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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The Korean Theatre Review 2007. 9 내 인생의 코끼리는 누구일까. 혹은 나는 누구의 인생에서 코끼리가 될 수 있을까. 뜬금없이 코끼리 타령을 하는 이유는 소도둑 쌍달과 코끼리 흑산의 모습이 부러워서랄까, 연출 이해제와 배우 오달 수의 관계가 샘이 나서랄까. 극단 신기루 만화경의 신작 <코끼리와 나>는 조선 태종 11년, 이 땅에 최초로 들어 온 코끼리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가는 두 존재를 그린다. 도대 체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코끼리와 같은 존재가 되어준다는 것이 무엇이건데? 15 프리뷰 신기루 만화경 <코끼리와 나> 꽃바람에도, 눈바람에도 함께 가자! 쌍달이 흑산을 만났을 때 이야기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의 대장경을 얻고자 일본에서 전략적으로 보낸 코끼 리 한 마리. 난생 처음 코끼리라는 해괴한 동물을 만난 조선의 왕궁은 아수라장이 된다. 날마다 콩 4두(斗) 씩을 먹어치우며 괴수 같이 포효하는 코끼리는 도무지 손 쓸 방도가 없이 궁 안을 쑥대밭 으로 만든다. 이에 두 나라 간의 화평을 위해 예물로 받은 코끼리를 보살필만한 사람을 찾으라는 특명이 내려지고, 어느 소 싸움판에서 약삭빠른 소도둑 쌍달이 캐스팅되는 영광(?)을 안는데. 하지만 아무리 쇠귀에 독경을 읽어 절간에도 몇 마리 보냈다는 쌍달이라고 하더라도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쌍달은 지레 겁을 먹고, 본격적으로 코끼리를 대면하기도 전에 제사상부터 받고 보는데. 그렇게, 함께 눈을 맞추며, 술동이를 비우는 것으로 쌍달과 코끼리 흑산의 첫 만남이 시작 된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에게 익숙해질 여유도 없이 흑산은 공조전서(工曹典書) ‘이우’를밟아 죽여, 황당무계하게도! 코끼리의 형사재판이 진행되고 결국 둘은 외딴섬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말이 유배지, 이 둘이 그 고즈넉한 바닷가에서 서로를 토닥토닥해주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현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법. 어떻게든 조선 왕실의 실수를 빌미 삼아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자 하는 일본은, 그들에게 흑산이를 돌봐줄 의녀로 가장한‘옥화’를 따라 붙 인다. 소리 없이 엄습한 비극은 이렇게 시작돼, 그림자처럼 쌍달을 따르던‘목이’가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리고 이제, 흑산이도 위기에 처하고, 나라마저 위기에 처하게 될 참인데. 쌍달은 과연 흑산이를 구하고, 또 나라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일시 : 2007년 9월21일~10월 21일 평일8시, 토4시7시, 일4시 월, 9월27일 쉼 9월24일~9월26일, 10월3일 4시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작,연출 : 이해제 움직임 연출 : 이두성 출연 : 오달수, 정찬우, 최명수, 박수영, 정재성 외 문의 : 1544-5955

꽃바람에도, 눈눈바람에도함께가자! ktheater.bravod.co.kr/filedown.html?up_file=2_83.pdf영화장르의특성상나타날수밖에 없는태생적으로잦은장면전환들은오히려대극장‘용’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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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The Korean Theatre Review 2007. 9

내 인생의 코끼리는 누구일까. 혹은 나는 누구의 인생에서 코끼리가 될 수 있을까. 뜬금없이 코끼리

타령을 하는 이유는 소도둑 쌍달과 코끼리 흑산의 모습이 부러워서랄까, 연출 이해제와 배우 오달

수의 관계가 샘이 나서랄까. 극단 신기루 만화경의 신작 <코끼리와 나>는 조선 태종 11년, 이 땅에

최초로 들어 온 코끼리에 한 실화를 바탕으로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가는 두 존재를 그린다. 도

체내가너에게, 네가나에게코끼리와같은존재가되어준다는것이무엇이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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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신신기기루루 만만화화경경<<코코끼끼리리와와나나>>꽃꽃바바람람에에도도,, 눈눈바바람람에에도도 함함께께 가가자자!!

