 위해 전철을 탔다 .

하지만 전철을 불편하기에 짝이 없었다 . 북아프리카의 메트로를 탄 것 같았다 . 그래도 아코디언과 탬버린을 들고 있던 한 청년들이 이태리 남부의 전통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해서 흥이 났다 . 소렌토 역에 도착했다 . 이곳은 절벽도 시 로 유 명 하 다 . 그 리 고 토르콰토 타소의 ‘돌아오라 소렌토로’로 유명하다

토르콰토 타소

소렌토의 구시가를 둘러보며 소렌토 투어를 했다 . 소렌토의 특징은 많은 주민이 영어를 잘해서 관광객들이 편하게 찾는 곳이다 . 바닷가 쪽에 도착하자 호텔들이 해안선을 중심으로 쭉 나있었다 . 호텔들이 절벽까지 파고 들어가서 지어졌다 .

평균 숙박비는 1박에 60 만원 이상이다 .

이제 부두로 가서 바닷가를 즐겼다 . 지중해는 한국의 동해 ,

서해와 많이 달랐다 . 지중해는 온통 파란색이고 물에 소금 끼가 많 이 없었 다 . 소 렌 토 를 구경하 는 동 안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젤라또가 아주 맛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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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렌토는 예전에 나폴리 현에 속해 있었지만 지금은 소렌토 현으로 되어있다 .

소렌토 관람을 마치고 카프리섬 으로 향했다 .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배를 타야 했다 . 25 분 동안 배를 타는데 단점은 파도가 있다는 것이었다 . 파도가 강할 때는 배가 아주 심하게 흔들렸다 . 이 고비를 넘기니 환상의섬 카프리섬에 도착했다 . 내가 본 카프리섬은 파라다이스 이었다 . 흰색 대리석으로 건물이 지어져서 그리스 같기도 했다 . 배에서 내 리 자 마 자 소형버스 를 타 고 갔 다 . 이 소형버스 는 카프리섬의 명물 이라고 한다 . 이곳에서 현지가이드가 불러 주 신 음악을 들 으며 케이블카 탑승 장 이 있 는 아나카프리로 향했다 . 아나카프리는 높은 카프리 라는 뜻이 다 . 아 나 카 프 리 로 가 는 동 안 현지 가 이 드 가 ‘ 오 솔레미오 ’ , ‘ 돌아 오 라 소 렌 토 로 ’ , ‘ 산 타루치 아 ’ 를 불러주셨다 . 이 곡들은 캄파니아의 전통 민요들 이었다 .

현지가이드는 이탈리아 사람이었지만 한국어를 잘하셨다 .

왜냐하면 한국 관광객들이 많기 때문이다 . 현지가이드가 불러주신 곡을 들으며 지중해를 보니 마치 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 하지만 천국도 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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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 카 프 리 에 도 착 해 서 1 인 케이블카 를 타 고 올라갔는데 너무 무서웠다 . 온몸은 소름이 돌았다 .

결국에는 눈을 감았는데도 무서웠다 . 그것도 잠깐이 아니었다 . 15 분이나 타고 올라갔다 . 케이블카가 오래되어서 그런지 삐걱하는 소리가 났다 . 처음에 본 카프리는 천국 같았는데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다 .

다행히 올라와서는 멋있는 풍경이 보였다 . 바다가 푸 른 색 을 띄고 집들 이 다 하얀색 이 어 서 더욱더 낭만적이었다 . 이 아름다운 풍경에는 대가가 있었나 보다 .

나는 썬 베드에 앉아서 하늘과 지중해 바다를 보니 참 낭만적 이었다 . 오늘 이 일로 3 달 후에 여름휴가를 가기 싫어졌다 . 카프리섬의 풍경은 마치 제주도 같았다 .

하지만 내려가야 했다 . 아나카프리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 아… . 또다시 낡은 1 인용 케이블카를 타야 해서 너무 두려웠다 . 아나카프리에 돌아와서는 어느 정도 고소공포증을 이겨낸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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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형버스를 타고 내려가서 카프리에 도착했다 . 이곳의 화덕피자 집에서 야외 테라스에 앉아 화덕피자를 먹었다 .

이탈리아의 화덕피자 맛은 최고였다 . 나는 최초의 피자 마가렛따 피자를 먹었다 . 그리고 캄파니아의 대표 음료 레몬에이드를 마셨다 . 캄파니아 주는 레몬으로 유명하다 .

아까 식당에서 레몬도 생으로 먹어 봤더니 맛있었다 .

피자와 레몬에이드를 다 마시고 나서 항구로 돌아갔다 .

하지만 또다시 고비가 찾아왔다 . 이번에는 바람이 세게 불고 나폴리 까지 50 분 이나 걸려서 문제가 생겼다 .

이번에는 뱃멀미가 너무 심했다 . 심지어 구토 까지 했다 .

나폴리로 가는 길은 죽음의 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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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에 도착했으나 실망이 저절로 나왔다 . 보이는 것은 이탈리아 인이 아니라 북아프리카 집시들 이고 건물들도 북아프리카 식 건물들 이었다 . 집들도 낡았고 위험이 되살 이고 있었다 . 왜냐하면 나폴리는 마피아 집단이 서식하는 도시 이다 . 나폴리 항구에는 드나드는 크루즈가 많았다 .

