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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월트디즈니사 세기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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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한국의 월트디즈니사 세기상사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 판 애니메이션

< 홍길동 > 을 제작한 영화사 세기상사1967 년 ,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 홍길동을 제작한 회사는 세기상사 였습니다 . 세월이 흐르며 한국영화계의 판도가 많이 바뀌었지만 1960~70 년대만 해도 세기상사는 국내 최대 최고의 영화사였습니다 .

세기상사가 제작 ,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 판 애니메이션 < 홍길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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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상사가 한국 애니메이션 사에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 애니메이션 사에서 월트 디즈니와 디즈니사가 차지하는 그것만큼 크다고 하겠습니다 .

애니메에션 볼모지나 다름 없던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 송길동 > 을 만들었으며 연속해서 최초의 극장용 인형 애니메이션 영화 < 흥부와 놀부 > 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

이외에도 최초의 시네마코프 애니메이션 < 손오공 > 에서 1972 년의 <괴수대전쟁 > 에 이르기까지 9 편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며 기술적으로도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

세기상사에서 제작한 국내 최초의 인형 영화 < 흥부와 놀부 > 신문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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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극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본업이었지만 세기상사는 애니메이션 사랑은 우연히 수입한 애니메이션이 흥행에서 성공하면서부터입니다 .

당시 외화 수입도 병행하던 세기상사는 1950 년대 후반부터 < 잠자는 숲 속의 공주 >,< 백설공주 >,< 걸리버 여행기 > 등 외국 애니메이션을 수입 , 큰 흥행성공을 거두었으며 이것이 곧 국산 애니메이션 제작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

세기상사가 수입하여 크게 성공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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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국산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로 결심은 했지만 C.F 외에는 변변한 인력과 기술력이 없던 현실 세기상사 국회남사장은 밀어붙이기로 일을 시작합니다 . 우선 자신의 회사에 근무하던 용유수 부장에게 만화영화제작을 명하고 애니메이션 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신동헌 감독과 접촉하게 하였습니다 .

결국 독학으로 애니메이션을 공부해가며 제작을 지휘해야만 했던 용우수는

나중 < 홍길동장군 >, < 번개아텀 >, < 괴수대전쟁 > 등의 애니메이션을 감독하는데 이르게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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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이야 어찌되었건 국내 최초의 애니메이션 제작 총지휘를 맡게 된 용유수는 당시 소년 조선일보에 인기리에 연재중이던 < 풍운아 홍길동 >을 선택합니다 .

그다음 날로 그들은 참여 가능한 스탭들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많은 사람들을 모읍니다 . 우선은 동양방송 동화부의 애니메이터들을 끌어들였고 , 단행본 만화가들을 애니메이터로 변신시키기도 했습니다 .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제일동화의 작품 황금박쥐

동양방송 (TBC) 동화부에서 도맡아 제박하고 있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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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애니메이션 기술이 없어 독창적인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

그중 하나가 이중 촬영기법이었습니다 .

이중촬영기법으로 제작한 홍길동 의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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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되었건 < 홍길동 > 은 그이후 완성도가 크게 올라갔고 개봉 이후 흥행도 크게 성공하게 됩니다 .

개봉당시 홍길동의 신문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