쌍달이흑산을만났을때

이야기는 조선시 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의 장경을 얻고자 일본에서 전략적으로 보낸 코끼

리 한 마리. 난생 처음 코끼리라는 해괴한 동물을 만난 조선의 왕궁은 아수라장이 된다. 날마다 콩

4두(斗) 씩을 먹어치우며 괴수 같이 포효하는 코끼리는 도무지 손 쓸 방도가 없이 궁 안을 쑥 밭

으로 만든다. 이에 두 나라 간의 화평을 위해 예물로 받은 코끼리를 보살필만한 사람을 찾으라는

특명이 내려지고, 어느 소 싸움판에서 약삭빠른 소도둑 쌍달이 캐스팅되는 광(?)을 안는데.

하지만 아무리 쇠귀에 독경을 읽어 절간에도 몇 마리 보냈다는 쌍달이라고 하더라도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쌍달은 지레 겁을 먹고, 본격적으로 코끼리를 면하기도 전에 제사상부터 받고

보는데. 그렇게, 함께 눈을 맞추며, 술동이를 비우는 것으로 쌍달과 코끼리 흑산의 첫 만남이 시작

된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에게 익숙해질 여유도 없이 흑산은 공조전서(工曹典書) ‘이우’를 밟아

죽여, 황당무계하게도! 코끼리의 형사재판이 진행되고 결국 둘은 외딴섬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말이 유배지, 이 둘이 그 고즈넉한 바닷가에서 서로를 토닥토닥해주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현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법. 어떻게든 조선 왕실의 실수를 빌미 삼아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자 하는 일본은, 그들에게 흑산이를 돌봐줄 의녀로 가장한‘옥화’를 따라 붙

인다. 소리 없이 엄습한 비극은 이렇게 시작돼, 그림자처럼 쌍달을 따르던‘목이’가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리고 이제, 흑산이도 위기에 처하고, 나라마저 위기에 처하게 될 참인데. 쌍달은 과연

흑산이를 구하고, 또 나라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일시 : 2007년9월21일~10월21일

평일8시, 토4시7시, 일4시

월, 9월27일쉼

9월24일~9월26일, 10월3일4시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극장용

작,연출 : 이해제 움직임연출 : 이두성

출연 : 오달수, 정찬우, 최명수, 박수 , 정재성외

문의 : 1544-5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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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관객들을 만났던 <다리퐁 모단걸>처럼 <코끼리와 나>

역시 화 시놉시스가 먼저 씌어졌고 지금도 화제작을 위한

과정이 한참 진행 중이다. 화 장르의 특성 상 나타날 수밖에

없는 태생적으로 잦은 장면전환들은 오히려 극장‘용’의 무

를 만나면서 거의 해결되었다고 하는데, 30장으로 이루어진

희곡을 단 세 번 정도의 암전만으로 처리할거라고 하니 그 발

상의 전환도 내심 기 가 된다. 무 역시 수묵화 풍경처럼 잔

잔하게, 너무 많이 채워 넣지 않은 모습으로 선보일 텐데, 오랜

만에 연극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 같

아 기다리는 마음이 조급하다.

들어오는 단원은 많은데 나가는 단원은 하나도 없다는 극단

신기루 만화경은 탄탄한 연출진과 작가진, 그리고 끼 많은 배

우들이 뭉친 말 그 로, ‘만화경’같은 모습이다. 올해만 해도

벌써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와 <다리퐁 모단걸>, 그

리고 <코끼리와 나>까지 왕성한‘연극욕’을 보여주는 그들에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할 수 있는 한 여기저기 멍석을 깔아

서 그들만의 내공을 기르는 일이라고. 그렇다보니 자연히 다

양한 가능성들이 발현되는 것이고 그것은 아마도 하나의 색깔

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무언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렇게 함께 모여 일을 도모하고 저지르다보면 그들만의 고유한

색깔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문득 우스개 소리로 오달수

가 던진 한마디처럼 그것이 어쩌면‘보호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환경에서 온갖 역경을 딛고 꿋꿋이 연극

을 지키려는 그들만의 보호색, 그 고마운 보호색이 만들어낼

또 한 편의 감동, <코끼리와 나>를 기다린다.

_김슬기기자([email protected])

사진_극장용제공& 이성진([email protected])

그들이기다려지는이유

이야기는 코끼리 한 마리가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가지를 쳐가지만, 사실

이 연극은‘코끼리와 나라’의 관계보다는‘코끼리와 나’의 관계를 애면 면 쫓아

간다. 그렇기에‘나’쌍달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코끼리‘흑산’을

하는지를 꿰뚫어 보는 일이 극을 풀어가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심지어

흑산의 감정을 유추해 보는 일 또한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데, 그의 감정에 따라

쌍달의 성격이나 감정, 행동양식까지도 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쌍달과 흑산은 어떻게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인물 분석을 위해 사소한 단서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로 연습실에 모

인 이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 과정이 사뭇 재미있다. 소도둑 쌍달이 처음에

바늘 도둑질을 시작한 이유는 손을 따기 위해서 을까, 이불 바느질을 하는 어머

니께 효도를 하기 위해서 을까. 얼토당토않은 이야기 같아도 그 모든 것들이 인

물의 성격에 당위성을 부여한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집요하게 파고들어가고 싶

은 마음이 절로 고개를 쳐든다. 과연, 스무 명이나 되는 단원들이 툭툭 던져놓는

설정들은 서로 간의 합의를 거쳐 그 로 인물의 형상화에 반 된다.

