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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니즘과 몬테네그로 독립문제 * 김 철 민|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학대학 세르비아 크로아티아어과 조교수 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유고슬라비아 지역은 수차례의 민족 간 갈등과 분쟁의 아픔을 겪 1989 어왔다 그러한 갈등과 분쟁의 요인 중에는 중세 세르비아 왕국의 영토 확대에 기초한 세르비아니즘 . 이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여 왔었다 발칸유럽은 세기 현재까지도 세르비아니즘의 그늘과 어두움 . 21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년 이후로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 1999 몬테네그로 독립문제 라 말할 수 있다 . 월 유고슬라비아의 구성 공화국중 하나로 세르비아와 같이 연방을 구성하였던 몬테네 1992 4 그로는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전쟁을 겪은 이후 세기 현재 세르비아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독 , 21 립을 추진해 나가려는 움직임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 독립문제는 잠시 수면에 . 가라앉아 있던 코소보와 마케도니아 그리고 보스니아내 민족문제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으며 이에 , 따른 발칸유럽내 민족간 분쟁의 재현 가능성을 확대시키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연구배경을 . 바탕으로 몬테네그로 독립문제와 세르비아니즘과의 관계를 분석하고자 한다. 주제어 :세르비아니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민족문제 독립 , , , , * 이 논문은 년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2004 (KRF-2004-003- B00178). 국제 지역연구 권호 15 1 2006 pp. 125 - 151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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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김철민|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13

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유고슬라비아 지역은 수차례의 민족 간 갈등과 분쟁의 아픔을 겪1989어왔다 그러한 갈등과 분쟁의 요인 중에는 중세 세르비아 왕국의 영토 확대에 기초한 세르비아니즘 이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여 왔었다 발칸유럽은 세기 현재까지도 세르비아니즘의 그늘과 어두움 21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년 이후로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1999몬테네그로 독립문제라 말할 수 있다lsquo rsquo

년 월 유고슬라비아의 구성 공화국중 하나로 세르비아와 같이 연방을 구성하였던 몬테네1992 4그로는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전쟁을 겪은 이후 세기 현재 세르비아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독 21립을 추진해 나가려는 움직임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 독립문제는 잠시 수면에 가라앉아 있던 코소보와 마케도니아 그리고 보스니아내 민족문제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발칸유럽내 민족간 분쟁의 재현 가능성을 확대시키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연구배경을 바탕으로 몬테네그로 독립문제와 세르비아니즘과의 관계를 분석하고자 한다

주제어 세르비아니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민족문제 독립13 13 13 13

이13 논문은13 년도13 한국학술진흥재단의13 지원에13 의하여13 연구되었음2004 (KRF-2004-003- B00178)

국제지역연구13 권13 호13 봄13 15 1 200613 pp 125-151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3

126 김철민

서론I

세기13 말13 수차례의13 내전과13 전쟁을13 겪기13 이전 유고슬라비아13 지역은13 20 lsquo다양한13 종교와13 문화13 그리고13 민족의13 모자이크13 지역rsquo으로써13 국제사회에13 알려져13 왔었다 하지만 년13 사회주의13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기능이13 사실상13 정지되 1990

고13 난13 후13 발생한13 유고내전 과13 보스니아13 내전(1991 6~1995 11) (1992

그리고13 미국을13 중심으로13 한13 군과13 세르비아군13 간의13 코소3~1995 11) NATO

보13 전쟁 은13 이러한13 모자이크와13 조화로움에13 큰13 상처를13 입혔다 극(1999 3~6)

단적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한13 형태라13 할13 수13 있는13 lsquo세르비아니즘(Serbianism

Srpskizam)rsquo은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의13 내전들과13 전쟁의13 주요인으로써13 그리고13 발칸13 유럽내13 민족13 갈등의13 꺼지지13 않는13 불씨로써13 국제13 사회에13 자주13 지목되어13

왔으며 현재까지13 이에13 대한13 연구가13 국내외13 일부13 학자들을13 중심으로13 진행되

어13 오고13 있다1

1 미국13 독립전쟁 과13 프랑스13 혁명 을13 사상적13 토대로13 서유럽에서13 시작된13 (1775~1781) (1789)

민족주의는13 세기13 나폴레옹13 전쟁을13 따라13 유럽13 전역으로13 확산되었고 이어13 세기13 19 19

중엽에는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를13 포함한13 발칸유럽에도13 영향을13 미치기13 시작하였다

하지만13 세기13 이후13 산업혁명을13 통한13 사회18 경제적인13 발전과13 더불어13 단일13 민족으로13 구성된13 독립국가13 혹은13 거대한13 식민지를13 바탕으로13 형성된13 제국13 등의13 다양한13 방식으로13

자신들의13 민족 국가 를13 수립하고13 있던13 서유럽13 민족들과는13 달리 발칸유- (Nation-State)

럽의13 대부분13 지역은13 세기13 중엽까지도13 여전히13 오스트리아 헝가리13 이중제국 후에13 합19 - (

스부르크13 제국 혹은13 오스만13 터키제국의13 지배13 하에서13 피지배13 식민지13 상태로13 놓여13 있)

었다 이러한13 시대적13 상황과13 현실의13 차이점은13 세기13 이후13 등장한13 민족주의가13 동서 19 유럽13 사이에13 분명한13 차이점을13 보이며13 발전하게13 되는13 계기를13 마련하게13 된다 그13 결과13

서유럽에서의13 민족주의가13 민족 과13 국가 를13 동일시하고13 민족 보다(Nation) (State) (Nation)

는13 국가 에13 더13 충성을13 요구하는13 특징을13 보이며 그13 기초요소로서13 사회계약 일(State)

반의지 그리고13 법과13 국가적13 실체13 등13 정치적13 요소를13 중요시13 여기는13 정(General will) lsquo치적13 민족주의 의13 특징을13 지니게13 되었다면 세르비아를13 비롯한13 (Political nationalism)rsquo

동유럽에서의13 민족주의는13 민족 과13 국가 를13 별개의13 존재로13 인정하고 국(Nation) (State)

가 보다는13 각각의13 민족 에13 대한13 충성을13 더13 강조하며 그13 기초요소로서13 (State) (Nation)

선민의식 신화 독립 영토13 그리고13 미래와13 꿈13 등13 문화적13 요소를13 더13 중요시13 여긴다는13

점에13 있어13 문화적13 민족주의 로13 정의내릴13 수13 있을13 것이다 민족lsquo (Cultural nationalism)rsquo

과13 민족주의에13 대한13 개념13 그리고13 동 서유럽13 민족주의의13 특징과13 그13 이론13 정리에13 관해선13 김철민 참조(1997)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27

세기13 말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에서13 발생한13 약13 년13 동안의13 계속된13 갈등과13 20 10

분쟁에도13 불구하고 발칸반도는13 아직도13 세르비아니즘의13 그늘과13 어두움13 속에

서13 벗어나지13 못하고13 있다 그13 대표적인13 사례가13 바로13 년13 이후로13 불거져13 1999

나오기13 시작한13 lsquo몬테네그로(MontenegroCrna Gora 독립문제) rsquo라13 말할13 수13 있다 년13 월13 유고슬라비아의13 구성13 공화국13 중13 하나로13 세르비아와13 같이13 1992 4

연방을13 구성하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과13 특히13 년에13 발생한13 코 1999

소보13 전쟁을13 겪은13 이후13 현재13 세르비아의13 그늘로부터13 벗어나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가려는13 움직임을13 활발히13 전개하고13 있다 물론13 이러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는13 년13 코소보13 전쟁이후로13 잠시13 수면에13 가라앉아13 있던13 1999 lsquo세르비아니즘rsquo의13 부활을13 예고하고13 있으며 발칸13 유럽내13 복잡한13 연결13 고리와13 함께13 민족간13 분쟁

의13 재현13 가능성을13 확대시키고13 있다

따라서13 본인은13 lsquo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rsquo라는13 본13 연구를13 통해 이13 지역13 연구가들의13 많은13 관심에도13 불구하고13 그13 동안13 국내에13 전혀13 소개

되지13 않았던13 lsquo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rsquo를13 세르비아니즘적13 이해와13 시각에서13 분석해보고자13 한다

본13 글의13 구성을13 보면 우선13 제 장에서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세르비 2

아인들과13 몬테네그로인들13 간의13 분쟁을13 이해하기13 위한13 기초적13 이론13 작업으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형성배경과13 그13 특징에13 대한13 연구가13 이루어지게13 될13 것이다

제 장과13 제 장에서는13 앞서13 연구된13 세르비아니즘에13 대한13 이론적13 논의를13 바탕3 4

으로13 몬테네그로13 정체성을13 둘러싼13 세르비아인과13 몬테네그로인들13 간의13 갈등

과13 그13 연관13 관계를13 정리하게13 될13 것이다 이중13 통시적13 분석13 방법에13 바탕을13 둔13

제 장에서는13 과거13 몬테네그로의13 역사를13 크게13 중세와13 근대13 독립13 왕국13 시기로13 3

나누어 몬테네그로13 정체성13 논쟁을13 확인해보고 각13 시기별로13 제기된13 몬테네

그로13 독립에13 대한13 의지와13 몬테네그로13 지역으로13 세르비아니즘을13 확산시켜가

려는13 세르비아인들의13 모습을13 살펴보게13 될13 것이다 제 장에서는13 몬테네그로13 4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에13 대해13 연구하게13 될13 것이다 특히13 본13 장에

서는13 년13 이후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추진해13 가는13 과정과13 그13 내용들을13 살1999

펴보면서 향후13 독립을13 추진해13 가는13 데13 있어13 반드시13 짚어봐야13 할13 여러13 요소

들을13 통해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의13 향후13 전망을13 예상해13 볼13 예정이다 마지막

128 김철민

으로13 제 장에서는13 본문에서의13 논의를13 바탕으로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에서의13 세5

르비아니즘의13 의미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다시13 한13 번13 고찰하고13 그13 의미

를13 살펴봄으로서13 결론을13 대신하고자13 한다

세르비아니즘의13 형성배경과13 이론적13 특징II

년대13 초부터13 말까지13 계속해서13 이어진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의13 내전과13 전1990

쟁13 그리고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13 대두는13 국제사회에13 이13 지역을13 주요13 국제분쟁13

지역13 중13 하나로13 인식하게13 했다 그13 결과13 서구의13 여러13 학자들을13 중심으로13 유

고슬라비아13 지역내13 민족갈등13 원인과13 분쟁13 배경13 그리고13 그13 전개상황에13 대한13

연구가13 활발하게13 진행되게13 된다 무엇보다도13 이들13 서구13 학자들은13 유고슬라비

아13 지역에서13 발생하고13 있는13 여러13 분쟁과13 갈등의13 주요13 요인13 중13 하나로13 극단적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한13 형태인13 lsquo세르비아니즘rsquo을13 지목하여13 왔다 반면에13 세

르비아의13 현지13 학자들은13 서구의13 이러한13 주장에13 대해13 일련의13 다른13 의견을13 제

시하고13 있는13 데 이들의13 주장에13 따르자면 세르비아13 민족에게13 있어13 세르비아

니즘은 어느13 국가나13 민족에게나13 그러하듯13 국가가13 위기에13 처했을13 때마다13 민

족의13 생존권을13 지켜주기13 위한13 주요13 이념으로써13 발전된13 것이라는13 점이다2 본13

장에선13 세르비아니즘에13 대한13 양측13 간의13 주장과13 이해를13 전제로 특히13 민족13 정

체성과13 민족국가13 유지라는13 차원의13 세르비아적13 시각을13 기초로13 한13 세르비아니

즘의13 형성배경과13 그13 이론적13 특징들을13 분석해13 보고자13 한다

세르비아니즘은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13 당시13 최대13 전성기였던13 스테판13 두샨13

왕(Kralj i Car Stefan Uros 4 Dusan 1331- 시절의13 영토 문화적13 확1355)

대에13 기초한13 역사적13 당위성을13 그13 기원으로13 하고13 있다 이러한13 기원을13 기초로13

2 특히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은13 다양한13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13 그리고13 역사적13 배경을13 지

닌13 민족들이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서로13 한13 국가를13 구성했던13 지역으로 이에13 따라13 독1

특한13 문화적 사회적13 특징을13 보여주고13 있다 따라서13 이러한13 특징과13 배경을13 이해하지13

못하면13 세르비아니즘을13 비롯해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내13 갈등과13 분쟁의13 주요13 요인들을13

결코13 이해하기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29

세르비아니즘은13 나폴레옹13 혁명전쟁의13 여파로13 세기13 중엽13 이후13 발칸유럽에13 19

유입된13 민족주의가13 세르비아13 민족들13 사이에13 하나의13 이데올로기로13 정착되고13

이와13 함께13 세르비아13 근대13 민족국가가13 수립되면서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13 표출의13

한13 형태로써13 발전되기13 시작했다김철민( 1999 26)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은13 몬테네그로와13 인접한13 현재의13 세르비아13 남부13 산악지

대를13 중심으로13 형성된13 lsquo라쉬카(Ras 공국ka) rsquo을13 계승하여13 발전하게13 된다 라쉬

카13 공국의13 대족장 이었던13 스테판13 네마냐(Veliki župan) (Stefan Nemanja

는13 비잔틴의13 지원을13 받아13 년13 몬테네그로13 아드리아13 해안지1166~1196) 1186

대를13 근거지로13 하고13 있던13 두클리야 후에13 제타 공국으로13 불림(Duklja (Zeta) )

공국을13 복속하고13 국가와13 정교회간의13 강력한13 유대관계를13 이끌어냄으로써13 세

르비아13 중세왕조의13 기틀을13 마련하는데13 성공하였다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로13 1

몬테네그로13 지역이13 세르비아가13 주도하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의13 일원으로13

편입된13 이후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은13 라쉬카13 공국이13 제타13 공국을13 복속한13 이

후13 형성된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간의13 정치 문화적13 월13 관계 그리고13 발칸

유럽13 정착13 초기13 세르비아인과13 몬테네그로인13 간의13 혈통과13 정체성의13 접한13 관

련성을13 밝혀내고자13 노력하여13 왔다 세르비아의13 이반13 보쥐치 와13 (Ivan Božić)

시마13 치르코비치 등은13 비잔틴13 제국의13 황제인13 콘스탄틴13 세(Sima Ćirković) 7

(Constantine VII 913- 의13 기록을13 근거로 크로아티아13 아드리아해13 연안959)

과13 두브로브니크 그리고13 특히13 몬테네그로의13 코토르 만(Dubrovnik) (Kotor)

즉13 과거13 제타13 지역에13 정착해13 있던13 자훔랸 트라블리얀(Zahumljan) (Travuljan)

코나블랸 부족13 등이13 세르비아13 부족의13 일파였음을13 주장하고13 있다(Konavljan)

(Ćirkovic and Bozic 1977 108-112 Bozic Ćirkovic Ekmecic and

Dedijer 1973 22-23)

세르비아는13 네마냐의13 아들인13 스테판13 네마니치(Stefan Nemanjic 1196~

시대에13 들어와13 독립왕국을13 건설하였고 이어13 네마니치의13 동생인13 1228) (1217)

성13 사바 의13 노력으로13 년13 세르비아13 독립13 정교회를13 구축하게13 된(Sv Sava) 1219

다 세르비아13 독립13 정교회의13 초대교주가13 된13 성13 사바가13 현 코소보13 지역의13 ( ) 現

쥐짜 에13 독립교구를13 세운13 이후13 코소보는13 세르비아인에게13 유대인들에게13 (Žica)

예루살렘이13 지니는13 의미와13 맞먹는13 성스러운13 종교적13 의미를13 지니게13 되었다

130 김철민

영토적인13 면에서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은13 세르비아13 역사상13 가장13 위대한13 왕으

로13 칭송받는13 스테판13 두샨왕13 시기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광활한13 영토에13 기초

하고13 있다 당시13 서로마와13 비잔틴제국 소아시아의13 중간13 교역로에13 있던13 세르

비아는13 이웃13 국가들과의13 활발한13 중개무역을13 통한13 부의13 축적과13 안정된13 정치력13

그리고13 강력한13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왕국의13 영토를13 현재의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

에서부터13 마케도니아 그리스13 남부지역으로까지13 넓힐13 수13 있었다 하지만13

년13 세의13 나이로13 두샨이13 사망한13 이후13 세르비아13 왕국은13 왕권13 다툼으로13 1355 46

인한13 내부13 분열과13 오스만13 터키의13 침입으로13 쇠락하게13 된다 특히13 년13 월13 1389 6

현13 코소보13 언덕에서13 무라드13 세가13 이끄는13 대규모13 오스만13 터키군에13 의해13 세르1

비아의13 라자르(Lazar Hrebeljanović 1371~ 왕자가13 이끄는13 세르비아13 1389)

연합군이13 패배하고13 난13 후13 세르비아13 중세13 왕국은13 몰락의13 길을13 가게13 되었다3

이후13 년까지13 지속된13 약13 여13 년간의13 오스만13 터키13 지배13 하에서도13 세1878 500

르비아인들은13 세르비아13 정교를13 중심으로13 민족13 정체성과13 민족의식을13 계속13 유

지할13 수13 있었다 근대13 이후13 오스만13 터키의13 쇠락13 속에13 무슬림13 지주들과13 관료

들의13 폭정에13 저항하기13 위해13 시작된13 세르비아의13 제 차13 봉기1 2 (Srpski

는13 점차13 이13 지역에13 보급된13 민족주의ustanak 1804~1813 1815~1830)

에13 의해13 영향을13 받았고 이에13 따라13 처음13 사회적13 봉기로13 시작된13 (Nationalism)

반 터키13 저항13 운동은13 점차13 독립된13 민족( )反 -국가(Nation- 건설을13 위한13 State)

민족주의13 운동으로13 확대13 발전되게13 되었다 이후13 세르비아는13 여러13 정치적13 어

려움과13 외세의13 간섭을13 이겨내고 마침내13 년13 월13 산13 스테파노 1878 3 (San

조약과13 동년13 월13 베를린 조약에13 의해13 근대13 독립국가로13 성장Sefano) 6 (Berlin)

하게13 된다4

3 이후13 코소보13 전투에13 관련된13 여러13 전설들은13 훗날13 세르비아13 민중들에게13 민담과13 구전문

학을13 통해13 계속해서13 전해13 내려옴으로써13 오스만13 터키등13 외세에13 대한13 세르비아13 민족의13

저항정신을13 고취시켰다 이에13 대해13 스타노예13 스타노예비치 (Stanojevic 1996

는13 이후13 코소보는13 세르비아13 역사에서13 제 차13 코소보전투와13 함께13 웅장했192-193) ldquo 1 2

던13 세르비아13 중세왕조의13 몰락과13 이민족의13 세르비아13 지배가13 시작되는13 치욕의13 역사로13

기록되었고 훗날13 세르비아13 민족의식의13 출발점으로13 인식되게13 된다 라고13 말하고13 있다 rdquo

4 당시13 세르비아는13 이들13 조약들로13 인해13 비록13 독립은13 인정받았으나 세르비아니즘의13 주

요13 목표였던13 보스니아13 지역과13 몬테네그로를13 통한13 아드리아해로의13 해상통로13 확보가13

오스트리아의13 방해로13 실패하는13 아픔을13 겪어야13 했다 그13 결과13 양13 국은13 세기를13 전후 20

해서13 적대관계를13 형성하였고 이러한13 감정싸움은13 마침내13 제 차13 세계대전으로13 이어지 1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1

세르비아니즘의13 이론적13 기초와13 그13 실천방향은13 년13 일리야13 가라샤닌1844

에13 의해13 처음으로13 제창되었다 그는13 중세13 세르비아13 두샨왕13 (Ilija Garašanin)

시대의13 영토적13 당위성을13 기초로13 한13 lsquo대 세르비아( ) (Velika Srbija)大 rsquo 국가13 건

설을13 세르비아13 근대국가의13 모델로13 설정하였고 이를13 위해13 이웃한13 몬테네그로

를13 비롯 당시13 합스부르크13 제국 년13 이후13 (1866 lsquo오스트리아-헝가리13 제국rsquo으로13 개칭의13 지배13 하에13 있던13 보이보디나 크로아티아 그리) (Vojvodina) (Croatia)

고13 보스니아 와13 헤르체고비나 지역을13 통합할13 것을13 주장(Bosnia) (Herzegovina)

하였다 또한13 그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을13 위해13 영토13 확대13 대상지역에13 거주

하는13 세르비아인들13 또한13 적극적으로13 동참해13 줄13 것을13 호소하였다(Petrovich

1976 231-232)5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세기13 당시13 민족주의에13 심취되어13 있 19

던13 세르비아인들13 사이에13 커다란13 반향을13 불러13 일으켰고 이들13 사이에13 세르비

아의13 지도력13 하에13 남슬라브족의13 통일이13 가능하리라는13 생각들이13 점차13 확대되

는13 계기를13 마련해13 주게13 된다 특히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

은13 페테르13 카라조르제비치 시기에13 들어(Peter I Karađorđević 1903~1918)

와13 더욱13 더13 구체화13 되었다 페테르는13 서구적이고13 근대적인13 시각을13 바탕으로13

자신의13 임기동안13 세르비아를13 발칸유럽에서13 가장13 강력한13 근대왕국으로13 발전

시켰고 시민13 자유와13 민주화13 그리고13 이를13 기초로13 한13 최초의13 입헌정부를13 수립

함으로써13 lsquo세르비아의13 르네상스기rsquo를13 이루게13 된다 또한13 오스트리아의13 보스

니아13 병합 등13 주변13 외세들의13 견제13 속에서도13 제 차13 발칸전쟁(1908) 1 2 (1912

을13 통해13 대규모13 영토13 확장을13 이루어13 냄으로써13 세르비아니즘13 구현에13 기1913)

여했다는13 평가를13 받게13 되었다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세르비아는13 마침내13 몬테네그로를13 완전13 병합하는13 데13 1

성공하였고 자신이13 주도하는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lsquo세르비아-크

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 년13 이(Kraljevina Srba Hrvata i Slovenaca 1929

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Kraljevina Jugoslavija)rsquo으로13 개칭됨)rsquo을13 또한13 건설함으로써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을13 완성하게13 된다 하지만13 세르비아는13 새로운13 통

합13 왕국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이라13 평가한13 반면 왕국내13 주요13 구성13 민족인13

게13 된다 김철민( 1999 29 Dimic 1998 25)

5 가라샤닌이13 주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주13 핵심13 내용은13 참조Vojvodić(2000 243-254)

132 김철민

크로아티아인과13 슬로베니아인은13 남슬라브족의13 평등13 국가라는13 점을 그리고13

세르비아의13 압력과13 회유에13 의해13 강제13 복속당한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엔13 또13 다

른13 지배자를13 맞이했다는13 역사적13 평가를13 낳게13 하였다

역사13 속에13 비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III

중세13 두클리야 제타 공국과13 세르비아1 ( )

몬테네그로인이13 발칸유럽에13 들어13 온13 시기는13 세기와13 세기경으로13 추정되5 6

며 이들은13 일단의13 남슬라브족들과13 함께13 다뉴브13 강을13 건너13 당시13 비잔틴13 제국13

지배13 하에13 있었던13 현13 지역에13 정착하게13 된다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의13 주장대

로13 현재까지의13 기록에13 따르자면13 발칸반도13 이주13 초기 몬테네그로인은13 다른13

남슬라브족13 특히13 세르비아인과13 거의13 구별되는13 않은13 채13 같은13 민족의13 일파로13

인식되고13 있음을13 확인할13 수13 있다 아바르 족과13 함께13 연합해13 비잔틴13 제 (Avar)

국이13 차지하고13 있던13 발칸유럽13 지역을13 장악하는13 데13 성공한13 남슬라브족은13 산악

지대가13 많은13 발칸유럽의13 지리적13 특성상13 점차13 느슨한13 정치적 사회적13 구조를13

지닌13 부족13 공동체로13 나눠지게13 되었다6 몬테네그로의13 중세13 역사13 또한13 이러한13

지리적13 험준함과13 남슬라브족의13 분열에13 따라13 시작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함께13 발칸반도로13 이주해13 들어13 온13 몬테네그로인은13 세7

6 산악지대가13 많은13 발칸유럽으로13 이주하였던13 남슬라브족은13 광활한13 평야13 지역으로13 이주

하였던13 여타13 다른13 슬라브족들과13 달리13 세월의13 흐름과13 함께13 각13 부족13 공동체들13 간에13 느

슨한13 정치적 사회적13 구조만을13 지니게13 된다 그13 이유는13 발칸13 지역의13 지리적13 험준함에13

따른13 것으로 이로13 인해13 남슬라브족은13 작은13 집단13 구성체로13 독자적인13 부족을13 형성하여

갔고 다음13 세대가13 등장하기13 전에13 각13 부족13 공동체들13 간의13 교류와13 문화13 전달이13 단절되

었으며 점차적으로13 관습 언어 정치13 조직13 간의13 차이점들이13 커져가게13 된다 이러한13

단절과13 차이점13 확대는13 곧13 이어13 남슬라브13 민족들13 간의13 정치적13 분열과13 군사력의13 약화로13

이어지게13 되었다 이에13 따라13 세기13 말에13 접어들게13 되면서13 남슬라브족의13 분화가13 확대 9

되기13 시작하였고 이러한13 분화에13 따라13 남슬라브족들은13 시기를13 거치면서13 크게13 불가리

아족 세르비아족 크로아티아족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족이라는13 개의13 남13 슬라브족13 공동 4

체로13 나누어지게13 된다 김철민( 2003 317-3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3

기13 이후에13 들어와13 코토르 부드바 바르 울찐(Kotor) (Budva) (Bar) (Ulcinj)

등13 현재의13 몬테네그로13 아드리아13 연안을13 중심으로13 자신들의13 부족13 국가들을13 수

립하게13 된다 몬테네그인은13 정착13 초기13 다른13 남슬라브족처럼13 고대13 원시13 슬라

브족의13 부족13 종교를13 지니고13 있었으나 점차13 시간이13 흐르면서13 이13 지역13 원주민

인13 로마인의13 사회와13 문화에13 점차13 동화되어13 갔고 그13 결과13 세기13 이후로13 로 12

마인들의13 신앙인13 기독교를13 자신의13 종교로13 수용하게13 되었다7

현13 세르비아로부터13 분리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분리13 독립파는13 몬테네그로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지배13 하로13 들어가기13 이전까지13 약13 년간13 고유한13 정체1918 1000

성을13 지니고13 발전하였으며 그13 역사는13 세기에13 성립된13 9 lsquo두클리야13 공국rsquo에서부터13 비롯되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비록13 세기13 무렵13 당시13 비잔틴13 제국의13 영 10

향력13 하에13 있었지만 두클리야13 공국의13 영토는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지방의13 대부

분을13 비롯해 남으로는13 알바니아13 상당13 지역인13 남부13 아드리아13 해안까지13 그리

고13 서쪽으로는13 현재의13 헤르체고비나13 지방을13 포함하고13 있었다 두클리야13 공국

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시조인13 보이슬라브 가13 년13 몬테네그로13 해(Vojislav) 1042

안가13 바르에서13 치룬13 비잔틴13 제국과의13 싸움에서13 승리를13 거둔13 이후13 본격적으로13

독립13 국가로서의13 기틀을13 잡아가게13 된다 이후13 두클리야의13 번영은13 보이슬라브

의13 아들인13 미하일로 와13 그의13 아들13 보딘(Mihailo 1046~1081) (Bodin 1081~

치하에서13 절정에13 이르렀다 미하일로는13 왕권을13 넘겨받은13 이후13 비잔틴1101)

과의13 평화13 관계를13 유지함과13 동시에 안정된13 국력과13 발달된13 경제력을13 바탕으

로13 년13 로마교황13 그레고리13 세 로부터13 독립13 왕국을13 인정받1077 7 (Gregory VII)

게13 되었다 미하일로의13 뒤를13 이은13 보딘은13 년13 로마13 교황13 클리멘트13 세 1089 3

로부터13 가톨릭13 대주교13 관직을13 획득하는13 등13 종교를13 통한13 국가13 (Clement III)

지배권13 강화를13 추진함으로써13 왕국의13 안정과13 황금기를13 이루게13 된다 하지만13

로마13 교회와의13 접한13 관계13 수립은13 곧13 이어13 비잔틴13 제국의13 강력한13 견제를13 불

러왔고 보딘13 사후13 일어난13 권력13 투쟁으로13 국력의13 약화가13 발생하게13 된다 그13

7 이때13 당시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을13 장악하고13 있던13 로마13 교회 후에13 가(

톨릭으로13 발전 의13 영향력13 하에13 놓여13 있었다 비록13 비잔틴13 제국의13 콘스탄티노플13 교회)

후에13 정교 로13 발전 와13 인근13 마케도니아와13 불가리아13 지역에서13 비롯된13 보고 교가13 한( lsquo rsquo )

때13 영향력을13 발휘하기도13 했지만 기록에13 따르자면13 이후로13 상당13 기간13 동안13 몬테네그로

인은13 가톨릭13 신앙에13 매우13 충실하였다고13 볼13 수13 있다 httpwwwmontenetorghistory

134 김철민

결과13 년13 비잔틴13 제국의13 지원을13 받은13 라쉬카13 공국의13 스테판13 네마냐에13 의1186

해13 정복당함으로써 세르비아의13 지배를13 받게13 되었다 이후13 두클리야13 공국은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13 하에서13 이13 지역13 제타강의13 이름을13 따13 lsquo제타13 공국rsquo으로도13 불리게13 된다

스테판13 네마냐는13 제타13 공국을13 지배한13 이후13 제타13 공국의13 모든13 도시들을13 파

괴하였고 보고 교13 추방과13 더불어13 가톨릭을13 믿고13 있던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13 정교로의13 강제13 개종13 그리고13 세르비아인으로의13 동화13 작업을13 추진하

게13 된다8 라쉬카13 공국은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아들인13 스테판13 네마니치13 시기에13

들어와13 중세13 세르비아13 독립13 왕국으로13 발전하였고 세르비아13 통치13 하에서13 몬

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지역을13 활용 활발한13 무역거래를13 통해13 상업적

경제적13 발전을13 이룩하게13 된다 하지만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에13 대해13 몬테네그

로13 분리13 독립파는13 당시부터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로부터13 독립하기13 위

한13 여러13 저항13 운동을13 추진하였고 그13 결과13 lsquo세르비아와13 그리스의13 왕이자13 황제rsquo로13 불렸던13 세르비아의13 두샨13 왕이13 년13 사망한13 직후 독립을13 얻을13 수13 있1355

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은13 두샨왕13 사후13 비록13 왕

권13 다툼과13 오스만13 터키의13 유럽13 원정으로13 다소13 지배권이13 약화되었지만 이13 시

기13 동안13 제타13 공국은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에서13 결코13 벗어나지13 못했다고13 주장하

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3)

제 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은13 년13 발쉬치 시조인13 발샤13 세2 1356 (Balšić 1

에서13 유래됨 왕조에서부터13 비롯되게13 된다 세르비아의13 정치적13 혼란(Balša I) )

을13 틈타13 왕국을13 재건하였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점차13 세력을13 확대해13 두샨왕13 당시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수도였던13 스코쁠예 오늘날13 마케도니아13 수도(Skoplje )

그리고13 뻬치 와13 쁘리즈렌 등13 코소보를13 비롯해13 과거13 라쉬카13 공(Peć) (Prizren)

국의13 지배13 지역들을13 하나씩13 점령하여13 갔으며 서쪽으로는13 두브로브니크

8 세기13 몬테네그로의13 가장13 유명한13 역사가13 중13 한명인13 빠블레13 로빈스키19 (Pavel

는13 당시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몬테네그로인13 정체성13 말살13 작업을13 비판하고13 있는13 Rovinski)

데 그에13 따르자면13 네마냐가13 당시13 두클리야의13 모든13 종교13 서적 역사서 지리서 문학

서13 등13 종류의13 구분13 없이13 불태워13 버렸다고13 비난하고13 있다 httpwwwmontenetorg

두클리야13 복속13 이후13 네마냐의13 여러13 행적에13 관해선13 history Božić Ćirković

참조Ekmečić and Dedijer(1973 51)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5

을13 포함13 헤르체고비나13 지역까지13 그13 세력을13 확장하여13 갔다 이13 (Dubrovnik)

당시13 발쉬치13 가문은13 중세13 세르비아의13 네먀니치13 왕조와13 여러13 경로에13 걸쳐13 가

족13 관계를13 형성하고13 있었는데 세르비아13 주장에13 따르자면13 몬테네그로는13 이

러한13 혼인13 관계를13 통한13 정통성13 인정에13 주력하였다고13 언급하고13 있다 실제13 기

록에13 따르더라도13 당시13 발쉬치13 왕조는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전통을13 계승하겠

다고13 나선13 보스니아13 왕국과13 여러13 차례13 전쟁을13 치러야13 했으며 년에는13 현13 1377

세르비아의13 레쉐보 에서13 세르비아의13 왕으로13 등극한13 보스니아의13 (Mileševo)

트브르트코13 세 의13 왕위13 계승을13 부정하기도13 하였다I (Tvrtko I) 9 한때13 왕국의13

발전을13 이루었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년13 코소보13 전투에서13 세르비아를13 도와13 1389

오스만13 터키와13 벌였던13 전투에서13 패배하여13 커다란13 위기를13 초래하게13 된다 곧13

이어13 년13 발샤13 세 가13 추진하였던13 아드리아해13 상권13 획득을13 둘1419 3 (Balša III)

러싼13 베니스와의13 전쟁에서13 패하면서13 제타13 공국의13 발쉬치13 왕조는13 몰락의13 길을13

가게13 되었다

한13 동안13 외세의13 침입과13 권력내분에13 시달렸던13 제타13 공국은13 중세13 몬테네그

로13 왕국의13 제 대13 왕조인13 쯔르노예비치 왕조의13 출현과13 더불어13 안3 (Crnojević)

정을13 되찾게13 된다 쯔르노예비치13 왕조는13 해안지대를13 중심으로13 발전을13 이룬13

다른13 왕조들과는13 달리13 몬테네그로13 북부13 산악지대인13 로브첸 지역에(Lovčen)

서부터13 시작되었다 하지만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마지막13 왕조였던13 쯔르노예비

치13 왕조는13 그리13 오랜13 기간13 유지되지13 못하였다 우선13 시조인13 스테판13 쯔르노예

비치 와13 그의13 아들13 이반13 쯔르노예비치(Stefan Crnojević 1427~1465) (Ivan

Crnojević 1465- 그리고13 오스만13 터키의13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다13 전사1490)

9 발쉬치13 왕조는13 비록13 과거13 두클리야13 공국의13 뒤를13 이은13 제타13 공국의13 지배자였지만 또

한13 동시에13 자신들을13 과거13 라쉬카13 공국의13 영주로 세르비아13 네마니치가의13 먼13 인척으로13

생각하고13 있었다 따라서13 문자에13 있어서도13 자신들이13 주로13 쓰는13 라틴문자와13 함께13 세르

비아에서의13 키릴문자를13 혼용해서13 사용하였고 종교에13 있어서도13 비록13 가톨릭을13 국가적13

종교로13 인정하고13 있었지만 세르비아가13 믿고13 있는13 정교에13 대해서도13 여러13 관심과13 주도

적13 역할을13 수행하고13 있었다 이러한13 예는13 발쉬치13 왕조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라쟈르13 1375

왕자와13 함께13 세르비아13 정교회13 총대주교를13 선출하기13 위해13 소집한13 교회13 성직자단13 회의

를13 주도한13 데서도13 확인될13 수13 있다 이에13 대해13 세르비아니즘이13 확산되고13 있던13 근대

세르비아의13 민족주의13 학자인13 쥬라13 다니취치 는13 위의13 경우를13 해(Daničić 1876 11-13)

석하는13 데13 있어 제타13 공국의13 세르비아에13 대한13 의존과13 종속성이13 높았다고13 강조하고13

있다

136 김철민

한13 이반의13 아들13 쥬라즈13 쯔르노예비치 를13 마(Djuradj Crnojevic 1490~1496)

지막으로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역사는13 끝이13 나게13 된다

하지만13 비록13 짧은13 기간의13 통치였지만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몬테네그로13 역

사에13 남긴13 영향은13 매우13 컸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시작

과13 함께13 제타13 공국은13 오늘날13 명칭인13 쯔르나13 고라 몬테네그로(Crna Gora

란13 지명으로13 불리게13 되었다 두13 번째로는13 이13 시기13 주변의13 남(Montenegro))

슬라브족13 국가들이13 모두13 오스만13 터키의13 지배13 하로13 넘어갔음에도13 불구하고

쯔르노예비치는13 년13 수도를13 스카다르 호수의13 쟈블략 에1482 (Skadar) (Zabljak)

서 보다13 수비가13 용이한13 험준한13 지역인13 로브첸13 산악지대로브첸스키13 돌라쯔 (

오늘날13 쩨티녜 의13 전신로13 옮겨13 오스만13 터키의13 (Lovcenski Dolac (Cetinje) )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였다는13 점이다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은13 훗날13 외세의13 침

략과13 지배가13 있을13 때마다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에13 저항13 정신과13 독립13 추진에13

대한13 원동력을13 제공하였으며 현13 분리13 독립파13 또한13 이러한13 역사를13 상기시키

며 세르비아로부터의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다 그리고13 세13 번째로13 발칸유럽13 국

가들13 중에선13 최초로13 년13 베네치아에서13 인쇄13 도구와13 인쇄기를13 도입하고1493

납으로13 된13 글자체와13 필체13 장식을13 위한13 주조물을13 만들어13 냄으로써 이후13 약13

여13 년간13 세르비아와13 보스니아에서13 키릴13 문자로13 인쇄된13 서적들의13 출판에13 100

상당한13 영향을13 미쳤다는13 자부심을13 안겨주었다

비록13 일부13 반론이13 있기는13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가들의13 주장에13 따르자면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재건한13 중세13 왕국은13 당시13 오스만13 터키에13 의해13 사라져13

버린13 세르비아13 네마니치13 왕조의13 국가13 전통과13 문화유산을13 그대로13 계승하고자13

노력했던13 것으로13 보인다 그러한13 실례는13 당시13 관직명과13 교구13 운영에13 있어서13

과거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관직명들이13 그대로13 채택하고 세르비아13 제국13 시절을13

본13 따13 lsquo황제와13 총대주교구의13 법원rsquo을13 설치했음을 그리고13 모든13 법률13 조항에13

있어13 과거13 두샨왕13 시절13 제작된13 lsquo두샨13 법전rsquo의13 조항들을13 그대로13 적용시켰다는13 점을13 들13 수13 있다 이를13 기초로13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13 가운데13 상당수는13 년13 1496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붕괴와13 중세13 몬테네그로13 왕국의13 종말은13 세르비아13 민족

이13 이룬13 중세13 국가의13 마지막13 형태가13 사라졌음을13 의미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5)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7

근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과13 세르비아니즘2

발칸유럽의13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마찬가지로13 몬테네그로인13 또한13 오스만13 터

키지배13 하에서13 터키의13 계획적이고13 철저한13 약탈13 경제13 정책으로13 인해13 사회 경

제적13 어려움이13 가중되게13 된다 과거13 아드리아13 해안13 상권을13 이용해13 이룩한13 왕

성한13 상업과13 무역13 활동13 그리고13 이를13 통한13 부의13 축적의13 가능하였던13 몬테네그

로인은13 이들13 분야를13 경시하고13 농업 임업 공공13 건설13 사업에13 치중하였던13 오스

만13 터키의13 정책에13 따라13 일련의13 암흑기를13 맞이하게13 되었다 또한13 오스만13 터키

의13 국력이13 쇠락해진13 세기13 말13 이후로13 세금13 부담이13 지나치게13 커지면서13 몬테17

네그로인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의13 충돌이13 빈번하게13 발생하였고 이에13 따라13 몬테

네그로인은13 상황이13 허락하는13 한13 베네치아13 등13 서구13 국가들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

의13 충돌시13 서구13 국가들을13 지원해13 아드리아의13 또13 다른13 주요13 지역인13 lsquo라구사공국오늘날13 두브로브니크 일대(Ragusa) ( (Dubrovnik) )rsquo의13 경우처럼13 이들로

부터13 자치권을13 보장받으려13 했다

이러한13 노력은13 페테르13 세1 (Peter I Petrović Njegoš 1782- 와13 페테르13 1830)

세2 (Peter II Petrović Njegoš 1830- 에13 의해13 그13 결실을13 이루게13 된다1851)

페테르13 세는13 당시13 여러13 외세의13 영향력13 하에13 흩어져13 있던13 몬테네그로13 부족들1

을13 한13 데로13 통합하고자13 노력하였고 국가13 수립과13 통치에13 필요한13 근대식13 법률

체계를13 정비하고 사법 행정의13 규율을13 정한13 사법13 행정법 과13 과거의13 관 (1798)

습법에서13 벗어나13 법률에13 근거해13 법을13 집행할13 수13 있도록13 만든13 법률집(1803)

을13 새로이13 구축하여13 놓았다 페테르13 세는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세르비아13 중 1

심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구상하였고 따라서13 강력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

현을13 위해13 제 차13 세르비아13 봉기1 (Prvi srpski ustanak 1804- 를13 통해13 세1813)

르비아13 자치13 국가를13 건설하려던13 카라조르제13 뻬트로비치(Karađorđe Petrović)

의13 봉기군과13 유기적13 연결13 관계를13 구축하게13 된다 이를13 위해13 페테르13 세는13 러 1

시아의13 지원을13 기대하며13 당시13 프랑스군이13 점령하고13 있던13 코토르만(Boka

과13 두브로브니크를13 탈환한13 후13 몬테네그로 헤르체고비나 코토르만Kotorska)

달마티아 지역13 등을13 중심으로13 한13 (Dalmacija) lsquo슬라브13 세르비아13 왕국rsquo을13 건설

138 김철민

하겠다는13 그의13 의지를13 표방하였으나 나폴레옹의13 러시아13 침공과13 함께13 그의13

바람은13 수포로13 돌아가게13 된다

이러한13 페테르13 세의13 남슬라브족13 이상에13 대해13 미오미르13 다쉬치1 (Miomir

는13 년13 이룬13 남슬라브족의13 통합13 정신이13 바로13 몬테네그로의13 페테르13 Dašić) 1918

세로부터13 출발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그는13 1 ldquo페테르13 세가13 세르비아인1

과13 크로아티아인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인 몬테네그로인의13 조화와13 형제애 단합

을13 강조하였던13 애국적인13 시인이자13 훌륭한13 정치가였다rdquo라고13 언급하면서 이러

한13 페테르13 세의13 정신이13 이후13 약하게나마13 니콜라13 시기까지13 이어지게13 되어1

년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국가가13 수립될13 수13 있었1918

다고13 말하고13 있다 무엇보다도13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그13 사(Dašić 1999 487)

실여부를13 떠나13 년13 수립된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그리고13 이13 왕국으로1918

의13 몬테네그로13 편입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이라는13 차원에서13 인식하고13 있다

는13 점에서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는13 독립13 세력들로부터13 일련의13

비판을13 받고13 있는13 상황이다

자신들의13 독립13 근대13 왕국을13 건설하고자13 했던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바람은13 현

대13 몬테네그로13 국가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설립자이자13 유명한13 시인이기도13 했

던13 페테르13 세13 시기에13 들어와서부터라13 볼13 수13 있다 반면13 세르비아인들은13 이13 2

당시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에13 크게13 호응하고13 있었고 이러

한13 그의13 이상을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도13 확산시키고자13 여러13 노력을13 기울이고13

있던13 시점이었다 페테르13 세는13 오스만13 터키의13 견제와13 프랑스의13 간섭13 그리고13 2

계속되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13 속에서도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결속과13 단결을13

이끌어내 년13 마침내13 오스트리아등13 주변13 강대국들로부터13 독립국가로서 1842

의13 인정을13 받을13 수13 있게13 된다 이어13 그의13 왕권은13 그의13 (Petrovich 1976 232)

조카인13 다닐로(Danilo I Petrović 1852~ 에게13 계승되었으나 년13 1860) 1860

암살에13 의한13 사망으로13 인해13 왕위는13 니콜라 에(Nikola Petrović 1860~1916)

게13 승계되게13 된다

니콜라는13 년부터13 시작된13 수차례의13 오스만13 터키13 공격을13 잘13 막아내었1862

고 년13 월13 1878 3 lsquo산스테파노 조약(San Stefano) rsquo과13 동년13 월13 6 lsquo베를린(Berlin)

조약rsquo의13 결과13 비록13 국제적으로13 인정은13 받지13 못했지만 몬테네그로는13 독립13 국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9

가를13 위한13 토대를13 구축할13 수13 있게13 되었다 베를린13 조약의13 결과13 몬테네그로의13

면적은13 과거보다13 배13 더13 확장되었고 오랜13 숙원이던13 2 (4400 9475 ) rarr

바르나 울찐13 등13 해안지대를13 확보할13 수13 있게13 된다 이때13 이후13 수도인13 쩨티녜

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는13 경제 사회적13 발전을13 이루게13 되어 년에13 들어 1899

와서는13 개의13 공립학교와13 개의13 사립학교가13 설립13 되게13 되었다 또한13 러시75 26

아의13 지도13 아래13 근대식13 군대가13 창설되었고 오스트리아의13 원조13 아래13 쩨티녜

에서13 코토르까지13 최초의13 근대식13 개념의13 도로와13 철도가13 설립되게13 된다

니콜라13 하의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관계는13 같(Komatina 1999 131)

은13 남슬라브족으로서13 선린관계를13 유지하고13 있었다 하지만13 세르비아13 정국13 주

도권을13 둘러싼13 오브레노비치 왕조와13 페트로비치 왕조(Obrenović) (Petrović)

간의13 계속된13 유혈13 사태는13 곧13 바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불협화음을13 초

래하게13 하였다10 특히13 세르비아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13 및13 발칸13 유럽내13 남

슬라브족13 국가들을13 통합해13 나가겠다는13 취지13 아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를13 강

력히13 추진하던13 란13 오브레노비치 시기13 이(Milan Obrenović 1868~1889)

후로13 양국은13 다소13 불편한13 관계가13 수립되었고 년13 마침내13 몬테네그로는13 1910

니콜라왕을13 중심으로13 하는13 독립13 군주국가임을13 선포하게13 되었다(Komatina

1999 37-38)11

10 이러한13 불협화음의13 또13 다른13 배경에는13 니콜라13 왕이13 세르비아13 오브레노비치13 왕조의13 정

적인13 카라조르제비치13 가문의13 페테르13 카라조르제비치(Peter I Karađorđević 1903~

까지13 세르비아13 왕위를13 엮임 를13 자신의13 장녀13 조르카 와13 결혼시켰던13 데서도13 1918 ) (Zorka)

그13 요인을13 찾을13 수13 있다

11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13 움직임13 속에13 치러진13 당시13 취임식에서13 니콜라왕은13 몬테네그로13

민족의13 독자성과13 독립된13 민족13 정체성을13 그들의13 중세13 역사13 속에서13 찾을13 것을13 천명하였

다 우리는13 과거13 제타13 왕국의13 보이슬라브 미하일로13 그리고13 보딘의13 자손이다 시간은13 ldquo

단지13 이13 땅위에13 존재하였던13 것을13 파괴할13 수13 있었지만 이13 안에13 꿈틀대고13 있는13 자유에13

대한13 의지와13 충성스러운13 산악인들의13 뜨거운13 심장을13 파괴할13 수는13 없었다 우리는13 오랜13

역사의13 토대13 위에13 왕국13 건설의13 부활을13 시작하였고 오늘날13 이13 왕국은13 여기13 천상의13 햇

빛아래13 반짝이는13 우리의13 고대왕국에13 그13 뿌리를13 두고13 있다rdquo httpwwwmontenetorg

history

140 김철민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IV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주요13 배경과13 진행과정13 1

세기13 초13 몬테네그로는13 비록13 니콜라왕의13 독립13 왕국13 선포에도13 불구하고20

복잡한13 발칸유럽의13 정세와13 더불어13 매우13 혼돈의13 시기를13 맞이하고13 있었다 몬

테네그로는13 년과13 년에13 치른13 제 차13 발칸전쟁에서의13 승전에도13 불1912 1913 1 2

구하고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종결이후13 세르비아13 주도의13 최초13 남슬라브족13 1918 1

통합국가인13 lsquo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Kraljevina SHS)rsquo하로13 편입되는13 아픔을13 겪게13 된다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제 차13 세계대전이전까지13 세르 2

비아의13 직접적인13 지배13 하에13 놓이게13 되었지만 제 차13 세계대전에서13 티토를13 중 2

심으로13 한13 파르티잔13 세력이13 승리한13 이후 사회주의13 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하에

서13 개13 구성13 공화국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6 ( -헤르체고비나 세르비

아 몬테네그로13 그리고13 마케도니아13 공화국 중13 하나인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으 )

로13 새롭게13 등장할13 수13 있었다

년13 베를린13 장벽13 붕괴로13 상징되는13 사회주의13 체제의13 몰락이후13 유고슬라1989

비아13 연방의13 해체13 위기와13 더불어13 몬테네그로는13 매우13 불확실한13 위치에13 놓이게13

된다 특히13 년에13 있었던13 다당제13 선거가13 실시된13 이후13 사회주의13 유고슬라 1990

비아13 연방은13 해체의13 길로13 들어서고13 있었고 이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도13 자신의13

진로를13 결정해야만13 했다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의13 압력과13 불확실한13 국

제적13 상황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년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형성에13 1992

가담하게13 된다12 하지만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에13 가담한13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연방13 구성국이었던13 세르비아가13 중심이13 된13 유고내전슬로베니아13 내전과13 크로(

12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이13 해체되는13 과정13 속에서13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

아와13 함께13 새로운13 연방을13 구성해13 나갈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단행하게13 된다 전체13 선

거인단의13 가13 참여하였던13 이13 선거에서13 찬성13 반대13 라는13 압도적인13 표차로13 66 96 3

몬테네그로13 국민은13 세르비아와13 운명을13 같이13 할13 것을13 결정짓게13 된다(Komatina 1999

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1

아티아13 내전과13 보스니아13 내전13 그리고13 이후13 년13 월에13 일어난13 와) 1999 3 NATO

의13 코소보13 전쟁13 등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미국과13 서유럽13 국가들로부터13

경제적 정치적13 그리고13 외교적13 고립을13 강요받아야만13 했다 결과적으로13 서구

로부터의13 고립은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13 형성과13 그13 유지에13

대한13 의구심을13 증폭시켰고 이러한13 국내13 분위기13 속에서13 년13 월13 몬테네 1999 8

그로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선출된13 로13 쥬카노비치 대통(Milo Đukanović)

령과13 그13 수뇌부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세르비아니즘의13 희생자임을13 상기시키며

독립을13 위한13 실질적인13 논의에13 들어가게13 된다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당시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13 권력자였던13 슬로보단13

로쉐비치 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에13 반발하였던13 몬테네(Slobodan Milošević)

그로13 대통령13 로13 쥬카노비치를13 중심으로13 제기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쥬

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세르비아13 정부에게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rsquo이13 아닌13 lsquo몬테네그로-세르비아13 연합13 국가rsquo라는13 명칭으로13 변경할13 것과13 현행13 연방13 헌법을13 폐지할13 것 그리고13 연방13 정부13 협의13 체제를13 각13 공화국간13 각료간13 협의체제

로13 전환13 할13 것13 등13 실질적인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방13 정부구성을13 제안하였다 이

후13 몬테네그로의13 요구는13 세르비아와의13 느슨한13 연방형태13 유지를13 전제로13 한13 독

자군대13 편성권과13 독자적13 외교권13 그리고13 독자13 통화권13 발행13 등으로13 확대되게13

된다

년13 월에13 들어와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연방정부에13 본격적으로13 연방13 2000 7

분리13 구상을13 제안하였고 몬테네그로가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존재를13 더13 이

상13 인정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점과13 그해13 월에13 치러질13 연방13 선거에13 불참할13 것13 9

그리고13 몬테네그로의13 향후13 국가13 목표를13 와13 에13 가입하는13 것을13 주요13 EU NATO

골자로13 하겠다는13 등의13 성명서를13 발표하였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그늘로부터13

벗어나13 독립을13 이루려던13 몬테네그로의13 의도는13 년13 월13 세르비아에서13 반2000 10

로쉐비치13 민주화13 혁명이13 일어나 민주인사인13 보이슬라브13 코슈투니짜( ) 反연방13 대통령이13 등장하게13 되자13 난관에13 봉착하게13 된다(Vojslav Koštunica) 13

13 년13 월13 일13 치러진13 유고연방의13 대선과13 총선13 투표에13 대해 선거13 위원회가13 발표2000 9 24

한13 결과와는13 달리 세르비아13 민주야당 의13 코슈투니차 (DOS) (Kos 후보13 진영에선13 tunica)

자체13 집계13 결과13 결선13 투표13 없이13 차13 투표에서13 로쉐비치를13 이겼다고13 선언하게13 된다1

이어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민주화를13 요구하는13 시위대의13 물결이13 베오그라드에13 집결하

142 김철민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취임한13 코슈투니짜13 대통령은13 ldquo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는13 하나의13 운명13 공동체이며13 더욱13 더13 강력한13 통합이13 필요하

다rdquo는13 점을13 강조하였고 이어13 이러한13 선언이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추구하고자13

했던13 미국과13 서방의13 지지를13 얻게13 됨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다소13 어

려움을13 겪게13 된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민주화13 혁명13 성공과13 대외적인13 압력에도13 불구하고 몬테

네그로의13 독립을13 향한13 움직임은13 계속13 지속되었다 특히13 몬테네그로는13 우선적

으로13 세르비아가13 주도하고13 있던13 연방으로부터의13 경제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갔는

데 그13 결과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의13 공식13 화폐가13 연방의13 공식화폐인13 2000 11 lsquo디나르 화(Dinar) rsquo 대신에13 독일의13 마르크화로13 지정되게13 된다 14 이어13 년13 2001 4

월에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양대13 세력 분리13 독립파와13 연방13 유지파 간13 ( )

총선13 결과13 근소한13 차이지만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승리함으로서13 독립13 추진에13 힘

을13 실어주게13 된다김철민( 2005 141)15 하지만13 총선13 직후 몬테네그로13 독립

추진에13 대한13 미국과13 의13 반응은13 EU ldquo이러한13 시도가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해칠13 수13 있다rdquo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보냈었고 마침내13 대표단이13 동년13 월13 몬 EU 4

테네그로를13 직접13 방문 몬테네그로13 독립13 반대에13 대한13 공식적인13 의견을13 분명

히13 하게13 된다 이러한13 국제13 사회의13 강력한13 반대에13 려13 몬테네그로13 정부는13

년13 월13 일13 이전에13 치르기로13 했던13 2001 7 13 lsquo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13 총선rsquo을13 철회한다는13 발표를13 해야만13 했다

년13 월13 세르비아13 총리이자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인13 정치13 구심점이었던13 2001 7

