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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는 .................................................................................... 1 2. 행복배낭 우리는 ....................................................................... 3 3. 다이어리 ................................................................................ 19 4. 작은 생각 ............................................................................... 61 5. 프로그램 활동 보고 .............................................................. 115 6. 2기에게 ................................................................................ 123 7. 닫는 ................................................................................ 127 8. Photo essay ......................................................................... 129

happy backpa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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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backpacker from ajou u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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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happy backpacker

목 차

1. 여는 글 .................................................................................... 1

2. 행복배낭 우리는 ....................................................................... 3

3. 다이어리 ................................................................................ 19

4. 작은 생각 ............................................................................... 61

5. 프로그램 활동 보고 .............................................................. 115

6. 2기에게 ................................................................................ 123

7. 닫는 글 ................................................................................ 127

8. Photo essay .........................................................................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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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여는 글

1

탕국 해외봉사 참가기

2010 녂 2 월 1 읷 아주대학교 해외봉사단의

단장이라는 자격으로 봉사홗동을 하기로 핚 탕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탓다. 탕국 해외봉사단의 단원을

선발하기 위핚 면젆에 참가하였고, 해외봉사단을

파견하기 위핚 맃은 서류에 결재를 하면서도 실제로

탕국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봉사단원든과 함께

공연하기로 핚 ‘개구리송’에 따른 율동은 그

숚서가 어떻게 되는지, 심지어 단 핚맀디의 탕국어도

앉지 못핚 찿 봉사홗동을 따라 나섰던 겂이다.

5 슸갂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가서 내린 방콕의

공항은 나에게 덥다는 겂 외에 벿다른 느낌을 주지 못하였지맂, 비행기를 갈아타고

도착핚 치앙맀이 공항은 드디어 탕국이라는 나라에 도착하였다는 느낌을 주었다. 트럭을

개조하여 맂듞, 처음 볷 대중교통수단은 탕국이 아직 우리나라보다 발젂하지 못핚

나라라는 겂을 느끼게 해 주었으며, 차의 오른편에 잇는 욲젂석은 탕국이 과거 영국의

지배를 받았음을 생각나게 해 주었다. 모듞 겂이 슺기하기맂 했던 첫날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탕국에서의 첫날밤을 편히 보낸 후 그 다음 날 봉사홗동을 위하여

방문했던 몽족 합숙소는 몽족의 자녀든에 대핚 교육열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합숙소에서의 생홗은 춖궁기의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핚 방편읷 수도 잇다고 했지맂,

자녀에게 공부핛 수 잇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서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핛 수 잇게 하기

위핚 부모든의 희맛이 깃듞 겂이기도 하였다. 여름이면 무척 더욳 겂 같은 합숙소는

겨욳에는 추위에 잠을 이루기 힘든 겂맂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숙소에서

생홗하는 아이든의 모습은 너무나도 밝았으며, 작은 겂에도 감사핛 죿 아는 맀음을

가지고 잇었다. 봉사홗동에 참가핛 수 잇었다는 사실이 더 없이 기쁜 슸갂이었다.

몽족 합숙소에서의 봉사홗동을 맀친 후 옮겨갂 왕비대학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본 수

잇는 대학과는 다른 감동을 주었다. 미국에서 연구녂을 보내면서 구경핚 하버드나 예읷

등 유명핚 대학든은 오랜 역사와 젂통을 자랑하고 잇었지맂, 왕비대학은 그리 오래되지

안은 대학이면서도 처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웅장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그럮

곳이었다. 왕비대학에 머무는 슸갂이 너무 짧아 재대로 대학을 구경하지는 못하였지맂

대학에 든어서면 처음 보게 되는 건물이나 넓은 부지는 대학을 방문하는 사람을

압도하는 장관을 연춗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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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2

여는 글 탕국 봉사홗동에서의 가장 흥미로욲 경험은 소수민족이 사는 맀을을 방문핚 겂이었다.

사람이 살기 힘든 겂 같은 높은 산 위에 맀을을 형성하고 살아가는 모습은 젂혀 색다른

경험이었다.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안고 먹을 겂을 구하기 위하여 맃은 노력을 기욳여야

핛 겂 같은 곳에서 맀을을 형성하고 사는 겂은 무척 힘듞 읷읷 겂이다. 무엇이 그든을

산 위로 올라가게 했는지를 절확하게 앉지 못하지맂, 그든에게는 지금의 생홗이

맂족스럽기를 바띿 뿐이다.

그럮 생홗홖경과는 달리 산 위에서 보낸 밤은 홖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본 수

없는 벿든의 향연을 본 수 잇었던 겂이다. 고개를 든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겂 같은

벿을 본 수 잇었던 경험은 어릴 때 슸곤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밤하늘을 밝히는 도슸의 가로등은 벿빛을 희미하게 하고, 맟연이나 먺지는 벿을 보이지

안게 맂듞다. 핚치 앞도 본 수 없는 어둠은 도슸읶에게는 재앙이지맂 자연을 그리워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이 될 수 잇었다. 핚국으로 돈아가면 벿을 헤는 밤이 그리워질 겂이다.

탕국을 떠나기 젂에 맀지링으로 방문했던 빠맀이 공동체에서는 몽족 합숙소에서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녀든의 보다 나은 미래를 기원하는 부모든의 바램과 공동체를 위하여

노력하는 맃은 사람든의 따스핚 손길이 그든을 포귺하게 감싸고 잇었던 겂이다.

빠맀이공동체는 그곳에서 생홗하는 아이든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추춚돈이 되리라.

개읶적읶 사절으로 탕국에서의 봉사홗동을 끝까지 함께하지 못핚 겂이 후회스럽다.

비록 풍요핚 생홗을 누리지는 못하지맂 자슺이 처핚 홖경에 감사핛 죿 아는 사람든!

그든은 짂절 행복핚 사람이며, 그든과 함께핚 슸갂은 나에게도 춛맂감을 가져다 주었다.

해외봉사단에 참가핛 수 잇는 기회를 주슺 모듞 붂과 짧은 기갂이나맀 함께핚 모듞

붂든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주대 태국 해외봉사단 단장

전 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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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행복배낭 우리는...

여기, 행복을 전하기 위해 모인 위인 14명 이 있습니다.

배낭에 희망 싣고, 사랑 꼭 꼭 눌러 담아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여행하는 도중 짐을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준비한 모든 것들이 동났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일까요?

돌아오는 길...

우리는 더 큰 배낭으로 고쳐 매야 했습니다.

그 큰 배낭도 모자라 양손에 가슴에 가득 채워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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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행복배낭 우리는...

To . 사슴 같은 눈을 가진 한나

첫 만남

태국해외봉사단 OT 날. 다들 늦게 나마 다 왔지만

한나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그녀가 궁금했다.

시간이 지나 시험기간 첫 미팅을 가졌을 때 한나를 처음

보았다. 맑은 눈동자를 가진 한나.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엉뚱한 그녀. 약간 4 차원 같은 그녀. 첫 자기소개서를

올렸을 때 먼저 댓 글을 달아준 그녀. 그녀가 궁금해 졌다.

예능의 달인

율동분과를 맡은 한나. 준비부터 범상치 않았다. 짧은

시간 동안에 올챙이 송과 숫자 송을 동영상으로 보고 외워올

정도로 그녀는 열심이었다. 율동을 하기 전 그녀의

‚준비됐나요?~ 시작할까요~?‛는 행복배낭 팀원들

모두를 어린아이로 만들어 버렸다. 쉽게 따라 하지 못하면

차근히 가르쳐 주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 그 당당함이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You raise me up 을 부를 때 소프라노 솔로 부분을 맡은 한나. 다른

여 팀원들이 부끄러워하여 선뜻 나서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당당했다. 그리고 해냈다. 아무나

흉내내지 못할 영역의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를 하는 한나. 모두를 소름 돋게 했다.

태국 모든 아이들의 언니, 누나

한나는 아이를 너무나 좋아한다. 부족마을을 옮겨 다닐 때마다 아이에게 목매던 한나. 어느

아이든 한나에게 한 번도 안기지 않은 아이는 없을 정도로 그녀는 모든 아이들을 안아주었다. 걸어서

하이킹을 하느라 몹시 지쳤던 한나. 그럼에도 아이만 보면 없던 힘이 어디서 솟았는지 쪼르르 달려가

안아주던 한나의 모습. 그 해맑은 마음이 그녀를 돋보이게 한다.

통 닭이 더 좋아!!!

Bo Peep Bo Peep 춤 연습과 노래 연습의 연속으로 심신이 지칠 때로 지친 우리들. 한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누군가의 “오늘은 통닭 먹자!!!”는 소리에 한나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느껴진다.

“진짜??” 어찌나 통닭을 좋아하는지 행복배낭 팀원 모두가 종훈이 형에게는 케익을, 한나에게는

초를 꽂은 통닭을 선물했다. 받아서 배시시 웃으며 “나는 통닭이 더 좋아.”를 말하던 한나. 하지만

먹는 것에 욕심내지 않고 팀원 모두들 챙겨 주었던 한나. 그 모습이 한나를 더 돋보이게 한다.

Forever

페인트를 칠 할 때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제대로 일했던 한나. 아이들의 집을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꾸며주고자 페인트칠에 최선을 다했던 한나. 자신도 피곤함에도 선뜻 남을 더 생각해준 한나.

앞으로 변함없이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행복배낭에서 영원히 함께 하길 바랄께.

한나야~ 고마워^^

From.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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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행복배낭 우리는...

To . 배지영 탐구생활

우유빛깔 배지영, 사랑해요 배지영,

욜라뽕따 배지영~

오빠들의 환호성이 들려와요. 아.. 저기

멀리서 지영 언니가 오고 있나 봐요.

예쁜 언니, 왕 언니, 여신… 여자라면

한 번쯤 들어보고 싶은 별명을 혼자 다

갖고 있어요.

아침 10시. 땡! 일분도 안 봐줘요.

천성이 총무인가 봐요. 지각비를 목숨보

다 더 중요하게 여겨요. 예쁜 별명에

냉철함까지 지니고 있어요.

오빠들이 속닥속닥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어려운 어른들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어리둥절.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는데, 지영 언니는 빙그레 웃고 있어요. 아.. 언니도 어른 인가봐요.

이번엔 ‘저는 다섯짤 입니다.’ 외치는 어린이만 소화 할 수 있다는 파스텔 톤 하늘색 배낭을

매고 와요. 그런데 아니 이런, 25살 지영 언니는 완벽하게 소화해요. 영락없는 어린이 합창단 단

원 Feel이예요. 절대 동안,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봐요.

상원오빠랑 선아랑 격한 게임을 하고 있어요. 옆에 있던 지영 언니, 게임에 져서 벌칙을 받고 있

던 선아를 보더니 눈물을 흘려요. 아니 이럴 수가 마음까지 따뜻해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천사가

여기 있었네요.

율동 하는 모습이 참 곧아요. 몸짓, 손짓 하나 하나에 혼이 담겨 있어요. 지영 언니가 율동 하는 것

을 보면 모두가 반해요.

얼굴은 하얘요. 거기에 미소는 백만 불짜리 미소예요. 눈은 어찌나 맑은지, 그 눈에 한 번 빠지면 헤

어 나올 수가 없어요.

폴라로이드 사진을 참 잘 찍어요. 미적, 공간적 능력도 뛰어나요.

먹기도 참 잘 먹어요. 그 징그러운 하얀 애벌레도 거침없이 먹어요. 그런데 이런, 살이 안 쪄요. 저

렇게 많이 먹는데 예쁜 몸을 갖고 있어요. 참 아이러니해요. 먹는 양은 똑같은데 나랑 몸집은 왜 이

렇게 차이가 나는지… 참 억울해요.

명훈 오빠에게 돈을 갚나 봐요. 쪼르륵~ 아니 이런, 30 바트를 동전으로 돌려줘요. 이렇게 황당할

수가. 푼수 같은 면도 있어요. 약간의 빈틈까지 보이는 완벽한 천상 여자예요.

아… 이렇게 지영 언니를 탐구하다 보니 배만 아파요. 아… 늘어가는 건 질투뿐이에요.

지금까지 ‘우유빛깔 배지영 사랑해요 배지영 욜라뽕따 배지영’의 탐구생활 이었어요.

from. 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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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우리는...

To . 독특, 상콤, 발랄 주영

아잔리가 농담으로 주영이를 부르는 별명

‚담배‛! 그에 ‚저 이제 담배 끊었어요.‛

라며 능청스럽게 답하던 그녀.

메짠 합숙소에서 반바지와 목이 긴 양말로

새로운 패션의 리더로 떠오른 그녀. 그 패션이

은근 어울렸다는…후문이.

손재주가 좋은 그녀.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는

그녀.

편. 주. 영

기억에 남는 주영이의 첫모습.

‚전 클레이를 잘 만들어요!‛ 직접 만든

클레이는 정말 귀여웠다. 직접 만들어 온 산다

라박의 상투머리 얼굴은 최고였다. 우리 모두 주

영이 작품을 보고 따라 하기 위해 꼼지락 꼼지

락! 하지만 우리들의 결과물은 병아리, 스폰지

밥 이었다.

공연을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 모두들 연습에

매진했다. 얌전한 듯한 귀여운 아이는 춤을 추기

시작하더니 탄력을 받아 우리팀의 에이스로 자리매

김하기 시작했다.

문화탐방 중에 물건을 사도 딱 주영이 다운 캐릭터 강하고 작고 귀여운 그녀만의 스타일이 있는

것을 구매한다. 우리들 중 누가 봐도 ‚역시 주영이 스타일이다!‛라고 들 이야기 한다.

일도 열심히, 분위기도 UP!! UP!!

우리 모두들 열심히 노력봉사를 하고 있다가 누군가가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를 시작

하며 노래를 주영이에게 노래를 시키면 곧바로 나오는 그녀의 노래에 함께 일하는 아저씨들의 눈에는

하트가 뿅뿅!! 다들 그 노래에 기분이 좋아져 힘이 불끈불끈 또 한번 기운을 내서 일에 매진한다.

주영이에게 보내는 mInI 편지!

분위기 메이커 우리 주영이. 덕분에 우리의 봉사 여행을 더 재미나게 보낼 수 있었던 거 같아! 너

의 양말 패션은 정말 우리가 함께하던 기간 동안 베스트 패션이었어!! 한국에서도 그런 패션 한번

더 볼 수 있는 거지?? 호호

from. 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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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우리는...

To . 행복배낭 ‘마운틴’ 박산

술을 정말 많이많이 좋아하는 오빠.

태권무를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못해서 아쉬웠을 오빠.

그래도 그 시간이 우리가 친해질 수 있다는 시간이었다는

데 의미를 두는 멋진 오빠.

반듯한 학원선생님 이미지 뒤에 숨겨놓은 옆집 뻥쟁이 삼촌

같은 오빠. 말을 정말 잘해서 혹하게 만드는 오빠.

근데 어느 순간 적정선을 넘어 뻥이 의심되는 신기한 오빠

여행, 교환학생, 유학, 어학연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국제협력팀 오빠.

비행기멀미에 정신 못 차리는 불쌍한 오빠.

장트라블타여서 아침에 일어나 물 한잔이면 바로

화장실로 직행하는 오빠.

입맛이 잘 맞지 않아서 대신 매 끼니마다 빵을 아주 많이

먹은 오빠. 그러다가도 입맛이 잘 맞는 날이면 끝장을 보여주는

오빠. 그날 밤 변기사용을 두고 룸메 상원오빠와 눈치 싸움하는 오빠.

신짜면을 아주 맛있게 만들어 주는 오빠.

여행을 왜 좋아하냐는 선아의 질문에

‘여행자는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 지조차 모르지만

관광객은 나중에 자신이 어디에 다녀왔는지조차 모른다’ 는 말을 해준 오빠.

내 꿈은 ‘만 명의 행복을 책임지는 것’ 이라는 명언을 남긴 오빠.

아잔리가 감동할 정도로 언변의 마술사인 오빠.

홈쇼핑 쇼호스트하면 진짜 잘 어울릴 것 같은 오빠.

그러다가도 디올에 대해 상세히 알려줬다가 괜히 안물 당해 미안한 오빠.

면접걱정을 왜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될 성 부른 오빠.

단체 티가 좀 작은 것 같은데 딱 맞다 며 좋아하던 귀여운 오빠.

특유의 코믹한 표정으로 사진도 재미있게 찍는 오빠.

우리 지여이 우리 써나 우리 한나 우리 주여이 하면서 여학우들을 챙겨주던 오빠.

가만 보면 행복배낭에서 가장 깊은 생각을 하는 것 같은 오빠.

from. 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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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우리는...

To . ‘멋진 남자’ 김경우

대박 예감 !!!

2010년 신(新)개념 ‚아이폰‛ 을 관광보낼

무(無)개념 ‚김경우폰‛ 태국 출시!!

1. 상품명 : 김경우 (모델명 Ajou KKW),

일명 ‚일꾼폰‛

2. 원산지 : Made in KOREA

3. 제품 정보

1 ) 제조사 : ㈜ Parents Corp.

(어머니, 아버지 합작회사)

2 ) 브랜드 : 아주대학교 경영학부

3 ) 제조일 : 1987년 2월 14일

4 ) 제품특징

① 크기 : 178 cm

② 무게 : 72 kg

③ 외관 및 디자인 : 인간 개조 전문회사 ㈜해병대 에서 2년간 고생 끝에 나온 건장한 체격에 근육이 멋

진 완벽한 남성 바디. 최첨단 ‘경보’ 기술 도입으로 한 껏 ‘업’ 된 엉덩이 부분

이 포인트. 여심을 홀리는 ‘눈웃음’ 은 여자라면 한 번쯤 옆에 끼고(?) 싶은 마음이.

④ 충전 : 한식, 양식, 일식 할 것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주기만 하면 다 먹어 어디에서나 충전 가능.

단, 하는 기능 및 일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먹음.

⑤ 기능 : 노동 - 삽질, 곡괭이질, 페인트칠, 시멘트 믹스, 돌 나르기 및 기타 잡역.

음악 -2화움 (알토, 테너) 멜로디. 수록곡 약 100곡 (향후 지속적 업데이트)

체육 – 아마추어 선수급 경보, 족구 스트라이커, 및 기타 탁월한 운동기능.

댄스 – 도드라진 힙을 이용한 ‘뭘 춰도 야해 보이는’ 댄스 기능.

⑥ 소프트웨어 : 겉보기와는 달리 상당한 여성적 매력이 있음. 사람 말을 잘 들어주며 사소한 것에 잘 웃

어줌. 아직 미숙하지만 생각이 많고 미래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함. 여자한테 작업 거느라

선배 아이디 빌려 미친듯이 국제전화를 날려대는 진정한 로맨티스트이자 무(無)개념의 선두

주자.

4. 사용자 평가 ★★★★★

상품평 ) 개인적으로 군대 후임이자 남녀 노소 가리지 않고 살갑게 엉겨붙는 니글니글한 이 녀석이 처음엔

크게 맘에 들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당한 매력이 있는 녀석이라고 생각했음. 함께한 시간들 너무

좋았고 먼 땅에서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났음 좋겠음. – 경기

-수원 Pmountain 님 –

from.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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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행복배낭 우리는...

To . ‘김’ 씨 성을 가진 소녀

김씨 봉사기

김 씨 성을 가진 소년(?)

항상 멋있는 웃음을 가진 우리 봉사

단의 소년 선아(?)

털털함과 다부짐을 가진 그녀를 보면

서 항상 저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선아야 넌 남자니? 여자니?

그에 대한 대답은 아직까지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어느 누구보다

도 멋있고 예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매우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작은 고

추가 맵다고’ 하죠. 아마 그 표현에

빗대어 보자면 그녀는 작은 고추 정도

가 아니라 태국에서 먹었던 그 어느 고

추보다 맵지 않을까요?

아름답습니다. 공대 아름 이여서 아름답습니다. 항상 오빠들에게 친근하게 다가 올 때 도 아름답

고 카메라를 향해 풍성하게 미소 짓는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그 어느 누구보다 아이들

을 걱정했던 그녀의 근심 어린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3주 동안 그녀와 같은 것을 공유해본 저

로서는 그녀의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바로 김선아 이니까요.

봉사기간 : 10.2.1-10.2.18

봉사장소 : 태국, 미얀마, 라오스

주연 : 김선아 외 14명

주최 : 아주대학교

from. 명훈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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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우리는...

To . ‘정신적 지주’ 종훈 오빠 다시 합시다, 다시!

공연 연습 중에 좀 쉬고 있으면

어디선가 묵직한 저음의 ‚자,

다시 합시다, 다시!‛가 들린다.

종훈 오빠가 공연 연습 중에 가장

많이 한 말일 것이다. 특히

‘The Lion Sleeps Tonight’

을 할 때가 인상 깊게 남는다. 그

는 이 노래의 보컬로 가장 힘든 사

람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우리의 부

족함을 채우려 ‘다시’를 외친다.

태권무 연습도 힘들어도 마다 않고

열심히 하는 모습에 동생들을 부끄

럽게 했던 그의 모습도 생각난다.

당신을 컴퓨터의 제왕으로 임명합니다.

회의 첫날, 회의가 끝나기 직전의 그의 한마디. ‚오늘 회의록 싸이 클럽에 올렸으니 확인하세요.‛

회의에 참여하면서 싸이 클럽도 만들고 거기다가 회의록까지 쓰시다니! 그때부터 놀라움의 시작이었

다. 매 회의마다 바로 회의록이 올라왔고, 봉사활동에 필요한 물품정리는 종훈 오빠의 엄청난 엑셀

실력으로 몇 배는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중간보고회, 최종보고회를 위한 프레젠테이션 준비도 역

시 종훈 오빠의 손을 거쳐 우리는 그저 우와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노력봉사의 귀재, 문병장님

나와 함께 페인트칠 팀이었던 문병장님은 항상 묵묵히 동생들에게 솔선수범이다. 군대에서 했던 실

력을 토대로 직접 나서서 페인트를 만들고 몸소 롤러질을 보여주시며 가르쳐줬다. 빠마이 공동체의 싱

크대 작업 역시 언제나처럼 묵묵히 자기가 할 일을 찾아 직접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없이 몸으로

보여주신다. 이럴 때 주위에서 지켜보던 우리는 이런 말을 한다. ‘역시 문병장님’.

조만간 더 밝아질, 더 유쾌해질 그의 모습

사실 처음에는 그리 밝은 인상은 아니었다. 회의 때 회의를 주도하긴 하지만 평소에는 조용하고 말없

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봉사활동을 하러 태국에 나가서도 며칠간은 한국에서보다 더 말없이 봉사활

동에 매진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봉사활동과 우리가 함께했던 즐거웠던 시간들을 통해서 점점 더

밝아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덩달아 더 즐거워지는걸 느꼈다. 한국에 들어오기 며칠 전부터

는 나이 어린 동생들에게 농담도 건네고 장난도 치면서 유머러스한 그로 거듭났다.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조만간 더 밝아질, 더 유쾌해질 그의 모습을 상상한다.

언제나 우리의 맏형, 정신적 지주!

오빠가 있어서 든든했어요~^^

from. 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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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우리는...

To . 이름이 없어 슬픈 막내 막내의 첫인상은 어땠습니까? 훤칠한 키에, 허여멀건 한 얼굴.

누나들 졸졸 따라다니며 응석이나

부리는 뺀질이. 그닥 성실과는 거리가

멀고, 싸바싸바는 일상화 되었으며,

하기 싫은 일은 곧 죽어도 할 수

없는... 개념 없는 철부지 1 학년.

전형적인 막내.

인줄로만 알았는데 편협한 편견

속에서 자라난 오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 났습니다.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었나요?

글쎄요. 여자를 밝히고,

흐느적거리긴 하지만 귀찮고 궂은일을 시켜도 마다하지 않고, 형과 누나들한테도 공손하며... 일단

1 학년 봉사활동시간이 100 시간을 넘었으니까요. 군대갔다온걸 제외하고 봉사란 걸 해본 경험이

없는 제가 논할 수 없는 부분이죠. 이따금씩 멋모르고 버릇없이 굴 때가 있었는데요, 제가 정색하며

질타를 가해도 꽁해있지 않고, 수긍하며, 조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나이

때의 저를 돌이켜 비교해보면 참 대견스럽단 생각도 들고요. 1 학년 주제에 학점도 좋더라구요.^^ 또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저와 잘 맞는 구석도 있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저는 구태의연한 삶의 형식에 얽매여 있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온 몸으로 거부하죠.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 구속된 틀에 대한 저항은 아니지만, 가식적임을 철저히 배제하려고

노력합니다. 카프카의 고민을 공유한달 까요? 가끔 의도와는 달리 오해를 사서 충돌할 때도 여러 번

있었지만, 제 삶의 나침반은 감수하는 방향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감에

따라 저 역시 세속에 물들어가고, 상황에 따라 눈과 귀를 막은 채 현실을 방목하였음을 고백합니다.

카프카와 함께 풀어야 하는... 남겨진 숙제입니다.

막내의 그릇은 아직 서툴고, 미숙하지만 가식 없이 솔직합니다. 목사님 말씀에 대한 막내의

거침없는 리뷰를 공개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명료하고 뚜렷한 사고의 방향을 개괄적으로 엿볼 수

있었습니다. 군대도 갔다 오고, 막내 티를 벗어날 즘이면 멋진 청년, 남자 이명훈으로 성장할 겁니다.

10년 후의 막내가 기대되네요.

저도 기대가 되네요.^^ 마지막으로 막내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음... 막내야. 입대하기 전에, 아잔리가 전해 준 말씀을 곱씹어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살아가는데 정답은 없다지만, 삶의 이정표가 있다면 선택의 연속인 인생 속에서 어영부영,

허우적거리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도 소중한 것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술 생각나면 형한테

연락하고.

from. 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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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우리는...

To . 현노 형

현노 형 첫인상!

처음 만났을 때 어색해 하던 표정! 처음 보는 순간

딱 사람 좋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처음 자

기 소개를 할 때 힘 쓰는 일은 잘 한다는 형의 유머

스러운 멘트! 그런데 나중에 본 거지만 정말 힘 쎄

시더라구요. 그땐 별 의미 없이 한 팀원으로 봤지만

많은 생활을 함께 할 줄은 몰랐습니다.

준비 하면서!

준비하면서도 같은 과학분과를 맡아서 준비하는데

아무래도 제가 어리다 보니 잘 챙겨주던 형이 생각

나네요. 자상한 성격으로 챙기고 제가 준비하면 한

번 더 같이 봐 준비하고 발표도 나서서 해 주시고

어려운 일도 척척 처리하는 형이 멋있고 대단해 보였

죠. 태권무를 연습할때도 절도있고 힘 있는 동작으로

잘 하시는데 정말 잘하고 열심히 하시더라구요. 짐

을 나르고 이런저런 귀찮을법한 일이 생겨도 나서서

알아서 해 주는 형 모습이 절 반성하게 하고 형만큼

은 아니지만 저도 열심히 하게끔 해 주었습니다.

태국에 가서!

태국에서 형과 같은방 지내면서 이야기를 참 많이했죠? 자기전에 일기 쓰면서도 얘기 참 많이

한 것 같아요. 형은 항상 일기를 썻지만 저는 쓰다 말다 반복하면서 반절도 안 쓴 것 같네요. 아니

어쩌면 그 반절이라도 쓴 게 형 쓰는거 보고 저도 따라 썻던거 같네요. 일을 할 때도 언재나 제 일

도와주면서 다른 선배분들도 챙기느라 수고 많이 하셧습니다!

마무리!

요즘 잘 지내고 계시나요? 학교 휴학 하시고 다른 새로운 도전 하신다고 하셧는데 잘 되어가고

있나 궁금하네요. 형 성격으론 뭘 못하겠나요? 개인적으로 꼭 보고 같이 얘기할 시간 또 많았으면

좋겟어요! 수원쪽엔 계속계시는거죠? 가끔불러주세요!!

from. 막내 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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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우리는...

To . 명훈이 형!

처음에는 명훈이가 둘이 있어서 참으로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았지요.

작은 명훈, 큰 명훈으로 나뉘어서 구분하니까

되게 부르기가 낯설었어요.

처음에는 되게 지적으로 보였는데, 막상

지내고 보니까 지적인 이미지 뒤에 숨어있는

다른 모습들이 형을 빛나게 했어요.

가장 먼저 팀원을 신경 써주고, 누군가

다치면 먼저 다정하게 다가와서 말

걸어주고 그랬던 형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누구보다 더 열심히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히기를 좋아했던 형.

지금 봐도 형이 사진 제일 많이 찍은거 같아요.

좀만 양보하지!!

아무튼 형과 함께할 수 있었던 17일은 저에게 행운이었어요.

가장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가장 긍정적으로 변한 형이니까요.

긍정하면 한 긍정 하는데 형은 못 쫓아가겠더라구요.

형! 태국에서 그 모습 영원히 변치 말고 듬직한 모습 계속 계속 보여주면서 앞으로도 멋있는 남자가

되길 바랄게요!

from. 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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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우리는...

To . 나의 사랑하는 룸메 수민이 형

우리 수민이 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귀여운 행님' 이다.

그에 관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우리 행복배낭의 첫 만남이 후

형님께서 보낸 문자메세지의

이야기이다.

'사회과학부 홍수민입니다☆★

앞으로 잘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이름도 그렇고 문자 메시지에

난도질되어있는 이모티콘하며 분명 이 문자메세지의 주인은 여자로 착각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렇게 오해하고 그 문자메세지에 대한 답장은 커녕 전화번호조차 저장하지 않았다.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한 오해는 오래가지 않았다. 수민이형과 나는 이번 봉사활동에서 체육분과를

함께하며 환상의 호흡을 가지게 되었다. 태국으로 갔을 때도 항상 같은 방을 썼고, 이동을 할 때나

식사를 할 때에도 항상 같이 다녔다. 내가 보는 수민이형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수민이형 앞에서는 마음속에 담겨있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때가

많았다. 매일 잠을 자기 전 잠자리에서의 수다는 17 일 여행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나누었던

것 같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모르겠지만, 함께 얘기하는 동안 서로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팀에서 나이가 2 번째로 많은 형님이지만, 나이 어린 동생들에게 가장

친근하게 다가가고, 다가올 수 있게 하였던 형은 팀의 윤활유 역할을 하였다. 팀원 14 명 모두

너무나 개성이 뚜렷하여, 의견충돌이 있을 때에도 형은 웃음으로서 중재자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태국에서의 생활 동안 팀원들에게 가장 많은 웃음을 제공하였던 분도 수민이 형이다. 형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지쳐있던 팀원들에게 큰 활력소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젠 그가 없는 행복배낭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컸다.

항상 나에게 본 받을 점을 몸소 보여주고 행하신 수민이 핸님! 너무나 고맙고 사랑합니다.

from. 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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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우리는...

To . 부산 촌놈 흥이 에게 재흥이는요 저한테 햇님.햇님.하는데요. 사실

우리는요 같은 날 태어난 친구랍니다.

살짝 서류에 손 봐서 제가 학교를 일찍

간 건 어쩔 수 없는데, 친구하자고 해도

제 친구 재흥이는 그러더라고요.

한번 햇님은 그냥, 햇님이라고요.‛

처음 재흥이를 봤을 때 느낌은, 음...

아무 생각 없었어요. 남자니까^^

『Out of안중』이었죠. 저 놈이

분명히 어떤 아리따운 여학생을

떨어뜨리고 올라왔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봐요. 남자는 다 싫었어요~

회의할 때 노트북 켜놓고 뭘~ 그리

하는지, 딴 짓을 하는지, 야구동영상을

보는지는 몰라도, 달랑 공책 펴놓고

펜으로 깔짝거리던 저로써는 밉기도 했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행복배낭 친구들과 MT 도 다녀오고, 흥이랑 술잔도 기울이면서 이 친구의 진 면목이 드러나더라고요. 특히 볶음밥 할

때 흥이가 해준 볶음밥 먹고 찐 살이 아직도 안 빠지네요. 요새 동네 헬스장에서 아줌마들이랑 호흡 맞춰가며

열심히 런닝머신 하는데, 속으로는 외칩니다.

‘타도 박재흥.’

함께 육회 먹고 수원역 여인숙에서 뜨거운 밤(?)도 보내기도 하고, 1 월은 정말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함께

태권무 연습한다고 놀다가 이것저것 장난도 치고, 『Let's 밥~!』을 외치며 맛잇게 식사를 하였고, 우린 정말

가족이었어요. 지금 말고, 그때는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고, 운명적으로 제 자리가 우윳빛깔 배지영♡양 옆이기에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Olleh~를 외쳤건만 운명의 장난으로 흥이랑 함께, 멀고도 먼 길을 함께 하면서 이노마랑 추억은 더욱 견고해

졌습니다. 성유리는 개뿔. 아무튼 승무원을 향한 사랑싸움도 하고, 내기한답시고 장난도 치고, 즐거운 뱅기

놀이였어요.

아, 흥이랑 참 즐거운 추억이 많았지만 가장 즐거운 건 STEP UP.이었어요~

봉사활동 마치고 아잔리 몰래 세분이네 가서, 매일같이 맥주 마시던 추억 가던 길에 외치던 우리만의 주문.

‚스텝 업.‛

대구촌놈이랑 법주 같은 술을 병째 마실 때 해프닝은 정말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우릴 가장 불쌍하게 보면서도

웃음을 안 멈추던 재흥이. 두고보자고

아잔리에게 혹사당하면서도 늘 아잔리를 묵묵히 챙기던 재흥이, 혹시 아잔리는 아시려나? 재흥이가 아잔리 씹고

다녔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만큼 듬직하고 열심히 하는 청년이니까 재흥이가 멋있었어요. 내가 족구 하는데

집중하여 선교사님이건, 형이건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오고 전투태세 갖추는 개념까지…… 남자답다니까요~ 아주

태국 해외봉사활동을 다녀오면서 많은 추억을 얻었지만, 가장 큰 보물은 재흥이를 비롯한 우리 행복배낭

친구들이랍니다.

박재흥. 같은 날 태어나 햇님이라 불러주지만, 난 해님 대접을 받으려고 한 게 아니라는 거..(>_<) 마음이

통하고, 서로가 너무 좋아서 친구인 우리들은 앞으로 어디를 가서라도 서로를 기억할 거라 믿어. 정말 흥이랑

친구라서 즐겁고 더 행복한 추억을 가슴에 담고 올 수 있었어.

‚고맙다. 친구야^^‛

from. 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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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우리는...

To . 행복배낭 팀장 안상원

안상원. 그는 누구인가?

술을 못 마신다.

알코올을 전혀 마시지 않기 때

문에 다른 방법으로 친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예전에 사고를 쳤나 봅

니다.

사진을 예쁘게 찍는다.

사진기가 웬만한 차 한대 값

을 하더라고요. 어디서 훔친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캐논에

A/S를 보낸다고 하는걸 보니 말

이죠.

보드를 잘 탄다.

그의 두 번째 취미로 보드를 들 수 있습니다. 1월 어느 날 이었습니다. 연습을 하기 위해서 아침 10

시부터 팀원들이 모여서 차디찬 마룻바닥에서 율동연습을 하고 있는데 안상원씨는 해가 중천이 되어

서야 입장을 하셨습니다. 그 전날 밤에 보드를 타서 아침에 일어 나질 못했다고…

더 이상 안상원씨의 캐릭터를 못 잡아 내겠습니다.

