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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I편 법사회학의 이론과 패러다임 1

법사회학의이론과패러다임 - KTUG, KTSktug.org/~nomos/sol/forclass.pdf · 사람들이있다.특히보하난(PaulBahannan)은“법이란법문제를다루는특수한 사회적기구에의하여재창조된관습이다”라고단언했다.즉법이란재제도화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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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I 편

    법사회학의 이론과 패러다임

    1

  • 법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이는

    사회학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법사회학도 방법론적

    으로는 사회학의 한 분야이므로 사회학에서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틀은

    법사회학에서 법현상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문이 그 연구대상을 바라보는 시각 또는 분석 내지 해석하는 틀을 우리는

    패러다임(paradigm)이라 부른다. 사회학이 사회를 바라보는 틀에는 대별하여 두

    가지가있다. 통합론과 갈등론이 그것이다. 통합론은 사회의 구성요소들사이의

    조화와그것을통한사회전체의유지·존속이라는관점에서있다. 갈등론은사회의

    구성요소들 사이의 대립과 투쟁, 억압과 저항이라는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이를 통한 역동적인 사회변화를 비판적으로 해석해낸다.

    법현상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법사회학 분야에서도 이러한 통합론과 갈등론의

    패러다임 차이가 있어왔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법사회학의 여러 패러다임에

    관하여 서술하기로 한다. 다만 통합론을 보다 세분하여 문화주의와 구조주의로

    나누어 설명하기로 한다. 문화주의와 구조주의 양자 모두가 사회 구성요소들

    사이의 조화와 전체사회의 존속을 중시하는 통합론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문화주의가 사람들 사이에 공유된 문화와 관념의 통일성에 의한

    사회의조화를강조한다면, 구조주의는사회구성요소들사이의상호관계의양상과

    패턴에 초점을 두어 이들의 상호작용이 전체사회의 유지·존속에 기여하는 계기를

    중시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갈등론은 마르크스주의 및 그 언저리에서 유래하는 흐름이 대표적인데, 사회적

    억압과 착취를 분석해내고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뿐만 아니라 통합론으로

    일컬어지는주류패러다임이간과하고있는부분을날카롭게비판하고있기때문에

    흔히비판이론으로불려진다. 따라서 앞으로의서술은통합론으로서의문화주의와

    구조주의, 그리고 갈등론으로서의 비판이론의 순서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다만 문화이론과 관련깊은 민속방법론에대한추가적인이해를도모하는데

    마지막 장을 할애하기로 한다.

    2

  • 제 1 장

    문화이론

    1.1 법, 관습, 그리고 문화

    학문적 용어가 으레 그러하듯 문화(culture)라는 용어도 일상적·관용적 의미와

    과학적·전문적 의미 사이에차이가존재한다. 일상생활에서문화라고하면문학,

    미술, 음악, 연극, 영화 따위의 제반 활동을 뜻한다. 이를테면 음악회에 가는 것,

    전람회에가는것등을우리는문화활동이라부르는것이다. 고급문화나대중문화를

    운운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이다.

    하지만사회학에서문화라고할때그의미는이러한문예적인행위와는거리가

    있다. 그것은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믿음이나 관념의 체계 또는

    어떤 공통된 행위패턴을 뜻하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구성원이

    일부일처제를 타당한 것으로 믿고 있거나 또는 그러한 행위양상이 대부분의

    사회성원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면 우리 사회는 일부일처제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문화란 관습(custom)으로 표현된다고 할 수 있다. 관습이란 바로

    반복된 행위패턴 또는 그에 대한 믿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습은

    법의 존재기반 또는 법의 원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단순화의 위험을 감수하고

    하나의 예를 들자면 일부일처제의 사회적 관습에서 중혼금지라는 민법조항이

    유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1.1.1 “법은 관습의 재천명이다”

    그리하여 법인류학자들 중에서는 법이 관습에서 유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보하난(Paul Bahannan)은 “법이란 법문제를 다루는 특수한

    사회적 기구에 의하여 재창조된관습이다”라고 단언했다. 즉 법이란 재제도화된

    3

  • (reinstitutionalized) 관습이라는 것이다. 재제도화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관습 그 자체가 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관습이 재확인과고 재천명되었을 때 비로소

    법의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는 말이다. 누가 재천명하고 재확인하는가? 현대적인

    법체계에서는 대체로 국가, 특히 법원과 같은 사법기구가 그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국가시스템이존재하지아니하는원시사회에서라면족장이나추장과같은권위자가

    재제도화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다음은 이러한 관습의 재천명을 통하여 법이 성립되는 모습을 묘사한 어느

    민속지적 기술의 일부분이다. 법인류학자 호벨(A. E. Hoebel)이 법학자 르엘린(K.

    Llewellyn)과 공동연구한 샤이엔(Cheyenne) 인디언의 사례인데, 여기서 “엎드린

    늑대”는 어느 용맹한 샤이엔 전사의 이름이다.

    셰이안 족의 관습대로 누군가가 허락도 없이 엎드린 늑대(Wolf

    Lies Down)의 말을 “빌려” 가자 그는마을의추장단을찾아갔다. 말이

    없으면 사냥도 할 수 없고 전투도 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던 것이다.

    추장단은허락없이말을빌려간사람을소환했고그는엎드린늑대에게

    사과하고말을돌려주겠다고했다.그러나추장단은단순히분쟁하나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래에 있을 유사한 분쟁에 대비하여 새로운

    규칙을 선언했다 “이제부터 허락 없이 말을 빌려서는 안 된다. 허락

    없이 말을 빌려 가면 우리는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하겠다. 만약

    돌려주기를 거부하면 채찍으로 엄히 다스리겠다.” 이렇게 추장단은

    새로운규칙을만듦으로써하나의사건이야기한불확실성에대처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법이 사회의 관습에 내재하는부분적불확실성에대응하

    면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부족구성원들은 물건을 빌리는 것은

    일반적으로 허용된다는 감정 또는 관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물건이 말인

    경우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옴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말은 용사의 역할

    을 수행하는 데 핵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그들은 묵시적으로

    공유하고 있던 감정을 명백히 할 필요가 생겼고 이제 그것을 공식적인 규칙으로

    선언했던 것이다. 이렇게 관습을 강제하는 임무를 추장단이 떠맡음으로써 관습은

    이제법이되었다. 이러한 것이 바로관습의재제도화이며, 관습의 재천명으로서의

    법인 것이다.

    1.1.2 “법은 관습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문화주의자들은 법을 관습 혹은 문화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파악하는데 이러한

    이론은 결국 법은 관습에 부합해야만 실효성을 가진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사회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와 규범에 어긋나는 법은 법으로서 효력을 가질

    4

  • 수 없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사회학자 섬너(William G. Sumner)는 이러한 주장

    을 “법은 관습을 변화시키지 못한다(lawways cannot change folkways)”라는

    명제로 요약했다. 관습의 결에 반하는 법률을 만들어 억지로 시행하더라도 그 법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금주법

    우선 미국이 한때 시행했던 금주법(Prohibition)에 대한 사례이다. 금주법은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법으로서 알콜음료의 양조·판매·운반·수출입을 못하게 하는

    미연방헌법 수정 제18조가 1917년 연방의회를 통과하였고 대다수 주의 비준을

    얻어 1920년부터 발효되었다. 하지만 금주법은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법의 시행기간이었던 10여년 동안 밀조·밀매 등에 따르는 조직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이를 단속해야 할 공무원들까지 부패의 늪에 빠져 실제로 법집행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마침내 1933년 수정헌법 제21조에

    의하여 폐지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헌법 개정을 통해서까지 시도되었던

    야심찬 도덕주의적 사회개혁이 결국에는 술을 마시는 관습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갔다. 법이 관습을 변화시키지 못한 사례 하나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여성해방

    1918년 러시아 혁명이 있기 전까지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지역은 전통적인 무슬림

    사회였다. 여자들은 남편의재산으로취급되었다. 여자들은 가정내의부엌으로

    활동공간이한정되고설혹외출한다할지라도가운으로온몸을감싸야하는엄격한

    속박 하에 놓여 있었다. 여자들은 이혼할 권리도 없었던 반면 남편들은 수월하게

    이혼할 수 있었고 여자들은 한 푼도 없이 친정으로 쫓겨나야 했다. 일부다처제의

    풍습을 포함하는 이러한 관습은 혁명 이전의 여성들을 전적인 경제적, 사회적

    예속상태에 놓이게 했다.

    1918년 러시아 짜르 체제를 무너뜨린 볼셰비키 혁명가들은 소비에트 사회

    전체를근대화하길희망했다. 이목표를달성하려면중앙아시아무슬림을포함해서

    여러 소수민족들의 전통적인 가치와 관습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무슬림의 “진보”를가로막고있는 “후진적” 관행을근절하는데법이유용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무슬림 여성들의 나약함을 타개하기 위하여 법적 장치를 사용했다.

