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문화방송 2020. 4 라디오 2020 4 행복을 찾는 사람들 1 IBK기업은행 서광주지점 거래고객 광주한국병원 이담선 원장 & 이완수 원장 행복을 찾는 사람들 2 가산디지털중앙 기업성장지점 거래고객 생활공작소 김지선 대표 ‘코로나 19’ 달라진 일상 양희은 · 서경석입니다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 Upload
    others

  • View
    2

  • Download
    0

Embed Size (px)

Citation preview

Page 1: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문화방송

20

20

. 4라디오

2020

4

행복을 찾는 사람들 1

IBK기업은행 서광주지점 거래고객

광주한국병원 이담선 원장 & 이완수 원장

행복을 찾는 사람들 2

가산디지털중앙 기업성장지점 거래고객

생활공작소 김지선 대표

‘코로나19’ 달라진 일상

양희은·서경석입니다

Page 2: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04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일상

12 이달의 편지

‘마스크와 할머니의 눈물’ 외

68 만화로보는여성시대

72 행복을 찾는 사람들 1

광주한국병원

이담선 원장 & 이완수 원장

76 행복을 찾는 사람들 2

생활공작소 김지선 대표

80 코너 속 편지

‘잘 키운 방위 열 현역 안 부럽다’ 외

110 양희은의 스튜디오에서

이 봄이 힘겹다

112 서경석의 스튜디오에서

봉준호, 송강호가 한 배를

탈 수 있었던 이유

2020년 4월호contents

12

72

76

IBK기업은행 협찬의 월간 여성시대는 작지만 큰 감동을 전하고자 합니다.매월 10일 IBK기업은행에서 무료로 배포하며, 이웃과 함께 보면 감동이 2배로 늘어납니다.

전국 주파수 안내(표준FM) ※ 전국 각 지역은 아래 주파수대에서 MBC 라디오 청취가 가능합니다.

서울 95.9 부산 95.9 / 106.5 대구 96.5 광주 93.9 대전 92.5 / 91.3 전주 101.7 / 94.3 창원 98.9

춘천 92.3 / 88.9 청주 107.1 제주 97.9(견월악) / 97.1(삼매봉) 울산 97.5 강릉 96.3 진주 91.1 / 93.5 목포 89.1

여수 100.3 안동 100.1 원주 102.5 / 92.7 충주 96.1 삼척 101.5 / 93.1 포항 100.7 울진 102.7 울릉도 98.5

발행일 2020년 4월 10일 발행인 ㈜문화방송 대표이사 박성제

등록번호 라 - 5413 진행 양희은, 서경석 프로듀서 하정민, 유기림

방송 MBC라디오 매일 아침 9:05~11:00 인터넷 주소 www.imbc.com

방송중 열린전화 02-368-1500 문의 02-789-3401 주소 (03925)서울시 마포구 성암로 267 MBC 라디오 여성시대

편집·제작 하나로애드컴(02-3443-8005) 표지 작가 이미경 월간지(비매품)

※ 본지는 한국도서윤리위원회 규정을 준수합니다.

‘코로나19’달라진 일상

Page 3: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사연의 주인공을 직접 만나는 코너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를

‘코로나19’로 일상이 바뀐 여성시대 가족들이 보내주신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04 |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일상

[2338] 부산 해운대 재래시장에서 채소 노점

장사하는데 코로나19로 손님이 없어요.

[9701] 요즘 어쩔 수 없이 병원 다니고 있어요.

병원 출입 시 이렇게 도장을 찍어줘요. 꼭 놀이

공원 간 기분 들어서 상상으로 놀이공원 왔다,

제 뇌를 속이고 있어요.

[8595] 주말에 사회적 거리 두고 바다를 보러

잠시 다녀왔어요. 아이들이 엄청나게 좋아했습

니다. 좀 더 힘내면 되겠죠.

[7664] 밖에 나가고 싶어서 베란다에 붙어서 지

내는 우리 손자 손녀입니다. 누가 지나가면“할머

니 사람 있어요. 사람~” 소리 지르는데 마음 아

파요.

[0250] 지금 충주여성회관에서 생활 개선 임원

들과 함께 마스크 2000개 나눔 봉사하고 있습

니다.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한 시간 기다리다 마스크 2장

구입했습니다. 늦게 오신 분들은 못 샀다고 하

네요.

[8359] 어제부터 이웃집이 애들 맡길 데가 없

다고 해서 제가 집에 있는 김에 봐준다고 했어

요. 같이 노는 건 괜찮은데 점심이 좀 부담스러

웠는데 반찬까지 해서 보냈네요. 제가 더 감사

하네요.

[4857] 마스크 때문에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

습니다. 아침 7시부터 한 시간 동안 줄을 섰습

니다.

[5749] 어제저녁에 아파트 문 앞에 놓여 있더군

요. 택배하는데 힘이 납니다.

[2538] 건대입구역 양꼬치 골목입니다. 착한 임

대료 현수막이 눈에 들어옵니다. 착한 임대인

분들 그리고 자영업자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

05

Page 4: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8639] 11살, 8살 두 녀석 깨워서 차로 5분 거리

친정 아빠께 데려다 놓고 출근하는 길입니다.

아빠 정말 고맙습니다. 현진, 현찬, 외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있어.

[1788] 코인 노래방은 불안해서 못 가고 부개역

끝 난간 앞에서 혼자 조용히 노래하고 있습니

다. 코로나가 선물한 야외 노래방입니다.

[4909] 마트 갈 때 잠깐 쓴 마스크 햇볕에 말리

고 있어요. 불안감도 햇볕에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4946] 하우스 안은 안심인가요? 뜨거우니까요.

아무 데도 못 가고 뜨거운 데서 일하고 있어요.

꽈리고추 가격이 너무 싸요. 급식도 식당도 모

두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4457] 울 손자들 밖에 나가고 싶다고 이렇게

있다고 하네요. 얼른 이 사태가 지나갔으면 좋

겠습니다.

[1251] 경북에서 분식집 하는 자영업자입니다.

어제 새벽에 일어나 아내와 함께 김밥, 샌드위

치 싸서 소방서 구급대원들에게 드리고 왔어요.

[6646] 코로나 때문에 버스에 타는 손님도 눈

에 띄게 줄었어요. 잘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4946] 우리 손녀들 갈 데 없어서 비어 있는 밭

에 오라 했더니 이웃 아이와 함께 신나게 놀고

갔어요. 또 오고 싶다고 하네요.

[5488] 저는 인천에 사는 초등학교 아이 둘을

둔 아빠입니다. 아이들이 바깥에 나가지 못하

니 베란다에서 이렇게 놀고 있네요.

0706 |

Page 5: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8649] 마스크 1인 5매 사기 위해 아침 6시부터

3시간 기다려 샀습니다.

[0124] 어제 맘카페에서 만난 대구지역 두 분께

택배로 마스크 나눔 했습니다. 아이들 마스크

가 부족하다고 해서요.

[4578] 주말에 우리 동네 주민들과 같이 방역했습니다. 경로당도 문을 닫아서 부녀회 회원들이 어

르신들 찾아뵙고 돌봐드리고 있습니다.

[5475] 바깥에 못 나가니 베란다에 매트 깔아

서 책 읽고 간식 먹고 햇볕 쬐고 뒹굴뒹굴합니

다. 한두 시간이 후딱 갑니다. 얘들아, 오늘도

베란다로 고고~

[8182] 대구입니다. 텅 빈 서문시장입니다.

[5339] 코로나로 인해 가족들만 조촐히 조카

백일을 지냈네요.

[6425] 코로나 때문에 웬만한 행사가 다 취소

되는 바람에 서울꽃시장에서 꽃 보내지 말라고

하네요. 이 꽃을 따서 버려야 하니 속상합니다.

[7385] 정성 들여 애지중지 키운 시금치 밭을

판로가 없어서 갈아엎었어요. 지금 농촌은 코

로나로 심각합니다.

[8595] 비상근무 연속이네요. 코로나 때문에

택배 물량이 늘었어요. 사무실에서 운송장 분

류하고 박스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택배기

사님들이 수월하게 가져가십니다.

[3204] 집에서 호떡처럼 이리저리 뒤집고 다니

는 녀석들에게 멸치 똥 빼기 한 박스 미션을 내

렸습니다. 시간 보낼 일 생겼다고 좋아하네요.

0908 |

Page 6: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0221] 요새 코로나로 다들 힘들고 지쳐 어제 가족회의를 했어요. 좀 더 힘차게 지내는

방법! 매일 사랑한다, 고맙다 표현하기!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하는데 아내가 “자기야

사랑해. 오늘도 힘내~” 하고 엉덩이 팡팡 해주는 데 힘이 나고 좋네요.

[김기월] 대학교 4학년 울 아들, 학교 갔다 온다고 해서 “나가니?” 했더니, 자기 방으

로 들어가면서, 온라인 강의 듣는다고 하네요. 웃프다고 해야 하나요. 얼른 물러가라

코로나19. 실습이 더 많은 학과인데 참 걱정이 됩니다.

[0600] 저희 애들 다니는 합기도장에서 관장님이 여기저기서 발품 팔아 구매하신 마

스크를 사범님들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셨어요. 합기도도 지금 휴업

에 들어가서 힘드실 텐데 아이들에게 2장씩 주면서 ‘많이 못 드린다며 죄송하다’ 하시

는데 아이들을 생각하는 그 마음에 더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1504] 오늘 제가 마스크 구입할 수 있는 날. 이렇게 살 수 있어 감사하다고 약사님께 인

사하고 받아 왔습니다. 약국 세 군데 다녀왔습니다. 수고하시는 약사님들 감사합니다.

[8827] 국내 항공사 직원입니다. 회사가 어려워 현재 무급휴직 중이에요. 이번 주엔 월

급의 33프로를 삭감한다는 소식도 들었네요. 제 월급은 한 달쯤 못 받아도 상관없으

니, 십여 년 다닌 사랑하는 회사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현재 남아서 근무 중인 직원들의 건강을 빌어요.

[2505] 저는 군화를 둔 고무신입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남자친구랑 두 달째 만나지 못

하고 있습니다. 많이 힘들 텐데 편의점에서 일하는 제 걱정을 매일 해주네요. 너무 고맙기

도 하고 고생하는 남자친구한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모든 곰신들 힘내세요.

[6018] 부산의 초등학교 교장입니다. 매일 등교 시간에 교문에서 우리 아이들을 웃으

며 맞이했는데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아 답답하고 허전합니다. 활짝 웃는 얼굴로 맞는

우리 아이들은 어떤 꽃보다 아름답고 귀엽답니다. 집에 갇혀있을 아이들이 몹시 안타

깝네요. 어서 빨리 아이들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9618] 저희는 충남 서산에 사는 15살 정예담, 12살 정예음입니다. 진짜 학교가 이렇게

가고 싶었던 적이 처음이에요. 학교에만 갈 수 있다면 급식도 안 남기고 열심히 학교 다

닐 수 있을 것 같아용.

[5071] 딸아이의 돌잔치 행사를 취소하였습니다. 대신 그 비용 일체를 아픈 아기들을

치료하는데 기부하기로 하였지요. 오히려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해요.

일러스트 | 이경선 [email protected]

12 마스크와 할머니의 눈물

16 그래도 봄은 온다

18 할머니와 딸처럼

21 일용근로자 일이 없어요

23 어르신들께 마스크 전달

27 서 있는 택시들

30 확진이면 어떡하지…

33 동생을 위한 기도

36 예비 신부입니다

38 오늘 걸릴까 내일 걸릴까

41 우리 집 초등 백수

43 여기는 대구입니다

46 우체국 마스크 판매

49 베란다 일광욕

52 컴퓨터가 고장 나면

56 꽃들아, 미안해

59 못난 공시생 아들입니다

62 아들의 사연을 듣고 난 뒤

이달의

편지

‘코로나19’ 달라진 일상

이달의 편지 10 | 11

Page 7: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50대인 우리 부부는 부천에서 작은 공장을 같이 운영합니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 들어가니 젊을 때는 가뿐하던 돌발

상황 대처에 둔해지는 것 같습니다.

나라가 어수선해서라고 애써 위로도 해보지만 지난 2월 아침 기습

적인 함박눈이 내렸는데 출근하면서 주차장에서 눈을 밟은 것이 그

아래 얼어있던 빙판을 밟아 뒤로 꽈당 넘어졌어요. 머리에는 커다란

혹이 나고 정신은 혼미해지더군요.

온 가족이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머리를 좀 다쳤거든요. 사무

실 가까운 작은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두개골 골절 같다

고 다시 CT를 찍었습니다. 그러고도 결과를 보던 의사 선생님은 머

리를 갸우뚱하면서 머리 골절 말고 다른 게 조금 의심된다며 큰 대학

병원에 가서 머리 MRI 찍을 것을 권하셨어요.

이 시국에 이게 무슨 일인지 싶어 속상했습니다. 사실 19년 전에

하나 있던 여동생이 뇌종양으로 잘못되었는데 선생님이 조그만 종양

같은 게 보인다고 하니 심란할 밖에요.

결국 일하던 아들도 분당에서 달려오고 아들 차로 응급실을 찾아

가서 각종 검사를 하고 MRI까지 찍었습니다. 사실 아픈 거는 견딜

만했는데 다들 종양 소리에 놀라서 아들 성화로 찍은 거지요. 제 이

모가 많이 아꼈던 아들은 이모를 보낼 때 엄청나게 슬퍼해서 종양 소

리에 무척이나 놀랐나 봅니다.

그날은 MRI 찍고 일단 퇴원하고, 검사 결과를 보러 출근해서 대충

급한 일만 하고는 병원을 찾았습니다. 요즘은 병원 가기가 겁나고

힘들어서 남편도 못 오게 하고 혼자 갔습니다. 병원 가서 좋은 일이

없을 듯해서 말입니다.

병원 입구에서는 열 체크를 하고 마스크 미착용한 사람은 당연히

출입 제한이었습니다. 열 체크하는 줄에 서서 기다리는데 소란스러

워 보니까 허름한 차림의 할머니가 검색대 관계자하고 실랑이 중입

니다. 할머니는 ‘비싸고 구할 수도 없는 마스크를 어찌 쓰냐? 할아

버지 약 타러 왔다’고 거의 울상이신데, 검색하는 분은 마스크하고

다시 오시라고 못 들어가게 합니다.

사실 제 가방 안에 여분의 마스크가 두 개 있었습니다. 저도 남편

도 매일 먹는 약이 있어 조심해야 해서 어렵게 구한 마스크를 정말

아끼고 아껴 사용하고 있거든요. 잠시 망설였지만 할머니를 보니까

돌아가신 친정엄마 생각도 나고 마음이 안 좋았어요.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마스크 두 개를 드리면서 “이거 쓰고 오늘 들

어가시고, 하나는 갖고 있다가 다음에 오실 때 쓰세요” 했더니 조금

13이달의 편지 12 | 이달의 편지 12 |

김효경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평천로

마스크와 할머니의 눈물

Letter 1

Page 8: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전까지 언성 높이던 할머니가 갑자기 눈물을 훔치면서 고맙다고 손

을 잡으십니다. 괜히 울컥해서 저도 같이 눈시울이 뜨거워졌어요.

아직 젊은 우리도 몇 시간씩 줄을 서도 구하기 힘든 걸 어르신들이

어찌 구하라는 걸까요? 씁쓸하고 속이 상합니다. 할머니는 메고 있

던 가방을 뒤져 사탕 두 개를 주셨습니다.

“마스크가 비싸서 살 엄두도 못 냈어요. 할아버지 약이 떨어져서

그냥 왔는데, 코로나인지 뭣인지 그냥 마스크 안 하고 걸리면 집에

서 혼자 죽어야지 했다우.”

할머니의 말씀에 저도 눈물이 줄줄 흐르더라고요.

제가 자판기 앞으로 모시고 가서 따끈한 커피를 한 잔 빼 드리니

할머니는 하루에 폐지 줍고, 공병 주워서 4~5천 원 겨우 버는 데 그

거 모아서 할아버지 약값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나라에서 나오는 돈

으로 겨우 쌀 사고 나면 돈이 없어서 마스크는 못 산다고 하셨습니

다. 여기가 우리 동네라면 사무실에 좀 더 있는 마스크라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고 인사하고 왔지만 병원 들어가시던 할머니 뒷모습이 오래도

록 눈에 남아 제 마음이 무겁습니다. 할머니 앞길에 좋은 날만 있으

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는 여분을 더 갖고 다니다 마스크 안 하고 다니시는 어르신

들 뵈면 드려야겠어요. 아무리 구하기 힘들다고 해도 어르신들보다

는 제가 좀 더 나은 환경이겠지요. 이래저래 코로나19로 피해 보시

는 분들이 없길 기도합니다.

제 검사 결과는 다행히 골절 이외는 깨끗하다고 합니다. 이 또한 감

사하지만 아들 카드로 70만 원이나 긁게 했으니 그게 참 미안하네요.

버티다 보면 지나갈 거고, 꼭 좋은 날이 오겠지요. 두 분도 건강

조심, 코로나19 조심하고 다 같이 서로 도와가며 이 힘든 시기를 잘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할머니가 주신 목캔디 두 개는 오래도록 간직해야 할 거

같습니다.

15이달의 편지 14 | 이달의 편지 14 |

Page 9: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여행으로 제주 가는 배를 타려고 들렀던 광안리 해수욕장은 모래사

장뿐이었는데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명소가 됐다.

그러고보니 봄 바다는 처음이다. 봄은 남쪽 끝에서 온다는데, 드

문드문 거니는 사람들의 하얀 마스크가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으

니 설렘 금지라고 하는 듯하다. 그래도 바닷가 마을 담벼락 위로 뻗

은 가지에 새순은 묵묵히 봄을 알리고 있었다. 이리 시끄러워도 곧

꽃을 팡 터뜨리겠다고….

제 아빠 닮은 아들은 자취방을 꼼꼼하게 고르더니 층수와 채광까

지 입지 조건이 마음에 든다고 신이 났다. 과거의 유산과 개발이 섞

인 듯한 차이나타운 근처 초량동에 지어진 신축 원룸이었다. 같이

대청소하고 짐 정리하고 하루 자보니 안심이 되었다.

혼자 집 구하러 내려와 열 개가 넘는 방을 사진 찍어 올리는데, 내

가 지쳐서 대충 정하라고 했었다. 근데도 곰팡이까지 확인하며 고르

는 아들을 보니 결혼식 예복 한 벌 사는데 스무 벌 이상 입어본 남편

생각이 났다. 난 두 벌도 안 입어 보고 정했던 것 같은데….

