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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제1장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보 - 이와 같은표현 방식은 다른 서신에서도쉽게 발견 할 수 있다. 이는 초대 교회 당시 여러 서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형태이다 (롬 1:1; 빌 1:1; 딛 1:1; 벧후 1:1; 유 1:1; 계 1:1).본절에서 야고보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결합하여 하나님 예수를 동격의 위치에 놓은 것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던 당시의 에비온파(Ebionites)에 대해서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종'은 직분보다는 신분을 나타내는 말로서 야고보 자신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된 자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것은 야고보가 주께 예속되었음을 강조한다기보다 는 그의 신분이 자랑스러움을 나타내는 것으로 온전히 하나님의 뜻만 좇아서 사는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 이 서신의 기록자 '야고보'(* ,야코보스)는 예수그리스도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 에게서 태어난 동생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중 한 사람이었다(행 15:13; 21:18, 본서 서론 '저 자론'참조).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 흩어져 있는 열 두 시파에 대한 해석은두 가 지이다.(1) 혹자는 예루살렘 멸망 이후 팔레스틴 이외의 흩어진 유대인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Mayer, Hort, Chaine).(2) 혹자는 스데반의 순고 이후에 흩어진 종말론 구원의 참이스라엘인 그리스 도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중에서도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o, Burdick, Tasker, Martin). 이 두 가지 견해 중후자가 타당하다(본서 서론 '수신자' 참조). 한 편 '문안 하노라'의 헬라어 '카이레인'(* )은 '즐거워하다', 기뻐하다'라는 의미이다. 야고보는 스 데반의 순교 이후 박해를 피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에게 시련 가운데 있을지라도 더욱 감사하며 기뻐할 것을 종용한다. =====1:2 내 형제들 아 - 야고보는 본서를 2인칭으로 시작함으로써 수신자들로 하여금 친근한 느 낌을 갖도륵 한다. '형제들' 은 야고보가 자주 사용하는 어투로서 본서에서 5번이나 사용되고 있다. ' 형제'라는 호칭의 헬라어 '아델포이' (* )는 본래유대인들이 같은동족에게 사용하였으나 (출 2:11; 신 15:2) 초대 교회에서 교인들이 서로를 부를 때 사용하였던 것으로(Deissmann),본절에서 는 야고보와 수신자 사이의 따뜻한 사랑의 관계를 시사한다(2:1,14; 3:1,10,12; 5:12,19). 너희가 여러 기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야고보는 신자들이 박해를 파해 흩어진 자들이기 때문에 먼저 그들의 최대 관심사인 시험에 대해 권면한다.그리스도인들은 시험에 들지않도록 기도해야 하며(마 6:13) 일단 시험을 맞게 되면 잠시 근심하게 될지라도 그것이 뜻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기쁘 게 여겨야 한다(벧전1:6).'시험'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라스모이스'(* )는 외부 로부터 야기되는 것으로 내부로부터 오는사람의 생각 죄의 '유혹'(temptation)이 아니라 '시련 '(trial)을 가리킨다(Kuhn). 한편 '만나거든'의 헬라어 '페리페세테' (* )는 문자적으로 '한 가운데 떨어지다'의 의미인데 본문에서는 사건에 직면한현실을 나타낸다(눅 10:30). 사람들의 내부로부터 오 는 '유혹'은 육체를 파괴하고 죽이려는 것이지만 외부로부터 오는 '시련'은 낙심하지 않고 이겨 내면 자신의 믿음이연단을 받아 더욱 굳건한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야고보는 수신자들에게 충만 한 기쁨으로 기뻐하라고 권면한다(롬 5:3-5).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을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 시험이 기쁨의원인이 있는 이유는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시련'의 헬라어 '도키미온'(* )은 결과적인 의미로 '시험하여서 인정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잘 정제된 금과 같은 '믿음의 표준'이 라 할 수 있다(Mayor). 그런데 시련에 대한야고보의 표현은 바울의 표현과 차이가 있다. 바울은 '인 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이루는 줄 앎이라'(롬 5:4)고 하여 '인내'(* , 휘포모넨)를 원인적 인 위치에둔다. 그러나 야고보는 '인내'가 시련의 과정을 거친 결과로 보고 있다. 이런 상이한표현은 강조점의 차이 때문이다. 바울은 시련의 과정올 중요시 한 반면 야고보는 고난자체를 중요시하기 때문 이다(Manton).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 '온진히'에 해당하는 혤라어 '텔레이온'(* )은 '끝'올 의미하

jacob - 크리스찬모니터christianmonitor.net/jusuk/jacob.pdf · 2016. 1. 9. · Title: jacob.hwp Author: ST-81107 Created Date: 8/27/2010 5:52:2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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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고보서�제1장

    =====1:1� � 하나님과�주� 예수� 그리스도의�종� 야보� -� 이와� 같은표현�방식은�다른� 서신에서도쉽게�발견�

    할� 수� 있다.� 이는� 초대� 교회� 당시� 여러� 서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형태이다� (롬� 1:1;� 빌� 1:1;� 딛�

    1:1;� 벧후� 1:1;� 유� 1:1;� 계� 1:1).본절에서�야고보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 결합하여� 하나님

    과� 예수를� 동격의� 위치에� 놓은� 것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던� 당시의� 에비온파(Ebionites)에� 대해서� �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종'은� 직분보다는� 신분을� 나타내는� 말로서� 야고보� 자신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된� 자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것은� 야고보가� 주께� 예속되었음을� 강조한다기보다

    는� 그의� 신분이� 자랑스러움을� 나타내는� 것으로� 온전히� 하나님의� 뜻만� 좇아서� 사는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 이� 서신의� 기록자� '야고보'(*� � � � � � � � � � � � � ,야코보스)는� 예수그리스도의� �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

    에게서� � 태어난� 동생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중� 한� 사람이었다(행� 15:13;� 21:18,� 본서� 서론� '저

    자론'참조).� � � � 흩어져�있는� 열� 두� 지파에게�문안하노라� -� 흩어져�있는�열�두�시파에�대한�해석은두�가

    지이다.(1)� 혹자는� 예루살렘� 멸망� 이후� 팔레스틴� 이외의� 흩어진� 유대인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Mayer,� Hort,� Chaine).(2)� 혹자는� 스데반의� 순고� 이후에� 흩어진� 종말론� 구원의� 참이스라엘인� 그리스

    도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중에서도�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o,�

    Burdick,� Tasker,� Martin).� 이� 두�가지� 견해� 중후자가 타당하다(본서� 서론� '수신자'� 참조).� 한� 편� '문안�

    하노라'의� 헬라어� � '카이레인'(*� � � � � � � � � � � � � )은� '즐거워하다',� 기뻐하다'라는� 의미이다.� 야고보는� 스

    데반의�순교�이후� 박해를�피해� 여러� 곳에� 흩어져�있는� 유대인�그리스도인에게�시련�가운데�있을지라도�

    더욱�감사하며�기뻐할�것을�종용한다.

    =====1:2� � 내� 형제들� 아� -� 야고보는� 본서를� 2인칭으로� 시작함으로써� 수신자들로� 하여금� 친근한� 느

    낌을� 갖도륵� 한다.� '형제들'� 은� 야고보가� 자주� 사용하는� 어투로서� 본서에서� � 5번이나� 사용되고� 있다.� '

    형제'라는� 호칭의� 헬라어� '아델포이'� (*� � � � � � � � � � � � � � )는� 본래유대인들이� 같은동족에게� 사용하였으나

    (출� 2:11;� 신� 15:2)� 초대� 교회에서�교인들이�서로를�부를� 때� 사용하였던�것으로(Deissmann),본절에서

    는� 야고보와� 수신자� 사이의� 따뜻한� 사랑의� 관계를� 시사한다(2:1,14;� 3:1,10,12;� 5:12,19).� � � � 너희가�

    여러� 기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야고보는� 신자들이� 박해를� 파해� 흩어진� 자들이기�

    때문에� 먼저� 그들의� 최대� 관심사인� 시험에� 대해� 권면한다.그리스도인들은� 시험에� 들지않도록� 기도해야�

    하며(마� 6:13)� 일단� 시험을� 맞게� 되면� 잠시� 근심하게� 될지라도� 그것이� 뜻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기쁘

    게� 여겨야� 한다(벧전1:6).'시험'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라스모이스'(*� � � � � � � � � � � � � � � � � � � � )는� 외부

    로부터� 야기되는� 것으로� 내부로부터� 오는사람의� 생각� 즉� 죄의� '유혹'(temptation)이� 아니라� '시련

    '(trial)을� 가리킨다(Kuhn).� 한편� '만나거든'의�헬라어� '페리페세테'� (* � )는� 문자적으로� '한� 가운데�

    떨어지다'의� 의미인데� 본문에서는� 사건에� 직면한현실을� 나타낸다(눅� 10:30).� � 사람들의� 내부로부터� 오

    는� '유혹'은� 육체를� 파괴하고� 죽이려는� 것이지만� 외부로부터� � 오는� '시련'은� 낙심하지� � 않고� 이겨� 내면�

    자신의�믿음이연단을�받아�더욱� 굳건한�믿음으로� � 성장할�수� 있기� 때문에� 야고보는�수신자들에게�충만

    한�기쁨으로�기뻐하라고�권면한다(롬� 5:3-5).