    여자들이 남성 지배의 질곡에 속박되어 있다고 판단한 그들은 여자들이 스스로

    노예의 지위를 벗어나도록 함으로써 무슬림의 전근대적 관습의 껍질을 깨뜨리고

    중앙아시아가 산업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서양식 옷을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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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며, 이혼도 할 수 있고,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볼셰비키 법률과 법원이 만들어졌다. 특히 여성해방을 위해

    설립된 법원에서는 여자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했고 전통 무슬림 판사는 권한을

    박탈당했다. 여자들을 위한 시민권이 입법화되었고 여성판사가 고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례의 연구보고는 이러한 사회개혁이 실패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자들은 차츰 새로운 법률을 이용하기 시작했지만, 그럴수록 남자들은 변화를

    방해하려 하였다. 예를 들어 법원의 경우 모스크바에서 교육받고 파견된 판사들은

    지방관습을 너무나 모르고 있어서 분쟁의 내용이나 당사자들의 전략을 이해하기

    곤란했고 무슬림 남성들은 사건의 결과를 손쉽게 조작할 수 있었다. 사실상의

    권력을 쥔 남자 법원 서기들은 여성 판사의 권력을 탈취했다. 모스크바 당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지방 유지들을 판사로 채용하자, 그들은 소비에트 법률을

    무슬림 관습에 맞게 바꿔 해석해 버렸다.

    법원 바깥에서는, 경찰관들(무슬림 남자)이 못 본 체 하는 동안 서양식 옷을

    입은 여자들이 공격을 당했다. 볼셰비키식 운동이 강화되면서 거리를 나다니는

    여자들은 점점 더 많이 강간당했고 살해당했다. 경찰관이나 지방공무원까지 이런

    공격에 가담했다.

    수많은 여자들이 남편을 떠나 약속된 해방을 찾아 나섰지만, 생계를 유지할

    직업을 구할 수 없었기에 그들 대부분은 매춘부로 전락했고 1920년대에 매춘은

    전염병처럼 번져갔다. 이러한 일시적인 지위하락을 경험한 후 대부분의 여성들은

    집으로 되돌아가 남편의 용서를 구걸하고는 다시 전통적인 역할로 복귀했다.

    중앙아시아 여성해방운동의 실패 사례는 금주법 사례와 더불어 전통을 공격하는

    법은 결국 실제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없음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예에 속한다.

    과속단속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 과속운전자를 대대적으로 단속했을 때 벌어졌던 사례도

    비슷한 맥락에서 거론될 수 있다. 석유파동으로 원유가가 폭등하였음에도 고속도

    로에서제한속도위반운전자가끊이지아니하자코네티컷주지사는시속 80km의

    속도위반으로 한번이라도 적발되면 무조건 운전면허를 취소해 버리는 가혹한

    명령을 만들었다. 이 과격한 조치는 범칙금 몇 푼 내던 과거의 그것과는 처벌의

    수준이 완전히 다른 것이었고 그래서 단속에 적발되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불편을

    초래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과속을 그만두었을까?

    연구자들에의하면결과는전혀그렇지않았다고한다. 주지사의새로운명령은

    단지경찰관들로하여금이제과속단속을조금밖에하지않도록만들었다는것이다.

    즉, 과속으로 적발된 운전자를 공식적으로 단속하면 운전면허 취소라는 가혹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경찰관들은 대부분의 과속운전자를

    6

  • 단속하지 않거나 단속하더라도 그저 주의만 주고 돌려보냈을 뿐이었다. 물론

    속도위반의 정도가 대단히 심각한 위반자에게는 스티커를 발부하여 공식적으로

    단속했으나 그 수는 미미한 정도에 그쳤다. 결국 주지사는 위반자의 수가 현저히

    감소했다는 보고에 이제 사람들이 속도를 잘 지키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흡족해

    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주지사의 명령이 발효되기 이전의 속력으로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단속하는경찰관들마저도고속도로에서는 100km이상달려야한다는일반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애초 단속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실정법의 효력을

    무력화시킨 사례이다.

    가정의례준칙

    가정의례준칙이란혼례, 상례, 제례, 회갑연 등 가정의례에서허례허식을일소하고

    그의식절차를합리화함으로써낭비를억제하고건전한사회기풍을진작할목적으

    로 제정한 대통령령이다. 1973년 5월 17일 대통령령으로 처음 제정되었다. 모든

    국민은 가정의례의 의식절차를 이 준칙에 따라 엄숙하고 간소하게 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법률의수권 없이 명령으로만국민의기본권을제한하는것은

    위헌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어 1993년 12월 법률의 형식을 빌어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로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금하고 있는 허례허식 행위의 내용을 보면,

    ①청첩장 등 인쇄물에 의한 하객초청 ②기관, 기업체, 단체 또는 직장명의의 신문

    부고 ③화환, 화분 기타 이와 유사한 장식물의 진열, 사용 또는 명의를 표시한 증여

    ④답례품의 증여 ⑤굴건제복(屈巾祭服)의 착용 ⑥ 만장(輓章)의 사용 ⑦경조기간

    중 음식물의 접대 등이다.

    주지하듯이 준칙으로 시행되었던 기간이었든 법률로서 시행된 기간이었든

    간에 실제 국민들의 경조사 의례에서 위의 금지행위들은 그 불법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널리 행해져왔던 것이고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은 공식적인 법규와 국민들 간의 “살아있는 법”(living law) 사이의

    불일치를 견뎌내지 못하고 1999년에 폐지되고 말았다. 금주법이나 중앙아시아

    여성해방 케이스와 같은 맥락에서 법이 관습을 변화시키는 데 실패한 대표적인

    우리 사회의 사례인 것이다.

    1.2 문화이론에 대한 사례와 반증

    법이관습을변화시키는데실패한사례는얼마든지있을수있으나이정도의사례

    들만 거론하는 것으로도 문화주의자들의 주장을 이해하는 데는 충분하다. 요컨대

    7

  • 법은 관습 또는 문화에서 유래하는 것이며 관습의 결에 반하는 법은 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적 함의를 듬뿍 지닌 관점이다.

    법을 만드는 입법자는 백성들의 관습과 감정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일까? 법이란 단지 문화와 관습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근대사회와 근대법은 합리적인 인간상을 전제한다.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예로부터의 관습과 전통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예컨대 1990년대부터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성희롱 사건 판결과 입법이 있었고

    현재 이것은 오히려 낡은 전통과 관습을 몰아내고 있지 않은가? 이런 현상을 법은

    관습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명제로 설명해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이제 일본의

    사례를 통하여 관습 또는 문화이론이 가지는 한계를 알아보자.

    일본은 근대사회 중에서도 가장 발전된 사회의 하나로서 국내총생산 수치로 볼

    때세계제2, 제3의 경제대국이다. 그런데그러한일본이근대법체계에관해서만은

    저발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서구에 비해서 소송 사건수도 변호사 수도

    훨씬 적다.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를 설명하는 일본의 저명한 법사회학자 가와

    시마 다케요시(川島武宜)에 따르면 일본의 법적 저발전은 일본적 관습의 발로라고

    한다. 즉, 일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조화(harmony)를 가장

    잘 유지할 수 있는가에 있으므로 그들의 관습과 문화는 분쟁을 공개적인 것으로

    만들어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상호간의 화해를 가로막는 공식적인

    소송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조화를 가장 잘 이룰 수 있는 방법은

    타협이고 화해이다. 그들은 타협을 추구하지 정의를 추구하지 않는다. 화해는

    분쟁으로 인하여 분열된 집단에게 조화를 되찾아 준다.

    이러한 주장은 저 유명한 미나마타병 사례에서 입증이 되는 듯 했다.

    미나마타병은 일본의 한 어촌 마을 주민들이 겪었던 질병의 이름이

    다. 몇년사이에남자, 여자, 어린이할것없이심각한신경장애증세가

    미나마타 주민들에게 나타났다. 어른들은 쇠약해져 식물인간처럼

    되어갔고아이들은자라면서기형증상이나타났다. 이러한증후군은수

    백 명의 사람들에게서 나타났다. 이 이상야릇한 미나마타병의 원인은

    수은중독으로 밝혀졌다. 한 공장이 마을사람의 어로해역에 폐수를

    무단방류했고 폐수에 포함된 수은이 마을사람들이 먹는 물고기에

    축적되었던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 마을에 위치한 화학공장에게

    책임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양인이라면 당장 변호사 사무실로

    달려가 소송을 의뢰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미나마타의 주민들은 수

    년 동안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고통을 보상함으로써

    “조화”를 회복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회사의 양심을 기대하고

    있었다. 외부인들이 회사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법적

    8

  • 원조를 해 주겠다고 나섰을 때도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은 소송을 제

    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공개적인 대결보다는 조용히 참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공개적인 대결을 경원시하고 타협과 조화를 중시하는 일본적 문화의 결과로서

    이들은소송을제기하지않았고이러한일본적문화는법체계의저발전을가져오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나마타병 사례와 대단히 유사한 사건이 같은

    일본에서 발생하였을 때 그들은 이번에는 전혀 다른 행동을 취했다.