나폴리를 끝으로 해서 다시 호텔이 있는 피우치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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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피렌체 하면 매디치 가문 , 르네상스 ,

미켈란젤로 , 단테 등이 떠오르게 된다 .

피렌체는 중세의 암흑기를 닫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 매디치 가문의 도시이다 .

중 세 시대 피 렌 체 는 많 은 사람들 이 흑사병으로 죽어갔다 . 많은 사람들이 굶주 리 고 일찍 사람들 이 죽었 다 .

크리스트 교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두다 잡아서 마녀라고 화형 시켰다 .

코지모 데 메디치는 중세의 암흑기를 닫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갔다 . 이것이 바로 르네상 스 시대 이다 . 메디치 가 문은 피렌체를 중심으로 하여 유럽의 중세 암흑기를 닫고 새로운 시대를 열게 했다 .

처음 메디치 가문은 봉건 시대때 성을 지을 물자를 담당하는 직책이었다 .

Flo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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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성실히 일을 하여 많은 영주들 에게 주목을 받았다 . 덕분에 돈이 많아져서 금융업을 시작하게 된다 . 이들은 12 세기경 피렌체에 정착하여 금융업을 하게 되었다 . 피렌체 뿐만 아니라 여러 이탈리아 도시에 지점을 두어서 환전을 하거나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았다 . 메디치 가문은 교황 , 추기경 과 친하게 지내어서 교황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 이후 신성로마제국 , 프랑스 왕국 , 오스트리아 제국 ,

영국의 왕과 귀족들을 상대로 환전을 하거나 돈을 빌려주었다 .

이들은 성실히 일을 하여 많은 영주들 에게 주목을 받았다 . 덕분에 돈이 많아져서 금융업을 시작하게 된다 . 이들은 12 세기경 피렌체에 정착하여 금융업을 하게 되었다 . 피렌체 뿐만 아니라 여러 이탈리아 도시에 지점을 두어서 환전을 하거나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았다 . 메디치 가문은 교황 , 추기경 과 친하게 지내어서 교황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 이후 신성로마제국 , 프랑스 왕국 , 오스트리아 제국 ,

영국의 왕과 귀족들을 상대로 환전을 하거나 돈을 빌려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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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 의 전성기는 코지모 데 메디치 에서 로렌초 데 메디치 시대였다 . 코지모 데 메디치는 인문학 사상을 부활시켰다 . 그래서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와 사상을 받아드려서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

피렌체 인근에 플라톤 철학을 연구하는 연구소도 지어냈다 . 이전 중세시대 에는 크리스트 교 사상 이었지만 플라톤의 철학을 받아드린 것이다 . 코지모 데 메디치의 손자인 로렌초 데 메디치는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 그래서 여러 화가들을 양성 했는데 그 중에는 미켈란젤로 , 라파엘로 , 레오나르도 다빈치 , 도나텔로 , 보 티첼리 등 이 다 . 보 티첼리 는 19 세 기 이전까지는 잊혀진 인물이다 . 이후 메디치 가문은 프랑스 왕가인 부르봉 왕가와 결혼하게 된다 . 케서린 데 메디치는 프랑스 황제인 헨리 4 세와 결혼을 하여 왕비가 된다 . 케서린 데 메디치는 파리에 피렌체의 궁전과 똑같은 모양의 궁전을 지었는데 이 궁전이 바로 튈르리 궁전이다 . 이후 메디치 가문은 부유한 삶을 지내는데 1777 년 메디치 가문이 사라지게 된다 .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가 자식을 낳지 않고 흑사병으로 죽은 것이었다 . 결국 메디치 가문은 존재 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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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디치 가문의 역사는 피렌체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먼저 메디치 가문의 역사를 미리 익힌 것이다 . 피렌체에 도착해서 먼저 페루자 백화점에 갔다 .

페루자 백화점은 한국에는 없지만 유럽에서는 인기 많은 백화점 이다 . 엄마는 이곳에서 270 유로 가죽 가방을 사셨고 나와 동생은 20 유로 수첩을 샀다 . 면세 혜택을 받아 10% 할인 받았다 . 페루자 백화점은 볼 것이 많았다 . 이곳에는 한국인 관광객 들이 많이 왔다 . 나도 원하는 가죽 가방이 있었으나 너무 비싸고 어울리지 않아서 포 기 하 고 백화점을 나 왔 다 . 백화점을 나 오고 나서 식당으로 걸어갔다 . 피렌체는 골목이나 건물들이 중세 풍 이었다 . 그래서 피렌체는 시 전체가 유네스코 이다 . 꼭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이탈리아로 온 기분이었다 .