조란13 쥔쥐치 는13 (Zoran Žindjić) ldquo몬테네그로의13 독립추진이13 세르비아니즘을13 자

였고 총13 파업이13 유고13 전역에서13 시작되게13 되었다 계속된13 시위와13 민주화13 요구13 속에13

가장13 큰13 후원자였던13 러시아로부터도13 지원13 약속을13 받아13 내지13 못하자 로쉐비치는13 국

영13 에서13 자신의13 패배를13 인정하고13 정권13 이양을13 선언하게13 된다 선언내용은13 라디오TV lsquo

텔레비전13 세르비아 사이트인13 참조 뒤13 이어13 월13 일 민주13 인rsquo httpwwwrtscoyu 10 7

사인13 코슈투니차가13 마침내13 국회13 의사당에서13 대통령13 취임식을13 갖고13 정권13 인수13 작업에13

착수하기13 시작하였고 곧13 이어13 유럽연합은13 년13 코소보13 전쟁이후로13 발효된13 유고연 1999

방에13 대한13 석유금수조치를13 해제해13 주고 몬테네그로13 문제를13 비롯한13 모든13 중요13 현안들

에13 있어13 새롭게13 등장한13 민주13 정권에13 대한13 지지를13 분명히13 전달하게13 된다

14 년13 월13 이후13 공식화폐는13 유로 화로13 변경2002 1 (Euro)

15 총선13 결과 분리13 독립파지지13 세력13 를 연방13 유지파13 지지13 세력은13 를13 차지 421 407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극해13 코소보13 사태와13 같은13 심각한13 위험을13 초래13 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점을13 경고하였다 동시에13 ldquo몬테네그로가13 연방13 내에13 계속13 존속하기를13 강력히13 희망한다rdquo는13 메시지와13 함께 ldquo국방 외교 통화13 등에13 대한13 권한만을13 연방정부에13 이양하고13

나머지13 조세와13 여러13 권한들에13 대해선13 몬테네그로13 정부가13 독자적으로13 주도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합을13 제안하게13 된다16 하지만13 이러한13 제안이13

발표된13 직후13 몬테네그로13 정부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여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다

시13 실시할13 것임을13 발표하는13 것으로 세르비아13 정부의13 제안을13 거절하였다

여러13 차례의13 회담과13 논의13 끝에13 년13 월13 연방13 정부13 및13 세르비아와13 몬테2003 3

네그로13 정부간13 합의문이13 발표되었는데 주13 내용은13 년13 동안13 세르비아와13 몬테 3

네그로가13 연합한13 연방을13 계속13 존속할13 것과13 이후13 양13 공화국이13 몬테네그로13 독

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실시할13 것13 그리고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공화국(SRJ)rsquo에서13 lsquo세르비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rsquo으로13 변경할13 것13 등이었다 이

어13 이13 합의문에13 따라13 하나의13 국가연합13 체제라는13 틀13 속에서13 국방과13 외교 무

역 재정 인권부문13 등13 개13 내각은13 연방13 정부내13 합동행정기구에 나머지13 모든13 5

권한은13 각13 공화국이13 독자적으로13 운영하는13 느슨한13 연합13 국가13 탄생이13 결정되었

다 또한13 그13 내용에13 따라13 국제적으로는13 등13 국제기구에서13 하나의13 의석을13 UN

갖는13 단일13 국가로13 활동하며 현행13 조약과13 협정에13 대한13 과거13 유고연방의13 권리

와13 책임을13 승계한다는13 원칙이13 수립되게13 된다 그리고13 마침내13 년13 월13 세 2003 4

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13 의회에서13 양13 국13 지도부들간의13 몬테네그로13 연방13

존속13 안에13 대한13 협정이13 승인되게13 되면서13 현재에13 이르고13 있다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의13 향후13 전망과13 그13 의미13 2

새로운13 연합13 국가를13 구성하는13 데13 양13 국이13 합의한13 직후 년13 월13 세르 2003 3

비아-몬테네그로13 의회는13 몬테네그로13 출신의13 법률가13 스베토자르13 마로비치

를13 전체13 의석13 석13 중 찬성13 반대13 기권13 표로13 (Svetozar Marović) 126 65 47 14

16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13 대표적13 신문인13 보르바 참조- lsquo (Borba)rsquo httpwwwborbacoyu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제를13 구축해13 나가고13 있다 반면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이 2003 5

전13 로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의13 측근이자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강력히13 주장하였

던13 필립13 부야노비치 전13 총리가13 승리를13 거둠으로써 현재13 몬(Filip Vujanović)

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정국은13 매우13 혼미한13 상태로13 진행되고13 있다

연합13 국가를13 계속13 유지해13 나가려는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노력들을13 뿌리치고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으로부터13 벗어나13 새로이13 독립13 국가를13 구성해13 나가려는13 몬

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는13 향후13 다소13 난항을13 겪을13 것으로13 예상된다 그러한13 분

석을13 내리는13 배경에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13 그리고13 발칸반도를13 둘러싼13 다

음과13 같은13 장애요소들이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기13 때문이다 몬테

네그로의13 향후13 독립문제는13 아래13 요소들의13 향배에13 따라13 결정되어질13 것으로13 보

인다

우선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는13 가장13 큰13 장애13 요소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독립

을13 향한13 단합된13 의지를13 어느13 정도까지13 그리고13 어디까지13 보여줄13 수13 있을13 것인

가 라는13 문제이다 몬테네그로는13 지난13 년13 월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몬테네 2003 5

그로의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부야노비치13 전13 총리가13 대통령에13 당선되었지만 그13

전개13 과정이13 그리13 매끄럽지13 못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당시13 대통령13 선거13 투표율

은13 전체13 유권자의13 득표율은13 에13 불과하였는데 그13 동안13 부야노비치13 48 65

후보는13 년13 월과13 년13 월에13 치러진13 두13 차례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최다13 2002 12 2003 2

득표율을13 기록하긴13 했으나 두13 차례13 선거13 모두13 헌법상13 최저13 투표율인13 를13 50

밑돌아13 무효처리가13 되었었다 따라서13 여러13 논란13 속에13 치러진13 년13 월13 선 2003 5

거에선13 쥬카노비치의13 주도13 아래13 조정된13 새로운13 선거법13 즉 최저13 유효13 투표율13

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선거가13 치러지게13 되었다 이러한13 점은13 지난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이13 2001 4

주요13 이슈로13 떠13 오른13 총선을13 통해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근소한13 차로13 승리하긴13

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으로13 국명이13 바뀐13 후13 몬테네그로13 최초13 대통령이13

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이다 실제 몬테네그로13 헌법적13 지위변화에13 관한13 국민투표가13 실행되기13 위해

선13 전체13 몬테네그로13 의원13 명13 가운데13 인13 명의13 동의가13 필요하지만77 23 52

년13 월13 선거에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석을13 얻는13 데13 그친13 실정이다 더불어13 2001 4 44

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산업13 기지와13 생산능력이13 취약해13 주력13 산업으로13 관광업을13 육성시키고13 있는13 몬

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비아인이라는13 점(httpwwwvisit- 그리고13 세르비아로부터13 montenegrocom)

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세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해13 나가려는13 데13 있어13 세르비아의13 강력한13

17 년13 인구조사에13 따르자면 몬테네그로13 총13 인구13 비율은13 몬테네그로인이13 약13 1991 617(

명 세르비아인이13 약13 명 무슬림이13 약13 명 알바니381000 ) 93( 57000 ) 145( 89000 )

아인이13 약13 명 기타13 인구가13 약13 명 를13 차지한다 이외에도13 세65( 40000 ) 8( 49000 )

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년13 기준으로13 몬테네그로13 자체13 방위13 병력이13 여13 명에13 불과한13 상황에서13 만3000

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세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13 분할과13 민족간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휘말릴13 가능성이13 높

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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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민 세르비아13 민족의13 기원과13 민족13 정체성에13 관한13 연구 동유럽발칸학 제 2003 「 」 985172 985173권13 호 한국동유럽발칸학회5 1 pp 31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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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2: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126 김철민

서론I

세기13 말13 수차례의13 내전과13 전쟁을13 겪기13 이전 유고슬라비아13 지역은13 20 lsquo다양한13 종교와13 문화13 그리고13 민족의13 모자이크13 지역rsquo으로써13 국제사회에13 알려져13 왔었다 하지만 년13 사회주의13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기능이13 사실상13 정지되 1990

고13 난13 후13 발생한13 유고내전 과13 보스니아13 내전(1991 6~1995 11) (1992

그리고13 미국을13 중심으로13 한13 군과13 세르비아군13 간의13 코소3~1995 11) NATO

보13 전쟁 은13 이러한13 모자이크와13 조화로움에13 큰13 상처를13 입혔다 극(1999 3~6)

단적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한13 형태라13 할13 수13 있는13 lsquo세르비아니즘(Serbianism

Srpskizam)rsquo은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의13 내전들과13 전쟁의13 주요인으로써13 그리고13 발칸13 유럽내13 민족13 갈등의13 꺼지지13 않는13 불씨로써13 국제13 사회에13 자주13 지목되어13

왔으며 현재까지13 이에13 대한13 연구가13 국내외13 일부13 학자들을13 중심으로13 진행되

어13 오고13 있다1

1 미국13 독립전쟁 과13 프랑스13 혁명 을13 사상적13 토대로13 서유럽에서13 시작된13 (1775~1781) (1789)

민족주의는13 세기13 나폴레옹13 전쟁을13 따라13 유럽13 전역으로13 확산되었고 이어13 세기13 19 19

중엽에는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를13 포함한13 발칸유럽에도13 영향을13 미치기13 시작하였다

하지만13 세기13 이후13 산업혁명을13 통한13 사회18 경제적인13 발전과13 더불어13 단일13 민족으로13 구성된13 독립국가13 혹은13 거대한13 식민지를13 바탕으로13 형성된13 제국13 등의13 다양한13 방식으로13

자신들의13 민족 국가 를13 수립하고13 있던13 서유럽13 민족들과는13 달리 발칸유- (Nation-State)

럽의13 대부분13 지역은13 세기13 중엽까지도13 여전히13 오스트리아 헝가리13 이중제국 후에13 합19 - (

스부르크13 제국 혹은13 오스만13 터키제국의13 지배13 하에서13 피지배13 식민지13 상태로13 놓여13 있)

었다 이러한13 시대적13 상황과13 현실의13 차이점은13 세기13 이후13 등장한13 민족주의가13 동서 19 유럽13 사이에13 분명한13 차이점을13 보이며13 발전하게13 되는13 계기를13 마련하게13 된다 그13 결과13

서유럽에서의13 민족주의가13 민족 과13 국가 를13 동일시하고13 민족 보다(Nation) (State) (Nation)

는13 국가 에13 더13 충성을13 요구하는13 특징을13 보이며 그13 기초요소로서13 사회계약 일(State)

반의지 그리고13 법과13 국가적13 실체13 등13 정치적13 요소를13 중요시13 여기는13 정(General will) lsquo치적13 민족주의 의13 특징을13 지니게13 되었다면 세르비아를13 비롯한13 (Political nationalism)rsquo

동유럽에서의13 민족주의는13 민족 과13 국가 를13 별개의13 존재로13 인정하고 국(Nation) (State)

가 보다는13 각각의13 민족 에13 대한13 충성을13 더13 강조하며 그13 기초요소로서13 (State) (Nation)

선민의식 신화 독립 영토13 그리고13 미래와13 꿈13 등13 문화적13 요소를13 더13 중요시13 여긴다는13

점에13 있어13 문화적13 민족주의 로13 정의내릴13 수13 있을13 것이다 민족lsquo (Cultural nationalism)rsquo

과13 민족주의에13 대한13 개념13 그리고13 동 서유럽13 민족주의의13 특징과13 그13 이론13 정리에13 관해선13 김철민 참조(1997)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27

세기13 말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에서13 발생한13 약13 년13 동안의13 계속된13 갈등과13 20 10

분쟁에도13 불구하고 발칸반도는13 아직도13 세르비아니즘의13 그늘과13 어두움13 속에

서13 벗어나지13 못하고13 있다 그13 대표적인13 사례가13 바로13 년13 이후로13 불거져13 1999

나오기13 시작한13 lsquo몬테네그로(MontenegroCrna Gora 독립문제) rsquo라13 말할13 수13 있다 년13 월13 유고슬라비아의13 구성13 공화국13 중13 하나로13 세르비아와13 같이13 1992 4

연방을13 구성하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과13 특히13 년에13 발생한13 코 1999

소보13 전쟁을13 겪은13 이후13 현재13 세르비아의13 그늘로부터13 벗어나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가려는13 움직임을13 활발히13 전개하고13 있다 물론13 이러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는13 년13 코소보13 전쟁이후로13 잠시13 수면에13 가라앉아13 있던13 1999 lsquo세르비아니즘rsquo의13 부활을13 예고하고13 있으며 발칸13 유럽내13 복잡한13 연결13 고리와13 함께13 민족간13 분쟁

의13 재현13 가능성을13 확대시키고13 있다

따라서13 본인은13 lsquo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rsquo라는13 본13 연구를13 통해 이13 지역13 연구가들의13 많은13 관심에도13 불구하고13 그13 동안13 국내에13 전혀13 소개

되지13 않았던13 lsquo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rsquo를13 세르비아니즘적13 이해와13 시각에서13 분석해보고자13 한다

본13 글의13 구성을13 보면 우선13 제 장에서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세르비 2

아인들과13 몬테네그로인들13 간의13 분쟁을13 이해하기13 위한13 기초적13 이론13 작업으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형성배경과13 그13 특징에13 대한13 연구가13 이루어지게13 될13 것이다

제 장과13 제 장에서는13 앞서13 연구된13 세르비아니즘에13 대한13 이론적13 논의를13 바탕3 4

으로13 몬테네그로13 정체성을13 둘러싼13 세르비아인과13 몬테네그로인들13 간의13 갈등

과13 그13 연관13 관계를13 정리하게13 될13 것이다 이중13 통시적13 분석13 방법에13 바탕을13 둔13

제 장에서는13 과거13 몬테네그로의13 역사를13 크게13 중세와13 근대13 독립13 왕국13 시기로13 3

나누어 몬테네그로13 정체성13 논쟁을13 확인해보고 각13 시기별로13 제기된13 몬테네

그로13 독립에13 대한13 의지와13 몬테네그로13 지역으로13 세르비아니즘을13 확산시켜가

려는13 세르비아인들의13 모습을13 살펴보게13 될13 것이다 제 장에서는13 몬테네그로13 4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에13 대해13 연구하게13 될13 것이다 특히13 본13 장에

서는13 년13 이후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추진해13 가는13 과정과13 그13 내용들을13 살1999

펴보면서 향후13 독립을13 추진해13 가는13 데13 있어13 반드시13 짚어봐야13 할13 여러13 요소

들을13 통해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의13 향후13 전망을13 예상해13 볼13 예정이다 마지막

128 김철민

으로13 제 장에서는13 본문에서의13 논의를13 바탕으로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에서의13 세5

르비아니즘의13 의미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다시13 한13 번13 고찰하고13 그13 의미

를13 살펴봄으로서13 결론을13 대신하고자13 한다

세르비아니즘의13 형성배경과13 이론적13 특징II

년대13 초부터13 말까지13 계속해서13 이어진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의13 내전과13 전1990

쟁13 그리고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13 대두는13 국제사회에13 이13 지역을13 주요13 국제분쟁13

지역13 중13 하나로13 인식하게13 했다 그13 결과13 서구의13 여러13 학자들을13 중심으로13 유

고슬라비아13 지역내13 민족갈등13 원인과13 분쟁13 배경13 그리고13 그13 전개상황에13 대한13

연구가13 활발하게13 진행되게13 된다 무엇보다도13 이들13 서구13 학자들은13 유고슬라비

아13 지역에서13 발생하고13 있는13 여러13 분쟁과13 갈등의13 주요13 요인13 중13 하나로13 극단적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한13 형태인13 lsquo세르비아니즘rsquo을13 지목하여13 왔다 반면에13 세

르비아의13 현지13 학자들은13 서구의13 이러한13 주장에13 대해13 일련의13 다른13 의견을13 제

시하고13 있는13 데 이들의13 주장에13 따르자면 세르비아13 민족에게13 있어13 세르비아

니즘은 어느13 국가나13 민족에게나13 그러하듯13 국가가13 위기에13 처했을13 때마다13 민

족의13 생존권을13 지켜주기13 위한13 주요13 이념으로써13 발전된13 것이라는13 점이다2 본13

장에선13 세르비아니즘에13 대한13 양측13 간의13 주장과13 이해를13 전제로 특히13 민족13 정

체성과13 민족국가13 유지라는13 차원의13 세르비아적13 시각을13 기초로13 한13 세르비아니

즘의13 형성배경과13 그13 이론적13 특징들을13 분석해13 보고자13 한다

세르비아니즘은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13 당시13 최대13 전성기였던13 스테판13 두샨13

왕(Kralj i Car Stefan Uros 4 Dusan 1331- 시절의13 영토 문화적13 확1355)

대에13 기초한13 역사적13 당위성을13 그13 기원으로13 하고13 있다 이러한13 기원을13 기초로13

2 특히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은13 다양한13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13 그리고13 역사적13 배경을13 지

닌13 민족들이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서로13 한13 국가를13 구성했던13 지역으로 이에13 따라13 독1

특한13 문화적 사회적13 특징을13 보여주고13 있다 따라서13 이러한13 특징과13 배경을13 이해하지13

못하면13 세르비아니즘을13 비롯해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내13 갈등과13 분쟁의13 주요13 요인들을13

결코13 이해하기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29

세르비아니즘은13 나폴레옹13 혁명전쟁의13 여파로13 세기13 중엽13 이후13 발칸유럽에13 19

유입된13 민족주의가13 세르비아13 민족들13 사이에13 하나의13 이데올로기로13 정착되고13

이와13 함께13 세르비아13 근대13 민족국가가13 수립되면서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13 표출의13

한13 형태로써13 발전되기13 시작했다김철민( 1999 26)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은13 몬테네그로와13 인접한13 현재의13 세르비아13 남부13 산악지

대를13 중심으로13 형성된13 lsquo라쉬카(Ras 공국ka) rsquo을13 계승하여13 발전하게13 된다 라쉬

카13 공국의13 대족장 이었던13 스테판13 네마냐(Veliki župan) (Stefan Nemanja

는13 비잔틴의13 지원을13 받아13 년13 몬테네그로13 아드리아13 해안지1166~1196) 1186

대를13 근거지로13 하고13 있던13 두클리야 후에13 제타 공국으로13 불림(Duklja (Zeta) )

공국을13 복속하고13 국가와13 정교회간의13 강력한13 유대관계를13 이끌어냄으로써13 세

르비아13 중세왕조의13 기틀을13 마련하는데13 성공하였다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로13 1

몬테네그로13 지역이13 세르비아가13 주도하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의13 일원으로13

편입된13 이후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은13 라쉬카13 공국이13 제타13 공국을13 복속한13 이

후13 형성된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간의13 정치 문화적13 월13 관계 그리고13 발칸

유럽13 정착13 초기13 세르비아인과13 몬테네그로인13 간의13 혈통과13 정체성의13 접한13 관

련성을13 밝혀내고자13 노력하여13 왔다 세르비아의13 이반13 보쥐치 와13 (Ivan Božić)

시마13 치르코비치 등은13 비잔틴13 제국의13 황제인13 콘스탄틴13 세(Sima Ćirković) 7

(Constantine VII 913- 의13 기록을13 근거로 크로아티아13 아드리아해13 연안959)

과13 두브로브니크 그리고13 특히13 몬테네그로의13 코토르 만(Dubrovnik) (Kotor)

즉13 과거13 제타13 지역에13 정착해13 있던13 자훔랸 트라블리얀(Zahumljan) (Travuljan)

코나블랸 부족13 등이13 세르비아13 부족의13 일파였음을13 주장하고13 있다(Konavljan)

(Ćirkovic and Bozic 1977 108-112 Bozic Ćirkovic Ekmecic and

Dedijer 1973 22-23)

세르비아는13 네마냐의13 아들인13 스테판13 네마니치(Stefan Nemanjic 1196~

시대에13 들어와13 독립왕국을13 건설하였고 이어13 네마니치의13 동생인13 1228) (1217)

성13 사바 의13 노력으로13 년13 세르비아13 독립13 정교회를13 구축하게13 된(Sv Sava) 1219

다 세르비아13 독립13 정교회의13 초대교주가13 된13 성13 사바가13 현 코소보13 지역의13 ( ) 現

쥐짜 에13 독립교구를13 세운13 이후13 코소보는13 세르비아인에게13 유대인들에게13 (Žica)

예루살렘이13 지니는13 의미와13 맞먹는13 성스러운13 종교적13 의미를13 지니게13 되었다

130 김철민

영토적인13 면에서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은13 세르비아13 역사상13 가장13 위대한13 왕으

로13 칭송받는13 스테판13 두샨왕13 시기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광활한13 영토에13 기초

하고13 있다 당시13 서로마와13 비잔틴제국 소아시아의13 중간13 교역로에13 있던13 세르

비아는13 이웃13 국가들과의13 활발한13 중개무역을13 통한13 부의13 축적과13 안정된13 정치력13

그리고13 강력한13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왕국의13 영토를13 현재의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

에서부터13 마케도니아 그리스13 남부지역으로까지13 넓힐13 수13 있었다 하지만13

년13 세의13 나이로13 두샨이13 사망한13 이후13 세르비아13 왕국은13 왕권13 다툼으로13 1355 46

인한13 내부13 분열과13 오스만13 터키의13 침입으로13 쇠락하게13 된다 특히13 년13 월13 1389 6

현13 코소보13 언덕에서13 무라드13 세가13 이끄는13 대규모13 오스만13 터키군에13 의해13 세르1

비아의13 라자르(Lazar Hrebeljanović 1371~ 왕자가13 이끄는13 세르비아13 1389)

연합군이13 패배하고13 난13 후13 세르비아13 중세13 왕국은13 몰락의13 길을13 가게13 되었다3

이후13 년까지13 지속된13 약13 여13 년간의13 오스만13 터키13 지배13 하에서도13 세1878 500

르비아인들은13 세르비아13 정교를13 중심으로13 민족13 정체성과13 민족의식을13 계속13 유

지할13 수13 있었다 근대13 이후13 오스만13 터키의13 쇠락13 속에13 무슬림13 지주들과13 관료

들의13 폭정에13 저항하기13 위해13 시작된13 세르비아의13 제 차13 봉기1 2 (Srpski

는13 점차13 이13 지역에13 보급된13 민족주의ustanak 1804~1813 1815~1830)

에13 의해13 영향을13 받았고 이에13 따라13 처음13 사회적13 봉기로13 시작된13 (Nationalism)

반 터키13 저항13 운동은13 점차13 독립된13 민족( )反 -국가(Nation- 건설을13 위한13 State)

민족주의13 운동으로13 확대13 발전되게13 되었다 이후13 세르비아는13 여러13 정치적13 어

려움과13 외세의13 간섭을13 이겨내고 마침내13 년13 월13 산13 스테파노 1878 3 (San

조약과13 동년13 월13 베를린 조약에13 의해13 근대13 독립국가로13 성장Sefano) 6 (Berlin)

하게13 된다4

3 이후13 코소보13 전투에13 관련된13 여러13 전설들은13 훗날13 세르비아13 민중들에게13 민담과13 구전문

학을13 통해13 계속해서13 전해13 내려옴으로써13 오스만13 터키등13 외세에13 대한13 세르비아13 민족의13

저항정신을13 고취시켰다 이에13 대해13 스타노예13 스타노예비치 (Stanojevic 1996

는13 이후13 코소보는13 세르비아13 역사에서13 제 차13 코소보전투와13 함께13 웅장했192-193) ldquo 1 2

던13 세르비아13 중세왕조의13 몰락과13 이민족의13 세르비아13 지배가13 시작되는13 치욕의13 역사로13

기록되었고 훗날13 세르비아13 민족의식의13 출발점으로13 인식되게13 된다 라고13 말하고13 있다 rdquo

4 당시13 세르비아는13 이들13 조약들로13 인해13 비록13 독립은13 인정받았으나 세르비아니즘의13 주

요13 목표였던13 보스니아13 지역과13 몬테네그로를13 통한13 아드리아해로의13 해상통로13 확보가13

오스트리아의13 방해로13 실패하는13 아픔을13 겪어야13 했다 그13 결과13 양13 국은13 세기를13 전후 20

해서13 적대관계를13 형성하였고 이러한13 감정싸움은13 마침내13 제 차13 세계대전으로13 이어지 1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1

세르비아니즘의13 이론적13 기초와13 그13 실천방향은13 년13 일리야13 가라샤닌1844

에13 의해13 처음으로13 제창되었다 그는13 중세13 세르비아13 두샨왕13 (Ilija Garašanin)

시대의13 영토적13 당위성을13 기초로13 한13 lsquo대 세르비아( ) (Velika Srbija)大 rsquo 국가13 건

설을13 세르비아13 근대국가의13 모델로13 설정하였고 이를13 위해13 이웃한13 몬테네그로

를13 비롯 당시13 합스부르크13 제국 년13 이후13 (1866 lsquo오스트리아-헝가리13 제국rsquo으로13 개칭의13 지배13 하에13 있던13 보이보디나 크로아티아 그리) (Vojvodina) (Croatia)

고13 보스니아 와13 헤르체고비나 지역을13 통합할13 것을13 주장(Bosnia) (Herzegovina)

하였다 또한13 그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을13 위해13 영토13 확대13 대상지역에13 거주

하는13 세르비아인들13 또한13 적극적으로13 동참해13 줄13 것을13 호소하였다(Petrovich

1976 231-232)5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세기13 당시13 민족주의에13 심취되어13 있 19

던13 세르비아인들13 사이에13 커다란13 반향을13 불러13 일으켰고 이들13 사이에13 세르비

아의13 지도력13 하에13 남슬라브족의13 통일이13 가능하리라는13 생각들이13 점차13 확대되

는13 계기를13 마련해13 주게13 된다 특히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

은13 페테르13 카라조르제비치 시기에13 들어(Peter I Karađorđević 1903~1918)

와13 더욱13 더13 구체화13 되었다 페테르는13 서구적이고13 근대적인13 시각을13 바탕으로13

자신의13 임기동안13 세르비아를13 발칸유럽에서13 가장13 강력한13 근대왕국으로13 발전

시켰고 시민13 자유와13 민주화13 그리고13 이를13 기초로13 한13 최초의13 입헌정부를13 수립

함으로써13 lsquo세르비아의13 르네상스기rsquo를13 이루게13 된다 또한13 오스트리아의13 보스

니아13 병합 등13 주변13 외세들의13 견제13 속에서도13 제 차13 발칸전쟁(1908) 1 2 (1912

을13 통해13 대규모13 영토13 확장을13 이루어13 냄으로써13 세르비아니즘13 구현에13 기1913)

여했다는13 평가를13 받게13 되었다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세르비아는13 마침내13 몬테네그로를13 완전13 병합하는13 데13 1

성공하였고 자신이13 주도하는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lsquo세르비아-크

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 년13 이(Kraljevina Srba Hrvata i Slovenaca 1929

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Kraljevina Jugoslavija)rsquo으로13 개칭됨)rsquo을13 또한13 건설함으로써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을13 완성하게13 된다 하지만13 세르비아는13 새로운13 통

합13 왕국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이라13 평가한13 반면 왕국내13 주요13 구성13 민족인13

게13 된다 김철민( 1999 29 Dimic 1998 25)

5 가라샤닌이13 주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주13 핵심13 내용은13 참조Vojvodić(2000 243-254)

132 김철민

크로아티아인과13 슬로베니아인은13 남슬라브족의13 평등13 국가라는13 점을 그리고13

세르비아의13 압력과13 회유에13 의해13 강제13 복속당한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엔13 또13 다

른13 지배자를13 맞이했다는13 역사적13 평가를13 낳게13 하였다

역사13 속에13 비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III

중세13 두클리야 제타 공국과13 세르비아1 ( )

몬테네그로인이13 발칸유럽에13 들어13 온13 시기는13 세기와13 세기경으로13 추정되5 6

며 이들은13 일단의13 남슬라브족들과13 함께13 다뉴브13 강을13 건너13 당시13 비잔틴13 제국13

지배13 하에13 있었던13 현13 지역에13 정착하게13 된다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의13 주장대

로13 현재까지의13 기록에13 따르자면13 발칸반도13 이주13 초기 몬테네그로인은13 다른13

남슬라브족13 특히13 세르비아인과13 거의13 구별되는13 않은13 채13 같은13 민족의13 일파로13

인식되고13 있음을13 확인할13 수13 있다 아바르 족과13 함께13 연합해13 비잔틴13 제 (Avar)

국이13 차지하고13 있던13 발칸유럽13 지역을13 장악하는13 데13 성공한13 남슬라브족은13 산악

지대가13 많은13 발칸유럽의13 지리적13 특성상13 점차13 느슨한13 정치적 사회적13 구조를13

지닌13 부족13 공동체로13 나눠지게13 되었다6 몬테네그로의13 중세13 역사13 또한13 이러한13

지리적13 험준함과13 남슬라브족의13 분열에13 따라13 시작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함께13 발칸반도로13 이주해13 들어13 온13 몬테네그로인은13 세7

6 산악지대가13 많은13 발칸유럽으로13 이주하였던13 남슬라브족은13 광활한13 평야13 지역으로13 이주

하였던13 여타13 다른13 슬라브족들과13 달리13 세월의13 흐름과13 함께13 각13 부족13 공동체들13 간에13 느

슨한13 정치적 사회적13 구조만을13 지니게13 된다 그13 이유는13 발칸13 지역의13 지리적13 험준함에13

따른13 것으로 이로13 인해13 남슬라브족은13 작은13 집단13 구성체로13 독자적인13 부족을13 형성하여

갔고 다음13 세대가13 등장하기13 전에13 각13 부족13 공동체들13 간의13 교류와13 문화13 전달이13 단절되

었으며 점차적으로13 관습 언어 정치13 조직13 간의13 차이점들이13 커져가게13 된다 이러한13

단절과13 차이점13 확대는13 곧13 이어13 남슬라브13 민족들13 간의13 정치적13 분열과13 군사력의13 약화로13

이어지게13 되었다 이에13 따라13 세기13 말에13 접어들게13 되면서13 남슬라브족의13 분화가13 확대 9

되기13 시작하였고 이러한13 분화에13 따라13 남슬라브족들은13 시기를13 거치면서13 크게13 불가리

아족 세르비아족 크로아티아족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족이라는13 개의13 남13 슬라브족13 공동 4

체로13 나누어지게13 된다 김철민( 2003 317-3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3

기13 이후에13 들어와13 코토르 부드바 바르 울찐(Kotor) (Budva) (Bar) (Ulcinj)

등13 현재의13 몬테네그로13 아드리아13 연안을13 중심으로13 자신들의13 부족13 국가들을13 수

립하게13 된다 몬테네그인은13 정착13 초기13 다른13 남슬라브족처럼13 고대13 원시13 슬라

브족의13 부족13 종교를13 지니고13 있었으나 점차13 시간이13 흐르면서13 이13 지역13 원주민

인13 로마인의13 사회와13 문화에13 점차13 동화되어13 갔고 그13 결과13 세기13 이후로13 로 12

마인들의13 신앙인13 기독교를13 자신의13 종교로13 수용하게13 되었다7

현13 세르비아로부터13 분리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분리13 독립파는13 몬테네그로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지배13 하로13 들어가기13 이전까지13 약13 년간13 고유한13 정체1918 1000

성을13 지니고13 발전하였으며 그13 역사는13 세기에13 성립된13 9 lsquo두클리야13 공국rsquo에서부터13 비롯되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비록13 세기13 무렵13 당시13 비잔틴13 제국의13 영 10

향력13 하에13 있었지만 두클리야13 공국의13 영토는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지방의13 대부

분을13 비롯해 남으로는13 알바니아13 상당13 지역인13 남부13 아드리아13 해안까지13 그리

고13 서쪽으로는13 현재의13 헤르체고비나13 지방을13 포함하고13 있었다 두클리야13 공국

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시조인13 보이슬라브 가13 년13 몬테네그로13 해(Vojislav) 1042

안가13 바르에서13 치룬13 비잔틴13 제국과의13 싸움에서13 승리를13 거둔13 이후13 본격적으로13

독립13 국가로서의13 기틀을13 잡아가게13 된다 이후13 두클리야의13 번영은13 보이슬라브

의13 아들인13 미하일로 와13 그의13 아들13 보딘(Mihailo 1046~1081) (Bodin 1081~

치하에서13 절정에13 이르렀다 미하일로는13 왕권을13 넘겨받은13 이후13 비잔틴1101)

과의13 평화13 관계를13 유지함과13 동시에 안정된13 국력과13 발달된13 경제력을13 바탕으

로13 년13 로마교황13 그레고리13 세 로부터13 독립13 왕국을13 인정받1077 7 (Gregory VII)

게13 되었다 미하일로의13 뒤를13 이은13 보딘은13 년13 로마13 교황13 클리멘트13 세 1089 3

로부터13 가톨릭13 대주교13 관직을13 획득하는13 등13 종교를13 통한13 국가13 (Clement III)

지배권13 강화를13 추진함으로써13 왕국의13 안정과13 황금기를13 이루게13 된다 하지만13

로마13 교회와의13 접한13 관계13 수립은13 곧13 이어13 비잔틴13 제국의13 강력한13 견제를13 불

러왔고 보딘13 사후13 일어난13 권력13 투쟁으로13 국력의13 약화가13 발생하게13 된다 그13

7 이때13 당시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을13 장악하고13 있던13 로마13 교회 후에13 가(

톨릭으로13 발전 의13 영향력13 하에13 놓여13 있었다 비록13 비잔틴13 제국의13 콘스탄티노플13 교회)

후에13 정교 로13 발전 와13 인근13 마케도니아와13 불가리아13 지역에서13 비롯된13 보고 교가13 한( lsquo rsquo )

때13 영향력을13 발휘하기도13 했지만 기록에13 따르자면13 이후로13 상당13 기간13 동안13 몬테네그로

인은13 가톨릭13 신앙에13 매우13 충실하였다고13 볼13 수13 있다 httpwwwmontenetorghistory

134 김철민

결과13 년13 비잔틴13 제국의13 지원을13 받은13 라쉬카13 공국의13 스테판13 네마냐에13 의1186

해13 정복당함으로써 세르비아의13 지배를13 받게13 되었다 이후13 두클리야13 공국은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13 하에서13 이13 지역13 제타강의13 이름을13 따13 lsquo제타13 공국rsquo으로도13 불리게13 된다

스테판13 네마냐는13 제타13 공국을13 지배한13 이후13 제타13 공국의13 모든13 도시들을13 파

괴하였고 보고 교13 추방과13 더불어13 가톨릭을13 믿고13 있던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13 정교로의13 강제13 개종13 그리고13 세르비아인으로의13 동화13 작업을13 추진하

게13 된다8 라쉬카13 공국은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아들인13 스테판13 네마니치13 시기에13

들어와13 중세13 세르비아13 독립13 왕국으로13 발전하였고 세르비아13 통치13 하에서13 몬

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지역을13 활용 활발한13 무역거래를13 통해13 상업적

경제적13 발전을13 이룩하게13 된다 하지만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에13 대해13 몬테네그

로13 분리13 독립파는13 당시부터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로부터13 독립하기13 위

한13 여러13 저항13 운동을13 추진하였고 그13 결과13 lsquo세르비아와13 그리스의13 왕이자13 황제rsquo로13 불렸던13 세르비아의13 두샨13 왕이13 년13 사망한13 직후 독립을13 얻을13 수13 있1355

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은13 두샨왕13 사후13 비록13 왕

권13 다툼과13 오스만13 터키의13 유럽13 원정으로13 다소13 지배권이13 약화되었지만 이13 시

기13 동안13 제타13 공국은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에서13 결코13 벗어나지13 못했다고13 주장하

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3)

제 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은13 년13 발쉬치 시조인13 발샤13 세2 1356 (Balšić 1

에서13 유래됨 왕조에서부터13 비롯되게13 된다 세르비아의13 정치적13 혼란(Balša I) )

을13 틈타13 왕국을13 재건하였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점차13 세력을13 확대해13 두샨왕13 당시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수도였던13 스코쁠예 오늘날13 마케도니아13 수도(Skoplje )

그리고13 뻬치 와13 쁘리즈렌 등13 코소보를13 비롯해13 과거13 라쉬카13 공(Peć) (Prizren)

국의13 지배13 지역들을13 하나씩13 점령하여13 갔으며 서쪽으로는13 두브로브니크

8 세기13 몬테네그로의13 가장13 유명한13 역사가13 중13 한명인13 빠블레13 로빈스키19 (Pavel

는13 당시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몬테네그로인13 정체성13 말살13 작업을13 비판하고13 있는13 Rovinski)

데 그에13 따르자면13 네마냐가13 당시13 두클리야의13 모든13 종교13 서적 역사서 지리서 문학

서13 등13 종류의13 구분13 없이13 불태워13 버렸다고13 비난하고13 있다 httpwwwmontenetorg

두클리야13 복속13 이후13 네마냐의13 여러13 행적에13 관해선13 history Božić Ćirković

참조Ekmečić and Dedijer(1973 51)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5

을13 포함13 헤르체고비나13 지역까지13 그13 세력을13 확장하여13 갔다 이13 (Dubrovnik)

당시13 발쉬치13 가문은13 중세13 세르비아의13 네먀니치13 왕조와13 여러13 경로에13 걸쳐13 가

족13 관계를13 형성하고13 있었는데 세르비아13 주장에13 따르자면13 몬테네그로는13 이

러한13 혼인13 관계를13 통한13 정통성13 인정에13 주력하였다고13 언급하고13 있다 실제13 기

록에13 따르더라도13 당시13 발쉬치13 왕조는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전통을13 계승하겠

다고13 나선13 보스니아13 왕국과13 여러13 차례13 전쟁을13 치러야13 했으며 년에는13 현13 1377

세르비아의13 레쉐보 에서13 세르비아의13 왕으로13 등극한13 보스니아의13 (Mileševo)

트브르트코13 세 의13 왕위13 계승을13 부정하기도13 하였다I (Tvrtko I) 9 한때13 왕국의13

발전을13 이루었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년13 코소보13 전투에서13 세르비아를13 도와13 1389

오스만13 터키와13 벌였던13 전투에서13 패배하여13 커다란13 위기를13 초래하게13 된다 곧13

이어13 년13 발샤13 세 가13 추진하였던13 아드리아해13 상권13 획득을13 둘1419 3 (Balša III)

러싼13 베니스와의13 전쟁에서13 패하면서13 제타13 공국의13 발쉬치13 왕조는13 몰락의13 길을13

가게13 되었다

한13 동안13 외세의13 침입과13 권력내분에13 시달렸던13 제타13 공국은13 중세13 몬테네그

로13 왕국의13 제 대13 왕조인13 쯔르노예비치 왕조의13 출현과13 더불어13 안3 (Crnojević)

정을13 되찾게13 된다 쯔르노예비치13 왕조는13 해안지대를13 중심으로13 발전을13 이룬13

다른13 왕조들과는13 달리13 몬테네그로13 북부13 산악지대인13 로브첸 지역에(Lovčen)

서부터13 시작되었다 하지만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마지막13 왕조였던13 쯔르노예비

치13 왕조는13 그리13 오랜13 기간13 유지되지13 못하였다 우선13 시조인13 스테판13 쯔르노예

비치 와13 그의13 아들13 이반13 쯔르노예비치(Stefan Crnojević 1427~1465) (Ivan

Crnojević 1465- 그리고13 오스만13 터키의13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다13 전사1490)

9 발쉬치13 왕조는13 비록13 과거13 두클리야13 공국의13 뒤를13 이은13 제타13 공국의13 지배자였지만 또

한13 동시에13 자신들을13 과거13 라쉬카13 공국의13 영주로 세르비아13 네마니치가의13 먼13 인척으로13

생각하고13 있었다 따라서13 문자에13 있어서도13 자신들이13 주로13 쓰는13 라틴문자와13 함께13 세르

비아에서의13 키릴문자를13 혼용해서13 사용하였고 종교에13 있어서도13 비록13 가톨릭을13 국가적13

종교로13 인정하고13 있었지만 세르비아가13 믿고13 있는13 정교에13 대해서도13 여러13 관심과13 주도

적13 역할을13 수행하고13 있었다 이러한13 예는13 발쉬치13 왕조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라쟈르13 1375

왕자와13 함께13 세르비아13 정교회13 총대주교를13 선출하기13 위해13 소집한13 교회13 성직자단13 회의

를13 주도한13 데서도13 확인될13 수13 있다 이에13 대해13 세르비아니즘이13 확산되고13 있던13 근대

세르비아의13 민족주의13 학자인13 쥬라13 다니취치 는13 위의13 경우를13 해(Daničić 1876 11-13)

석하는13 데13 있어 제타13 공국의13 세르비아에13 대한13 의존과13 종속성이13 높았다고13 강조하고13

있다

136 김철민

한13 이반의13 아들13 쥬라즈13 쯔르노예비치 를13 마(Djuradj Crnojevic 1490~1496)

지막으로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역사는13 끝이13 나게13 된다

하지만13 비록13 짧은13 기간의13 통치였지만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몬테네그로13 역

사에13 남긴13 영향은13 매우13 컸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시작

과13 함께13 제타13 공국은13 오늘날13 명칭인13 쯔르나13 고라 몬테네그로(Crna Gora

란13 지명으로13 불리게13 되었다 두13 번째로는13 이13 시기13 주변의13 남(Montenegro))

슬라브족13 국가들이13 모두13 오스만13 터키의13 지배13 하로13 넘어갔음에도13 불구하고

쯔르노예비치는13 년13 수도를13 스카다르 호수의13 쟈블략 에1482 (Skadar) (Zabljak)

서 보다13 수비가13 용이한13 험준한13 지역인13 로브첸13 산악지대로브첸스키13 돌라쯔 (

오늘날13 쩨티녜 의13 전신로13 옮겨13 오스만13 터키의13 (Lovcenski Dolac (Cetinje) )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였다는13 점이다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은13 훗날13 외세의13 침

략과13 지배가13 있을13 때마다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에13 저항13 정신과13 독립13 추진에13

대한13 원동력을13 제공하였으며 현13 분리13 독립파13 또한13 이러한13 역사를13 상기시키

며 세르비아로부터의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다 그리고13 세13 번째로13 발칸유럽13 국

가들13 중에선13 최초로13 년13 베네치아에서13 인쇄13 도구와13 인쇄기를13 도입하고1493

납으로13 된13 글자체와13 필체13 장식을13 위한13 주조물을13 만들어13 냄으로써 이후13 약13

여13 년간13 세르비아와13 보스니아에서13 키릴13 문자로13 인쇄된13 서적들의13 출판에13 100

상당한13 영향을13 미쳤다는13 자부심을13 안겨주었다

비록13 일부13 반론이13 있기는13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가들의13 주장에13 따르자면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재건한13 중세13 왕국은13 당시13 오스만13 터키에13 의해13 사라져13

버린13 세르비아13 네마니치13 왕조의13 국가13 전통과13 문화유산을13 그대로13 계승하고자13

노력했던13 것으로13 보인다 그러한13 실례는13 당시13 관직명과13 교구13 운영에13 있어서13

과거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관직명들이13 그대로13 채택하고 세르비아13 제국13 시절을13

본13 따13 lsquo황제와13 총대주교구의13 법원rsquo을13 설치했음을 그리고13 모든13 법률13 조항에13

있어13 과거13 두샨왕13 시절13 제작된13 lsquo두샨13 법전rsquo의13 조항들을13 그대로13 적용시켰다는13 점을13 들13 수13 있다 이를13 기초로13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13 가운데13 상당수는13 년13 1496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붕괴와13 중세13 몬테네그로13 왕국의13 종말은13 세르비아13 민족

이13 이룬13 중세13 국가의13 마지막13 형태가13 사라졌음을13 의미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5)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7

근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과13 세르비아니즘2

발칸유럽의13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마찬가지로13 몬테네그로인13 또한13 오스만13 터

키지배13 하에서13 터키의13 계획적이고13 철저한13 약탈13 경제13 정책으로13 인해13 사회 경

제적13 어려움이13 가중되게13 된다 과거13 아드리아13 해안13 상권을13 이용해13 이룩한13 왕

성한13 상업과13 무역13 활동13 그리고13 이를13 통한13 부의13 축적의13 가능하였던13 몬테네그

로인은13 이들13 분야를13 경시하고13 농업 임업 공공13 건설13 사업에13 치중하였던13 오스

만13 터키의13 정책에13 따라13 일련의13 암흑기를13 맞이하게13 되었다 또한13 오스만13 터키

의13 국력이13 쇠락해진13 세기13 말13 이후로13 세금13 부담이13 지나치게13 커지면서13 몬테17

네그로인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의13 충돌이13 빈번하게13 발생하였고 이에13 따라13 몬테

네그로인은13 상황이13 허락하는13 한13 베네치아13 등13 서구13 국가들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

의13 충돌시13 서구13 국가들을13 지원해13 아드리아의13 또13 다른13 주요13 지역인13 lsquo라구사공국오늘날13 두브로브니크 일대(Ragusa) ( (Dubrovnik) )rsquo의13 경우처럼13 이들로

부터13 자치권을13 보장받으려13 했다

이러한13 노력은13 페테르13 세1 (Peter I Petrović Njegoš 1782- 와13 페테르13 1830)

세2 (Peter II Petrović Njegoš 1830- 에13 의해13 그13 결실을13 이루게13 된다1851)

페테르13 세는13 당시13 여러13 외세의13 영향력13 하에13 흩어져13 있던13 몬테네그로13 부족들1

을13 한13 데로13 통합하고자13 노력하였고 국가13 수립과13 통치에13 필요한13 근대식13 법률

체계를13 정비하고 사법 행정의13 규율을13 정한13 사법13 행정법 과13 과거의13 관 (1798)

습법에서13 벗어나13 법률에13 근거해13 법을13 집행할13 수13 있도록13 만든13 법률집(1803)

을13 새로이13 구축하여13 놓았다 페테르13 세는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세르비아13 중 1

심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구상하였고 따라서13 강력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

현을13 위해13 제 차13 세르비아13 봉기1 (Prvi srpski ustanak 1804- 를13 통해13 세1813)

르비아13 자치13 국가를13 건설하려던13 카라조르제13 뻬트로비치(Karađorđe Petrović)

의13 봉기군과13 유기적13 연결13 관계를13 구축하게13 된다 이를13 위해13 페테르13 세는13 러 1

시아의13 지원을13 기대하며13 당시13 프랑스군이13 점령하고13 있던13 코토르만(Boka

과13 두브로브니크를13 탈환한13 후13 몬테네그로 헤르체고비나 코토르만Kotorska)

달마티아 지역13 등을13 중심으로13 한13 (Dalmacija) lsquo슬라브13 세르비아13 왕국rsquo을13 건설

138 김철민

하겠다는13 그의13 의지를13 표방하였으나 나폴레옹의13 러시아13 침공과13 함께13 그의13

바람은13 수포로13 돌아가게13 된다

이러한13 페테르13 세의13 남슬라브족13 이상에13 대해13 미오미르13 다쉬치1 (Miomir

는13 년13 이룬13 남슬라브족의13 통합13 정신이13 바로13 몬테네그로의13 페테르13 Dašić) 1918

세로부터13 출발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그는13 1 ldquo페테르13 세가13 세르비아인1

과13 크로아티아인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인 몬테네그로인의13 조화와13 형제애 단합

을13 강조하였던13 애국적인13 시인이자13 훌륭한13 정치가였다rdquo라고13 언급하면서 이러

한13 페테르13 세의13 정신이13 이후13 약하게나마13 니콜라13 시기까지13 이어지게13 되어1

년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국가가13 수립될13 수13 있었1918

다고13 말하고13 있다 무엇보다도13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그13 사(Dašić 1999 487)

실여부를13 떠나13 년13 수립된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그리고13 이13 왕국으로1918

의13 몬테네그로13 편입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이라는13 차원에서13 인식하고13 있다

는13 점에서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는13 독립13 세력들로부터13 일련의13

비판을13 받고13 있는13 상황이다

자신들의13 독립13 근대13 왕국을13 건설하고자13 했던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바람은13 현

대13 몬테네그로13 국가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설립자이자13 유명한13 시인이기도13 했

던13 페테르13 세13 시기에13 들어와서부터라13 볼13 수13 있다 반면13 세르비아인들은13 이13 2

당시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에13 크게13 호응하고13 있었고 이러

한13 그의13 이상을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도13 확산시키고자13 여러13 노력을13 기울이고13

있던13 시점이었다 페테르13 세는13 오스만13 터키의13 견제와13 프랑스의13 간섭13 그리고13 2

계속되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13 속에서도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결속과13 단결을13

이끌어내 년13 마침내13 오스트리아등13 주변13 강대국들로부터13 독립국가로서 1842

의13 인정을13 받을13 수13 있게13 된다 이어13 그의13 왕권은13 그의13 (Petrovich 1976 232)

조카인13 다닐로(Danilo I Petrović 1852~ 에게13 계승되었으나 년13 1860) 1860

암살에13 의한13 사망으로13 인해13 왕위는13 니콜라 에(Nikola Petrović 1860~1916)

게13 승계되게13 된다

니콜라는13 년부터13 시작된13 수차례의13 오스만13 터키13 공격을13 잘13 막아내었1862

고 년13 월13 1878 3 lsquo산스테파노 조약(San Stefano) rsquo과13 동년13 월13 6 lsquo베를린(Berlin)

조약rsquo의13 결과13 비록13 국제적으로13 인정은13 받지13 못했지만 몬테네그로는13 독립13 국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9

가를13 위한13 토대를13 구축할13 수13 있게13 되었다 베를린13 조약의13 결과13 몬테네그로의13

면적은13 과거보다13 배13 더13 확장되었고 오랜13 숙원이던13 2 (4400 9475 ) rarr

바르나 울찐13 등13 해안지대를13 확보할13 수13 있게13 된다 이때13 이후13 수도인13 쩨티녜

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는13 경제 사회적13 발전을13 이루게13 되어 년에13 들어 1899

와서는13 개의13 공립학교와13 개의13 사립학교가13 설립13 되게13 되었다 또한13 러시75 26

아의13 지도13 아래13 근대식13 군대가13 창설되었고 오스트리아의13 원조13 아래13 쩨티녜

에서13 코토르까지13 최초의13 근대식13 개념의13 도로와13 철도가13 설립되게13 된다

니콜라13 하의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관계는13 같(Komatina 1999 131)

은13 남슬라브족으로서13 선린관계를13 유지하고13 있었다 하지만13 세르비아13 정국13 주

도권을13 둘러싼13 오브레노비치 왕조와13 페트로비치 왕조(Obrenović) (Petrović)

간의13 계속된13 유혈13 사태는13 곧13 바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불협화음을13 초

래하게13 하였다10 특히13 세르비아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13 및13 발칸13 유럽내13 남

슬라브족13 국가들을13 통합해13 나가겠다는13 취지13 아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를13 강

력히13 추진하던13 란13 오브레노비치 시기13 이(Milan Obrenović 1868~1889)

후로13 양국은13 다소13 불편한13 관계가13 수립되었고 년13 마침내13 몬테네그로는13 1910

니콜라왕을13 중심으로13 하는13 독립13 군주국가임을13 선포하게13 되었다(Komatina

1999 37-38)11

10 이러한13 불협화음의13 또13 다른13 배경에는13 니콜라13 왕이13 세르비아13 오브레노비치13 왕조의13 정

적인13 카라조르제비치13 가문의13 페테르13 카라조르제비치(Peter I Karađorđević 1903~

까지13 세르비아13 왕위를13 엮임 를13 자신의13 장녀13 조르카 와13 결혼시켰던13 데서도13 1918 ) (Zorka)

그13 요인을13 찾을13 수13 있다

11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13 움직임13 속에13 치러진13 당시13 취임식에서13 니콜라왕은13 몬테네그로13

민족의13 독자성과13 독립된13 민족13 정체성을13 그들의13 중세13 역사13 속에서13 찾을13 것을13 천명하였

다 우리는13 과거13 제타13 왕국의13 보이슬라브 미하일로13 그리고13 보딘의13 자손이다 시간은13 ldquo

단지13 이13 땅위에13 존재하였던13 것을13 파괴할13 수13 있었지만 이13 안에13 꿈틀대고13 있는13 자유에13

대한13 의지와13 충성스러운13 산악인들의13 뜨거운13 심장을13 파괴할13 수는13 없었다 우리는13 오랜13

역사의13 토대13 위에13 왕국13 건설의13 부활을13 시작하였고 오늘날13 이13 왕국은13 여기13 천상의13 햇

빛아래13 반짝이는13 우리의13 고대왕국에13 그13 뿌리를13 두고13 있다rdquo httpwwwmontenetorg

history

140 김철민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IV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주요13 배경과13 진행과정13 1

세기13 초13 몬테네그로는13 비록13 니콜라왕의13 독립13 왕국13 선포에도13 불구하고20

복잡한13 발칸유럽의13 정세와13 더불어13 매우13 혼돈의13 시기를13 맞이하고13 있었다 몬

테네그로는13 년과13 년에13 치른13 제 차13 발칸전쟁에서의13 승전에도13 불1912 1913 1 2

구하고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종결이후13 세르비아13 주도의13 최초13 남슬라브족13 1918 1

통합국가인13 lsquo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Kraljevina SHS)rsquo하로13 편입되는13 아픔을13 겪게13 된다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제 차13 세계대전이전까지13 세르 2

비아의13 직접적인13 지배13 하에13 놓이게13 되었지만 제 차13 세계대전에서13 티토를13 중 2

심으로13 한13 파르티잔13 세력이13 승리한13 이후 사회주의13 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하에

서13 개13 구성13 공화국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6 ( -헤르체고비나 세르비

아 몬테네그로13 그리고13 마케도니아13 공화국 중13 하나인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으 )

로13 새롭게13 등장할13 수13 있었다

년13 베를린13 장벽13 붕괴로13 상징되는13 사회주의13 체제의13 몰락이후13 유고슬라1989

비아13 연방의13 해체13 위기와13 더불어13 몬테네그로는13 매우13 불확실한13 위치에13 놓이게13

된다 특히13 년에13 있었던13 다당제13 선거가13 실시된13 이후13 사회주의13 유고슬라 1990

비아13 연방은13 해체의13 길로13 들어서고13 있었고 이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도13 자신의13

진로를13 결정해야만13 했다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의13 압력과13 불확실한13 국

제적13 상황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년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형성에13 1992

가담하게13 된다12 하지만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에13 가담한13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연방13 구성국이었던13 세르비아가13 중심이13 된13 유고내전슬로베니아13 내전과13 크로(

12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이13 해체되는13 과정13 속에서13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

아와13 함께13 새로운13 연방을13 구성해13 나갈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단행하게13 된다 전체13 선

거인단의13 가13 참여하였던13 이13 선거에서13 찬성13 반대13 라는13 압도적인13 표차로13 66 96 3

몬테네그로13 국민은13 세르비아와13 운명을13 같이13 할13 것을13 결정짓게13 된다(Komatina 1999

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1

아티아13 내전과13 보스니아13 내전13 그리고13 이후13 년13 월에13 일어난13 와) 1999 3 NATO

의13 코소보13 전쟁13 등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미국과13 서유럽13 국가들로부터13

경제적 정치적13 그리고13 외교적13 고립을13 강요받아야만13 했다 결과적으로13 서구

로부터의13 고립은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13 형성과13 그13 유지에13

대한13 의구심을13 증폭시켰고 이러한13 국내13 분위기13 속에서13 년13 월13 몬테네 1999 8

그로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선출된13 로13 쥬카노비치 대통(Milo Đukanović)

령과13 그13 수뇌부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세르비아니즘의13 희생자임을13 상기시키며

독립을13 위한13 실질적인13 논의에13 들어가게13 된다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당시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13 권력자였던13 슬로보단13

로쉐비치 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에13 반발하였던13 몬테네(Slobodan Milošević)

그로13 대통령13 로13 쥬카노비치를13 중심으로13 제기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쥬

