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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re estación 0 1985: 87) 1.

루피노 따마요와 옥타비오 빠스: 근대 미학/멕시코 미학 · 2020. 6. 4. · corriente alterna)~의 “앙드레 브르통, 시작의 추구(André Breton 0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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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루피노 따마요와 옥타비오 빠스: 근대 미학/멕시코 미학 · 2020. 6. 4. · corriente alterna)~의 “앙드레 브르통, 시작의 추구(André Breton 0 la

[논 문I

루피노 따마요와 옥타비오 빠스:

근대 미학/멕시코 미학

송상기

(고려대 교수)

라타 지 베르: 당신과 따마요 간의 유사성에 대하여 언급이

되곤 한 걸로 압니다.

옥타비오 빼스· 비록 짧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긴 했지

만, 우리의 경향은 마주 보았지요. 루피노 따마요가 아주

개인적인 어투로 근대회화와 고대 멕시코 미술의 유사성을

발견했다고 주장했을 바로 그 때, 저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지요. 이 시기에 ‘페허 속의 송가(Himno entre ruinas) ’와 r격정의 계절(La estación violenta)~이라는 시 집에서 나중에 빛을 보게 될 몇몇 시틀을 쓰고 있었지요

또 그 시기에 『독수리냐 태양이냐?(i,Aguila 0 sol?)~라는

작은 책에는 내 정신세계를 지배하던 콜럼버스 이전 문명

의 세계가 나타나 있습니다.

(리타 기베르, 1985: 87)

1. 틀어가며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20세기 멕시코의 대표적 화가와

시인이라 할 수 있는 루피노 따마요(Rufino Tamayo)와 옥따비오 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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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avio Paz)의 각자의 예술세계에서 평행하게 발전하는 미학과 경향

의 상관관계이다. 이들 각자의 작품은 서로에게 예술적 원천의 영감이

되었으며 또 그러한 사실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원천이 되었다. 필

자는 이 두 작가의 예술세계에 있어 메소아메라차 문화의 영향과 이들이

그 문화적 유산을 근대적인 시각으로 어떻게 변형하는가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에 앞서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마티스나 피카소 혹은

브라크와 같은 소위 서구의 대표적인 근대작가들이 따마요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으며, 따마요는 종국적으로 이들로부터 어떻게 차별화 되는

가의 문제이고, 빠스의 경우에는 초현실주의나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이

어떻게 빠스의 시학을 변모시키고 그는 자신의 비서구적 지역성을 이러

한 경향과의 융합을 통해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가의 문제일 것이다. 빠

스의 경우, 구체적인 작품 분석은 필자가 이미 몇몇 논문을 통해 발표한

바 있으므로 본 논문은 빠스와 따마요 간의 영향관계와 따마요의 작품세

계와 그에 대한 빠스의 해석에 초점을 맞추며 논지를 펴고자 한다. 필자

는 20세기 초반 화단과 문단에서의 멕시코의 대표적인 거장들의 시학이

나 미학이 단순히 서구 모더니즘이나 근대마학에서 멕시코적인 고유의

미학으로 전개된다는 도식적 해석보다는, 이들의 예술세계의 역정과 편

린의 결과물들이 민족주의 비평가들이나 벽화주의자들과의 갈등 속에서

어떻게 역동적으로 드러나는 가에 주목하고, 근대와 메소아메리카의 접

점, 서로 다른 시간성과 공간성의 융합 속에서 이들이 자신의 예술세계

를 열어 가는 과정을 드러냄으로써 근대 예술과 고대 멕시코 미학과의

역학관계가 보다 역동적으로 조망되기 바라며 본 글을 시작한다.

II. 근대를 보는 눈: 근대/바로콰메소아메리카 미학으로의

동시적전이

‘모더니즘’이라는 앵글로색슨 용어는 멕시코 내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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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그것이 ‘모데르니스모’라는 중남미 자생적인 문예사조와 혼동될 여

지가 있기 때문이다. 어찌했건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는 근대성 니}지 근

대 혹은 모데르니스모에 대한 내포를 함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러한 용어사용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스타일과 개념은 중남미 미

술비평계와 저널리즘에 많이 스며들어 있다. 올리비에 드브르와(Olivier

Debroise)는 “근대성의 꿈(Sueños de Modernidad)"이라는 글에서

1940년대 멕시코 지식인들의 순수예술에 대한 개념과 실천에 대해 설명

하고 순수미술의 미학이 모더니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옹따비오 바레다(Octavio Barreda)가 주관한 『탕아

(El hijo pródigo)~에 하비에르 비야루티아(Xavier Villarrutia), 얄리 추마세 로(Ali Chumacero) , 옥따비오 빠스 등이 기고한 사설들에서 모더니즘의 영향 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며 순수예술의 수사학으로 집요하게 반복된다. 이러

한 평론은 곧 루피노 따마요를 비롯한 몇몇 화가들의 작품에 의하여 형상화된

다.

창조적 상상력을 통한 예술은 인간과 사회의 욕망, 꿈 그리고 본능을 표현한

다. 그리고 이러한 충동과 꿈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예술이다, 그것

은 인간을 휴식과 그림자가 아닌 태양의 충만한 빛 속에서의 꿈의 세계로 초

대한다 시는 반항으로의 초대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

닌 현실을 보다 렬 기계적이고 우스광스럽게, 그리고 보다 자유롭고 개인적인

것으로 변화시킨다 시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꿈과 충동을 보

여줌에 있어 시는 현실을 꿈으로 변모시킨다 (Debroise, 1991: 36)

옥따비오 빠스와 루피노 따마요 간의 고리를 잇는 연결점은 시내지

시학이 그 어떤 예술적인 내용을 표현함에 있어 가장 본질적이라는 믿음

을 공유하는 데 있다. 빠스나 따마요의 예술세계 형성에 있어 전위주의

와 초현실주의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된다~교차하는 물결(La

corriente alterna)~ 의 “앙드레 브르통, 시작의 추구(André Breton 0 la

búsqueda del comienzo)"라는 글에서 빠스는 브르통의 『미친 사랑

(L ’Amour Fou)~을 읽으며 근대 시에 대한 계시적 통찰을 얻게 되었다

고 회술한다. 그 작품에서 빠스는 “사랑의 기술이라는 것이 단순히 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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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우스의 하찮은 방법이 아닌 죽음 이후의 그 어떤 것 혹은 동양세계가