하지만 중세답게 더러웠다 . 마차들이 많이 왕래해서 길가에 만의 배설물이 많았다 . 너무 불쾌하여 왜 중세시대 때 더럽다고 한 이유를 알았다 . 600 년 전에 세워진 식당으로 갔다 . 이 식당은 내가 유럽에 와서 제일 만족한 식당 이었다 . 건물은 메디치 가문 때 지어졌고 르네상스식 건물과 벽과 천장에는 음식이 그려져 있어 입맛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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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에서는 음식이 3 가지로 나뉜다 . 애피타이저 에서는 파스타 아니면 수프 가 나온다 . 그 다음 에는 고기나 생선 이 나오고 디저트 로는 맛있는 치즈나 과일 이다 . 이 식당에서는 먼저 스파게티가 나왔다 .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매일 스파게티를 먹었지만 질리지 않았다 . 이탈리아 스파게티는 내 입맛에 매우 맞았다 . 스파게티를 먹고 난 다음에는 토마토 소스에 버무린 닭고기가 나왔다 . 나는 이 음식이 제일 맛있었다 . 부드러운 이탈리아 닭고기에 상큼한 이 탈 리 아 토 마 토 소 스 가 섞여 있 어 서 인 것 같 다 .

마지막으로 오랜지가 나왔다 . 유럽의 어느 식당에서 후식으로는 오렌지를 먹었는데 색갈이 주황색이 아닌 보라색 이었다 . 처음에는 누구나 자몽으로 오해를 하지만 먹어보면 오렌지 맛이 난다 . 우리나라에서 먹는 오렌지 보다 훨씬 더 수분이 많고 과일 맛이 좋았다 .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서 출발했다 . 피렌체는 정말 살기 좋은 도시인 것 같다 . 더럽지만 않다면 말이다 . 골목에서 빠져 나오니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이 나왔다 .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은 크기가 매우 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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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피렌체 대성당의 돔이 인상적이었다 . 700 년 전 피렌체는 시에나 현과 경쟁이 심했다 . 시에나 에서는 커다란 성당으로 다른 도시에게 주목을 받자 질투가 난 피렌체도 큰 두오모 성당을 짓기로 한다 .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 피렌체 대성당을 다 지었지만 지붕을 짓지 못한 것이었다 . 그리고 로렌초 데 메디치의 아버지인 줄리아노 데 메디치가 살해당하고 말았다 . 이때 로마를 여행하던 부르넬레스키 가 내가 2 일전 본 판테온의 돔을 이용하라고 했 다 . 돔 건설은 성 공 적 으 로 끝 나 고 피 렌 체 두오 모 대성당도 완공이 되었다 . 그리고 성당 장식은 도나텔로가 담당했다 .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 옆에 보니 작은 바위가 있었다 .

바위에는 단테라고 써있었다 . 바로 단테가 앉았던 바위였다 .

단테는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의 건축짓는 모습을 이 바위에 앉았다고 한다 . 700 년 전인데 아직도 남아있어 참으로 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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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 이탈리아 사람들은 바위 하나하나의 역사적 가치를 생 각 하며 소 중 히 관 리 하거나 보 관 한 다 고 한 다 . 그 럼 우리나라에는 정약용이 앉은 바위나 의자가 있을까 ? 하고 생각해 보았다 . 단테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피렌체 두오모 성당을 뒤로하고 단테의 집으로 향했다 .

천국의 문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

단테의 집에 가보니 집이 생각보다 매우 컸다 . 단테는 새로운 사상을 내세운 사람이다 . 중세시대 모든 사람들이 크리스트교에 의존을 하다가 십자가 원정에서 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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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전쟁이 끝나거나 군인들이 약탈 , 살인 , 강도를 심하게 하자 교황에게 신뢰를 잃게 된다 . 단테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사상을 담은 신곡을 쓰게 된다 . 단테는 아버지가 피렌체의 의장 이어서 부유하게 자랐다 . 그래서 생가가 큰 것 같다 . 단테는 교황파가 아닌 황제파에 들어가자 교황파는 단테를 추격하게 된다 . 단테는 결국 피렌체에서 떠나게 되어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을 떠돌게 된다 . 그러다가 라벤나 에서 1321 년에 숨을 거둔다 .

단테의 신곡 덕분에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고 중세 암흑기가 막을 내리게 된다 .

단테의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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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두오모 대성당 , 단테 ,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

바로 피렌체의 주인고 메디치 가문이다 . 메디치 가문의 중심지는 피렌체 이지만 피렌체 안에서는 피아짜 데 시뇨리아 이다 . 피아짜 데 시뇨리아 은 메디치 가문의 광장으로 피렌체의 교역 중심지 이자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 이다 . 바로 르네상스 최고의 미술관인 우피치 미술관 이다 . 우피치 미술관을 영어로 하면 office 이다 . 바로 메디치 가문의 사무실에 아름다운 르네상스 예술품들을 전시해 두었다 . 르네상스 작품들을 보관할 곳이 없어서 메디치 가문이 자기의 사무실에 전시해 둔 것이다 . 우피치 미술관은 비수기 인데도 사람들이 어마 어마 하게 많았다 . 나는 시간관계로 들어가지 못했다 .

그 앞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을 상으로 만들어 전시해 져있고 베키오 궁전이 있었다 . 베키오 궁전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멋있고 웅장했다 . 베키오 궁전은 메디치 가문의 궁전이다 . 지금은 피렌체 시청으로 쓰이고 있다 . 피아짜 데 시뇨리아도 내가 가본 유럽의 광장 중에서 인상적으로 깊게 남는 광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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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짜 데 시뇨리아를 뒤로 하고 피렌체의 골목을 걸었다 .