    미나마타로부터 상당히 떨어진 어촌 마을인 니가타에서도 동일한

    질병이발생하였다. 수은중독의원인은강의상류로 60km 이상거슬러

    올라가는한공장에있었다.원인이밝혀지자마자니가타마을의희생자

    들을줄지어소송을제기했다. 게다가그들은미나마타의희생자들에게

    소송대열에 합류하라고 부추겼다. 이때서야 비로소, 원인을 파악한

    지 13년이나 지난 후에 미나마타 사람들은 조금씩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니가타의 사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같은 일본인으

    로서 대단히 유사한 문화와 관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나마타

    사람들은 좀처럼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려 했던 반면에 니가타현 사람들은 피해

    원인을인지한즉시소송을제기했다. 법규범과법현상이관습과문화의발현이라면

    동일한 문화를 공유한 두 집단에서 전혀 상이한 결과가 나올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러한 현상은 문화이론으로는 설명되기 곤란하다. 하지만 다음에 서술할

    구조이론에 의하면 설득력 있는 설명이 주어질 수 있다. 즉, 미나마타 사람들과 그

    가해자인화학공장과의관계구조가니가타사람들과그가해자인상류의공장과의

    관계구조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나마타의 화학공장은

    바로 마을 인근에 자리잡고 있어서 미나마타 마을주민들과 긴밀한 상호관계를

    맺고있었다. 마을주민들의다수는공장에고용된근로자였다. 또는 고용되지는

    않았더라도 피고용인의 친척인 등으로 인하여 가까운 관계에 놓여 있었다. 그것도

    아닌 마을주민이라 해도 일본적 기업의 특징의 하나인 대기업이 제공하는 각종

    사회복지서비스의 혜택을 입고 있는 터였다.

    한편 니가타의 주민들은 가해 공장과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아니한 상태였다.

    공장은 마을로부터 60km나 떨어져 있어 피고용인도 아니었으며공장이마을에

    어떤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바도 없었다. 따라서 니가타 주민으로서는 아무런

    관계로 없는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함에 거리낄 것이 없었던 것이다.

    사회의 구성인자들 사이의 관계구조에 주목하는 입장은 문화이론이 아니라

    구조이론에 해당한다. 이렇게 문화이론이 제시하지 못한 일본적 사례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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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명을 구조이론이 제공할 수 있는데 이는 문화이론의 한계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1.3 문화이론에 대한 평가

    공식적인 법체계에 의존하기를 꺼리는 경향을 일본을 비롯한 동양적 문화의 산물

    로만 단정할 수는 없다. 서구 자본주의 시장의 한복판에서도 이런 경향을 발견할

    수 있는데, 스튜어트 맥콜리(S. Macaulay)는 미국 산업계의 기업간부들 역시

    표면상일본인들과다를바없는행태를나타낸다고보고한바있다. 법적인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들도 공식적으로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하기보다는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사태를 처리하곤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특정일까지 물품을 공급하지

    않으면 계약을 무효로 한다는 계약조항이 있다 해도 계약서 문언대로 고지식하게

    무효를 통고하고 채무불이행에 기한 배상을 청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대신 그들은 변호사의 자문도 구하지 않은 채 전화를 걸고 편지를 부치고 전보를

    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물품 공급 날짜에 대한 타협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미국의 기업 임원들의 행태와 미나마타 주민들의 행태는 표면상 유사하다.

    하지만 기업간부의 행위는 문화와 관습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공식적인 법시스템이

    사업의 원활한 수행에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에 생겨난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렇게 법현상은 적지 않은 경우 합리적(rational)

    행위의산물이기도하다. 그런데문화이론은비합리적인간상을전제하고있고오직

    이러한 관점에서 법을 바라본다. 전통과 문화에 대한 맹목적, 무의식적 추종만을

    묘사하고 있을 뿐, 변화에 대한 합리적 대응과 전략의 수립은 찾아볼 수 없다.

    예컨대 인도의 “암소숭배” 현상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며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도 그 주변을 암소들이 유유히 활보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임에도 암소 고기를

    먹지 않는다. 문화이론은 그에 대한 설명을 인도인들의 암소숭배 문화에서 찾는데

    이는 관습을 위해 생명을 버리는 비합리적 인간을 상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다른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 암소는 농사를 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황소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그 배설물은 연료로 귀중하게 사용되므로 눈앞의 배고픔을

    못 이겨 암소를 잡아먹는다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더 큰 기아와 고난을 만나게

    될 것이므로 암소를 숭배하는 문화를 발달시켜 왔다고 볼 수도 있다(마빈 해리스).

    따라서 문화와 관습에서 법의 기원을 찾고자 하는 시도는 인간과 사회현상의

    다양한 측면들 중에서 특정한 하나의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고 하겠다.

    더구나문화이론은논리적으로도문제를안고있다. 즉, 물음에대하여물음으로

    답하는동어반복에빠질위험이있는것이다. 우리가묻고자하는것은이를테면왜

    일본인은 소송을 제기하기를 꺼려하는가이다. 여기에 대하여 문화이론은 소송을

    10

  • 꺼려하는 관습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러면 그러한 관습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문화이론은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신념과 규범에 대해 주장하고 말하는

    것을 듣고 알 수 있다고 답한다. 하지만 말은 종종 관습을 있는 그대로 표상하지

    못한다. 말과 실제 행동이 불일치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실제 행동을 관찰해서 관습을 파악할 수밖에 없게 된다. 실제적 행동패턴

    으로서의 관습은 무엇인가? 이는 곧 우리가 설명하고자 하는 결과, 즉 소송을 잘

    제기하지 않는 경향인 것이다. 이리하여 문화이론은 소송을 꺼리는 행위의 원인을

    소송을 꺼리는 행위에서 찾게 된다. 물음에 물음으로 답하는 동어반복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문화라는 용어는 공유된 주관적 관념, 믿음, 가치를 뜻할 때도

    있고 객관적으로 일반화된 행위패턴을 뜻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를 이야기할 때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은 이 두 가지 의미, 즉 사람들

    이 ‘말하는 것’과 실제 ‘행동하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외부 관찰자에 대하여 내부의 치부를 잘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특히 규범이나 가치에 관련된 사항인 경우 자기 것을

    이상적인 것으로 관념화해서 말하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실제로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컨대 트로브리앤드(Trobriand) 섬사람들에 대한

    인류학적 현지조사연구로 유명한 말리노프스키(B. Malinowski)의

    보고에 따르면, 원주민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근친상간 금기의

    규범, 즉 같은 씨족의 여성과는 성관계를 가지지 않으며 이에 위반하면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아주 가까운 친척여성이 대상이 아니라면 같은

    씨족 여성과의 성관계 경험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오히려자랑스럽게떠벌리기까지하며사후에처벌이행해지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한다. 이들의 근친상간 금기 문화는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행위패턴에 의하여 제한 또는 축소해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문화이론으로는현상을훌륭히기술(describe)할 수는있겠지만그현상의

    원인을설명(explain)하기에는미흡하다고하겠다. 문화이론이현상의원인에대한

    인과론적 설명을 제공하려고 하면 논리적 모순에 봉착한다. 하지만 문화이론이

    법사회학에서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사회과학적 방법론에는 기술과 설명이라는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대상 집단과의 교감을 통하여 그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해석을 전개하는 방법도 간과할 수 없는 흐름으로 존재해 왔던 것이다.

    민속지(ethnography) 연구로 대표되는 이러한 이해와 해석의 방법이 무미건조한

    인과관계 분석보다 사회현상의 해명에 더 크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에

    11

  • 대해서는 차후에 좀 더 살펴보기로 한다.

    어쨌든 문화주의는 복잡한 사회현상을 관습 내지 문화라는 단일한 인자로

    환원시키는 위험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인간행위의 합리적 선택의

    측면을 간과하는 경향이 그러하다. 다음 장부터 살펴 볼 구조주의와 비판이론은

    문화이론이 간과하고 있는 측면, 즉 인간과 사회의 합리적 선택이라는 측면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1.4 막스 베버는 문화주의자인가

    막스베버(Max Weber, 1864-1920)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살았던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로서 사회학의 창시자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사회학 발달

    초기 단계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던 인물이다. 사실 베버는 비단 사회학뿐만

    아니라 정치학, 경제학, 행정학, 철학 등 제반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대가였으며

    게다가 대학에서는 법학을 공부했고 박사학위논문과 교수자격논문을 법제사 관련

    주제로 썼던 법률가이기도 했다. 그의 주저로는 사후에 유고로서 발간된 「경제와

    사회」가 있는데, 이 가운데 하나의 장이 법사회학에 할당되어 있으며 그 장의 제목

    또한 “법사회학”이다. 이렇게 볼 때 그의 학문 세계의 근저에는 법학적 전통이

    자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베버에게는평생의화두가하나있었으니, 왜 자본주의가하필이면동양이아닌

    서양에서 먼저 발달했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문제에 답하려고 했던 시도의

    하나가 비교적 초기 저작에 속하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이며, 이책은출간후백년이훨씬지난오늘날우리나라에서도대학생의필독서

    중의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널리 읽히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의 지역에서는 일찍부터 자본주의가 발달했던 데 비해,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에서는그렇지못하다는현상적차이에주목한다. 왜 이런차이가발생하는가?