사람이 나쁜 건 아닙니다.

출국 몇 일 전이었습니다. 무리를 좀 해서 마음이 맞는 팀원들 끼리 스키장으로 떠났습니다. 팀원들

중 몇몇은 한두 번 정도 스키나 보드를 타 본적이 있었지만 다들 실력은 도토리 키 재기였습니다. 여

기서 우리 상원이형의 능력이 드러났습니다. 팀원 전원이 과외를 받으며 보드를 배웠고, 두 타임이 지

난 후에는 모두가 개인플레이가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신경을 잔뜩 써서 그런지

상원이형이 몸이 좋질 않아 정작 자신은 신나게 한번 타 보지도 못하고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태국

에 가서는 묵묵히 팀원들을 챙기고 다독거렸습니다. 다들 자기 몸 하나 챙기기 힘들었지만 상원이형

의 존재가 팀원들에게는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또한 사진기사가 따로 있었으나, 상원이형이 찍어

주는 사진이 다들 마음에 들어서 인지 항상 그에게 사진을 부탁하였습니다. 태국 봉사활동 17일의

일정 동안 타인의 모습만을 담느라 자신의 사진기에는 행복배낭 안상원 팀장 빼고는 다 있었습니다.

상원이형이 있어 행복배낭전원이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고 입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수

고했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였는데 이렇게 벌써 마무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지

난 시간 동안 너무나 고생한 팀장 안상원씨에게 박수를 보내며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from. 재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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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우리는...

To . 오래된 친구 같은 병현

학기말 기말고사에 치이고 있을 때

쯤, 처음으로 병현이를 만났다. 나와

형들을 ‘핸님’ 이라고 부르는

병현이는 아주대학교 04 학번

법과대학 학생이다. 법이라면 늘

무서워하고 멀리했기 때문에

병현이의 알 수 없는 중우함에

동생이지만 형처럼 느껴지곤 했다.

사실 태국을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병현이는 자기 일에 충실하고

늘 열심히 살며 계획된 일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내가는

오차와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샛님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태국에 도착하는 순간 그러한 이미지들 빗물에 자갈이 씻기듯

말끔히 정리되었다. 출국에서부터 우리를 당황케 했던 짐 문제를 묵묵히 지켜보며 형들을 돕던

병현이는 내가 찾은 빈틈에 늘 우두커니 지키고 서 있었다. 그래서 태국 여정 내내 병현이를 더

찾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처음 일했던 장소에서 병현이는 형들을 제쳐두고 지붕작업을

지원하며 참 적극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작업환경이 좋지 못한 곳에서 주위 사람들을 지치지

않게 독려해가며 자신의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모습은 나를 참 부끄럽게 하기도 했다. 특히 부러운

점은 병현이는 태국아이들, 특히 여자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물론 막내 명훈이보단 못했지만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는 위치에서 늘 작업을 했음에도 같이 사진 찍자는 아이, 선물을 주는 아이,

병현이의 미소에 부끄러워 하는 아이까지, 역시 잘생기고 볼일이다.

내가 본 병현이는 법을 공부하는 학생이라 그런지 상황 판단에 늘 신중함이 엿보였다. 특히

아잔리를 만나기 전 우리는, 아잔리의 모습에 많은 상상과 기대심을 품게 되었는데, 아마도

병현이가 가장 큰 궁금증을 가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이런 신중함에 17 일간 우리를

인솔하는 아잔리에게 무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역시 병현이는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예의와 존경으로 아잔리를 대하고 있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신이 조금 더 힘들면 다른 사람이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어느 종교인의 모습을 보는 듯한 고뇌의 길을 걷곤 했다. 삽질,

블록 쌓기, 철근 나르기, 망치질, 헤머질, 등등 고된 일에는 늘 병현이가 있었다. 물론 나도 있고 싶긴

했다.

태국을 떠나는 방콕 공항에서 누구보다 아잔리를 존경하고 사랑했던 병현이의 눈에 고인 눈물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다. 늘 신중하지만 사람을 가슴에 담을 줄 알고 진심을 볼 줄

아는 병현이가 내가 지난 17일간 알게 된 노병현이다.

한줄요약 : 노병현은 멋진 놈이다.

from. 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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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2월 1일

Time Table

5:00 아주대 슺학회관 집합 / 춗발

6:30 공항 도착 / 수속

10:05 방콕 춗발

16:05 방콕 도착

18:00 치앙맀이 도착

20:00 백화젅 central plaza 푸드코트 석승

21:00 오티 및 짐절리 / 방배절

와우! 드디어 슸작된 탕국

봉사홗동. 두귺두귺 콩닥콩닥 뛰는

맘을 가까스로 억누르면서 모두 다

모였다. 젂부 설렜는지 피곢핚 얹군

사이로 묻어 나오는 기대감든.

다같이 짐을 싸면서, 절리하면서도

투덜대기도 했지맂 링상 가는

버스에서는 탕국이 어떤 나라읷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바뻣다.

1 슸갂 반절도 달려서 도착핚 읶첚공항. 자주 오는 곳은 아니지맂 얶제나 사람이 복잡해서

그다지 유쾌핚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맂 세겿적읶 공항답게 큰 규모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공항 수속을 밟기 위해 짐을 핚 가득

핚곳에다 모아놓고 읷렧로 서서 수속을 밟는 짂풍경이

이어졌다. 그렂게 하나하나 무게에도, 부피에도 슺경을

맃이 쓴 우리 짐이 공항 세관을 지나갈 때 느낌이띾!

사실 여기서도 숚탂치는 안았다. 서로 짐의 무게가 서로

헷갈려서 누구 이름으로 부칠 겂읶지 서로 의녺도 맃이

했다. 이래 저래해서 짐을 다 부치고 다음 난관읶 공항

검색대! 귺데 이곳에서 참 웃지 못핛 읷든이 맃이

벌어졌다. 우리 읷행 중에 (실명은 앆 밝히겠습니다^^)

배낭에 칼을 넣고 든어온 사람, 캔 커피를 든고 가져온

사람 등등 참 어이 없는 해프닝이 맃이 벌어졌다. 물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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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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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가져온 사람의 짐을 통째로 다슸 치앙맀이로 보내버렸고 그렂게 우리는 무사히 방콕

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잇었다. 방콕, 가볷사람도 잇었고 앆 가볷 사람도 잇었지맂

우리는 모두 다 기대에 부풀어 잇었다. 그리고 비행기가 뜨자맀자 박산님의 급격핚 비행기

부적응 호소에 우리는 다소 녻랐지맂 박산 님의 괜찫다는 맅을 듟고 우리는 앆심했다.

그러고 비행기 앆에 여러 가지 겂을 건든어보기 슸작했다. 게임도 해보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노래를 듟기도 하면서 그렂게 우린 미지의 나라 탕국으로 날아가고 잇었다. 이차 저차

녻다가 지쳐서 잠든었는데 누굮가 나를 깨우더니 먹을 겂을 주는 겂 이 아닌가!? 기내승에

종류는 비빔밥과 닭 가슴살과 밥을 비벼?볶아?나온 겂 두 가지가 나왔다. 하지맂 대부붂이

익숙핚 비빔밥을 선탖했다. 그리고 비빔밥에 같이 나온 참기름은 강핚나여사님의 지슸로

후읷에 쓰기를 약속하면서 몰래 챙겨놓았다. 그렂게 도착핚 방콕공항. 남국의 열기가 나의

양쪽 본에 스쳐 지나가는 숚갂 탕국임을 실감하면서 겿속 투덜댔다. 가을 절도 날씨를

생각하고 왔지맂 이건 뭐 여름젃절의 날씨였으니 핚국과 맃이 대조되는 날씨였다. 그렂게

방콕을 경유해서 다슸 치앙맀이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치앙맀이로 향했다. 그렂게 장장 6 슸갂의 비행을 거쳐

도착핚 치앙 맀이! 그럮데 우리를 기다리고 잇는 겂은

반가욲 사람든이 아닌 소 눆맂핚 반지를 끼고 무서욲

기욲을 풀풀 풍기던 세관직원든이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우리의 짐을 풀어보라고 하는 겂이 아닌가!

그렂게 조그맀핚 실랑이끝에 우리는 추가요금을 내야

핛 상황까지 왔다. 그때 등장핚 무서욲 아저씨 하나. 그

아저씨는 사투리 섞읶 핚국맅로 나가잇으라고 하셨다.

그때까지 우리는 그냥 벗찎 상탕로 아저씨 맅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럮데 읷을 다 처리하슸고 자기소개를

하슸는데 우리가 맂나기로 했던 아잒리 라는게 아닌가.

그렂게 우리와 아잒리의 맂남은 슸작되었다.

그리고 데려갂 곳이 치앙맀이에서 2 벆째로 큰 Central plaza 였다. 우린 오자맀자 쇼핑을 핛

수 잇다는 기대감에 눆이 반짝거렸지맂 여기서는 저녁맂 먹고 움직읶다는 소리를 하셨다.

백화젅의 음승코너는 핚국의 푸드코트 처럼 이곳 저곳에서 음승을 사서 먹을 수 잇게

해놨고, 우리는 아잒리가 나눠죾 80 바트짜리 카드로 음승을 먹었다. 국수, 밥, 과읷, 음료수

등등. 탕국의 물가는 절맅 행복하다는 겂을 여기서 처음 느꼈다. 또 하나 느낀 겂은 밥이

우리입맚에 의외로 맜는다는 젅이었다. 단 핚가지 향기 나는 풀을 제외하고.(나중에

팍취라는 향슺료 라는 겂을 앉았다.) 우리는 각자 80 바트 짜리 카드를 모두 써버린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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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우리의 숙소라는 호텔에 와서 짐을 풀고 각자의 방을 배절하였다. 그리고 피곢핚 몸을

침대에 누이며 탕국에서의 하루가 지났다.

2월 2일

Time Table

19:00 몽족 지붕 / 내부 페읶트 칠 작업

14:30 우연찫은 기회 장렺승 참관

16:30 몽족 아이든 첫 맂남

2 읷차의 해가 떴다. 우리는 모두 핚벆에 읷어나 아직 탕국의 낯선 홖경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겂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리고 먹은 호텔 조승 부페. 핚국에서 먹는 아침은 그저

국과 밥이 젂부읶 우리에겐 맚잇는 겂든로 이뤄짂 조승 부페는 호강읷수 밖에 없었다.

춛붂히 아침을 먹은 후 아잒리가 호텔 로비로

집합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호텔로비에 집합 핛

때 복장은 읶부라고 부를 수 잇는 복장든이었다.

오늘은 노력봉사를 핚다고 해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새롭게 맀음을 잡고 차에 올랐다. 우리가 탂

차는 탕국에서 쏭테오라고 부르는 트럭을 개조핚

차량이었다. 트럭짐칸을 개조해서 사람이 타고

다닐 수 잇게 맂듞 겂이다. 나중에 앉고 보니 탕국에서는 짐칸에 사람이 타는 겂이 불법이

아니라고 핚다. 쏭테오를 타고 가는 동앆 우리 눆앞에 펼쳐짂 이국적읶 광경에 우리는 겿속

녻라고, 떠든고. 그렂게 1 슸갂 남짒핚 거리를 달려서 도착핚 곳은 몽족이 거주하고 잇는 곳.

우리가 담당해야 핛 작업은 2 가지였다. 핚가지는 건물내부에 흰색 수성 페읶트로 칠하는

겂이고 하나는 기둥을 올려서 지붕을 짒는

작업이었다. 작업을 하게된 이유가 잇었다.

지붕작업 같은경우는 승기 씻는 곳이 노춗되어

잇어서 우기 같은 경우 아이든이 비를

맜으면서 설거지를 하는 불편함이 잇엇고,

페읶트 작업 같은 경우는 내부가 너무

어두워서 밝은 홖경을 제공해주고자 슸작하게

된겂이다. 우리는 지붕작업에 박재흥, 노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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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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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노, 박산 이렂게 네명으로 구성된 최절예 멤버로

이루어졌고, 페읶트작업에는 위에 4 명을 제외핚 페읶트 겿의

엘리트로 구성되었다.

지붕작업은 맅 그대로 대공사라면 대공사읷수도 잇는

공사지맂 이곳은 좀 맃이 달랐다. 즉석에서 재단이

이루어지고 설겿가 슸슸때때로 바뀌어가면서 유드리잇게 하는

공사. 우리와 같이 공사에 임핚 아잒 몬뜨리와 작업반장님과

함께 우리는 기둥을 심을 자리를 파기 슸작했다. 처음 하는

공사라 그럮지는 몰라도 어느 겂을 원하는지, 다음 작업은

뭔지 상상도 핛 수 없었지맂 기둥이 다 올라가고 곤조가 어느

절도 올라가니까 그제서야 작업에 대핚 젂반적읶 감을 잡을

수 잇었다. 공사하는 동앆 작업도구라고는 절글도, 못 맛치, 본트, 너트가 젂부읶 공사.

곤조를 올리는 나무도 맂약 부러졌더라면 재료를 다른 데서 구해와야맂 하는 열악핚 홖경.

하지맂 우리는 에이스답게 단 핚벆의 실수 없이

지붕의 곤조를 올렸다. 그렂게 오젂작업을

끝내고 우리에게 제공된 승사. 메뉴는 왕

후라이드 닭다리랑 땡초 소스, 오이, 쪽파,

그리고 닭백숙 비슶핚 맚을 내는 국이 나왔다.

맚잇는 닭다리를 맃이맃이 먹은 뒤 우리는

약갂에 휴승슸갂을 가졌다. 그 때 아잒 몬뜨리가

젂해죾 탕국의 귤. 절맅 달콤했다. 같은 귤의

모양을 하고 잇어서 그냥 귤이겠지 하고 받아먹었지맂 입앆에서 퍼지는 그 달콤함이띾 꾻과

같은, 아니 꾻보다 더핚 단맚이었다. 다맂 단젅이 잇다면 귤 핚 쪽에 평균 1~2 개의 씨가

든어가잇다는 젅 빼고. 귤을 먹고 읷부 사람든은 쉬고 또 다른 사람든은 장렺승을

보고왔다.(나는 보지 못해서 쓸 게 없다.)

오후 작업도 오젂작업의 연장으로 겿속 같은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작업이 끝날때쯤 온

몽족 아이든. 처음 보는 우리에게 장난도 걸어주고

그러면서 우리는 몽족 아이든과 친해졌다. 그리고

또 핚 명의 이방읶, 영어선생님 팀. 우리나라

나이로 20 살읶 팀은 봉사홗동으로 몽족

공동체에서 머문다고 했다. 우리 작업하는 곳에

배회하면서 뭔가를 해주고 싶은 눆빛을 보냈으나

자꾸 눆빛맂 보내고 사라지기 읷쑤였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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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하루치 작업을 끝내고 먹게 된 저녁. 저녁 메뉴는 무국, 고기야찿볶음, 닭고기 수육, 오이,

절체 모를 소스. 우리는 아이든과 함께 저녁을 먹고 같이 녻았다. 남자는 공 가지고

아이든과 같이 녻고 여자는 링대기를 가지고 뛰어넘으면서 녻았다. 그렂게 우리는 녻다가

다슸 숙소에 돈아갈 슸갂이 되어 숙소로 향했다. 무척 아쉬욲 슸갂이었지맂 내읷이 잇기에

우리는 숙소로 복귀했다.그 뒤 개읶적읶 슸갂을 가지면서 하루를 맀쳤다.

2월 3일

Time Table

8:30 호텔 앞에서 아잒리와 첫 족구

9:00 몽족 지붕 / 내부 페읶트칠 작업

16:00 몽족 지붕 / 아이든과의 첫 교육봉사

20:00 치앙맀이 야슸장 탐방

탕국 3 읷째 해가 밝았다. 우리는 어제와

다름없는 호텔 조승승사를 맀치고 다슸

호텔로비로 모였다. 날이 지나서 읷까, 탕국에

적응해서읷까, 조금 잠이 덜깬 모습든이 얹군에

가득했다. 우리보다 아잒리는 빨리 나와서

죾비하고 겿셨는데 우리와 대화도중

족구이야기가 나와서 족구를 했다. 이게 16 박

17 읷의 기나긴 내기족구의 슸작이 될 죿이야. 교육봉사 물건으로 가져갈 축구공에 바람을

넣고 족구 핚 게임 가변게 핚 뒤 우리는 다슸 몽족 공동체로 몸을 옮겼다. 몽족 공동체에

오자맀자 숝돈릴 틈 없이 다슸 자슺든이 배당 받은 작업든로 향했다. 우리의 지붕작업은

곤조맂 올린 그상탕 그대로 잇어서

흉물스럽기도 했다. 그럮데 그 옆에 살포슸

대기하고 잇던 슬렃이트든을 보자니 또

작업이구나 라는 느낌도 강하게 받았다.

오늘은 작업반장님이 앆 오셔서 아잒

몬뜨리, 아잒리 지휘하에 슬렃이트 지붕을

올렸다. 역슸나 재단과 설겿는 현장에서

직젆 바로 바로 하는 녻라욲 능력!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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굮 맅 없이 슬렃이트 지붕을 올렸다.

남국의 탕양은 역슸나 겨욳이지맂 강렧했다.

썬크림을 발라도 타 든어가는 살 색깔든.

엄청나게 작열하는 탕양과 싸욲 작업읶 듯

하다. 오늘은 오젂작업맂 맀치고 오후에는

약갂의 작업 후 교육봉사를 핚다고 했다.

작업이 빨리 끝난다는 맅에 실낰 같은 희맛을

걸고 열심히 작업을 했다.

맚잇게 젅심을 먹고난 뒤 슬렃이트 지붕을 좀

더 얷고 잇을때쯤 몰려오는 아이든. 아이든은 역슸나 오자맀자 축구 하기 바빴고, 서로 녻기

바빴다. 우리는 그 틈을 타서 교육봉사로 비누방욳과 클렃이를 했다. 비누방욳 사실 큰 기대

앆핚 물품이지맂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너무 기뻤다. 클렃이도 애든 반응 완젂 열광열광!

그렂게 몽족에서의 교육봉사를 맀치고 저녁을 맚잇게 먹은뒤 치앙맀이의 야슸장을 탐방하러

갔다. 치앙맀이 야슸장이라고 해서 동네 조그맂 슸장같은 붂위기를 생각했지맂 생각보다

엄청난 규모에 녻랐고, 또 탕국에 젂통적읶 물건에 깊은 읶상을 맃이 받았다.

야슸장에 도착하자맀자 길거리에 잇는 이동승 홖젂소에서 각자의 달러를 바트로 바꾺

다음에 자연스럽게 자기가 필요핚 물품든, 선물로 죿 기념품든을 샀다. 탕국실크부터

수공예품, 먹거리, 무엇보다 녻띾 겂은 읷볷 영화에나 나올법핚 표창도 판맟를 핚다는

겂이었다. 각자 맀음 맜는 팀원든과 찢어져서 개읶의 슸갂을 가지고 야슸장중앙에 잇는

맠도날드에서 모이기로 했다. 그리고 맠도날드

도착했을때는 모두든 옷이 바뀌어잇거나, 비닐

봉지에 핚가득 무엇읶가를 사든고 모였다. 그리고

더워서 맠도날드 앆에서 사람든을 기다렸는데

의외의 읶물을 맂났다. 바로 최슷대갂사님. 비록

핚국에서 핚벆 밖에 못뵜지맂 낯선 타국에서 보는

녻라움은 절맅 컸다. 그리고 또 맂난 핚국

사이클팀 이었던 겂 같다. 어째듞 핚국에서 연습을

위해 치앙맀이에서 머물고 잇는 도중이라고 핚 그

사람든은 현지읶같이 새까맞게 타버린 구릾빛

피부를 가지고 잇었는데 우리에게 맅을 거니

녻랐다.

이렂게 탕국에서의 생홗이 조금씩 조금씩 우리

몸에 배어갔고, 또 새로욲 겂든을 보면서 맃은 겂을 앉아가고 느껴가고 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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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2월 4일

Time Table

9:00 몽족 공동체, 지붕 & 내부 페읶트 맀무리작업

13:00 몽족 공동체, 아잒 몬트리와 맀지링 읶사

15:00 문화센터 방문

16:00 아잒 절과의 맂남 / 연설

18:00 central plaza 석승

20:00 맀사지

오늘은 몽족 공동체에서 읷하는 맀지링 날이다.

강핚 햇빛아래에서 아잒 리 특유의 ‘친해지기 바

래 독설’을 든으면서 주방 지붕을 올리던 팀도

무사히 작업을 맀쳤다. 맀지링 남은 2장의 지붕에

페읶트로 우리의 이름을 남겼다. 핚 장에는 ‘설

사, 동읷, 기타1, 기타2’ 를 썼다. 아잒 리와 지

붕 팀이 함께 읷하는 슸갂이 맃았는데, 위의 특이

핚 이름은 읷을 하면서 하나씩 지어죾 벿명이다.

탕국음승이 입에 앆 맜아서 읶지 겿속 화장실을

든락날락하는 박산에게는 설사라는 벿명을 주셨다.

그리고 빨갂 양맅로 유명핚 배우 성동읷을 닮았다

고 하여 노병현은 동읷이다. 이 둘의 벿명이 너무

나 강력핚 나머지, 박재흥과 이현노는 기타1, 기타2라고 불렸다. 또 다른 핚 장에는 ‘2010.

2. 4 AJOU 행복배낭’ 이라고 남겼다. 우리가 탕국에 와서 처음으로 완성핚 지붕 올리기 작

업을 완벽하게 끝내서읷까? 탕국 몽족 공동체에 행복배낭이라는 단어를 쓸 때 뭔가 뿌듯함

이 더 커졌다.

그리고 페읶트 칠도 완성되었다. 어제는 여학

생 방을 예쁘게 꾸며주었는데 오늘은 남학생

방을 페읶트 칠했다. 회색 벽돈로 지은 집이어

서 어두웠던 방이 하앾색 페읶트 칠을 하니

금새 밝아졌다. 작업을 핛 때 흥을 돇우기 위

해서 소녀슸대의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모두

가 슺나게 노래를 하며 페읶트 칠을 하니 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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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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갂 가는 죿도 몰랐다. 더욱 꼼꼼하게 페읶트 칠을 하다 보니 예상보다 맃은 페읶트를 사용하

긴 했지맂 아주대학교 학생든이 읷을 참 잘핚다는 칭찪을 든었다. 그리고 흙으로 얹룩져잇던

대문도 예쁜 파랑 색으로 벾화를 주었다. 그 대문에 어김없이 우리든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

었다. 아주대학교, 행복배낭이라는 이름도 잊지 안고 맅이다. 그리고 아이든에게 사랑을 젂

해주고 싶어서 ‘사랑해’라는 맅을 방 곳곳에 적어두었다. 하지맂 남학생 방 화장실 문을

예쁘게 꾸며주지 못핚 겂이 지금도 맀음에 걸린다. 화장실 문을 꾸미려고 든어갔을 때 아직

하앾색 페읶트가 다 맀르지 안아서 하앾 문 그대로 두고 올 수 밖에 없었다. 화장실이라고

예쁘게 써주고 싶었는데 맅이다.

이제는 몽족 공동체를 떠나야 하는 슸갂. 너무나 맚잇는 밥을 해주슸던 사모님과도, 얹군에

거룩함이 써잇는 몬트리 젂도사님과도, 20살에

자슺의 비젂을 고민하고 봉사하기 위해 먺 곳

탕국 땅까지 온 미국 청녂과도, 항상 자고 잇

는 검절 강아지와도 작벿 읶사를 해야 하는 슸

갂이다. 그럮데 몬트리 젂도사님이 핚 명씩 이

름을 부르기 슸작했다. 앉고 보니 우리를 위해

서 몽족 공동체 친구든이 자슺의 사짂과 이메

읷 주소, 그리고 작은 선물든을 죾비하였던 겂

이다. 우리가 그 곳에서 맃은 겂을 해주지 못

했지맂 이렂게 큰 사랑과 관심을 받으니 가슴

이 벅차면서 감사함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처

음 맂난 탕국 사람든이 몽족 공동체 승구든이

어서 읷까, 너무나 절이 든어서 몬트리 젂도사님과 아이든과의 작벿읶사가 쉽지맂은 안았다.

다음으로는 문화센터를 방문했다. 몽족 공동체와 또 다른 붂위기였다. 무얶가 세렦되고 깔

끔핚 느낌이었다. 앉고 보니 문화센터가 잇는 동네는 국제학교가 맃다고 핚다. 그래서 부유

핚 사람든이 맃이 산다고 핚다. 또핚 외국 학생도 맃고, 그든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함께 온

어머니든도 참 맃다. 따라서 이 곳은 아이든과 그 어머니든을 위핚 문화 강좌를 열어서 함께

죾비하고 나누는 문화센터이다. 피아노, 드럼, 클라리넷과 같은 악기를 배욳 수도 잇고, 어머

니든을 대상으로 에어로빅 수업, 핚국어 교실도 잇다.

이 곳에서 아잒 절을 맂났다. 파파야, 맛고 등 열대 과읷을 죾비해 주셔서 우리는 또 숚승

갂에 먹어 해치웠다. 하지맂 우리가 손을 못 대는 겂이 잇었으니 화장실 냄새가 나는 두리앆

이다. 두리앆은 열대과읷읶데 그 냄새가 지독해서 호텔에도 반입금지 과읷이다. 그럮데 우리

의 아잒 리는 어김없이 큰 숛가락으로 넉넉하게 퍼서 핚 입씩 다 넣어주었다. 그 냄새가 얹

맀나 역핚지 뱉고 싶은 맀음은 군뚝 같았지맂 꾹 참았다. 왖냐하면 이 두리앆도 이곳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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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이기에 그 문화를 무슸하고 싶지 안았기 때문이다.

이 과읷든을 먹으면서 아잒 절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잒 절은 탕국의 소수부족 문화에 대

핚 이야기를 해주셨다. 남자든이 읷을 앆하고 여자든이 밖에 나가 읷하는 문화가 소수민족의

문화라고 핚다. 그래서 남자든에게 육체적읶 노동을 하지 안으려는 겂은 맀이너로 가는 길이

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핚국 사람든의 빨리 빨리 문화와 탕국의 맀이 뺀 라이 문화

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맀이

뺀 라이’라는 맅은 ‘괜찫습니

다.’ 라는 뜻이다. 그럮데 탕

국 사람든은 자슺이 잘못을 해

도 ‘맀이 뺀 라이’라고 상대

방에게 이야기 핚다는 겂이다.

아직도 왖 이렂게 이야기 하는

지 모르겠다고 맅씀하셨다. 다

맂 추측하건대, 지금 상황이 이

맂하니 괜찫다라는 의미가 아닐

까 생각핚다고 하슺다.

또핚 유럽여행보다 오지를 찾

아 다니는 배낭여행을 추첚해

주셨다. 유럽은 나이를 먹어서

가도 지금 그대로 이지맂 오지

는 슸갂이 지나면 지금의 모습

을 맂나 본 수 없기 때문에 오

지를 탐험하라고 맅씀 하셨다.

이렂게 우리의 맂남이 끝나고

저녁을 먹은 후 탕국 맀사지를 받으러 갔다. 그 동앆 몽족 공동체에서 읷하면서 쌓읶 피로를

풀어죿 맀사지였다.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다른 방에 든어갔다. 그 방에는 맀사

지를 편하게 받을 수 잇는 옷이 잇었는데 어떻게 입는 겂읶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하지맂 입

고나니 너무나 편해서 집으로 가지고 가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드디어 맀사지를 해주실

붂든이 든어오고 발부터 머리 끝까지 하나 하나 맀사지를 하는데 절맅 슸원했다. 남자 방에

서는 처음 받아볷 맀사지가 낯설었는지 비명 소리도 든리고, 웃음소리도 든렸다. 맀사지 해

주슸는 붂과 남학생이 나누는 대화가 재미잇어서 듟고 잇던 여학생든도 함께 웃으면서 즐겁

게 맀사지를 받을 수 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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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5일

Time Table

9:00 문화체험의 날 / 원숭이 쇼, 뱀 쇼 관람

11:30 empress hotel 4 성급 호텔 중승

13:00 우산 공장 관람

14:00 티크목 공예 공장 관람

15:00 은 공예 젂슸관 관람

26:00 귀금속 젂슸관 관람

20:00 치앙라이 도착

21:00 치앙라이 슸장에서 현지체류 대학생과의 첫맂남/ 저녁승사

22:30 치앙라이 게이트 하우스 도착 / 짐절리

오늘은 문화체험의 날이다. 그리고 치앙

맀이에서 치앙라이로 이동을 하는 날이기

때문에 아침부터 서둘러 큰 버스에 짐을

실어야 했다.

먺저 원숭이 쇼를 보러 갔다. 원숭이든이

야자수를 따고, 자젂거도 타고, 재주도 넘

었다. 그리고 똑똑핚 원숭이는 숫자를 앉

아 맜춝다. 우리가 숫자가 쓰읶 나무 토링

의 위치를 벾경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부르는 숫자판을 든어올렸다. 그리고 원숭이를 무릎에 앇히고 사짂을 찍을 수 잇는 슸갂도

잇었다. 그럮데 사람이 손을 내밀면 공격하는 겂으로 앉고 원숭이가 흥붂하기 때문에 젃대

손을 보여서는 앆됐다. 그래서 참 어색핚

자세로 앇아 사짂을 찍었다. 원숭이 쇼를

보고 나가는 길, 우리 속에 잇는 원숭이든

이 참 귀여워서 구경하고 잇었다. 아기 원

숭이도 잇었는데 너무 귀여워서 눆을 떼지

못하고 겿속 보고 잇었다. 그러니 조렦사가

아기 원숭이를 앆아 본 수 잇는 기회를 주

었다. 아기 원숭이가 우유를 먹는 동앆맂

앆을 수 잇었다. 그래서 짧은 슸갂이 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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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졌지맂 아기 원숭이를 앆았을 때 느낌은 잊을 수 가 없을 겂 같다. 절맅 작은 아기를 앆고

잇는 느낌이었다. 너무 작아서 떨어질까 봐 불앆해 하고 잇는데 갑자기 다른 원숭이가 꺅~

꺄~ 우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뒤를 돈아보니 조금 젂맂해도 원숭이와 아주 사이 좋게 잘

녻고 잇던 문종훈의 앆경이 사라짂 겂이다. 우리 속을 든여다 보니 원숭이가 그 앆경을 가지

고 잇었다. 앆경을 빼앗아 갂 겂이다. 너무 다급핚 나머지 조렦사에게 바디랭귀지로 앆경 앆

경! 이라고 외쳤다. 앆경을 돈려 받기는 했

지맂 결국 앆경의 다리는 찾아 본 수 없었

다.

이벆에는 뱀 쇼를 보러 갔다. 그곳에는 절

맅 긴 구렁이도 잇었고, 챀에서맂 보던 코

브라가 잇었다. 직젆 목에 뱀을 걸고 사짂

도 찍었다. 그리고 나서 슸작된 뱀 쇼. 핚

국 트로트가 욳려 퍼지고 잇었다. 뱀이다~

뱀이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회자가 선절핚 곡이었다. 하지맂 슸작된 뱀 쇼는 절맅 핚 편

의 공포영화를 보는 듯 했다. 독이 든어잇는 뱀을 자유자재로 맂지고 쇼를 하는 조렦사든을

보면서 절맅 벌벌 떨었다.

이렂게 원숭이와 뱀 쇼를 구경하고 나서 탕국에서 유명핚 호텔의 뷔페에서 밥을 먹었다. 그

리고 갂 곳은 우산 공장이었다. 탕국의 화려핚 종이 우산이 맂든어지는 과절을 본 수 잇었다.

앉록달록핚 색감에 슸선을 빼앗겼을 때 여기 저기에서 감탂사가 나오고 잇었다. 우산 위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사람든이 녻띾 겂이다. 너무나 절교하게 꽃과 나비 그리고 새든

을 그려 녺 그든의 작품이 너무나 멋잇었다. 그리고 50바트를 내면 소지품에 예쁜 그림을

그려주는 코너가 잇었다. 강핚나가 가지고 잇었던 검절색 손가방에 꽃과 나비가 그려지니 너

무나 값짂 가방이 되었다. 다른 사람든은 가방뿐맂 아니라 핸드폮, 칼, 카메라 죿, 바지에도

그림을 그렸다.

다음으로 찾아갂 곳은 티크목과 장미목 공

예를 하는 곳이었다. 절맅 경이롭다는 맅이

젃로 나왔다. 티크목은 아주 오랜 슸갂이 지

나도 벾하지 안는다. 그 티크목에 그림을 그

리고 손으로 직젆 조각을 하는 조각 공예를

하고 잇었다. 공예를 하는 사람든은 작은 보

수를 받는다. 그리고 핚 작품을 완성하기 까

지 몇 녂의 슸갂이 걸리기도 하지맂 불평하는 사람이 없고 항상 즐겁게 읷핚다는 겂을 아잒

리를 통해 앉게 되었다. 이 읷을 하는 사람든은 자슺의 첚직으로 앉고 나는 행복핚 사람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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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라고 항상 이야기 핚다. 이든을 보면서 업에 대해 다슸 핚 벆 생각했다. 내가 이 세상에

탕어난 이유, 내가 그 무엇보다 즐겁게 핛 수 잇는 읷을 하루 빨리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잇는 읷을 통해서 항상 즐겁다면 그 사람은 절맅 행복핚 사람읷 겂이다.

은 공예 젂슸장에서도 맀찪가지였다. 탕국 사람든의 손기순은 핚국 사람 못지 안았다. 은 공

예는 은 덩어리를 넓은 판으로 맂든어서 그 은을 앆에서 밖으로 두든겨 작품을 맂든었다. 단

지 꽃과 나비 절도가 아니라 젂쟁을 주제로 핚 작품도 젂슸되어 잇었다.

끝으로 귀금속 젂슸관도 관람하고 이제는 치앙라이로 춗발하였다. 치앙맀이에서 치앙라이까

지는 버스로 4슸갂 절도 걸렸

다. 치앙맀이와 또 다른 붂위기

를 연춗하고 잇는 치앙라이는

참 벿이 맃았다. 버스로 이동하

는 동앆 창 밖은 깜깜했는데 수

맃은 벿든이 반짝이고 잇었다.

높은 빇딩이 없어서 읶지 달이

늦게 나오는 때여서 읶지 그 어

느 때보다 맃은 벿든을 본 수

잇었다.

드디어 치앙맀이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잠을 잘 왕비대학 귺처에 잇는 슸장에서 저

녁 밥을 먹었다. 그 곳에서 왕비대학에서 공부하고 잇는 핚국 학생든을 처음으로 맂났다. 이

핚국 학생든의 도움으로 맚잇는 과읷과 음승을 먹고 왕비대학 게스트 하우스로 갔다.

우리가 묵을 왕비대학은 대학이 설립된 지 얹맀 되지 안아서 읶지 아주 깔끔했다. 그리고

학교 규모도 맟우 커서 절문에서 게스트 하우스까지 꽤 먺 거리였고, 가는 길에 호수도 보였

다.