제기하는 유추(analogía) 혹은 자연과 여인 사이의 정체성에 대한 시작”

이라고 본다.(Paz, 1967:58) 빠스나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하면 사랑을 통

해 인간은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할 수 있고, 에로틱한 행위를 통하여 완

전한 미에 대해 명상할 수 있으며, 시간이 지워진 상태에서 자신을 초극

하고 보다 나은 세계 혹은 초현실로 이른다고 본다.(Perdigó , 1975: 39)

브르통은 초현실적인 세 가지 기본요소는 자유와 사랑과 시라고 보았고

이 세 요소는 서로 소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자유에 대해 언급한다

는 것은 즉각적으로 사랑과 시를 내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한편 빠스

에게 있어 시간과 언어와 사랑은 동의어이다. 예를 들어 빠스의 “투명한

밤(Noche en claro)“에서 “시간 속에는 또 다른 시간이 없다(dentro del

tiempo, no hay otro tiempo)"라는 행은 “텍스트 속의 또 다른 텍스트

가 없다” 혹은 “육체 속에 또 다른 육체가 없다”라는 즉각적인 해석을

가능케 한다.(Prado Galán. 1993: 11) 빠스의 시학에 있어 가장 핵섬적

인 요소는 사랑과 자유 그리고 시 혹은 신성한 체험이다. 이 시인이 초

현실주의로부터 배운 가장 근본적인 것은 경이로운 것과 초자연적인 것

으로 침투하려는 마술적 노력과 무의식을 시 속에 적극 투영하는 방법이

다. “태양의 돌(Piedra de s이)"이나 “백색(Blanco)"같은 시에서 나타나

는 꼴라쥬를 연상시키는 병치 기법, 시행의 공간적 배치 혹은 그림문자,

마침표의 생략,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 충격 효과 등은 그 기원을 매순간

의 풍요로움을 총체적으로 포착해 그리는 동시적인 미학언 입체주의 미

학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Perdigó, 1975: 27-28)

따마요의 경우에 있어서 근대회화 세계와의 접촉은 그가 1926년 뉴욕

으로 여행갔을 때로부터 시작된다. 그 곳의 박물관과 갤러리를 방문하며

서구미술의 첨단조류를 엿볼 수 있었으며 아방가르드의 몇몇 핵심적인

인물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피카소, 브라크, 마티스와 첫 만남을 가졌던

콧도 바로 뉴욕에서였다. 독일의 미술평론가 폴 베스타임 (Paul

Westheim)은 따마요의 작품세계에서 멕시코의 민족적이고 전통적인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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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 외에 그의 마티스, 피카소, 브라크와의 유사성과 당시 국제적인 미술

조류와의 영향관계를 조심스럽게 개진한다

따마요가 중남미 작가이긴 하지만 그러한 파리 작가들(마티스, 피카소, 브

라크)과 동시대 출신이라는 것을 부인하긴 힘들다. 르네상스나 고덕, 바로크,

낭만주의 등 각 시기에 있어 각 개인 작품의 개별성에도 불구하고, 창조적인

영혼들에 의해 채돼된 회화문법이 지배하는데, 그 이유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전통적인 표현양식으로는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소위 당대의 스

타일이라는 것이 탄생한다. 여기서의 문법이라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각자가

표현하려 하는 제안일 뿐이다. 여기서 따마요의 미적 의지가 피카스나 마티스

나 브라크의 의지와 동일하거나 비슷하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 따마요가

창출하는 터치의 역동성이나 선의 갑작스런 변화, 색채간의 갈둥관계 속의 조

화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따마요의 초기작품들인 “붉은 스튜디오

(1911)"와 “금붕어(1914)"와 같은 정물화에서 나타나는 중립적인 움직임이라

부르고 싶은 주요 색채간의 완벽한 조화를 통한 리드미칼한 구조와 완전한 정 적은 마티스 그림 중의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Westheim, 1957: 11 • 12)

그럼 피카소나 브라크, 그리고 따마요의 예술세계와의 관계는 어떠한

가? 입체주의 시기에 있어 얼핏 유사한 듯해 보이는 피차소와 브라크의

작품세계는 구조적인 면과 정신적인 측면에서 근본적인 두 가지 차이점

이 있다. 첫째 가시적으로 허용되는 한계의 차이이다. 예술가 스스로의

눈으로 확인되지 않은 물건은 화폭 속에 나타나지 않는 법이다. 브라크

정물화의 서정적 특징은 형태들이 그 관계망과 대조 속에서 환상적 요

소를 작가의 시션에 가미한다는 점에 있다. 둘째 브라크는 철저히 작가

의 감정을 배제한다. (Westheim, 1957: 12) 따마요 자신은 스스로 피카

스보다는 브라크를 대상의 질료감을 사랑하고 표현하는 진정한 의미의

화가라고 생각한다.

물론 피카소는 시대가 낳은 천재이다. 항상 그는 회화적 요소를 천재적으

로 재생산해낸다. 하지만 기발함보다는 회화적인 측면을 볼 때는 그가 내 애 인이라 부른 브라크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는 집을 칠하며 화폭 앞에 선 케이스다 그래서 그는 사물의 선비스런 질료감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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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거장의 경우는 무척 미술사에 있어 매우 특이하다. 내가 보기에 피카소는

기발한 발명가이긴 하지만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화가가 아니다. 그는 테크닉

을 경시한다.(...) 반면에, 브라크는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보고 그

려낸다. (Tamayo, 1987: 104)

브라크의 경우 형태적 측면에서 대상에의 인지는 색채와 선, 그리고

표면의 대비을 지배하는 리듬으로 전이된다. 이러한 따마요 자신의 브라

크에 대한 존경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입체파의 대가인 브라크의 화

폭과는 차별화되는 요소가 있다. 폴 베스타임에 의하면 따마요의 그림은

브라크의 경우에서처럼 인간적 감정이 배제된 형태적 조합도 아니고 완

전한 조화의 구도도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예언자적인 작가의 열정적인

명상을 통한 살아있는 랴듬과 놀랍고도 갑작스러운 대조가 화폭 속에 나

타난다. (Westheim, 1957: 12) 입체파의 그림이 죽음과 저주를 추방한

에멘의 세계라면, 따마요의 예술은 갈등과 긴장 속에 숙성되고 죽음과

어둠의 파괴적 힘과 태양으로 대변되는 생성적인 힘이 대비되는 역동적

인 예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따마요의 바로크적 에토스는 그

의 엘 그레코에 대한 숭배와 이 매너리즘 작가 속에서 발견되는 근대적

인 측면에 기인한다.

