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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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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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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4 다니엘
Page 2: 4 다니엘

장 1

1

“사자의 입을 막기도”이방 왕으로 하나님을 칭송하다

하나님을 높이는 한, 그 왕위는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행위나 믿음이 이적을?

그들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다니엘도 그 사자굴 출연자”다니엘도 사자도 출연자였을 뿐

의뢰하는 자, 그리고 아닌 자

(부록)

“질문 있습니다. - 그러면” 하나님을 믿으면 천국?

‘너희 하나님’이 되어서야

이적을 보고도 영접치 않았다

Page 3: 4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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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Ⅰ 편

본 문 : 히브리서 제 11장 제 33 ~ 34절

33.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

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사자의 입을 막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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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 왕으로 하나님을 칭송하다

하나님은 왜 당신의 기구들과 젊은이들을, 이방왕의 손에 붙이셨을까? 이것

이 느부갓네살의 꿈과 사자굴, 풀무불의 핵심이요, 다니엘서의 목표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본문 11장 33절 하반절과 34절 상반절의 사례

자들을, 실명으로 거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33절b)의 사건, 즉 굶주

린 사자들의 굴에서 성하게 나왔던 이가, 다니엘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34절a), 칠 배나 달군 풀무 불 가운

데서도 전혀 해함을 받지 않은 자들이 다니엘의 친구들, 곧 사드락

과 메삭과 아벳느고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록을 담고 있는 다니엘서의 진정한 핵심에는, 별로 관

심이 없는 듯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이적들의 배경조차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

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하나님 전에 있던 기구 얼마를, 바벨론 왕 느부

갓네살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단1: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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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가져온 그 기구들을 시날 땅 자기의 신묘 보고에 두었습니다.

하나님 전의 기구만 가져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울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 귀족 중 몇 사람”(3절b), 곧 “다니엘

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6절)도 함께 사로잡아 데려왔습니다.

이 젊은이들은 왕족이요 귀족이었던 데다가, 흠이 없고 아름다웠으

며, 지식을 구비하여 학문에 익숙한 자들이었습니다. (4절)

느부갓네살 왕은 이들 유다 자손들의 이름을, 저희 바벨론 이미지로

벨드사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로 바꾸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갈대아 학문과 방언을 추가적으로 가르치고(4절

b),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마시게 했습니다.(5절a)

우수한 유대인 인재들을, 자기 왕궁과 자기 나라에 등용하기 위해서

였겠죠.

허면 하나님께서는 왜 당신의 전 기구 얼마와 당신 나라의 월등한

인재 4인을, 굳이 세상 나라 바벨론 왕의 손에 붙여 그들 나라로 데

려가게 하셨을까요?

다니엘서를 왜 이 이야기로 시작하셨을까요?

이것이 다니엘서의 핵심 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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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다니엘서 속에 담겨 있는, 이른바 ‘사자굴’과 ‘풀무불’ 이적의

핵심이 되겠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왜 그리하셨을까요?

어느 날 느부갓네살 왕은 범상치 않은, 예 아주『범상치 않은』꿈

을 꿉니다.

자기가 꾼 꿈이면서도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번민하며 잠을 이

루지 못했습니다. (2:1)

그 꿈을 알기 위하여 왕은 나라에서 유명하다는, 박수와 술객과 점

쟁이와 갈대아 술사들을 모두 불러들였습니다. (2:2)

그들에게 자기가 꾼 꿈을 알아내라고 요구했습니다.

맞추지 못할 경우에는 죽일 것이며 그들의 집도 거름터를 삼을 것이

라고 협박했습니다. (5절b)

그냥 넘길 수 없는 그런 꿈이었던 것입니다.

왕의 부름을 받아 왕 앞에 나온 갈대아 술사들은, ‘전에는 이런 방식

으로 꿈을 물었던 왕도 어떤 자도 없었다’고 감히 고합니다.

(2:10~11)

왕이 물은 꿈 이야기는, 실로 “희한한 일”(11절)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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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에게도 점하는 귀신이 들어와 있어 어느 정도는 맞힐 수 있지

만, 꿈까지 알아내라는 요구는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

는 보일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 『그런데』말입니다.

왕의 그 “은밀한”(19절) 꿈이, 다니엘에게 이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닙

니까?

다니엘은 왕에게 꿈 이야기를 정확하게 전합니다.

해몽과 해석까지도 말하니, 왕은 이에 완전 공감합니다.

꿈에 대한 것을 다 들은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람 다니

엘에게 넙죽 엎드려 절합니다. (46절)

예물과 향품을 주며 하나님을 찬양까지 합니다.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2:47)

‘하나님은 당신 마음대로 왕을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신다’는,

칭송입니다.

이방나라의 대표국인 바벨론, 그 나라의 대표자인 느부갓네살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것입니다.

이 내용이 다니엘서에 왜 기록되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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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의 처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손에 붙이셨습니다. (1:1~2)

하나님이 세우신 왕과 기구를, 이방 왕의 손에 붙이셨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 중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 즉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

에 모실만한 소년”(1:4)들도 바벨론으로 데려가게 하셨습니다.

그들 중에는 다니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부터 다니엘에게, 이상과 몽조를 알 수 있는 은

사를 주셨습니다. (1:17)

만일 다니엘에게 이런 은사가 주어져 있지 않았다면, 바벨론 왕의

꿈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아무리 하나님께서 보여주셨다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른 이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 맞추는 일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

없이는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희한한’ 요구도 들어줄 수 있는, 그런 은사

를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에게 그런 은사를 주셨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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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9: 4 다니엘

세상 어느 나라일지라도, 그곳이 믿음의 나라든지 불신의 나라든지

간에,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모든 신의 신이시요, 나라와

왕들을 당신의 장중에 완전 장악하고 계신 주재’(47절)라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여 모든 나라와 왕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시려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2:47a)

이것이 다니엘서를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목표였습니다.

영상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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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0: 4 다니엘

하나님을 높이는 한, 그 왕위는

하나님을 높인 느부갓네살에 반하여, 벨사살은 교만하여 스스로를 하나님과

대등한 수준으로 여겼다. 하나님은 두 왕을 통하여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된 느부갓네살은, 심지어 하나님

의 사람 다니엘에게까지 엎드려 절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이런 행위로, 그의 왕위와 나라는 잘 유지될 수 있었

습니다.