    이에대해베버는칼뱅주의(Calvinism)로대변되는프로테스탄트윤리에서그답을

    찾는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지역은 한결같이 프로테스탄트(개신교)를 신봉하는

    지역인 반면, 그렇지 못한 다른 유럽 지역들은 가톨릭을 신봉하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칼뱅주의와 자본주의 발달 사이에 강한 친화성이 있다고 보았다.

    양자 간의 연결고리를 베버는 이렇게 설명한다. 종교개혁의 흐름 속에 등장한

    칼뱅주의는 “예정설”을 철저히 신봉한다. 칼뱅주의 역시 기독교의 한 종파로서

    신자들에게는 자신이 과연 신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그런데 예정설에 따르면 구원 여부는 신에 의해 이미 결정된 것이기에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이나 선행에 의해 그 결정을 번복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뱅주의자들은 자신이 구원받은 집단에 속한다는 징표를 조금이라도 더 얻고자

    노력한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직업을 천직(소명, 곧 신이 부여한 임무)으로 여기고

    12

  • 검약과 절제로써 열심히 일을 해서 더 많은 이윤을 남기고 그렇게 생긴 이윤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재투자하여 사업을 확장시키고 발전시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들은 자신이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고 여기며 직업적

    성공을 일종의 구원의 징표로 삼고 위안을 얻는다. 누군가 제3자가 나서서 자신을

    대신해구원을보장해줄수는없다고보는것이다. 이에비해가톨릭에서는교회가

    신과 인간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교회에 의지해 구원을 구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중세 말기의 면죄부 현상을

    상기하라)

    이렇듯 베버는 자본주의 발달을 가져오는 중요한 계기로서 칼뱅주의라는 종교

    윤리에 주목한다. 이는 곧 베버가 문화주의자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전술한 것처럼 문화란 집단구성원이 공유하는 믿음과 관념의 체계인 것이며

    칼뱅주의야말로그러한믿음과관념의체계에속하는대표적인사례이기때문이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만 보고 베버를 문화주의자로

    간단히 치부해버리기에는 베버의 이론이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자본주의 발달에 관한 베버의 또 다른 설명으로는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전술한 「경제와 사회」 뒷부분에서 그는 중세 서양과 동양의 도시의 성격 차이에

    주목한다.

    중세 유럽의 정치체제는 봉건주의(feudalism)로 특징지워진다. 봉건주의는

    영주가봉신에게토지를하사하는대가로봉신은영주에게충성과원조를제공하는

    인격적계약관계로이루어진다. 이러한 계약관계는위로는국왕으로부터밑으로는

    말단기사계급에이르기까지여러단계에걸쳐중층적으로형성되었다. 그런데당시

    중앙집권적 정치권력의 부재로 인해 실제적인 권력은 중앙의 국왕보다는 시골의

    여러 봉신들에게 집중되었고, 따라서 중세 봉건제는 역사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극단적인분권적정치시스템을낳게되었다. 이런상황하에서중세후기에

    유럽 각지에서 도시들이 성장해 나갈 때 도시의 부르주아들은 주변의 시골과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입법권, 독자적인 사법권, 독자적인 행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했고 또한 그것을 성취해 나갔다. 중세 유럽의 도시는 하나의 독립된 자치

    공간이었다.

    이와 같이 서양의 도시가 부르주아들만의 “경제도시”였다면 동양의 도시는

    중앙집권적 정치권력과 같은 장소를 공유하는 “정치도시”였다. 조선시대 서울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국왕과 귀족관료들의 거점인 한성은

    동시에 상업과 수공업에 종사하는 부르주아들의 활동무대이기도 했다. 일찍부터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를 형성한 동양의 정치권력은 이들 부르주아들이 자본을

    축적할수있는여유를주지않았다. 잉여가생기면그것은합법적인세금이되었든,

    불법적인 뇌물이나 강탈이 되었든 정치권력에 의한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동양의 부르주아들은 근대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 있는 토대인 대규모 자본 축적을

    13

  • 지속적으로 방해받았다. 이에 비해 중세 서양의 부르주아들은 분권적인 정치구조

    하에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권력공간 안에서 원시적 축적을 이루어갈 수 있었다.

    왜 서구에서 자본주의가 먼저 발달했는가에 대한 베버의 이러한 설명은 문화주

    의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정치학적, 지정학적 요소에 주목하는 것이었다. 베버는

    문화주의자가아니었던것이다. 다만자연현상과달리사회현상은참으로복잡하기

    때문에 하나의 현상에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다차원적인설명을추구했던것이다. 「프로테스탄트윤리와자본주의정신」은여러

    차원의다양한설명방식가운데하나에지나지않는다. 결국베버는다원주의자였다

    할 수 있다.

    「경제와 사회」의 “법사회학” 장에서 서구근대법이형성되는과정을설명할

    때에도 이러한 다원주의적 관점은 동일하게 작용한다. 우선 베버의 법유형론을

    살펴보자. 그는 “형식성”과 “합리성”이라는 두 축을 가지고서 네 가지 법(재판)유

    형론을 전개한다. 형식성이란 법이 여타 사회제도, 즉 정치, 종교, 경제 등으로부터

    어느 정도나 독립하여 자율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의미한다. 한편 합리성이란 법적

    판단에 일관성이 유지되는 정도를 말한다. 즉, 유사한 사건에 대해서는 유사한

    법적 판단이 내려지는가의 문제이다.

    주의할 점은 아래 네 가지 법체계 유형은 어디까지나 현실 그 자체가 아닌

    현실을해석하기위한추상적인이론적도구라는것이다. 따라서베버의법유형론은

    “이념형”(ideal types)적인 것이지, 실제 현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상 자체는

    아니다.

    첫째, 형식적·비합리적인법은법적결정을이끌어내는형식적인절차를가지고

    있으나 그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과정에 의존하므로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이다. 예컨대 신탁이나 시죄법(ordeal)에 의한 재판을 들 수

    있다. 서구 중세의 세속법정에서는 시죄법에 의한 재판이 성행하였는데, 이를테면

    피고인에게뜨겁게달구어진쇠막대를손에쥐게한후그손을천으로싸서봉인해

    두었다가 시간이 지나 화상의 상처가 아물어 있으면 무죄, 상처가 덧나 있으면

    유죄라는 식이다.

    둘째, 실질적·비합리적인 법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특히 종교적, 정치적,

    감정적 가치판단에 기하여 결의론적(casuistic) 판단을 내리는 재판유형을 말한다.

    법이 종교나 정치로부터 분화되어 있지 아니하며 유사한 사건이라 해서 일관된

    판단을보장할수없기때문에실질적이고비합리적인재판유형에해당한다. 베버는

    카디(kadi: 이슬람의 종교재판관)재판을 이런 유형의 대표적인 예로 거론하는데

    성경에 등장하는 솔로몬의 친모 확인 재판도 비슷한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실질적·합리적인 법에서도 재판은 도덕규범, 종교규범, 정치적 이상

    등으로부터독립하여독자적인법적판단이이루어지지않는다. 유교규범에입각한

    재판을 생각해보라. 이러한 법체계에서는 어느 정도 일관된 판례를 확보할 수는

    14

  • 있으나 다음에 언급할 형식적·합리적인 법에 비하면 그 예측가능성이 상당히

    제한적이다. 법외적인 원칙들이 법적 판결로 변환되는 방식이 다분히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가산제적(patrimonial) 전통국가의 법체계가 이에 속하는 대표적인

    예이며 우리의 조선시대 재판제도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베버가 전통시대

    중국이나 한국의 재판을 실질합리적인 것으로 보았는지, 실질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형식적·합리적인 법은 법적인 징표가 법적인 논리에 의하여 해

    명되고 이에 따라 명확한 법개념이 엄격하게 추상적인 규칙의 형태로 형성되고

    적용되는 경우를 말한다. 명확한 법적인 규준에 의하여 판단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일관성이 보장되므로 합리적이며, 판단의 규준이 법내재적이라는 점에서

    형식적인 것이다. 근대 유럽 대륙의 법체계, 다시 말해 대륙법(Civil Law) 체계가

    대표적인 예이며, 그중 19세기 독일의 “개념법학”(독일 판덱텐 법학을 비판하기

    위해 예링Jhering이 고안한 용어)이 그 이념형에 해당한다.