한편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등장하게 될 코끼리 흑산이야말로 이 연극을 무 에서

만날 날을 손꼽게 하는 숨겨진 보물이다. 단순히 코끼리를 의인화 하는 차원을

넘어, 쌍달과 가까이 교감하고 그에게 하나의 의미 있는 존재로서의 흑산을 맞이

하기 위해, 그 녹록치 않은 과제를 풀어내기 위해, 갖가지 상상력이 동원된다. 음

향, 소품, 의상, 무 , 조명 할 것 없이 모든 스태프들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배

우들 역시 우리 장단과 움직임을 익히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연극이기에 가능한

무한한 표현의 세계, 실제 코끼리보다 더 코끼리다운, 어쩌면 사람보다도 더 사

람다운 흑산의 탄생을 기다리는 마음은 즐거운 고문이다.

내인생의코끼리

연출가 이해제 & 배우 오달수

파란만장 쌍달과 흑산의 이야기는 <코끼리와 나>의 연출가이자 작가인 이해제가 배우 오달수만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다. 오달수는 쌍달 역이 한편 광스러우면서도 부담이라고 고백하지만, 16년간 고

근 두 사람의 시간은 이제 이 작품을 만나 또 한 번 빛을 발하는 셈이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고양이를 한 마

리 키워볼까 고민했다던 오달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고양이를 잘 돌봐줄 자신이 없어 결국은 충동을 눌 다

고 하는데, 바로 그것이 애정이자 진정한 관계맺음이 아닐까 하고 얘기한다. 연출 이해제와 배우 오달수 사

이에는 바로 그러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애정과 믿음이 있었다.

“연습하면서 달수 형이 16년 만에 보여 준 춤사위는 상당히

감동스러웠어요. 어릴 적 무 에서 봤던 모습들을 다시 보면

서 여전히 몸이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 라는 생각이 들

었죠. 흑산과 쌍달의 관계는 이미 짐승과 사람의 사랑을 뛰어

넘어, 서로 교감하면서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는 경지라고 할

까요. 하나의‘존재’로서 의미를 지니는 거죠. 다른 사람이

존재해야 자기가 존재하는 거잖아요. 코끼리는 그런 의미에

요. 육지에서 가장 큰 동물이 코끼리잖아요. 사실 전달하고자

했던 걸로 따지면, ‘고래와 나’라고 했어도 상관없었을 거에

요. 그 커다란, 감당하지 못할 존재들에 해서 생각해보자는

거죠. 타인에 해서 혹은, 우린 자기 자신에 해서 굉장히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결국은 서로를 알아가면서

나와 네가 합일치 되어가는 과정을 한 번 보자는 거에요. 다

른 건 몰라도 이 작품을 통해서 관객들이 소박한 의미의 세상

을 만났으면 싶어요.” - 연출가이해제

“배우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는 본을 봤을 때, 내가 눈

물이 나느냐 안 나느냐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이 본 같은 경우 첫 리딩할 때 목이 메더라구요. 그냥 국어

책 읽듯이 감정을 빼고 읽는데도, 울컥하는 게 있었어요. 그

렇게 감동을 받고 시작했는데, 흑산이와 쌍달의 관계는 가면

갈수록, 쌓이는 게 있어요. 결국에는 그 쌓이고 쌓인 것들을

밟고 뛰어넘는 거죠. 이 작품은‘나와 코끼리’가 아니고‘코

끼리와 나’에요. 나는 차치하고서라도 코끼리의 의미가 무엇

인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언젠가 해제씨가 이야기해

서 그게 마음에 탁 들어왔는데, 현실에서 지금 나, 혹은 이 공

연을 보는 관객에게 코끼리는 무슨 의미인가, 고민해 봐야한

다는 거죠. 무엇보다도 제가 본을 보면서 느꼈던 것들을 어

떻게 관객들한테 고스란히 전달해 줄 수 있을까가 가장 고민

이에요. 제가 느낀 만큼, 찾은 만큼, 관객 분들이 가져가셨으

면 좋겠어요.” - 배우오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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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The Korean Theatre Review 2007. 8 19

