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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큰비밀 - 인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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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큰비밀 - 인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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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1

1

갈렙 3927 ‘큰 비밀’ - 인자론(1)

“이러한즉 둘이 아니요 한 몸” ‘둘이 아니요 한 몸’이란

‘타고난 자’만 알 수 있다

갈렙 3927 ‘큰 비밀’ - 인자론(2)

“이러한즉 둘이 아니요 한 몸” 비밀을 알까 두려워

‘큰 비밀’

갈렙 3927 ‘큰 비밀’ - 인자론(3)

“이러한즉 둘이 아니요 한 몸” 하와의 죄, 아담의 죄 되다

우리 죄를 대신 지심은

갈렙 3927 ‘큰 비밀’ - 인자론(4)

“이러한즉 둘이 아니요 한 몸” 모친 마리아

동침치 않고도 ‘한 몸’

갈렙 3927 ‘큰 비밀’ - 인자론(5)

“이러한즉 둘이 아니요 한 몸” 부부란

‘예수’를 이루기 위하여

갈렙 3927 ‘큰 비밀’ - 인자론(6)

“이러한즉 둘이 아니요 한 몸” ‘표상’이 말하는 ‘그리스도와 교회’

‘증인들’이 증거하는 ‘그리스도와 교회’

2

갈렙 3927 ‘큰 비밀’ - 인자론(7)

“이러한즉 둘이 아니요 한 몸”막달라 마리아

동침 않은 ‘스스로 고자된 자’

그녀도 우리처럼 ‘그리스도의 신부’일 뿐

- 제2의 하와가 아니었다. -

갈렙 3927 ‘큰 비밀’ - 인자론 (종편)

“인자로 온 것은 큰 영광이었다” 인자됨은 하나님께 큰 영광

인자 되셨기에

3

4

제 Ⅰ 편

갈렙 3927 ‘큰 비밀’ - 인자론 (1) -

“이러한즉 둘이 아니요 한 몸”

본 문 : 에베소서 제 5 장 제 31 ~ 32 절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

가 될찌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둘이 아니요 한 몸

‘둘이 합하여 한 몸’이라는 말씀은, 결혼하는 남녀에게 하신 명이 아니라, 예

수를 따르는 무리들로 떠나가게 하고자 시험하는 자들에게 주신 답변이셨다.

“이러한즉 둘이 아니요 한 몸”이라는 본 시리즈의 제목은, 마태복

음19장6절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이 구절은 하반절의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는 말씀과 함께, 기독교 표준 예식서에

실려져 결혼식 때에 흔히 명하는 문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데』말입니다.

과연 예수께서는 결혼하는 남녀에게, “너희는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너희 임의로 나누지 말라”는 취

지에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아무리 궁구하고 따져보아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남녀가 결혼을 하더라도 여전히 둘이지, 한 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

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문제에 관하여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던 그때 그 배경은 어떠했을까?

5

혹시 이 말씀의 본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저에게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하여 여러분과 함께, 당시의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를 떠나 유대 지경에 이르셨을 때였습니다. (마

19:1)

갈릴리에서처럼 이곳에도 큰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예수님은 저들의 소원 따라 병을 고쳐주셨으며, 귀신을 쫓아내주셨

습니다. (2절)

이런 와중에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다가왔습니다.

저들은 지금 예수님이 하시는 사역과는 전혀 걸맞지 않는 주제를 가

지고, 예수께 질문했습니다.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습니

까?” (3절)

이 질문은 ‘옳다’고 답을 해도, ‘옳지 않다’고 답을 해도 책잡힐 수 있

는 아주 묘한 내용이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을 걸려들게 하기 위하여 다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간음 중에 붙들려온 여인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6

율법대로 “즉시 이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셨다면, 저들은 기다렸다

는 듯 예수께 공격했을 것입니다.

“죄인을 사랑하고 구원하러 왔다는 당신이, 어찌 헛말이나 하느냐?”

그렇다고 “돌로 치지 말라”고 하셨다면, “당신은 모세 율법을 어기

는 자로다. 모세 율법에는 이런 자를 돌로 치라 하지 않았느냐?”(요

8:5) 덤벼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 대하여,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

라”(요8:7)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하나로, 예수님은 율법을 안 지키는 자가 아니라 지키는 자

가 되셨으며, 죄인도 못 구하는 자가 아니라 구하는 자가 되셨습니

다.

저들은 결국 예수님의 판단에 굴복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이로써

예수님은 위기를 모면하게 되셨습니다.

간음한 여인의 경우에서처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질문했습니다.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린 것이 옳으니이까”

(마19:3b)

이에 ‘옳다’고 하면,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것”(창2:24)이라는 말씀과,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

7

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마19:6b)이라는 말씀을, 정면

으로 파괴하는 것이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나누지 못할지니, 아무 연고든지

아내를 내어버리지 말라”고 하면, 모세의 율법 곧 “이혼증서를 주어

집에서 내어보내라”(신24:1b)는 법을 반격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답변도 저런 답변도 예수님만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을 칭송하며 따르는 무리들 앞에서, ‘예수는 율법도

모르는 자’,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하는 자’라고 선전하고 싶

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난처하게 만들어, 무리들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할 그런

요량으로 시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19:3)

이것이 그때 그 배경이요, 그 주제였습니다.

당시 예수님이 처하신바 이러한 난처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어떻게

그 시험에서 벗어나셨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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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타고난 자’만 알 수 있다

“둘이 합하여 한 몸”이란 말씀은, 사람마다 다 받을 수 없는 ‘큰 비밀’이었으

니,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즉 ‘타고난 자’라야 깨달을 수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고 하

셨습니다. (마19:4)

여기서 “본래”라고 하신 것은, ‘맨 태초에’라는 말씀입니다.

태초에 사람을 어떻게 지으셨는지, 성경은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본래 사람을 만드신 이는, 남자의 몸 일부로 여자를 지

으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러므로 그 둘이 합하여 한 몸이 될지니라고 하신 것

을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마19:5)

“너희는 그것을 어떻게 읽었더란 말이냐?”고 반문하셨던 것입니다.

“이러므로”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한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으므로, ‘둘이 합하여 한 몸(창2:22)이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

다.

이 말씀의 의도를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9

“이러므로 둘이 합하여 한 몸, 『이러므로 둘이 합하여 한 몸』이란

말씀을 너희는 어떻게 읽었기에, 그 뜻을 모르고 있단 말이냐?

여자를 아담에게 이끌어 왔을 때 아담이 무엇이라 하던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하지 않더냐? (창2:23)

그렇게 지음 받은 남자와 여자의 연합을 두고 하셨던 말씀을, 오늘

날 너희는 남녀가 연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

니, 참으로 이상하도다.”

이런 뉘앙스로 말씀하셨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당시 예수님이 저들에게 하셨던 말씀의 핵심을 잘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마19:4b)

본래 아담의 일부로 하와를 지으셨던 까닭에, 서로 나뉘어 있으면

남자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과 같으니, 그 둘에 관한 한은 하나로

합해있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에서는 ‘이러한즉’(19:6)이라고 했던 것이고, 창

세기에서는 ‘이러므로’(창2:24)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남자와 여자『둘이 합하여 한 몸』이 된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누게 되면 반쪽이 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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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 말씀이 오늘날의 남녀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

고, 정확히 챙겨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어쩐지 이 말이 저 말과 같기도 하고,

또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말씀을 듣고 있던 바리새인들도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저들은 예수를 어렵게 만들고자 시험했지만, 결국 안절부절 당황하

다가 흩어지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제자들도 기껏 한다는 말이, ‘그럴 바에야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

다’(마19:10b)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듯 해당도 되지 않고 영양가도 없는 말들을 지껄여대던, 제자들

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 듯, 못 알

아듣는 듯 혼란하여 횡설수설했을까요?

이렇게 된 상황에 대하여 예수님은 해명하셨습니다.

“내가 지금 너희에게 한 이 말은, 사람마다 다 받을 수 있는 것이 아

니니라. 배웠다고 해서도, 똑똑하다고 해서도 받을 수 없고, 오직 하

나님으로부터 허락받은 자라야 받을 수 있느니라. 타고난 자 『타고

난 자』라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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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

야 할지니라” (마19:11)

『둘이 합하여 한 몸』이란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비밀’로

분류된 사안이었습니다.

“너희는 이 말씀을 마치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인 줄 알고 흥분하고

있다마는, 그러나 실제로는 엄중한 사안이니라. 이것을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따로 허락하신 자들뿐이니라.”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둘이 합하여 한 몸’이라는 말씀은 비밀

이었습니다.

비밀 중에서도 큰 비밀, 『큰 비밀』이었습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엡5:32b)

“이러므로 둘이 합하여 한 몸”이 설명하고 증거 하는 바는, ‘그리스

도와 성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아무에게나 함부로 알려줄 수 없는, ‘비밀 중의 큰

비밀’이었습니다.

사람마다 쉽게 들을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모든 부부에게 주신 말씀으로 알고들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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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이 말이 저 말 같고, 저 말이 이 말 같으며, 아닌 것도 같

고 긴 것도 같게 말씀하셨던 이유에 대한 해명이셨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하신 말씀을 읽어야 되나요? 말아야 되나요?

여러분, 당혹해 하지 마십시오.

“어미의 태로부터 고자 된 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으며,

천국을 위하여 고자 된 자도 있다” (마19:12)

스스로 경건함을 자랑하는 바리새인들과 따르는 무리들 앞에서, 예

수께서는 민망스럽게도 이런 말씀을 하고 계셨습니다.

‘19금’이라고 할 수 있는, ‘고자’라는 단어를 섞어가면서 말입니다.

어찌하여 주님은 그런 상황 그런 형편에서, 하필이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고자’에 관한 말씀이, 우리에게 민망함이나 주고자 하신

‘19금’의 농담이셨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그 말씀 뒤에 하신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마19:1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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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된 자, 타고난 자, 받을만한 자만이 알 수 있는 말씀이라고 하셨

습니다.

아무나 알 수 없는 비밀이라는 뜻입니다.

결코 ‘19금’에 해당하는, 민망해야 될 그런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

다.

이 말씀이 어떤 비밀을 가진 말씀인지 밝혀지게 되면, 아마 여러분

은 많이 놀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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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어찌하여 비밀 중에서도 큰 비밀이라는, ‘이러므로 둘이 합하여 한

몸’이라는 말씀을, 우리에게는 듣게 하셨나이까?

우리는 이 말씀이, 남녀 혼사 때에나 쓰는 말인 줄 알고 있었나이다.

예수께 나아왔던 자들 역시, 이 말씀을 저희들이나 자녀들을 향한

말씀으로 헤아렸다는 것이 아닙니까?

주께서는 하나님께 허락받은 자만 알게 하기 위하여, 그 뜻을 비밀

에 부쳤다고 하셨습니다.

똑똑하거나 글을 잘 안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받을만한 단계

에 이른 자만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라고 하셨나이다.

오늘날 그 비밀을 우리로 만나게 하신 것은, 우리에게 허락하셨다는

뜻이 아니옵니까?

우리가 무엇을 하였기에, 우리에게 무슨 자격이 있기에 그 비밀을

받을만한 자로 여기셨나이까?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비밀한 것을, 더 잘 알게 해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구하여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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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사람은 부부라도 한 몸이 될 수 없습니다.