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세르비아13 정부에게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rsquo이13 아닌13 lsquo몬테네그로-세르비아13 연합13 국가rsquo라는13 명칭으로13 변경할13 것과13 현행13 연방13 헌법을13 폐지할13 것 그리고13 연방13 정부13 협의13 체제를13 각13 공화국간13 각료간13 협의체제

로13 전환13 할13 것13 등13 실질적인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방13 정부구성을13 제안하였다 이

후13 몬테네그로의13 요구는13 세르비아와의13 느슨한13 연방형태13 유지를13 전제로13 한13 독

자군대13 편성권과13 독자적13 외교권13 그리고13 독자13 통화권13 발행13 등으로13 확대되게13

된다

년13 월에13 들어와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연방정부에13 본격적으로13 연방13 2000 7

분리13 구상을13 제안하였고 몬테네그로가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존재를13 더13 이

상13 인정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점과13 그해13 월에13 치러질13 연방13 선거에13 불참할13 것13 9

그리고13 몬테네그로의13 향후13 국가13 목표를13 와13 에13 가입하는13 것을13 주요13 EU NATO

골자로13 하겠다는13 등의13 성명서를13 발표하였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그늘로부터13

벗어나13 독립을13 이루려던13 몬테네그로의13 의도는13 년13 월13 세르비아에서13 반2000 10

로쉐비치13 민주화13 혁명이13 일어나 민주인사인13 보이슬라브13 코슈투니짜( ) 反연방13 대통령이13 등장하게13 되자13 난관에13 봉착하게13 된다(Vojslav Koštunica) 13

13 년13 월13 일13 치러진13 유고연방의13 대선과13 총선13 투표에13 대해 선거13 위원회가13 발표2000 9 24

한13 결과와는13 달리 세르비아13 민주야당 의13 코슈투니차 (DOS) (Kos 후보13 진영에선13 tunica)

자체13 집계13 결과13 결선13 투표13 없이13 차13 투표에서13 로쉐비치를13 이겼다고13 선언하게13 된다1

이어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민주화를13 요구하는13 시위대의13 물결이13 베오그라드에13 집결하

142 김철민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취임한13 코슈투니짜13 대통령은13 ldquo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는13 하나의13 운명13 공동체이며13 더욱13 더13 강력한13 통합이13 필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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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극해13 코소보13 사태와13 같은13 심각한13 위험을13 초래13 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점을13 경고하였다 동시에13 ldquo몬테네그로가13 연방13 내에13 계속13 존속하기를13 강력히13 희망한다rdquo는13 메시지와13 함께 ldquo국방 외교 통화13 등에13 대한13 권한만을13 연방정부에13 이양하고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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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13 연합13 국가를13 구성하는13 데13 양13 국이13 합의한13 직후 년13 월13 세르 200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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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13 대표적13 신문인13 보르바 참조- lsquo (Borba)rsquo httpwwwborbacoyu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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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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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으로13 국명이13 바뀐13 후13 몬테네그로13 최초13 대통령이13

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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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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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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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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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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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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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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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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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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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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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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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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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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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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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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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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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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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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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민 세르비아13 민족의13 기원과13 민족13 정체성에13 관한13 연구 동유럽발칸학 제 2003 「 」 985172 985173권13 호 한국동유럽발칸학회5 1 pp 31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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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텔레비전13 세르비아 국영13 방송국13 lsquo rsquo httpwwwrtscoyu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13 사이트13 UN httpwwwunmikonlineorg

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3: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27

세기13 말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에서13 발생한13 약13 년13 동안의13 계속된13 갈등과13 20 10

분쟁에도13 불구하고 발칸반도는13 아직도13 세르비아니즘의13 그늘과13 어두움13 속에

서13 벗어나지13 못하고13 있다 그13 대표적인13 사례가13 바로13 년13 이후로13 불거져13 1999

나오기13 시작한13 lsquo몬테네그로(MontenegroCrna Gora 독립문제) rsquo라13 말할13 수13 있다 년13 월13 유고슬라비아의13 구성13 공화국13 중13 하나로13 세르비아와13 같이13 1992 4

연방을13 구성하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과13 특히13 년에13 발생한13 코 1999

소보13 전쟁을13 겪은13 이후13 현재13 세르비아의13 그늘로부터13 벗어나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가려는13 움직임을13 활발히13 전개하고13 있다 물론13 이러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는13 년13 코소보13 전쟁이후로13 잠시13 수면에13 가라앉아13 있던13 1999 lsquo세르비아니즘rsquo의13 부활을13 예고하고13 있으며 발칸13 유럽내13 복잡한13 연결13 고리와13 함께13 민족간13 분쟁

의13 재현13 가능성을13 확대시키고13 있다

따라서13 본인은13 lsquo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rsquo라는13 본13 연구를13 통해 이13 지역13 연구가들의13 많은13 관심에도13 불구하고13 그13 동안13 국내에13 전혀13 소개

되지13 않았던13 lsquo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rsquo를13 세르비아니즘적13 이해와13 시각에서13 분석해보고자13 한다

본13 글의13 구성을13 보면 우선13 제 장에서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세르비 2

아인들과13 몬테네그로인들13 간의13 분쟁을13 이해하기13 위한13 기초적13 이론13 작업으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형성배경과13 그13 특징에13 대한13 연구가13 이루어지게13 될13 것이다

제 장과13 제 장에서는13 앞서13 연구된13 세르비아니즘에13 대한13 이론적13 논의를13 바탕3 4

으로13 몬테네그로13 정체성을13 둘러싼13 세르비아인과13 몬테네그로인들13 간의13 갈등

과13 그13 연관13 관계를13 정리하게13 될13 것이다 이중13 통시적13 분석13 방법에13 바탕을13 둔13

제 장에서는13 과거13 몬테네그로의13 역사를13 크게13 중세와13 근대13 독립13 왕국13 시기로13 3

나누어 몬테네그로13 정체성13 논쟁을13 확인해보고 각13 시기별로13 제기된13 몬테네

그로13 독립에13 대한13 의지와13 몬테네그로13 지역으로13 세르비아니즘을13 확산시켜가

려는13 세르비아인들의13 모습을13 살펴보게13 될13 것이다 제 장에서는13 몬테네그로13 4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에13 대해13 연구하게13 될13 것이다 특히13 본13 장에

서는13 년13 이후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추진해13 가는13 과정과13 그13 내용들을13 살1999

펴보면서 향후13 독립을13 추진해13 가는13 데13 있어13 반드시13 짚어봐야13 할13 여러13 요소

들을13 통해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의13 향후13 전망을13 예상해13 볼13 예정이다 마지막

128 김철민

으로13 제 장에서는13 본문에서의13 논의를13 바탕으로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에서의13 세5

르비아니즘의13 의미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다시13 한13 번13 고찰하고13 그13 의미

를13 살펴봄으로서13 결론을13 대신하고자13 한다

세르비아니즘의13 형성배경과13 이론적13 특징II

년대13 초부터13 말까지13 계속해서13 이어진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의13 내전과13 전1990

쟁13 그리고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13 대두는13 국제사회에13 이13 지역을13 주요13 국제분쟁13

지역13 중13 하나로13 인식하게13 했다 그13 결과13 서구의13 여러13 학자들을13 중심으로13 유

고슬라비아13 지역내13 민족갈등13 원인과13 분쟁13 배경13 그리고13 그13 전개상황에13 대한13

연구가13 활발하게13 진행되게13 된다 무엇보다도13 이들13 서구13 학자들은13 유고슬라비

아13 지역에서13 발생하고13 있는13 여러13 분쟁과13 갈등의13 주요13 요인13 중13 하나로13 극단적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한13 형태인13 lsquo세르비아니즘rsquo을13 지목하여13 왔다 반면에13 세

르비아의13 현지13 학자들은13 서구의13 이러한13 주장에13 대해13 일련의13 다른13 의견을13 제

시하고13 있는13 데 이들의13 주장에13 따르자면 세르비아13 민족에게13 있어13 세르비아

니즘은 어느13 국가나13 민족에게나13 그러하듯13 국가가13 위기에13 처했을13 때마다13 민

족의13 생존권을13 지켜주기13 위한13 주요13 이념으로써13 발전된13 것이라는13 점이다2 본13

장에선13 세르비아니즘에13 대한13 양측13 간의13 주장과13 이해를13 전제로 특히13 민족13 정

체성과13 민족국가13 유지라는13 차원의13 세르비아적13 시각을13 기초로13 한13 세르비아니

즘의13 형성배경과13 그13 이론적13 특징들을13 분석해13 보고자13 한다

세르비아니즘은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13 당시13 최대13 전성기였던13 스테판13 두샨13

왕(Kralj i Car Stefan Uros 4 Dusan 1331- 시절의13 영토 문화적13 확1355)

대에13 기초한13 역사적13 당위성을13 그13 기원으로13 하고13 있다 이러한13 기원을13 기초로13

2 특히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은13 다양한13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13 그리고13 역사적13 배경을13 지

닌13 민족들이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서로13 한13 국가를13 구성했던13 지역으로 이에13 따라13 독1

특한13 문화적 사회적13 특징을13 보여주고13 있다 따라서13 이러한13 특징과13 배경을13 이해하지13

못하면13 세르비아니즘을13 비롯해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내13 갈등과13 분쟁의13 주요13 요인들을13

결코13 이해하기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29

세르비아니즘은13 나폴레옹13 혁명전쟁의13 여파로13 세기13 중엽13 이후13 발칸유럽에13 19

유입된13 민족주의가13 세르비아13 민족들13 사이에13 하나의13 이데올로기로13 정착되고13

이와13 함께13 세르비아13 근대13 민족국가가13 수립되면서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13 표출의13

한13 형태로써13 발전되기13 시작했다김철민( 1999 26)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은13 몬테네그로와13 인접한13 현재의13 세르비아13 남부13 산악지

대를13 중심으로13 형성된13 lsquo라쉬카(Ras 공국ka) rsquo을13 계승하여13 발전하게13 된다 라쉬

카13 공국의13 대족장 이었던13 스테판13 네마냐(Veliki župan) (Stefan Nemanja

는13 비잔틴의13 지원을13 받아13 년13 몬테네그로13 아드리아13 해안지1166~1196) 1186

대를13 근거지로13 하고13 있던13 두클리야 후에13 제타 공국으로13 불림(Duklja (Zeta) )

공국을13 복속하고13 국가와13 정교회간의13 강력한13 유대관계를13 이끌어냄으로써13 세

르비아13 중세왕조의13 기틀을13 마련하는데13 성공하였다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로13 1

몬테네그로13 지역이13 세르비아가13 주도하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의13 일원으로13

편입된13 이후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은13 라쉬카13 공국이13 제타13 공국을13 복속한13 이

후13 형성된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간의13 정치 문화적13 월13 관계 그리고13 발칸

유럽13 정착13 초기13 세르비아인과13 몬테네그로인13 간의13 혈통과13 정체성의13 접한13 관

련성을13 밝혀내고자13 노력하여13 왔다 세르비아의13 이반13 보쥐치 와13 (Ivan Božić)

시마13 치르코비치 등은13 비잔틴13 제국의13 황제인13 콘스탄틴13 세(Sima Ćirković) 7

(Constantine VII 913- 의13 기록을13 근거로 크로아티아13 아드리아해13 연안959)

과13 두브로브니크 그리고13 특히13 몬테네그로의13 코토르 만(Dubrovnik) (Kotor)

즉13 과거13 제타13 지역에13 정착해13 있던13 자훔랸 트라블리얀(Zahumljan) (Travuljan)

코나블랸 부족13 등이13 세르비아13 부족의13 일파였음을13 주장하고13 있다(Konavljan)

(Ćirkovic and Bozic 1977 108-112 Bozic Ćirkovic Ekmecic and

Dedijer 1973 22-23)

세르비아는13 네마냐의13 아들인13 스테판13 네마니치(Stefan Nemanjic 1196~

시대에13 들어와13 독립왕국을13 건설하였고 이어13 네마니치의13 동생인13 1228) (1217)

성13 사바 의13 노력으로13 년13 세르비아13 독립13 정교회를13 구축하게13 된(Sv Sava) 1219

다 세르비아13 독립13 정교회의13 초대교주가13 된13 성13 사바가13 현 코소보13 지역의13 ( ) 現

쥐짜 에13 독립교구를13 세운13 이후13 코소보는13 세르비아인에게13 유대인들에게13 (Žica)

예루살렘이13 지니는13 의미와13 맞먹는13 성스러운13 종교적13 의미를13 지니게13 되었다

130 김철민

영토적인13 면에서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은13 세르비아13 역사상13 가장13 위대한13 왕으

로13 칭송받는13 스테판13 두샨왕13 시기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광활한13 영토에13 기초

하고13 있다 당시13 서로마와13 비잔틴제국 소아시아의13 중간13 교역로에13 있던13 세르

비아는13 이웃13 국가들과의13 활발한13 중개무역을13 통한13 부의13 축적과13 안정된13 정치력13

그리고13 강력한13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왕국의13 영토를13 현재의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

에서부터13 마케도니아 그리스13 남부지역으로까지13 넓힐13 수13 있었다 하지만13

년13 세의13 나이로13 두샨이13 사망한13 이후13 세르비아13 왕국은13 왕권13 다툼으로13 1355 46

인한13 내부13 분열과13 오스만13 터키의13 침입으로13 쇠락하게13 된다 특히13 년13 월13 1389 6

현13 코소보13 언덕에서13 무라드13 세가13 이끄는13 대규모13 오스만13 터키군에13 의해13 세르1

비아의13 라자르(Lazar Hrebeljanović 1371~ 왕자가13 이끄는13 세르비아13 1389)

연합군이13 패배하고13 난13 후13 세르비아13 중세13 왕국은13 몰락의13 길을13 가게13 되었다3

이후13 년까지13 지속된13 약13 여13 년간의13 오스만13 터키13 지배13 하에서도13 세1878 500

르비아인들은13 세르비아13 정교를13 중심으로13 민족13 정체성과13 민족의식을13 계속13 유

지할13 수13 있었다 근대13 이후13 오스만13 터키의13 쇠락13 속에13 무슬림13 지주들과13 관료

들의13 폭정에13 저항하기13 위해13 시작된13 세르비아의13 제 차13 봉기1 2 (Srpski

는13 점차13 이13 지역에13 보급된13 민족주의ustanak 1804~1813 1815~1830)

에13 의해13 영향을13 받았고 이에13 따라13 처음13 사회적13 봉기로13 시작된13 (Nationalism)

반 터키13 저항13 운동은13 점차13 독립된13 민족( )反 -국가(Nation- 건설을13 위한13 State)

민족주의13 운동으로13 확대13 발전되게13 되었다 이후13 세르비아는13 여러13 정치적13 어

려움과13 외세의13 간섭을13 이겨내고 마침내13 년13 월13 산13 스테파노 1878 3 (San

조약과13 동년13 월13 베를린 조약에13 의해13 근대13 독립국가로13 성장Sefano) 6 (Berlin)

하게13 된다4

3 이후13 코소보13 전투에13 관련된13 여러13 전설들은13 훗날13 세르비아13 민중들에게13 민담과13 구전문

학을13 통해13 계속해서13 전해13 내려옴으로써13 오스만13 터키등13 외세에13 대한13 세르비아13 민족의13

저항정신을13 고취시켰다 이에13 대해13 스타노예13 스타노예비치 (Stanojevic 1996

는13 이후13 코소보는13 세르비아13 역사에서13 제 차13 코소보전투와13 함께13 웅장했192-193) ldquo 1 2

던13 세르비아13 중세왕조의13 몰락과13 이민족의13 세르비아13 지배가13 시작되는13 치욕의13 역사로13

기록되었고 훗날13 세르비아13 민족의식의13 출발점으로13 인식되게13 된다 라고13 말하고13 있다 rdquo

4 당시13 세르비아는13 이들13 조약들로13 인해13 비록13 독립은13 인정받았으나 세르비아니즘의13 주

요13 목표였던13 보스니아13 지역과13 몬테네그로를13 통한13 아드리아해로의13 해상통로13 확보가13

오스트리아의13 방해로13 실패하는13 아픔을13 겪어야13 했다 그13 결과13 양13 국은13 세기를13 전후 20

해서13 적대관계를13 형성하였고 이러한13 감정싸움은13 마침내13 제 차13 세계대전으로13 이어지 1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1

세르비아니즘의13 이론적13 기초와13 그13 실천방향은13 년13 일리야13 가라샤닌1844

에13 의해13 처음으로13 제창되었다 그는13 중세13 세르비아13 두샨왕13 (Ilija Garašanin)

시대의13 영토적13 당위성을13 기초로13 한13 lsquo대 세르비아( ) (Velika Srbija)大 rsquo 국가13 건

설을13 세르비아13 근대국가의13 모델로13 설정하였고 이를13 위해13 이웃한13 몬테네그로

를13 비롯 당시13 합스부르크13 제국 년13 이후13 (1866 lsquo오스트리아-헝가리13 제국rsquo으로13 개칭의13 지배13 하에13 있던13 보이보디나 크로아티아 그리) (Vojvodina) (Croatia)

고13 보스니아 와13 헤르체고비나 지역을13 통합할13 것을13 주장(Bosnia) (Herzegovina)

하였다 또한13 그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을13 위해13 영토13 확대13 대상지역에13 거주

하는13 세르비아인들13 또한13 적극적으로13 동참해13 줄13 것을13 호소하였다(Petrovich

1976 231-232)5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세기13 당시13 민족주의에13 심취되어13 있 19

던13 세르비아인들13 사이에13 커다란13 반향을13 불러13 일으켰고 이들13 사이에13 세르비

아의13 지도력13 하에13 남슬라브족의13 통일이13 가능하리라는13 생각들이13 점차13 확대되

는13 계기를13 마련해13 주게13 된다 특히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

은13 페테르13 카라조르제비치 시기에13 들어(Peter I Karađorđević 1903~1918)

와13 더욱13 더13 구체화13 되었다 페테르는13 서구적이고13 근대적인13 시각을13 바탕으로13

자신의13 임기동안13 세르비아를13 발칸유럽에서13 가장13 강력한13 근대왕국으로13 발전

시켰고 시민13 자유와13 민주화13 그리고13 이를13 기초로13 한13 최초의13 입헌정부를13 수립

함으로써13 lsquo세르비아의13 르네상스기rsquo를13 이루게13 된다 또한13 오스트리아의13 보스

니아13 병합 등13 주변13 외세들의13 견제13 속에서도13 제 차13 발칸전쟁(1908) 1 2 (1912

을13 통해13 대규모13 영토13 확장을13 이루어13 냄으로써13 세르비아니즘13 구현에13 기1913)

여했다는13 평가를13 받게13 되었다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세르비아는13 마침내13 몬테네그로를13 완전13 병합하는13 데13 1

성공하였고 자신이13 주도하는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lsquo세르비아-크

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 년13 이(Kraljevina Srba Hrvata i Slovenaca 1929

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Kraljevina Jugoslavija)rsquo으로13 개칭됨)rsquo을13 또한13 건설함으로써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을13 완성하게13 된다 하지만13 세르비아는13 새로운13 통

합13 왕국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이라13 평가한13 반면 왕국내13 주요13 구성13 민족인13

게13 된다 김철민( 1999 29 Dimic 1998 25)

5 가라샤닌이13 주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주13 핵심13 내용은13 참조Vojvodić(2000 243-254)

132 김철민

크로아티아인과13 슬로베니아인은13 남슬라브족의13 평등13 국가라는13 점을 그리고13

세르비아의13 압력과13 회유에13 의해13 강제13 복속당한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엔13 또13 다

른13 지배자를13 맞이했다는13 역사적13 평가를13 낳게13 하였다

역사13 속에13 비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III

중세13 두클리야 제타 공국과13 세르비아1 ( )

몬테네그로인이13 발칸유럽에13 들어13 온13 시기는13 세기와13 세기경으로13 추정되5 6

며 이들은13 일단의13 남슬라브족들과13 함께13 다뉴브13 강을13 건너13 당시13 비잔틴13 제국13

지배13 하에13 있었던13 현13 지역에13 정착하게13 된다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의13 주장대

로13 현재까지의13 기록에13 따르자면13 발칸반도13 이주13 초기 몬테네그로인은13 다른13

남슬라브족13 특히13 세르비아인과13 거의13 구별되는13 않은13 채13 같은13 민족의13 일파로13

인식되고13 있음을13 확인할13 수13 있다 아바르 족과13 함께13 연합해13 비잔틴13 제 (Avar)

국이13 차지하고13 있던13 발칸유럽13 지역을13 장악하는13 데13 성공한13 남슬라브족은13 산악

지대가13 많은13 발칸유럽의13 지리적13 특성상13 점차13 느슨한13 정치적 사회적13 구조를13

지닌13 부족13 공동체로13 나눠지게13 되었다6 몬테네그로의13 중세13 역사13 또한13 이러한13

지리적13 험준함과13 남슬라브족의13 분열에13 따라13 시작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함께13 발칸반도로13 이주해13 들어13 온13 몬테네그로인은13 세7

6 산악지대가13 많은13 발칸유럽으로13 이주하였던13 남슬라브족은13 광활한13 평야13 지역으로13 이주

하였던13 여타13 다른13 슬라브족들과13 달리13 세월의13 흐름과13 함께13 각13 부족13 공동체들13 간에13 느

슨한13 정치적 사회적13 구조만을13 지니게13 된다 그13 이유는13 발칸13 지역의13 지리적13 험준함에13

따른13 것으로 이로13 인해13 남슬라브족은13 작은13 집단13 구성체로13 독자적인13 부족을13 형성하여

갔고 다음13 세대가13 등장하기13 전에13 각13 부족13 공동체들13 간의13 교류와13 문화13 전달이13 단절되

었으며 점차적으로13 관습 언어 정치13 조직13 간의13 차이점들이13 커져가게13 된다 이러한13

단절과13 차이점13 확대는13 곧13 이어13 남슬라브13 민족들13 간의13 정치적13 분열과13 군사력의13 약화로13

이어지게13 되었다 이에13 따라13 세기13 말에13 접어들게13 되면서13 남슬라브족의13 분화가13 확대 9

되기13 시작하였고 이러한13 분화에13 따라13 남슬라브족들은13 시기를13 거치면서13 크게13 불가리

아족 세르비아족 크로아티아족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족이라는13 개의13 남13 슬라브족13 공동 4

체로13 나누어지게13 된다 김철민( 2003 317-3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3

기13 이후에13 들어와13 코토르 부드바 바르 울찐(Kotor) (Budva) (Bar) (Ulcinj)

등13 현재의13 몬테네그로13 아드리아13 연안을13 중심으로13 자신들의13 부족13 국가들을13 수

립하게13 된다 몬테네그인은13 정착13 초기13 다른13 남슬라브족처럼13 고대13 원시13 슬라

브족의13 부족13 종교를13 지니고13 있었으나 점차13 시간이13 흐르면서13 이13 지역13 원주민

인13 로마인의13 사회와13 문화에13 점차13 동화되어13 갔고 그13 결과13 세기13 이후로13 로 12

마인들의13 신앙인13 기독교를13 자신의13 종교로13 수용하게13 되었다7

현13 세르비아로부터13 분리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분리13 독립파는13 몬테네그로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지배13 하로13 들어가기13 이전까지13 약13 년간13 고유한13 정체1918 1000

성을13 지니고13 발전하였으며 그13 역사는13 세기에13 성립된13 9 lsquo두클리야13 공국rsquo에서부터13 비롯되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비록13 세기13 무렵13 당시13 비잔틴13 제국의13 영 10

향력13 하에13 있었지만 두클리야13 공국의13 영토는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지방의13 대부

분을13 비롯해 남으로는13 알바니아13 상당13 지역인13 남부13 아드리아13 해안까지13 그리

고13 서쪽으로는13 현재의13 헤르체고비나13 지방을13 포함하고13 있었다 두클리야13 공국

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시조인13 보이슬라브 가13 년13 몬테네그로13 해(Vojislav) 1042

안가13 바르에서13 치룬13 비잔틴13 제국과의13 싸움에서13 승리를13 거둔13 이후13 본격적으로13

독립13 국가로서의13 기틀을13 잡아가게13 된다 이후13 두클리야의13 번영은13 보이슬라브

의13 아들인13 미하일로 와13 그의13 아들13 보딘(Mihailo 1046~1081) (Bodin 1081~

치하에서13 절정에13 이르렀다 미하일로는13 왕권을13 넘겨받은13 이후13 비잔틴1101)

과의13 평화13 관계를13 유지함과13 동시에 안정된13 국력과13 발달된13 경제력을13 바탕으

로13 년13 로마교황13 그레고리13 세 로부터13 독립13 왕국을13 인정받1077 7 (Gregory VII)

게13 되었다 미하일로의13 뒤를13 이은13 보딘은13 년13 로마13 교황13 클리멘트13 세 1089 3

로부터13 가톨릭13 대주교13 관직을13 획득하는13 등13 종교를13 통한13 국가13 (Clement III)

지배권13 강화를13 추진함으로써13 왕국의13 안정과13 황금기를13 이루게13 된다 하지만13

로마13 교회와의13 접한13 관계13 수립은13 곧13 이어13 비잔틴13 제국의13 강력한13 견제를13 불

러왔고 보딘13 사후13 일어난13 권력13 투쟁으로13 국력의13 약화가13 발생하게13 된다 그13

7 이때13 당시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을13 장악하고13 있던13 로마13 교회 후에13 가(

톨릭으로13 발전 의13 영향력13 하에13 놓여13 있었다 비록13 비잔틴13 제국의13 콘스탄티노플13 교회)

후에13 정교 로13 발전 와13 인근13 마케도니아와13 불가리아13 지역에서13 비롯된13 보고 교가13 한( lsquo rsquo )

때13 영향력을13 발휘하기도13 했지만 기록에13 따르자면13 이후로13 상당13 기간13 동안13 몬테네그로

인은13 가톨릭13 신앙에13 매우13 충실하였다고13 볼13 수13 있다 httpwwwmontenetorghistory

134 김철민

결과13 년13 비잔틴13 제국의13 지원을13 받은13 라쉬카13 공국의13 스테판13 네마냐에13 의1186

해13 정복당함으로써 세르비아의13 지배를13 받게13 되었다 이후13 두클리야13 공국은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13 하에서13 이13 지역13 제타강의13 이름을13 따13 lsquo제타13 공국rsquo으로도13 불리게13 된다

스테판13 네마냐는13 제타13 공국을13 지배한13 이후13 제타13 공국의13 모든13 도시들을13 파

괴하였고 보고 교13 추방과13 더불어13 가톨릭을13 믿고13 있던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13 정교로의13 강제13 개종13 그리고13 세르비아인으로의13 동화13 작업을13 추진하

게13 된다8 라쉬카13 공국은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아들인13 스테판13 네마니치13 시기에13

들어와13 중세13 세르비아13 독립13 왕국으로13 발전하였고 세르비아13 통치13 하에서13 몬

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지역을13 활용 활발한13 무역거래를13 통해13 상업적

경제적13 발전을13 이룩하게13 된다 하지만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에13 대해13 몬테네그

로13 분리13 독립파는13 당시부터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로부터13 독립하기13 위

한13 여러13 저항13 운동을13 추진하였고 그13 결과13 lsquo세르비아와13 그리스의13 왕이자13 황제rsquo로13 불렸던13 세르비아의13 두샨13 왕이13 년13 사망한13 직후 독립을13 얻을13 수13 있1355

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은13 두샨왕13 사후13 비록13 왕

권13 다툼과13 오스만13 터키의13 유럽13 원정으로13 다소13 지배권이13 약화되었지만 이13 시

기13 동안13 제타13 공국은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에서13 결코13 벗어나지13 못했다고13 주장하

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3)

제 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은13 년13 발쉬치 시조인13 발샤13 세2 1356 (Balšić 1

에서13 유래됨 왕조에서부터13 비롯되게13 된다 세르비아의13 정치적13 혼란(Balša I) )

을13 틈타13 왕국을13 재건하였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점차13 세력을13 확대해13 두샨왕13 당시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수도였던13 스코쁠예 오늘날13 마케도니아13 수도(Skoplje )

그리고13 뻬치 와13 쁘리즈렌 등13 코소보를13 비롯해13 과거13 라쉬카13 공(Peć) (Prizren)

국의13 지배13 지역들을13 하나씩13 점령하여13 갔으며 서쪽으로는13 두브로브니크

8 세기13 몬테네그로의13 가장13 유명한13 역사가13 중13 한명인13 빠블레13 로빈스키19 (Pavel

는13 당시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몬테네그로인13 정체성13 말살13 작업을13 비판하고13 있는13 Rovinski)

데 그에13 따르자면13 네마냐가13 당시13 두클리야의13 모든13 종교13 서적 역사서 지리서 문학

서13 등13 종류의13 구분13 없이13 불태워13 버렸다고13 비난하고13 있다 httpwwwmontenetorg

두클리야13 복속13 이후13 네마냐의13 여러13 행적에13 관해선13 history Božić Ćirković

참조Ekmečić and Dedijer(1973 51)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5

을13 포함13 헤르체고비나13 지역까지13 그13 세력을13 확장하여13 갔다 이13 (Dubrovnik)

당시13 발쉬치13 가문은13 중세13 세르비아의13 네먀니치13 왕조와13 여러13 경로에13 걸쳐13 가

족13 관계를13 형성하고13 있었는데 세르비아13 주장에13 따르자면13 몬테네그로는13 이

러한13 혼인13 관계를13 통한13 정통성13 인정에13 주력하였다고13 언급하고13 있다 실제13 기

록에13 따르더라도13 당시13 발쉬치13 왕조는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전통을13 계승하겠

다고13 나선13 보스니아13 왕국과13 여러13 차례13 전쟁을13 치러야13 했으며 년에는13 현13 1377

세르비아의13 레쉐보 에서13 세르비아의13 왕으로13 등극한13 보스니아의13 (Mileševo)

트브르트코13 세 의13 왕위13 계승을13 부정하기도13 하였다I (Tvrtko I) 9 한때13 왕국의13

발전을13 이루었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년13 코소보13 전투에서13 세르비아를13 도와13 1389

오스만13 터키와13 벌였던13 전투에서13 패배하여13 커다란13 위기를13 초래하게13 된다 곧13

이어13 년13 발샤13 세 가13 추진하였던13 아드리아해13 상권13 획득을13 둘1419 3 (Balša III)

러싼13 베니스와의13 전쟁에서13 패하면서13 제타13 공국의13 발쉬치13 왕조는13 몰락의13 길을13

가게13 되었다

한13 동안13 외세의13 침입과13 권력내분에13 시달렸던13 제타13 공국은13 중세13 몬테네그

로13 왕국의13 제 대13 왕조인13 쯔르노예비치 왕조의13 출현과13 더불어13 안3 (Crnojević)

정을13 되찾게13 된다 쯔르노예비치13 왕조는13 해안지대를13 중심으로13 발전을13 이룬13

다른13 왕조들과는13 달리13 몬테네그로13 북부13 산악지대인13 로브첸 지역에(Lovčen)

서부터13 시작되었다 하지만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마지막13 왕조였던13 쯔르노예비

치13 왕조는13 그리13 오랜13 기간13 유지되지13 못하였다 우선13 시조인13 스테판13 쯔르노예

비치 와13 그의13 아들13 이반13 쯔르노예비치(Stefan Crnojević 1427~1465) (Ivan

Crnojević 1465- 그리고13 오스만13 터키의13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다13 전사1490)

9 발쉬치13 왕조는13 비록13 과거13 두클리야13 공국의13 뒤를13 이은13 제타13 공국의13 지배자였지만 또

한13 동시에13 자신들을13 과거13 라쉬카13 공국의13 영주로 세르비아13 네마니치가의13 먼13 인척으로13

생각하고13 있었다 따라서13 문자에13 있어서도13 자신들이13 주로13 쓰는13 라틴문자와13 함께13 세르

비아에서의13 키릴문자를13 혼용해서13 사용하였고 종교에13 있어서도13 비록13 가톨릭을13 국가적13

종교로13 인정하고13 있었지만 세르비아가13 믿고13 있는13 정교에13 대해서도13 여러13 관심과13 주도

적13 역할을13 수행하고13 있었다 이러한13 예는13 발쉬치13 왕조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라쟈르13 1375

왕자와13 함께13 세르비아13 정교회13 총대주교를13 선출하기13 위해13 소집한13 교회13 성직자단13 회의

를13 주도한13 데서도13 확인될13 수13 있다 이에13 대해13 세르비아니즘이13 확산되고13 있던13 근대

세르비아의13 민족주의13 학자인13 쥬라13 다니취치 는13 위의13 경우를13 해(Daničić 1876 11-13)

석하는13 데13 있어 제타13 공국의13 세르비아에13 대한13 의존과13 종속성이13 높았다고13 강조하고13

있다

136 김철민

한13 이반의13 아들13 쥬라즈13 쯔르노예비치 를13 마(Djuradj Crnojevic 1490~1496)

지막으로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역사는13 끝이13 나게13 된다

하지만13 비록13 짧은13 기간의13 통치였지만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몬테네그로13 역

사에13 남긴13 영향은13 매우13 컸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시작

과13 함께13 제타13 공국은13 오늘날13 명칭인13 쯔르나13 고라 몬테네그로(Crna Gora

란13 지명으로13 불리게13 되었다 두13 번째로는13 이13 시기13 주변의13 남(Montenegro))

슬라브족13 국가들이13 모두13 오스만13 터키의13 지배13 하로13 넘어갔음에도13 불구하고

쯔르노예비치는13 년13 수도를13 스카다르 호수의13 쟈블략 에1482 (Skadar) (Zabljak)

서 보다13 수비가13 용이한13 험준한13 지역인13 로브첸13 산악지대로브첸스키13 돌라쯔 (

오늘날13 쩨티녜 의13 전신로13 옮겨13 오스만13 터키의13 (Lovcenski Dolac (Cetinje) )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였다는13 점이다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은13 훗날13 외세의13 침

략과13 지배가13 있을13 때마다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에13 저항13 정신과13 독립13 추진에13

대한13 원동력을13 제공하였으며 현13 분리13 독립파13 또한13 이러한13 역사를13 상기시키

며 세르비아로부터의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다 그리고13 세13 번째로13 발칸유럽13 국

가들13 중에선13 최초로13 년13 베네치아에서13 인쇄13 도구와13 인쇄기를13 도입하고1493

납으로13 된13 글자체와13 필체13 장식을13 위한13 주조물을13 만들어13 냄으로써 이후13 약13

여13 년간13 세르비아와13 보스니아에서13 키릴13 문자로13 인쇄된13 서적들의13 출판에13 100

상당한13 영향을13 미쳤다는13 자부심을13 안겨주었다

비록13 일부13 반론이13 있기는13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가들의13 주장에13 따르자면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재건한13 중세13 왕국은13 당시13 오스만13 터키에13 의해13 사라져13

버린13 세르비아13 네마니치13 왕조의13 국가13 전통과13 문화유산을13 그대로13 계승하고자13

노력했던13 것으로13 보인다 그러한13 실례는13 당시13 관직명과13 교구13 운영에13 있어서13

과거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관직명들이13 그대로13 채택하고 세르비아13 제국13 시절을13

본13 따13 lsquo황제와13 총대주교구의13 법원rsquo을13 설치했음을 그리고13 모든13 법률13 조항에13

있어13 과거13 두샨왕13 시절13 제작된13 lsquo두샨13 법전rsquo의13 조항들을13 그대로13 적용시켰다는13 점을13 들13 수13 있다 이를13 기초로13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13 가운데13 상당수는13 년13 1496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붕괴와13 중세13 몬테네그로13 왕국의13 종말은13 세르비아13 민족

이13 이룬13 중세13 국가의13 마지막13 형태가13 사라졌음을13 의미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5)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7

근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과13 세르비아니즘2

발칸유럽의13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마찬가지로13 몬테네그로인13 또한13 오스만13 터

키지배13 하에서13 터키의13 계획적이고13 철저한13 약탈13 경제13 정책으로13 인해13 사회 경

제적13 어려움이13 가중되게13 된다 과거13 아드리아13 해안13 상권을13 이용해13 이룩한13 왕

성한13 상업과13 무역13 활동13 그리고13 이를13 통한13 부의13 축적의13 가능하였던13 몬테네그

로인은13 이들13 분야를13 경시하고13 농업 임업 공공13 건설13 사업에13 치중하였던13 오스

만13 터키의13 정책에13 따라13 일련의13 암흑기를13 맞이하게13 되었다 또한13 오스만13 터키

의13 국력이13 쇠락해진13 세기13 말13 이후로13 세금13 부담이13 지나치게13 커지면서13 몬테17

네그로인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의13 충돌이13 빈번하게13 발생하였고 이에13 따라13 몬테

네그로인은13 상황이13 허락하는13 한13 베네치아13 등13 서구13 국가들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

의13 충돌시13 서구13 국가들을13 지원해13 아드리아의13 또13 다른13 주요13 지역인13 lsquo라구사공국오늘날13 두브로브니크 일대(Ragusa) ( (Dubrovnik) )rsquo의13 경우처럼13 이들로

부터13 자치권을13 보장받으려13 했다

이러한13 노력은13 페테르13 세1 (Peter I Petrović Njegoš 1782- 와13 페테르13 1830)

세2 (Peter II Petrović Njegoš 1830- 에13 의해13 그13 결실을13 이루게13 된다1851)

페테르13 세는13 당시13 여러13 외세의13 영향력13 하에13 흩어져13 있던13 몬테네그로13 부족들1

을13 한13 데로13 통합하고자13 노력하였고 국가13 수립과13 통치에13 필요한13 근대식13 법률

체계를13 정비하고 사법 행정의13 규율을13 정한13 사법13 행정법 과13 과거의13 관 (1798)

습법에서13 벗어나13 법률에13 근거해13 법을13 집행할13 수13 있도록13 만든13 법률집(1803)

을13 새로이13 구축하여13 놓았다 페테르13 세는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세르비아13 중 1

심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구상하였고 따라서13 강력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

현을13 위해13 제 차13 세르비아13 봉기1 (Prvi srpski ustanak 1804- 를13 통해13 세1813)

르비아13 자치13 국가를13 건설하려던13 카라조르제13 뻬트로비치(Karađorđe Petrović)

의13 봉기군과13 유기적13 연결13 관계를13 구축하게13 된다 이를13 위해13 페테르13 세는13 러 1

시아의13 지원을13 기대하며13 당시13 프랑스군이13 점령하고13 있던13 코토르만(Boka

과13 두브로브니크를13 탈환한13 후13 몬테네그로 헤르체고비나 코토르만Kotorska)

달마티아 지역13 등을13 중심으로13 한13 (Dalmacija) lsquo슬라브13 세르비아13 왕국rsquo을13 건설

138 김철민

하겠다는13 그의13 의지를13 표방하였으나 나폴레옹의13 러시아13 침공과13 함께13 그의13

바람은13 수포로13 돌아가게13 된다

이러한13 페테르13 세의13 남슬라브족13 이상에13 대해13 미오미르13 다쉬치1 (Miomir

는13 년13 이룬13 남슬라브족의13 통합13 정신이13 바로13 몬테네그로의13 페테르13 Dašić) 1918

세로부터13 출발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그는13 1 ldquo페테르13 세가13 세르비아인1

과13 크로아티아인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인 몬테네그로인의13 조화와13 형제애 단합

을13 강조하였던13 애국적인13 시인이자13 훌륭한13 정치가였다rdquo라고13 언급하면서 이러

한13 페테르13 세의13 정신이13 이후13 약하게나마13 니콜라13 시기까지13 이어지게13 되어1

년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국가가13 수립될13 수13 있었1918

다고13 말하고13 있다 무엇보다도13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그13 사(Dašić 1999 487)

실여부를13 떠나13 년13 수립된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그리고13 이13 왕국으로1918

의13 몬테네그로13 편입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이라는13 차원에서13 인식하고13 있다

는13 점에서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는13 독립13 세력들로부터13 일련의13

비판을13 받고13 있는13 상황이다

자신들의13 독립13 근대13 왕국을13 건설하고자13 했던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바람은13 현

대13 몬테네그로13 국가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설립자이자13 유명한13 시인이기도13 했

던13 페테르13 세13 시기에13 들어와서부터라13 볼13 수13 있다 반면13 세르비아인들은13 이13 2

당시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에13 크게13 호응하고13 있었고 이러

한13 그의13 이상을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도13 확산시키고자13 여러13 노력을13 기울이고13

있던13 시점이었다 페테르13 세는13 오스만13 터키의13 견제와13 프랑스의13 간섭13 그리고13 2

계속되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13 속에서도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결속과13 단결을13

이끌어내 년13 마침내13 오스트리아등13 주변13 강대국들로부터13 독립국가로서 1842

의13 인정을13 받을13 수13 있게13 된다 이어13 그의13 왕권은13 그의13 (Petrovich 1976 232)

조카인13 다닐로(Danilo I Petrović 1852~ 에게13 계승되었으나 년13 1860) 1860

암살에13 의한13 사망으로13 인해13 왕위는13 니콜라 에(Nikola Petrović 1860~1916)

게13 승계되게13 된다

니콜라는13 년부터13 시작된13 수차례의13 오스만13 터키13 공격을13 잘13 막아내었1862

고 년13 월13 1878 3 lsquo산스테파노 조약(San Stefano) rsquo과13 동년13 월13 6 lsquo베를린(Berlin)

조약rsquo의13 결과13 비록13 국제적으로13 인정은13 받지13 못했지만 몬테네그로는13 독립13 국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9

가를13 위한13 토대를13 구축할13 수13 있게13 되었다 베를린13 조약의13 결과13 몬테네그로의13

면적은13 과거보다13 배13 더13 확장되었고 오랜13 숙원이던13 2 (4400 9475 ) rarr

바르나 울찐13 등13 해안지대를13 확보할13 수13 있게13 된다 이때13 이후13 수도인13 쩨티녜

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는13 경제 사회적13 발전을13 이루게13 되어 년에13 들어 1899

와서는13 개의13 공립학교와13 개의13 사립학교가13 설립13 되게13 되었다 또한13 러시75 26

아의13 지도13 아래13 근대식13 군대가13 창설되었고 오스트리아의13 원조13 아래13 쩨티녜

에서13 코토르까지13 최초의13 근대식13 개념의13 도로와13 철도가13 설립되게13 된다

니콜라13 하의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관계는13 같(Komatina 1999 131)

은13 남슬라브족으로서13 선린관계를13 유지하고13 있었다 하지만13 세르비아13 정국13 주

도권을13 둘러싼13 오브레노비치 왕조와13 페트로비치 왕조(Obrenović) (Petrović)

간의13 계속된13 유혈13 사태는13 곧13 바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불협화음을13 초

래하게13 하였다10 특히13 세르비아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13 및13 발칸13 유럽내13 남

슬라브족13 국가들을13 통합해13 나가겠다는13 취지13 아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를13 강

력히13 추진하던13 란13 오브레노비치 시기13 이(Milan Obrenović 1868~1889)

후로13 양국은13 다소13 불편한13 관계가13 수립되었고 년13 마침내13 몬테네그로는13 1910

니콜라왕을13 중심으로13 하는13 독립13 군주국가임을13 선포하게13 되었다(Komatina

1999 37-38)11

10 이러한13 불협화음의13 또13 다른13 배경에는13 니콜라13 왕이13 세르비아13 오브레노비치13 왕조의13 정

적인13 카라조르제비치13 가문의13 페테르13 카라조르제비치(Peter I Karađorđević 1903~

까지13 세르비아13 왕위를13 엮임 를13 자신의13 장녀13 조르카 와13 결혼시켰던13 데서도13 1918 ) (Zorka)

그13 요인을13 찾을13 수13 있다

11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13 움직임13 속에13 치러진13 당시13 취임식에서13 니콜라왕은13 몬테네그로13

민족의13 독자성과13 독립된13 민족13 정체성을13 그들의13 중세13 역사13 속에서13 찾을13 것을13 천명하였

다 우리는13 과거13 제타13 왕국의13 보이슬라브 미하일로13 그리고13 보딘의13 자손이다 시간은13 ldquo

단지13 이13 땅위에13 존재하였던13 것을13 파괴할13 수13 있었지만 이13 안에13 꿈틀대고13 있는13 자유에13

대한13 의지와13 충성스러운13 산악인들의13 뜨거운13 심장을13 파괴할13 수는13 없었다 우리는13 오랜13

역사의13 토대13 위에13 왕국13 건설의13 부활을13 시작하였고 오늘날13 이13 왕국은13 여기13 천상의13 햇

빛아래13 반짝이는13 우리의13 고대왕국에13 그13 뿌리를13 두고13 있다rdquo httpwwwmontenetorg

history

140 김철민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IV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주요13 배경과13 진행과정13 1

세기13 초13 몬테네그로는13 비록13 니콜라왕의13 독립13 왕국13 선포에도13 불구하고20

복잡한13 발칸유럽의13 정세와13 더불어13 매우13 혼돈의13 시기를13 맞이하고13 있었다 몬

테네그로는13 년과13 년에13 치른13 제 차13 발칸전쟁에서의13 승전에도13 불1912 1913 1 2

구하고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종결이후13 세르비아13 주도의13 최초13 남슬라브족13 1918 1

통합국가인13 lsquo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Kraljevina SHS)rsquo하로13 편입되는13 아픔을13 겪게13 된다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제 차13 세계대전이전까지13 세르 2

비아의13 직접적인13 지배13 하에13 놓이게13 되었지만 제 차13 세계대전에서13 티토를13 중 2

심으로13 한13 파르티잔13 세력이13 승리한13 이후 사회주의13 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하에

서13 개13 구성13 공화국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6 ( -헤르체고비나 세르비

아 몬테네그로13 그리고13 마케도니아13 공화국 중13 하나인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으 )

로13 새롭게13 등장할13 수13 있었다

년13 베를린13 장벽13 붕괴로13 상징되는13 사회주의13 체제의13 몰락이후13 유고슬라1989

비아13 연방의13 해체13 위기와13 더불어13 몬테네그로는13 매우13 불확실한13 위치에13 놓이게13

된다 특히13 년에13 있었던13 다당제13 선거가13 실시된13 이후13 사회주의13 유고슬라 1990

비아13 연방은13 해체의13 길로13 들어서고13 있었고 이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도13 자신의13

진로를13 결정해야만13 했다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의13 압력과13 불확실한13 국

제적13 상황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년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형성에13 1992

가담하게13 된다12 하지만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에13 가담한13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연방13 구성국이었던13 세르비아가13 중심이13 된13 유고내전슬로베니아13 내전과13 크로(

12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이13 해체되는13 과정13 속에서13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

아와13 함께13 새로운13 연방을13 구성해13 나갈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단행하게13 된다 전체13 선

거인단의13 가13 참여하였던13 이13 선거에서13 찬성13 반대13 라는13 압도적인13 표차로13 66 96 3

몬테네그로13 국민은13 세르비아와13 운명을13 같이13 할13 것을13 결정짓게13 된다(Komatina 1999

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1

아티아13 내전과13 보스니아13 내전13 그리고13 이후13 년13 월에13 일어난13 와) 1999 3 NATO

의13 코소보13 전쟁13 등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미국과13 서유럽13 국가들로부터13

경제적 정치적13 그리고13 외교적13 고립을13 강요받아야만13 했다 결과적으로13 서구

로부터의13 고립은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13 형성과13 그13 유지에13

대한13 의구심을13 증폭시켰고 이러한13 국내13 분위기13 속에서13 년13 월13 몬테네 1999 8

그로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선출된13 로13 쥬카노비치 대통(Milo Đukanović)

령과13 그13 수뇌부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세르비아니즘의13 희생자임을13 상기시키며

독립을13 위한13 실질적인13 논의에13 들어가게13 된다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당시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13 권력자였던13 슬로보단13

로쉐비치 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에13 반발하였던13 몬테네(Slobodan Milošević)

그로13 대통령13 로13 쥬카노비치를13 중심으로13 제기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쥬

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세르비아13 정부에게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rsquo이13 아닌13 lsquo몬테네그로-세르비아13 연합13 국가rsquo라는13 명칭으로13 변경할13 것과13 현행13 연방13 헌법을13 폐지할13 것 그리고13 연방13 정부13 협의13 체제를13 각13 공화국간13 각료간13 협의체제

로13 전환13 할13 것13 등13 실질적인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방13 정부구성을13 제안하였다 이

후13 몬테네그로의13 요구는13 세르비아와의13 느슨한13 연방형태13 유지를13 전제로13 한13 독

자군대13 편성권과13 독자적13 외교권13 그리고13 독자13 통화권13 발행13 등으로13 확대되게13

된다

년13 월에13 들어와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연방정부에13 본격적으로13 연방13 2000 7

분리13 구상을13 제안하였고 몬테네그로가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존재를13 더13 이

상13 인정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점과13 그해13 월에13 치러질13 연방13 선거에13 불참할13 것13 9

그리고13 몬테네그로의13 향후13 국가13 목표를13 와13 에13 가입하는13 것을13 주요13 EU NATO

골자로13 하겠다는13 등의13 성명서를13 발표하였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그늘로부터13

벗어나13 독립을13 이루려던13 몬테네그로의13 의도는13 년13 월13 세르비아에서13 반2000 10

로쉐비치13 민주화13 혁명이13 일어나 민주인사인13 보이슬라브13 코슈투니짜( ) 反연방13 대통령이13 등장하게13 되자13 난관에13 봉착하게13 된다(Vojslav Koštunica) 13

13 년13 월13 일13 치러진13 유고연방의13 대선과13 총선13 투표에13 대해 선거13 위원회가13 발표2000 9 24

한13 결과와는13 달리 세르비아13 민주야당 의13 코슈투니차 (DOS) (Kos 후보13 진영에선13 tunica)

자체13 집계13 결과13 결선13 투표13 없이13 차13 투표에서13 로쉐비치를13 이겼다고13 선언하게13 된다1

이어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민주화를13 요구하는13 시위대의13 물결이13 베오그라드에13 집결하

142 김철민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취임한13 코슈투니짜13 대통령은13 ldquo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는13 하나의13 운명13 공동체이며13 더욱13 더13 강력한13 통합이13 필요하

다rdquo는13 점을13 강조하였고 이어13 이러한13 선언이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추구하고자13

했던13 미국과13 서방의13 지지를13 얻게13 됨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다소13 어

려움을13 겪게13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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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극해13 코소보13 사태와13 같은13 심각한13 위험을13 초래13 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점을13 경고하였다 동시에13 ldquo몬테네그로가13 연방13 내에13 계속13 존속하기를13 강력히13 희망한다rdquo는13 메시지와13 함께 ldquo국방 외교 통화13 등에13 대한13 권한만을13 연방정부에13 이양하고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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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실시할13 것13 그리고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공화국(SRJ)rsquo에서13 lsquo세르비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rsquo으로13 변경할13 것13 등이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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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는13 단일13 국가로13 활동하며 현행13 조약과13 협정에13 대한13 과거13 유고연방의13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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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의13 향후13 전망과13 그13 의미13 2

새로운13 연합13 국가를13 구성하는13 데13 양13 국이13 합의한13 직후 년13 월13 세르 200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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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13 전체13 의석13 석13 중 찬성13 반대13 기권13 표로13 (Svetozar Marović) 126 65 47 14

16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13 대표적13 신문인13 보르바 참조- lsquo (Borba)rsquo httpwwwborbacoyu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제를13 구축해13 나가고13 있다 반면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이 200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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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는13 향후13 다소13 난항을13 겪을13 것으로13 예상된다 그러한13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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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로의13 향후13 독립문제는13 아래13 요소들의13 향배에13 따라13 결정되어질13 것으로13 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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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13 향한13 단합된13 의지를13 어느13 정도까지13 그리고13 어디까지13 보여줄13 수13 있을13 것인

가 라는13 문제이다 몬테네그로는13 지난13 년13 월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몬테네 200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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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표율을13 기록하긴13 했으나 두13 차례13 선거13 모두13 헌법상13 최저13 투표율인13 를13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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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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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으로13 국명이13 바뀐13 후13 몬테네그로13 최초13 대통령이13

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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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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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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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세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해13 나가려는13 데13 있어13 세르비아의13 강력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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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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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세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13 분할과13 민족간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휘말릴13 가능성이13 높

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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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민 세르비아13 민족의13 기원과13 민족13 정체성에13 관한13 연구 동유럽발칸학 제 2003 「 」 985172 985173권13 호 한국동유럽발칸학회5 1 pp 31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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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텔레비전13 세르비아 국영13 방송국13 lsquo rsquo httpwwwrtscoyu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13 사이트13 UN httpwwwunmikonlineorg

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4: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128 김철민

으로13 제 장에서는13 본문에서의13 논의를13 바탕으로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에서의13 세5

르비아니즘의13 의미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다시13 한13 번13 고찰하고13 그13 의미

를13 살펴봄으로서13 결론을13 대신하고자13 한다

세르비아니즘의13 형성배경과13 이론적13 특징II

년대13 초부터13 말까지13 계속해서13 이어진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의13 내전과13 전1990

쟁13 그리고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13 대두는13 국제사회에13 이13 지역을13 주요13 국제분쟁13

지역13 중13 하나로13 인식하게13 했다 그13 결과13 서구의13 여러13 학자들을13 중심으로13 유

고슬라비아13 지역내13 민족갈등13 원인과13 분쟁13 배경13 그리고13 그13 전개상황에13 대한13

연구가13 활발하게13 진행되게13 된다 무엇보다도13 이들13 서구13 학자들은13 유고슬라비

아13 지역에서13 발생하고13 있는13 여러13 분쟁과13 갈등의13 주요13 요인13 중13 하나로13 극단적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한13 형태인13 lsquo세르비아니즘rsquo을13 지목하여13 왔다 반면에13 세

르비아의13 현지13 학자들은13 서구의13 이러한13 주장에13 대해13 일련의13 다른13 의견을13 제

시하고13 있는13 데 이들의13 주장에13 따르자면 세르비아13 민족에게13 있어13 세르비아

니즘은 어느13 국가나13 민족에게나13 그러하듯13 국가가13 위기에13 처했을13 때마다13 민

족의13 생존권을13 지켜주기13 위한13 주요13 이념으로써13 발전된13 것이라는13 점이다2 본13

장에선13 세르비아니즘에13 대한13 양측13 간의13 주장과13 이해를13 전제로 특히13 민족13 정

체성과13 민족국가13 유지라는13 차원의13 세르비아적13 시각을13 기초로13 한13 세르비아니

즘의13 형성배경과13 그13 이론적13 특징들을13 분석해13 보고자13 한다

세르비아니즘은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13 당시13 최대13 전성기였던13 스테판13 두샨13

왕(Kralj i Car Stefan Uros 4 Dusan 1331- 시절의13 영토 문화적13 확1355)

대에13 기초한13 역사적13 당위성을13 그13 기원으로13 하고13 있다 이러한13 기원을13 기초로13

2 특히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은13 다양한13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13 그리고13 역사적13 배경을13 지

닌13 민족들이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서로13 한13 국가를13 구성했던13 지역으로 이에13 따라13 독1

특한13 문화적 사회적13 특징을13 보여주고13 있다 따라서13 이러한13 특징과13 배경을13 이해하지13

못하면13 세르비아니즘을13 비롯해13 유고슬라비아13 지역내13 갈등과13 분쟁의13 주요13 요인들을13

결코13 이해하기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29

세르비아니즘은13 나폴레옹13 혁명전쟁의13 여파로13 세기13 중엽13 이후13 발칸유럽에13 19

유입된13 민족주의가13 세르비아13 민족들13 사이에13 하나의13 이데올로기로13 정착되고13

이와13 함께13 세르비아13 근대13 민족국가가13 수립되면서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13 표출의13