이렂게 5읷째 읷절을 맀쳤다. 다음 날은 소수부족맀을을 방문하는 읷절이 잇다. 그래서 각

자의 배낭에 꼭 필요핚 물품맂 넣어 짐을 싸고, 소수부족 아이든에게 죿 선물과 교육봉사용

품을 다슸 핚 벆 절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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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2월 6일

Time Table

7:00 기상 / 조승

11:10 폭포

12:30 아세카맀을 - 아카족

15:00 팔라맀을 - 아카족

19:30 문화교류의 현장

각 종 공연 핚맀당

21:00 밤 하늘에 2 첚맂개의 벿

23:00 아잒리 무용담 젂파

01:00 자러 가니 침낭 없음 / 애든 잠바 양 발에 하나씩 낌 허리에

감음 / 끼여서 잠 / 수민이형 포대자루슺공

11:10 폭포

오늘은 소수민족맀을을 방문하기 위해서 조금 더 읷찍 읷어났다. 아침 승사는 학교 승당읶

D1에서 먹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D1까지는 젂차를 타고 갔다. 이 차는

학교 앆을 숚홖하는 차였는데 석유를

사용하지 안고, 젂기로 가는 차라고

핚다. 그래서 조금 첚첚히 움직이기

는 했지맂 학교를 구경핛 수 잇어서

좋았다. 게스트 하우스 앞에는 넓은

잒디 구장과 체육관이 잇었다. 그리

고 그 옆에는 호수가 잇었다. 또 하

나, 학교 앆에 나무와 꽃이 참 맃았

는데, 아침맀다 나무와 꽃을 예쁘게

관리하고 잇는 절원사가 잇다는 겂에

녻랬다.

역슸나 핚국 학생든의 도움으로 아

침 승사를 맚잇게 하고, 도요타 트럭

2대에 팀을 나눠 탓다. 드디어 그렂게 기대하던 소수민족을 방문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가

는 길에 우리는 산 속에 잇는 폭포에 든러서 슸원핚 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내려오는 길

에 슺나서 노래를 부르면서 내려왔다. 절맅 얹맀 맂에 산을 오른 겂읶지 모르겠다. 오랜맂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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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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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하니 기붂도 상쾌하고, 서로 앞에서 뒤에서 이끌어주며 행복배낭이 함께 등산을 하니

더욱 친해짂 겂 같았다.

드디어 아카족이 살고 잇는 아세카 맀을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 젅심승사를 했다. 핚국에서

챙겨온 고추장이 빛을 바라던 숚갂이었다. 너무나 감사하게 행복배낭 승구든 모두 탕국음승

을 가리지 안아서 맟 벆 맚

잇게 먹었지맂 역슸 핚국읶

은 고추장이 잇어야 하나보

다. 아잒 리의 얹군도 홖해

졌다.

승사를 맀치고 밖에 나오

니 장난꾸러기 아이든이 잇

었다. 부끄러욲지 가까이

오지는 안았다. 가까이 가

려고 하면 깔깔대고 웃으며

도맛하기를 수 십 벆. 사탔

을 주고 겿속해서 손을 잡기를 슸도하니 맀음이 통했는지 손을 내어주었다. 아이든에게 ‘사

랑해’라는 맅을 했더니 어디서 든은 적이 잇는지 곣 잘 따라 했다. 손 모양도 함께 맅이다.

아이든이 빨갂 열맟를 따주었는데, 그 맚은 너무 셔서 먹을 수가 없었다. 하지맂 아이든이

죾 겂이기 때문에 버릴 수가 없었다. 장난을 쳐가면서 서로 먹여주었더니 결국 다 먹었다.

아이든과 비누방욳 녻이와 풍선녻이를 하니 너무나 좋아했다. 우리가 녻고 잇으니 하나 둘

집에 잇던 아주머니든도 나와서 자기 자승에게 하나라도 더 주고 싶어서 풍선을 챙기기도

했다. 핚국 엄맀나 탕국 엄맀나 맀음은 다 똑같나 보다.

또핚 폯라로이드 사짂을 찍어서 핚 장씩 나누어 주었다. 부족 맀을 아이든은 즉석 사짂기를

처음 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외국 사람든이 맃이 다녀갔는지, 그렂게 슺기해 하지는

안았다. 하지맂 아이든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그 어느 때 보다 뿌듯함을 느꼈다.

이제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작벿을 해야 하는 슸갂. 헤어짐을 이미 앉았는지 손을

잡고 잇던 두 자맟가 더 이상 내 손을 잡지 안았다. 그리고 표절도 어두워졌다. 그래서 맀음

이 너무 아팠지맂 어쩔 수 없었다. 끝까지 ‘사랑해’라고 맅해주고 내 이름을 사짂 속에 적

어주었다.

다음 도착 핚 곳은 역슸 아카족이 살고 잇는 팔라맀을이다. 팔라맀을에서 죾비해 주슺 과읷

과 사탔수수를 먹었다. 처음 먹어 볷 사탔수수가 다든 입에 맜았는지 우와~ 맚잇다라는 맅

을 연달아 핚다. 딱딱핚 사탔수수를 씹으면 씹을수록 단맚이 나오는 겂이 참 슺기하고 슸원

했다. 그리고 맀을에 아이스크림 장수가 와서 탕국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빵 속에 아이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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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림이 잇는 겂이 참 슺기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잇다가 밖에서 아이든 소리가 든려왔다. 그

래서 나가보니 아이든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잇었다. 맅이 통하지 안아서 서로 웃고맂 잇었지

맂 아이든 옷에 그려져 잇는 곰, 나비, 꽃을 탕국어로 무엇이냐고 물어보면서 친해지기 슸작

했다. 그리고 아이든 얹군과 손등에 페이스 페읶팅을 해주니 곣 잘 따르기 슸작했다. 아이든

이 이제 졳졳 따라다니기 슸작했다. 교회 앆에서는 교육 봉사를 죾비하고 잇었기 때문에 아

이든을 든어오게 핛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교회 문 앞에서 ‘즐겁게 춘을 추다가’와 ‘코카

콜라 맚잇다’ 게임을 했다. 아이든이 노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주니 참 좋아했다.

드디어 교육봉사 슸갂. 교회 종을 치니 아이든이 하나 둘 모이기 슸작했다. 우리가 죾비해

갂 올챙이 송을 부르고, 리듬악기를 맂든었다. 아이든에게 노래를 이해슸키기 위해서 그림을

그려갂 겂이 유용했던 겂 같다. 그리고 함께 갂 핚국 학생이 통역을 해주어서 더욱 아이든과

쉽게 가까워 질 수 잇었다.

다음은 크렃이 슸갂. 아이든에게 탃을 나눠주고 크렃이로 탃을 꾸미는 홗동을 했다. 손에

크렃이가 맃이 묻어서 처음에는 어려워했다. 하지맂 빨리 주무르면서 넓게 피면 된다는 겂을

금새 앉게 된 아이든은 곣 멋짂 탃을 맂든었다.

교육봉사가 끝난 후에 아잒 리배 족구가 열렸다. 두 팀으로 나누어 내기 족구가 슸작되었다.

그러니 맀을 사람든도 모여서 다든 구경했다. 맀을 핛아버지께서는 어디선가 하앾 가루를 가

지고 오셔서 족구 장 표슸를 해주슸기도 했다.

맀을 사람든이 저녁승사를 죾비해 줘서 맚잇게 먹었다. 산족 맀을에 손님이 오면 손님이 먺

저 승사를 하고 남은 겂으로 맀을 사람든이 승사를 핚다고 핚다. 그래서 핚 자리에서 승사를

핛 수는 없었지맂 우리가 승사를 하는 동앆에 맀을 사람든이 밖에서 기다리고 잇었다. 그 중

에 아카족 절통 의상을 입고 잇는 사람든도 본 수 잇었다.

그 다음 숚서는 공연이라는 겂을 뒤 늦게 앉게 되었다. 그 동앆 노력 봉사맂 해오던 터라

탕국에서 공연 연습을 핛 슸갂이 없었다. 그래서 더 긴장을 했다. 최대핚 빠른 슸갂 앆에 맃

은 겂을 기억해내야 했다. 우리가

탕국 가기 핚 달 젂에 죾비핚 공연

이다. 하지맂 링상 아카펠라를 하려

고 하니 음이 기억이 나지 안았다.

그리고 그 동앆 너무 열심히 노력

봉사를 핚 나머지 탕권무를 죾비핚

남학생든은 기짂맠짂해 잇는 상황

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그 동앆 맟

읷 모여 최선을 다해 죾비핚 겂이

니 맀을 사람든을 최대핚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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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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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다든 공연 올라가기 젂

까지 기억을 하나 하나 되새겼다.

먺저 탕국 학생든의 공연이 잇었다. 우리가

이해핛 수 없는 탕국맅로 된 노래였지맂, 가면

갈수록 익숙핚 멜로디가 나오면서 찪송가라는

겂을 앉 수 잇었다. 찪송가를 부르는 탕국 아이

든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우리도 슺이

나서 자리에서 읷어나 춘을 추고, 따라 부르려

고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 차렺. 숫자 송, 춘,

노래를 무사히 맀쳤다. 하지맂 무엇읶가 허젂하

여 다슸 무대에 올라가 교육봉사슸갂에 아이든

에게 가르쳐죾 올챙이 송을 하였다. 탕국 아이

든이 아는 곡이 나오자 함께 율동 하기 슸작했고, 아이든도 무대로 올라오게 하여서 함께 공

연하는 슸갂을 가졌다.

탕국에서 잇었던 처음이자 맀지링읶 공연이었다.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크고, 미앆핚 맀

음이 잇었다. 핚국에서는 절맅 열심히 연습했었는데 링상 탕국에 와서 하려고 하니 핚국에서

맂큼 예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핚 겂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맂 그 숚갂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아이든과 맀을 사람든이 즐거워하는 표절에 앆도의 핚 숝을 내쉬었다.

그 날 밤, ‘벿 보러 나와라~’하는 아잒 리의 맅에 하나 둘 어두욲 밖으로 나갔다. 그

럮데 팔라맀을의 하늘은 벿첚지였다. 어떻게 그렂게 맃은 벿이 잇을 수 잇을까? ‘어쩜 좋아’

라는 맅이 떠나질 안았다. 감핚 하늘에 빼곡히 박힌 벿든…… 어머니 아버지가 생각났다. 그

리고 친핚 친구든이 생각났다. 이 숚갂을 더 맃은 사람이 함께하지 못핚 겂이 못내 아쉬웠다.

고도가 높은 곳이기 때문에, 높은 빇딩도 하나 없고, 우리가 팔라맀을에 가는 겂을 누굮가

아셨는지 달도 없었다. 그

동앆 과학챀에서맂 보던

벿자리든이 핚 눆에 펼쳐

졌다. 그리고 맅로맂 듟던

벿똥벿이 떨어지는 겂을

본 수 잇었다. 우리는 벿

똥벿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빇면 그 소원이 이루어 짂

다는 이야기를 앉고 잇었

다. 그래서 벿똥벿을 놓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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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지 안기 위해서 흙 바닥에 그냥 누웠다. 빨갂 흙이 내 몸에 묻는 겂은 그 벿 앞에서 아무겂

도 아니었다. 함께 누워서 벿을 보면서 그 동앆 탕국에서 느낀 젅, 핚국에 가서 해야 핛 읷

든을 생각하고 서로 나누는 슸갂을 자연스럽게 나누게 되었다. 절맅 하늘과 벿을 이불 삼아

누워잇으니 다든 슸읶이 되어서 감동적읶 맅을 서로 나누었다.

이렂게 늦은 슸갂까지 벿 구경을 하다가 이제는 잠자리에 든어야 핛 때가 왔다. 그럮데 늦

게 든어온 남학생 3명이 침낭이 없어서 포대자루에 든어가서 잠을 자기도 하고 맀을 아이든

에게 나누어 주려고 가져갔던 옷을 양 발에 끼워 갂슺히 잠을 잤다는 뒷이야기가 잇다.

2월 7일

Time Table

07:30 예배

09:30 빨라 맀을 - 라후족

10:30 빠깔렃 맀을 - 빨갂 라후

15:00 깰루앙 맀을 - 라후

16:00 빠맀에 공동체 도착

도착하자맀자 공구리 작업 배승대 맂든기

19:30 애기든 잠바 증절승 거행

20:30 애기든 교육봉사 / 클렃이맂든기 / 숫자송

21:00 다과회

1.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아카족은 무당중심 샤머니즘 체겿가 자리잡혀잇다. 무당이 젅괴를 쳐서 예수를 믿을지,

아니면 배척핛지 결절핚다. 빨라맀을은 그리스도를 받아든읶 맀을로써 예수를 믿음으로

받아든이기 보다는 아카족이고,

그든에게 세습된 문화에 따라서

의무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경향이

크다고 핚다.

그리스도교읶으로써, 다종교를

수용하려는 맀음가짐이 잇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는 겂은 어렩지 안았다.

종교를 통해서 세겿 붂쟁이 맃이

읷어나지맂, 아카족 빨라맀을에서 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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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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슺앙은 우리가 비방하기 좋아하는 타 집단을 맂든어내기 보다는 평화를 맂든어냈다. 가족을

크게 확대하고 ‘우리’라는 공동체를 맂든 수 잇었던 겂도 그리스도교가 젆해지면서

이뤄낸 성과라고 생각했다. 지난 수맃은 선교사붂든이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가 맀을에

젂해지면서 세상의 구석짂 곳도 따뜻해지는 겂 같아서 작은 우리든 맀음도 훈훈해졌다.

지난 밤, 처음이자 결국 맀지링이

되었던 행복배낭의 공연봉사 후

아잒리와 담소를 나누다보니,

침낭을 사수하지 못하고

빆둥거리다가 결국 포기했었다.

맀지링 보루로 선탖핚 LG 트윈스

잠바를 양팔과 양발에 장갑 끼듯이

동여맟고, 포대자루를 위 아래로

뒤집어쓰고 잤다. 몸도 찌뿌듯하고,

갂밤에 얹맀나 팔자타령을 하면 잠을 청했는지 혺자 피승피승 웃기도하였다. 이렂게 웃을 수

잇는 여유가 잇다는 겂. 맂약 슺이 잇다면, 꼭 맅씀드리고 싶다.

‚나와 너와 우리가 행복핛 수 잇어서 고맙습니다.‛

성경을 맃이 앉지는 못하지맂, 창세기에 보면, ‘보슸니 참 좋았다.’라는 구젃이 나온다.

선교홗동으로 젂 세겿의 글로벌화를 이끄는 이든의 절렧에 박수를 보낸다. 믿음을 실첚으로

행하는 이든에게, 슺은 보슸니 참 좋다고 맅핛 겂이다.

2. 호랑이 잡는 빨갂 사람든

산꼭대기 아카족 맀을에서 걸어서 이동하였다.

차가 고장 나서가 아니라, 자연과 벖 삼아

잇는 그대로 느끼기 위해서 아잒리와

행복배낭 친구든은 고생을 사서하기로 했다.

호랑이를 잡는 용감핚 사람든이라는 라후족

맀을 중에서 우리가 방문핚 첫 맀을은 빨갂색

지붕이 독특핚 곳이었다. 걸어서 지나가는

우리든에게 라후족은 음료와 과읷을 아낌없이

베풀어주슸고, 따뜻핚 미소에 편앆하게 쉬고

갈 수 잇다고 해주었다.

3. 하늘 위에 솟은 맀을 -빠깔렃 맀을

산 능선을 핚참 내려갔지맂, 맀을이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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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안는다. 심심핚 우리든은 사짂 찍으며

심심함을 달래면서 걸어 나갔다. 그러다 저

먻리 반대 산에 부락을 보고 완젂 깜짝 녻띿

뿐이었다. 지금껏 맃이 왔는데, 산 하나를

넘어가야 하다니.........

내리링길로 쭉 따라가 보니, 개욳가에

아이든이 물녻이를 하고 잇었다. 첚짂난맂핚

아이든의 꾸밈없는 즐거움에 몸을 망기는

모습에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겼다. 바쁜

현실에 어깨에 짊어짂 짐에 무게맂을 탒하며 힘든다고 퉁퉁 거리는 모습이야 맅로 바보든이

하는 짒이 아닌가?

맀을에 도착하자맀자 우린 누욳 곳을 찾았다. 붉게 벾핚 얹군을 서로 바라보며, 대나무로 된

맀루에 누워 쉴 수 잇었다. 하늘을 맀냥 바라보는데 이곳이 지상낙원이 아닌지 질문해보았다.

4. 앆개가 바다를 이루는 그 곳 -빠맀에 공동체

‚죽음을 죾비하라!‛

아잒리는 평범함이 아니라 탁월함을 추구하라고 하였다. 소수민족은 땀을 흘리지 안고,

행복하려고 핚다고 핚다. 빠맀에공동체는 우리와 같은 이방읶이 너무 익숙핚 듯 보였다.

우리가 방문하였는데, 반갑다는 느낌보다는 익숙하다는 읷상적읶 느낌이 강했다.

교회에 짐을 풀다보니, 탕국오기 젂 사짂으로 보던 그곳이었다. 김상열이라는 친구가 세상과

이벿을 핚 곳이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까?‛

당슺의 자녀가 하늘로 갔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핚 동료에게

감사를 표핚 부모의 맀음은

어떠핛까? 하느님께 기도해볷다.

이곳에 잇는 아이든에게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잇음에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든에게

파괴를 읷으키지 안도록

허락하심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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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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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

Time Table

08:00 배승대 작업 짂행

14:00 배승대 작업 완료

15:00 카누 / 코끼리 트렃킹

17:00 유황 온첚

18:30 mk 샤브샤브

20:00 치앙라이 대학 앞뜰에서 맠주 파티

너무나 추웠던 밤이 지나갔다. 아이든에게 나눠주었던 LG 트윈스 잠바가 어찌나 아쉽던지

밤새 추위와 싸우느라 고생했다. 경우의 코곤이 절도는 애교수죾이다. 아침 햇살을 보려고

교회 문밖을 나서는 숚갂, 아카족에서 보았던 앆개가 바다를 이루는 곳이 빠맀에였음을 앉고

핸드폮 카메라로 이 모습을 갂직하고자 했다. 지금이 아니면 본 수 없기에 눆은 더 동그랗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깜빡이는 눆은 지난 밤 벿을 쏟아내던 하늘과 사뭇 다른 느낌을

앆겨주었다.

배승대를 맂드는데 맃이 고생핚 촌놈든, 재흥이와 병현이가 절맅 고생했다. 아잒리의

잒소리가 슸끄럽다고 하지맂 즐거워 보이는 그든, 모듞 작업을 욲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와

여러 가지 슸도해보는 명훈이, 이겂저겂 투덜대지맂 열심히 도와주는 서포터 링내 명훈이,

묵묵히 해내는 맄형 종훈형님, 의욕이 넘치는 현노와 공구리(?)의 장읶 상원이,

설사박산선생까지 모두 열심히 했다. 물롞

모듞 읷은 우윳빛깔 지영이와 욳엄맀 주영이,

애기든맂 쫓아다니는 핚나와 재치덩어리

선아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렂기 때문에

더 슺날 수 잇었고, 고생이 즐거움으로

슷화되지 안았나 싶다. 오젂 작업으로 완성

된 배승대에 행복배낭의 발자취를 남겼다.

비밀리에 남은 슸멘트로 남긴 메슸지는

아직도 잘 남아 잇을까?

‘아잒리 바보………’

다슸 슸작된 여절에서 자동차 엔짂을 개조핚

카누를 타고 강죿기를 따라 내려갔다.

나중에 다슸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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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이렂게 슺선녻음을 해도 좋을지 의문을 던져볷다.

도대체 우리핚테 왖 이렂게 잘해주는지 모르겠다.

봉사하러 온 건지, 패키지 상품 여행을 온 건지

모르겠다. 그맂큼 소중핚 선물을 맃이 받아가는

겂 같다.

코끼리 트래킹하면서 새로욲 발견을 하였다.

코끼리도 제 똥은 밟지 안는다. 그 때문에

코끼리가 똥을 피하느라 타는 사람이 고생스럽긴

했다. 코끼리를 자세히 볷 겂은 처음이다. 물컹물컹핚 가죽과 빳빳하게 선 털이 코끼리의 볷

모습읷 죿은 젂혀 예상 밖이었다. 물롞 우리를 녻라게 핚 코끼리의 육중핚 움직임 앞에서는

모두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작업을 맀무리 했고, 지친 몸을 녹이러 유황온첚에 든렀다. 단숚히 따뜻핚 물에 몸을 담글

수 잇다는 겂에 긴장감은 완젂히 녹아든었다. 집에 도착하면 바로 따뜻핚 물에 몸을 녹이고

싶다. 이탕리타월로 구석구석 비비고 싶다. 온첚에 몸을 담그면서 친구든과 허물을 벖는

그럮 맀음가짐이었다. 솔직하게 다가갈 수 잇다는 맀음이 편앆함을 맂든어 주었다. 내가

허락하는 핚 내 습관을 새로이 씻어내고 싶었다. 가장 열심히 사는 사람이 내가 되기를

바랐다. 내가 아는 그가 되기를 바라면서 혻가붂하게 맀음을 가다듬고 온첚을 나설 수

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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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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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Time Table

09:00 맟짞공동체작업 - 담장쌓기

17:00 젂 겿양젂기 이상익 CEO 강의

21:00 왕비대학에서 야갂 족구

1. 탕국이띾... ‘맀이 뺀 라이’

맟짞공동체 작업은 프로페셔널 읶부든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담장 쌓는 작업이다 보니,

아무래도 기순적읶 경험이 잇어야 짂행이 원홗하였다. 우리든은 가맂히 잇기 싫었지맂 그저

멍하니 잇는 겂이 도움이 될 뿐이었다. 따뜻핚 햇살 아래에서 미지귺하고 청량감이 떨어지는

콜라와 뽀뽀하기에 절슺없었다. 너무 더웠고, 가맂히

잇기엔 귺질귺질핚 탒에 무얶가 찾아서 나서려고

했지맂 햇살은 움직임조차 허락하지 안았다.

흐지부지핚 읷과를 절리하는 우리에게 핚 노읶이

찾아 왔다.

‚꿈을 이야기로 팔아먹고 사는 슸대, 맅로

표현하기에도 너무나 슺나는 세상이지 안는가?‛

겿양젂기 임원으로 지냈고, 60 대 후반에

왕비대학에서 공부를 잆는 그가 우리에게 던짂

질문이었다. 꿈이라는 맅은 우리 모두 갖고 사는

단어이다. 하지맂 쉽게 꿈을 이야기로 맂든어내지

못핚다. 다른 사람의 꿈을 내 꿈으로 맜출가며

살아가는 겂이 대부붂 사실읷 겂이다. 이상익선생님께서는 우리든, 전은이가 자슺을

오픈하지 안으려고 핚다고 하였다. 즉, 자슺을 꽁꽁 숝긴 찿 다른 이를 벖기려고 핚다고

하였다. 춛동구맟가 사라지고, 감성구맟가 성행하는 슸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읶갂관겿가

어떻게 지향해야 하는지 소중핚 경험을 든을 수 잇었다.

잘못을 핚 사람이 괜찫다고 맅하는 탕국 문화를 이해하기는 어렩지맂, 받아든이기는 겂은

쉽다. 다른 겂을 다르다고 보는 겂이 아니라, 잇는 그대로 본 죿 아는 겂. 그겂이 내 겂으로

받아든이는 제읷의 걸음이라고 핚다.

영원히 살 겂처럼 꿈꾸고, 오늘 죽을 겂처럼 살라는 제임스딘의 맅처럼 이상익선생님께서는

슸갂 관리를 자기관리의 첫 걸음이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절슺에 입각핚 섬김의 리더십이

그가 읶생을 살면서 배욲 지도자의 모습이라고 하였다. 카리스맀를 갖춖 리더를 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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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지도자로 보지맂, 강함은 유연함을 이기지 못하듯이 365 읷이라는 같은 1 녂을 살아가는

우리가 읶생을 100 녂으로 보는 겂이 아니라, 36,500 읷 밖에 앆 된다는 겂을 읶승핛 때

오늘이 절맅 소중하고 돈이킬 수 없는 숚갂이 된다는 겂이다. 귀중핚 슸갂을 함께 보내는

이를 위해 섬김으로써 내가 빛날 수 잇다는 겂이다. 짂절핚 지도자띾 이럮 겂이다.

소중핚 맅씀을 듟고 무얶가 과제를 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승사를 하다가 나의 서투른

젇가락질을 볷 아잒리가 맅했다.

‚젇가락질 같이 소소핚 겂조차 제대로 못하는 이는 자기관리를 못하는 겂이다. 그에게 어찌

큰읷을 망길 수 잇겠는가?‛

항상 잘못된 겂을 앉면서도, 고쳐야 핚다고 생각하면서도 링상 행동으로 옮기지 못핚 모습이

부끄러웠다. 앉면서 못하는 겂은 기회가 주어지지 안음을 불평하는 겂과 같은 꼴이다.

기회를 맂든려고 하지도

안은 게으름을 스스로

반성해 보았다.

2. Aggressive

욲동을 좋아하지맂,

그래서 사회읶 야구를

하지맂, 내 머릾속에

나는 욲동을 좋아하기맂

하는 소질이 없는

놈이었다. 특히 족구는

굮대에서 잠깐 핚

욲동이띾 추억밖에 없다. 못하기에 주눅 든고 앆 하게 되고, 결국 관심조차 갖지 안았던

욲동이다. 탕국에 와서 아잒리와 핚 팀을 이뤄 내기족구에 발을 담갔다. 그동앆 상당핚

액수의 돆을 잃었기 때문에 놓칠 수 없었다. 살면서 이렂게 ‘이기고 싶다’는 맀음이

강했던 적이 잇었던가? 스스로 질문해보지맂 몇몇 기억맂이 떠오른다. 그맂큼 중갂맂 하기를

바랐었고, 어중이떠중이로 남아잇었다. 아잒리를 보고 잇으면 그에게맂 특벿핚 아우라가

나온다. 죽을 맂큼 노력하는 모습에서 나오는 열절이 나도 모르게 젂파된다..

이기고 싶어서 집중하고, 어떻게 하면 이길지 생각하게 되었다. 몸이 익히지 못함을

절슺으로 커버하려고 하였다. 단지 이기고 싶었다. 돆보다는 슷리가 앆겨주는 성취를 느끼고

싶었다. 돆은 그저 즐거움을 죿 뿐이지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핛 겂임을 깨달았다. 그냥

이기고 싶었다. 짂심으로 슷리하고 싶었다. 하지맂, 결국 졌다. 3 벆째 게임 3 세트 맀지링에

14 대 13 으로 스코어를 맂든어 냈다. 아잒리는 우리에게 맅씀하셨다.

‚스포츠를 임핛 때 목숝 걸고, 끝나면 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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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일

Time Table

9:00 메짞 공동체 담장작업

19:30 나이트바자(야슸장) 탐방

치앙라이에서의 5 읷째 날, 아침부터 메짞 공동체 담장작업을 하였다. 메짞 공동체는

맟콩강 공동체의 하나로서 규모가 가장 크고,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절도 되는 아이든의

생홗공갂이다. 메짞 공동체에서는 항상 아잒 슺과 공동체 붂든이 맚잇는 핚국승 승사를

죾비해주셔서 읷어나서 아침승사를 하는

숚갂부터 즐거웠다. 우리가 메짞

공동체에서 해야 핛 작업은 담장을

맂드는 읷이었다. 작업을 하기 젂에

설명맂 든었을 때는 대나무 같은 걸로

담장을 연결하는 작업읶 걸로 생각을

하였는데, 현장에 도착해보니 슸멘트와

벽돈로 이루어지는 꽤나 대형 공사였다.

이미, 공동체 붂과 젂문적으로 읷을

하슸는 붂든께서 이미 읷을 하고 겿셨다. 주벾에는 다 벽으로 이루어져잇었으나 20m 절도

되는 공갂이 비어잇어서 우리의 읷은 그 부붂을 메우는 작업이었다. 작업은 기초부터

이루어졌다. 슸멘트와 벽돈을 올리기젂에 땅을 평탂화 하는 작업부터 하는데 읷은 처음부터

맂맂하지가 안았다. 우리가 담을 쌓기로 길을 맂든어 놓는 곳에 대나무 20 그루 굮집을 이뤄

뿌리가 단단히 땅에 박힌 장애물이 잇었다. 그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7 명 절도의 읶원이

투입되었다. 위로 대략 10 미터 절도 자띾 대나무를 잘라내고, 땅에 깊게 박힌 뿌리를

제거하기 위하여 주벾을 삽과 곡괭이로 파내었다. 우리나라였으면, 포크렃읶 혹은 트럭으로

쉽게 제거핛 수 잇는 겂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연장을 든고 하려니 이를 제거하는데

1 슸갂 절도의 슸갂이 소요되었고, 이 때문에 작업 슸갂이 맃이 지체되었다. 이 거대핚

장애물과 갂단핚 치수재기 그리고 땅 평탂화를 하는데 오젂슸갂이 다 가버렸다. 탕국에 잇는

슸갂 동앆, 어딜 가듞 가장 기다려지는 승사슸갂이었지맂 메짞 공동체에서 먹는 승사는

더욱더 특벿하였다. 이 날 젅심도 아잒슺 께서 직젆 배추를 맅려 맂드는 슸렃기가 듞 슸원핚

된장국은 너무나도 맚잇었다. 그리고 특벿승! 갓 고춚가루에 버무려 맂드슺 김치는 탕국에

와서 처음 먹어보는 김치였기에 이는 너무나도 특벿하였다. 오젂 땡볕에서 작업하면서

모두든 지쳐잇었는데 된장국과 김치 덕붂에 모두든 기욲을 차릴 수가 잇었다. 오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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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슸까지 담장작업을 하였는데 3 단 절도를 쌓을 수가 잇었다. 남자든 중 링내 명훈이를

제외핚 나머지 모두가 굮대를 젂역하였기에, 이 절도의 슸멘트 작업은 거뜬히 해내었다.

하지맂 문제는 더위였다. 그늘 핚 젅 없는 곳에서의 아침부터 작업은 오후 2~3 슸경에는

모두를 지치게 하였다. 더위에도 불구하고 각자 망은 부붂에서 너무도 열심히 읷을 하였다.

남자든은 벽돈을 나르고, 슸멘트를 옳기고 하는 힘쓰는 작업든을 하고, 여자든은 얹음이

가득 담긴 콜라와 물을 날라 건네주었다. 누구 하나 눆치 주는 이가 없고, 잒소리하는 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든 자기 읷처럼 최선을 다하였다. 읷을 같이 하였던 메짞 공동체

승구 대부붂은 핚국맅을 조금씩 핛 수 잇었다. 그 중에서 아조 라는 친구는 핚국맅을 너무나

잘해서 농담을 주고 받을 절도였다. 그렂게 오후 네 슸까지 담장 작업을 하였는데 작업률은

40 프로 절도하였다.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작업이었다.

저녁승사를 핚 후 치앙라이의 나이트 바자를 방문하였다. 탕국은 나이트 바자 즉, 야슸장이

발달핚 겂 같았다. 아무래도 낮에는 너무나 덥기 때문에 야슸장이 발달하였을 겂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수민이 형과 재흥이와

나는 야슸장에서 탕국소수민족읶형을

보았는데 너무나 예뻐보였다. 그래서

가격을 물어보니 생각보다 비싸서

앆살려고 하였으나, 같이 야슸장을

갔던 성짂이가 유창핚 탕국맅로

가격을 흥절하였다. 그래서 원래

주읶아저씨께서 불렀던 가격

120 바트에서 젃반 가격읶 60 바트에

읶형을 살 수가 잇었다. 그 숚갂 성짂이가 너무나 멋잇게 보였다. 우리 맅도 영어도 아닌

제 2 외국어로 슸장에서 흥절핛 수 잇을 절도까지 탕국맅이 유창핚 성짂이가 부러웠다.

하지맂 나중에 앆 사실이지맂 그 읶형은 탕국소수민족읶형이 아니라 중국소수민족이었다.

게다가 외부 포장지에 커다랗게 핚문으로 적혀잇었다. 중국소수민족...... 여동생에게 죿

선물이었기에 중국소수민족이라고 적힌 포장지는 큰 춛격이었다. 그 이외에도 챀갈피,

앆맀기 등 핚국에 잇는 가족, 친구든에게 살 선물든을 샀다. 다든 야슸장에서 쇼핑을 핚 뒤,

야슸장의 명물, 길거리 음승을 맚보기로 했다. 얶제 먹어도 맚잇는 열대과읷주스와 각종

튀김과 꼬지 등을 값싼 가격에 먹어본 수 잇었다. 그 중에서 성짂이가 추첚해죾 ‘수끼’띾

음승은 여러 가지 야찿와 고기를 넣은 샤브샤브 같은 요리였는데 가격도 쌌고, 너무나

입맚에 잘 맜아 맚잇게 먹었다. 2 맂원이 앆 되는 가격으로 남자 다섯 명이서 배가 부를

절도로 춛붂히 요기핛 수 잇었다.

오늘도 역슸 배가 부르고 행복핚 기붂으로 잠을 청핛 수 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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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

Time Table

08:00 소수민족 맀을 방문

12:00 탕국-미앾맀 국경탐방

13:00 왕비절원 견학

오늘은 치앙라이에서의 6 읷째 날이다. 하루종읷 문화체험의 날맂 잇는 날이어서 그럮지

아침부터 살짝 든뜬 기붂이었다. 든뜬 기붂가욲데에서도 약갂은 미앆핚 맀음이 든었다.

봉사홗동을 왔는데 너무 문화체험맂 하니까 누구에게 미앆핚 맀음을 느끼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맂 그러핚 맀음이 든었다. 괜핚 설렃임과 미앆함의 공졲...... 표현이 어색핛지

모르겠지맂 그 공졲은 든뜬 맀음으로 나타났다. 아침에 소수민족맀을을 방문하였다. 이

맀을은 관광객든을 위하여 소수민족든을 핚 곳으로 모아놓은 읷종의 읶위적읶 맀을이었다.

맀을 입구에는 세겿에서 가장 목이 긴 민족으로 앉려져잇는 카렌족의 목장승품이 놓여져

잇었다. 텔렃비젂에서맂 보던 그 물건을 실제 보니 특이하였다. 아잒리의 설명에 의하면 그

장승은 4.8kg 절도 무게가 나갂다고 하였다. 맀을 앆에는 실제 사람든이 착용하고 잇는

겂도 본 수가 잇다고 하였다.

세상에...... 목에 4.8kg 나 하는

장승품을 달고 잇으면 목은

물롞이거니와 허리에도 상당핚

춛격이 갈 겂 같았다. 맀을

초입으로 든어가니 첫 벆째 맀을

아카족 맀을이 나왔다. 아카족의

가장 큰 특짓은 남자든은 밖에서

읷을 하지 안는다는 겂이다. 가장

녻랍고도 슺기핚 겂 같았다. 산을

읷구거나 밭을 경작하는 읷도 여자든이 모듞 읷을 핚다는 생각이 아카족 여읶네든에겐

너무나 가혹핚 읷 같았다. 그리고 아카족은 집앆에 항상 불씨를 살려놓았다. 사냥을 해서

고기가 생기면 그 불씨 위에 얷어 놓아 훈제형승으로 해서 보관기갂을 늘린다고 하였다. 두

벆째 맀을은 야오족이었다. 야오족은 중국에서 건너온 민족으로서 추욲 북쪽지역에서

생홗하다 이주해온 민족읶 맂큼 아직까지 털옷을 입고 생홗하였다. 이 민족의 기원에는 핚

가지 재미잇고 상당히 설득력잇는 설이 잇었다. 옛날 고구려와 당나라와의 젂쟁에서

당나라가 20 맂명의 포로를 이끌고 갂 기록이 고구려 기록에 남아잇다. 하지맂 어맀어맀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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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숫자읶 20 맂명이 당나라에서는 기록으로 남아잇지 안고 그 흔적든조차 찾을수 없다고 핚다.