아들을 두고 올라왔지만 부산 바람을 쐬고 와서인지 종일 긍정적

에너지가 솟는 중이다. 주변에서 유별난 아들 사랑으로 미래의 며느

리까지 걱정할 정도지만 그것마저 신께서 내려놓게 하셨다, 대학도

멀리 정해주고 군 생활로 떨어지기를 단련시키셨다. 그리고 해경 군

복무로 돈 주고도 배우기 힘든 요리를 배워왔다는 것이 이렇게 든든

할 수가 없다. 전입신고 마친 아들이 장을 보고는 비싼 물가에 놀랐

다고 하더니 오늘은 다진 마늘 값을 보고 가게에서 도망 나왔단다.

그리고는 가계부를 써보겠다고….

전역하고 나서 어른처럼 굴더니 점점 어른이 돼간다. 새롭게 운동

화 끈 꽉 매고 봄의 출발선에 선 아들을 응원한다.

아들 대학교 개강은 연기됐지만, 지난 주말 계약한 날짜가 있어

부산 자취방엘 가야 했다. 아들 이삿짐을 싣고 가는데 지나가

는 지방마다 코로나19 관련 안내 문자가 떠서 국제시장쯤으로 피난

가는 기분이었다.

고속도로는 뻥 뚫려 한 시간이나 단축되었지만 대구-청도 간 졸

음 쉼터엔 폐쇄 공지까지 붙어 있어 마음마저 위축되었다.

부산 자갈치 시장은 물론 우리가 매번 가던 맛집들도 주말인데 다

들 문이 닫혀 있었다. 나도 집콕하고 있을 땐 유배 생활 같아 우울했

는데 그나마 새로운 곳에서 받는 에너지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도

좋았다. 먹고 싶었던 언양불고기도 먹고, 밤에는 빈대떡과 막걸리

를 먹었더니 피폐해진 마음이 달달해졌다. 가난한 신혼부부가 신혼

차영순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귀인동

그래도 봄은 온다

Letter 2

이달의 편지 16 | 17이달의 편지 16 |

Page 10: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이달의 편지 18 | 19

어색해졌죠.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하루는 할머니가 화장실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하겠다고 하셨어

요. 할머니는 일주일에 두어 번 꼭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었는데 코

로나19 때문에 못 가니 몸이 너무 근질근질하시다면서요.

그게 뭐 큰일이냐 할 수도 있지만, 순간 저는 겁이 났습니다. 그

전날, 제가 목욕을 하고 나오다 수증기 때문에 바닥이 미끄러워서

넘어질 뻔했거든요.

할머니는 연세가 일흔 중반이신 데다가 뇌 관련 수술을 받은 지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너무 걱정이 됐거든요.

그래서 무작정 할머니가 목욕 중이신 욕실로 들어갔습니다. 할머

니는 깜짝 놀라면서 “여길 왜 들어오노? 화장실 급하나?” 물으셨습

니다. 할머니 다칠까 봐 들어왔다고 하면 할머니가 ‘아, 이제는 목욕

하는 것만으로도 손녀가 걱정할 정도로 내가 늙었구나’ 하고 자책하

실까 봐 “아니, 그냥 유럽에서 친구가 이거 사다 줬는데, 한 번 써 보

라고 들어왔지”라며 욕조에 입욕제를 넣어드렸습니다.

사실 그 입욕제는 하나에 만칠천 원씩 해서 살까 말까 눈물을 머금

고 샀던 입욕제였고, 평소 제가 목욕할 때면 하나를 칼로 쪼개서 여

러 번 나눠 쓰던 거였지만 기왕 할머니 드리는 거 다 넣어드리지 싶

어서 하나를 통째로 퐁당 넣어드렸어요.

그러자 할머니는 처음에는 의아하게 절 쳐다보다가 입욕제가 녹아

서 욕조가 예쁜 핑크빛 물로 바뀌고 향긋한 향기가 나기 시작하자 점

점 미소를 보이셨습니다.

“나는 70년 인생 살면서 이런 건 처음 해 본다잉.”

할머니께서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녹아 들어가는 입욕제를 쳐다

대구에 사는 올해 20살, 대학교 입학하는 학생 김재희입니다.

코로나19가 대구·경북에 많이 퍼지면서 다들 두려움도 많아

지고, 사람들끼리 의심도 많아지는 거 같아요. 바깥에 거의 나가지

못하니까 힘든 점이 많지만, 이 상황 덕분에 저에겐 좋은 일도 생겼

답니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부터 할머니랑 같이 살았는데 성격이 맞지 않

아서 싸우는 일이 많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로는 기숙사에 살게

되어서 3년 동안 할머니보다 급식실 아주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어요.

수능이 끝나고도 알바를 하거나 알바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방에

만 있거나,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느라 할머니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김재희

대구광역시 남구 효성중앙길

할머니와 딸처럼

Letter 3

이달의 편지 18 |

Page 11: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보셨죠.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은 완전 럭셔리 풀코스로 가자는 마음으로

욕조 뒤편에 수건을 깔고 앉아 안마도 해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안

마까지? 이게 무슨 일이고 허허허~ 팔 안 아프나? 얼렁 나가라”라

고 쑥스럽게 말하면서도 엄청나게 좋아하셨어요.

“할머니, 나 집에서 가만히 밥만 먹고 잠만 자는데 이런 거라도

해야지. 그리고 나 대학교 기숙사 들어가면 이런 시간이 또 언제

오겠어”라고 말씀드리며 등에 물도 계속 뿌려드리고 안마도 해드렸

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재희야, 그럼 할머니 등도 좀 밀어도”라고

말씀하시며 “평생 딸이 없어서 맨날 목욕탕 가면 등 혼자 대충 밀었

는데 재희, 네 덕분에 한 풀었네” 하시는 겁니다.

아들 삼 형제를 혼자 키우신 할머니는 목욕탕 갈 때마다 딸들이 엄

마 등 밀어주는 게 그렇게 부러우셨대요.

그 날, 할머니 등도 다 밀어드리고, 손이 안 닿는 몸 구석구석 제

가 다 씻겨드렸습니다. 미끄러지실까 봐 바닥에 수건도 깔아서 안전

하게 나오셨고요.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당연히 사이도 더 좋아졌습니다. 딸

없어도 손녀가 딸이랑 매한가지라면서 할머니는 요즘 절 엄청나게

아끼시고, 저도 그런 할머니가 참 좋아요.

코로나19 때문에 다들 힘든 점도 엄청 많지만 우리 가족처럼 다 같

이 모인 시간이 많아진 만큼 평소 못 나눴던 얘기들을 해보는 건 어

떨까요? 제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성시대 가족 여러분, 여성시대를 아니 라디오를 들어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자영업을 하다가 동생 보

증 한 번 잘못 서 준 덕에 이렇게 됐네요. 자영업 할 때 아침에 라디

오를 켜는 것으로 시작하여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있었는데, 그로부

터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지났네요.

그 후 우리 네 식구 먹고는 살아야겠다는 신념 하나로 건설 현장

막노동을 시작했습니다. 아침 4시 50분쯤 일어나 5시 32분 첫 전

철을 타야 했고 그러다 보니 라디오를 들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여러 지원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우리처럼 하루하루 일

해서 먹고사는 일용근로자들은 그 혜택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Letter 4

배상우

서울시 은평구 통일로

일용근로자 일이 없어요

이달의 편지 20 | 21

Page 12: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이달의 편지 22 | 23

오늘도 아침 5시에 기상해서 대충 씻고 인력사무소로 향했습니

다. 오늘은 행여나 일이 있을까 하고요. 그러나 10분이 지나고, 30

분이 지나도 전화벨 소리는 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시간째, 시간은 아침 6시 30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다 지

친 사람들은 한두 명씩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저

도 벌써 13일째 일이 없습니다.

어제는 딸 보험을 해약했습니다. 내야 하는 대출 이자 몇만 원이

아까워서 해약한 겁니다.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뭐라고 이야기라도 하면 더 나을

것 같은데 아무 말이 없네요. 조용히 아내 옆에 다시 누웠습니다.

아내가 속삭이듯이 말을 합니다.

“이럴 때 좀 쉬어. 10년 넘게 쉬어본 적 없잖아. 괜찮아. 대신 내

가 많이 벌어올게.”

7시 10분, 딸이 방문을 두드립니다. 방에 있는 저를 보더니 “아

빠, 오늘도 데려다줄 거야?” “응, 그래.” “아빠, 그러면 나 5분만 더

잘게” 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갑니다.

딸이 특성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 간호조무사 실습을 하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두 번을 갈아타야 해서 요즘 제가 일이 없다 보

니 병원까지 데려다주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제 머릿속이 엉망이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든 이 힘든 시기를 슬기롭게 잘 넘겨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근로자 여러분과 일이 없어 쉬고 계신 분

들 우리 모두 힘내자고요. 감사합니다. 여성시대에 털어놓고 나니

그나마 속이 좀 시원해지네요.

아침 10시에 나가 저녁 8시에 들어와서 샤워하고 김밥 한 줄 먹

고 커피 한 잔 들고 앉았습니다.

우리 동네는 부산 동래구 사직동입니다. 부산에서도 동래구 온천

동 온천교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나와서 온천교회와 근접

한 우리 동은 모든 사람이 불안해하고 위험한 상태입니다.

오늘 통장들이 65세 이상 어르신들께 마스크 5장씩을 배부했습니

다. 아침 10시부터 집마다 방문해서 마스크를 전달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딩동! “누구누구 씨, 통장인데요. 마스크 배부 왔습니다” 했지만

굳게 닫힌 문은 쉽게 열릴 줄을 몰랐습니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코

로나19 때문에 누구하고도 대면하기를 꺼리는 요즈음 통장들에게

Letter 5

김병순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

어르신들께 마스크 전달

Page 13: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이달의 편지 24 | 25

마스크를 일대일로 배부하라는 소식에 처음에는 이게 무슨 날벼락인

가, 통장들을 위험 속으로 밀어 넣겠다는 건가, 차라리 통장을 그만

두었으면 그만두었지 이런 위험한 일은 못 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

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택배기사 분들도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으

로 택배를 현관 앞에 놓고 간다는 문자만 남기고 가는 판에 우리더러

몇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직접 대면해서 마스크를 전달하라니 정

말 못 할 일이다 싶었습니다.

차라리 주민센터 직원 몇 명이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직접 방문해

나누어주면 어떨까 하는 말을 하려다가 요즈음 주민센터 동장님 이

하 모든 직원이 휴일도 없이 비상근무를 하고 직접 방역을 하는 모습

을 봤기에 아무 말도 안 하고 마스크 상자를 싣고 왔습니다.

먼저 우리 아파트 경비실에서 시작했습니다. 명단을 보고 인터폰

을 해서 마스크를 나누어 드리자 다들 고마워하시고, 어느 어르신은

마스크를 구입 못해서 지금 마스크 하나로 일주일을 쓴다고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습니다. 또 어느 분은 마실 거를 가져다주고 우리를

위해서 이 위험 속에 고생이 많다고 격려를 해주시는데 정말 고맙고

보람이 있었습니다.

제가 분담받은 게 130명 정도인데 저는 적은 편이고 저보다 두 배

가 훌쩍 넘는 통도 있습니다. 우리 아파트부터 시작해 보니 보람도

있고 용기도 났습니다. 간단하게 마스크를 가져온 이유를 설명하고

전달하니까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 거였습니다. 그런데도 몇 번

이고 찾아가서 문을 열게 해서 마스크를 전달하면 다들 얼마나 고

마워하는지요. 오늘 아침 기분과 오후 기분이 완전히 백팔십도

달랐습니다. 너무 뿌듯하고 보람 있어서 점심도 굶은 채 땀을 뻘

뻘 흘리며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려서 130명분의 마스크 중 9분

에게만 전달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내일 꼭

전달해 드릴 겁니다.

돌아다니는 중간마다 동장님과 사무장님이 힘들지 않으냐, 너무

어려운 일을 시켜서 미안하다, 마스크 받으신 분들의 반응은 어떠

냐, 문을 안 열어주고 부재중인 집은 그냥 들고 오면 직원들이 전달

하겠다고 위로와 따뜻한 격려를 해주셔서 더 힘이 났습니다.

아침 기분 같아서는 대충하고 못 하겠다고 주민센터에 갖다주고

Page 14: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이달의 편지 26 | 27

싶었는데, 일해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통장 생활 몇 년 만에 이렇

게 반겨주고 따뜻한 대접을 받아본 기억은 없습니다.

역시 마스크가 귀하기는 한가 봅니다. 마스크를 다섯 장씩이나 드

리니 다들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정말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도 있었습니다. “나는 마스크가 있으니 마스크가

꼭 필요하신 분들에게 주세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말 “고맙습니

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요즈음 마스크가

‘금스크’인데 이런 좋은 분이 있었습니다. 그 어르신 말을 듣고 너

무 감동을 받아서 저도 이런 모습을 배워가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

습니다.

처음에는 위험한데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을 시킬까 원망스러웠는데

사람 사는 일에 서로 조심하면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대화를

하는데 뭔 일이야 있겠습니까.

혹시 마스크를 쓰지 않고 문을 열어 주시는 어르신들께는 제 신분

을 밝히고 “마스크 착용하고 나오실래요” 했더니, 불쾌하게 생각하

지 않고 다들 마스크를 쓰고 나와서 마스크를 받아들고 고마워하셨

습니다.

정말 세상은 아직은 따뜻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우리 통장

회장님이 오늘 고생했다고 전화를 하셨네요.

우리 동래구 사직1동은 동래구에서 제일 작은 동입니다. 12통까

지 있고 가족처럼 모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사직1동 통장님

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사직1동 동장님을 비롯한 사무

장님 그리고 직원분들, 요즈음 코로나19 때문에 너무 힘들고 고생을

많이 하십니다. 세상이 따뜻하니 아마도 머지않은 날 코로나19도

물리칠 겁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전 세계가 가슴 졸이고 있다. 진원지

가 중국 우한이라고 하는데, 어떤 경로로 한국에 침투했는

지, 한국은 지금 준전시 상태 같다.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 아닌, 사

람과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전쟁을 방불케 한다.

퇴치를 위하여 온 국민이 힘을 모으고 있는데, 특히 나날이 기하급

수적으로 늘어나는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대구·경북 의

료진과 시민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을 매스컴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보다 못한 빛고을 광주광역시가 대구의 환자를 받겠다

며 고통 분담을 자처하기도 했다.

이 어려움 속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도 곳곳에서 쏟아진다.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구하지 못해 몇 시간씩 줄을 서기도 하고, 마스크 구하기

Letter 6

김상철

경남 김해시 율하로

서 있는 택시들

이달의 편지 26 |

Page 15: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나는 택시기사다. 약국이나 농협 하나로마트를 쏘다녔으나 마스크

를 구하지 못했다. 가는 곳마다 대답은 “없습니다”였다. 그나마 코

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에 일회용 마스크 10여 장을 사 놓은 것으로

버티고 있다. 마스크나 손소독제 공장을 24시간 풀가동해도 수요를

따를 수 없단다. 이 와중에 쌀의 뉘처럼 마스크를 사재기하다가 적

발되는 사례도 있다. 벼룩의 간을 내먹어도 유분수지. 이 시국에 마

스크나 손소독제로 폭리를 취하겠다는 철면피들을 보노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자영업자들의 하소연이다. 오프라인 시

대에 길들여진 소상공인들은 최저 임금 인상과 더불어 온라인 상거

래가 주를 이루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

로 코로나바이러스가 급습하면서 망연자실한 상태다. 대형마트와

대형 음식점 등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란다. 대부분의 소상공인은 하

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영세상인이라 하루만 장사가 되지 않아도 점

포세 걱정을 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도심의 거리와 상가는 공황 상태라

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저기에서 한숨 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택시 영업도 마찬가지다. 개인택시들은 그나마 사납금이 없으니까

조금 나은 편이지만 법인택시를 운행하는 택시기사들은 목이 바싹바

싹 탄다. 회사에 쉬겠다고 요청해도 받아주지를 않는단다. 운전기사

가 없다는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사납금으로 생돈을 밀어 넣으

며 운행한단다. 한 시간을 돌아다녀도 승객 한 명을 못 태우는 경우

가 허다하고, 카카오택시 콜이나 지역 콜조차 없다.

개인택시 기사인 나는 지난 토요일을 기점으로 비번을 끼워 3일

연거푸 쉬었다. 딸 보육비와 가족들의 생계비 때문에 비번이 아니면

좀처럼 쉬지 않는데,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눈 딱 감고 택시를 세

웠다. 나뿐 아니라 개인택시 기사들은 운행을 단축하거나 쉬는 기사

들이 적지 않다. 자동차 운전 40년, 택시 운행만 26년인데, 1997년

IMF 때도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없었던 일이다.

또한 택시기사들은 좁은 공간에서 승객들을 맞이해야 하므로 코로

나19의 공포에 떨게 된다. 늘 마스크를 끼고 운행하지만 ‘저 승객은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승객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떨쳐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승객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몇 해 전에 인류를 긴장케 한 사스와 메르스도 그렇지만 14세기 영

국의 흑사병이나 19세기 조선의 호열자(콜레라)가 죄 없는 백성들

의 목숨을 많이도 앗아갔다. 우리 조상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마을에도 호열자가 침투하여 몰죽음을 당하고 있을 때, 우리 증조할

아버지는 씨라도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엄마 없는 젖먹이였던 할아

버지를 오쟁이(짚으로 엮어 만든 바구니)에 담아 내가 살았던 궁벽

한 산촌으로 피신 오셨음을 큰아버지께 들었다. 엄마 없는 할아버지

를 동네 아낙들의 동냥젖을 얻어 먹여 키웠단다. 그래서 그런지, 우

리 세대는 가장 먼 촌수가 사촌이다. 할아버지가 결혼하면서 다산으

로 자손이 번성했다.

하루빨리 백신이 개발되어 세계 곳곳을 휘젓고 다니는 이번 코로

나19도 결국은 멀지 않아 종식되리라 기대하면서, 어둡고 안개 자

욱한 이 긴 터널을 하루속히 벗어나 정상적인 활동과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국민들이여! 힘드시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시고 코로나19 퇴

치에 온 힘을 기울입시다!”