한13 형태로써13 발전되기13 시작했다김철민( 1999 26)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은13 몬테네그로와13 인접한13 현재의13 세르비아13 남부13 산악지

대를13 중심으로13 형성된13 lsquo라쉬카(Ras 공국ka) rsquo을13 계승하여13 발전하게13 된다 라쉬

카13 공국의13 대족장 이었던13 스테판13 네마냐(Veliki župan) (Stefan Nemanja

는13 비잔틴의13 지원을13 받아13 년13 몬테네그로13 아드리아13 해안지1166~1196) 1186

대를13 근거지로13 하고13 있던13 두클리야 후에13 제타 공국으로13 불림(Duklja (Zeta) )

공국을13 복속하고13 국가와13 정교회간의13 강력한13 유대관계를13 이끌어냄으로써13 세

르비아13 중세왕조의13 기틀을13 마련하는데13 성공하였다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로13 1

몬테네그로13 지역이13 세르비아가13 주도하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의13 일원으로13

편입된13 이후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은13 라쉬카13 공국이13 제타13 공국을13 복속한13 이

후13 형성된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간의13 정치 문화적13 월13 관계 그리고13 발칸

유럽13 정착13 초기13 세르비아인과13 몬테네그로인13 간의13 혈통과13 정체성의13 접한13 관

련성을13 밝혀내고자13 노력하여13 왔다 세르비아의13 이반13 보쥐치 와13 (Ivan Božić)

시마13 치르코비치 등은13 비잔틴13 제국의13 황제인13 콘스탄틴13 세(Sima Ćirković) 7

(Constantine VII 913- 의13 기록을13 근거로 크로아티아13 아드리아해13 연안959)

과13 두브로브니크 그리고13 특히13 몬테네그로의13 코토르 만(Dubrovnik) (Kotor)

즉13 과거13 제타13 지역에13 정착해13 있던13 자훔랸 트라블리얀(Zahumljan) (Travuljan)

코나블랸 부족13 등이13 세르비아13 부족의13 일파였음을13 주장하고13 있다(Konavljan)

(Ćirkovic and Bozic 1977 108-112 Bozic Ćirkovic Ekmecic and

Dedijer 1973 22-23)

세르비아는13 네마냐의13 아들인13 스테판13 네마니치(Stefan Nemanjic 1196~

시대에13 들어와13 독립왕국을13 건설하였고 이어13 네마니치의13 동생인13 1228) (1217)

성13 사바 의13 노력으로13 년13 세르비아13 독립13 정교회를13 구축하게13 된(Sv Sava) 1219

다 세르비아13 독립13 정교회의13 초대교주가13 된13 성13 사바가13 현 코소보13 지역의13 ( ) 現

쥐짜 에13 독립교구를13 세운13 이후13 코소보는13 세르비아인에게13 유대인들에게13 (Žica)

예루살렘이13 지니는13 의미와13 맞먹는13 성스러운13 종교적13 의미를13 지니게13 되었다

130 김철민

영토적인13 면에서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은13 세르비아13 역사상13 가장13 위대한13 왕으

로13 칭송받는13 스테판13 두샨왕13 시기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광활한13 영토에13 기초

하고13 있다 당시13 서로마와13 비잔틴제국 소아시아의13 중간13 교역로에13 있던13 세르

비아는13 이웃13 국가들과의13 활발한13 중개무역을13 통한13 부의13 축적과13 안정된13 정치력13

그리고13 강력한13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왕국의13 영토를13 현재의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

에서부터13 마케도니아 그리스13 남부지역으로까지13 넓힐13 수13 있었다 하지만13

년13 세의13 나이로13 두샨이13 사망한13 이후13 세르비아13 왕국은13 왕권13 다툼으로13 1355 46

인한13 내부13 분열과13 오스만13 터키의13 침입으로13 쇠락하게13 된다 특히13 년13 월13 1389 6

현13 코소보13 언덕에서13 무라드13 세가13 이끄는13 대규모13 오스만13 터키군에13 의해13 세르1

비아의13 라자르(Lazar Hrebeljanović 1371~ 왕자가13 이끄는13 세르비아13 1389)

연합군이13 패배하고13 난13 후13 세르비아13 중세13 왕국은13 몰락의13 길을13 가게13 되었다3

이후13 년까지13 지속된13 약13 여13 년간의13 오스만13 터키13 지배13 하에서도13 세1878 500

르비아인들은13 세르비아13 정교를13 중심으로13 민족13 정체성과13 민족의식을13 계속13 유

지할13 수13 있었다 근대13 이후13 오스만13 터키의13 쇠락13 속에13 무슬림13 지주들과13 관료

들의13 폭정에13 저항하기13 위해13 시작된13 세르비아의13 제 차13 봉기1 2 (Srpski

는13 점차13 이13 지역에13 보급된13 민족주의ustanak 1804~1813 1815~1830)

에13 의해13 영향을13 받았고 이에13 따라13 처음13 사회적13 봉기로13 시작된13 (Nationalism)

반 터키13 저항13 운동은13 점차13 독립된13 민족( )反 -국가(Nation- 건설을13 위한13 State)

민족주의13 운동으로13 확대13 발전되게13 되었다 이후13 세르비아는13 여러13 정치적13 어

려움과13 외세의13 간섭을13 이겨내고 마침내13 년13 월13 산13 스테파노 1878 3 (San

조약과13 동년13 월13 베를린 조약에13 의해13 근대13 독립국가로13 성장Sefano) 6 (Berlin)

하게13 된다4

3 이후13 코소보13 전투에13 관련된13 여러13 전설들은13 훗날13 세르비아13 민중들에게13 민담과13 구전문

학을13 통해13 계속해서13 전해13 내려옴으로써13 오스만13 터키등13 외세에13 대한13 세르비아13 민족의13

저항정신을13 고취시켰다 이에13 대해13 스타노예13 스타노예비치 (Stanojevic 1996

는13 이후13 코소보는13 세르비아13 역사에서13 제 차13 코소보전투와13 함께13 웅장했192-193) ldquo 1 2

던13 세르비아13 중세왕조의13 몰락과13 이민족의13 세르비아13 지배가13 시작되는13 치욕의13 역사로13

기록되었고 훗날13 세르비아13 민족의식의13 출발점으로13 인식되게13 된다 라고13 말하고13 있다 rdquo

4 당시13 세르비아는13 이들13 조약들로13 인해13 비록13 독립은13 인정받았으나 세르비아니즘의13 주

요13 목표였던13 보스니아13 지역과13 몬테네그로를13 통한13 아드리아해로의13 해상통로13 확보가13

오스트리아의13 방해로13 실패하는13 아픔을13 겪어야13 했다 그13 결과13 양13 국은13 세기를13 전후 20

해서13 적대관계를13 형성하였고 이러한13 감정싸움은13 마침내13 제 차13 세계대전으로13 이어지 1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1

세르비아니즘의13 이론적13 기초와13 그13 실천방향은13 년13 일리야13 가라샤닌1844

에13 의해13 처음으로13 제창되었다 그는13 중세13 세르비아13 두샨왕13 (Ilija Garašanin)

시대의13 영토적13 당위성을13 기초로13 한13 lsquo대 세르비아( ) (Velika Srbija)大 rsquo 국가13 건

설을13 세르비아13 근대국가의13 모델로13 설정하였고 이를13 위해13 이웃한13 몬테네그로

를13 비롯 당시13 합스부르크13 제국 년13 이후13 (1866 lsquo오스트리아-헝가리13 제국rsquo으로13 개칭의13 지배13 하에13 있던13 보이보디나 크로아티아 그리) (Vojvodina) (Croatia)

고13 보스니아 와13 헤르체고비나 지역을13 통합할13 것을13 주장(Bosnia) (Herzegovina)

하였다 또한13 그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을13 위해13 영토13 확대13 대상지역에13 거주

하는13 세르비아인들13 또한13 적극적으로13 동참해13 줄13 것을13 호소하였다(Petrovich

1976 231-232)5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세기13 당시13 민족주의에13 심취되어13 있 19

던13 세르비아인들13 사이에13 커다란13 반향을13 불러13 일으켰고 이들13 사이에13 세르비

아의13 지도력13 하에13 남슬라브족의13 통일이13 가능하리라는13 생각들이13 점차13 확대되

는13 계기를13 마련해13 주게13 된다 특히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

은13 페테르13 카라조르제비치 시기에13 들어(Peter I Karađorđević 1903~1918)

와13 더욱13 더13 구체화13 되었다 페테르는13 서구적이고13 근대적인13 시각을13 바탕으로13

자신의13 임기동안13 세르비아를13 발칸유럽에서13 가장13 강력한13 근대왕국으로13 발전

시켰고 시민13 자유와13 민주화13 그리고13 이를13 기초로13 한13 최초의13 입헌정부를13 수립

함으로써13 lsquo세르비아의13 르네상스기rsquo를13 이루게13 된다 또한13 오스트리아의13 보스

니아13 병합 등13 주변13 외세들의13 견제13 속에서도13 제 차13 발칸전쟁(1908) 1 2 (1912

을13 통해13 대규모13 영토13 확장을13 이루어13 냄으로써13 세르비아니즘13 구현에13 기1913)

여했다는13 평가를13 받게13 되었다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세르비아는13 마침내13 몬테네그로를13 완전13 병합하는13 데13 1

성공하였고 자신이13 주도하는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lsquo세르비아-크

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 년13 이(Kraljevina Srba Hrvata i Slovenaca 1929

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Kraljevina Jugoslavija)rsquo으로13 개칭됨)rsquo을13 또한13 건설함으로써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을13 완성하게13 된다 하지만13 세르비아는13 새로운13 통

합13 왕국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이라13 평가한13 반면 왕국내13 주요13 구성13 민족인13

게13 된다 김철민( 1999 29 Dimic 1998 25)

5 가라샤닌이13 주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주13 핵심13 내용은13 참조Vojvodić(2000 243-254)

132 김철민

크로아티아인과13 슬로베니아인은13 남슬라브족의13 평등13 국가라는13 점을 그리고13

세르비아의13 압력과13 회유에13 의해13 강제13 복속당한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엔13 또13 다

른13 지배자를13 맞이했다는13 역사적13 평가를13 낳게13 하였다

역사13 속에13 비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III

중세13 두클리야 제타 공국과13 세르비아1 ( )

몬테네그로인이13 발칸유럽에13 들어13 온13 시기는13 세기와13 세기경으로13 추정되5 6

며 이들은13 일단의13 남슬라브족들과13 함께13 다뉴브13 강을13 건너13 당시13 비잔틴13 제국13

지배13 하에13 있었던13 현13 지역에13 정착하게13 된다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의13 주장대

로13 현재까지의13 기록에13 따르자면13 발칸반도13 이주13 초기 몬테네그로인은13 다른13

남슬라브족13 특히13 세르비아인과13 거의13 구별되는13 않은13 채13 같은13 민족의13 일파로13

인식되고13 있음을13 확인할13 수13 있다 아바르 족과13 함께13 연합해13 비잔틴13 제 (Avar)

국이13 차지하고13 있던13 발칸유럽13 지역을13 장악하는13 데13 성공한13 남슬라브족은13 산악

지대가13 많은13 발칸유럽의13 지리적13 특성상13 점차13 느슨한13 정치적 사회적13 구조를13

지닌13 부족13 공동체로13 나눠지게13 되었다6 몬테네그로의13 중세13 역사13 또한13 이러한13

지리적13 험준함과13 남슬라브족의13 분열에13 따라13 시작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함께13 발칸반도로13 이주해13 들어13 온13 몬테네그로인은13 세7

6 산악지대가13 많은13 발칸유럽으로13 이주하였던13 남슬라브족은13 광활한13 평야13 지역으로13 이주

하였던13 여타13 다른13 슬라브족들과13 달리13 세월의13 흐름과13 함께13 각13 부족13 공동체들13 간에13 느

슨한13 정치적 사회적13 구조만을13 지니게13 된다 그13 이유는13 발칸13 지역의13 지리적13 험준함에13

따른13 것으로 이로13 인해13 남슬라브족은13 작은13 집단13 구성체로13 독자적인13 부족을13 형성하여

갔고 다음13 세대가13 등장하기13 전에13 각13 부족13 공동체들13 간의13 교류와13 문화13 전달이13 단절되

었으며 점차적으로13 관습 언어 정치13 조직13 간의13 차이점들이13 커져가게13 된다 이러한13

단절과13 차이점13 확대는13 곧13 이어13 남슬라브13 민족들13 간의13 정치적13 분열과13 군사력의13 약화로13

이어지게13 되었다 이에13 따라13 세기13 말에13 접어들게13 되면서13 남슬라브족의13 분화가13 확대 9

되기13 시작하였고 이러한13 분화에13 따라13 남슬라브족들은13 시기를13 거치면서13 크게13 불가리

아족 세르비아족 크로아티아족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족이라는13 개의13 남13 슬라브족13 공동 4

체로13 나누어지게13 된다 김철민( 2003 317-3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3

기13 이후에13 들어와13 코토르 부드바 바르 울찐(Kotor) (Budva) (Bar) (Ulcinj)

등13 현재의13 몬테네그로13 아드리아13 연안을13 중심으로13 자신들의13 부족13 국가들을13 수

립하게13 된다 몬테네그인은13 정착13 초기13 다른13 남슬라브족처럼13 고대13 원시13 슬라

브족의13 부족13 종교를13 지니고13 있었으나 점차13 시간이13 흐르면서13 이13 지역13 원주민

인13 로마인의13 사회와13 문화에13 점차13 동화되어13 갔고 그13 결과13 세기13 이후로13 로 12

마인들의13 신앙인13 기독교를13 자신의13 종교로13 수용하게13 되었다7

현13 세르비아로부터13 분리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분리13 독립파는13 몬테네그로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지배13 하로13 들어가기13 이전까지13 약13 년간13 고유한13 정체1918 1000

성을13 지니고13 발전하였으며 그13 역사는13 세기에13 성립된13 9 lsquo두클리야13 공국rsquo에서부터13 비롯되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비록13 세기13 무렵13 당시13 비잔틴13 제국의13 영 10

향력13 하에13 있었지만 두클리야13 공국의13 영토는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지방의13 대부

분을13 비롯해 남으로는13 알바니아13 상당13 지역인13 남부13 아드리아13 해안까지13 그리

고13 서쪽으로는13 현재의13 헤르체고비나13 지방을13 포함하고13 있었다 두클리야13 공국

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시조인13 보이슬라브 가13 년13 몬테네그로13 해(Vojislav) 1042

안가13 바르에서13 치룬13 비잔틴13 제국과의13 싸움에서13 승리를13 거둔13 이후13 본격적으로13

독립13 국가로서의13 기틀을13 잡아가게13 된다 이후13 두클리야의13 번영은13 보이슬라브

의13 아들인13 미하일로 와13 그의13 아들13 보딘(Mihailo 1046~1081) (Bodin 1081~

치하에서13 절정에13 이르렀다 미하일로는13 왕권을13 넘겨받은13 이후13 비잔틴1101)

과의13 평화13 관계를13 유지함과13 동시에 안정된13 국력과13 발달된13 경제력을13 바탕으

로13 년13 로마교황13 그레고리13 세 로부터13 독립13 왕국을13 인정받1077 7 (Gregory VII)

게13 되었다 미하일로의13 뒤를13 이은13 보딘은13 년13 로마13 교황13 클리멘트13 세 1089 3

로부터13 가톨릭13 대주교13 관직을13 획득하는13 등13 종교를13 통한13 국가13 (Clement III)

지배권13 강화를13 추진함으로써13 왕국의13 안정과13 황금기를13 이루게13 된다 하지만13

로마13 교회와의13 접한13 관계13 수립은13 곧13 이어13 비잔틴13 제국의13 강력한13 견제를13 불

러왔고 보딘13 사후13 일어난13 권력13 투쟁으로13 국력의13 약화가13 발생하게13 된다 그13

7 이때13 당시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을13 장악하고13 있던13 로마13 교회 후에13 가(

톨릭으로13 발전 의13 영향력13 하에13 놓여13 있었다 비록13 비잔틴13 제국의13 콘스탄티노플13 교회)

후에13 정교 로13 발전 와13 인근13 마케도니아와13 불가리아13 지역에서13 비롯된13 보고 교가13 한( lsquo rsquo )

때13 영향력을13 발휘하기도13 했지만 기록에13 따르자면13 이후로13 상당13 기간13 동안13 몬테네그로

인은13 가톨릭13 신앙에13 매우13 충실하였다고13 볼13 수13 있다 httpwwwmontenetorghistory

134 김철민

결과13 년13 비잔틴13 제국의13 지원을13 받은13 라쉬카13 공국의13 스테판13 네마냐에13 의1186

해13 정복당함으로써 세르비아의13 지배를13 받게13 되었다 이후13 두클리야13 공국은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13 하에서13 이13 지역13 제타강의13 이름을13 따13 lsquo제타13 공국rsquo으로도13 불리게13 된다

스테판13 네마냐는13 제타13 공국을13 지배한13 이후13 제타13 공국의13 모든13 도시들을13 파

괴하였고 보고 교13 추방과13 더불어13 가톨릭을13 믿고13 있던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13 정교로의13 강제13 개종13 그리고13 세르비아인으로의13 동화13 작업을13 추진하

게13 된다8 라쉬카13 공국은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아들인13 스테판13 네마니치13 시기에13

들어와13 중세13 세르비아13 독립13 왕국으로13 발전하였고 세르비아13 통치13 하에서13 몬

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지역을13 활용 활발한13 무역거래를13 통해13 상업적

경제적13 발전을13 이룩하게13 된다 하지만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에13 대해13 몬테네그

로13 분리13 독립파는13 당시부터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로부터13 독립하기13 위

한13 여러13 저항13 운동을13 추진하였고 그13 결과13 lsquo세르비아와13 그리스의13 왕이자13 황제rsquo로13 불렸던13 세르비아의13 두샨13 왕이13 년13 사망한13 직후 독립을13 얻을13 수13 있1355

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은13 두샨왕13 사후13 비록13 왕

권13 다툼과13 오스만13 터키의13 유럽13 원정으로13 다소13 지배권이13 약화되었지만 이13 시

기13 동안13 제타13 공국은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에서13 결코13 벗어나지13 못했다고13 주장하

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3)

제 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은13 년13 발쉬치 시조인13 발샤13 세2 1356 (Balšić 1

에서13 유래됨 왕조에서부터13 비롯되게13 된다 세르비아의13 정치적13 혼란(Balša I) )

을13 틈타13 왕국을13 재건하였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점차13 세력을13 확대해13 두샨왕13 당시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수도였던13 스코쁠예 오늘날13 마케도니아13 수도(Skoplje )

그리고13 뻬치 와13 쁘리즈렌 등13 코소보를13 비롯해13 과거13 라쉬카13 공(Peć) (Prizren)

국의13 지배13 지역들을13 하나씩13 점령하여13 갔으며 서쪽으로는13 두브로브니크

8 세기13 몬테네그로의13 가장13 유명한13 역사가13 중13 한명인13 빠블레13 로빈스키19 (Pavel

는13 당시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몬테네그로인13 정체성13 말살13 작업을13 비판하고13 있는13 Rovinski)

데 그에13 따르자면13 네마냐가13 당시13 두클리야의13 모든13 종교13 서적 역사서 지리서 문학

서13 등13 종류의13 구분13 없이13 불태워13 버렸다고13 비난하고13 있다 httpwwwmontenetorg

두클리야13 복속13 이후13 네마냐의13 여러13 행적에13 관해선13 history Božić Ćirković

참조Ekmečić and Dedijer(1973 51)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5

을13 포함13 헤르체고비나13 지역까지13 그13 세력을13 확장하여13 갔다 이13 (Dubrovnik)

당시13 발쉬치13 가문은13 중세13 세르비아의13 네먀니치13 왕조와13 여러13 경로에13 걸쳐13 가

족13 관계를13 형성하고13 있었는데 세르비아13 주장에13 따르자면13 몬테네그로는13 이

러한13 혼인13 관계를13 통한13 정통성13 인정에13 주력하였다고13 언급하고13 있다 실제13 기

록에13 따르더라도13 당시13 발쉬치13 왕조는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전통을13 계승하겠

다고13 나선13 보스니아13 왕국과13 여러13 차례13 전쟁을13 치러야13 했으며 년에는13 현13 1377

세르비아의13 레쉐보 에서13 세르비아의13 왕으로13 등극한13 보스니아의13 (Mileševo)

트브르트코13 세 의13 왕위13 계승을13 부정하기도13 하였다I (Tvrtko I) 9 한때13 왕국의13

발전을13 이루었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년13 코소보13 전투에서13 세르비아를13 도와13 1389

오스만13 터키와13 벌였던13 전투에서13 패배하여13 커다란13 위기를13 초래하게13 된다 곧13

이어13 년13 발샤13 세 가13 추진하였던13 아드리아해13 상권13 획득을13 둘1419 3 (Balša III)

러싼13 베니스와의13 전쟁에서13 패하면서13 제타13 공국의13 발쉬치13 왕조는13 몰락의13 길을13

가게13 되었다

한13 동안13 외세의13 침입과13 권력내분에13 시달렸던13 제타13 공국은13 중세13 몬테네그

로13 왕국의13 제 대13 왕조인13 쯔르노예비치 왕조의13 출현과13 더불어13 안3 (Crnojević)

정을13 되찾게13 된다 쯔르노예비치13 왕조는13 해안지대를13 중심으로13 발전을13 이룬13

다른13 왕조들과는13 달리13 몬테네그로13 북부13 산악지대인13 로브첸 지역에(Lovčen)

서부터13 시작되었다 하지만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마지막13 왕조였던13 쯔르노예비

치13 왕조는13 그리13 오랜13 기간13 유지되지13 못하였다 우선13 시조인13 스테판13 쯔르노예

비치 와13 그의13 아들13 이반13 쯔르노예비치(Stefan Crnojević 1427~1465) (Ivan

Crnojević 1465- 그리고13 오스만13 터키의13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다13 전사1490)

9 발쉬치13 왕조는13 비록13 과거13 두클리야13 공국의13 뒤를13 이은13 제타13 공국의13 지배자였지만 또

한13 동시에13 자신들을13 과거13 라쉬카13 공국의13 영주로 세르비아13 네마니치가의13 먼13 인척으로13

생각하고13 있었다 따라서13 문자에13 있어서도13 자신들이13 주로13 쓰는13 라틴문자와13 함께13 세르

비아에서의13 키릴문자를13 혼용해서13 사용하였고 종교에13 있어서도13 비록13 가톨릭을13 국가적13

종교로13 인정하고13 있었지만 세르비아가13 믿고13 있는13 정교에13 대해서도13 여러13 관심과13 주도

적13 역할을13 수행하고13 있었다 이러한13 예는13 발쉬치13 왕조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라쟈르13 1375

왕자와13 함께13 세르비아13 정교회13 총대주교를13 선출하기13 위해13 소집한13 교회13 성직자단13 회의

를13 주도한13 데서도13 확인될13 수13 있다 이에13 대해13 세르비아니즘이13 확산되고13 있던13 근대

세르비아의13 민족주의13 학자인13 쥬라13 다니취치 는13 위의13 경우를13 해(Daničić 1876 11-13)

석하는13 데13 있어 제타13 공국의13 세르비아에13 대한13 의존과13 종속성이13 높았다고13 강조하고13

있다

136 김철민

한13 이반의13 아들13 쥬라즈13 쯔르노예비치 를13 마(Djuradj Crnojevic 1490~1496)

지막으로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역사는13 끝이13 나게13 된다

하지만13 비록13 짧은13 기간의13 통치였지만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몬테네그로13 역

사에13 남긴13 영향은13 매우13 컸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시작

과13 함께13 제타13 공국은13 오늘날13 명칭인13 쯔르나13 고라 몬테네그로(Crna Gora

란13 지명으로13 불리게13 되었다 두13 번째로는13 이13 시기13 주변의13 남(Montenegro))

슬라브족13 국가들이13 모두13 오스만13 터키의13 지배13 하로13 넘어갔음에도13 불구하고

쯔르노예비치는13 년13 수도를13 스카다르 호수의13 쟈블략 에1482 (Skadar) (Zabljak)

서 보다13 수비가13 용이한13 험준한13 지역인13 로브첸13 산악지대로브첸스키13 돌라쯔 (

오늘날13 쩨티녜 의13 전신로13 옮겨13 오스만13 터키의13 (Lovcenski Dolac (Cetinje) )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였다는13 점이다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은13 훗날13 외세의13 침

략과13 지배가13 있을13 때마다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에13 저항13 정신과13 독립13 추진에13

대한13 원동력을13 제공하였으며 현13 분리13 독립파13 또한13 이러한13 역사를13 상기시키

며 세르비아로부터의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다 그리고13 세13 번째로13 발칸유럽13 국

가들13 중에선13 최초로13 년13 베네치아에서13 인쇄13 도구와13 인쇄기를13 도입하고1493

납으로13 된13 글자체와13 필체13 장식을13 위한13 주조물을13 만들어13 냄으로써 이후13 약13

여13 년간13 세르비아와13 보스니아에서13 키릴13 문자로13 인쇄된13 서적들의13 출판에13 100

상당한13 영향을13 미쳤다는13 자부심을13 안겨주었다

비록13 일부13 반론이13 있기는13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가들의13 주장에13 따르자면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재건한13 중세13 왕국은13 당시13 오스만13 터키에13 의해13 사라져13

버린13 세르비아13 네마니치13 왕조의13 국가13 전통과13 문화유산을13 그대로13 계승하고자13

노력했던13 것으로13 보인다 그러한13 실례는13 당시13 관직명과13 교구13 운영에13 있어서13

과거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관직명들이13 그대로13 채택하고 세르비아13 제국13 시절을13

본13 따13 lsquo황제와13 총대주교구의13 법원rsquo을13 설치했음을 그리고13 모든13 법률13 조항에13

있어13 과거13 두샨왕13 시절13 제작된13 lsquo두샨13 법전rsquo의13 조항들을13 그대로13 적용시켰다는13 점을13 들13 수13 있다 이를13 기초로13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13 가운데13 상당수는13 년13 1496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붕괴와13 중세13 몬테네그로13 왕국의13 종말은13 세르비아13 민족

이13 이룬13 중세13 국가의13 마지막13 형태가13 사라졌음을13 의미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5)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7

근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과13 세르비아니즘2

발칸유럽의13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마찬가지로13 몬테네그로인13 또한13 오스만13 터

키지배13 하에서13 터키의13 계획적이고13 철저한13 약탈13 경제13 정책으로13 인해13 사회 경

제적13 어려움이13 가중되게13 된다 과거13 아드리아13 해안13 상권을13 이용해13 이룩한13 왕

성한13 상업과13 무역13 활동13 그리고13 이를13 통한13 부의13 축적의13 가능하였던13 몬테네그

로인은13 이들13 분야를13 경시하고13 농업 임업 공공13 건설13 사업에13 치중하였던13 오스

만13 터키의13 정책에13 따라13 일련의13 암흑기를13 맞이하게13 되었다 또한13 오스만13 터키

의13 국력이13 쇠락해진13 세기13 말13 이후로13 세금13 부담이13 지나치게13 커지면서13 몬테17

네그로인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의13 충돌이13 빈번하게13 발생하였고 이에13 따라13 몬테

네그로인은13 상황이13 허락하는13 한13 베네치아13 등13 서구13 국가들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

의13 충돌시13 서구13 국가들을13 지원해13 아드리아의13 또13 다른13 주요13 지역인13 lsquo라구사공국오늘날13 두브로브니크 일대(Ragusa) ( (Dubrovnik) )rsquo의13 경우처럼13 이들로

부터13 자치권을13 보장받으려13 했다

이러한13 노력은13 페테르13 세1 (Peter I Petrović Njegoš 1782- 와13 페테르13 1830)

세2 (Peter II Petrović Njegoš 1830- 에13 의해13 그13 결실을13 이루게13 된다1851)

페테르13 세는13 당시13 여러13 외세의13 영향력13 하에13 흩어져13 있던13 몬테네그로13 부족들1

을13 한13 데로13 통합하고자13 노력하였고 국가13 수립과13 통치에13 필요한13 근대식13 법률

체계를13 정비하고 사법 행정의13 규율을13 정한13 사법13 행정법 과13 과거의13 관 (1798)

습법에서13 벗어나13 법률에13 근거해13 법을13 집행할13 수13 있도록13 만든13 법률집(1803)

을13 새로이13 구축하여13 놓았다 페테르13 세는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세르비아13 중 1

심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구상하였고 따라서13 강력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

현을13 위해13 제 차13 세르비아13 봉기1 (Prvi srpski ustanak 1804- 를13 통해13 세1813)

르비아13 자치13 국가를13 건설하려던13 카라조르제13 뻬트로비치(Karađorđe Petrović)

의13 봉기군과13 유기적13 연결13 관계를13 구축하게13 된다 이를13 위해13 페테르13 세는13 러 1

시아의13 지원을13 기대하며13 당시13 프랑스군이13 점령하고13 있던13 코토르만(Boka

과13 두브로브니크를13 탈환한13 후13 몬테네그로 헤르체고비나 코토르만Kotorska)

달마티아 지역13 등을13 중심으로13 한13 (Dalmacija) lsquo슬라브13 세르비아13 왕국rsquo을13 건설

138 김철민

하겠다는13 그의13 의지를13 표방하였으나 나폴레옹의13 러시아13 침공과13 함께13 그의13

바람은13 수포로13 돌아가게13 된다

이러한13 페테르13 세의13 남슬라브족13 이상에13 대해13 미오미르13 다쉬치1 (Miomir

는13 년13 이룬13 남슬라브족의13 통합13 정신이13 바로13 몬테네그로의13 페테르13 Dašić) 1918

세로부터13 출발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그는13 1 ldquo페테르13 세가13 세르비아인1

과13 크로아티아인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인 몬테네그로인의13 조화와13 형제애 단합

을13 강조하였던13 애국적인13 시인이자13 훌륭한13 정치가였다rdquo라고13 언급하면서 이러

한13 페테르13 세의13 정신이13 이후13 약하게나마13 니콜라13 시기까지13 이어지게13 되어1

년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국가가13 수립될13 수13 있었1918

다고13 말하고13 있다 무엇보다도13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그13 사(Dašić 1999 487)

실여부를13 떠나13 년13 수립된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그리고13 이13 왕국으로1918

의13 몬테네그로13 편입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이라는13 차원에서13 인식하고13 있다

는13 점에서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는13 독립13 세력들로부터13 일련의13

비판을13 받고13 있는13 상황이다

자신들의13 독립13 근대13 왕국을13 건설하고자13 했던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바람은13 현

대13 몬테네그로13 국가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설립자이자13 유명한13 시인이기도13 했

던13 페테르13 세13 시기에13 들어와서부터라13 볼13 수13 있다 반면13 세르비아인들은13 이13 2

당시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에13 크게13 호응하고13 있었고 이러

한13 그의13 이상을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도13 확산시키고자13 여러13 노력을13 기울이고13

있던13 시점이었다 페테르13 세는13 오스만13 터키의13 견제와13 프랑스의13 간섭13 그리고13 2

계속되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13 속에서도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결속과13 단결을13

이끌어내 년13 마침내13 오스트리아등13 주변13 강대국들로부터13 독립국가로서 1842

의13 인정을13 받을13 수13 있게13 된다 이어13 그의13 왕권은13 그의13 (Petrovich 1976 232)

조카인13 다닐로(Danilo I Petrović 1852~ 에게13 계승되었으나 년13 1860) 1860

암살에13 의한13 사망으로13 인해13 왕위는13 니콜라 에(Nikola Petrović 1860~1916)

게13 승계되게13 된다

니콜라는13 년부터13 시작된13 수차례의13 오스만13 터키13 공격을13 잘13 막아내었1862

고 년13 월13 1878 3 lsquo산스테파노 조약(San Stefano) rsquo과13 동년13 월13 6 lsquo베를린(Berlin)

조약rsquo의13 결과13 비록13 국제적으로13 인정은13 받지13 못했지만 몬테네그로는13 독립13 국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9

가를13 위한13 토대를13 구축할13 수13 있게13 되었다 베를린13 조약의13 결과13 몬테네그로의13

면적은13 과거보다13 배13 더13 확장되었고 오랜13 숙원이던13 2 (4400 9475 ) rarr

바르나 울찐13 등13 해안지대를13 확보할13 수13 있게13 된다 이때13 이후13 수도인13 쩨티녜

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는13 경제 사회적13 발전을13 이루게13 되어 년에13 들어 1899

와서는13 개의13 공립학교와13 개의13 사립학교가13 설립13 되게13 되었다 또한13 러시75 26

아의13 지도13 아래13 근대식13 군대가13 창설되었고 오스트리아의13 원조13 아래13 쩨티녜

에서13 코토르까지13 최초의13 근대식13 개념의13 도로와13 철도가13 설립되게13 된다

니콜라13 하의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관계는13 같(Komatina 1999 131)

은13 남슬라브족으로서13 선린관계를13 유지하고13 있었다 하지만13 세르비아13 정국13 주

도권을13 둘러싼13 오브레노비치 왕조와13 페트로비치 왕조(Obrenović) (Petrović)

간의13 계속된13 유혈13 사태는13 곧13 바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불협화음을13 초

래하게13 하였다10 특히13 세르비아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13 및13 발칸13 유럽내13 남

슬라브족13 국가들을13 통합해13 나가겠다는13 취지13 아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를13 강

력히13 추진하던13 란13 오브레노비치 시기13 이(Milan Obrenović 1868~1889)

후로13 양국은13 다소13 불편한13 관계가13 수립되었고 년13 마침내13 몬테네그로는13 1910

니콜라왕을13 중심으로13 하는13 독립13 군주국가임을13 선포하게13 되었다(Komatina

1999 37-38)11

10 이러한13 불협화음의13 또13 다른13 배경에는13 니콜라13 왕이13 세르비아13 오브레노비치13 왕조의13 정

적인13 카라조르제비치13 가문의13 페테르13 카라조르제비치(Peter I Karađorđević 1903~

까지13 세르비아13 왕위를13 엮임 를13 자신의13 장녀13 조르카 와13 결혼시켰던13 데서도13 1918 ) (Zorka)

그13 요인을13 찾을13 수13 있다

11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13 움직임13 속에13 치러진13 당시13 취임식에서13 니콜라왕은13 몬테네그로13

민족의13 독자성과13 독립된13 민족13 정체성을13 그들의13 중세13 역사13 속에서13 찾을13 것을13 천명하였

다 우리는13 과거13 제타13 왕국의13 보이슬라브 미하일로13 그리고13 보딘의13 자손이다 시간은13 ldquo

단지13 이13 땅위에13 존재하였던13 것을13 파괴할13 수13 있었지만 이13 안에13 꿈틀대고13 있는13 자유에13

대한13 의지와13 충성스러운13 산악인들의13 뜨거운13 심장을13 파괴할13 수는13 없었다 우리는13 오랜13

역사의13 토대13 위에13 왕국13 건설의13 부활을13 시작하였고 오늘날13 이13 왕국은13 여기13 천상의13 햇

빛아래13 반짝이는13 우리의13 고대왕국에13 그13 뿌리를13 두고13 있다rdquo httpwwwmontenetorg

history

140 김철민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IV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주요13 배경과13 진행과정13 1

세기13 초13 몬테네그로는13 비록13 니콜라왕의13 독립13 왕국13 선포에도13 불구하고20

복잡한13 발칸유럽의13 정세와13 더불어13 매우13 혼돈의13 시기를13 맞이하고13 있었다 몬

테네그로는13 년과13 년에13 치른13 제 차13 발칸전쟁에서의13 승전에도13 불1912 1913 1 2

구하고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종결이후13 세르비아13 주도의13 최초13 남슬라브족13 1918 1

통합국가인13 lsquo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Kraljevina SHS)rsquo하로13 편입되는13 아픔을13 겪게13 된다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제 차13 세계대전이전까지13 세르 2

비아의13 직접적인13 지배13 하에13 놓이게13 되었지만 제 차13 세계대전에서13 티토를13 중 2

심으로13 한13 파르티잔13 세력이13 승리한13 이후 사회주의13 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하에

서13 개13 구성13 공화국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6 ( -헤르체고비나 세르비

아 몬테네그로13 그리고13 마케도니아13 공화국 중13 하나인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으 )

로13 새롭게13 등장할13 수13 있었다

년13 베를린13 장벽13 붕괴로13 상징되는13 사회주의13 체제의13 몰락이후13 유고슬라1989

비아13 연방의13 해체13 위기와13 더불어13 몬테네그로는13 매우13 불확실한13 위치에13 놓이게13

된다 특히13 년에13 있었던13 다당제13 선거가13 실시된13 이후13 사회주의13 유고슬라 1990

비아13 연방은13 해체의13 길로13 들어서고13 있었고 이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도13 자신의13

진로를13 결정해야만13 했다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의13 압력과13 불확실한13 국

제적13 상황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년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형성에13 1992

가담하게13 된다12 하지만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에13 가담한13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연방13 구성국이었던13 세르비아가13 중심이13 된13 유고내전슬로베니아13 내전과13 크로(

12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이13 해체되는13 과정13 속에서13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

아와13 함께13 새로운13 연방을13 구성해13 나갈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단행하게13 된다 전체13 선

거인단의13 가13 참여하였던13 이13 선거에서13 찬성13 반대13 라는13 압도적인13 표차로13 66 96 3

몬테네그로13 국민은13 세르비아와13 운명을13 같이13 할13 것을13 결정짓게13 된다(Komatina 1999

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1

아티아13 내전과13 보스니아13 내전13 그리고13 이후13 년13 월에13 일어난13 와) 1999 3 NATO

의13 코소보13 전쟁13 등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미국과13 서유럽13 국가들로부터13

경제적 정치적13 그리고13 외교적13 고립을13 강요받아야만13 했다 결과적으로13 서구

로부터의13 고립은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13 형성과13 그13 유지에13

대한13 의구심을13 증폭시켰고 이러한13 국내13 분위기13 속에서13 년13 월13 몬테네 1999 8

그로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선출된13 로13 쥬카노비치 대통(Milo Đukanović)

령과13 그13 수뇌부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세르비아니즘의13 희생자임을13 상기시키며

독립을13 위한13 실질적인13 논의에13 들어가게13 된다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당시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13 권력자였던13 슬로보단13

로쉐비치 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에13 반발하였던13 몬테네(Slobodan Milošević)

그로13 대통령13 로13 쥬카노비치를13 중심으로13 제기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쥬

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세르비아13 정부에게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rsquo이13 아닌13 lsquo몬테네그로-세르비아13 연합13 국가rsquo라는13 명칭으로13 변경할13 것과13 현행13 연방13 헌법을13 폐지할13 것 그리고13 연방13 정부13 협의13 체제를13 각13 공화국간13 각료간13 협의체제

로13 전환13 할13 것13 등13 실질적인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방13 정부구성을13 제안하였다 이

후13 몬테네그로의13 요구는13 세르비아와의13 느슨한13 연방형태13 유지를13 전제로13 한13 독

자군대13 편성권과13 독자적13 외교권13 그리고13 독자13 통화권13 발행13 등으로13 확대되게13

된다

년13 월에13 들어와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연방정부에13 본격적으로13 연방13 2000 7

분리13 구상을13 제안하였고 몬테네그로가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존재를13 더13 이

상13 인정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점과13 그해13 월에13 치러질13 연방13 선거에13 불참할13 것13 9

그리고13 몬테네그로의13 향후13 국가13 목표를13 와13 에13 가입하는13 것을13 주요13 EU NATO

골자로13 하겠다는13 등의13 성명서를13 발표하였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그늘로부터13

벗어나13 독립을13 이루려던13 몬테네그로의13 의도는13 년13 월13 세르비아에서13 반2000 10

로쉐비치13 민주화13 혁명이13 일어나 민주인사인13 보이슬라브13 코슈투니짜( ) 反연방13 대통령이13 등장하게13 되자13 난관에13 봉착하게13 된다(Vojslav Koštunica) 13

13 년13 월13 일13 치러진13 유고연방의13 대선과13 총선13 투표에13 대해 선거13 위원회가13 발표2000 9 24

한13 결과와는13 달리 세르비아13 민주야당 의13 코슈투니차 (DOS) (Kos 후보13 진영에선13 tunica)

자체13 집계13 결과13 결선13 투표13 없이13 차13 투표에서13 로쉐비치를13 이겼다고13 선언하게13 된다1

이어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민주화를13 요구하는13 시위대의13 물결이13 베오그라드에13 집결하

142 김철민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취임한13 코슈투니짜13 대통령은13 ldquo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는13 하나의13 운명13 공동체이며13 더욱13 더13 강력한13 통합이13 필요하

다rdquo는13 점을13 강조하였고 이어13 이러한13 선언이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추구하고자13

했던13 미국과13 서방의13 지지를13 얻게13 됨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다소13 어

려움을13 겪게13 된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민주화13 혁명13 성공과13 대외적인13 압력에도13 불구하고 몬테

네그로의13 독립을13 향한13 움직임은13 계속13 지속되었다 특히13 몬테네그로는13 우선적

으로13 세르비아가13 주도하고13 있던13 연방으로부터의13 경제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갔는

데 그13 결과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의13 공식13 화폐가13 연방의13 공식화폐인13 2000 11 lsquo디나르 화(Dinar) rsquo 대신에13 독일의13 마르크화로13 지정되게13 된다 14 이어13 년13 2001 4

월에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양대13 세력 분리13 독립파와13 연방13 유지파 간13 ( )

총선13 결과13 근소한13 차이지만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승리함으로서13 독립13 추진에13 힘

을13 실어주게13 된다김철민( 2005 141)15 하지만13 총선13 직후 몬테네그로13 독립

추진에13 대한13 미국과13 의13 반응은13 EU ldquo이러한13 시도가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해칠13 수13 있다rdquo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보냈었고 마침내13 대표단이13 동년13 월13 몬 EU 4

테네그로를13 직접13 방문 몬테네그로13 독립13 반대에13 대한13 공식적인13 의견을13 분명

히13 하게13 된다 이러한13 국제13 사회의13 강력한13 반대에13 려13 몬테네그로13 정부는13

년13 월13 일13 이전에13 치르기로13 했던13 2001 7 13 lsquo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13 총선rsquo을13 철회한다는13 발표를13 해야만13 했다

년13 월13 세르비아13 총리이자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인13 정치13 구심점이었던13 2001 7

조란13 쥔쥐치 는13 (Zoran Žindjić) ldquo몬테네그로의13 독립추진이13 세르비아니즘을13 자

였고 총13 파업이13 유고13 전역에서13 시작되게13 되었다 계속된13 시위와13 민주화13 요구13 속에13

가장13 큰13 후원자였던13 러시아로부터도13 지원13 약속을13 받아13 내지13 못하자 로쉐비치는13 국

영13 에서13 자신의13 패배를13 인정하고13 정권13 이양을13 선언하게13 된다 선언내용은13 라디오TV lsquo

텔레비전13 세르비아 사이트인13 참조 뒤13 이어13 월13 일 민주13 인rsquo httpwwwrtscoyu 10 7

사인13 코슈투니차가13 마침내13 국회13 의사당에서13 대통령13 취임식을13 갖고13 정권13 인수13 작업에13

착수하기13 시작하였고 곧13 이어13 유럽연합은13 년13 코소보13 전쟁이후로13 발효된13 유고연 1999

방에13 대한13 석유금수조치를13 해제해13 주고 몬테네그로13 문제를13 비롯한13 모든13 중요13 현안들

에13 있어13 새롭게13 등장한13 민주13 정권에13 대한13 지지를13 분명히13 전달하게13 된다

14 년13 월13 이후13 공식화폐는13 유로 화로13 변경2002 1 (Euro)

15 총선13 결과 분리13 독립파지지13 세력13 를 연방13 유지파13 지지13 세력은13 를13 차지 421 407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극해13 코소보13 사태와13 같은13 심각한13 위험을13 초래13 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점을13 경고하였다 동시에13 ldquo몬테네그로가13 연방13 내에13 계속13 존속하기를13 강력히13 희망한다rdquo는13 메시지와13 함께 ldquo국방 외교 통화13 등에13 대한13 권한만을13 연방정부에13 이양하고13

나머지13 조세와13 여러13 권한들에13 대해선13 몬테네그로13 정부가13 독자적으로13 주도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합을13 제안하게13 된다16 하지만13 이러한13 제안이13

발표된13 직후13 몬테네그로13 정부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여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다

시13 실시할13 것임을13 발표하는13 것으로 세르비아13 정부의13 제안을13 거절하였다

여러13 차례의13 회담과13 논의13 끝에13 년13 월13 연방13 정부13 및13 세르비아와13 몬테2003 3

네그로13 정부간13 합의문이13 발표되었는데 주13 내용은13 년13 동안13 세르비아와13 몬테 3

네그로가13 연합한13 연방을13 계속13 존속할13 것과13 이후13 양13 공화국이13 몬테네그로13 독

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실시할13 것13 그리고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공화국(SRJ)rsquo에서13 lsquo세르비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rsquo으로13 변경할13 것13 등이었다 이

어13 이13 합의문에13 따라13 하나의13 국가연합13 체제라는13 틀13 속에서13 국방과13 외교 무

역 재정 인권부문13 등13 개13 내각은13 연방13 정부내13 합동행정기구에 나머지13 모든13 5

권한은13 각13 공화국이13 독자적으로13 운영하는13 느슨한13 연합13 국가13 탄생이13 결정되었

다 또한13 그13 내용에13 따라13 국제적으로는13 등13 국제기구에서13 하나의13 의석을13 UN

갖는13 단일13 국가로13 활동하며 현행13 조약과13 협정에13 대한13 과거13 유고연방의13 권리

와13 책임을13 승계한다는13 원칙이13 수립되게13 된다 그리고13 마침내13 년13 월13 세 2003 4

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13 의회에서13 양13 국13 지도부들간의13 몬테네그로13 연방13

존속13 안에13 대한13 협정이13 승인되게13 되면서13 현재에13 이르고13 있다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의13 향후13 전망과13 그13 의미13 2

새로운13 연합13 국가를13 구성하는13 데13 양13 국이13 합의한13 직후 년13 월13 세르 2003 3

비아-몬테네그로13 의회는13 몬테네그로13 출신의13 법률가13 스베토자르13 마로비치

를13 전체13 의석13 석13 중 찬성13 반대13 기권13 표로13 (Svetozar Marović) 126 65 47 14

16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13 대표적13 신문인13 보르바 참조- lsquo (Borba)rsquo httpwwwborbacoyu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제를13 구축해13 나가고13 있다 반면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이 2003 5

전13 로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의13 측근이자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강력히13 주장하였

던13 필립13 부야노비치 전13 총리가13 승리를13 거둠으로써 현재13 몬(Filip Vujanović)

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정국은13 매우13 혼미한13 상태로13 진행되고13 있다

연합13 국가를13 계속13 유지해13 나가려는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노력들을13 뿌리치고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으로부터13 벗어나13 새로이13 독립13 국가를13 구성해13 나가려는13 몬

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는13 향후13 다소13 난항을13 겪을13 것으로13 예상된다 그러한13 분

석을13 내리는13 배경에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13 그리고13 발칸반도를13 둘러싼13 다

음과13 같은13 장애요소들이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기13 때문이다 몬테

네그로의13 향후13 독립문제는13 아래13 요소들의13 향배에13 따라13 결정되어질13 것으로13 보

인다

우선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는13 가장13 큰13 장애13 요소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독립

을13 향한13 단합된13 의지를13 어느13 정도까지13 그리고13 어디까지13 보여줄13 수13 있을13 것인

가 라는13 문제이다 몬테네그로는13 지난13 년13 월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몬테네 2003 5

그로의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부야노비치13 전13 총리가13 대통령에13 당선되었지만 그13

전개13 과정이13 그리13 매끄럽지13 못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당시13 대통령13 선거13 투표율

은13 전체13 유권자의13 득표율은13 에13 불과하였는데 그13 동안13 부야노비치13 48 65

후보는13 년13 월과13 년13 월에13 치러진13 두13 차례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최다13 2002 12 2003 2

득표율을13 기록하긴13 했으나 두13 차례13 선거13 모두13 헌법상13 최저13 투표율인13 를13 50

밑돌아13 무효처리가13 되었었다 따라서13 여러13 논란13 속에13 치러진13 년13 월13 선 2003 5

거에선13 쥬카노비치의13 주도13 아래13 조정된13 새로운13 선거법13 즉 최저13 유효13 투표율13

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선거가13 치러지게13 되었다 이러한13 점은13 지난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이13 2001 4

주요13 이슈로13 떠13 오른13 총선을13 통해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근소한13 차로13 승리하긴13

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으로13 국명이13 바뀐13 후13 몬테네그로13 최초13 대통령이13

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이다 실제 몬테네그로13 헌법적13 지위변화에13 관한13 국민투표가13 실행되기13 위해

선13 전체13 몬테네그로13 의원13 명13 가운데13 인13 명의13 동의가13 필요하지만77 23 52

년13 월13 선거에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석을13 얻는13 데13 그친13 실정이다 더불어13 2001 4 44

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산업13 기지와13 생산능력이13 취약해13 주력13 산업으로13 관광업을13 육성시키고13 있는13 몬

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비아인이라는13 점(httpwwwvisit- 그리고13 세르비아로부터13 montenegrocom)

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세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해13 나가려는13 데13 있어13 세르비아의13 강력한13

17 년13 인구조사에13 따르자면 몬테네그로13 총13 인구13 비율은13 몬테네그로인이13 약13 1991 617(

명 세르비아인이13 약13 명 무슬림이13 약13 명 알바니381000 ) 93( 57000 ) 145( 89000 )

아인이13 약13 명 기타13 인구가13 약13 명 를13 차지한다 이외에도13 세65( 40000 ) 8( 49000 )

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년13 기준으로13 몬테네그로13 자체13 방위13 병력이13 여13 명에13 불과한13 상황에서13 만3000

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세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13 분할과13 민족간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휘말릴13 가능성이13 높

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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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민 세르비아13 민족의13 기원과13 민족13 정체성에13 관한13 연구 동유럽발칸학 제 2003 「 」 985172 985173권13 호 한국동유럽발칸학회5 1 pp 31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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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텔레비전13 세르비아 국영13 방송국13 lsquo rsquo httpwwwrtscoyu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13 사이트13 UN httpwwwunmikonlineorg

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5: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29

세르비아니즘은13 나폴레옹13 혁명전쟁의13 여파로13 세기13 중엽13 이후13 발칸유럽에13 19

유입된13 민족주의가13 세르비아13 민족들13 사이에13 하나의13 이데올로기로13 정착되고13

이와13 함께13 세르비아13 근대13 민족국가가13 수립되면서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13 표출의13

한13 형태로써13 발전되기13 시작했다김철민( 1999 26)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은13 몬테네그로와13 인접한13 현재의13 세르비아13 남부13 산악지

대를13 중심으로13 형성된13 lsquo라쉬카(Ras 공국ka) rsquo을13 계승하여13 발전하게13 된다 라쉬

카13 공국의13 대족장 이었던13 스테판13 네마냐(Veliki župan) (Stefan Nemanja

는13 비잔틴의13 지원을13 받아13 년13 몬테네그로13 아드리아13 해안지1166~1196) 1186

대를13 근거지로13 하고13 있던13 두클리야 후에13 제타 공국으로13 불림(Duklja (Zeta) )

공국을13 복속하고13 국가와13 정교회간의13 강력한13 유대관계를13 이끌어냄으로써13 세

르비아13 중세왕조의13 기틀을13 마련하는데13 성공하였다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로13 1

몬테네그로13 지역이13 세르비아가13 주도하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의13 일원으로13

편입된13 이후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은13 라쉬카13 공국이13 제타13 공국을13 복속한13 이

후13 형성된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간의13 정치 문화적13 월13 관계 그리고13 발칸

유럽13 정착13 초기13 세르비아인과13 몬테네그로인13 간의13 혈통과13 정체성의13 접한13 관

련성을13 밝혀내고자13 노력하여13 왔다 세르비아의13 이반13 보쥐치 와13 (Ivan Božić)

시마13 치르코비치 등은13 비잔틴13 제국의13 황제인13 콘스탄틴13 세(Sima Ćirković) 7

(Constantine VII 913- 의13 기록을13 근거로 크로아티아13 아드리아해13 연안959)

과13 두브로브니크 그리고13 특히13 몬테네그로의13 코토르 만(Dubrovnik) (Kotor)

즉13 과거13 제타13 지역에13 정착해13 있던13 자훔랸 트라블리얀(Zahumljan) (Travuljan)

코나블랸 부족13 등이13 세르비아13 부족의13 일파였음을13 주장하고13 있다(Konavljan)

(Ćirkovic and Bozic 1977 108-112 Bozic Ćirkovic Ekmecic and

Dedijer 1973 22-23)

세르비아는13 네마냐의13 아들인13 스테판13 네마니치(Stefan Nemanjic 1196~

시대에13 들어와13 독립왕국을13 건설하였고 이어13 네마니치의13 동생인13 1228) (1217)

성13 사바 의13 노력으로13 년13 세르비아13 독립13 정교회를13 구축하게13 된(Sv Sava) 1219

다 세르비아13 독립13 정교회의13 초대교주가13 된13 성13 사바가13 현 코소보13 지역의13 ( ) 現

쥐짜 에13 독립교구를13 세운13 이후13 코소보는13 세르비아인에게13 유대인들에게13 (Žica)

예루살렘이13 지니는13 의미와13 맞먹는13 성스러운13 종교적13 의미를13 지니게13 되었다

130 김철민

영토적인13 면에서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은13 세르비아13 역사상13 가장13 위대한13 왕으

로13 칭송받는13 스테판13 두샨왕13 시기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광활한13 영토에13 기초

하고13 있다 당시13 서로마와13 비잔틴제국 소아시아의13 중간13 교역로에13 있던13 세르

비아는13 이웃13 국가들과의13 활발한13 중개무역을13 통한13 부의13 축적과13 안정된13 정치력13

그리고13 강력한13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왕국의13 영토를13 현재의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

에서부터13 마케도니아 그리스13 남부지역으로까지13 넓힐13 수13 있었다 하지만13

년13 세의13 나이로13 두샨이13 사망한13 이후13 세르비아13 왕국은13 왕권13 다툼으로13 1355 46

인한13 내부13 분열과13 오스만13 터키의13 침입으로13 쇠락하게13 된다 특히13 년13 월13 1389 6

현13 코소보13 언덕에서13 무라드13 세가13 이끄는13 대규모13 오스만13 터키군에13 의해13 세르1

비아의13 라자르(Lazar Hrebeljanović 1371~ 왕자가13 이끄는13 세르비아13 1389)

연합군이13 패배하고13 난13 후13 세르비아13 중세13 왕국은13 몰락의13 길을13 가게13 되었다3

이후13 년까지13 지속된13 약13 여13 년간의13 오스만13 터키13 지배13 하에서도13 세1878 500

르비아인들은13 세르비아13 정교를13 중심으로13 민족13 정체성과13 민족의식을13 계속13 유

지할13 수13 있었다 근대13 이후13 오스만13 터키의13 쇠락13 속에13 무슬림13 지주들과13 관료

들의13 폭정에13 저항하기13 위해13 시작된13 세르비아의13 제 차13 봉기1 2 (Srpski

는13 점차13 이13 지역에13 보급된13 민족주의ustanak 1804~1813 1815~1830)

에13 의해13 영향을13 받았고 이에13 따라13 처음13 사회적13 봉기로13 시작된13 (Nationalism)