    =====1:3� � � 이는�너희� 믿음의�시련이�인내을�만들어�내는� 줄� 너희가�앎이라� -� � 시험이�기쁨의원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시련'의� 헬라어� � '도키미온'(*� � � � � � � � � � � � � � � � � �

    )은� 결과적인�의미로� '시험하여서�인정된�것'을� 의미한다.� 이것은�잘� 정제된�금과� 같은� '믿음의�표준'이

    라� 할� 수� 있다(Mayor).� 그런데�시련에� 대한야고보의�표현은� 바울의�표현과� � 차이가�있다.� � 바울은� '인

    내는�연단을� 연단은� 소망을이루는�줄� 앎이라'(롬� 5:4)고� 하여� '인내'(*� � � � � � � � � � ,� 휘포모넨)를� 원인적

    인� 위치에둔다.� 그러나� 야고보는� '인내'가� 시련의� 과정을� 거친� 결과로� 보고� 있다.� � 이런� 상이한표현은�

    강조점의� 차이� 때문이다.� 바울은� 시련의� 과정올� 중요시� 한� 반면� 야고보는� 고난자체를� 중요시하기� 때문

    이다(Manton).

    =====1:4� � 인내를�온전히�이루라� -� '온진히'에� 해당하는�혤라어� '텔레이온'(* � � � )은� '끝'올� 의미하

  • 는� '텔로스'(*� � � � � � � � � � )에서� 유래된� 말� 로서� � '온전히이루라'는� 말은� '중도에서� 포기하지� 말고� 끝까

    지� 참고� 견디라'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성도들도� 온전하여� 져야� 함을� 시사한

    다(마� 5:48).� � � �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 여기서의� '온전하고'

    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인내를� 갖춤으로�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 Ropes,Manton).�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는� '타밈'(*� � � � � � � � � � ,� '흠이� 없는')으로� 인간� 생활이나�재물에� '흠이� 없는'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하였다(창� 6:9).� 한편� '구비하여'의� 헬라어� '홀로클레로이(*� � � � � � � � � � � � � � � � � � � )는� '전체'를�

    의미하는� '홀로스'(*� � � � � � � � )와'할당'을� 의미하는� '클레로스'(*� � � � � � � � � � � � � )의� 합성어이다.� 이는� 신

    체의� 각� 부분이모두� 건전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행� 3:16)�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부분에서� 갖춰야� 할

    것들을�시사한다.� � 야고보는�본절에서�그리스도인이�지상의�생활에서�완전한�하나님의형상을 닮

    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다만�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마음� 자세를� 가지라는� 것이

    다.

    =====1:5� 너희� 중에� 누구든� 지혜가� 부족하거든� -� 인간이� � 가지고� 있는� 지혜는� 항상� � 불완전하여� 온

    전한� 인내를� 이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나� � 이성은� 잘못된� � 길로빠지기� 쉬우며� 환난� 가

    운데서� 기뻐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기때문에� 야고보는� 시련을� 온전히� 이기기� 위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필요함을� 진술한다.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과학적인� 지식이� 아

    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로운� 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이며� 솔로몬이� 구했던�

    지혜와� 동일한� 것이다(왕상� 3:9-12;대하� 1:7-12).� 이런� 지혜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시험이� 올� 때�

    이를� 적절� 하게� 대처할�수� 있게� 된다.� � �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

    라� -� 하나님은� 간구하는� 자에게� 결코� 인색하지� 않고� 풍성히� 주시는� 분이다.� 본절에서는� 이러한� 하나님

    의� 성품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신약성경에서�본문에만�나오는� '후히'(*� � � � � � � � � � � ,� 하플로스)는� '풍

    성하게'라는�의미와(RV,� KJV,Ropes),� '즉� 각성'이란� 의미를�내포한다(Cal-vin).� � 또한� '꾸짖지�아니하시

    는� 하나님'은� 너무� 빈번히� 기도하여� 번거롭게� 한다고� 해도� 결코� 책망하지� 않는� 분이어서� 그리스도인들

    의� 간절한� 기도에� 항상� 관대하게� 응답하심을� 뜻한다.한편� '모든� 사람'은� 비그리스도인까지� 포함하는� 것

    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절은�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하게� 주

    시기�위해서�준비하고�계시는�분이심을�시사한다.

    =====1:6� � � 오직� 믿음으로�구하고�조금도�의심하지�말라� -� 응답받는�기도는�믿음으로� � 하는것이어야

    한다.� 그� '믿음'은� '지혜'를�구하는�그리스도인�들에게�하나님께서�반드시�응답해�주신다는�약속을�확신

    하고� 신뢰하는� 것이다(마� 21:21;막� 11:23).� � 따라서� 성도들은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약속에� 대

    한� 신뢰� 즉� 하나님에� 대한� 신앙� 행위가� 있어야한다(Ropes).� 한편� '의심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디아크

    리노메스'(* � � )는� '디아'(*� � � � � � � ,'사이에')와� '크리노'(*� � � � � � � � � � � ,� '분리시키다')의합성어로

    서� 어떤� 문제에� 대해� 양쪽에서� 저울질하는� 것을� 나타낸다(Calvin).� 따라서� 이말은� 심리적으로� 두� 마음

    을�품은�분리된�상태�즉�마음� 속에서� � 의심하는�것에�대한� 생생한�묘사이다(행� 10:20).

    =====1:7� � � 이런�사람은�무엇이든지�주께�얻기를�생각하지�말라� - '이런� 사람'� 은� 기도할� 때의심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없으므로� 결국� 하나

    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수가� 없다.이것은� 하나님의� 기도� 응답에대한� 부정성보다는� � 사람이� 기도할�

    때� 자기� 판단에� 맡겨� 버리는� 어리석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 에게� 의심이� 전혀� 생기

    지� 않는� 것은� 아니다.다만� 그� 의심을� 극복하고� 이겨낼� 때�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할� 수� 있는� 것이다.� 여

    기에서� '주'(* � � ,� 퀴리우)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할때� 그�

    기도를� 듣고� 계셔서,� 의심치� 않고�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실� 뿐만� 아니라� 시련을� 당할� 때� 인

    내할�수�있도록� � 힘을� 주실�것이다.

    =====1:8� � � 두� 마음을�품어� 모든�일에� 정함이�없는� 자로다� -� '두� 마음'(*� � � � � � � � � � � � � � � � � � ,디프쉬

    코스)은� 본서에만� 나오는� 말이다(4:8).'디프쉬코스'는� 신약성경� 이전에� 전혀� 사용된� 문헌이� 없고� 신약

  • 성경� 이후의� 교부시대에� 자주� 사용된� 것으로� 보아서(Clement� ofRome,� Hermas)� 아마� 야고보가� 만들

    어� 낸� 단어일� 것으로� 추측된다(Gibson).이� 말은� '정함이� 없는'(*� � � � � � � � � � � � � � � � � � � � � � ,� 아카타스타

    토스)과� 평행을� 이루는� 말로서� 두� 가지의� 방법이나� 생각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런� 자들은�마음이�항상� 불안정하여�변하기�쉬우므로�하나님을�떠나기�쉬운� 자들이다.

    =====1:9� � � 개역성경에는� '데'(*� � � � ,'그러나')가� 생략� 되어있다.� 이� '데'는� 9-11절의� 내용이2-5절의�

    시험과� 연결된� 것임을� 나타낸다(Burdick,Martin).왜냐하면� 12절에서� 다시� '시험'에� 대해� 언급되기� 때

    문이다.� � � 낮은� 형제는�자기의�높음을�자랑하고� -� '낮은'에� 해당하는� '호�타페이노스'(*

    )가� 신분적인� 것인지� 아니면� 물질적� 또는� 육체적인� 것인지는명백하지� 않으나� � 70인역에서는�

    이� 단어가�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가난한� 것을� 가리켰으며(시� 72:4;잠� 30:14,� Robertson)� 10절의� '

    부한�형제'(* � ,� 호� 플루시오스)� 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 본절의� � '호� 타페이노스'는물질적

    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Burdick).� 이렇게�

    비천에�처한� 자들이�자랑해야할것은� '높음'이라� 했다.여기서� '높음'이란� 그리스도인이� � 그리스도로�말미

    암아� 새롭게� 된� 피조물의� 가치�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영적� 승귀를� 나타낸

    다(요15:15;� 계� 3:21).� � 그리스도인들은�비록�육체적으로나� � 물질적으로�어려움을�당하고�비천한�자리

    에� 처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당하고� 인내함으로� 보다� 더� 영예로운� 지위를� 얻게� 될� 것

    이다.