최대한 왕성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고로 잠시 교만해진 곡절이 없지는 않았지만, 여기서는 시간 관

계상 그 야기는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죽을 때에 그의 아들에게 유언했습니다.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

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4:34b)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 4:3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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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당신께 교만히 행하는 자를 낮추신다는 사실을, 아들 벨사

살에게 유언하며 왕위를 넘겨주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신들 위의 신이심을 알았기에 칭송하는 한편, 두려워

떨기도 했습니다.

결과 그가 세상사는 동안 그의 나라도 왕위도 튼튼할 수 있었습니

다.

물론 지옥 갈 왕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신약 로마서 13장 1절,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

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나라든 믿지 않는 나라든 상관없이, 모든 권세는 하

나님의 정하신 바에 따른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자들로 이 사실을 알게 하려 하셨습니다.

세상 나라들과 임금들이 이를 알아야만, 나라도 그 위(位)도 튼튼하

여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을, 알리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 목적으로 다니엘서를 기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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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참뜻은 뒤로 하고, 사자 굴에서 다

치지 않고 나온 다니엘, 칠 배나 뜨겁게 한 풀무 불에서 멀쩡하게 살

아나온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이적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처럼만 하면(착각과 상상일 수도 있는), 우리도 이적의 은총을

받는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니엘서 5장입니다.

벨사살 왕은 느부갓네살의 유언까지 받은바 있었으나, 그는 아비와

같지를 않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기구들을 꺼내서, 하나님 앞과 사람

들 일천 명 앞에서 보란 듯이 마구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5:1~2)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이란 어떤 것들입니까?

하나님께 제사 올릴 때에 쓰는 기구들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마시던 잔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붙여주셨기로 기구 얼마를 가져오긴 했지만,

그것들은 하나님의 것이란 말입니다.

그럼에도 벨사살은 그 기명들을 가지고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

로 더불어, 보란 듯이 마셔댔던 것입니다.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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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보는바와 같이, 나 벨사살이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나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지금 나는 하나님과 맞잔을 돌리고 있는 것이라”

헌데 바로 그때, 예, 『바로 그때』였습니다.

왕이 하나님의 잔을 들고서 하나님과 맞잔을 돌린다고 뽐내고 있던

『바로 그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글자를 쓰는 게 아닙니

까?

“그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5절)

손가락이 쓴 글은 어떤 뜻이었습니까?

하나님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는 벨사살 왕과 그의 나라가, 이미

끝났다는 글이었습니다.

하늘의 저주였던 것입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25절)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

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

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

니이다” (26~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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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벨사살 왕은 바로 “그날 밤”, 예, 『그날 밤』에 죽임

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그 글대로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가지고 가버렸습니다.

(30~31절)

벨사살과 그의 나라는 부친 느부갓네살처럼 되지 않고, 갑자기 망

해버렸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자기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과 위엄이 하늘에 계신 이,

곧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이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서, 하나님을

칭송했습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18절)

하나님이 두려워 엎드려 절하는 자기처럼, 아들도 그대로 하기를 원

하여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느부갓네살 왕에게 큰 권세를 주셨습니다.

자기의 수(壽)를 다하고 죽게 하셨습니다.

죽으면서도 아들에게 자기처럼 하라고 재삼 유언하였거늘(19절),

벨사살은 아비의 말에 따르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벨사살 왕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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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23절)

벨사살은 부왕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스스로 높여 하늘의 주재를 거역했습니다.

감히 자신을 하나님과 대등한 수준으로 여겨서, 하나님이 마시는 잔

으로 마셨습니다.

결국 그는 손가락이 벽에다 쓴 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그대

로 망했습니다. (25절)

나라는 다른 이에게 넘어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벨사살이 손가락 글대로 되었던 까닭은, 알고도 행치 않았기 때문이

었습니다.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했던,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의 입으로 전달된 내용이요, 다니엘서

에 담겨져 있는 핵심입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사14:13)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사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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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비기겠다면서 하늘 높은 자리에 오르려했던 천사, 곧 ‘아

침의 아들 계명성’에 대한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세상에 떨어져 사단이 되고 말았지 않습니까?

아울러 창세기 11장의 말씀도 떠오릅니다.

인생들이 하나님의 보좌와 맞추겠다며 하늘 높이 바벨의 탑을 쌓다

가, 다 흩어져버림을 당했던 그 사건 말입니다.

언어와 구음이 하나여서 대단히 강해져가던 인생들이, 탑을 쌓다가

망했던 그 일이, 다니엘서를 만나면서 생각납니다. (창11:1,4)

영상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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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7: 4 다니엘

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엄청난 사건들, 즉 사자 굴에서도 풀무 불에서도 아무런 상함 없이

살아나왔던 놀라운 이적들을 만났습니다.

유명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본문에는, 사례자들의 이름

이 거명되어있지 않은 것이 특이했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들의 이름이 왜 무시됐는지를 말씀으로 알았습니다.

우리가 사건의 주인공을 높이는 것만큼, 하나님은 인물에 비중을 두

지 않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이름을, 굳이 신약 히브리서에 또다시 내놓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리하셨다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기록에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야 합니다.

헌데 우리는 어찌하여, 다니엘이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하나

님을 잘 믿어서(그들의 행위로 인하여) 그런 엄청난 작품을 가져온

것으로 알아, 그들을 우러러보고 배우려고 했을까요?

또 그렇게 가르쳤을까요?

누구나 하나님을 잘 믿기만 하면, 그런 이적을 만들 수 있다는 차원

에서 이 사건들을 다루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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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8: 4 다니엘

오, 주여!

하나님을 믿는 왕과 그의 나라는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나라나

왕도 하나님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헤아

리게 되었나이다.

하나님만이 모든 나라와 모든 왕들과 모든 백성들의 칭송을 받으실

유일한 분이십니다.

영광 받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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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9: 4 다니엘

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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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Ⅱ 편

본 문 : 히브리서 제 11장 제 34 절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

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Page 20: 4 다니엘

행위나 믿음이 이적을?