    베버는 마지막 유형, 즉 형식합리적 법이 유럽대륙에서 발달하게 된 요인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한다. 우선 법내재적 요인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로서 중세

    교회법, 로마법의 계수, 근세 자연법 사상, 대학에서의 법률가 양성 등을 꼽을 수

    있다. 중세 기독교 교회는 당시 세속 정치와는 달리 관료적 중앙집권제를 일찍부터

    형성했으며 교회법률가는 비록 성직자이긴 했지만 이미 전문성을 갖추어가고

    있었다. 세속법 영역에도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한동안 전통이 거의 단절되었던

    로마법이 13세기 이래 본격적으로 부활, 계수되기 시작하면서 전문 법률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이때 Juristen이라는 외래어가 독일어에 처음 생겨난다). 특히

    로마법의 형식적, 추상적 법개념은 근대법 형성에 중대한 공헌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추상성, 형식성은 근세 자연법 사상에 의해 더욱 고도로 발전한다. 게다가

    자연법은 19세기부터 급격히 쇠퇴함으로써 그 실질적 초월성이 형식합리성의

    발달을 저해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지 않았다. 끝으로 이 모든 현상의 배후에는

    로마법 계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대학에 의한 법률가 양성이

    자리잡고 있거니와, 이는 법학에 대한 즉물적, 경험적 접근보다 추상적, 이론적

    접근에 크게 기여했다.

    두번째로는경제적요인을거론한다. 중세후기도시들의발흥과더불어세력을

    확대하게 된 부르주아들은 이전의 봉건 귀족들과는 달리 넓은 지역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법체계를희구한다. 경제가성장함에따라부르주아들사이에서는시간적,

    공간적으로광범위하게이루어지는대규모투자를필요로하게되는데중세유럽의

    특징이었던 결의론적이며 분권적, 파편적인 법체계로는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리하여 지방적 법이 아니라 중앙집권적, 보편적 법체계을 통한

    “예측가능성” 내지 계산가능성을 요청하게 되었으며, 이를 위해 부르주아들은

    지방 귀족이 아니라 중앙의 군주를 물심 양면으로 지원하여 넓은 지역에 걸친

    15

  • 통일적 법체계의 수립에 공헌하게 된다. 그만큼 법은 점점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것이 되어갔다.

    이는 또한 관료제의 수립과 직결되는데 이를 정치적 요인이라 부를 수 있다.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통일적인 통치는 국왕 및 그 측근 몇 명으로는 불가능하고

    부르주아나 하급 귀족들을 통치조직의 수행원으로 편입시켜 미리 정해진 규칙에

    따라 각종 행정을 담당케하는 관료체제의 수립을 불가피하게 요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왕에 의한 상비군 편성이다. 과거 독자적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필요할 때만 국왕을 원조하던 지방 귀족들은 이제 국가가 지급하는 무기를 가지고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으면서 국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일개 장교로 편입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료제의 운영은 법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관료제는

    그 개념상 법의 추상화, 형식화, 조직화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결국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의 형성도 형식합리적인 법의 발달을 가져온다.

    이렇듯베버에게사회현상이란한가지요인만으로다설명할수없는다차원적

    현상이며, 형식합리적 법의 발달도 법내재적, 경제적, 정치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고 있다. 이 가운데 문화적 요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법내재적

    요인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우리는 베버의 이론에서 형식합리적 법의 발달과 서구 자본주의 발달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친화성을 감지할 수 있다. 형식합리적인 법은 예측가능성을

    고도로담보하는법체계이고예측가능성은자본가들의요청이었던만큼자본주의의

    발달과 형식합리적인 법은 동반자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른바 “영국

    문제”가 불거진다. 주지하듯영국은서구에서도근대자본주의가가장먼저발달한

    나라이다. 하지만 영국은 형식합리적인 법의 대명사인 대륙법과는 달리 수백년간

    판례의 축적을 통해 형성된 “보통법”(Common Law) 체계를 가지고 있다. 더욱이

    법률가양성도대학이아니라실무가들에의한현장학습으로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대륙법국가가아니라영국에서자본주의가먼저발달했다는역사적사실은베버의

    형식합리적 법과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한 주장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이에대한베버의답변도단일하지가않다. 비록형식합리성은결여되어있지만

    영국법도영국자본가의이해관계를잘대변했다고도하고, 최소한의법적안정성만

    있으면 자본주의와 친화성을 갖는 법체계는 다양할 수 있으며 굳이 형식합리적

    법이 아니어고 된다고도 한다. 우리는 베버에게 있어 근대 자본주의의 발달과

    형식합리적 법 발달 사이의 관계는 일대일의 수학적 함수관계가 아니라는 데

    주목해야한다. 그에게있어경제적요인은근대법발달의다양한요인들중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사실 베버는 형식합리적인 법을 법발달의 최종단계로 보지 않았다. 베버를

    단선적 진화주의자로 보면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는 20세기 초에 등장한 법학의

    새로운 경향도 잘 알고 있었는바, “법사회학” 장의 마지막 부분을 법의 “재실질화”

    16

  • 에 대한 설명에 할애하고 있다. 법의 재실질화는 형식적, 추상적 논리중심주의에

    대한반발로등장한목적법학(예링)이나 자유법운동(에를리히Ehrlich, 칸토로비츠

    Kantorowicz) 등 새로운 법학 흐름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형식합리적인 관료제가

    가져오는 인간성 상실을 우려하여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이를테면 법관의 법에 대한 철저한 기속을 완화하여 자유로운 법발견을 통해

    문제의 핵심을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법관상을 제시하는 것이 그 예이다.

    17

  • 제 2 장

    구조이론

    2.1 구조와 기능

    건축물은토대와기둥, 들보와지붕, 벽과창문등의구성요소로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들 구성요소가 무작위적으로 한 곳에 모여 있다고 해서 건축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이일정한상호관계를유지하면서맞물려있어야만하나의건축물이

    존재하게 된다. 건물의 구조(structure)라는 말을 우리는 흔히 사용한다. 여기서

    구조란 바로 이러한 건축물의 구성요소들 사이의 특수한 상호관계를 의미한다.

    건축물만이아니다. 유기체로서의사람도이런관점에서파악할수있다. 신경계,

    순환계, 소화계, 호흡계, 운동계등인체를구성하는부분체계들이일정한방식으로

    서로 상호작용을 수행할 때 인체는 생명을 유지하고 존속할 수 있다. 이러한

    작동방식의 일부에 병이 나면 이것을 치료하거나 그 기능을 다른 새로운 요소에

    의하여 대체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 이런 것이 유기체의 구조와

    기능(function)이다.

    사회시스템도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정치체계, 경제체계, 법체계, 교

    육체계, 종교체계, 가족체계 등 제반 하위시스템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얼개를

    형성하고 서로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면 전체사회는 존속할 수 없다. 이때 부분들

    사이의 조합방식을 사회구조(social structure)라 한다. 즉, 사회의 구성요소들이

    어떤 양상으로 구성되어 있고 소통하고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시각 중

    대표적인 것을 사회학이론에서는 “구조기능주의”라고 흔히 불러왔는데, 사회의

    구조와부분체계들이어떤기능을수행하면서전체사회의존속에기여하고있는가

    를 밝히고자 하는 사회학 흐름이 그것이다. 전체사회의 존속과 유지에 기능하는

    부분체계라는명제를가지고있기때문에구조기능주의역시문화주의와유사하게

    통합론적 패러다임에 속한다.

    18

  • 문화이론이 법을 관습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면, 구조이론은 법을

    사회체계들 사이의 관계구조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교환의 패턴, 권력과

    부의 차이, 생산과 분배의 방식, 제도들 간의 조직원리 등이 모두 한 사회의 법의

    모습을결정하는인자가될수있다. 문화이론이법과사회의관계를비교적평면적

    으로바라보았다면구조이론은보다입체적이고다차원적인시각을전개하고있다.

    이제 구조이론에 의해 법을 설명하는 몇 가지 이론과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2.2 구조이론의 다양한 전개

    2.2.1 상호작용밀도

    우선 구조기능주의의 순수하게 이론적인 경우로써 시작해보자. 상호작용밀도이

    론이 그것인데, 단지 사회학적 이론을 넘어 수학적인 모델에 기초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예를 들어 어떤 부부가 손님을 여럿 초대한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고 상정하자.

    손님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현장에 오직 두 사람, 즉 안주인과 바깥주인만 존재할

    뿐이고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호작용의 경우의 수는 오직 하

    나뿐이다. 경우의 수를 우리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선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두

    사람을 연결하는 선은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최초로 손님 한 명이 도착해서

    인구가 세 명이 되었다고 하자.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경우의 수는 얼마일까?

    연결선의 수가 셋이 되었다고 생각했다면 이는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각각을

    개인적으로만 연결하는 선은 셋이지만 두 명이 하나의 집단을 이루어 나머지 한

    명과 상호작용하는 가능성도 상정할 수 있으므로 실제로 상호작용 경우의 수는

    여섯이되는것이다. 인구는 둘에서셋으로 하나가증가했는데, 상호작용밀도는

    하나에서 여섯으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자, 손님이 한 사람 더 도착해서 인구가 네

    명이 되었다. 상호작용밀도는 얼마가 될까? 개인적 상호작용에다 두 사람씩 묶은

    집단과 개인간의 상호작용 개수를 더하고, 거기에 세 사람을 묶은 집단과 나머지

    한 명의 상호작용, 두 사람씩으로 나뉘어진 상호작용까지... 불과 인구수가 넷에

    지나지 않지만 이제 경우의 수는 단순히 머리 속으로만 계산하기가 힘들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초대한 손님이 다 도착해서 20명이 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인구수는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더라도 상호작용밀도는 기하급수적으

    로 증가하는 것이다. 사람들간의 관계의 경우의 수 증가는 이들 관계를 규율하는

    업무량의증가도의미한다. 사람들간의관계의규율이바로법이나행정의역할이다.

