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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언언 언언 김김김 김김김 김김 I. 김김김김김 2 -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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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인간김은진 민준홍

목차

I. 들어가면서 2

II. 인간을 만드는 언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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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언어의 기원 5

IV. 철학으로서의 언어 8

V. 문제해결의 언어

VI. 도구로서의 언어

VII.일상생활에서의 언어

VIII................................사가독서를 마치면서 19

IX. 도서목록

들어가면서

어느 날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를 보고 굉장한 충격에 빠졌다. ‘언어’란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인간과 외계인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으며, 외계인의 언어를 알게 되었다고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영화를 계기로 언어에 대해 공부해 보고 싶어졌고, 자연스럽게 우리 팀의 연구 주제는 ‘언어가 인간에게 가지는 위치와 인간 인지체계에 미치는 영향’이 되었다.

이 주제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독서 계획을 세웠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영화 컨택트 원작 소설)>, <쉽게 읽는 언어철학>, <라캉의 주체>, <프랑켄슈타인>, <수사학>,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지도교수님과의 면담 후에 처음에 선정했던 책 목록에서 3 권 정도 수정하였다.

독서는 동일한 책을 두 사람이 각각 읽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책을 읽고 생각해 볼 만한 주제나 흥미 있는 내용에 대해서 토의를 진행하였다. 또한, 추가적으로 궁금하거나 더 연구해보고 싶은 내용에 대해서 관련 문헌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였다. (율이 들려주는 언어학 강의,

애트킨슨과 힐가드의 심리학 원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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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컨택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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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만드는 언어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는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즈 뱅크스가 헵타포드(인간이 이름 붙인 것)라는 외계인의 언어를 학습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미래와 과거를 한 시점에서 모두 볼 수 있게 되는 이야기이다.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책에서는 뱅크스의 남편이 되는 게리가 수학이나 물리학의 방정식으로 헵타포드와 소통을 해보려는 시도를 하는데, 거기서 게리는 헵타포드와 ‘페르마의 원리’로 소통하는 데에 성과를 이룬다. 헵타포드들은 인간들이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물리학 원리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반면 ‘페르마의 원리’ 등의 변분원리를 그들 물리학 체계의 가장 밑바탕으로 삼고 있음을 게리는 알아내는데, 이 변분원리 라는 것은 어떤 양을 극대나 극소로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원리이다. 예를 들어, 광학에서의 ‘페르마의 원리’는 ‘페르마의 최단 시간의 원리’라고도 하는데, 물 밖의 광원의 지점을 A 라고 하고 물 속으로 투사되어 굴절된 임의의 빛의 지점을 B 라고 할 때 A 에서 B까지의 거리를 빛이 최단 시간을 따라 이동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설 속의 게리는 빛을 의인화해서 생각한다는 것인데, 빛이 자기가 어디로 갈지 알고 있어야 대기 중에서는 얼마 간의 거리를 가고 수중에서는 얼마간의 거리를 갈지 계산해서 도착지점까지 최단 시간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중에서는 이러한 원리를 기본으로 사용하는 헵타포드들이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이미 알고 있으며,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역시 의사소통보다는 수행문으로서의 기능이 두드러진다는 설정이다. 이미 미래를 알고 있는 그들로서는 굳이 의사소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수행문이란 언어행위이론에서의 용어인데, 어떤 절차를 수행함에 있어 그것을 언어로 진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결혼식에서 주례가 ‘당신들을 부부로 선포합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나, 경찰이 범인을 체포할 때 ‘당신을 어떠한 혐의로 체포합니다.’ 와 같이 절차를 수행하기 위해 발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헵타포드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와는 굉장히 상이하다고 할 수 있으며, 헵타포드의 언어가 실제로 있다고 해도, 인간으로서 이것을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거기다 소설 속 루이즈 뱅크스처럼 헵타포드의 방식으로 사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란 상상조차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 루이즈의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언어상대성 원리 또는 사피어-워프 가설이라고도 불리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그 인지체계가 결정된다는 원리 덕분이었다.

우리 팀의 연구도 이 사피어-워프 가설의 흥미로움에 매료되어 시작되었다. 그러나 관련 주제에 대해서 찾아볼 수록 사피어-워프 가설은 설 자리를 잃어가는 듯 보였다. 많은 연구들은 사피어의 가설과 반대되는, 언어 간 차이가 반드시 인지적 차이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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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언어를 이해하는 것을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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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예를 들어, 영어 사용자와 그리스어 사용자를 비교한 안구운동 추적법을 사용한 연구에서, 어떤 사건을 기억하고자 할 때 두 언어의 사용자들이 동일한 패턴으로 주의를 기울였다. 즉, 언어와는 독립적인 지각과정에 의존하였다고 추측할 수 있다(Papafragou et al., 2008)