프리뷰

극극단단 작작은은신신화화 우우리리연연극극 만만들들기기

<<인인간간교교제제>> && <<미미래래는는없없다다>>

내내부부들들한한 살살덩덩이이 같같은은 이이야야기기

인인간간교교제제

1993년부터 시작해 격년제로 시행되고 있는 극단 작은신화의 창작극 발굴 프로그램‘우리연극만들기’의

그 일곱번째 열매가 올 가을 탄생한다. 김원의 <인간교제>와 이지홍의 <미래는 없다>가 그 주인공이다. 이

창작극 페스티벌은 당선된‘초벌’의 희곡을 연출과 배우 그리고 작가가 함께 작업하며 무 에 올라갈‘작

품’으로 완성해 나가는 기획프로그램이다. 그렇기에 이 두 연극은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떼어낼 수 없

는살덩이처럼, 마냥귀애하고픈자식처럼끈끈하고질긴이야기로다가온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일까, 깨라고 있는 것일까. 끝이 있어서 사랑이 아름다운 것일까.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이별이 다행인 것일까. 사랑해서 아픈 것일까 아파서 사랑한 것일까. 상처를 받아서 괴물이 되

었을까 아니면 괴물이라서 상처를 받았을까. 뫼비우스의 띠 마냥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음에도 고통스

러운 갈망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왜냐하면 상처받을 줄 알면서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이니까. 버려

진 따뜻함이라도 주워 가지고 싶은 것이 인간이니까. 다 끝난 것을 알면서도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것

이 인간이니까. 그래서 그 사랑, 그들의 인간교제, 몹시도 뜨겁고 몹시도 쓰라리다.

괴물이되지않으면진짜괴물이되어버리는한사내의이야기

“이 본을 읽을 때 완성된 작품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발전가능성이 아주 농후해 보 어요. 그래서 첫

만남 때 작가분께 실례인줄 알면서도 저희들 의견을 거침없이 내놓을 거라고 말 드렸죠. 사실 작가분

도 저희 얘기를 정말 잘 들어주셨구요. 연습하는 것 함께 보시고 배우, 스태프와 다 같이 이야기하고 다

시 수정해보고. 녹록치는 않아도 이런 작업이 정말 우리연극만들기로서 의의가 있는 것 같아요. 서로

이야기하면서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나갈지 선택하고. 이 주인공을 정말 괴물로 만들까, 아니면 인간의

형상으로 만들까. 그런 고민.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느 날 문득 괴물이 되어버리고 마는 시간과

마주치게 되잖아요. 저 역시도 그런 경험이 있구요. 활기차게 검게 살아갈까, 아니면 무기력하게 흰 것

으로 남을까. 선택의 고통이 늘 우리를 뒤흔들죠. 그러다 고통스러운 혼돈의 시간을 지나고 보면 언제

나 그 선택의 에너지는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연극을 통해서 한 인간을 평범한 인간으로

만들수도있고괴물로도만들수있는유일한힘은사랑뿐이라는이야기를하고싶어요.”- 연출신동인

남자와 여자가 있다. 그들은 같은 상처를 가졌다. 남자는 여자에게 돈을 준다. 여자는 남자에

게 몸을 준다. 남자는 여자에 한 뿌리 깊은 복수심이 있다. 여자에 한 증오는 남자 자신에

한 학 로 변한다. 남자는 끊임없이 여자를 학 함으로써 자신을 괴롭힌다. 남자의 상처는

점점 깊어만 간다. 여자는 남자와의 만남을 끝내고 싶어 한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가족에

게 돌아가고 싶다. 남자에게 애원한다. 모든 걸 끝내고 서로의 집으로 돌아가자고.

남자와 여자의 교제는 돈과 증오와 애원으로 이뤄진다. 같은 상처를 가졌지만 그것을 해결하

고자 하는 방법은 너무 다르다. 그들의 교제는, 그 방법의 다름으로 부딪히고 깨져서 다시 상

처로 돌아온다. 그것이 그들의 인간 교제다.