이달의 편지 28 | 29

Page 16: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져 나가면서 우리나

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뉴스가 서서히 몰려왔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설마 우리까지. 아니지.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데’ 안심하

고 있었다. 연일 방송에서 뉴스 특집으로 실시간 몇 명이 확진 판정

을 받았다는 긴급한 뉴스가 뜰 때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퇴근 후에 집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부동산 일을 하는 아내

에게서 다급히 걸려온 전화에 나는 털썩 힘이 빠져 버리고 멘붕이 왔

다. 방을 구하러 온 손님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연락이

왔단다. 대전에서 두 부부가 마스크도 안 쓰고 와서 방 때문에 30여

분쯤 머물다 갔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뉴스가 나올 때부터 나는 아

내에게 꼭 마스크 쓸 것을 신신당부하였고, 아내도 사무실에서 마스

크를 쓰고 있었기에 안심은 하였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면서 뭐를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아내의

전화기는 쉴 새 없이 울려댄다. 당황해하는 아내를 진정시키고 보건

소에 전화하여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검사를 부탁하였더니 좀 더

지켜보잖다. 그날이 금요일 저녁이니 토, 일요일에 무슨 일이 벌어

지면 큰일 날 것 같아서 더 강하게 이야기하니 곧 데리러 온단다. 잠

시 후 보건소 구급 차량이 와서 아내를 싣고 보건소로 갔다. 두어 시

간 후 아내와 생필품 보따리가 도착하였다. ‘쿵’ 가슴이 내려앉는다.

올 것이 왔나보다 체념해 본다.

확진자와 접촉하였으니 열흘 동안 일단은 자가 격리를 해야 하고

검사 결과는 다음 날 오전 중에 통보해준단다. 뭐를 먼저 해야 하나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나도 안심은 아니지, 한 이불 덮고 살

았으니. 어떡한다.

모든 동선이 공개되고 거기에 해당하는 곳 모두 피해를 볼 건데 만

약에 확진이 나오면 큰일이다. 우리는 괜찮다 하여도 코로나19 이

후로 너무 장사가 안된다고 힘들어하시는 마음씨 후덕한 식당의 이

모, 점심 후에 들리는 환한 미소가 아름다운 조그마한 커피숍의 미

스 정. 그들을 생각하니 잠이 안 온다.

아내의 흐느껴 우는 울음소리가 들리고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이

오는 걸까 싶었다. ‘혹 확진 판정이 나오면 그냥 집에서 회사만 다녔

다고 해야 하나. 그럼 다른 곳은 피해를 안 보겠지. 아니지. 더 큰

피해를 보기 전에 확실한 동선을 공개해야 하나.’ 수많은 생각에 뒤

척이다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하룻밤이 10년의 세월만큼이나 길

다. 후~ 일단 숨을 크게 쉬어본다.

이럴 때가 아니지. 집안 곳곳을 깨끗이 청소부터 하고 이불을 털

Letter 7

김평수

서울시 관악구

확진이면 어떡하지…

이달의 편지 30 | 31

Page 17: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이달의 편지 32 |

고 냉장고의 음식물을 정리하고 초조히 전화를 기다린다. 10시쯤 보

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음성 판정이란다. 야호! 우리는 애들이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얼싸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10일 동안 자가 격리를 해야 한단다. 외출은 절대 안 되고,

가족끼리도 접촉 금지하고, 하루에 보건소에서 하는 확인 전화 두

번은 꼭 받아 증상을 설명하여야 한단다.

일단 아내가 안방과 안방 화장실을 사용하기로 하고 나와 애들은

각자의 방과 또 다른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으로 자가 격리 지침을 지

키기로 하였다. 세면도구 심지어 식사 그릇까지 각자 사용하는 것으

로 하고 아내는 2주간 휴가를, 나는 10일간 휴가를 냈다. 애들은 휴

가 대신 퇴근 후 곧장 집으로 올 것, 엘리베이터 타지 않고 11층까지

걸어 다니기 등을 다짐하였다.

안방에 갇힌 아내를 위해 식사 당번은 내가 하고 있다. 용건이 있

으면 휴대폰으로 이야기하고 식사도 방문 앞에 놓고 똑똑 노크하면

아내가 가져간다. 아내의 얼굴 못 본 지가 10일이 다 되어간다.

가족의 소중함도 느껴지고 못 하는 음식이지만 최선을 다해 만들

어 주면 맛있다고 잘 먹어주는 우리 식구들. 아내의 그간 고생도 한

번 더 떠올려보고 앞으로 더 잘해주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이렇게 철저히 하는 것은 절대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생각에

서다. 이 어렵고 험난한 날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흘러갈 텐데.

난 내일이면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을 맞으러 세상으로 출

근한다. 최일선에 서서 고분분투하는 모든 분, 상심에 빠진 환자와

그 가족들 모두 힘내세요. 그리고 조용히 차분히 응원해줍시다. 모

두가 우리 형제들이고 자매들입니다.

난 요양원에 근무한다. 여기도 코로나19 때문에 외부인 차단,

개인위생 관리 철저 등을 아침마다 교육받는다. 둘 이상 모이

면 코로나 이야기, TV를 봐도 코로나, 라디오에서도 코로나, 휴대

폰에는 재난 안전문자가 쉼 없이 날아온다. 평소와 같이 일하던 그

때까지만 해도 코로나19는 나하고 아무 상관 없는 일인 줄 알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요양원에 출근해서 일하다 보니 점심때가

되어 동료들과 맛난 점심을 먹었다. 앞에 앉은 동료가 창원 모 병

원 간호사가 감염됐다고 매스컴에 나왔다고 말한다. 그곳은 내 동

생이 근무하는 곳이다. 식사 중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해서 전화

를 걸어본다. 계속 통화 중이다. 몇 번의 시도 만에 신호음이 울린

다. 동생이 받는다. “소식 듣고 전화했다, 정말이가?” 하고 말했더

Letter 8

박정순

경남 진주시 초북로

동생을 위한기도

이달의 편지 32 | 33

Page 18: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니 돌아온 대답은 “언냐, 내다. 지금 질병관리본부에서 나와 조사

중”이라며 전화를 뚝 끊는다.

순간 꿈인지 생시인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급하게 제부한테

전화했다.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본다. 큰조카가 2월 초 다니던 모

대학교에 다녀왔고, 13일쯤에 친구 군대 간다고 대구 갔다 왔다고

한다. 큰조카가 엄마를 감염시킨 것이다.

지금은 검사하고 각자 방에 격리되어 검사 결과를 기다린다고 한

다. 검사 결과는 큰조카도 양성, 불행 중 다행으로 제부와 작은 조

카는 음성이란다. 큰조카도 내 동생이 있는 격리 병동으로 이송됐

다. 나머지 두 사람은 자가 격리라고 한다. 좁은 방에서 지내야 할

두 사람, 병마와 싸워야 할 내 동생과 큰조카. 가슴이 먹먹하고 답

답해져 온다.

하지만 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 동생과 통화했다. 자기

도 피해자인데 자기 몸 아픈 것보다 본인으로 인해 큰 병원이 폐쇄

되고, 직장 동료에게 피해를 주게 된 것에 대한 심적 부담감은 상

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동생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네 잘못 아니다. 네 몸만

생각하고 어서 나을 생각만 해라”였다. 이 상황에 무슨 말이 위로

가 되고 귀에 들어오겠는가.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위로뿐이

다.

사촌한테 전화가 온다. 혹시나 해서 전화했단다. SNS에 내 동생

같아 보이는 사진과 신상이 자세히 적힌 사진이 여기저기 돌아다

닌다고. 캡처해서 나에게 보내왔다. 할 말을 잃었다. 인터넷 검색

을 해봤더니 그야말로 동생에 대한 거짓 정보가 홍수를 이룬다. 무

슨 사이비 종교인이라며 입에 담지 못할 말이 넘친다. 제부 신상부

터 애들이 사이비 종교 다녀와서 옮겼다고 하면서 SNS에 돌아다

닌다.

평화롭던 한 가정이 몸도 맘도 엉망이 되었다. 주변 가족까지도.

지금 젤 힘든 사람은 본인과 가족이다. 주위의 따뜻한 말 한마디,

위로가 정말 필요하다.

내 동생은 지금 몸도 맘도 너무 많이 아프다. 먹은 것도 토하고

소화가 안 된다고 한다. 링거 맞고 있다며 “언냐, 지금 늙은 호박

죽이 젤 먹고 싶다” 한다. 동생 몸이 낫고 나면 내가 농사지은 늙은

호박으로 맛나게 호박죽을 끓여줄 것이다.

지금 코로나19 악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내 동생과 조카를 위

해 기도합니다. 의학 드라마에서처럼 병원 최전선에서 멋지게 최

선을 다하는 의료인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

리고 악마와 싸우고 있는 의료진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 인사 전합

니다.

이달의 편지 34 | 35

Page 19: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이달의 편지 36 | 37

저는 창원에 사는 예비 신부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휴대폰

에 ‘D-day 5일’이라고 적혀 있네요. 5일 후면 바로 제가 결혼

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젠 의미가 없어요. 결혼을 연기했거든요.

2월 중순쯤이었던가요. 대구에서 폭발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들

이 쏟아지기 시작한 게. 처음엔 이미 날을 잡았으니 그냥 소소하게 가

족끼리라도 식을 치르자고 했건만 하필 예비 신랑이 대구 사람인지라

부득이하게 연기하게 되었습니다.

예식장에 전화해서 울고불고하던 게 오래전 일 같네요. 다행히 예

식장에서 잘 배려해줘서 수수료 없이 연기했습니다. 그렇다고 다시

날을 잡은 건 아니고요. 상황이 좀 진정되는 대로 하려고 해요. 그렇

게 결혼식을 연기하기로 확정하던 날, 이제껏 하던 다이어트 때려치

우고 집에서 삼겹살에 소주 시원하게 먹었습니다.

사실 저 혼자만 이런 일을 겪는 건 아니니까요. 모든 국민이 힘든 상

황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으니까 건강만 챙기고 잘 있다가 다시 예

쁘게 결혼식 하면 된다고 그렇게 마음 다잡았어요.

그런데 그 후로 예비 신랑을 못 본 지도 벌써 3주째예요. 신랑이 대

구 사람인지라 조심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못 보게 되는 건지.

기약이 없으니 심적으로 한 번씩 힘이 드네요. 한편으로는 서로 건강

하니까 ‘집에서 잠깐 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니야.

그래도 조심해야지’ 싶기도 하고 뉴스를 볼수록 더 혼란스럽네요.

사실 사태가 이 정도로 심해지기 전엔 신혼여행만 취소했거든요.

그래서 한 번뿐인 신혼여행을 국내로 가야 하나 생각했는데 결혼식조

차 연기하게 될 줄이야.

그래도 예비 신랑이 긍정적인 사람이라 낙담해 있는 저에게 우린 참

특별한 인연인 것 같다며 나중에 모두가 우리 결혼식 기억할 거라고

저를 달래줍니다.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죠? 이렇게 되고 나니 결혼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것들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정말 중요한 건 예비 신랑과 저 그리고 가족들 모두 건강한 것 그리

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것도 알겠고요. 당연한 일상들이 얼마

나 소중했는지 많은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지금 이 마음도, 이 상황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또 잊히겠지만, 결

혼해서 살다 보면 힘들어질 일이 또 있을 테니까요. 그때 지금 이 마

음을 기억하게끔 꼭 글로 남기고 싶었어요.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신랑 때문에 속상해요’라는 사랑싸움 글을 쓰게 되는

날이 오겠죠?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모두 건강하세요!

Letter 9

김혜정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예비 신부입니다

이달의 편지 36 |

Page 20: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저는 경기도에서 입원 병상 120여 개를 운영하고 있는 재활병

원 원장입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저는 경기도 구리시 근처에서 일하고 있

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메르스로 고통받고 있었고 저 역시 환

자가 많이 줄어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구리시의 모 병

원에 메르스 확진 환자가 입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주의 깊

게 후속 기사를 살피던 중, 그 병원이 메르스 이후 파산했다는 사실

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의 파산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습

니다. 환자들 입장에서 치료제도 없는 바이러스에 노출될 걱정에 그

근처를 지나가는 것도 꺼리는 것이 당연할 테니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좀 슬펐습니다. 거기 입원했던 메르스 확진 환

자는 본인이 잘못해서 걸리지 않았을 테고, 그 환자를 입원시킨 병

원도 그 사실을 알고 입원시키지는 않았을 테니 누구에게 책임을 물

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메르스 발생 병원’이라는 낙인이 찍혀 폐업

하게 된 원장은 무엇을 잘못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2020년 지금, 대한민국은 코로나19 사태로 공포에 떨고 있습니

다. 저 역시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제가 감염되는 것은 크게 걱정하

지 않습니다. 저는 비교적 건강관리를 잘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혹시 제가 감염되면 어떤 상황이 생길지 상상이 되세요?

첫 번째로 가족이 격리되겠죠. 그리고 제 가족이 사는 아파트는 방

역소독을 층층이 다 하겠죠. 그리고 소문이 날 겁니다. “저 집이래~.”

그 후에는 코로나19 낙인이 찍혀 한동안 눈총을 받을 겁니다.

두 번째로 병원이 뒤집히겠죠. 환자들은 한 사람씩 모두 검사를 받

을 것이고, 코호트 격리든 집에서 자가 격리든 격리가 되겠죠. 그리

고 소문이 날 겁니다. “저 병원이래~.” 그 후에는 환자들이 찾지 않

을 것이고, 아마도 파산이겠죠.

비교적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제 속은 말이 아닙니다. 조금만 생

각해도 우울해지고, 눈물도 핑 돕니다.

지난 2월 18일, 우리 병원의 환자에게 폐렴 증상이 생겼습니다.

원내가 발칵 뒤집혔죠. 그때만 해도 지역사회 감염에 대해서는 예방

하자는 얘기만 나왔으니까, 병원 인근에 감염자는 한 명도 없는 상

태였어요. 그래도 일단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보건소에 전화했는

데, 우리를 나무랐죠. 방역과 격리를 잘 못 했다면서요. 그 공무원

의 말이 미우면서도 이해는 되었습니다.

첫 발생으로 낙인찍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냐고, 그 공

무원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인근 선별진료소에 가서 검

Letter 10

이영석

경기도

오늘 걸릴까 내일 걸릴까

이달의 편지 38 | 39

Page 21: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이달의 편지 40 |

사를 받고 CT를 찍었습니다. 응급실 담당 의사는 CT상 폐렴이기

는 하나 바이러스 폐렴 양상은 아니며 항생제도 반응이 있는 것으

로 보이니 걱정하지 말고, 환자를 병원으로 모시고 가도 된다고 했

습니다. 다행이긴 했는데 조마조마했습니다. 좀 더 센 항생제로 바

꾸고, 다음날 환자의 체온과 전신 상태가 안정되고 나서야 저는 마

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의료 인력들이 대구로 자원해서 갔습니다. 저도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우리 병원 환자들과 가족이 눈에 밟힙니다.

2월 29일에는 인근 아파트에서 감염자가 나왔고, 접촉자로 의심

되는 분이 우리 아파트에 계신다며 일부 동이 소독에 들어갔다고 합

니다.

저는 엘리베이터를 타면서도 걱정스럽습니다. 물론 저보다 더 전

문가인 의사 선생님들이 언론을 통해 마스크를 잘 쓰면 감염이 되지

않는다고 했고 저도 마스크를 잘 쓰고 있었으니 괜찮을 테지만, 머

리로는 알면서도 걱정스럽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느 교회 부목사님

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던 주민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하니 말입

니다.

저는 걸리면 안 되는 상황에 있습니다. 저는 걸리면 민폐가 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환자들을 다 집으로 보내서 코로

나19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댁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마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부디 사회적 낙인은 찍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슬퍼해 주시

고 응원해주세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의료진의 입장도

이해해주세요. 지금은 화내기보다 서로 이해하고 응원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대구에 사는 김수진이라고 합니다. 저에게는 6학년 딸이 한 명

있습니다. 지난 2월 18일 딸이 학원을 다녀온 후로 9일째 딸

과 저는 아파트 밖으로 나간 적이 없습니다. 그나마 저는 쓰레기를

버린다고 한 번 현관 밖을 나간 적이 있지만 딸은 아예 현관 밖으로

나간 적이 없습니다.

처음에 딸은 조금씩 공부도 하고 책도 읽었지만 확진자 수가 걷잡

을 수 없이 늘어갈수록 “엄마, 이런 시국인데 공부가 뭐가 중요해?

공부가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아”라고 말하며 종일 먹고 놀고 저와

같이 뉴스를 봅니다.

저도 공부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어른인 저도 집안일이 손에

안 잡히는데 아이들은 더 그렇겠지요. 그래서 저는 딸을 코로나바이

Letter 11

김수진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록로

우리 집 초등 백수

이달의 편지 40 | 41

Page 22: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이달의 편지 42 |

러스가 만든 ‘초등 백수’라고 놀립니다.

그나마 우리 딸의 즐거움은 창밖을 내다보는 것입니다. 우리 집이

주상복합이라 3층 필로티에 작은 정원이 있는데 거기에 까치도 날

아오고, ‘후투티’라고 보기 드문 새도 날아오거든요. 매일 새가 날아

오면 딸은 제 휴대폰으로 까치 영상을 찍으며 “오늘은 비가 옵니다.

그래도 까치가 2마리 날아왔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않은 지 일주일째입니다” 이런 식으로 멘트를 남깁니다. 마치 ‘안네

의 일기’를 썼던 안네가 생각나더군요.

어쩌면 코로나19의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 아이들이 아닐까 싶습

니다. 그동안 학원 다니느라 제대로 놀지도 못했는데 봄방학에도 밖

으로 나가질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대구는 확진자가 너무 많아서 확진자 동선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역에 거의 모든 곳을 확진자들이 다 다녀갔거든요. 지금 여성시대

를 듣고 있는 많은 대구 사람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실 텐데 하

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딸

과 함께 웃으며 밖에 나가고 싶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대구에 사는 두 딸을 둔 엄마입니다. 우리는 지

금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

민국은 너나 할 것 없이 ‘코로나19’로 인해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

다. 그리고 대구 시민들은 가중되는 어려움으로 더 힘든 시간을 보

내고 있습니다. 매일 엄청난 숫자로 늘어가는 확진자와 아직 검사조

차 받지 못한 대기자들의 불안한 마음이 더해져 대구 시민들은 하루

하루가 힘겹습니다.