언어에는 나라나 문화를 넘어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우리의 몸, 그리고 그 몸을 통해 겪는 구체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이다. <언어와 인지>에서는 이런 현상을 ‘신체화’라는 단어를 통해 소개한다. ‘신체화’란 인간의 언어가 인간의 지각과 행동을 바탕으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마음이 아프다, 공포영화를 봤더니 오싹하다 등 감정표현에서도 우리는 신체적인 표현을 많이 쓴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신체를 중심으로 앞, 옆, 뒤 등 공간을 구분한다. 많은 문화권에서 이런 공간을 지칭하는 말의 어원은 신체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신체를 바탕으로 한 공간개념은 보다 추상적인 시간개념을 나타내는 말로 확장된다. 이 외에도 신체를 바탕으로 한 언어가 확산되어 추상적인 개념에도 쓰이는 예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사자가 인간의 언어를 배운다고 해도 인간과 사자가 의사소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신체와 사자의 신체는 다르기 때문이다. 즉, 영화나 소설 속에서처럼 뱅크스가 아주 우연한 기회로 그들의 언어를 어느 정도 배웠다고 해도, 그들과 의사소통 하거나 그들처럼 사고할 수는 없게 된다. 헵타포드의 언어는 다리가 7개 있고, 모든 방향을 볼 수 있도록 눈이 7개 있는 외계인의 신체에서 가능한 지각과 사고에 따라 발생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여러 저서나 자료에서 사피어-워프 가설은 현대 과학 시대에 중세의

연금술을 보듯 다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즉, 언어가 사고를 결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언어는 인간의 사고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언어에 존재하는 색채 단어에 따라 색채지각이 달라진다. 또한, 초기 아동기부터 문화적 메시지는 사람들이 느끼려고 하는 정서에

영향을 미치며, 이중문화자에게 가장 최근에 사용했던 언어가 자신의 정서를 경험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Perunovic, Heller, & Pafaeli, 2007). 그러나 언어 그 자체보다는 언어가 내포하고 있는 문화가 사고를 어느 정도 제약하는 듯 보이며, 이 과정에서 언어는 간접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즉, 언어는 경험을 부호화하는 부가적 경로로, 언어는 지각과정과 인지과정을 지원하는 처리를 영구적으로 재구성하기보다는 경험을 부호화하고 체제화하며 추적하는 선택적으로 동원되는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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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이 한국어를 해도 우리는 양의 말을 못 알아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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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기원

그렇다면 언어는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인가? 언어는 단순히 우리의 인지적 사고의 산물인

것일까? 언어 발달 과정을 관찰해보면 언어는 그렇게 단순한 기제가 아닌 듯 보인다. 언어 발달의 순서는 인종이나 문화에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다. 또한, 생후 1년이 지나기 전의 아이들은 모든 언어에 존재하는 음소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언어를 습득해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모국어에 없는 음소 구분 능력은 점차 사라진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언어는 2 단순히 사고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 아닌, 생물학적으로 프로그램 된 과정인 것처럼 보인다.

청각장애 아동은 종종 사물과 행위를 나타내는 일련의 몸짓을 개발하여 정상 부모와 의사소통을 한다. 청각장애 아동들이 함께 양육된다면 그들만의 수화를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하다. 산디니스타들이 1979년에 청각장애 아동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였는데, 아동의 대부분은 다른 청각장애인을 만난 적이 없고, 그들의 가족과 소통하기 위한 독특한 몸짓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 학생들은 개개인의 몸짓을 모아서 언어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그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청각장애 학생들의 자녀들이 음성언어에서 전달할 수 있는 모든 범주의 아이디어와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는 완전한 언어로 수화를 변형시켰다(Senghas & Coppola, 2001; Senghas, Kita, & Ozurek, 2004) 즉, 형식적인 언어모형을 접하지 못하는 아동들도 언어와 유사한 부호를 창조하여 동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언어적 소인을 가지고 있으며,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1 장 ‘언어란 무엇인가?’에서는 위에서 언급했던 인간과 동물 언어의 차이를 언급하기도 하고, 인간 언어에 대해 아주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언어를 인간의 기관 중 하나인 것처럼 다룬다는 것이다. 촘스키가 ‘보편문법’이라고도 부르는 이것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에게 내재적이며 유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언어는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가 아니라 생물학적인 실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이것을 모든 언어는 계층적 구조를 갖는 표현들의 무한 집합을 제공한다는 것으로 서술하기도 한다.

또한 책에서는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게 된 진화론적 설명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설명은 아주 간단하다. 5~10 만 년 전에 인간의 두뇌 회선에 변화가 생기면서 급진적으로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런 가설에 대한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서문에 나오는 것처럼 유인원들 역시 몸짓 언어에 적합한 몸짓 체계와 말소리 인식에 적합한 청각 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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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와 다르게 문자의 기원은 그림이라고 쉽게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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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비슷한 것조차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에서 발생하거나 계획된 것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에서 급진적으로 발생했으며 한층 더 깊은 인지적 차원에서 다루어진다는 것이 이 책의 설명이다.

언어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언어가 의사소통으로 정의되는 것 역시 거부한다.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은 몸짓, 옷, 표정 등으로 표현되는 것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언어의 가장 큰 특징은 내재적인 ‘사고 언어(language of thought)’라는 것이다.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언어는 의미를 가진 소리”라고 말했던 것을 뒤집어 “언어는 소리를 가진 의미”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즉 의미, 사고가 소리에 앞선다는 것이다. 또한 촘스키는 언어를 생물학적 실체로 보기 때문에 언어가 어떤 목적을 가진다는 생각까지 거부한다. 이를 척추에 빗대어서 말하는데, 척추는 신경계 보호, 칼슘 저장, 혈액 세포 생산 등의 역할을 하지만 이 중 어떤 것을 척추의 중심 기능으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복잡한 진화론적 추적을 요구하는 간단하지 않은 문제임을 암시하면서 언어 역시 이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책에서 흥미를 유발했던 것 중에 또 하나는 촘스키가 ‘Instinctively, eagles that fly swim.’(우리말로 하면 - 본능적으로, 나는 독수리가 헤엄을 친다.)을 보고 한 생각이다. 여기서 Instinctively 는 fly 가 아니라 swim 을 수식하는데, 이게 이상하다는 것이다. 분명 직선상의 최소거리로는 fly 를 수식해야 하는데 swim 을 수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촘스키는 언어는 직선상의 최소 거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구조상의 최소 거리를 따른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확실히 시각적으로 직선상의 최소 거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상하다. 또 책에서는 한 실험을 예로 들고 있는데, 구조상의 최소 거리를 따르는 문장을 피험자들에게 보여주면 뇌에서 언어를 담당하는 부분이 활성화되지만, 직선상의 최소 거리를 따르는 문장을 보여주면 뇌에서 언어를 담당하는 부분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직선상의 최소 거리를 따르는 문장은 그것이 문자로 쓰여 있기는 하지만 언어로 인식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를 보면 언어는 그것이 표현된 말소리 또는 글자와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언어는 정말 계층적 구조를 갖는 모든 표현들의 무한집합 그 자체인 것인가?