각각의 개체끼리는 결코 한 몸으로 연합 될 수 없습니다.

단지 수평적 관계의 연합만이 가능할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인간만이 영으로 연합될 수 있습니다.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로 들어가 하나

로 맞춰질 때, 비로소 제 자리를 찾고 완전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창세전 언약”이며, “그리스도와 교회(성도)에 대한 하나님

의 비밀”입니다.

이제 갈렙 목사님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큰 비밀을 알게 될 것

입니다.

기대와 소망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16

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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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Ⅱ 편

갈렙 3927 ‘큰 비밀’ - 인자론 (2) -

“이러한즉 둘이 아니요 한 몸”

본 문 : 에베소서 제 5 장 제 31 ~ 32 절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

가 될찌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비밀을 알까 두려워

아무나 천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받을만한 자 외에는 비밀로 하

셨다. 예수 또한 하나님이 허락지 않은 자가 깨달아 돌이킬까 두려워하셨다.

본 주제의 문건은, 성경 속에 담겨 있는 다른 모든 말씀들과는 달리

비밀, 그것도 ‘큰 비밀’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둘이 한 육체’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말씀이며, 이는 비밀이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셔야 볼 수 있고(계3:7), 허락하신 자에 한해서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마19:11)

참고로 성경의 비밀 문건들 중, 두 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 내용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 결 같이 천국과 관련되는 비밀 사안입니다.

그 하나는,

세상이 끝나고 천국 생활이 시작될 때의 요건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임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에도 삼천 명, 오천

명씩 회개하며 세례를 받고, 성령의 인침을 받았습니다. (행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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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갑자기 이스라엘의 ‘더러’가 완악해졌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와 보혜사 성령 받기를 일시에, 그것도 거국적으로 거

부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갑자기 태도를 달리하는 이런 상황

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알고 보니 이는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변하게 된 것은, 하늘의 비밀이었습니다.

왜 비밀로 하셨는지를 성경은 해명해주고 있습니다.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

악하게 된 것이라” (롬11:25b)

천국에 들어올 이방인의 수가 충만하게 되기까지, 본방 이스라엘의

인 맞은 자를 일정기간 제한하셔야 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을 천국에 들이기 위하여, 정작 들어가야 할 본방 백성들을

제한하고 있었으니, 이 사실을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

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인 맞은 자의 수가 십사만 사천이 될 그날에

는, 이 세상이 떠나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9

천사들로 땅 네 모퉁이를 붙잡게 하여 유지돼오던 이 세상을(계

7:1), 이스라엘의 인 맞은 수가 십사만 사천이 되는 그 시점(계7:4)

에, 천사들이 잡았던 것을 놓아버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종이 축 말리듯 말려 날아가게 될 것이며, 땅은

체질이 녹아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계획은 미리 정하여 두신 바였기에, 이스라엘이 하루에도 삼천

명, 오천 명씩 회개하고 인침 받는 일이 계속된다면, 얼마 되지 않아

약속한 십사만 사천에 도달할 것이 번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까닭에 이 계획을, 천국 때에 있을 ‘비밀’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에 대한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허락을 못 받은 자들에게는, 비밀로 부칠 수밖에 없었던

사안들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에게는, 천국 입성 자격에 대한 내용을 전부 에둘러 비유로, 『비유

로』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예화를 들어

설명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20

고로 비유로 말하면 쉽게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당신을 시험하고 있는 자들에게 하셨던 비유는,

그런 류(類)가 아니었습니다.

저들로 잘 깨닫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유로 말씀하셨던 것이 아

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묻습니다.

“어찌하여 저희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마13:10)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

니 되었느니라” (11절)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천국과 관련된 내용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아 알게 하라’는 하나님의 허락이 없는 한, 알려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비밀이기 때문에 비유로 말씀하실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반면 제자들에게는 허락되었기에 말씀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

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

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5절)

21

혹시 저들이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개하여 고

침을 받고, 천국 시민 자격을 얻게 될까 두렵다는 말씀입니다.

허락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뜻을, 지켜드리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직 허락 아니 하신 자들에게, 행여 예수님이 자격을 주게

될까봐, 그것이 두렵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알 듯 모를 듯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씨가 ‘좋은 땅’이나 ‘돌짝 밭’, ‘길가’에 떨어졌다는 비유 역시, 천국

비밀을 허락하신 제자들에게만 설명해주셨습니다.

천국에 관한 비밀은, 아무에게나 알려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누구에게나 천국 자격을 획득할 기회를 주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까 두렵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비밀 해제의 자격이 갖춘 자가 되도록, 언제나 바르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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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큰 비밀’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라는 말씀을 오늘날 우리네 부부에게 적용하고 있으

나, 이는 아담과 하와 단 한 케이스에만 해당되는 ‘큰 비밀’이라고 하셨다.

금번 주제인 『이제는 둘이 아니고 한 몸』이라는 의미는, 앞에서

도 말씀드렸듯이 천국에 관한 비밀 중에서도 『큰 비밀』입니다.

그러할진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시험하던 저들에게 어찌 이 비밀

을 허락하셨겠습니까?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 못하도록 시험

하는 자들에게, 하늘의 비밀을 허락하셨을 리가 없죠.

하나님의 이러한 뜻을 어기지 않기 위하여, 예수님은 아주 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들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 한 자가 혹시 비밀을 알아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면, 이는 ‘심히 두려운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마13:15b)

그런 일은 결코 없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예수께서, 어찌 그런 자들에게

천국 비밀인 그 ‘큰 비밀’을 바로 풀어주셨겠습니까?

23

본래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신체 일부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셨습니

다. (창2:22b)

그리고는 ‘이러한즉’, 『이러한즉 둘이 아니요 한 몸』이라고 하셨

습니다. (마19:6a)

이는 다른 케이스가 따로 없는, 단 한 케이스였습니다.

하나님은 ‘영이 유여’하시어 얼마든지 다른 케이스의 남녀들도 만드

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를 않았습니다.

오직 단 하나만 ‘한 몸’이 되게 지으셨습니다.

“여호와는 영이 유여(有餘)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말2:15a)

어찌하여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 단 한 케이스만, ‘한 몸’이 되게 지

으셨을까요?

이는 장차 오실 “경건한 자손” 『경건한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얻

기 위해서라고 밝히셨습니다.

『경건한 자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안에 여럿이 계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이면 충분했습니다.

24

독생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 된 성도

와 교회를 증거 하기 위한 ‘표상’으로, 아담과 하와 한 경우만 있으

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장차 오실 이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롬5:14)

다시 말하여 아담과 하와 단 한 케이스만 만드신 것은, 예수 그리스

도의 표상으로 쓰시기 위함이었다 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둘이 합하여 ‘한 몸’이 된 이 부분은, 교회와 그리스도, 그리스도와

교회가 예수로 하나(엡5:32) 된 것을 의미합니다.

‘둘이 하나가 되었으니 사람이 이를 나누지 못한다.’는 말씀(마19:6)

을 증거 하기 위하여, 영이 유여하신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둘이

나 셋, 아니 모든 부부를 ‘한 몸’ 되게 하지 않고, 오직 한 쌍만 하나

되게 만드셨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을 마감하는 말라기에, 확실하고도 결정적으로 단언

해 두셨습니다.

‘둘이 합하여 한 몸이요, 이를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란 사례가,

어찌 예수를 시험하려는 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었겠습니까?

25

이 사례가 ‘장가드는 것이 좋겠다, 아니다’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주

어 내보내야 한다. 아니다’라는 자들에게 주시는, 답변일 수가 있었

겠습니까?

그렇게 여긴다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자녀들에게 윤리 도덕을 가르치기 위한 말씀으로 여긴다면,

기막힐 노릇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시험하던 저들은 물론 오늘날 우리들도, 남자와 여자

가 ‘한 몸 된 큰 비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이 비밀을 설명하기 위하여, 아담 하와 단 한 케이스만 만드셨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알게 되면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창2:23)이라 말할 수 있

는 부부는, 이 세상에 아담 하와 밖에 없다는 것을 헤아리게 될 것입

니다.

그런데 우리네 부부는 그것이 아님에도, 『그 케이스가 우리 케이

스가 아님에도』불구하고, 다시 말하여 우리는 의도적으로 한 쌍만

지으셨던 그 ‘표상’이 아님에도, 왜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요?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엡5:33)

26

남편이 자기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교

회를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 아내들에게는 ‘남편을 사랑하라’ 하지 않으시고 ‘경외하라’고 하

셨으니, 이는 성도들이 신께 바치는 경외를 뜻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오늘날 부인들이 자기 남편을 주님같이 경외하고 있습니

까?

어느 남편이 아내의 신일 수가 있습니까?

아니지요.

부부란 동등한 위치에서 같이 사랑하고, 같이 존중하는 대상입니다.

성경은 어찌하여 ‘남편은 아내에게 그리스도가 교회에 사랑하듯 하

고, 아내는 남편에게 주를 경외하듯 복종하라’고 하셨을까요?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

할지니라” (엡5:24)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엡5:25)

실제로 어떤 부부가 이 말씀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구절 앞에 “그러나” 『그러나』라는 접두어를 두셨던 것

입니다.

27

“너희 부부들은 진정한 표상이 아니기에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

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 된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하라”

왜 『그러나』를 앞에 두셨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일반 부부들의 경우 그럴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와 교회

의 관계를 증거 하는 증인의 자리에 서게 될 때에는,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참 뜻을 알도록 허락된 여러분에게, 다음

시간에는 그 ‘큰 비밀’을 더 확실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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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잘 살고, 우리 복 받고, 우리 행복하고, 우리 죄 안 짓고, 우리 천

당 가도록, 우리만 위하여 하나님이 계신 줄 생각했었습니다.

심지어 천국에 관한 성경 말씀까지도 우리에게만 적용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만나고 보니, 성경은 우리 잘 되라고 있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큰 비밀을 허락하신 백성들에게 알려주시

기 위해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천국을 증거 하기 위하여 성경대로 살아야할진대, 우리는

그동안 신앙의 진정한 목적은 망각하고, 내게 유익한 것 중심으로만

살아왔습니다.

‘둘이 합하여 한 몸’이란 말씀도, 우리 부부에게 해당되는 것인 줄 알

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랑 되신 예수와 그의 신부인 우리가 한 몸임을, 그래서 세상

의 어느 누구도, 그것이 마귀라 할지라도 이 관계를 나누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와 천국에 대하여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오, 주여!

29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계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사

는 것도 주를 위하여 사는 것이며, 죽는 것도 주를 위하여 죽는 것임

을 알았사오니, 우리 신앙이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천국 이를 때에는 주님의 뜻을 모두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렸나이다.

아멘, 아멘.

30

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듣는 자들이 중요

한 내용을 건성으로 듣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하는 자는 이런 현실이 안타깝고 답답하여 몇 번씩 강조하나, 결

과는 언제나 마찬가지일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께서 열어주셔야만 이해할 수 있으며, 하

나님의 선택을 타고난 자라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갈렙

목사님의 말씀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애석하나, 하나님의 권한이시니 어쩔 수 없습니다.