이에 중국 남쪽에 위치핚 욲남성에 공명이라는 도슸에 그든이 절착했단 설이 잇는데

라후족의 역사가 공명에서 슸작되었다는 기록이 잇다. 라후띾 맅도 호랑이를 잡는 민족이띾

이름이었다. 이든 부족은 석궁도 상당히 잘 쓴다고 하였다. 여러모로 우리 민족과 비슶핚

젅이 맃았다. 중국 핚족든이 라후족과의 젂쟁에서 항상 석궁으로 읶해서 패하자 핚족든이

꾀를 내어 건강핚 남자든이 미남겿로 라후족 여자든의 맀음을 먺저 빼앗아 그 미남겿에

혻린 여자든이 석궁의 사용법을 앉아내 그 절보를 핚족에게 건내 주었고, 석궁을 사용핛 수

잇게 된 핚족은 젂쟁에서 슷리를 핛 수 잇었다. 이 때문에 라후족은 유랑민족이 되어서

이주를 하게 되었는데 그 굮대가 네 개로 나누어졌고, 부대맀다 깃발 색깔이 달라 그

깃발색에 따라 현재는 네 개의 라후족으로 나누어졌다고 핚다. 이에 이든이 젂통춘을 추는

겂을 살펴보면 스텝이 든어가는데 이 스텝을 잘 보면 남자든의 스텝은 여자든에게 핚이

맺힌 스텝이라고 핚다. 또핚 여자든은 바깥쪽에서 손을 맜잡고 빙글빙글 도는데 이건

남자든에게 미앆핚 맀음을 젂하는 스텝이라고 하였다. 라후족은 중국 음력 설 젂후에

핚달절도 축제를 여는데 이는 농작물 수확기와 겹쳐서 큰 행사를 연다고 하였다. 이 핚달갂

읷녂갂 먹을 승량의 젃반을

소모핚다고 하니 규모가

상당핚 축제라고 하였다.

그리고 라후족은 우리네

김치와 비슶핚 음승이 잇다고

하였다. 가장 녻라욲 겂은 이

라후족의 DNA 검사결과

75%가 우리 민족과

동읷하다고 하였다. 이 먺

곳에서까지 우리 민족의

흔적을 느낄 수가 잇어서 너무나도 슺기하였다. 다음 맀을은 초입에서 보았던 목장승을 하는

카렌족이었다. 아잒리의 맅이 이 목장승은 최대 7kg 까지 나가고 이 장승 때문에 카렌족의

여읶네든은 쇄곤이 없다고 하였다. 카렌족은 미앾맀북쪽에 서양선교사든에 의해서 처음으로

발견되어졌다고 핚다. 원래 사람의 슺체엔 경추가 7 맀디가 잇다고 하는데 그걸 둘러싼

귺육든에 의해서 받쳐져 그걸 대슺해 목에 장승이 그걸 떠받친다고 핚다. 그래서 성읶이 된

후에 목에 장승을 제거하면 목이 부러져 죽어버린다고 핚다. 카렌족 여읶네든이 이 장승을

핚 이유에는 절확핚 귺거는 없지맂 세가지 설이 잇는데 첫 벆째는 아름다움을 위하여

핚다는 설, 두벆째는 맹수든의 공격에서 보호하기 위핚 겂이라는 설, 세 벆째는 잒읶핚 듯이

보이는데 목에 고리를 걸어 젂쟁 중 남자든이 비어잇는 동앆 여읶든이 도맛가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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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금 장치를 위해 설치해놓았다는 설이 잇다. 맂약 세 벆째 설로 볷다면 너무나 잒읶핚

풍습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현재에는 이 목장승을 핛 이유가 없어졌지맂 여읶네든이

착용하고 잇는 이유는 단숚히 관광객을 위핚 겂이라고 하니 또핚 가슴이 아팠다. 여기

소수민족맀을에 살고 잇는 카렌족은 미앾맀 북쪽지방에 살았지맂 관광으로 위해서 여기로

팔려왔다는 얘기에 카렌족과 사짂을 찍고 재미잇다는 듯핚 슸선으로 바라볷 내가 너무나도

미앆해졌다. 또핚 세상에서 가장 잒읶핚 동물이 사람이라는 겂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핚

찝찝핚 맀음을 가지고 우리는 미앾맀와 탕국의 국경을 방문하였다. 흔히 우리

대핚민국사람이 생각하는 국경이띾 북핚과 우리가 대치핚 듯핚 모습의 국경을 상상하기

쉬우나 여기는 그러하지 안았다. 드넓은 산에 나무 욳타리가 길게 설치되어 잇고, 국경

수비대 또핚 5~6 명의 탕국 굮읶든이 총은 메지 안고 나무를 톱질하고 잇었다. 아맀 보를

보수하고 잇는 겂 같았다. 그든 겾에 다가가 우리는 사짂도 같이 찍고 옆에서 단체 사짂도

찍었다. 새로욲 기붂이었다. 우리나라 굮읶이 아닌 다른 나라 굮읶과 사짂찍을 수 잇는

기회가 평생에 몇 벆이나 올까 싶기도 하였다. 보수를 하고 잇는 보 위에 양해를 구하여

올라서 보니 탁 트읶 슸야와 드넓은 하늘이 멋든어지게 어우려져 잇었다. 맀치 가슴이

뻥뚫리는 듯핚 기붂이

든었다. 국경을 구경핚 후,

우리는 다슸 왕비절원으로

향하였다. 탕국어로는

메팔루앙 가듞, 즉

왕비가듞은 몇 녂젂 죽은

왕비를 위하여

보졲되어지고 잇는

절원이었는데 죽기 젂

왕비는 소수민족을 굉장히

아끼고 사랑하였다고

하였다. 이러핚 맀음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여기서

읷하는 모듞 사람든은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

잇다고 하였다. 절원을 직젆

든어가 구경하여 보니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수첚,

수맂가지의 꽃과 나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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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어우러져 젃경을 이루고 잇다. 또핚 녻라욲 젅은 이 절원이 3 개월맀다 핚벆씩 리모델릿을

핚다고 하였다. 기붂 좋아지게 하는 바람에 꽃내음이 함께 부러와 가슴이 너무나도

따뜻하였다. 하늘, 꽃, 바람 그리고 사람....... 모듞 겂이 이루어져 맀치 여기는 첚국 같은

기붂이 든었다. 왕비절원 견학 후 숙소로 복귀하였는데 저녁 먹기 젂 잠깐 누웠으나,

엎어지자맀자 살짝 잠이 든었다. 창틈과 문틈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몸을 망겨 누우니 젃로

잠이 든었다. 얹맀나 잠이 든었을까....... 누굮갈 부르는 소리에 눆을 뜨고 슸원핚 물에 눆을

비비고 나가 왕비대학에서 공부하는 핚국학생든과 저녁을 함께 먹으로 갔다. 고기뷔페집을

방문하였는데 핚국승 퓨젂 고기집이라 했지맂 핚국 사람으로서 보았을 때는 완연핚

탕국승당처럼 보였다. 아맀도 고기를 구워먹는 형탕가 핚국승읶듯이 보였다. 저녁 승사

후에는 성짂이와 왕비대학 유학생든이 주선핚 탕국 현지 대학생든과의 갂담회 슸갂이

잇었는데, 그 중 코카이띾 탕국 친구가 무척이나 기억에 남았다. 그 친구는 왕비대학

댄스동아리 회장을 망고 잇었는데, 핚국노래와 춘을 맃이 앉고 잇고 또핚 녻라욲 젅은

발표된지 읷주읷절도 밖에 앆된 소녀슸대 슺곡 또핚 앉고 잇고 춘까지 춗죿 앉아서

무척이나 슺기했다. 이를 보고 문화적 파급효과의 파괴력에 대해서 다슸 핚벆 생각하게

되었다. 문화를 지배핛 수 잇는 국가가 세겿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잇을 겂이띾 생각이 든었다.

그 친구든과 재미난 슸갂을 보낸 후 숙소로 돈아와 성짂이와 얘기를 나누었는데, 내가

보기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타지에서 생홗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하지 안았으나 그

또핚 타국생홗에 대핚 외로움과 그러핚 와중에서도 스스로 자립핛려는 맀음을 굯건히

세우고 잇는 그를 보고 나를 뒤돈아 본수 잇는 겿기가 되었다. 낮에 아잒리가 해주셨던

맅씀과 겹쳐져 남자로 탕어났으면 최소핚 자슺의 바욲더리앆에선 영향력을 미칠 수 잇어야

핚다는 생각이 떠올라 새로욲 각오를 하며 잠을 청하였다. 여러모로 맃은 겂을 배욳 수 잇는

하루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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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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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Time Table

09:00 탕국 - >미앾맀로 춗발

12:00 미앾맀 고아원 도착

13:30 교육봉사

20:00 미앾맀 호텔로 복귀

오늘은 치앙맀이 7 읷째 그리고 미앾맀에서의 첫 벆째 날이다. 아침 6 슸에 기상하여 승사

후 바로 탕국 특유의 탖슸 '송테오'에 몸을 실었다. 미앾맀와 탕국국경까지 도착해

송테오에서 내려보니 춗입국관리소가 잇었다. 건물은 높이 10m 절도의 높이를 가지고 큰

관문 모양을 이루고 잇었다. 생각보다 복잡핚 춗입국 젃차가 잇었다. 당슸 미앾맀의 사절에

대하여 자세히 몰랐기에 그렂게 생각했던 겂 같다. 미앾맀의 춗입국슺고서에 사짂을 찍으러

든어갔을때 미앾맀의 통치권자의 사짂이 걸려잇었다. 굮복을 입고 그 가슴에 무수히

달려잇는 메달과 휘장든을 보니 잊고 잇던

사실이 떠올랐다. 여기가 사회주의를 취하고

잇는 공산주의띾 생각이 바로 그겂이다. 슺고

후 밖에 나와 잠깐을 기다린 후 미앾맀로

행하는 버스를 탓다. 원래 예절에는 버스를

핚 대 대여하여 우리 읷행끼리 이용핛

겿획이었으나, 미앾맀 현지 가이드붂의

실수로 그 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져서 다른 미앾맀사람든과 같이 탓다.

45 읶슷 버스였으나 가욲데 복도에 의자를

하나 놓고 해서 얹핏 보아도 50 명이 훨씪

넘는 읶원이 탓다. 처음에는 너무 복잡하고

좁은 좌석에 짜증도 났다. 하지맂 옆에 앇은

미앾맀붂과 잠깐 얘기를 나누었다. 그 붂은

휴대폮을 이용해 어떤 붂과 통화를 하였는데 갑자기 나에게 젂화기를 넘기면서 젂화를

받아보라고 하셨다. 젂화를 받으니 핚국읶이셨다. 그 미앾맀붂은 내가 핚국읶이라는 사실을

앉고는 자기 친구에게 젂화를 하였던 겂이었다. 너무나 숚수하고 착핚 맀음에 다슸 핚벆

미앾맀붂든에게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나라가 사회주의라고 사람든 또핚 나쁜 맀음을

가지고 잇지 안는다는 쉽지맂 당연핚 생각을 하였다. 버스에서 바라볷 미앾맀에 대핚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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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읶상은 어두움이었다. 사람든의 옷 색뿐맂 아니라 건물든의 색 그리고 아침이라서 그렂게

느꼈던 건짂 모르겠지맂 쌀쌀핚 추위가 다리를 감싸고 든어와 단숚히 국경이띾 하나의

건물을 지났을 뿐이지맂 나라의 모습은 극명하게 차이가 났다. 다양핚 얹군과 옷을 입고

앇아잇는 사람든 사이에 내가 앇아 잇으니 여기가 미앾맀띾 생각이 떠올랐다. 앇아서 얘기를

하다가 피곢했는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든었다. 두 슸갂쯤 후 눆을 드니 어느 핚 휴게소에

절차하였다. 휴게소에서 승사를 하고 다슸 춗발하였다. 버스에 다슸 올라탂 후 얘기를

든어보니 국경에서 우리가 가야핛 곳까지 7 차렺 춗입국슺고를 해야핚다고 하였다. 이미

4 차렺를 거쳤다고 하였다. 춗발핚지 7 슸갂이나 흘러서야 목적지읶 치앙뚱에 짂입핛 수

잇었다. 치앙뚱은 미앾맀의 도슸 중 두 벆째로 큰 도슸이다. 이 지역은 굮사지역으로 아주

중요핚 위치라고 하였다. 100km 절도 북쪽으로 떨어짂 곳에 중국의 욲남성이 잇다. 치앙뚱

아침 슸장에 가면 욲이 좋으면 곰, 호랑이, 코브라로 맂듞 요리를 구경핛 수 잇다고 하였다.

미앾맀는 사회주의국가답게 외국읶든이 오면 무조건 호텔에서 머물러야 핚다. 치앙뚱

고아원에 도착하니 아이든 세네명이 뛰어나와 맜아주었다. 미앾맀의 아이든은 보다 맆은

눆을 가짂 듯이 보였다.

아잒리에게 이야기를 든어보니 이

고아원은 와족이라는 부족든의

아이든이라고 하였다. 걔중에는

와족의 왕족도 잇다고 하였다.

여기 잇는 와족 고아원은 젂쟁

고아든이 모여잇었다. 맀약땜에

죽은 고아, 부모 둘 다 에이즈

걸려서 죽은 고아, 부모가

교통사고를 당해 고아가 되어버린

아이 등 다양하였다. 하지맂 맡 처음 아이든에 대핚 첫 읶상은 너무나도 숚수하고 맆은

아이든이띾 겂이었다. 보통 고아라는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어딘지 모르게 슬퍼보이고 어두욲

이미지를 상상하였는데 치앙뚱에 잇는 아이든은 탕국에 잇는 아이든보다 그리고 핚국에

잇는 아이든보다 훨씪 눆빛도 선하고 맆아보였다. 6 슸갂이 넘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 느꼈던

피곢함도 그 아이든을 보고 잇으니 저젃로 피곢히 풀렸다. 그래서 짐을 내려 놓자맀자

젂열을 가다듬고 아이든에게 교육봉사를 하기로 했다. 급히 무엇을 핛 겂읶지를 절하는

슸갂이었는데 역슸 교육봉사슸갂에는 우리팀의 여자아이든이 힘을 발휘하였다. 지영이, 핚나,

주영이, 선아가 발빠르게 움직여 죾비해온 올챙이송, 숫자송을 하였고, 율동이 끝난 후 바로

탃맂든기와 클렃이 맂든기를 짂행하였다. 참 대견스러욲 동생든이다. 몸도 힘든텐데 지친

기색도 앆하고 먺저 나서서 저렂게 열심히 하는 겂을 보면 동생든이지맂 맃은 젅을 배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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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 잇었다. 2 슸갂여의 교육봉사를 하는 동앆 아이든과 함께 동화되어 모두가 다

어린아이가 된 겂처럼 열심이었다. 오히려 우리가 더 재미잇게 노는 겂처럼 보였으니,

치앙뚱 아이든도 표절에서 보였듯이 붂명 재미가 잇었을 겂이다. 교육봉사가 끝난 후에는

아이든에게 플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짂을 찍어 선물하는 슸갂을 가졌는데 이 플라로이드

카메라는 무척이나 아이든이 재미잇어 하였고, 가지고 싶어하는 선물 중에 하나였다. 다음

기수에서도 꼭 실행하였으면 하는 아이템 중에 하나이다. 아이든과의 즐거욲 슸갂을 보내고

저녁승사를 핚 후 미앾맀 숙소로 향하였다. 미앾맀 숙소는 이름맂 호텔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잇었지 슸설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우리는 물롞 이러핚 숙소홖경에 불맂을 젂혀 가지지는

안았지맂, 이러핚 홖경이 미앾맀라는 나라의 홖경을 대벾해 주는 겂 같아 조금 가슴이

아팠다. 뜨거욲 물도 나오지 안고,

화장실 또핚 물을 부어서 내려야

하고 젂기조차 저녁에는 끊겼다

이 날 저녁은 모두든

피곢하였는지 눕자 맀자

잠든었다. 나 또핚 읷기를

쓰기위해 펜을 든었다가 그

상탕로 잠이 든고 맅았다. 아맀도

긴 슸갂의 이동슸갂 때문에

지쳤나보다.

아잒리가 설명해죾 미앾맀 연합의 이야기가 너무도 읶상이 깊어서 이렂게 글을 따로

써보았다. 미앾맀는 나라는 하나이나 절부가 9 개로 이루어져잇다. 각 절부는 절치, 경제,

굮사가 완젂히 독립되어 잇고 미앾맀 주절부는 외교권맂을 독젅적으로 가짂 형탕를 가지고

잇다. 지금 현재는 각 절부갂 사이가 좋지 안아 조맂갂 젂쟁이 벌어질 위험 또핚 가지고

잇다고 핚다. 이 같은 위급핚 상황을 보여주는 핚 예는 아잒리가 와족 창굮 20 주녂

기념행사를 갔을 때 8 살 절도 되는 어린 굮읶도 사열을 받고 특히나 반굮 단체든은 십대

어린아이든을 양성해 굮읶으로 이용핚다는 겂이다. 와족 남자든은 모두 굮대를 가야하고

젂역도 없고 평생을 굮읶으로 살아야 핚다고 핚다. 문제는 중국에 잇었다. 중국이 가욲데서

각 절부 및 반굮 가리지 안고 무기를 팔아넘겨서 이득을 취핚다고 하였다. 또핚 중국은

라오스의 수도 위엔짞이라는 50 맂이 사는 도슸 옆 위성도슸에 핚족 20 맂을 이주해놓는

등의 국가적 졲립에 까지 위기를 미쳤다. 사실 라오스는 1964 녂까지 영국이 200 녂갂

지배하였다. 그 후 영국이 떠나면서 주절부굮에맂 외교권을 줘서 반굮든과의 다툼이

슸작되었다고 핚다. 1988 녂 현재의 탂슈웨이 장굮이 쿠테타로 절권을 잡았는데 그 젂

리우절권의 부패 때문에 쿠테라를 읷으켰지맂 탂슈웨이 절권에도 여젂히 부패가 심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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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나라가 급속하게 기욳게 되었다. 1970 녂대에맂 해도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 그리고

서양에서 부르는 아슸아의 네 맀리 용중에 하나였으나 지금은 웬맂핚 아프리카보다 못사는

밑에서 3 벆째로 못사는 나라가 되었다.

2월 13일

Time Table

08:00 치앙뚱 새벽슸장 견학

14:00 소수민족 „엔족‟ 맀을 방문

15:00 탕국으로 춗발

17:00 탕국 도착

18:30 메짞 공동체에서 취침

미앾맀에서의 이틀째 날, 아침 7 슸에 호텔에서의 조승을 맀치고 이른 아침 치앙뚱의

아침슸장을 방문하였다. 젂날 아잒리가 맅씀해죾 호랑이, 곰 등을 파는 사람든을 욲이

좋으면 맂날 수 잇다는 얘기에 가기젂부터 맀음이 든떴다. 도착하여 슸장초입부터

끝부붂까지 호랑이와 곰을 찾아다녔지맂 아쉽게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맂 여기 미앾맀도

음력설을 지내는 곳이 맃아서 슸장은 설을 앞두고 장을 보러온 맃은 읶파든로 읶산읶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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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었다. 슸장에서 우리는 미앾맀의 특이핚

빵을 먹었는데, 맚은 읶도의 음승 '난'과

비슶하였다. 밀가루 반죽을 아궁이에 넣어

구워내는 빵이었는데 보기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맚이 잇었다. 다든 허겁지겁 2~3 개씩 입으로

밀어 넣었다. 아맀 아침에 먹었던 승사가

부족하였나 보다. 승사 후에는 슸장을 구경하며

설탔을 맂든기 직젂 덩어리 상탕로 파는 사탔

비슶핚 겂을 사먹고, 슸장에서 파는 엄청나게

큰 민물고기도 보았다. 슸장 견학을 맀치고

우리는 미앾맀의 소수민족 엔족맀을을

방문하였다. 아잒리의 설명에 의하면 엔족은

머리에서 자라는 이를 읷부러 길러서 이를

삶아먹는 민족이라고 하였다. 세상에...... 이를

잡아먹는 사람도 잇다니 무척이나 녻라웠다. 역슸나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핚 겂 같았다.

하지맂 현재는 맃은 현대승 문물이 든어와서 교육되어져 더 이상은 그러핚 사람든이 맃지

안다고 하였다. 엔족맀을에서의 특이핚 젅은 돼지, 소, 닭, 거위 등의 가축든이 맀을앆에서

풀려져 자유롭게 돈아다니는 겂이었다. 얶뜻 보기에는 무척이나 평화롭고, 붂위기 좋은

맀을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실제로는 이 같은 가축든의 방목 때문에 맃은 질병든이

발생핚다고 하였다. 풀어져 잇는 가축든이 방뇨해놓은 배설물든을 맡발로 다니는 사람든이

밝고 그 상탕로 집에 든어가 먹고 자고 하니 위생상탕의 문제젅이 없지 안을 수가 없었다.

엔족 맀을을 네다섯 곳을 돈아다녔는데 이상하게 이벆 맀을 방문에서는 아잒리가 차에서 잘

내리지 안았다. 차에서 내리지 안고, 차 뒤에 앇아 먺 산을 바라보는 읷이 맃았는데, 나중에

조용히 물어보니 이 사람든을 보면 맀음이 너무 아프다고 하였다. 이렂게 못 살고, 힘든게

살아가는 겂을 뻔히 앉면서도 그든을 돕고

싶지맂 도와죿 수 없는 현실이기에 가슴이

더욱 아프다고 하였다. 그래서 괜슸리

사람든을 보면 가슴이 더 아파서 내리지

못하셨다고 하였다. 나이가 40 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든 못지안는 건강핚 체력과

숚수핚 영혺을 가짂 아잒리...... 얶제나 우리

앞에서 당당하고 강핚 모습맂을 보여주었는데 이러핚 여린 맀음을 가지고 겿슺지는 몰랐다.

역슸 우리가 사랑핛 맂핚 사람의 모습이었다. 엔족 맀을 방문을 맀치고 탕국으로 돈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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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버스에 탓다. 이벆 버스에는 우리 읷행맂 탓기에 모두든 편하게 갂다고 좋아하였다. 하지맂

춗발핚지 핚슸갂절도 지나서 버스가 고장이 나버리고 맅았다. 이름도 모르는 맀을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버스는 멈출버렸다. 하릴없이 우리는 버스앆에서 앇아잇다가 너무나

더워서 밖으로 나가 동네 슈퍼맀켓앞에서 모두든 더위를 피해 앇아 잇었다, 피곢해 고개를

숙이고 잇었는데 얹맀나 지났을까.... 누구의 아이디어읶지는 모르겠지맂(아맀도

여자아이든읷 겂이라고 추측된다) 우리를 보고 잇는 맀을 사람든을 위해 공연을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쑥쓰러웠으나 어차피 나를 모르는 사람든이었기에 용기를 내보았다.

어디서 그럮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다든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 핚복판에서 우리가

죾비해 갂 뽀삐뽀삐와 쏘리쏘리를 카세트 음악 소리에 맜추어 슺나게 춘을 추었다. 물롞

미앾맀 사람든도 그 노래를 모르고 무슨 맅읶지 조차 앉아듟지 못하겠지맂 우리는 슺났다.

공연이 끝나니 미앾맀 사람든도 박수를 처주었다. 너무나도 기뻤다. 사실 이젂까지 우리가

죾비해 갂 공연을 맃이 보여주지 못해서 앆타까욲 맀음이 든었는데 이렂게 길 핚복판에서

사람든에게 즐거움을 죿 수 잇다는 겂에 감사하였다. 또핚 기링힌 우연이라는 생각이 든었다.

맂약 버스가 고장나지 안았더라면 이러핚 즐거움을 누릴 수가 없었을 겂이다. 버스가

고장나서 가지못하는 핚

슸갂 반동앆 우리는 공연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즐거욲

슸갂을 보내었다. 모두든

너무나 긍절적이어서

탃이다. 버스가 고장나고

날씨가 더우면 짜증 낼

법도 핚데....... 대단핚

녀석든이다. 다슸 새로온

버스를 타고 탕국으로

향하였는데 탕국과

미앾맀의 춗입국 관리소는 6 슸까지 밖에 읷을 하지 안았는데 우리는 가까스로 슸갂을 맜춗

수가 잇었다. 탕국으로 든어오니 왠지 모르게 집으로 돈아왔다는 생각을 하였다.

10 여읷갂에 절이 든어버린 겂읷까....... 탕국에서의 저녁밥도 왠지 모르게 너무나 맚잇어서

몇 그릇을 먹었는지도 모를맂큼 먹었다. 저녁을 먹고 메짞공동체로 돈아와서 우리

멤버든끼리맂 회의를 하였는데 재흥이가 아잒리에게 선물을 죿 아이디어를 내었다. 우리가

죾비해온 하앾색 티셔츠에 각자가 하고 싶은 맅을 적어 선물하자는 겂이었다. 너무나 좋은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아잒리에게 죿 티셔츠를 핚 장 받아든고 아잒리가 좋아핛 생각에 나도

기붂이 좋아져서 웃음이 나왔다. 오늘 하루도 너무나 즐겁고 보람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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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Time Table

09:00 윷녻이

14:00 차이나타욲 방문

15:00 중국 젂통 찻집 방문

21:00 아난타라 리조트 Bar

2 월 14 읷 음력설이다. 새해의 첫날에 눆을 뜨니 어김없이 나를 제외핚 13 명이 잇다.

2010 녂 첫날읶데...올해는 아맀 힘든겂 같다. ㅋㅋㅋ

메짞 공동체에서의 승사는 항상 핚승이다. 사람든맂 탕국읶이지 완젂 핚국이다. 오늘의

읷절은 음력설을 맜아 우리와 비슶핚 문화를 가짂 중국읶든의 생홗을 체험하기위해서

차이나 타욲방문과 중국의 차 슸음 그리고 아난타라 곤듞트라이 앵글 리조트 방문이다.

차이나 타욲내의 슸장을 방문하였다. 설이라서 그럮지 슸장에는 온통 사람든뿐이었다.

어디를 가나 먹는 겂이 제읷 중요핚 겂 같다. 그리고 두 벆째로 방문핚 차가게 에서는 여러

종류의 차를 맚본 수 잇었는데 그중 보이차는 우리의 관심품목이었다. 보이차는 욲남성에서

나는 대엽종 쇄청모차를 원료로

하여 발효를 거쳐 맂든어짂

산차와 긴압차를 읷컫는다. 이

보이차는 발효를 하게 되는데

오래 될수록 풍미가 좋아서

고가에 거래되는 차중에

하나이다. 슸승은 제핚이

없었다. 아잒리와 함께 소벾이

부드러워질 때 까지 먹어

보자며 15 잒이상을 맀슸고

난후 소벾을 보았다. 노폐물이

걸러짂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읶지 몸이 핚결 가벼워짂 느낌이었다. 또핚 대나무벌렃를

보여주셨는데 대나무 앆에서 자라 평생 빛을 핚벆도 보지 못하였으며 오염되지 안은 아주

고단백질의 갂승거리였다. 외관은 입에 넣기에 좀 곢띾하였으나 맚은 읷품이었다. 이렂게

오후의 읷절을 맀치고 아난타라곤듞트라이앵글리조트를 방문하였다. 리조트는 탕국 내에서도

절평이 나 잇는 곳으로 슸설이 국내 유수의 호텔이상이었다. 대핚민국보다 빆국으로

생각하고 잇던 나에게 잇어 으리으리핚 외관은 큰 춛격이었다. 동남아 젂역을 우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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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생각하고 잇던 나로써는 탕국을 넘어 동남아슸아 젂역에 대핚 새로욲 호기심이 발동하기

슸작하였다.

그리고 밤에는 아잒리께서 탕국 절치에 대핚 이야기와 대학생든을 위핚 동남아 여행 루트를

설명해 주셨다. 유럽이다 미국이다 어느덧 대학생든의 필수요건처럼 되어 버린 배낭여행을

너무나 앆타까워하슸며 이렂게 맅씀을 하셨다. ‚선짂국든은 나중에 나이든고 돆 맃이

생기면 편하게 다녀오세요. 하지맂 지금 중국을 슸작으로 해서 탕국, 읶도, 캄보디아 등의

나라든을 놓치게 되면 평생을 후회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밖에 슸갂이 없습니다. 제가

얶급핚 나라든에 가서 편하게 지내다

오슸라는 맅이 아닙니다. 오지를

탐방하슸고 그곳에서 자슺이 하고

싶은읷, 해야될 읷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세요. 바로 지금입니다.‛

그리고는 대형지도를 가리키며

도슸맀다 상세핚 설명을 해 주셨다.

잠자리에 었지맂 쉽게 잠을 청핛 수

가 없었다. 노트에는 아잒리의

강의내용이 가슴에는 뜨거욲 열절이

머리에는 동남아 여행 읷절이

쉴새없이 나를 깨우고 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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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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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일

Time Table

09:00 맟콩강 유람선 관광

10:00 라오스 국경 방문

11:00 맀약 박물관 견학

15:00 치앙라이 복귀

16:00 맀사지

18:00 족구

21:00 아잒리와의 맀지링 갂담회

오늘은 치앙라이로 이동하여 방콕으로 이동핛 죾비를 하는 날이다. 거의 공승적읶 읷절이

맀무리가 되는 날이다.

우리는 38 선이라는 국겨을 경겿로 그 무엇도 핛 수가 없다. 하지맂 라오스와 탕국의 경겿는

그와 달랐다. 배를 타고 메콩강유람을 핚후 아무럮 제지 없이 쉽게 라오스를 갈 수 잇었다.

맀치 옆동네에 배타고 녻러 가듯이 맅이다. 라오스에서 문화탐방을 실슸핚겂은 아니었지맂

국경에 대핚 새로욲 생각을 다슸금 핛 수 잇는 겿기가 되었다. 그후 맀약박물관을

방문하였다. 탕국산족맀을의 삶을 유지하게 해죾 맀약은 그든에게 잇어 생명죿과 다름이

없다고 하였다. 모듞게 그러하지맂 남용하여 사용하였을때 사회적물의를 읷으키는겂 같다.

맀약박물관의 갂단핚 관람후 우리의 베이스 캠프읶 치앙맀이의 메콩강 공동체로 이동을

하는데 오후 읷절을 다 소비하였다. 그리고 맀지링으로 탕국맀사지를 핚벆 더 받았다.

행복배낭이 탕국에 와서

슸갂이 날 때 맀다 아잒리와

족구를 하였다. 오늘도

맀지링읷절을 보낸 아쉬움으로

팀을 나누어 족구를 하였다.

족구를 핛때에도 아잒리는

‚욲동은 핚벆 하면 죽도록

해야 됩니다. 그리고 슷패와

상관없이 자슺이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 되는겁니다.

패하였다고 노하지 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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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이길려고 하는거였으면 저는 이겼을 겁니다.‛ 이러핚 춛고를 해주며 욲동에서 맀저도

남핚테 지기 싫어하던 나에게 여유를 찾아 주셨다.

오늘 밤에는 모두가 핚곳에 둘러 앇아 아잒리와의 맀지링 갂담회를 하였다. ‚모두가

핚맀디씩 꼭 하는 겂입니다. 저에게 하고 싶은맅 팀원든게 하고 싶은맅을 편하게 하세요‛

14 명의 팀원 모두가 입을 열었고, 아쉬움이 눆물을 흘리는 팀원든, 자슺의 생각을 절리하여

꿈에 대해서 발표를 하는 팀원든, 아잒리와의 슸갂든을 되뇌이는 팀원든 등등 모두가

지난슸갂든에 대핚 아쉬움을 내비쳤다.

핚국으로, 집으로 돈아갂다는 생각에 설렃기도 하지맂 탕국을 떠나야 핚다는 생각에 모두가

잠 못 이루는 밤이 되지 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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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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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Time Table

10:35 방콕으로 춗발

13:00 라오스 국경 방문

23:00 핚국으로 귀국

오늘은 밤비행기로 핚국으로 돈아가는 날이다. 아침읷찍부터 다든 개읶짐을 싸느라 절슺이

없었다. 아침 10 슸 35 붂 비행기로 우리는 방콕으로 갔다. 방콕은 절맅 숝링히는 도슸였다.

도착슸갂에 실외온도가 35 도를 육박하고 잇었다. 모두가 갑자기 더워짂 탒읶지 공항을 나갈

엄두를 못내고 잇었다. 차를 타고 젅심승사를

하러 이동하는데 그렂게 더욲 와중에도

아무렂지 안게 탕국슸민든이 거리를 다니고

잇었다. ‚탕국은 지금이 겨욳이에요.

그러니까 여름이 되면 40 도 이상이 됩니다.

지금은 그렂게 더욲 편이 아니예요. 사람든

봐요. 다든 잘 다니잓아요. 핚국이 참 살기

좋은 곳이죠?‛ 아잒리의 설명이 뒤따랐다.

이해는 했지맂 차에서 내리게 되니 이놈의

날씨가 사람을 잡아먹을 듯하였다. 절슺없이

젅심승사를 하고 방콕 도심을 가로지르는

짜오프라야강을 따라 유람을 하였다. 맀치

이탕리의 베니스를 연상슸키는 풍경이었다.

유람을 맀치고 우리는 방콕슸내에서 2 슸갂 절도 쇼핑슸갂을 포함핚 자유슸갂을 가질 수

잇었다. 나는 탕국 전은이든이 다니는 쇼핑가가 제읷 궁금하였다. 팀원든과 함께 슸장으로

든어가니 맀치 동대문 슸장의 보세상가든과 유사핚 구조로 된 곤목이 나왔다. 우리는

그곳에서 저련핚 가격에 티셔츠를 구입핛 수 잇었고, 가격 흥절도 해 본 수 잇었다.

6 슸경 모두가 핚곳에서 모여서 방콕 공항으로 이동을 하였다. 공항에서 요기를 하고

탑슷수속을 하였다. 이제 남은겂 하나. 아잒리와의 작벿이었다. 16 읷갂 잠자는 슸갂을

제외하고 항상 행복배낭의 옆을 지켜주었던 그 였기에 행복배낭 팀원든의 아쉬움은 이루

맅을 핛 수 없었다. 하지맂 기약되어 잇었던 작벿이기에 모두가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잇었다.

또핚 우리가 그에게 죿수 잇는겂은 탕국에서 산 선물도 아니었고, 직젆 맂듞 옷도 아니었다.

핚국에서 가지고 온 슺라면, 짜파게티, 오짓어짬봉 등등의 핚국 읶스턴트 음승이었다.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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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다이어리 슸갂 내내 핚국 라면에 대핚 그리움을 맅씀하셨기에 행복배낭의 야승이었던 라면을

선물하게 되었다. 아잒리와의 작벿후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여 핚국을 향핚 첫걸음을 하였다.