우상에 절하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며 채소만 먹은 행위 때문에, 또한 위기에

서도 반드시 건져주신다는 믿음 때문에, 하나님은 지켜주셨던 것일까?

본문 34절의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즉 불 가운데서도 전혀 해 받음

없이 살아나온 당사자들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에 이어 그의 세 친구들에

게도 바벨론의 각 도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2:48~49)

다니엘이 왕의 높임을 받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지혜와 총명

을 더해주셨습니다.

따라서 이들 이스라엘 젊은이들로 말미암아 바벨론의 융성은, 가히

세상 나라 최고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어마어마한 자기 신상(神像)을 금으로 만들었습니

다.

그 낙성 예식에 각 도의 관원들을 불러 참집(參集)하게 했습니다.

당시 각 도의 수장이었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당연히 그

예식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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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1: 4 다니엘

그것도 신상 맨 앞에 서야했습니다. (3:1~2)

그러나 다니엘은 다행스럽게도 왕궁에 있었기 때문에, 이 예식에는

나오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모두가 왕이 세운 신상 앞에 서자, 반포하는 자가 크게 외쳐 말합니

다. (3:4)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3:5b)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 (3:6)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세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출20:4~5)을 철

저히 지키는 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반포자의 말은 그들에게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며, 우상에게 절하지도 말고,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계명(출20:4~5a)을, 목숨처럼 지키고 있었던 그들이었으

니 어찌 고민되지 않았겠습니까?

반포자의 선언이 끝나고 나팔 소리가 울리자, 이에 맞춰 모여 있던

모든 자들은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어이없는 그림이 나타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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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2: 4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만은 그대로 빳빳하게 서있는 것이 아닙니

까?

그것도 맨 앞줄에서 말입니다.

신상 앞에 앉아서, 절하는 사람들을 마주보고 있던 느부갓네살은,

이 세 사람을 보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존심이 잔뜩 상했습니다.

왜 안 그랬겠습니까?

당시 상황으로 볼 때 그들의 행위는 매우 큰 사고요, 나라의 명을 어

긴 반역이었으니 말입니다.

절하지 않고 서 있는 세 사람으로 인하여, 왕은 분이 가득했으며 노

하여 낯빛이 변했습니다. (3:19)

그 결과 절하지 않는 사람을 던져 넣기로 했던 풀무 불을, 보통 때보

다 칠 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명했습니다.

풀무는 뜨겁게 달구어졌습니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세 사람을 붙들고 가던 사람들이 풀무에 채 가

기도 전에 타죽어 버릴 정도였습니다. (3:22)

풀무 불의 세력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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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3: 4 다니엘

엄청 뜨거운 풀무 불속에서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살아있

었습니다.

불구덩이에 던져 넣은 것은 세 사람이었는데, 불속에서는 넷이서 돌

아다녔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였겠죠.

나중에 이들을 되불러내어 보니, 어느 누구도 상하지 않은 채 멀쩡

했습니다.

뜨겁디뜨거운 그 풀무불은 그들의 몸은커녕, 고의 빛 하나 변하게

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머리털 한 올도 그슬리지 않았습니다.

몸에서는 불탄 냄새조차 나지를 않았습니다. (27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더 정확히 말해서, 하나님은 왜 이런 이적을 베푸셨던 것일까요?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는 믿음의 행위 때문이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다음 말씀들을 유의해 보기 바랍니다.

“느부갓네살이 노하고 분하여”(3:13)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3:15)라고 한, 그 다

음 말을 주시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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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4: 4 다니엘

이는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3:15b)

무슨 말입니까?

“풀무라도 녹일 만큼 뜨거운 불 가운데서, 너희를 건져낼 신은 세상

에 없다. 너희가 섬기는 하나님이라는 그 신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말입니다.

하나님도 이러한 풀무에서는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느부갓네살 왕

의 말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에 어떤 사람도, 심지어 어떤 신도, 자기를 이길 수 없다고

장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될 사람이었는데도 말입니다.

큰 소리 치는 왕에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말합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

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

시리이다” (3:16b~17)

“만일 그럴 것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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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5: 4 다니엘

무슨 말입니까?

“칠 배나 풀무를 뜨겁게 만들어 놓고, 왕이 우리 하나님보다 강하다

여기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이런 불 속에서 우리를 건질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

십니다. 아무리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도 틀림없이 우리를 건져

내실 분입니다. 왕이 우리에게 또 다른 장치를 한다 하더라도, 하나

님은 왕의 손에서 우리를 능히 건져내실 것입니다.”

세 사람은 지금 왕이 하는 짓과 교만을, 하나님께서 그냥 지나치지

않으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그 엄청난 ‘불의 세력

을 멸하고’, 이들을 완벽하게 건져내셨습니다.

헌데 이 사건을 기록한 어디를 보아도,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내용

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왕의 진미를 거절하고 채소만 먹으므로, 자

신들을 더럽히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 받았다는, 그런 기록은 없다

그 말입니다.

그렇게 여길만한 구절이나 글귀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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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6: 4 다니엘

또한 왕의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

셨다는 그런 내용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철저히 믿었기 때문에 건짐 받았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어떠한 어려운 환경 가운데 처해 있을 지라도 하나

님이 건져주실 것을 확실히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이적을 받아낼

수 있다’는 우리의 상식을 뒷받침해줄만한 기록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이적해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우리의 지식

이, 잘못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위기에 처했을 경우, 하나님은 반드시 오셔서 건져

주신다고, 우리는 너무 쉽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었기 때문에 이적을 받아냈다’는 기록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그리고 당연히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

라는 우리의 상식을 뒷받침해줄만한 그런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말입니다.

25

Page 27: 4 다니엘

아닌 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본문에 기록된 사드락과 메삭

과 아벳느고의 믿음 때문에 이적을 받아낸 것으로 친다면, 18절의

내용은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3:18a)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했던 이 말을 해석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100% 능히 우리를 건져내실 수 있는 분입니

다만,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 수도 있습니다. 설사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하나님의 뜻대로 결정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코 당신들 신상에 절하지 않겠습

니다.”

하나님이 자기들 세 사람을 구해주실 것을 믿기는 하지만, “그리 아

니하실찌라도” 자기들의 믿음은 여전할 것이라는 이 말을, 어떻게 설

명할 수 있습니까?

