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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에 대한 리뷰
SI:REVIEW
어느덧 입동이 지나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그
시간의 흐름이 확실히 느껴지는 쌀쌀한 날씨지만
해가 뜬 시간이라면 겉옷 하나 걸치고 밖에서 산책
을 즐기기 좋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가을이 동
장군에게 쫓겨 완전히 떠나기 전에 올해 우리학교
가을 풍경은 어떤지 보고 느끼고자 산책을 나가봤
다.
푸르고 높은 가을 하늘과 학교 곳곳에 울긋불긋
물든 단풍, 그리고 차갑지만 쾌청한, 얼음 꽃 같은
공기를 즐기다 보면 어느 순간 가을의 끝자락이 선
사하는 풍경과 분위기에 빠져든다. 우리학교는 특
히 이러한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가을 산책을 하기
좋은 곳이다. 후문 언덕 외에는 경사진 곳도 딱히
없는 곳이다보니 지쳐서 거칠고 차가운 호흡을 내
쉬는 대신 기분 좋게 찬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다.
때문에 괴로움은 없고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고 여
유롭게 주변을 돌아볼 수 있다.
주변을 바라보면 경농관과 21세기관 사이의 나
무 덤불 사이로 작은 새들이 보인다. 겨울을 준비
하는지 봄에 비해 깃털이 두텁고 몸집도 더 통통하
다. 새들이 겨울을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편
가을을 즐기는 존재도 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깜짝 놀라는 어린 시냥이들은 우르르 흩어졌다
모이길 반복하고, 성묘인 시냥이들은 추위에 몸을
웅크리면서도 따스한 가을 햇빛을 찾아 낙엽을 바
스락 바스락 밟는다. 인문학관과 경농관의 담쟁이
덩굴들은 초록을 잃고 잎을 땅으로 떨어뜨린다. 정
문부터 후문까지 주르륵 늘어선 곱게 물든 나무들
역시 잎을 버리며 겨울을 대비한다. 온 세상 만물
이 각자의 방식으로 떠나는 가을을 만끽하고 다가
올 겨울을 대비한다.
이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제1공학관에서 잠
시 걸음을 멈춰 행인들을 바라보면 모두 제각각이
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시작했음에도 트렌치
코트를 고수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여름 동안 옷
장에 넣어둔 과잠을 입는 사람이 있고, 두꺼운 돕
바로 몸을 꽁꽁 싸매 이미 동장군의 공격을 대비하
는 사람도 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강의실로
가는 사람, 떨어지는 낙엽을 보는 사람 등 옷차림
과 이 시기를 대하는 태도 등 모든 게 제각각이다.
가을을 마무리하는 방법은 이처럼 굉장히 다양하
다. 마지막을 즐겁게 보내기도 하고, 대비와 적응의
시간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공
통적인 것이 있다. 다시 돌아올 것을 알기에 그 누
구도 가을이 떠남을 아쉬워할지언정 슬퍼하지 않
는다. 그저 다음을 기약할 뿐이다. 다음 가을은 올
해와 조금은 다른 모습일 것이다. 시냥이들은 성묘
가 될 것이고 새들은 더 많은 무리를 꾸린 상태일지
도 모른다. 사람들의 옷차림 유행도 새롭게 바뀔 것
이다. 내년에 찾아올 가을엔 우리대학에 어떤 모습
이 펼쳐질지 기대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글·사진_ 이길훈 수습기자 [email protected]
가을은 여름과 겨울 사이에 있다. 요즘같이 여름
과 겨울이 길고 봄, 가을이 짧은 시기에 가을은 하
나의 고유한 계절이라기보다는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기 전 잠깐 거치는 간이역 같다. 기자는 겨
울보다는 여름이 좋다. 동결되어 있는 듯한 겨울에
비해 여름에는 무언가 역동적이고 설레는 일이 일
어날 것만 같다. 같은 이유로 여름에서 겨울로 가
는 가을보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가는 봄이 더 좋다.
이렇게 보면 봄과 가을이 조금
서운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
각도 든다. 자신들도 사계(四季)
를 구성하는 엄연한 계절이므로
나름의 합당한 대우를 받을 자격
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 않을
까. 그래서 가을의 무늬를 담아낼
수 있는 시집을 한 권 골랐다. 바
로 허수경 시인의 『누구도 기억하
지 않는 역에서』다.