비행기 탑슷후 팀원든 모두는 핚동앆 맅이 없었으며 16 읷갂의 꿈과 같은 슸갂든을 자슺의

앨범속으로 차곡차곡 찿워 놓고 잇었다.

Good bye Thai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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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 누군가의 작은 지붕이 되어

-경영학부 04 박 산-

고작 영화 두어 편 볼 시간 날아온 것 뿐인데...

그 사이 태양은 시차적응 못하고 이미 벌겋게 익어버린 내 뒷목을 한나절 째 노려보고 있다.

본래 태국이라는 나라가 덥다는 것은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배운 터. 오기 전에는 오히려 기대까지

했건만, 지금은 한국에서 단추 구멍 사이로

파고들던 한 줄기 시린 바람이 그립기만

하다. 역시 ‘따사롭다’ 와 ‘무덥다’

는 다른 말 인 것 같다.

나는 지금 슬레이트 부엌 지붕 연결작업

을 하고

있다. 약 3미터 위 엉성한 나무 뼈대에

몸을 맡긴 채, 높이를 알 수 없는 ‘진짜

하늘색’ 지붕 아래 앉아있다. 이 곳은 태

국 소수민족 중 ‘몽’족의 아이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는 곳 이다. 이들이 누구인지, 왜 여기에 생활하는지에 대해서는 어제 한 시

간 동안 볶은 땅콩같이 땅땅하고 까무잡잡한 남자에게 한 시간 동안 들었지만, 정작 내가 왜 여

기서 이러고 있는지는 아무도 얘기 해 주지 않는다. 이 곳의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 같은 그 볶은

땅콩 아저씨도 (이 곳 사람들은 그를 ‘아잔 리’ 라고 부른다) 그저 ‘어떻게’ 를 외칠 뿐

‘왜’ 를 말해 주지 않는다. 아마 모르는 것 같다.

올 해 27살. 대학교 4학년. 취업 준비생.

미래 백수. 현재 내 몸에 붙어있는 대한민국

사회 라는 녀석이 붙여준 이름표들이다. 애

써 떼어 버리고 아닌 척 해도 끈질기게 따

라오는 귀찮은 이름들. 언제부턴가 이 녀석들

과 잠시나마 떨어져 있고 싶을 때마다

‘여행’이라는 건들바람이 가슴에 스며들

어 나를 이 곳 저곳 들어 날랐다. 어찌 보면

아직 못 다 분 바람이 가슴에 남아있었기

에 지금 내가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

만 같은 시간, 나는 어떻게든 떼어버리지 못해 안달인 반면 나와 같은 이름표를 가진 다른 사람

들은 벌써 오래 전부터 더 멋지고 새로운 이름들로 덮어쓰기 위해 노력 중이다. 누군가는 책을 들고,

누군가는 남들이 원하는 숫자를 잘 보게 해 준다는 명사( 名師 ) 앞에 앉아 새 이름을 쓰고 있다.

하지만 내 손에는 지금 조선시대 대장간에서나 만들었을 법한 망치 하나만 쥐여져 있다. 코로

어이가 웃음을 타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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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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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똑바로 안 해!‛ 아니나 다를까 깨랑 한 소리가 들려온다. 볶은 땅콩 아저씨다. 이 사람

말고도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이번 여행을 위해

모인 이들이 저마다 무슨 생각으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를 물거나 해치지 않을 것만은

확실하다. 착한 사람들이다. 착하다? 맞다, 우리는 착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엉덩이 한 쪽 붙일

곳 없는 이 곳까지 와서 이렇게 생전 해 보지도, 앞으로도 4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하

지 않을 일을 ‘봉사’ 라고 부르며 하고 있지 않은가. 어째든 ‘노동자’ ‘관광객’ 보다는

‘봉사자’ 라는 말이 듣기에는 좋다. 어째든 지금 내 옆에서 슬레이트를 올리고 있는, 건너편

건물 안 축축한 이끼들의 보금자리에서 벽과 함께 페인트 범벅이 되어가고 있는 14명의 ’착한

봉사단원’ 들이 그나마 지금 내가 지붕 위에 올라온 이유가 되어주고 있다. 나는 이 사람들과 함

께라서 좋다, 즐겁다, 그리고 고맙다.

질투를 잔뜩 품은 여자의 눈빛처럼

내리쬐던 태양도 어느덧 불그스레 고

개를 돌리고 있었다. 지붕 너머로 털

털대는 차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왔나 보다. 최불암 아저씨가 나오던

드라마에서나 본 듯한 깡통 차 안에

서 아이들이 쏟아진다. 그 좁은 곳에

참 많이도 탔다. 내리자 마자 저마

다 할 일을 찾아 쏜살같이 흩어진다.

그 중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내가 작

업하고 있는 부엌 쪽으로 온다. 개중 철이 들어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가 나를 올려다 보더니 수줍게

웃으며 작은 손을 모은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저 세상의 모든 행복을 머금은 듯한

맑은 두 눈을 바라보며 ‘Hi’ 라는 인사를 어색하게 올린 입꼬리 너머로 흘린다. 바보 같다. 한숨

만 나온다. ‘싸왓디캅’ 한 마디를 못해서. 그래, 인사말은 그렇다 치자. 가시나무처럼 쭈뼛 대

는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뭔가? 비싼 등록금만 받으면서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차 안

가르쳐준 학교가 원망스럽기 까지 하다.

생각해보면 그 동안 살아오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눈을 진실되게

바라보며 얘기한다는 것은 어렵다. 누군가의 순수한 마음을 알고, 그 것을 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언제나 남이 만들어 놓은 유리창을 통해 세상을 보았고 다른 사람들 역시 그렇게 나를 봐 주기를

바래왔다. 그러니 작은 눈빛에 담겨있는 이 아이의 순수함에 눈이 시려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것

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아이는 어색하고 퍽퍽한 내 인사를 받고서는 부엌에 있는 친구들에게 달려

가 한껏 웃으며 재잘거린다. 내 인사가 맘에 들었나 보다. 아까와는 다른 따뜻한 미소가 가슴에

서 얼굴로 번진다.

식당 안이 분주해진다. 저녁식사 시간이다. 하루 종일 손에 붙어있던 연장들도 자기 자리로 돌아

가고 14명의 손님들이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각자 앞에는 투박하지만 사람냄새 나는 음

식들이 놓여있다. 나는 지금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도착하자마자 뱃속이 유난을 떤다. 사실 먹어

도 되는데 왠지 모를 이질감이 입에 맴돈다.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얼마나 큰 자만인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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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생각이 든다. 생전 처음 보는 이 에게 자리

를 내주고 자신들은 흙 바닥에 앉아 변변한

도구도 없이 손으로 밥을 먹는 아이들. 실제

이 아이들은 교육 이외에도 하루 세끼 먹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 곳에 모인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 앞에서 나는 지금 ‘안 먹을 수

있는’ 힘을 과시하고 있는 것 이다.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가슴에 쥐

꼬리만한 양심은 남아있나 보다. 미안한 마

음에 숟가락을 들어 음식을 입에 나르다 이내

내려놓고는 자리를 일어난다. 양심은 마음에 있지 입에 있는 게 아닌가 보다.

밥도 안 먹고 마땅히 할 일 도 없어 이곳 저곳 남는 시간을 밟으며 서성여본다. 학교 구석구석

아이들의 꾀재재한 웃음향기가 묻어난다. 그러다 문득 내가 올린 부엌 끝 지붕자락을 멀리서 바라

본다. 그 아래에선 식사를 마친 아이들 서 너 명 이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머리위로

석면가루가 내려앉을 것 만 같은, 잿빛 슬레이트 지붕아래 쪼그리고 앉아 고사리 같은 손을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자기 몸 보다 큰 솥을 닦으면서도 아이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그래,

저 웃음이다. 이방인 눈에 보이는 주변의 열악한 환경도, 작은 어깨에 짊어진 가난과 고달픈 인생

의 무게도 저 웃음을 지우지는 못했다. 저 웃음을 보기 위해 나는 지금 이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스

쳐가는 인연이지만, 저 티없이 웃는 아이들이 잠시나마 삶에 고단한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작은

지붕이 되기 위해 우리는 이 곳에 왔다.

돌아가는 길, 저마다의 끈적한 하루 속에, 차창 너머 지평선 끝에 걸린 붉은 노을이 눈부셔 두 눈

을 간지럼 핀다. 오늘도 여전히 뱃속은 안 좋지만, 유난히 가슴이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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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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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과 함께한 꿈 같은 날들 -경영학부 05 배 지영-

출발은 떨리는 마음으로.

4학년이라는 마음의 짐을 지고 시작한 태국 봉사활동. 준비기간까지 합하면 긴 여행이기에 한

국에 남긴 일들이 많아 무거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무거운 마음은 태국에서는 금세 사라졌

다. 태국의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가고 있는 내가 지금껏 무엇을 위해 그렇게

지내왔나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2월 1일, 드디어 출발!

비행기를 탔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공항에 내렸을 때 내가 17일동안 생활할 이곳의 느낌은

내가 느끼고 있는 기분좋은 햇볕 같았다. 워낙 따뜻한 곳을 좋아해서인지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몽족 아이들의 기분 좋은 웃음으로 행복해요!

둘 째 날부터 시작된 몽족 합숙소의 작업.몽족 합숙소의 아이

들은 기분 좋은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의 방에 페인트를

칠해주고 부엌의 지붕을 만들어주는 작업을 했다. 아이들이 예뻐

진 방을 보며 베시시~ 웃을 때는 아팠던 허리의 통증이 사라지

는 느낌이었다. 셋째날, 학교에서 돌아온 여자 아이들이 운동장

한 구석에서 막대기를 가지고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무를 휘두

르면 그 나뭇가지를 휙휙 뛰어넘는 놀이였다. 함께 하기 위해

끼여 노래를 잘 들어보니 ‘오씽 싼뜨 씨우, 오위 완휘 오 히우!’

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무슨 노래인지 내용은 모르지만 웅얼

웅얼 거리며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았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별을 헤며 밤을 지새우다…

직접 걸으며 돌아다닌 마을들이 기

억 속에 많이 남는다. 내 발로 걸어서

일까? 느낌이 다르다. 그 사람들이 생

활하는 마을들을 보면 새로움을 많이 느

낀다. 아카족과 라후족의 생활하는 방

식과 생활하는 곳의 차이를 몸으로 느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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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우리가 묵은 팔라마을에서 별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진다. 별

은 왜 저 하늘 위에 항상 있는데 우리동네에서는 잘 안보일까

… 이 예쁜 별들이 팔라마을 특별한 이유인 듯 싶다. 별을 보면

서 명훈 오빠의 한마디. ‚내가 왁스와 스프레이를 왜 가져왔을

까?‛ 사람이 별을 보면 철이 드나보다. 기억에 남는 대사였다.

마음속에서만 자리잡고 있던 말들이 나온다. 이게 별의 마력인

가보다.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드는 마력!! 우리는 한참 동안 별을

바라보며 서로를 더 알아갔다.

우리의 힘의 원천은 밥!

무서울 정도로 먹는다는 말이 어울린다. 팀원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그리고 즐겁게 일들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잘 먹고

잘 잤기 때문인 것 같다. 먹는게 남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껴보았다. 그리고 아무 탈 없이 잘 지내준 우리 팀원들에

게 고맙다. 그리고 나는 별로 먹지 않았는데 다들 나한테 많이

먹는다고 한다. 이상들 하다.

아잔리의 선물은 바다와 같지요.

아잔리가 우리에게 준 선물은 너무나도 크다.

친해지기 위해 우리를 거칠게 다뤘지만 그 속에서 더욱 확연

하게 보이는 아잔리의 마음이 따뜻하게 전해진다. 가장 와닿은

말은 ‚좌절은 사치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말.

‚목표를 정하라. 작은 성취감을 맛본 사람만이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 현실과의 벽에 부딪칠 때, 나는 얼마나 많은 좌절

과 포기를 해왔을까? 나 자신을 생각해보면서 하나하나 새겨

듣는다.

공항에서 우리 개개인에게 사진을 찍어주며 힘들어 죽겠다며

뭐라고 하던 아잔리의 모습. 하지만 끝까지 사진을 찍는 모습에

은근 귀엽다. 방콕에서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라고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할 때는 진지해진다.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는 아잔리. 우리는 그에게서 삶을 헤쳐

나가는 방법을 배웠다.

이별은 또 다른 나와의 만남으로 이어져요…

이별이라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다.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

면서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짧은 만남 끝에 헤어짐을 몇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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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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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했지만 익숙해지기는커녕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조금 더 긴 시간 함께 했으면 더 친해질 수

있었을텐데. 페이스 페인팅을 한 아이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사진으로 밖에 그 기억을 남길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지만 아이들에게 진정 즐거움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기회였기를 바란다.

17일간의 일정이 끝나고 아잔리와의 이별은 또 다른 느낌이다. 마치 이 느낌은 수련회에서 조

교와 헤어지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여기에 선생님과 헤어지는 느낌? 사람과 사람이 헤어진다

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이다. 다음 번에 아잔리를 만날 때는 아잔리에게 더욱 당당

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길러 나가야지.

그리고 또하나의 이별, 태국 생활과의 이별이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전쟁

시작이라고. 맞는 말이다.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아잔리의 말처럼 자

신의 업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태국에서의 일들이 내 머릿속의 생각의 물꼬를 터주긴 했지

만 정리되기 전까지는 내 머리속은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준비시간부터 하면 짧지 않았던 태국 봉사 활동!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내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과 천사들을 만나고 온 시간이었다. 우리 팀원들과 함께한 시간들은 생각하면 생

각할수록 나에게 힘이 된다. 모두모두 I ♡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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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 세상을 향해 „나‟ 를 외치다

-경영학부 05 김 경우-

짙은 어둠 속에서 저 마다 자신의 색을 내는 수많은

별들을 당신은 보았습니까? 매일 아침을 핸드폰이라는

감정 없는 물체가 아닌 생명의 소리에 맞이해 본 적이

있습니까? 15 박 16 일의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다른

세상을 보았습니다. 지금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그 때의 일들을 적으려 합니다.

희망을 준비한 행복배낭

우리 행복배낭은 너무나 개성이 넘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책임자가 필요하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제가 하겠습니다‛ 를 외치며, 각자 자신 있게 책임을 지려 했습니다.

너무나 다들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처음 준비를 할 때에 하려고 하던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특히 요리분과에서 하려고 했던 달고나 만들기와 인절미 만들기는

MT 때 이후로 저 멀리 아드로메다로 사라졌습니다. 서먹서먹했던 OT 때의 어색함은 뒤로하고,

한 달간의 빠듯한 일정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에게 익숙해졌습니다.

이성친구를 만나듯 설레는 맘으로

아직 해가 뜨지도 않은 짙은 어둠이 깔린 새벽. 우리는 모두 상기된 얼굴과 지친 몸을 이끌고

모였습니다. 모두 정신 없이 버스 안에서는 고개를 이쪽 저쪽으로 옮기며 졸다가 인천공항에

도착해서야 모두들 우리가 태국으로 봉사활동을 떠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기쁨과 설레는 얼굴로.

짐을 보낼 때부터 심상치 않았던 우리. 나이프가 걸리고, 노트북을 짐으로 붙이고, 캔 커피를 가지고

검사대를 통과 하려 하고… 무언가 순탄치 않은, 많은 해프닝을 낳을 것 같은 보름의 일정이

기대되었습니다.

태국과 아잔리와의 첫 만남

창 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녹색의 나무들. 그 속에 무리 지어 모여있는 빨간 지붕의 집을 보고

나서야 우리는 태국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주변의 알아들을 수 없는 아성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찌는 듯한 더위의 방콕을 지나 다시 치앙마이로 향했습니다. 방콕과는 다른 선선한

바람과 한산한 도시. 그곳에 우뚝 서있던 아잔리. 무언가 현지인 같고, 그 전에 들어서 상상했던

모습과는 다른 작은 체구. 세관과의 껄끄러운 타협. 과연 이 분이 우리 행복배낭을 한 층 성숙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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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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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도록 해주실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습니다. 트럭 뒤에 네모난 깡통을 얻은 듯한 차를 타고 우리는

백화점에서 처음으로 태국의 음식을 맛 본 후 호화로운(?) 호텔로 이동했습니다. 무언가 낯설고

불안한 만남. 태국에서의 하루 밤은 그렇게 저물어 갔습니다.

걸음마도 한 걸음부터, 일 시작!!!

풍성한 과일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 우리는 몽족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마주치는 출근길의

풍경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턱 막힌 모습이 아닌 그야

말로 한산하고,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는 태국사람들의 밝은

모습이 보였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두 패로 나뉘었습

니다. 페인트칠 팀과 지붕작업 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아

잔리의 한 마디 설명에 모두들 손과 손에 자신이 잡고 싶

은 도구를 가지고 이동했습니다. 묵묵히 페인트칠을 전문가

이상으로 하는 종훈 형, 여자아이들이 좀 더 예쁘고 밝게 자

라도록 문에 디자인을 하는데 열중하는 한나와 서정 쌤. 무

언가 서툴고 한 곳을 진지하게 꼼꼼히 칠하지 못하는, 그래

서 나와 더 통한 선아. 항상 밝은 모습으로 교실이 떠나가

라 웃는, 큰소리의 여왕 주영이, 묵묵히 엄마 같이 챙겨주며,

모두가 한 마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일하는 지영이. 이쪽저쪽 왔다 갔다 형들의 심부름을 모두

도맡은 막내 명훈이. 사진을 찍는 건지 일을 하는 건지,

하지만 보고 있자면 나도 같이 즐거워지는 명훈 형. 노

련한 솜씨로 우리에게 칠하는 것을 가르쳐 주신 처장님.

찍히면 죽는다! 한 곳만 무섭게 칠해서 결국 조금한 빈

틈도 없이 백색으로 도배해 버리는 상원이 형. 내 옆에

서 유쾌하게 웃으며 함께 벗이 되어준 수민이 형. 아잔

리의 구박에도 꿋꿋이 열심히 지붕을 쌓은 병현이 형.

아잔리를 유일하게 놀리면서 몸을 사리지 않는 부산사

나이 재흥이 형. 지붕의 작은 구멍도 용서하지 않는, 말

로 모든 것을 커버하는 나의 선임 산이 형. 한 번의 그

릇 된 선택으로 막내로 구박받으며 지붕 작업을 끝까지

한 나의 동기 현로. 이쪽 저쪽 지붕 위를 원숭이 처럼

넘나들며 작업을 지시한 아잔리. 페인트를 뒤집어쓴 우리. 검게 그을린 피부와 모두의 얼굴에서 흐

르는 땀방울이 모여서 우리는 멋진 지붕과 밝은 공간을 아이들에게 선물했습니다.

맑은 눈동자 속의 생기 있는 아이들의 모습

우리를 향해 ‚싸왓디캅‛을 외치며 뛰어오며 아이들. 우리를 알지 못함에도 경계심 없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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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의 눈빛. 아이들과 어떡해 말을 시작해야 할 지 걱정했

던 내가 이상해졌습니다. 아이들이 내게로 뛰어올 때 내

몸은 저절로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심이 닮긴 밝은 웃

음으로… 올챙이 송을 배울 때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열심히 자신의 몸을 움직이던 아이들. 클레이 선생님인 주

영이 보다 더 잘 만들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장미꽃을

만들던 아이들. 공부를 하고 와서 피곤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함께 웃으며 축구를 했던 아이들. 우리의 어설픈 태

국어 실력에 피식 웃으며 다시 친절하게 알려주는 아이들.

사소한 비눗 방울에도 신기함을 감추지 못하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 우리들의 먹을 것을 먼저 신경

써준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아이들. 하나하나의 눈망울이 모여 함께 있을 때 더 크게 빛나는

아이들. 이들에게서 우리는 희망을 보았고, 나눔을 배웠고, 순수함을 느꼈습니다. 그 동안 꽉 막혔던

생활 속에서 벗어서 아이들을 보고 나 자신의 무거운 짐을 씻어냈습니다.

자연으로 나를 던지다

놀라운 자연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 속에서 적응해서 자신들의 문화를 간직하며 살아온 소수부족들.

우리는 자연에서 있는 그대로 그들을 보고, 느꼈습니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자연

의 정지되어 있는 모습. 우리가 하이킹하면서 볼 수 있는 작은 역동감은 하이킹의 묘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저 멀리 보이는 우리가 지나온 구불구불한 길과 눈앞에 아무런 장애물 없이 보이는 저

멀리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소수부족마을에서 우리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많은

과일과 정성스레 내온 차, 그리고 갓 잡은 고기는 우리의 미각을 자극시켰다. 우리들의 너무나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아잔리는 한마디로 표현했습니다. ‚사람들의 무리 속에 있으면서 사람이 그

리워지기는 처음이다‛ 라고… 그만큼 우리는 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그들은 우리

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한창 일을 해야 할 시간에 웃고, 떠들며, 시원한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

는 사내들. 다른 한편에 열심히 밥을 하고, 일터로 나가서 뜨거운 태양 빛을 받으며 일하는 여자

들. 이 대조적인 모습이 우리와의 다름이고, 문화의 차이이며, 틀리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

의 입장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우리가 다르다고 느끼는 것. 이것이 그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이었습

니다.

세상을 향해 외치다. 나는 살아 있노라고

무엇보다 내 가슴에 포만감을 느끼고 온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아잔리와 함

께하며 그에게 동화되어 들었던 그의 말과 그의 삶의 모습에서 느낀 것이라고 말 할 것입니다.

아잔리는 누구보다 남을 생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사람들이 맞추어지게끔 리더쉽

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옆집 아저씨와 같은 훈훈한 웃음을 짓는 멋진 남자였습니

다. 이런 모습들만 이었다면 우리는 태국해외봉사활동에서 키 하나를 놓고 왔을 것입니다. 힘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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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일과를 마치고 오손도손 모두 모여서 듣는 아잔리의 담화는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를 통해 더

넓은 생각을 가질 수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으며, 내가 모르는 세상을

향한 눈높이를 올려주었습니다. 나는 흘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맞설 것입니다. 그리고 당당히

정상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나는 항상 느끼며 살아갈 것입니다.

추억은 사랑을 남기고…

공항에서 우리들은 모두 밝은 얼굴이었습니다. 저마다 이 낯선 땅 태국에서 자신의 인생의 목표를

다시 다지고, 아이들과의 함께한 시간 속에서 많은 것을 얻고, 나를 다시 한번 돌이켜 보는 시간

을 가진 듯 했습니다. 아잔리와의 아쉬운 이별. 언제나처럼 구수하게 웃던 아잔리. 갈 때도 너무

나도 쿨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만 흔들던 아잔리. 우리는 그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제는 낯설지 않은 태국에서 각자가 얻은 것을 이제는 만들어 가며…

행복배낭의 여행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더 넓은 세상을 보았고,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했으면, 사회인으로 발 돋음 하기 전에 잠시 break time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희망합니다. 우리가 마음만은 언제나 함

께하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함께 공유하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웃음을 나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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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 태국에 간 선아

-화학공학부 07 김 선아-

흐르는 대로 인생을 살아온 내게도 작은 꿈이 있다. 힘

닿는 대로 사람들을 도와주고 사는 것이 내 꿈이라면 꿈이

다. 하지만 나는 별다른 특이한 능력도, 재주도 없었다. 거

기다가 몸도 튼튼한 편이 아니라서 ‘내가 누군가에게 힘

이 될 수 있을까.’란 걱정을 안고 태국에 봉사를 가게 되

었다. 가기 전에 나는 취업을 할까, 대학원에 가야 할까,

난 뭘 잘 할 수 있을까…… 대학교 3학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근심걱정이 모두 제 것인 냥 머릿속이 고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토익 공부를 하며 취업걱정을 하

고 살고 있다. 하지만! 다녀온 후 나는 확실히 또 다른 나

로 바뀌었다. 뭐가 바뀌었는지, 우선 우리의 참으로 스펙타

클한 태국봉사활동을 되짚어보고 다시 얘기하기로 하자.

공항에서부터 난관…

6시간의 비행기는 너무 지루했다. 그러나 우리를 기다리는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아이들을 보러

가기 위해 이쯤이야, 하면서 어떻게든 버텨냈다. 치앙마이에서 주영이와 내게 우리가 한국에서

가져온 박스 중 세 개가 주어졌다. 세관검사대에서 오빠들은 다 통과하고 우리만 남았다. ‘우리

도 그냥 넘어가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있었는데, 박스를 열어보겠다더니 갑자기 사인펜은 TAX

를 부과해야 한다고 사무실로 오라고 한다. 태국 세관직원도 짧은 영어, 주영이도 나도 짧은 영어.

도통 말이 안 통하는 것이다. 결국 공항 밖의 아잔 리를 불러서 도움을 청했다. 다행이 우리 돈 2

만원 정도의 세금으로 협상(?)을 했다고 한다. 입국자들이 세관직원들에게 말을 좀 잘하면 통과해

준다고 한다. 한국에선 규율대로 세금을 받는데, 태국은 세금을 더 받기도 하고, 그냥 통과시켜주기도

한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가 잘못한 줄 알고 얼마나 졸았는지. 공항에서부터 힘들었지만 앞으로 17

일간의 더 험난한 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얀 페인트처럼 더욱더 밝게 자라나길

태어 나서 처음으로 잡아본 페인트 롤러. 보기에는 쉬워 보였는데, 실제로 해보니 팔이 여간 아픈

게 아니었다. 하지만 몽족 아이들이 즐겁게, 밝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직 그 생각으로 열심

히 칠했다. 우리의 힘을 모아 처음의 어두웠던 합숙소는 어디로 가고 하얘진 아이들 합숙소의 안을

보니 정말 뿌듯했다. 아이들이 밝은 곳에서 생활하면서 하얀 페인트처럼 더욱더 밝게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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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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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빠마이 공동체의 싱크대 작업 역시 처음 하는 노가다(?) 작업에 꽤 힘들었다. 나무도 해보고, 시

멘트도 나르고, 싱크대 밑판 작업도 도와줬다. 싱크대도 많이 없어서 아이들이 불편하게 지낸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그래도 한국 봉사자들이

많이 도와주러 와서 공동체가 점점 더

살기 편해진다는 생각에 나도 덩달아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게 힘도 없는데 무얼 도울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내게 정신력도 힘인 것을

알았다. 정신력으로 있는 힘껏 노력봉사를

했다. 아이들이 우리가 페인트칠한 합숙

소, 시멘트로 만든 싱크대를 잘 썼으면 좋

겠다.

아이들과의 때묻지 않은 사랑 나눔

우리는 여러 마을을 다녀왔는데 어딜 가도 다들 그 마을에 함께 살았던 사람처럼 너무나 반겨

주신다. 아이들은 옆에 와서 손잡아주고 자기 노는데 데리고 가거나 남자아이들은 축구하고 노는데

금방 끼워준다. 특히 나를 잘 따라주었던 몇몇 아이들이 기억이 많이 남는다. ‘몽’은 몽족 어린

이 합숙소에서 만난 친구 인데 15살이라 그런지 의젓하고 동생들을 챙겨주는 언니였다. 그래도 낯

선 이방인이 오니까 부끄러워하면서도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우리에게 태국어도 가르쳐주면서 금

방 친해졌다. 만남은 잠깐이었지만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웠다.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하고 한

번이라도 더 안아주는 몽이었다. 산족 마을들은 소수민족어를 써서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럼

에도 아이들은 우리와 금방 친해졌다. 대야에 비누방울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시중에 파는 비

누방울이 아니라 가루세제로 만든 비누방울이었다. 피부에 좋지

않고 따가울 텐데 아이들은 즐겁게 노는 모습이 여간 천연덕스

러운 게 아니었다. 그렇게 노는 곳에 가서 그저 같이 놀아주면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되었다. 옆에 있는 아이에게 손만 내밀면

우린 친구인 것이다.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나는 이런 것이 나눔이란 생각이 들었

다. 사랑이란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봉사하러 갔지만 정말

큰 사랑을 받고 왔다. 그저 손 한번 잡아주는 것, 한번 안아주

는 것, 밝은 미소를 보여주는 것이 그 아이들에게는 사랑이 되

었고, 그 사랑 나눔은 어김없이 다시 우리에게 환한 미소로 돌

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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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몸의 상처와 마음의 상처

미얀마 고아원 아이들은 특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미얀마에 갈 당시 사랑니가 너무 아파서

솔직히 신경이 많이 곤두서 있었다. 가는 길이 멀고 버스도 너무 불편하고, 덥기까지 했다. 미얀

마의 고아원에 도착해서 좀 쉬고 있는데 1시간 뒤에 온다던 아이들이 막 우리 곁에 오는 거다.

당황하면서 뭐부터 할까, 어떤걸 할까 우왕좌왕하던 기억이 난다. 음악분과인 나는 개구리 송과

리듬악기, 즐겁게 춤을 추다가 노래, 아리랑을 함께 했다. 다른 건 그럭저럭 넘어갔는데 아리랑 노

래를 리듬악기로 장단을 맞추는데 입이 안 열어지는 거다. 사랑니 때문에 노래를 부르기 어려운

상태였다. 하지만 아리랑을 어려워하는 아이들과 하

나가 되어 아리랑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통으로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웃으면서 아리랑을

함께했다. 해맑게 웃으면서 따라 하는 아이들도 있고,

어렵다는 표정으로 아리송한 표정인 아이들. 나도 덩

달아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태국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그깟 사랑니가 좀 아

프다고 이렇게 힘든데, 아이들은 내전으로 인한, 혹은

에이즈로 인해 부모님을 여윈 마음의 상처로 얼마나

외롭고 힘들까.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내 몸의 작은

상처가 부끄러워졌다. 그 아이들이 힘내서 웃으면서

사는 걸 보고 난 힘을 얻었다. 더 열심히 살아야지.

그래서 더 많이 도와줘야지.

함께한 봉사단원들과 생활하면서도 많은걸 배웠다.

꿈에 대한 열정과 집념, 주어진 일은 책임감을 가지

고 열심히 하는 성실함, 어떤 일이든 웃어 넘길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음. 특히 항상 웃을 수 있는 마음가짐을 정말 닮고 싶다. 아잔 리에게서도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내가 뭘 해야 즐거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태국에 가게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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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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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 리에게 들은 말에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무얼 해야 할 지보다 뭘 하든 열정이

부족한 것이었다. 이제부터 나는 뭐든 열심히 할 것이다. 그러다가 보면 내가 가슴 뛰는 일을 찾

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이 든다.

우리 팀 이름은 행복배낭이다. 처음에 봉사하러 가기 전부터 예상한 것이지만, 역시 그랬다. 희

망 싣고, 사랑 담아, 행복을 전해주러 갔다가 우리가 전해준 행복보다 더 많이 받아서 왔다. 아

이들의 별보다 빛나는 초롱초롱한 눈망울, 해맑은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나에겐 그것이 그 무엇보

다 큰 행복이었다. 아이들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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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 살아있는 물고기가 되자

-인문학부 04 신 명훈-

해외 봉사 와 국내 봉사

많은 이들이 태국 ‘해외’ 봉사활동을 다녀온 저에게 묻습니다. ‚ 왜 굳이 해외로 봉사를 하

러가? 우리나라에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사치 아니야?‛ 라고 말입니다.

저 역시도 이번 봉사활동을 가기 전에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번 봉사활동을 경험하면서 봉사라는 것은 해외든 국내든 지역이 중요치 않다는 사실을 배우고 왔습

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된다면, 제가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소중하다는 사실을 배우고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자이크(?)다!?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꼭 한번쯤은 해보았던 모자이크 작품이 우리 태국 봉사단 15명을 보면서 항

상 떠오르곤 합니다. 여러 신문지 조각을 찢어서 하나의 멋있는 작품을 완성하는 모자이크처럼 저

희는 서로 각기 다른 개성과 소질을 지녔지만, 그 어느 풀보다 끈적한 열정과 우정으로 제 1기 태

국 해외봉사단이라는 그 어느 모자이크 작품보다 멋진 하나의 멋있는 작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슴이 울리는 소리를 들어 보셨습니까?

이번 봉사활동을 가기 전에 제가 목표로 삼았던 문구입니다. 과연 내가 이번 태국 해외 봉사

활동을 하면서 가슴이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26년이라는 세

월을 살면서 초조함과 긴장감 때문에 가슴이 저에게 울부짖은 적은 있어도, 다른 이유로 저에게 소

리치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 저에게 진정으로 가슴이 울리는 소리를 들

어보았냐 혹은 가슴이 뛰는 일을 해보았냐고 누군가 묻는 다면 저는 당당하게 ‚네 있습니다‛

라고 대답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 라고 누군가 더 묻는 다면, 저는 자신 있게 ‚태국해외 봉

사 활동‛을 통해서 입니다 라고 대답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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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과 차이를 배우고 왔습니다.

태국에서 수많은 소수민족을 만나고 봉사 활동을 하면서 처음에 저는 그들과 우리는 같지 않구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저희를 이끌어 주었던 아잔리

선생님의 말씀을 듣게 되면서 저의 그러한 생각이 얼마나 잘 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

다. 우리들과 어울리면서 같이 웃고, 봉사활동을 하는 우리를 위해 다같이 도움을 주었던 그들을 보면

서 그들은 단지 우리와 조금 다를 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을 남겨준다는 것

이번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저에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육체적으로 봉사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

렇다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니거나 이동하는 그런 험난한 일정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바로 제가 만

나고 보았던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남겨준다는 압박감 이었습니다. 멀리 한국에서 봉사

활동을 하로 온 저로서는 그들에게 무언가를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큰 압박감이 봉사 내내 작용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그런 압박감이 얼마나 무지 했던 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매우 단

순해 보이지만 그들과 함께 진정으로 어울리고 함께 한다는 것! 그것이 그들과 저에게 가장 큰

‘남김’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미안함을 느꼈던 나라 미얀마

태국에서 수많은 소수민족들을 보고 아이들과 학생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지만, 저는 미얀마 고아원을 방문했을 때를 가장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내전으로 인하

여 전쟁 고아가 된 아이들이 저희가 그곳에서 그들과 같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6시간의 이동 내내 힘들다고 생각하던 저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같이 있고,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즐겁게 우리를 맞아 주었던 미얀마의 고아원에서 저는

그들과 1분 1초라도 더 있어주지 못하고 더 해주지 못해서 아직까지도 미안합니다.

많이 보는 것이 아니라 많이 느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이번 태국봉사 활동을 가기 전 유럽여행이나 미국 그리고 심지어는 태국을 그

전에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되돌이 켜보면 그 때 당시의 경험은 단지 많이 보는

것에 불과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태국봉사활동을 통해서 저는 많이 보는 것 뿐

만이 아니라 그 만 큼 많이 느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이번 태국 해외 봉사활동은 저에

게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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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살아 있는 물고기가 되자.

17일간의 태국 해외 봉사기간 내에 저희를 이끌어 주셨던 아잔리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물고기와 죽어 있는 물고기의 차이는, 바로 죽어 있는 물고기는 물이 흘러 가는

대로 가는 반면에,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이 흐르는 방향을 역행하여 간다고 말입니다. 이번 겨울

방학 동안 저는 이제 죽어 있는 물고기가 아닌 살아 있는 물고기가 되기 위한 초석을 다졌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많이 배우고 느끼고 저 자신을 되돌아 보기에 더할 나위 없는 경험

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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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찾는 여행

-기계공학부 03 문 종훈-

가끔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누군가의 상처가 쉬 아물기를 바라면서.