그들의 믿음 때문에 구원 받은 것이라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느냐 그

말입니다.

엄청난 불의 세력을 멸한 이적은,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잘한

탓’으로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26

Page 28: 4 다니엘

우리의 추측처럼, 하나님이 건져주실 것이라고 믿었던 ‘믿음 탓’도

아니었습니다.

이적의 발생 요인은 다니엘과 친구들의 행위와 믿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도전했던 느부갓네살 때문에 생겼던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셨다면, ‘어떠한 신도 자기 손에서는

어쩌지를 못한다’는 그의 말을, 온 세상이 그대로 인정했을 것입니

다.

하나님은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이적을 발생시켜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세상에 알려야 하셨습니다.

바벨론의 왕위나 강성함도,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허락하셨기에 가

능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적을 나타내셔야 했습니다. (2:37b)

하나님은 얼마든지 나라를 없앨 수도 있으며, 한순간에 왕위도 폐하

실 수 있는 분이심을 알게 하기 위하여, 『즉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

기 위하여』이적을 나타내셨다는 것이 그 이유와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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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Page 29: 4 다니엘

그들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히브리서 저자는 그 유명한 이적을 기록하면서도 당사자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으니, 그들은 이적에 사용된 모델에 불과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다니엘을 비롯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다만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발생하는 ‘이적에 쓰임 받았던 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

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적에 쓰기 위하여, 그들을 일찍부터 바벨론에 와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세 사람의 안전을 목적으로 베푸신 풀무

이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만 특별히 내려주신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아니었으면,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들의 이름조차 밝히지를

않았겠습니까?

간단히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히11:34a)라고만 기록했을 뿐, 그 유명

한 이적을 거론하면서도 당사자의 이름은 거명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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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0: 4 다니엘

구약 다니엘서에서는, 이 사건을 사실 그대로 기록해야 했기 때문

에 세 사람의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만, 믿음의 장 히브리서 11장에

서는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유명한 이적 치고 당사자의 이름이 없다는 것, 이 또한 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에 그들의 이름을 올리지 않은 이유를 바꾸어 설명한다면,

느부갓네살에 대한 기록만으로도, 이적의 효과를 볼 수 있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교만해진 왕의 이름만으로도 효과가 충분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세 사람의 이름을 굳이 기록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자, 효과가 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조서를 반포합니다. (4:1)

당시 바벨론은 천하 모든 나라와 임금들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느부갓네살의 효과는 온 세상에 쉽게 미칠 수 있었습니다.

그 영향은 대단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통하여 몇 번의 이적을 체험한 느부갓네살은,

그들의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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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1: 4 다니엘

“하나님이 행하신 이적과 기사가 참으로 크도다. 그 나라는 영원하

며, 그 권병(權柄)은 대대에 이르리로다(4:2~3)”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만한 자들을 벌하시는 하나님이심도 고백했습니다.

(4:37)

느부갓네살의 이 고백은, 자기 자신에게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나라 방백들에게만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온 천하 사람들 모두가 알도록 반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적 아니겠습니까?

이런 이적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되기를 목적하여, 이적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적의 주인공으로 여겼던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

고는, 다만 이에 쓰임 받은 모델에 불과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다니엘서를 열자마자 시작된 내용이, 왜 먼저 기록

되었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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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2: 4 다니엘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 기구 얼마와, 다니엘을 포함한 세 사람을 왜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여 바벨론으로 데려가게 하셨는지(1:2), 그 이

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적(느부갓네살의 고백)을 베풀 때에 필요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훗날 이적에 사용하기 위하여, 다니엘을 비롯한 젊은이들과 예루살

렘의 기구들을, 일찍이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셨던 것입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들이 누구에게 속해 있든지 간에,

하나님의 영광과 권위를 온 세상에 나타내고 주장하기 위하여, 하나

님이 사용하신 자들이었습니다.

풀무 불이나 사자굴 이적이 있어야 했던 이유도 그렇습니다.

사례에 해당되는 다니엘이나 그의 친구들을 살리기 위하여 이적을

베푸셨던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권위를 온 천하에 반포

하고, 알리기 위하여 이적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적의 목적이요, 다니엘서가 말하려는 핵심 포인트입니다.

어디 이 세상 나라들과 왕들뿐이겠습니까?

‘마귀’라고도 하는 사단이나 그의 나라도 다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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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3: 4 다니엘

하늘에 있던 사단은 하나님의 결심에 따라 땅에 속해 있는 우주, 공

중이라는 곳으로 쫓겨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갇혀있습니다.

마지막 인자의 날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어 올린 다음, 이 사단 마귀

는 지옥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곳에 영원히 갇혀 나오지 못하도록 정해져 있는 것이, 사단의 운

명입니다.

하나님은 이토록 매우 강하신 분입니다.

마귀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공중에서 역사하고 있긴 하

지만, 그 역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단에게 이르셨습니다.

“내가 내 종 욥을 네 손에 붙여 너로 하여금 시험하도록 허락하겠다.

앞으로 너는 욥에게 환난과 병은 줄 수 있으나, 오직 그의 생명만은

건드릴 수 없느니라. 결코 그의 생명만은 해하지 말 것이다” (욥2:6)

하나님께서 한 번 발하신 명령을 절대로 초월할 수 없다는 것이, 마

귀의 한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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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4: 4 다니엘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마귀는 욥에게 병과 고통을 주며 시험은

할 수 있었으나, 그의 생명만은 건드리지를 못했습니다.

한편 욥은 마귀가 준 시험과 질병을 모두 이겨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마귀의 시험 때문에 오히려 하늘의 상급이 더 많아졌습니다.

땅에서도 이전보다 배의 부요를 얻었습니다.

마귀의 시험과 환난이 없었던들, 이런 복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마귀가 우리에게 하는 일이란 겨우 이런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마귀를 통하여 우리를 시험하시지만, 그것은 우리의 신앙

성장과 장차 받을 상급을 위해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마귀를 이김으로 우리로 하여금 더욱 강해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마귀는 결코 하나님의 대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 상대할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상대할 우리의 대적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마귀 마음대로 우리를 어쩔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 허락하신 범위 내에서만, 우리를 유혹하고 시험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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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5: 4 다니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수준의 시험은, 마귀에게 허락하

지 않으셨습니다.