부디 갈렙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이들은, “타고난 자”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31

장 3

32

제 Ⅲ 편

갈렙 3927 ‘큰 비밀’ - 인자론 (3) -

“이러한즉 둘이 아니요 한 몸”

본 문 : 에베소서 제 5 장 제 31 ~ 32 절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

가 될찌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하와의 죄, 아담의 죄 되다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먼저 먹은 것은 분명 하와였음에도 불구하고, 성

경은 그녀가 준 것을 받아먹었을 뿐인 아담을, ‘원죄인’으로 단정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본문32절) 말씀하는바 “이러한즉 둘이

아니요 한 몸”(마19:6)이라고 했습니다.

그 ‘한 몸’인 당사자는, 아담과 하와라고 했습니다.

본편에서는 그리스도와 우리가 어떻게 ‘한 몸’이라는 것인지, 비밀

로 해온 그 내막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엡1:22b)요, ‘교회는 그의 몸’(23절)이라

는 말씀을, 깨달음에 따라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7)

에덴동산의 그 실과는 누가 처음 따먹어서, 그야말로 ‘정녕 죽을 죄’,

일컬어 ‘원죄’를 지었습니까?

알고 계신대로 아담이었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원죄의 법을 어긴 자는 여자였습니다.

33

성경은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6b)고 되어있습니다.

여자가 먼저 따먹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모두들 아담더러 ‘원죄인’, 『원죄인은 아담』이라고 단

정하는 것일까요?

혹 누구의 말처럼 ‘하와는 모르고 먹었고, 아담은 알고서 먹었기 때

문’에 아담이 ‘원죄인’이 된 것입니까?

아니올시다.

여자가 뱀에게 한 말을 보면, 하와가 결코 모르고 먹었던 것이 아니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동산 나무의 실과는 모두 먹을 수 있으나, 동

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

다. 먹으면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 (창3:2b~3)

하와의 이 말에서 우리는, 아담도 하와도 그 실과를 먹으면 죽는다

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음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말 중 “우리가”(2절), “너희가”(3절)라는 복합 단어를 쓴 것

만 보아도, 아담이 먼저 알고 하와는 나중에 알았던 것이 아니었습

니다.

34

그렇다고 하와가 아예 몰랐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둘이 함께 듣고 같이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와가 모르고 실과를 먹었다는 것은, 바른 해석이 될 수 없

습니다.

뱀(마귀)이 여자에게 말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먹는다하여도 너희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

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오히려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선

악을 알게 될 것이라.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에게 먹지 말라고 하셨

던 것이다” (창3:4b~5)

원죄의 요인이 된 마귀의 이 유혹을, 누가 먼저 받아서 시험에 들었

습니까?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하여’, 여자 저 혼자 탐하여 먹었다는 것 아닙니까? (창3:6)

성경도 이를 부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에서도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

에 빠졌음이니라”(딤전2:14)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35

실제로 아담은 원죄의 요인이 된 뱀의 유혹과는 상관이 없었습니

다.

하와가 혼자 먹고 나서 자기에게 주니, 아담은 체념한 듯 어쩌면 마

땅한 것처럼 받아먹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바 팩트(fact)입니다.

그런데도 모두들 여자가 지은 죄를 아담의 죄처럼 단정하고 있습니

다.

어디 우리만 그렇게 알고 있습니까?

성경도 ‘원죄인은 하와가 아니라 아담’ 『원죄인은 아담 한 사람』

이라고 기록했습니다.

“한 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롬5:12)

뱀의 꾐에 빠져 범죄한 것은 여자라고 하면서도, 죄인은 남편이라는

것이 아닙니까? (롬5:14)

쉽게 이해되십니까?

잘 안되지요.

그래서 아무나 받을 수 없는 ‘큰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죄는 여자가 지었으면서도 통째로 남편의 죄가 되어버린 이 사실이,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36

하와의 죄가 아담의 죄로 넘어가는 그런 일은,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때에만 가능합니다.

사람이 나누지 못할 ‘한 몸(마19:6)’ ‘한 육체’(본문31절)가 되어야

만, 여자의 죄가 남자의 죄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자가 여자의 머리 되어 여자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을 때, 이러한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면, 여자는 남자의 지체가 되기 때문입니

다.

머리인 아담이 여자의 죄를 책임지기 때문에, 하와가 지은 죄가 공

식적으로 아담의 죄로 나타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와는 본디 남자의 옆구리에 있는 갈비뼈, 곧 남자 지체의 한 조각

으로 만들어진 여자였습니다.

아담의 머리도 아니요 몸 전체도 아닌, 다만 한 부분에서 나온 존재

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둘이 합해져야만, 온전한 ‘한 육체’가 될 수 있습니다.

둘이 합한 ‘한 육체’는 누구 명의가 되겠습니까?

당연히 머리인 남자의 것이 됩니다.

영광도 남자의 것이요, 책임 또한 남자의 것이 됩니다.

37

아담이 하와가 준 선악과를, 죄인 줄 알면서도 마땅한 듯 받아먹었

던 것은, 자기 지체가 한 일을 머리가 아니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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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우리 죄를 대신 지심은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표상으로 아담 하와를 만드셨다. 여자의 죄를

머리인 아담이 담당했듯이, 우리의 머리인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셨다.

아담과 하와 두 남녀는 ‘제 뼈 중의 제 뼈요, 제 살 중의 제 살’이었

기 때문에(창2:23), 그야말로 벌거벗고도 전혀 부끄럽지가 않았습

니다. (25절)

제 뼈요, 제 살인데 무슨 부끄러울 여지가 있었겠습니까?

또한 ‘한 몸’(24절)이며, 똑같은 DNA를 가진 ‘한 육체’끼리, 무슨 애

정이 우러나와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라고 했겠습니까?

남성이 여성을 보고 느끼는 그런 감정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보태어 설명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그대로 말하고 믿어야 합니다.

『제 살 중의 제 살, 제 뼈 중의 제 뼈이므로 부끄러워할 것 없는 아

담과 하와』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똑같은 DNA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연합하여 한 육체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동침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39

‘한 몸’인 두 사람의 동침이, 어찌 가능이나 했겠습니까?

서로를 상대하여 성적 욕구가 일어났겠느냐 그 말입니다.

남녀의 동침이란, 그런 상태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그 저주로 에덴에서 쫓겨난 다음, 즉 마귀

의 역사로 저들이 타락한 후에야 부끄러운 줄도 알게 되었다는 것

을,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때서야 육체의 한 부분을 가려야 하는 변화가 왔더란 말입니다.

‘한 몸’이던 좋은 때가 한참 지난 창세기 4장으로 넘어가서야, 아담

과 하와는 동침하여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창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동침하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 전부터 동침하던 부부였으면, 그냥 ‘가인과 아벨을 낳았다’고 했

을 것입니다.

굳이 『동침하매』라고 밝힌 것을 보면, 그 전까지는 동침하지 않고

지내다가, 그때서야 비로소 같이 잤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아담과 하와는 그야말로 “표상”이었지, 진상은 아니었습니다.

“진상(眞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뿐입니다.

40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이다 보니, 표상인

아담도 하나이어야 했습니다.

그럴진대 오늘날의 부부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와 교회’를 나타내는

표상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표상할 대상으로, 아담과 하와

한 커플만 만드셨던 것입니다.

영이 유여하신 하나님이실지라도(말2:15), 의도적으로 아담과 하와

한 케이스만 지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표상을 염두에 두고서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 부부들이 아담 부부와 같다고 여기는 것은, 성경과 맞

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에게서 나온 하와처럼,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난 피조물

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5:17)

우리가 있어 예수님이 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형상과 그의 모양을 따라 지음을 받고,

여호와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생긴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성경도 분명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났다고 했습니다.

41

하와가 아담에게서 난 것처럼, 우리도 본디 『그리스도 안에서 난』

그의 피조물이요, 그의 조각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가리켜, ‘예수의 신부’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친다면 예수님은 당연히 우리의 신랑, 곧 남편이 되십니다.

예수와 우리가 신랑 신부로 ‘한 몸’이 되었으니, 누가 우리의 머리이

겠습니까?

당연히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십니다.

따라서 신부요 아내 된 우리의 죄는, 머리이신 예수의 죄가 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죄로 인정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셨

던 것입니다.

『이 엄청난 진리, 이 엄청난 큰 비밀』이, 지금 우리에게 밝혀지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겠다며 부탁하신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

씀입니다.

42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는 그 성령을 받아, 그분의 역사하심을 따라

온 세상, 온 시대를 초월하여 지역의 막힘없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씀

이 아닙니다.

‘증인’이란 ‘증거를 가진 자’를 뜻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있는 수준을 넘어, 『진리에 대한 증거를 가진 자』

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와 합한 거룩한 ‘한 몸’, ‘한 육체’에 대한 증거

를 가진 자를 ‘증인’이라고 합니다.

온 천하 어디든지 다니며,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증거하는 그

런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온 천하에 증거’ 중 하나로, 오늘날 미국 아내들의 사례를 들 수 있

습니다.

이 시대 최강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은, 언제 어디서나 여자를 앞세

워 우대하는 레이디 퍼스트(Lady first) 에티켓을 지키는 나라입니

다.

43

그럼에도 결혼과 동시에 아내가 가지고 있던 성(姓)은 없어지는 나

라이기도 합니다.

소위 ‘이씨, 김씨’하던 아내의 성은, 남편과 연합하면서 남편의 성에

속하게 되는 것이 미국법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아내들은 남편 명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민주국가답지 않은 법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현시대 최강국이라는 나라에, 희한하고 상식답지 않은 이런 일이 법

으로 정해져있으니 말입니다.

지금 미국의 이러한 실정을 모르는 나라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증거가 땅 끝까지 나타날 것이라더니, 그

야말로 남자가 여자의 머리 되는 사례를, 미국을 통하여 전 세계가

알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합하매, 여자의 것이 남자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표상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이시며, 우리는 그의

지체인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죄를 예수님이 지신 사실을 증거 해주는 것이, ‘그리스도와 교

회’의 관계라는 말입니다.

이 증거가 성령의 역사 속에 나타난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44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이 비밀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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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담과 하와의 일이, 왜 큰 비밀로 숨겨져 왔는지를 이제 알았나이

다.

본 강해를 통하여 표상인 아담이 증거 하는바, 그 진상인 그리스도

와 교회에 대하여 알게 되었나이다.

‘그리스도는 머리요, 우리는 그 지체’라고 막연하게만 알아왔으나,

성경을 다시 헤아려보니 그저 그런 것으로 믿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나이다.

우리의 죄가 왜 예수님의 죄 되어 짊어져야 하셨는지, 왜 우리를 대

신하여 십자가에 올라가셨는지를 알게 되었나이다.

우리는 본디 하나님과 하나였으나, 중간에 마귀가 끼어들어 잃어버

린 지체가 되었다가,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마귀로부터 벗어나 주

님과 한 몸이 된, 이 비밀의 내용을 알아가고 있나이다.

오, 성령이시여!

우리가 이 비밀을 받을만하기에 알게 해주시는 것입니까?

허락된 자여서 알게 해주시나이까?

하오면 더욱 확실히 알게 해주시사,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4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아멘.

47

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흔히 결혼식 때 인용 성구로 쓰고 있는, “둘이 합하여 한 몸”이라는

말은 다분히 억지스러운 내용입니다.