지금은 누구를 비난하는 마음을 잠시 멈추고 온 국민이 한마음으

로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타격도 힘들지만,

그와 더불어 매일 늘어나는 확진자들과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마

냥 불안하게 기다리는 환자 가족들 그리고 턱없이 부족한 의료진과

Letter 12

권진영

대구광역시 남구 안지랑로

여기는 대구입니다

이달의 편지 42 | 43

Page 23: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이달의 편지 44 |

감염 예방에 기본적인 필수품인 마스크조차 제대로 수급받지 못하는

대구 시민들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소수 사람의 이기적인 발언과 생각 때문에 속상함과 서운함

이 배가 되어 상처받기도 합니다. 제 남편을 포함해서 타지방에서

근무하고 있는 대구 사람들은 병원 방문도 홀대받고, 시선 또한 예

사롭지 않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가짜뉴스라고 믿습니다. 남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금 더 어려운 이웃’이라

고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요?

현재 제 두 딸은 병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음압병동

으로 배정받아 근무하고 있는 큰딸과 병동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과

접촉해야 하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작은 딸에게 저의 온 마음

을 보태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큰딸이 음압병동에 근무하게 된 사실에 놀라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는데, 제가 걱정할까 봐 음압병동으로 배정받은 것도 며

칠 쉬쉬하며 알리지 않은 속 깊은 딸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워졌습니

다. 큰딸이 조용히 저를 안으며 “엄마, 힘들게 누워 있는 환자들이

다 내 부모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

도 힘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며 저를 안심시키더군

요. 그런데도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엄마표 걱정과 염려’는 어쩔 수

가 없습니다.

매일 같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바쁘게 뛰어나가는 딸들의 뒷모습

을 보는 마음은 편하지 않지만 서둘러 그 마음을 접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기로 다짐합니다. 온종일 긴장과 피곤함으로

힘들었을 딸들이 집으로 돌아와 맛있게 먹어줄 집밥을 해주는 것이

고작이지만 입맛이라도 잃지 않게 부지런히 두 손을 놀리는 것이 지

금 엄마인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울러 타지방에서 대구에 있는 가족들이 걱정되어도 쉽게 내려오

지 못하는 제 남편을 비롯하여 많은 분, 대구에서 열심히 각자의 자

리를 지키며 고군분투하시는 이웃분들께도 간절한 마음으로 파이팅

을 외쳐봅니다. 우리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합치면 반드시

이겨내리라 믿습니다. 대한민국 파이팅!

이달의 편지 44 | 45

Page 24: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이달의 편지 46 |

고객 대부분이 연세가 많으신 노인분들이라 1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힘든 상황에서 비까지 추적추적 오고 있었죠. 보다

못해 미리 번호표를 나누어 드리기로 양해를 구하고 상급 기관에 질

의를 해서 30분 정도 일찍 선착순 70분에게 번호표를 나누어 드렸

습니다. 기상 상태와 고객 연령층을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앉아서 편

하게 쉬라는 취지에서요.

하지만 오전에 왔던 분들은 2시부터 판매라더니 일찍 번호표를 나

누어 주는 게 말이 되냐, 2시에 판매라고 해서 왔더니 장난하는 것

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이냐며 성화를 내셨습니다. 또 번호표를

받으신 분 중 일부는 번호표를 받았으니 쉬다가 이따가 오겠노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죠. 판매 첫날이라 판매 추이도 살피고, 민원 발

생을 줄이려 점심도 컵라면 하나로 때우고 일하는 저희 입장으로서

는 억울하기까지 했습니다.

일찍 와서 기다리시는 분들을 내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편의를

위해 일찍 나누어준 번호표를 갖고 있다가 판매 시간 지나서 오시면

오해의 소지가 있노라고 말씀을 드리는 일을 수십 번. 목에서는 단

내가 올라왔고 항의하는 고객의 화까지 풀어드려야 했습니다.

판매가 끝난 후에도 혼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퇴근을 얼마 안 남

긴 상황에서 갑자기 토·일요일 판매가 있으니 준비하라는 지시사항

이 있었습니다. 구입하지 못한 고객에게 이미 토·일 판매는 안 하고

월요일에 판매한다고 공지를 한 상황에서 다시금 공지해야 하는 상

황이었습니다. 부랴부랴 전화를 돌리고 퇴근한 후 주말 출근을 하려

처가에 처자식을 데려다주었는데 다시금 전화가 왔죠. 토·일 판매

없던 일로 한다고.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다시 저녁 시간에 가서 전

화를 또다시 돌리는 해프닝을 겪었습니다.

저는 시골 작은 우체국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지난 2월 28일부

터 마스크 판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두 번의 판매가

끝났을 뿐이지만 태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직원들의 심신이 지치는

상황입니다. 두 번의 판매에서 있었던 일들을 청취자분들과 고스란

히 나누고 앞으로의 판매에서는 많은 이해를 부탁하고자 글을 남깁

니다.

지난 2월 28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우리 우체국에는 70세트의

마스크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언론에서 보도되었고 또 마을

별로 이장님들이 방송을 한 터라 손님들은 12시 넘어서부터 조금씩

오기 시작하더니 오후 1시가 채 되기도 전에 이미 문전성시를 이루

었습니다.

Letter 13

박봉언

충북 단양군 단성면

우체국 마스크 판매

이달의 편지 46 | 47

Page 25: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사상 처음 겪는 일이라 우체국에서도 갈팡질팡한 첫 판매를 마치

고 3월 2일 두 번째 판매일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러고서는 또 주

말에 뉴스에 나오길 판매 시간을 2시에서 오전 11시로 변경을 하였

죠. 정확한 지침이 내려와야 올바른 응대를 할 텐데 11시로 판매 시

간이 바뀌었고 번호표도 11시부터 나누어주기로 했죠.

3월 2일 두 번째 판매하는 날, 9시 우체국 업무가 시작되자마자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하였고 11시 판매 시간과 번호표 배부 시간이

같아야 함을 수십 번 얘기하였지만, 역시나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 번 겪은 일이라 익숙해질 법도 한데 눈물이 핑 돌

정도였습니다. ‘아, 내가 왜 이런 욕까지 들으면서 이러고 있어야 하

나’라는 자괴감마저 들더라고요.

같은 상황에 처해도 누구나 생각이 다르기 마련입니다만, 그 요구

조건을 일일이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마스크 품귀 현상으로 모두

예민한 것 또한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악조건 속에서도 대민봉사 차원에서 일하고 있는 우체국

직원들의 노고도 좀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

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조금 불편하고 억울하더라도 우

체국에서 마스크를 사려는 청취자분들은 우체국 직원의 안내에 따라

주시면 정말로 감사하겠습니다.

“엄마, 우리 밖에 언제 나갈 수 있어요?”

“코로나19가 잠잠해져야 나갈 수 있지.”

요즘 아들과 제가 자주 하는 대화입니다.

부산까지 코로나19의 기세가 뻗쳐서 일주일 전부터 집밖에 못 나

가고 있어요. 지금은 봄 방학이라 첫째는 그나마 학원 가면서 바깥

공기를 좀 쐬는데, 올해 유치원 입학을 앞둔 둘째는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있어서 부모 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읽어보면서 ‘우리도 입학

을 취소해야 하나’ 생각이 많아집니다.

여러 모임의 톡방에서는 연일 코로나19 이야기가 뉴스보다 더 빠

르게 쏟아지고, 전시 상황처럼 마트에 물건들이 동날 수 있으니 빨

리 식량을 쌓아놔야 한다는 말에 인터넷 쇼핑몰에 가보니 실제로

Letter 14

김의선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

베란다 일광욕

이달의 편지 48 | 49

Page 26: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이달의 편지 50 |

명절 기간에만 볼 수 있는 ‘주문 불가’ 문구가 표시되고 있더군요.

톡방에서 공유받은 마스크와 손소독제 살 수 있는 곳을 보다가 마

스크 30개가 30만 원에 올라온 걸 보고 다들 기겁하며 부담스러워

하기도 했습니다. 30만 원으로 오히려 홍삼을 사 먹겠다는 사람도

있고, 매점매석하는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특

히나 아이들 키우는 부모들 톡방에서는 한숨이 깊습니다.

애들은 햇빛을 보고 뛰어놀아야 면역력이 길러지는데 그러질 못하

니 궁여지책으로 베란다에 햇빛이 들어오는 시간에라도 아이들을 일

광욕 시키고 있어요. 하루에 1시간 이상 햇빛을 쬐지 못하면 우울증

이나 성장장애, 성격장애, 수면장애를 겪을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

들이 나오고 있어서 걱정이 더 큽니다.

첫째 아이는 6학년인데, 5월까지 모든 체험학습이 취소됐고 수학

여행까지 못 가면 어떡하냐며 벌써 울상입니다. 매년 친구들을 초대

해 생일파티를 열어줬는데 올해는 못 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

어요. 두 아이가 밖에서 휴대폰으로 공룡 캐릭터를 잡는 게임을 좋

아해서 가족 모두 산책을 하며 함께 즐기던 차에 외출을 못 하게 되

어 식구들 모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또 홀로 계시는 친정엄마 지역에도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이 체크

되어 활동적인 엄마가 집에서 혼자 적적해하실까 걱정이에요. 매일

영상통화로 위로를 해 드리고 있는데, 엄마는 “아이고, 걱정하지 말

어. 못 나가니까 이참에 고추장이나 담가야지 뭐”하며 오히려 저를

안심시켜 주시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엄마가 얼마나 외로워하고

답답해하시는지요.

인터넷 쇼핑을 하지 못하시는 엄마에겐 제가 여기서 직접 당일 배

송되는 먹을거리들을 마트에서 주문해서 보내드리고 있어요.

확진자 동선이 우리 집과 점점 가까워질수록 불안해지고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지네요. 하지만 곧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품고 최선을 다

해 대처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확진자가 될 수 있지요. 그러니 확진자가 됐다면, 또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다른 사

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적극적으로 격리 조치에 따랐으면 합니다.

얼른 따뜻한 봄이 와서 바이러스들이 다 사라졌으면 좋겠고, 사랑

하는 지인들의 우울함도 다 날아갔으면 좋겠습니다.

51이달의 편지 50 |

Page 27: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이달의 편지 52 |

컴퓨터 관련업을 20년째 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관련업에 비유하면 정비가 아닌 자동차를 이용하여

레이싱에 참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자동차도 용도에 따라 택시, 버

스, 운수업, 정비업, 레이싱 등 여러 가지 직업이 있지 않습니까?

컴퓨터도 마찬가지로 정비가 아닌 레이싱 쪽인데도 컴퓨터에 이상

이 생기면 지인들은 전화로 묻거나 컴퓨터를 직접 들고 와서 고쳐달

라고 합니다. 그런 지인들을 단칼에 거절할 수 없어 시간을 내어 살

펴봅니다.

다른 직업을 제가 깊게 이해하지 못하듯 다른 사람도 제 직업을 깊

게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하며 컴퓨터 증상을 살펴봅니다.

이때 지인에게 꼭 물어보는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어떤 작업을 하다가 고장이 났나요?”

이때 컴퓨터 주인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인터넷 검색하다가 이상한 사이트가 나와서 클릭했는데 뭔가 창

이 나와서 눌렀더니 그 이후부터 광고창도 뜨고 컴퓨터도 느려지고

이상하다.”

자세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몰라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컴퓨터가 이상해요.”

무조건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부분 후자의 반응을

보입니다.

컴퓨터 주인은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했나?’고 지레짐작으로 자꾸

숨기려고 합니다. 그렇게 무조건 모른다는 사람에게 다그치지 않고

“별거 아니네요. 혹시 인터넷 검색하다가 나타나는 창을 누르지 않

았나요? 요즘 바이러스는 파일에 바이러스를 넣어 공문서처럼 보내

는 게 유행이에요. 모르는 곳에서 온 메일의 첨부파일을 열어 보지

않았나요?” 별일 없다는 듯이 물어보면 그제야 고장 나기 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이야기해 줍니다.

컴퓨터가 노후화되어 기계적 고장이 아닌 이상, 차근차근 물어

보면 결국 원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원인을 발견하면 모르는 것은

인터넷 검색으로 증상을 찾아보고 비슷한 원인을 찾으면 대응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질문에도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입

니다.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원인을 찾는 데 시간도 오래 걸

리고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나중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시 설치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저는 대구 수성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늦게 얻은 첫딸, 시윤이

Letter 15

신진호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컴퓨터가 고장 나면

이달의 편지 52 | 53

Page 28: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이달의 편지 54 |

의 첫 생일잔치, 5월 돌잔치를 위해 2월 16일 일요일에 돌잔치 장

소를 예약하고 나흘 만에 취소했습니다.

예약 당시만 해도 코로나19의 상황을 지켜보며 ‘돌잔치를 할까?

말까?’ 몇 주를 고민했지만, ‘평생에 한 번 있는 돌잔치’라는 지인들

의 말과 날씨가 따뜻해지면 잠잠해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

국내에서는 통제가 잘되고 있는 상황에 당시 대구는 ‘청정지역’에

속했고, 무엇보다 “첫 아이는 돌잔치 해야 한다. 꼭 돌잔치하고 불

러라” 주변 친척 어르신들의 말씀에 최소 예약인원 50명으로 예약

했습니다.

돌잔치로부터 60일 전 취소 시 계약금 환불 조건에서 20일 전까

지 예약 취소를 하면 계약금을 환불받는 것으로 나름의 안전장치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계약 후 사흘째 되는 날인 2월 18일, 대구에 코로나19 첫

확진자 뉴스를 보며 고민 끝에 기본 참석 인원을 50명에서 20명까

지로 낮추고 가족들끼리만 돌잔치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19일, 대규모 확진자 뉴스가 나오는 것을 보고 결

국 예약을 취소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코로나19가 대구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컴퓨터도 이상이 생기면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원인을 파악하고 증상을 치료할 수 있

는데, 하물며 사람의 생명이 걸린 일에 숨김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동선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조건 “모르겠다”고

하며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고치려는 사람이 질문하면 조금씩 대

답하는 방식이 아닌 생각 나는 대로 적극적으로 이야기해 주는 자세

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아직 완벽한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에 걸리고 싶은 사람은 없다

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동선을 숨기는 순간, 원인

을 찾고 고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시간에 다른 컴퓨터로 인

터넷을 통해 바이러스가 확산할 수 있는 것처럼 이번 코로나19도

‘솔직함’으로 정부에 협조하여 확산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신종플루의 공포로 사무실을 폐쇄하는 등 전국이 비상이었

습니다만, 지금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이 코로나19도 ‘그땐

그랬지’로 넘어가는 때가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때까지 확진자나

스스로 의심이 되는 분들은 정부의 역학조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셨으면 합니다.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으면 좋

겠습니다. TV에서 매일 브리핑 하는 질병관리본부장님의 점점 늘

어가는 흰머리를 보며 얼마나 고생이 많으실지 상상조차 하기 힘듭

니다.

모든 국민의 협조로 이 시기를 우선 극복하고 잘잘못은 종식 후에

꼭 따져 봐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시대 애청자분들도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 대구·경북에 비난

이 아닌 응원의 눈길로 하루빨리 이 상황이 극복되기를 기원해주시

기 바랍니다. 대구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죄송스럽고, 확진자분들은

빨리 완쾌를 바랍니다.

첫 생일을 조용하게 넘길 우리 딸 시윤이와 마흔 중반에 출산하여

돌잔치에 대한 기대를 많이 했을 아내 경미 씨에게 “미안하다, 사랑

한다” 말해 주고 싶습니다.

이달의 편지 54 | 55

Page 29: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평생 농사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오신 부모님을 대신해 사연을

보냅니다.

저희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면서 단 한 번도 힘들다, 그만두고 싶

다는 푸념을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이번은 좀 다른 것 같습

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각종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는 바

람에 저희 부모님은 말 그대로 평생 지은 농사를 접어야 하는 기로에

놓였습니다.

부모님은 안개꽃 농장을 하면서 살아오셨는데 일 년을 고이 키워

졸업식, 밸렌타인데이, 입학식 시즌에 비교적 좋은 값에 출하하고,

5월 가정의 달까지 꽃을 키워 판 돈으로 부모님 생활비도 마련하고,

빚도 갚고, 이듬해 지을 모종도 사셨는데, 올해는 행사가 줄줄이 취

소되는 바람에 사람들이 더 이상 꽃이 필요하지 않으니 꽃을 경매

에 내놓아도 누구 하나 사 가는 사람이 없어 폐기하는 일이 허다합니

다.

그렇다고 밭에 한가득 피어 있는 꽃을 따지 않고 그대로 두면 병이

나는 분들이니 제대로 쉬지도 못하시고, 그렇게 일해도 정말 10원짜

리 하나 벌지 못하는 지금의 시국이 대체 언제쯤 끝날지 기약이 없으

니 부모님이 정말 너무 힘들어하시네요. 부모님과 통화하면서 저 역

시 어쩌면 좋을까요, 시국이 시국인지라, 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것

이 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뉴스를 보면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을 지

원한다는 기사는 많던데, 저희 부모님이나 농사를 짓고 계시는 분들

의 피해를 보상해준다는 기사는 찾기가 힘들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모두가 코로나19로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지만, 팔

이 안으로 굽어서인지 저는 선량하고 착하게, 정직하게 꽃 농사만

지으며 살아오신 저희 부모님이 너무나 안타깝고 어서 빨리 이 사태

가 진정되어 모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입

니다.

새해가 되어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을 때만 하더라도 올해 환갑이

신 엄마께서 “올해는 우리 가족 다 같이 여행 한 번 가자. 엄마가 올

해 부지런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서 경비 다 낼게. 너희는 애들 키우

느라 힘들고 바쁜 거 아는데, 그래도 시간 꼭 만들어라” 밝게 웃으

며 말씀하셨는데, 엄마의 그때 그 다짐이 떠올라 마음이 서글퍼 옵

니다.

꽃을 너무 사랑해서 평생 꽃을 키우면서도 밭 안에 들어갈 때마다

꽃들이랑 인사를 나누는 엄마가 그저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

Letter 16

강호경

경남 김해시 구지로

꽃들아, 미안해

이달의 편지 56 | 57

Page 30: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이달의 편지 58 |

데, 요즘은 꽃만 보면 눈물이 나신다고 하니 참 마음이 아파요.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저희 부모님을 도와 달라, 정부에서 지원

해 달라 그런 뜻이 아닙니다. 코로나19로 이렇게 피해를 보는 사람

도 있다는 것을, 큰 대기업의 셧다운이나 소상공인들의 적자만 피해

가 아니라 드러나진 않지만 열심히 일상을 꾸려가고 있던 많은 사람

도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서로 조금씩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글

을 적어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희 부모님이 이 사연을 들으시고 조금이나마

힘을 내시길 바라봅니다. 엄마 아빠, 힘내세요.