    따라서 인구는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해도 법 내지 법률가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 법률가의 수는 인구증가에 비해 훨씬 큰 폭으로

    19

  •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상호작용밀도 이론에 의해 일정 부분

    설명될수있다. 다시말해법체계는사람들간의상호작용경우의수, 즉관계구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구조이론은사회구조에의해법체계의모습이나크기가결정된다는설명방식을

    공유한다. 인구의 크기도 사회구조의 하나인바, 상호작용밀도 이론도 일종의

    구조이론인 셈이다. 다만 그것은 순수하게 수학적 모델에만 입각한 것으로써

    현실에서는 다종다양한 다른 조건들이 법체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2.2.2 키부츠와 모샤브

    이제 보다 실제적인 예를 들어보자. 1950년대 초기 이스라엘의 두 집단정착촌에

    대한 연구에서 고전적인 구조주의 이론의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그중 하나인키부츠(kibbutz)라고 불리는공동체에서는모든것이평등하게

    공유되었다. 구성원들은 공동주택에서 살았고, 공동식당에서 함께 식사했고,

    모든 물건은 모두에게 속한다고 생각했다. 공중목욕탕과 공중화장실을 이용했고,

    아이들은 공동보육원과학교에다니면서공동체교사와보모에의하여양육되었다.

    무엇보다도 모든 작업을 모든 구성원이 함께 했다. 농사일과 관리직은 서로 순환되

    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모든 직업에 대해 경험을 가질 수 있었다.

    다른 하나의 공동체는 모샤브(moshav)이다. 여기서도 토지는 공동소유였고

    농기구의 대부분도 공유되었다. 그러나 농작물은 개인소유였고 개별 가족들은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지었으므로 노력 여하에 따라서 작황에 차이가 났다. 게다가

    생활수단도 사적 소유였다. 각 가족들은 자기만의 집을 가졌는데, 집들은 서로 상

    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식사와 자녀양육도 개별 가족의 책임이었다.

    가재도구나 사치품도 사적 소유였다.

    이런차이이외에는두공동체가대단히유사했다. 둘다동유럽출신정착민들에

    의하여 1921년 건설되었고정당들에대한정치적성향도비슷했다. 양자모두같은

    크기의토지위에서같은종류의작물을경작했고인구크기또한비슷했다. 그러나

    법의 모습에 관해서는 두 공동체가 서로 판이하게 달랐는데, 모샤브는 형식적인

    법체계를가졌으나키부츠는그렇지않았다. 모샤브의형식적법은 “사법위원회”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공동체 규칙을 강제하는 임무를 맡은 독립된 상설기구

    였다. 위원회는 구성원간의 분쟁을 심리하는 권한과 제재를 가함으로써 결정을

    강제하는 권한을 가졌다. 위원회는 성문화된 절차에 따라 운용되었고 성문화된

    규칙을 강제했다. 반면 키부츠에는 이런 위원회도 성문화된 규칙도 없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났는가? 구조주의에서는 두 공동체의 조직구조의 차이에

    주목한다. 다른 구성원들과의 친밀한 일상적 접촉 때문에 키부츠에서는 아무도

    20

  • 집단규범을 함부로 위반할 수 없었고 위반자는 다른 구성원들에 의한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며 인격적인 제재를 받았다. 키부츠의 생활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공유하는 것이었으므로, 구성원들은 항상 일상적 비공식적 비난과 제재의

    가능성에 놓여 있었다. 사법위원회 같은 공식기구가 없어도 일상적인 일탈에

    대한 일상적인 비난과 비공식적 제재만으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동체 규범을

    준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반대로 모샤브에서의 일상생활은 가족 내에서만 이루어진다. 각 가족은 자족적

    단위였으므로다른구성원과의접촉은빈번하지않았다. 따라서모샤브구성원들은

    다른 구성원의 생각에 구애받지 않고 공동체 규칙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가질 수

    있었다. 또 정당하지 못한 행위가 있어도 다른 구성원은 눈치 챌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자족성과 격리성 덕분에 집단규범에 반대하는 사람도 대중의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일탈자를 규율하기 위해서는

    비공식적·일상적제재로는충분하지못하고어떤공식적인절차와기구가등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모샤브가 공식적인 사법위원회와 성문화된 규칙을 발전시킨

    것은 사적 소유와 사적 생활이 비공식적 제재와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키부츠와 모샤브의 출범 당시 두 공동체의 관습과 문화는 서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양자의 사회적 조직구조가 서로 상이했기 때문에 모샤브에서는 공식적인

    법체계가 필요했던 반면 키부츠에서는 비공식적 규율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사회

    구조의차이로부터법형식의차이를설명해내는이러한방식은구조주의적시각의

    전형적 유형에 속한다. 관습의 기능부전으로 인하여 사회통합이 위기에 처하자

    공식적인 법체계를 발달시켜 관습을 대체하게 되는 이러한 사례는 마치 유기체의

    부분기관에병이생겨생명을위협하게되자그것을다른기능적등가물(functional

    equivalent)로 대체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2.2.3 도시와 시골

    한편 구조주의는 동일한 형식의 제도라 하더라고 실제에 있어 그 기능이 서로

    상이한 경우도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예는 우리 주위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도시의 이혼법정과 시골의 이혼법정의 차이를 생각해 보라. 양자 모두

    국가에 의하여 만들어진 동일한 형식을 가진 기구이다. 하지만 도시의 이혼법정이

    하루에 수십 건씩 단지 이혼의사를 피상적으로만 확인하고 협의이혼의 확인을 해

    주는 고무도장의 기능을 수행하는 반면, 시골의 이혼법정은 이혼하려는 이유를

    꼬치꼬치물어원인을파악하고가능하면이혼에이르지아니하도록조언과충고를

    아끼지 않는 카운셀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또한 도시의 소액민사법정이 주로 금융회사의 미수금 채권에 대하여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씩 집행권원을 발급해주는 수금원의 기능을 수행하는 반면, 시골의

    21

  • 소액민사법정은 이웃주민들 사이의 소소한 금전채권채무 관계를 처리하는 실질적

    분쟁해결의 조정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왜 이렇게 동일한 형식의 조직이 서로

    상이한 기능을 수행하는가?

    구조주의는 이에 대한 해답도 사회구조의 차이에서 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멕시코의 두 마을에 대한 사례연구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드러난다. 멕시코의 두

    마을은 동일한 형식적 국가법의 지배를 받는 동일한 법원을 가지고 있었지만,

    두 법원의 실제 기능은 매우 달랐다. A마을에서는 가족 내 분쟁이 법원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대신 남편과 아내는 친척 어른들에게 호소하여 분쟁을

    해결했다. 친척 어른들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양 당사자가 화해하도록 권위를

    행사했다. 어른들은 처벌을 가했고 결정을 내렸으며 이 결정은 대부분 이의 없이

    복종되었다. 하지만 B마을에서는, 화해를구하는분쟁이든결별을구하는분쟁이든

    반드시 법원까지 가서 결말을 보는 경향이 있었다. A마을보다 B마을이 법원을

    이용하는 빈도가 훨씬 많았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그것은 인구압에 기인한 구조적 조건의 차이 때

    문이었다. 1900년경 B마을 인근의 광산이 폐쇄되자 B마을의 인구는 거의 두

    배로 불어났다. 실직한 광부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확대가족으로부터 분리된 사람들의 비율이 증대되었음을 의미한다. A마을에서는

    확대가족의 어른들이 가족 내 분쟁의 주요 결정자들이었으나, B마을에 이주한

    가족들은 이러한 어른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따라서 분쟁을 해결해 줄 어른들을

    가지지 못했다.

    보다중요한사실은 B마을의인구증가가농지의부족현상을가져왔다는것이다.

    그리하여 가족 어른들은 자기 땅 인근의 토지를 아들들에게 물려주기가 점점 어려

    워졌다. 아들들은 이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땅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당연히 어른들의 영향력은 감소되었다. 어른들은 자식들의 복종을 끌어내기 위한

    매력적인 유산도 거의 가질 수 없게 되었고, 자식들의 행동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도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친척 어른들이 사정을 알게 될 때쯤이면 가정 내

    분쟁은 그 사실관계는 모호해져 있고 관계는 악화되어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경우가 많았다. 결국 어른들의 권위는 감소되었고 이제 법원이 어른들을

    대체하여 주된 분쟁처리기구가 된 것이다.

