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다) 전남간사지(傳南澗寺址) 당간지주(幢竿支柱)(도면 5) 경주시 탑동 남간사지 남쪽 논 한가운데 있는 화강암제 당간지주(보물 제909호) 7) 현재 높이가 365cm로서, 양지주(兩支柱)의 중심거리가 약 110cm였을 것으로 추정될 뿐 지금은 일주(一柱)가 약 10도 정도 기울어져 있어 정확한 양지주(兩支柱)간의 거리는 측정할 수 없다. 지름 20cm 내외의 원형 간구(竿溝)는 상하2개로 관통되었으며 최상단 에도 십자(十字)형 간구(竿溝)를 7cm 깊이로 파놓아 지금까지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특이한 형태를 갖추었다. 하단의 폭(幅)은 62.7cm, 후(厚)38.2cm로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좁아지고 있으며 아 래쪽 50cm 가량은 본래 땅 밑에 묻혀 있던 부분으로서 치석(治石)되어 있지 않다. 조성 당시에는 양 지주 사이에 당간을 세웠던 간대(竿臺) 및 간공(竿孔) 그리고 외측면 모서 리의 모죽임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하고 간단한 형태의 당간지주이지 만, 십자형 간구(竿溝)라든가 관통된 2개의 간공(竿孔)등이 매우 특이하다. 통일신라시 대의 남간사지 당간지주로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이 뒤편 저수지가 ‘강당못’으로 불리 어지고 있고 못속에 석탑의 석재들이 잠겨 있다고 전해지고 있어 이 저수지와 당간지주 사이에 탑지 및 금당지가 조영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면, 현존하는 남간사지와는 또다른 사지가 이 당간지주와 관련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남산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이 당간지주의 조성시기는 8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도판 25) 라)전남간사지(傳南澗寺址) 우물과 팔각(八角)대석(臺石) 경주시 탑동 남간교회 앞 길옆에 세워진 시멘트 블록의 담 안에 방치된 신라시대 우 물(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3호)은 길이 80cm, 너비 40cm로서, 맨땅을 170cm 깊이로 파고 자갈을 깐 다음 벽돌형으로 다듬은 석재(두께 21cm)를 지표의 높이까지만 쌓아 놀리고 2장(杖)의 판석을 합쳐서 일변(一邊) 147cm의 정사각형 우물틀을 만들고 그 가 운데 지름 86.5cm의 물 푸는 구멍을 둥글게 파서 얹어 놓은 것이다. 우물 구멍 둘레에는 이중으로 테를 둘렀는데 윗단은 직각으로 높고 단은 곡면으로 낮 게 새겨 변화를 주었다. 현재 이 화강석 우물틀 위에, 현대식 우물처럼 시멘트로 둥글게 한 시설을 첨가하였기 때문에 그 원형을 찾기가 어렵지만(도판 26-27), 본래는 지표 위 로 노출되는 부분에 통나무를 정(井)자형으로 쌓거나 형편이 좋은 집에서는 정(井)자형 의 꾸밈을 석재로 하였다. 분황사(芬皇寺) 우물이나 김유신(金庾信)장군(595-673년)의 생가(生家)로 전해지는 사적 제246호 재매정지(財買井地)등은 상대(上代)작품의 유례로 서 아직도 신라시대 우물이 상당수 남아 있다. 8)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이 우물은 경주 에 유존하는 신라 우물의 대표적 형식의 한 예로서, 남간 마을에 위치한 남간사지 우물 로 전해오고 있다. 한편 이 우물곁에 있는 대석(臺石)은 원래 8각이었으나 반파된 것으 로 (최대 폭(幅) 159cm, 고(高) 24cm), 그 나머지 반쪽은 이 부근의 민가(손찬익 가옥) 의 우물 뚜껑으로 사용되고 있다.(도판 28). 이들을 합치면 온전한 팔각(八角) 대석(臺 石)이 된다. 반쪽의 각각에는 맞물림 자국이 있으나 그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9) 7) 이 당간지주에 관한 실측도면과 관련 논문은 다음과 같다. 「南癎寺址幢竿支柱實測調査」,『年報』第2號 慶州文化硏究所, 1992. 199-201쪽, ;『慶州南山の佛蹟』, 朝鮮總督府, 1940.7쪽; 尹京烈, 『慶州南山古蹟』경주시, 1980. 7-9쪽, ; 朴洪國 「남간사지 당간지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2. 358-359 8) 申榮勳,「우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2. 450-451쪽』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 Upload
    others