나에게 크나큰 감동을 안겨준 또 한 명의 작가는 옐 그레코이다. 그는 그의

시대만큼이나 지금 현재에도 근대적 작가이다. 그의 세계는 매우 역동적이다.

그가 그리는 사물 속에 나타나는 그 화염과 같은 움직임은 우리에게 많은 문

제와 시사점을 안겨 주는데 그는 환상적인 형태를 통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

결해 냈다.(Tamayo, 1987: 105)

알베르토 지로넬라(Alberto Gironella)의 예술세계에 대한 평론에서,

따마요는 바로크 예술은 지구상의 먼 것을 가깝게 해주는 근대세계처럼

역동적이며 초월적 세계마저도 우리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고 평한

다. (Tamayo, 1987: 105) 그러나 이러한 바로크 예술에 대한 평가는 그

자신 스스로에게도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따마요의 그림에서 바로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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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토스와 콜럼버스 아전 시대의 에토스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의 작

품에서 죽음은 모든 존재와 사건 위에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감시하

는 듯이 보인다. 이러한 바로크적 그림자는 또 한편으로는 지상의 모든

존재의 탄생과 죽음과 연관된 공포스럽고, 동시에 숭고한 대지의 여신

꼬아뜰리꾸에( Coatlicue)에 대한 아즈텍적 개념과도 유사하다. (Tamayo,

1987: 93)

m. 따마요와 빠스: 그들의 공생적 관계와 시학

따마요는 이차대전 이후 멕시코 미술계에서 빠스가 문단에서 그랬듯

이, ‘근대적 영혼’의 대표주자로 떠오른다. 따마요나 빠스나 민주주의 성

향의 비평가들로부터 진정한 멕시코를 표현하는 지역성이 부족한 코스모

폴리타니스트라 공격받는다. 빠스는 캘리포니아, 뉴욕, 동경, 뉴델리, 특

히 실존주의의 폭발적 유행 속에서도 초현실주의의 열기가 식지 않았던

전후 파리에서의 긴 방랑을 마치고, 1954년 멕시코로 돌아온다. 그는 귀

국 후 예술계와 문단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적 조류를 여는 촉매가 되려

노력한다 그는 까를로스 푸엔떼스(Carlos Fuentes)와 엠마누엘 까르바

요(Emmanuel Carballo)가 주관하는 『멕시코 문학 잡지(La Revista

Mexicana de Literatura)~ 에 적 극적 으로 기 고했고, 따마요를 포함한 순

수미술 계열의 화가와 정통좌파 계열의 평론가들로부터 공격받던 문인들

을 변호하는 다소 도발적인 에세이들을 썼다. 호세 에밀리오 빠체꼬

(José Emilio Pacheco)는 1957년 『태양의 돌』이 출판되기 이전에 빠스

의 책에 대한 적대적인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 시기의 서평들을 조사해 보면 누구나 오늘날 고전으로 평가받는 『독수

리냐 태양이나?~나 『어느 송가를 위한 씨앗(Semillas para un himno)~ 에 대 한 맹목적인 분노와 적대감을 발견할 것이다. ‘초현실주의’라는 용어는 금지된

언어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좋던 나쁘던 맹목적 믿음을 가지고 두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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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스에 대한 신화를 창출해냈다. 1930년대와 40년대 초반 경이로왔던 젊은 시

인 빠스와 유럽의 초현실주의에 감염되어 이미 30년이 지난 유행을 반복하며

유럽의 데카당스에 부패한 작가 빠스가 바로 그것이다. (Emilio Pacheco, 1971: 77)

따마요의 경우에 있어, 그의 순수예술주의는 멕시코 벽화주의의 세 거

장인 호세 끌레멘떼 오로스꼬(Jpsé Clemente Orozco)와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그리 고 다비 드 알파로 시 께 이 로스(David Alfaro

Siqueiros)에 의해 공격받는다. 그들은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거나,

적어도 좌익 이데올로기를 담지하는 작품을 남긴 사람들이다. 벽화주의

는 멕시코 혁명이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태어났다. 주지하다시피, 멕시

코 혁명은 민족적이고 민족적인 운동으로 스페인 정복자들의 후예들인

대지주들에 대한 투쟁이 그 근간을 이룬다. 농민들의 봉기 후, 지식인들

과 예술가들은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통합시키기 위해, 멕시코의 고대문

명을 다시 부각시켜 근대 멕시코의 거울로 삼기를 바랬다. (Lassaigne,

1994: 28) 그래서 벽화가 멕시코 민중과의 상호소통의 효과적인 기재로

고대와 근대의 멕시코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며 민중들에게 근대 멕시코

가 나아갈 바를 의식화시키려 했다. 그러나 문제는 벽화주의 대가들의

이념적 경직성에 있었다. 벽화주의자들과 따마요와의 갈등은 회화에 있

어서 사실주의에 대한 견해 차이로부터 비롯된다. 따마요 자신의 사실주

의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내 그림은 형태들을 그 본질로 환원하여 표현하기에 사실주의적이다. 이

형태들은 오로스꼬가 나를 비판한대로, 단순히 기하학적으로만 머물지 않는

구체적인 인물들과 사물들에 대한 형태이다. 나는 나무나 사람을 그대로 묘사

하고 싶지 않고 그들을 다시 만들고 재창조하고 싶을 뿐이다. 나에게는 이것

이 바로 예술의 기능이다 이러한 재창조는 시를 통해 가능해진다. 나의 그림

은 현재의 기쁨과 고뇌, 걱정 등 인간적인 연이 담겨 있다는 측면에서 사실적

이다 그러한 감정틀을 관람객들에게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않고, 인간이 그러

한 감정을 간직하듯이 인물들이 다만 그러한 감정을 담고 있도록 표현한다.

관람객들은 그러한 감정들을 발견하고 해석하연 된다. 여기에서 진정한 예술

작품에 대한 이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Tamayo, 1987: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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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마요에 의하면, 혁명적 작가는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를 통해서가 아

년 그가 창조하는 새로운 표현양식에 의해 평가받는다.(Tamayo , 1987:

30) 아무리 사회개혁의 메시지를 지니는 그림을 그린다 하더라도 화가가

표현양식에 있어 전통적 방법을 고수한다면, 그 그림은 이미 혁명성을

상실한다는 의미이다. 따마요는 세 명의 벽화주의 작가들이 민족적이고

혁명적인 그림을 그린다 하면서 르네상스적 기법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

판한다.