    이렇게 두 마을이 형식적으로는 동일한 법원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했던 배후에는 B마을의 인구증가에 수반된 두 마을간의

    구조적 차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22

  • 2.2.4 복합관계와 단일관계

    구조이론에서빼놓을수없는중요한주장의하나는복합관계(multiplex relation)

    와 단일관계(simplex relation)에 관한 것이다.

    단일관계란 매우 한정된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사람들간의 관계를

    말한다. 단일관계의 상대방과는 특정한 하나의 주제에 관해서만 대화를 한다.

    관계를 유지할 다른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화표를 사는

    손님과 매표원의 관계, 전화번호 안내원과 전화번호를 문의하는 사람의 관계,

    강의하는 교수와 강의 듣는 학생의 관계 등이다. 우리는 패스트푸드 종업원과는

    햄버거구매와관련된사항만짧고간단하게이야기할뿐, 그밖에오늘저녁약속이

    있는지, 어머니 수술 경과는 어떠신지, 지난 주에 새로 산 옷이 마음에 안 든다든지

    따위의 신변잡기적인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

    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취급될 뿐이다. 이렇듯 단일관계는 특정한 거래를 행하기

    위한 실용적인 업무에만 관련되어 있다.

    반면 복합관계는 두 사람 사이에 여러 가닥의 관계의 끈이 다양하게 얽혀있는

    경우를 말한다.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에 사는 이웃사촌들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라. 전통공동체는 동족마을인 경우가 많으므로 이웃사람과는 친척관계에 놓여

    있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웃집과는 두레, 품앗이 따위로 함께 농삿일을 하기도

    하고, 자식을 글공부시키러 이웃집에보내기도하고, 가족이 병이 나면이웃집에서

    간단한치료를받기도하고, 급할때돈몇푼꾸어쓰는관계이기도하고, 저녁이면

    같이 둘러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여가시간의 동료이기도 하며, 정치적으로 같은

    입장을 공유하는 동지일 수도 있다. 이렇듯 복합관계에서의 두 사람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관계가 다양한 끈으로 맺어져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복합관계를 찾아보기 어렵다. 복잡한 산업사회에 살고

    있는우리에게는단일관계가전형적이다. 사람들이하는일이대부분전문화되었기

    때문이다. 경제활동도, 자식교육도, 의료행위도, 금전대출도 모두 전문가의 일이

    되었다. 하지만 단순한 사회에서는 이 모든 일들이 복잡한 친족관계와 얽혀 있었고

    사람들은 복합관계 하에서 생활했다.

    복합관계 단일관계

    구조주의는 “복합관계가감소하면공식적인법이동원될필요성이커진다.”라는

    명제를 내세운다. 복합관계에서는 그 관계구조상 다양한 행위통제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다. 만일 전통마을의 두 사람 사이에 금전대출 문제로 분쟁이 발생

    23

  • 한다면 이들로서는 관청에 가서 소송을 제기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소송은

    상대방과적이되어(척 진다는말의 “척”이 소송의상대방을뜻했다) 다투는상황을

    가져올 터인데, 하나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상대방과의 복합적이고

    끈끈한 관계 네트워크 전부를 폐기하게 되는 결과는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복합관계로부터 상대방이 얻고 있는 다양한 이익을 넌지시 암시만 해

    주어도 상대방은 분쟁을 공식화하지 않고 다른 대안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대적 단일관계에서는 이러한 행위통제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패스트푸드점에서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소송을 제기하는 데 아무런 거리낄 것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관계구조의 차이로 인하여 공식적인 법의 동원에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는 복합관계·단일관계 이론은 구조주의 이론의 백미를 이룬다고 하겠다.

    또한 이러한 단일관계와 복합관계 및 그에 따른 법형식의 차이에 관한 이론은

    우리가 앞서 살펴 본 일본의 두 수은중독 사건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참으로 적합

    하다. 미나마타의 사례와 니가타의 사례의 다른 점은 마을 주민들이 가해 공장과

    맺고 있던 관계구조의 차이로써 이해할 수 있다. 미나마타 주민들이 그렇게도 소송

    제기를 꺼려한 이유는 바로 공장과 주민들이 다양한 복합관계 하에 놓여있었기

    때문인반면, 니가타주민이문제의원인을파악한즉시소송을제기한것은공장과

    주민들의 관계구조를 복합관계가 아닌 단일관계로 특징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구조주의는 적어도 일본의 두 사례를 해석하는 데는 문화이론보다

    그 설명력이 우수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구조이론이 상정하는 인간상은

    문화이론의 그것과는 달리,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행위를 선택하는

    합리적 인간상이라는 것도 여기서 엿볼 수 있다.

    2.2.5 연결구조와 파벌구조

    복합관계와 단일관계가 개인 사이의 관계구조를 의미한다면, 집단 사이의 관계구

    조는 이와 유사하면서도 별개의 문제이다.

    1970년대 한국의 농촌공동체의 사회구조와 법규범을 조사했던 최대권의 연구

    중에서 “보(洑) 싸움”의 사례를 들어보자. 현대적인 관개시설이 아직 안 되었거나

    불가능한 산골 농촌마을에서 논에 대는 물은 계곡에 흐르는 물을 막아 축조하는

    보의물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계곡물의 흐름에 따라 하류로 내려가면서 여러 개의

    보가 축조되고 하나의 보마다 각각 여러 마지기의 몽리답이 딸려있다. 보는 보통

    바윗돌, 나뭇가지, 뗏장 등으로 엉성하게 축조해서 일정한 수량을 하류로 항상

    흘려보내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계곡의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모내기철에 이르러 자기 논에 물을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 일 년 농사를 망치게 될 수 있으므로 사람들은 물을 서로

    24

  • 대려고 혈안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하여 야밤을 이용해 윗보의 둑을 터서

    하류로많은수량이흐르게한다든지, 또는하류로물이새지않게몰래둑을단단히

    쌓는다든지 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이를 감시하기 위하여 서로 파수꾼을

    두어 감시하고, 그래도 감행되는 야밤의 둑 따기나 둑 막기 행위 때문에 한밤중에

    고함을 지르고 주먹, 막대기, 연장 등을 들고 싸우는 광경은 이 무렵 흔히 볼 수

    있는 농촌풍경의 하나였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사생결단의 투쟁이 일어나며 이때

    이웃이냐 친척이냐는 안중에도 없게 된다.

    그런데 친척도 이웃도 없이 죽일 둥 살릴 둥 싸우던 아귀다툼도 그 바쁘던

    모내기가 끝나고 흡족한 비로 충분한 수량을 확보한 논들을 둘러 볼 즈음이면

    봄눈 녹듯이 다 스러지고 농촌마을은 본래의 평온한 모습을 되찾는다. 이것을

    참으로 경탄할만한 편리한 전래의 약속(convention)이었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모내기때의상처가오래남는다면마을의공동체로서의존립은오히려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대 이러한 마을 내부의 편리한 약속도 한 마을과 다른 마을과의 물싸움인

    경우에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 이러한 경우에는 한 마을 전체의 생존의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에 이때 생기는 충돌은 처절한 바가 있으며 몇 백 년을 두고 이웃

    마을이서로원수로지내는사례도있다고한다. 이런경우는마을의사회구조속에

    내재하는 자체적인 분쟁해결 메커니즘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에 군수나 또는

    멀리 떨어진 법원이 개입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최대권이 채집한 S마을과

    B마을 간의 수 백 년에 걸친 보분쟁의 사례가 그 하나이다.

    S마을은 겨우 500∼600 마지기의 논을 가진 비교적 빈한한 마을이나, 자연적

    수리의 면에서는 누가 보아도 마을 인근 계곡의 보에 대해 이를 독점적 이용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한편 산등성이 넘어 다른 계곡에는 B마을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B마을은 천여 마지기 이상의 논을 가진 부촌이었으나 수리의 혜택이

    전혀없는천수답에서농사를짓고있었다. 그런어느날 B마을사람들이몰래밤새

    온 마을주민이 동원되어 천여 미터에 달하는 봇도랑을 파 원래 천수답이었던 자기

    마을 논에 물을 대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하루아침에 천혜의 수리권을 빼앗긴

    S마을 사람들이 이를 탈환하고자 시도했고 그 이후 수 백 년간 두 마을 사이에는

    때로는피까지흘리는보싸움이지속되었다고한다. 두마을의대립관계는심각하여

    통혼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길거리에서 만나도 서로 외면하고 지나칠 정도였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고을 원님이 개입하게 되었고 원님은 가물 때 사흘은

    B마을이, 하루는 S마을이 물을 대되 물꼬를 트고 닫는 것은 두 마을 대표 입회하에

    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S마을로서는 이 결정에 늘 불만이었으므로 일제강

    점기 초기에는 좀더 유리한 결정을 얻어낼 생각으로 물길을 막고 보를 훼손하는 등

    분쟁을 또 일으켰다. 이에 군수 입회하에 화해계약이 맺어지는데 가물 때 10일은

    B마을, 하루는 S마을이 물을 이용하도록 약정을 두어 S마을에 더욱 불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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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되었고, 관할 지방재판소에서는 다른 모든 청구를 기각하면서 보 훼손에 대한