저는 올해 서른 살인 대전에 사는 공시생입니다. 부모님께서 매

일 여성시대를 들으며 출근하시기에 사연을 올려봅니다.

저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공시생이에

요. 보통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 1년에서 길게는 2년 정도를 준

비하고 그 안에서 합격 불합격의 결과를 보고 그 이후를 결정하지

만 저는 항상 될 듯 말 듯한 아쉬운 점수로 합격의 문지방 앞에서

번번이 주저앉았고, 그렇게 한 번 더, 한 번 더를 하다 보니 어느새

3년이 넘은 장수생이 되었습니다.

항상 비슷한 자리에 앉아 공부하다가 가만히 도서관을 바라보니

항상 보이던 구석자리 모자 쓴 사람도 보이질 않고, 독서대에 책을

올려놓고 열심히 펜을 굴리던 사람도 없어지고, 창가에 나무도 초

Letter 17

이규혁

대전광역시 동구 동부로

못난 공시생 아들입니다

59이달의 편지 58 |

Page 31: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이달의 편지 60 |

록빛에서 갈색을 지나 뼈가 앙상해질 때까지 바뀌었는데 저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더라고요.

책을 접고 가만히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그냥 발길이

가는 대로 터덜터덜 걸었어요. 새 학기 준비에 여념이 없는 학교,

건물, 대학가 모든 게 조금씩 바뀌고 있는데 저는 처음 공부를 시

작했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 가만히 있어도 먹는 나이 빼고는 바뀐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렇게 주변의 것들이 조금씩 바뀌는구나 하고 멍하니 집을 와서

문을 열어 보니 가장 많이 바뀐 건 부모님 얼굴이었어요.

제 부모님은 식당을 하십니다. 냉면집이요. 우리 집 냉면은 제가

지금까지 먹은 냉면 중에 가장 맛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손님들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여름이 되면 항상 줄을 서고 번

호표를 받아서 손님을 맞이합니다. 그래서 달력의 숫자 앞자리가

4나 5를 넘어가고 날이 조금씩 더워지는 느낌이 들면 저도 모르게

괜히 몸과 마음이 바빠지고 몸동작이 빨라져요.

일이 바쁘거나 일손이 모자라면 식당에 가서 일을 도와드리는데

그렇게 정신없이 손님을 받고 상을 치우고 계산을 하다 보면 날이

어두워지고 끝날 시간이 되고, 일을 끝내고 집에 오면 온몸에 힘이

빠지고 쉬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더라고요.

저는 면을 뽑거나 손님을 응대하기보다는 계산 같은 간단한 일을

하는데도 끝나는 시간이 되면 힘이 그렇게 빠지는데 부모님은 그

생활을 벌써 10년을 하고 계십니다. 여름엔 손님이 많아서 몸이 힘

들고 겨울엔 손님이 적어서 걱정 때문에 마음이 힘드신데 제 앞에

선 항상 힘들거나 지친 모습 없이 항상 높은 산, 단단한 바위 같은

두 분이세요.

그런데 그 날 문을 열고 집에 들어와 문득 부모님을 바라보니 부

모님의 모습이 바뀌어 있었어요. 웃으며 저를 맞이하시는 얼굴엔

예전엔 없던 주름이 짙게 자리 잡고, 괜찮다며 저를 다독이는 손은

예전보다 힘이 약해지고, 머리를 기대고 위로를 받던 어깨는 온열

기와 파스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고, 식탁엔 처음 보는 영양제와 약

봉지가 가득하네요.

뉴스를 보면 경기는 항상 좋지 않다고 하지만 재작년, 작년, 올

해를 생각해보면 직접 체감이 될 만큼 손님이 확 줄어들었어요. 거

기에 저희는 닭으로 육수를 내는데 해마다 오는 조류독감에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까지 겹쳐서 부모님의 걱정이 눈에 띄게 보입니다.

항상 모든 일에 당당하고 열정적이시던 부모님이 소파에 누워 티

브이를 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쉬고 계신 모습을 보니 바뀐 건 나

이밖에 없는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졌습니다.

손님 앞에서 항상 웃으시고, 이모님들의 투정을 받아내시면서 그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면을 뽑고 손님을 맞이하고 테이블을 청소

하며 생기는 주름과 빠지는 힘과 아파지는 몸을 느끼면서도 오롯이

그 힘듦을 감내하고 계십니다.

주변 지인들 가족의 합격 소식과 취업 소식을 듣고서도 애써 저

에겐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괜찮다며 저에게 항상 변하지 않

는 힘과 용기를 주고 계십니다. 못난 아들을 아무런 내색 없이 뒷

바라지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제가 평생 가도록 알 수 있을까요?

저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강인함을 가지신 평생을

갚아도 모자랄 사랑과 신뢰를 주시는 부모님, 항상 감사하고 사랑

합니다.

61이달의 편지 60 |

Page 32: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이달의 편지 62 |

여느 날과 같이 출근하면서 여성시대를 틀었는데 익숙한 이름

이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대전에 사는 이규혁이란 소리에 ‘에

이 설마’ 했는데 정말 우리 아들이더군요. 평소에 말도 없고, 표현을

원체 안 하는 성격이라 몰랐는데, 아들이 엄마 아빠 힘든 걸 다 느끼

고, 자기도 힘든 것들을 이렇게 참아내고 있었구나 싶었어요.

취업 준비로 독서실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아들이 축 처진 어

깨로 집에 올 때마다 괜히 말 한마디에 기죽일까 초반엔 내가 더 큰

소리로 웃으며 힘내라고 말하기도 했었지만, 한 번만 더 한다는 게

3년이 되고 보니 조금씩 서로 거칠어진 것도 사실이었지요. 그게 아

들한테도 느껴졌나 봐요.

그래도 아들의 마음이 담긴 사연을 들으니 평소 무뚝뚝하고 말도 없

는 아들에게 내심 서운했던 감정들이 눈 녹듯이 사그라들었습니다. 정

말 감동받았어요. 그래서 오랜만에 안경을 쓰고 사연을 보내봅니다.

저희는 대전의 야경이 아름다운 명소로 꼽히는 식장산 근처에서 냉

면집을 하고 있어요. 시부모님이 이북 분들이어서 6.25 때 피난 온 후

냉면집을 차리셨고, 지금은 저희 부부가 물려받아 하고 있지요.

결혼할 때 남편은 부모님께서 식당 하면서 너무 고생하시는 모습

만 보고 자라서 아버님의 냉면을 이어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하던

사업이 조금 힘들어지면서 시부모님의 권유로 냉면집을 이어받은 지

10여 년 됐습니다.

시부모님은 고향 황해도에서는 원래 꿩으로 육수를 만들고, 면은

메밀로 만드셨대요. 근데 피난 내려와 보니 이곳에선 꿩이 귀하기도

하고 낯선 재료라서 꿩 대신 닭을 삶아 육수를 내고, 고명으로도 쓰

는데 아주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낸답니다. 여름에는 찾아주시는 손

님분들이 많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바쁘게 움직이지요. 겨울엔

닭개장과 옛날짜장을 계절 메뉴로 파는데 워낙 냉면 전문점으로만

알고들 계셔서 여름보다 바쁘지는 않아요.

게다가 원래는 2월이 넘어가면서부터 조금씩 날도 풀리고, 매출

도 좋아져야 하는데 올해에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우리 집도 그

렇고 온 국민이 걱정이 한가득하네요. 날씨는 포근해지지만, 우리

자영업자들에겐 때아닌 한겨울이 찾아왔으니 참, 한숨이 저절로 나

오고 힘이 빠지기도 해요.

그래도 힘내고 웃어야지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새싹이 돋

고, 꽃이 피기 시작하는 것처럼 모두가 활짝 웃는 봄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라봅니다. 우리 가게에도, 엄마 아빠를 늘 응원해주는 고

맙고 든든한 우리 아들에게도요.

Letter 18

김금자

대전광역시 동구 옥천로

아들의 사연을 듣고 난 뒤

63이달의 편지 62 |

Page 33: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이달의 손편지 64 | 이달의 손편지 65

동 시김도훈, 김소영, 김규연 | 대구광역시 북구 태암남로

Page 34: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67 66 |

코로나19에게김연우 | 광주광역시 광산구

Page 35: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69만화로 보는 여성시대 만화로 보는 여성시대 68 | 69

Page 36: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71만화로 보는 여성시대 70 | 71

Page 37: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미소로, 정성으로, 내 가족같이

평생병원, 평생직장IBK기업은행 서광주지점 거래고객

광주한국병원 이담선 원장 & 이완수 원장

글 | 조병례(자유기고가) 사진 | 이동진

1981년 개원 이래 40여 년간 발전을 거듭해 온 광주한국병원은

선후배 의료진의 조화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가장 신뢰받는 병원이자 구성원들의

평생직장을 꿈꾸는 광주한국병원을 소개한다.

광주한국병원의 탄생은 매우 특별

하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응급환자가 병실이 없어 타 지역으

로 이송되어야만 하는 상황을 안타까

워한 나머지, 일반외과·정형외과·신

경외과 등 세 분야의 전문의가 합심

하여 광주한국병원을 개원한 것이다.

1981년 4월, 광주시 북구 중흥동에 4

개과, 40개 인가 병상으로 시작한 광

주한국병원은 광주시민의 아픔을 진

정으로 보듬고, 회복의 기쁨을 나누

며,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이 신뢰하는

병원으로 커왔다.

현재 위치인 광주시 서구 쌍촌동

으로 신축 이전한 것은 지난 1996년.

그로부터 꼭 10년이 지난 2006년, 종

합병원으로 승격했다. 바로 다음해인

2007년에는 광주시 북구 운암동에

도 자매병원인 운암한국병원을 설립

하여 의료협력 및 지역의료의 한 축

을 담당하고 있다. 2020년 현재는 내

과·정형외과·신경외과·외과·소아

청소년과·비뇨기과·응급의학과·영

상의학과·마취통증의학과·치과·진

단검사의학과 등 모두 11개의 진료

과와 25명의 전문의, 160여 명의 간

호 인력 등 총 280명이 근무하는 규

모의 병원으로 성장했다. 또한 24시

간 진료가 가능한 응급의료센터를 비

롯해 원활하고 유기적인 운영으로 원

스톱 서비스가 가능한 건강검진센터,

인공신장센터 등을 운영해 지역민들

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지금의 광주한국병원은 우수한 전

문의료진 및 첨단 의료시설, 친절한

의료서비스를 바탕으로, 11명의 병원

장을 비롯한 구성원들의 남다른 노력

이 더해져 이룩됐다. 11명 병원장의

‘공동 운영’이라는 특수성은 구성원

간 가족 같은 분위기 조성에 기여했

고, 그 속에서 자연스레 피어난 상호

배려와 존중, 화합은 광주한국병원만

의 고유 가치가 됐다.

“서로를 ‘동반자’로 생각하기에 구

성원들의 이직률이 낮은 게 저희 병

원의 장점입니다. 때문에 고객들에게

안정적으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요.” 광주한국병원의 장점으

로 끈끈한 조직문화를 꼽은 이완수

원장(신장내과)은 구성원들이 애사심

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

으로 직원 복지와 시설, 장비 투자에

힘을 기울일 것을 다짐했다.

“저희 병원은 선배 의료진과 젊은

이완수 원장 이담선 원장

행복을찾는 사람들

73행복을 찾는 사람들 1 72 |

Page 38: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의료진들이 조화를 이뤄 더욱 발전하

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는

다른 병원들에서도 주목할 정도로 저

희 병원만의 모범 사례이지요.” 구성

원 간의 조화를 첫 손에 꼽는 이담

선 원장(정형외과) 역시 “앞으로 광주

한국병원이 지역사회거점병원으로서

환자에게는 ‘평생병원’이, 구성원들에

게는 ‘평생직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라며 포부를 밝힌다.

물론, 지금의 광주한국병원이 있기

까지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

히 현재의 쌍촌동으로 신축 이전 후

바로 IMF 외환위기가 터져서 이자 상

환에 어려움을 겪는 등 경영상 큰 위

기를 맞았다. 위기 속에서 진정한 친

구를 만난다 했던가. 광주한국병원은

IBK기업은행 서광주지점이라는 금융

동반자를 맞아 슬기롭게 IMF 외환위

기를 극복했다. 그때의 인연은 지금

까지 이어져 광주한국병원에서는 금

융 업무의 대부분을 IBK기업은행 서

광주지점에서 해결하고 있다. IBK기

업은행만의 탁월한 금융상품에 더해,

광주한국병원의 운영철학 및 목표

1. 지역사회에서 가장 신뢰받는 병원

2. 구성원 모두의 평생직장

3. 신·구의 조화로운 선순환 구조 병원

광주한국병원

대표원장 조진만

대표전화 062-380-3000

홈페이지 http://www.hkh.co.kr/

주 소 광주광역시 서구 월드컵4강로 223

번지(쌍촌동 221-1번지)

서광주지점 직원들 특유의 편안하고

친절한 서비스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IBK기업은행 서광주지점 소순동

지점장은 “광주한국병원과 IBK기업

은행은 서로가 서로에게 베스트 파

트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병원뿐 아니라 병원 임직원들

이 저희 지점을 많이 이용하고 있고,

저희 지점 또한 은행 거래에 불편함

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살피고 있습

니다. 앞으로도 IBK기업은행은 광주

한국병원이 광주·전남지역 대표 의

료기관로서 쌓아온 위상과 명성을

굳건히 이어나갈 수 있도록 더욱 긴

밀하게 협력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단순한 의료 서비스 제공을 넘어

고객들의 평생병원이자 구성원들의

평생직장을 꿈꾸는 광주한국병원! 광

주한국병원의 평생 금융동반자 IBK

기업은행 서광주지점이 가까이 있듯,

광주한국병원의 꿈도 가까이 있지 않

을까.

75행복을 찾는 사람들 1 74 |

Page 39: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매일 사용되는 용품 하나만 바뀌

어도 일상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본래 ‘생활’이란 우리네 삶 틈틈이 숨

쉬기 때문이다. 2015년 론칭한 생활

용품 브랜드 ‘생활공작소’는 모두의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제

품을 선보인다. 각종 세제 등 주방·세

탁 용품을 비롯해 수납·욕실, 구강·

청결, 뷰티·케어, 식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제품을 내놓는다.

“‘더하기’보다 ‘빼기’에 집중했달까

요. 가격, 성분, 디자인에서 기본에 충

실하되 건강하고 정직한 제품을 만들

고 있습니다. 유해 성분은 첨가하지

않거나 대체 성분을 넣었지요. 가성

비를 위해 합리적 가격으로 책정했고

요. 우리의 콘셉트에 공감한 고객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김

지선 대표의 말이다.

생활공작소 제품이 여느 생활용품

과 차별화된 지점은 디자인이다. 블

랙&화이트의 간결하고 심플한 디자

‘기본’을 담아 ‘모두’를 위한

생활을 엽니다

가산디지털중앙 기업성장지점 거래고객

생활공작소 김지선 대표

글 | 조병례(자유기고가) 사진 | 이동진

‘기본을 지킵니다, 생활을 만듭니다’ 단순명료한 슬로건을 충실히

증명하는 생활용품 브랜드 ‘생활공작소’ 김지선 대표를 만났다.

기존의 틀을 가뿐히 뛰어넘고 참신함을 일구는 곳,

직원들 사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소통의 장,

생동하는 열정으로 활기 넘치는 일터를 찾았다.

인은 어느 공간과도 잘 어우러지며

젊은 주부층들을 사로잡았다. 생활공

작소의 이름을 소비자에게 널리 알

린 제품은 제습제. 파란색과 빨간색

등 원색 일색의 제습제 시판 제품들

사이에서 블랙&화이트 디자인은 단

연 눈에 띄었다. 개인의 취향이 거대

한 소비 트렌드가 된 시대, 소비자들

은 자발적으로 SNS에서 ‘#생활공작

소’란 브랜드 이름을 해시태그로 달아

업로드한다. 브랜드마케팅사업부 최

종우 이사는 “소비자들이 SNS에 우

리 제품에 관한 콘텐츠를 자발적으

로 올려주셔서 마케팅에 도움이 되었

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직원은 모두 30여 명. 수평적인 소

통과 자율성을 중심으로 하는 팀워

크는 생활공작소를 이끄는 핵심 역량

이다. 공동 창업자이자 임원인 네 사

람은 경영,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회

계 부문에서 각자의 역할을 도맡으며

손을 맞잡는다. 무엇보다 김지선 대

표는 ‘사람’을 향한 경영을 중시한다.

“‘의지’와 ‘진정성’을 우선하며 직원을

채용합니다. 면접 자리에서 꼭 하는

질문이 ‘꿈이 무엇인가요?’입니다. 회

사가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을 넘어서

즐겁게 일하고 직원들이 꿈을 이루

는 데 동행하는 일터가 되길 바랍니

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일할 수 있

행복을찾는 사람들

77행복을 찾는 사람들 2 76 |

Page 40: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을까를 많이 고민해요. 1년에 한 번씩

전 직원이 해외 박람회 참관 후 여행

을 한다거나 문화활동을 함께 즐기는

‘문화데이’를 통해 직원들에게 특별한

경험과 만족을 주고자 합니다.”

생활공작소가 IBK기업은행 가산디

지털중앙 기업성장지점과 인연을 맺

은 건 사업 초기. 자금 확보가 필요한

상황에서 생활공작소의 잠재력을 발

견한 IBK기업은행과 함께하며 신뢰를

쌓아왔다. “자금을 확보하는 데 어려

움이 많았어요. 절박한 심정으로 IBK

기업은행을 찾아갔는데 당시 여성 지

점장님께서 우리의 주 고객층인 주부

의 관점에서 잘 될 것 같다며 응원해

주고 도움을 주셨죠.”

생활공작소와 IBK기업은행은 상생

하고 서로의 든든한 파트너로 함께하

고 있다. 김지선 대표는 자금 지원은

물론 신용 보증 업무까지 두루두루

도움을 주는 양영찬 지점장에게 감

사의 인사를 전했다. 양영찬 지점장

또한 생활공작소의 발전을 기원했다.