이것은 이전에 읽었던 <언어와 인지>에서 언급된 도상성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다. 도상성이란 언어 구조 속에 개념 구조가 직접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데 예를 들면, ‘사람 : 사람들’, ‘dog : dogs’처럼 복수 표현에서 각기 다른 언어가 비슷한 구조적 유사성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미 언어 구조를 생물학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하면 이러한 구조적 설명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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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는 의사소통이 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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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언어와 인지>에 나오는 ‘도식’ 역시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도식’이란 우리의 사고 처리를 편리하게 도와주는 틀 내지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언어와 인지>에서는 도식으로 영상도식(그릇도식, 연결도식)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새로운 상황이나 개념을 접하게 될 때 우리가 이미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그릇 모양이나 연결을 나타내는 끈 모양 등을 통해 새로운 것을 이해하고 구조화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역시 언어를 구조, 생물학적 실체로 보는 촘스키의 견해와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1 장 마무리 즈음에 나오는 병합과 최소 연산에 관한 내용은 다소 전문적인 내용으로 보여서 공부가 더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진화론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나서는

인간의 특성들을 진화론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그런지, <언어와 인지>의 내용과 <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1 장의 내용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다가온다

철학으로서의 언어

한편, 우리는 철학에서 언어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여 <쉽게 읽는 언어철학>과 <라캉의 주체: 언어와 향유 사이에서>를 읽기도 하였다. 라캉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보았다. 무의식은 타인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언어는 사슬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언어는 그 자체보다 맥락 속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무의식은 자율적이고 자동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언어이다. 또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바탕으로, 라캉은 말실수도 전부 무의식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주장에 100% 동의할 수 없었다. 어떤 실수는 무의식에서 기인하였을 수도 있겠지만 전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우연으로 실수가 발생한 것이지, 모든 실수에 반드시 무의식적인 이유가 수반될 필요는 없다.

또한, 라캉은 언어로 말해질 수 없는 것은 현실의 일부라고 보며, 실존은 언어의 산물이라고 간주하였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였을 고대의 인류나

언어 체계가 없는 동물들의 실존은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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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전화 도식은 사라져가고 있는 도식 중 하나일 것이다.

▲ 교토에 있는 철학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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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은 주체에 대해서 기존과는 다른 관점을 취했다. 야콥슨은 주어가 주체이며 자아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라캉의 주체는 진술의 주어가 아니라고 한다. 라캉에 의하면, 주체는 아이가 처음 말하기 시작할 때 일어나는 우리 안에서의 언어 작용의 산물인 분열이다. 이것을 소외라고도 지칭할 수 있다. 즉, 타자에 대해서 취하는 태도가 주체인 것이다.

<라캉의 주체> 후반부에서는 위의 개념들을 바탕으로 라캉적 주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라캉은 성적 관계같은 것은 없다고 이야기하였으며, 남근 기능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있고, 여성적 구조와 남성적 구조는 유전적인 성별과는 관계가 없다고 책의 저자는 설명한다. 즉, 여성과 여성적 구조, 남성과 남성적 구조는 상관이 없으며 그것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오해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모순처럼 들린다. '여성'과 '남성'은 이미 특정한 성별을 가지고 있는 집단을 지칭하는 상징적인 기호이며 약속이다. 만약 관계가 없다면 여성적/남성적 구조라는 용어 대신 A형 구조, B형 구조 같이 새로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였을 것이다.

<쉽게 읽는 언어철학>은 제목 그대로 언어철학의 처음부터 해서 개괄적으로 쓰인 책이다. 1학기에 김광식 교수님의 <현대영미철학> 수업을 들으면서 러셀, 크립키, 퍼트남, 비트겐슈타인 등의 언어철학에 대해 조금씩 배우긴 했지만, 언어의 의미란 무엇일까 고민하는 언어철학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져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물론 기대했던 ‘언어철학’, 언어와 그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학문인 건 맞았지만, 초반부터 중 후반까지는 거의 철학 안에서의 언어에 대해 고민하는 학문인 것 같아서 약간 김이 샜다.