    책임을 물어 S마을에 배상을 명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이상과 같이 마을 사이의 보싸움은 마을 내의 보싸움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구조주의의 입장에서 해석하자면 마을 내의 사회구조는 사람들이

    형성하는 다양한 집단들의 다원적인(pluralistic) 연결구조로 나타난다. 마을

    내에서 각 개인은 혈연집단, 또래집단, 동창집단, 계조직, 또는 경제적 협동체의

    일원으로 다른 사람들과 다수의 복합적 연결망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사정 하에서

    마을사람들사이에분쟁이발생하더라도그것은기존연결망의틀속에서일어나게

    되고연결성의지속을원하는주변사람들은신속하고원만하게분쟁이해결되도록

    노력하여 외부의 개입 없이도 사건은 원활하게 처리되는 것이다. 모내기철에 물을

    둘러싼내부다툼이모내기가끝나면봄눈녹듯이사라지는현상도이런연결구조의

    작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연결구조 파벌구조

    하지만 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이러한 다원적 연결망이 부재한다. 두 마을

    간의 관계는 날카로운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분리, 대립해 있는 양상, 즉

    파벌주의(factionalism)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두 마을 간에 통혼을 비롯한 인적

    교류가 거의 없는 현상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 이런 사정 하에서는 외부의 개입

    없이 자체적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군수나 법원

    등 공식적인 외부 국가기관의 개입이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물론형태적으로만보면연결구조가복합관계와밀접하게관련되고파벌구조가

    단일관계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파벌구조냐 연결구조냐는

    집단간의관계구조의문제인반면, 복합관계냐단일관계냐는개인간의관계구조의

    문제로서 서로 그 차원을 달리한다고 하겠다.

    2.3 법체계의 불평등 구조

    지금까지우리는구조를주로사람이나집단의상호관계라는관점에서살펴보았다.

    하지만 구조라는 용어는 대단히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될 수 있는데 특히 한 사회가

    계층적 혹은 계급적으로 불평등하게 구분되어 있는 양상을 의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의미의 구조는 다음 장에서 살펴볼 갈등론 혹은 비판이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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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법체계에 작동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구조주의적 흐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법체계를 잘 이용하지 않는, 혹은 이용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어째서 그럴까? 변호사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기

    때문일까?아니면법체계자체가구조적으로가난한사람들에게불리하게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구조주의에 속하는 한 연구는 후자의 관점을 강조하고 있다. 갈란터

    (M. Galanter)에 따르면 법원의 절차와 판례는 일회소송인(one-shotters)보다는

    반복소송인(repeat performers)을 우대하게 되어 있다.

    일회소송인들은 공식적인 법절차에는 거의 관여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혹

    관여된다하더라도복잡한법체계는그들에게거의신비에가깝게여겨진다.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누구와 접촉해야 할지, 그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오로지 법원에 제기된 특정 사건 하나에만

    그들의 관심이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유사한 사건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지에 대해 그들은 무관심하다. 오직 빨리 재판을 끝내고 일상적인 생활,

    법적인 문제에 연루되지 않는 평상시의 생활로 되돌아가고자 할 따름이다.

    한편 반복소송인들은 법이라는 게임에 매우 상이한 방식으로 임한다. 그들에게

    공식적인 법절차는 일상생활의 일부분이다. 법원 및 변호사들과 정기적으로

    접촉하는 것은 그들의 일과의 하나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법 및 법원의 행태에

    대해많은것을알고있다. 그들은법원공무원이나변호사들과내부적접촉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전문적인 난해한 용어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다. 더욱이

    일회소송인과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서 반복소송인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건에 임한다는 것이다. 일회소송인들과는 달리 단일한 사건이 관심의 전부가

    아니다. 예컨대보험회사는매년수백, 수 천건의사건을취급한다. 하나의사건에

    임해서도 회사는 당장 지불해야 할 금액보다는 당해 사건에서 확립될 선례나

    일상적으로접촉해야할할법원직원, 판사, 변호사들과의지속적인관계를 보다

    중시한다. 법원에서장기적으로좋은명성을얻을수있다면, 그리고회사에유리한

    선례를 확보할 수 있다면 몇몇 소송에서 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반복소송인은 분쟁과 소송을 위한 예산을 미리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소송비용이 그들에게는 재정적충격으로 다가오지않는것이다. 그러나

    일회소송인들은 소송에서의 승리를 위해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방식으로임한다. 장기적인이익이나손해가걸린사건이라면반복소송인들은사건

    하나에 걸린 가액보다 더 많은 돈을 쏟아 부을 수 있지만, 일회소송인은 눈앞에

    걸린 소송사건 하나만이 관건이므로 현재의 사건의 가치 이상을 투자할 능력도

    유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적 이유 탓에 반복소송인들은 일회소송인에 비해서 더 큰 경쟁력을

    갖게 된다. 보통 부자들이 반복소송인이 된다. 따라서 법원에서는 “가진 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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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없는 자”들을 결국에는 이기게 되어 있다. 가난한 자들은 보통 일회소송인이다.

    따라서가난한이들이공식적소송에연루되기를꺼리는것은단순히변호사비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의 산물인 것이다. 요컨대 갈란터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이 법체계를 잘 이용하지 않는 것은 가난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는

    법체계 자체가 가난한 사람에게 불리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란터의

    입장은 현실 법체계의 모습이 사회의 계층구조에 직접적으로 반응한 산물이라는

    주장으로서 널리 구조주의적 흐름에 속한다고 하겠다.

    2.4 뒤르껨은 구조주의자인가

    에밀 뒤르껨(Emile Durkheim, 1858-1917)은 19세기말,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프랑스 사회학자로서 칼 마르크스(Karl Marx), 막스 베버(Max Weber)와 더불어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초석을 놓은 대표적인 고전 사회이론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수많은 이론적 기여 중에서 우선 우리가 살펴볼 것은 「사회분업론」이라는

    제목의, 법사회학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저작이다.

    뒤르켐에 의하면 사회는 사람들을 뭉치게 하고 협동하게 하는 어떤 메커니즘이

    있을 때만 존재할 수 있다. 사회는 내부적, 외부적 힘에 의하여 끊임없이 해체될

    위험에 놓여있는 깨지기 쉬운 존재이다. 이러한 도전에 대하여 어떻게 연대성을

    지켜내는가에 따라 사회의 종류가 나누어지는데, 크게 원시사회와 현대사회로

    구분할 수 있다.

    원시사회의형태론적구조는지렁이와같은환형동물에비유할수있다. 똑같은

    모습의 마디들로 구성된 환형동물은 마디 한두개가 떨어져 나가도 생존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동일한 모습의 씨족들로 병렬적으로 구성된 원시사회는 지렁이와

    유사한 “분절적” 구조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원시사회는 같은 생활공간 속에서

    같은 작업(사냥, 어로, 채집 등)을 행하는 사람들의 단순한 집합이다. 이런 조건

    하에서는 기계적 연대(mechanical solidarity)에 의하여 사회질서가 유지된다.

    모두가 다른 사회구성원들을 알고 있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작업을 수행하므로

    사람들은 단순히 동료들의 일상행위에 동화됨으로써 집단의 규칙과 관습과 법을

    배우게 된다. 여기서는 법원도, 법률가도, 판사도, 다른 어떤 법적 형식도 필요치

    않다. 앞서 살펴본 키부츠 정착촌처럼 규칙이나 관습위반이 생기면 집단 전체가

    즉각 그것을 알게 되고 그에 대처하기 때문이다.

    뒤르껨에 의하면 복수(응보)는 원시법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관습위반은

    집단의 신성한 질서를 위협한다. 규칙위반으로 인하여 잔뜩 화가 난 신은 위반자뿐

    만 아니라 집단 전체를 벌할지도 모른다. 신성모독을 시정하기 위하여 위반자는

    처벌되어야 하고 이를 통하여 신의 분노를 달래고 잠재우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법은 단순했다. 관계구조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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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업을 수행하고 경험을 공유하며 서로를 잘 알고 있으므로 법은 단순하고 신속

    하고 직접적이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이러한 단순한 사회구조와 단순한 법을

    상실하였다. 어째서 변화가 일어났을까?

    뒤르껨은 인구증가가 사회적 연대성에 위기를 초래했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친숙한 모습의 법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기존의 자원과 그

    사용방식은부적절한것이되어갔다. 토지는희소해지고식량과물은부족해졌으며

    생존도구를만드는원료도모자라게되었다. 그래서사람들은특정한일에전문화하

    기시작했다. 밀집된 환경에서살아남기 위해틈새공간을찾는생명체처럼, 설비와

    자원을 얻기 위한 경쟁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사람들은 각자 자기 전공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특화를 통해서 필요한 물품과 서비스를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뒤르껨은 이러한 전문화의 증대를 “분업”(division of labor)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전문화와 분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