당신과마주함, 상처혹은사랑

<인간교제>

연출가 신동인

일시 : 2007년9월5일�9월19일

평일8시, 토4시7시, 일4시

장소 : 연우소극장

작 : 김원 연출 : 신동인

출연 : 장용철, 이지혜외

문의 : 74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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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소녀 박은지의 살해사건이 친구인 유미래에 의해

제보된다. 담당형사인 장나목은 피해자의 과거를 밝혀나가고, 동시에 정신과 의

사 장 숙은 살해 사건의 목격자인 유미래의 심리를 파고들어 간다. 그러나 이야

기는 점점‘살해용의자에 한 추적’에서‘박은지-유미래에게 무슨 일이 벌어

진 것인가’로 전환되어 간다. 장 숙은 꿈을 통해 유미래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되는데…

헤어나올 수 없는 과거가 먹먹한 구름처럼 가슴속에 가득차서 아무것

도 할 수 없을 때, 우리의 혼은 꽉 닫힌 철문처럼 아무것도 토해

내지 않고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비루한 모습으로

꿈속을 돌아다닌다. 그깟 마음쯤이 만들어내는 꿈이라 해도 우

리 심장은 터질 것만 같고 다리가 무거워진다. 그것은 꿈을 통

해서 우리가 과거를 인식하고 과거와 화해할 수 있기 때문이

다. 그러나 솔깃하기엔 아직 이르다. 꿈속에서 길을 잃어버리

면 한시간 두시간 하루 이틀 일년 이년을 헤메야 할 지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는 꿈도 맘 로 꿀 수 없는 것일까. 연극 <미

래는 없다>는 사실은 꿈처럼 맘 로 할 수 없는 것도 없다는 것을 알

려주는, 처절하게도 현실적인 몽환을 보여주는 연극이다.

가보지않고는아무도알수없어

<미래는없다>괜찮아, 단지꿈일뿐이야

“등장인물들이 거울 속에서 보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요. 깨진 거울에 되담아보는 나는 나이면서도 사

실 내가 아니죠. 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모두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폭력이 가득한 사회 속에서 사그라져가는 이 소녀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까. 혹은 그것을 그냥

지나쳐버리는 우리에게는 과연 미래가 있을까. 그런 이야기요. ”-작가이지홍

그네를 너무 세게 었다가는 그네가 360도 회전을 해서 내 뒷통수를 갈길 수도 있는 노릇이다. 굳이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들이 지 않아도 세상 모든 일에는 반 급부라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내 아픔에 혼겁해서 날뛰다 보면 다른 사람의 깨진 유리조각 같은 마음을 밟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두 사람 모두 싯뻘건 핏망울을 피해 갈 수 없게 된다. 혼자만 아프다고 생각할 필요

없다. 사람은 다 똑같으니까. 똑같이 두렵고, 똑같이 힘들어 하니까. 깨진 거울이라도 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고, 아픈 과거라도 주워 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고, 죽이면서까지 살고 싶은 것이 사

람 마음이니까. 그러니 혼자서 하지 말고 서로 보듬고 되담다 보면 언젠가는 미래를 찾을 수 있지 않

을까. 먹구름 같은 마음은 손으로 흩어버리면 그만이다. 아프도록 현실적인 몽환이 당신을 힘들게 하

는가? 그렇다면 탈출하는 방법은 단 하나다. 꿈에서 깨어나는 것. 꿈을 꾸고 있는 한은 절 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_이가원기자([email protected])

사진_이성진([email protected])

2120 The Korean Theatre Review 2007. 9

작가 이지홍

미미래래는는없없다다일시 : 2007년9월22일�10월7일

평일8시, 토4시7시, 일공휴일4시

장소 : 연우소극장

작 : 이지홍 연출 : 이곤

출연 : 홍성경, 이은정, 정세라, 강일외

문의 : 74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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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The Korean Theatre Review 2007. 9

엘렉트라, 그녀는 왜 어머니를 죽일 수밖에 없었는가. 아버지에 한 집념과 어머니에 한 증오를 설명하기

위해 프로이드가 이름을 빌려 온 한 여인이 그녀의 애타는 이야기를 노래한다. 소포클레스의 원전을 넘나들

며 지금, 여기를 사는 사람들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킬 그리스 비극.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의 초청작 그리스

국립극장의 <엘렉트라>가 연출가 피터 슈타인을 만나 다시 한번, 그녀의 끝 간데 없는 내면에 천착한다. 그들

은그녀를저버린세상에말을건네고, 이제그것은냉소어린비극을뛰어넘는다. 오히려우리는그로부터관

조적인삶의지혜를경험한다.