나는 인간 자체가 목적이지 않은 그 어떤 회화도 반대한다. 나는 벽화주의

대가들의 기준에 맞추어 참여하지 않았다고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한 비난은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정치적인 것은 회화에 있어서 제안되는 것이 아니라 그

림 자체의 부수물로 우러나오는 것이다. 그림의 메시지는 우화적 형식을 통해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이태리풍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 의한 멕시코적 우

화는 이태리적인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 나는 고대 멕시코적인 것을 추구한다.

내 그림의 형상들은 나의 민족과 나의 조국 그리고 나의 정치에 대해 말할 것 이다. (Tamayo, 1987: 30)

내용뿐만 아닌 형식을 통해, 따마요는 민족 문화를 표현하려 하였다.

멕시코 고고인류학 박물관 입구에 있는 “이중성 (Dualidad, 1964)"이라는

벽화에서 각기 께쌀꼬아뜰과 떼스깔리뽀까를 연상케 하는 뱀과 재규어는

서로 대치하고 있다. 태양 빛을 연상케 하는 뱀은 붉은 색조의 배경을

지니고, 떼스깔리뽀까는 탈빛과 연관된 짙푸른 색조를 배경으로 하고 있

다. 이것은 즉각적으로 낯과 밤, 빛과 어둠의 이중성을 가리킨다. 각 동

물들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데, 이것은 삶과 죽음의 이원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구조를 지니는 이 벽화는 동화적이다.

이것은 따마요의 전형적인 스타일로 마티스의 원시주의나 포비즘(야수

파)을 연상케 하기도 하고, 민속수공예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던 오아하까

에서의 유년시절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어찌했건, 이 작품에서 따마요는

메소아메리카 우주관의 가장 근원적인 핵심을 드러내는데 성공하고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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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 이베로아메리카연구 제 11 집

빠스와 따마요 간의 유사성과 친밀감은 그들로 하여금 1951년 『독수

리냐 태양이냐?J를 출판하도록 한다. 빠스는 이 시적 에세이를 따마요에

게 헌정했고, 따마요는 떼손뜰레 출판사 에서 출판된 제 1판의 표지와

삽화들을 그린다. 30년에 걸쳐 빠스는 따마요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멕시코 화단에서의 따마요(Tamayo en

la pintura mexicana, 1950)", “비평에서 제의로(De la crítica a la

ofrenda, 1960)" 그리고 “형태변이 (Transfiguraciones , 1973)"라는 세

편의 에세이를 쓴다. 따마요는 빠스가 주관하던 『복수(Plural) J나 『회귀

(Vuelta)J와 같은 잡지에 여러 차례 표지그림을 그려주기도 하였다.

빠스는 위에 언급된 “비평에서 제의로”라는 따마요에 대한 평론에서

미술 비평이 예술적 창작이 되는 과정을 기록한다. 비평가와 그림과의

조우는, 종국에 가서, 화가의 창작세계의 지평을 넓힌다는 것이다.

비평은 나의 쾌락을 더욱 강렬하게 할뿐만 아니라 작품에 대한 나의 태도

를 바꾸게 한다. 그림은 단순히 내게 승인이나 거부의 대상이 아니라, 나로 하

여금 말이 흘러나오게끔 하는 대상이다 이미 작품은 나의 일부분이 되며, 작

품을 판단하는 것은 곧 나를 판단하게 됨을 뭇한다. 나의 명상은 수동적이 되

며, 거꾸로, 화가의 제스추어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작품의 기원에로 향하

게 한다. 나는 더듬거리며 미숙하게 작가의 길을 따라갈 뿐이다. 쾌락은 창조

가 된다. 비평을 한다는 것은 작품의 재생산이며 창조적 모방을 뜻한다. 물론

내가 웅시하며 명상하는 그림은 화가의 그것과 같지 않다. 화가에게 말하지

않는 것들이 내게 말할 수 있다. 각기 다른 개인들이 보기에 화가의 성찰과

나의 성찰이 같을 수 없다. 어찌되었건, 비평행위 덕분에 그 그림은 나의 작품

이 된다. (Paz, 1995: 266)

빠스는 따마요의 작품이 내포하는 많은 언어와 코드를 자신의 코드와

언어로 해석하며 그의 예술세계를 새롭게 재창조한다 하지만 그림을 명

상한다는 것과 미학을 논한다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작품 속의 숨겨져

있는 시학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빠스는 자신의 시학을 사용하는 특권을

누린다. “긍정 (Afirmaciones)"이라는 글에서, 따마요는 작품의 일부분으

로서 관람객의 상상력을 중요시하고 자신 작품에 대한 빠스의 공헌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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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노 따마요와 옥타비오 빠스: 근대 미학/멕시코 미학 407

해 다음과 같이 논한다.

나에게 있어, 시라는 것은 조화를 의미한다. 나는 내 그림에서 조화를 담아

내려 노력한다. 구상 내용과 기법은 서로 희생시키지 않는다. 색채는 형상에

결코 앞서거나 뒤쳐지는 법이 없다. 시는 결코 빵을 빵이라, 와인을 와인이라

부를 수 없다. 관람객의 상상력은 화가의 상상력만큼이나 중요하다. 그 어떤 환희나 부드러움도 시를 결정지을 수 없다. 만일 그랬더라면, 나를 결코 멕시

코적이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설사 고통이나 침묵이다 하더라도 그

렇다. 내 생각에는 옥따비오 빠스가 이러한 사실을 잘 이해했고 내 작품을 위

해 헌정한 『독수리냐 태양이냐? ~에서 이러한 사실을 잘 표현한 것 같

다. (Tamayo, 1987: 64)

이러한 문맥에서 빠스가 근대적 시선을 통해 원주민 문명의 미학의 재정

립을 통한 멕시코적 회화에 대해 나름대로의 이론을 제기하며, 따마요의

그림을 멕시코적 미학의 전형으로 본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빠스

는 따마요가 멕시코적이며 동시에 근대적이기도 한 화가라고 본다.