반 터키13 저항13 운동은13 점차13 독립된13 민족( )反 -국가(Nation- 건설을13 위한13 State)

민족주의13 운동으로13 확대13 발전되게13 되었다 이후13 세르비아는13 여러13 정치적13 어

려움과13 외세의13 간섭을13 이겨내고 마침내13 년13 월13 산13 스테파노 1878 3 (San

조약과13 동년13 월13 베를린 조약에13 의해13 근대13 독립국가로13 성장Sefano) 6 (Berlin)

하게13 된다4

3 이후13 코소보13 전투에13 관련된13 여러13 전설들은13 훗날13 세르비아13 민중들에게13 민담과13 구전문

학을13 통해13 계속해서13 전해13 내려옴으로써13 오스만13 터키등13 외세에13 대한13 세르비아13 민족의13

저항정신을13 고취시켰다 이에13 대해13 스타노예13 스타노예비치 (Stanojevic 1996

는13 이후13 코소보는13 세르비아13 역사에서13 제 차13 코소보전투와13 함께13 웅장했192-193) ldquo 1 2

던13 세르비아13 중세왕조의13 몰락과13 이민족의13 세르비아13 지배가13 시작되는13 치욕의13 역사로13

기록되었고 훗날13 세르비아13 민족의식의13 출발점으로13 인식되게13 된다 라고13 말하고13 있다 rdquo

4 당시13 세르비아는13 이들13 조약들로13 인해13 비록13 독립은13 인정받았으나 세르비아니즘의13 주

요13 목표였던13 보스니아13 지역과13 몬테네그로를13 통한13 아드리아해로의13 해상통로13 확보가13

오스트리아의13 방해로13 실패하는13 아픔을13 겪어야13 했다 그13 결과13 양13 국은13 세기를13 전후 20

해서13 적대관계를13 형성하였고 이러한13 감정싸움은13 마침내13 제 차13 세계대전으로13 이어지 1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1

세르비아니즘의13 이론적13 기초와13 그13 실천방향은13 년13 일리야13 가라샤닌1844

에13 의해13 처음으로13 제창되었다 그는13 중세13 세르비아13 두샨왕13 (Ilija Garašanin)

시대의13 영토적13 당위성을13 기초로13 한13 lsquo대 세르비아( ) (Velika Srbija)大 rsquo 국가13 건

설을13 세르비아13 근대국가의13 모델로13 설정하였고 이를13 위해13 이웃한13 몬테네그로

를13 비롯 당시13 합스부르크13 제국 년13 이후13 (1866 lsquo오스트리아-헝가리13 제국rsquo으로13 개칭의13 지배13 하에13 있던13 보이보디나 크로아티아 그리) (Vojvodina) (Croatia)

고13 보스니아 와13 헤르체고비나 지역을13 통합할13 것을13 주장(Bosnia) (Herzegovina)

하였다 또한13 그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을13 위해13 영토13 확대13 대상지역에13 거주

하는13 세르비아인들13 또한13 적극적으로13 동참해13 줄13 것을13 호소하였다(Petrovich

1976 231-232)5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세기13 당시13 민족주의에13 심취되어13 있 19

던13 세르비아인들13 사이에13 커다란13 반향을13 불러13 일으켰고 이들13 사이에13 세르비

아의13 지도력13 하에13 남슬라브족의13 통일이13 가능하리라는13 생각들이13 점차13 확대되

는13 계기를13 마련해13 주게13 된다 특히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

은13 페테르13 카라조르제비치 시기에13 들어(Peter I Karađorđević 1903~1918)

와13 더욱13 더13 구체화13 되었다 페테르는13 서구적이고13 근대적인13 시각을13 바탕으로13

자신의13 임기동안13 세르비아를13 발칸유럽에서13 가장13 강력한13 근대왕국으로13 발전

시켰고 시민13 자유와13 민주화13 그리고13 이를13 기초로13 한13 최초의13 입헌정부를13 수립

함으로써13 lsquo세르비아의13 르네상스기rsquo를13 이루게13 된다 또한13 오스트리아의13 보스

니아13 병합 등13 주변13 외세들의13 견제13 속에서도13 제 차13 발칸전쟁(1908) 1 2 (1912

을13 통해13 대규모13 영토13 확장을13 이루어13 냄으로써13 세르비아니즘13 구현에13 기1913)

여했다는13 평가를13 받게13 되었다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세르비아는13 마침내13 몬테네그로를13 완전13 병합하는13 데13 1

성공하였고 자신이13 주도하는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lsquo세르비아-크

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 년13 이(Kraljevina Srba Hrvata i Slovenaca 1929

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Kraljevina Jugoslavija)rsquo으로13 개칭됨)rsquo을13 또한13 건설함으로써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을13 완성하게13 된다 하지만13 세르비아는13 새로운13 통

합13 왕국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이라13 평가한13 반면 왕국내13 주요13 구성13 민족인13

게13 된다 김철민( 1999 29 Dimic 1998 25)

5 가라샤닌이13 주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주13 핵심13 내용은13 참조Vojvodić(2000 243-254)

132 김철민

크로아티아인과13 슬로베니아인은13 남슬라브족의13 평등13 국가라는13 점을 그리고13

세르비아의13 압력과13 회유에13 의해13 강제13 복속당한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엔13 또13 다

른13 지배자를13 맞이했다는13 역사적13 평가를13 낳게13 하였다

역사13 속에13 비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III

중세13 두클리야 제타 공국과13 세르비아1 ( )

몬테네그로인이13 발칸유럽에13 들어13 온13 시기는13 세기와13 세기경으로13 추정되5 6

며 이들은13 일단의13 남슬라브족들과13 함께13 다뉴브13 강을13 건너13 당시13 비잔틴13 제국13

지배13 하에13 있었던13 현13 지역에13 정착하게13 된다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의13 주장대

로13 현재까지의13 기록에13 따르자면13 발칸반도13 이주13 초기 몬테네그로인은13 다른13

남슬라브족13 특히13 세르비아인과13 거의13 구별되는13 않은13 채13 같은13 민족의13 일파로13

인식되고13 있음을13 확인할13 수13 있다 아바르 족과13 함께13 연합해13 비잔틴13 제 (Avar)

국이13 차지하고13 있던13 발칸유럽13 지역을13 장악하는13 데13 성공한13 남슬라브족은13 산악

지대가13 많은13 발칸유럽의13 지리적13 특성상13 점차13 느슨한13 정치적 사회적13 구조를13

지닌13 부족13 공동체로13 나눠지게13 되었다6 몬테네그로의13 중세13 역사13 또한13 이러한13

지리적13 험준함과13 남슬라브족의13 분열에13 따라13 시작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함께13 발칸반도로13 이주해13 들어13 온13 몬테네그로인은13 세7

6 산악지대가13 많은13 발칸유럽으로13 이주하였던13 남슬라브족은13 광활한13 평야13 지역으로13 이주

하였던13 여타13 다른13 슬라브족들과13 달리13 세월의13 흐름과13 함께13 각13 부족13 공동체들13 간에13 느

슨한13 정치적 사회적13 구조만을13 지니게13 된다 그13 이유는13 발칸13 지역의13 지리적13 험준함에13

따른13 것으로 이로13 인해13 남슬라브족은13 작은13 집단13 구성체로13 독자적인13 부족을13 형성하여

갔고 다음13 세대가13 등장하기13 전에13 각13 부족13 공동체들13 간의13 교류와13 문화13 전달이13 단절되

었으며 점차적으로13 관습 언어 정치13 조직13 간의13 차이점들이13 커져가게13 된다 이러한13

단절과13 차이점13 확대는13 곧13 이어13 남슬라브13 민족들13 간의13 정치적13 분열과13 군사력의13 약화로13

이어지게13 되었다 이에13 따라13 세기13 말에13 접어들게13 되면서13 남슬라브족의13 분화가13 확대 9

되기13 시작하였고 이러한13 분화에13 따라13 남슬라브족들은13 시기를13 거치면서13 크게13 불가리

아족 세르비아족 크로아티아족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족이라는13 개의13 남13 슬라브족13 공동 4

체로13 나누어지게13 된다 김철민( 2003 317-3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3

기13 이후에13 들어와13 코토르 부드바 바르 울찐(Kotor) (Budva) (Bar) (Ulcinj)

등13 현재의13 몬테네그로13 아드리아13 연안을13 중심으로13 자신들의13 부족13 국가들을13 수

립하게13 된다 몬테네그인은13 정착13 초기13 다른13 남슬라브족처럼13 고대13 원시13 슬라

브족의13 부족13 종교를13 지니고13 있었으나 점차13 시간이13 흐르면서13 이13 지역13 원주민

인13 로마인의13 사회와13 문화에13 점차13 동화되어13 갔고 그13 결과13 세기13 이후로13 로 12

마인들의13 신앙인13 기독교를13 자신의13 종교로13 수용하게13 되었다7

현13 세르비아로부터13 분리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분리13 독립파는13 몬테네그로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지배13 하로13 들어가기13 이전까지13 약13 년간13 고유한13 정체1918 1000

성을13 지니고13 발전하였으며 그13 역사는13 세기에13 성립된13 9 lsquo두클리야13 공국rsquo에서부터13 비롯되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비록13 세기13 무렵13 당시13 비잔틴13 제국의13 영 10

향력13 하에13 있었지만 두클리야13 공국의13 영토는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지방의13 대부

분을13 비롯해 남으로는13 알바니아13 상당13 지역인13 남부13 아드리아13 해안까지13 그리

고13 서쪽으로는13 현재의13 헤르체고비나13 지방을13 포함하고13 있었다 두클리야13 공국

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시조인13 보이슬라브 가13 년13 몬테네그로13 해(Vojislav) 1042

안가13 바르에서13 치룬13 비잔틴13 제국과의13 싸움에서13 승리를13 거둔13 이후13 본격적으로13

독립13 국가로서의13 기틀을13 잡아가게13 된다 이후13 두클리야의13 번영은13 보이슬라브

의13 아들인13 미하일로 와13 그의13 아들13 보딘(Mihailo 1046~1081) (Bodin 1081~

치하에서13 절정에13 이르렀다 미하일로는13 왕권을13 넘겨받은13 이후13 비잔틴1101)

과의13 평화13 관계를13 유지함과13 동시에 안정된13 국력과13 발달된13 경제력을13 바탕으

로13 년13 로마교황13 그레고리13 세 로부터13 독립13 왕국을13 인정받1077 7 (Gregory VII)

게13 되었다 미하일로의13 뒤를13 이은13 보딘은13 년13 로마13 교황13 클리멘트13 세 1089 3

로부터13 가톨릭13 대주교13 관직을13 획득하는13 등13 종교를13 통한13 국가13 (Clement III)

지배권13 강화를13 추진함으로써13 왕국의13 안정과13 황금기를13 이루게13 된다 하지만13

로마13 교회와의13 접한13 관계13 수립은13 곧13 이어13 비잔틴13 제국의13 강력한13 견제를13 불

러왔고 보딘13 사후13 일어난13 권력13 투쟁으로13 국력의13 약화가13 발생하게13 된다 그13

7 이때13 당시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을13 장악하고13 있던13 로마13 교회 후에13 가(

톨릭으로13 발전 의13 영향력13 하에13 놓여13 있었다 비록13 비잔틴13 제국의13 콘스탄티노플13 교회)

후에13 정교 로13 발전 와13 인근13 마케도니아와13 불가리아13 지역에서13 비롯된13 보고 교가13 한( lsquo rsquo )

때13 영향력을13 발휘하기도13 했지만 기록에13 따르자면13 이후로13 상당13 기간13 동안13 몬테네그로

인은13 가톨릭13 신앙에13 매우13 충실하였다고13 볼13 수13 있다 httpwwwmontenetorghistory

134 김철민

결과13 년13 비잔틴13 제국의13 지원을13 받은13 라쉬카13 공국의13 스테판13 네마냐에13 의1186

해13 정복당함으로써 세르비아의13 지배를13 받게13 되었다 이후13 두클리야13 공국은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13 하에서13 이13 지역13 제타강의13 이름을13 따13 lsquo제타13 공국rsquo으로도13 불리게13 된다

스테판13 네마냐는13 제타13 공국을13 지배한13 이후13 제타13 공국의13 모든13 도시들을13 파

괴하였고 보고 교13 추방과13 더불어13 가톨릭을13 믿고13 있던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13 정교로의13 강제13 개종13 그리고13 세르비아인으로의13 동화13 작업을13 추진하

게13 된다8 라쉬카13 공국은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아들인13 스테판13 네마니치13 시기에13

들어와13 중세13 세르비아13 독립13 왕국으로13 발전하였고 세르비아13 통치13 하에서13 몬

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지역을13 활용 활발한13 무역거래를13 통해13 상업적

경제적13 발전을13 이룩하게13 된다 하지만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에13 대해13 몬테네그

로13 분리13 독립파는13 당시부터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로부터13 독립하기13 위

한13 여러13 저항13 운동을13 추진하였고 그13 결과13 lsquo세르비아와13 그리스의13 왕이자13 황제rsquo로13 불렸던13 세르비아의13 두샨13 왕이13 년13 사망한13 직후 독립을13 얻을13 수13 있1355

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은13 두샨왕13 사후13 비록13 왕

권13 다툼과13 오스만13 터키의13 유럽13 원정으로13 다소13 지배권이13 약화되었지만 이13 시

기13 동안13 제타13 공국은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에서13 결코13 벗어나지13 못했다고13 주장하

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3)

제 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은13 년13 발쉬치 시조인13 발샤13 세2 1356 (Balšić 1

에서13 유래됨 왕조에서부터13 비롯되게13 된다 세르비아의13 정치적13 혼란(Balša I) )

을13 틈타13 왕국을13 재건하였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점차13 세력을13 확대해13 두샨왕13 당시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수도였던13 스코쁠예 오늘날13 마케도니아13 수도(Skoplje )

그리고13 뻬치 와13 쁘리즈렌 등13 코소보를13 비롯해13 과거13 라쉬카13 공(Peć) (Prizren)

국의13 지배13 지역들을13 하나씩13 점령하여13 갔으며 서쪽으로는13 두브로브니크

8 세기13 몬테네그로의13 가장13 유명한13 역사가13 중13 한명인13 빠블레13 로빈스키19 (Pavel

는13 당시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몬테네그로인13 정체성13 말살13 작업을13 비판하고13 있는13 Rovinski)

데 그에13 따르자면13 네마냐가13 당시13 두클리야의13 모든13 종교13 서적 역사서 지리서 문학

서13 등13 종류의13 구분13 없이13 불태워13 버렸다고13 비난하고13 있다 httpwwwmontenetorg

두클리야13 복속13 이후13 네마냐의13 여러13 행적에13 관해선13 history Božić Ćirković

참조Ekmečić and Dedijer(1973 51)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5

을13 포함13 헤르체고비나13 지역까지13 그13 세력을13 확장하여13 갔다 이13 (Dubrovnik)

당시13 발쉬치13 가문은13 중세13 세르비아의13 네먀니치13 왕조와13 여러13 경로에13 걸쳐13 가

족13 관계를13 형성하고13 있었는데 세르비아13 주장에13 따르자면13 몬테네그로는13 이

러한13 혼인13 관계를13 통한13 정통성13 인정에13 주력하였다고13 언급하고13 있다 실제13 기

록에13 따르더라도13 당시13 발쉬치13 왕조는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전통을13 계승하겠

다고13 나선13 보스니아13 왕국과13 여러13 차례13 전쟁을13 치러야13 했으며 년에는13 현13 1377

세르비아의13 레쉐보 에서13 세르비아의13 왕으로13 등극한13 보스니아의13 (Mileševo)

트브르트코13 세 의13 왕위13 계승을13 부정하기도13 하였다I (Tvrtko I) 9 한때13 왕국의13

발전을13 이루었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년13 코소보13 전투에서13 세르비아를13 도와13 1389

오스만13 터키와13 벌였던13 전투에서13 패배하여13 커다란13 위기를13 초래하게13 된다 곧13

이어13 년13 발샤13 세 가13 추진하였던13 아드리아해13 상권13 획득을13 둘1419 3 (Balša III)

러싼13 베니스와의13 전쟁에서13 패하면서13 제타13 공국의13 발쉬치13 왕조는13 몰락의13 길을13

가게13 되었다

한13 동안13 외세의13 침입과13 권력내분에13 시달렸던13 제타13 공국은13 중세13 몬테네그

로13 왕국의13 제 대13 왕조인13 쯔르노예비치 왕조의13 출현과13 더불어13 안3 (Crnojević)

정을13 되찾게13 된다 쯔르노예비치13 왕조는13 해안지대를13 중심으로13 발전을13 이룬13

다른13 왕조들과는13 달리13 몬테네그로13 북부13 산악지대인13 로브첸 지역에(Lovčen)

서부터13 시작되었다 하지만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마지막13 왕조였던13 쯔르노예비

치13 왕조는13 그리13 오랜13 기간13 유지되지13 못하였다 우선13 시조인13 스테판13 쯔르노예

비치 와13 그의13 아들13 이반13 쯔르노예비치(Stefan Crnojević 1427~1465) (Ivan

Crnojević 1465- 그리고13 오스만13 터키의13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다13 전사1490)

9 발쉬치13 왕조는13 비록13 과거13 두클리야13 공국의13 뒤를13 이은13 제타13 공국의13 지배자였지만 또

한13 동시에13 자신들을13 과거13 라쉬카13 공국의13 영주로 세르비아13 네마니치가의13 먼13 인척으로13

생각하고13 있었다 따라서13 문자에13 있어서도13 자신들이13 주로13 쓰는13 라틴문자와13 함께13 세르

비아에서의13 키릴문자를13 혼용해서13 사용하였고 종교에13 있어서도13 비록13 가톨릭을13 국가적13

종교로13 인정하고13 있었지만 세르비아가13 믿고13 있는13 정교에13 대해서도13 여러13 관심과13 주도

적13 역할을13 수행하고13 있었다 이러한13 예는13 발쉬치13 왕조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라쟈르13 1375

왕자와13 함께13 세르비아13 정교회13 총대주교를13 선출하기13 위해13 소집한13 교회13 성직자단13 회의

를13 주도한13 데서도13 확인될13 수13 있다 이에13 대해13 세르비아니즘이13 확산되고13 있던13 근대

세르비아의13 민족주의13 학자인13 쥬라13 다니취치 는13 위의13 경우를13 해(Daničić 1876 11-13)

석하는13 데13 있어 제타13 공국의13 세르비아에13 대한13 의존과13 종속성이13 높았다고13 강조하고13

있다

136 김철민

한13 이반의13 아들13 쥬라즈13 쯔르노예비치 를13 마(Djuradj Crnojevic 1490~1496)

지막으로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역사는13 끝이13 나게13 된다

하지만13 비록13 짧은13 기간의13 통치였지만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몬테네그로13 역

사에13 남긴13 영향은13 매우13 컸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시작

과13 함께13 제타13 공국은13 오늘날13 명칭인13 쯔르나13 고라 몬테네그로(Crna Gora

란13 지명으로13 불리게13 되었다 두13 번째로는13 이13 시기13 주변의13 남(Montenegro))

슬라브족13 국가들이13 모두13 오스만13 터키의13 지배13 하로13 넘어갔음에도13 불구하고

쯔르노예비치는13 년13 수도를13 스카다르 호수의13 쟈블략 에1482 (Skadar) (Zabljak)

서 보다13 수비가13 용이한13 험준한13 지역인13 로브첸13 산악지대로브첸스키13 돌라쯔 (

오늘날13 쩨티녜 의13 전신로13 옮겨13 오스만13 터키의13 (Lovcenski Dolac (Cetinje) )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였다는13 점이다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은13 훗날13 외세의13 침

략과13 지배가13 있을13 때마다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에13 저항13 정신과13 독립13 추진에13

대한13 원동력을13 제공하였으며 현13 분리13 독립파13 또한13 이러한13 역사를13 상기시키

며 세르비아로부터의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다 그리고13 세13 번째로13 발칸유럽13 국

가들13 중에선13 최초로13 년13 베네치아에서13 인쇄13 도구와13 인쇄기를13 도입하고1493

납으로13 된13 글자체와13 필체13 장식을13 위한13 주조물을13 만들어13 냄으로써 이후13 약13

여13 년간13 세르비아와13 보스니아에서13 키릴13 문자로13 인쇄된13 서적들의13 출판에13 100

상당한13 영향을13 미쳤다는13 자부심을13 안겨주었다

비록13 일부13 반론이13 있기는13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가들의13 주장에13 따르자면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재건한13 중세13 왕국은13 당시13 오스만13 터키에13 의해13 사라져13

버린13 세르비아13 네마니치13 왕조의13 국가13 전통과13 문화유산을13 그대로13 계승하고자13

노력했던13 것으로13 보인다 그러한13 실례는13 당시13 관직명과13 교구13 운영에13 있어서13

과거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관직명들이13 그대로13 채택하고 세르비아13 제국13 시절을13

본13 따13 lsquo황제와13 총대주교구의13 법원rsquo을13 설치했음을 그리고13 모든13 법률13 조항에13

있어13 과거13 두샨왕13 시절13 제작된13 lsquo두샨13 법전rsquo의13 조항들을13 그대로13 적용시켰다는13 점을13 들13 수13 있다 이를13 기초로13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13 가운데13 상당수는13 년13 1496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붕괴와13 중세13 몬테네그로13 왕국의13 종말은13 세르비아13 민족

이13 이룬13 중세13 국가의13 마지막13 형태가13 사라졌음을13 의미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5)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7

근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과13 세르비아니즘2

발칸유럽의13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마찬가지로13 몬테네그로인13 또한13 오스만13 터

키지배13 하에서13 터키의13 계획적이고13 철저한13 약탈13 경제13 정책으로13 인해13 사회 경

제적13 어려움이13 가중되게13 된다 과거13 아드리아13 해안13 상권을13 이용해13 이룩한13 왕

성한13 상업과13 무역13 활동13 그리고13 이를13 통한13 부의13 축적의13 가능하였던13 몬테네그

로인은13 이들13 분야를13 경시하고13 농업 임업 공공13 건설13 사업에13 치중하였던13 오스

만13 터키의13 정책에13 따라13 일련의13 암흑기를13 맞이하게13 되었다 또한13 오스만13 터키

의13 국력이13 쇠락해진13 세기13 말13 이후로13 세금13 부담이13 지나치게13 커지면서13 몬테17

네그로인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의13 충돌이13 빈번하게13 발생하였고 이에13 따라13 몬테

네그로인은13 상황이13 허락하는13 한13 베네치아13 등13 서구13 국가들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

의13 충돌시13 서구13 국가들을13 지원해13 아드리아의13 또13 다른13 주요13 지역인13 lsquo라구사공국오늘날13 두브로브니크 일대(Ragusa) ( (Dubrovnik) )rsquo의13 경우처럼13 이들로

부터13 자치권을13 보장받으려13 했다

이러한13 노력은13 페테르13 세1 (Peter I Petrović Njegoš 1782- 와13 페테르13 1830)

세2 (Peter II Petrović Njegoš 1830- 에13 의해13 그13 결실을13 이루게13 된다1851)

페테르13 세는13 당시13 여러13 외세의13 영향력13 하에13 흩어져13 있던13 몬테네그로13 부족들1

을13 한13 데로13 통합하고자13 노력하였고 국가13 수립과13 통치에13 필요한13 근대식13 법률

체계를13 정비하고 사법 행정의13 규율을13 정한13 사법13 행정법 과13 과거의13 관 (1798)

습법에서13 벗어나13 법률에13 근거해13 법을13 집행할13 수13 있도록13 만든13 법률집(1803)

을13 새로이13 구축하여13 놓았다 페테르13 세는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세르비아13 중 1

심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구상하였고 따라서13 강력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

현을13 위해13 제 차13 세르비아13 봉기1 (Prvi srpski ustanak 1804- 를13 통해13 세1813)

르비아13 자치13 국가를13 건설하려던13 카라조르제13 뻬트로비치(Karađorđe Petrović)

의13 봉기군과13 유기적13 연결13 관계를13 구축하게13 된다 이를13 위해13 페테르13 세는13 러 1

시아의13 지원을13 기대하며13 당시13 프랑스군이13 점령하고13 있던13 코토르만(Boka

과13 두브로브니크를13 탈환한13 후13 몬테네그로 헤르체고비나 코토르만Kotorska)

달마티아 지역13 등을13 중심으로13 한13 (Dalmacija) lsquo슬라브13 세르비아13 왕국rsquo을13 건설

138 김철민

하겠다는13 그의13 의지를13 표방하였으나 나폴레옹의13 러시아13 침공과13 함께13 그의13

바람은13 수포로13 돌아가게13 된다

이러한13 페테르13 세의13 남슬라브족13 이상에13 대해13 미오미르13 다쉬치1 (Miomir

는13 년13 이룬13 남슬라브족의13 통합13 정신이13 바로13 몬테네그로의13 페테르13 Dašić) 1918

세로부터13 출발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그는13 1 ldquo페테르13 세가13 세르비아인1

과13 크로아티아인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인 몬테네그로인의13 조화와13 형제애 단합

을13 강조하였던13 애국적인13 시인이자13 훌륭한13 정치가였다rdquo라고13 언급하면서 이러

한13 페테르13 세의13 정신이13 이후13 약하게나마13 니콜라13 시기까지13 이어지게13 되어1

년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국가가13 수립될13 수13 있었1918

다고13 말하고13 있다 무엇보다도13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그13 사(Dašić 1999 487)

실여부를13 떠나13 년13 수립된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그리고13 이13 왕국으로1918

의13 몬테네그로13 편입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이라는13 차원에서13 인식하고13 있다

는13 점에서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는13 독립13 세력들로부터13 일련의13

비판을13 받고13 있는13 상황이다

자신들의13 독립13 근대13 왕국을13 건설하고자13 했던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바람은13 현

대13 몬테네그로13 국가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설립자이자13 유명한13 시인이기도13 했

던13 페테르13 세13 시기에13 들어와서부터라13 볼13 수13 있다 반면13 세르비아인들은13 이13 2

당시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에13 크게13 호응하고13 있었고 이러

한13 그의13 이상을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도13 확산시키고자13 여러13 노력을13 기울이고13

있던13 시점이었다 페테르13 세는13 오스만13 터키의13 견제와13 프랑스의13 간섭13 그리고13 2

계속되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13 속에서도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결속과13 단결을13

이끌어내 년13 마침내13 오스트리아등13 주변13 강대국들로부터13 독립국가로서 1842

의13 인정을13 받을13 수13 있게13 된다 이어13 그의13 왕권은13 그의13 (Petrovich 1976 232)

조카인13 다닐로(Danilo I Petrović 1852~ 에게13 계승되었으나 년13 1860) 1860

암살에13 의한13 사망으로13 인해13 왕위는13 니콜라 에(Nikola Petrović 1860~1916)

게13 승계되게13 된다

니콜라는13 년부터13 시작된13 수차례의13 오스만13 터키13 공격을13 잘13 막아내었1862

고 년13 월13 1878 3 lsquo산스테파노 조약(San Stefano) rsquo과13 동년13 월13 6 lsquo베를린(Berlin)

조약rsquo의13 결과13 비록13 국제적으로13 인정은13 받지13 못했지만 몬테네그로는13 독립13 국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9

가를13 위한13 토대를13 구축할13 수13 있게13 되었다 베를린13 조약의13 결과13 몬테네그로의13

면적은13 과거보다13 배13 더13 확장되었고 오랜13 숙원이던13 2 (4400 9475 ) rarr

바르나 울찐13 등13 해안지대를13 확보할13 수13 있게13 된다 이때13 이후13 수도인13 쩨티녜

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는13 경제 사회적13 발전을13 이루게13 되어 년에13 들어 1899

와서는13 개의13 공립학교와13 개의13 사립학교가13 설립13 되게13 되었다 또한13 러시7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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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140 김철민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IV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주요13 배경과13 진행과정1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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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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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김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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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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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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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과13 같은13 장애요소들이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기13 때문이다 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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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의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부야노비치13 전13 총리가13 대통령에13 당선되었지만 그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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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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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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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이다 실제 몬테네그로13 헌법적13 지위변화에13 관한13 국민투표가13 실행되기13 위해

선13 전체13 몬테네그로13 의원13 명13 가운데13 인13 명의13 동의가13 필요하지만77 23 52

년13 월13 선거에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석을13 얻는13 데13 그친13 실정이다 더불어13 2001 4 44

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산업13 기지와13 생산능력이13 취약해13 주력13 산업으로13 관광업을13 육성시키고13 있는13 몬

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비아인이라는13 점(httpwwwvisit- 그리고13 세르비아로부터13 montenegrocom)

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세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해13 나가려는13 데13 있어13 세르비아의13 강력한13

17 년13 인구조사에13 따르자면 몬테네그로13 총13 인구13 비율은13 몬테네그로인이13 약13 1991 617(

명 세르비아인이13 약13 명 무슬림이13 약13 명 알바니381000 ) 93( 57000 ) 145( 89000 )

아인이13 약13 명 기타13 인구가13 약13 명 를13 차지한다 이외에도13 세65( 40000 ) 8( 49000 )

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년13 기준으로13 몬테네그로13 자체13 방위13 병력이13 여13 명에13 불과한13 상황에서13 만3000

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세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13 분할과13 민족간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휘말릴13 가능성이13 높

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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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6: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130 김철민

영토적인13 면에서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은13 세르비아13 역사상13 가장13 위대한13 왕으

로13 칭송받는13 스테판13 두샨왕13 시기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광활한13 영토에13 기초

하고13 있다 당시13 서로마와13 비잔틴제국 소아시아의13 중간13 교역로에13 있던13 세르

비아는13 이웃13 국가들과의13 활발한13 중개무역을13 통한13 부의13 축적과13 안정된13 정치력13

그리고13 강력한13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왕국의13 영토를13 현재의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

에서부터13 마케도니아 그리스13 남부지역으로까지13 넓힐13 수13 있었다 하지만13

년13 세의13 나이로13 두샨이13 사망한13 이후13 세르비아13 왕국은13 왕권13 다툼으로13 1355 46

인한13 내부13 분열과13 오스만13 터키의13 침입으로13 쇠락하게13 된다 특히13 년13 월13 1389 6

현13 코소보13 언덕에서13 무라드13 세가13 이끄는13 대규모13 오스만13 터키군에13 의해13 세르1

비아의13 라자르(Lazar Hrebeljanović 1371~ 왕자가13 이끄는13 세르비아13 1389)

연합군이13 패배하고13 난13 후13 세르비아13 중세13 왕국은13 몰락의13 길을13 가게13 되었다3

이후13 년까지13 지속된13 약13 여13 년간의13 오스만13 터키13 지배13 하에서도13 세1878 500

르비아인들은13 세르비아13 정교를13 중심으로13 민족13 정체성과13 민족의식을13 계속13 유

지할13 수13 있었다 근대13 이후13 오스만13 터키의13 쇠락13 속에13 무슬림13 지주들과13 관료

들의13 폭정에13 저항하기13 위해13 시작된13 세르비아의13 제 차13 봉기1 2 (Srpski

는13 점차13 이13 지역에13 보급된13 민족주의ustanak 1804~1813 1815~1830)

에13 의해13 영향을13 받았고 이에13 따라13 처음13 사회적13 봉기로13 시작된13 (Nationalism)

반 터키13 저항13 운동은13 점차13 독립된13 민족( )反 -국가(Nation- 건설을13 위한13 State)

민족주의13 운동으로13 확대13 발전되게13 되었다 이후13 세르비아는13 여러13 정치적13 어

려움과13 외세의13 간섭을13 이겨내고 마침내13 년13 월13 산13 스테파노 1878 3 (San

조약과13 동년13 월13 베를린 조약에13 의해13 근대13 독립국가로13 성장Sefano) 6 (Berlin)

하게13 된다4

3 이후13 코소보13 전투에13 관련된13 여러13 전설들은13 훗날13 세르비아13 민중들에게13 민담과13 구전문

학을13 통해13 계속해서13 전해13 내려옴으로써13 오스만13 터키등13 외세에13 대한13 세르비아13 민족의13

저항정신을13 고취시켰다 이에13 대해13 스타노예13 스타노예비치 (Stanojevic 1996

는13 이후13 코소보는13 세르비아13 역사에서13 제 차13 코소보전투와13 함께13 웅장했192-193) ldquo 1 2

던13 세르비아13 중세왕조의13 몰락과13 이민족의13 세르비아13 지배가13 시작되는13 치욕의13 역사로13

기록되었고 훗날13 세르비아13 민족의식의13 출발점으로13 인식되게13 된다 라고13 말하고13 있다 rdquo

4 당시13 세르비아는13 이들13 조약들로13 인해13 비록13 독립은13 인정받았으나 세르비아니즘의13 주

요13 목표였던13 보스니아13 지역과13 몬테네그로를13 통한13 아드리아해로의13 해상통로13 확보가13

오스트리아의13 방해로13 실패하는13 아픔을13 겪어야13 했다 그13 결과13 양13 국은13 세기를13 전후 20

해서13 적대관계를13 형성하였고 이러한13 감정싸움은13 마침내13 제 차13 세계대전으로13 이어지 1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1

세르비아니즘의13 이론적13 기초와13 그13 실천방향은13 년13 일리야13 가라샤닌1844

에13 의해13 처음으로13 제창되었다 그는13 중세13 세르비아13 두샨왕13 (Ilija Garašanin)

시대의13 영토적13 당위성을13 기초로13 한13 lsquo대 세르비아( ) (Velika Srbija)大 rsquo 국가13 건

설을13 세르비아13 근대국가의13 모델로13 설정하였고 이를13 위해13 이웃한13 몬테네그로

를13 비롯 당시13 합스부르크13 제국 년13 이후13 (1866 lsquo오스트리아-헝가리13 제국rsquo으로13 개칭의13 지배13 하에13 있던13 보이보디나 크로아티아 그리) (Vojvodina) (Croatia)

고13 보스니아 와13 헤르체고비나 지역을13 통합할13 것을13 주장(Bosnia) (Herzegovina)

하였다 또한13 그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을13 위해13 영토13 확대13 대상지역에13 거주

하는13 세르비아인들13 또한13 적극적으로13 동참해13 줄13 것을13 호소하였다(Petrovich

1976 231-232)5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세기13 당시13 민족주의에13 심취되어13 있 19

던13 세르비아인들13 사이에13 커다란13 반향을13 불러13 일으켰고 이들13 사이에13 세르비

아의13 지도력13 하에13 남슬라브족의13 통일이13 가능하리라는13 생각들이13 점차13 확대되

는13 계기를13 마련해13 주게13 된다 특히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

은13 페테르13 카라조르제비치 시기에13 들어(Peter I Karađorđević 1903~1918)

와13 더욱13 더13 구체화13 되었다 페테르는13 서구적이고13 근대적인13 시각을13 바탕으로13

자신의13 임기동안13 세르비아를13 발칸유럽에서13 가장13 강력한13 근대왕국으로13 발전

시켰고 시민13 자유와13 민주화13 그리고13 이를13 기초로13 한13 최초의13 입헌정부를13 수립

함으로써13 lsquo세르비아의13 르네상스기rsquo를13 이루게13 된다 또한13 오스트리아의13 보스

니아13 병합 등13 주변13 외세들의13 견제13 속에서도13 제 차13 발칸전쟁(1908) 1 2 (1912

을13 통해13 대규모13 영토13 확장을13 이루어13 냄으로써13 세르비아니즘13 구현에13 기1913)

여했다는13 평가를13 받게13 되었다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세르비아는13 마침내13 몬테네그로를13 완전13 병합하는13 데13 1

성공하였고 자신이13 주도하는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lsquo세르비아-크

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 년13 이(Kraljevina Srba Hrvata i Slovenaca 1929

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Kraljevina Jugoslavija)rsquo으로13 개칭됨)rsquo을13 또한13 건설함으로써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을13 완성하게13 된다 하지만13 세르비아는13 새로운13 통

합13 왕국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이라13 평가한13 반면 왕국내13 주요13 구성13 민족인13

게13 된다 김철민( 1999 29 Dimic 1998 25)

5 가라샤닌이13 주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주13 핵심13 내용은13 참조Vojvodić(2000 243-254)

132 김철민

크로아티아인과13 슬로베니아인은13 남슬라브족의13 평등13 국가라는13 점을 그리고13

세르비아의13 압력과13 회유에13 의해13 강제13 복속당한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엔13 또13 다

른13 지배자를13 맞이했다는13 역사적13 평가를13 낳게13 하였다

역사13 속에13 비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III

중세13 두클리야 제타 공국과13 세르비아1 ( )

몬테네그로인이13 발칸유럽에13 들어13 온13 시기는13 세기와13 세기경으로13 추정되5 6

며 이들은13 일단의13 남슬라브족들과13 함께13 다뉴브13 강을13 건너13 당시13 비잔틴13 제국13

지배13 하에13 있었던13 현13 지역에13 정착하게13 된다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의13 주장대

로13 현재까지의13 기록에13 따르자면13 발칸반도13 이주13 초기 몬테네그로인은13 다른13

남슬라브족13 특히13 세르비아인과13 거의13 구별되는13 않은13 채13 같은13 민족의13 일파로13

인식되고13 있음을13 확인할13 수13 있다 아바르 족과13 함께13 연합해13 비잔틴13 제 (Avar)

국이13 차지하고13 있던13 발칸유럽13 지역을13 장악하는13 데13 성공한13 남슬라브족은13 산악

지대가13 많은13 발칸유럽의13 지리적13 특성상13 점차13 느슨한13 정치적 사회적13 구조를13

지닌13 부족13 공동체로13 나눠지게13 되었다6 몬테네그로의13 중세13 역사13 또한13 이러한13

지리적13 험준함과13 남슬라브족의13 분열에13 따라13 시작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함께13 발칸반도로13 이주해13 들어13 온13 몬테네그로인은13 세7

6 산악지대가13 많은13 발칸유럽으로13 이주하였던13 남슬라브족은13 광활한13 평야13 지역으로13 이주

하였던13 여타13 다른13 슬라브족들과13 달리13 세월의13 흐름과13 함께13 각13 부족13 공동체들13 간에13 느

슨한13 정치적 사회적13 구조만을13 지니게13 된다 그13 이유는13 발칸13 지역의13 지리적13 험준함에13

따른13 것으로 이로13 인해13 남슬라브족은13 작은13 집단13 구성체로13 독자적인13 부족을13 형성하여

갔고 다음13 세대가13 등장하기13 전에13 각13 부족13 공동체들13 간의13 교류와13 문화13 전달이13 단절되

었으며 점차적으로13 관습 언어 정치13 조직13 간의13 차이점들이13 커져가게13 된다 이러한13

단절과13 차이점13 확대는13 곧13 이어13 남슬라브13 민족들13 간의13 정치적13 분열과13 군사력의13 약화로13

이어지게13 되었다 이에13 따라13 세기13 말에13 접어들게13 되면서13 남슬라브족의13 분화가13 확대 9

되기13 시작하였고 이러한13 분화에13 따라13 남슬라브족들은13 시기를13 거치면서13 크게13 불가리

아족 세르비아족 크로아티아족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족이라는13 개의13 남13 슬라브족13 공동 4

체로13 나누어지게13 된다 김철민( 2003 317-3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3

기13 이후에13 들어와13 코토르 부드바 바르 울찐(Kotor) (Budva) (Bar) (Ulcinj)

등13 현재의13 몬테네그로13 아드리아13 연안을13 중심으로13 자신들의13 부족13 국가들을13 수

립하게13 된다 몬테네그인은13 정착13 초기13 다른13 남슬라브족처럼13 고대13 원시13 슬라

브족의13 부족13 종교를13 지니고13 있었으나 점차13 시간이13 흐르면서13 이13 지역13 원주민

인13 로마인의13 사회와13 문화에13 점차13 동화되어13 갔고 그13 결과13 세기13 이후로13 로 12

마인들의13 신앙인13 기독교를13 자신의13 종교로13 수용하게13 되었다7

현13 세르비아로부터13 분리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분리13 독립파는13 몬테네그로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지배13 하로13 들어가기13 이전까지13 약13 년간13 고유한13 정체1918 1000

성을13 지니고13 발전하였으며 그13 역사는13 세기에13 성립된13 9 lsquo두클리야13 공국rsquo에서부터13 비롯되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비록13 세기13 무렵13 당시13 비잔틴13 제국의13 영 10

향력13 하에13 있었지만 두클리야13 공국의13 영토는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지방의13 대부

분을13 비롯해 남으로는13 알바니아13 상당13 지역인13 남부13 아드리아13 해안까지13 그리

고13 서쪽으로는13 현재의13 헤르체고비나13 지방을13 포함하고13 있었다 두클리야13 공국

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시조인13 보이슬라브 가13 년13 몬테네그로13 해(Vojislav) 1042

안가13 바르에서13 치룬13 비잔틴13 제국과의13 싸움에서13 승리를13 거둔13 이후13 본격적으로13

독립13 국가로서의13 기틀을13 잡아가게13 된다 이후13 두클리야의13 번영은13 보이슬라브

의13 아들인13 미하일로 와13 그의13 아들13 보딘(Mihailo 1046~1081) (Bodin 1081~

치하에서13 절정에13 이르렀다 미하일로는13 왕권을13 넘겨받은13 이후13 비잔틴1101)

과의13 평화13 관계를13 유지함과13 동시에 안정된13 국력과13 발달된13 경제력을13 바탕으

로13 년13 로마교황13 그레고리13 세 로부터13 독립13 왕국을13 인정받1077 7 (Gregory VII)

게13 되었다 미하일로의13 뒤를13 이은13 보딘은13 년13 로마13 교황13 클리멘트13 세 1089 3

로부터13 가톨릭13 대주교13 관직을13 획득하는13 등13 종교를13 통한13 국가13 (Clement III)

지배권13 강화를13 추진함으로써13 왕국의13 안정과13 황금기를13 이루게13 된다 하지만13

로마13 교회와의13 접한13 관계13 수립은13 곧13 이어13 비잔틴13 제국의13 강력한13 견제를13 불

러왔고 보딘13 사후13 일어난13 권력13 투쟁으로13 국력의13 약화가13 발생하게13 된다 그13

7 이때13 당시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을13 장악하고13 있던13 로마13 교회 후에13 가(

톨릭으로13 발전 의13 영향력13 하에13 놓여13 있었다 비록13 비잔틴13 제국의13 콘스탄티노플13 교회)

후에13 정교 로13 발전 와13 인근13 마케도니아와13 불가리아13 지역에서13 비롯된13 보고 교가13 한( lsquo rsquo )

때13 영향력을13 발휘하기도13 했지만 기록에13 따르자면13 이후로13 상당13 기간13 동안13 몬테네그로

인은13 가톨릭13 신앙에13 매우13 충실하였다고13 볼13 수13 있다 httpwwwmontenetorghistory

134 김철민

결과13 년13 비잔틴13 제국의13 지원을13 받은13 라쉬카13 공국의13 스테판13 네마냐에13 의1186

해13 정복당함으로써 세르비아의13 지배를13 받게13 되었다 이후13 두클리야13 공국은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13 하에서13 이13 지역13 제타강의13 이름을13 따13 lsquo제타13 공국rsquo으로도13 불리게13 된다

스테판13 네마냐는13 제타13 공국을13 지배한13 이후13 제타13 공국의13 모든13 도시들을13 파

괴하였고 보고 교13 추방과13 더불어13 가톨릭을13 믿고13 있던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13 정교로의13 강제13 개종13 그리고13 세르비아인으로의13 동화13 작업을13 추진하

게13 된다8 라쉬카13 공국은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아들인13 스테판13 네마니치13 시기에13

들어와13 중세13 세르비아13 독립13 왕국으로13 발전하였고 세르비아13 통치13 하에서13 몬

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지역을13 활용 활발한13 무역거래를13 통해13 상업적

경제적13 발전을13 이룩하게13 된다 하지만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에13 대해13 몬테네그

로13 분리13 독립파는13 당시부터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로부터13 독립하기13 위

한13 여러13 저항13 운동을13 추진하였고 그13 결과13 lsquo세르비아와13 그리스의13 왕이자13 황제rsquo로13 불렸던13 세르비아의13 두샨13 왕이13 년13 사망한13 직후 독립을13 얻을13 수13 있1355

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은13 두샨왕13 사후13 비록13 왕

권13 다툼과13 오스만13 터키의13 유럽13 원정으로13 다소13 지배권이13 약화되었지만 이13 시

기13 동안13 제타13 공국은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에서13 결코13 벗어나지13 못했다고13 주장하

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3)

제 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은13 년13 발쉬치 시조인13 발샤13 세2 1356 (Balšić 1

에서13 유래됨 왕조에서부터13 비롯되게13 된다 세르비아의13 정치적13 혼란(Balša I) )

을13 틈타13 왕국을13 재건하였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점차13 세력을13 확대해13 두샨왕13 당시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수도였던13 스코쁠예 오늘날13 마케도니아13 수도(Skoplje )

그리고13 뻬치 와13 쁘리즈렌 등13 코소보를13 비롯해13 과거13 라쉬카13 공(Peć) (Prizren)

국의13 지배13 지역들을13 하나씩13 점령하여13 갔으며 서쪽으로는13 두브로브니크

8 세기13 몬테네그로의13 가장13 유명한13 역사가13 중13 한명인13 빠블레13 로빈스키19 (Pavel

는13 당시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몬테네그로인13 정체성13 말살13 작업을13 비판하고13 있는13 Rovinski)

데 그에13 따르자면13 네마냐가13 당시13 두클리야의13 모든13 종교13 서적 역사서 지리서 문학

서13 등13 종류의13 구분13 없이13 불태워13 버렸다고13 비난하고13 있다 httpwwwmontenetorg

두클리야13 복속13 이후13 네마냐의13 여러13 행적에13 관해선13 history Božić Ćirković

참조Ekmečić and Dedijer(1973 51)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5

을13 포함13 헤르체고비나13 지역까지13 그13 세력을13 확장하여13 갔다 이13 (Dubrovnik)

당시13 발쉬치13 가문은13 중세13 세르비아의13 네먀니치13 왕조와13 여러13 경로에13 걸쳐13 가

족13 관계를13 형성하고13 있었는데 세르비아13 주장에13 따르자면13 몬테네그로는13 이

러한13 혼인13 관계를13 통한13 정통성13 인정에13 주력하였다고13 언급하고13 있다 실제13 기

록에13 따르더라도13 당시13 발쉬치13 왕조는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전통을13 계승하겠

다고13 나선13 보스니아13 왕국과13 여러13 차례13 전쟁을13 치러야13 했으며 년에는13 현13 1377

세르비아의13 레쉐보 에서13 세르비아의13 왕으로13 등극한13 보스니아의13 (Mileševo)

트브르트코13 세 의13 왕위13 계승을13 부정하기도13 하였다I (Tvrtko I) 9 한때13 왕국의13

발전을13 이루었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년13 코소보13 전투에서13 세르비아를13 도와13 1389

오스만13 터키와13 벌였던13 전투에서13 패배하여13 커다란13 위기를13 초래하게13 된다 곧13

이어13 년13 발샤13 세 가13 추진하였던13 아드리아해13 상권13 획득을13 둘1419 3 (Balša III)

러싼13 베니스와의13 전쟁에서13 패하면서13 제타13 공국의13 발쉬치13 왕조는13 몰락의13 길을13

가게13 되었다

한13 동안13 외세의13 침입과13 권력내분에13 시달렸던13 제타13 공국은13 중세13 몬테네그

로13 왕국의13 제 대13 왕조인13 쯔르노예비치 왕조의13 출현과13 더불어13 안3 (Crnojević)

정을13 되찾게13 된다 쯔르노예비치13 왕조는13 해안지대를13 중심으로13 발전을13 이룬13

다른13 왕조들과는13 달리13 몬테네그로13 북부13 산악지대인13 로브첸 지역에(Lovčen)

서부터13 시작되었다 하지만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마지막13 왕조였던13 쯔르노예비

치13 왕조는13 그리13 오랜13 기간13 유지되지13 못하였다 우선13 시조인13 스테판13 쯔르노예

비치 와13 그의13 아들13 이반13 쯔르노예비치(Stefan Crnojević 1427~1465) (Ivan

Crnojević 1465- 그리고13 오스만13 터키의13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다13 전사1490)

9 발쉬치13 왕조는13 비록13 과거13 두클리야13 공국의13 뒤를13 이은13 제타13 공국의13 지배자였지만 또

한13 동시에13 자신들을13 과거13 라쉬카13 공국의13 영주로 세르비아13 네마니치가의13 먼13 인척으로13

생각하고13 있었다 따라서13 문자에13 있어서도13 자신들이13 주로13 쓰는13 라틴문자와13 함께13 세르

비아에서의13 키릴문자를13 혼용해서13 사용하였고 종교에13 있어서도13 비록13 가톨릭을13 국가적13

종교로13 인정하고13 있었지만 세르비아가13 믿고13 있는13 정교에13 대해서도13 여러13 관심과13 주도

적13 역할을13 수행하고13 있었다 이러한13 예는13 발쉬치13 왕조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라쟈르13 1375

왕자와13 함께13 세르비아13 정교회13 총대주교를13 선출하기13 위해13 소집한13 교회13 성직자단13 회의

를13 주도한13 데서도13 확인될13 수13 있다 이에13 대해13 세르비아니즘이13 확산되고13 있던13 근대

세르비아의13 민족주의13 학자인13 쥬라13 다니취치 는13 위의13 경우를13 해(Daničić 1876 11-13)

석하는13 데13 있어 제타13 공국의13 세르비아에13 대한13 의존과13 종속성이13 높았다고13 강조하고13

있다

136 김철민

한13 이반의13 아들13 쥬라즈13 쯔르노예비치 를13 마(Djuradj Crnojevic 1490~1496)

지막으로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역사는13 끝이13 나게13 된다

하지만13 비록13 짧은13 기간의13 통치였지만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몬테네그로13 역

사에13 남긴13 영향은13 매우13 컸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시작

과13 함께13 제타13 공국은13 오늘날13 명칭인13 쯔르나13 고라 몬테네그로(Crna Gora

란13 지명으로13 불리게13 되었다 두13 번째로는13 이13 시기13 주변의13 남(Montenegro))

슬라브족13 국가들이13 모두13 오스만13 터키의13 지배13 하로13 넘어갔음에도13 불구하고

쯔르노예비치는13 년13 수도를13 스카다르 호수의13 쟈블략 에1482 (Skadar) (Zabljak)

서 보다13 수비가13 용이한13 험준한13 지역인13 로브첸13 산악지대로브첸스키13 돌라쯔 (

오늘날13 쩨티녜 의13 전신로13 옮겨13 오스만13 터키의13 (Lovcenski Dolac (Cetinje) )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였다는13 점이다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은13 훗날13 외세의13 침

략과13 지배가13 있을13 때마다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에13 저항13 정신과13 독립13 추진에13

대한13 원동력을13 제공하였으며 현13 분리13 독립파13 또한13 이러한13 역사를13 상기시키

며 세르비아로부터의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다 그리고13 세13 번째로13 발칸유럽13 국

가들13 중에선13 최초로13 년13 베네치아에서13 인쇄13 도구와13 인쇄기를13 도입하고1493

납으로13 된13 글자체와13 필체13 장식을13 위한13 주조물을13 만들어13 냄으로써 이후13 약13

여13 년간13 세르비아와13 보스니아에서13 키릴13 문자로13 인쇄된13 서적들의13 출판에13 100

상당한13 영향을13 미쳤다는13 자부심을13 안겨주었다

비록13 일부13 반론이13 있기는13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가들의13 주장에13 따르자면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재건한13 중세13 왕국은13 당시13 오스만13 터키에13 의해13 사라져13

버린13 세르비아13 네마니치13 왕조의13 국가13 전통과13 문화유산을13 그대로13 계승하고자13

노력했던13 것으로13 보인다 그러한13 실례는13 당시13 관직명과13 교구13 운영에13 있어서13

과거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관직명들이13 그대로13 채택하고 세르비아13 제국13 시절을13

본13 따13 lsquo황제와13 총대주교구의13 법원rsquo을13 설치했음을 그리고13 모든13 법률13 조항에13

있어13 과거13 두샨왕13 시절13 제작된13 lsquo두샨13 법전rsquo의13 조항들을13 그대로13 적용시켰다는13 점을13 들13 수13 있다 이를13 기초로13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13 가운데13 상당수는13 년13 1496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붕괴와13 중세13 몬테네그로13 왕국의13 종말은13 세르비아13 민족

이13 이룬13 중세13 국가의13 마지막13 형태가13 사라졌음을13 의미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5)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7

근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과13 세르비아니즘2

발칸유럽의13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마찬가지로13 몬테네그로인13 또한13 오스만13 터

키지배13 하에서13 터키의13 계획적이고13 철저한13 약탈13 경제13 정책으로13 인해13 사회 경

제적13 어려움이13 가중되게13 된다 과거13 아드리아13 해안13 상권을13 이용해13 이룩한13 왕

성한13 상업과13 무역13 활동13 그리고13 이를13 통한13 부의13 축적의13 가능하였던13 몬테네그

로인은13 이들13 분야를13 경시하고13 농업 임업 공공13 건설13 사업에13 치중하였던13 오스

만13 터키의13 정책에13 따라13 일련의13 암흑기를13 맞이하게13 되었다 또한13 오스만13 터키

의13 국력이13 쇠락해진13 세기13 말13 이후로13 세금13 부담이13 지나치게13 커지면서13 몬테17

네그로인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의13 충돌이13 빈번하게13 발생하였고 이에13 따라13 몬테

네그로인은13 상황이13 허락하는13 한13 베네치아13 등13 서구13 국가들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

의13 충돌시13 서구13 국가들을13 지원해13 아드리아의13 또13 다른13 주요13 지역인13 lsquo라구사공국오늘날13 두브로브니크 일대(Ragusa) ( (Dubrovnik) )rsquo의13 경우처럼13 이들로

부터13 자치권을13 보장받으려13 했다

이러한13 노력은13 페테르13 세1 (Peter I Petrović Njegoš 1782- 와13 페테르13 1830)

세2 (Peter II Petrović Njegoš 1830- 에13 의해13 그13 결실을13 이루게13 된다1851)

페테르13 세는13 당시13 여러13 외세의13 영향력13 하에13 흩어져13 있던13 몬테네그로13 부족들1

을13 한13 데로13 통합하고자13 노력하였고 국가13 수립과13 통치에13 필요한13 근대식13 법률

체계를13 정비하고 사법 행정의13 규율을13 정한13 사법13 행정법 과13 과거의13 관 (1798)

습법에서13 벗어나13 법률에13 근거해13 법을13 집행할13 수13 있도록13 만든13 법률집(1803)

을13 새로이13 구축하여13 놓았다 페테르13 세는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세르비아13 중 1

심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구상하였고 따라서13 강력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

현을13 위해13 제 차13 세르비아13 봉기1 (Prvi srpski ustanak 1804- 를13 통해13 세1813)

르비아13 자치13 국가를13 건설하려던13 카라조르제13 뻬트로비치(Karađorđe Petrović)

의13 봉기군과13 유기적13 연결13 관계를13 구축하게13 된다 이를13 위해13 페테르13 세는13 러 1

시아의13 지원을13 기대하며13 당시13 프랑스군이13 점령하고13 있던13 코토르만(Boka

과13 두브로브니크를13 탈환한13 후13 몬테네그로 헤르체고비나 코토르만Kotorska)