    =====1:10�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 지니� -� � '낮은� 형제'와� 마찬가지로� 부자들도취해야�

    할� 마음이� 있다.그것은� 자신들이�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뽐내지� 말고� 겸손해야� 한

    다는�것이다.� '부한� 자'에� 대해서�혹자는� 그리스도를�믿지� 않는자신들을�가리킨다고� 주장한다(Dibelius,�

    Blackman).그� 이유는� 본문상� 9절에는� '형제'라는� 말이� 있지만� 본절에는�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왜냐하면� 헬라어� 본문에서� '형제'를� 생략한� 것은�

    9절에서� 사용한� 것이므로� 본절에서는� 반복을� 피하여� 생략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기� 때문이다

    (Burdick,� Martin).� � 따라서� 본문의� '부한� 자'는� 그리스도인이면서�물질적으로� 부요하거나� 어려움을� 당

    해보지 않은� 자를� 가리킨다(Marton,� Adamson,� Cantinat,� Mayor,� Ro-pes,� Mussner).� 일반적으로�

    부자인� 형제들은� 자신들의� 부요함으로� 인하여� 영적인� 교만함까지� 가지게� 된다.� �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부한�형제들은�지상에서�소유한�부가� 자신이�죄인이란� 사실을�변화시킬�수� 없으며�일시적인�것임을� 깨

    달아� 그리스도께서� 행하신것처럼(빌� 2:8)� 낮은� 자와� 동일시하며� 부를� 자랑하기� 보다는� �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한다(Moo,� Tasker).� � � �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 � 본절은� 부한� 형제들이� 낮아짐을�

    자랑해야� � 할이유이다.� 아무리� 부요한� 자라고� 할지라도� 그� 부요함을� 영원히� 누리지는� 못한다.� 마치꽃

    이� 시드는� 것처럼� 부(富)뿐만� � 아니라� 생명도� 곧� 시들어� 버릴� 것이기� 때문에� 겸손해야� 한다(시�102:11;� 사� 40:6,7;� 고전� 7:31;� 벧전� 1:24).

    =====1:11� � �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 아름다움이없어

    지나니� -� 야고보는� 사� 40:7을� 인용하여� 부한자의� 부를� 덧없는� 풀의� 꽃에� 비유하여부한� 형제들이� 낮아

    져야� 함을� 권면한다.� � '해가� 돋고� 뜨거은� 바람이� 불어'는� 순간적으로� 변하는� 것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뜨거운�바람'에� 해당하는�헬라어� '카우소니'(* � � � � � )� 란� 말은�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 오는� '시

    로코'� 라는� 뜨거운� 남동풍으로이� 바람이� 불어� 오면� 곧장� 채소� 따위의� 식물이� 말라죽곤� 하였다(욥�

    1:19;눅� 12:55).이처럼�부자의�입는� 옷과� 물질적인�풍요로움으로�오는�안락은�쉽게� 시들어�버린다.� 그

    러기에� 부한자는� 일시적인� 부나�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자랑하지�말고� 하나님�앞에서� 겸손하게�낮아져

    야� 한다.� � � �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 '쇠잔하다'의� 헬라어� � '마란데세타이

    '(*� � � � � � � � � � � � � � � � � � � � � � � � )는� '불을�끄다'라는� 의미를�지닌� '마라이노'(* � � � � )에서� 유래하였

    다.� 이것은� 지상에서의� 부와� 영화가� 영원하지� 않으며� 사라지는� 것임을� 나타내는� � 것으로(Ropes)� 그리

    스도께서� � 오시는� 종말의� 때에� 부로� 인하여마음이� 교만해� � 있던� 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 있는� 부와� 행

    한� 일로� 인하여� 심판을� 받고역시� 그것들과� 함께� 사라질� 것을� 시사한다(Martin).� 따라서� 본문을� 해석할

  • 때� '부와� 함께'를� 포함하여�해석하는�것이�적절하다(Erasmus,� Calvin).

    =====1:12� � 시험을�참는� 자는�복이� 있도다� -� '시험'에� 해당하는�혤라어� '페이라스몬(* � � �

    )은� 2절에서� 사용된� � '페이라스모이스'(*� � � � � � � � � � � � � � � � � � � � � ,'시험')와� 동일한� 것으로� 믿음의� 연단

    을�위하여�하나님이�허락하시는�것이다.� � 이것은본절이2-11절과�연결된�것이며 13절� 이하의� '시험

    '(temptation)과는� 차이가� 있음을나타낸다(Ropes).� 한편�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표현은�

    유대의� � 지혜서와묵시� 문학적인� 표현� 방법으로�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었으며(시� 1:1;32:1;잠� 8:32,34;

    사56:2)� 예수께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축복을� 말하였다(마� 5:3-11).따라서� 야고보는� 이러한� 표현법에�

    익숙하였음을� 밝혀� 주고� 있다(Burdick).� � � � 이것에� 옳다� �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

    하는�자들에게 약속하신생명의�면류관을�얻을�것임이니라� -� 본절은� '호티'(*� � � � � � � )로� 시작하며�시

    험을�참는자에�대한�결과를�설명하는�목적절이다.� '인정하심을�받은'의� 헬라어� '도키모스'(*� � )는� 3절

    에서� 사용된� 것처럼� '금이나� 은을� 제련하여� � 귀금속이나� 동전으로서자격을� 얻는� 것'과� 같은� 인정함을�

    의미한다(롬� 5:� 4).� � 이것은� 시험의� 과정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시험의� 과정을� 통과하는�

    자에게� 순수함이�인정되면� '생명의면류관'을� 얻게� 됨을� 시사한다.� 여기서� '면류관'(*� � � � � � � � � � � � � � � � ,

    스테파논)은� 운동경기에서� 승리한� 자에게� 주는� 면류관으로� (고전� 9:25;딤후� 4:8)� 시험과� 박해� 속에서

    도끊임없이�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 지는� '생명의� 면류관'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

    았다는�증거로�보아야�한다(Ropes,� tasker).

    =====1:13� � 사람이�시험을� 받고�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 본절의� '시험'� 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라조메노스'(*� � � � � � � � � � � � � � � � � � � � � � � � � ,)는� 앞서� 언급한� '시험'(2,12절)이� 의

    미하는� '시련'(trial,test)� 아니라� '유혹'(temptation)을� 의미한다.� 야고보는� '페이라조메노스'를� '하나님

    께'(*� � � � � � � � � � � � � � � � ,� 아포� 데우,� '하나님께로부터')받는� 것이� 아님을�강조하면서�매개(媒介)의� 성격이� 강한� '휘포'(*� � � � � � ,'...의하여')를� 사용하지� 않고� '근원'을� � 의미하는� '아포'(*� � � � � � ,'...로부터')를�

    사용하여� '페이라조메노스'가� 발생하게� 되는� 진원지가� 하나님이� 아님을� 강하게� 강조하고있다

    (Robertson).� 그� '유혹'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속에� 있는� 악한� 죄악의� 기질

    과� 욕심에� 미혹되어�발생하는�것으로(14절)� 죄의� 책임은�인간에게있다.� � � � 하나님은� 악에게�시험을� 받

    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이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시험을� 창조하시거나� 사람을� 시험하

    지� 아니하실� 뿐더러� 아무에게도� 시험을받지� 아니하신다.� '시험을� 받지� 아니하시고'에� 해당� 하는� 헬라어�

    '아페이라스토스'(* � � � � )는� 부정� 접두어� '아'(*� � � )와� '시험하다'의� '페이라조'(* � )

    의� 합성어이다.� 이것은� '악에서부터� 거리가� 먼'� 상태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Hort,� Diodorus,�

    Josephus),유혹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시사한다(Bu-rdick).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

    님은�악으로부터�영향을�받지� 않으실�뿐만아니라� '친히'� 아무도�시험하지�않으신다.

    =====1:14� �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 끌려� 미혹됨이니� -� 본절은� 사람이유혹

    을� 받는� 근원을� 설명하고� 있다.� '시험'(temptation)이� 사람을� 연단시키기� � 위해서주신� 하나님� 섭리라

    고� 합리화� 시킬� 수는� 없다.� 오히려� � 사람이�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는� 것이다.� '미혹됨'에� 해당하는�

    헬라어� '델레아조메노스'(*� � � � � � � )는� 원래� 사냥이나� 고기잡이에서� 유래한� 말로서� 문자적으로� '미끼로�

    고기를� 꿰어� 내다',� '올가미로� 사냥하다'를� 의미한다(Mayor).� � 사람들이� 유혹을� 받는� 것은� 마치물고기

    가�자기앞에�놓인�낚시� 바늘에�물려� 이리� 저리로�이끌려�다니는�모습과�같은� 것이다.� 한편� '욕심'의�헬

    라어� '에피뒤미아스'(*� � � � � � � � � � � � � � � � � � � � )는� 악한뜻에� 대한열망이다(롬� 7:17-23;� 갈� 5:16-21;� 엡�

    2:3;� 살전� 4:5).

