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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65 꿈나래21 | May 2011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연구 가 바로 ‘유전자 가위’다. 국내에서 독보적, 전 세계적으로도 선도적인 그룹에서 유전자 가위를 연구하고 있는 김진수 서울대 화학과 교수(유전체공학연구단장)는 “유 전자 가위를 세포에 도입하면 수십 억 쌍으로 구 성된 유전체 염기서열 중에서 특정한 서열만을 인식해 DNA를 자르게 된다.”며 “마치 외과의사 들이 메스나 가위를 이용해 환부를 잘라내고 치 료하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 한다. DNA를 유전자 가위로 직접 자른다는 게 말 로는 쉽게 들리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 기 힘든 일이었다. 유전자 재조합을 가능하게 한 제한효소는 시험관 내에서만 DNA를 자르고 붙 일 수 있었던 반면, 유전자 가위인 ZFN(Zinc Finger Nuclease, DNA 자르는 효소)은 살아 있는 생명체의 유전자를 바로 조절할 수 있는 물 질이다. 이 경계가 바로 생명공학의 1·2차 혁명 을 구분 지을 만큼 생명공학 분야에서 그야말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김 교수는 “제한효소가 생명공학의 1차 혁명 을 일으켰다면 ZFN으로 2차 혁명이 시작됐다.” 며 “실제 자연계에서 이뤄지는 현상(몸속에서 DNA가 스스로 잘리고 접합되는 과정)을 적용 해 기존 유전공학으로 못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현재 김 교수 연구팀은 유전자의 특정 위치를 선별해 절단할 수 있는 ZFN 대량 합성 기술을 개발해 전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기술을 선도하 고 있다. 잘못된 ‘유전자 설명서’ 바로잡는 기술 김 교수팀이 연구하고 있는 유전자와 유전자 가위를 쉽게 이해하고 싶다면 ‘로봇 설명서’를 한 번 떠올려보자. 설명서대로 제대로 맞췄을 때 비 로소 완벽한 로봇이 완성된다. 사람(유전자)에도 정상적인 사람을 만드는 설명서가 엄연히 존재한 다. 염기서열을 구성하는 A(아데닌), G(구아닌), C(시토신), T(티민) 단 4개의 알파벳으로 쓰인 독특한 설명서다. 네 글자가 어떻게 쓰여있느냐 에 따라 차별화된 한 사람이 결정되는 것이다. 혈우병 유전자를 지닌 것으로 확인된 역사상 첫 인물이 다름 아닌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라 는 사실. 혈우병은 피가 나면 멈추지 않는 유전 병으로, 여왕이 낳은 아들은 혈우병을 갖고 태 어나 단명했고, 딸과 손녀들이 낳은 왕자들 역시 줄줄이 혈우병으로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유럽 에서 혈우병이 ‘왕들의 병’으로 불린 이유다. 이 렇게 혈우병과 같이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생기는 유전병을 외과 수술하듯 바로잡을 ‘무언가’가 있 었다면 이런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최근에 와서 그 ‘무언가’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 나고 있다. 잘못된 유전자를 ‘싹둑’ 잘라주는 ‘유 전자 가위’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유전 자 가위는 진짜 ‘가위’가 아닌 ‘DNA 자르는 효소’ 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유전자 가위, 세계 속에서 한국이 선도 DNA에 담긴 유전정보에 따라 개개인이 달라 진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염기서열이 다 르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유전병뿐만 아니라 암, 에이즈와 같은 질병이 생기기도 한다. 여기서 ‘염 기서열을 교정할 수 있다면 수많은 질병을 치료 과학으로 여는 세상 강재옥 본지 기자 서울대 유전체공학연구단 ‘유전자 가위’로 암·에이즈도 싹뚝 생명공학 분야 ‘2차 혁명’ 시작되다 현재 김 교수 연구팀에서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연구도 유전자 가위로 DNA를 인위적으로 끊어 주고, 끊어진 DNA가 스스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원하는 변이를 집어넣는 일이다. 01. 유전자 가위로 교정한 물고 기가 낳은 알과 부화된 새끼 물고기 02. 개의 특정유전자를 질병모델 로 만들기 위해 세포 시료를 관찰하고 있다. 01 02

세상 현재 김 교수 연구팀에서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ˆ나래21...추동물이자 인간 유전자와 70% 이상 유사한 데 반해, 유전체의 크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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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세상 현재 김 교수 연구팀에서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ˆ나래21...추동물이자 인간 유전자와 70% 이상 유사한 데 반해, 유전체의 크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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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연구

가 바로 ‘유전자 가위’다.

국내에서 독보적, 전 세계적으로도 선도적인

그룹에서 유전자 가위를 연구하고 있는 김진수

서울대 화학과 교수(유전체공학연구단장)는 “유

전자 가위를 세포에 도입하면 수십 억 쌍으로 구

성된 유전체 염기서열 중에서 특정한 서열만을

인식해 DNA를 자르게 된다.”며 “마치 외과의사

들이 메스나 가위를 이용해 환부를 잘라내고 치

료하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

한다.