피렌체 골목을 나오니 피렌체 구시가지에서 나오게 되었다 . 아르노 강이 보이고 강 건너의 피렌체가 보였다 .

이제 아쉬움을 뒤로 하고 피렌체를 떠났다 . 이제 어느새 유럽여행도 2 일 밖에 남지 않았고 내일이면 이탈리아를 떠나게 된다 . 여행도 점점 종말을 이어 가는 것 같다 .

내일을 물의 도시 베네치아 와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서 인스부르크와 독일 까지 갈 것이다 . 아… . 참으로 고단한 여정도 내일의 고비만 넘으면 끝이다 . 베네치아 인근 도시인 파도바에서 하룻밤 잤다 .

피아짜 데 시뇨리아 베키오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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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도시 베네치아

Venice베네치아는 도시 대부분이 운하로 되어

있다 . 대운하를 중심으로 여러 운하가 있는데 섬도 수십 개 이다 . 이곳은 북쪽의 게르만 족을 피해 온 피난민들이 살았던 도시다 . 베네치아로 온 사람들은 이곳에 인공으로 땅을 만들어 냈다 . 만들어진 과정을 보면

1. 바닷물이 빠질 때 육지에서 4KM 떨어진 곳에 나무토막을 세운다 .

2. 나무토막에 벽돌과 시멘트를 쌓아 올린다 . 이렇게 되면 인공으로 섬이 생긴다 . 그리고 위에 건물을 쌓게 되어 베네치아가 생기게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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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베 네 치 아 는 눈부 시 도록 발 전 해 나 아 갔 다 .

비잔티움 제국이나 발칸 반도 등과 교역을 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멀리 아라비아나 페르시아 , 원나라 등과도 무역을 해 나가면서 베네치아는 부유해 진다 . 베네치아 에는 3대 위인이 있다 . 바로 마르코 폴로 , 안토니오 비발디 , 카사노바 이다 . 마르코 폴로는 베네치아의 전성기 때 태어나서 원나라를 여행하게 된다 . 마르코 폴 로 의 아버지 는 부 유 한 상 인 이 었 다 . 그 러 다 가 교황에게서 원나라 쿠빌라이를 만나고 오라고 해서 마르코 폴로는 원나라에 가게 된다 . 원나라에 가서 원나라의 풍습을 적었는데 , 이것이 동방견문록 이다 .

베네치아는 그들의 부를 상징하기 위해 성당도 짓고 으 리 으 리 한 궁전 도 지 었 다 . 17 세 기 에 들 어 서 는 베네치아가 쇠퇴하기 시작한다 . 전쟁에 의해 항로를 잃고 상인들이 줄어들자 귀족들은 노는데 정신을 팔았다 . 현재의 베네치아는 가라앉을 위기에 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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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오염으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섬들이 가라앉는 것 이 다 . 지 금 부 터 내 가 보 는 베 네 치 아 는 이 런 베네치아 이다 . 베네치아는 파도바에서 30 분 거리였다 . 베네치아 신시가지에 도착해서 배를 타고 구시가지로 가는 것이다 . 내가 뱃멀미가 있지만 파도가 없어서 멀미하지 않고 갔다 . 베네치아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비발디 고아원에 갔다 . 비발디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자였지만 버려져서 고아가 되었다 . 이 시대의 부잣집 아이들은 부모 에게서 벌임을 받았다 . 비발디도 예외는 아니었다 . 비발디는 수도원 에서 지은 고아원에서 성장한 덕분에 신부가 되었다 .

하지만 자기가 음악의 재능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신부를 그만두고 작곡을 했다 . 유명한 성가나 우리가 잘아는 사계도 남겼다 .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의 고아원에 가서 흥미로웠다 . 지금은 고아원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 비발디 고아원 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 여행에서 머니 머니 해도 사람들이 많은 곳은 기분이 나쁘다 . 비수기에 오길 잘한 것 같다 . 이 비발디 고아원도 2 달 후면 시끄러워 질 것이 분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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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발디 고 아 원 에 서 탄식 의 다 리 로 향하 였 다 이 곳은 베네치아 죄수들이 감옥으로 가는 다리였다 . 탄식의 다리만 건너면 바 로 감옥이 었 다 .

탄식 의 다 리 는 카 사 노 바 와 관련이 깊다 . 카 사 노 바 는 판사 의 부 인 을 좋아 했 는 데 판사 는 카 사 노 바 를 감옥에 가두기 로 하 고 재판도 하 지 않고 카사노바를 감옥에 가둔다 . 카 사 노 바 도 감옥으 로 끌려갈 때 이 탄식의 다리를 건 넜 다 . 탄 식 의 다 리 는 죄수들의 탄식이 흘려 나오는 다리로 죄수들이 보는 마지막 베네치아의 모습이다 . 아니 마 지 막 으 로 보 는 세 상 의 모 습 이 다 . 왜 냐 하 면 이 감옥에서의 탈옥은 불가능 했다 .

비발디 고아원

탄식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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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카사노바는 밤에 안개가 짖은 것을 이용해 탈옥을 한 다 . 그 리 고 카 페 에 서 여 유 있 게 차 를 마 시 면 서 판사에게 편지를 쓴다 . 편지의 내용을 보면 ‘당신은 재판도 없이 나를 감옥에 가두었으니 나도 석방 받지 않고 감옥에 나갔소’ 하고 적었다 .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 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바로 사자상 이다 . 베네치아는 사자상을 흔히 볼 수 있었다 .