    =====1:15� � � 욕심이�잉태한즉�죄를�낳고� 죄가�장성한즉�사망을�낳느니라� � - '욕심이� 행동으로유

    발되지� 않은� 상태� 즉� 내적� 상태로� 머물러� 있을때는� 죄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야고보는� 인간이�

    욕심을� 갖기� 시작할� 때부터� 죄가� 싹이트고� 결국에는� 사망에까지� 이른다고� 강조하고� 있다.� '잉태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쉴라부사'(*� )는� 문자적으로� '함께� 붙잡다'라는� 의미이나� 여자의� 임신을� 말할� 때� 주

  • 로� 사용되었다(눅� 1:24).� 여기서는� 죄의� 단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욕심'� 그� 자체가� 바로� 죄이다.�

    혹자는� 욕심을� 자연적이고� 오염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한다(Mayor).� 그러나� 인간의죄란� 욕심에게� 굴복

    당하는� 시점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욕심이� 순수하다고� 주장하는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Calvin).욕

    심은�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필연적으로� 죄를� 유발하고� 그� 마음의� 상태가� 습관으로� 굳어� 져서� 사망

    에� 이르게�된다(창� 3:19;� 롬� 5:12).'낳다'에� 해당하는�두� 단어� � '틱테이'(*� � � � � � � � � � � � � )와� '아포퀴에

    이'(*� � � � )는� '여자가�아이를� 낳는것'을� 의미하나� 전자는� 문학적인�표현이고�후자는� 의학적인� 표현이라

    고� 할� 수� 있다(Ropes).� 또한� 정상적으로나� 비정상적으로나� 출산하는� 것� 모두를� 뜻하나� 본문에서는� 비

    정상적인� 출산� 즉� 유산을�나타내는�말이다(Robertson).이것은�처음부터�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의미

    하는�영적� � 사망을�잉태하고�있었음을�시사한다(롬� 6:23).

    =====1:16� � 내� 사랑하는� 행제들아� 속지� 말라� -� 본절은� 애정이� 깃들어있는� 부드러운� 권면이다.'속지�

    말라'(*� � � � � � � � � � � � � � � � � � � � � � � � ,메� 플라나스데)는� 심각한� 말로� � 권면할� 때� 사용된� 어법으로� (고전�

    15:33;� 갈� 6:7;� 요일� 3:7)� '메'는� 금지를� 암시하는� 완곡어법이다(Robertson).� 그리스도인들은� 시험을�

    받을� 때에� 그� 시험이� 하나님으로부터� � 온�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런� 착각은� 스스로� 미혹

    을�받아�사망에�이르게�되는� 것이므로�속지�말아야�한다.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 내려오나니� � -� 지혜

    가� 부족한� 자에게� 풍족하게� 내려�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5절에서� 언급하였던� � 것처럼� 본절에서도� 좋

    은� 은사와� 선물들의�공급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 있다.� '은사'(*� � � � � � � � � � ,도시스)와� '

    선물'(*� � � � � � � � � � � � ,도레마)은� 동일하게� � '주다'라는� 의미의� 헬라어� '디도미'(*� � � � � � � � � � � � )라는� 동

    사에서� 비롯된� � 것으로� � 문체론적� 변화이다(Moo).� '좋은� 은사'는� 일반� 은총이� 아닌� 그의� 사랑하는� 백

    성들에게� 내리는� 특별� 은총을� 의미하며(Manton)� '온전한� 선물'은� 성도들을� 부르시고� 인도하시며� 영화

    로운� 상태에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행위이다.� 이러한� 은사와� 선물은�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

    께로서�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며� 온전한� 것으로� �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혹에서� 범죄치�

    않도록� 도와준다(Burdick).� 한편� '빛들의� 아버지'는� 하나님께서� 빛의� 왕으로� 모든� 빛들을� 창조하시고�

    주관하고� 계심을� 시사한다(Manton,� � Martin).� '빛들의'는� 하늘의� 빛나는� 별을� 가리키는� 모든� 하나님

    의� � 선물을� � 찬양하는� � 표현이다(Philo).� 한편� 본절은� 특별히� 6행시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혹자는� �

    야고보가� � 다른� 자료에서� 인용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나(Mayor,� Moo,� Dibelius,Davids,� Ropes).� � 본

    서의� 문체나� 운율적인� 리듬의� 형태를� 볼� 때� 야고보의� 독창적인� 저술이라고� 보는� 것이� 무방하다

    (Lenski,� Martin,� Mussner,� Reicke,� Schrage).� � �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

    라� -� 야고보는�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할� 때� 여러� 가지� 형태의� 변화된� 빛으로� 보여지는� 하늘의� 별들과�

    하나님을� 비교하여�하나님의� 불변하심을�강조한다(Ropes).� 그러나�하나님은� 자기�백성들에게�좋은� � 은

    사와� 온전한� 선물들을� 변함없이� 내리시는� 분이다.� '변함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 '파랄라게'(*� � � � � � � � � �

    � � � � � � � � � )는� 천문학� 용어로서� 별들이� 시차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Manton).� 한편� '회전하는�그림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트로페스� 아포스키아스마)

    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의� 변화를� 의미하는지,달의� 그림자� 즉� 일식,� 월식� 등을� 의미하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지구의� 회전으로� � 인한� 태양빛의� 변화로� 생기는� 사물의� 그림자를� 가리킨다(Ropes,� RSV).� 이것

    은� 모든� 것이� 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베푸시는� 은사와� 선물은� � 변함이� � 없음을�

    시사한다.

    =====1:18� �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 본절은� 하나님이� 시험을주지�

    않으신다는�사실을�증명하는�마지막�이유이다(Burdick).� '한� 첫�열매'(* ,� 아파르켄� 티나)는�

    구약성경에서� 수확된� 첫� 곡물을� 하나님께� 드리는것을� 나타낸다(출� 34:22;레� 23:10).� 모든� 곡식의� 첫�

    소산물이� 하나님께� 바쳐지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회개한� �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히� 선택되어서�

    모든�피조물을� 대표하는�첫� 열매가�된다.� 혹자는�야고보가� '우리'를� 사용한�것이� 보편적인� 인류� 전체를

    의미한다고�하나(Hort), 중생한� 자들이나� 당시� 초대� 교회의� 성도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Burdick,�

  • Moo).� 왜냐하면� 야고보는� 비교의� 뜻이� 담겨있는� '티나'(*� � � � � � � � � � )를사용하여� 피조물과�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Calvin).� � � �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 낳으셨느니라� -� '뜻'에� 해당하

    는� 헬라어� '불레데이스'(*� � � � � � � � � � � � � � � � � � � )는� 피조물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는� 하나님의선한� 의

    지를� 나타내는� 말로(엡� 1:11;벧전� 1:3)�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다(엡� 1:4,5).따라서� 야고보가'불레데이스'를� 사용한� 의도는� 택한� 자

    녀들이� 구원을� 얻게� � 되는� 것이� 자기� 공로나� 외부적� 환경의� 영향으로� 말미암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

    의� 은혜와�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Manton,� Calvin).한편� '진리의� 말씀'이란�

    진리를� 통하여� 확증된� 복음의� 말씀이며(엡� 1:13;� 골� 1:5;� 딤후� 2:15).� '낳다'에� 해당하는� '아페퀴에센

    '(* � � � � � � )은� 자연적인�출생의�의미로� '창조하다'를�나타낼�때도�사용되었다(행� 17:28).�

    따라서�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다'라는� 말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자들� 즉� 첫�

    열매된�자들이�옛�성품을�버리고�새로운� � 피조물이�되었음을�암시한다.

    =====1:19� � 너희가� 알거니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이스테'(*� � � � � � � � � )는� 명령법이라기보다는�

    직설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Robertson).� 만약� 야고보가� 명령법의� 의도로� � 사용했다면� 4:4� 처럼� '

    오이다'(� *� � � � � � � � � ,� '알다')의� 명령형� '오이다테'(*� � )를� 사용하였을�것이다.그러므로� '이스테'는� 수신

    자들이� 과거에� 알고있는� 거듭난� 사실에� 대한� 인정이나� 권고� 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야고보는� 본

    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세� 가지를� 권면한다.� � � � 듣기는� 속히� 하고� -� 거듭나는� 것은� 순간적

    인� � 현상으로� 그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꾸준히� 지속되는� 여러� 과정을� 통하여� � 변화되어야� 한다.� 그

    래서�그리스도인들은�하나님의�말씀을�속히�들을� 준비가�되어있어야�한다(Ropes).� � � � 말하기는�더디하

    며� -� 이것은� 말을� 천천히� 하라는� 뜻이� 아니라� 성급하게�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하거나� 자기의� 고집만을�

    내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계속하여� 말하거나� 자기의� � 주장만을� 내세우는� 사람은� 논쟁에� � 빠지기� 쉽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를� 온전히깨닫지� 못하게� 된다.그리스도인들은� 말을� 하기전에� 먼저� 겸손히� 진리

    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Burdick,Tasker).� � � � 성내기도� 더디� 하라� -� � 본문은� 일반적으로�

    분노,� 증오� 등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마음을� 보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의� 격분이� 마음속에� 자리잡

    고�있을�때�하나님의�의(義)나� 말씀을�받아들일�수�없다.