“연인의 집에 들르느라 서두르
던 태양처럼 짧”(「레몬」)은 여름을
뒤로하고 가을은 온다. 그런데 시
인에게 가을은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은 계절이다.
시인에게 가을은 “오므린 손금처럼 어스름한 가냘
픈 길”이고, “내 손금 안에서 속으로 울음을 오그린
자줏빛”을 가을의 무늬라고 말한다.(「이 가을의 무
늬」)
가을은 추수의 계절이기도 하다. 농부의 심정으
로 지난 10개월간의 경험을 되짚어본다. 시간이라
는 씨앗을 뿌려 경험들을 길러내었으니 여기에서
어떤 의미를 추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막상 수
확할 의미가 손에 확연히 잡히지 않는 것 같다는 생
각이 들면 어쩐지 막막한 기분이 든다.
『아무도 오지 않는 역에서』는 시간 속에서 무리해
서 의미를 추출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시집은 흘
러간 시간은 그 자체로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
을 보여준다.
가끔 누구나 긍정적이든 부정적
이든 마땅히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
해주는 문장을 만나는 것은 반가
운 일이다. 시인이 “사라져갈 여름
은 해독할 수 없는 손금만큼 아렸
다”라고 쓸 때, “우리의 현재는 나
비처럼 충분했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그리고 곧 사라질 만
큼 아름다웠다”라고 쓸 때 반가운
감정이 든다.
언어는 생각의 그릇이다. 상투
적인 언어는 상투적인 생각을 낳
는다. 새로운 생각의 지평을 열어주는 낯선 언어들
을 만나보고 싶다면 가을이 다 가기전에 시집 한 권
을 손에 쥐어보는 것 어떨까.
김세훈 기자 [email protected]
영원할 같았던 여름의 이글거림이 지나가고 어
느새 차가운 바람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면 파란
하늘에 색색의 단풍들이 펼쳐져 있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가을을 소재로 한 노래라고 하면 이문세
의 ‘가을이 오면’, 양희은의 ‘가을 아침’, 김광석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같은 많은 노래를 떠
올릴 수 있다. 그중에서도 기자는 싱어송라이터 다
린의 노래를 가장 좋아하고 가을의 분위기와 잘 어
울린다고 생각한다.
친구에게 다린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가장 많이 돌아오는 대답
은 ‘뭐, 달인이라고?’다. 달인이
아니라 다린은 2017년 ‘가을’이
라는 곡으로 데뷔해 서정적인 가
사와 깊은 울림을 주는 노래로
인디 음악신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다.
‘그대 나 없는 가을을 미워하지
말아요. 우리는 흘러가고 나는
지금도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으
니/혹시나 우리 서로 지나친대도 그 가을은 여전히
그대로 어느 곳은 꽃 피우고 어느 곳은 쓸쓸한 그
대로 사랑하고 있을 테니’ 다린이 부른 ‘가을’이라
는 노래의 가사다. 잔잔한 멜로디에 그냥 이야기하
는 듯 담담하게 부르는 노래지만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듯한 가사는 가슴 속에 깊은 울림을 준다.
가을이 새벽공기의 잔잔함이 느껴지는 노래라면
‘까만 밤’은 해가 짧아져 깊어진 가을밤에 잘 어울
리는 노래다. ‘난 까만 밤에 묻어있던 인사들을 기
억해 빈자리처럼 나보다 오래된 눈으로 잠들거나
혹은 지나쳐버린 취한 듯 망설이는 가장자리/모든
풍경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기적처럼 못다 한 말들
은 저 멀리 산산이 흩어지며 발견하길 기다리는 듯
하루 곳곳에 숨은 채 하나의 비밀이 되어 내일을
만드네’ 경쾌한 멜로디에 밝은 목소리로 부르는 노
래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진다. 매일 밤 학
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중앙로에서 이 노래
를 듣다 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진한 회색빛
의 하늘, 그리고 그 속에서 빛나
는 별과 달까지 매일 보는 똑같
은 풍경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Rubato’라는 곡은 낙엽이 떨
어지는 가을의 풍경과 잘 어울린
다. ‘넌 포말처럼 흩어져 어느 단
편으로 나를 데려가 너의 눈꺼풀
사이로 부서지는 빛 파도처럼 나
를 삼켜요/우리가 밟게 될 모든
곳은 희미하지만 사라지고 있지
만 나의 잔향은 널 위한 기도 너
는 다시 있을 나를 위한 위로’ 귀
를 사로잡는 다소 투박한 듯한 기타 소리와 함께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길을 걷다 보면 갈색빛의
낙엽이 부스러지는 소리를 듣고 싶어져 일부로 낙
엽이 쌓여있는 곳으로 지나가게 된다.