물론 그 시작이 논리실증주의여서 그런 것이겠지만, 모든 언어의 의미와 무의미를 검증 가능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굉장히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었다. 만약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주장이 옳은 것이라면, 이 세상의 아주 많은 언어의 의미들은 사장 당해버리고 말 것이다. 물론 이들의 논의는 ‘명제’에 국한되어 진행된 것이지만, 일정 시대를 향유하는 메타학문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고 했을 때, 이러한 주장은 위험성이 다분한 것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프레게와 러셀의 경우는 다소 흥미로웠다. 이들은 명제를 함수와 항의 관계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고, 기존의 논리학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각각 명제논리와 술어논리를 발전시켰는데, 이러한 발전은 논리가 중요한 철학에서 기초를 더 탄탄히 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리학을 깊게 공부해 본적은 없지만, 철학 수업을 들을 때 철학의 여러 곳에서 기반을 닦고 정합성을 검증하는 도구로서 논리학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의미를 생각함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이론은 크게 전기의 ‘그림이론’과 후기의 ‘게임이론(사용이론)’으로 나뉘는데, 한 사람이 두 이론을 모두 주장했다는 생각이 들 때면, ‘괜히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먼저 그림이론은 세계와 언어가 각각 논리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구성요소들이 서로 대응한다는 이론이다. 쉽게 말하자면, 언어와 세계가 대응하는데 언어의 명제와 대응하는 세계의 사실이 있고, 언어의 단어에 대응하는 세계의 사물이 있다는 식이다. 언어에 진리대응론을 적용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주장과 비슷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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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크 라캉 (1901-1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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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이면서도 우리가 누군가의 말을 듣고는 사실에 비춰본다는 점에서 직관적으로 떠올리기도 쉬운 이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는 게임이론 또는 사용이론 이라고 불리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어떤 단어나 문장의 의미가 그것이 사용되는 맥락 안에서만 가치를 갖는다는 이론이다. 맥락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용자들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규칙들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규칙은 비트겐슈타인이 가족유사성이라고 한 속성을 갖는다. 이 가족유사성은 각각의 언어 규칙 또는 게임 규칙들이 가족의 얼굴들처럼 서로 동일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씩 닮아 있다는 속성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농구에도 축구에도 야구에도 규칙이 있고, 승패를 득점한 점수의 크기로 가린다거나, 공을 가지고 한다는 유사한 규칙은 있지만, 농구 경기에서 축구공을 사용하거나 야구 경기에서 농구공을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언어에 진리정합론 내지 진리실용론을 적용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언어의 사용이 맥락과 정합적이어야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또 그 의미가 일상생활에서 드러나서 우리의 의사소통에 유용하다는 점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5 장에서는 사적 언어에 대해 논의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정말 혼자만의 언어가 불가능할까? 라는 의문은 아직도 남아있다. 한 언어가 충분한 규칙들이 있고 그 구성요소들이 다른 언어만큼 풍부하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반지의 제왕>의 저자 톨킨의 경우, 그 소설에서 등장하는 요정들의 언어인 요정어를 고안해내기도 했는데, 소설에서 사용되기는 했지만,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의사소통을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언어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언어의 지위에 그것의 발달 과정도 포함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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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토끼는 서로 다르지만 같은 특성을 공유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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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옥스퍼드 일상언어학파의 오스틴과 설에 대한 설명이었다. 먼저 오스틴은 언어철학의 관심을 일상어로 돌리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는데, 언어를 일종의 행위로 보고, 그것을 분석하려 했다. 오스틴에 따르면 우리가 말을 하는 발화 행위에는 세 가지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말을 하는 그 자체인 ‘발화 행위’와, 발화하는 중에 수행되는 행동인 ‘발화 수반 행위’와 그것으로 하여금 어떤 효과를 일으키게 되는 ‘발화 효과 행위’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 같은 여름에 누군가 “아 더워!”하고 말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 말을 한 것 자체는 발화행위이며, 옆에 있던 사람이 “그래 정말 덥다.”라고 했다면 발화수반행위가 되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옆에 있던 사람이 창문을 열어주거나 에어컨을 틀어주었다면 발화효과행위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오스틴은 언어를 하나의 행동으로 봄으로써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설은 오스틴의 주장을 발전시켜서 발화수반행위를 언어적 의사소통의 최소단위로 보고 이를 ‘언어행위’라고 불렀다. 그리고 설은 ‘문장의미’와 ‘화자의미’가 다른 ‘간접적 언어행위’의 작용 과정에

대해 분석하거나 반어와 은유의 과정에 대해서도 분석했는데,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청자가 화자의 발화 그 자체의 문장의미가 아니라 발화에 담긴 화자의 화자의미를 알아채느냐 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설 자신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완벽히 알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으므로, 추후에 다른 도서를 통해 그 이후의 논의에 대해 더 알아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퍼트남이 소개되었는데, 퍼트남의 자연종 명사에 대한 분석은 굉장히 그럴듯했다. 물을 예로 들자면, 최초로 이름 붙인 사람이 축축하게 고여 있으면서도 찰랑대는 것을 보고 “이것은 물이다.”라고 했고, 그것이 점점 퍼져나가서 다른 사람들까지 그것을 ‘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기 전의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그것에 이름을 붙이는 상황으로 넘어가는 상상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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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치킨 먹고 싶어!'라는 발화행위를 한다면, 누군가 치킨을 주문하게 되는 발화효과행위가 수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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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해결의 언어

책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자연의

생명들로부터 얻은 지혜를 인간의 과학 기술에 적용하는 내용들이 자세하게 나온다. 예를 들면, 나미브 사막 풍뎅이가 사막에서 물을 만드는 걸 보고 물이 부족한 곳에 도움을 주는 기술을 개발할 가능성을 찾는다거나, 연잎 표면을 보고 방수 페인트를 개발하거나 하는 것 등이다. 또는 얼룩말의 털과 피부가 검정색과 흰색 줄무늬로 되어 있는 것은 열 흡수 정도에 따른 표면에서의 기압 변화로 바람을 일으켜 열을 식히기 위함인데, 이것을 건물 구조에 적용하거나 하는 것도 있다. 이런 생존을 위한 다양한 전략도 어쩌면 언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책에서는 문제해결의 방식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문제해결은 ‘인간이 목표 달성을 지향하는 행동’으로 정의된다. 인간이 일상생활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략으로는 연산법(algorithm)과 발견법(heuristic)의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연산법은 문제 해결에 필요한 모든