“생활공작소는 임직원이 서로 배려하

생활공작소 김지선 대표의 경영 노하우 3

1. 모두가 ‘즐겁게’ 일하는 기업, 출근하고 싶은 회사 만들기

2. 수평적인 팀워크와 생산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효율&능률 Up!

3. 직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회사. ‘사람’을 향한 경영을 우선으로.

생활공작소

대 표 김지선

전 화 02-6959-6945

홈페이지 www.livingcrafts.co.kr

주 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선유로

130

IBK기업은행 가산디지털중앙 기업성장지점 양영찬 지점장(왼쪽)과 생활공작소 김지선 대표(오른쪽)

는 팀워크가 인상적입니다. 가능성이

많은 기업인만큼 더욱 성장하리라 기

대합니다.”

앞으로 생활공작소는 제품의 폭을

더욱 다양하게 넓혀갈 예정이다. 김

지선 대표는 다른 브랜드와의 컬래보

레이션을 통해 시너지를 발휘하고 싶

다는 바람을 밝히며 말했다. “사실 저

는 스무 살 때 다리에 장애를 입었어

요. 하지만 되레 얻은 게 참 많죠. 무

엇보다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어요. ‘근자감’이라고 하잖

아요. 창업을 꿈꾸는 분들 또한 당장

현실에서는 근거가 없어도 자신감을

지니고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남다른 콘셉트와 감각, 긍정 마인

드와 소통하는 팀워크로 성공의 열

매를 거둔 생활공작소. 열매의 기쁨

을 주춧돌 삼아 훤칠한 높이로 비상

할 준비를 하고 있다.

79행복을 찾는 사람들 2 78 |

Page 41: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장용의 단필충

81 잘 키운 방위 열 현역 안 부럽다

84 해병대와 소양강 처녀

88 아들아 짜장면 왔다

일요일엔 편지를

94 황혼에 들어선 나의 친구에게

96 문구점에게

98 뒤늦은 부모님 전 상서

100 딸들에게

103 사랑이와 사랑이 엄마에게

106 정희가 정희에게

일러스트 | 조신애

사회생활에서 방위 출신들은 무시를 당한다고 생각한다. 현역이

2배가량의 시간을 더 고생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방위 출신이라고

쉽고 어영부영 시간만 때웠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방위병 중에도 더 열심히 군 생활을 한 사람이 있다. 많다. 스포

츠계 특히 야구계에는 송진우, 양준혁, 김기태, 정민철, 류중일, 이

종범, 유지현, 송구홍 등. 이분들은 방위 근무 중에도 휴일에는 프

로야구 경기에 참여하여 프로야구 흥행을 이끌었다. 정치계에도 물

론 많다. 내가 알기론 IT업계의 개발자들은 80% 이상 방위병 출신

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한글 프로그램의 대표자는 본인이 방위이기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다고 방위 예찬까지 하였다.

연예계도 멋진 활약을 하고 있는 방위 출신들이 많지 않을까?

내 가족 중에도 장인어른, 처남, 동서, 친조카, 나까지 형 둘만 빼

고 다 방위 출신이다. 직장에선 같은 부서에 있는 남자 4명 중 2명

장용의 단·필·충

배창진 | 서울시 구로구

잘 키운 방위 열 현역 안 부럽다

코너 속 편지코너 속 편지 80 | 81

Page 42: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이 방위이다. 이 정도의 수치라면 남성시대에서 방위 특집을 한 달

에 한 번 정도는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 방위를 받았는가,

방위 시절 현역보다 잘한 일 등을 들어 보면 청취율이 더 올라가지

않을까? 방위 만세!

그렇다. 나는 방위다. 90군번으로 수도방위사령부 화학단 21대

대. 집에서 가까운 도봉산 근처에서 군수보조병으로 근무하였다. 현

역들은 1종(식품)부터 10종(보건, 의료품)까지 하나씩 맡아서 했

지만 난 10가지를 다 맡아서 했다.

사실, 학창 시절 ROTC 시험을 보고 소위 임관을 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되었다. 필기시험 합격하고, 면접시험 합격하고, 체력검정도

합격했다. 1,000m 달리기를 2분 30초로 만점을 받았다. 근데 마지

막 신체검사에서 시력 불합격. 그 당시에는 교정시력을 인정하여 주

지 않았다. 그래서 4급 판정을 받고 보충역으로 편입되었다. 쉽게

말하면 방위가 되었다.

군 생활에 욕심이 있었던 나는 방위 생활을 시간만 때우거나 어영

부영하지 않고 현역보다 더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6시에는 퇴근

하니깐) 무지무지 열심히 했다. 그래서 대대에서 현역병 포함 모든

장병들 중에서 포상휴가 최다의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훈련병 시절에는 글씨를 예쁘게 쓴다고 훈련 대대 모든 차트를 다

시 만들어서 2일간의 훈련 열외, 휴식 포상. 자대배치를 받고는 대

대장님의 이쁨을 듬뿍 받고, 일과 후에 1시간씩 대대장 아드님의 국

어 수업과 글짓기 수업을 돌봐주었는데(그 시절이니깐 가능했다.

지금은 물론 안 될 일이다.) 성과가 좋아서 초등학생 글짓기 대회에

서 수상. 그래서 모범병사로 2박 3일 포상휴가. 이병 때는 동계 유

격훈련에서 사격을 10발씩 쏘았는데 표적지에 11발이 맞아 있었다.

사격 우수 병사로 포상휴가 3박 4일. 일병 때는 춘계 체육대회 야구

경기에서 대대 대표로 출전하였는데 결승전에 투수로 나가서 9회 완

봉투구로 우승, 야구대회 우수 병사로 포상휴가 2박 3일. 추계 체

육대회에서는 축구 대표로 선발, 결승전에서 2골을 넣어 축구대회

우수 병사 포상휴가로 2박 3일.

마지막 상병 때는 유류 저장고에서 환경정리작업(청소)을 하고

있었는데, 군수 선임하사와 인사 선임하사가 경유에 성냥을 던지면

‘불이 붙냐, 안 붙냐’를 가지고 티격태격하다가 성냥을 던졌는데 순

식간에 불이 붙어서 화염이 일기 시작했는데, 선임하사 둘과 현역병

들은 도망갈 때 소화기 위치를 잘 알고 있던 내가 소화기와 모래로

초기진압을 하여 큰불을 막았다. 이 소식을 듣고 대대장님이 선임하

사에겐 군장 7일을, 나에게는 포상휴가 3박 4일을 주었다.

여기에 정기휴가를 포함하면 아마도 18방이 아니라 17방 수준일

거다. 시력이 좋지 않아 방위를 받았지만 현역병보다도 사무작업을

더 잘했고, 사격을 더 잘했고, 야구를 더 잘했고, 축구를 더 잘했고,

무엇보다도 책임감이 강한 방위였다.

소집해제하고 학업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방위 출신은 뒤

처진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친구들

과 술 한잔할 때도 군대 얘기 나오면 기죽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으려

고 더 열심히 술을 마셨다.

그리고 지금은 막내아들이 신체검사에서 현역 1급 판정을 받아 입

대 준비 중이다. 방위여도 튼튼한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 나라를 지

키는 군인을 만들 수 있다. 그걸 내가 해냈다!

암튼 단필충 가족들에게 방위가 현역보다 나은 점도 많다는 것을

꼭 전하고 싶었다.

코너 속 편지 82 | 83

Page 43: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27년 전, 육군이었던 저는 말년휴가를 나왔는데 지금도 그때를 생

각하면 가슴부터 쓸어내리게 됩니다.

8월 초순경, 춘천 공지천 야외 잔디공원에는 젊은이들이 삼삼오

오 모여 주변 매점에서 파는 맥주와 각종 안주로 젊음의 밤을 지새

우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친구와 함께 있었는데 그 친구는 조상

이 나라를 구할 만큼 큰 공적을 쌓아야만 이룰 수 있다는 육방(6개

월 방위) 소집해제를 한 친구였습니다. 둘이서 먼저 닭갈비에 거하

게 알코올 소독을 하고 공지천으로 2차를 하고자 발걸음을 옮겼습

니다.

그때 우리 눈에 주변 시선을 한번에 사로잡는 한 무리가 보였습니

다. 그들은 바로 귀신도 때려잡는다는 해병대! 해병대 복장을 한 5

명이 흥에 겨워 양손을 머리 위로 박력 있게 힘껏 박수를 치며 군가

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해병대답게 진짜 귀신도 잡을 것 같은 기세

장용길 |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장용의 단·필·충

해병대와 소양강 처녀

로 주변 시선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자기들만의 세계에 심취해 있었

습니다.

그런데 그 기세, 그 분위기에 우리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 무리를

따라 양손을 머리 위로 힘껏 올려 치며 “허와 둘 셋 넷! 허와 둘!”을

고함치듯 외치면서 그들 옆에 자동으로 착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중 가장 험상궂게 생긴 한 명이 물었습니다. “뭐요. 해

병대 나오셨습니까?” 물론 우리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악!” 소리

코너 속 편지 84 | 85

Page 44: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를 쳤습니다. 미리 짠 것도 아닌데 우리는 너무나도 호흡이 잘 맞았

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옆에 있던 남자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몇

기십니까?” 순간 조금 당황했지만 대충 스캔하니 동년배 같더라고

요. “제대한 지 한 2년 되었습니다. 그러는 분은 얼마나 되셨는지?”

그러자 순간 일행 5명이 다 같이 벌떡 일어나더니 절도 있게 우리를

향해 “선배님께 경례!” 하면서 거수경례를 합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박수를 쳐주는 사람도 있었

습니다. 기분이 우쭐해지는 순간, 드디어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우리를 우러러보던 그 무리 중의 한 명이 “존경하는 선

배님들의 곤조가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악~”

이제 주변의 수많은 시선은 우리에게 쏠렸습니다. 진짜 해병대 근

처도 못 가 본 우리에게 위기의 순간이 닥친 거죠. 일행들은 흥에 겨

워 더욱더 박력 있게 박수를 보태며 박자를 탔고 해병대 군가를 독촉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분위기는 지금에 와서 해병대 전역 사실이 거짓인 것이 들

통나면 공지천에 던져 버릴 것 같은 공포감이 엄습할 만큼 무서웠습

니다. 재빠르게 주변을 둘러봤지만 사방이 뻥 뚫려 있어 도망갈 상

황도 안 되었습니다. 옆에 있던 육방 친구도 머리를 굴리는 듯했지

만 소용없어 보였습니다.

순간 우리 눈앞에 보인 건 멀리 보이는 소양강 처녀 동상이었습니

다. 그러자 이번에도 무언가에 홀린 듯 저와 친구는 당당하게 큰 목

소리로 정면 돌파를 했습니다.

“해 저문 소양강에~~”

순간 일행들의 박수는 끊기고 주변 사람들도 수군대기 시작했습니

다. 그 소리가 공지천의 적막감을 깨고 있었고 해병대 일행 중 3명

정도가 갸우뚱거리며 우리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뭐요? 장난한 겁니까?”

“아이고 후배님들, 일단 여기 사람도 많고 분위기는 살려야 할 거

아닙니까. 자고로 춘천에 와 있으면 ‘소양강 처녀’ 이 노래를 먼저 불

러줘야 예의인 겁니다. 후배님들 뭘 모르네. 자, 자, 알았어요. 이

제 본격적으로 해병대 정신을 살립시다!”

그러자 순진했던 해병대 일행은 다시 “그렇게 깊은 뜻이. 선배님

들 멋지십니다.” 분위기가 잠시 일단락되는 순간 ‘기회는 이때다’ 화

장실을 핑계로 도망을 엿보고 있는데, 같이 간 육방 녀석이 먼저 선

수를 쳤습니다.

“아, 간만에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화장실이….”

이런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저 역시 화장실이 급하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남자 화장실 쪽으로 향했는데 먼저 갔던 친구가 모

퉁이에 숨어 있다가 저를 반대쪽으로 끌고 갔습니다. 잠시 후 해병

대 일행이 남자 화장실 주변을 수색하는 듯 보였습니다.

“아잇,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속은 거야! 속았어! 소양강 처녀?

이것들을 잡으면 확 그냥!” 하면서 입에 담지 못할 험악한 말을 마구

내뿜었습니다.

순간 아까 그대로 화장실로 도망갔다면 어찌 됐을까 상상하니 아

찔했습니다. 화장실로 먼저 향했던 친구가 근처에 숨어 있다가 기

지를 살려 저를 구했던 것이 신의 한 수였지요. 그렇게 우리는 20여

분 동안 숨어 있다가 그곳을 탈출했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절대 어디 출신인지 속이

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역시 대한민국의 방위는 잔머리 하난 최

고였다는 것을!

코너 속 편지 86 | 87코너 속 편지 86 |

Page 45: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제가 미래 중대 내의 권력을 거머쥐게 될 후보인 상병을 막 달았을

때입니다. 매일 눈치 보며 일만 하는 일병이 아닌 작대기 3개를 전

투복에 바늘로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꿰매고 뿌듯해하는 시점이었지

요.

이병이 일병으로 진급했을 때와 일병이 상병으로 진급했을 때는

정말 느낌이 다릅니다. 이등병에서 일병으로 진급할 때는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에서 성냥개비 하나에 불을 붙이고 저 멀리 아득한 바늘

만한 빛을 향해 걸어가는 느낌이라면, 일병에서 상병으로 진급했을

때는 손전등을 들고 걸어 나가는 느낌이랄까요?

중대 내에서 작업하거나 진지 공사를 하러 나갔을 때도 다릅니다.

일병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곡괭이, 삽, 마대를 챙기고 누구보다

먼저 곡괭이질을 하고 삽질을 하고, 허리 한 번 못 펴고 작업하다가

슬쩍슬쩍 선임들 쉴 때 허리 한 번 펴고, 하늘 보고 속으로 ‘아, 나도

애청자

아들아 짜장면 왔다

언젠가 집에 갈 때가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작업에 몰두하였다면,

상병 때는 작업 나갈 때 슬쩍 눈치를 보고 ‘일병들이 작업 도구 가지

러 가겠지’ 하면서 서두르는 척만 하고, 설렁설렁 간부들 눈치 한 번

보고, 병장들 한 번 슬쩍 보고, 일병들 뒤를 따라가면서 가벼운 도구

만 챙기고, 작업할 때에도 슬쩍슬쩍 쉽니다. 한 번 삽질하고 허리 펴

고, 또 삽질 한 번 하고 두리번두리번하면서 일병, 이병에게 오늘 점

심 메뉴 뭐냐고 묻고….

이렇게 상병 계급을 달고, 그나마 즐겁게 군 생활을 하려고 긍정적

인 마음가짐으로 지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제 아들 군번 곽 이

병이 있었는데 저보다 나이는 4살이나 많았지만 미국에서 공부하다

가 늦게 입대한 경우였지요.

누구나 그렇듯 곽 이병도 100일 휴가를 다녀온 후 후유증으로 울

적해 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출발하기 전부터 자기는 휴가 동안 삼

시 세끼를 피자와 치킨으로 대신하겠다, 맥주로 샤워를 하겠다, 당

일치기로 제주도에 놀러 갔다 오겠다 등 결의에 찬 말들을 많이 했는

데, 하지만 어쩐 일인지 휴가를 다녀온 후 얼굴을 보니 눈 밑에 다크

서클이 판다처럼 크게 눈을 덮고 있었고, 밥을 먹을 때도 항간에 전

역증 받고 위병소를 통과하여 집에 가는 병장도 발길을 되돌려 다시

부대로 돌아오게 만든다는 ‘흰쌀밥+곰국(살코기 포함)+오징어젓

갈+김치’의 전설의 식단을 마주해도 입맛이 없는지 밥을 남기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 일과가 끝나고 PX로 데려가 평소 좋아하던 냉동만두와 냉

동 크림우동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면서 곽 이병에게 슬쩍 물어보았습

니다.

“곽 이병, 휴가 때 뭔 일 있었냐? 밥도 안 먹고 얼굴도 영 안 좋네.

장용의 단·필·충

89코너 속 편지 88 | 코너 속 편지 88 |

Page 46: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나한테 말해봐. 내가 해결할 수 있으면 해결해주고 안 되면 분대장

님한테 말해 볼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냥 휴가 갔다가 다시 복귀하니 답답해

서 그렇습니다.”

“아야 나도 그랬고 다 똑같아. 저기 병장들도 100일 휴가 다녀왔

을 땐 다 우울하고 앞도 컴컴하고 그랬을 거다. 앞으로 2년 가까이

여기서 더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겠지. 그래도 나중에 일병

때 정기휴가 받으면 그때 또 휴가 가면 되고, 훈련 때 잘하면 포상휴

가도 나오니까 너무 울적해 하지 마라. 내가 그래도 이번에 상병 달

아서 월급도 좀 올랐거든? 그래서 냉동식품 사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먹어라.”

이렇게 위로를 하면서 내심 내가 상병을 달았다는 것과 월급이 만

원 정도 올랐다는 것도 은근히 자랑하면서 곽 이병을 위로하였습니

다. 그런데 그때 곽 이병이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습니다.

“저, 얘기해 보라고 하시니 제가 휴가 때 한 가지 놓친 것이 있는

데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어, 뭔데? 뭐 혹시 사고치고 오거나 그런 건 아니지? 뭐 탄피를

가져갔다거나 중대 비문을 가져갔다거나?”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 사실은 이번 휴가 때 하고 싶은 거 다 해

보았는데 짜장면을 못 먹고 왔습니다. 치킨, 콜라, 피자, 불고기,

갈비, 냉면 모두 먹었는데 하필이면 그 짜장면을 못 먹고 와서 자꾸

생각이 납니다.”

짜장면. 이 모든 게 짜장면 때문이라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하지

만 배달 음식을 마음대로 시켜 먹을 수도 없고 위병소, 탄약소, 기타

타 부대 파견 근무 때문에 외출 외박이 자유롭지 못한 부대 내의 사

정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조금은 가기도 했습니다. 물론 PX에 냉동

짜장이 있긴 하였지만 그것으로는 오리지널 수타 짜장면을 향한 사

랑을 충족시킬 수 없는 게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실현 가능성이 하나도 없었고, 말도 안 되는 얘기였

지만 저는 위로 차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곽 이병, 그럼 방법이 몇 가지가 있는데. 꾹 참았다가 먹으면 더

맛있는 거 알지? 다음 휴가 때까지 기다렸다가 짜장면을 먹는 방법

이 있을 것이고, 나중에 대대에서 마음의 편지 쓸 때 대대장님께 짜

장면이 먹고 싶어서 탈영할 것 같다고 써서 내봐. 그럼 혹시 아냐 취

사반에서 짜장면 준비해줄지?”