근대회화가 따마요에게 남긴 것은 자신에로 향하는 최단의 길을 가르쳐 준

점에 었다. 이러한 서구미술을 통해 멕시코의 과거와 서민예술의 이미지와

형상의 세계를 또 다른 자신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고대 멕시코

의 눈을 되찾았으며, 그러한 눈이 새로운 자신의 눈임을 알게 되었다 근대예

술과 메소아메리카의 예술은 그로 하여금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어주었다. 자신 고유의 형태와 색채를 지닌 타고난 작가에게 격동의 시기에

있어서 동시대나 과거의 대가들과 접촉을 한다는 것이 결코 해를 입힐 수 없

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이러한 접촉은 깨달음과 광채를 남길 뿐이다 (Paz, 1995: 269-270)

메소아메리카의 시학과 근대 시학이 하나의 스타일에 용해된 따마요의

시학은 빠스 자신의 작품세계를 표현하는 시학으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빠스가 따마요의 시학을 요약함에 있어 자신의 시학이

녹아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로 그것이 평론가의 주관에 따른 화가의

재해석이라는 앞서 빠스가 설명한 바 있는 어쩔 수 없는 비평가의 운명

으로 치부되기에는 두 사람의 시학 자체가 너무도 유사하다. 두 사람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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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 이베로아메리카연구 제 11 집

두 근원적 멕시코성과 보편적 소통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 있어, 따마요는 가장 고양된 순간의 그 무언가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비평도 아니고 질료 속에 홉입되는 것도 아니고, 감

히 내가 시학이라 부르지 못할 세계의 형태변이이다 그것은 사실 시학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언어 자체도 그 본질적 의미가 적절치 못한 사용으로 소진되

기 때문이다. 그의 말년의 작품들은 신비스럽고 은밀한 따마요를 가장 잘 드

러낸다. 몇 세기간의 잠으로부터 깨어난 가장 젊고, 동시에 가장 늙은 얼굴 없

고, 개성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따마요를 말이다 그러한 그림들은 대상에

대한 비평이 아니다. 그것은 형이상학도 아니고 의술도 아니다. 앞서 나는 그

의 시선이 일종의 종교재판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그것을 희생제의라

고 썼어야 했다. 흑요석(제의용 칼)과 같은 시선은 제물인 대상을 가로지른다

죽음과 삶 사이에서 희생제의는 하나의 다리를 놓는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때때로 인간의 피부를 덮어쓰는 아즈돼 조각을 연상시키

는 것이 다 (Paz, 1995: 271)

위의 인용문은 “비평에서 제의로”의 마지막 구절인데, 여기서 빠스의 시

적 영혼은 비평의 개념에서 희생제의의 개념으로 갑작스럽게 도약한다.

이 글의 논지에 의하면 비평과 희생제의 사이에는 업체파나 메소아메리

카 원주민들에게 영감의 원천이던 인간 형상의 기하학적 도형화를 통하

여 이루어진 간격이나 괄호가 있을 뿐이다. 메소아메리카 문화에 있어

가면은 자신의 이중적 분신에 대한 은유 내지 시율라크르이다. 따마요의

말년 작품들에 나타나는 인간 형상의 몰개성화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

다. 첫째, 인간존재의 근원성은 역설적으로 비인간화라는 미학을 통하여

나타난다. 빠스의 장시 “태양의 돌”에 나열되는 수많은 여인들이 보편적

여성으로 환원되는 것처럼 따마요의 형태가 지워진 인간들은 집단적인

인간 그 자체를 상정한다. 둘째 인간 형상들에 대한 가변 씌우기는 작가

자신의 소외나 우주적 공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기재로 쓰인다.

시프라 골드만(Shifra Goldman)은 이러한 그림들이 멕시코 서민예술의 기

이한 가면이나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해골로부터 따온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

지만 이러한 얼굴들은 본질적 진리를 드러내는 가면처럼 일상적 인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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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부터 다르게 표현하려 하는 분석적인 입체주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Markman, 1989: 199)

빠스가 따마요의 이러한 형상으로부터 의미화했던 것은 ‘삶과 죽음 사이

의 희생제의’이고 재생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허물을 벗는 신 시빼

또빽 (Xipe Topec)을 연상케 하는 ‘형태변이’였다. 삶의 모습 안에 죽음

의 존재를 함께 파악하는 바로크적 에토스는 근원적인 인간의 형상을 통

해 나타난다.

N. 이중성의 에토스와 미학

빠스가 따마요의 인간 형상의 재현으로부터 발견한 것은 가면 씌우기

외에 스타일에 있어 표현주의적 과장과 바로크적인 변형 혹은 괴물성

(monstruosidad)이다.(Paz , 1995: 279-28이 예를 들어, “회색 누드

(Desnudo en gris, 1931)"와 같은 그림은 인간 형상의 변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라켈 띠볼(Raquel TiboD은 이 작품을 의고주의

(arcaísmo)의 전형 이 라고 본다: “앉아있는 형상을 통해 따마요는 신성시

되는 서구적 미적 기준을 고대 멕시코의 표현주의적 힘을 대비시키며 유

머감각을 가지고 메소아메리카의 고대 조각을 재구성한다."(Tibol , 1996:

24) 그림 속의 인물은 생명을 획득하려는 조각이나 석화된 인간 같은 느

낌을 준다. 조형적 외모를 지니는 이 인물은 한국일보 로고와 흡사한 X

모양의 고고학적 구조물 위에 앉아 있다. 여기서 X 모양은 호수를 메꾼

테노치띠뜰란의 십자형 육로로 볼 수도 있으며, 피라미드와 그의 거꾸로

된 반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신비한 문양은 그림 속의 그림으로 그

림의 인물이 지니는 원시적이고 의고적 모습을 가중시키는 효과를 준다.