‘가을 타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생
각이 들 정도로 왠지 모르게 감성적이게 되는 요
즘, 감정의 기폭제가 되어 줄 다린의 노래를 들으
면서 중앙로를 걸어보면 색다른 감정들과 풍경들
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신유정 수습기자 [email protected]
옆구리가 시린 계절이 돌아왔다. 내 옆구리에 아
무도 없다는 사실이 뼈에 사무치게 다가오는 이런
계절에는 로맨스 영화를 봐줘야 한다. 그렇게 마음
이 이끄는 대로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를 봤다.
우리가 흔히 꿈꾸는 연애는 아름답고 성숙한 어
떤 그 무엇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현실의 연
애는 매우 찌질하고, 한밤중에
이불을 차게 만든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는
기존의 미디어에서 그리던 환
상적인 연애를 벗어나 현실적
연애를 그렸다. 엉망진창이고
환상적이지 않은 현실적 연애.
남자주인공부터 구질구질하다.
파혼당한 ‘재훈(김래원 역)’은
매일 술을 마시고 전 여자친구
에게 ‘자니?’ 등의 메세지를 보
낸다. 다른 로맨스 영화에서의
멋있는 남자주인공과는 차이를
보인다.
또 주인공들이 처하는 상황도
답답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재훈이 다니고 있
는 회사로 이직한 ‘선영(공효진 역)’은 바람을 핀 남
자친구와 요란스럽게 헤어진다. 설상가상으로 선
영의 집에서는 ‘왜 결혼 안하고 헤어졌냐’며 압박을
한다. 이렇게 잘 풀리지 않는 연애사만으로도 힘든
데 직장 동료들마저 선영을 힘들게 한다. 전 직장
에서의 헛소문으로 선영의 뒷담화를 하다가 걸리
고 만다.
이렇게 ‘고구마’같이 답답한 가운데에서 ‘사이다’
같이 시원함을 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선영이다.
선영은 항상 담담하고 당차다. 초면에 다짜고짜 자
신에게 반말을 하는 재훈에게 똑같이 반말로 응수
하기도 하고, 자신을 뒷담화했던 직장 동료들에게
그들의 비밀을 낱낱이 밝혀 통쾌하게 복수한다.
이런 선영과 재훈을 이어주는
매개체는 바로 ‘술’이다. 재훈은
영화에서 “소주 한 잔 외에는 기
댈 곳이 없다”고 한다. 직장인
들이 으레 현실 속의 답답함을
술로 푸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
서인지 선영과 재훈의 ‘썸’은 술
집에서 시작된다. 둘은 술을 통
해 대화하고 술 게임을 통해 진
심을 전한다. 여기에서 가장 인
상 깊었던 게임이 등장한다. 상
대방이 입모양을 통해 말하면
그 내용을 맞추는 게임. 그들은
이 게임을 통해 은밀한 속마음
을 내보인다.
또한 눈여겨 봐야하는 것은 선영의 사랑스러운
패션이다. 빨간 도트 블라우스부터 롱부츠까지. ‘레
트로’스러운 분위기를 내면서 세련됐다. 이 외 색감
있는 영상미, 유쾌하고 거침없는 대사 등 이 영화
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술 냄새 나지만 사랑스러
운 그들의 연애를 보러 가자.
박은혜 기자 [email protected]
시대의 가을을 떠나보내며
시간이 그리는 가을의 무늬
감성적인 가을을 노래하는 가수, 다린
술 냄새 나는 현실 로맨스
▲ 다린의 첫 앨범 「가을」의 앨범커버.
다린만의 따뜻한 감성이 느껴진다.
▲ 허수경,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
에서』, 문학과지성사, 2016
▲ 김한결, 가장 보통의 연애, 집, 2019.
▲ 제1공학관에 멈춰서 바라본 우리대학 가을 풍경
제737호 2019년 11월 12일 화요일
9교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