23

프리뷰

그그리리스스 국국립립극극장장<<엘엘렉렉트트라라((EElleeccttrraa))>>

끝끝나나지지 않않은은 비비극극,, 그그비비극극을을 넘넘어어서서

세세계계 국국립립극극장장 페페스스티티벌벌풍성한가을축제,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9월8일부터 10월28일까지 국립극장에서 펼쳐질 이번 세계 국립

극장 페스티벌은 그리스, 중국, 이탈리아, 국, 스위스, 인도, 터

키, 몽골, 한국 총 9개국의 14단체가 참가하는 행사로, 독특하고

다양한 색채의 공연들이 국립극장의 무 를 수놓을 예정이다. 각

국의 전통 있는 공연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이번 페스티벌은 단순

히 해외 유명 공연을 초청한다는 의미를 넘어, 세계 곳곳의 문화

들을 체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기회를 마련한다.

국립무용단의 <춤, 춘향>, 국립극단의 <태>, 창극단의 <청>, 국립

국악관현악단의 <네 줄기 강물이 바다로 흐르네> 등 국립극장 4

개 전속단체들의 참가는 물론, 그리스 국립극장이 공연할 소포클

레스의 비극 <엘렉트라>, 셰익스피어의 정통을 잇는 국 로벌

극장의 셰익스피어 희곡 <사랑의 헛수고>, 중국국립경극원의 <백

사전>, 산스크리트 극의 화려한 부활을 맛 볼 수 있는 인도 소파남

공연예술연구원의 <마야> 등 초청 공연들은 각국의 고유한 특성

을 뚜렷하게 재현해낸다.

일시 : 2007년9월21일7시반, 9월22일3시7시반

장소 : 국립극장해오름극장

작 : 소포클레스(Sophocles) 연출 : 피터슈타인(Peter Stein)

출연 : 스테파니아굴리오띠(Stefania Goulioti)

아뽀스톨리스토찌까스(Apostolis Totsikas)

까리오삘리아까라베띠(Karyofyllia Karabeti) 외

문의 : 2280-4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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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The Korean Theatre Review 2007. 9 25

그리스국립극장, 피터슈타인을만나다

7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그리스 국립극장은 고 그리스 희극은 물론, 세계적인 고전 희극에서부터

현 그리스 및 해외 연극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아우르며 다양한 작품들을 소화해내고 있다.

이제 막 에피다우루스 축제에서 초연을 마친 <엘렉트라>에 쏟아진 시선들은 세계적인 연출가 피터 슈

타인과 그리스 국립극장의 만남이 꽤나 성공적이었음을 입증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피터 슈타인과 그리스 국립극장의 협업은 지금은 고인이 된 그리스 국립극장 전

극장장 니코스 코우르오쿨로스의 마지막 바람 중 하나 다고 한다. 그 바람은 후임자 야니스 후바르다

스의 끈질긴 노력으로 구체화 되었고, 본 작품의 공동제작자인 에피다우루스 페스티벌의 예술감독 요

르고스 루코스가 피터 슈타인에게 그리스 국립극장과의 공동제작을 제안하면서 현실이 되었다.

작품과 배우들은 피터 슈타인 자신이 직접 선택했으며 배우들은 약 한 달간의 힘든 리허설에 참가해야

만 했다. 그들은 일흔의 노 연출가 피터 슈타인을 간단한 과정을 통해 의미 있는 것들을 가르치는‘big

child’라고 묘사한다. 한편 초연을 가졌던 에피다우루스 극장은 음향학적으로 상당히 훌륭한 그리스

최고 공연장 중 하나로, 본래는 기원전 4세기에 지어진 그리스의 고 원형 경기장이었다고 한다.

소포클레스의비극, 고전그리스극의진수<엘렉트라>

소포클레스는 그리스 극작가 중 극적 구조를 가장 잘 형상화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가 창조해낸 인물들은 심리적인 동기 부여가 확실하고,

장면은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절정으로 확 된다. 소포클레스는 120편

이상 다작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 완전히 전해 내려오는

것은 7편에 불과하고 그 중 <엘렉트라>는 완성된 시기가 정확치는 않으

나 그의 후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 온 아가멤논 왕은 왕비인 클리타이메

스트라와 왕의 사촌 동생이자 왕비의 정부인 아이기스토스에 의해 암

살당한다. 딸 엘렉트라는 어린 남동생 오레스티스를 어머니로부터 보

호하기 위해 그를 포시스의 왕 스트로피우스에게 보내고, 복수를 꿈꾸

며 처절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드디어 성인이 되어 돌아온 오레스티

스는 평생의 숙원이었던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어머니를 죽인다.

한편 여기서 잠깐, 같은 전설을 토 로 창작된 다른 그리스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는 오레스티스를 주

인공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하고, 에우리피데스의 동명의 작품 <엘렉

트라>에서는 동생 오레스티스가 아이기스토스를, 엘렉트라 자신이 어

머니를 직접 살해하는 이야기가 엮어진다. 반면 소포클레스가 만들어

낸 <엘렉트라>의 비극성은 엘렉트라의 처절한 심리를 따라 흐르면서

극의 도를 높여간다.