조작이 단계별로 명시된 절차이다. 예를 들어 사칙연산, 논리

등이 있고, 발견법의 예로는 ‘추수철에 장마가 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의 문제를 경험적 법칙으로 해결하는 것이 있다. 반면 발견법은 과거에 비슷한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가설을 형성하여 해결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보면, 우리는 특정 질병에 걸려 사망하는 사람의 수보다 살인이나 재해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를 더 많게 생각한다.

보통 우리가 직면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발견법을 통해 해결하는 경향이 있다. 왜 합리적인 판단법 대신 발견법을 사용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최소한의 인지적 자원을 사용하려 하기 때문에 단순하고 간편한 발견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발견법은 종종 오류를 발생시킨다. 동일한 문제상황이어도 말의 순서를 바꾸거나 다른 방식으로 제시하면 사람들은 다른 판단을 내린다.

허버트 사이먼은 이러한 문제해결방식과 자연선택을 연관 지으려고 했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언어를 도구라고 보는 관점에서 언어는 연산법과 발견법 중 어떤 방법에 그 기원을 두는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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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도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할까?

▲ 연산법은 정확한 대신 인지적 자원을 많이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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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언어가 의사소통의 도구, 생각의 도구 등 여하튼 ‘도구’라고 할 때, 도구는 문제해결을 위해 사용하는 어떤 것이므로 언어 역시 그렇게 사용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로 나뉜 문제해결방식에서 어떤 쪽에 더 가깝게 그 기원을 두는 지는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대부분 문제해결을 위해 발견법을 이용한다고 했으니 발견법에 그 기원을 두는 것일까?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언어에 대한 비교가 아주 잠깐 나온다. 동물이 서로 주고받는 신호(동물 언어)는 외부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에 기인한다고 한다. 따라서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연결고리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신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인간의 언어는 우리의 사고와 별개로 존재하는 실체와 구조적인 인과관계를 갖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에서 소개된 여러 동물들의 사례에서 그들의 생존전략, 적응전략을 그 자체로 언어로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의사소통이 언어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언어의 가장 중요한 정의 중 하나는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물의 의사소통에 관해서도 조금 더 탐색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도구로서의 언어

우리는 어떨 때 언어를

사용하는가? 많은 상황이 있겠지만, 특히 누군가를 설득할 때, 언어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듯 보인다. 지도교수님의 추천으로 선정한 <수사학>은 언어의 기능 중 설득에 초점을 맞춘

책이었다. 특히나 일 대 다수의 설득 상황인 연설에 관한 내용이 많았는데, 깊게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자는 수사학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수사학을 그 자체 학문으로만이 아니라 문화/사회 등의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다루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수사학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 수사학은 언어를 교묘하게 사용해서 상대를 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라는 뉘앙스가 좀처럼 떨쳐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의 말처럼 이러한 수사학을 공부한다면 다른 사람의 간사한 수사에 빠지는 일은 적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책에서도 나온 것처럼 현대판 수사학의 정수인 광고의 유혹을 떨쳐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 볼만한 것은 – 물론 광고에서는 언어(언어적 수사법)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미지들도 사용된다(시각적 수사법). - 언어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연의

법칙과는 다르다. 수사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은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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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는 수사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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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으로 설득 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어는 설득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일까?

수사학에는 다섯 가지 규범(발상, 배열, 표현, 기억, 발표)과 파토스, 로고스, 에토스라는 연설의 3 요소가 있다고 한다. 또한 연설도 사법적/제시적/토론적 연설로 나뉜다. 하지만 저자도 인정하듯이 이러한 구분은 딱 떨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없으며, 서로 어느 정도 모호한 영역을 공유한다. 또 수사학의 규칙들을 잘 지킨다고 해서 상대를 완전히 설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친구 A, B 가 각각 나에게 돈을 빌리러 왔다고 상상을 한 번 해보자. A 는 수사학의 규칙들을 어느 정도 잘 지켜가며, 자신의 처지를 나의 파토스(감정)와 에토스(성품)에 호소하며 자신에게 돈을 꿔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A 는 일전에도 비슷한 식으로 돈을 빌려가서 갚지 않은 적이 있다. 반면 B 는 수사학을 구사하는 법은 잘 모르지만, 이전에 빌려갔던 돈들은 잘 갚아왔다. 이런 상황이라면 나는 당연히 B 에게 돈을 빌려줄 것이다. 책에서처럼 연설의 내용과 연설자가 다른 사람으로 인지되는 순간 설득은 효과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궁금한 점은 그렇다면 수사학에서 언어의 비중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하는 점이다. 위의 상상을 떠올려보면, 돈을 꿔달라는 설득의 성공 여부에 언어는 얼마나 기여 하는가? 내 생각엔 A, B 의 요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기능밖에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두 경우 모두 언어로 설득을 시도하고 있지만, 수사학 활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 돈을 빌리게 되는 것은 성실한 품성을 지닌 B 이니까 말이다. A 의 경우 언어의 활용은 오히려 자신에게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수사학>에서도 언어를 상징의 기호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상징, 이미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C 가 D를 설득하는 중이라고 했을 때, D 는 C 의 말투뿐만 아니라, 생김새, 몸짓, 품성, 재산 정도, 인간관계 등을 고려할 것이며, C 역시 D 를 설득하면서 D 의 가능한 인지 구조, 품성, 사회적 지위 등의 수많은 가능성을 고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C 와 D 는 서로의 가능한 이미지(상징)들의 총체를 고려하며 공방전을 벌일 것이다. 고려하는 대상들이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이 현실과 대응하는지 당사자들이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과, 현실과 대응하여 참인지의 여부가 중요할 수도 있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광신도들의 예를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 같다. 이들은 보통 현실의 증거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이해하는 바, 교리나 상징 따위에 따라서 움직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수사학 또는 수사학에서의 언어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언어뿐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저자도 얘기하듯이 수사학이 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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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도 표지판처럼 일종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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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수사학에서의 언어를 생각할 때는 연설문에 적힌 언어만을 분석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광고나 무익한 설득에 대한 방어를 위해 수사학을 어느 정도 배워두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의 언어: <프랑켄슈타인>의 수사학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에서,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과