    =====1:20� � � 개역성경에는� '가르'(*� � � � � � � ,�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 '가르'는� � 본절이앞절에

    서� 행한� 권면에� 대한� 근거임을� 나타낸다.� � � �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 �

    성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해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삶에� 위배된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원하시고�인정하시는�그리스도인의�올바른�행위이다(Burdick,Tasker,Moo).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 � 야고보는� 본문에서� � 다시그리스

    도인이� 말씀을� 받기에� 합당한� 조건을� 언급� 한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가� � 마땅히� 해야� 할일은�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는� 것이며,이미� 우리� 속에� 와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항

    상� 새롭게�되어야�하는� 것이다.� � '내어� 버리고'의� '아포데메노이'(*� � � � � � � � � � � � � � � � � � � � � )는� '옷을� 벗

    어� 버리다'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 세심하게� 자신을� 살펴� 마음속에�

    있는� 모든� 탐욕과� 정욕� 등을� 내어� 버려야� 함을� 시사한다.� � 그렇지않고� 부주의할� 경우� 쉽게� 악에� 빠지

    기� 때문이다.� '더러운�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뤼파리안'(*� � � � � � � � � � � � � � � � � )은� 본래� '옷에� 붙어� 있는�

    더러운� 때'를� 의미하였으나� 종종� '몸에� 불결하게� 생긴� 상처'� 등을말할� 때도� 사용되었다.� � 이것은� 모든�

    도덕적인� 악을� 가리키는� 것으로(Manton,� Martin)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뤼파리안'을� 떨쳐

    버려야�함을�권면한다.'넘치는�악'(* � � � � ,페릿세이안� 카키아스)에� '페릿세

    이안'은� '충분한','남은� 것'을� 뜻하는� 단어로� 흘러� 넘치는� 것을� 가리키며� '카키아스'는� '악한'의� 뜻보다

    는� '위선',� '더러운� 욕망'을� 의미한다(Calvin,� Lenski,� Lightfoot).� 이것은� � 앞서언급된� '뤼파리안'과� 동

    의어로� � 중복된� 표현을�통해서� �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이�모든도덕적인�악을�버려야�함을� 강력하게� 권

    면하고� 있다(Martin).� � � �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 심긴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 본문은� 구원

    의� 수단으로� '마음에� 심긴� 도'를� 말한다.� 이것은� 수신자들이�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 받아들인� 자임을�

  • 암시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구원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 것이다.또한� � 본절은� 하나님의� � 말

    씀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책임감있게� 말씀에� 응답해야하며� 그것을� 실제로� 행함으로� 열매를� 맺을�

    것을�권고하는�것이다(Burdick,� Martin).

    =====1:22� �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는� 하나님

    의� 말씀을�단지� 받기만�해서는� 안� 된다.� 단지� 듣기만을� 좋아하는� 자는� 나태한� � 자이며�자신� 속이는�자

    이다.� � 그래서� 야고보는� 본절에서� 그�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될� 것을권면한다.� '행하는� 자'에� 해당하는� 헬

    라어� '포이에타이'(*� � � � � � � � � � � � � )는� '아사'(*� � � � � ,� '행하다')에서�유래한�것으로�윤리적�측면의�행위

    를� 가리킨다.� 따라서� '포이에타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생활로써� 증거하는� 자를� 의미한

    다(롬� � 2:13,Calvin,� Adamson).� 야고보는� 수신자들에게� 도를� 듣는� 상태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행하

    는�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 � � �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 말씀을� 들은� 자는� 그것을

    행하여야할� 책임이� 있다.그러나� 그� 책임을� 수행하지� 않고�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영

    광스런� � 보좌에�참여할�것으로� � 생각한다면�그것은� � 자기� 자신을� � 기만하는�행위이다(마7:21).

    =====1:23� � �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 사람과�

    같으니� -� 야고보는� 본절에서� 도를� 듣고� 행치� 않는자를� 거울을� 보는� 사람에� � 비유하고� 있다.� '보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노운티'(*� � � � � � � � � � � � � � � � � � � � � � )는� 경솔하게� 힐끔�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주

    의를� 기울여서� 자세히� 관찰하는� 것을� 나타낸다(Burd-ick,� Martin).� 당시의� 거울은� 유리가� 아닌� 구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나� 희미한� 모습으로� 비춰질� 뿐� 확신이�

    없음을� 나타낸다(Ad-amson).� 이는� 단지� 말씀을� 듣고� 행치� 않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열심히� 주의하여� �

    말씀을�들었다�할지라도�행하지�않으면�희미한�거울을�보는�것과� 같음을�시사한다(Mayor).

    =====1:24� � � 제� 자신을� 보고� 가서...곧� 잊어버리거니와� -� 본절은� 말씀을� 듣고� 행치� 않는� � 것이마치�

    회미한� 거울을� 주의� 깊게� 살펴서� 자신의� 얼굴을� 관찰하였지만� 거울을� 떠나면� � 자신의� 모양을� 곧� 잊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 듣기만� 하는� 것이� 전부가아니고� 행함이� 있어야� 함을� 시사한

    다.이론적인� 지식으로만�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할수� 없다.� 말씀은� 오직� 듣고� 행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여기서�야고보는� '보고'(* ,� 카타노에센),'가서'(*� � � � � � � � � � � � � � � � � � � � ,아펠렐뤼

    덴),'잊어버리거니와'(*� � � � � � � � � � � � � � � � � � � � � ,� 에펠라데토)의� 단순� 과거형을� 사용하여서� 진리의� 말씀

    을�희미하게�듣고�나서� 실행치�않는� 자가� 곧� 말씀을�잊어� 버리고 다시� 죄의� 상태로되돌아� 가는�

    모습을�언급하고�있다.

    =====1:25� �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있는� 자� -� 본절은� 말씀을� 듣고� � � 실행하는� 자

    에� 대한� 설명이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율법'은� 야고보와�수신자가� � 유대지향적인� 배경을�갖고� 있음

    을� 암시하는� 것으로(Burdick),� 구약� 시대의� 율법과� 대조를� 이루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진리의� 복음'

    을� 의미한다(렘� 31:33,� Moo,Tasker).구약� 시대의� 율법이� 사람을� 얽매이게� 하는� 강제적인� � 것이라면�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의� � 율법은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자유로운� 것이다(요� 8:32;� 고후� 3:16).� 이

    것은� 제도를� 통하여� 법적� 구속력을� 지닌� 모세의� 율법이� 신약� 시대에� 이르러� 확실하게� 드러난� 실체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 이러한� 율법의� 특징은� 첫째로� 택하신� 자들을� 진리와� 자유로� 인도하는� 것에� 모순

    과� 결합이� 전혀� 없는� 것을� � 의미한다.� 두번째� 특징은� 자유하게� 한다는� 것이다.� 구속력을� 지녀서� 억지

    로� 지키게� 하는� 것보다� 성령의� 능력으로� 자유롭고� 기쁜� 마음으로�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Burdick).� 한편� � '들여다보고'에� � 해당하는� � 헬라어� '파라큅사스'(*� � � � � � � � � � � � � � � � � � � � )는� 몸을� 구

    부려서� 보는� 것을� 나타낸다.� � 혹자는� 이것이� '대충� 힐끔� 보다'라는� � 의미라고� 주장하나(Hort)� 본문에서

    는� 문맥상� � '주의깊게� 관찰하다'라는� 의미로� 해석�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Tasker,� Burdick,� Martin).� � �

    � 듣고� 잊어버리는�자가�아니요�실행하는�자니�이� 사람이�그�행하는�일에�복을� 받으리라� - '듣고� 잊어

    버리는�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아크로아테스�에필레스모네스)는� 히브리식�표

    현으로� 글자대로는� '망각을� 듣는� 자'란� 뜻이다.� � 야고보는� 개역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알라'(*� � � � � � �

  • � ,� '그러나')를� 사용하여� '실행하는� 자'를� 강조하고� 있다.여기서� '실행하는자'란� 말씀을� 듣고� 실천하지�

    못해도� 그� 행할것을� 위해�심사숙고하는� 자도� 이� 범주에�포함될� 수� 있다(Manton).� 한편� '그� 행하는� 일

    에� 복을� 받으리라'는� 말을� '율법을� 행함으로� 인해� 복을� 받는다'는� � 의미로� 해석해서는안된다.� 만약� 그

    렇게� 해석할� 경우� 율법을� 지키는� 그� 일로� 인하여� 만사가� 복을� 받게� 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따

    라서� 이는� 실행하는� 자체에� 의미를� 두어서� 행위� 자체가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복이

    라는�것이다.

    =====1:26� �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속이

    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 신약성경에서� 본문에만� 나오는� '경건하다'에� � 해당하는� 헬라어� '드레

    스코스'(*� � � � � � � � � � � � � � � � )는� '기도문을� 중얼거리다'에� 해당하는'드레오마이'(*� � � � � � � � � � � � � � � )에서�

    유래된� 듯하다(Robertson).� � 이는� 예배의� 외적인모습� 즉� 기도,� 구제,� 금식� 등을� 언급하는� 것으로서� 외

    식적인�바리새인들의�모습을� � 암시한다.� � 이렇게�스스로 경건하다고� 하는� 사람이� 말에� 대해서�

    자제하지�못할�때�자기자신을�속이는�사람이�된다.� '재갈�먹이지'에� 해당하는�헬라어� '칼리나고곤'(*

    )은� '재갈'을� 의미하는� '칼리노스'(*� � � � � � � � � � � � � � � � )와� '이끌다'의뜻인� '아고'(*� � � � � � � )의�

    합성어이다.� � 이는� 재갈� 먹이지� 않는� 말을� 함부로� 날뛰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

    로(Lenski)� 남을 비방하거나� 악담하는� 것을제어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혀를� 절제하지� 않으면서� 스스

    로� 경건하다고�생각하며�확신하는�것은�자신을�속이는� 결과를�초래하게�되며�이렇게�말과� 행위가�틀린�

    경건은�위선자들에게서�오는�헛된�것이다(마� 6:2,16).