이러한 이중 재현의 기법은 바로크 그림의 대표작인 벨라스께스의 “시녀

들(Las meninas)"를 연상케 한다 또한 “회색 누드”에는 단색조의 회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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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이베로아메리카연구 제 11 집

배경으로부터 떠오르는 듯이 보이는 사과가 나온다. 따마요는 일련의 그

림에서 이러한 여성과 그림의 조합을 반복한다. 이것은 뜰랄떼꾸우뜰리

(Tlaltelcuhtli)나 꼬아뜰리꾸에와 같은 대지의 여신이 주는 비옥한 자연

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비옥한 자연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회

색 누드”에서의 여인은 머리 크기에 비해 넓적다리가 기형적으로 크게

나타나는데, 이것은 따마요가 메소아메리차의 미학을 해석함에 있어서

불균형적 구도를 멕시코의 특질적인 요소로 부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꼬르떼스 이전의 미술은 항상 경이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머리는 몸통에

비해 유난히 작거나 크다 그 시대의 미술은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려 하지 않

았고, 그래서 사람들은 고닥 작품처럼 작품을 향해 비명을 지르거나, 그의 인

내를 벌기 위해 작품으로 다가갈 뿐이다. 거기서 거대한 우리의 피라미드가

생겨났고 이러한 거대함 혹은 괴물스러움은 숭고함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

러한 예술은 신화로부터 생겨났고, 작품 자체가 신화화되기도 한다. 그 신들

은 인간의 재현적 형상이 아니라 괴물과 같은 위대하고 공포스러운 괴기를 지

닌다. 그것은 미적 예술이 아니라 방어적인 예술로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그것을 실용 미술이라 부를 수 있다. (Tamayo, 1987: 64)

따마요는 고대 멕시코의 이러한 비대칭적 분할을 이해했으며, 이러한

미학의 전용은 그에 의하면, 그와 원주민 문명을 묘사하려는 동시대의

다른 화가들과 차별화시킨다: “꼬르떼스 이전의 미술에는 추상성과 사실

성이 있었다. 입체파의 기원은 정복 이전의 아즈텍의 후기 미술에 있다

고 말한 사람은 디에고였다. 그는 고고학자들이 아즈텍 미술 쇠퇴의 정

표라 보이는 윤곽이 뚜렷하지 못한 것을 언급하곤 했다. 묘사적 사설주

의를 통해 아즈텍 미술을 모방하려 하는 사람들은 기실 고대 미술의 영

향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던 것이다."(Tamayo, 1987: 37) 따마요가 보

기에 멕시코 역사의 파노라마를 보여줌으로써 민족적 스타일이 되기를

열망하던 디에고 리베라의 묘사적 사실주의는 아무런 예술적 선선함을

안겨주지 못했다. 따마요는 멕시코 선조들을 표현하기 위한 독특한 시학

을 발견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앞서 “회색 누드”에서 보았듯 표현주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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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노 따마요와 옥타비오 빠스: 근대 미학/멕시쿄 미학 411

원시주의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을 부인할 순 없다. 빠스는 따마요의

원주민 미학의 재정복은 멕시코 혁명과 서구 근대 미학의 영향이 아니었

으면 불가능했으리라고 본다.(Paz. 1995: 283) 멕시코 혁명의 여파로 문

화적 정체성을 이루려는 열망은 민간 신앙과 관습과 더불어 고대 문명의

유물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다른 한편으로, 근대 서구 화가들의 현

실의 범주를 넓히려는 끊임없는 실험과 타자(타문화)의 미학에 대한 관

심은 멕시코 작가들로 하여금 콜럼버스 이전 시기의 미술을 재생시키게

하는 동기를 유발시켰다. 멕시코의 예술적 민족주의는 멕시코 혁명이 야

기한 사회 의식의 변화와 유럽의 미적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영향으로 생

겨났다’고 빠스는 말한다.(Paz, 1995: 284) 근대적이라 할 수 있는 타자

에 대한 새로운 수용은 혁명의 영향을 받은 작가들에게 그로테스크하거

나 괴기적이다라는 단순한 평가 속에 묻혀 있던 메소아메리카 미학을 새

로운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고대 멕시코 조형

예술의 미학과 근대예술 미학과의 고리는 공간과 세계에 대한 비인간적

응시에 있다.

근대사상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거나 만물의 척도가 아니라는 것을 견지

한다. 이러한 생각은 고대 멕시코인들이 인간과 우주에 대해 가졌던 생각과

유사하다 이러한 경향에 반대되는 사조는 르네상스와 낭만주의로 인간이 중

심에 서고 배경은 그 제국 안에 편입된다. 배경올 인간화시키는 16세시와 17 세기 시나 낭만주의의 주관주의가 그러하다. 반면 고대 멕시코 미술과 근대

미술은 인간을 비인간화된 공간의 기하학 안에 위치시킨다- 르네상스나 낭만

주의의 경우에 있어 우주는 인간의 반영이며, 고대 멕시코나 근대 미술에 있

어 인간은 우주의 기호들 안의 한 기호일 뿐이다. 전자는 인본주의이고 사설

적 계몽주의인 반면, 후자는 현실에 대한 추상적이고 상정적 시각을 지년다

고대 멕시코 미술의 상징성은 따마요의 그림에서 ‘형태변이’로 탈바꿈된다 메

소아메리카의 전통은 그에게 형태의 원리나 문법 이상의 것을 주었다. 클레

(Klee) t+ 초현실주의자들 이상의 생동감으로 고대 멕시코 미술은 따마요에게 미적 대상은 여러 이미지와 의미를 전달하는 고주파 전달매체라는 것을 가르

쳐 주었다- 메소아메리카 미술의 이중적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질료와 형 상에 대한 충실함이다. 아즈텍인에게 석조는 일단 파여진 돌이다. 둘째, 파여

진 돌은 곧 은유이다 기하학과 형태전이 이것이 고대 멕시코 미술이 주는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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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인 것이다,(Paz, 1995: 285-286)

필자의 생각에 빠스가 위의 인용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형태변이’라는 단

어는 따마요의 그립을 해석하는 함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고 보여진다.

빠스는 따마요의 미학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

이다: “따마요를 동시대의 다른 화가들과 차별화시키는 한 단어를 말한

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태양이라고 말하겠다. 그의 모든 작품에 있어

서, 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 간에 태양은 존재한다. 칠흙같은 밤도 따마

요에 있어선 탄화된 태양일 뿐이다,"(Paz. 1995: 288) 태양의 항존재성이

라는 빠스의 지극히 시적인 해석은 메소아메리카의 우주관과도 관련이

있다. 다섯 번째 태양의 신화에 의하면 태양의 빛과 열은 세계를 유지하

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다. 따마요는 선조들의 우주적 신화소를 자신의

회화세계에서 생동감 있게 재현한다. 따마요 그림에서 지배적으로 나타

나는 색조는 태양을 연상시키는 붉은 색조이다. 붉은 색은 신화적이고

주술적인 상태를 불러오는 색채적 애니미즘을 불러오기에 가장 적합한

색깔이다,(Acha, 1983: 37) 러시아 비평가인 엘레나 코즈로바(Elena

Kozlova)에 의하면, 붉은 색은 멕시코 선인장에서 배양되는 별레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멕시코적인 독특한 색깔이다,(Kozlova, 1986:

76-77) 한편으로, 따마요의 그림에서는 붉은 색이 태양 빛을 표현하는

유일한 색채가 아니다.