  • View
    1

  • Download
    0

Embed Size (px)

Citation preview

Page 1: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다) 전남간사지(傳南澗寺址) 당간지주(幢竿支柱)(도면 5)

경주시 탑동 남간사지 남쪽 논 한가운데 있는 화강암제 당간지주(보물 제909호)7)는

현재 높이가 365cm로서, 양지주(兩支柱)의 중심거리가 약 110cm 을 것으로 추정될 뿐

지금은 일주(一柱)가 약 10도 정도 기울어져 있어 정확한 양지주(兩支柱)간의 거리는

측정할 수 없다. 지름 20cm 내외의 원형 간구(竿溝)는 상하2개로 관통되었으며 최상단

에도 십자(十字)형 간구(竿溝)를 7cm 깊이로 파놓아 지금까지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특이한 형태를 갖추었다.

하단의 폭(幅)은 62.7cm, 후(厚)38.2cm로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좁아지고 있으며 아

래쪽 50cm 가량은 본래 땅 밑에 묻혀 있던 부분으로서 치석(治石)되어 있지 않다. 조성

당시에는 양 지주 사이에 당간을 세웠던 간대(竿臺) 및 간공(竿孔) 그리고 외측면 모서

리의 모죽임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하고 간단한 형태의 당간지주이지

만, 십자형 간구(竿溝)라든가 관통된 2개의 간공(竿孔)등이 매우 특이하다. 통일신라시

대의 남간사지 당간지주로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이 뒤편 저수지가 ‘강당못’으로 불리

어지고 있고 못속에 석탑의 석재들이 잠겨 있다고 전해지고 있어 이 저수지와 당간지주

사이에 탑지 및 금당지가 조 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면, 현존하는 남간사지와는

또다른 사지가 이 당간지주와 관련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남산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이 당간지주의 조성시기는 8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도판 25)

라)전남간사지(傳南澗寺址) 우물과 팔각(八角)대석(臺石)

경주시 탑동 남간교회 앞 길옆에 세워진 시멘트 블록의 담 안에 방치된 신라시대 우

물(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3호)은 길이 80cm, 너비 40cm로서, 맨땅을 170cm 깊이로

파고 자갈을 깐 다음 벽돌형으로 다듬은 석재(두께 21cm)를 지표의 높이까지만 쌓아

놀리고 2장(杖)의 판석을 합쳐서 일변(一邊) 147cm의 정사각형 우물틀을 만들고 그 가

운데 지름 86.5cm의 물 푸는 구멍을 둥 게 파서 얹어 놓은 것이다.

우물 구멍 둘레에는 이중으로 테를 둘 는데 윗단은 직각으로 높고 단은 곡면으로 낮

게 새겨 변화를 주었다. 현재 이 화강석 우물틀 위에, 현대식 우물처럼 시멘트로 둥 게

한 시설을 첨가하 기 때문에 그 원형을 찾기가 어렵지만(도판 26-27), 본래는 지표 위

로 노출되는 부분에 통나무를 정(井)자형으로 쌓거나 형편이 좋은 집에서는 정(井)자형

의 꾸밈을 석재로 하 다. 분황사(芬皇寺) 우물이나 김유신(金庾信)장군(595-673년)의

생가(生家)로 전해지는 사적 제246호 재매정지(財買井地)등은 상대(上代)작품의 유례로

서 아직도 신라시대 우물이 상당수 남아 있다.8)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이 우물은 경주

에 유존하는 신라 우물의 대표적 형식의 한 예로서, 남간 마을에 위치한 남간사지 우물

로 전해오고 있다. 한편 이 우물곁에 있는 대석(臺石)은 원래 8각이었으나 반파된 것으

로 (최대 폭(幅) 159cm, 고(高) 24cm), 그 나머지 반쪽은 이 부근의 민가(손찬익 가옥)

의 우물 뚜껑으로 사용되고 있다.(도판 28). 이들을 합치면 온전한 팔각(八角) 대석(臺

石)이 된다. 반쪽의 각각에는 맞물림 자국이 있으나 그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9)

7) 이 당간지주에 관한 실측도면과 관련 논문은 다음과 같다.