    =====1:27� �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이것이니라� -� 본절은� � 경건의� �

    정의라고는� 할수� 없지만� 경건한� � 삶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야� 할� 것이라는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경건한� 삶은� 내적인� 모습으로부터� 다른�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외적인�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

    하나님�앞에서'의� 헬라어� '파라토�데오'(* � � � )는�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편에� 서서'라는� 의

    미로� 하나님의� � 평가방법으로� 사람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Lightfoot).�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

    이라함은� 경건의� � 구체적인� 한� 방법을� 소개하는� 것이라� 하겠다.� '더러움이� 없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

    아미안토스'(*� � � � � � � � � � � � � � � � � )는� � '더럽히다'의� '미아이노'(*� � � � )와� 부정� 접두어� '아'(*� � )가� 합성

    된�형용사로서�후에�의미가�변천되어� '정결한(* ,� 카다라)이란� 의미로� 사용� 되었다

    (Robertson).� 이로� 보아� '정결하고더러움이� 없는'이란� 표현은� 의미상� 동의어� 중복으로� 강조를� 나타내

    는�것이다.� 특히�고대에는 종교� 예식에� 있어서� 기독교든� 이교도든� 정결하고� 흠� 없는� 제사가� � 요구되

    었기때문이다.� � 이러한� 모습은� 초대� � 기독교� 사회에서� 바리새인에� 의해� 지속되어졌었다(마23:25;� 막�

    7:3,� Ropes).� 야고보는� 본절에서� 내적인� 경건� 생활에서� 비롯되는� 외적인� 경건� 생활의� 모습에� 대해서�

    두� 가지로� 언급하고� 있다.� � � �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 � 본문에서는� 특별히� 두� 부류의

    대상만을언급하고� 있으나� 그� 외의� 다른� 부류인� 나그네나� 병든� 자,� 갇힌� 자� � 등을� 제외시키지

    는않는다.� 이들은�한� 공동체�안에서�그리스도의� � 사랑을�보여주어야�하는� (마� 25:40)� 구제� 대상들이다

    (Ropes).� 한편� '돌아보다'에� 해당하는�헬라어� '에피스케프테스다이'(* � )는� 문자적

    으로� '보러� 가다',� � '조사하러� 가다'를� 의미하는것으로� 단순히� 교제를� 나누기� 위한� 돌아봄보다는� 극히�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돌아보는것을� 시사한다(갈� 5:6,� Burdick).� � � �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

    하는� -� 야고보는� '세속'(*� � � � � � � � � � � � � ,� 코스무)이라는� 단어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을� 통한� 죄악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Le-nski,� Burdick).� 이는� 사도� 요한이� 잘� 쓰는� 표현� 방법으로(요일� 2:16)�

    이웃�사랑은�물론�자신� 스스로가�죄악에�빠지지�아니하고�성화를 위해� 계속적인� 노력을� 경주할�

    것을권면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건한� 자의� 삶에� 있어서� 이웃� 사랑과� 자기의� 거룩한� 생활과의� 관계는�

    불가분의�관계이다.� � � � � 야고보서�제� 2장

    =====2:1� � � 내� 형제들아� -� '내� 형제들아'의� 헬라어� '아델포이�무'(* � )는� 수신자들에� 대한� 야고보

    의� 사랑의� 감정을� 잘� 나타내며,또한� 이는� 새로운주제로� 전환시킬� 때� 사용하는� 표현방식이기도� 하다(5

    절;� 1:19;� 3:1;� 5:7).� 이제� � 야고보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경건한� 삶을� 어떻게� 실천해� 나갈� 것

  • 인가에�대해� � 권면한다.� � � �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믿는�믿음을� 너희가�받았으니� -� 본

    문에�해당하는�헬라어는� '에케테�텐�피스틴�투� 퀴리우�헤몬� 예수�크리스투�테스�독세스'(*

    � � � � � )이다.� '테스독세스'(영광의� 주)와� � '투� 퀴리우� 헤몬�

    예수� 크리스투'(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관계에� 대한� 해석은�다섯� 가지이다.� (1)혹자는� '영광'을�

    '믿음'과� 연결시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있는� 믿음'이라고� 해석한다(Schlatter,�

    Zahn,� Grotius).(2)혹자는� '영광'이� '주'를� � 수식하는� 것으로� 보아� � '우리�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 안

    에있는� 믿음'으로� 해석한다(KJV,� RV,� Moo,� Burchard).(3)혹자는� '영광'을� '사회적� 지위'로� 해석하여서� �

    본문이� 그리스도의� 위대함을� 의미한다고� � 해석한다(Erasmus,� Calvin).(4)� 혹자는� � '영광의� 주'에� 해당

    하는� 헬라어� '테스� 독세스'를� 형용사적으로� 보아� � '우리의� 영광스러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

    음'이라고� 해석� 한다(Cantinat,� Chai-ne,� Ropes,� Hooker,� Luther,� Mayor).� (5)� 혹자는� 동격으로� 보

    아� '영광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석한다(Bengel,� Lenski,� Tasker,� NEB).� 이� 다섯� 가지� � 견

    해� 중� 마지막�견해가�가장� 타당한�듯하다.왜냐하면�본문에서� '테스�독세스'가� '예수�그리스도'와� 연결되

    어� 있기� 때문이다.�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지니신� '영광'이시다(눅� 2:32;요� 1:14;�

    17:5;� 히� 1:3).� 한편� '받았니'의� 헬라어� '에케테'(*� � )는� 시상이� 현재로서� 수신자들이� � 예수� 그리스도

    를� 믿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 � �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 '외모로'의� 헬라어� '엔� 프

    로소폴렘프시아이스'(* � � � � � )는� 70인역에서� '사람의� � 얼굴을�

    보고경탄하다'라는�의미로� 사용되었으나�본래�이것은� '한� 사람에게�얼굴을�들다� '라는� � 의미로서� 한� 사

    람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 즉� 같은� 상황에서� 서로� 차별을� 두고� 대하는것을� 의미한다(Manton).� 하

    나님은� 절대로� 사람을� 외모로� 보지� � 않으시며� 그� 중심을� 보신다� (삼상� 16:7;� 행� 10:34;� 롬� 2:11;� 엡�

    6:9;� 골� 3:25).� � 그러한� 하나님의� 성품을�닮아가며�그리스도�예수� 안에서�살아가는�그리스도인들이�자

    기의� 유익을� 취하기� � 위하여외부적인� 조건에� 얽매이는� 것은� 잘못이며� 영광의� 주� � 예수� 그리스도를� 믿

    는�믿음에�걸맞지�않는다.

    =====2:2� � � 개역성경에는� '가르'(*� � � � � � � ,�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 '가르'는� 2-4절까지가� 1

    절의�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권면의� 논중임을� 나타낸다.� 본절과� � 3절은� 사람을'외모'로� 취하는� 행위에�

    대한� 예이다.� � � � 만일� 너희� 회당에...들어올�때에� -� '회당'(*� � � � � � � � � � � � � � � � � � � � � � ,� 쉬나고겐)은유대

    인들이� � 예배를�드리기�위해 모이는� 일(눅� 12:11)이나�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 (눅4:15,20,28)

    를� 의미한다.� 야고보가� 본절에서� '쉬나고겐'을� 사용한� 것은� 이� 서신을� �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모임,� 장소를� 자연스럽게� '쉬나고겐'이라고� 부른� 듯하

    다(Burdick).� 한편� 야고보는� 회당에� 들어오는� 사람� 중� 두� 부류의� 사람을� 예로� 들고� 있다.� � � � 금가락지

    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 -� '금가락지를� 낀� 사람'� 본절에서만� 등장한다.� 이것은� 본래� '금손가

    락의� 남자',� '금가락지� 낀'이라는� 의미로� '명예와� 존귀를소유한� 사람'을� 의미한다(창� 41:42).� 한편� '아

    름다운� 옷'에� 해당하는� '에스데티� � 람프라'(*�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밝고� 찬란한�

    옷'이란� 의미로서� 부유한사람이나�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의� 옷을� 가리킨다.� 당시� 유대� 지방에는� 자

    신의�부와지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 반지나� 아름다운� 장신구를� 달고� 과시하는� 풍습이� 있었다(눅

    15:22).� � � � 더러운�옷을�입은� 가난한�사람� -� '더러운'에�해당하는�헬라어� '뤼파라'(*� � � � � � )는� '불결한'

    을� 의미� 하며� 또한� '가난한� 사람'(*� � � � � � � � � � � � ,� 프토코스)은� '구걸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마� 19:21,�

    Mayor).� � 야고보는�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과�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을� 대조시켜서� 당시� 수신자들이�

    외모로사람을�취하는�죄를� 지적한다(Hort,� Burdick).