달마티아 지역13 등을13 중심으로13 한13 (Dalmacija) lsquo슬라브13 세르비아13 왕국rsquo을13 건설

138 김철민

하겠다는13 그의13 의지를13 표방하였으나 나폴레옹의13 러시아13 침공과13 함께13 그의13

바람은13 수포로13 돌아가게13 된다

이러한13 페테르13 세의13 남슬라브족13 이상에13 대해13 미오미르13 다쉬치1 (Miomir

는13 년13 이룬13 남슬라브족의13 통합13 정신이13 바로13 몬테네그로의13 페테르13 Dašić) 1918

세로부터13 출발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그는13 1 ldquo페테르13 세가13 세르비아인1

과13 크로아티아인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인 몬테네그로인의13 조화와13 형제애 단합

을13 강조하였던13 애국적인13 시인이자13 훌륭한13 정치가였다rdquo라고13 언급하면서 이러

한13 페테르13 세의13 정신이13 이후13 약하게나마13 니콜라13 시기까지13 이어지게13 되어1

년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국가가13 수립될13 수13 있었1918

다고13 말하고13 있다 무엇보다도13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그13 사(Dašić 1999 487)

실여부를13 떠나13 년13 수립된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그리고13 이13 왕국으로1918

의13 몬테네그로13 편입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이라는13 차원에서13 인식하고13 있다

는13 점에서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는13 독립13 세력들로부터13 일련의13

비판을13 받고13 있는13 상황이다

자신들의13 독립13 근대13 왕국을13 건설하고자13 했던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바람은13 현

대13 몬테네그로13 국가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설립자이자13 유명한13 시인이기도13 했

던13 페테르13 세13 시기에13 들어와서부터라13 볼13 수13 있다 반면13 세르비아인들은13 이13 2

당시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에13 크게13 호응하고13 있었고 이러

한13 그의13 이상을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도13 확산시키고자13 여러13 노력을13 기울이고13

있던13 시점이었다 페테르13 세는13 오스만13 터키의13 견제와13 프랑스의13 간섭13 그리고13 2

계속되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13 속에서도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결속과13 단결을13

이끌어내 년13 마침내13 오스트리아등13 주변13 강대국들로부터13 독립국가로서 1842

의13 인정을13 받을13 수13 있게13 된다 이어13 그의13 왕권은13 그의13 (Petrovich 1976 232)

조카인13 다닐로(Danilo I Petrović 1852~ 에게13 계승되었으나 년13 1860) 1860

암살에13 의한13 사망으로13 인해13 왕위는13 니콜라 에(Nikola Petrović 1860~1916)

게13 승계되게13 된다

니콜라는13 년부터13 시작된13 수차례의13 오스만13 터키13 공격을13 잘13 막아내었1862

고 년13 월13 1878 3 lsquo산스테파노 조약(San Stefano) rsquo과13 동년13 월13 6 lsquo베를린(Berlin)

조약rsquo의13 결과13 비록13 국제적으로13 인정은13 받지13 못했지만 몬테네그로는13 독립13 국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9

가를13 위한13 토대를13 구축할13 수13 있게13 되었다 베를린13 조약의13 결과13 몬테네그로의13

면적은13 과거보다13 배13 더13 확장되었고 오랜13 숙원이던13 2 (4400 9475 ) rarr

바르나 울찐13 등13 해안지대를13 확보할13 수13 있게13 된다 이때13 이후13 수도인13 쩨티녜

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는13 경제 사회적13 발전을13 이루게13 되어 년에13 들어 1899

와서는13 개의13 공립학교와13 개의13 사립학교가13 설립13 되게13 되었다 또한13 러시75 26

아의13 지도13 아래13 근대식13 군대가13 창설되었고 오스트리아의13 원조13 아래13 쩨티녜

에서13 코토르까지13 최초의13 근대식13 개념의13 도로와13 철도가13 설립되게13 된다

니콜라13 하의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관계는13 같(Komatina 1999 131)

은13 남슬라브족으로서13 선린관계를13 유지하고13 있었다 하지만13 세르비아13 정국13 주

도권을13 둘러싼13 오브레노비치 왕조와13 페트로비치 왕조(Obrenović) (Petrović)

간의13 계속된13 유혈13 사태는13 곧13 바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불협화음을13 초

래하게13 하였다10 특히13 세르비아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13 및13 발칸13 유럽내13 남

슬라브족13 국가들을13 통합해13 나가겠다는13 취지13 아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를13 강

력히13 추진하던13 란13 오브레노비치 시기13 이(Milan Obrenović 1868~1889)

후로13 양국은13 다소13 불편한13 관계가13 수립되었고 년13 마침내13 몬테네그로는13 1910

니콜라왕을13 중심으로13 하는13 독립13 군주국가임을13 선포하게13 되었다(Komatina

1999 37-38)11

10 이러한13 불협화음의13 또13 다른13 배경에는13 니콜라13 왕이13 세르비아13 오브레노비치13 왕조의13 정

적인13 카라조르제비치13 가문의13 페테르13 카라조르제비치(Peter I Karađorđević 1903~

까지13 세르비아13 왕위를13 엮임 를13 자신의13 장녀13 조르카 와13 결혼시켰던13 데서도13 1918 ) (Zorka)

그13 요인을13 찾을13 수13 있다

11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13 움직임13 속에13 치러진13 당시13 취임식에서13 니콜라왕은13 몬테네그로13

민족의13 독자성과13 독립된13 민족13 정체성을13 그들의13 중세13 역사13 속에서13 찾을13 것을13 천명하였

다 우리는13 과거13 제타13 왕국의13 보이슬라브 미하일로13 그리고13 보딘의13 자손이다 시간은13 ldquo

단지13 이13 땅위에13 존재하였던13 것을13 파괴할13 수13 있었지만 이13 안에13 꿈틀대고13 있는13 자유에13

대한13 의지와13 충성스러운13 산악인들의13 뜨거운13 심장을13 파괴할13 수는13 없었다 우리는13 오랜13

역사의13 토대13 위에13 왕국13 건설의13 부활을13 시작하였고 오늘날13 이13 왕국은13 여기13 천상의13 햇

빛아래13 반짝이는13 우리의13 고대왕국에13 그13 뿌리를13 두고13 있다rdquo httpwwwmontenetorg

history

140 김철민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IV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주요13 배경과13 진행과정13 1

세기13 초13 몬테네그로는13 비록13 니콜라왕의13 독립13 왕국13 선포에도13 불구하고20

복잡한13 발칸유럽의13 정세와13 더불어13 매우13 혼돈의13 시기를13 맞이하고13 있었다 몬

테네그로는13 년과13 년에13 치른13 제 차13 발칸전쟁에서의13 승전에도13 불1912 1913 1 2

구하고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종결이후13 세르비아13 주도의13 최초13 남슬라브족13 1918 1

통합국가인13 lsquo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Kraljevina SHS)rsquo하로13 편입되는13 아픔을13 겪게13 된다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제 차13 세계대전이전까지13 세르 2

비아의13 직접적인13 지배13 하에13 놓이게13 되었지만 제 차13 세계대전에서13 티토를13 중 2

심으로13 한13 파르티잔13 세력이13 승리한13 이후 사회주의13 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하에

서13 개13 구성13 공화국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6 ( -헤르체고비나 세르비

아 몬테네그로13 그리고13 마케도니아13 공화국 중13 하나인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으 )

로13 새롭게13 등장할13 수13 있었다

년13 베를린13 장벽13 붕괴로13 상징되는13 사회주의13 체제의13 몰락이후13 유고슬라1989

비아13 연방의13 해체13 위기와13 더불어13 몬테네그로는13 매우13 불확실한13 위치에13 놓이게13

된다 특히13 년에13 있었던13 다당제13 선거가13 실시된13 이후13 사회주의13 유고슬라 1990

비아13 연방은13 해체의13 길로13 들어서고13 있었고 이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도13 자신의13

진로를13 결정해야만13 했다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의13 압력과13 불확실한13 국

제적13 상황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년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형성에13 1992

가담하게13 된다12 하지만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에13 가담한13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연방13 구성국이었던13 세르비아가13 중심이13 된13 유고내전슬로베니아13 내전과13 크로(

12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이13 해체되는13 과정13 속에서13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

아와13 함께13 새로운13 연방을13 구성해13 나갈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단행하게13 된다 전체13 선

거인단의13 가13 참여하였던13 이13 선거에서13 찬성13 반대13 라는13 압도적인13 표차로13 66 96 3

몬테네그로13 국민은13 세르비아와13 운명을13 같이13 할13 것을13 결정짓게13 된다(Komatina 1999

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1

아티아13 내전과13 보스니아13 내전13 그리고13 이후13 년13 월에13 일어난13 와) 1999 3 NATO

의13 코소보13 전쟁13 등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미국과13 서유럽13 국가들로부터13

경제적 정치적13 그리고13 외교적13 고립을13 강요받아야만13 했다 결과적으로13 서구

로부터의13 고립은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13 형성과13 그13 유지에13

대한13 의구심을13 증폭시켰고 이러한13 국내13 분위기13 속에서13 년13 월13 몬테네 1999 8

그로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선출된13 로13 쥬카노비치 대통(Milo Đukanović)

령과13 그13 수뇌부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세르비아니즘의13 희생자임을13 상기시키며

독립을13 위한13 실질적인13 논의에13 들어가게13 된다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당시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13 권력자였던13 슬로보단13

로쉐비치 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에13 반발하였던13 몬테네(Slobodan Milošević)

그로13 대통령13 로13 쥬카노비치를13 중심으로13 제기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쥬

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세르비아13 정부에게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rsquo이13 아닌13 lsquo몬테네그로-세르비아13 연합13 국가rsquo라는13 명칭으로13 변경할13 것과13 현행13 연방13 헌법을13 폐지할13 것 그리고13 연방13 정부13 협의13 체제를13 각13 공화국간13 각료간13 협의체제

로13 전환13 할13 것13 등13 실질적인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방13 정부구성을13 제안하였다 이

후13 몬테네그로의13 요구는13 세르비아와의13 느슨한13 연방형태13 유지를13 전제로13 한13 독

자군대13 편성권과13 독자적13 외교권13 그리고13 독자13 통화권13 발행13 등으로13 확대되게13

된다

년13 월에13 들어와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연방정부에13 본격적으로13 연방13 2000 7

분리13 구상을13 제안하였고 몬테네그로가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존재를13 더13 이

상13 인정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점과13 그해13 월에13 치러질13 연방13 선거에13 불참할13 것13 9

그리고13 몬테네그로의13 향후13 국가13 목표를13 와13 에13 가입하는13 것을13 주요13 EU NATO

골자로13 하겠다는13 등의13 성명서를13 발표하였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그늘로부터13

벗어나13 독립을13 이루려던13 몬테네그로의13 의도는13 년13 월13 세르비아에서13 반2000 10

로쉐비치13 민주화13 혁명이13 일어나 민주인사인13 보이슬라브13 코슈투니짜( ) 反연방13 대통령이13 등장하게13 되자13 난관에13 봉착하게13 된다(Vojslav Koštunica) 13

13 년13 월13 일13 치러진13 유고연방의13 대선과13 총선13 투표에13 대해 선거13 위원회가13 발표2000 9 24

한13 결과와는13 달리 세르비아13 민주야당 의13 코슈투니차 (DOS) (Kos 후보13 진영에선13 tunica)

자체13 집계13 결과13 결선13 투표13 없이13 차13 투표에서13 로쉐비치를13 이겼다고13 선언하게13 된다1

이어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민주화를13 요구하는13 시위대의13 물결이13 베오그라드에13 집결하

142 김철민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취임한13 코슈투니짜13 대통령은13 ldquo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는13 하나의13 운명13 공동체이며13 더욱13 더13 강력한13 통합이13 필요하

다rdquo는13 점을13 강조하였고 이어13 이러한13 선언이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추구하고자13

했던13 미국과13 서방의13 지지를13 얻게13 됨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다소13 어

려움을13 겪게13 된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민주화13 혁명13 성공과13 대외적인13 압력에도13 불구하고 몬테

네그로의13 독립을13 향한13 움직임은13 계속13 지속되었다 특히13 몬테네그로는13 우선적

으로13 세르비아가13 주도하고13 있던13 연방으로부터의13 경제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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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극해13 코소보13 사태와13 같은13 심각한13 위험을13 초래13 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점을13 경고하였다 동시에13 ldquo몬테네그로가13 연방13 내에13 계속13 존속하기를13 강력히13 희망한다rdquo는13 메시지와13 함께 ldquo국방 외교 통화13 등에13 대한13 권한만을13 연방정부에13 이양하고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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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13 있다rdquo는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합을13 제안하게13 된다16 하지만13 이러한13 제안이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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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실시할13 것13 그리고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공화국(SRJ)rsquo에서13 lsquo세르비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rsquo으로13 변경할13 것13 등이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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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은13 각13 공화국이13 독자적으로13 운영하는13 느슨한13 연합13 국가13 탄생이13 결정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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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13 연합13 국가를13 구성하는13 데13 양13 국이13 합의한13 직후 년13 월13 세르 200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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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13 전체13 의석13 석13 중 찬성13 반대13 기권13 표로13 (Svetozar Marović) 126 65 47 14

16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13 대표적13 신문인13 보르바 참조- lsquo (Borba)rsquo httpwwwborbacoyu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제를13 구축해13 나가고13 있다 반면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이 200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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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과13 같은13 장애요소들이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기13 때문이다 몬테

네그로의13 향후13 독립문제는13 아래13 요소들의13 향배에13 따라13 결정되어질13 것으로13 보

인다

우선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는13 가장13 큰13 장애13 요소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독립

을13 향한13 단합된13 의지를13 어느13 정도까지13 그리고13 어디까지13 보여줄13 수13 있을13 것인

가 라는13 문제이다 몬테네그로는13 지난13 년13 월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몬테네 200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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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13 과정이13 그리13 매끄럽지13 못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당시13 대통령13 선거13 투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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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표율을13 기록하긴13 했으나 두13 차례13 선거13 모두13 헌법상13 최저13 투표율인13 를13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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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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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으로13 국명이13 바뀐13 후13 몬테네그로13 최초13 대통령이13

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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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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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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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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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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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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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세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13 분할과13 민족간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휘말릴13 가능성이13 높

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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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민 세르비아13 민족의13 기원과13 민족13 정체성에13 관한13 연구 동유럽발칸학 제 2003 「 」 985172 985173권13 호 한국동유럽발칸학회5 1 pp 31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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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13 사이트13 UN httpwwwunmikonlineorg

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7: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1

세르비아니즘의13 이론적13 기초와13 그13 실천방향은13 년13 일리야13 가라샤닌1844

에13 의해13 처음으로13 제창되었다 그는13 중세13 세르비아13 두샨왕13 (Ilija Garašanin)

시대의13 영토적13 당위성을13 기초로13 한13 lsquo대 세르비아( ) (Velika Srbija)大 rsquo 국가13 건

설을13 세르비아13 근대국가의13 모델로13 설정하였고 이를13 위해13 이웃한13 몬테네그로

를13 비롯 당시13 합스부르크13 제국 년13 이후13 (1866 lsquo오스트리아-헝가리13 제국rsquo으로13 개칭의13 지배13 하에13 있던13 보이보디나 크로아티아 그리) (Vojvodina) (Croatia)

고13 보스니아 와13 헤르체고비나 지역을13 통합할13 것을13 주장(Bosnia) (Herzegovina)

하였다 또한13 그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을13 위해13 영토13 확대13 대상지역에13 거주

하는13 세르비아인들13 또한13 적극적으로13 동참해13 줄13 것을13 호소하였다(Petrovich

1976 231-232)5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세기13 당시13 민족주의에13 심취되어13 있 19

던13 세르비아인들13 사이에13 커다란13 반향을13 불러13 일으켰고 이들13 사이에13 세르비

아의13 지도력13 하에13 남슬라브족의13 통일이13 가능하리라는13 생각들이13 점차13 확대되

는13 계기를13 마련해13 주게13 된다 특히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

은13 페테르13 카라조르제비치 시기에13 들어(Peter I Karađorđević 1903~1918)

와13 더욱13 더13 구체화13 되었다 페테르는13 서구적이고13 근대적인13 시각을13 바탕으로13

자신의13 임기동안13 세르비아를13 발칸유럽에서13 가장13 강력한13 근대왕국으로13 발전

시켰고 시민13 자유와13 민주화13 그리고13 이를13 기초로13 한13 최초의13 입헌정부를13 수립

함으로써13 lsquo세르비아의13 르네상스기rsquo를13 이루게13 된다 또한13 오스트리아의13 보스

니아13 병합 등13 주변13 외세들의13 견제13 속에서도13 제 차13 발칸전쟁(1908) 1 2 (1912

을13 통해13 대규모13 영토13 확장을13 이루어13 냄으로써13 세르비아니즘13 구현에13 기1913)

여했다는13 평가를13 받게13 되었다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세르비아는13 마침내13 몬테네그로를13 완전13 병합하는13 데13 1

성공하였고 자신이13 주도하는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lsquo세르비아-크

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 년13 이(Kraljevina Srba Hrvata i Slovenaca 1929

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Kraljevina Jugoslavija)rsquo으로13 개칭됨)rsquo을13 또한13 건설함으로써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을13 완성하게13 된다 하지만13 세르비아는13 새로운13 통

합13 왕국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현이라13 평가한13 반면 왕국내13 주요13 구성13 민족인13

게13 된다 김철민( 1999 29 Dimic 1998 25)

5 가라샤닌이13 주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주13 핵심13 내용은13 참조Vojvodić(2000 243-254)

132 김철민

크로아티아인과13 슬로베니아인은13 남슬라브족의13 평등13 국가라는13 점을 그리고13

세르비아의13 압력과13 회유에13 의해13 강제13 복속당한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엔13 또13 다

른13 지배자를13 맞이했다는13 역사적13 평가를13 낳게13 하였다

역사13 속에13 비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III

중세13 두클리야 제타 공국과13 세르비아1 ( )

몬테네그로인이13 발칸유럽에13 들어13 온13 시기는13 세기와13 세기경으로13 추정되5 6

며 이들은13 일단의13 남슬라브족들과13 함께13 다뉴브13 강을13 건너13 당시13 비잔틴13 제국13

지배13 하에13 있었던13 현13 지역에13 정착하게13 된다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의13 주장대

로13 현재까지의13 기록에13 따르자면13 발칸반도13 이주13 초기 몬테네그로인은13 다른13

남슬라브족13 특히13 세르비아인과13 거의13 구별되는13 않은13 채13 같은13 민족의13 일파로13

인식되고13 있음을13 확인할13 수13 있다 아바르 족과13 함께13 연합해13 비잔틴13 제 (Avar)

국이13 차지하고13 있던13 발칸유럽13 지역을13 장악하는13 데13 성공한13 남슬라브족은13 산악

지대가13 많은13 발칸유럽의13 지리적13 특성상13 점차13 느슨한13 정치적 사회적13 구조를13

지닌13 부족13 공동체로13 나눠지게13 되었다6 몬테네그로의13 중세13 역사13 또한13 이러한13

지리적13 험준함과13 남슬라브족의13 분열에13 따라13 시작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함께13 발칸반도로13 이주해13 들어13 온13 몬테네그로인은13 세7

6 산악지대가13 많은13 발칸유럽으로13 이주하였던13 남슬라브족은13 광활한13 평야13 지역으로13 이주

하였던13 여타13 다른13 슬라브족들과13 달리13 세월의13 흐름과13 함께13 각13 부족13 공동체들13 간에13 느

슨한13 정치적 사회적13 구조만을13 지니게13 된다 그13 이유는13 발칸13 지역의13 지리적13 험준함에13

따른13 것으로 이로13 인해13 남슬라브족은13 작은13 집단13 구성체로13 독자적인13 부족을13 형성하여

갔고 다음13 세대가13 등장하기13 전에13 각13 부족13 공동체들13 간의13 교류와13 문화13 전달이13 단절되

었으며 점차적으로13 관습 언어 정치13 조직13 간의13 차이점들이13 커져가게13 된다 이러한13

단절과13 차이점13 확대는13 곧13 이어13 남슬라브13 민족들13 간의13 정치적13 분열과13 군사력의13 약화로13

이어지게13 되었다 이에13 따라13 세기13 말에13 접어들게13 되면서13 남슬라브족의13 분화가13 확대 9

되기13 시작하였고 이러한13 분화에13 따라13 남슬라브족들은13 시기를13 거치면서13 크게13 불가리

아족 세르비아족 크로아티아족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족이라는13 개의13 남13 슬라브족13 공동 4

체로13 나누어지게13 된다 김철민( 2003 317-3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3

기13 이후에13 들어와13 코토르 부드바 바르 울찐(Kotor) (Budva) (Bar) (Ulcinj)

등13 현재의13 몬테네그로13 아드리아13 연안을13 중심으로13 자신들의13 부족13 국가들을13 수

립하게13 된다 몬테네그인은13 정착13 초기13 다른13 남슬라브족처럼13 고대13 원시13 슬라

브족의13 부족13 종교를13 지니고13 있었으나 점차13 시간이13 흐르면서13 이13 지역13 원주민

인13 로마인의13 사회와13 문화에13 점차13 동화되어13 갔고 그13 결과13 세기13 이후로13 로 12

마인들의13 신앙인13 기독교를13 자신의13 종교로13 수용하게13 되었다7

현13 세르비아로부터13 분리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분리13 독립파는13 몬테네그로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지배13 하로13 들어가기13 이전까지13 약13 년간13 고유한13 정체1918 1000

성을13 지니고13 발전하였으며 그13 역사는13 세기에13 성립된13 9 lsquo두클리야13 공국rsquo에서부터13 비롯되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비록13 세기13 무렵13 당시13 비잔틴13 제국의13 영 10

향력13 하에13 있었지만 두클리야13 공국의13 영토는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지방의13 대부

분을13 비롯해 남으로는13 알바니아13 상당13 지역인13 남부13 아드리아13 해안까지13 그리

고13 서쪽으로는13 현재의13 헤르체고비나13 지방을13 포함하고13 있었다 두클리야13 공국

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시조인13 보이슬라브 가13 년13 몬테네그로13 해(Vojislav) 1042

안가13 바르에서13 치룬13 비잔틴13 제국과의13 싸움에서13 승리를13 거둔13 이후13 본격적으로13

독립13 국가로서의13 기틀을13 잡아가게13 된다 이후13 두클리야의13 번영은13 보이슬라브

의13 아들인13 미하일로 와13 그의13 아들13 보딘(Mihailo 1046~1081) (Bodin 1081~

치하에서13 절정에13 이르렀다 미하일로는13 왕권을13 넘겨받은13 이후13 비잔틴1101)

과의13 평화13 관계를13 유지함과13 동시에 안정된13 국력과13 발달된13 경제력을13 바탕으

로13 년13 로마교황13 그레고리13 세 로부터13 독립13 왕국을13 인정받1077 7 (Gregory VII)

게13 되었다 미하일로의13 뒤를13 이은13 보딘은13 년13 로마13 교황13 클리멘트13 세 1089 3

로부터13 가톨릭13 대주교13 관직을13 획득하는13 등13 종교를13 통한13 국가13 (Clement III)

지배권13 강화를13 추진함으로써13 왕국의13 안정과13 황금기를13 이루게13 된다 하지만13

로마13 교회와의13 접한13 관계13 수립은13 곧13 이어13 비잔틴13 제국의13 강력한13 견제를13 불

러왔고 보딘13 사후13 일어난13 권력13 투쟁으로13 국력의13 약화가13 발생하게13 된다 그13

7 이때13 당시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을13 장악하고13 있던13 로마13 교회 후에13 가(

톨릭으로13 발전 의13 영향력13 하에13 놓여13 있었다 비록13 비잔틴13 제국의13 콘스탄티노플13 교회)

후에13 정교 로13 발전 와13 인근13 마케도니아와13 불가리아13 지역에서13 비롯된13 보고 교가13 한( lsquo rsquo )

때13 영향력을13 발휘하기도13 했지만 기록에13 따르자면13 이후로13 상당13 기간13 동안13 몬테네그로

인은13 가톨릭13 신앙에13 매우13 충실하였다고13 볼13 수13 있다 httpwwwmontenetorghistory

134 김철민

결과13 년13 비잔틴13 제국의13 지원을13 받은13 라쉬카13 공국의13 스테판13 네마냐에13 의1186

해13 정복당함으로써 세르비아의13 지배를13 받게13 되었다 이후13 두클리야13 공국은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13 하에서13 이13 지역13 제타강의13 이름을13 따13 lsquo제타13 공국rsquo으로도13 불리게13 된다

스테판13 네마냐는13 제타13 공국을13 지배한13 이후13 제타13 공국의13 모든13 도시들을13 파

괴하였고 보고 교13 추방과13 더불어13 가톨릭을13 믿고13 있던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13 정교로의13 강제13 개종13 그리고13 세르비아인으로의13 동화13 작업을13 추진하

게13 된다8 라쉬카13 공국은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아들인13 스테판13 네마니치13 시기에13

들어와13 중세13 세르비아13 독립13 왕국으로13 발전하였고 세르비아13 통치13 하에서13 몬

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지역을13 활용 활발한13 무역거래를13 통해13 상업적

경제적13 발전을13 이룩하게13 된다 하지만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에13 대해13 몬테네그

로13 분리13 독립파는13 당시부터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로부터13 독립하기13 위

한13 여러13 저항13 운동을13 추진하였고 그13 결과13 lsquo세르비아와13 그리스의13 왕이자13 황제rsquo로13 불렸던13 세르비아의13 두샨13 왕이13 년13 사망한13 직후 독립을13 얻을13 수13 있1355

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은13 두샨왕13 사후13 비록13 왕

권13 다툼과13 오스만13 터키의13 유럽13 원정으로13 다소13 지배권이13 약화되었지만 이13 시

기13 동안13 제타13 공국은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에서13 결코13 벗어나지13 못했다고13 주장하

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3)

제 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은13 년13 발쉬치 시조인13 발샤13 세2 1356 (Balšić 1

에서13 유래됨 왕조에서부터13 비롯되게13 된다 세르비아의13 정치적13 혼란(Balša I) )

을13 틈타13 왕국을13 재건하였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점차13 세력을13 확대해13 두샨왕13 당시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수도였던13 스코쁠예 오늘날13 마케도니아13 수도(Skoplje )

그리고13 뻬치 와13 쁘리즈렌 등13 코소보를13 비롯해13 과거13 라쉬카13 공(Peć) (Prizren)

국의13 지배13 지역들을13 하나씩13 점령하여13 갔으며 서쪽으로는13 두브로브니크

8 세기13 몬테네그로의13 가장13 유명한13 역사가13 중13 한명인13 빠블레13 로빈스키19 (Pavel

는13 당시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몬테네그로인13 정체성13 말살13 작업을13 비판하고13 있는13 Rovinski)

데 그에13 따르자면13 네마냐가13 당시13 두클리야의13 모든13 종교13 서적 역사서 지리서 문학

서13 등13 종류의13 구분13 없이13 불태워13 버렸다고13 비난하고13 있다 httpwwwmontenetorg

두클리야13 복속13 이후13 네마냐의13 여러13 행적에13 관해선13 history Božić Ćirković

참조Ekmečić and Dedijer(1973 51)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5

을13 포함13 헤르체고비나13 지역까지13 그13 세력을13 확장하여13 갔다 이13 (Dubrovnik)

당시13 발쉬치13 가문은13 중세13 세르비아의13 네먀니치13 왕조와13 여러13 경로에13 걸쳐13 가

족13 관계를13 형성하고13 있었는데 세르비아13 주장에13 따르자면13 몬테네그로는13 이

러한13 혼인13 관계를13 통한13 정통성13 인정에13 주력하였다고13 언급하고13 있다 실제13 기

록에13 따르더라도13 당시13 발쉬치13 왕조는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전통을13 계승하겠

다고13 나선13 보스니아13 왕국과13 여러13 차례13 전쟁을13 치러야13 했으며 년에는13 현13 1377

세르비아의13 레쉐보 에서13 세르비아의13 왕으로13 등극한13 보스니아의13 (Mileševo)

트브르트코13 세 의13 왕위13 계승을13 부정하기도13 하였다I (Tvrtko I) 9 한때13 왕국의13

발전을13 이루었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년13 코소보13 전투에서13 세르비아를13 도와13 1389

오스만13 터키와13 벌였던13 전투에서13 패배하여13 커다란13 위기를13 초래하게13 된다 곧13

이어13 년13 발샤13 세 가13 추진하였던13 아드리아해13 상권13 획득을13 둘1419 3 (Balša III)

러싼13 베니스와의13 전쟁에서13 패하면서13 제타13 공국의13 발쉬치13 왕조는13 몰락의13 길을13

가게13 되었다

한13 동안13 외세의13 침입과13 권력내분에13 시달렸던13 제타13 공국은13 중세13 몬테네그

로13 왕국의13 제 대13 왕조인13 쯔르노예비치 왕조의13 출현과13 더불어13 안3 (Crnojević)

정을13 되찾게13 된다 쯔르노예비치13 왕조는13 해안지대를13 중심으로13 발전을13 이룬13

다른13 왕조들과는13 달리13 몬테네그로13 북부13 산악지대인13 로브첸 지역에(Lovčen)

서부터13 시작되었다 하지만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마지막13 왕조였던13 쯔르노예비

치13 왕조는13 그리13 오랜13 기간13 유지되지13 못하였다 우선13 시조인13 스테판13 쯔르노예

비치 와13 그의13 아들13 이반13 쯔르노예비치(Stefan Crnojević 1427~1465) (Ivan

Crnojević 1465- 그리고13 오스만13 터키의13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다13 전사1490)

9 발쉬치13 왕조는13 비록13 과거13 두클리야13 공국의13 뒤를13 이은13 제타13 공국의13 지배자였지만 또

한13 동시에13 자신들을13 과거13 라쉬카13 공국의13 영주로 세르비아13 네마니치가의13 먼13 인척으로13

생각하고13 있었다 따라서13 문자에13 있어서도13 자신들이13 주로13 쓰는13 라틴문자와13 함께13 세르

비아에서의13 키릴문자를13 혼용해서13 사용하였고 종교에13 있어서도13 비록13 가톨릭을13 국가적13

종교로13 인정하고13 있었지만 세르비아가13 믿고13 있는13 정교에13 대해서도13 여러13 관심과13 주도

적13 역할을13 수행하고13 있었다 이러한13 예는13 발쉬치13 왕조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라쟈르13 1375

왕자와13 함께13 세르비아13 정교회13 총대주교를13 선출하기13 위해13 소집한13 교회13 성직자단13 회의

를13 주도한13 데서도13 확인될13 수13 있다 이에13 대해13 세르비아니즘이13 확산되고13 있던13 근대

세르비아의13 민족주의13 학자인13 쥬라13 다니취치 는13 위의13 경우를13 해(Daničić 1876 11-13)

석하는13 데13 있어 제타13 공국의13 세르비아에13 대한13 의존과13 종속성이13 높았다고13 강조하고13

있다

136 김철민

한13 이반의13 아들13 쥬라즈13 쯔르노예비치 를13 마(Djuradj Crnojevic 1490~1496)

지막으로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역사는13 끝이13 나게13 된다

하지만13 비록13 짧은13 기간의13 통치였지만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몬테네그로13 역

사에13 남긴13 영향은13 매우13 컸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시작

과13 함께13 제타13 공국은13 오늘날13 명칭인13 쯔르나13 고라 몬테네그로(Crna Gora

란13 지명으로13 불리게13 되었다 두13 번째로는13 이13 시기13 주변의13 남(Montenegro))

슬라브족13 국가들이13 모두13 오스만13 터키의13 지배13 하로13 넘어갔음에도13 불구하고

쯔르노예비치는13 년13 수도를13 스카다르 호수의13 쟈블략 에1482 (Skadar) (Zabljak)

서 보다13 수비가13 용이한13 험준한13 지역인13 로브첸13 산악지대로브첸스키13 돌라쯔 (

오늘날13 쩨티녜 의13 전신로13 옮겨13 오스만13 터키의13 (Lovcenski Dolac (Cetinje) )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였다는13 점이다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은13 훗날13 외세의13 침

략과13 지배가13 있을13 때마다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에13 저항13 정신과13 독립13 추진에13

대한13 원동력을13 제공하였으며 현13 분리13 독립파13 또한13 이러한13 역사를13 상기시키

며 세르비아로부터의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다 그리고13 세13 번째로13 발칸유럽13 국

가들13 중에선13 최초로13 년13 베네치아에서13 인쇄13 도구와13 인쇄기를13 도입하고1493

납으로13 된13 글자체와13 필체13 장식을13 위한13 주조물을13 만들어13 냄으로써 이후13 약13

여13 년간13 세르비아와13 보스니아에서13 키릴13 문자로13 인쇄된13 서적들의13 출판에13 100

상당한13 영향을13 미쳤다는13 자부심을13 안겨주었다

비록13 일부13 반론이13 있기는13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가들의13 주장에13 따르자면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재건한13 중세13 왕국은13 당시13 오스만13 터키에13 의해13 사라져13

버린13 세르비아13 네마니치13 왕조의13 국가13 전통과13 문화유산을13 그대로13 계승하고자13

노력했던13 것으로13 보인다 그러한13 실례는13 당시13 관직명과13 교구13 운영에13 있어서13

과거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관직명들이13 그대로13 채택하고 세르비아13 제국13 시절을13

본13 따13 lsquo황제와13 총대주교구의13 법원rsquo을13 설치했음을 그리고13 모든13 법률13 조항에13

있어13 과거13 두샨왕13 시절13 제작된13 lsquo두샨13 법전rsquo의13 조항들을13 그대로13 적용시켰다는13 점을13 들13 수13 있다 이를13 기초로13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13 가운데13 상당수는13 년13 1496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붕괴와13 중세13 몬테네그로13 왕국의13 종말은13 세르비아13 민족

이13 이룬13 중세13 국가의13 마지막13 형태가13 사라졌음을13 의미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5)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7

근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과13 세르비아니즘2

발칸유럽의13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마찬가지로13 몬테네그로인13 또한13 오스만13 터

키지배13 하에서13 터키의13 계획적이고13 철저한13 약탈13 경제13 정책으로13 인해13 사회 경

제적13 어려움이13 가중되게13 된다 과거13 아드리아13 해안13 상권을13 이용해13 이룩한13 왕

성한13 상업과13 무역13 활동13 그리고13 이를13 통한13 부의13 축적의13 가능하였던13 몬테네그

로인은13 이들13 분야를13 경시하고13 농업 임업 공공13 건설13 사업에13 치중하였던13 오스

만13 터키의13 정책에13 따라13 일련의13 암흑기를13 맞이하게13 되었다 또한13 오스만13 터키

의13 국력이13 쇠락해진13 세기13 말13 이후로13 세금13 부담이13 지나치게13 커지면서13 몬테17

네그로인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의13 충돌이13 빈번하게13 발생하였고 이에13 따라13 몬테

네그로인은13 상황이13 허락하는13 한13 베네치아13 등13 서구13 국가들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

의13 충돌시13 서구13 국가들을13 지원해13 아드리아의13 또13 다른13 주요13 지역인13 lsquo라구사공국오늘날13 두브로브니크 일대(Ragusa) ( (Dubrovnik) )rsquo의13 경우처럼13 이들로

부터13 자치권을13 보장받으려13 했다

이러한13 노력은13 페테르13 세1 (Peter I Petrović Njegoš 1782- 와13 페테르13 1830)

세2 (Peter II Petrović Njegoš 1830- 에13 의해13 그13 결실을13 이루게13 된다1851)

페테르13 세는13 당시13 여러13 외세의13 영향력13 하에13 흩어져13 있던13 몬테네그로13 부족들1

을13 한13 데로13 통합하고자13 노력하였고 국가13 수립과13 통치에13 필요한13 근대식13 법률

체계를13 정비하고 사법 행정의13 규율을13 정한13 사법13 행정법 과13 과거의13 관 (1798)

습법에서13 벗어나13 법률에13 근거해13 법을13 집행할13 수13 있도록13 만든13 법률집(1803)

을13 새로이13 구축하여13 놓았다 페테르13 세는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세르비아13 중 1

심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구상하였고 따라서13 강력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

현을13 위해13 제 차13 세르비아13 봉기1 (Prvi srpski ustanak 1804- 를13 통해13 세1813)

르비아13 자치13 국가를13 건설하려던13 카라조르제13 뻬트로비치(Karađorđe Petrović)

의13 봉기군과13 유기적13 연결13 관계를13 구축하게13 된다 이를13 위해13 페테르13 세는13 러 1

시아의13 지원을13 기대하며13 당시13 프랑스군이13 점령하고13 있던13 코토르만(Boka

과13 두브로브니크를13 탈환한13 후13 몬테네그로 헤르체고비나 코토르만Kotorska)

달마티아 지역13 등을13 중심으로13 한13 (Dalmacija) lsquo슬라브13 세르비아13 왕국rsquo을13 건설

138 김철민

하겠다는13 그의13 의지를13 표방하였으나 나폴레옹의13 러시아13 침공과13 함께13 그의13

바람은13 수포로13 돌아가게13 된다

이러한13 페테르13 세의13 남슬라브족13 이상에13 대해13 미오미르13 다쉬치1 (Miomir

는13 년13 이룬13 남슬라브족의13 통합13 정신이13 바로13 몬테네그로의13 페테르13 Dašić) 1918

세로부터13 출발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그는13 1 ldquo페테르13 세가13 세르비아인1

과13 크로아티아인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인 몬테네그로인의13 조화와13 형제애 단합

을13 강조하였던13 애국적인13 시인이자13 훌륭한13 정치가였다rdquo라고13 언급하면서 이러

한13 페테르13 세의13 정신이13 이후13 약하게나마13 니콜라13 시기까지13 이어지게13 되어1

년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국가가13 수립될13 수13 있었1918

다고13 말하고13 있다 무엇보다도13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그13 사(Dašić 1999 487)

실여부를13 떠나13 년13 수립된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그리고13 이13 왕국으로1918

의13 몬테네그로13 편입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이라는13 차원에서13 인식하고13 있다

는13 점에서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는13 독립13 세력들로부터13 일련의13

비판을13 받고13 있는13 상황이다

자신들의13 독립13 근대13 왕국을13 건설하고자13 했던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바람은13 현

대13 몬테네그로13 국가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설립자이자13 유명한13 시인이기도13 했

던13 페테르13 세13 시기에13 들어와서부터라13 볼13 수13 있다 반면13 세르비아인들은13 이13 2

당시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에13 크게13 호응하고13 있었고 이러

한13 그의13 이상을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도13 확산시키고자13 여러13 노력을13 기울이고13

있던13 시점이었다 페테르13 세는13 오스만13 터키의13 견제와13 프랑스의13 간섭13 그리고13 2

계속되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13 속에서도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결속과13 단결을13

이끌어내 년13 마침내13 오스트리아등13 주변13 강대국들로부터13 독립국가로서 1842

의13 인정을13 받을13 수13 있게13 된다 이어13 그의13 왕권은13 그의13 (Petrovich 1976 232)

조카인13 다닐로(Danilo I Petrović 1852~ 에게13 계승되었으나 년13 1860) 1860

암살에13 의한13 사망으로13 인해13 왕위는13 니콜라 에(Nikola Petrović 1860~1916)

게13 승계되게13 된다

니콜라는13 년부터13 시작된13 수차례의13 오스만13 터키13 공격을13 잘13 막아내었1862

고 년13 월13 1878 3 lsquo산스테파노 조약(San Stefano) rsquo과13 동년13 월13 6 lsquo베를린(Berlin)

조약rsquo의13 결과13 비록13 국제적으로13 인정은13 받지13 못했지만 몬테네그로는13 독립13 국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9

가를13 위한13 토대를13 구축할13 수13 있게13 되었다 베를린13 조약의13 결과13 몬테네그로의13

면적은13 과거보다13 배13 더13 확장되었고 오랜13 숙원이던13 2 (4400 9475 ) rarr

바르나 울찐13 등13 해안지대를13 확보할13 수13 있게13 된다 이때13 이후13 수도인13 쩨티녜

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는13 경제 사회적13 발전을13 이루게13 되어 년에13 들어 1899

와서는13 개의13 공립학교와13 개의13 사립학교가13 설립13 되게13 되었다 또한13 러시75 26

아의13 지도13 아래13 근대식13 군대가13 창설되었고 오스트리아의13 원조13 아래13 쩨티녜

에서13 코토르까지13 최초의13 근대식13 개념의13 도로와13 철도가13 설립되게13 된다

니콜라13 하의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관계는13 같(Komatina 1999 131)

은13 남슬라브족으로서13 선린관계를13 유지하고13 있었다 하지만13 세르비아13 정국13 주

도권을13 둘러싼13 오브레노비치 왕조와13 페트로비치 왕조(Obrenović) (Petrović)

간의13 계속된13 유혈13 사태는13 곧13 바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불협화음을13 초

래하게13 하였다10 특히13 세르비아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13 및13 발칸13 유럽내13 남

슬라브족13 국가들을13 통합해13 나가겠다는13 취지13 아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를13 강

력히13 추진하던13 란13 오브레노비치 시기13 이(Milan Obrenović 1868~1889)

후로13 양국은13 다소13 불편한13 관계가13 수립되었고 년13 마침내13 몬테네그로는13 1910

니콜라왕을13 중심으로13 하는13 독립13 군주국가임을13 선포하게13 되었다(Komatina

1999 37-38)11

10 이러한13 불협화음의13 또13 다른13 배경에는13 니콜라13 왕이13 세르비아13 오브레노비치13 왕조의13 정

적인13 카라조르제비치13 가문의13 페테르13 카라조르제비치(Peter I Karađorđević 1903~

까지13 세르비아13 왕위를13 엮임 를13 자신의13 장녀13 조르카 와13 결혼시켰던13 데서도13 1918 ) (Zorka)

그13 요인을13 찾을13 수13 있다

11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13 움직임13 속에13 치러진13 당시13 취임식에서13 니콜라왕은13 몬테네그로13

민족의13 독자성과13 독립된13 민족13 정체성을13 그들의13 중세13 역사13 속에서13 찾을13 것을13 천명하였

다 우리는13 과거13 제타13 왕국의13 보이슬라브 미하일로13 그리고13 보딘의13 자손이다 시간은13 ldquo

단지13 이13 땅위에13 존재하였던13 것을13 파괴할13 수13 있었지만 이13 안에13 꿈틀대고13 있는13 자유에13

대한13 의지와13 충성스러운13 산악인들의13 뜨거운13 심장을13 파괴할13 수는13 없었다 우리는13 오랜13

역사의13 토대13 위에13 왕국13 건설의13 부활을13 시작하였고 오늘날13 이13 왕국은13 여기13 천상의13 햇

빛아래13 반짝이는13 우리의13 고대왕국에13 그13 뿌리를13 두고13 있다rdquo httpwwwmontenetorg

history

140 김철민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IV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주요13 배경과13 진행과정13 1

세기13 초13 몬테네그로는13 비록13 니콜라왕의13 독립13 왕국13 선포에도13 불구하고20

복잡한13 발칸유럽의13 정세와13 더불어13 매우13 혼돈의13 시기를13 맞이하고13 있었다 몬

테네그로는13 년과13 년에13 치른13 제 차13 발칸전쟁에서의13 승전에도13 불1912 1913 1 2

구하고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종결이후13 세르비아13 주도의13 최초13 남슬라브족13 191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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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를13 결정해야만13 했다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의13 압력과13 불확실한13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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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와13 함께13 새로운13 연방을13 구성해13 나갈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단행하게13 된다 전체13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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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13 국민은13 세르비아와13 운명을13 같이13 할13 것을13 결정짓게13 된다(Komatina 1999

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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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세르비아13 정부에게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rsquo이13 아닌13 lsquo몬테네그로-세르비아13 연합13 국가rsquo라는13 명칭으로13 변경할13 것과13 현행13 연방13 헌법을13 폐지할13 것 그리고13 연방13 정부13 협의13 체제를13 각13 공화국간13 각료간13 협의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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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나13 독립을13 이루려던13 몬테네그로의13 의도는13 년13 월13 세르비아에서13 반2000 10

로쉐비치13 민주화13 혁명이13 일어나 민주인사인13 보이슬라브13 코슈투니짜( ) 反연방13 대통령이13 등장하게13 되자13 난관에13 봉착하게13 된다(Vojslav Koštunica) 13

13 년13 월13 일13 치러진13 유고연방의13 대선과13 총선13 투표에13 대해 선거13 위원회가13 발표2000 9 24

한13 결과와는13 달리 세르비아13 민주야당 의13 코슈투니차 (DOS) (Kos 후보13 진영에선13 tu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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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민주화를13 요구하는13 시위대의13 물결이13 베오그라드에13 집결하

142 김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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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rdquo는13 점을13 강조하였고 이어13 이러한13 선언이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추구하고자13

했던13 미국과13 서방의13 지지를13 얻게13 됨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다소13 어

려움을13 겪게13 된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민주화13 혁명13 성공과13 대외적인13 압력에도13 불구하고 몬테

네그로의13 독립을13 향한13 움직임은13 계속13 지속되었다 특히13 몬테네그로는13 우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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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13 실어주게13 된다김철민( 2005 141)15 하지만13 총선13 직후 몬테네그로13 독립

추진에13 대한13 미국과13 의13 반응은13 EU ldquo이러한13 시도가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해칠13 수13 있다rdquo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보냈었고 마침내13 대표단이13 동년13 월13 몬 EU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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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13 월13 일13 이전에13 치르기로13 했던13 2001 7 13 lsquo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13 총선rsquo을13 철회한다는13 발표를13 해야만13 했다

년13 월13 세르비아13 총리이자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인13 정치13 구심점이었던13 200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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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고 총13 파업이13 유고13 전역에서13 시작되게13 되었다 계속된13 시위와13 민주화13 요구13 속에13

가장13 큰13 후원자였던13 러시아로부터도13 지원13 약속을13 받아13 내지13 못하자 로쉐비치는13 국

영13 에서13 자신의13 패배를13 인정하고13 정권13 이양을13 선언하게13 된다 선언내용은13 라디오TV lsquo

텔레비전13 세르비아 사이트인13 참조 뒤13 이어13 월13 일 민주13 인rsquo httpwwwrtscoyu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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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수하기13 시작하였고 곧13 이어13 유럽연합은13 년13 코소보13 전쟁이후로13 발효된13 유고연 1999

방에13 대한13 석유금수조치를13 해제해13 주고 몬테네그로13 문제를13 비롯한13 모든13 중요13 현안들

에13 있어13 새롭게13 등장한13 민주13 정권에13 대한13 지지를13 분명히13 전달하게13 된다

14 년13 월13 이후13 공식화폐는13 유로 화로13 변경2002 1 (Euro)

15 총선13 결과 분리13 독립파지지13 세력13 를 연방13 유지파13 지지13 세력은13 를13 차지 421 407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극해13 코소보13 사태와13 같은13 심각한13 위험을13 초래13 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점을13 경고하였다 동시에13 ldquo몬테네그로가13 연방13 내에13 계속13 존속하기를13 강력히13 희망한다rdquo는13 메시지와13 함께 ldquo국방 외교 통화13 등에13 대한13 권한만을13 연방정부에13 이양하고13

나머지13 조세와13 여러13 권한들에13 대해선13 몬테네그로13 정부가13 독자적으로13 주도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합을13 제안하게13 된다16 하지만13 이러한13 제안이13

발표된13 직후13 몬테네그로13 정부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여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다

시13 실시할13 것임을13 발표하는13 것으로 세르비아13 정부의13 제안을13 거절하였다

여러13 차례의13 회담과13 논의13 끝에13 년13 월13 연방13 정부13 및13 세르비아와13 몬테200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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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로가13 연합한13 연방을13 계속13 존속할13 것과13 이후13 양13 공화국이13 몬테네그로13 독

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실시할13 것13 그리고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공화국(SRJ)rsquo에서13 lsquo세르비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rsquo으로13 변경할13 것13 등이었다 이

어13 이13 합의문에13 따라13 하나의13 국가연합13 체제라는13 틀13 속에서13 국방과13 외교 무

역 재정 인권부문13 등13 개13 내각은13 연방13 정부내13 합동행정기구에 나머지13 모든13 5

권한은13 각13 공화국이13 독자적으로13 운영하는13 느슨한13 연합13 국가13 탄생이13 결정되었

다 또한13 그13 내용에13 따라13 국제적으로는13 등13 국제기구에서13 하나의13 의석을13 UN

갖는13 단일13 국가로13 활동하며 현행13 조약과13 협정에13 대한13 과거13 유고연방의13 권리

와13 책임을13 승계한다는13 원칙이13 수립되게13 된다 그리고13 마침내13 년13 월13 세 2003 4

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13 의회에서13 양13 국13 지도부들간의13 몬테네그로13 연방13

존속13 안에13 대한13 협정이13 승인되게13 되면서13 현재에13 이르고13 있다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의13 향후13 전망과13 그13 의미13 2

새로운13 연합13 국가를13 구성하는13 데13 양13 국이13 합의한13 직후 년13 월13 세르 2003 3

비아-몬테네그로13 의회는13 몬테네그로13 출신의13 법률가13 스베토자르13 마로비치

를13 전체13 의석13 석13 중 찬성13 반대13 기권13 표로13 (Svetozar Marović) 126 65 47 14

16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13 대표적13 신문인13 보르바 참조- lsquo (Borba)rsquo httpwwwborbacoyu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제를13 구축해13 나가고13 있다 반면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이 2003 5

전13 로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의13 측근이자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강력히13 주장하였

던13 필립13 부야노비치 전13 총리가13 승리를13 거둠으로써 현재13 몬(Filip Vujanović)

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정국은13 매우13 혼미한13 상태로13 진행되고13 있다

연합13 국가를13 계속13 유지해13 나가려는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노력들을13 뿌리치고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으로부터13 벗어나13 새로이13 독립13 국가를13 구성해13 나가려는13 몬

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는13 향후13 다소13 난항을13 겪을13 것으로13 예상된다 그러한13 분

석을13 내리는13 배경에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13 그리고13 발칸반도를13 둘러싼13 다

음과13 같은13 장애요소들이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기13 때문이다 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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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다

우선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는13 가장13 큰13 장애13 요소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독립

을13 향한13 단합된13 의지를13 어느13 정도까지13 그리고13 어디까지13 보여줄13 수13 있을13 것인

가 라는13 문제이다 몬테네그로는13 지난13 년13 월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몬테네 2003 5

그로의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부야노비치13 전13 총리가13 대통령에13 당선되었지만 그13

전개13 과정이13 그리13 매끄럽지13 못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당시13 대통령13 선거13 투표율

은13 전체13 유권자의13 득표율은13 에13 불과하였는데 그13 동안13 부야노비치13 48 65

후보는13 년13 월과13 년13 월에13 치러진13 두13 차례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최다13 2002 12 2003 2

득표율을13 기록하긴13 했으나 두13 차례13 선거13 모두13 헌법상13 최저13 투표율인13 를13 50

밑돌아13 무효처리가13 되었었다 따라서13 여러13 논란13 속에13 치러진13 년13 월13 선 2003 5

거에선13 쥬카노비치의13 주도13 아래13 조정된13 새로운13 선거법13 즉 최저13 유효13 투표율13

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선거가13 치러지게13 되었다 이러한13 점은13 지난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이13 2001 4

주요13 이슈로13 떠13 오른13 총선을13 통해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근소한13 차로13 승리하긴13

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으로13 국명이13 바뀐13 후13 몬테네그로13 최초13 대통령이13

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이다 실제 몬테네그로13 헌법적13 지위변화에13 관한13 국민투표가13 실행되기13 위해

선13 전체13 몬테네그로13 의원13 명13 가운데13 인13 명의13 동의가13 필요하지만77 23 52

년13 월13 선거에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석을13 얻는13 데13 그친13 실정이다 더불어13 2001 4 44

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산업13 기지와13 생산능력이13 취약해13 주력13 산업으로13 관광업을13 육성시키고13 있는13 몬

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비아인이라는13 점(httpwwwvisit- 그리고13 세르비아로부터13 montenegrocom)

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세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해13 나가려는13 데13 있어13 세르비아의13 강력한13

17 년13 인구조사에13 따르자면 몬테네그로13 총13 인구13 비율은13 몬테네그로인이13 약13 1991 617(

명 세르비아인이13 약13 명 무슬림이13 약13 명 알바니381000 ) 93( 57000 ) 145( 89000 )

아인이13 약13 명 기타13 인구가13 약13 명 를13 차지한다 이외에도13 세65( 40000 ) 8( 49000 )

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년13 기준으로13 몬테네그로13 자체13 방위13 병력이13 여13 명에13 불과한13 상황에서13 만3000

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세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13 분할과13 민족간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휘말릴13 가능성이13 높

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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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8: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132 김철민

크로아티아인과13 슬로베니아인은13 남슬라브족의13 평등13 국가라는13 점을 그리고13

세르비아의13 압력과13 회유에13 의해13 강제13 복속당한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엔13 또13 다

른13 지배자를13 맞이했다는13 역사적13 평가를13 낳게13 하였다

역사13 속에13 비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III

중세13 두클리야 제타 공국과13 세르비아1 ( )

몬테네그로인이13 발칸유럽에13 들어13 온13 시기는13 세기와13 세기경으로13 추정되5 6

며 이들은13 일단의13 남슬라브족들과13 함께13 다뉴브13 강을13 건너13 당시13 비잔틴13 제국13

지배13 하에13 있었던13 현13 지역에13 정착하게13 된다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의13 주장대

로13 현재까지의13 기록에13 따르자면13 발칸반도13 이주13 초기 몬테네그로인은13 다른13

남슬라브족13 특히13 세르비아인과13 거의13 구별되는13 않은13 채13 같은13 민족의13 일파로13

인식되고13 있음을13 확인할13 수13 있다 아바르 족과13 함께13 연합해13 비잔틴13 제 (Avar)

국이13 차지하고13 있던13 발칸유럽13 지역을13 장악하는13 데13 성공한13 남슬라브족은13 산악

지대가13 많은13 발칸유럽의13 지리적13 특성상13 점차13 느슨한13 정치적 사회적13 구조를13

지닌13 부족13 공동체로13 나눠지게13 되었다6 몬테네그로의13 중세13 역사13 또한13 이러한13

지리적13 험준함과13 남슬라브족의13 분열에13 따라13 시작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함께13 발칸반도로13 이주해13 들어13 온13 몬테네그로인은13 세7

6 산악지대가13 많은13 발칸유럽으로13 이주하였던13 남슬라브족은13 광활한13 평야13 지역으로13 이주

하였던13 여타13 다른13 슬라브족들과13 달리13 세월의13 흐름과13 함께13 각13 부족13 공동체들13 간에13 느

슨한13 정치적 사회적13 구조만을13 지니게13 된다 그13 이유는13 발칸13 지역의13 지리적13 험준함에13

따른13 것으로 이로13 인해13 남슬라브족은13 작은13 집단13 구성체로13 독자적인13 부족을13 형성하여

갔고 다음13 세대가13 등장하기13 전에13 각13 부족13 공동체들13 간의13 교류와13 문화13 전달이13 단절되

었으며 점차적으로13 관습 언어 정치13 조직13 간의13 차이점들이13 커져가게13 된다 이러한13

단절과13 차이점13 확대는13 곧13 이어13 남슬라브13 민족들13 간의13 정치적13 분열과13 군사력의13 약화로13

이어지게13 되었다 이에13 따라13 세기13 말에13 접어들게13 되면서13 남슬라브족의13 분화가13 확대 9

되기13 시작하였고 이러한13 분화에13 따라13 남슬라브족들은13 시기를13 거치면서13 크게13 불가리

아족 세르비아족 크로아티아족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족이라는13 개의13 남13 슬라브족13 공동 4