DNA를 유전자 가위로 직접 자른다는 게 말

로는 쉽게 들리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

기 힘든 일이었다. 유전자 재조합을 가능하게 한

제한효소는 시험관 내에서만 DNA를 자르고 붙

일 수 있었던 반면, 유전자 가위인 ZFN(Zinc

Finger Nuclease, DNA 자르는 효소)은 살아

있는 생명체의 유전자를 바로 조절할 수 있는 물

질이다. 이 경계가 바로 생명공학의 1·2차 혁명

을 구분 지을 만큼 생명공학 분야에서 그야말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김 교수는 “제한효소가 생명공학의 1차 혁명

을 일으켰다면 ZFN으로 2차 혁명이 시작됐다.”

며 “실제 자연계에서 이뤄지는 현상(몸속에서

DNA가 스스로 잘리고 접합되는 과정)을 적용

해 기존 유전공학으로 못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현재 김 교수 연구팀은 유전자의 특정 위치를

선별해 절단할 수 있는 ZFN 대량 합성 기술을

개발해 전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기술을 선도하

고 있다.

잘못된 ‘유전자 설명서’ 바로잡는 기술

김 교수팀이 연구하고 있는 유전자와 유전자

가위를 쉽게 이해하고 싶다면 ‘로봇 설명서’를 한

번 떠올려보자. 설명서대로 제대로 맞췄을 때 비

로소 완벽한 로봇이 완성된다. 사람(유전자)에도

정상적인 사람을 만드는 설명서가 엄연히 존재한

다. 염기서열을 구성하는 A(아데닌), G(구아닌),

C(시토신), T(티민) 단 4개의 알파벳으로 쓰인

독특한 설명서다. 네 글자가 어떻게 쓰여있느냐

에 따라 차별화된 한 사람이 결정되는 것이다.

혈우병 유전자를 지닌 것으로 확인된 역사상

첫 인물이 다름 아닌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라

는 사실. 혈우병은 피가 나면 멈추지 않는 유전

병으로, 여왕이 낳은 아들은 혈우병을 갖고 태

어나 단명했고, 딸과 손녀들이 낳은 왕자들 역시

줄줄이 혈우병으로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유럽

에서 혈우병이 ‘왕들의 병’으로 불린 이유다. 이

렇게 혈우병과 같이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생기는

유전병을 외과 수술하듯 바로잡을 ‘무언가’가 있

었다면 이런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최근에 와서 그 ‘무언가’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

나고 있다. 잘못된 유전자를 ‘싹둑’ 잘라주는 ‘유

전자 가위’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유전

자 가위는 진짜 ‘가위’가 아닌 ‘DNA 자르는 효소’

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유전자 가위, 세계 속에서 한국이 선도

DNA에 담긴 유전정보에 따라 개개인이 달라

진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염기서열이 다

르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유전병뿐만 아니라 암,

에이즈와 같은 질병이 생기기도 한다. 여기서 ‘염

기서열을 교정할 수 있다면 수많은 질병을 치료

과학으로 여는 세상

강재옥본지 기자

서울대 유전체공학연구단

‘유전자 가위’로 암·에이즈도 싹뚝생명공학 분야 ‘2차 혁명’ 시작되다

현재 김 교수 연구팀에서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연구도 유전자 가위로 DNA를 인위적으로 끊어

주고, 끊어진 DNA가 스스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원하는 변이를 집어넣는 일이다.

01. 유전자 가위로 교정한 물고기가 낳은 알과 부화된 새끼물고기

02. 개의 특정유전자를 질병모델로 만들기 위해 세포 시료를 관찰하고 있다.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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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뿐만 아니라 코끼리에는 코끼리 만드는

법, 장미에는 장미 만드는 법이 쓰여있는 등 모

든 세포가 고유한 설명서를 갖고 있다. 유전자들

의 집합체인 유전체(genome)가 바로 그 설명서

이다. 여기서 설명서의 순서가 바뀌거나 빠지거

나 중복됐을 때 사람의 경우 유전병과 같은 질병

이 나타날 수 있고 이렇게 잘못 쓰인 설명서를 바

로잡는 게 바로 ‘유전자 가위’인 셈이다.

유전자가 망가졌다는 건 바로 유전자에 담긴

설명서의 글씨나 문장이 잘못됐음을 의미한다.

적혈구 속의 헤모글로빈 유전자를 예로 든다면,

GAG 구조가 GTG가 될 경우 그 다음 과정인 단

백질도 잘못 만들어지게 되고 그 결과 겸상적혈

구 빈혈증이라는 유전병에 걸리게 된다. 로봇 설

명서에 오류가 있으면 제대로 조립될 수 없는 것

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유전자 가위’로 DNA를 자른다면 잘

려진 DNA를 붙일 ‘유전자 풀’은 필요하지 않을

까? 이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을 비

롯해 모든 동물, 식물의 세포에는 절단된 DNA

를 다시 온전히 이어붙이는 일종의 수선시스템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연구자가 원하는 변이를 절

단된 DNA 염기서열 부위에 도입하거나 돌연변

이가 있었던 부위를 교정할 수 있다. 오히려 자연

계에 존재하는 수선기능을 연구해 탄생한 도구

가 바로 유전자 가위인 셈이다.