사자는 베네치아의 상징이다 . 베네치아가 차지했던 다른 지역인 곳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 하지만 내 눈에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성당의 탑 위에 있는 황금상 이다 . 이 황금상은 높이가 3M 이고 더 놀라운 것은 순금 24K 로 만들어 졌다 .

이 황금상이 베네치아의 부를 상징한다 .

산 마르코 광장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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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곤돌라를 탑승했다 . 곤돌라를 타고 광장 주위를 돌다가 광장 반대편 에서 하선 할 것이다 . 곤돌라를 타고 바라본 베네치아는 화려했지만 물은 더러웠다 . 그래도 곤돌라와 사공을 소유한다면 베네치아 에서도 살만 할 것 같다 . 건물들도 멋있고 맛있는 식당도 많고 큰 마트도 있어 살만 할 것 같다 . 곤돌라를 살펴보니 온통 검은색 이고 모양도 같았다 . 곤돌라를 타는 시간 만큼은 여유로웠다 . 여유있게 곤돌라를 타고 내려서 본격적 으로 산 마르코 광장을 둘러보았다 . 산 마르코 광장은 참 특이했다 . 광장 뒤쪽에서 보면 성당이 가까워 보이고 반대로 성당에서 광장 뒤쪽을 보면 멀어 보인다 .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로 원근법이 쓰인 것이다 . 성당이 가까워 지게 하고 성당 밖의 세상은 멀어지게 하는 것이었다 .

베네치아 곤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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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옆을 보 니 특이 한 카 페 가 있 었 다 . 이 카 페 에 는 실내악단도 있었다 . 이 카페는 세계 최초의 카페였다 .

무역을 하면서 원두를 알게 되었는데 원두를 갈아서 물이나 우유에 타 마시게 되었다 . 그러면서 이 카페가 생긴 것이다 .

그리고 카사노바가 탈옥해서 판사에게 편지를 쓴 곳도 바로 이 카페였다 . 나도 이곳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싶었으나 시간이 안돼서 포기했다 . 지도와 가면을 사고 수상택시를 타고 갔다 . 50 분 정도 타고 갔다 . 대운하를 횡단해서 신시가지로 돌아가는 코스였다 . 대운하를 보며 베네치아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 수상택시를 타며 베네치아의 다리와 궁전과 집을 구경했다 . 뒤로 갈수록 궁전이 사라지고 서민들의 집들이 보였다 . 베네치아 서민들의 모습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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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코 성당

산 마르코 성당 입구 사자상

수상택시를 타며 리알토 다리를 보았다 . 리알토 다리는 베네치아의 상인들의 집합 소 같은 역할을 했다 . 왜냐하면 다리 안에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 이곳에는 신선한 채소나 과일 해산물을 판다고 한다 . 나는 수상택시를 타며 보고 지나갔다 .

리알토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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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궁전

수상택시를 타면서 45 분쯤 달리자 대운하 에서 나오더니 바다가 나왔다 .

이곳에서 수상택시가 전력질주를 했다 .

비가 와서 파도까지 더해져서 스릴이 넘쳤으나 나는 뱃멀미가 났다 . 속도가 빠르고 파 도가 있어서 너무 머리가 아팠다 . 하지만 내 동생은 너무 신난 모 양 이 다 . 수상택시 안 에 들 어 가 있어도 뱃멀미를 피할 수 없었다 . 10 분 정도 달리 다 보니 베네치아 항구에 도 착 했 다 . 이 제 야 한 시 름 돌릴 수 있었다 .

신시가지 에서 식사를 하고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로 향했다 . 오스트리아로 가 는 길 은 신났다 . 왜냐하 면 나 는 오스트리아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 비록 6 시 간 정 도 만 있 지 만 그 래 도 흥미로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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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라면 음악이 먼저 떠오르게

된다 . 오스트리아는 음악의 나라로 불릴 만 한 도 시 이 다 . 왜냐하 면 하 이든 ,

모차르트 , 슈트라우스 , 슈베르트 등이 활약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이들이 활약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 바로 이 예술가 들이 알프스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 그리고 오 스 트 리 아 땅에 막강 한 권력을 가 진 합스 부 르 크 왕가 가 지 원 을 하거나 세계무대에 설수 있게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 그러면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살펴보면 신 성 로 마 제 국 시 대 로 내 려 간 다 .

합 스 부 르 크 왕 가 는 12 세 기 경 오스트리아로 내려와서 오스트리아 제국을 세웠다 . 오스트리아는 먼저 스위스를 얻었으나 스위스의 독립운동 으로 스위스의 영향력을

Austria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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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서 동유럽을 차지했었다 . 동쪽의 나라라는 뜻으로 ‘와스터라이히 왕국’ 이라고 했었다 . 이후 오스트리아 왕국은 1529 년과 1683 년에 이슬람 세력인 오스만 제국을 물리치자 오스트리아는 최 전성기를 맞이한다 .

네덜란드 , 벨기에 , 스페인 , 발칸반도 , 흑해지역 ,

헝가리 등을 차지하여 유럽의 최 강자로 떠올랐다 .