마귀는 결코 이를 초월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로부터 어려운 시험이나 고통을 받을 경우, 진

리를 찾아 그 진리와 함께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이기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 중 더러는, 마귀와 싸워보기도 전에 막아 달라는 기도

부터 합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시험만 허락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마

귀를 대적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하나님부터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다가오는 이 시험이 내 몸에 닿기 전에, 어서 빨

리 오셔서 해결해주옵소서. 하나님이 직접 마귀를 막아 주옵소서.”

처음부터 하나님이 어떻게 좀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런 나약한 성도일지라도 당신의 백성이기에 막아는 주십니다.

안 막아주면 그대로 죽겠다고 할 판이니 어쩌시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막아주셨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그 시험이 내게

무슨 유익이 되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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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6: 4 다니엘

천국에 이르렀을 때에 “선한 싸움에서 이기었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상급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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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7: 4 다니엘

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그동안 우리는 이적들이 있어야 했던 이유와 목적을, 하나님에게 맞

추지 않고 사람들에게 맞추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이적들이, 오늘날 우리들의 이적도 될 수 있

다는 욕망으로, 나도 그들처럼 해서 나의 이적을 만들려고 했었습니

다.

그들이 잘 믿어 이적의 주인공이 된 것으로 알아, 나도 ‘믿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억측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의 영광을 위하고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어떤 방법으로든

지 우리를 능히 건져 주시겠거니와, 그리 아니하실 수도 있다는 것

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 주여!

모든 결정권은 주님께 있사오니 내가 잘한 탓이 있다고 하여, 내가

믿은 탓이 있다고 하여, 내 믿음과 내 행위로 하나님을 꼼짝 못하게

하는 그런 사역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에 해야 할 일이면 하시고, 아니 할 일이면 하지 마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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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8: 4 다니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여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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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9: 4 다니엘

장 3

38

제 Ⅲ 편

본 문 : 히브리서 제 11장 제 33 절

33.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다니엘도 그 사자굴 출연자”

Page 40: 4 다니엘

다니엘도 사자도 출연자였을 뿐

다니엘이 잘한 탓, 믿은 탓으로 사자 굴의 이적을 베푸셨을까? 사건 중 느부

갓네살의 ‘네 하나님이 능히 구원하시리라’는 말은, 하나님의 의도이셨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져 하룻밤을 지냈어도, 흠점 하나 없이 다

음 날 멀쩡하게 나왔습니다.

이를 본문에서는, ‘사자들의 입이 막히었기 때문’(33절b)이라고 했

습니다.

하나님은 왜 사자들의 입을 밤새 막아놓으셨을까요?

단지 다니엘 하나를 보호하고자, 그런 엄청난 이적을 베푸셨을까

요?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은 왕에게 올려 진 금령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즉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6:7b) 규례에, 왕이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다니엘은 예루살렘 쪽을 향하여 하루 세 번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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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1: 4 다니엘

그가 ‘그리 하였기로’, 『그럼에도 그리 하였기로』하나님이 사자들

의 입을 막아주셨던 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이적

을 베푸신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이른바 ‘다니엘의 사자굴 사건’의 배경 전모는 이렇습니다.

다니엘은 매우 민첩하여, 바벨론의 여타 총리들이나 방백들보다 훨

씬 뛰어났습니다. (6:3)

이를 안 다리오 왕은 그를 총리와 방백들 위에 세워, 전국을 다스리

게 했습니다.

이로써 다니엘은 관리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게 되었습니다.

방백들은 다니엘을 넘어뜨리고자, 그에게서 고소할 틈을 찾았습니

다.

그러나 다니엘에게서 아무런 틈이나 허물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릇 행하거나 허물이 없는 충성된 자였기 때문입니다. (6:4)

총리들과 방백들은 결론을 내립니다.

“다니엘이 지키고 있는 하나님의 율법에서 틈을 얻지 못하면, 그에

게서 고소할 거리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리라”(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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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2: 4 다니엘

결국 저들은 다니엘이 전부터 해 오던 일, 즉 하루 세 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트집 잡기로 결정, 계책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앞으로 삼십일 동안 왕 외에 아무 신도, 아무 사람도 섬길 수 없도

록 법으로 묶어, 이를 어기는 자는 사자 굴에 던져 뜯어 먹히게 할

것이다.’(7절b)는 조서를 꾸며 왕에게 가져갔습니다.

왕은 이들의 음모를 전혀 모른 채, 그 조서에다 쉽게 어인을 찍어주

고 말았습니다.

어떠한 방법으로 금하던지, 다니엘은 언제나 처럼 매일 세 번씩 하

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관원들은 이런 다니엘을 참소합니다.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13절)

뜻밖의 말을 듣게 된 왕은 심히 근심합니다.

어떻게 하면 다니엘을 구원할까 마음을 써봅니다.

사자 굴에 던져지는 일을, 해가 질 때까지 힘을 다해 미루어 보기도

합니다. (14절)

그러나 온 방백들은 합심하여, “왕이 세우신 금령과 왕의 어인이 찍

힌 법도는, 결코 변개할 수 없나이다. 조서대로 행하셔야 합니

다.”(15절)고 소리소리 지르며 왕을 압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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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3: 4 다니엘

왕인들 어쩌겠습니까?

방백들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조서대로 행하라’고 명할 수밖에 없

었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16절a)

이런 상황에서 왕은 뜻밖의 말을 합니다.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내용입니다.

왜 이 사건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16절b)

이 말은 다니엘을 향한 왕의 진심이었습니다.

왕은 신하들의 요구대로 어인을 찍어주긴 했지만, 이렇게 되리라고

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다니엘이 여기에 걸려들 줄 알았더라면, 다른 신에게든 누구에게든

무슨 짓을 하던지 상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어이없는 계책에다 어인을 찍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왕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 넣으면서도 ‘네가 항상 섬기는 너희 하나

님이 너를 구원해주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궁에 들어가서 밤이 맞도록 금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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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4: 4 다니엘

평소에는 밤마다 기악을 울리고 흥을 돋우며 잔치했으나, 그 밤에는

기악도 그치게 했습니다.

아예 침수, 즉 잠도 자지를 못했습니다.