닮은 여성을 창조해줄 것을 요구한다. 괴물은 온정적 공감을 바라고 외로워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지만, 자신의 외모로 인해 인간 사회에서 배척당했다. 자신의 외모로 인해 인간들과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과 같은 생명체를 탄생시켜주면 그와 함께 인간 사회에서 영영 떨어져 살겠다고 말한다. 만약, 프랑켄슈타인이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파멸로 몰아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존재를 계속 부정해오면서 괴물에게 반대하였다. 그러나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을 끈질기게 설득하였다. 즉, 괴물의 연설은 자신과 정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토론적 연설을 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괴물은 인간들로부터 계속해서 배척당해왔다. 괴물은 “인간이 나를 경멸로 대하는데 내가 인간을 존중해야 하는가?”라고 하면서 프랑켄슈타인을 협박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이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하였으며, 괴물은 로고스(논리)를 활용한 설득 방법을 사용한 셈이 된다.

괴물은 에토스(성품) 또한 프랑켄슈타인을 설득하는 데에 활용한다. 괴물은 ”...나도 그렇게 받아들여준 은혜에 감격해 눈물을 흘리며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려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즉, 자신은 은혜를 아는 존재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에토스를 표현하며, 배척을 당했지만 그것을 그대로 복수할 생각이 없고, 단지 자신의 요구만 들어준다면 자신을 배신했다고도 볼 수 있는 프랑켄슈타인에게 감사하면서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또한 프랑켄슈타인이 태도를 바꾸게 된 결정적 계기는 파토스(감정)에 대한 호소 때문일지도 모른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의 배우자를 창조해준다면 “우리의 삶이 행복하지는 않겠지만, 남을 해치지도 않을 테고 지금 내가 느끼는 이런 불행도 알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괴물이 배우자가 없는 지금의 삶, 공감할 존재 없이 외로운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의 불행함을 프랑켄슈타인의 동정심, 즉 파토스에 호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말을 들은 프랑켄슈타인은 ‘마음이 흔들렸다.’고 말하며, 괴물이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자신이 창조주로서 행해야할 의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또한 괴물의 설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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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 (1797-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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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성이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동정심에 호소하자 크게 흔들리는 프랑켄슈타인을 보며, 파토스에 대한 호소가 설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괴물은 이야기를 함에 있어 삼절문 또한 활용한다. 삼절문은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온 방법으로, 단순한 것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발휘한다. “오! 창조주여, 나를 행복하게 해다오! 딱 한가지 은혜를 베풀어 당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해다오! ... 내 청을 거절하지 말아다오!”라고 말하며 ‘~다오!’라는 어미를 세 번 반복한다. 이 반복을 통해서 괴물은 자신의 절박함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설득을 통해 동정심을 느끼기도 했지만, 괴물의 위협 또한 그의 결심에 큰 영향을 끼친다. 여기서 괴물의 위협이 그에게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괴물의 혐오스러운 모습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괴물의 탄생에서부터 지금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괴물은 생김새로부터 미움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괴물이 보호자라 부르며 도움을 주고 자신을 드러냈던 사람들조차 그의 생김새를 보자마자 그를 집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괴물의 생김새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 흉측하게 생긴 괴물의 그림자 아래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괴물의 생김새가 사람들, 프랑켄슈타인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시각적 수사법’이 활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각적 수사법이란 광고에 많이 적용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광고는 시청각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도록 설득한다. 물론 괴물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외모를 시각적 수사법으로 이용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괴물의 흉측한 생김새는 지속적으로 은연중에 괴물의 설득에 작용하였을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괴물의 말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다가도 그의 외모를 보고는 다시 괴물에게 반대하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나 다양한 수사적 방법의 사용을 통해 괴물은 결국 프랑켄슈타인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위협을 피하기 위해 괴물과 같은 존재를 다시 한 번 만들어내기로 결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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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의 외모가 호감적이었다면 이런 상황이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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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독서를 마치면서

여름방학 동안의 사가독서.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책 읽는 건 좋은 일이니까, 또 지원도 해주고 방학이라 시간도 많을 것 같으니까. 마침 운이 좋게도 선정이 되어 사가독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주제가 너무 학술적이었기 때문일까,

어떤 책을 읽을 때는 딱딱한 전공서적을 읽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 책은 거의 오기로 읽은 것 같다. 이 책을 반드시 읽어내고 말겠다는 마음으로. 덕분에 재미없는 혹은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건너뛸 수 있는 재량이 생겼다. 그 전까지는 이상한 강박 때문에 책 내용을 건너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그런 식으로 읽다가 책 전체를 포기한 적도 종종 있었다. 이것 만으로도 많은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좋았던 것은 책을 읽고 누군가와 이야기 할 수 있어서. 거의 항상 독서는 나만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 혼자 책을 고르고, 혼자서 읽고, 혼자 생각하고, 그렇게 끝. 프로그램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책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시간들이 생겼다. 같은 팀원인 민준홍 학우, 그리고 많은 도움을 받은 하병학 교수님과 함께 이야기하는 건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책을 읽어서 생기는 새로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한 것 같다.