이웃의 프랑스와 경쟁을 피할 수 없어서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선전포고를 했으나 1806 년 빈이 함락된다 .

그리고 프로이센과 전쟁을 했으나 패하게 된다 . 이를 지켜본 동유럽의 여러나라는 독립을 하려고 했다 . 이를 막고자 한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을 세웠으나 동유럽의 나라들은 인정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했다 . 오스트리아는 무력으로 동유럽의 독립운동을 막자 세르비아의 청년은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 1914 년 6 월 28 일 , 사라예보에 도착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행진을 하는데 세르비아 청년인 가브릴로 프린치프 가 총을 쏴서 황태자 부부를 암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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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황제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 이 전쟁이 바로 제 1 차 세계대전 이다 . 동맹국으로 오스만 제국 , 독일제국 , 오스트리아 제국이 동맹국이 되었고 영국 , 러시아 , 프랑스 , 세르비아 , 미국 등이 연합군이 되었다 . 연합군이 승리하자 오스트리아는 지금의 영토가 되어 10 배나 되는 영토를 잃었고 합스부르크 왕가도 몰락하게 된다 .

비록 예전의 영광은 세월에 묻히게 되었지만 내가 본 오스트리아는 아름답고 화려하고 멋있는 나라였다 . 그리고 훌륭한 음악까지 있으니 오스트리아는 작지만 강한 나라인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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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의 중심지 인스부르크티롤주에 위치한 인스부르크는 바로크의 중심 도시였다 . 인스부르크의 주변은 온통 산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 드디어 5

일 만 에 알프 스 를 찾 게 되 었 다 . 나 는 스위스의 알프스 모습과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모습을 비교하면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보습이 더 멋지고 아름다운 것 같다 .

오스트리아는 스위스 보다 여행하기 편했다 . 왜냐하면 별로 지대가 높지 않았기 때 문 이 다 . 먼 저 인 스 부 르 크 의 뜻을 알아보겠다 . 인스부르크의 Inns 는 인강 이 라 는 뜻이 고 Bruck 는 다 리 라 는 뜻이지만 성이 있는 곳을 말한다 . 예를 들 면 잘츠부 르 크 나 하 이 델 베 르 크 ,

아우크스부르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

베 르 크 도 부 르 크 와 같 은 의미 이 다 .

인스부르크를 한국어로 바꾸면 인강의 다리 라고 할

Innsbr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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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겠다 . 오스트리아의 골목을 지나자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가 나왔다 .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은 합스부르크의 막강 한 권력을 가 진 여왕이 다 . 그녀는 40 년 동 안 오스트리아를 다스렸는데 그때가 오스트리아의 전성기였다 .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은 16 명의 딸을 낳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마리 앙투아네트 이다 .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은 조카인 조세프를 양아들로 삼게 되고 왕권을 그에게 물려준다 .

인스부르크는 참 아름다웠다 . 바르크식 건물들이 많고 알프스도 멋있었다 . 이곳은 티롤주로 오스트리아 에서 알프스를 가장 많이 차지한 주로 오스트리아 에서 알프스를 흔히 볼 수 있는 주 이다 . 먼저 황금지붕 부터 찾았다 .

오스트리아 에서는 자유관광 이어서 자유롭게 인스부르크를 둘러보았다 . 황금지붕은 말 그대로 지붕이 황금색 이었다 .

아쉬운 것은 베네치아 처럼 순금이 아닌 것이 아쉬웠다 .

지금은 고급 아파트로 이용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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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성 야곱 성당 이다 . 성 야곱 성당으로 가는 길은 골목을 지나야 했다 . 표지판이 독일어로 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포기했지만 나는 독일어 표지판을 의존하며 골목을 벗어났더니 성 야곱 성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내가 좀 독일어의 감각이 있는 것 같았다 . 오늘 이 일로 독일어를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해 봤다 . 성 야곱 성당은 1717 년에 짓기 시작하여 1724 년에 지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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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야곱 성당 안에 들어가 보니 아주 화려했다 . 황금색 제단과 파이프 오르간이 있었고 안은 온통 바로크 식 으로 되어 있었다 . 분홍색 대리석과 흰색 대리석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어 낸 것 같았다 . 성 야곱 성당은 내가 가본 성당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에서 하나가 되었다 . 성 야곱 성당이 6 시에 문을 닫아서 빨리 보고 나왔다 . 나오기 전에 0.5

유로 하는 양초에 불을 켜서 소원을 빌었다 . 내가 빌었던 소원은 바로 오스트리아로 돌아오게 해 달라는 소원이었다 .

성 야곱 성 당 에 서 나 와 서 마 리 아 테레지 아 거리 를 둘러보았다 .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중앙에 탑이 있었는데 이 탑은 흰색의 대리석 으로 되어있었고 이름은 안나 기념탑 이 다 . 안 나 기념탑 은 스 페 인 왕위 계승 전쟁 때 오스트리아가 바이에른 군을 물리친 기념으로 세워진 기념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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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기념탑을 지났더니 트렘이 보였다 . 유럽에는 트렘이 많았다 . 우리나라에도 트렘이 있었으면 좋겠다 .