그렇게 농담으로 이야기를 건네니 곽 이병도 웃고 저도 웃고 화기

애애하게 PX에서의 냉동면담은 끝이 났습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상병을 달고 처음으로 정기휴가를 떠나게

됐습니다. 9박 10일 동안 정말 미친 듯이 먹고 놀러 다니고 하루 종

일 잠도 자고 그동안 못한 게임도 했더니 9박 10일이 눈 깜짝할 새

지나게 되었습니다.

복귀를 앞두고 같이 휴가를 출발한 동기들과 연락하여 터미널에서

만났는데, 저를 비롯한 제 동기들 모두 얼굴이 그때 그 곽 이병처럼

다크서클이 가득하고 우울한 표정이었습니다. 동기들은 해 질 녘의

붉은 하늘을 보며 이제 다시 들어가서도 잘 지내자고 무언의 다짐을

하며, 좀 이르긴 했지만 저녁 식사를 밖에서 먹고 부대로 들어가기

로 했습니다.

우리는 말 없이 짜장면집으로 향하였습니다. 어차피 부대로 복귀

해봐야 짬밥이 제대로 넘어갈 것 같지 않아서였습니다. 우리는 번화

가에 두 개밖에 없는 중국집 중 맛있다고 소문난 집에 들어갔고, 각

코너 속 편지 90 | 91코너 속 편지 90 |

Page 47: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자 짜장, 짬뽕, 탕수육 대자를 시켜놓고는 말없이 노란 단무지만 멀

뚱멀뚱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 중국집 사장님은 수십 년 전부터 중국집을 운영해오면서 각 부

대 행정보급관님을 비롯한 간부들과 친분이 두터운 분이셨습니다.

곧이어 짜장면과 탕수육 등장! 그 연륜 있는 사장님이 직접 음식을

가져다주셨습니다.

“아들들, 복귀하는 거지? 든든하게 많이들 먹고 가.”

그러면서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을 다 곱빼기로 해주셨습니다. 그

러면서 ‘요즘 군 생활 어떠냐? 누구누구 간부 잘 있냐? 대대장님 바

뀌었냐?’ 안부를 물으셨고, 저희도 감사한 마음에 이것저것 맞장구

를 치는데, 그때 우리 중대의 행정보급관님을 총각이었던 하사 시절

부터 잘 안다고 하시기에 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사장님께 말했습

니다.

“사장님, 우리 부대 대대장님보다 짬밥이 높으시네요. 나중에 한

번 우리 대대 오셔서 짜장면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중대원들이

사장님 가게 짜장면은 외출, 외박, 휴가 복귀 때마다 꼭 먹고 들어가

는 거 아시잖아요. 워낙 맛있어서요.”

사장님께서는 이 말을 듣더니 “그래, 그럼 그럴까? 나중에 한번

가지 뭐” 하며 호탕하게 웃으셨습니다.

그 후로 시간이 흘러 한 달 정도 지났을까요? 금요일 오후 일과를

마치기 2시간 전, 갑자기 중대의 스피커에서 ‘지지직~ 지지직~’ 하

는 긴장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보통 중대 내의 스피커에서 지지직

소리가 난다는 것은 대대 지휘통제실에서 전 부대원들에게 중요 내

용을 전파하거나 사단장님께서 방문하시기 전 혹은 불시에 전투 준

비 태세를 하라는 불길한 신호였습니다. 하지만 그날 스피커에서 나

온 얘기는 제 귀를 의심하게 했습니다. 지금 취사장에서 특별히 짜

장면을 준비하고 있으니 중대별로 시간에 맞춰 취사장으로 오라는

당직사관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곽 이병과 저를 포함한 중대원들은 이게 무슨 일인지 엄청나게 놀

랐습니다. 얼떨떨하지만 저절로 군침이 도는 채로 취사장에 가니 저

멀리 간부 식당에 대대장님과 행정보급관님 그리고 그 중국집 사장

님이 계셨습니다. 대대장님은 들어오는 병사들에게 “애들아! 여기

사장님께서 오늘 오후에 가게 문 닫고 너희들이 지금까지 가게 이용

해줘서 고맙고, 또 나라 지키느라 고생한다고 직접 짜장면 만들어

주시러 오셨다. 먹기 전에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남기지 말고 맛있

게 먹도록. 알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식판에 짜장면을 한가득 담아놓고 곽 이병에게 웃으며 말하

였습니다.

“아들아, 네가 원하던 그 짜장면이 왔다. 배터지게 먹어라.”

그날 곽 이병은 무리하게 식판에 가득 채워 세 번이나 가져다 먹었

고, 그날 저녁 식사는 물론 다음 날 아침까지 못 먹을 상황까지 가게 되

었지만, 이렇게 맛있게 먹은 짜장면은 살면서 처음이라며 나중에 전역

후 미국에 돌아가더라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집 사장님! 제 얘기에 정말 반응해주신 건지는 몰라도 가게 문

까지 일찍 닫고 대대로 오셔서 취사병들과 함께 짜장면을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한 개 중대원들도 아니고 모든 대대원에게 그렇게

맛있는 짜장면을 베풀어주실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도 그때 줄 서서 기다릴 당시 취사장 안에서 솔솔 풍겨오는 짜장면의

향기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

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짜장 만세! 필승!

코너 속 편지 92 | 93코너 속 편지 92 |

Page 48: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일요일엔 편지를

계영자 | 경남 합천군 삼가면

황혼에 들어선 나의 친구에게

친구야, 올해로 우리 나이 71살이다. 언제 이렇게 많이 살았지?

그동안 개미처럼 부지런히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았는데 나이가 뭐

라고 할 일이 없어졌네. 어디 하나 오라는 곳도 없고.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아무것도 붙잡지 않고 계단 내려가는 나를 보고 손주 녀석은 “우리

할머니 살아있네!” 폴짝폴짝 뛰며 좋아할 정도라니. 아직은 무엇이

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야.

그때 네가 용기 내서 말했지. “우리가 일을 만들어서 하자!” 그렇게

우리는 작은 면 소재지 버스 정류소 모퉁이에 10평도 안 되는 작은

가게를 얻었지. 너는 간단한 식사와 국수를 말고, 나는 김밥을 말고.

주위에서는 하던 일도 접어야 할 나이에 웬 시작이냐 했지만 말이야.

여긴 젊은 사람들이 적고 산골짜기에서 병원 찾아오시는 할배 할

매들이 대부분이라 아침 겸 점심으로 국수나 김밥 한 줄 드시고 가시

는 그분들이 우리의 유일한 손님이지.

오일장 서는 날은 그야말로 ‘황혼의 대란’이고. 어느 나라에서 오

신 할매인지 서너 명을 모시고 와 ‘오늘은 내가 살게. 주인 할매, 김

밥 천 원치 주소’ 하는 할매부터 자리가 없어 우왕좌왕 난리 쳐도 김

밥 한 줄에 따뜻한 국물, 커피까지 여유 있게 드시고 차 시간을 기다

리는 할배, 또 밥하고 국만 먹었으니 반찬값은 깎아달라는 할매, 많

이 못 먹으니 김밥 반 줄만 달라는 할매, 단무지 안 들었다고, 시금

치 안 들었다고 소리치는 손님.

그래도 그 어떤 손님도 화를 내지는 않지. 모두 세상 살아온 연륜

이 있어 결국엔 그럴 수 있다면서 고개를 끄덕여주시지. 그렇게 지

내온 시간도 벌써 1년이 넘었네.

친구야, 우리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첨 시작했을 때 우리 가게에 왔던 중년 신사 한 분이 생각나니? 국

수 한 그릇에 김밥 한 줄을 맛있게 드시고 우리에게 박수쳐주셨지.

“두 할머니 참 멋지십니다. 보기 좋습니다. 저는 가끔 이곳을 다녀

갑니다. 다음에 또 오면 꼭 들르겠습니다.”

그분이 또 오실까? 우리 그 신사분을 기다리며 대박은 아이들한테

빌어주고 우리는 소박한 마음으로 황혼길 갈 데까지 가보자꾸나.

친구야 우리 건강만큼은 지키자! 파이팅!

코너 속 편지 94 | 95코너 속 편지 94 |

Page 49: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김필선 | 경남 김해시 삼계로

일요일엔 편지를

문구점에게

내 친구 문구점아!

요즘 많이 힘들지? 1998년 IMF 경제 위기 때는 아이들 돌 반지,

내가 가지고 있던 목걸이 모두 내놓아 나도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했

고, 대한민국이 떠들썩하게 온 국민이 힘을 모아 극복했단다.

당시 남편은 건설업체에 근무했는데, 경제 위기가 닥치니 제일 먼

저 건설업 종사자들의 일자리가 없어졌지. 나는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였고, 남편 일이 없으니 바로 현실에 부딪히는 건 우리 가정이

었지.

남편은 부지런한 성격이라 무엇이든 찾아서 일하려는 사람이었고,

가정 형편이 어려우니 장사를 해보자며 김해를 뒤지기 시작했지. 주

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단다. 먹고살려면 부식이 기본

이니 채소 가게를 먼저 생각해 보았지만 내가 손발이 너무 차갑잖

아. 겨울이 되면 온도 차이에 너무 예민한 나의 손발은 부식 가게 일

을 감당할 수 없는 처지였지.

그러다가 문구점을 보게 되었는데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학용품은

평소에 많이 접해본 것들이라서 두렵거나 못하겠다는 마음은 안 들

었단다. 내가 평소에 낙서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거든. 우여곡절

끝에 없는 돈을 긁어모으고 모자란 돈은 빌려서 방 두 칸이 딸린 작

은 문구점을 계약하고 한 달 뒤에 장사를 시작하기로 했는데, 그것

이 장사 초보자들이 흔히 하는 큰 실수 중 한 가지였어. 계약 당시에

는 가게에 물건이 꽉 차 있었는데 한 달 후 막상 장사를 시작하려니

가게 안이 텅 비어있는 거야. 첫 경험이 그랬어. 한 달 두 달 지나며

물건을 채우다 보니 계속 마이너스 장사였지.

장사를 접어야 하나 갈등하다가 6개월쯤 지나 처음으로 20만 원

을 벌었어. 그렇게 장사가 조금 나아지나 했던 어느 날, 집주인이 계

약이 끝나면 가게를 비워 달라는 거야. 청천벽력 같은 위기가 또 찾

아온 거야. 가게 비워 달라는 말을 듣는 순간, 힘이 없어지면서 ‘왜

이리 사는 게 힘들까’ 싶고 ‘너와 헤어져야 하나, 어쩌지…’ 걱정하고

있을 때, 네가 내 운명인 듯 다른 곳에 소중한 문구들이 들어갈 자리

가 생겼지. 2002년 우리나라가 월드컵 축구 열기로 뜨거웠을 때 나

는 가게 이전으로 엄청 바빴단다.

참 별별 일도 많았는데,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너와 내가 보낸

시간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 해가 바뀔 때마다 없어지고 어려워지는

문구 시장에서 잘 버텨주어서 고맙다. 나는 너를 너무너무 사랑해.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날까지 많이 도와줘.

많이 힘들지? 나는 IMF 때보다 더 힘든 것 같아. 그래도 힘내서 열

심히 해 보자. 동네 작은 문구점을 사람들이 애용해주기를 바라면

서, 내가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파이팅하자.

코너 속 편지 96 | 97코너 속 편지 96 |

Page 50: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부모님 살아계실 때 종종 건강을 여쭙고 안부 삼아 서신을 띄우는

것이 자식 된 도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두 분이 안 계신 지금에서야

부모님 전 상서를 띄우는 불초 소생의 행동이 얼마나 후회스럽고 죄

송한지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

생전에 부모님께서 저희에게 ‘너희들도 성장하여 내 나이가 되면

부모 된 심정을 알게 될 것이다’ 하시던 말씀이 어릴 때는 이해가 되

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70대 초반이 된 지금에는 그 말

씀이 진실했다는 것을 깨닫곤 합니다.

아버님 어머님, 가끔은 빛바랜 흑백사진을 들여다봅니다. 교통수단

이 부족한 시절에 걷고 또 걸어서 멀리 있는 경주 석굴암에 가서 가족

기념 촬영을 했지요. 몇십 년이 지났지만 그 시절의 추억이 눈앞에 생생

합니다. 사진을 보면서 부모님이 그리워서 또다시 눈시울을 적십니다.

사회격변기에 어렵고도 모진 세월을 오직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고

이한우 | 경북 포항시 북구

일요일엔 편지를

뒤늦은 부모님 전 상서

고생한 아버님 어머님. 부모님은 빈곤한 가정에 태어나서 학교에 다

니지 못하셨지만 자식들만큼은 공부시키겠다는 마음에 우리 4남 2

녀 모두 고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마치게 하셨지요.

모질게 애쓰시며 훗날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셨는데 그렇지

못한 저 자신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어릴 때 허약하고 병치레가 많

은 저를 위해 더 많이 애쓰셨고 제가 젊은 시절, 참치 원양어선에 승

선할 때 이역만리 바다에서 역경과 어려움을 극복하라고 많은 격려

와 염원을 보내주셨던 부모님. 그것이 제 인생을 살아가는데 많은

보탬이 되었습니다.

저는 늦게 결혼해서 딸만 둘 낳았어요. 아들을 기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지난 지금에는 조금도 아들에 대한 미련이

없지만요.

아버님 어머님. 세월은 너무나 빨리 지나 어느새 제가 인생의 황

혼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자식들이 금년에 칠순이 되었다고 가족 여

행을 제안했어요. 저는 딸들이 어렵게 번 돈을 생각해서 거절했지만

결국 성화에 못 이겨 찬성하고 말았습니다. 먼 길이었는데 손수 딸

이 운전하여 간다는 말에 걱정도 되었지만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행선지는 통영이었습니다. 벽화마을도 둘러보고 이순신 공원도 둘

러보았습니다. 거제에도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엔 양산 통도사에 들

러서 온 가족의 금년의 만사형통을 빌고 또 빌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앞으로 제 소망은 두 딸이 빨리 제 짝을 만나 결혼

하여 예쁜 손주들을 보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살아생전에 불효했던

제 행동을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고 자식들이 만사형통할 수 있도록

봄바람 같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시길 바랍니다. 아버님 어머님. 하

늘나라에서 평안히 계시길 바라며 저의 사랑을 전합니다.

코너 속 편지 98 | 99코너 속 편지 98 |

Page 51: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김정순 | 충북 충주시

일요일엔 편지를

딸들에게

나의 네 딸에게.

51세에 뇌출혈로 쓰러진 엄마를 17년 동안 한결같이 염려하고 도

와준 사랑하는 나의 네 명의 딸들아. 엄마가 오늘은 여성시대를 통

해 편지를 쓴다.

반신마비 중증 장애인으로 살게 되면서 많이도 힘들고 불편했지만

엄마는 너희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고 부단히도 애썼고 노력했단다.

애써 힘듦을 감추고 살아왔지만 심한 어깨통증을 수반한 반신마

비는 엄마를 많이 지치게 했지. 마음마저 다치기 전에 사람들과 어

울려 배우고 취미활동을 하려고 매일 복지관에 다니기 시작한 거야.

그럼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고 우울감에서 해방되더라

고. 하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으니 불편한 몸으로 다니다 넘어져 손

목 골절로 고생도 했고, 또 팔꿈치 골절로 고생하고, 끝내 척추 압박

골절까지 겪었지. 그래서 너희들이 “엄마, 제발 나가지 마세요!” 하

면서 화도 내고 짜증도 냈었잖아.

하지만 엄마는 나가지 않으면 종일 혼자서 온갖 잡념에 우울해지

고 아픈 데만 신경을 쓰게 된다. 그래서 집을 나오는 건데, 너희는

그걸 모르는 것 같다. 가끔은 나가지 말라는 너희에게 싫은 소리까

지 하면서 나왔잖니.

지금 생각해보니 그저 한 번쯤은 조용히 너희에게 엄마의 아픔과

힘듦을 솔직히 말해도 되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그건 아마

도 엄마의 욕심 때문이었을 거야. 힘들게 애지중지 키운 내 딸들이

당연히 말하지 않아도 엄마 마음을 이해하고 잘해주길 기대한 거지.

사실 엄마는 젊은 시절에 엄마 몸을 전혀 돌보지 못했단다. 너희가

아프면 꼭 끌어안고 밤새 병원을 전전하면서 끼니도 굶어 가면서 애

썼어.

그래서 지금 너희가 가끔 “엄마, 집에 있다가 잘못되면 간호해드

리지만, 밖에 다니시다 다치면 우리도 책임 못 져요. 제발 집에만 계

세요” 하는 말이 참 듣기 싫고 받아들이기 힘들단다.

아주 누워서 있는 게 아니라 반은 마비가 되었지만 그래도 절뚝거

리면서라도 걸을 수가 있잖니. 걸을 수 있을 때 걸어야지. 걷고 싶

다, 엄마는. 너희는 애들도 키우고, 직장 생활에 바쁘고, 또 젊으니

까 엄마 마음을 모를 거야.

딸들아, 엄마는 항상 너희가 엄마를 좀 더 이해해주길 바란다. 내

가 조심은 하겠지만 혹시 넘어지더라도 엄마가 너희 아프면 밤새 병

원 찾아다니며 사랑해주던 때를 생각하고, 늙고 병든 엄마가 너희

하라는 대로 안 한다고 속상해하지 말고, 아직은 정신이 살아있고

움직일 수 있으니 많이 염려도 하지 말고, 이해해주길 바란다.

엄마의 마음만큼은 지금도 너희 어릴 때 업고 밤새 병원을 뛰어다

코너 속 편지 100 | 101코너 속 편지 100 |

Page 52: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김덕순 | 광주광역시 북구 각화대로

일요일엔 편지를

사랑이와 사랑이 엄마에게

<돌을 맞는 손녀 사랑이에게>

사랑아, 외할머니야!

세상에나 네가 태어나 첫 생일을 맞다니 외할머니로서 감회가 새

롭구나. 외할머니란 단어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단어인

데 네가 아직 어려서 그렇게 못 느끼겠지만 네겐 마음 따뜻한 외할머

니로 남고 싶구나.