방학 동안에는 정말 아주 오랜만에 책을 많이 읽었다. 어느 순간부터 책을 잘 읽지 않게 되었지만, 지금이랑은 다르게 어렸을 때는 책을 곧잘 읽었다. 12살, 13살때는 맨날 2~3 권씩 책을 읽었었고, 중학생 때도 한 달에 한 권 정도는 읽었던 것 같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글을, 더 어렸을 때는 미하엘 엔데, 그리고 더 어렸을 때는 로알드 달의 이야기와 해리포터를 좋아했었다. 그 세계에, 그 세계의 사람들에 푹 빠져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는 일기장에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고 괜히 화가 나서 책 속의 등장인물에게 왜 제제만 놓고 떠나버렸냐고 따지는 편지를 쓴 적도 있었다. TV 에도 나온 베스트셀러여서 기대하고 읽었는데 첫 번째 페이지만 읽고 실망해서 그대로 다시 도서관에 반납한 적도 있었다. 반대로, 너무 재미있어서 새벽까지 계속 읽어서 끝을 보고 잠에 든 적도 종종 있었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프로젝트의 주제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지만 예전에 책을 읽으면서 즐거웠던 기억들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마도 나의 많은 부분은 그 때 읽었던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세세한 내용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동안 책을 잘 안 읽은 만큼 내가 잊고 지낸 것들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책을 읽지 않는 습관이 쌓여버려서, 이 프로젝트를 했다고 책을 읽는 게 극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벌써 읽고 싶은 혹은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많이 생겼다. 이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 또 변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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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언급해서 지루할 만도 하지만 그것이 시작이었으니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영화 <컨택트>를 친구와 둘이 보고 나왔을 때 그 충격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생각의 구조까지 바뀔 수가 있다니! 친구와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내내 언어에 대해 우리들만의 생각으로 공방전을 펼쳤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하다.

그렇게 언어에 대한 호기심에 가득 차서 사가독서 프로그램에 신청했는데, 운이 좋게도 선정까지 되어서 방학 때는 오로지 언어에 대해서만 공부하고자 마음을 굳혔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시작하기 전의 마음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우선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책 선정에 미숙함이 다소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취지는 인간의 언어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자는 것이었는데, <쉽게 읽는 언어철학>의 경우에는 비트겐슈타인, 오스틴, 설, 콰인 정도를 제외하고는 언어에 대한 고찰이 철학에서의 언어에 국한되어 있는 듯 느껴져 흥미가 반감되었던 것 같다. 거의 절반은 논리학에 대한 이야기이니 말이다.

다음으로 <라캉의 주체>는 정말 너무 어려웠다. 지난 학기 수업 중에 ‘에로스와 철학’에서 다루었던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사랑의 역사>를 처음 접했을 때 인생의 위기가 왔다고 느꼈는데, 그 이후로 읽은 책 중에 가장 어려운 책이었다. 역시 같은 수업에서 라캉을 다루던 중에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에 대한 라캉의 생각에 매료되어 라캉을 더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라캉의 주체>를 고르게 되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한 내용은 ‘언어가 개인을 주체로부터 소외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책에서 아주 많이 반복되는 내용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라캉의 <도둑맞은 편지>에 대한 해석이나 욕망에 대한 분석도 재미있기는 했지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넘어선 그의 ‘주체’나 ‘분리’ 개념에 대한 부분은 정말 끔찍했다. 그 부분만 몇 번을 다시 읽었는지 모르겠다. 정말 오기로 정독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다 싶을 때는 빨리 포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에 하나라는 것을 이번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에 걸쳐 온몸으로 깨달았다.

<언어와 인지>는 종종 전문적인 단어를 써서 가독성이 조금 떨어졌던 것만을 빼면 아주 재밌게 읽었다고 할 수 있다. 책의 내용도 언어에 대한 체험주의의 입장을 그렇게 복잡하지 않게 장마다 잘 풀어내서 좋았다. 그리고 우리 팀이 계획한 독서 목록 중에서 가장 적절하게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채워주기도 한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언어가 인간의 신체와 인간이 사용하는 공간에 얼마나 한정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또 저자는 보통 말뭉치를 활용해서 주장을 전개했는데, 사례가 풍부하다 보니 쉽게 지치지 않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언어본능> 대신에 지도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프랑켄슈타인>을 읽었다. 소설책인 만큼 재미도 있었고 더 자유롭게 생각해 볼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괴물을 창조한 사람의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가진 가장 큰 의문은 인간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에 하나가 언어가 아닐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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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겠구나 하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소설 속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은 언어를 습득하고 그 자신이 보호자라고 부르는 인간들에게 언어를 사용해서 다가가지만 결국 그들은 괴물의 생김새를 보고 가차 없이 그 괴물을 내치기 때문이다.