“무한 앞의 인간(El hombre ante el infinito. 1950)"에서 태양의 반은

낯을 표현하는 흰색이고, 또 다른 반은 밤을 표현하는 검은색으로 되어

있다. 인물은 역시 반은 검고 반은 흰 우주를 명상한다. 꼬르떼스 이전에

살았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인물은 빛과 어둠의 언어를 통해 태

양과 행성의 궤도를 읽고 무한한 우주 속에서 전율과 엑스타시스를 느낀

다. 따마요는 우리로 하여금 우주의 이중적 성격을 대변하는 태양과 달

의 기호들을 통해 삶과 죽음이 서로 투쟁을 하는 신화적 우주로 인도한

다. 빠스가 말하는 탄화된 밤의 태양까지도 포함하는 태양은 우주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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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노 따마요와 옥타비오 빠스· 근대 미학/멕시쿄 미학 413

원적이고 순환적인 성격을 암시한다.

이러한 우주적 이중성은 “흰 누드(Desnudo blanco, 1943)"에 나타나

는 양성적 성격의 형상 속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얼핏 보면 이 형상은

별거벗은 여인처럼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희미한 남성의 형상이 그

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음을 알게 된다. 왼쪽에는 여인을 부리로 쪼려는

새들이 날아다닌다. 여인의 얼굴은 붉게 불타오르는데 이것은 성적 욕망

을 암시하며 환영처럼 나타나는 남성의 모습과 대비를 이룬다. 라켈 띠

볼은 삽입되고 싶은 욕망이 은유적으로 표현되고 있으나 실상 현실은 만

족스럽지 못하고 초조한 전율과 함께 쓰디쓴 육체의 부재를 느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본다, (Tibol, 1996: 39)

새들과 환영을 지니는 인간과의 관계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따마요

의 큐레이터였던 띠볼의 설명과 함께 “불장난하는 아이들(Niños

jugando con fuego , 1947)"을 비교해 보면 편리할 것이다.

“불장난하는 아이들”은 고대 멕시코 신화에 나오는 불의 신이자 볼로 된

뱀을 무기로 쓰는 태양신인 우이치로포츠틀리(Huitzilopochtli)의 모습과 연관

이 있다 또한 볼이라는 상정에서 농경의 혜택을 가져다주는 께쌀꼬아뜰과 비

와 천상의 불의 신, 틀랄록(Tlalóc)을 연상케도 한다. 메소아메리카의 전설에

따르면, 불에 의해 소멸된 인간은 새로 환생한다고 한다. 따마요는 이러한 신 화를 막대한 파괴를 가져다줄 수 있는 현대기술문명 앞에 탈구되는 인간의 모 습을 회복하려는 환상으로 재해석한다. 인간을 덮치는 문명의 화염에 그을려

서 아이들과 함께 소리를 지르는 인물은 다름 아닌 따마요이다. 이러한 그림

은 프랑스 평론가 피에르 데카르그(Pierre Descargue)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한다· 따마요의 그림은 멕시코 미술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잘 드러낸

다 그의 그림은 죽음과 친교를 맺는 운명을 담는 멕시코 신화에 대해 생각하 게 한다,(Tibol , 1996: 4이

“흰 누드“에서 새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여인 그리고 유령처럼 희미하

게 나타나는 남성의 관계망의 해석은 여인의 성적 욕망과 대상의 부재라

는 좌절감을 표현하는 일차적 층위의 해석 속에 삶과 죽음과 재생에 대

한 메소아메리차의 세계관의 함축적 은유라는 이차적 층위의 해석이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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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하며 형상의 신비감을 증폭시킨다.

뱀과 재규어, 께쌀꼬아뜰과 우이칠로포츠틀리, 뱀과 재규어로 대변되는

션과 악의 이중성은 멕시코 외무성 건물에 있으며 따마요 자신이 “멕시

코인과 그 세계(El mexicano y su mundo, 1967)"라 명명한 벽화 속에

잘 드러난다. 작가는 이 벽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거대한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이 벽화는 단 세 가지의 형상만을 지닌다.

그 중 두 형상은 고대 멕시코의 형상인데, 나의 방식으로 근대적으로 표현해

놓은 것이다. 그중 하나는 선한 것과 옳은 것 그리고 지적인 것을 상정하고

또 다른 하나는 그 반대적인 것들을 상정한다. 지혜의 신인 께쌀꼬아뜰은 서

구문명을 가져온 스페인 사람들의 도래 이후 십자가로 변모된다. 뱀의 꼬리가

계속해서 선한 것을 상정하는 십자가로 변형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는 고대

멕시코에서 악의 상정이던 재규어가 있다. 재규어는 서구에서 악한 것의 상정

인 악마로 변모된다. 중앙에는 어느 한 멕시코인이 이러한 산화로부터 솟구쳐

나오려 하고 있다 그는 이제 국제적이 되고자 하는데, 내가 보기엔 이것이 멕

시코인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목표이다. (Tamayo, 1968: 5)

여기서 우리는 따마요가 메소아메리카 문명으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이

고 지적인 유산으로 예술적인 것 이외에 어떤 교훈적인 에토스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마요의 긴 예술역정 속에서 색채와 그것이 자아내는 아우

라를 지배했던 것은 존재의 깊은 내변에 자리잡은 원시적 양극(兩極)성

이다. 앞서 따마요는 멕시코인 뿐 아니라 전지구인의 범세계성을 강조한

바 있는데, 이러한 메시지는 서구와 메소아메리카라는 문화적 이원성과

고대 멕시코의 이중적 우주관으로부터 솟구쳐 나가는 중심인물을 통해

나타난다. 서로 다른 두 문화가 융화된 디덤돌을 밟고 무한을 향해 달려

가는 이 중심인물은 현재적 문맥 속에서 고대 멕시코의 정신세계와 교류

하고 인간의 무한한 잠재성을 포착하려는 따마요, 바로 그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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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결어