한 몸, 곧 하나의 육체로는 동침이나 생산이 불가능합니다.

단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이해시키기 위해, 혼인과 부부의

방식으로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다 아는 내용인 것 같으면서도 뭔가 불투명했던 이 “큰 비밀”을,

갈렙 목사님께서는 ‘인자론’을 통하여 명확히 설명해 주십니다.

하와는 본래 아담의 갈비뼈 적출로 탄생된 지체의 한 부분, 곧 아담

과 한 몸이었습니다.

타락 후 그 둘이 분리된 최초의 증거가, 부끄러움과 동침입니다.

하나님은 두 남녀를 다시 한 몸 되게 하시어, ‘본래의 사람’으로 회

복시키셨습니다.

그것이 구원이고, 교회의 탄생인 것입니다.

48

장 4

49

제 Ⅳ 편

갈렙 3927 ‘큰 비밀’ - 인자론 (4) -

“이러한즉 둘이 아니요 한 몸”

본 문 : 에베소서 제 5 장 제 31 ~ 32 절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

가 될찌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모친 마리아

‘살리는 영’ 예수는 죄인을 살리기 위하여 몸을 입어야 했으며, 이에 마리아

가 쓰임을 받았다. 그렇다고 그녀가 우리 죄를 예수께 넘겨준 것은 아니다.

첫 사람 아담은 본래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였습니다. (고전

15:47a)

그는 범죄함으로(창3:6) 결국 ‘사는 영’, 곧 ‘살림 받을 영’이 되었습

니다. (고전15:45a)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나서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고전15:47b)

그분은 끝까지 범죄치 아니하셨으므로, ‘살리는 영’ 곧 ‘살려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고전15:45b)

예수께서 ‘살려주는 영’으로 오시어 ‘사는 영’, 곧 ‘살림 받을 영’을

살려 주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갖추어야 될 요건들이 있었습니다.

그 요건들을 미리 표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롬5:14b)

살리는 영 예수는, 그대로 따라하셔야만 했습니다.

50

우리와 예수님이 어떤 방식, 어떤 관계, 어떤 단계를 거쳐야, 하와의

죄가 아담에게 넘어간 것같이, 우리의 죄가 예수님에게 넘겨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여야 우리의 죄가 예수님의 죄 되어, 죄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몸을 만나야 했습니다.

몸을 입으셔야 『몸을 입어야 하시기 때문에』 마리아의 몸을 빌려

그 태에서 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리아와 예수님이 ‘한 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죄가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께 넘어감으로, 예수님이 우리 죄

를 짊어지게 된다는 그런 단계, 그런 절차를 거친다는 말이 아닙니

다.

만일 마리아가 인류 최악의 죄, 가장 큰 죄라도 다 커버할 만한 어

머니였다면, 우리의 죄가 마리아를 거쳐서 예수께 넘어갔다고 할 수

도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에게 ‘거룩할 성’자를 붙여, ‘성모(聖母)’라고

호칭합니다만, 예수님이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것을 가리켜, ‘거

51

룩한 표상의 단계’라고 말하기에는, 마리아의 의로운 수준이 부족하

지 않았을까요?

비록 완벽한 성녀가 아니었을지라도, 마리아는 본인의 죄 문제조차

해결할 수 없는 한낱 모친이었을 뿐입니다.

‘부모가 신 포도를 먹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지 않다’(렘31:29)고 하

셨습니다.

또한 ‘아들은 아비나 어미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고, 아비나 어미

또한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한다’(겔18:20)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마리아와 예수님을, ‘표상’인 아담과 하와의 관계

와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와의 죄가 아담에게 넘어갔던 것처럼, 온 인류의 죄가 모친 마리

아에게서 예수께 넘어갔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 말입니다.

하와의 죄를 그대로 내리받은 아담과 마리아였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는 영’인 마리아가, 어찌 인간의 죄를 예수께

넘겨줄 수 있다고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도 그렇게 될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52

죄는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

니라고, 하나님이 정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가 성녀든 아니든 상관없이, 마리아와 예수는 그럴 수 없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얻은 ‘특별한 여인’이었습니다. (눅

1:30b)

정혼 중에도 동침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마리아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사내를 모르는 의로운 여인이었습니다. (눅1:34)

동정녀인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 예수를 자기 태에 담았

습니다.

그럴 경우 사랑하는 남자와의 정혼이 파경에 이를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

다”(눅1:38) 말했던 여인이었습니다.

이를 볼 때 마리아를 ‘성모’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불의한 ‘사람의 딸들’(창6:2a)에 속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의로운 ‘하나님의 아들들’ 반열에 속한 여인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53

그렇다고 해서 아들과 어머니라는 이유로, 인류의 추악한 모든 죄를

예수께 다 넘겨주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부모라는 이유로는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경적으로도 아닙니다.

아무리 수준 있는 의로움을 소유한 마리아라 할지라도, 인류의 모든

죄를 다 커버할 상징적 대상은 아니다 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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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동침치 않고도 ‘한 몸’

아담과 하와는 동침하기 전부터 ‘한 몸’이었다. 이로써 여자의 죄가 남자에게

넘어가게 되었으니, 이 부부를 가리켜 ‘그리스도와 교회의 표상’이라 하셨다.

하와의 죄가 아담에게 이전되던 그때에 이 둘은, ‘부모를 떠나있었

다’고 했습니다.

‘부모를 떠나 둘이 한 몸을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창2:24)

무슨 뜻입니까?

부모를 떠난 후에 일어난 죄 문제는, 부모와 관계가 없다는 뜻입니

다.

아담 하와 저희들끼리 만든, 저희의 일이었다는 말입니다.

허면 죄를 주고받았던 아담 하와(표상)처럼, 예수님(진상)은 누구의

죄를 받아주어야 하셨습니까?

표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표상과 진상은 결코 다르지 않다’ 『진상과 표상은 다르지 않다』

고 하셨으니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 사이에 죄 주고 죄 받았던 그런 일은, 부모와 자식 간

에는 생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55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나 볼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 관계에서나 생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엡5:32)’의 관계는 주님과 성도, 다른 말로 ‘신랑

과 신부’, ‘남편과 아내’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신분이나 다른 명칭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그런 관계입니다.

표상으로서 이 진상, 진상으로서 이 표상이 하나라는 의미로, ‘남편

과 아내’, ‘신랑과 신부’라고 빗대어 표현했던 것입니다.

항간에는 ‘예수에게는 아내가 있었으며, 그 아내는 막달라 마리

아’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스러움과 권위를 떨어뜨려, 성도들로 하여금 실망하게

할 요량으로 퍼뜨린 말일 것입니다.

이 설에 교계는 발칵 뒤집혀 즉각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유언비어다. 소설 같은 왜곡이다. 예수께는 아내는커녕 그 비슷한

존재도 없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아내다, 아니다’ 하는 소문의 진상을 살

펴보면, 육체적 동침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법적인 부부란, 어쩌다 바람피우다 동침한 그런 관

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56

그런 부부는 ‘한 몸’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표상이 말하는 ‘한 몸’, 즉 『사람이 나누지 못할 그런 한 몸』이 아

니란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경우, 남편과 아내라는 부부 상태에서 죄가 오고갔

습니다.

아내의 명예가 따로 없이, 남편 명예가 아내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둘이 동침하여 ‘한 몸’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잘 보면 이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동침하기 그 이전부터 이미 ‘신랑 신부’, ‘남편 아내’

관계였습니다.

법적으로도 인정받는 정식 부부였습니다.

아내의 죄가 남편에게 이전 된 것도, 남편의 명예가 아내의 것이 된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동침 이후에 생긴 것은 아니었습니

다.

동침하기 그 이전 상태에서, 그러나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에서 하와

의 죄가 아담에게 이전되었던 것입니다.

정작 이 둘이 동침하게 된 것은 그 후였습니다.

57

남편과 아내로서 죄를 주고받은 후였다고, 제3편에서도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쫓겨난 후에야 비로소 동침하였고, 이로서

가인과 아벨을 나았다고 했습니다. (창4:1)

그렇지 않고 에덴동산서부터 동침해온 상태였다면, 그냥 ‘가인과 아

벨을 낳았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동침하매 아들을 낳았다’고 기록

했겠느냐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 전에는 둘이 동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함유하는, 그런 문맥과

흐름이라고 설명 드렸습니다.

본 시리즈 제1편에서 “어미의 태로부터 고자 된 자도 있으며, 사람

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 된 자도 있다”(마

19:12)는 말씀을 소개했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왜 ‘19금’ 같은 민망한 말씀을 하셨을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 말씀은 예수님을 시험하러 나온 바리새인들에게 하셨던 것입니

다.

천국 비밀을 제칠 계명의 안목으로만 보고서, 호들갑 떨던 바리새인

들에게 응대해주셨던 말씀이었습니다.

58

민망해 할 그런 수준의 말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받을만한 자라야 받을 수 있는 말씀이요, 허락하신 자라야 알 수 있

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왜 마태복음 19장12절의 말씀을 하셨는지, 그 말씀이 어

떤 문제를 풀어줄 것인지, 앞으로 이어질 ‘큰 비밀’들을 기대해 보셔

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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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담과 하와가 한 몸인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말씀을, 오늘

날 결혼하는 남녀들에게 주시는 내용으로 여겨왔나이다.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아내를 내어보냄이 옳은지, 그른지’를 질문했

던 바리새인들에게, 제칠 계명에 준하여 주신 대답인줄만 알았나이

다.

예수님을 곤란케 하고자 했던 그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본

시리즈의 본문대로 ‘큰 비밀’이었다는 것을 당연히 몰랐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 즉 예수님과 우리가 어떤 절차를 밟아 하나가 되

었으며, 이 관계는 누구도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하나 밝히 알아가고 있나이다.

오, 주여!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를 알게 해주시나이까?

어찌하여 이 비밀을 허락하셨나이까?

예수님과 우리가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

고 무엇이겠나이까?

우리로 이 비밀을 알게 해주셨으니, 참으로 황송하고 감사하나이다.

60

성령이여 더욱 충만, 충만히 임하시사 알게 해주신 만큼 깨달아서,

주께 영광 돌리며 겸손하게 살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61

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우리는 성경의 비밀을 깊이 알려고 하지를 않고, 그저 내게 유익하

다고 생각되는 내용만 발췌하여, 단순하게 믿고 싶어 합니다.

가벼운 지식은 불안한 믿음을 초래합니다.

갈렙 목사님은 우리의 믿음이 유아 수준에서 벗어나, 성숙한 신부

의 자격을 갖춘 다음, 신랑 예수와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이 말하는 ‘한 몸’ 개념은, 부부간의 동침이나, 태아와 모친 간

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모친 마리아는, 모든 인류의 죄를 전가시킬 수 있

는 대표자가 될 수 없습니다.

62

장 5

63

제 Ⅴ 편

갈렙 3927 ‘큰 비밀’ - 인자론 (5) -

“이러한즉 둘이 아니요 한 몸”

본 문 : 에베소서 제 5 장 제 31 ~ 32 절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

가 될찌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부부란

똑같은 DNA를 가진 아담과 하와가 동침치 않았음에도 ‘부부’라 했다. 마리

아와 요셉 역시 무동침했을 때에 ‘부부’라 했으니, 우리의 개념과는 다르다.