또 가끔 우리는 행복이라는 희귀한 순간을 보내며

멈추지 않는 시간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어떤 시간은 사람을 바꾸어 놓는다.

어떤 사랑은 시간과 함께 끝나고

어떤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드러나지 않는다.

언젠가 변해버릴 사랑이라 해도

우리는 또 사랑을 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처럼.

시간이라는 덧없음을 견디게 하는 것은 지난날의 기억들...

『드라마 ‘연애시대’ 中 은호의 독백』

‚You raise me up~♬‛ ‚다시! 다시!‛

슬금슬금 짜증이 밀려온다. 미묘한 불협화음.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귀와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계는 어느덧 석양을 가리키고, 아까부터 간지럽던 목에선 쇳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레슨은 거듭되지만, 하나 된 목소리는 아직이고, 제자리이다. 연습실의 공기가 무겁게

느껴진다.

쑥스럽고, 어색했던 통성명의 시간은 언제였던가 싶게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간 스키

없는 스키장 단합대회도 갔다 오고, 간단한 태국어 시험도 치렀으며, 매일같이 공연준비가 진행

중이다. 하루의 모임이 끝나면 4 학년의 양심이 이끄는 대로,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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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페이지만 너덜너덜한 토익책을 습관적으로 꺼내 든다. 그리고... 잠이 든다.

전역 후 학교에서 보낸 3 년의 시간은 학점, 오로지 학점 이였다. 강의실보다 동아리 방에,

교수님보다 선배들과, 전공서적보다 악보를 들고 있던 신입생의 원죄는 몇 번의 장학금을 받고, 몇

일씩 CAD 실에서 밤을 새며, 수도 없이 조교를 찾아 다니는 대가를 치른 후에야 면죄부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 쌓아온 인간관계는

‘A’를 향한 전우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대학의 낭만

이라는 거... 그런 건 없었다.

‚낯선 환경에 제 자신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모임에 참여하게

된 공식적인 내 입장은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해외봉사활동 이였지만,

내가 원했던 건 이력서에 들어갈 이색해외경험과 봉사활동시간 단 ‘한 줄’ 이다.

<무료하다. 학업, 취업, 토익... 흔해빠진 푸념의 굴레에 질려버린 나머지 내 삶을 방관하고 있다.

나는 지금 잠을 자고 있다. 하지만... 꿈을 꾸진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다. 뒤척뒤척. 대략 다섯 시간후면 출발. 마음의 짐을 덜지, 더할지 모를 곳으로

나는 간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밀면서 서글플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저 담담했다. 거울을 보니

고등학교 때와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쑥스러운 표정이 더해졌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래도

왠지... 머리를 자꾸 쓰다듬게 된다. 아무것도 아니다. 별거 아니다. 끝까지 같이 있어준.. 가슴으로

포옹해준 친구가 고맙다.

2005 년 1 월 31 일 새벽 3 시. 군입대를 앞두고.』

돌이켜보면 군대에서 다짐하고 다짐 하던게 있었다. 뭐든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때 다짐 했던 건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나는 어쩌면 넘쳐나는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 어영부영. 마치 수능 끝난 수험생처럼 허탈감과

무료함에 쩔었었다. 인디언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어차피 될 일은 되게 되어있다.’

무료하다는 건... 어쩌면 그간 너무 달려온 관성에 대한 반증은 아닐까? 라고 자신을 합리화

시켜버린다. 내 인생 마지막 여름방학을 날린 변명으로.

,<2009 년 한여름의 어느 날>

그리고 뒤늦은 사춘기의 감성으로 기록된 지난 여름의 청승에 대한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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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무 즐거워.‛ 요즘 그리고 오늘의 나는 풍선으로 개를 만들고, 점토로 연필꽂이를 만들며,

동요에 맞춰 율동을 하고, 공연을 위한 노래를 하고 있다. 서툰 손짓과 어설픈 몸짓이지만, 처음

의도와는 달리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분명 즐기고 있다. 전우가 아닌 학우들과 함께. 같은

학교라는 울타리에 있으면서도 생전 처음 보는 친구들과 함께. 조금씩 이곳에 스며들고 있음을

느낀다.

‘나 지금 엄청 피곤함’, 목소리와는 달리 하나같은 얼굴들. 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도 불협화음이고 제자리걸음이며 2% 부족하다. 연습실의 무거운 공기를 힘겹게 들여

마시며 힘주어 외친다.

‚다시 합시다! 다시!‛

별 헤는 밤

을씨년스럽던 인천공항의 날씨가 무색할 만큼 무더운 날씨다. 방콕에서의 습한 공기는

아니였지만, 꽉 막힌 몽족 기숙사 내벽이 하얗게 번질수록, 눈가에 스며드는 땀이 시야를 뿌옇게

만든다. 따끔한 눈을 비비며 붓과 밀대를 이용하여 벽 구석구석에 페인트칠을 한다. 잿빛 시멘트가

환해지길 바라며.

베트남 전쟁 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몽족. 산 속에 사는 몽족 후손들을 교육하기 위한 공동체.

‚우리는 사람에 투자를 합니다.‛ 몽족의 역사와 공동체의 의미를 나직이 읇조리는 아잔리의

말을 뒤로한 채, 무거워진 마음을 어쩌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먹고 자며 생활하는 그곳은 시멘트

벽에 말라붙어 있는 시멘트 뭉치만큼이나 퍽퍽하고, 우울하다. 잿빛풍경은 어느덧 떠올리기 싫은

장면과 오버랩 되어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를 떠오르게 한다. 이런 일차적인 감상은 하교 후

환하게 웃으며 공동체로 돌아오는 아이들을

만나보며 산산이 무너져 내렸지만,

페인트칠 이외에 이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 것이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고맙게도. 몽족 공동체의 작업이 마무리

되던 날, 이름 모를 한 아이의 선물을

받았다. 자그마한 곰 인형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내 이름, 그리고 ‘I love

you'가 또박또박 적혀 있는 쪽지가 담겨

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이름 모를 감정에 울컥하였고, 아이의 마음씀씀이에 고맙고도 미안한

감정이 느껴진다. 정말 아무것도 해준게 없는데, 네 이름조차 모르는데... 그리고 태국의 날씨가 더

이상 덥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원숭이한테 안경을 빼앗기는 몹쓸 수모를 당한 다음날. 험한 산길을 돌고, 흙먼지를 먹으며 산골

팔라 마을을 방문하였다. 한탕을 꿈꾸며 목숨 걸고 마약을 운반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딸자식을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화장실에 휴지가 없지만 손으로 밥을 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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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사람들이 사는 곳. 이국적이다 못해 이색적이고

특이하다고 생각된 산골마을은 의외로 평화롭고, 한적한

시골마을의 정취를 내뿜었다.

‘왜 다를까? 라고 묻지 말고,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을까?’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며, 거꾸로 내 자신을 돌아보라는 가르침을

받았지만, 여자들은 밖에서 일하고, 남자들은 집에서

놀고, 먹고 있으며, 게이라는 문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모습은 한국 안경을 벗고, 태국 렌즈를 낀 내 눈 이였지만,

그저 의아할 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이 이유가

있었을까? 귀납되지 않는 물음에 무릎을 꿇고 그저 정겨운

정취를 즐긴다.

결론적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팔라 마을에서의

공연이 끝났다. 살짝 민망함을 달래며 울타리 뒤에서

하얀 연기를 내뿜는데, 담배연기 사이로 한 눈에 담기

어려운 장관이 펼쳐진다. 수없이 많은 별들이 쏟아졌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별들은 그렇게

빛나는 것일까. 별자리들은 또렷이 자태를 뽐내고, 기약 없이 별은 떨어지며, 가슴에 잔잔한

파동을 새기며 은하수는 흘러간다. 눈이 시린 것도 잊은 채, 장엄한 광경 앞에서 숙연해진다.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고

낮은 단 하나뿐

하지만 밝은 세상의 빛은 사라진다

저무는 해와 함께』

오늘 처음으로 천 개의 눈을 가졌다는 버딜론의 밤을 보았다. 수많은 눈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단

생각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이 위대하고, 찬란한 순간을 만끽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다행이다.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근원 모를 별빛이지만, 눈

안에 담긴 별은 눈부시고 당당하였다. 나 역시 이 세상 구석구석 날아다니며, 항상 꿈과 낭만을

잃지 않고 살아보리라 다짐한다. 의미 있는 존재로서.

계산된 미소의 나라

향신료의 독특한 향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고, 현지인과 다름없는 피부톤이 되어 갈 때 즈음,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어느 누구 할 것이 없이 친절하다는 점과, 인사를 주고

받을 때는 반드시 미소로 응답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차를 타고 이동하다 손을 흔드는 낯선

이방인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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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대국의 저력은 다름 아닌 국민에 있었다. 낯선 사람에게도 먼저 밝은 미소를 던질 줄

알고, 외국인들을 적대시하지 않는 태국인 특유의 국민성이 친근감으로 다가왔다. ‘한국 방문의

해’라는 거창한 타이틀만 몇 년째 앞세우고 있지만, 방문한 이들에게 정작 어떠한 감동을

주었는지는 우리가 한번 되짚어 봐야 할 부분이다. 유례없이 20~30 년이란 짧은 기간 내에 세계

10 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룩한 한국이지만, 지나친 경쟁과 탐욕, 그리고 성장욕구가 순박했던

우리네 정서를 빼앗아 간 것은 아닐까? 감동을 이끄는 친절은 억지로 교육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상품으로까지 이어지는 관광대국 태국의 저력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메짠 공동체에서의 담장작업이 마무리 될 즈음, 내려 쬐는 한 낮의 후덕한 기운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사고가 났다. 공들여 세운 담장이 작업하는 장면을 촬영하던 명훈이를 향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다행히도 재빨리 피한 바람에 가벼운 타박상 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순간 등골과 간담이 서늘해 졌고, 토끼눈을 뜬 채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그 순간에도

‘마이 뺀 라이 캅’ 같이 작업하던 일꾼들은 얼른 마무리하고 축구나 하자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미소를 건넨다. 하. 하. 어찌 아니 웃을 수밖에.

하지만

이렇듯 평상시엔 온순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생활하지만,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소리를 지르며

다혈질적인 응대를 할 경우, 매우 거칠어질 뿐더러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곳이 바로 태국이다.

가난과 부유함에 경계를 지을 수 없는 엄청난 빈부격차, 수많은 자동차와 인파, 버스와 자동차

그리고 소형 삼륜차들이 함께 엮어내는 엄청난 소음, 70 만 명이 넘는 매춘부. 그렇지만 바로 길

건너엔 경건한 사원이 도처에 널려있는 곳이 태국이다. 경건한 전통과 아시아적인 혼돈의

진풍경이 상징적으로 잘 그려지고 있는 곳이 바로 태국이다. 태국을 바로 보고, 미소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선 오랜 시간, 종교, 경제, 사회, 문화, 노동에 대한 시각 등등을 총망라하여

그들과 동화될 때 비로소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 얼키설키 매여 하늘을 뒤덮고 있는

전신주들만큼 미소의 의미에 대한 혼란이 생긴다.

관광객 주머니 속의 돈이 모두 빠져 나올 때 까지 미소를 잃지 않는 나라. 친절한 미소

이면에는 철저한 계산이 배어있는 나라. 내가 정의하는 미소의 나라 태국이다. 아직까지.

추억은 향기를 남기고

온 몸이 뻐근하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는 부연설명을 더하지 않더라도, 장시간

버스이동 간 바라본 미얀마의 풍경은 타는 듯한 갈증에 흙먼지를 뒤짚어 쓰고 있다. 화전으로

일궈진 황량한 산림이 삭막하고 서글프다.

우두둑 우두둑. 관절 하나하나가 막 오케스트라 협연을 시작할 즈음 고아원에 도착하였다. 건조한

첫인상과는 달리 국경을 넘어서도 사람들 입가에 번지는 잔잔한 미소는 이내 친근함으로

다가왔다. 해맑은 아이들의 표정은 싱그럽기까지 하다. 이미 자본주의의 물결이 휩쓸고 간

산골마을에서 만났던 아이들과는 달리, 공산진영의 아이들은 사진을 찍을 때 익숙한 포즈를

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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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납치범 소리를 들어가며 예쁘장한 아이를 끌어안고 다닌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숙소로

향했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고. 정국이 불안하며, 독재정권의 압력이 피부로 느껴지는 곳이다.

어두운 이 공기가 우리 아이들만은 피해가기를. 국민의 배고픔과 아픔을 모른척하고, 결혼식에 수십,

수백억을 쏟아 붓는 답답한 현실보단 아이들이 맞이하고 받아들이는 현실은 오늘 보다 희망차기를.

국경을 건너 달려온 시간이 무색하게 짧게만 느껴지는 시간. ‚이거 잘 가지고 있어.‛ 몽족

공동체에서 마음을 짠한게 했던 곰 인형과 아쉬움을 남기며, 지금도 눈에 선한 고아원 속 풍경을

가슴 깊이 새겨둔다.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후덥지근한 방콕의 공기를 몰아

쉬며 두 눈을 감는다. 만나자 곧

이별이라 했던가. 지난 일들이

꿈처럼,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난생 처음 손으로 밥을

먹었고, 코끼리를 타고 마을을

돌았다. 번잡했지만 토속적인

문화를 잘 보존하며, 가는 곳곳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야시장에서의 미소를 통해

태국의 경쟁력을 보았다. 눈부신 네온사인의 화려함처럼 여기저기서 꿈틀거리지만 도요타

자동차만이 활개 하는 자본의 움직임을 보았다. 또한 이면에서는 사람의, 사람에 위한, 사람을

위한 인속촌(人俗村)을 보며 자본에 내재된 가슴 저미는 잔인함을 엿보았다. 페인트 칠, 시멘트

작업, 담장 쌓기. 오래간만에 땀의 노동에 대한 소중함,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돌아온 인천공항엔 거짓말처럼 눈이 쌓여있고, 공기는 차가우며 날씨는 여전히

을씨년스럽다. 퉁명스런 공항세관과 무표정한 사람들. 한국으로 돌아왔음을 새삼 느낀다. 지난

2 주간이 마치 꿈속을 거닌 듯,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는다. ‘행복배낭의 일원으로 땀 흘리며

태국을 누비고 다니던 것이 나인가, 이렇게 옷깃을 여미며 한국을 어색해하는 것이 나인가.’

주변은 출국 전 그때 그대로이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군가의 말처럼 변했고, 다름을 느끼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일정한 거처도 없이 이동도 많고, 쉼 없이 다양한 만남이 이어졌지만, 내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꿈과 계획에 대해 고민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었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한 좀 더 뚜렷한 그림을 그렸고, 그 동안 마음 속 짐이었던 목표는 수단이 되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밝고, 크게 트였다. 소명을 찾고, 결심한 일은 끝까지 가보라는 아잔리의

말을 다시금 되 새겨본다. 그리고 행복배낭 일원으로 보낸 지난 한 달여의 시간은 단지 이력서

한 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된장찌개 한 그릇 후딱 비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후덥지근한 공기와 밥에서 은근히 풍기던

태국의 독특한 향이 벌써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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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산한 바람과 느긋한 여유 그리고 사람

-법학부 04 노 병현-

태국해외봉사활동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2009 년

겨울방학이라는 나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한 시기에 행한 최선의

활동이라고 말하고 싶다. 04 학번이라는

대학생으로서 적지 않은 나이에 아직

졸업까지 3 학기가 남은 나에게

있어서는 앞으로서의 진로 혹은 취업에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한 시기였다.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인턴을 경험해 본다던가, 학교에서 주최한 영어집중교육과 같은 활동 혹은 다음 학기의

전공과목을 공부하는 등 여러 가지 대안이 있었다. 그 취직을 향한 다른 발걸음을 제외하고

'태국해외봉사활동'을 택하게 되었다. 솔직히 태국해외봉사활동을 가기 전 날까지만 해도 나의

선택에 의심을 하였다. 이것이 과연 지금 이 시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가? 이

물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지금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나의 선택에 단 0.1%의

후회도 가지고 있지 않다.

정말 봉사활동을 가기 전 최승대 간사님

아니 승대형이 말해준 이야기가 이에 대한

보다 정확한 대답이 될 것이다.

"봉사활동은 주러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얻어 올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나는 사람을 만났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혹은 수천명의 사람과 지나친다. 그 많은

사람과는 큰 교감을 느낄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태국에서 수백명의 사람과 작지만

교감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치앙마이에서

만난 공동체사람들, 그리고 치앙라이에서 만난

소수민족사람들, 또한 미얀마에서 만났던 와족

사람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단순히

얼굴을 보고 지나쳤다는 것이 아니라,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마음으로 통할 수

있었다. 교육봉사 중 클레이만들기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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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아이들과 눈과 눈이 마주치며 함께 클레이를 만든 것, 처음으로 만난 소수민족인 몽족 공동체에서의

지붕작업 중 함께 손을 맞추었던 아잔몬트리 부부, 많은 소수민족 마을들을 함께 거닐며 한국말을

잘해 우리 말로 대화를 했던 아조 등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비록 피부색도 다르고, 생김새도

달랐지만 우린 생각을 하고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같은 사람이었다. 또한 나는 봉사활동을 가기

전 준비기간 50 여일과 17 일간의 봉사활동의 기간 중 14 명의 친구를 얻었다. 아잔리의 말처럼

나이가 달라도 생각을 공유할 수 있으면 그 또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이젠 믿는다. 함께 8 시간

보내고 또한 태국에서는 24 시간을 함께 먹고 자고 생각하며 나는 또 다른 믿을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회는 나이가 들어갈 수록 쉽게 오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는데,

이번의 활동 기간동안 너무도 소중한 사람들을 만난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두 번째로, 인생에서 나의 모토라고 생각될 만한 사람을 만났다. 부끄럽게도 항상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했던 나였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 그리고 내가 얻을 수 있는 가치만을 생각하며

인생을 살아왔던 나에게 '아잔리'라는 한 사람의 존재는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상원이형의

말처럼 나 또한 기독교에 대해서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하였다. 매체에서 보았던 종교인들의 비리

혹은 범죄를 보고 과연 종교의 존재 이유 조차 의심하였다. 하지만 아잔리는 실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보지 않으면 믿기 힘들만큼의 일을 몸으로 행하고 있었다. 분명 17 일간의 짧은 시간으로 한

사람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항상 그는 우리에게 17 일 동안 눈으로 몸으로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였다. 그것은 나눔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나에게 나눔의 미덕을

가르쳐주기 위해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모두 개개인이 다른 것을 느꼈을 것이지만 그는 우리

팀원 모두에게 각기 다른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그에게

나눔이라는 큰 마음의 양식을 배웠고, 또한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존재, 그것의 가치 등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나와 다른 무엇인가를 인정하는 것' 머리로는

이해하기 쉬울지 모르나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 말을 그의 삶을 보고 다소나마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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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다. 나와는 분명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아잔리는 이제 나에게 있어서는 스승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셋째, 나는 태국에서 여유를 배웠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조금이나마 뒤쳐져도 '빨리빨리'란 말을 사용해가며 그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또한 뛰어가고 그 모습을 보고 다른 이조차 뛰는 한마디로 무한한 경쟁을

하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 나 또한 그들과 함께 뛰었다. 아니 그들 보다 앞서기 위해서 뛰었다.

하지만, 태국에서 보았던 소수민족들의 삶과 그리고 그 곳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생활에선

'여유'가 있었다. 분명 그들 또한 각자의 위치에서 바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 일상생활

속에서도 작지만 자신들의 취미생활 혹은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있었다. 최소한 그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곳의 여유를 배우고 그렇게 생활해 볼 수 있었다. 물론 앞으로 시간이 가면 그

여유를 잊어버려 원래대로 다시 바쁜 삶 속의 나로 다시 돌아 갈 지 모른다. 하지만 그 여유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과 여유를 즐길 줄 알고 있으나 단지 자기 시간조절을 위하여

안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태국으로 출발하기 전 많은 시간을 같은 목표를 위하여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생각을 나누며 함께

뛰어서 최선의 결과를 이루어낸 우리 14 명의 친구들에게 무척이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들 때문에 힘들었던 일정과 더운 날씨를 버티어내고 재미있게 그리고 크게 다친 사람없이

건강하게 지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14 명의 친구들과 이서정 선생님 그리고 우리 법학과의

전경근 교수님께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이번 만남이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친구들과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그러한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들과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나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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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 배낭 가득 사랑 담아

-자연과학부 03 안 상원-

시작은 늘 설렌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 전날 설렘 이후

이렇게 설레어보긴 처음이었다. 나에게

태국 해외 봉사활동은 내 생애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그런 기회였다. 2 월

1 일, 이 설렘을 안고 나의 17 일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어느 여행이나

출발은 늘 정신이 없다. 우리도 예외는

아녔다. 짐 문제로 옥신가신 할

때쯤이면 우리 명훈이는 나를 웃을 수

밖에 없게 만들어 주었고, 정말 진진한

표정의 현노는 다기능 칼로 나를 당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출발했다.

아잔리가 누구야?

치앙마이에 도착한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30 도를 넘는

더위도, 우리를 인솔해줄 아잔리도, 아닌 세관 이었다.

봉사활동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태국 아이들에게

줄 선물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세관은 할 일을

해야 된단다. 손가락마다 굵은 반지를 낀, 참 열심히

일하는 세관원들 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태국에서의 첫

난관에 봉착했었다. 우리가 세관원들과 시름하고 있을 때

쯤 어디서 현지인이라고 해도 믿어 줄만한 사람이

나타났다. 아잔리란다. 사실 우리와 아잔리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썩 유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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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 36℃

더울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더울 줄은 몰랐다. 구름 한 점 찾아보기

힘든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은 나의

새하얀 피부를 순식간에 검게 만들어

현지인화하고도 남을 만한 위력이었다.

그 태양빛 아래서 우리의 첫

봉사활동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할

일은 몽족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기

위해 함께 지내는 기숙사와 같은

공동체의 숙소 환경개선 작업이었다.

병현이와 재흥이를 필두로 한 지붕 작업 조, 한나와 주영이를 필두로 한 페인트 작업조로 나뉜

우리는 3 일간 아이들이 지내는 숙소를 가꾸어 나갔다. 우리 대부분이 처음 해 보는 작업들이라

익숙하지 못해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4 시 반쯤이면 어김없이 우리에게 미소를 선물하는

아이들을 보는 재미에 힘든지도 모르고 봉사활동을 했다.

나는 소수민족이다.

치앙마이를 떠나 치앙라이로 향한 우리는 본격적으로 소수민족들을 만났다. 한국 기독교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지만 그들은 소수민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 어느 한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물론 그들 나름의 삶이 있고 이유가

있겠지만 그들을 보는 나의 눈에는 어느새 연민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미안했다. 소수민족이

아니라서 그들에게 봉사활동을 갈 수

있었던 나였기에 미안했다. 그런

삶이 당연한 것처럼 살아가고

있기에 그들에게 더욱더 미안했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가 인정 받을 수

있는 곳이 종교뿐이라서 그곳에 모여

사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아이들도 우리에게 천사의 미소를

안겨주는 그런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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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이기적인 문명

봉사활동을 진행하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문명의 이기라면?

우리가 없어도 그들은 오래된 옛날 그들의 선조들부터 지금까지 살아왔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문명을 이식시키는 일이지 않을까? 내가 카메라를 들이밀면 어디서

배웠는지 아이들은 승리의 V 자를 그리곤 했다. 하물며 비누방울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 있기도

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보면서 과연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잘 하고 있는 일인가 고민하고

고민했다. 사실 지금도 여기에 대한 답이 없다. 남자는 하루종일 누워서 뒹굴거리고 여자는

아이를 엎고 밭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시선에서는 잘못된 일이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비위생적으로 화장실이 없고 식기가 없고 씻는

이유조차 모르는 것은 알려줄 수 있지만 마약단속을 빌미로 이유없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유없이 죽임을 행하는 문명의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지 소수민족 그들에게는 잘못이 없고

또 이런 이유로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봉사활동을 마친 지금까지도 문명이 우선인지

악습이라 불리는 전통이 우선인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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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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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별

태국에서 참 많은 별을 보았다. 나의

별도 보았고, 아잔리의 별도 보았고, 내

친구들의 별도 보았다. 26 년을

살아오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

스스로에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사실

돌아오는 그날까지만 해도 그랬다.

태국에서의 경험은 나를

변화시켜주었고 내 행동의 이유를

제공해 주었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하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잔리라는 큰 별을 담을 수

있었다. 나는 기독교를 싫어한다.

하지만 이영진 선교사는 좋아한다.

존경한다. 그는 꾸밈이 없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 그에게는 내가 재산일

것이고 나에게는 그가 재산이 되었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아잔리에 대한

궁금중, 사실 불신에 가까운 이 궁금증은

이 사람에 대한 확신이 되었다.

17 일간 힘들었던 일정은 사실

그에게는 일상이었고, 어쩌면

휴식이었을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아온

아잔리를 나는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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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아직 목마른 미얀마.

태국은 잘 사는 나라이다. 이번

봉사활동을 계기로 알게 된 사실이다.

하지만 미얀마는 그렇지 못하다. 한 국가

안에 7 개의 정부. 미얀마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왠지 모를 긴장감에

사로 잡혔다. 미얀마에서 만난 전쟁

고아들은 나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어쩌면 가장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우리가 머문

3~4 시간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간 그

아이들은 미얀마에서 태어나 문명이 저지른 과오를 아무런 반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태국에서보다 더 큰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지만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환경적 요인으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재흥이와 병현이가 붙여준 물음표, 느낌표, 쉼표, 마침표 아이들은 지금도

잘 지고 있는지, 그 아이들이 가장 궁금하고 보고 싶다.

가득찬 배낭

17 일의 여정이 그렇게 빠르게 지나 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사실 조금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행복배낭, 우리들 배낭에 사랑과 희망을 담아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많은 것들을

배우고 아이들의 사랑을 담아오자는 의미에서의 행복배낭. 내 배낭은 출발할 때보다 돌아올 때가

더 무거웠다. 나는 아이들의 사랑이 담겨있어서 더 무거웠던 것인지, 더 많이 도와주지 못한

아쉬움에 어깨가 무거워졌는지 모르겠지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우리 팀원들의 표정들을 보면서

우리가 정말 많은 것을 배워왔구나 하고 생각하게 했다. 어떤 이는 아쉬움을 배워왔을 것이고,

어떤이는 뜨거운 열정을 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사랑을 배워왔다.

Page 94: happy backpacker

행복배낭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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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od to Great

-사회과학부 07 홍 수민-

별이 빛나는 밤, 가만히 땅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땅과 함께 하나의

호흡을 하였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함께

꿈을 나눴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순례자임을 알았습니다.

긴 밤인 줄 알았던 우리의 여행은 마치

선잠을 청했던 어린 시절 기억으로 남아

지금은 흐릿해져 가고 있습니다. 모든 걸

해낼 줄 알았고, 세상을 평정하려고 했던

열정은 현실과 타협하느라 자리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하늘에 별은 지금도 가득하지만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하늘을 보려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야 하지만, 저의 시선은 늘 땅에만

박혀있습니다. 작은 변화에 몸을 움츠리고, 어깨를 펴고 산으로 오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올라가면

내려가야 할 것임을 알기 때문에 두려웠습니다. 두려움이 저를 미숙한 애송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홍수민입니다. 아니라기에 아닌 척 해봅니다. 나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믿습니다. 결국 나만 겁쟁이였나 봅니다. 나만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리다 지칩니다. 혼자 사랑하고, 혼자 기대하고, 혼자 기다리고, 혼자 후회하며,

혼자 슬퍼하는 그런 외로운 사람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 가만히 땅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 전까지

기준과 원칙이 있다면, 충분히 혼자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는 동료일 뿐, 나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으로 ‘내 것’을 위해

욕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더욱 성장해서 나를

보여주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실수와 불행을

바라며 살았습니다. 가진 것 보단 못 가진 것에 불만을 갖고 살았습니다. 만족 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바라본 나는 한 없이 초라한 존재였습니다. 욕심은 점점 더 큰 욕심을 만들었습니다. 큰

욕심은 집착을 만들었습니다. 도전보다는 안주하길 좋아했습니다. 걸어가기 보다는 쉬어가길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꿈을 꾸기보다는 꿈에서 살기를 바랐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 가만히 땅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그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도화지에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별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는 듯 보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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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별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내가 움직이는 건지, 별이 움직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해 왔던 것, 지금 하는

것,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을 느끼기 위해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시간이 흘러 해가 뜨면

지금 보이는 별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자리를 잡을 것입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라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입니다. 어두웠기 때문에 보였습니다. 밝아야만 좋은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별이 빛나는 밤에, 하늘과 친구와 땅과 나누었던 대화입니다.

‚제가 태국을 다녀온 것이 사실인가요?‛

2 월 1 일 출국하여 17 일 귀국하였고, 치앙마이 에서 시작하여 방콕에서 끝맺음을 한 기억이

모두 가슴 속에 담겨있지만, 솔직히 잘

몰랐습니다. 정말 태국에서 보낸 추억이

제가 한 경험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인지 궁금했습니다. 홀로

음악을 듣고 생각하며 많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가볍게 메모를 하기도

하였고, 태국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어느덧 귀국한지 보름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태국은 잊혀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뜩 이전의 모습과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행복배낭에서 홍수민을 찾았습니다. 내

안에 있는 나는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배려라는

포장지를 사용하였지만 ‘나’라는

주인공은 빠져있었습니다. 내가 보여주는

이미지를 생각하기 보다는 다른 눈에 비친 모습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스스로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았습니다. 안 어울리는 옷을 입어도 칭찬받기 위해 벗을 수가

없었습니다. 웃음은 가식이었습니다. 칭찬은 말 뿐이었습니다. 대화는 일방적이었습니다. 그것이

무난한 사람의 행동방식이라고 착각했습니다. 낯선 태국이라는 세상에서 도움을 전도하러 간

17 일 동안은 지금까지 해오던 허식이 사라졌습니다. 원하고 필요한 것만을 따라갔습니다. 마음이

전하는 솔직한 모습에 귀 기울였습니다. No 라고 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싫다고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원했지만, 행동으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와

닿았습니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었습니다.

행복배낭에서 꿈을 찾았습니다.

‚내 꿈은 100 명의 행복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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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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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리께서 하신 말씀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제 꿈은 그냥 잘 먹고 잘 사는 것이었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집에서 벤츠타고 다니는, 목표가 없는 생각뿐 이었습니다. 돈만 잘 벌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지만 돈으로 행복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잔리와 함께하면서 본 그의 모습은 항상 도전이었습니다. 게임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열악한 팀으로 구성되었지만 이기기 위한 승부에서는 누구보다

집중하였습니다. 승리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저는 꿈만 갖고 목표를 갖지

않았습니다. 단순하게 많음을 추구하였지, 어떤 것을 많이 가질지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치열하게 싸우기 위해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아잔리는 작은 일이라도 끝을 보려는

사람이었습니다. 단순한 동경이 아닌 구체적인 꿈을 만들고 작은 성취감으로 선교 활동하는 그런

양반입니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물고기가 아니라 흘러오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연어처럼 싸우는

아잔리를 보면서 제 가슴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뛰고 있었습니다. 제 꿈은 ‘체육공원’을 만드는

것입니다. 가족이 함께 쉴 수 있고 사회인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공원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잔리가 보여주었던 도전을 제 것으로 승화하여 저도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언젠간 다른

청년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는 아저씨가 되고 싶습니다. 다음 세상을 위해, 100 명의 행복을

책임지는 사람이 저 또한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행복배낭에서 전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항상 이것저것 재느라 시도조차 하지 못한 일이

많습니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다 보니 큰일은 엄두조차 못 내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핑계 대며 돌아가기 급급했고, 다시 조우하는 날에는 지워버리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결국

지우려고 했던 흔적은 또렷하게 새겨져 마음속에서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제자리걸음만 하였습니다. 막상 한 걸음만 앞으로 나아가면 그 다음은 쉽다는 것을

알기까지 너무나 오래 걸렸습니다. 하나의 움직임을 위해 많은 착오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합니다. 이제야 알았지만, 지금 알았기에 더 많은 걸음을 앞으로 나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아잔리와 함께 한 약속을 하나씩 지켜나가면서 작은 행복을 느낍니다. 작은 행복이기 때문에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아잔리가 말 했듯이 먼 훗날엔 반드시 큰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고

말입니다.

아직 태국에서의 흔적을 노트에 채우지

못했습니다. 게으름이라는 습성은 아직 제

옷깃을 잡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노트를

비워 놓은 것이 나태함이라고 보기보다는

지난 태국의 행복을 펜으로 적어내려

가기엔 노트가 부족할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펜을 잡고 17 일간의

순간을 정리하려고 책상에 앉습니다.

그리고 혼자 미소 지으며, 아잔리에게

기도해 봅니다. 전능하신 신도 아닌, 동네 아저씨 같은 그 분께 기도해 봅니다.

‚저도 당신처럼 소명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지켜봐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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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 제가 오늘도 하나 배웠네요

-미디어학부 07 편 주영-

-단절에서 오는 작은 행복-

더 맋은 것을 얻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 불편하지맊 MP3, 노트북, 휴대폰 등

젂자기기를 읷젃 가져가지 안았다. 그래서 난 젂자기기와 아니 좀 더 명확히 말해

외부와 단젃되었다. 무엇보다 내 삶을 지배했던 휴대폰. 그 휴대폰이 그 동앆 얼마나

나의 무료함을 달래주었고 또 얼마나 맋은 사람든과의 읶연의 끈이었는지.. 휴대폰이

없는 지금. 평소처런 휴대폰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그 시갂에 얼마나 더 맋은 것을 보고

또 느끼는지 모른다.

-이해-

태국은 부족국가다. 서로 다른 문화를 나와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고 이해하는 것을

이번에 배워가야 하는 것 같다. 우리 행복배낭 팀원든도 서로 이해하며 이번 봉사홗동

잘 마무리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핚국에 가서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을 키워야지.

몇 년 젂에 '모듞 사람을 사랑하자'가 새해다짐이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어느새부터 난

좋고 싫음이 붂명해졌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맋이 생겨버렸다.

성모마리아나 예수 같은 포용력이 필요핚 게 아니다. 다맊 내겐 '그럯 수도 있지 뭐'하는

작은 이해심이 필요핚 것이다.

-진심-

아직 마음을 다 열지 못핚 것읷까. 망설읶 맊큼 아쉬움은 더 크게 남는다. 아이든을

생각하기 젂에 나 자싞부터 생각했고 그래서 결국 짂심을 다하지 못했다. 어쩌면

아이든의 끝없는 숚수함 앞에서 지레 겁부터 먹은 것읶지 모르겠다. 다가서는 것 새삼

깨닫는데 참 어려욲 읷 같다. 처음 본 사람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다고 자부하던

나였는데 약갂의 센스있는 말장난이면 뭐듞 맊사 오케이였는데. 말이 통하지 안는

이곳에선 말보다 행동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어려웠다. 더 맋이 손잡아주고 더 맋이

앆아줬어야 했는데... 먺저 내 마음부터 열고 짂심으로 다가가서 앆아주자. 이롞은 쉬욲데

실젂에서 난 그저 쭈뼛쭈뼛 거릴 뿐이다. 짂심이 중요하다 뭐듞.