「南癎寺址幢竿支柱實測調査」,『年報』第2號 慶州文化硏究所, 1992. 199-201쪽, ;『慶州南山の佛蹟』,

朝鮮總督府, 1940.7쪽; 尹京烈, 『慶州南山古蹟』경주시, 1980. 7-9쪽, ; 朴洪國 「남간사지 당간지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2. 358-359

8) 申榮勳,「우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2. 450-451쪽』

Page 2: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마) 와당(瓦當)(도판 29-35)

남간사지에서 출토되어 전해지는 암․수막새는 매우 많은데, 그 형식과 제작시기 또

한 다양하여 7세기부터 고려시대까지로 밝혀지고 있다.

와당은 모두 24개로서 수막새는 연하문이 역시 많으나 그 밖에 사자문․가릉빈 가문

등이 있고, 암막새는 당초문이 많으나 당초가 보상화문(寶相花文)이나, 포도문(葡萄文),

비천문(飛天文)등과 같이 복합된 문양도 있다.

25. 장창골 남간사지 당간지주

9) 이 팔각 대석의 실측도면은 「南癎寺址 幢竿支柱 實測調査」『年報』第2號 1991. 慶州文化財硏究

所. 1992. 199-201쪽 참조

Page 3: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26. 남간사지 우물

27. 남간사지 우물

Page 4: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도면 5. 남간사지 당간지주

Page 5: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28. 팔각대석

Page 6: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29. 남간사지 연화문 수막새

Page 7: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30. 남간사지 연화문 수막새

Page 8: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31. 남간사지 사자문 수막새

Page 9: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32. 남간사지 가릉빈가문 수막새

33. 남간사지 보상화 당초문 암막새

Page 10: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34. 남간사지 포도 당초문 암막새

35. 남간사지 비천문 암막새

나. 천은사지(天恩寺址)

1) 위치와 현황

천은사와 남산신성 내에 있는 국고(國庫)인 좌창(左倉)과의 위치 관계가 『삼국유사

(三國遺事)』에 기록되어 있다. 10) 이를 따른다면 천은사의 서북쪽 산위에 좌창이 있었

던 셈이다. 그 동안 천은사의 위치에 관해 여러 의견이 있었으나 이곳에서 「천은(天

10) 『三國遺事』, 卷第二,「紀異」, 第二<文虎王法梅>條:‘王初卽位 置南山長倉 長五十步 廣十五步 貯

米穀兵器 是爲右倉 天恩寺 西北山上 是爲左倉.

Page 11: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恩)」이란 씨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절터가 확인되었다.

천은사는 지금 밭으로 변해 초석은 밭기슭으로 려나 있으며 석탑제도 보인다. 천은

사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신라시대 사찰로 추정되나, 현존하는 사지(寺址)

의 유물로 본다면 9세기에 크게 번창해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로 이어졌음을11) 국립경

주 박물관에 소장된 석등 하대석, 범종 1점, 청자 21점, 기와 등의 여러 유물을 통해 미

루어 짐작할 수 있다.

2) 유구 및 유물조사

가)건물지

건물지에 사용되었음직한 석재들이 이병익 가옥(탑동 877번지)과 천은마을의 사과밭

에 흩어져 있다.

이 가운데 이병익 가옥에서는 장대석(長臺石)을 건물의 기단석 내지 계단석으로 사용

하고 있으며(도판 36), 안채 뜰에는 계단 지대석과 계단 동자주가, 그리고 담장을 통하

는 배수구에는 지대석이 지나가고 있다.

이들 가운데 대표적 석재의 크기는 다음 표와 같다.

[표 4] 이병익 가옥내 각종 석재

명 칭 크기(단위 cm) 특 징

1계단지대석

도면6-②

길이 127.5, 폭 33.5

높이 21.5, 간공지름 16.5

계단 난간석을 끼울 수 있는 간공(竿孔)이 뚫려있고 답계에는

한 단의 홈을 파서 장식. 석재의 답계는 통석(通石)이 아니라

2조로 구성된 듯함. 따라서 이같은 석재가 1기 더 있었을 것

으로 판단되어 본래 계단은 대단히 길었을 듯함

2기단지대우석

도면 6-③길이 144, 폭 14, 높이 25 석재 외곽을 한 단 낮춰(5cm) 돌려진 기단

3 기단지대우석 길이 70 ”