현재 김 교수 연구팀에서 중점적으로 하고 있

는 연구도 유전자 가위로 DNA를 인위적으로 끊

어주고, 끊어진 DNA가 스스로 이어지는 과정에

서 원하는 변이를 집어넣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원래대로 접합되기도 하지만 다르게 접합되도록

유도하는 게 연구의 핵심이다. 유전적 질병을 예

로 든다면, 잘못된 DNA를 잘랐을 때 원래대로

접합되면 질병 그대로의 상태가 유지되지만 다르

게 접합되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원리다.

10년 내 질병 치료 성공 사례 줄줄이

최근 해외에서는 유전자 가위 연구로 에이즈

치료제가 임상연구에 들어가는 등 다양한 가능

성이 열리면서 학계의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하

지만 단기간에 뛰어들 수는 없는 분야라 많은 생

명과학자들이 애를 태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유전자 가위, 즉 DNA 자르는 효소를 인공적

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유전자마다 염기서열이 다

르기 때문에 매번 맞춤형으로 제작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현재 국내에서도 10여 개의 연구기관에서 김

진수 교수 연구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유전자

가위를 활용하는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지

난해부터는 유전자 가위의 상용화 단계까지 진

입했다.

김 교수는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다양한 질

병모델이 개발 중이고 유전자치료제, 세포치료

제도 개발 중인 만큼 10년 내에 다양한 성공 사

례가 쏟아질 것”이라며 “유전자 가위는 인간에게

유용한 모든 동물, 식물에 적용될 수 있고 궁극

적으로는 인간 질병의 치료에도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현재 김 교수 연구팀은 동물 모델로 실험용 쥐

가 아닌 ‘제브라 피쉬’라는 물고기로 활발한 연

구 중에 있으며, 이미 상당 부분 성과를 내고 있

다. 어떤 DNA를 잘랐을 때 어떤 질병이 발생하

는지, 그 반대로 질병이 생긴 물고기의 경우 어떤

DNA를 잘라야 병을 치료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다.

몸길이 2~3cm에 불과한 제브라 피쉬를 유전

자 가위 연구의 질병모델로 활용하는 이유는 척

추동물이자 인간 유전자와 70% 이상 유사한 데

반해, 유전체의 크기가 작은데다 실험이 용이하

기 때문이다. 현재 물고기뿐만 아니라 개, 돼지,

소와 같은 고등동물을 대상으로도 연구 진행 중

에 있다.

김 교수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 국내의 동

물복제 기술에 유전자 가위 기술까지 접목시킨

다면 그야말로 한국에서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유전자 가위 분야는

세계적으로도 한국이 앞선 연구를 하고 있는 만

큼 유능한 인재가 함께 참여한다면 보다 선도적

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유전체공학연구단은 총 10명의 박사 후

연구원 및 박사과정 대학원생으로 구성돼 있으

며, 김 교수는 무엇보다 훌륭한 이공계 인재의

참여가 있어야 세계적인 연구를 이끌어갈 수 있

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과학으로 여는 세상

03. 연구단에서는 물고기뿐 아니라 개, 돼지, 소와 같은 고등동물을 대상으로도 유전자 가위 연구가 이뤄지는 만큼 다양한 시료가 보관 중이다.

04. 현미경으로 본 개의 세포 시료

05. 06. 현재 서울대 유전체공학연구단에서는 ‘제브라 피쉬’를 이용해 활발한 유전자 가위 연구를 진행 중이다.

현재 국내에서도 10여 개의 연구기관에서 김진수 교수 연구팀과

의 공동연구를 통해 유전자 가위를 활용하는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부터는 유전자 가위의 상용화 단계까지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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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 제한효소(Restriction enzyme) DNA의 특정한 염기배열을 식별하고 이중사슬을 절단하는 특수한 효소로 유

전공학에서 재조합 DNA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다. 1970년대 제한효소를 발견한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은 노벨

생리학 및 의학상을 수상하는 등 생명과학과 생명공학 및 제약산업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 ZFN(Zinc Finger Nuclease) 세포 내에 존재하는 유전자의 특정 위치를 선별해 절단할 수 있는 효소로, ‘제한

효소’보다 한 단계 도약한 효소. 제한효소는 DNA의 6개 염기를 인식해 자르는 반면 ZFN은 18개 이상의 염기서열

을 인식해 자르기 때문에 세포 내에서 선택적인 DNA 절단이 가능하다. 만일 제한효소를 세포 내에 도입하면 DNA가

수십만 조각으로 잘리지만 ZFN은 단 한 군데에서만 DNA를 자르게 된다. 차기 노벨상 수상 분야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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