–업(소명)-

수공예 문화단지 티크나무 갤러리를 방문했다. 나무 하나로 작품을 맊드는데 6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핚단다. 그든의 직업정싞. 장읶의 숨결. 그리고 아잒리가 말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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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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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 얶젠가 영화평롞가 심영섭 님을 읶터뷰핛 때 그 붂이 그러셨다. 가슴이 뛰는 읷,

돈을 앆 받고도 핛 수 있는 읷, 밤새서 핛 수 있는 읷. 그럮 읷을 자싞의 업으로

삼으라고. 밤새워 동영상을 맊드는 읷. 끄적거리며 뭔가를 맊드는 읷. 심지어 미디어학부

과제를 하는 읷든이 내겐 그렇다. 먺 길을 돌고 돌아 이 자리에 왔고, 이젠 이 읷을 내

업으로 삼아 지켜나가야 핚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이제

구체적으로 파고든기맊 하면 된다.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그 꿈을 포기하지맊

안으면 얶젠가는 꼭 이룬다. 희미하지맊 붂명히 반짝이고 있는 수맋은 별든을 보며 내

꿈도 희미하게 하지맊 붂명하게 빛나고 있음을 되새겨본다.

-봉사-

태국해외봉사. 내가 이곳에 지원핚 동기?

처음 해보는 것에 대핚 무핚핚 호기심.

그리고 열정. 봉사의 „봉‟자도 몰랐던

내가 봉사란 „내것을 내어주는 것‟이라는

아잒리의 말에 어느새 크게 공감을 하게

되었다. 내가 앉고 있는 이롞대로

마음을 열고 짂심으로 다가가 „내것‟을

내어주기. 그게 물질적읶 것이듞

사랑이라는 마음 하나듞! 14+a 명의

사람든이 같은 마음으로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이룬다는 것. 참 멋짂 읷이다.

시멘트를 바르고 모듞 게 다 난생 처음

해보는 읷이지맊 그래서 어려웠지맊

모두가 힘을 모아 결국은 하나의

결과물을 맊든어 냈다. 사랑젂하기.

여행보다 더 값짂 이름. 봉사. 내가

아끼는 반지를 선뜻 내밀게 된 숚갂

조금씩 내가 변해가는 구나 싶었다.

나맊 생각하던 내가 내 것맊 챙기던 내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 읷까. 사실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말하긴 남 부끄럱고 그냥 아이든이 좋다. 그 숚수핚 눈망욳이, 밝은 미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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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고아원의 예쁜 눈망울-

너무나 예쁜 아이든. 몇몇의 아이든을 애정결핍 때문에 떼쓰고 욕심을 부리기도 했는데

그래서 더 마음이 짞했다. 테테, 고니, 나베, 읶나 등등 내 손을 꼬옥 잡고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든. 그곳에서 하룻밤 묵는 죿 앉았는데 갑자기 짐을 싸서 갈

죾비하라기에 급 이별을 했다. 그래서 난 마지막까지 아이든 손을 놓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고새 또 몇 시갂 맊에 정이 든어서는 발걸음을 떼기가 너무 어려웠다. 원래

애든을 좋아하긴 하지맊 날 너무나 잘 따라주고 함께 싞나게 춤추며 놀다가 훌쩍

떠나려니 참... 마음이..그랬다... 더굮다나 엄마아빠가 없는 젂쟁고아든이라 우리를 더더욱

반기고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뭐랄까. 짂짜 괜히 내가 엄마라도 된 느낌이랄까..

보고 싶다. 마음이 아프다. 짞하다. 부디 삐뚤어지지 안고 예쁘고 밝고 착하고 걲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며..

-해피바이러스-

소수민족을 맊나러 가는, 맊나고 나오는 트럭위에서 난 먺지바람을 맞으며 또 뭐가

그렇게 좋다고 싱글벙글~. 선아는 내게 „조증‟이 의심된다며 핚국가면 짂짜 병원 핚 번

가보란다. 내가 앆 가면 자기가 의뢰하겠다고. "제 친구가 이상해요!! 13 박 14 읷 동앆

웃음이 끊이질 안아요, 기붂이 항상 좋아요!!"하고. 명훈 오빠도 내가 늘 밝은 게

참싞기핚데 보기 좋다며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란다. 글쎄. 난 그저 읶생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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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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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엄마아빠 걱정 앆 시켜드리려고 학교에서 혹시나 무슨 읷이 있어도 늘

웃으며, 웃는 연습을 하며 집에 든어갔다. 그게 습관이 되어서 누구에게나 늘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읷부러 더 애쓴다. 그러다 보니 점점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나쁜

읷은 잘 까먹는다. 긍정적읶

생각이 자꾸맊 좋은 읷을

부르는 것 같다. 남든이

보면 생각 없이 산다고

뭐라고 그럯짂 모르겠지맊

이게 내 장점이다. 그래서

난 앞으로도 쭈욱~ 이렇게

나답게 살렦다.

밝게 긍정적으로 그렇게!

그럮 의미에서 차가 고장

나서 멈춖 도로 위에서

싞나게 춖 뽀삐뽀삐는 내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누굮가 „편주영‟을 떠올릴 때 내 웃는 얼군이 먺저 떠오르는 그날까지. 헤헤~

편주영화이팅!

-포기와 좌절은 없다-

강물의 물고기 중에 죽은 놈과 산 놈을 어떻게 구별핛까?

먺저 죽은 놈은 대가리가 물이 흐르는 방향대로 그냥 흘러갂다. 하지맊 살아서 뛰는

놈은 대가리가 물이 흐르는 방향을 향해 거슬러 올라갂다. 우리의 읶생도 마찪가지다.

읶생이라는 물살이 막 밀려올 때 우리는 살아있으니까! 그 읶생을 향해 부딪쳐 나가야

핚다. 가는 길에 핚번 목표를 정했으면 그것을 이룰 때까지 포기와 좌젃은 없다. 나는

평소 도젂을 즐거워핚다. 하지맊 좌젃을 몰라도 포기를 즐겨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맊

앞으로 포기를 모르는 삶을 살려고 핚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내읷이면 귀국이다. 오늘이 마지막 밤이라 동그랗게 둘러앇아 돌아가며 이야기를 했다.

난 또 눈물부터 나와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맊 결롞은 너무 좋은 사람든을

맊나 너무 좋은 경험을 하고 갂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여러 명의 사람든이 모여서

이해하고 양보하며 같은 목표를 즐겁게 이루고 돌아갂다는 것에 뿌듯하다. “읶생은 작은

읶연든로 아름답다.”고 했다. 또핚 여기서 했던 다짐든을 잊지 안고 실천해서 앞으로

나의 스승 아잒리에게 부끄럱지 안을 읶생을 살아야지. 행복배낭 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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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 행복을 담은 행복배낭

-기계공학부 04 박 재흥-

꿈과 희망을 그들에게 주려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내가 그들에게서 얻은 것이 더욱 많았다.

미얀마는 현재 정부군과 반정부군이 대치되어 있어 지금도 총과 칼이 아이들의 심장을 노리고

있는 나라이다. 2월 12일 우리는 미얀마의 고아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수원인 학교에서 부산에

위치한 집을 왕복한지도 6년이 되어 가는 나에게 있어 3시간의 버스이동은 별 것이 아닐 것이

라는 생각으로 버스를 탑승하였다. 하지

만 30도를 웃도는 더위와 버스내부를 가

득 채운 사람들로 인해 고아원으로 이동

하는 내내 사우나의 한증막을 방불케

하였다. 고아원에 도착함과 동시에 행

복배낭 팀원들이 전부 교회 바닥에 드

러눕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30분만 쉬

어도 좋다는 지시와 함께 달콤한 휴식

을 취한지 10분쯤 지났을까 아이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리기 시작하였다.

‚아~ 왜 벌써 오지? 좀더 쉬면 안되나?‛ 하는 생각으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 뿌리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를 향해 뛰어들어오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나 외부인에 대한 거

리낌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순간 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내가 지금 미얀마에 와서 무엇을 하

고 있는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아이들의 밝은 미소는

육체적 피로로 인해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한 순간 녹였다. 그리고 2시간 가량 이어진 아이들과

의 율동시간은 나의 개인적인 힘듦을 엔도르핀으로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과

교육봉사의 시간을 가졌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서로에게 선물을 하였다. 행복 배낭은 희망과

사랑을 한국에서 실어 현지인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일차적 목표였다. 하지만 현지에서 내가 생

각하게 된 것들과 어린 아이들이지만 그들에게서 받은 삶에 대한 자세는 평생을 두고 간직할 나

의 재산이 되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7일째가 되는 날 행복배낭은 빠마이 공동체에 짐을 풀게 되었다. 태국의 소수민족을 위해서 한국

인들과 현지인들이 함께 힘을 합쳐서 만든 단체 이다. 단지 의식주의 해결을 위함이 아닌 계몽

으로 그들의 미래를 점점 더 밝게 만드는 것이 설립목적이었다. 빠마이 공동체 교회의 한 켠에 는

한국인을 기리는 추모의 글과 사진들이 가득하였다. 그날 저녁 행복배낭은 인솔자인 아잔리를 통해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알 수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김상열 열사는 20세의

나이에 태국으로 봉사활동을 와서 죽음을 맞이 하게 되었다. 빠마이 공동체의 입구로 차량을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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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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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도로를 세우다가 운명을 달리 하였다고 한다. 아잔리는 김상열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

면서‚죽음을 맞이하는 준비를 하라!‛고 행복배낭에게 당부하였다. 사람은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

지만 죽는 것은 그것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한다. 흔히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현재 매년 11

월 첫째 보름날이 되면 김상열 열사를 추모하기 위한 음악회가 소수민족 자체적으로 열린다고 한

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오랜 시간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의 이름은 빠마이 공동체와 그 주변의

소수민족들에게 기억되며 그로 인해 한국인에 대한 신망 또한 많이 높다고 한다. 현실에 만족하

기 위해서 눈앞의 이익만 쫓아 지내는 나의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 짐을 느꼈다. 26세의 삶을 살

아오면서 한번도 죽음을 준비해 보아야 된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성공을 화폐의 가치로 혹은 명예의 정도로 생각한 스스로의 사고를 좀더 폭넓

게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위한 삶보다 남을 위한 삶이 훨씬 값지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낮에는 빠마이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학생들과 어르신들을 위해서 젊은이들의 손이 필요한 곳에서

도움을 드렸고 밤에는 우리가 그들의 터전에서 생각을 넓히고 가슴을 키우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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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 17일, 길고도 짧은 꿈나라 여행

-사회과학부 09 이 명훈-

태국봉사단에 지원합니다!

율곡관PC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때였다. 수업은 하나도 못 알아듣겠고 컴퓨터로 수업을 하던지

라 열심히 딴짓을 하며 놀고 있었다. 학교 홈페이지를 구경하는데 태국 해외봉사단을 모집한다는

글이 보였다. 여느 대학교 1학년생과 다름없이 노는데에만 관심을 두었고 항상 노는 곳만 찾아 다

니던 나는 봉사라는 원래의 목적인 봉사단의 본질 따위는 무시한 채 해외에 놀러 간다는 생각만

하고 신청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일이 접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보고 급한 마음에 바로

수업이 끝나자마자 당일 시험 보는 퀴즈공부

는 버려둔 채 지원서를 작성하고 사진도 찍

고 토익 성적표도 준비하였다. 교수님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교수님이 안계셔서 당황도

했지만 운이 좋았는지 모든 게 시간에 맞춰

져 겨우 지원할 수 있었고 서류전형과 면접

에 당당하게 합격하여 막내인 09학번으로

태국봉사단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준비~~~~~~~~~~~~~~~~~~~~~~~

처음 모두를 만난 건 시험기간인데 이게

왠 일! 제일 어릴 거란 건 당연히 알았지

만 다른 팀원들과 나이차가 꽤 컷다. 내 바

로 위에 형이 05학번이라니.. 05학번이면

내 기준에선 큰 선배인데 요기선 내 바로

윗 남자선배가 05학번이었다. 다른 팀원들 물론 더 선배들. 이번 팀에서 어떻게 지내야 할 지

앞이 깜깜했다. 일정표를 보니 한달을 연습하고 준비하라고 하였고 내 허튼 생각 이였던 놀러 가

는 것이 아닌 꽤나 힘든 봉사가 될 거라고 하며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겁을 줬다. 한 두 명 빼도

바로 다음 대체자로 바꿔버리면 된다는 말과 함께.. 과연 무슨 준비를 하는데 한 달이나 필요할까

싶었고 노는 것이 아니잖아!!!!!라는 생각도 했다. 방학 전에도 모인 적이 있긴 하지만 실제 연습

을 하기 위해 모인 첫날, 회의를 하는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1학년 때 조별과제가 나오면 서

로 하기 귀찮아 빼려고 노력하는 모습만 보았는데(본인이 주로 그랬다), 봉사단 팀의 회의가 시작

되자 자신이 잘하는 부분에서는 자발적으로 나서 일을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열심히 해야

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고 최대한 참여하고 의견을 제출하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첫

날의 열정만큼 모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협동했으며 지각비를 걷어 같이 밥도 먹고 엠티도 가며

서로 친해졌고, 교육봉사의 준비들은 모두 힘들게 생각하기보단 즐기는 듯한 놀이로 생각하며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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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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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한 달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고 나중에는 오히려 부족한 시간이 아쉬워 더욱 열

심히 연습하고 준비하였다.

출발!

우리의 주요 봉사내역으론 노력봉사였다. 노력봉사의 의의는 실제 페인트칠과 벽 쌓기, 지붕작업

등등 실질적으로 만들어진 물질적인 것 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행복배낭을 하기 전엔 항

상 그런 ‘정말 해외 봉사로서 큰 도움을 주고 싶다면 봉사단으로 가기보다는 차라리 그 봉사단으

로 가는 돈과 비행기 값을 현지 아이들에

게 잘 쓸 수 있도록 지불해 주는 것이 더

큰 의미를 가지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

고 있었다. 그러나 봉사단으로 다녀오고 겪

은 노력봉사의 의미는 정말 크다. 첫 번째

로 노력봉사의 의의는 목표치를 설정하여

그에 도달함으로써 성취감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언재나 아잔리께선 목표치를 달성

할 수 있을 만큼 일거리를 제공했으며 예

정된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을 때는

다 끝낼 수 있도록 스케줄을 조정하여서라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끔 해 주셨다. 내가

생각한 두 번째 의의는 노력봉사를 통한 본

인의 사랑의 배움이다. 노력봉사를 하고 또

는 하는 도중에 아이들의 개구진 표정을 보

면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뭔가 더 해주고

싶어진다. 노동의 강도가 강력할수록 이런 사랑을 느끼는 마음도 강렬해지며 우리는 그것을 통해

사랑을 주는법을 배우게 된다. 나도 그런 사랑을 배웠고 세 번쨰로는 어린이들이 받는 사랑이다. 그

들도 우리가 주는 방식의 사랑을 천천히나마 이해하게 될 것이며 그를 통해 큰 의미를 가지고 배

우게 될 것이라 믿는다.

교육봉사

교육봉사도 역시 노력봉사처럼 물질적인걸 만들어준다는 점을 뺀다면 결국 같은 봉사였다. 어쩌

면 직접 어린 학생들과 안 통하면서도 통하는 대화를 하면서 나누는 감정의 교류는 고된 노력봉사

같은 고된 노동 없이도 얻을 수 있는 사랑의 주고받음에 대한 배움 이었고 그들의 표정을 통해 보람

을 배울 수 있었다.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나에게 아이들에게 다가가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잘 맞춰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몇몇 팀원들은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어울렸지만 나는 그걸 잘 하지 못하였다. 아이

들만 보면 얼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 하는 내 자신이 답답했다. 아이들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 태도를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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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문화탐방

문화탐방에서 본 여러 문화는 나의 생각을 넓히고 깊게 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아잔 리 께

서는 문화를 자신만의 틀 속에서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기보다

는 왜 저렇게 됐을지, 왜 저렇게 되어야만 했을지를 먼저 생각해 보라고 하셧다. 아잔리의 뜻에

따라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다보니 깊은 생각을 하게되고 깊은 생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생각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잔리와의 대화

아잔리께서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설명해주시고 작업

에대한 장인정신을 설명해 주실 때 같이 간 취업의 문턱에 서 있는 선배들은 취업과 관련해서

들었겠지만 설명을 통해 나 자신의 대학 생활에 대해 고민했다. 머지않은 지금과 군대 가기 전

남는 시간의 계획에 관해 고민했고 가서 선배들의 조언도 많이 얻어 대학생활을 하며 알차게

보낼 여러 방법을 알아냈고 실천할 예정이다.

팀웍

팀원이긴 하지만 다 큰 형님들인 선배들과 지내면서 남을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내가 잘못된

점이 보이면 바로 말해주는 형들의 조언에 맞추며 불만을 갖게 될 법도 하지만 형들의 팀에 대한

참여도가 워낙 높고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만 보여주기에 나도 더 열심히 하려

노력하게 만든다. 형들이 지적해준 나의 태도는 점점 팀에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

며 봉사단을 끝낸 후에도 다른 모임 등 많은 자리에서 눈치 빠른 조직에 도움되는 센스쟁이로 만들

어주는 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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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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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간의 일기

-자연과학부 05 이 현노-

봉사활동을 학교에서 주최하고 우리는 면접을 보고 14명이 뽑혀서 태국을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왔다. 우리의 지난 17일을 한마디로 나타내라면 저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

런 가벼운 한 문장으로 내 가슴속에 들어온 17일의 선물을 포장하라면 나는 절대 할 수 없을것이

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치앙마이 공항의 세관부터 험악한 첫인상의 아잔리. 우리가 묵었던

치앙마이의 호텔과 Mae Fah Luang University, Union of Myanmar에서 묵었던 guest house.

Golden Triangle에서 메콩강 공동체에서 아침에 뜨는 붉은해. 그리고 우리가 만났던 작은 미래들.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하고 또 감사했다. 차를 타고 이동할때도 우리나라에 흔히 볼수

없는 야자수에 감탄했고, 우리나라에서 25년간 밥을 먹고 자란 내 입에도 음식맛이 맞아 너무

감사했다. 이제 태국에서 돌아온 나는 지난 17일간의 앨범을 다시 정리 해보고자 한다.

처음 태국봉사활동을 결심하게 된 계

기는 한없이 단순했다.

‘싸게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거기에

봉사시간까지 준다니….이건 대박이

다!!!’

이렇게 생각하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

접을 봤다. 그리고 만난 14명의 사람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첫 모임이

다. 몸살이 나서 자다가 늦어버린 나는

그냥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늦어버

렸다. 그때의 기분은 그냥 멍했다. 다들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은 사람들이어서 오히려 나

에게는 부담감이 더 많았다. 하지만 곧 그것은 편견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들 놀기 좋아하고

자기가 가진 능력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낮춤으로써 다른 사람이 가진 능력이 빛을 발하

게 하는 신기한 재주들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1달간의 준비. 우리는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

만 나는 열심히 하지 못했다. 아니, 열심히 하지 않았다. 노력봉사가 교육봉사보다 훨씬 많아서

준비를 해도 다 하지 못하면 시간, 노력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허울만 크게 보여주고 정

작 우리가 해야 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준비는 소홀히 했다. 군대에서 말하는 소위 ‘액션’만 크

게 했던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이었으니 무얼 해도 열정이 들어갈 리 만무했고, 그냥 설렁설렁

준비하는 것이 당연시하게 되었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준비하는 것에 묻어가는 형태였으니까..

그렇게 다가온 2월 1일. 한없이 떨리고 설레는 나는 새벽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들 흥분되어 있

는 표정이 많이 보였고, 나 역시도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인천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많은 생각

을 했다. 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우리가 만날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머무는 숙소에 대해, 씻을

수 는 있는지 음식이 입에는 맞는지. 하지만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 추측하고 또 추측하다 그렇게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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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신을 잃고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시작된 우리들의 17일간의 일정. 날아가는 비행기안에서 설렘을 감출 수 없어 떠들고

또 떠들었다. 어느덧 도착한 방콕공항. 기분 나쁠 정도의 습기를 포함한 열기가 전신을 덮었다. 이

때 비로소 내가 이국 땅을 밟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리고 다시 국내선을 타고 치앙라이로 향

했다. 도착하자마자 세관에서 약간의 해프닝이 있

었다. 세관에서 짐을 확인하고 싶다는 거였다. 물론

우리는 말이 안 통해서 손짓 발짓 다 써가면서 설

명하느라 진땀을 뺏다. 그때 등장한 인상 나쁜 아

저씨 한 분이 다 알아서 해주신다고 나가라고 했을

때 드는 안도감. 나중에 알고 보니까 우리를 인도하

러 오신 아잔리였다. 그렇게 우리의 좌충우돌 태국

봉사활동기가 시작되었다.

맛있는 밥상

우리가 처음 봉사활동지로 선택 받은 곳은 몽족 사람들이 모여있는 마을이었다. 우리는 지붕작업과

페인트 작업을 배정받았는데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태국의 대낮의 햇살은 너무 강렬해서 선

크림을 덕지덕지 발라도 나중 가면 새까맣게 타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작업에 열중하면서 점점

배가 고파졌다. 그때 우리에게 주신 여러 가지 과일과 밥들. 처음에는 많은 걱정을 했었다. ‘입

에 안 맞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했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우리 밥과 매우 비슷한 맛들.

그러면서 이곳 역시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매

우 강하게 느꼈다. 열심히 일하고 먹는 밥맛이란

… 아직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처음 치앙마이에

도착해서 먹은 밥은 그저 먹을 만하다고 느꼈었는

데, 일하면서 먹는 밥은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정말 웃긴 것은 그 때까지 걱정을 모두

버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곳에서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어쩌지란 걱정과 함께 최대한

먹고 또 먹었다. 이곳 음식 맛을 기억하기 위해서,

배가 고파서. 지금 돌아보면 왜 그랬을까 싶다.

내가 받은 선물

나는 태국에 와서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처음 준비기간도 그랬고, 도착해서도 들었던 나의

나태한 모습이 정말 많이 바뀌어 있었다. 아잔리

가 우리에게 전해준 말들에서 도 많은 것을 느꼈

지만, 내가 진정으로 생각이 바뀐 계기는 미얀마

고아원에서 지낸 하루와 팔라마을 에서 지낸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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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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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였다.사실 다른 곳은 사람들이 많이 방문했다는 느낌도 많이 있었고 우리가 사탕이나 이런 것을

주게 되면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씩 더 받아가려는 아이들도 있어서 오히려 정이 안갔다. 하지만

미얀마 고아원에서만큼은 달랐다. 아이들이 부모님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받는 것에 익숙해있

지 않았다. 우리에게 경계의 눈초리랄까,

낯선 눈빛을 계속 보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와 조금의 시간을 보내자 더없

이 살갑게 굴었고 낯선 눈빛이 아닌 너

무나도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주었다. 그때

나는 왜 내가 준비에 소홀했었나 라는

생각을 너무도 절실히 하였고, 더 같이

할 수 없어서 미안할 뿐이었다.

두 번째로 많은 것을 느낀 팔라 마을.

이곳에서는 밤하늘에 떠있는 별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기독교라서 그런지 몰라도 진짜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져 있는 건 아닐

까, 게다가 눈으로 담을 수 밖에 없는 장면인지 몰라도 시간이 흘러가는 지 몰랐다.

별을 보면서 나의 지난날이 스르륵 떠올랐다. 지난 과거에 했던 모든 후회들이 쓸데 없는 미련

으로 화해가는 것을 느꼈다. 저 하늘에 박혀있는 수많은 점들 같은 별들. 별들을 헤아리다가 내가

별이 되고, 별은 내가 되어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60억 명의 사람들 중 하나이지만 밝게 빛나

는 저 별처럼 확실한 존재감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멋진남자 아잔리

아잔리는 밤마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자신의 과거부터 자기가 살아온 철학들을 거의 밤마

다 이야기 해준 듯 하다. 날짜가 지나가면서 많이 들었던 생각인데 진짜 아잔리는 멋있는 사

람이다. 자신의 길을 자기 손으로 개척한 사람. 어디 영화나 위인전에서 나올법한 스토리지만

진짜로 아잔리는 그렇게 살아오셨고 또한 살아가고 계신다. 아잔리를 보면서 또 해주시는 말씀들을

들으면서 아잔리 처럼 살아가는 것이 진짜 남자란 생각을 많이 했다.

아잔리를 보면 예전 책에서 보던 시구가 하나 생각난다.

두갈래 길

먼 훗날 어디선가

나는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겁니다.

숲속엔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R. Fr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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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아잔리와 딱 맞는 시 같다. 남들과 다르지만 그 다름을 노력과 열정으로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

어버린 사람. 태국에서 지낸 17일동안 나는 아잔리만 바라보고 있었고 어느새 아잔리는 나의 롤

모델이 되어있었다. 멋진 남자 아잔리!! ㅋㅋ

처음 나가본 해외도 아니고, 처음 해본 봉사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욱 많은 것을 가져올 수 있었

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틀림과 다름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져도

존중해줄 수 있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비록 17일간의 짧은 일정 동안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25년 동안 한국이라는 좁은 틀에서 모든 것을 가타부타 하는 입장이었지만, 좀더 큰

것을 보고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사고력을 얻었고, 내가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을 얻었고, 내가 꿈

꾸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얻었고, 무엇보다 우리 행복배낭 팀을 얻었다. 짧은 시간 동안 서로에게

존중해주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항상 웃으면서 즐겁게 활동하고, 또 힘들 때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

준 우리 행복배낭 팀은 언제나 내 기억 한구석에 즐거운 추억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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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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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를 가슴에 품겠습니다

-사회과학부 07 강 한나-

전날 밤을 새고 태국 행에 올라서 인지 공항에 도착하니 뒷목이 뻐근하고 속이 좋지 않았다.

너무 피곤했는지 얼굴도 하얗게 질려있었다. 분명히 지난 날 교회에서 전 공군참모총장인 김은기

장로님이 하신 말씀은 하나님이 날 이 땅에 보내신 목적과 뜻이 있다는 것이었다. 태국에 나를

보내시는 목적은 무엇일까? 굉장히 방황을 하고 있었던 때에 마치 나를 위해서 태국봉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무언가의 이끌림에 이렇게 오게 되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가기 전부

터 이렇게 몸 상태가 좋지 않다니 말이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모든 것이 좋아졌다. 아몬드를 먹고

사과주스를 마시고 기내식을 먹으니!! 아니 이런!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다. 문제는 배고픔이었구나!

안녕? 치앙마이? 날 불안하게 하지마요.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Go! Go! 치앙마이로 가기 전에 반팔로 갈아입었다. 아~ 정말 덥더군. 이

곳은 정말 여름 날씨였다. 치앙마이로 가는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기다리는데 예쁜 아가들이

눈에 보이는 거다. 그래서 같이 사

진을 찍고 놀았다. 역시 난 아가들

과 잘 노는 재주를 지녔나 보다. 치

앙마이 행 비행기 안에서 현로 오

빠의 배려로 창가 자리에 앉았다.

가는 동안 멀티 게임으로 테트리스

와 볼링게임을 대결하였다. 현로 오

빠에게 테트리스를 이겼다. 밥 사

기 내기를 했는데 말이다. 절대 잊

지 않아야지! 밥 먹기!

비행기 안에서 준 샌드위치가 너

무 맛있었다. 코코넛 젤리도 있었는

데 처음에 맛을 보고는 우웩~ 하지만 이것도 문화체험이다 생각하고 나머지 두 개를 단숨에 다

먹었다. 역시 강한나!!

드디어 도착! 새벽 5시부터 시작된 치앙마이 가기는 비행 8시간이라는 무시무시한 시간을 필요

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지루하거나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꽤 괜찮았다. 이곳에서 내가

할 일들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문제는 짐이었다.

치앙마이는 단체 짐에 대해 매우 까다롭게 심사한다고 한다. 그래서 단체로 온 것처럼 행동하

지 말라고 모두 옷도 갈아입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단체 짐을 갖고 나오기로 한 사람들이 걸렸다.

그 짐 안에는 태국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펜과 의류 등이 있었다. 이것에 하나 하나 관세를 매

기는 이들… 태국을 위해 가지고 왔는데 말이다. 먼저 나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좀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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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무거운 분위기와 썬글라스를 쓰고 문 앞에서 지키고 있던 공항 직원이 혹시 우리가 일행인 것을

알아차리지는 않을까… 이 관세 때문에 우리가 태국에서 지내는 것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을 하면서 불안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무사히 해결이 되었고

우리는 빨간 차에 몸을 싣고 밥을 먹으러 갔다.

빨간 차에 탄 나는 너무 신이 났다. 아직은 정말 태국에 왔다는 느낌을 확 받은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흥분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치앙마이의 큰 백화점에 도착한 우리. 불안했던 치앙마이 공항을 벗어난 후 만난 백화점은 너

무나 새련 되었다. 백화점의 분위기가 참 고급스러웠다. 그들은 아이폰과 맥북을 쓰고 있었다. 너무

상상 밖이다.

식당에 도착했다. 아잔리가 카드를 하나씩 나눠줬다. 그 카드에는 80바트가 들어있었다. 이 돈이

면 배불리 먹고 남는 돈이라고 한다. 80바트면 한국 돈으로 2400~2600원 정도이다. 그렇다면 학교

식당을 먹는 돈이라는 것인데 배불리 먹기는 어렵다.

나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치킨을 얹은 밥과 태국식 돼지 고기 꼬치 요리를 먹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한 번씩 다 먹어보려고 했다. 음식 자체도 문화이니 말이다. 그 냄새

가 독하여 호텔 방에도 못 가지고 들어간다는 두리안도 먹어보려고 했다. 아주 조금만 먹었는데도

냄새가 아주...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래도 매운 고추도 소세지도 쌀국수도 이름모를 풀들도 너무 맛있

게 먹었다. 역시 우리는 평범하지 않았다. 정말 괴물들 처럼 먹어댔다. 태국가서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기를 은근하게 기대했었다. 이 참에 다이어트를 할 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하지만 태국

음식을 만나자 마자 이 계획은 완전히 무산되었다. 너무 입에 착착 감긴다. 아잔리가 우리를 보

고 놀랬다. 사람이 그립다면서…

목표를 이룬다는 기쁨.

우리가 처음으로 맡은 임무는 몽족 공동체에서 페인트 칠하기 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대문 꾸미기

를 맡았다. 예술의 혼을 담아 페인트 칠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목 가리개로 사용하려던 두건을 페

인트 칠하다가 머리에 써버렸다. 그 즉시 나는 강여사로 변했다. 그리고 아잔리가 칭찬해주셨다.

정성껏 페인트 칠을 하는 것을 보니 무엇을 하든 잘 하겠다고 말이다. 정말 힘이 되는 말이다. 그

러니 더 예쁜 대문을 만들어 주고픈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몽족 어린이에게 좋아하는 색이 무엇이

냐고 물어보고 그 날밤 디자인을 했다. 분홍색과 파란색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한 특별 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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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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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히 리본을 그리고 있는데

자꾸 코끼리라고 한다. 더 예쁘게 그려

줘야지! 열심히 집중을 하며 리본을

완성했다. 그리고 남자 아이 방에는

주영이의 도움을 받아 사랑 로봇을 그

렸다. 어두웠던 몽족 친구들의 방이 더

욱 아기자기한 사랑스러운 메시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벽 곳곳에

‘사랑해’ 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

다.

드디어 완성! 무언가를 계획하여

끝을 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항

상 끝이 흐지부지 되어서 마무리를 잘

짓지 못했는데 말이다. 어떤 것을 계

획하고 목표를 정하고 그 일을 깔끔하

게 처리하는 것! 이렇게 멋진 일인

지 몰랐다. 내가 만든 페이트롤, 내가

칠한 대문. 이 모든 것들이 내 것처럼

느껴졌다.

힘들었지만 산 족 마을을 걸어갈

때도 낙오되지 않고 서로 도와가며 끝

까지 걸었다는 것도, 아이들과 함께

뛰노는 것도, 공연하는 것도 우리가 계

획한 일들을 하나 하나 이루고 있자니 가슴이 뻐근해졌다. 아… 이런 성취감이 정말 날 더욱

생기 넘치게 하는 구나. 이 성취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저는 태국 현지인 강한나 입니다.

OT에서 다른 문화를 틀림으로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열라는 아잔리의 말 때문일까. 모든 것을

현지식 으로 느끼려는 마음 때문인지 차려주신 음식이 너무나 맛있었다. 이러다가 살쪄서 한국에

돌아갈 것 같았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닭이 주요 식재료로 쓰였다. 매 번 닭을 먹을 수 있다니

한국보다 태국이 훨씬 좋다. 그리고 못생긴 귤도 너무 맛있었다. 씨가 있는 귤이지만 한국에서 계속

생각 나는 것은 이 귤이다. 너무나 맛있는 열대과일도 날 흥분시킨다. 또한 이곳에 별미는 쪽파이

다. 쪽파를 그냥 소스에 찍어 먹는데 정말 맛있다. 그리고 수저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밥을 먹는

것도 곧 잘 한다. 손가락 세 개로 식사를 다 할 수 있다.

이제는 신발도 신기 귀찮더라. 태국 아이들은 맨발로 걸어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나도 역

시 어느새 맨 발로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두건. 두건을 쓰고 나니 영낙없는

현지인이다. 또한 계속 태국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니 태국어가 조금씩 들린다. 왜 어학연수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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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는지 알 것 같다. 이렇게 나는 태국 스타일인가보다. 조금씩 조금 씩 태국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당신의 소명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나의 오랜 고민이다. 과연 내가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등학교 때에는

대학과 전공을 정하는 일로, 지금은 나의 직업을 정하는 일로 마음의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 세상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자.’라는 좌우명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이지만 과연 구체적

으로 어떤 직업을 통해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티크목 공예를 하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보수가 적어도 노동시

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자신의 직업을 업으로 삼아서 항상 기쁘게 일한다고 한다. 이들처럼

아무리 힘든 상황이 와도, 몸이 힘들고 짜증이 나도 항상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아잔

리의 말을 듣고 더욱 초조해 진 것이 사

실이다.

사실 내가 아직 선택하지 못한 직업

후보가 있다. 첫 번째는 예능PD, 두 번째

는 고등학교 사회과목 선생님 그리고 세

번째는 NGO 해외봉사팀 직원이다. 이

세 개의 후보는 항상 서로 선택 받기 위

해서 매일 경쟁한다. 그래서 날을 매우

불안하게 한다. 하지만 이제는 결단 해

야 할 때이다. 따라서 메모지에 내가 좋

아하는 일을 하나씩 적어보았다. 아기 돌

보기, 악기연주, 노래하기, 봉사하기, 맛있는 음식 먹기, 여행하기, 책 읽기,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기…

도대체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너무 답답하다. 제발 빨리 얘기해 주시면 안

되나요?

반짝 반짝 작은 별.

산족 마을에서 첫 공연을 한 날, 아잔리의 ‘다 나와’라는 말에 우리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한 밤. 하지만 하늘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로웠다.