    =====2: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 '돌아� 보아'�

    헬라어� '에피블렙세테'(*� � � � � � � � � � � � � � � � � � � � � � )는� '올려다� 보다'라는� � � 뜻의� '에피블레포'(*� � � � � � � �

    � � � � � � � � � � )에서� � 유래한� 단어로� '좋은� 동기를� 가지고� 쳐다보다'라는� 의미이다(눅� 9:38,� Burdick).� 한

    편� '좋은� 자리'는� � 특별히� 마련된� 좌석보다는� 앉을� 자리를� 권유하는� 의미이다(Adamson).따라서� 본절

    은� 사람들이�일반적으로�아름다운�옷을�입은� 자들을�존경하여�그� 표시로�자리를� 정중하게�권유함을� 시

    사한다(Rope-s).� � � � 가난한자에게� 이르되�너는� 거기� 섰든지�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 먼저와는� 대조적

  • 으로� 가난한� 자에게�대하는� 태도에� 관해� 언급된다.� '섰든지'의� 헬라어� '스테디'(*� � � � � � � )는� '배치하다'

    의� 의미를� 지닌� '히스테미'(*� � � � � � � � � � � � � � )의� � 명령법이다.이것은� 아무렇게나� � 자리를� 차지하라는�

    것으로서� 아마� 회당의� 맨� 끝이나� 구석진� 한� 곳을가리키는� 말로� 볼� 수있다.� 한편� '네� 발등상� 아래� 앉으

    라'는� '내� 발� 아래� 앉으라'는� 표현이다.� 당시에� 전쟁에서� 승리한� 정복자들은� 종종� 자신들의� 발을� 피정

    복자들의�목위에두었는데(눅� 20:43)� 본문에서는�그러한�의미보다는�발� 아래의�마루바닥에�앉으라는�의

    미로�사람을�차별하는�모욕적인�행위를�암시한다.

    =====2:4� �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것이� 아니냐� -� 야고보는� 수사학적� 질문을� 통해서� � 수신자들이�

    사람을� 외모로� 취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구별� 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에크리데테'(*� � � � � � � � � � � � �

    � � � � � � � � )는� 수동태로�서로� 구별하는�잘못을�범하고� � 있음을시사한다(RV).� 한편� '아니냐'의� 헬라어� '우

    '(*� � � � )는� 부정� 불변화사로� 수신자들이�야고보� 자신의� 지적에�대해� 충분히�긍정할� 수� 있는� 것임을� 암

    시한다.� 2,3� 절에서� 야고보가� 예를� 들어� 지적했듯이� � 수신자들은�아름다운옷을� 입은�부한� 자들과� 더러

    운� 옷을� 입은� 가난한� 자를� 차별� 대우했다.� 이렇게� 사람을� 구별하여서� 판단하는� 것은� 항상� 공정하지� 못

    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으며� 범죄가� 된다.� � � �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느� 자� -�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

    별하는� 것은� 잘못된� 동기에서나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지음을� 받은� 인간을� 무시하는� 것

    은 하나님을무시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며� 상대방을� � 위한� 판단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

    심을� 채우기� 위한� 판단이다.� 이러한� 구별� � 행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을� 서로� 분리시키며� 피차�

    시험에� 들게� 하기� 때문에� 악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며(요� 8:15),� 확고한� 믿음이� 결여된� 것임을� 시사

    한다(Ropes).

    =====2:5� �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 야고보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라고� � 언급함으로써�

    새로운�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앞절까지는� 사람� 외모로� 판단했을때� 죄가� � 되는것을� 언급하였지만� 본절

    에서� 11절까지는� 사람을� 구별하여� 판단하지� 말아야� � 될� 이유를열거하고� 있다.� � � � 하나님이� 세상에� 대

    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 � 실제로그리스도인들은� 초대� 교회� 당시� 사회에

    서� 별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부류였다(마11:5;� 고전� 1:26-29).� 그러나� 그들이� 돈이� 없고� 가난해

    서�사회에서�천대�받는 자들이었다고� 할지라도� 믿음에� 대해서는� 결코� 가난한� 자들이� 아니었다.� � 왜

    냐하면�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상속자이기� 때문이다.야고보는� 여기서� 미래적인� 영적� 안

    목을가지고� 세상에서�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잘못된� 시각임을� 지적하고� 있다.� � 하나님께서는� 가

    난한자들에게� 그들이� 천국의� 백성이� 되게� 하는� 소망을� 품게� � 하셨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이� 모두� 다�

    믿음이� 부여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 야고보는� '가난한� 자'의� 헬라어� '투스� 프토쿠스'� (*� � � � � � � � � � � � � �

    � � � � � � � � � )에서� 관사� '투스'(*� � � � � � � � � )를� 사용하여� � 하나님의� 나라를� � 유업으로� 받은� 자들이� '가난

    한� 자들'� 중에서도� 한정된자들임을� 나타내고� 있다(고전1:26-28).한편� '택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

    셀렉사토'(* � � � � � )는� 부정� 과거� 중간태� 용법으로서�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친히선택

    하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전� 1:27).� � � �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 � 하신� 나라를� 유업으

    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 택하신� 것이�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라

    고� 볼� 수는� 없다.� 그러면� 보상으로� 인한� 약속이� 되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전혀� 유업

    으로� 받을� 수� 없는� 자들이지만�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이� 자신을� 사랑하도록� 부르셨으며�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상급으로� 마련하셨다.� 이러한� 것을� 믿고� 바라는� 자는� 심령이가난한� 자일� 수밖에� 없으며,그� 결

    과�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 된다(마� 5:3;눅� 6:20,Tasker).� 한편� '아니하셨느냐'는� 본절� 상반� 절에서�

    언급된� '택하사'와� 연결되어� '하나님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냐'라는� 의미이다.� � 이는� 4절에서의� 용법처

    럼�긍정적인�대답을�기대하고�사용한�야고보의�표현�방식이다.

    =====2:6,7� � � 너희는�도리어�가난한�지를� 괄시하였도다� -� 하나님께서�택하신� 가난한�자들은� � 하나님

    의� 주권에� 의해� 선택을� 받은� 자들이다.그러한� 이들을� 무시하는� 행위는� 가증스러운일이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수신자들은�가난한�자들을�외모로�취하여�멸시하였다.야고보는�수신자들이�존귀하게�대했던� '부

    유한� 자들'의� 행위를� 세� 가지의� 수사학적� 질문을통해�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를� 외모로� 취해� 차별�

  • 대우한�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 � � (1)�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 당시에� 부자인� 사두개인들은� 가난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악독하게� 박해하였다.� 로마� 정부는� 유대인들에게� 자기의� � 민족인� 디아스포라를�

    다스릴� 수� 있는� 상당한� 지배권을� 부여하고� 있었다(Lenski).그래서� 사두개인들은� 특히� 유대� 그리스도인

    을� 핍박하였다(행� 4:1-3;� 9:2;� 16:19).� 그들의�압제는� 종교적인� 것은�물론� 경제적인� 이익과�관계된� 것

    들이었다(행� 19:23-41).� '압제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뒤나스튜우신'(*�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은� '카타'(*� � � � � � � � � ,'아래로')와� '뒤나스테스'(*� � � � � � � � � � � � � � � � � ,� '유력자',� '군주')의� 합

    성어로� � '권력을� 잡은� 자들이� 무자비하게� 수탈하는� 행위'를� 나타낸다.� 부유한� 자들은� 가난한� 자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압제하고� 착취� 하였다.� � � � (2)�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 당시� 유대� 사

    회에서� � 채권자는� 채무자를� 무자비하게� 다루었다.� '끌고� 가지'의� 헬라어� '헬쿠신'(*� � � � � � � � � � � � � � � � � �

    � � )은� 단순하게� '이끌다'(요� 6:44;12:32)라는� 의미도� 있으나� 여기서는� 어떤�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가는�

    행위를� 나타낸다(행� 16:19;� 21:30).야고보는� 개역성경에는�번역되지�않은� 3인칭� 대명사� � '아우토이'(*� �

    � � � � � � � � � ,� '그들')를� 사용하여� 가난한자들을� 끌고� 가는� 자가� 부자들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 � �

    (3)� 저희는� 너희에게� 대해서� 일컫는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 훼방하지� � 아니하느냐-�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바�그� 아름다운�이름을'의�헬라어� '토� 칼론� 오노마�토�에피클레덴�에프�휘마스'(* � � )에서� '너

    희에게� 대하여� 일컫는바'에� � 해당하는� 헬라어� � '토� 에피클레덴� 에프� 휘마스'는� 문자적로� '너희� 위에� 일

    컬어진'이란� 의미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고전� 1:2;딤후� 2:19)를� 가리키며,� '아름다운�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나타낸다.이러한� 표현은� 히브리� 관습으로,관습에� 의하면� 어린아이에게� 자기� 조상의�

    이름을� 따서붙이곤� 하였다(창� 48:16).� 이것은� 개개인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짐을� 나타내었고그� �

    개개인은�하나님이�택한자로서�하나님께�바쳐진�사람으로�구별되었음을�시사한다.따라서 본문은� 그

    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되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니게� 됨을�

    시사한다(Tasker,� Burdick).� 한편� '훼방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블라스페무신'(*� � � � � � � � � � � � � � � � � � � �

    � � � � � � )은� '악을� 말하는'의� 의미인� '블라스페모스'(*� � � � � � � � � � � � � � � � � � � )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문에

    서는� '신성� 모독'즉�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를� 일컫는다(Ropes).부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은� 그

    리스도인들을� 농락하고� 압제함으로� 신성� 모독의� 죄를� 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신자들이� 외모로

    만�사람을�취하여�부자들을�옹호하고�존경하는�것은�그들의�범죄에�동조하는�죄악이다.