체로13 나누어지게13 된다 김철민( 2003 317-3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3

기13 이후에13 들어와13 코토르 부드바 바르 울찐(Kotor) (Budva) (Bar) (Ulcinj)

등13 현재의13 몬테네그로13 아드리아13 연안을13 중심으로13 자신들의13 부족13 국가들을13 수

립하게13 된다 몬테네그인은13 정착13 초기13 다른13 남슬라브족처럼13 고대13 원시13 슬라

브족의13 부족13 종교를13 지니고13 있었으나 점차13 시간이13 흐르면서13 이13 지역13 원주민

인13 로마인의13 사회와13 문화에13 점차13 동화되어13 갔고 그13 결과13 세기13 이후로13 로 12

마인들의13 신앙인13 기독교를13 자신의13 종교로13 수용하게13 되었다7

현13 세르비아로부터13 분리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분리13 독립파는13 몬테네그로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지배13 하로13 들어가기13 이전까지13 약13 년간13 고유한13 정체1918 1000

성을13 지니고13 발전하였으며 그13 역사는13 세기에13 성립된13 9 lsquo두클리야13 공국rsquo에서부터13 비롯되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비록13 세기13 무렵13 당시13 비잔틴13 제국의13 영 10

향력13 하에13 있었지만 두클리야13 공국의13 영토는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지방의13 대부

분을13 비롯해 남으로는13 알바니아13 상당13 지역인13 남부13 아드리아13 해안까지13 그리

고13 서쪽으로는13 현재의13 헤르체고비나13 지방을13 포함하고13 있었다 두클리야13 공국

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시조인13 보이슬라브 가13 년13 몬테네그로13 해(Vojislav) 1042

안가13 바르에서13 치룬13 비잔틴13 제국과의13 싸움에서13 승리를13 거둔13 이후13 본격적으로13

독립13 국가로서의13 기틀을13 잡아가게13 된다 이후13 두클리야의13 번영은13 보이슬라브

의13 아들인13 미하일로 와13 그의13 아들13 보딘(Mihailo 1046~1081) (Bodin 1081~

치하에서13 절정에13 이르렀다 미하일로는13 왕권을13 넘겨받은13 이후13 비잔틴1101)

과의13 평화13 관계를13 유지함과13 동시에 안정된13 국력과13 발달된13 경제력을13 바탕으

로13 년13 로마교황13 그레고리13 세 로부터13 독립13 왕국을13 인정받1077 7 (Gregory VII)

게13 되었다 미하일로의13 뒤를13 이은13 보딘은13 년13 로마13 교황13 클리멘트13 세 1089 3

로부터13 가톨릭13 대주교13 관직을13 획득하는13 등13 종교를13 통한13 국가13 (Clement III)

지배권13 강화를13 추진함으로써13 왕국의13 안정과13 황금기를13 이루게13 된다 하지만13

로마13 교회와의13 접한13 관계13 수립은13 곧13 이어13 비잔틴13 제국의13 강력한13 견제를13 불

러왔고 보딘13 사후13 일어난13 권력13 투쟁으로13 국력의13 약화가13 발생하게13 된다 그13

7 이때13 당시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을13 장악하고13 있던13 로마13 교회 후에13 가(

톨릭으로13 발전 의13 영향력13 하에13 놓여13 있었다 비록13 비잔틴13 제국의13 콘스탄티노플13 교회)

후에13 정교 로13 발전 와13 인근13 마케도니아와13 불가리아13 지역에서13 비롯된13 보고 교가13 한( lsquo rsquo )

때13 영향력을13 발휘하기도13 했지만 기록에13 따르자면13 이후로13 상당13 기간13 동안13 몬테네그로

인은13 가톨릭13 신앙에13 매우13 충실하였다고13 볼13 수13 있다 httpwwwmontenetorghistory

134 김철민

결과13 년13 비잔틴13 제국의13 지원을13 받은13 라쉬카13 공국의13 스테판13 네마냐에13 의1186

해13 정복당함으로써 세르비아의13 지배를13 받게13 되었다 이후13 두클리야13 공국은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13 하에서13 이13 지역13 제타강의13 이름을13 따13 lsquo제타13 공국rsquo으로도13 불리게13 된다

스테판13 네마냐는13 제타13 공국을13 지배한13 이후13 제타13 공국의13 모든13 도시들을13 파

괴하였고 보고 교13 추방과13 더불어13 가톨릭을13 믿고13 있던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13 정교로의13 강제13 개종13 그리고13 세르비아인으로의13 동화13 작업을13 추진하

게13 된다8 라쉬카13 공국은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아들인13 스테판13 네마니치13 시기에13

들어와13 중세13 세르비아13 독립13 왕국으로13 발전하였고 세르비아13 통치13 하에서13 몬

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지역을13 활용 활발한13 무역거래를13 통해13 상업적

경제적13 발전을13 이룩하게13 된다 하지만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에13 대해13 몬테네그

로13 분리13 독립파는13 당시부터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로부터13 독립하기13 위

한13 여러13 저항13 운동을13 추진하였고 그13 결과13 lsquo세르비아와13 그리스의13 왕이자13 황제rsquo로13 불렸던13 세르비아의13 두샨13 왕이13 년13 사망한13 직후 독립을13 얻을13 수13 있1355

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은13 두샨왕13 사후13 비록13 왕

권13 다툼과13 오스만13 터키의13 유럽13 원정으로13 다소13 지배권이13 약화되었지만 이13 시

기13 동안13 제타13 공국은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에서13 결코13 벗어나지13 못했다고13 주장하

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3)

제 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은13 년13 발쉬치 시조인13 발샤13 세2 1356 (Balšić 1

에서13 유래됨 왕조에서부터13 비롯되게13 된다 세르비아의13 정치적13 혼란(Balša I) )

을13 틈타13 왕국을13 재건하였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점차13 세력을13 확대해13 두샨왕13 당시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수도였던13 스코쁠예 오늘날13 마케도니아13 수도(Skoplje )

그리고13 뻬치 와13 쁘리즈렌 등13 코소보를13 비롯해13 과거13 라쉬카13 공(Peć) (Prizren)

국의13 지배13 지역들을13 하나씩13 점령하여13 갔으며 서쪽으로는13 두브로브니크

8 세기13 몬테네그로의13 가장13 유명한13 역사가13 중13 한명인13 빠블레13 로빈스키19 (Pavel

는13 당시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몬테네그로인13 정체성13 말살13 작업을13 비판하고13 있는13 Rovinski)

데 그에13 따르자면13 네마냐가13 당시13 두클리야의13 모든13 종교13 서적 역사서 지리서 문학

서13 등13 종류의13 구분13 없이13 불태워13 버렸다고13 비난하고13 있다 httpwwwmontenetorg

두클리야13 복속13 이후13 네마냐의13 여러13 행적에13 관해선13 history Božić Ćirković

참조Ekmečić and Dedijer(1973 51)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5

을13 포함13 헤르체고비나13 지역까지13 그13 세력을13 확장하여13 갔다 이13 (Dubrovnik)

당시13 발쉬치13 가문은13 중세13 세르비아의13 네먀니치13 왕조와13 여러13 경로에13 걸쳐13 가

족13 관계를13 형성하고13 있었는데 세르비아13 주장에13 따르자면13 몬테네그로는13 이

러한13 혼인13 관계를13 통한13 정통성13 인정에13 주력하였다고13 언급하고13 있다 실제13 기

록에13 따르더라도13 당시13 발쉬치13 왕조는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전통을13 계승하겠

다고13 나선13 보스니아13 왕국과13 여러13 차례13 전쟁을13 치러야13 했으며 년에는13 현13 1377

세르비아의13 레쉐보 에서13 세르비아의13 왕으로13 등극한13 보스니아의13 (Mileševo)

트브르트코13 세 의13 왕위13 계승을13 부정하기도13 하였다I (Tvrtko I) 9 한때13 왕국의13

발전을13 이루었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년13 코소보13 전투에서13 세르비아를13 도와13 1389

오스만13 터키와13 벌였던13 전투에서13 패배하여13 커다란13 위기를13 초래하게13 된다 곧13

이어13 년13 발샤13 세 가13 추진하였던13 아드리아해13 상권13 획득을13 둘1419 3 (Balša III)

러싼13 베니스와의13 전쟁에서13 패하면서13 제타13 공국의13 발쉬치13 왕조는13 몰락의13 길을13

가게13 되었다

한13 동안13 외세의13 침입과13 권력내분에13 시달렸던13 제타13 공국은13 중세13 몬테네그

로13 왕국의13 제 대13 왕조인13 쯔르노예비치 왕조의13 출현과13 더불어13 안3 (Crnojević)

정을13 되찾게13 된다 쯔르노예비치13 왕조는13 해안지대를13 중심으로13 발전을13 이룬13

다른13 왕조들과는13 달리13 몬테네그로13 북부13 산악지대인13 로브첸 지역에(Lovčen)

서부터13 시작되었다 하지만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마지막13 왕조였던13 쯔르노예비

치13 왕조는13 그리13 오랜13 기간13 유지되지13 못하였다 우선13 시조인13 스테판13 쯔르노예

비치 와13 그의13 아들13 이반13 쯔르노예비치(Stefan Crnojević 1427~1465) (Ivan

Crnojević 1465- 그리고13 오스만13 터키의13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다13 전사1490)

9 발쉬치13 왕조는13 비록13 과거13 두클리야13 공국의13 뒤를13 이은13 제타13 공국의13 지배자였지만 또

한13 동시에13 자신들을13 과거13 라쉬카13 공국의13 영주로 세르비아13 네마니치가의13 먼13 인척으로13

생각하고13 있었다 따라서13 문자에13 있어서도13 자신들이13 주로13 쓰는13 라틴문자와13 함께13 세르

비아에서의13 키릴문자를13 혼용해서13 사용하였고 종교에13 있어서도13 비록13 가톨릭을13 국가적13

종교로13 인정하고13 있었지만 세르비아가13 믿고13 있는13 정교에13 대해서도13 여러13 관심과13 주도

적13 역할을13 수행하고13 있었다 이러한13 예는13 발쉬치13 왕조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라쟈르13 1375

왕자와13 함께13 세르비아13 정교회13 총대주교를13 선출하기13 위해13 소집한13 교회13 성직자단13 회의

를13 주도한13 데서도13 확인될13 수13 있다 이에13 대해13 세르비아니즘이13 확산되고13 있던13 근대

세르비아의13 민족주의13 학자인13 쥬라13 다니취치 는13 위의13 경우를13 해(Daničić 1876 11-13)

석하는13 데13 있어 제타13 공국의13 세르비아에13 대한13 의존과13 종속성이13 높았다고13 강조하고13

있다

136 김철민

한13 이반의13 아들13 쥬라즈13 쯔르노예비치 를13 마(Djuradj Crnojevic 1490~1496)

지막으로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역사는13 끝이13 나게13 된다

하지만13 비록13 짧은13 기간의13 통치였지만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몬테네그로13 역

사에13 남긴13 영향은13 매우13 컸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시작

과13 함께13 제타13 공국은13 오늘날13 명칭인13 쯔르나13 고라 몬테네그로(Crna Gora

란13 지명으로13 불리게13 되었다 두13 번째로는13 이13 시기13 주변의13 남(Montenegro))

슬라브족13 국가들이13 모두13 오스만13 터키의13 지배13 하로13 넘어갔음에도13 불구하고

쯔르노예비치는13 년13 수도를13 스카다르 호수의13 쟈블략 에1482 (Skadar) (Zabljak)

서 보다13 수비가13 용이한13 험준한13 지역인13 로브첸13 산악지대로브첸스키13 돌라쯔 (

오늘날13 쩨티녜 의13 전신로13 옮겨13 오스만13 터키의13 (Lovcenski Dolac (Cetinje) )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였다는13 점이다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은13 훗날13 외세의13 침

략과13 지배가13 있을13 때마다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에13 저항13 정신과13 독립13 추진에13

대한13 원동력을13 제공하였으며 현13 분리13 독립파13 또한13 이러한13 역사를13 상기시키

며 세르비아로부터의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다 그리고13 세13 번째로13 발칸유럽13 국

가들13 중에선13 최초로13 년13 베네치아에서13 인쇄13 도구와13 인쇄기를13 도입하고1493

납으로13 된13 글자체와13 필체13 장식을13 위한13 주조물을13 만들어13 냄으로써 이후13 약13

여13 년간13 세르비아와13 보스니아에서13 키릴13 문자로13 인쇄된13 서적들의13 출판에13 100

상당한13 영향을13 미쳤다는13 자부심을13 안겨주었다

비록13 일부13 반론이13 있기는13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가들의13 주장에13 따르자면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재건한13 중세13 왕국은13 당시13 오스만13 터키에13 의해13 사라져13

버린13 세르비아13 네마니치13 왕조의13 국가13 전통과13 문화유산을13 그대로13 계승하고자13

노력했던13 것으로13 보인다 그러한13 실례는13 당시13 관직명과13 교구13 운영에13 있어서13

과거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관직명들이13 그대로13 채택하고 세르비아13 제국13 시절을13

본13 따13 lsquo황제와13 총대주교구의13 법원rsquo을13 설치했음을 그리고13 모든13 법률13 조항에13

있어13 과거13 두샨왕13 시절13 제작된13 lsquo두샨13 법전rsquo의13 조항들을13 그대로13 적용시켰다는13 점을13 들13 수13 있다 이를13 기초로13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13 가운데13 상당수는13 년13 1496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붕괴와13 중세13 몬테네그로13 왕국의13 종말은13 세르비아13 민족

이13 이룬13 중세13 국가의13 마지막13 형태가13 사라졌음을13 의미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5)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7

근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과13 세르비아니즘2

발칸유럽의13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마찬가지로13 몬테네그로인13 또한13 오스만13 터

키지배13 하에서13 터키의13 계획적이고13 철저한13 약탈13 경제13 정책으로13 인해13 사회 경

제적13 어려움이13 가중되게13 된다 과거13 아드리아13 해안13 상권을13 이용해13 이룩한13 왕

성한13 상업과13 무역13 활동13 그리고13 이를13 통한13 부의13 축적의13 가능하였던13 몬테네그

로인은13 이들13 분야를13 경시하고13 농업 임업 공공13 건설13 사업에13 치중하였던13 오스

만13 터키의13 정책에13 따라13 일련의13 암흑기를13 맞이하게13 되었다 또한13 오스만13 터키

의13 국력이13 쇠락해진13 세기13 말13 이후로13 세금13 부담이13 지나치게13 커지면서13 몬테17

네그로인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의13 충돌이13 빈번하게13 발생하였고 이에13 따라13 몬테

네그로인은13 상황이13 허락하는13 한13 베네치아13 등13 서구13 국가들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

의13 충돌시13 서구13 국가들을13 지원해13 아드리아의13 또13 다른13 주요13 지역인13 lsquo라구사공국오늘날13 두브로브니크 일대(Ragusa) ( (Dubrovnik) )rsquo의13 경우처럼13 이들로

부터13 자치권을13 보장받으려13 했다

이러한13 노력은13 페테르13 세1 (Peter I Petrović Njegoš 1782- 와13 페테르13 1830)

세2 (Peter II Petrović Njegoš 1830- 에13 의해13 그13 결실을13 이루게13 된다1851)

페테르13 세는13 당시13 여러13 외세의13 영향력13 하에13 흩어져13 있던13 몬테네그로13 부족들1

을13 한13 데로13 통합하고자13 노력하였고 국가13 수립과13 통치에13 필요한13 근대식13 법률

체계를13 정비하고 사법 행정의13 규율을13 정한13 사법13 행정법 과13 과거의13 관 (1798)

습법에서13 벗어나13 법률에13 근거해13 법을13 집행할13 수13 있도록13 만든13 법률집(1803)

을13 새로이13 구축하여13 놓았다 페테르13 세는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세르비아13 중 1

심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구상하였고 따라서13 강력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

현을13 위해13 제 차13 세르비아13 봉기1 (Prvi srpski ustanak 1804- 를13 통해13 세1813)

르비아13 자치13 국가를13 건설하려던13 카라조르제13 뻬트로비치(Karađorđe Petrović)

의13 봉기군과13 유기적13 연결13 관계를13 구축하게13 된다 이를13 위해13 페테르13 세는13 러 1

시아의13 지원을13 기대하며13 당시13 프랑스군이13 점령하고13 있던13 코토르만(Boka

과13 두브로브니크를13 탈환한13 후13 몬테네그로 헤르체고비나 코토르만Kotorska)

달마티아 지역13 등을13 중심으로13 한13 (Dalmacija) lsquo슬라브13 세르비아13 왕국rsquo을13 건설

138 김철민

하겠다는13 그의13 의지를13 표방하였으나 나폴레옹의13 러시아13 침공과13 함께13 그의13

바람은13 수포로13 돌아가게13 된다

이러한13 페테르13 세의13 남슬라브족13 이상에13 대해13 미오미르13 다쉬치1 (Miomir

는13 년13 이룬13 남슬라브족의13 통합13 정신이13 바로13 몬테네그로의13 페테르13 Dašić) 1918

세로부터13 출발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그는13 1 ldquo페테르13 세가13 세르비아인1

과13 크로아티아인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인 몬테네그로인의13 조화와13 형제애 단합

을13 강조하였던13 애국적인13 시인이자13 훌륭한13 정치가였다rdquo라고13 언급하면서 이러

한13 페테르13 세의13 정신이13 이후13 약하게나마13 니콜라13 시기까지13 이어지게13 되어1

년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국가가13 수립될13 수13 있었1918

다고13 말하고13 있다 무엇보다도13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그13 사(Dašić 1999 487)

실여부를13 떠나13 년13 수립된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그리고13 이13 왕국으로1918

의13 몬테네그로13 편입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이라는13 차원에서13 인식하고13 있다

는13 점에서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는13 독립13 세력들로부터13 일련의13

비판을13 받고13 있는13 상황이다

자신들의13 독립13 근대13 왕국을13 건설하고자13 했던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바람은13 현

대13 몬테네그로13 국가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설립자이자13 유명한13 시인이기도13 했

던13 페테르13 세13 시기에13 들어와서부터라13 볼13 수13 있다 반면13 세르비아인들은13 이13 2

당시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에13 크게13 호응하고13 있었고 이러

한13 그의13 이상을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도13 확산시키고자13 여러13 노력을13 기울이고13

있던13 시점이었다 페테르13 세는13 오스만13 터키의13 견제와13 프랑스의13 간섭13 그리고13 2

계속되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13 속에서도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결속과13 단결을13

이끌어내 년13 마침내13 오스트리아등13 주변13 강대국들로부터13 독립국가로서 1842

의13 인정을13 받을13 수13 있게13 된다 이어13 그의13 왕권은13 그의13 (Petrovich 1976 232)

조카인13 다닐로(Danilo I Petrović 1852~ 에게13 계승되었으나 년13 1860) 1860

암살에13 의한13 사망으로13 인해13 왕위는13 니콜라 에(Nikola Petrović 1860~1916)

게13 승계되게13 된다

니콜라는13 년부터13 시작된13 수차례의13 오스만13 터키13 공격을13 잘13 막아내었1862

고 년13 월13 1878 3 lsquo산스테파노 조약(San Stefano) rsquo과13 동년13 월13 6 lsquo베를린(Berlin)

조약rsquo의13 결과13 비록13 국제적으로13 인정은13 받지13 못했지만 몬테네그로는13 독립13 국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9

가를13 위한13 토대를13 구축할13 수13 있게13 되었다 베를린13 조약의13 결과13 몬테네그로의13

면적은13 과거보다13 배13 더13 확장되었고 오랜13 숙원이던13 2 (4400 9475 ) rarr

바르나 울찐13 등13 해안지대를13 확보할13 수13 있게13 된다 이때13 이후13 수도인13 쩨티녜

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는13 경제 사회적13 발전을13 이루게13 되어 년에13 들어 1899

와서는13 개의13 공립학교와13 개의13 사립학교가13 설립13 되게13 되었다 또한13 러시75 26

아의13 지도13 아래13 근대식13 군대가13 창설되었고 오스트리아의13 원조13 아래13 쩨티녜

에서13 코토르까지13 최초의13 근대식13 개념의13 도로와13 철도가13 설립되게13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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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140 김철민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IV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주요13 배경과13 진행과정1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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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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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김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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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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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13 있다rdquo는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합을13 제안하게13 된다16 하지만13 이러한13 제안이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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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3 실시할13 것임을13 발표하는13 것으로 세르비아13 정부의13 제안을13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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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13 대표적13 신문인13 보르바 참조- lsquo (Borba)rsquo httpwwwborbacoyu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제를13 구축해13 나가고13 있다 반면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이 200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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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는13 향후13 다소13 난항을13 겪을13 것으로13 예상된다 그러한13 분

석을13 내리는13 배경에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13 그리고13 발칸반도를13 둘러싼13 다

음과13 같은13 장애요소들이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기13 때문이다 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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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라는13 문제이다 몬테네그로는13 지난13 년13 월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몬테네 2003 5

그로의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부야노비치13 전13 총리가13 대통령에13 당선되었지만 그13

전개13 과정이13 그리13 매끄럽지13 못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당시13 대통령13 선거13 투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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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선거가13 치러지게13 되었다 이러한13 점은13 지난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이13 2001 4

주요13 이슈로13 떠13 오른13 총선을13 통해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근소한13 차로13 승리하긴13

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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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이다 실제 몬테네그로13 헌법적13 지위변화에13 관한13 국민투표가13 실행되기13 위해

선13 전체13 몬테네그로13 의원13 명13 가운데13 인13 명의13 동의가13 필요하지만77 23 52

년13 월13 선거에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석을13 얻는13 데13 그친13 실정이다 더불어13 2001 4 44

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산업13 기지와13 생산능력이13 취약해13 주력13 산업으로13 관광업을13 육성시키고13 있는13 몬

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비아인이라는13 점(httpwwwvisit- 그리고13 세르비아로부터13 montenegrocom)

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세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해13 나가려는13 데13 있어13 세르비아의13 강력한13

17 년13 인구조사에13 따르자면 몬테네그로13 총13 인구13 비율은13 몬테네그로인이13 약13 1991 617(

명 세르비아인이13 약13 명 무슬림이13 약13 명 알바니381000 ) 93( 57000 ) 145( 89000 )

아인이13 약13 명 기타13 인구가13 약13 명 를13 차지한다 이외에도13 세65( 40000 ) 8( 49000 )

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년13 기준으로13 몬테네그로13 자체13 방위13 병력이13 여13 명에13 불과한13 상황에서13 만3000

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세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13 분할과13 민족간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휘말릴13 가능성이13 높

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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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9: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3

기13 이후에13 들어와13 코토르 부드바 바르 울찐(Kotor) (Budva) (Bar) (Ulcinj)

등13 현재의13 몬테네그로13 아드리아13 연안을13 중심으로13 자신들의13 부족13 국가들을13 수

립하게13 된다 몬테네그인은13 정착13 초기13 다른13 남슬라브족처럼13 고대13 원시13 슬라

브족의13 부족13 종교를13 지니고13 있었으나 점차13 시간이13 흐르면서13 이13 지역13 원주민

인13 로마인의13 사회와13 문화에13 점차13 동화되어13 갔고 그13 결과13 세기13 이후로13 로 12

마인들의13 신앙인13 기독교를13 자신의13 종교로13 수용하게13 되었다7

현13 세르비아로부터13 분리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분리13 독립파는13 몬테네그로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지배13 하로13 들어가기13 이전까지13 약13 년간13 고유한13 정체1918 1000

성을13 지니고13 발전하였으며 그13 역사는13 세기에13 성립된13 9 lsquo두클리야13 공국rsquo에서부터13 비롯되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비록13 세기13 무렵13 당시13 비잔틴13 제국의13 영 10

향력13 하에13 있었지만 두클리야13 공국의13 영토는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지방의13 대부

분을13 비롯해 남으로는13 알바니아13 상당13 지역인13 남부13 아드리아13 해안까지13 그리

고13 서쪽으로는13 현재의13 헤르체고비나13 지방을13 포함하고13 있었다 두클리야13 공국

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시조인13 보이슬라브 가13 년13 몬테네그로13 해(Vojislav) 1042

안가13 바르에서13 치룬13 비잔틴13 제국과의13 싸움에서13 승리를13 거둔13 이후13 본격적으로13

독립13 국가로서의13 기틀을13 잡아가게13 된다 이후13 두클리야의13 번영은13 보이슬라브

의13 아들인13 미하일로 와13 그의13 아들13 보딘(Mihailo 1046~1081) (Bodin 1081~

치하에서13 절정에13 이르렀다 미하일로는13 왕권을13 넘겨받은13 이후13 비잔틴1101)

과의13 평화13 관계를13 유지함과13 동시에 안정된13 국력과13 발달된13 경제력을13 바탕으

로13 년13 로마교황13 그레고리13 세 로부터13 독립13 왕국을13 인정받1077 7 (Gregory VII)

게13 되었다 미하일로의13 뒤를13 이은13 보딘은13 년13 로마13 교황13 클리멘트13 세 1089 3

로부터13 가톨릭13 대주교13 관직을13 획득하는13 등13 종교를13 통한13 국가13 (Clement III)

지배권13 강화를13 추진함으로써13 왕국의13 안정과13 황금기를13 이루게13 된다 하지만13

로마13 교회와의13 접한13 관계13 수립은13 곧13 이어13 비잔틴13 제국의13 강력한13 견제를13 불

러왔고 보딘13 사후13 일어난13 권력13 투쟁으로13 국력의13 약화가13 발생하게13 된다 그13

7 이때13 당시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을13 장악하고13 있던13 로마13 교회 후에13 가(

톨릭으로13 발전 의13 영향력13 하에13 놓여13 있었다 비록13 비잔틴13 제국의13 콘스탄티노플13 교회)

후에13 정교 로13 발전 와13 인근13 마케도니아와13 불가리아13 지역에서13 비롯된13 보고 교가13 한( lsquo rsquo )

때13 영향력을13 발휘하기도13 했지만 기록에13 따르자면13 이후로13 상당13 기간13 동안13 몬테네그로

인은13 가톨릭13 신앙에13 매우13 충실하였다고13 볼13 수13 있다 httpwwwmontenetorghistory

134 김철민

결과13 년13 비잔틴13 제국의13 지원을13 받은13 라쉬카13 공국의13 스테판13 네마냐에13 의1186

해13 정복당함으로써 세르비아의13 지배를13 받게13 되었다 이후13 두클리야13 공국은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13 하에서13 이13 지역13 제타강의13 이름을13 따13 lsquo제타13 공국rsquo으로도13 불리게13 된다

스테판13 네마냐는13 제타13 공국을13 지배한13 이후13 제타13 공국의13 모든13 도시들을13 파

괴하였고 보고 교13 추방과13 더불어13 가톨릭을13 믿고13 있던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13 정교로의13 강제13 개종13 그리고13 세르비아인으로의13 동화13 작업을13 추진하

게13 된다8 라쉬카13 공국은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아들인13 스테판13 네마니치13 시기에13

들어와13 중세13 세르비아13 독립13 왕국으로13 발전하였고 세르비아13 통치13 하에서13 몬

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지역을13 활용 활발한13 무역거래를13 통해13 상업적

경제적13 발전을13 이룩하게13 된다 하지만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에13 대해13 몬테네그

로13 분리13 독립파는13 당시부터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로부터13 독립하기13 위

한13 여러13 저항13 운동을13 추진하였고 그13 결과13 lsquo세르비아와13 그리스의13 왕이자13 황제rsquo로13 불렸던13 세르비아의13 두샨13 왕이13 년13 사망한13 직후 독립을13 얻을13 수13 있1355

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은13 두샨왕13 사후13 비록13 왕

권13 다툼과13 오스만13 터키의13 유럽13 원정으로13 다소13 지배권이13 약화되었지만 이13 시

기13 동안13 제타13 공국은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에서13 결코13 벗어나지13 못했다고13 주장하

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3)

제 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은13 년13 발쉬치 시조인13 발샤13 세2 1356 (Balšić 1

에서13 유래됨 왕조에서부터13 비롯되게13 된다 세르비아의13 정치적13 혼란(Balša I) )

을13 틈타13 왕국을13 재건하였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점차13 세력을13 확대해13 두샨왕13 당시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수도였던13 스코쁠예 오늘날13 마케도니아13 수도(Skoplje )

그리고13 뻬치 와13 쁘리즈렌 등13 코소보를13 비롯해13 과거13 라쉬카13 공(Peć) (Prizren)

국의13 지배13 지역들을13 하나씩13 점령하여13 갔으며 서쪽으로는13 두브로브니크

8 세기13 몬테네그로의13 가장13 유명한13 역사가13 중13 한명인13 빠블레13 로빈스키19 (Pavel

는13 당시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몬테네그로인13 정체성13 말살13 작업을13 비판하고13 있는13 Rovinski)

데 그에13 따르자면13 네마냐가13 당시13 두클리야의13 모든13 종교13 서적 역사서 지리서 문학

서13 등13 종류의13 구분13 없이13 불태워13 버렸다고13 비난하고13 있다 httpwwwmontenetorg

두클리야13 복속13 이후13 네마냐의13 여러13 행적에13 관해선13 history Božić Ćirković

참조Ekmečić and Dedijer(1973 51)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5

을13 포함13 헤르체고비나13 지역까지13 그13 세력을13 확장하여13 갔다 이13 (Dubrovnik)

당시13 발쉬치13 가문은13 중세13 세르비아의13 네먀니치13 왕조와13 여러13 경로에13 걸쳐13 가

족13 관계를13 형성하고13 있었는데 세르비아13 주장에13 따르자면13 몬테네그로는13 이

러한13 혼인13 관계를13 통한13 정통성13 인정에13 주력하였다고13 언급하고13 있다 실제13 기

록에13 따르더라도13 당시13 발쉬치13 왕조는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전통을13 계승하겠

다고13 나선13 보스니아13 왕국과13 여러13 차례13 전쟁을13 치러야13 했으며 년에는13 현13 1377

세르비아의13 레쉐보 에서13 세르비아의13 왕으로13 등극한13 보스니아의13 (Mileševo)

트브르트코13 세 의13 왕위13 계승을13 부정하기도13 하였다I (Tvrtko I) 9 한때13 왕국의13

발전을13 이루었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년13 코소보13 전투에서13 세르비아를13 도와13 1389

오스만13 터키와13 벌였던13 전투에서13 패배하여13 커다란13 위기를13 초래하게13 된다 곧13

이어13 년13 발샤13 세 가13 추진하였던13 아드리아해13 상권13 획득을13 둘1419 3 (Balša III)

러싼13 베니스와의13 전쟁에서13 패하면서13 제타13 공국의13 발쉬치13 왕조는13 몰락의13 길을13

가게13 되었다

한13 동안13 외세의13 침입과13 권력내분에13 시달렸던13 제타13 공국은13 중세13 몬테네그

로13 왕국의13 제 대13 왕조인13 쯔르노예비치 왕조의13 출현과13 더불어13 안3 (Crnojević)

정을13 되찾게13 된다 쯔르노예비치13 왕조는13 해안지대를13 중심으로13 발전을13 이룬13

다른13 왕조들과는13 달리13 몬테네그로13 북부13 산악지대인13 로브첸 지역에(Lovčen)

서부터13 시작되었다 하지만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마지막13 왕조였던13 쯔르노예비

치13 왕조는13 그리13 오랜13 기간13 유지되지13 못하였다 우선13 시조인13 스테판13 쯔르노예

비치 와13 그의13 아들13 이반13 쯔르노예비치(Stefan Crnojević 1427~1465) (Ivan

Crnojević 1465- 그리고13 오스만13 터키의13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다13 전사1490)

9 발쉬치13 왕조는13 비록13 과거13 두클리야13 공국의13 뒤를13 이은13 제타13 공국의13 지배자였지만 또

한13 동시에13 자신들을13 과거13 라쉬카13 공국의13 영주로 세르비아13 네마니치가의13 먼13 인척으로13

생각하고13 있었다 따라서13 문자에13 있어서도13 자신들이13 주로13 쓰는13 라틴문자와13 함께13 세르

비아에서의13 키릴문자를13 혼용해서13 사용하였고 종교에13 있어서도13 비록13 가톨릭을13 국가적13

종교로13 인정하고13 있었지만 세르비아가13 믿고13 있는13 정교에13 대해서도13 여러13 관심과13 주도

적13 역할을13 수행하고13 있었다 이러한13 예는13 발쉬치13 왕조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라쟈르13 1375

왕자와13 함께13 세르비아13 정교회13 총대주교를13 선출하기13 위해13 소집한13 교회13 성직자단13 회의

를13 주도한13 데서도13 확인될13 수13 있다 이에13 대해13 세르비아니즘이13 확산되고13 있던13 근대

세르비아의13 민족주의13 학자인13 쥬라13 다니취치 는13 위의13 경우를13 해(Daničić 1876 11-13)

석하는13 데13 있어 제타13 공국의13 세르비아에13 대한13 의존과13 종속성이13 높았다고13 강조하고13

있다

136 김철민

한13 이반의13 아들13 쥬라즈13 쯔르노예비치 를13 마(Djuradj Crnojevic 1490~1496)

지막으로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역사는13 끝이13 나게13 된다

하지만13 비록13 짧은13 기간의13 통치였지만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몬테네그로13 역

사에13 남긴13 영향은13 매우13 컸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시작

과13 함께13 제타13 공국은13 오늘날13 명칭인13 쯔르나13 고라 몬테네그로(Crna Gora

란13 지명으로13 불리게13 되었다 두13 번째로는13 이13 시기13 주변의13 남(Montenegro))

슬라브족13 국가들이13 모두13 오스만13 터키의13 지배13 하로13 넘어갔음에도13 불구하고

쯔르노예비치는13 년13 수도를13 스카다르 호수의13 쟈블략 에1482 (Skadar) (Zabljak)

서 보다13 수비가13 용이한13 험준한13 지역인13 로브첸13 산악지대로브첸스키13 돌라쯔 (

오늘날13 쩨티녜 의13 전신로13 옮겨13 오스만13 터키의13 (Lovcenski Dolac (Cetinje) )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였다는13 점이다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은13 훗날13 외세의13 침

략과13 지배가13 있을13 때마다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에13 저항13 정신과13 독립13 추진에13

대한13 원동력을13 제공하였으며 현13 분리13 독립파13 또한13 이러한13 역사를13 상기시키

며 세르비아로부터의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다 그리고13 세13 번째로13 발칸유럽13 국

가들13 중에선13 최초로13 년13 베네치아에서13 인쇄13 도구와13 인쇄기를13 도입하고1493

납으로13 된13 글자체와13 필체13 장식을13 위한13 주조물을13 만들어13 냄으로써 이후13 약13

여13 년간13 세르비아와13 보스니아에서13 키릴13 문자로13 인쇄된13 서적들의13 출판에13 100

상당한13 영향을13 미쳤다는13 자부심을13 안겨주었다

비록13 일부13 반론이13 있기는13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가들의13 주장에13 따르자면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재건한13 중세13 왕국은13 당시13 오스만13 터키에13 의해13 사라져13

버린13 세르비아13 네마니치13 왕조의13 국가13 전통과13 문화유산을13 그대로13 계승하고자13

노력했던13 것으로13 보인다 그러한13 실례는13 당시13 관직명과13 교구13 운영에13 있어서13

과거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관직명들이13 그대로13 채택하고 세르비아13 제국13 시절을13

본13 따13 lsquo황제와13 총대주교구의13 법원rsquo을13 설치했음을 그리고13 모든13 법률13 조항에13

있어13 과거13 두샨왕13 시절13 제작된13 lsquo두샨13 법전rsquo의13 조항들을13 그대로13 적용시켰다는13 점을13 들13 수13 있다 이를13 기초로13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13 가운데13 상당수는13 년13 1496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붕괴와13 중세13 몬테네그로13 왕국의13 종말은13 세르비아13 민족

이13 이룬13 중세13 국가의13 마지막13 형태가13 사라졌음을13 의미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5)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7

근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과13 세르비아니즘2

발칸유럽의13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마찬가지로13 몬테네그로인13 또한13 오스만13 터

키지배13 하에서13 터키의13 계획적이고13 철저한13 약탈13 경제13 정책으로13 인해13 사회 경

제적13 어려움이13 가중되게13 된다 과거13 아드리아13 해안13 상권을13 이용해13 이룩한13 왕

성한13 상업과13 무역13 활동13 그리고13 이를13 통한13 부의13 축적의13 가능하였던13 몬테네그

로인은13 이들13 분야를13 경시하고13 농업 임업 공공13 건설13 사업에13 치중하였던13 오스

만13 터키의13 정책에13 따라13 일련의13 암흑기를13 맞이하게13 되었다 또한13 오스만13 터키

의13 국력이13 쇠락해진13 세기13 말13 이후로13 세금13 부담이13 지나치게13 커지면서13 몬테17

네그로인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의13 충돌이13 빈번하게13 발생하였고 이에13 따라13 몬테

네그로인은13 상황이13 허락하는13 한13 베네치아13 등13 서구13 국가들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

의13 충돌시13 서구13 국가들을13 지원해13 아드리아의13 또13 다른13 주요13 지역인13 lsquo라구사공국오늘날13 두브로브니크 일대(Ragusa) ( (Dubrovnik) )rsquo의13 경우처럼13 이들로

부터13 자치권을13 보장받으려13 했다

이러한13 노력은13 페테르13 세1 (Peter I Petrović Njegoš 1782- 와13 페테르13 1830)

세2 (Peter II Petrović Njegoš 1830- 에13 의해13 그13 결실을13 이루게13 된다1851)

페테르13 세는13 당시13 여러13 외세의13 영향력13 하에13 흩어져13 있던13 몬테네그로13 부족들1

을13 한13 데로13 통합하고자13 노력하였고 국가13 수립과13 통치에13 필요한13 근대식13 법률

체계를13 정비하고 사법 행정의13 규율을13 정한13 사법13 행정법 과13 과거의13 관 (1798)

습법에서13 벗어나13 법률에13 근거해13 법을13 집행할13 수13 있도록13 만든13 법률집(1803)

을13 새로이13 구축하여13 놓았다 페테르13 세는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세르비아13 중 1

심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구상하였고 따라서13 강력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

현을13 위해13 제 차13 세르비아13 봉기1 (Prvi srpski ustanak 1804- 를13 통해13 세1813)

르비아13 자치13 국가를13 건설하려던13 카라조르제13 뻬트로비치(Karađorđe Petrović)

의13 봉기군과13 유기적13 연결13 관계를13 구축하게13 된다 이를13 위해13 페테르13 세는13 러 1

시아의13 지원을13 기대하며13 당시13 프랑스군이13 점령하고13 있던13 코토르만(Boka

과13 두브로브니크를13 탈환한13 후13 몬테네그로 헤르체고비나 코토르만Kotorska)

달마티아 지역13 등을13 중심으로13 한13 (Dalmacija) lsquo슬라브13 세르비아13 왕국rsquo을13 건설

138 김철민

하겠다는13 그의13 의지를13 표방하였으나 나폴레옹의13 러시아13 침공과13 함께13 그의13

바람은13 수포로13 돌아가게13 된다

이러한13 페테르13 세의13 남슬라브족13 이상에13 대해13 미오미르13 다쉬치1 (Miomir

는13 년13 이룬13 남슬라브족의13 통합13 정신이13 바로13 몬테네그로의13 페테르13 Dašić) 1918

세로부터13 출발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그는13 1 ldquo페테르13 세가13 세르비아인1

과13 크로아티아인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인 몬테네그로인의13 조화와13 형제애 단합

을13 강조하였던13 애국적인13 시인이자13 훌륭한13 정치가였다rdquo라고13 언급하면서 이러

한13 페테르13 세의13 정신이13 이후13 약하게나마13 니콜라13 시기까지13 이어지게13 되어1

년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국가가13 수립될13 수13 있었1918

다고13 말하고13 있다 무엇보다도13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그13 사(Dašić 1999 487)

실여부를13 떠나13 년13 수립된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그리고13 이13 왕국으로1918

의13 몬테네그로13 편입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이라는13 차원에서13 인식하고13 있다

는13 점에서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는13 독립13 세력들로부터13 일련의13

비판을13 받고13 있는13 상황이다

자신들의13 독립13 근대13 왕국을13 건설하고자13 했던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바람은13 현

대13 몬테네그로13 국가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설립자이자13 유명한13 시인이기도13 했

던13 페테르13 세13 시기에13 들어와서부터라13 볼13 수13 있다 반면13 세르비아인들은13 이13 2

당시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에13 크게13 호응하고13 있었고 이러

한13 그의13 이상을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도13 확산시키고자13 여러13 노력을13 기울이고13

있던13 시점이었다 페테르13 세는13 오스만13 터키의13 견제와13 프랑스의13 간섭13 그리고13 2

계속되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13 속에서도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결속과13 단결을13

이끌어내 년13 마침내13 오스트리아등13 주변13 강대국들로부터13 독립국가로서 1842

의13 인정을13 받을13 수13 있게13 된다 이어13 그의13 왕권은13 그의13 (Petrovich 1976 232)

조카인13 다닐로(Danilo I Petrović 1852~ 에게13 계승되었으나 년13 1860) 1860

암살에13 의한13 사망으로13 인해13 왕위는13 니콜라 에(Nikola Petrović 1860~1916)

게13 승계되게13 된다

니콜라는13 년부터13 시작된13 수차례의13 오스만13 터키13 공격을13 잘13 막아내었1862

고 년13 월13 1878 3 lsquo산스테파노 조약(San Stefano) rsquo과13 동년13 월13 6 lsquo베를린(Berlin)

조약rsquo의13 결과13 비록13 국제적으로13 인정은13 받지13 못했지만 몬테네그로는13 독립13 국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9

가를13 위한13 토대를13 구축할13 수13 있게13 되었다 베를린13 조약의13 결과13 몬테네그로의13

면적은13 과거보다13 배13 더13 확장되었고 오랜13 숙원이던13 2 (4400 9475 ) rarr

바르나 울찐13 등13 해안지대를13 확보할13 수13 있게13 된다 이때13 이후13 수도인13 쩨티녜

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는13 경제 사회적13 발전을13 이루게13 되어 년에13 들어 1899

와서는13 개의13 공립학교와13 개의13 사립학교가13 설립13 되게13 되었다 또한13 러시75 26

아의13 지도13 아래13 근대식13 군대가13 창설되었고 오스트리아의13 원조13 아래13 쩨티녜

에서13 코토르까지13 최초의13 근대식13 개념의13 도로와13 철도가13 설립되게13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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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140 김철민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IV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주요13 배경과13 진행과정1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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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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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김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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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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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13 있다rdquo는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합을13 제안하게13 된다16 하지만13 이러한13 제안이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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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3 실시할13 것임을13 발표하는13 것으로 세르비아13 정부의13 제안을13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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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13 대표적13 신문인13 보르바 참조- lsquo (Borba)rsquo httpwwwborbacoyu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제를13 구축해13 나가고13 있다 반면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이 200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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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는13 향후13 다소13 난항을13 겪을13 것으로13 예상된다 그러한13 분

석을13 내리는13 배경에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13 그리고13 발칸반도를13 둘러싼13 다

음과13 같은13 장애요소들이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기13 때문이다 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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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라는13 문제이다 몬테네그로는13 지난13 년13 월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몬테네 2003 5

그로의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부야노비치13 전13 총리가13 대통령에13 당선되었지만 그13

전개13 과정이13 그리13 매끄럽지13 못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당시13 대통령13 선거13 투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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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선거가13 치러지게13 되었다 이러한13 점은13 지난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이13 2001 4

주요13 이슈로13 떠13 오른13 총선을13 통해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근소한13 차로13 승리하긴13

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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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이다 실제 몬테네그로13 헌법적13 지위변화에13 관한13 국민투표가13 실행되기13 위해

선13 전체13 몬테네그로13 의원13 명13 가운데13 인13 명의13 동의가13 필요하지만77 23 52

년13 월13 선거에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석을13 얻는13 데13 그친13 실정이다 더불어13 2001 4 44

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산업13 기지와13 생산능력이13 취약해13 주력13 산업으로13 관광업을13 육성시키고13 있는13 몬

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비아인이라는13 점(httpwwwvisit- 그리고13 세르비아로부터13 montenegrocom)

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세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해13 나가려는13 데13 있어13 세르비아의13 강력한13

17 년13 인구조사에13 따르자면 몬테네그로13 총13 인구13 비율은13 몬테네그로인이13 약13 1991 617(

명 세르비아인이13 약13 명 무슬림이13 약13 명 알바니381000 ) 93( 57000 ) 145( 89000 )

아인이13 약13 명 기타13 인구가13 약13 명 를13 차지한다 이외에도13 세65( 40000 ) 8( 49000 )

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년13 기준으로13 몬테네그로13 자체13 방위13 병력이13 여13 명에13 불과한13 상황에서13 만3000

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세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13 분할과13 민족간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휘말릴13 가능성이13 높

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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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10: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134 김철민

결과13 년13 비잔틴13 제국의13 지원을13 받은13 라쉬카13 공국의13 스테판13 네마냐에13 의1186

해13 정복당함으로써 세르비아의13 지배를13 받게13 되었다 이후13 두클리야13 공국은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13 하에서13 이13 지역13 제타강의13 이름을13 따13 lsquo제타13 공국rsquo으로도13 불리게13 된다

스테판13 네마냐는13 제타13 공국을13 지배한13 이후13 제타13 공국의13 모든13 도시들을13 파

괴하였고 보고 교13 추방과13 더불어13 가톨릭을13 믿고13 있던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13 정교로의13 강제13 개종13 그리고13 세르비아인으로의13 동화13 작업을13 추진하

게13 된다8 라쉬카13 공국은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아들인13 스테판13 네마니치13 시기에13

들어와13 중세13 세르비아13 독립13 왕국으로13 발전하였고 세르비아13 통치13 하에서13 몬

테네그로인들은13 아드리아13 해안지역을13 활용 활발한13 무역거래를13 통해13 상업적

경제적13 발전을13 이룩하게13 된다 하지만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에13 대해13 몬테네그

로13 분리13 독립파는13 당시부터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로부터13 독립하기13 위

한13 여러13 저항13 운동을13 추진하였고 그13 결과13 lsquo세르비아와13 그리스의13 왕이자13 황제rsquo로13 불렸던13 세르비아의13 두샨13 왕이13 년13 사망한13 직후 독립을13 얻을13 수13 있1355

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은13 두샨왕13 사후13 비록13 왕

권13 다툼과13 오스만13 터키의13 유럽13 원정으로13 다소13 지배권이13 약화되었지만 이13 시

기13 동안13 제타13 공국은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에서13 결코13 벗어나지13 못했다고13 주장하

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3)

제 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은13 년13 발쉬치 시조인13 발샤13 세2 1356 (Balšić 1

에서13 유래됨 왕조에서부터13 비롯되게13 된다 세르비아의13 정치적13 혼란(Balša I) )

을13 틈타13 왕국을13 재건하였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점차13 세력을13 확대해13 두샨왕13 당시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수도였던13 스코쁠예 오늘날13 마케도니아13 수도(Skoplje )

그리고13 뻬치 와13 쁘리즈렌 등13 코소보를13 비롯해13 과거13 라쉬카13 공(Peć) (Prizren)

국의13 지배13 지역들을13 하나씩13 점령하여13 갔으며 서쪽으로는13 두브로브니크

8 세기13 몬테네그로의13 가장13 유명한13 역사가13 중13 한명인13 빠블레13 로빈스키19 (Pavel

는13 당시13 스테판13 네마냐의13 몬테네그로인13 정체성13 말살13 작업을13 비판하고13 있는13 Rovinski)

데 그에13 따르자면13 네마냐가13 당시13 두클리야의13 모든13 종교13 서적 역사서 지리서 문학

서13 등13 종류의13 구분13 없이13 불태워13 버렸다고13 비난하고13 있다 httpwwwmontenetorg

두클리야13 복속13 이후13 네마냐의13 여러13 행적에13 관해선13 history Božić Ćirković

참조Ekmečić and Dedijer(1973 51)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5

을13 포함13 헤르체고비나13 지역까지13 그13 세력을13 확장하여13 갔다 이13 (Dubrovnik)

당시13 발쉬치13 가문은13 중세13 세르비아의13 네먀니치13 왕조와13 여러13 경로에13 걸쳐13 가

족13 관계를13 형성하고13 있었는데 세르비아13 주장에13 따르자면13 몬테네그로는13 이

러한13 혼인13 관계를13 통한13 정통성13 인정에13 주력하였다고13 언급하고13 있다 실제13 기

록에13 따르더라도13 당시13 발쉬치13 왕조는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전통을13 계승하겠

다고13 나선13 보스니아13 왕국과13 여러13 차례13 전쟁을13 치러야13 했으며 년에는13 현13 1377

세르비아의13 레쉐보 에서13 세르비아의13 왕으로13 등극한13 보스니아의13 (Mileševo)

트브르트코13 세 의13 왕위13 계승을13 부정하기도13 하였다I (Tvrtko I) 9 한때13 왕국의13

발전을13 이루었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년13 코소보13 전투에서13 세르비아를13 도와13 1389

오스만13 터키와13 벌였던13 전투에서13 패배하여13 커다란13 위기를13 초래하게13 된다 곧13

이어13 년13 발샤13 세 가13 추진하였던13 아드리아해13 상권13 획득을13 둘1419 3 (Balša III)

러싼13 베니스와의13 전쟁에서13 패하면서13 제타13 공국의13 발쉬치13 왕조는13 몰락의13 길을13

가게13 되었다

한13 동안13 외세의13 침입과13 권력내분에13 시달렸던13 제타13 공국은13 중세13 몬테네그

로13 왕국의13 제 대13 왕조인13 쯔르노예비치 왕조의13 출현과13 더불어13 안3 (Crnojević)

정을13 되찾게13 된다 쯔르노예비치13 왕조는13 해안지대를13 중심으로13 발전을13 이룬13

다른13 왕조들과는13 달리13 몬테네그로13 북부13 산악지대인13 로브첸 지역에(Lovčen)

서부터13 시작되었다 하지만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마지막13 왕조였던13 쯔르노예비

치13 왕조는13 그리13 오랜13 기간13 유지되지13 못하였다 우선13 시조인13 스테판13 쯔르노예

비치 와13 그의13 아들13 이반13 쯔르노예비치(Stefan Crnojević 1427~1465) (Ivan

Crnojević 1465- 그리고13 오스만13 터키의13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다13 전사1490)

9 발쉬치13 왕조는13 비록13 과거13 두클리야13 공국의13 뒤를13 이은13 제타13 공국의13 지배자였지만 또

한13 동시에13 자신들을13 과거13 라쉬카13 공국의13 영주로 세르비아13 네마니치가의13 먼13 인척으로13

생각하고13 있었다 따라서13 문자에13 있어서도13 자신들이13 주로13 쓰는13 라틴문자와13 함께13 세르

비아에서의13 키릴문자를13 혼용해서13 사용하였고 종교에13 있어서도13 비록13 가톨릭을13 국가적13

종교로13 인정하고13 있었지만 세르비아가13 믿고13 있는13 정교에13 대해서도13 여러13 관심과13 주도

적13 역할을13 수행하고13 있었다 이러한13 예는13 발쉬치13 왕조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라쟈르13 1375

왕자와13 함께13 세르비아13 정교회13 총대주교를13 선출하기13 위해13 소집한13 교회13 성직자단13 회의

를13 주도한13 데서도13 확인될13 수13 있다 이에13 대해13 세르비아니즘이13 확산되고13 있던13 근대

세르비아의13 민족주의13 학자인13 쥬라13 다니취치 는13 위의13 경우를13 해(Daničić 1876 11-13)

석하는13 데13 있어 제타13 공국의13 세르비아에13 대한13 의존과13 종속성이13 높았다고13 강조하고13

있다

136 김철민

한13 이반의13 아들13 쥬라즈13 쯔르노예비치 를13 마(Djuradj Crnojevic 1490~1496)

지막으로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역사는13 끝이13 나게13 된다

하지만13 비록13 짧은13 기간의13 통치였지만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몬테네그로13 역

사에13 남긴13 영향은13 매우13 컸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시작

과13 함께13 제타13 공국은13 오늘날13 명칭인13 쯔르나13 고라 몬테네그로(Crna Gora

란13 지명으로13 불리게13 되었다 두13 번째로는13 이13 시기13 주변의13 남(Montenegro))

슬라브족13 국가들이13 모두13 오스만13 터키의13 지배13 하로13 넘어갔음에도13 불구하고

쯔르노예비치는13 년13 수도를13 스카다르 호수의13 쟈블략 에1482 (Skadar) (Zabljak)

서 보다13 수비가13 용이한13 험준한13 지역인13 로브첸13 산악지대로브첸스키13 돌라쯔 (

오늘날13 쩨티녜 의13 전신로13 옮겨13 오스만13 터키의13 (Lovcenski Dolac (Cetinje) )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였다는13 점이다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은13 훗날13 외세의13 침

략과13 지배가13 있을13 때마다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에13 저항13 정신과13 독립13 추진에13

대한13 원동력을13 제공하였으며 현13 분리13 독립파13 또한13 이러한13 역사를13 상기시키

며 세르비아로부터의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다 그리고13 세13 번째로13 발칸유럽13 국

가들13 중에선13 최초로13 년13 베네치아에서13 인쇄13 도구와13 인쇄기를13 도입하고1493

납으로13 된13 글자체와13 필체13 장식을13 위한13 주조물을13 만들어13 냄으로써 이후13 약13

여13 년간13 세르비아와13 보스니아에서13 키릴13 문자로13 인쇄된13 서적들의13 출판에13 100

상당한13 영향을13 미쳤다는13 자부심을13 안겨주었다

비록13 일부13 반론이13 있기는13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가들의13 주장에13 따르자면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재건한13 중세13 왕국은13 당시13 오스만13 터키에13 의해13 사라져13

버린13 세르비아13 네마니치13 왕조의13 국가13 전통과13 문화유산을13 그대로13 계승하고자13

노력했던13 것으로13 보인다 그러한13 실례는13 당시13 관직명과13 교구13 운영에13 있어서13

과거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관직명들이13 그대로13 채택하고 세르비아13 제국13 시절을13

본13 따13 lsquo황제와13 총대주교구의13 법원rsquo을13 설치했음을 그리고13 모든13 법률13 조항에13

있어13 과거13 두샨왕13 시절13 제작된13 lsquo두샨13 법전rsquo의13 조항들을13 그대로13 적용시켰다는13 점을13 들13 수13 있다 이를13 기초로13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13 가운데13 상당수는13 년13 1496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붕괴와13 중세13 몬테네그로13 왕국의13 종말은13 세르비아13 민족

이13 이룬13 중세13 국가의13 마지막13 형태가13 사라졌음을13 의미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5)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7

근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과13 세르비아니즘2

발칸유럽의13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마찬가지로13 몬테네그로인13 또한13 오스만13 터

키지배13 하에서13 터키의13 계획적이고13 철저한13 약탈13 경제13 정책으로13 인해13 사회 경

제적13 어려움이13 가중되게13 된다 과거13 아드리아13 해안13 상권을13 이용해13 이룩한13 왕

성한13 상업과13 무역13 활동13 그리고13 이를13 통한13 부의13 축적의13 가능하였던13 몬테네그

로인은13 이들13 분야를13 경시하고13 농업 임업 공공13 건설13 사업에13 치중하였던13 오스

만13 터키의13 정책에13 따라13 일련의13 암흑기를13 맞이하게13 되었다 또한13 오스만13 터키

의13 국력이13 쇠락해진13 세기13 말13 이후로13 세금13 부담이13 지나치게13 커지면서13 몬테17

네그로인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의13 충돌이13 빈번하게13 발생하였고 이에13 따라13 몬테