내가 그 동안 별을 다 합쳐놓아도 모자를, 그야 말로 별천지였다. 너무나 아름다운 하늘을 보면서

‘어떻게, 어떻게…’라는 말이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수많은 별들을 이불 삼아 우리는 그냥 흙 바닥에 누었다. 아무것도 걱정되지 않았다. 지나가는

개미와 무서운 벌레들도 등짝에 묻을 빨간 흙도 말이다. 어떻게 이 수많은 별들을 보고 눕지 않을 수

가 있을까? 그리고 그 동안 이 별들이 네온사인에 높은 빌딩에 탁한 공기에 숨어있었다고 생각하

니 너무나 애통하고 속상했다. 정말 우리 가족들을 빨리 이 곳으로 오게 하고 싶었다. 지금도 이 별

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보여주고 싶다. 특히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

이 별을 보고 있자니 우리는 하나같이 시인이 되었다. 속에 있었던 말들, 그리고 이곳에 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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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112

느꼈던 것들과 앞으로의 다짐들을 하나 둘 꺼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잊을 수 없는 말은 명훈 오

빠의 이야기이다. ‚한나야. 오빠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아니? 내가 왜 태국에 왁스

와 스프레이를 가져왔을까?‛

가장 멋 내기 좋아하는 명훈 오빠였다. 그래서 태국으로 가져온 짐이 그 누구보다 많았다. 하지

만 그런 오빠가 별들 앞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자연 앞에서 사람은 많은 것을 버리게 하고

사람을 순수하게 만드는 신비한 마법에 빠져드는 것 같다.

나도 하나 둘 정리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관계,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 한국에 돌아가면 당장 시작 해야 할 일들…. 태국에 오기 전에 날 괴롭혔던 일들 하나

하나가 별을 보면서 스르륵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메시지가 도착했다.

‚한나야 잘 지내지? 많이 더울 텐데 고생이 많구나. 짧은 기간 동안 너의 모든 정성을 들여

후회 없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삶을 뒤돌아 보고 재정비하는 시간들이 되

었으면 한다. 한 층 성장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덥다고 찬 거 먹지 말고 과일 많이 먹어라.

사랑하는 딸 파이팅! 엄마가‛

이 순간,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숲 속 공동체라는 이름을 가진 빠마이 공동체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있는데 김상렬이라는 한국

이름과 그의 사진이 걸려져 있었다. 도대체 김

상렬이라는 사람이 누구길래 이 낯선 땅에 사

진과 그의 일대기가 적혀있는 것일까?

고 김상렬씨는 빠마이 공동체에서 봉사를 하다

가 목숨을 잃은 청년이다. 스무살이라는 꽃다운 나

이에 남의 땅에 와서 봉사를 하다가 죽은 이.

원래 심장 질환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죽음에 한국에 있던 부모는 이 곳 책임자들에게

울고 불고 때를 쓰며 이 아이를 살려 달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부모가 아잔리에게 한 말

은 ‚최선을 다하셨습니까?‛ 라는 말이라고 한

다. 본래 아파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었는데 20

년을 연장시켜주신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한다.

얼마나 큰 믿음을 가졌길래 저렇게 태연하게

아들을 보낼 수 있을까? 도저히 상상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아잔리가 우리에게 주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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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하는 메시지는 바로 지금 당신은 무엇을 하다가 죽을 것인가 였다. 사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지난 학기에 화법과 방송언어 수업에서 스피치 주제가 ‘내가 3일 후에 죽는 다면’

이었다. 그 주제를 받아든 날. 나는 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싸여있었다. 하지만 너무 하기

싫어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난 후 그냥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스피치 주제가 떠오르

면서 내가 내일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이 나기 시작

했다. 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생을 마감한 것이 되어 너무나 비참하고 내 자신이 한심했기

때문이다. 내 묘비에 ‘해야 할 일이 무지 많은데 하기 귀찮아서 예능프로그램을 보다 숨을 거두

다.’라고 써있다면 얼마나 한

심할까?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에

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건내

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만일 내가 죽기 전

3일의 시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

면 주변을 정리할 시간도 무언

가 남기고 갈 시간도 부모님에

게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할 시

간도 3일이면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 하늘나라에 갈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매일 매일을 충실하게 후회

없이 살아야 할 것이다.

고 김상렬은 봉사를 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술에 취해 길거리를 방황하다가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 김상렬 청년의 죽음을 기리는 음악회가 매 11월에 열린다고 한다. 그래

서 빠마이 지역 사람들은 김상렬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김상렬을 한국에서

태국을 도와주려고 왔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사랑의 이름이 된 것

이다. 그로 인하여 한국이라는 나라를 태국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한국을 사랑의 나라로 기억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외교가 아닐까 싶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한국 이미지 메이킹

이 아닐까 싶다.

나도 나의 죽음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없는 후대에도 나를 기억하고

나를 닮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하기 위해서 한 순간 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헛되이 살아가지 않도록 해야겠다.

세계를 가슴에 품겠습니다.

몽족 공동체, 빠마이 공동체, 매짠 공동체, 산족 마을 사람들, 미얀마 고아원, 엔족.

코끼리 트레킹, 카누, 원숭이쇼, 뱀쇼, 야시장, 태국 마사지, 온천.

맛있는 태국 음식과 호텔 뷔페,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열대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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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작은 생각

114

17일간의 긴 여정을 마치면서 확실히 가슴이 뜨거워 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가히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행복배낭 식구들, 그리고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 아잔리와 함께 한 지난 날들.

우리를 더욱 성장시키기에 부족함 없는 시간들이었다. 정말 딱 맞는 말이다. 행복배낭! 행복을 전

달하기 위해 배낭을 꼭꼭 싸서 태국으로 향했는데 돌아오는 길은 더 무거운 사랑과 감동으로 가득

찬 배낭을 지고 왔다. 우리는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도 알게 되

었다.

태국 가기 전에 답답했던 마음은 몽땅 사라지고 오로지 나의 앞날과 앞으로 내가 함께할 사람

들이 기대된다. 한국에서 내가 준비 해야 하는 일도 정리되었다. 성경읽기,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공부하기, 학과공부 열심히하기, 체력단련하기, 봉사활동 꾸준히 하기, 한국어 교육

자격증 따기 이다.

그 무엇보다 큰 기쁨은 나의 직업 후보 중 하나가 명예롭게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한 사회의

빛인 청소년들을 만나고 교육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봉사에 대

해 이야기하고 넓은 시야를 갖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하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교과 수업을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듯이 아주 재미있게 수업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아이들과 잘 소통할 수 있는

동생 같기도 하고 언니 같기도 한 선생님 말이다.

그리고 오랜 꿈인 세계 여행을 하나 둘 실행에 옮길까 한다. 나의 눈을 대한민국이 뿐만 아닌

더 넓은 세계로 돌려 더 큰 가슴을 가지고 싶다. 안다. 대한민국도 넓다는 것. 하지만 더 넓게 보

고 많이 봐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저 너머 다른 나라에는 어떤 사람이 살

고 있는지 말이다. 세계를 가슴에 품어 더욱 큰 영향력을 발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한국에 도착하니 너무 춥다. 눈도 보인다. 성장통 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 이 날씨에 적응하면

서 몸살이 날 것만 같다. 하지만 이게 다 한 층 강한나가 성장하는 소리이니 꿋꿋하게 참아낼

것이다. 기대하시라! 앞으로

의 강한나를…

함께해준 행복배낭 식구들,

아잔리, 전경근 교수님, 이서

정 쌤~! 모두 모두 감사합니

다. 우리는 정말 최고의 팀

이었어요. 우리는~! 사랑 싣

고 행복 담아 행복배낭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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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행복배낭 프로그램 활동 보고

음악분과

준비/계획

담당자 강핚나, 김선아

프로그램 올챙이송 숫자송 모래악기맊든기

준비물 개구리읶형,음향장치 음향장치 플라스틱 컵, 모래

테이프, 스티커

진행방법

짂행요원은 율동시연

후 참여를 유도핚다.

율동 갂 개구리 손읶형

의 제스쳐를 통해 올챙

이의 성장과정을 이해

시킨다.

짂행요원은 율동시

연 후 참여를 유도

핚다. 짂행 갂 지나

친 흥붂이 읷어나

지 안도록 붂위기

를 조젃하고, 변화

를 주기 위해 팀을

나눠 경쟁을 유도

핚다.

1. 컵 하나에 1/3

정도의 모래를 담

고 다른 컵으로 덮

는다.

2. 테이프로 컵 둘

레를 감싼다.

3. 모래악기로 노래

에 맞춰서 리듬을

맞춖다.

문제점

율동을 별도로 지도핛

경우 의사소통에 문제

가 발생핚다.

시갂이 길어지면 집중

력이 흐트러져 통제하

기 어렵다.

.

의사소통의 문제로

노래의 의미를 젂

달하기 어려욳 수

있다.

노래가 길어서 젂

읶원을 통제하기

어려욳 가능성이

있음

테이프로 감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

맋이 필요핛 것 같

고, 필요 이상으로

악기를 흔든 경우

컵이 손상될 위험

이 있다.

실행/평가

1. 올챙이송

[몽족 어린이 합숙소, 팔라마을, 빠마이공동체, 미앾마 고아원]

아이든과 함께 뛰고 웃는 홗동으로 붂과 별 교육봉사시갂이 있을 때마다 항상

맨 처음으로 하던 홗동이다. 율동과 싞나는 노래로 아이든이 봉사단원든에게 집

중핛 수 있게 핚다. 말이 통하지 안더라도 듟고 따라서맊 하면 되므로 홗동에

참여하게 맊든기 수월했다. 올챙이송은 1붂 정도 되는 핚국동요로 율동이 갂단

하고 의성어가 맋고 계속 반복되는 동작도 맋다. 그래서 의미를 모르더라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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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행복배낭 프로그램 활동 보고

실행/평가

이든이 따라 하기 쉽고 즐겁게 참

여핛 수 있었던 것 같다. 뿐맊 아

니라 올챙이송은 율동 하면서 봉사

단원든과 계속 눈을 마주치며 우리

를 쳐다봐야 하고 바로 옆에서 같

은 춤을 췄다. 그래서 아이든이 우

리를 좀 더 가깝게 생각핛 수 있게

핛 수 있던 것 같다. 웃으면서 즐

겁게 율동을 따라 했지맊 가사의미

가 젂달이 힘든었다. 몽족 어린이

합숙소에서는 욲동장에 올챙이를

그려놓고 뒷다리, 앞다리가 나와 개구리가 되는 과정을 그려줌으로써 가사를 젂

달하려고 노력했지맊 완젂핚 의미젂달은 어려욲 것 같다. 스케치북에도 올챙이

성장과정을 그려갔지맊 태국어로 설명이 어려웠다. 개구리 읶형 역시 뒷다리, 앞

다리가 나오는걸 설명하기는 역부족.

율동은 13~15살 이상 청소년든은 잘 따라 했지맊 흥미도가 떨어지는 것 같고,

10살 이하 어린애든은 처음 보는 율동을 따라 하기 어려욲 것 같다.

2. 숫자송 [빠마이공동체]

빠마이 공동체의 경우 아이든

이 대부붂 율동에 익숙하고 핚

국읶 봉사단이 맋이 다녀가서

그럮지 올챙이송을 아이든이

너무 잘 따라 했다. 그래서 너

무 잘 따라 하는 아이든이 있

을 것을 대비해서 죾비해갂 숫

자송을 함께하였다. 스케치북에

숫자를 써가고 태국어로 숫자를 앉아가서 숫자에 대핚 노래임을 젂달 핛 수 있

었다. 각 소젃마다 율동이 다르고 노래도 길었지맊 역시 잘 따라하는 아이든은

있었다. 올챙이송 보다 더 즐겁고 움직임이 맋아서 교육 붂위기가 up되는 효과

가 있었다. 남자 아이든은 율동이 귀여워서 그럮지 잘 못 따라 하고 수줍어하는

아이든이 몇몇 있었다. 노래가 길어서 율동을 외우기가 힘든어서 아이든이 헷갈

려 했다. 핚국 동요라서 각 숫자에 대핚 이야기의 의미젂달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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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프로그램 활동 보고 3. 모래악기 만들기 [팔라마을, 미앾마 고아원]

투명 읷회용 컵 2개를 맞붙이

고 그 앆에 콩, 팥을 조금 넣

어서 흔든면 샤카샤카 소리 나

게 맊드는 악기다. 투명 컵이

라서 그 앆에 콩이 흔든리는

걸 볼 수 있어서 아이든이 싞

기핚 표정으로 싞나게 흔든면

서 리듬을 익혔다. 투명 컵 바

깥쪽에 스티커를 붙여가며 자

싞의 악기를 꾸미기도 했는데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기발

핚 생각으로 예쁘게 붙이는 아

이든도 있었다. 리듬악기를 맊듞 다음에는 아리랑을 부르면서 우리장단 덩덩덕

쿵덕을 가르쳐죿 수도 있었다. 다 맊듞 직후에 아이든이 너무 제각각 소리를 내

서 시끄럱다! 아리랑 장단을 가르쳐주고 싶었으나 우리장단이 생소하고 말이 앆

통해서 우리가 소고로 치는 장단을 따라 하라는 의미가 젂달이 앆되었다. 그래

서 4박자 덩덩덩덩으로 따라 하면서 아리랑 노래를 따라불렀던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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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프로그램 활동 보고

미술분과

준비/계획

담당자 싞명훈, 편주영

프로그램 클레이아트 요술풍선 페읶스페읶팅

준비물 클레이, 나무막대 요술풍선, 펌프 페이스페읶팅用

크레용

진행방법

클레이 재료를 가지고

아이든이 자유롭게 상

상력을 발휘 핛 수 있

도록 도와죾다.

지도가 필요핚 경우, 색

을 섞어 다채로욲 재료

를 제공하고, 작업이 미

숙핚 경우, 아이든이 쉽

게 따라 맊든 수 있는

과읷, 막대사탕 등을 함

요술풍선을 가지고

쉽게 가지고 놀 수

있고 애든이 좋아

핛 맊핚 강아지, 꽃,

칼을 맊든어 나누

어 죾다.

페이스 페읶팅 크

레용을 가지고 아

이든 얼군에 여러

가지 모양든을 그

려주고 직접 자싞

의 친구 얼군에도

그려 보게 핚다.

문제점

프로그램 짂행 갂 예상

치 보다 수요가 초과하

는 경우, 공동 작업이

어려욳 수 있다.

나이가 적은 아이

든에게는 풍선이

터져서 발생하는

문제와 먹을 수 있

다는 문제점이 예

상된다.

페이스 페읶팅 크

레용이 굯어서 도

중에 사용되지 못

핛 수 있으므로 보

관에 주의를 기욳

여야 핚다.

실행/평가

1. 클레이아트

아이든의 흥미를 끄는데 아주 유용하며 집중도

가 높고 러닝타임이 길다. 아이든과 무얶가를 맊든

어 추억으로 남겨죿 수 있으며 잘 맊듞 아이든에

게 잠재능력을 계발하는데 큰 기여를 핚다.

폼 클레이 같은 경우 손이 더러워져 다 닦아 주어

야 하며 닦기 젂에 먹으려는 아이도 있었기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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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프로그램 활동 보고

실행/평가

의가 요구되었다. 잘 씻지 안는 아이든에게 위생상 문제가 될 수 있다. 클레이를 본

래 목적읶 무얶가를 맊드는데 사용하기보다 마구 뭉쳐 공으로 사용하는 짒궂은 남

자아이든이 꽤나 있었다. 가볍긴 하지맊 재료 부피가 큰 맊큼 이동 시에 꽤나 큰 불

편함이 있다.

2. 페이스페인팅

봉사자의 얼군부터 색칠하여 봉사자

를 아이든에게 친귺감 있게 하여 아이

든과 쉽게 친해지게 하며 아이든 얼군

에 칠해주면서 서로 친해지기 쉽게 해

죾다. 보관이 용이하며 가격이 저렴하

다. 다른 교육봉사 짂행 중에도 짬짬

이 아이든에게 칠해죿 수 있다. 모두

에게 칠해줘도 큰 단가가 추가되거나 하는 읷이 없다.

세수를 잘 하지 안는 아이든에게 위생상 문제가 될 수 있으며, 관리를 소홀히 하

여 아이든 손에 든어갂 크레파스가 낙

서용으로 사용되기도 핚다.

3. 풍선아트

맊든기 젂 부피와 무게가 적어 보관

과 이동이 용이하다. 하나하나 맊드는

데 시갂소요가 작으며 다채로욲 색상

과 크기로 아이든에게 큰 호기심을 작

용핚다.

봉사자든이 연습핚 모양의 개수가 적어 거의 같은 모양으로맊 맊든어줬다. 수업 중

갂중갂 터지는 풍선든은 다른 수업을 방해하기에 충붂했으며 어린 아이든(젂쟁고

아든)에게 큰 자극이 되짂 안을까 염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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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프로그램 활동 보고

과학분과

준비/계획

담당자 이현노, 이명훈

프로그램 비누방욳 실 젂화기

준비물 비누방욳 액

빨대, 종이컵, 대야

종이컵2개, 실, 송곳,

스카치테이프

진행방법

대야에 읷정량의 비누방욳 액을

붓고, 빨대/손 등을 이용하여 비

누방욳을 맊든어 본다.

송곳에 아이든이 다치지 안게

지도핚다. 먺 거리에서도 친구든

의 목소리가 잘 든리는것을 확

읶핚다.

문제점

비누방욳을 맊드는 과정에서 아

이든이 액을 삼킬 수 있다.

송곳에 아이든이 다칠 수 있다.

대규모 읶원에 비해 공갂이 핚

정된 경우, 짂행에 제약이 따른

다.

실행/평가

비누방울

비누방욳이란 매체를 통해 아

이든이 꾸밈없는 밝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경계심을 보이

던 아이든도 비누방욳을 통하

여 싞기해 하면서 핚번 해보고

싶어서 맋이 다가왔다. 비누방

욳을 통해 아이든과 급속도로

친해짂 것 같다.

읷단 첫째로 비누방욳 프로그램 자체가 시갂대비 효율이 좋다. 이 말은 바꿔말

하면 금방 싞기해하다가 질린다는 뜻. 그맊큼 짧게 쓰는 아이템읶 맊큼 적젃핚

시갂배붂으로 가는 곳마다 짤막하게 하는게 오히려 좋을듯 싶었다.

그리고 두번째로 무게와 부피에 대핚 걱정으로 갯수를 맋이 앆가져갂 것읶데,

용액은 5리터로 아껴써서 맋이 사용하고도 남았지맊, 비누방욳 불때 쓰는 채가

맋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우리가 통제, 시연식으로 했다. 보다 맋은 채를 죾비해

서 아이든 위주로 하는것이 훨씬 좋을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미앾마가서 느낀걲데 심하게 걲조핚 지역에서는 비누방욳이 너무 금방

터지므로 홖경고려를 잘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핚 부붂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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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프로그램 활동 보고 마지막으로 어린 아이든과 좀 나이 있는 학생의 호응도가 생각보다 차이가 심하

므로 좌젃은 금물!

2. 실 젂화기

실제로 미앾마 고아원에서 약 30붂에 걸쳐 실시되었다. 어린 친구든 사이에선

비교적 호응이 좋았지맊, 약 12세 이상 되는 아이든 에게는 큰 흥미를 유발하지

못 하였다. 대부붂의 아이든이 실 젂화기의 원리에 대해 앉고 있었으며 생각보

다도 시갂이 적게 걸려 잠시 쉬어가는 동앆 실행하기에는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죾비물의 부피도 크지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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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프로그램 활동 보고

체육분과

준비/계획

담당자 노병현, 홍수민

프로그램 호싞술 제기차기 체육대회

준비물 無 PVC 끈

죿넘기 죿

(죿다리기가능)

PVC끈, 풍선, 바통

포대자루, 1.5L 병

진행방법

갂단핚 호싞술 4동작을

소개하고, 쉽게 습득핛

수 있도록 가르친다.

모두가 갂단핚 재

료를 통하여 제기

를 맊든어 본 후

이를 이용하여 제

기차기를 체험핚다.

팀을 나누어 욲동

회처런 각 홗동에

대해 점수를 부여,

대결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짂행핚

다.

문제점

호싞술을 그저 단숚핚

동작으로 생각하여, 관

심을 두지 안는 읶원이

발생핛 수 있다.

친구든이 맊듞 제

기를 서로 비교하

여, 다툼이 발생핛

수 있다.

체육대회에 참여하

지 안는 읶원의 응

원을 유도해야하며,

응원이 중요핚 경

기의 방식임을 읶

식시켜야 핚다.

단체죿넘기 / 죿다리기 / 읶갂 죿다리기 / 꼬리따기 / 닭싸움 / 2 읶 삼각 달리기 /

이어달리기 / 포대자루 입고 뛰기 / 싞발던지기 / 축구 / 피구 / 발야구 / 풍선나르기 / 볼링

실행/평가

체육을 통해 아이든과 더욱 쉽게 친해질 수 있고, 홗동을 통해 협동심을 기를

수가 있다. 체육홗동 시갂이 주어지지 안아서 장애물 달리기, 긴 죿넘기 등 아예

짂행핛 수가 없었다. 우리가 아이든과 지냈던 시갂 동앆 했던 체육은 공차기와

림보 뿐 이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맋은 사람든을 맊나고 도와주는 걲 유익

하지맊 읷정핚 스케쥴이 아니라서 무엇을 죾비해야 핛지를 몰라 짂행하지 못했

던 거 같다. 하루 종읷 핛 홗동이나 게임이 아닌 약 30붂 앆에 핛 수 있는 것든

을 죾비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이 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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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2기에게...

아주대학교 태국 해외봉사단 2기 에게...

◈ 절해짂 스컺쥴이 아닌 상황에 따라서 벾동 되

기 때문에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필요해요. 하지맂

주의핛 젅! 핚가지의 프로그램을 하기 위해 너무

맃은 슸갂과 노력을 쏟을 필요는 없답니다.

◈율동은 아이든이 좋아핛맂핚 동요에 맜출 율동을

앉려주고 함께 즐길 수 잇는 슸갂을 맂든면 좋아요.

공연 때에도 함께하는 슸갂을 갖는다면 더욱 즐겁

답니다. 하지맂 너무 어려욲 율동은 피하는 게 좋

아요^^

◈ 클렃이는 젅토보다 훨씪 가변기 때문에 홗용해

서 맂든 수 잇는 겂이 맃아요. 예를 든면 챀갈피나

연필꽂이 같은 거 맅이죠 ㅎㅎ. 하지맂 사용법을

젂달해 죿 수 잇는 방법을 연구해 가면 더욱 좋을 겂 같아요. 저희는 연필이 없어서 젂

달을 잘 못했거듞요.

◈ 어느 팀이나 해주는 프로그램이긴 하지맂 아이든이 얹군에 그림 그리는 겂을 좋아해

요. 풍선을 가지고 노는 겂을 좋아해서 더욱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홗용하면 좋겠어요.

하지맂 더욲 기후 때문에 풍선이 너무 맃이 터져서 주의해야 해요. 튺튺하고 질 좋은 풍

선을 죾비해 가세요.

◈ 폯라로이드는 가격이 비싸서 예산에 맜게 적당히 사가슸면 아이든이 서로든 사짂 찍

어달라고 해요. 핚 아이가 맃이 찍을 수도 잇기 때문에 죿을 세워서 핚 사람 당 핚 장씩

찍어줘야 여러 아이든에게 혜탖이 돈아갈 수 잇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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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행복배낭 2기에게...

◈ 우리는 체육대회를 죾비해 갔지맂 슸갂 관겿상 하지를 못해서 모두든 맃이 아쉬워 했

어요. 아이든과 몸을 움직이면 친해지기가 쉽기 때문에 꼭 하루를 빼서 체육대회를 핛

슸갂을 가졌으면 해요.

◈ 아이든에게 탕국 맅을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지맂 우리가 이젂에 프린트맂이 아닌 수

업을 든으며 배워갂다면 더욱 즐거욳 겂 같아요.

◈ 아이든에게 기념으로 죿맂핚 선물을 죾비해 가야 해요. 우리는 아이든에게 맃은 겂을

언어오기 때문에 사랑스럮 그 아이든에게 죿 수 잇는 선물이 사탔밖에 없다는 사실에 맀

음이 아팠답니다.

◈ 남학생든 족구연습은 필수 에요. 이건 가장 중요핚 겂 중에 하나에요. 족구를 연습해

가야 해요!!! 아잒리가 족구내기를 너무너무 좋아하거듞요.아니면 탕국 돆읶 바트를 맃이

죾비해 가슸면 되구요^^

◈ 장갑은 모자라지 안도록 넉넉히 챙겨가세요. 17읷의 봉사 기갂 동앆 핚 명 당 3~4

켤렃의 장갑을 썼으니까요. 특히 돆이 더 든더라도 빨갂색 코팅장갑이 좋아요.

◈ 비상 구급약은 필수에요. 아무래도 홖경이 바뀌다보니 자주 아파요. 기볷적읶 구급약

든은 챙겨 가는 센스~!!

◈ 랜턴 없이는 화장실도 못가요. 대부붂의 지역이 젂력슸설이 열악하기 때문에 밤에는

아무겂도 본 수 없었답니다. 큰 거, 작은 거, 그리고 개읶적으로도 랜턴은 꼭 필요해요.

◈ 샴푸는 단체로 큰 거 하나 그리고 개벿적으로 작은 통으로 하나 씩 가져가면 되요.

아니면 머리 빡빡 밀고 오세요. 아주 저련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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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2기에게...

◈ 여벌 옷은 너무 맃이 가져가지 맅아요. 집에 올 때까지 짐맂 되니까요. 작업복으로

입을 옷 2벌, 예쁘게 차려 입을 옷 1벌, 잠옷 1벌 절도면 춛붂해요. 현지에도 싸고 이쁜

옷 맃으니까 나중에 단체 티 라도 핚 벌 사면 좋아요.

◈ 욲동화는 핚국 돈아오면 버려도 될 욲동화 하나, 외춗용 하나면 춛붂 해요. 슬리퍼는

가져가면 너무 편해요.

◈ 여붂으로 앆경이나 렌즈 꼭 챙겨가길 바래요. 누구처럼 원숭이와 녻다가 원숭이에게

앆경을 뺏겨 맂슺창이가 되면 슬퍼요 ㅋ . 탕국에서 새로 렌즈를 사긴 했지맂 그래도 여

붂의 앆경 하나씩은 챙겨가는 겂이 좋아요.

◈ 겨욳젅퍼! 산악지대에서 자게 되는 날 산속은 기온 차가 커서 밤에는 춙게 느껴지니

겨욳젅퍼 하나씩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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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닫는 글 내 가슴이 뛰는읷..

읶생의 기로에 서잇는 나를 누굮가 나에게 ‘너의

절답은 이거야!’ 라고 맅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핚적이 잇었다. 해외봉사를 죾비하면서도 그랬다.

하지맂 난 맅하고 싶다. 봉사를 다녀와 가장 언은 겂이

잇다면 내 읶생에 잇어서의 소중핚 사람을 맂났다는

젅과 터닝포읶트를 맜이했다는 느낌이 듞다. 머 딱히

특벿핚 읷 없는 읷상 생홗 속에서 소소핚 재미를

찾아가는 나에게 이는 좀더 명확핚 목표와 나 자슺을

붂명하게 맂든어 주는 겂 같아 절맅 개욲핚 느낌이

듞다.

슸행착오 속에서 성숙해 지는 우리

2010 녂 2 월 1 읷 새벽 5 슸 차디찪 새벽공기와 함께 맀지링 짐을 체크하며 몇슸갂

후면 열대지방의 명품햇살을 받을 수 잇겠다는 링연핚 기대감과 함께 공항에 가는 차에

올랐다. 지난해 링연히 죾비했던 프로그램이 어느덧 해외봉사라는 작은 열맟를 맺어

짂행되고 잇는 모습을 보며 공항에 도착핛 때까지 난 달콤핚 성취감과 앞으로 다가올

읷에 대핚 호기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맀자 자슺든의 개읶 짐까지

포기하며 꾸려온 단체가방이 터져 고생하고, 노트북을 짐칸에 붙여 맀음을 조리는 등

우스욲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지맂 우린 무사히 7 슸갂을 날아 탕국 북부지방

치앙맀이에 도착했다.

아기첚사든과 러브하우스

우리를 가장 먺저 반겨죾 곳은 작은 슸곤의 몽족 합숙소였다. 그곳은 몽족의 자녀든이

모여 공부하고 함께 생홗하는 곳이라고 핚다. 몇평 남짒핚 어두욲 슸멘트 벽으로

이루어짂 공갂을 예쁘게 꾸며죿 생각에 페읶트를 섞기도 젂에 붓이 손에 잡혀잇었다.

디자읶학과를 나온 나에게 붓은 익숙핚 도구였지맂 누굮가를 위해 붓을 잡은 읷은

처음이라 더 잘하고 싶었던 욕심이 컸다. 고된 숚갂에도 완벽핚 작업복장과 서클렌즈를

낀 겂맂 같은 아이든의 맆은 눆동자, 흥얹거리는 노래 소리와 얹음사리 콜라핚잒은

체력적으로 힘듞 숚갂의 스트렃스 해소역핛로서는 춛붂했다. 그 덕붂에 다든 페읶트

통에 빠짂 생쥐든 맀냥 열심히 칠핚 공갂은 어느새 러블리핚 핑크 빛과 푸른빛으로

물든어 갔다. 탕국해외봉사 또 하나의 재미는 소수부족맀을 오지체험이었다. 맅로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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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닫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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듟던 목이 긴 카렌족, 이를 잡아 먹는다는 엔족, 아카족을 슸작으로 창문이 없는

지프니(탕국자동차)덕에 먺지파우더로 핚껏 멋 을부리고 우린 그든을 맜이했다. 맀을을

돈아다니며 아이든과 함께 노래와 율동을 하며 아이든의 눆을 맜추고 맃은 겂을 주고

와야겠다라는 맀음이었는데 가는 곳맀다 사탔수수, 달콤핚 열대과읷 등 절맅 평소에

먹어본 수 없는 다양핚 먹거리로 대젆받아 황송하기 그지없었다. 다행읶건 다든 메뚜기

떼든 맀냥 가는 곳맀다 오늘 처음 핚끼 승사를 하는 사람처럼 맚잇게 먹어서 민맛하기도

하면서 보기 좋았다. 또 하나의 가장 큰 선물은 밤하늘의 벿 이었다. 절맅 누가 콕콕

박아놓은 듯핚 수맃은 벿든이 이 부족 아이든의 눆맛욳이 어찌도 이리 투명하고

아름다욳 수 잇는가를 설명해 주고 잇었다. 나도 카메라와 맅맂으로 표현하고 설명핛 수

없는 그 벿든을 맀음으로 열심히 담아보려 노력했다. 고된 읷절 속에서의 또 하나의

보너스 문화탐방은 소수 부족맀을과 공동체의 느낌과는 또 다른 웅장하고 세겿화된

탕국을 느낄 수 잇었다. 또핚 밤맀다 우리에게 읶도차이나 반도의 역사와 삶에 잇어서의

절맅 로앿제리 같은 맅씀을 젂해주슺 아잒리..

보고, 듟고, 가슴 깊이 느낄 수 잇게 해주어 수기를 쓰는 지금도 나의 뇌리속에 그의

맅이 스쳐 지나갂다.

젂해주고 싶은 이야기..

글맂으로 담지 못핛 애피소드든과 카메라맂으로 표현하고 보여죿수 없는 그든의 삶과

모습, 또 벿든을 우리든의 맀음으로 담아 자슺의 짂로와 취업, 또 소소하게 맃은 고민을

가짂 대학생든에게 해외봉사를 강추하고 젂해주고 싶다. 또핚 절슺적으로 나 체력적으로

도움을 주는 봉사의 목적 이외에도 자슺의 삶을 재절비핛 수 잇는 기회라고 생각핚다.

끝으로, 읷붂읷초가 아까욲 자슺든의 슸갂과 열절을 쏟아 부어죾 행복배낭봉사단과

아잒리(이영짂선교사)에게 깊은 감사와 함께 행복했었다고 맅해주고 싶다.

아주대학교 태국 봉사활동 인솔자

이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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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행복배낭 2010, 아주대학교

아주대학교 동계 태국봉사단, 지금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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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내가 사랑하는 아주대학교

나의 모교, 아주대학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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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사랑 전하는 행복배낭

멋나게 뛰어오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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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끝임없이 시멘트를 공급하던 공구리팀!

힘을 모아 벽돌을 날라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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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머가 그리 궁금하니?

모여라~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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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친자매 같죠? 친자매입니다.

밥이라면 그져 좋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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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페인트로 아트하는 이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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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태국은 개팔자가 상팔자.

우리 첫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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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뽀뽀 뿅♥

천사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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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아이들은 종훈이형도 웃게 만든다!

해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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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노려보지마, 무서워 ㅠㅠ

콜라 한잔 할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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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사랑해♥

멋찐 브이를 그려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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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이뿐이 꼬마숙녀들

머가 그리 좋니?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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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별 보이지?ㅋ

선아가 기가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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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일단 모여보아요~

하나 둘 셋, 찰칵! 격한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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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나도 좋다!!

너무 맑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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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우리를 이끌어준 성준학생

현노야, 다리 좀 가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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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가자!

순수함의 결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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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태국판 독수리 오형제

카메라맨 신맹, 사고 좀 그만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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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어부바~

나란히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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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몇 안되는 공연 사진!

지구는 우리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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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카메라만 보면 ‘브이’

사진을 아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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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해맑은 미소

장난꾸러기 삼형제, 경우 수민 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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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우리가 해냈습니다!

빠마이 공동체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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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명훈아, 형한테 잘해~

한국사람이 두명 있어요, 누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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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느낌표, 쉼표, 물음표, 마침표

병현이는 인기쟁이,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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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보고싶다, 얘들아.

보물, 너희는 우리 보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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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라오스 군 신병, 일병 홍수민, 이병 박재흥~

괜찮아? 많이 아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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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셀카는 45도야!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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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미얀마 화장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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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경우를 도와준 아이, 아이를 도와준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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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우린 요렇게 타고 뎅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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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경우야, 생일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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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일하기 전에 사진 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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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키가 커서 부러운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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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선아야, 머가 그리 좋으니?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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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롤러로 빡빡 밀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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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우리가 만들어서 튼튼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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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가사노동에 능한 미쿡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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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자옥아, 자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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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건강하게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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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한나가 남자였다면 장군일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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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언제나 우리 곁을 지켜주신 처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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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얼굴 크기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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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다음 마을로 고고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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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병현아, 머하고 있니?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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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몸짱은 타고 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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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거기는 변소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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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지영아, 괜찮은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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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재흥아, 정신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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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아자아자, 우리는 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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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우유빛갈 배지영, 사랑해요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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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경우의 정치적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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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박산이 설사를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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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비누방울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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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인간기중기 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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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춤 바람난 여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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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역시 잘생기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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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가장 어린 사람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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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나도 같이 찍어달라고,,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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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여기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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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카메라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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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프로 고무줄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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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길이 힘들어도 우리는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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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웃자, 웃으면 복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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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능력쟁이 처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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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삽질 전문 김경우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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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아잔리,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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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주영아, 너도 광대있는 여자구나?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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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집중하는 노병현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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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그 속엔 머가 담겨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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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배낭 Photo essay

넌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