4기단지대석

도면 6-④길이 213, 폭 21, 높이 22 위의 지대석들과 동형의 석재이나 길이가 긴 평지대석

5팔각간주석

도면 6-⑤

길이 53, 폭 21. 5, 팔각변

한 쪽 폭 10팔각이 상단끝에서 귀죽임 되어 둥 게 마감된 형태

천은마을 사과밭인 과수원(果樹園)에는 방형(方形) 주좌(柱座)의 초석이 있고 과수원

동편 산기슭에는 2줄의 초석 8기(基)가 모아져 있다. 8기의 초석 중 7기는 장방형 주좌

를 마련한 초석이며, 나머지 1기는 상면(上面)만 다듬질한 원형 초석이다.(도면 6-①)

장방형 주좌를 지닌 초석들의 크기는 길이가 60cm 정도의 것도 보이나 대부분 길이

51-52cm 인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또한 과수원 동편의 초석 7기는 내부 장방형

주좌가 51-60cm 크기이다.(도판 37-41).

뿐만 아니라 이곳 천은사지 주변 지역에서 확인된 초석 대부분이 정방형의 형태와 함

께 주좌 한 변의 길이가 51-52cm라는 공통의 수치가 보여지고 있다. 비록 본래의 자리

를 떠나 있는 초석이지만 이들 형태와 크기들에서 공통점이 보여져 주목할 필요가 있

다.

그 밖에 상면(上面)만 손질한 초석도 있으며 기단 우석에 사용된 지대석 1기가 확인

되기도 하 는데 그것은 탑재의 기단부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11) 『慶州 南山 特別展』國立慶州博物館, 1995. 48-52쪽.

Page 12: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이들 세부는 아래 표와 같다.

[표 5]천은마을 과수원내 각종 석재

명 칭 크 기 특 징

1방형초석

도면 7-①

전체길이 108, 전체 너비 65,

현높이 42, 주좌길이 51

초석 외곽은 자연석 그대로이며 주좌는 정사각형이고 주좌턱

은 6cm

2방형초석

도면 7-②

전체길이 71.5 전체너비 66,

주좌지름 38, 주좌높이 20

외곽은 방형이나 내부는 원형에 춤이 높고 양쪽에 고막이가

마련된 초석

3방형초석

도면 7-③길이 91, 높이 28

용도는 알 수 없으나 특수하게 제작된 석재로 보이며, 내부에

한 변이 22cm인 정방형을 외곽을 몰딩시켜 마련

4방형초석

도면 7-④길이 79, 폭 77, 높이 19

외곽은 거칠게 다듬었으나 내곽의 사각주좌는 4-6cm 가량 높

게 정다듬하여 마련

5방형초석

도면 7-⑤길이 127, 폭 105, 높이 24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상면은 평평하게 다듬었음

6방형초석

도면 7-⑥길이 138, 폭 87

ㄱ 자형 기단우석으로 상면은 거친다듬이며 외곽은 한 단 턱

을 낮춰 파낸 상태(탑재일 가능성이 있음)

나) 탑재(搭載)

천은사지 탑재로 이미 알려진 것으로 하층 기단면석으로 쓰 다고 보고된 지대석 1기

가 있다. 탑(塔)의 기단부로 추정되는 기단(基壇)지대석(地臺石)의 모서리 부분이 드러

나 있는 것이(도판 42)으로서, 지대석의 하층기단 면석이다. 가장자리를 한 단 낮춰 마

련한 지대석은 본래 4매석으로 결구(結構)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지대석을 사용한 탑은

기단이 약식(略式)에 속하는 것으로 통일신라 중기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보고되

었다.12)

다)석등재(石燈材)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석등(石燈) 하대석(下臺石)은 2종류가 있다. 하나는 거의

완형인 하대석으로서 현재 야외에 전시중인데, 한 변이 1m인 정방형 대석에 복판연화대

좌를 장식하고 중앙에 간공을 마련한 통일신라기의 작품으로서 높이 38.5cm, 간주석 구

멍 지름 26cm이다. (도판 43).

다른 하나는 일부 유실되고 남은 것 2편으로서 높이 29cm, 길이 50cm이다.