앞서 우리는 사회적 리얼리즘 경향의 리베라, 오로스꼬, 시께이로스의

당대의 공식 예술에 반기를 들었던 따마요를 고찰해 본 바 있다. 따마요

의 거부는, 빠스의 거부처럼 역사발전을 신봉하는 근대성의 기획에 대한

반기이다. 그들은 인간 조건에 있어 보다 갚이 있고 근원적인 시간관과

공간관을 찾으려 했다. 그들은 외연적 요소에 의해 감추어진 현상의 본

질을 포착하여, 그 본질로부터 재구성된 새로운 현실에 현상의 물질성을

투사시키려 했다. 그들은 보다 미적이고 우주적인 새로운 버전의 대안적

현실을 추구했던 것이다. 마누엘 울라시아(Manuel Ulacia)와의 인터뷰

에서, 빠스는 자신과 따마요와의 관계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근대시와

고대 원주민들의 우주관의 만남으로부터 연유했던 자신의 예술적 기획에

대해 회고한다:

마누엘 울라시아: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당신의 벽화주의에 대한 견해와

따마요에 대한 변론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에 앞서 당신의 시와 회화와의 관계

에 대해 우선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옥따비오 빠스: 1943년 멕시코를 떠난 후 뉴욕과 파리에서 저와 20세기 미술

사이의 비밀스런 대화가 시작되었지요. 근대 회화와 조각에 대해 눈을 뜰 때,

그와 동시로 고대 멕시코 미술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지요. 피카소나 클레의

의고성과 동시에 사포텍이나 마야의 근대성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지요. 그것

은 문명들의 복수성에 대한 나의 경험과 신념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지

요. 거기에다 다른 시간성의 공존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경험은 미적일 뿐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고 생동감 념치는 것입니다.

1937년 저는 한동안 유카탄에 살았고, 거기서 고원과는 다른 마야 미술의 경

이감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지역성의 차이보다 시간성의 차이로 인한 경이감

이었습니다.(...) 그 후 미국에서 문명과 시간성의 충돌 속에서 다시 살게 되었 을 때, 그러한 충돌은 박물관이나 역사 속에서 일어나지 않고 나의 일상 생활

이나 의식, 내면 생활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동적인 경험은 근

대의 몇몇 시인들의 작품들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작품들은 제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을 엮어주곤 했지요. (Ulacia. 1989: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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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이베로아메리카연구 제 11집

빠스는 고대 멕시코의 미학과 근대의 서구 작가들의 미학의 유사성과 융

합의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두 미학의 공통점은 두 미학 모두 대상에

대한 도형화와 추상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서양미술사에 있어서 ,근대

화가들이 이룩한 변화들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1920년대와

30년대에 서구 작가들의 미적 혁신은 메소아메리카 양식의 수공예품이

아직도 시장에 널려있는 멕시코에서 태어난 빠스와 따마요에게 있어서

그다지 이상하거나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근대 멕시코의 서민예술이나

고대 멕시묘의 회화나 조각은 애니미즘을 간직하고 있다. 이와 동일한

애니미즘적인 아우라가 빠스나 따마요로 하여금 새로운 예술 창작의 세

계를 열어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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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노 따마요와 옥타비오 빠스: 근대 미학/멕시코 미학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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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노 따마요와 목타비오 빠스. 큰대 미학/멕시쿄 미학 419

[Resumen]

Rufmo Tamayo y Octavio paz: &tética mcxlemafmexicana

Song, Sang-kee

En este trabajo pretendo explorar los términos de la relación

artística e histórica que vincula a los artistas Rufino Tamayo y

Octavio Paz, principalmente en 10 que concieme al desarrollo

paralelo de sus respectivos universos artísticos. La obra de cada

uno aπoja luz sobre la del otro. Me interesa examinar, especialmente, la trasformaciones e influencias del contexto cultural

precolombino en las obras de estos artistas, que se caracterizan,

precisamente, por la presencia de este contexto, contemplado, sin

embargo, a través de una óptica de 10 modemo.

Durante la segunda posguerra, Rufino Tamayo se convirtió en el

representante del espíritu modemo de las aπes visuales de

México, así como Octavio Paz 10 fue con respecto a las letras

nacionales. Tanto Paz como Tamayo han sido atacados por los

críticos nacionalistas por su cosmopolitanismo artístico, que se

alega carece del rigor de la mexicanidad auténtica, de 10

mexicano regional. Ante este tipo de crítica, Paz y Tamayo

revaloriza la poética del uno al otro. Paz recrea el mundo artístico

de Tamayo mediante una re-figuración 0 tal vez, traducción de

sus numerosos lenguajes y códigos visuales en términos de los

igualmente numerosos lenguajes y códigos verbales a disposición

del crítico-poeta. Contemplar un cuadro y verbalizar su estética

son dos cosas muy distintas. En el proceso de configurar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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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이베로아메리카연구 제 11 집

poética oculta del cuadro, Paz ejerce el privilegio de la égida

crítica, de su propia poética. En 디 último párrafo de “De la

crítica a la ofrenda" , el espíritu poético de Paz salta abruptamente

del concepto de la crítìca al del sacrificio. De acuerdo a la lógica

del ensayo, existe, entre la crítica y el sacrificìo, un lapso 0 un

paréntesis formado por la geometrización de las figuras humanas

que es de inspiración tanto cubista como precolombina. La

máscara sirve de metáfora 0 simulacro del doble en la

culturaprecolombina. La despersonalización de los seres humanos

en el último período de la pintura de Tamayo cumple dos

propósitos: en primer lugar, la prioridad del ser humano se expone, paradójicamente, a través de una estética de la deshumanización.

Una nueva sensibilidad hacia 10 otro , típicamente modema,

permitió a los artistas herederos de la Revolución entender la

estética mesoamericana, sumida hasta entonces en el limbo de 10

grotesco 0 de 10 meramente monstruoso. El vínculo entre la

estética de la escultura precolombina y la del arte modemo, reside

en una visión no humana del espacio y d리 mundo.

Dedsde la perspectiva de la historia del arte occidental, los

cambios que instituyeron los artistas modemos fueron

revolucionarios. Pero la renovación artística de los artistas durante

la década de los 20 y los 30 es un tanto menos asombrosa y

extraña a los ojos de Paz y Tamayo quienes nacieron en México,

donde los diseños del arte precolombino aún predominan entre las

artesanías populares. En el aπe popular del México contemporáneo,

y en las obras plásticas del México antiguo, se manifiesta una

contextura anímica. Y es precisamente esta misma aura anímica,

junto a la estética modema que la teoriza, 10 que condujo a Paz y

a Tamayo a, la creación de una nueva visión artíst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