    =====2:8� � 개역성경에는� '멘토이'(*� � � � � � � � � � � � � � ,� '참으로')가� 생략되어� 있다.� '멘토이'는의심스러

    운�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견고한� 확신을� 뜻하는� 말로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의미를� 수

    반한다(Ropes).� � � � 너희가� 만일...지키면� -�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 텔레이테'(*� � � � )는� 조건문

    으로� '너희가� 완전하게� 지키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이것은� 하나님의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다는� 완

    전성보다는� 지키기를� 노력하는� 성실성의� 관계를� 시사한다(Manton).� � � � 경에� �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 -�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그러나�

    야고보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행위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그것이� 왜� 불합리한가를� 설명하고� 있다.� �

    '최고한� 법'의� 헬라어'노몬� 바실리콘'(*�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에서� '바실리콘'은� '왕'을� 의

    미하는� '바실류스'(*� � � � � � � � � � � � � � � � � � )에서� 유래한� 말이다.� '바실리콘'을� '노모스'에� 적용한� 것은� 로

    마� 시대에� 있어� 왔던� 일반적인� 표현� 방식으로(4:11,Robertson)� 당시에� 로마� 황제에� 의해� 제정된� 법은�

    어느�누구도�바꿀�수�없는� 절대적인�법이었다. 야고보가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 하나님의�

    법은� 그� 자체가� 어떤� 것에도� 견줄� 수� 없는� 탁월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더욱� 이� 하나님의� 법

    은� 다른� 율법보다� 포괄성을� 가지고� 인간� 관계를� 주장하는� 법이기� 때문에� '최고의� 법'이라고� 할� 수� 있

    다(Mayor,Tasker,Ropes).� 그러므로� 외모로�판단하지�않는� 것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최고

    의법을� 실천하는� 것이다(레� 19:18;� 마� 22:39).� � 곧� 상대방을� 외모로� 구별하지� 않는� 것은자기에게� 유

    익이�되는� 사람만을�사랑하는�것이�아니라�조건에�얽매이지�않고�사랑하는것이다.

    =====2:9� 본절은� 외모로� 사람을� 취한자들을� 향한� 징계를� 나타낸다.� � � �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은� 최고의� 법과� 완전히� 대치될� 뿐만� 아니라� 죄를�

    들어� 오게하는� 요인이� 되어� 하나님의율법을� 파괴하는� 행위가� 된다(요일� 3:� 4).� � � � 율법이� 너희를� 범죄

  • 자로� 정하리라� -� 여기서의� '율법'은� 성경의� 일반적인� 법보다는야고보가� 8절에서� 언급한� 최고의� 법을�

    가리킨다(Burdick).� 한편� '정하리라'의� � 헬라어'엘렁코메노이(*� � � � � � � � � � � � � � � � � � � � � � )는� '증명되다'

    라는� 의미로� 범죄를� 통하여� '증명� 됨'을� 시사한다.사람을� 외모로� 취한자는� 최고의� 법을� 어긴� 자이며,�

    율법은�그를� 범죄자로�정하여�범죄하였음을�드러낸다.

    =====2:10� � 개역성경에는� '가르'(*� � � � � � � ,�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 '가르'는� � 본절이앞절에서� �

    언급한� 내용� 즉� 사람을�외모로� 취하면�범죄자가� 된다는�사실의� 근거임을� 시사한다.� � � � 누구든지�온� 율

    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 � 야고보는� 온� 율법을� 지키는� 자가� 한� 가지

    를� 제외시키는� 것을�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율법은� 모두� 다� 중요한� 것이다.� 사람이� 율법� 한� 가지

    만� 범한다� 할지라도� 범죄한� 자가� 된다.� 야고보는� 본절에서� 사람들이� 율법� 중� 자기의� 필요한� 부분만을�

    취하여�지키는�것을지적하고�있다. 실제로�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자들이�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부자

    들에게는� 지나치게� 마음을� � 쓰면서도� 가난한� 자들에게는� 전혀�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은� 율법을� 취사� 선

    택하여� 지키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이러한� 행위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며� 역시�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 취사� 선택의� 방법이� 아닌� 불리한� 율법도� 동일하게� 지켜야� 한다.� '거치다'에� 해당

    하는�헬라어� '프타이세'(*� � � � � � � � � � � � � � � )는� '걸려� 넘어지다'의� 의미인� '프타이오'(*� � � � � � � � � � � � � )에

    서� 파생된� 단어로� '처음으로� 걸려� 넘어지다'를� 의미하며(Hort)� '범한'의� 헬라어� '에노코스'(*� � � � � � � � � �

    � � � � )는'지속된'의� 의미를� 지닌� 형용사이다.� � 사람이� 모든� 율법을� 지키다가� 처음으로� 단� 한번범죄하였

    다� 할지라도� 지속적으로� 범죄한� 것과� 동일한� 결과가� 된다.이는� 야고보가� 죄의형벌을� 말하려고� 했다기

    보다는�모든�율법에�대한� 중요성을�지적하고�있음을�시사한다.

    =====2:11� �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 아니하여

    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 본절은� � 앞절의� � 원론적인� 언급에� 대한예이다.� 논문에서� 언

    급된� 십계명은� 그� 순서가� 서로� 바뀌어� 있다.� 그러나� 야고보는� � 본문에서� 어느� 가정된� 상황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지� 순서가� 뒤바뀐� 것에� 대하여� �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 것은� 아닌� 듯하다(Tasker).

    하나님의� 율법은� 본질적로� 하나님의�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그러

    기에� 한� 가지� 율법을� 완전하게� 지켰다� 할지라도� 다른� 율법을� 범한다면� 그것은� 모든� 율법을� 범한� 것과�

    동일하며,그러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자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운� 자가� 된다.그러므로� '네�

    이웃을�네� 몸과� 같이�사랑하라'고� 하신�포괄적인�최고의�법� 가운데�사는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을� 외

    모로�보는� 한� 가지만을어겼다�할지라도�그것은�모든� 율법을범하는�것과�동일하다(Calvin).

    =====2:12� �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 야고보는� 본절에

    서�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다.� 모든� 율법에� 차별없이,� 간과하지� 말고� 행하라는� 것이다.� '자유의� 율법'은�

    앞서� 언급한� 최고의� 율법을� 가리키는� 표현으로(8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새� 계명� 즉� 복음

    을� 의미한다.이것은� 사람들� 속박하고�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안에서� 은혜와� 긍휼로� 인도하기� 때문

    에� 자유로운� 것이다(마� 5:44;� 요13:34;� 골� 3:12;� 요일� 3:11).�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

    에서� 심판� 받을� 자처럼(고후� 5:10)� 말을� 하고� 행해야한다.� '...처럼'에� 해당하는� 헬라어� '후토스'(*� � � � �

    � )는� 현재� 시상의� � 동사인� � '말하고',� '행하는'을� 동일하게� 수식하고� 있다.� 현재시상은� '말도� 하고� 행하

    기도� 하라'가� 습관적이고� 지속적인� 행위여야� 함을� 시사한다.또한� 본문은� 행하는� 것뿐� 아니라� � 말도� 하

    나님의�심판의�대상이�됨을�나타낸다(Manton).

    =====2:13� � 긍휼을�행하지�아니하는�자에게는�긍휼�없는� 심판이�있으리라� -� 본절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근거로� 한다(마� 18:23-35).'긍휼'은�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는� 자비심으로� 본절에서는� 특별히� 가

    난한� 자들에� 대한� 자비심을� 나타낸다.� 이러한� � 긍휼을� 행하는� 자는긍휼히� 여김을� 받게� 되며(마� 5:7)�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는� 자는�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게� 된다(마� 6:2).� 그러기에� 사람을� � 외모로� 판단하

    며� 가난한자에게� 긍휼을� 베풀기보다는� 멸시하고,� 도리어� 부유한� 자에게� 관대한� 자는� 결코� 긍휼히� 여김

    을� 받을� 수� 없다.� � � �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 �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표

  • 시이다(Johnson). 예수� 그리스도께서� �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셨듯이� 그리스도인들도삶� 속에서� 나타

    난� 긍휼을� 통하여� 심판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요일� 4:17),� 심판을� 이기고� 자랑할� 수� 있게� � 된

    다.가난한� 자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가진� 자들은� 심판대� 앞에서도�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며� 심판

    도�그� 긍휼을�이기지�못하게�될� 것이다.

    =====2:14� � 내� 형제들아�만일�사람이�믿음이�있노라�하고� 행함이�없으면�무슨�이익이� � 있으리요� -� '

    만일� 사람이...하고'는� 가정법을� 수반하는� 조건문으로서� 가식적인� 믿음을� � 지적하는� 말이다.� 이는� '만약�

    믿음이� 있노라� 하고� 계속적으로� 말만� 한다면'으로� 해석할� 수있다.� � 그들의� 말은� 전혀� 가치가� 없는� 거

    짓이며� 행위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이렇게믿음이� 있노라� 신앙� 고백을� 하면� 서도� 마음� 내키는대로�

    살아서� 행함이� 전혀� 없다면� 구원에� 있어서� 유익된� � 것이� 무엇이겠느냐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