꼬박 날을 새었던 것입니다. (18절)

그 이튿날 새벽 일찍 일어난 왕은, 다니엘이 든 사자 굴로 급히 달려

갑니다. (19절)

굴 가까이에 이른 왕은, 다니엘이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리

질러 불렀습니다.

살점하나 남아있을 리 없을 것을 예상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물어보았습니다.

“살아계신 네 하나님이 너를 사자에게서 능히 구원하셨더냐?”

(20절)

하나님이 사자 굴에서 건져주시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물었던 것

입니다.

헌데 이게 웬 일입니까?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21절)

다니엘의 분명한 음성이 사자 굴에서 들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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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5: 4 다니엘

“나의 하나님께서 내가 사자 굴에 던져지기도 전에, 이미 당신의 천

사들을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여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자

들이 나를 상해치 못하였나이다.”(22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23절)고, 객관적인

평가를 붙여두었습니다.

다니엘이 자기의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의뢰함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았다는, 그런 평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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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6: 4 다니엘

의뢰하는 자와 아닌 자

다니엘이 평소 해오던 일을 성경은 ‘의뢰함’이라 평가했다. 반면 그렇지 않은

자들과의 극명한 대비를 나란히 기록해놓았으니,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23절)

여기서의 “의뢰”라는 것은, 사건이 닥치기 직전 ‘하나님, 살려주십시

오.’ 구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의뢰’라는 평가는 다니엘이 평소에 계속해오던 일상, 즉 “전에 행하

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

라”(10절b)는 바로 그 일에서 얻어진 말입니다.

다니엘은 나라의 금령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

와 감사하는 일을 하루 세 번씩 계속했습니다.

바로 그 일을 가리켜 “하나님을 의뢰함”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평소 하나님께 해오던 그 일이 사자로부터 구원을 이끌어왔다는,

그런 의미의 ‘의뢰’입니다.

죽기 바로 전에 ‘살려줄 줄 믿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애걸복걸하

는 그런 ‘의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늘 하나님을 섬겨온 행동들을 가리켜, ‘의뢰’라고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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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7: 4 다니엘

“하나님을 의뢰함”이란 말은, 다니엘이 자기 입으로 한 제 말이 아니

라, 성경이 내린 객관적 평가였습니다.

이는 이방 나라의 왕과 방백들이 내린 평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이적을 보고나서야 “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셨구나.”(16절b) 평가했던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이 또 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그 어떤 내용보다도, 지금

말씀드리려는 이 사실에 더 큰 방점을 찍으셨을 것입니다.

다니엘의 반대편에 섰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를 모함했던 자들 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느냐 하는 점에, 우리의 관

심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와 모함하는 자, 이 두 케이스는 서로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자 굴의 이적이 있은 다음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을 참소했던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끌어다가, 다니엘이 있었던 바로 그 사자 굴

에 집어넣었습니다.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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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8: 4 다니엘

그랬더니 어찌 되었습니까?

그들이 사자 굴 바닥에 채 닿기도 전, 모두가 사자들에게 삼켜 먹힘

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자들이 얼마나 굶주렸던지 저들이 굴 안으로 떨어지기까지 참지

를 못하고, 뛰어올라 중간에서 저들을 움켜 끌어내렸던 것입니다.

사자들은 저들의 뼈까지도 다 부서뜨려 삼켜버렸습니다.

흔적조차 없애버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4절)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의 극명한 차이를, 성경은

23절과 24절에 나란히 붙여놓았습니다.

성경을 읽고 상고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한 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그렇게 기록해놓은 것입니다.

사자들의 입을 봉하여 아무런 상해도 받지 못하도록 한 경우와, 살

점하나 없이 뼈까지도 먹어버리게 한 경우에서, 우리는 엄청난 차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두 경우를 비교할 수밖에 없도록, 나란히 기록해 둔 사

실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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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9: 4 다니엘

23절,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의 경우는, 사자 굴에 빠져서도 흠점 하

나 없이 아무런 상함도 받지 않고 멀쩡히 살아나왔습니다.

이와 대비되는 24절은 하나님을 의뢰하기는커녕, 하나님을 의뢰하

는 사람을 모함하여 사자 굴에 던지게 했던 자들과, 그들의 처자들

이 당한 경우입니다.

후자의 경우 어떤 일을 당했습니까?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가 들어갔던 같은 굴, 같은 사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뼈까지 부서뜨림을 당했습니다.

이 극단의 두 경우를 대비시켜 기록해 놓은 것은, 우리로 보고 깨닫

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제부터 말씀드리려는 것은, 이적 베푸심의 핵심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것 때문에 이적을 베푸셨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니엘같이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위기를 당했을 때 하나님의 보

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바벨론의 총리들과 방백들같이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를 어렵게 하는 자는, 위기에서 보호 받기는커녕 망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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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0: 4 다니엘

이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주기 위하여, 두 경우를 나란히 기록해놓았

던 것입니다.

이런 의도에서 이적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이적의 진정한 목적을 두고 볼진대, 다니엘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의 모델이었을 뿐입니다.

모델로 출연했던 한낱 배우에 불과했습니다.

흔히 아는 것처럼, 이적의 주인공은 다니엘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이적의 진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한 축의 배우였을 뿐이라는 말

입니다.

아니 그런지 보십시오.

다리오 왕은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에 조서를 내렸습니다. (25절)

온 세상에 알리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바, 이적의 효력이 나타난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

까?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찌니” (26절a)

이 말씀을 보건대, 다니엘이 주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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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1: 4 다니엘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

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라” (26절b)

왕의 세력을 이용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온 세상에 반포

소개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적을 베푸신 하나님의 요구였습니다.

이를 누가 부정하겠습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다니엘은 단지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의

모델이 되어, 사자들과 함께 공동 출연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사자굴 이적의 진정한 주인공은, 그가 아니었다 그 말입니다.

당시 다니엘과 함께 출연했던 사자들은, 다니엘과 마찬가지로 맡은

바 자기의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아주 훌륭하게 잘해냈습니다.

매우 굶주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먹잇감이었던 다니엘에게

작은 상해도 입히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그

들의 뼈까지 부서뜨렸으니, 자기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 아니고 무엇

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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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2: 4 다니엘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소년이었을 적부터 바벨론

에 데려다 놓으셨습니다.