오늘은 약간의 복습을 하면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본 주제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

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마19:6)

이 말씀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바리새인들이 물었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버린 것이 옳습니까?”(마19:3)라는 질

문에 대한 응대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무엇이었습니까?

본래 사람을 지으신 이가, 아담과 하와만큼은 일반 남녀와 다르게

여차여차 만드셨습니다.

단지 이 둘에 관하여는 “이러한즉”, “그러하기 때문에 이 둘은 한 몸

인지라. 이를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19:6)

말씀을 마치고는 갑자기 “너희는 이 말씀도 읽지 못하였느냐”고 추

궁하셨습니다. (마19:5)

64

당시 듣고 있는 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해서, 일

반 부부에게 하시는 내용이라 착각하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들이 어찌 그럴 수 있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에, 백성들은 혼란

스러워 슬그머니 현장을 떠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이 아내를 그렇게 내버릴 것이면, 처음부터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10절)라고 말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의도와 제자들이 알고 있었던 지식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시험하는 바리새인들은 물론,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도 남편과 아내

에 대한 성경적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입니

다.

동침함으로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성립되는 줄 알고 있었기에, 이런

어이없는 사달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65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남편과 아내란, ‘시집도 아니 가고 장가듦도

없는 천국 개념의, 즉 동침 없는 부부’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여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는”(눅20:35b) 『시집장가

가는 일이 없는 무동침한 부부』를 두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백성들과 제자들은, ‘남편과 아내가 합하여 한 몸’(창

2:24)이라는 구절을,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눅

20:34), 즉 저희들 부부에 갖다 붙여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저들 부부에 관한 말씀인 줄 오해했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유일하신, 그야말로 둘이 합하여 ‘한 몸’인 하

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뜻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두 분은, 결코 사람이 나눌 수 없는 ‘한 몸’이십니

다.

반면 세상의 부부들은 ‘한 몸’이 되려고 해도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도 성경이 말한 그런 부부인줄 알고 살아

왔다는 것 아닙니까?

따라서 예수님과 저들 사이에는, 어이없고 혼란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66

성경이 말하고 있는 부부란, 세상 남편과 아내와는 다릅니다.

다음 세상인 천국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한 자

들의 ‘한 몸’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눅20:35)

장가가고 시집가 동침하는, 그런 것과는 완전히 별개입니다.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와 교회’를 말한 것입니다. (엡5:32)

‘그리스도와 교회’를 연관하여, 남편과 아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

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한 몸 됨』이, 저들 남녀로서의 하나 됨과 어

찌 같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본 시리즈에서 말씀드렸던 내용들을 상고해보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한 몸’ 되었던 그 시점을 살펴보면, 저희 둘이 동침

한 것과는 상관없는, 그런 때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동침하지 않을 때부터 저들은 ‘남편과 아내’, 부부였습니다.

저희 둘도 그렇게 알았으며, 하나님도 그리 아셨습니다.

성경적 부부관계였던 아담과 하와는, 동침하고 싶은 욕정이 일어날

수 없는 그런 형편이었습니다.

67

남편이 아내를 볼 때 제 뼈요, 제 살, 제 DNA, 즉 바로 자기였으니,

어찌 이성으로 느껴졌겠습니까?

아담이나 하와 둘 다는 처음 만날 때부터, 서로가 부끄러운 줄을 몰

랐습니다. (창2:25)

남녀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부끄럽지를 않았습니다.

만약 남자는 남자대로의 뼈를 가지고, 여자는 여자대로의 자기 뼈를

가지고 있었으며, 남자 살과 여자 살이 각기 다른, 다시 말하여 서로

의 DNA가 달랐다면, 남자와 여자로서 어찌 약간의 부끄러움조차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처음부터 제 뼈요 제 살, 제 DNA인 바로 자기와 합하여 ‘한

몸’이 되었던 고로, 아담과 하와는 서로에 대하여 조금도 부끄럽지

가 않았던 것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한 몸, 한 육체’였기 때문에, 아내의 죄는 자동적으로 남편에게 넘어

갈 수가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의 이전이 가능한 남편과 아내, 『죄의 이전이 가

능한 단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부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68

남편이 아내를 완전히 책임진다는 개념은, 세상의 남녀 사이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치입니다.

이는 하늘나라의 개념, 『하늘나라 개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측면에서, 하늘나라 개념과 관점을 기록한 책입니

다.

이것을 이해하고 들어가야 됩니다.

아직 동침하지도 않았던, 아니 하려야 할 수 없었던 그런 상태를 가

리켜, 성경은 이미 ‘둘이 합하여 한 몸’이라고 했습니다.

그때의 아담과 하와를 ‘남편이요 아내’라고 했습니다.

동침과 상관없이 부부가 될 수 있는 케이스는, 원래부터 DNA가 같

은 ‘한 몸’이 합하는 경우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그의 남편 요셉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

다.

마리아는 정혼 중에 있던 요셉과 동침함으로, 남편과 아내가 된 것

이 아니었습니다.

동침 그 이전에 이미 남편이고 아내였다는 것을, 앞에서도 언급해드

렸습니다.

69

요셉은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리아의 수태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요셉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끊고자 했습니다. (마1:19)

마리아와 요셉이 동침 전이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네 아

내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20절)고 하셨습니다.

하늘나라 개념의 남편과 아내는 동침했느냐, 안 했느냐와 상관없다

는 뜻이 아닙니까?

천국 입장에서 보는 남편과 아내는, 세상 상식이 말하는 부부 관계

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본 시리즈 전편들에서 확인한바 있으며,

본편에서도 다시 한 번 기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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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예수’를 이루기 위하여

‘예수’(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를 예수되게 하기 위하여, 요셉은 마리

아가 예수를 잉태하고 있는 동안 동침하지 아니함으로 말씀을 이루어드렸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 태중에 있는 아이 이름을, ‘예수’로 주셨습니

다.

그때 ‘예수’라는 의미가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1:21)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는 그 이름대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셔야 했습니

다.

그 역사에 요셉이 일조할 수 있었던 것은,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마

1:24) 행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하나님 사자의 ‘분부대로’ 『분부대로』마리아와 끊지 않고,

조용히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낳기까지는 동침치 아니했습니다.

이로써 아이를 ‘예수 되게’ 해드렸던 것입니다. (25절)

요셉과 마리아가 『동침치 않고 아들을 낳게 되매』 ‘예수’가 되었

다 그 말입니다.

71

만일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고 있을 때 요셉과 동침했더라면, 그

아들로 예수되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동침치 않고 아들을 낳으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대로 ‘예수라 하니

라’가 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요셉이 의롭지 못하여 이러한 사실을 몰랐거나, 또는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 욕정을 이기지 못하여 동침했더라면, 예수가 예수 될

수 없었습니다.

세상 상식에 따라 행동했더라면, 당시 요셉은 얼마든지 마리아와 동

침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남편과 아내로서 여행도 했겠다, 호적에도 올렸겠다, 데려와

같이 살고 있었으니 동침한들 무슨 문제가 되었겠습니까?

법적으로나 세상 상식으로 볼 때,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자였습니다. (19절)

마리아 태속에 있는 ‘예수’가, ‘저희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드려야 된다고 생각했습니

다.

그는 태중에 있는 아이가, ‘죽을 영들을 살리실 자’라는 말씀을 심중

에 담고 있었습니다.

72

분명 세상의 아이들과 다른 아이일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로 태어나게 하기 위하여, 요셉은 아이를 낳기까지 동침

치 아니했습니다.

‘예수’가 되실 수 있도록 일조했던 것입니다.

예수의 부모마저도 ‘예수’를 가능케 하기 위하여 자기들의 육체를

절제하였을진대, 하물며 인류를 구원해야 할, 다시 말해서 ‘예수’를

하셔야 할 당사자께서는 오죽이나 철저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은 출생 후부터 죽으실 때까지 당신의 부모처럼, 아니 그 이

상으로 철저하게 절제하셨습니다.

부모가 그리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뜻, 곧 ‘예수’를 이루어드리기 위

하여 『예수를 이루기 위하여』육체에 관한 것 하나하나까지 완전

하셨습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성경을 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과 우리를 ‘신랑과 신부’로 표현했습니다.

구약에서는 ‘남편과 아내’로 표현되어있습니다.

이렇듯 남편과 아내로, 신랑과 신부로 예수님과 ‘한 몸’이 되었으니,

우리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자들이 아닙니다.

(요1:13)

73

육체적으로 ‘한 몸’ 된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로 난, 영적으로 ‘한 몸’이 된 것입니다.

세상의 부부처럼 육체가 아닌, 영적으로 하나 된 우리와 예수라는

말입니다.

아담의 아내 이름은 ‘하와’입니다. (창3:20)

‘예수’라는 의미 때문에 ‘예수’ 이름을 가지게 되었듯이, ‘하와’도 그

이름에 ‘모든 산 자의 어미’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

이더라” (창3:20)

아담과 하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표상’이라고 했습니다.

표상이 있는 한, 실상도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실상이라는 것이 정말 있다면, ‘제2의 하와’도 존재해야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누구일까요?

우리의 대모라 할 ‘제2의 하와’는 과연 누구일까요?

이어지는 제6편과 제7편에서 그 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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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허락받은 자여야, 말씀의 비밀을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자격을 갖춘 자가 아니면, 감추어두신 ‘큰 비밀’, 곧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비밀을 알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아가 허락 받은 자라도,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라시는 하

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오, 주여!

본 시리즈를 통하여 우리가 알던 상식이, 주님의 말씀과 크게 다르다

는 것을 헤아리게 되었나이다.

그리스도의 신부된 우리로 하여금, 증인들이 증거하는 바가 무엇인

지를 차츰 알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한 몸 되게 한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말씀

이, 어떤 표본을 두고 하신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펼쳐질 강해를 통하여, 이 큰 비밀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인

도해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아멘.

75

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우리가 아는 ‘부부’란 이성간의 연합, 곧 동침하는 관계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동침이 불가한 상태일 때, 이미 하나님께서는 부부

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부부란 한 몸, 즉 한 개체를 뜻합니다.

생물학적,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구원과 교회론의 문제입니다.

막연한 교회 관으로는 그리스도와 한 몸임을 증거 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갈렙 목사님의 강해를 통해 보다 깊은 하늘나라의 비밀을 이해할

때 진정한 교회,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76

장 6

77

제 Ⅵ 편

갈렙 3927 ‘큰 비밀’ - 인자론 (6) -

“이러한즉 둘이 아니요 한 몸”

본 문 : 에베소서 제 5 장 제 31 ~ 32 절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

가 될찌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표상이 말하는 ‘그리스도와 교회’

성경의 모든 증거나 증인들은 그리스도의 한 부분만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표상’이라는 아담조차 예수님의 전부를 증거 하는 표상이 될 수는 없었다.

아담과 하와를 표상으로 한 것이, ‘그리스도와 교회’라고 하셨습니

다.

그렇다면 하와가 자기 죄를 아담에게 넘겨주었던 것처럼, 자기의 죄

를 예수께 넘겨줌으로, ‘주님 신분=내 신분’ 할 수 있는 ‘제2의 하

와’도 있었을까요?