라)와당(瓦當)

천은사지에서 출토된 기와로 알려진 것으로는 당초문, 암막새, 연화, 수막새, 가릉빈가

수막새, 수막새 와범 등이 있다.(도판 44-47)

12) 『慶州南山의 佛敎油滴-塔 및 塔材調査報告書-』, 文化財管理局 文化財硏究所 1992. 66-67쪽

Page 13: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36. 천은사지(이병익 가옥내) 장대석

Page 14: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37. 각종 초석

38. 방형초석

Page 15: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39. 방형초석

40. 원형초석

Page 16: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41. 방형초석

42. 석탑 지대석 모서리

Page 17: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43. 석등 하대석

44. 당초문 암막새

Page 18: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45. 연화문 수막새

46. 가릉빈가문 수막새

Page 19: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47. 수막새틀(와범)

Page 20: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도면 6-1. 장창골 천은사지 원형초석

6-2. 천은사지 기단지대석

6-3. 천은사지 기단지대우석

6-4. 천은사지 기단지대석

Page 21: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도면6-5. 천은사지 팔각 간주석

7-1. 천은사지 방형초석

7-2 천은사지 방형초석

7-3천은사지 방형 석재

7-4. 천은사지 방형초석

7-5 천은사지 원형 초석

7-6. 천은사지 기단지대우석

Page 22: î y i @ Ñ õ 1 ü @ѱ ¥ ' Û ( v Ñ Ø7 L± < Û > ¡ ( ( Ý ¯ S ¯ à ¨Ñ± M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1998_%EA%B2%BD%EC%A3... · 2014-09-18 · Ó & m

마) 자기(瓷器) 및 금속(金屬)유물(遺物) 등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천은사지 유물13) 중 도자기로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가 모

두 14점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금속유물로는 고려시대 동종과 청동소형접시가 있다.

따라서 이들 유물을 통해보면 천은사는 창건은 신라기에 되었지만 그 존속기간은 고려

시대를 지나 조선시대까지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밖에 토제(土製)로 만든 소형(小

形)탑편(塔片)이 있는 그 대표 유물은 다음의 표와 같다.

[표 6] 천은사지 출토 유물 현황

구 분 유물 명칭 유물크기(cm) 특 징

청자음각 국화문

화형잔(도판 48)입지름 7.4 높이 5.9

굽․기벽․구연 모두가 화형(花形)이면서 구연부와 높은 굽

부분은 음각석으로 장식. 투명한 유색(釉色)은 옥색 빛

청자음각

당초문잔입지름 7.6 높이 5

저부(底部)에서 풍만히 벌어진 몸체는 차츰 오므라들어 구연

부에서는 내만(內滿)되면서 둥 게 마감된 기형(器形). 외벽

에는 음각선으로 당초문 등을 장식하고 유색(釉色)은 녹색

청자양각

국화문접시 등

소접시5점(도판 49)

입지름 7.3-9.7

높이 1.9-2.6

내저(內底)의 원각(園刻)된 소형의 접시는 평저(平底)에 구연

은 외부로 반전되어 마감하 고 내부 기벽(器壁)은 8분(分)으

로 양각으로 화문(花紋)을 돌림. 그밖에 비슷한 크기의 소문

접시들이 4점 더 있는데 내저에 비짐 받침눈이 뚜렷함

청자접시 2점

(도판 50)

입지름 16-17.9

높이 5.1-5.6

대접과 같이 깊이가 깊은 접시로 저부(底部)에서부터 벌어져

오른쪽 기벽(器壁)은 구연까지 그대로 벌어지다 살짝 외반(外

反)됨

청자뚜껑 각종 4점지름 7-8.1

높이 2.6-3.4

뚜껑 2점은 단추형의 굵은 손잡이고 2점은 연꽃형의 가냘픈

형태. 모두 잔의 뚜껑으로 추정

자백자접시(도판 51)

입지름 12.4

높이 3.4

굽까기가 깔끔한 형태인 백자는 비교적 기신(器身)이 높으며,

구연은 외부로 말려 마감된 상태. 유색(釉色)은 엷은 옥색빛

이 도는 백색으로 시유(施釉)가 잘됨

금속

범종 (도판 52)입지름 14.5

높이 27.5

음관(音管)은 여의주를 입에 문 용이 완전히 감싸고 상(上).

하대(下臺)에는 보상화문이 시문되어 있으며 비천상과 연화

문 당좌(撞座)가 서로 대칭으로 배치

청동접시 2점입지름 7.6-8.8

높이 1.8구연은 넓은 전이 마련되고 그 끝은 한 단 높인 소형의 접시

토제 토제소탑 (도판 53) 높이 9.9옥개부가 투박하여 탑신(塔身)이 낮은 토제탑(土製塔)은 일부

인 3층까지만 남아 있음

13) 『慶州 南山 特別展』國立慶州博物館 1995. 48-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