베를린 샤우뷔네 극단을 비평가들의 온갖 찬사 속에 독일 최고의

극단으로 만들었던 연출가 피터 슈타인의 신작이 세계 국립극장 페

스티벌을 통해 한국 무 를 찾는다. 극도로 치 하게 계산된 텍스

트 분석과 당 사회를 반 하는 고전을 연출해왔던 그가 세상에

내놓은 신작 <엘렉트라>는 어떤 모습일까. 간단한 서면 인터뷰를

통해 만난 그는 고도의 내공과 연륜을 갖춘 연출가답게 담담히 그

의 작품을 짚어간다.

“나는 항상 고전적인 방법으로 연출해왔습니다. ‘고전적’이란 의미

는 작품이 동시 의 관객들에게만 통하기 보다는 시 를 넘나들며

여러 시 의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포클

레스의 <엘렉트라>는 많은 의미들을 전달합니다. 그 중 하나는, 급

진주의는 매혹적이지만 위험하고, 극단적인 감정들은 열정을 낳지

만 동시에 그로 인해 욕지기가 날 수도 있다는 사실에 한 것입니

다.

고전극들은 또한 항상 새로운 시각들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각각

다른 시기에 이 작품들을 무 에 올리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나는 고 그리스어를 읽을 수 있기에, 이 비극에 담긴 심오한 생각

들과놀라운형식들을제 로감상하고통찰할수있었습니다. 그리

고 위 한 유럽예술작품을 발견하는 것은 항상 크나큰 즐거움입니

다.

더불어 이전에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를 번역하고 연출

했던 경험은 소포클레스 작품의 큰 차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초반에는 복수에 한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어머니, 다음에는 아이기스토스로 살인이 전환됩니다. 여기에 오레

스티스를 따라다니는 분노는 없습니다. 다만 소포클레스가 진짜 관

심을가졌던부분은엘렉트라의깊고도과장된감정들입니다.

이렇듯 엘렉트라의 복합적인 감정들 - 비탄, 증오, 동생에 한 사

랑, 동생을 알아차린 즐거움,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고 싶은 본능

등-은 사실 한 여배우에 의해 표현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젊은여배우, 스테파니아굴리오띠는 단한재능을가지고있어

서, 제생각에는결국무언가를이루어낸것같습니다.

우리는 이번 한국 공연을 위해서 실내 공연을 위한 버전을 새로 만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실내극장에서도 에피다우루스 극장에서 볼

수 있었던 연극의 효과를 어느 정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40여년 이상 작품 활동을 해오며 이제 일흔이 된 그는 여전히 전성

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왕성한 창작 활동

을 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프랑스 리옹에서 차이

코프스키의 <스페이드의 여왕>, 국 카디프에

서 베르디의 <폴스타프>, 이탈리아 라

노 스칼라 극장에서 달라피콜라의

<일 프리지오네로>와 바르톡의

<붉은수염의 성>, 독일에서 <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리옹

에서 베르그의 <룰루>, 이탈리

아 카타니아에서 셰익스피어의 <

리차드 2세>,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와 미국 뉴욕에서 무소르스키의 <보리

스 고두노프> 등, 이라고 답을 남긴 그

의 열정이 단하다.

※본서면인터뷰진행에는국립극장공연사업팀에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만은 않은 그리스 비극의 세계, 그러나 고전 문학의 진수와 현 연극의 거장이 만들어낸 <엘

렉트라>의 깊고도 잔잔한 감동의 세계는 결코 비극적이지 않다. 한 여인의 비통한 내면을 들여다보며 복수의 칼

날을 가는 심정은, 더구나 그 복수의 상이 자신의 어머니라는 슬픈 현실은, 소포클레스와 그리스 국립극장과 그

리고 피터 슈타인의 만남을 통해 예술로서 승화된다. 그래서 감히, 바래본다. 엘렉트라가 동생 오레스테스를 기

다리는 간절함 만큼, 딱 그 만큼만. 서서히 가을이 물들어가는 문턱에서, <엘렉트라>를 기다리며 가슴 깊숙이 번

져갈 애타는 먹먹함을 꿈꾼다.