소년들은 어떤 자들이라고 했습니까?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아름다우

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1:3b~4a)

이들은 이국땅 바벨론에서도, 늘 하나님을 의뢰하며 기도하는 생활

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환경을 마련해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 속하여 당신을 섬기는 이스라엘과 그 백성들의 편

이 되어, 위기 때마다 건져주셨습니다.

나아가 당신의 백성들을 모함하고, 계책을 만들어 해하려는 나라들

과 방백들에게는, 사자들을 이용하여 뼈까지 부수어 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나타내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불의한 세력으로부터 지키

시는 분『당신의 백성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만백성에게 알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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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3: 4 다니엘

는 것이 바로 사자굴 이적의 핵심『사자굴 이적의 핵심』이란 말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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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4: 4 다니엘

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사자굴 이적과 풀무 불 이적을 대할 때마다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떠올리며, 그들이 보호받았던 부분만 앞세웠습니

다.

우리도 그들처럼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이적을

베푸신 하나님의 진정한 뜻은 헤아려 보려고도 않은 채, 이적의 주

인공에게만 관심을 쏟았습니다.

다니엘이나 세 친구들이 이렇게, 이렇게 하여 복 받았으니, 우리도

그들처럼 이렇게, 이렇게 해서 복을 끌어내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을 언제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오, 주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와 당신의 백성들을, 세상 세력으로부터

보호해주기 위하여, 이적을 만드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나이다.

이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깨닫고 새롭게 성경을 받아들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나라들과 백성들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연약한 우

리들 편이 되어 지켜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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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5: 4 다니엘

세상의 강함이 우리를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천국 갈 그때까지 지

켜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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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6: 4 다니엘

장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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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Ⅳ 편

(부록)

“질문 있습니다. - 그러면”

Page 57: 4 다니엘

본 문 : 다니엘서 제 2 장 제 46 ~ 47 절,

다니엘서 제 6 장 제 25 ~ 26 절

2:46. 이에 느부갓네살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

과 향품을 그에게 드리게 하니라

2: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

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자

시로다

6:25.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

언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려 가로되 원컨대 많은 평강이 너

희에게 있을찌어다

6: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찌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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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으면 천국?

바벨론 왕들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었다. 빌라도 부부도, 예수를 죽인 자

들도, 심지어 귀신들도 예수를 알았으나, 그렇다고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최근 여러분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느부갓네살과 다리오는 천국 갔겠지요?”

아마도 느부갓네살이 자기의 꿈 이야기를 다니엘에게서 듣고서 했

던, 그 말 때문에 나온 질문일 것입니다.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자시로다” (2:47b)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3:28a)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

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찌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3:29b)

이는 당시 느부갓네살 왕의 진심에서 나온 말이 사실이었을 것입니

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에 대하여 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이해하고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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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9: 4 다니엘

알았으니 믿었던 게지요.

그러니 그런 질문이 나올 만도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당연히 천국 가는 줄 알고들 있으니 말입니다.

헌데 과연 그럴까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그 지식으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친다면, 귀신

들도 믿었다고 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약2:19)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을 믿고, 떤다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 사도가 성경에 올린 말씀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그렇게 알고 그렇게 믿은 것으로 칠라치면, 빌라도의 아내도 예수님

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가리켜 “옳은 사람”, 곧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이라

고 했습니다. (마27:19b)

빌라도의 아내는 예수님을 어떻게 알았다고 했습니까?

그녀의 꿈에 나타나 알았다고 했습니다.

꿈에 분명히 보았으므로 더욱 절실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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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0: 4 다니엘

그래서 ‘예수에 대하여 아무 상관도 하지 말라’고, 남편에게 청했던

것입니다.

빌라도는 그렇지 않아도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이모저모 애를 쓰던

참이었습니다.

“어찜이뇨 (예수가)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마27:23)

민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예수를 넘겨주긴 했지만,

그는 예수가 어떤 분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해서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마27:24)라며 손도 씻었습니

다.

예수님의 어려움이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의미였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장본인들, 즉 서기관들과 백부장

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했던 모든 사람들, 심지어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사람까지도, 예수에 대하여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마27:54b)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고백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고 나서라도 알고 믿었으니, 그들도 구원 받은 것으로

간주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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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1: 4 다니엘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기록

은 있어도, 저들이 구원받았다는 글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게 알고 그렇게 믿었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요.

여러분이 질문한바 ‘느갓네살이나 다리오의 구원에 대한 의문’이 풀

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만하면 답이 되겠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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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2: 4 다니엘

‘너희 하나님’이 되어서야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영접하거나 섬기지는 않았다. 그

에게 하나님은 ‘너희 하나님’이었을 뿐, 자신의 하나님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려면, ‘그 이름’을 믿어

야 합니다.

믿으면 또한 회개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름’이란, 예수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1:21b)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가 죄인인 줄을 깨닫고 회

개하여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개와 아울러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나의 왕’으로 섬긴다는 뜻

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께 속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천국갈 수 있는 기본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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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3: 4 다니엘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천국에도 갈 수가 없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회개’란 무슨 뜻입니까?

부르짖으며 가슴을 치고 옷을 찢는 것을 말합니까?

아니죠.

자기의 죄를 깨달아 통회 자복할 뿐만 아니라, ‘개(改)’, 곧 돌이켜

고친다는 의미입니다.

회개하고 난 후에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를 나의 왕으로 섬기는 동시에, 나는 그 왕 아래 백성이 되는 것

입니다.

왕에게 속해 있다면, 그 왕의 명령에 따라야만 합니다.

그 왕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도, 그의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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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4: 4 다니엘

그에게 있어 하나님은, 언제나 ‘다니엘 너희 하나님’(2:47)이었으며,

‘네가 믿는 하나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3:28)이

었을 뿐입니다.

자신의 하나님으로 영접하지를 않았습니다.

받아들이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제사하거나,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지도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믿기도 했습니다.

믿긴 했지만, 그가 아는 하나님은 ‘다니엘의 하나님’이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이었을 뿐입니다.

그 나라도 ‘너희들의 나라’였을 뿐입니다.