이제 모차르트 기념품을 사러 갔다 . 모차르트는 이곳이 고향이 아니지만 모차르트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 나는 기념품 점에서 인스부르크 엽서와 모차르트 상반신상을 샀다 .

오 스 트 리 아 의 전 통 의 상 을 보 기 위 해 인 스 부 르 크 의 전통의상 집을 찾았다 . 중절모는 둥근 모양이고 깃털펜을 달고 있었다 . 코트와 부츠가 마음에 들었으나 너무 짐이 많아져서 사지 못했다 .

인 스 부 르 크 로 향했 다 . 인 강 이 매 우 거칠고 물살이 강했으나 이런 강한 강줄기를 인스부르크가 막고 있었다 .

나는 색이 청색일줄 알았는데 의외로 갈색 빛 이었다 .

이제 인스부르크 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 차를 타러 이동했는데 고급 호텔이 보였다 . 이곳에 모차르트 이름이 써있었다 . 모차르트의 흔적을 찾아서 좋았다 .

이것으로 인스부르크 , 오스트리아 여행을 마쳤다 .

이제 알프스 넘어 독일 국경을 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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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의 나라 독일

독일은 우리나라와 같이 분단 되었던

나라이다 . 2 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되었고 전쟁을 일 으킨 대가 로 분 단 이 되 었 다 .

서독은 자유 민주주의 사회이고 , 동독은 사회 민주주의 사회가 되었다 . 서독은 동독보다 훨씬 더 발달이 되었다 . 그런데 반대로 동 독 은 너무 가 난 했 다 . 동 독 사람들 은 대이 동 을 했 다 . 헝가 리 와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서독으로 갔다 .

서독 총리인 헬무트 콜 총리 는 독일을 통일 시키기 로 했 다 . 1990 년 10 월 3 일 독일은 통일이 되었다 .

독 일 은 나 에 게 마음에 드 는 나 라 이 다 .

왜냐하면 독일제가 있기 때문이다 . 독일 제는 품질이 매우 우수하고 고급스럽기 때문이다 .

Deutsch-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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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독일과 한국은 가까운 사이이다 . 한국이 유럽에서 가장 친한 나라는 독일이다 서로 130 년 전부터 수교를 맺어왔다 .

독일은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 . 바로 나치의 히틀러 때문이다 . 당시 나치를 지지한 독일 국민은 90% 라고 한다 . 하지만 독일은 이를 반성하고 피해를 입은 나라들 에게 보상을 해서 이런 치욕스러운 역사를 잘 정리했다 .

반면 , 일본은 어떤가 . 우리에게 보상하지도 않고 독도를 자기 내 땅으로 여기고 위안부 문제도 그냥 넘어가려고 한다 . 하지만 독일은 이러한 문제와 역사를 정리 했기에 이러한 독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

어른들 이라면 독일을 싫어할 일이 없을 것이다 . 왜냐하면 신선한 맥주와 소시지 , 치킨이 있기 때문이다 . 독일의 역사는 매우 복잡하다 . 괴테가 말하길 독일 역사를 어디서 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 독일은 로마의 지배를 받은 이후 신성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 하지만 영주들 에게 여러 나라로 갈라졌다 . 그 중 프로이센은 비스마르크 라는 재상이 있었다 . 비스마르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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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 년 프랑스 파리까지 함락시킨 영웅 이었다 . 그리고 1871 년 에는 독일을 통일 시켰다 .

독일은 겨우 하루밖에 있지 않고 마지막 나라이다 . 마지막 도시인 하이델베르크 여행을 시작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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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도시 하이델베르크

Heidelberg

하이델베르크는 독일의 대학도시중 하나이다 . 하이델베르크는 유서 깊은 유적지가 없어졌다 . 왜냐하면 구교와 신교의 전쟁인 30 년 종교전쟁이 치열했던 도시였다 . 하이델베르크성의 내부는 완전히 사라졌고 도시가 온통 폐허가 되었다 . 다행히 17 세기에 마을을 복원했다 .

아 우 크 스 부 르 크 에 서 하룻밤 자 고 아 우 토반을 타 고 하 이 델 베 르 크 로 향했다 . 하이델베르크 까지는 3 시간 거리였다 .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해서 먼 저 구 다 리 에 갔 다 . 이 구 다 리 는 라인강의 지류인 네타르 강 이었다 .

구다리를 바치는 기둥에 자 같은 것이 있었는데 매우 오래되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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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르 강에 홍수가 날 때 측정해 둔 것이었다 . 구다리 앞에는 조각상이 있었다 . 원숭이 같았는데 이 원숭이 상에 머리를 넣고 엄지를 맞대었다 . 그러면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다고 한다 . 나도 좋은 대학교에 갔으면 좋겠다 . 이제 시청 쪽으로 향했다 . 시청으로 가는 길은 골목길 이었다 .

독일의 골목을 보니 진짜 독일에 온 것 같았다 . 골목을 벗어났더니 교회와 시청이 보였다 . 내가 있는 시청 앞 광장은 무시무시 한 곳 이었다 . 왜냐하면 이곳에서 화형을 했기 때문이다 . 정말 끔찍했다 .