심지어 괴물은 처음에 온순한 심성을 가졌고 외로움을 느끼는 연약한 피조물이었다. 하지만 혐오스러운 생김새로 그 주인에게도, 그가 보호자라 불렀던 인간들에게도 버려지니 외로움은 커지고 악한 마음은 커져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이 언어라면 프랑켄슈타인과 보호자들은 괴물과 소통하고 괴물을 인간의 울타리 안으로 받아들였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괴물의 생김새가 끔찍하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괴물을 미워하고 내친다. 심지어 괴물을 미워하고 내치는 이들은 모두 어느 정도 교양이 있는 사람들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에서 괴물에 대한 그들의 처사는 회의적인 결론으로 다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추었거나 그 이상의 고고한 인간이라도 생김새 하나에 다 무너져 내릴 뿐이라는 결론으로 말이다. 언어를 통해 복잡한 생물인 척 하고 있지만, 실은 아주 단순한 생명체의 자기만족이자 자기기만이었을 뿐인 것이다.

그래서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면서는 괴물의 입장에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심지어 그가 창조주임에도 불구하고 괴물에 대한 그 어떤 책임도 지려고 하지 않으며, 처음부터 괴물을 미워하기만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피해자이기만 한 것처럼 울부짖는 꼴이 위선자가 따로 없는 것 같았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면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책이었다.

여기까지 읽고 지도교수님과 중간보고서 관련해서 만남을 가졌는데, 처음에 하신 말씀이 선정한 책들이 다 어렵다는 말씀이셨다. 메일로도 한 번 말씀하셔서 <언어본능>을 <프랑켄슈타인>으로 바꾸긴 했지만 지도교수님께서는 맨 처음의 책을 뺀 나머지 책들은 다 어렵고 딱딱한 책이지 않았냐고 물으셨다. 사실 거의 그랬다. 그 순간 왜 조금 더 빨리 뵈러 오지 않았을까 하고 조금 후회가 되었다. 지도교수님은 마지막 책인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도 어렵고 전문적인 책이라며 <수사학>과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정신분석 입문> 등을 추천해 주셨는데, 우리는 그 중 앞의 두 권을 읽기로 했다.

지도교수님께서 수사학은 대학생 때 꼭 배워야 하는 학문이라고 하셔서 <수사학>을 가장 먼저 읽었다. <수사학>은 내용도 어렵지 않고, 다양한 사례들을 다루어 분석하면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설득, 언어 표현에도 적용해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재밌게 읽었다. 연설까지는 아니더라도 앞으로 발표할 일이 있을 때에도 어느 정도는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설득에서 중요한 요소들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어서 유익했다. 또 광고나 정치적 선전 등 탐탁지 않은 설득에 대해서 방어적으로 사용할 때도 그 가치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는 사실 읽으면서 동물 언어와 인간 언어를 비교하기에 좋은 책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책의 주제가 생명체들의 생존/적응 전략을 인간의 과학/기술에 적용하는 생명모방, 자연중심기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에 적응하는 것을 동물의 언어로 본다고 하면 그것은 분명 인간의 언어와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또 아무래도 책이 과학적으로 신기하고 흥미로운 내용을 많이 다루다 보니 확실히 다른 책보다 더 수월하고 재밌게 읽었다.

마지막으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는 독서 목록에서 빠지긴 했지만, 1 장의 제목이 ‘언어란 무엇인가?’여서 호기심에 1 장만 읽기로 했다. 책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잘 읽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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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언어에 대한 또 다른 접근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언어를 인간의 생물학적 기관 내지 실체로 간주한다. 거의 인간이 언어로 표현 가능한 무한 집합의 구조 그 자체를 언어로 보는 셈이다. 또 언어를 생물학적 실체로 보기 때문에, 인간에 의해 설계된 도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유전적으로, 내재적으로 주어진 ‘사고 언어’인 것이다.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목적은 없을 수밖에 없다. 1 장의 뒷부분은 다소 전문적인 내용으로 가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더 공부해 보고 싶어졌다.

처음 선정했던 책들의 난이도나 주제 연관성 등이 들쑥날쑥 해서 다소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그래도 두 달 간의 시간 동안 한 가지 주제를 향해 꾸준히 책을 읽고 공부해 봤다는 사실이 스스로 뿌듯하게 느껴진다. 또 한 가지 주제로 책을 읽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이번 경험으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책의 선정에서부터 그것을 꾸준히 읽어나가는 것, 주제에 알맞게 책을 더 고르거나 바꾸는 것 등등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팀은 특히 책을 선정하고 바꾸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분들에게는 가능한 한 빨리 지도 교수님께 도움을 청해서 가장 먼저 독서 계획을 다듬을 것을 추천해 주고 싶다.

사가독서 프로그램은 여기까지지만 무한한 활용을 가능하게 하는 유한한 수단인 언어는 앞으로도 계속 공부하고 싶은 주제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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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목록

도서명 지은이 출판사 출판연도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엘리 2016

쉽게 읽는 언어철학 박병철 서광사 2009

라캉의 주체 – 언어와 향유 사이에서 브루스 핑크 비 2010

언어와 인지 임혜원 한국문화사 2013

언어본능 스티븐 핑커 동녘사이언스 2008

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노엄 촘스키 와이즈베리 2017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문학동네 2012

수사학 리처드 토이 교유서가 2015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이인식 김영사 2012

참가자 지도교수 소속 지도교수 서명

김은진, 민준홍 학부대학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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