전편에서도 말씀드렸거니와, 부모와 자식 간에는 죄를 넘겨주고 넘

겨받는, 그런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겔18:20)

아비가 신포도주를 먹었다고 해서, 아들의 이도 시는 법은 없다고

했습니다. (렘31:29b)

죄를 넘겨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는, 아담과 하와의 경우에만 가능

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귀하의 깨달음을 위하여 [인자론] 앞부분에서는 주로 그리스도 이

전, 즉 ‘표상’에 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78

본편에서는 그 이후에 이루어진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증인

들과 증거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표상이 말하는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고 증인들이 증거 하는바 ‘그

리스도와 교회’, 이렇게 연결하면 확실해질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경은 다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라”(요5:39b)고

하셨습니다.

‘다’라는 이 말씀은, 예수에 대한 여러 증거들을 다 모으고 다 합해

야만, 비로소 전부를 설명할 수 있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성경 속의 그 어떤 증거나 그 어느 증인일지라도, 예

수님의 한 부분만 나타낼 뿐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증거들 하나하나는 ‘부분적으로 보고, 부분적으로 예언’할

뿐입니다. (고전13:9)

‘성경이 다 내게 대하여 말하는 것’이라는 말씀 속에는, 어떤 증인일

지라도 그리스도의 일생 전부를 증거 할 수 없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 말입니다.

누구에게도 그만한 능력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증거도 예수님의 한 부분만 표현하는데 기여할 뿐이라는 사

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79

예컨대 다윗왕의 왕성했던 왕권은, ‘만왕의 왕’이신 주님의 영광이

어떠한지를 증거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또 다른 행위, 곧 신복의 처 밧세바를 취하여 남모르

게 임신시키고, 이를 덮을 양으로 그녀의 남편을 강제로 전쟁터에

내보내 죽게 했던 그런 모습은, 그리스도를 위한 증거가 될 수 없습

니다.

아담과 하와 두 사람에게는, 동침이 불가능한 ‘제 뼈, 제 살’로 느껴

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시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남편과 아내’라고 부르셨습니다.

동침과는 상관없이, ‘남편과 아내’로 그 신분을 정해주신 것입니다.

하와는 ‘모든 산 자의 어미’(창3:20)로서, 인류의 죄를 온전히 다 묶

어 남편 아담에게 이전했습니다.

이로써 후에 나타날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표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담도 결국 하와가 먹었던 실과를 먹음으로 스스로 죄인이

되어, 그 저주로 둘은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에덴 밖으로 나와서야 두 사람은 비로소 동침하게 됩니다. (창4:1)

이로써 가인과 아벨을 낳았으니, 어찌 그런 삶까지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표상’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80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았으되, 죄는 짓지 아니하

셨습니다. (히4:15)

죄와 연결되는 실과를 먹은 아담과는 달리, 어떤 유혹에도 어떤 시

험에도 죄를 짓지 않으셨습니다.

이른바 ‘사람의 딸들의 어미’였던 하와와 같은 제2의 하와가, 설령

주님에게 있었다 할지라도, 예수께서는 ‘사람의 딸들’ 중 그 누구의

육체도 취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창6:3)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

육체를 취하면, 썩어져야 될 육체가 됩니다.

흙으로 지어졌으니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는 누구나 예외가 없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도, 보지도 않으시는 분입니

다. (행13:35)

썩을 육체가 아니시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 몸 그대로 살리심을 받아, 신령한 몸이 되셨습니다.

바로 그 몸으로 천국에 오르셨으니,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던 아

담 하와의 동침 인생이, 어찌 예수께 가당키나 한 일이겠습니까?

81

따라서 아담 하와의 일생 전부가, ‘그리스도와 교회’를 증거 하는 것

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증거나 어떤 말씀도 다 합해야만 『모든 증거들을 다 합해야

만, 그리스도를 온전히 증거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증인들이 말하는 증거들은 부분적으로만 부합될 뿐, 전부를

증거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개인도 그렇습니다.

한 사람의 평생 전체가, 주를 증거 하는 삶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뜻에 부합하는 일을 할 때에만, 다시 말해 일생 중 그 부분만

증인의 삶이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그리스도를 다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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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증인들이 증거하는 ‘그리스도와 교회’

성령의 역사하심 따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증거들이 땅 끝까지 이르고 있으

니, 그 예가 미국 아내들의 신분이며, 우리 각인에게 나타나는 증거들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하셨습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가 된다는 수준을 넘

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주변에 나타내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그렇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따라서 오늘날 우리 인생 가운데에도, 부분적으로나마 예

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된 교회에 대한 증거 중 하나로, 미국 아내들

의 신분에 대한 사례를 제3편에서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결혼과 동시에 아내의 신분이 남편의 신분에 속해버린다는, 그야말

로 미국답지 않은 미국 법에 대하여 설명 드렸습니다.

세계 최대 강국이라는 미국에 이런 법이 있다는 사실을, 지금 모르

는 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83

다시 말하거니와 이 법은 미국스럽지가 않은 것입니다.

여성을 레이디 퍼스트(Lady First)라고 하는 저들이 아닙니까?

남자와 여자를 동등하게 여기는 미국에는 맞지 않는 법이요, 관습이

다 그 말입니다.

최대 강국이요 최고 선진국이라며, 만인이 동등하다는 것을 넘어 여

성을 앞장세우는 미국에, 어찌 이런 법이 있게 되었는지를 우리는

앞에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미국의 이러한 사례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증거’ 『그리스도

와 교회에 대한 증거』중 하나라고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

다.

온 세상 모두에게 이를 알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미국이라는

대국을 사용, 그 나라의 법으로 제정하셨던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한 몸’ 되어 ‘그리스도와 교회의 표상’이 된 것과 같

이, 성령의 역사하심에 따라서 오늘날 미국의 부부들도, ‘그리스도

와 교회’에 대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 말입니다.

교회 성도들(신부)과 그리스도(신랑)가 ‘한 몸’이 됨으로, 남편의 의

로운 신분에 따른다는 것을,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84

교회에서 성도들이 하는 형식적인 의식마저도, 그리스도와 성도들

의 관계를 증거 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남자들이 교회에서 쓰지 말아야 할 것(고전11:4)과, 여자

들이 써야 하는 것’(고전11:5), 즉 머리에 쓰고 안 쓰고 하는 의식도,

그리스도와 성도의 위치를 나타내는 형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남자)는 교회의 머리로, 영광과 권세의 자리에 계신 분입니다.

성도들(여자)은 공히 그 엄청난 권세 아래에 있다는 것을, 머리에 씀

으로 증거 합니다.

이런 의식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하여 이런 형태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하여, 공식적으로 땅 끝까지 보냄을

받은 종들이야말로 어떠하겠습니까?

그들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핵심 증인들이니 말입니다.

오늘날 성령의 말씀하심 따라서, 하나님의 종이 될 자들에게 결혼

을 교리로 금한 교단도 있습니다.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고전7:32b)라는 성경에 부합하여, 종들 중 더러에게 남녀 간

의 동침을 배제했습니다.

85

‘종들 중 더러’라는 이들은 누구겠습니까?

천주교의 사제들입니다.

그들은 여자와 동침할 수 없도록, ‘사람이 만든 고자’라고 할 수 있

습니다.

『사람이 만든 고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커버하는 증인들입니

다.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

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마19:12)

이 말씀은 ‘받을 만한 자만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 된 자’ 『천국을 위하여 스

스로 고자 된 자』란 누구를 가리키는 말씀입니까?

예수님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되실 것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하여, 미리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의 딸들’을 기뻐하여 그들의 죄를 받기는 받을지라도, 여자를

아내의 자리에 두어 육체적인 결합은 있을 수 없는, 예수님의 입장

을 증거 한 증인들이, 바로 사제들이라고 해서 틀림이 있겠는지요?

86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찌 사제들만,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할 수 있

겠습니까?

표상으로 예시하신 아담과 하와, 즉 남편과 아내가 ‘한 몸’ 됨을, 어찌

사제들로 설명될 수 있겠습니까?

아내의 죄를 남편이 맡는 그런 관계, 또한 신부인 우리가 받는 주님

(신랑)의 은혜를, 어찌 사제들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느냐 그 말입니다.

이른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큰 비밀’(엡5:32)을, 사제들로만

다 증거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가진 또 다른 증인이 있어야만, 이 ‘큰 비밀’을 설명할 수 있다

는 말입니다.

또 다른 증인, 또 다른 종, 또 다른 성경을 모두 합해야만, 그리스도

예수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홀로 생활함으로 예수를 증거 하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경

우도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여러 아내를 두는 율례와 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감독자는, 한 아내만 두는 남편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

었습니다. (딤전3:2)

87

교회의 대표성을 띠는 감독으로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증거’해야 된

다는 요구 때문입니다.

이에 부합하기 위하여 아내를 두는 목사를 세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저런 사제도 지금 말씀드린 이런 목사도, 모두가 ‘그

리스도와 그의 몸인 교회’를 증거 하는 증인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곧 성도들을 구약에서의 아내, 신약에서의 신

부로 맞아들여 ‘한 몸’이 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와 ‘사람의 딸들’과의 육체적인 합함이 있었

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증거들을 통하여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육체로 살 동안 사제와 같은 동시에, 목사와도 같았습니다.

사제와 목사 둘을 다 확보할 수 있도록 해준 상대라도 있었을까요?

있었다면 그는 누구였을까요?

과연 누가 이 두 증거를 한 몸에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까요?

다음 시간에 이에 대한 답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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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큰 비밀’로 설정하신 말씀인지라, 들으면 들

을수록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나이다.

주여!

알려 주실 만큼은 우리에게도 알려주시옵소서.

주님을 신랑으로 한 신부되어 주님의 신분이 내 신분 되었사오나,

그럼에도 아직 밝힐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이대로 믿기를 원합니

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그리고 천국 가는 길 인도해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아멘.

89

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성경은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기

때문에, 퍼즐처럼 정확히 조립해야만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습

니다.

갈렙 목사님께서는 성경이 말하는바 모든 부분적 증거를 낱낱이

맞추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성령으로 한 몸 된 자(교회)의

“증거의 완전성”을 설명하십니다.

성경이 말하는 “한 몸”과 “혼인”의 진의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죄

의 전가와 구원, 교회와 그리스도의 연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

니다.

천국에는 없는 ‘부부’, ‘혼인’의 비유로 말씀하신 것은, 육신을 가

진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눈높이를 맞춰 설명하신 것입니다.

90

장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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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Ⅶ 편

갈렙 3927 ‘큰 비밀’ - 인자론 (7) -

“이러한즉 둘이 아니요 한 몸”

본 문 : 에베소서 제 5 장 제 31 ~ 32 절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

가 될찌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막달라 마리아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님의 특별한 여인으로 표현했다. 과연 그녀는

그리스도의 ‘표상’인 첫 아담의 아내 하와의 역할을 한, 제2의 하와였을까?

“이러한즉 둘이 아니요 한 몸’이란 주제의 말씀이 계속됩니다.

이 시간은 약속드린 대로 답할 차례입니다.

(※ 본 시리즈 제5편에서 드렸던 질문 내역 :

첫 아담에게는 ‘모든 산 자의 어미’라는 이름의, 하와라는 아내가 있었다.