구다리 구시가지 시청 앞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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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교회

하이델베르크 고성

뒤에 보이는 교회는 성령교회 이다 . 성령교회는 종교전쟁 이후 구 교 가 차 지 했 다 . 하 지 만 나중에는 이 성령교회를 신교가 차지했고 이후에는 신교가 반을 차지하고 구교가 반을 차지했다 .

지금은 신교가 다 차지하고 있다 .

성령교회는 매우 크고 로마네스크 양식 같았다 .

언덕 위에 있는 하이델베르크성은 외관 만 볼 수 있 다 . 왜냐하 면 안에는 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 30

년 종교전쟁으 로 성 내 부 가 약탈되어서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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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의 마지막 점심을 먹고 독일제를 보기 위해 백화점을 찾았다 . 이 백화점 안에는 온통 독일제 이었다 .

독일제 이 백화점은 매우 친근했다 . 간판에 독일어가 아닌 한국어로 ‘백화점’ 이라고 써져 있었다 .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포크와 숟가락 , 메탈비누 , 냄비 등이 있었고 인덕션 , 비타민 , 포도당 , 믹서기 , 접시 등이 있었다 .

이곳 에서는 중국산이 하나도 없었다 . 우리나라에도 독일제가 많았으면 좋겠다 .

이제 자유롭게 구시가지를 둘러 보았다 . 이곳에서 맥주와 와인들 맛보았다 . 와인은 트리어 와인 이었고 맥주는 어딘지 몰랐지만 독일맥주 이었다 .

구시가지를 둘러보면서 새로운 것도 맛보았다 . 바로 사과 칩 이다 . 사과 칩을 파는 곳을 가 보았더니 사과 술 , 사과 주스 , 사과 잼 , 사과 쿠키 , 사과 시럽이 있었다 .

봉지마다 Apfel 이라고 써져 있었다 . 독일어로 Apfel 이 사과이기 때문이다 . 몇 일전 파리에서는 La pomme

이 라 고 써있 었 는 데 프 랑 스 어 로 사 과 이 었 다 .

사과가게에서 사과 칩과 스파게티 면을 샀다 . 스파게티가 값이 한국에 반값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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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에 가서 반 친구들에게 줄 초콜릿을 샀다 .

그리고 음료 , 치즈 , 햄을 사고 광장으로 돌아갔다 .

이제 독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시지를 사먹었다 .

독일 소시지는 한국의 소시지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

머스타드 소스도 맛이 달랐다 . 한국에서는 꿀을 넣는데 독일에서는 오리지널로 먹었다 . 나는 이 맛이 더 맛있던 것 같다 .

이제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이동했다 . 11 일전에 유럽에 온 지 어제 같았는데 여행을 한 사이 시간이 빨리 간 것 같았다 .

괴테의 고향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다 . 하지만 여행을 목 적 으 로 온 곳이 아 니 라 집으 로 돌아 가려고 온 곳이었다 . 하이델베르크 에서 1 시간 정도 갔더니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 프랑크푸르트에 빨리 도착해서 비행기 자리를 잡으려고 했으나 독일인 승무 원 은 자 리 가 없다 고 했 다 . 그 래 서 한 국 인 승무원에게 잡아달라고 하자 자리를 잘 잡아주었다 .

독일인 보다 한국인이 더 친절한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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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크푸르트 국제공항은 한국보다 작았다 . 유럽에서 제일 큰 국제공항 이라고 한다는 것이 말이 안됐다 . 출국장에 들어갔다 . 그런데 면세점이 매우 작았다 . 인천공항에 반도 안 되는 크기였다 . 그래도 볼 것은 많았다 . 유럽의 사탕 ,

초콜릿 , 과자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 포장도 매우 고급스러웠다 . 하지만 나에게 더욱더 눈길을 끌게 되는 초콜릿도 있었다 .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의 모습

이제 면세서류를 작성했다 . 덕분에 부가가치세를 돌려받았다 . 유럽연합의 국민이 아니면 돈을 돌려 받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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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모차르트 초콜릿 이었다 .

인 스 부 르 크 에 서 봤 지 만 이곳에 서 또 볼지 몰랐다 .

모차르트 초콜릿은 모차르트의 그 림 이 그 려 져 있 었 다 .

모차르트 초콜릿은 매우 비싼 가격이었다 . 다 사지는 못하기 때 문 에 사 진 으 로 남 겼다 .

다음에는 꼭 잘츠부르크에 가서 모차르트 기념품 점에 가야겠다 .

이제 비행기가 출발하려면 2

시간 이나 남았다 .모차르트 초콜릿

남은 2 시간 동안 여유 있게 음료를 마시면서 공항 창문으로 보이는 활주로를 보았다 . 비행기가 많이 왔다 갔다 했다 .

이제 비행기 탑승구로 이동했다 . 비행기는 A380 이었다 .

이렇게 유럽을 떠나니 매우 아쉬웠다 . 4 월 27 일 오후 8 시 유럽을 떠나게 되었다 . 그리고 9 시간 30 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 이렇게 해서 서유럽 여행이 끝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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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간 일행 분들과 헤어져서 아쉬웠다 . 같이 좋은 추억을 만들었는데 이렇게 헤어지니 아쉬웠다 .

이렇게 해서 나의 행복한 순간은 막을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