_김슬기기자([email protected])& 사진_국립극장제공

희 의 웅

연출가 피터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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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6 The Korean Theatre Review 2007. 9

술에 취한 자신을 기생 천관의 집으로 데려간 말의 목을 단호히 잘라버린 김유신. 삼국통일의 과업을 이룬

웅인 이 남자는 과연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

이 살아야 하는 것일까. 수많은 나날동안 자신에게 닿았던 인연의 끈들을 매멸차게 잘라내고 그가 이뤄낸 것

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웅의 저무는 생애, 베어내고 베어낼수록 마음의 짐은 커져만 가고 그립고도 가여운

얼굴들이 가슴을 가득 메운다. 어느 가을, 이른 바람이 지나가면, 바위를 쪼개며 화랑의 뜻을 세운 유신의 빛

나는칼에서왠지모를차갑고쓸쓸한노래가흘러나온다.

프리뷰

극극단단 인인혁혁<<천천마마>>네네칼칼에에서서 꽃꽃비비린린내내가가 나나는는구구나나

아집이있는곳에칼이뻗치고마음닿는곳에꽃은피건만…유신의 칼은 한백산 바위를 쪼갠 칼이고 정적들의 목을 벤 칼이며 애마(愛馬)의 목을 단칼에 자른 칼이고

한 번의 인연 이었던 여인의 사랑을 베어낸 칼이다. 하나를 위해 한길만 달린 그 칼을 품고 잠들어 있는 장

군은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하나가 되자고 다른 하나를 죽인다면 그것은 과연 진정한 통일이 될 수

있는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 칼이 이뤄내는 것만 따라간다면 마음이 피워내는 꽃송이는 놓칠

수밖에없다는것이다. 그래서일까. 후회도후퇴도못할화랑의검에서는눈물어린꽃비린내만이가득하다.

_이가원기자([email protected])& 사진_최윤우기자([email protected])& 극단제공

2007년, 다시나는천마

죽음을 앞둔 칠십 노인 김유신. 병석의 김유신에게 그의 수호신령이던 음병(陰兵)들이 찾아든다. 음병들은

유신에게 젊은 날을 회상하게 한다. 삼국통일을 다짐했던 젊은 유신과 그가 사랑했던 천관녀, 그리고 어머

니…. 이윽고 노구를 이끌고 나타난 유신에게 고구려의 포로가 찾아와 통일을 댓가로 당나라에게 고구려땅

의 부분을 내주지 않았느냐며, 유신이 일궈낸 삼한일통이 제 로 된 통일이냐며 따진다. 유신은

그 포로를 단칼에 죽인다. 그 때 제(祭)를 주재하던 나라무당 아실에게 천관녀의 혼이 들어 유신

을 꾸짖는다. “그 칼로 이뤄낸 것이 진정 무엇이냐?”고….

1995년‘삼성문학상’수상으로 1998년 초연된 <천마도>가 연출 이기도에 의해 <천마(天馬)>

로 다시 날개를 단다. 우리의 음악과 소리, 몸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현 적 감각의

무 미학과 함께 새로운 음악극의 형태를 제시할 이 작품은 초연 때와는 달리 삼국통일의

역사적 가치나 현재의 통일의 문제는 후면에 두고, 웅 김유신이 아닌 인간 김유신을 보

여주려고 한다. 죽음을 눈앞에 둔 나약한 노구의 유신이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구

조를통해야망을따라한길만을좇으며자신을내몰아쳤던회한의생애를이야기한다.

“김유신의 위인전을 보자는 것이 아니라 그가 무엇을 갈등하고 고민했는가, 무엇에 사로잡혀 살았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죠. 초연 때랑은 완전히 다른 색깔이에요. 음악과 무용, 코러스들을 통해서 유신의 심

리를보여주려는노력을많이하고있어요. 미니멀한음악이정서와심리를따라가며극적인지점을증폭하

기도하고, 다른색깔을담담히나타내기도하고…. 그의야망은사실집착일수도있거든요. 실제로그는가

야후손으로자신의나라를멸망시킨나라에서화랑이된것이었고, 삼국통일을하면서고구려땅을잃었고,

자신의인생에서도사랑하는여인을잃었죠. 마치지금우리나라역사가근 화에매달려서너무속도중심

이된상황과비슷할수있어요. 주위를돌보지않고달리기만하다보면소중한것을정말많이잃을수있는

것이죠. 이 연극을 보면서 관객들이 지금의 시 정신이나 세계관을 한 번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어요.”-연

출이기도

일시 : 2007년9월4일~9월30일평일8시, 토3시7시, 일3시 장소 : 학전블루소극장

작 : 홍원기 연출 : 이기도 출연 : 최원석, 황정라, 이 설, 최수진외 문의 : 923-7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