아담과 하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표상’이라고 했다.

‘표상’이란 ‘실상’이 있을 때에만 그 존재가 가능한 것이거늘, 그렇다면 실

상인 둘째 아담 예수에게도 하와와 같은 아내가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있다면 제2의 하와는 누구일까?’

이에 대한 답을 본편에서 드리려는 것이다.) - ♣ 편집자 주

혹 예수께 ‘남다른 의미의 여인’이 있었다고만 해도, 대개는 고개부

터 절레절레 흔듭니다.

그 여인의 이름이 아무개라고 거명이라도 한다면, 아마 더 펄쩍 뛰

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어쩝니까?

92

그런 여인이 예수님 곁에 늘 함께 하고 있어, 예수님과 관련된 성경

가운데 아주 많이 등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막달라 마리아, 『그 여인의 이름은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예수님이 심문받으시던 밤의 가야바 뜰이나, 십자가에 달리실 때

바로 그 아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대상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

아와 이모 등 당사자의 가족이 아니면 불허되었습니다.

그런 상황, 그런 자리에 막달라 마리아는 함께 있었습니다.

요한 사도가 예수님의 가족을 소개하는 가운데에도, 막달라 마리아

는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를 마치 유가족의 대표인 것처럼, 아니 미망인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

지라” (요19:25)

막달라 마리아를 아주 중요한 인물로 기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보아도, 누가 읽어도, 모친 마리아 등은 막달라 마리아를 따르

는 친인척 정도로 여겨지게 소개하고 있다 그겁니다.

요한뿐만 아니었습니다.

93

다른 제자 마가나 누가, 마태도, 막달라 마리아를 모친 마리아와 이

모 등에 앞세워, 유족을 대표하는 자처럼 소개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막15:40a)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마27:56a)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눅24:10)

꼭 죽으신 분의 부인 같아 보이지 않습니까?

특히 마태는 숫제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마27:61)고 썼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곁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가 있더라』고 했습니다.

모친 마리아를 아예 ‘다른 마리아’ 군(群)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즉 막달라 마리아를 유족의 주역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녀의 존재가 제자들에게 이쯤 되었다면, 예수께는 어떤 상대였겠

습니까?

영락없는 ‘미망인’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94

누가 보더라도 상황 자체가, 예수님의 부인 자리에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지 않습니까?

우리의 짐작대로 정말 그런 자리에 앉은 막달라 마리아였다면, 예

수님은 어찌하여 자기를 낳아준 마리아를 이 여인에게 부탁하지 않

고, 이모의 아들인 요한에게 부탁하셨을까요? (요19:27)

제자들이 막달라 마리아를 소개한 것을 보면, 모친 마리아의 자부

(子婦)인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젊은 자부가 있는데도, 왜 요한에게 부탁했느냐 그 말입니다.

그리고 더 의아스러운 것은, 막달라 마리아를 어김없는 주역의 자리

에 올려놓은 제자들이, 그녀의 신분에 대하여 딱히 예수님의 부인이

나 아내라고 단 한 번도 밝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제자 누구도 막달라 마리아에 대하여, ‘예수님의 아내’라고 쓰지를

않았던 것은 왜였을까요?

하여간 참 알 듯 모들 듯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스도와 교회’를 나타내는, 중요한 핵심적인 관계였으니 말입니

다.

95

비밀 중의 비밀이었으니 말입니다.

‘큰 비밀’에 부쳐진 내용을 어찌 쉽게 발설하고, 또 쉽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본문)

이런 것 같기도 하고, 저런 것 같기도 하며, 긴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성령께서 그렇게 역사하셨기 때문

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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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동침 않은, ‘스스로 고자된 자’

부부란 육체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 세상 상식이요 법이었으니, 바리

새인들은 이를 바탕으로 막달라 마리아와의 관계에 대하여 예수를 시험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했던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보겠습니

다.

“예수 선생이여,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버리는 것

이 옳습니까?” (마19:3)

무엇을 묻는 말입니까?

“이유가 어떻든지 간에 자기 아내를 내버리는 것이 옳으냐?”는 강한

질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자기들의 선생인 줄 알아서, 세상의 부부관계나 이혼문제

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그런 질문이었겠습니까?

대답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꼭 제삼자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했던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단지 예수님을 공격하려는 목적으로 물었던 것입니

다.

97

시험하는 자들 속내에 있던 ‘부부’란, 남편과 아내가 육체적 의무를

다해야 하는 그런 관계로만 아는 수준이었습니다.

부부의 육체적 의무란,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은, 율법 상 아내를 버린 죄에 해당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법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보거나 들어온 바로는, 아무래도 막달라 마리아가 예

수의 아내 자리에 앉은 것 같은데, 예수가 그녀를 도무지 아내 취급,

곧 동침해주지 않는 것 같았던 것입니다.

여자가 예수를 따라온 지 삼년이 넘었어도 아직껏 아이가 없는 것만

보아도, 아예 합방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던 것입니다.

아마 가까이 가서 조사라도 해본 모양입니다.

당시 법이란 어떤 것이었습니까?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고전7:3)

“서로 분방하지 말라” (고전7:5a)

‘남편은 그 아내에게 의무를 다하고, 아내 역시 남편에게 그리할 것

이며, 서로의 허락 없이는 분방하지 말고, 육체적으로 합하여 자식

을 낳아야 한다.’

98

이러한 명에 비추어볼 때 갈릴리서부터 유대까지 3년 동안을, 그것

도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예수님 곁에서 아내 노릇해온 막달라 마

리아임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남편으로서의 마땅한 의무를 하지 않

는다는 것을, 뒷조사로 알았던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저들은 이런 내용을 가지고 예수에게 다가와 물었던 것입니다.

“이유야 어떻든지 간에 아내에게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은, 아내를

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도 괜찮은 것입니까?”

그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좀 민망스럽기는 했어도, 그때 그

들에게는 매우 합당한 대답이었습니다.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

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마19:12)

사람들 중에는 어미의 태로부터 타고난 고자도 있으며,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고자 된 자도 있다는, 이

런 고자, 저런 고자, 스스로 고자가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이 논리 속에는 동침할 수 있어도 동침하지 않는 그런 상태에서도,

남편과 아내로 사는 이들이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렇게 살아도 위법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99

이런 논리는 예수님 경우에만 유일하게 해당되는 것으로, 따라서 예

수님은 법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건대 당시 바리새인들이 했던 질문은, 예수님의

무동침에 대한 공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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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그녀도 우리처럼 ‘그리스도의 신부’일뿐 - 제2의 하와가 아니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아내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더라도, 그녀는 죄인

이었기에 제2의 하와가 될 수 없는, 우리와 같은 교회의 신부였을 뿐이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무동침 사실을 잘 알고 있

었지만, 예수님의 논리와 같은 맥락에서 그녀를 예수님 아내의 자리

에 두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부 역할에, 막달라 마리아를 올려놓았던 것

입니다.

구약에서 ‘남편이요 아내’라고 했던 부부란, 육체적으로 합하여 자

식을 가진 관계를 말합니다.

반면 신약의 ‘신랑 신부’라는 것은, 아직 그런 단계까지 가기 전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부부 관계를 ‘신랑 신부’라는 말로 표현하셨습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막달라 마리아의 역할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

부 자리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101

주님은 성공시켜야 하실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막달라 마리아는,

무동침하시는 주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그녀는 육체적으로는 주님과 전혀 무관계한, 『육

체적으로는 무관계한 하나님나라 상식의 아내』였다고 할 수 있습

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육체적으로 무관계일지라도 남편이요, 아내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아담과 하와, 마리아와 요셉을 통하여 이미

인지하고 있는 바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 아내의 자리에서 그 역할을 다 했기에, 하

늘 상식으로는 얼마든지 ‘아내’라 불러주어도 마땅하지만, 세상 사

람들 앞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둘이 동침했느냐 안했느냐를 기준으로, 남편 아내인 것을 인정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늘 상식만 가지고 그녀를 예수님의 아내라고 소

개한다면, 오해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그녀를 아내라고 표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를 예수께서는 ‘신부’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참 묘하게 비밀을 헤

쳐 나가셨던 것을 헤아려볼 수가 있습니다.

102

오늘날의 우리나 당시의 제자들이나, ‘남편 아내’에 대한 상식은 다

름이 아닙니다.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엡5:33)

그리스도께서 성도와 교회에게 하신 것처럼, 또한 교회가 그리스도

에게 한 것처럼, ‘너희 부부들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앞에 ‘그러나’를 붙이셨습니다.

왜 『그러나』라는 접두사를 얹어 문장의 내용을 제한하셨을까요?

이에 대한 설명은 본 시리즈 제2편에서 드린바 있습니다.

우리가 남편 되고 아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의 몸으로 하와를

만들어 둘을 짝지어주신 그런 만남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의 소개로 만났거나, 서로 좋아서 결혼한 부부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우리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이니, ‘사람이 나누려야 나누지 못할 것

이라’(마19:6b)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이 어찌 우리네 부부에게 해당이나 되겠습니까?

103

‘둘이 한 몸 되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를 수는 없겠지만, ‘그

러나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하여 그 증인이 되라’ 『그러나 그리스

도와 교회를 위하여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세상 부부들의 실제 내용은, ‘둘이 합하여 한 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교회를 증거 하기 위하여』는 감독들이 하는

것처럼, 성도인 우리의 사는 모습도 만방에 보여주어 증거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삶 속에 한 부분, 한 모습으로라도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증

거 하라는 것이, ‘그러나’가 주는 실제 내용입니다.

만에 하나,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딸들’(창6:2) 중 사

람의 딸인 막달라 마리아를 보고, 이성(異性)의 눈으로 그 아름다움

에 취하여, 둘이 육체를 합하기라도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독생자라도 어김없이 육체가 되었을 것입니다. (창6:3b)

썩어질 육체가 되어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썩음을 당하지 않은 채 그대로 부활하실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행2:31b)

그러나 예수님은 썩지 않은 그대로, 『그 몸 그대로 신령한 몸』이

되어 하늘로 올리어 가셨습니다.

104

예수께서 육신에 거하시는 동안, 하늘나라를 위하여 어떤 모습으로

사셨는지는, 시험하는 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였

을 뿐이었습니다.

우리처럼 말입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예수의 몸인 교회의 신부였다 그 말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스스로 죄를 짓든지 짓지 않든지 상관없이, 아담으

로 인한 죄인이었습니다.

‘제2 하와’이지도 않았습니다.

완벽한 우리의 모델이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롬5:14)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오실 자』인 예수님으로 하여금, ‘표상’을 이룰 수 있도록 해드렸

던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그런 면으로 볼 때 참으로 중요한 여인이었습니다.

105

우리도 그와 같다는 사실을 알려준, 그야말로 우리의 모델이었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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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죄를 짓지 아니한 인자로 세상에 오시어 어떻게, 어떻게 함으로 멸

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 죄를 감당하시고, 우리에게 부활의 신령한

몸을 입혀주신 예수님에 관한 ‘인자론’을 대하였나이다.

큰 비밀로 설정해 두신 내용들을 접하면서,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되

었나이다.

주님은 신랑이, 우리는 신부가 되었으나, 세상의 부부들처럼 육체와

는 관련이 없는, 영으로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을 새삼 알았나이다.