네가 세상에 첫선을 보이던 날 난 또다시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었

단다. 새 생명의 탄생에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엄마 젖 먹고 건

강히 자라주어서 고마워. 너의 탄생은 많은 이에게 기쁨이었단다.

네 엄마를 알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도 기쁨이었지.

어디 탄생만 기쁨이겠니? 날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재롱둥

이 네가 날마다 기쁨이지. 어떤 날엔 뒤집기를 해서, 또 어떤 날엔

기어서, 또 어떤 날엔 한 발짝씩 걸어서. 올해 설엔 외갓집에 와서

니던 그때의 마음이란다. 너무 야속해하지도 말고 이해해주기를 바

란다.

아무래도 엄마 나이가 많아지니 고집도 생기고 몸도 안 좋아서 너

희가 많이 신경 쓰는 건 알지만 사람이 다치는 것도, 죽는 것도 한

순간임을 보아왔기에 사는 동안에 즐거움과 기쁨을 위해 한 발짝이

라도 뛰어놀 수 있을 때 열심히 다니고 싶다. 그러니 너무 나무라지

마라.

사랑하는 나의 딸들아, 늘 고맙고 미안하다.

엄마의 편지가 소개된다면 그때는 좀 더 엄마에게 사랑과 배려를

보여주렴. 우리 앞으론 웃으면서 서로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

해 딸들 ̂ _^

코너 속 편지 102 | 103코너 속 편지 102 |

Page 53: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함께 답을 찾아보자꾸나. 사랑이 키우느라 애쓴 우리 딸! 사랑한다!

지금처럼 윤 서방과 육아 분담하며 사랑이랑 알콩달콩 행복해야 해.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돌잔치 하면 좋으련만 하 수상한 시절을 만

났으니 어쩔 수 없구나. 조촐하니 직계 가족만 모여도 사랑이 돌을

더 많이 축하해줄게.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라.

스무 발 넘게 걸었는데 그 또한 기쁨이었단다.

이제는 기저귀 심부름도 한다지? 호호 똑똑한 첫 손녀, 우리 사랑

이! 첫 생일 할미가 많이 축하한다. 지금처럼 건강하게 자라다오.

많은 사람들 사랑받으면서 그 사랑 다시 되돌려주는 따뜻한 마음도

함께 가졌으면 좋겠다.

이 편지는 할미가 네게 띄우는 첫 편지이지만 앞으로 자주 보낼 거

야. 좋은 할미 되도록 노력할게!

<사랑하는 딸! 사랑이 엄마야 보아라!>

세상에나! 세월은 참 덧없이 흘러갔구나.

네가 사랑이만 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네가 사랑이를 낳아 벌써

1년이 되었다니. 사랑이 돌 축하한다.

사랑이 키우느라 애 많이 썼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너희 부부

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사랑이가 예쁘게 컸구나. 사랑이 키우느라고

힘들다고 투정할 때면 엄마 마음 참 많이 아팠다. 힘들 때 가까이 있

어서 손이라도 보태주면 좋으련만 그럴 수 없어 많이 안타까웠다.

아이를 키워봐야 어른이 된다는 말 실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네가

사랑이를 키우면서 엄마 맘도 이해하는 살뜰한 딸이 됐거든. 사랑이

하나에도 정신이 없는데 셋을 어찌 키웠냐는 그 말에 콧날이 시큰했

다. 글쎄? 그땐 그냥 엄마니까 키웠던 듯싶어. 여자는 약하나 엄마

는 위대하다는 명언을 빌려 쓰면 너무 진부하려나?

아무튼 우리 딸 사랑이 키우는 것 보면 대단하다. 아주 잘하고 있

어. 인생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 더 크고 단단해지고

있음을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잘 키울 수 있을 거야.

우린 ‘엄마’라는 같은 편이야. 힘들 땐 지금처럼 엄마에게 얘기하고

코너 속 편지 104 | 105코너 속 편지 104 |

Page 54: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저는 대구에 사는 56년생 김정희입니다. 저는 자신에게 편지를 쓰려

고 해요. 너무 자기 자신만 위하는 글 같아 미안합니다. 그래도 제가

이 나이까지 살면서 돌이켜보니 너무 열심히 살아왔다는 생각에 정희

가 정희에게 칭찬을 좀 하고 싶어서요.

정희야. 진짜 너 정말 너무 열심히 살아왔다.

33년 전, 31살의 나이에 중매로 두 달 만에 결혼해 홀시어머니 모시

고 남편과 셋이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지. 그러다 1년 후에 딸을, 3년째

엔 아들을 낳았고, 생활이 어려워 시어머님께 애들을 맡기고 생활전선

에 나가야 했지.

학습지 배달이라는 직업은 너무 괜찮은 직업이었는데, 그치? 우리

애들한테 무료로 학습지 공부를 시킬 수 있었으니까 말이야. 오토바이

를 타고 그렇게 10년을 근무했지.

김정희 | 대구광역시 북구 대불로

일요일엔 편지를

정희가 정희에게

그러다 IMF가 왔고,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서 퇴출당해서 어쩔 수 없

이 둘이 같이하는 일을 찾아야 했던 너. 아파트 상가 슈퍼마켓을 인수

해 다시 일을 시작했지. 장사는 그럭저럭 됐지만 월세가 백만 원이라

는 것이 너무 부담되었는데, 둘이 같이 집에서 밥 먹을 시간도 없었고,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처럼 생활했지.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벌어서 결혼 7년 만에 25평짜리 아파트도 샀

네! 그때의 기분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는데 말이야. 이사하던

날엔 진짜 누구에게 고함치면서 자랑하고 싶었어. 그렇게 슈퍼마켓도

10년. 그러다 남편이 다른 직장을 다니기로 해서 슈퍼마켓을 정리했

지.

또 정희 너는 쉬지도 않고 나라에서 시행하는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

았고, 무려 1기 졸업생으로 취직을 했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는

집으로 찾아가서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면 너무 좋아하셨고, 정희 너는

보람 있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지.

그 일도 10년을 하고 나니까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또 딸 결

혼도 시켜야 하고. 그래서 요양보호사도 그만두고, 딸 시집도 보내고

조금 한가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 대구에 있는 국수 회사에서 주방보

조를 구한다기에 거기 또 취직을 한 거야. 사원은 40명 정도 되는데 가

족 같은 분위기에 사장님 이하 부장님도 진짜 좋으신 분들이지. 또 예

전처럼 몇 번을 다시 시작해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하는 정희야.

정희야, 진짜 너 너무 열심히 살아왔다. 사랑한다. 건강해라. 살아

보니 건강이 최고더라. 건강이 따라주지 않으면 일을 하고 싶어도 못

하잖아. 지금 출퇴근할 때 자전거로 30분씩 다니는 거 계속해보자. 운

동 겸 교통비도 아낄 수 있잖니? 어쨌든 이제는 일에 너무 욕심내지 말

고 조금 쉬어가면서 뒤도 돌아보면서 살려무나. 정희야 수고했다.

코너 속 편지 106 | 107코너 속 편지 106 |

Page 55: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여성시대에

사연을 보내주세요

매일: 일반사연

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 속 시원히 털어놓아야 할 말들,

간단한 사연 신청곡, 축하해주고 싶은 일들, 칭찬하고 싶은 사람

부담 없이 편하게 보내주세요.

월: 우리아이 문제 없어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봅니다.

일상생활에서 생기는 소소한 육아 고민과 청소년 자녀와의 갈등…

<우리아이, 문제없어요> 방에 올려주시면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

서천석 선생님과 지혜로운 해결책을 찾아보겠습니다.

화 : 우리 동네 탐구생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 동네 이웃들의 이야기,

모두가 웃는 그날까지 계속됩니다.

수 : 열린 수요일

매주 수요일은 여성시대 문을 활짝 열어놓기로 했습니다.

이름 하여, ‘열린 수요일’. 살면서 궁금하고 알고 싶은 거, 알아야 할 거,

두루 알아보는 시간으로 수요일 3~4부를 꾸미겠습니다.

목 : 남성시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남성들!

멀리 해외에 있는 모든 남성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시간! 남자라서

느꼈던 애환들, 남자라서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보내주세요.

목: 장용의 단필충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군대 시절!

코미디 영화보다 더 웃기고 액션 영화보다 짜릿하고

웬만한 드라마보다 더 눈물나게 만드는 군대 시절의 이야기를 보내주세요.

개그맨 장용 씨와 함께 나누겠습니다.

금 : 옆집 변호사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인 우리, 그러나 세상은 복잡다단하고

법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신민영 변호사를 이웃으로 모시고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법의 울타리 안에서 헤쳐나가 보아요.

토 : 전화하기 좋은 날

토요일은 전화하기 좋은 날이죠? 나의 ‘목소리’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음성파일로 녹음해 남겨주세요.

사랑 고백도 좋고, 미안하다는 사과, 고맙다는 인사, 귀여운 투정도

좋습니다. 신청곡도 함께 남겨주시면 정성껏 선곡해 틀어드릴게요!

(02-789-1004 전화로도 참여가 가능합니다)

일 : 여행하기 좋은 날

대한민국 최초! 맞춤형 여행 설계자!

놀고먹기연구소 이우석 소장에게 원하는 여행을 주문하세요!

원하는 여행 스타일이나 여행을 떠나고픈 이유, 여행 멤버나 시기 등을

사연으로 남겨주세요. 좋았던 여행지의 추억이나 취향도 좋습니다.

주소 : (03925) 서울시 마포구 성암로 267 MBC 라디오 여성시대

109 108 |

Page 56: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양희은 | 여성시대 진행자

이 봄이 힘겹다

방송국 일 끝내고 시장 봐서 오면 2시 정도가 되고, 현관문 여는

동시에 늙은 강아지 두 마리가 길길이 뛰며 나가자고 보챈다. 짐 내

려놓자마자 무조건 동네 한 바퀴 돌고 와야 한다. 볕이 좋은 날이나

흐리고 바람 부는 날이거나 요사이엔 개 데리고 산책하는 이들이 많

이 보인다.

그간 열심히 다녔던 줌바 클라스는 닫았다. 아쿠아 강습은 한 사

람이 나와도 계속한다기에 원하는 이들만이라도 이어나간다. 스무

명 넘게 채워지던 식구들이 다섯 명으로 줄었고, 사람이 없으니 운

동량이 더 많다. 원래 소규모 운동이 더 센 편이라고 선생님이 웃으

신다. 무릎 때문에 나는 아쿠아를 계속한다. 월 수 금 사흘 아쿠아

강습받고 오면 4시 반. 수영복 널고 저녁 준비와 내일 아침 도시락

반찬을 챙기는 나날이다.

장도 주 2~3회를 본다. 남이 해주는 밥이 좋은데, 외식하면 뱃속

이 불편하니까 어쩔 수 없이 집밥을 열심히 챙길밖에…. 그래서 요

리 프로를 열심히 본다. 쉽고도 맛있는 꺼리 뭐 없을까 해도 늘 해

먹는 것만 만든다. 장바구니를 보면 안다. 늘 같은 걸 사니까.

꽃샘추위 속에 독특하게 해먹은 건 봄 도다리쑥국 한 가지. 동생

양희경이 유튜브 ‘딴집밥’하느라 쑥 특집으로 만들었다는 쇠고기 완

자 쑥국과 쑥버무리는 덤으로 얻어먹었다. 우리 집 반찬은 콩나물

뭇국, 돼지고기 김치찌개, 여린 쌈채소 쌈과 쌈장, 바지락국, 청국

장, 배추된장국, 생선 한 토막, 무생채, 감자조림, 감자나물, 오징

어채무침, 멸치볶음, 어묵볶음, 달걀찜, 양배추찜 등이 서로 물려

돌아간다.

먹는 반찬만 하니 편식이 따로 없다. 꽃샘바람 매서운 날엔 으레

따끈하고 맑은 국물 생각이 나는데 나이 든 티가 팍팍 난다. 엄마가

잡숫고 싶어 하실 것 같아 미리 전화 걸어 포장 부탁하려고 복국집

에 전화하니 웬 남자가 받는다. “거기 복집 아녜요?” 하니 “폐업했

습니다” 한다. 강서구청 앞 그 집은 소박하지만 잘 나가는 집이었는

데 유감 천만에 충격이 크다.

우리 집에서 태어난 나이 든 길냥이가 다시 찾아와(얼마 전 우리

집에서 몇 년 잘살다가 사라진 길냥이 까미의 엄마) 먹이 사려고 동

네서 제일 큰 사료 가게에 갔는데 간판이 안 보였다. 내가 뭐에 홀

렸나? 갑자기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유턴해서 다시 확인하니 분명

그 자리인데 낯선 철물점이 들어섰다.

골목 끝에 늘 북적이던 돼지고기 김치찌갯집도 없어져 다시금 살

피니, 틀림없는 그 자리엔 외관이 상큼한 카페가 새로 생겼다. 두

달에 한 번 동창 모임을 하는 삼청동의 얌전한 한식집 주인은 이번

주말까지만 하고 가게를 닫는다고 전했다. 조신한 인상의 주인장은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한다.

외식을 거의 안 하는 내가 아끼던 두 집이 폐업을 했다. 잘 나가던

가게들이어서 충격이 컸다. 이 봄이 힘겹다. 어떻게 버틸까? 참말

로 어떻게 버틸까? 답이 없네. 버텨내는 하루하루가 눈물겹다.

111양희은의 스튜디오에서 110 | 양희은의스튜디오에서

Page 57: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상 4관왕 외에 각종 영화제의 수

많은 상을 휩쓴 자랑스러운 우리 영화 <기생충>. 큰 상들을 수상한

것은 최근이지만 개봉은 작년 5월에 했다.

대한민국 대표 감독과 배우의 만남으로 개봉 전부터 관심이 집중

되었던 <기생충>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많은 관객을 극

장으로 끌어들였다. 개봉과 동시에 언론은 물론, 영화를 보고 온 지

인들도 앞다투어 추천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나도 시작하자마자 극장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작년 한 해는 내게 정말 중요한 변화가 있었던 시기였다. 개

인 방송을 시작했기 때문에.

방송과 행사 외의 남는 모든 시간을 유튜브 채널 ‘서경석 TV'에 할

애했던 작년. <기생충>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좋아하던 영화를 단

한 편도 극장에서는 보지 못했던 시기였다. 결국 극장에서는 더 이

상 <기생충>을 볼 수 없게 되었고, 개봉 후 1년이 다 된 최근에야

VOD(주문형 비디오 시스템)를 통해 보게 되었다.

명불허전이었다. 황당한 것 같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스토

리, 뻔하게 흐르지 않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끝날 때까지 극에

서경석 | 여성시대 진행자

봉준호, 송강호가 한 배를 탈 수 있었던 이유

몰입하게 만드는 구성, 어떤 배우 하나 허투루 연기하지 않는 촘촘

한 인물 배치, 상류 사회의 이중적인 면을 꼬집는 다소 무거운 내용

사이사이에 웃음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절묘함, 모든 것이 딱 내

스타일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영화를 늦게 본 것에 대한 자진사과(?)라도 하듯,

나는 여러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이 수상하는 장면을

모두 모니터했고, 그 후로도 신문기사들, 다큐멘터리까지 챙겨 보았

다. 그러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름 아닌 봉준호, 송강호

콤비가 인연을 맺게 된 사연.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

우가 함께 만들어낸 영화들이다. 오랜 시간 콤비로 활동한 두 사람

이어서, 사실 그 인연의 시작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하지 않고 있

었다. 늘 그렇듯 스타 감독과 톱 배우의 자연스러운 만남이었겠지

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봉, 송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작업

한 작품 <살인의 추억>은 2003년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당시 둘

의 위상은 좀 달랐다. 송강호 배우는 <넘버3>를 통해 스타덤에 오

른 상황인 반면, 봉준호 감독은 전작이자 감독 데뷔작인 <플란다

스의 개>의 흥행 참패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최고

의 영화가 된 <살인의 추억>은 당시만 해도 만약 실패하면 감독을

그만둘 생각으로 준비한 작품이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물러설 곳

없었던 봉 감독은 ‘밑져야 본전’이다 생각하고, 큰 기대 없이 당시

톱 배우였던 송강호 배우에게 섭외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송강호

배우가 주저 없이 출연을 허락했고, 그때부터 둘의 본격적인 인연

이 시작된 것이다.

113서경석의스튜디오에서

서경석의 스튜디오에서 112 |

Page 58: 양희은·서경석입니다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5/wom2004.pdf · 2020-04-13 · [9387] 오늘 마스크 5부제 시행하니 오전 8시 50분에 줄 서서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톱 배우 송강호가 왜 무명감독 봉준호

의 제안을 받아들였냐는 것이다. 그것도 고민 없이 단번에. 그 이유

는 바로 그로부터 5년 전인 1997년 송 배우의 무명시절 봉 감독이

남긴 메시지 때문이었다. 당시 단역배우였던 송 배우는 봉 감독이

조감독을 맡은 작품에 오디션을 보러 갔고, 결과 통보가 오지 않아

그냥 떨어진 걸로 알았다고 한다. 바로 그때, 봉준호 조감독에게서

도착한 메시지. 그런데 그것은 합격을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송 선배님과 꼭 작품을 하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맞는 배역이 없

어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음번에 꼭 기회가 되면 작품에 모시

고 싶습니다. 저는 송 선배님의 연기를 너무나 사랑합니다.’

수없이 많은 오디션에서 탈락했지만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메시지. 무명의 단역 배우들에게 굳이 불합격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오히려 설명하는 것이 더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당시에 날아온 봉 감독의 메시지는 송 배우의 가슴을 울렸다.

그때 송 배우는 결심했다고 한다. 나중에 봉 감독이 메인 감독이

되면 그 사람의 영화에는 꼭 출연하겠다고. 천재감독 봉준호와 연기

의 신 송강호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하루하루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

진다. 본의는 그게 아니었다 하더라도 은연중에 상대를 홀대하여 상

처를 주거나 좌절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봉-송 콤비 만남의 계기

가 된 이 사연은 앞으로 우리가 만날 수없이 많은 사람을 어떻게 대

해야 할지에 대한 강력하고 검증된 힌트를 주고 있다.

비록 상대가 크게 성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 번 보고 말 것 같

은 사람이라도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어 진심으로 대하라고.

중소기업 명품전 IBK기업은행 등촌역지점 거래고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