자기의 나라는 바벨론이었으며, 자기는 바벨론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 속하지도 않았으며, 따르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제사하거나, 하나님의 전을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진정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었다면, 바벨론의 왕 자리는 내

놓아야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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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5: 4 다니엘

바벨론의 왕 노릇을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어찌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하지 못하게 하는 짓만 계속해야 되는 것이, 이방나라 왕

이었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리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도 하나님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못 믿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6:16b)

“네 하나님”, 즉 자기의 하나님으로 믿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습니

다.

그것이 다니엘과의 차이였습니다.

다리오 왕은 사자굴 이적을 보고서도,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

는 일에 능하셨구나.”(6:20b) 했을 뿐, 자기의 하나님으로 영접해

들이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에 속한 왕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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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6: 4 다니엘

이적을 보고도 영접치 않았다

예수께서 거라사 광인을 고쳐주시니, 이를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들은 예수님

을 믿기는 했지만, 영접치 않고 거부했다. 요즈음도 그런 자들이 허다하다.

느부갓네살이나 다리오에게 있어 하나님은 언제나 ‘다니엘의 하나

님’일 뿐, 자신의 하나님은 아니었다고 앞서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저들에게 하나님은, 세상 나라들 가운데서도 보잘 것 없는 이스라엘

의 하나님이었을 뿐, 자기 나라의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알았고, 알았기 때문에 믿기는 했지만, 느부갓네살이

나 다리오는 자기의 하나님으로 영접해 들이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삶을 살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벨론 왕들과 다니엘의 차이였습니다.

저들은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

았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큰 신상을 만들어 우상으로 섬겼습니다.

거기에 절하지 않는 자들에게 분을 내며, 얼굴색이 변했던 자들이었

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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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7: 4 다니엘

‘예수를 믿는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예수라는 이름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믿음이 아닙니다.

이 왕들이 언제 예루살렘 전에 가서, 신령과 진정을 다하여 하나님

께 예배한 적이 있었답디까?

돈 많은 부자들로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립하고, 거기에서 예배한 적

이 있었답디까?

하나님께 속하여 율법을 지켰다거나, 자기들 신당들과 우상들을 쳐

부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는 그런 기록이, 성경 어디

한 군데라도 있습디까?

애굽의 바로왕도 그랬습니다.

신약 예수님 때에 거라사 사람들도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거라사’는 마태복음 8장32절에 기록되어 있는 지방 이름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동네를 어지럽히는 한 광인을 동네 밖으로 끌어내어,

쇠줄로 차꼬를 채워서 격리시켜버렸습니다.

예수님은 그 광인 속에 들려 있던 수많은 귀신들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러자 광인 속에서 그를 미치게 했던 귀신들이, 몽땅 돼지 떼에게

로 들어갔습니다.

이로써 돼지들은 몰살 되었으나, 그 광인은 자유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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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8: 4 다니엘

이 소문은 온 동네에 퍼졌습니다.

이제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만나려고, 거

라사 시내 사람들은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저들은 엄청난 일을 행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습니다.

구약시대의 그 어떤 인물보다도 훨씬 수준 있고, 영적 위력과 권세

를 가지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만 본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격리시켜 놓아야 했던 광인이,

새 사람으로 변화된 모습도 보았습니다.

예수가 어떤 분이신지를 똑똑히 보았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었습니다.

믿었기 때문에 어떻게 했습니까?

회개하고 영접했습니까?

예수님을 저들의 주님으로 삼았습니까?

“우리 동네에 계시옵소서.” 붙잡았습니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고 나더니, 아주 심각해졌습니다.

끝내는 “예수시여, 우리 지방에서 떠나주시옵소서” 간청했습니다.

대단하신 예수님이 겁났던 것입니다. (마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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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9: 4 다니엘

요즘 사람들이 하나님을 몰라서 안 믿습니까?

예수님을 몰라서 안 믿습니까?

하나님을 안다는 사람에게 “그러면 당신도 그분을 믿고 주님으로 섬

기십시오.” 말하면, 겁부터 냅니다.

“그런 말 하지도 말라” 손사래 치며 도망갑니다.

거라사 사람들과 똑같이 말입니다.

그리했던 거라사 사람들이 구원받았겠습니까?

아니지요.

느부갓네살과 다리오 왕도 거라사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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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70: 4 다니엘

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천국백성이 될 것을, 너무나 쉽게 믿었던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천국에 가려면 예수 이름을 믿고, 그 이름이 요구하는 바를 행해야

하며, 그분을 구주로 왕으로 영접하여 그 명에 따라야하는데, 행함

도 없이 ‘믿노라’만으로 안심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었습니

다.

오, 주여!

우리의 믿음이 느부갓네살이나 다리오 같지 말게 하옵소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

고의 그 하나님이, 이제부터는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이 되옵

소서.

바른 고백과 바른 생활로 주님 나라 향하여 나아감으로,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는 그런 말씀은 듣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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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71: 4 다니엘

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우리의 신앙은 아직도 "그리스도 초보의 도"에 머물러 있으며, "자기

신앙 증명"을 통해 복 받을 명분을 세우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고 봅니다.

그 결과 정작 보아야 할 하나님의 의도나 성경의 핵심은, 보지 못하는

위기에 서 있습니다.

갈렙 목사님은 인본적 성경관을 우려하여 진정한 믿음의 정석을 세우

고, 성경의 본 의도를 정립해 주심으로, 우리에게 성숙한 성도의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본문에서 다니엘과 친구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기록의 목

적이 이적이나 사람의 신앙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느부갓네살을 통해 하나님은 온 세상(신, 불신간)의 유일하신 참 신이

심을 알게 하시며,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와 아닌 자의 극적 결과를 알

려주셨습니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능력은 믿었지만, 하나님을 자기

의 주인(왕)으로 영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분의 통치에 속하려고도 하지를 않았습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의 믿음이 이적을 결과했다면, 하나님은 다만 우리의

치성에 반응하는, 그야말로 계획도 목적도 없는 잡신에 불과할 것입

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자기가 원하는 해답을 얻으려 합니다.

이는 말씀을 대하는 진정한 태도가 아닙니다.

성경에 근거하고 성경이 검증하는바, 명백한 하나님의 의도만이 영혼

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임을, 갈렙 목사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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