그리스도와 우리가 신랑 신부됨으로, 사람도 마귀도 나눌 수 없는

그야말로 한 몸, 한 육체가 된 것을 감사하나이다.

오, 주여!

이제 주님을 머리로 하여 한 지체가 되었사오니, 이 관계가 끊어지

지 않도록 우리를 살펴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지체답게 살지 못하여, 온전치 못한 몸으로 주님 앞에

서지 않도록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남은 생애 그리스도의 사심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권고하고

채찍질해주시옵소서.

107

회개하여 은혜를 더 입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아멘.

108

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으로는 혼인이 충분히 가하나, 구원

주로서의 본분으로는 육체와 연합될 수 없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의 최초 대면자입니다.

그는 예수를 “동산지기”인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요20:15)

하와의 남편 “첫 아담”은 “에덴의 동산지기”였습니다.

마치 에덴에서의 아담과 하와를 연상시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둘째 아담”의 신부된, 교회의 대표적 상징입니

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도 우리와 같이 마귀의 종이었습니다.

갈렙 목사님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현실감 있게 표현해 주

셨습니다.

육적인 동침은 없으되 한 몸인 부부의 개념으로, 실감나는 신앙생

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109

장 8

110

제 Ⅷ 편

갈렙 3927 ‘큰 비밀’ - 인자론 (8) -

“인자로 온 것은 큰 영광이었다”

본 문 : 요한복음 제 13 장 제 31 ~ 32 절

31.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32.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인자’됨은 하나님께 큰 영광

영인 말씀이 육신으로 태어나 인자가 된 사건은, 하나님께 큰 영광이었음에

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인자’라 부르기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동안 ‘큰 비밀-인자론’을 주제로 말씀드렸습니다.

주로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일러 ‘교회론’이라 해도 되겠으나 ‘인자론’이라고 했던 것은, 이제부

터 말씀드리고자 하는, “인자로 온 것은 큰 영광이었다.”는 주제 때

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자기를 가리켜, ‘인자’, ‘인자’, 『인자』라

자칭하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인자’, 곧 사람인 것을 최대한 강조하시려는 의지가 역

력합니다.

사복음서에서 당신을 가리켜 하신 말씀들입니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마8:20)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눅6:5)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마17:12)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눅19:10)

111

“네가 인자를 믿느냐” (요9:35)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18:8)

예수님이 친히 ‘인자’, ‘인자’라 칭하신 것만 대강 세어보아도, 무려

65여회나 됩니다.

성경 전체에서 ‘인자’란 단어가 나오는 70여 차례 중, 거의 전부인

셈입니다.

이에 모두들 놀라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예수님에 대한 ‘인자’란 호칭이, 이다지도 새삼

스러울까요?

이 호칭으로 부르기가 왜 이다지 서투를까요?

‘인자’란 호칭에 대하여 소홀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소홀하기 보다는 어쩌면 의도적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여겨, ‘인자’라 부르기가 죄송스럽

기 때문에 쉽게 부르지 못한 면도 있을 것입니다.

나름 ‘하나님과 일체’, 또는 ‘성자’이신 면을 일부러 더 강조해, 높여

드리려는 의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인자’란 칭호가 새삼스럽게 되었으며, 부르기에 서툴게 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112

과연 예수가 ‘인자’ 된 것이, 안 된 일일까요?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면 왜 허다한 천군이 천사들과 함께(눅2:13) 예수님이 인자,

곧 사람으로 나시게 된 탄생을 두고, ‘지극히 높은 하늘에 계신 하나

님께 영광’(눅2:14)이라고 했겠습니까?

분명 예수님의 탄생 사건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노래한 천사들로 말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

셨을 때(요1:3)에도 그 지으신 것으로, 이런 높은 수준의 영광을 돌

려드리지 않았었습니다.

영광의 노래를 불러드리지 않았던 천사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것을 보시고, 스스로 매일매일 “좋

았더라” “좋았더라”(창1:18b) 하셨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당신 아들이 베들레헴에서 인자로 태어난 것에 대

하여는, 『인자된 것으로는』대단히 기뻐하고 사랑스러워 하셨던

것을, 성경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인자로 있는 동안, 언제 어떤 모습이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

서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마3:17)

그럴만한 이유라도 있었을까요?

113

있었겠지요.

우리가 몰라서 인자의 의미를 적게 부여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자’ 된 것은, 실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 그

리고 이 땅에서도 영광, 영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빚어 만든 사람을, 만물보다도 귀하게 여기셨

습니다.

“하물며 너희일까보냐”(마6:30b)라고 하셨습니다.

‘하물며’, 『더 하물며』영인 말씀이 사람 몸에서 잉태 되어 태어났

는데(요1:14a), 이 탄생이 엿새 동안 지으신 천지간 만물과, 마지막

날에 지으신 아담의 가치와 어찌 비할 바 되겠습니까?

영이신 신이 동정녀의 몸에 잉태 되어, 키와 지혜가 자라(눅2:52) 아

이가 되고 청년이 된 것은, 창세전과 후를 통틀어서, 또한 앞으로도

없을 오직 유일한 예수 인자뿐입니다.

예수가 인자로 태어난 사건은, 하나님께도 이적이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실지라도 그때의 예수 인자 말고는, 또 다른 인자를

더 만드실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114

예수는 오로지 하나님의 독생자였으니 말입니다. (요1:14b)

그때 그 인자가 당신 품속에 있는 독생이었으므로, 또 다른 아들 인

자가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의 인자된 것에 대하여 어찌 ‘인자’, ‘인자’ 강조하지 아

니하겠으며, 그 일을 두고 어찌 영광, 영광 『독생자의 영광』이라

고, 온 천사들과 함께 찬송하지 않았겠느냐 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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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인자 되셨기에

예수가 인자된 것은 우리의 속죄 구원에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인자이기

에 할 수 있던 여러 일들을 살펴봄으로, 그에 대한 평가를 재점검해본다.

우리의 좁디좁았던 생각들을 벗어나서, 넓고 정당하게 예수님이

육체로 나신바 그 인자에 대한 평가를, 한 번 따져보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육체에 부여하신 의미 평가를, 성경을 통하여 헤아려보도

록 하겠습니다.

인자의 육체는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속죄와 구원의

의미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 의미도 큽니다만, 그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의 뜻도 있습니다.

“내가 인자여서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b)

“내 인자의 역할에 의하여,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노라” (요

16:11)

“내가 인자여서 부활을 하고” (눅24:7)

“내가 인자로서의 역할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성자 역할도

잘 하였으므로, 즉 교회의 신랑 역할을 완벽하게 했으므로,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12:23)

116

“결국 인자의 영광을 얻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섰느니라” (행7:56)

이상이 인자에 대한 정당한 평가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인자에 대한 의미가 얼마나 컸던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굉장

한 사건이 벌어질 그날을 명명하여, ‘인자의 날’ 『인자의 날』이라

고 이름 하셨습니다. (눅17:22)

예수님의 인자되심이 영광인 것은, 이상으로 끝나지를 않습니다.

더 인자되셔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 인자일 잠깐 동안, 예수님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천사만

못하셨습니다. (히2:9)

비록 천사보다 못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인자가 아니면 하실 수 없는

일들을 하셨습니다.

『인자이기에 하실 수 있었던 일』입니다.

무엇보다 부활하신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될 것이니, 부활한 후에는 육체 있

을 동안 그렇게도 잘나보였던 천사들의 능력이, 우습게 보일 것입니

다.

천사보다 훨씬 뛰어난 기능과 신령한 몸이 되기 때문입니다.

117

만일 예수님이 인자를 거치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 품속에 있던 성

자, 말씀으로 계시던 그때처럼 영으로만 계셨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 주님은 사람들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밖에 서서 두드

리실 것입니다. (계3:20)

우리가 열어주면 들어오고, 열어주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는 영적

존재의 그 한계, 그 수준 그대로일 것입니다.

그런 수준이고서야 어찌 천사들보다 월등해진, 부활체들의 주가 되

어 대우받으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품속의 독생자 아들로만 존재한다면, 어찌 부활한 천국 시민

들의 왕의 왕이 되실 수 있겠습니까?

권위와 능력의 최고 왕이 되기에 곤란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자되어 오셨기로, 부활하실 수 있었습니다.

부활함으로써 달라지셨습니다.

부활 후에도 살과 뼈는 그대로 있었지만(눅24:39), 닫혀있는 문을

그냥 들어오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안에서 문을 열어주지 아니했는데도 그냥 불쑥 통과하실 수 있었습

니다.

118

따라서 세상 어디든지 갈 수가 있으셨습니다.

부활하셨음에도 제자들과 함께 잡수시고 일하셨습니다. (막16:14)

그 이후 하늘로 오르시는 모습은 얼마나 권위적이며, 얼마나 영광스

러우셨습니까?

인자가 아니었다면, 이 같은 모습은 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천국 부활체들의 수준 높은 주가 되시기에 곤란했을 것입니다.

인자였기에 부활하시고, 인자였기에 천사들을 비롯한 모든 영들 위

에 뛰어난 분이 되실 수가 있었습니다.

인자가 된 예수님에게 하나님은 세상의 그 어떤 이름보다도 지극히

높은 이름, 『지극히 높은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2:9)

후일 천국에 오르신 예수님의 여러 모습들을, 성경은 정확하게 보

여주고 있습니다. (계1:13~16)

‘인자 같은 이’가(과거 인자였던 그)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오른손

에는 일곱별이 있으며, 입에서는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

은 해 같이 빛났다고 했습니다.

“촛대”(계1:13)란 하늘로 올라간 교회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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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 사이” 즉 성도들 사이를 거닐며 다니시는 예수님의 장엄한 모

습도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이들의 두려워함과 엄중함과 무릎 꿇어 높임을 받으시는, 그분

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인자였던 관계로 ‘왕 중 왕’이 되신 것입니다.

본문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

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

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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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인자론] 제목 하에 [교회론]을 전하였나이다.

교회를 중심한 교회주의의 [교회론]을, [인자론]이란 제하에 포함시

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자로 나신 것은,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만 생각한 그런 수준의 ‘인자’가 아니라, 세상을 이기신

‘인자’, 우리를 천국시민 되게 하신, 그야말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신

‘인자’에 대하여 설교했습니다.

주여,

천국에 이르기까지의 나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입니까?

여전히 예수를 섬기며 우리의 부를 위하여, 우리의 건강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차라리 핍박과 환난과 궁핍이라도

당해야 하는 겁니까?

주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가 존재하는 줄 알게 되었사오니, 그 영광

을 위하여 살게 해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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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다운 수준과 그런 품성이 드러나야만

영광이 됩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세상에서의 명예나 성공이, 영광일 수는 없습니

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자되심(성육신)”은, 하나

님의 영광을 완벽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인자이신 예수 삶의 전 영역을 닮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자되심”을 단지 죄인구원으로만 이해하여, 예수와 “한

몸”된 교회(성도)가 예수를 닮기보다는, 세상형통을 추구하는 “우

상적 실용주의” 종교로 변질시켰습니다.

갈렙 목사님은 이 같은 위험천만한 “위기의 교회”를 향하여, 주님

의 심정으로 경고와 권면, 그리고 소망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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