네그로인은13 상황이13 허락하는13 한13 베네치아13 등13 서구13 국가들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

의13 충돌시13 서구13 국가들을13 지원해13 아드리아의13 또13 다른13 주요13 지역인13 lsquo라구사공국오늘날13 두브로브니크 일대(Ragusa) ( (Dubrovnik) )rsquo의13 경우처럼13 이들로

부터13 자치권을13 보장받으려13 했다

이러한13 노력은13 페테르13 세1 (Peter I Petrović Njegoš 1782- 와13 페테르13 1830)

세2 (Peter II Petrović Njegoš 1830- 에13 의해13 그13 결실을13 이루게13 된다1851)

페테르13 세는13 당시13 여러13 외세의13 영향력13 하에13 흩어져13 있던13 몬테네그로13 부족들1

을13 한13 데로13 통합하고자13 노력하였고 국가13 수립과13 통치에13 필요한13 근대식13 법률

체계를13 정비하고 사법 행정의13 규율을13 정한13 사법13 행정법 과13 과거의13 관 (1798)

습법에서13 벗어나13 법률에13 근거해13 법을13 집행할13 수13 있도록13 만든13 법률집(1803)

을13 새로이13 구축하여13 놓았다 페테르13 세는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세르비아13 중 1

심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구상하였고 따라서13 강력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

현을13 위해13 제 차13 세르비아13 봉기1 (Prvi srpski ustanak 1804- 를13 통해13 세1813)

르비아13 자치13 국가를13 건설하려던13 카라조르제13 뻬트로비치(Karađorđe Petrović)

의13 봉기군과13 유기적13 연결13 관계를13 구축하게13 된다 이를13 위해13 페테르13 세는13 러 1

시아의13 지원을13 기대하며13 당시13 프랑스군이13 점령하고13 있던13 코토르만(Boka

과13 두브로브니크를13 탈환한13 후13 몬테네그로 헤르체고비나 코토르만Kotorska)

달마티아 지역13 등을13 중심으로13 한13 (Dalmacija) lsquo슬라브13 세르비아13 왕국rsquo을13 건설

138 김철민

하겠다는13 그의13 의지를13 표방하였으나 나폴레옹의13 러시아13 침공과13 함께13 그의13

바람은13 수포로13 돌아가게13 된다

이러한13 페테르13 세의13 남슬라브족13 이상에13 대해13 미오미르13 다쉬치1 (Miomir

는13 년13 이룬13 남슬라브족의13 통합13 정신이13 바로13 몬테네그로의13 페테르13 Dašić) 1918

세로부터13 출발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그는13 1 ldquo페테르13 세가13 세르비아인1

과13 크로아티아인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인 몬테네그로인의13 조화와13 형제애 단합

을13 강조하였던13 애국적인13 시인이자13 훌륭한13 정치가였다rdquo라고13 언급하면서 이러

한13 페테르13 세의13 정신이13 이후13 약하게나마13 니콜라13 시기까지13 이어지게13 되어1

년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국가가13 수립될13 수13 있었1918

다고13 말하고13 있다 무엇보다도13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그13 사(Dašić 1999 487)

실여부를13 떠나13 년13 수립된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그리고13 이13 왕국으로1918

의13 몬테네그로13 편입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이라는13 차원에서13 인식하고13 있다

는13 점에서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는13 독립13 세력들로부터13 일련의13

비판을13 받고13 있는13 상황이다

자신들의13 독립13 근대13 왕국을13 건설하고자13 했던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바람은13 현

대13 몬테네그로13 국가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설립자이자13 유명한13 시인이기도13 했

던13 페테르13 세13 시기에13 들어와서부터라13 볼13 수13 있다 반면13 세르비아인들은13 이13 2

당시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에13 크게13 호응하고13 있었고 이러

한13 그의13 이상을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도13 확산시키고자13 여러13 노력을13 기울이고13

있던13 시점이었다 페테르13 세는13 오스만13 터키의13 견제와13 프랑스의13 간섭13 그리고13 2

계속되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13 속에서도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결속과13 단결을13

이끌어내 년13 마침내13 오스트리아등13 주변13 강대국들로부터13 독립국가로서 1842

의13 인정을13 받을13 수13 있게13 된다 이어13 그의13 왕권은13 그의13 (Petrovich 1976 232)

조카인13 다닐로(Danilo I Petrović 1852~ 에게13 계승되었으나 년13 1860) 1860

암살에13 의한13 사망으로13 인해13 왕위는13 니콜라 에(Nikola Petrović 1860~1916)

게13 승계되게13 된다

니콜라는13 년부터13 시작된13 수차례의13 오스만13 터키13 공격을13 잘13 막아내었1862

고 년13 월13 1878 3 lsquo산스테파노 조약(San Stefano) rsquo과13 동년13 월13 6 lsquo베를린(Berlin)

조약rsquo의13 결과13 비록13 국제적으로13 인정은13 받지13 못했지만 몬테네그로는13 독립13 국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9

가를13 위한13 토대를13 구축할13 수13 있게13 되었다 베를린13 조약의13 결과13 몬테네그로의13

면적은13 과거보다13 배13 더13 확장되었고 오랜13 숙원이던13 2 (4400 9475 ) rarr

바르나 울찐13 등13 해안지대를13 확보할13 수13 있게13 된다 이때13 이후13 수도인13 쩨티녜

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는13 경제 사회적13 발전을13 이루게13 되어 년에13 들어 1899

와서는13 개의13 공립학교와13 개의13 사립학교가13 설립13 되게13 되었다 또한13 러시75 26

아의13 지도13 아래13 근대식13 군대가13 창설되었고 오스트리아의13 원조13 아래13 쩨티녜

에서13 코토르까지13 최초의13 근대식13 개념의13 도로와13 철도가13 설립되게13 된다

니콜라13 하의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관계는13 같(Komatina 1999 131)

은13 남슬라브족으로서13 선린관계를13 유지하고13 있었다 하지만13 세르비아13 정국13 주

도권을13 둘러싼13 오브레노비치 왕조와13 페트로비치 왕조(Obrenović) (Petrović)

간의13 계속된13 유혈13 사태는13 곧13 바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불협화음을13 초

래하게13 하였다10 특히13 세르비아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13 및13 발칸13 유럽내13 남

슬라브족13 국가들을13 통합해13 나가겠다는13 취지13 아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를13 강

력히13 추진하던13 란13 오브레노비치 시기13 이(Milan Obrenović 1868~1889)

후로13 양국은13 다소13 불편한13 관계가13 수립되었고 년13 마침내13 몬테네그로는13 1910

니콜라왕을13 중심으로13 하는13 독립13 군주국가임을13 선포하게13 되었다(Komatina

1999 37-38)11

10 이러한13 불협화음의13 또13 다른13 배경에는13 니콜라13 왕이13 세르비아13 오브레노비치13 왕조의13 정

적인13 카라조르제비치13 가문의13 페테르13 카라조르제비치(Peter I Karađorđević 1903~

까지13 세르비아13 왕위를13 엮임 를13 자신의13 장녀13 조르카 와13 결혼시켰던13 데서도13 1918 ) (Zorka)

그13 요인을13 찾을13 수13 있다

11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13 움직임13 속에13 치러진13 당시13 취임식에서13 니콜라왕은13 몬테네그로13

민족의13 독자성과13 독립된13 민족13 정체성을13 그들의13 중세13 역사13 속에서13 찾을13 것을13 천명하였

다 우리는13 과거13 제타13 왕국의13 보이슬라브 미하일로13 그리고13 보딘의13 자손이다 시간은13 ldquo

단지13 이13 땅위에13 존재하였던13 것을13 파괴할13 수13 있었지만 이13 안에13 꿈틀대고13 있는13 자유에13

대한13 의지와13 충성스러운13 산악인들의13 뜨거운13 심장을13 파괴할13 수는13 없었다 우리는13 오랜13

역사의13 토대13 위에13 왕국13 건설의13 부활을13 시작하였고 오늘날13 이13 왕국은13 여기13 천상의13 햇

빛아래13 반짝이는13 우리의13 고대왕국에13 그13 뿌리를13 두고13 있다rdquo httpwwwmontenetorg

history

140 김철민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IV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주요13 배경과13 진행과정13 1

세기13 초13 몬테네그로는13 비록13 니콜라왕의13 독립13 왕국13 선포에도13 불구하고20

복잡한13 발칸유럽의13 정세와13 더불어13 매우13 혼돈의13 시기를13 맞이하고13 있었다 몬

테네그로는13 년과13 년에13 치른13 제 차13 발칸전쟁에서의13 승전에도13 불1912 1913 1 2

구하고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종결이후13 세르비아13 주도의13 최초13 남슬라브족13 1918 1

통합국가인13 lsquo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Kraljevina SHS)rsquo하로13 편입되는13 아픔을13 겪게13 된다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제 차13 세계대전이전까지13 세르 2

비아의13 직접적인13 지배13 하에13 놓이게13 되었지만 제 차13 세계대전에서13 티토를13 중 2

심으로13 한13 파르티잔13 세력이13 승리한13 이후 사회주의13 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하에

서13 개13 구성13 공화국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6 ( -헤르체고비나 세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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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와13 함께13 새로운13 연방을13 구성해13 나갈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단행하게13 된다 전체13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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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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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세르비아13 정부에게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rsquo이13 아닌13 lsquo몬테네그로-세르비아13 연합13 국가rsquo라는13 명칭으로13 변경할13 것과13 현행13 연방13 헌법을13 폐지할13 것 그리고13 연방13 정부13 협의13 체제를13 각13 공화국간13 각료간13 협의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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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나13 독립을13 이루려던13 몬테네그로의13 의도는13 년13 월13 세르비아에서13 반2000 10

로쉐비치13 민주화13 혁명이13 일어나 민주인사인13 보이슬라브13 코슈투니짜( ) 反연방13 대통령이13 등장하게13 되자13 난관에13 봉착하게13 된다(Vojslav Koštunica) 13

13 년13 월13 일13 치러진13 유고연방의13 대선과13 총선13 투표에13 대해 선거13 위원회가13 발표2000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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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민주화를13 요구하는13 시위대의13 물결이13 베오그라드에13 집결하

142 김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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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rdquo는13 점을13 강조하였고 이어13 이러한13 선언이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추구하고자13

했던13 미국과13 서방의13 지지를13 얻게13 됨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다소13 어

려움을13 겪게13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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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로의13 독립을13 향한13 움직임은13 계속13 지속되었다 특히13 몬테네그로는13 우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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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13 실어주게13 된다김철민( 2005 141)15 하지만13 총선13 직후 몬테네그로13 독립

추진에13 대한13 미국과13 의13 반응은13 EU ldquo이러한13 시도가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해칠13 수13 있다rdquo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보냈었고 마침내13 대표단이13 동년13 월13 몬 EU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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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13 월13 일13 이전에13 치르기로13 했던13 2001 7 13 lsquo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13 총선rsquo을13 철회한다는13 발표를13 해야만13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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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고 총13 파업이13 유고13 전역에서13 시작되게13 되었다 계속된13 시위와13 민주화13 요구13 속에13

가장13 큰13 후원자였던13 러시아로부터도13 지원13 약속을13 받아13 내지13 못하자 로쉐비치는13 국

영13 에서13 자신의13 패배를13 인정하고13 정권13 이양을13 선언하게13 된다 선언내용은13 라디오TV lsquo

텔레비전13 세르비아 사이트인13 참조 뒤13 이어13 월13 일 민주13 인rsquo httpwwwrtscoyu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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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수하기13 시작하였고 곧13 이어13 유럽연합은13 년13 코소보13 전쟁이후로13 발효된13 유고연 1999

방에13 대한13 석유금수조치를13 해제해13 주고 몬테네그로13 문제를13 비롯한13 모든13 중요13 현안들

에13 있어13 새롭게13 등장한13 민주13 정권에13 대한13 지지를13 분명히13 전달하게13 된다

14 년13 월13 이후13 공식화폐는13 유로 화로13 변경2002 1 (Euro)

15 총선13 결과 분리13 독립파지지13 세력13 를 연방13 유지파13 지지13 세력은13 를13 차지 421 407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극해13 코소보13 사태와13 같은13 심각한13 위험을13 초래13 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점을13 경고하였다 동시에13 ldquo몬테네그로가13 연방13 내에13 계속13 존속하기를13 강력히13 희망한다rdquo는13 메시지와13 함께 ldquo국방 외교 통화13 등에13 대한13 권한만을13 연방정부에13 이양하고13

나머지13 조세와13 여러13 권한들에13 대해선13 몬테네그로13 정부가13 독자적으로13 주도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합을13 제안하게13 된다16 하지만13 이러한13 제안이13

발표된13 직후13 몬테네그로13 정부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여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다

시13 실시할13 것임을13 발표하는13 것으로 세르비아13 정부의13 제안을13 거절하였다

여러13 차례의13 회담과13 논의13 끝에13 년13 월13 연방13 정부13 및13 세르비아와13 몬테200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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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로가13 연합한13 연방을13 계속13 존속할13 것과13 이후13 양13 공화국이13 몬테네그로13 독

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실시할13 것13 그리고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공화국(SRJ)rsquo에서13 lsquo세르비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rsquo으로13 변경할13 것13 등이었다 이

어13 이13 합의문에13 따라13 하나의13 국가연합13 체제라는13 틀13 속에서13 국방과13 외교 무

역 재정 인권부문13 등13 개13 내각은13 연방13 정부내13 합동행정기구에 나머지13 모든13 5

권한은13 각13 공화국이13 독자적으로13 운영하는13 느슨한13 연합13 국가13 탄생이13 결정되었

다 또한13 그13 내용에13 따라13 국제적으로는13 등13 국제기구에서13 하나의13 의석을13 UN

갖는13 단일13 국가로13 활동하며 현행13 조약과13 협정에13 대한13 과거13 유고연방의13 권리

와13 책임을13 승계한다는13 원칙이13 수립되게13 된다 그리고13 마침내13 년13 월13 세 2003 4

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13 의회에서13 양13 국13 지도부들간의13 몬테네그로13 연방13

존속13 안에13 대한13 협정이13 승인되게13 되면서13 현재에13 이르고13 있다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의13 향후13 전망과13 그13 의미13 2

새로운13 연합13 국가를13 구성하는13 데13 양13 국이13 합의한13 직후 년13 월13 세르 2003 3

비아-몬테네그로13 의회는13 몬테네그로13 출신의13 법률가13 스베토자르13 마로비치

를13 전체13 의석13 석13 중 찬성13 반대13 기권13 표로13 (Svetozar Marović) 126 65 47 14

16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13 대표적13 신문인13 보르바 참조- lsquo (Borba)rsquo httpwwwborbacoyu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제를13 구축해13 나가고13 있다 반면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이 2003 5

전13 로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의13 측근이자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강력히13 주장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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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정국은13 매우13 혼미한13 상태로13 진행되고13 있다

연합13 국가를13 계속13 유지해13 나가려는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노력들을13 뿌리치고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으로부터13 벗어나13 새로이13 독립13 국가를13 구성해13 나가려는13 몬

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는13 향후13 다소13 난항을13 겪을13 것으로13 예상된다 그러한13 분

석을13 내리는13 배경에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13 그리고13 발칸반도를13 둘러싼13 다

음과13 같은13 장애요소들이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기13 때문이다 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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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다

우선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는13 가장13 큰13 장애13 요소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독립

을13 향한13 단합된13 의지를13 어느13 정도까지13 그리고13 어디까지13 보여줄13 수13 있을13 것인

가 라는13 문제이다 몬테네그로는13 지난13 년13 월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몬테네 2003 5

그로의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부야노비치13 전13 총리가13 대통령에13 당선되었지만 그13

전개13 과정이13 그리13 매끄럽지13 못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당시13 대통령13 선거13 투표율

은13 전체13 유권자의13 득표율은13 에13 불과하였는데 그13 동안13 부야노비치13 48 65

후보는13 년13 월과13 년13 월에13 치러진13 두13 차례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최다13 2002 12 2003 2

득표율을13 기록하긴13 했으나 두13 차례13 선거13 모두13 헌법상13 최저13 투표율인13 를13 50

밑돌아13 무효처리가13 되었었다 따라서13 여러13 논란13 속에13 치러진13 년13 월13 선 2003 5

거에선13 쥬카노비치의13 주도13 아래13 조정된13 새로운13 선거법13 즉 최저13 유효13 투표율13

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선거가13 치러지게13 되었다 이러한13 점은13 지난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이13 2001 4

주요13 이슈로13 떠13 오른13 총선을13 통해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근소한13 차로13 승리하긴13

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으로13 국명이13 바뀐13 후13 몬테네그로13 최초13 대통령이13

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이다 실제 몬테네그로13 헌법적13 지위변화에13 관한13 국민투표가13 실행되기13 위해

선13 전체13 몬테네그로13 의원13 명13 가운데13 인13 명의13 동의가13 필요하지만77 23 52

년13 월13 선거에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석을13 얻는13 데13 그친13 실정이다 더불어13 2001 4 44

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산업13 기지와13 생산능력이13 취약해13 주력13 산업으로13 관광업을13 육성시키고13 있는13 몬

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비아인이라는13 점(httpwwwvisit- 그리고13 세르비아로부터13 montenegrocom)

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세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해13 나가려는13 데13 있어13 세르비아의13 강력한13

17 년13 인구조사에13 따르자면 몬테네그로13 총13 인구13 비율은13 몬테네그로인이13 약13 1991 617(

명 세르비아인이13 약13 명 무슬림이13 약13 명 알바니381000 ) 93( 57000 ) 145( 89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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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년13 기준으로13 몬테네그로13 자체13 방위13 병력이13 여13 명에13 불과한13 상황에서13 만3000

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세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13 분할과13 민족간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휘말릴13 가능성이13 높

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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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11: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5

을13 포함13 헤르체고비나13 지역까지13 그13 세력을13 확장하여13 갔다 이13 (Dubrovnik)

당시13 발쉬치13 가문은13 중세13 세르비아의13 네먀니치13 왕조와13 여러13 경로에13 걸쳐13 가

족13 관계를13 형성하고13 있었는데 세르비아13 주장에13 따르자면13 몬테네그로는13 이

러한13 혼인13 관계를13 통한13 정통성13 인정에13 주력하였다고13 언급하고13 있다 실제13 기

록에13 따르더라도13 당시13 발쉬치13 왕조는13 중세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전통을13 계승하겠

다고13 나선13 보스니아13 왕국과13 여러13 차례13 전쟁을13 치러야13 했으며 년에는13 현13 1377

세르비아의13 레쉐보 에서13 세르비아의13 왕으로13 등극한13 보스니아의13 (Mileševo)

트브르트코13 세 의13 왕위13 계승을13 부정하기도13 하였다I (Tvrtko I) 9 한때13 왕국의13

발전을13 이루었던13 발쉬치13 왕조는13 년13 코소보13 전투에서13 세르비아를13 도와13 1389

오스만13 터키와13 벌였던13 전투에서13 패배하여13 커다란13 위기를13 초래하게13 된다 곧13

이어13 년13 발샤13 세 가13 추진하였던13 아드리아해13 상권13 획득을13 둘1419 3 (Balša III)

러싼13 베니스와의13 전쟁에서13 패하면서13 제타13 공국의13 발쉬치13 왕조는13 몰락의13 길을13

가게13 되었다

한13 동안13 외세의13 침입과13 권력내분에13 시달렸던13 제타13 공국은13 중세13 몬테네그

로13 왕국의13 제 대13 왕조인13 쯔르노예비치 왕조의13 출현과13 더불어13 안3 (Crnojević)

정을13 되찾게13 된다 쯔르노예비치13 왕조는13 해안지대를13 중심으로13 발전을13 이룬13

다른13 왕조들과는13 달리13 몬테네그로13 북부13 산악지대인13 로브첸 지역에(Lovčen)

서부터13 시작되었다 하지만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마지막13 왕조였던13 쯔르노예비

치13 왕조는13 그리13 오랜13 기간13 유지되지13 못하였다 우선13 시조인13 스테판13 쯔르노예

비치 와13 그의13 아들13 이반13 쯔르노예비치(Stefan Crnojević 1427~1465) (Ivan

Crnojević 1465- 그리고13 오스만13 터키의13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다13 전사1490)

9 발쉬치13 왕조는13 비록13 과거13 두클리야13 공국의13 뒤를13 이은13 제타13 공국의13 지배자였지만 또

한13 동시에13 자신들을13 과거13 라쉬카13 공국의13 영주로 세르비아13 네마니치가의13 먼13 인척으로13

생각하고13 있었다 따라서13 문자에13 있어서도13 자신들이13 주로13 쓰는13 라틴문자와13 함께13 세르

비아에서의13 키릴문자를13 혼용해서13 사용하였고 종교에13 있어서도13 비록13 가톨릭을13 국가적13

종교로13 인정하고13 있었지만 세르비아가13 믿고13 있는13 정교에13 대해서도13 여러13 관심과13 주도

적13 역할을13 수행하고13 있었다 이러한13 예는13 발쉬치13 왕조가13 년13 세르비아의13 라쟈르13 1375

왕자와13 함께13 세르비아13 정교회13 총대주교를13 선출하기13 위해13 소집한13 교회13 성직자단13 회의

를13 주도한13 데서도13 확인될13 수13 있다 이에13 대해13 세르비아니즘이13 확산되고13 있던13 근대

세르비아의13 민족주의13 학자인13 쥬라13 다니취치 는13 위의13 경우를13 해(Daničić 1876 11-13)

석하는13 데13 있어 제타13 공국의13 세르비아에13 대한13 의존과13 종속성이13 높았다고13 강조하고13

있다

136 김철민

한13 이반의13 아들13 쥬라즈13 쯔르노예비치 를13 마(Djuradj Crnojevic 1490~1496)

지막으로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역사는13 끝이13 나게13 된다

하지만13 비록13 짧은13 기간의13 통치였지만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몬테네그로13 역

사에13 남긴13 영향은13 매우13 컸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시작

과13 함께13 제타13 공국은13 오늘날13 명칭인13 쯔르나13 고라 몬테네그로(Crna Gora

란13 지명으로13 불리게13 되었다 두13 번째로는13 이13 시기13 주변의13 남(Montenegro))

슬라브족13 국가들이13 모두13 오스만13 터키의13 지배13 하로13 넘어갔음에도13 불구하고

쯔르노예비치는13 년13 수도를13 스카다르 호수의13 쟈블략 에1482 (Skadar) (Zabljak)

서 보다13 수비가13 용이한13 험준한13 지역인13 로브첸13 산악지대로브첸스키13 돌라쯔 (

오늘날13 쩨티녜 의13 전신로13 옮겨13 오스만13 터키의13 (Lovcenski Dolac (Cetinje) )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였다는13 점이다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은13 훗날13 외세의13 침

략과13 지배가13 있을13 때마다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에13 저항13 정신과13 독립13 추진에13

대한13 원동력을13 제공하였으며 현13 분리13 독립파13 또한13 이러한13 역사를13 상기시키

며 세르비아로부터의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다 그리고13 세13 번째로13 발칸유럽13 국

가들13 중에선13 최초로13 년13 베네치아에서13 인쇄13 도구와13 인쇄기를13 도입하고1493

납으로13 된13 글자체와13 필체13 장식을13 위한13 주조물을13 만들어13 냄으로써 이후13 약13

여13 년간13 세르비아와13 보스니아에서13 키릴13 문자로13 인쇄된13 서적들의13 출판에13 100

상당한13 영향을13 미쳤다는13 자부심을13 안겨주었다

비록13 일부13 반론이13 있기는13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가들의13 주장에13 따르자면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재건한13 중세13 왕국은13 당시13 오스만13 터키에13 의해13 사라져13

버린13 세르비아13 네마니치13 왕조의13 국가13 전통과13 문화유산을13 그대로13 계승하고자13

노력했던13 것으로13 보인다 그러한13 실례는13 당시13 관직명과13 교구13 운영에13 있어서13

과거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관직명들이13 그대로13 채택하고 세르비아13 제국13 시절을13

본13 따13 lsquo황제와13 총대주교구의13 법원rsquo을13 설치했음을 그리고13 모든13 법률13 조항에13

있어13 과거13 두샨왕13 시절13 제작된13 lsquo두샨13 법전rsquo의13 조항들을13 그대로13 적용시켰다는13 점을13 들13 수13 있다 이를13 기초로13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13 가운데13 상당수는13 년13 1496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붕괴와13 중세13 몬테네그로13 왕국의13 종말은13 세르비아13 민족

이13 이룬13 중세13 국가의13 마지막13 형태가13 사라졌음을13 의미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5)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7

근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과13 세르비아니즘2

발칸유럽의13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마찬가지로13 몬테네그로인13 또한13 오스만13 터

키지배13 하에서13 터키의13 계획적이고13 철저한13 약탈13 경제13 정책으로13 인해13 사회 경

제적13 어려움이13 가중되게13 된다 과거13 아드리아13 해안13 상권을13 이용해13 이룩한13 왕

성한13 상업과13 무역13 활동13 그리고13 이를13 통한13 부의13 축적의13 가능하였던13 몬테네그

로인은13 이들13 분야를13 경시하고13 농업 임업 공공13 건설13 사업에13 치중하였던13 오스

만13 터키의13 정책에13 따라13 일련의13 암흑기를13 맞이하게13 되었다 또한13 오스만13 터키

의13 국력이13 쇠락해진13 세기13 말13 이후로13 세금13 부담이13 지나치게13 커지면서13 몬테17

네그로인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의13 충돌이13 빈번하게13 발생하였고 이에13 따라13 몬테

네그로인은13 상황이13 허락하는13 한13 베네치아13 등13 서구13 국가들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

의13 충돌시13 서구13 국가들을13 지원해13 아드리아의13 또13 다른13 주요13 지역인13 lsquo라구사공국오늘날13 두브로브니크 일대(Ragusa) ( (Dubrovnik) )rsquo의13 경우처럼13 이들로

부터13 자치권을13 보장받으려13 했다

이러한13 노력은13 페테르13 세1 (Peter I Petrović Njegoš 1782- 와13 페테르13 1830)

세2 (Peter II Petrović Njegoš 1830- 에13 의해13 그13 결실을13 이루게13 된다1851)

페테르13 세는13 당시13 여러13 외세의13 영향력13 하에13 흩어져13 있던13 몬테네그로13 부족들1

을13 한13 데로13 통합하고자13 노력하였고 국가13 수립과13 통치에13 필요한13 근대식13 법률

체계를13 정비하고 사법 행정의13 규율을13 정한13 사법13 행정법 과13 과거의13 관 (1798)

습법에서13 벗어나13 법률에13 근거해13 법을13 집행할13 수13 있도록13 만든13 법률집(1803)

을13 새로이13 구축하여13 놓았다 페테르13 세는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세르비아13 중 1

심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구상하였고 따라서13 강력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

현을13 위해13 제 차13 세르비아13 봉기1 (Prvi srpski ustanak 1804- 를13 통해13 세1813)

르비아13 자치13 국가를13 건설하려던13 카라조르제13 뻬트로비치(Karađorđe Petrović)

의13 봉기군과13 유기적13 연결13 관계를13 구축하게13 된다 이를13 위해13 페테르13 세는13 러 1

시아의13 지원을13 기대하며13 당시13 프랑스군이13 점령하고13 있던13 코토르만(Boka

과13 두브로브니크를13 탈환한13 후13 몬테네그로 헤르체고비나 코토르만Kotorska)

달마티아 지역13 등을13 중심으로13 한13 (Dalmacija) lsquo슬라브13 세르비아13 왕국rsquo을13 건설

138 김철민

하겠다는13 그의13 의지를13 표방하였으나 나폴레옹의13 러시아13 침공과13 함께13 그의13

바람은13 수포로13 돌아가게13 된다

이러한13 페테르13 세의13 남슬라브족13 이상에13 대해13 미오미르13 다쉬치1 (Miomir

는13 년13 이룬13 남슬라브족의13 통합13 정신이13 바로13 몬테네그로의13 페테르13 Dašić) 1918

세로부터13 출발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그는13 1 ldquo페테르13 세가13 세르비아인1

과13 크로아티아인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인 몬테네그로인의13 조화와13 형제애 단합

을13 강조하였던13 애국적인13 시인이자13 훌륭한13 정치가였다rdquo라고13 언급하면서 이러

한13 페테르13 세의13 정신이13 이후13 약하게나마13 니콜라13 시기까지13 이어지게13 되어1

년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국가가13 수립될13 수13 있었1918

다고13 말하고13 있다 무엇보다도13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그13 사(Dašić 1999 487)

실여부를13 떠나13 년13 수립된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그리고13 이13 왕국으로1918

의13 몬테네그로13 편입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이라는13 차원에서13 인식하고13 있다

는13 점에서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는13 독립13 세력들로부터13 일련의13

비판을13 받고13 있는13 상황이다

자신들의13 독립13 근대13 왕국을13 건설하고자13 했던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바람은13 현

대13 몬테네그로13 국가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설립자이자13 유명한13 시인이기도13 했

던13 페테르13 세13 시기에13 들어와서부터라13 볼13 수13 있다 반면13 세르비아인들은13 이13 2

당시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에13 크게13 호응하고13 있었고 이러

한13 그의13 이상을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도13 확산시키고자13 여러13 노력을13 기울이고13

있던13 시점이었다 페테르13 세는13 오스만13 터키의13 견제와13 프랑스의13 간섭13 그리고13 2

계속되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13 속에서도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결속과13 단결을13

이끌어내 년13 마침내13 오스트리아등13 주변13 강대국들로부터13 독립국가로서 1842

의13 인정을13 받을13 수13 있게13 된다 이어13 그의13 왕권은13 그의13 (Petrovich 1976 232)

조카인13 다닐로(Danilo I Petrović 1852~ 에게13 계승되었으나 년13 1860) 1860

암살에13 의한13 사망으로13 인해13 왕위는13 니콜라 에(Nikola Petrović 1860~1916)

게13 승계되게13 된다

니콜라는13 년부터13 시작된13 수차례의13 오스만13 터키13 공격을13 잘13 막아내었1862

고 년13 월13 1878 3 lsquo산스테파노 조약(San Stefano) rsquo과13 동년13 월13 6 lsquo베를린(Berlin)

조약rsquo의13 결과13 비록13 국제적으로13 인정은13 받지13 못했지만 몬테네그로는13 독립13 국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9

가를13 위한13 토대를13 구축할13 수13 있게13 되었다 베를린13 조약의13 결과13 몬테네그로의13

면적은13 과거보다13 배13 더13 확장되었고 오랜13 숙원이던13 2 (4400 9475 ) rarr

바르나 울찐13 등13 해안지대를13 확보할13 수13 있게13 된다 이때13 이후13 수도인13 쩨티녜

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는13 경제 사회적13 발전을13 이루게13 되어 년에13 들어 1899

와서는13 개의13 공립학교와13 개의13 사립학교가13 설립13 되게13 되었다 또한13 러시75 26

아의13 지도13 아래13 근대식13 군대가13 창설되었고 오스트리아의13 원조13 아래13 쩨티녜

에서13 코토르까지13 최초의13 근대식13 개념의13 도로와13 철도가13 설립되게13 된다

니콜라13 하의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관계는13 같(Komatina 1999 131)

은13 남슬라브족으로서13 선린관계를13 유지하고13 있었다 하지만13 세르비아13 정국13 주

도권을13 둘러싼13 오브레노비치 왕조와13 페트로비치 왕조(Obrenović) (Petrović)

간의13 계속된13 유혈13 사태는13 곧13 바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불협화음을13 초

래하게13 하였다10 특히13 세르비아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13 및13 발칸13 유럽내13 남

슬라브족13 국가들을13 통합해13 나가겠다는13 취지13 아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를13 강

력히13 추진하던13 란13 오브레노비치 시기13 이(Milan Obrenović 1868~1889)

후로13 양국은13 다소13 불편한13 관계가13 수립되었고 년13 마침내13 몬테네그로는13 1910

니콜라왕을13 중심으로13 하는13 독립13 군주국가임을13 선포하게13 되었다(Komatina

1999 37-38)11

10 이러한13 불협화음의13 또13 다른13 배경에는13 니콜라13 왕이13 세르비아13 오브레노비치13 왕조의13 정

적인13 카라조르제비치13 가문의13 페테르13 카라조르제비치(Peter I Karađorđević 1903~

까지13 세르비아13 왕위를13 엮임 를13 자신의13 장녀13 조르카 와13 결혼시켰던13 데서도13 1918 ) (Zorka)

그13 요인을13 찾을13 수13 있다

11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13 움직임13 속에13 치러진13 당시13 취임식에서13 니콜라왕은13 몬테네그로13

민족의13 독자성과13 독립된13 민족13 정체성을13 그들의13 중세13 역사13 속에서13 찾을13 것을13 천명하였

다 우리는13 과거13 제타13 왕국의13 보이슬라브 미하일로13 그리고13 보딘의13 자손이다 시간은13 ldquo

단지13 이13 땅위에13 존재하였던13 것을13 파괴할13 수13 있었지만 이13 안에13 꿈틀대고13 있는13 자유에13

대한13 의지와13 충성스러운13 산악인들의13 뜨거운13 심장을13 파괴할13 수는13 없었다 우리는13 오랜13

역사의13 토대13 위에13 왕국13 건설의13 부활을13 시작하였고 오늘날13 이13 왕국은13 여기13 천상의13 햇

빛아래13 반짝이는13 우리의13 고대왕국에13 그13 뿌리를13 두고13 있다rdquo httpwwwmontenetorg

history

140 김철민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IV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주요13 배경과13 진행과정13 1

세기13 초13 몬테네그로는13 비록13 니콜라왕의13 독립13 왕국13 선포에도13 불구하고20

복잡한13 발칸유럽의13 정세와13 더불어13 매우13 혼돈의13 시기를13 맞이하고13 있었다 몬

테네그로는13 년과13 년에13 치른13 제 차13 발칸전쟁에서의13 승전에도13 불1912 1913 1 2

구하고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종결이후13 세르비아13 주도의13 최초13 남슬라브족13 1918 1

통합국가인13 lsquo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Kraljevina SHS)rsquo하로13 편입되는13 아픔을13 겪게13 된다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제 차13 세계대전이전까지13 세르 2

비아의13 직접적인13 지배13 하에13 놓이게13 되었지만 제 차13 세계대전에서13 티토를13 중 2

심으로13 한13 파르티잔13 세력이13 승리한13 이후 사회주의13 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하에

서13 개13 구성13 공화국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6 ( -헤르체고비나 세르비

아 몬테네그로13 그리고13 마케도니아13 공화국 중13 하나인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으 )

로13 새롭게13 등장할13 수13 있었다

년13 베를린13 장벽13 붕괴로13 상징되는13 사회주의13 체제의13 몰락이후13 유고슬라1989

비아13 연방의13 해체13 위기와13 더불어13 몬테네그로는13 매우13 불확실한13 위치에13 놓이게13

된다 특히13 년에13 있었던13 다당제13 선거가13 실시된13 이후13 사회주의13 유고슬라 1990

비아13 연방은13 해체의13 길로13 들어서고13 있었고 이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도13 자신의13

진로를13 결정해야만13 했다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의13 압력과13 불확실한13 국

제적13 상황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년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형성에13 1992

가담하게13 된다12 하지만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에13 가담한13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연방13 구성국이었던13 세르비아가13 중심이13 된13 유고내전슬로베니아13 내전과13 크로(

12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이13 해체되는13 과정13 속에서13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

아와13 함께13 새로운13 연방을13 구성해13 나갈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단행하게13 된다 전체13 선

거인단의13 가13 참여하였던13 이13 선거에서13 찬성13 반대13 라는13 압도적인13 표차로13 66 96 3

몬테네그로13 국민은13 세르비아와13 운명을13 같이13 할13 것을13 결정짓게13 된다(Komatina 1999

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1

아티아13 내전과13 보스니아13 내전13 그리고13 이후13 년13 월에13 일어난13 와) 1999 3 NATO

의13 코소보13 전쟁13 등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미국과13 서유럽13 국가들로부터13

경제적 정치적13 그리고13 외교적13 고립을13 강요받아야만13 했다 결과적으로13 서구

로부터의13 고립은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13 형성과13 그13 유지에13

대한13 의구심을13 증폭시켰고 이러한13 국내13 분위기13 속에서13 년13 월13 몬테네 1999 8

그로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선출된13 로13 쥬카노비치 대통(Milo Đukanović)

령과13 그13 수뇌부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세르비아니즘의13 희생자임을13 상기시키며

독립을13 위한13 실질적인13 논의에13 들어가게13 된다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당시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13 권력자였던13 슬로보단13

로쉐비치 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에13 반발하였던13 몬테네(Slobodan Milošević)

그로13 대통령13 로13 쥬카노비치를13 중심으로13 제기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쥬

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세르비아13 정부에게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rsquo이13 아닌13 lsquo몬테네그로-세르비아13 연합13 국가rsquo라는13 명칭으로13 변경할13 것과13 현행13 연방13 헌법을13 폐지할13 것 그리고13 연방13 정부13 협의13 체제를13 각13 공화국간13 각료간13 협의체제

로13 전환13 할13 것13 등13 실질적인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방13 정부구성을13 제안하였다 이

후13 몬테네그로의13 요구는13 세르비아와의13 느슨한13 연방형태13 유지를13 전제로13 한13 독

자군대13 편성권과13 독자적13 외교권13 그리고13 독자13 통화권13 발행13 등으로13 확대되게13

된다

년13 월에13 들어와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연방정부에13 본격적으로13 연방13 2000 7

분리13 구상을13 제안하였고 몬테네그로가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존재를13 더13 이

상13 인정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점과13 그해13 월에13 치러질13 연방13 선거에13 불참할13 것13 9

그리고13 몬테네그로의13 향후13 국가13 목표를13 와13 에13 가입하는13 것을13 주요13 EU NATO

골자로13 하겠다는13 등의13 성명서를13 발표하였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그늘로부터13

벗어나13 독립을13 이루려던13 몬테네그로의13 의도는13 년13 월13 세르비아에서13 반2000 10

로쉐비치13 민주화13 혁명이13 일어나 민주인사인13 보이슬라브13 코슈투니짜( ) 反연방13 대통령이13 등장하게13 되자13 난관에13 봉착하게13 된다(Vojslav Koštunica) 13

13 년13 월13 일13 치러진13 유고연방의13 대선과13 총선13 투표에13 대해 선거13 위원회가13 발표2000 9 24

한13 결과와는13 달리 세르비아13 민주야당 의13 코슈투니차 (DOS) (Kos 후보13 진영에선13 tunica)

자체13 집계13 결과13 결선13 투표13 없이13 차13 투표에서13 로쉐비치를13 이겼다고13 선언하게13 된다1

이어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민주화를13 요구하는13 시위대의13 물결이13 베오그라드에13 집결하

142 김철민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취임한13 코슈투니짜13 대통령은13 ldquo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는13 하나의13 운명13 공동체이며13 더욱13 더13 강력한13 통합이13 필요하

다rdquo는13 점을13 강조하였고 이어13 이러한13 선언이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추구하고자13

했던13 미국과13 서방의13 지지를13 얻게13 됨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다소13 어

려움을13 겪게13 된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민주화13 혁명13 성공과13 대외적인13 압력에도13 불구하고 몬테

네그로의13 독립을13 향한13 움직임은13 계속13 지속되었다 특히13 몬테네그로는13 우선적

으로13 세르비아가13 주도하고13 있던13 연방으로부터의13 경제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갔는

데 그13 결과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의13 공식13 화폐가13 연방의13 공식화폐인13 2000 11 lsquo디나르 화(Dinar) rsquo 대신에13 독일의13 마르크화로13 지정되게13 된다 14 이어13 년13 2001 4

월에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양대13 세력 분리13 독립파와13 연방13 유지파 간13 ( )

총선13 결과13 근소한13 차이지만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승리함으로서13 독립13 추진에13 힘

을13 실어주게13 된다김철민( 2005 141)15 하지만13 총선13 직후 몬테네그로13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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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극해13 코소보13 사태와13 같은13 심각한13 위험을13 초래13 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점을13 경고하였다 동시에13 ldquo몬테네그로가13 연방13 내에13 계속13 존속하기를13 강력히13 희망한다rdquo는13 메시지와13 함께 ldquo국방 외교 통화13 등에13 대한13 권한만을13 연방정부에13 이양하고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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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13 있다rdquo는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합을13 제안하게13 된다16 하지만13 이러한13 제안이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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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3 실시할13 것임을13 발표하는13 것으로 세르비아13 정부의13 제안을13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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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실시할13 것13 그리고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공화국(SRJ)rsquo에서13 lsquo세르비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rsquo으로13 변경할13 것13 등이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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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은13 각13 공화국이13 독자적으로13 운영하는13 느슨한13 연합13 국가13 탄생이13 결정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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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13 연합13 국가를13 구성하는13 데13 양13 국이13 합의한13 직후 년13 월13 세르 2003 3

비아-몬테네그로13 의회는13 몬테네그로13 출신의13 법률가13 스베토자르13 마로비치

를13 전체13 의석13 석13 중 찬성13 반대13 기권13 표로13 (Svetozar Marović) 126 65 47 14

16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13 대표적13 신문인13 보르바 참조- lsquo (Borba)rsquo httpwwwborbacoyu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제를13 구축해13 나가고13 있다 반면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이 200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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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정국은13 매우13 혼미한13 상태로13 진행되고13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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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는13 향후13 다소13 난항을13 겪을13 것으로13 예상된다 그러한13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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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과13 같은13 장애요소들이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기13 때문이다 몬테

네그로의13 향후13 독립문제는13 아래13 요소들의13 향배에13 따라13 결정되어질13 것으로13 보

인다

우선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는13 가장13 큰13 장애13 요소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독립

을13 향한13 단합된13 의지를13 어느13 정도까지13 그리고13 어디까지13 보여줄13 수13 있을13 것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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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의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부야노비치13 전13 총리가13 대통령에13 당선되었지만 그13

전개13 과정이13 그리13 매끄럽지13 못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당시13 대통령13 선거13 투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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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는13 년13 월과13 년13 월에13 치러진13 두13 차례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최다13 2002 12 2003 2

득표율을13 기록하긴13 했으나 두13 차례13 선거13 모두13 헌법상13 최저13 투표율인13 를13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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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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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13 이슈로13 떠13 오른13 총선을13 통해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근소한13 차로13 승리하긴13

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으로13 국명이13 바뀐13 후13 몬테네그로13 최초13 대통령이13

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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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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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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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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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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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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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세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13 분할과13 민족간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휘말릴13 가능성이13 높

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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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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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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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텔레비전13 세르비아 국영13 방송국13 lsquo rsquo httpwwwrtscoyu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13 사이트13 UN httpwwwunmikonlineorg

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12: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136 김철민

한13 이반의13 아들13 쥬라즈13 쯔르노예비치 를13 마(Djuradj Crnojevic 1490~1496)

지막으로13 중세13 몬테네그로의13 역사는13 끝이13 나게13 된다

하지만13 비록13 짧은13 기간의13 통치였지만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몬테네그로13 역

사에13 남긴13 영향은13 매우13 컸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시작

과13 함께13 제타13 공국은13 오늘날13 명칭인13 쯔르나13 고라 몬테네그로(Crna Gora

란13 지명으로13 불리게13 되었다 두13 번째로는13 이13 시기13 주변의13 남(Montenegro))

슬라브족13 국가들이13 모두13 오스만13 터키의13 지배13 하로13 넘어갔음에도13 불구하고

쯔르노예비치는13 년13 수도를13 스카다르 호수의13 쟈블략 에1482 (Skadar) (Zabljak)

서 보다13 수비가13 용이한13 험준한13 지역인13 로브첸13 산악지대로브첸스키13 돌라쯔 (

오늘날13 쩨티녜 의13 전신로13 옮겨13 오스만13 터키의13 (Lovcenski Dolac (Cetinje) )

공격에13 끝까지13 저항하였다는13 점이다 이러한13 역사적13 사실은13 훗날13 외세의13 침

략과13 지배가13 있을13 때마다13 몬테네그로인들13 사이에13 저항13 정신과13 독립13 추진에13

대한13 원동력을13 제공하였으며 현13 분리13 독립파13 또한13 이러한13 역사를13 상기시키

며 세르비아로부터의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다 그리고13 세13 번째로13 발칸유럽13 국

가들13 중에선13 최초로13 년13 베네치아에서13 인쇄13 도구와13 인쇄기를13 도입하고1493

납으로13 된13 글자체와13 필체13 장식을13 위한13 주조물을13 만들어13 냄으로써 이후13 약13

여13 년간13 세르비아와13 보스니아에서13 키릴13 문자로13 인쇄된13 서적들의13 출판에13 100

상당한13 영향을13 미쳤다는13 자부심을13 안겨주었다

비록13 일부13 반론이13 있기는13 하지만 세르비아13 역사가들의13 주장에13 따르자면

쯔르노예비치13 왕조가13 재건한13 중세13 왕국은13 당시13 오스만13 터키에13 의해13 사라져13

버린13 세르비아13 네마니치13 왕조의13 국가13 전통과13 문화유산을13 그대로13 계승하고자13

노력했던13 것으로13 보인다 그러한13 실례는13 당시13 관직명과13 교구13 운영에13 있어서13

과거13 세르비아13 왕국의13 관직명들이13 그대로13 채택하고 세르비아13 제국13 시절을13

본13 따13 lsquo황제와13 총대주교구의13 법원rsquo을13 설치했음을 그리고13 모든13 법률13 조항에13

있어13 과거13 두샨왕13 시절13 제작된13 lsquo두샨13 법전rsquo의13 조항들을13 그대로13 적용시켰다는13 점을13 들13 수13 있다 이를13 기초로13 세르비아13 역사학자들13 가운데13 상당수는13 년13 1496

쯔르노예비치13 왕조의13 붕괴와13 중세13 몬테네그로13 왕국의13 종말은13 세르비아13 민족

이13 이룬13 중세13 국가의13 마지막13 형태가13 사라졌음을13 의미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Ćirković and Božić 1977 115)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7

근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과13 세르비아니즘2

발칸유럽의13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마찬가지로13 몬테네그로인13 또한13 오스만13 터

키지배13 하에서13 터키의13 계획적이고13 철저한13 약탈13 경제13 정책으로13 인해13 사회 경

제적13 어려움이13 가중되게13 된다 과거13 아드리아13 해안13 상권을13 이용해13 이룩한13 왕

성한13 상업과13 무역13 활동13 그리고13 이를13 통한13 부의13 축적의13 가능하였던13 몬테네그

로인은13 이들13 분야를13 경시하고13 농업 임업 공공13 건설13 사업에13 치중하였던13 오스

만13 터키의13 정책에13 따라13 일련의13 암흑기를13 맞이하게13 되었다 또한13 오스만13 터키

의13 국력이13 쇠락해진13 세기13 말13 이후로13 세금13 부담이13 지나치게13 커지면서13 몬테17

네그로인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의13 충돌이13 빈번하게13 발생하였고 이에13 따라13 몬테

네그로인은13 상황이13 허락하는13 한13 베네치아13 등13 서구13 국가들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

의13 충돌시13 서구13 국가들을13 지원해13 아드리아의13 또13 다른13 주요13 지역인13 lsquo라구사공국오늘날13 두브로브니크 일대(Ragusa) ( (Dubrovnik) )rsquo의13 경우처럼13 이들로

부터13 자치권을13 보장받으려13 했다

이러한13 노력은13 페테르13 세1 (Peter I Petrović Njegoš 1782- 와13 페테르13 1830)

세2 (Peter II Petrović Njegoš 1830- 에13 의해13 그13 결실을13 이루게13 된다1851)

페테르13 세는13 당시13 여러13 외세의13 영향력13 하에13 흩어져13 있던13 몬테네그로13 부족들1

을13 한13 데로13 통합하고자13 노력하였고 국가13 수립과13 통치에13 필요한13 근대식13 법률

체계를13 정비하고 사법 행정의13 규율을13 정한13 사법13 행정법 과13 과거의13 관 (1798)

습법에서13 벗어나13 법률에13 근거해13 법을13 집행할13 수13 있도록13 만든13 법률집(1803)

을13 새로이13 구축하여13 놓았다 페테르13 세는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세르비아13 중 1

심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구상하였고 따라서13 강력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구

현을13 위해13 제 차13 세르비아13 봉기1 (Prvi srpski ustanak 1804- 를13 통해13 세1813)

르비아13 자치13 국가를13 건설하려던13 카라조르제13 뻬트로비치(Karađorđe Petrović)

의13 봉기군과13 유기적13 연결13 관계를13 구축하게13 된다 이를13 위해13 페테르13 세는13 러 1

시아의13 지원을13 기대하며13 당시13 프랑스군이13 점령하고13 있던13 코토르만(Boka

과13 두브로브니크를13 탈환한13 후13 몬테네그로 헤르체고비나 코토르만Kotorska)

달마티아 지역13 등을13 중심으로13 한13 (Dalmacija) lsquo슬라브13 세르비아13 왕국rsquo을13 건설

138 김철민

하겠다는13 그의13 의지를13 표방하였으나 나폴레옹의13 러시아13 침공과13 함께13 그의13

바람은13 수포로13 돌아가게13 된다

이러한13 페테르13 세의13 남슬라브족13 이상에13 대해13 미오미르13 다쉬치1 (Miomir

는13 년13 이룬13 남슬라브족의13 통합13 정신이13 바로13 몬테네그로의13 페테르13 Dašić) 1918

세로부터13 출발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그는13 1 ldquo페테르13 세가13 세르비아인1

과13 크로아티아인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인 몬테네그로인의13 조화와13 형제애 단합

을13 강조하였던13 애국적인13 시인이자13 훌륭한13 정치가였다rdquo라고13 언급하면서 이러

한13 페테르13 세의13 정신이13 이후13 약하게나마13 니콜라13 시기까지13 이어지게13 되어1

년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국가가13 수립될13 수13 있었1918

다고13 말하고13 있다 무엇보다도13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그13 사(Dašić 1999 487)

실여부를13 떠나13 년13 수립된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그리고13 이13 왕국으로1918

의13 몬테네그로13 편입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이라는13 차원에서13 인식하고13 있다

는13 점에서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는13 독립13 세력들로부터13 일련의13

비판을13 받고13 있는13 상황이다

자신들의13 독립13 근대13 왕국을13 건설하고자13 했던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바람은13 현

대13 몬테네그로13 국가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설립자이자13 유명한13 시인이기도13 했

던13 페테르13 세13 시기에13 들어와서부터라13 볼13 수13 있다 반면13 세르비아인들은13 이13 2

당시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에13 크게13 호응하고13 있었고 이러

한13 그의13 이상을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도13 확산시키고자13 여러13 노력을13 기울이고13

있던13 시점이었다 페테르13 세는13 오스만13 터키의13 견제와13 프랑스의13 간섭13 그리고13 2

계속되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13 속에서도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결속과13 단결을13

이끌어내 년13 마침내13 오스트리아등13 주변13 강대국들로부터13 독립국가로서 1842

의13 인정을13 받을13 수13 있게13 된다 이어13 그의13 왕권은13 그의13 (Petrovich 1976 232)

조카인13 다닐로(Danilo I Petrović 1852~ 에게13 계승되었으나 년13 1860) 1860

암살에13 의한13 사망으로13 인해13 왕위는13 니콜라 에(Nikola Petrović 1860~1916)

게13 승계되게13 된다

니콜라는13 년부터13 시작된13 수차례의13 오스만13 터키13 공격을13 잘13 막아내었1862

고 년13 월13 1878 3 lsquo산스테파노 조약(San Stefano) rsquo과13 동년13 월13 6 lsquo베를린(Berlin)

조약rsquo의13 결과13 비록13 국제적으로13 인정은13 받지13 못했지만 몬테네그로는13 독립13 국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9

가를13 위한13 토대를13 구축할13 수13 있게13 되었다 베를린13 조약의13 결과13 몬테네그로의13

면적은13 과거보다13 배13 더13 확장되었고 오랜13 숙원이던13 2 (4400 9475 ) rarr

바르나 울찐13 등13 해안지대를13 확보할13 수13 있게13 된다 이때13 이후13 수도인13 쩨티녜

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는13 경제 사회적13 발전을13 이루게13 되어 년에13 들어 1899

와서는13 개의13 공립학교와13 개의13 사립학교가13 설립13 되게13 되었다 또한13 러시75 26

아의13 지도13 아래13 근대식13 군대가13 창설되었고 오스트리아의13 원조13 아래13 쩨티녜

에서13 코토르까지13 최초의13 근대식13 개념의13 도로와13 철도가13 설립되게13 된다

니콜라13 하의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관계는13 같(Komatina 1999 131)

은13 남슬라브족으로서13 선린관계를13 유지하고13 있었다 하지만13 세르비아13 정국13 주

도권을13 둘러싼13 오브레노비치 왕조와13 페트로비치 왕조(Obrenović) (Petrović)

간의13 계속된13 유혈13 사태는13 곧13 바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불협화음을13 초

래하게13 하였다10 특히13 세르비아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13 및13 발칸13 유럽내13 남

슬라브족13 국가들을13 통합해13 나가겠다는13 취지13 아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를13 강

력히13 추진하던13 란13 오브레노비치 시기13 이(Milan Obrenović 1868~1889)

후로13 양국은13 다소13 불편한13 관계가13 수립되었고 년13 마침내13 몬테네그로는13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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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13 토대13 위에13 왕국13 건설의13 부활을13 시작하였고 오늘날13 이13 왕국은13 여기13 천상의13 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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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140 김철민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IV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주요13 배경과13 진행과정1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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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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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김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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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던13 미국과13 서방의13 지지를13 얻게13 됨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다소13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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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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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는13 단일13 국가로13 활동하며 현행13 조약과13 협정에13 대한13 과거13 유고연방의13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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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13 안에13 대한13 협정이13 승인되게13 되면서13 현재에13 이르고13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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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13 연합13 국가를13 구성하는13 데13 양13 국이13 합의한13 직후 년13 월13 세르 200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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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13 대표적13 신문인13 보르바 참조- lsquo (Borba)rsquo httpwwwborbacoyu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제를13 구축해13 나가고13 있다 반면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이 200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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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13 과정이13 그리13 매끄럽지13 못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당시13 대통령13 선거13 투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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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는13 년13 월과13 년13 월에13 치러진13 두13 차례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최다13 2002 12 2003 2

득표율을13 기록하긴13 했으나 두13 차례13 선거13 모두13 헌법상13 최저13 투표율인13 를13 50

밑돌아13 무효처리가13 되었었다 따라서13 여러13 논란13 속에13 치러진13 년13 월13 선 2003 5

거에선13 쥬카노비치의13 주도13 아래13 조정된13 새로운13 선거법13 즉 최저13 유효13 투표율13

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선거가13 치러지게13 되었다 이러한13 점은13 지난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이13 2001 4

주요13 이슈로13 떠13 오른13 총선을13 통해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근소한13 차로13 승리하긴13

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으로13 국명이13 바뀐13 후13 몬테네그로13 최초13 대통령이13

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이다 실제 몬테네그로13 헌법적13 지위변화에13 관한13 국민투표가13 실행되기13 위해

선13 전체13 몬테네그로13 의원13 명13 가운데13 인13 명의13 동의가13 필요하지만77 23 52

년13 월13 선거에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석을13 얻는13 데13 그친13 실정이다 더불어13 2001 4 44

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산업13 기지와13 생산능력이13 취약해13 주력13 산업으로13 관광업을13 육성시키고13 있는13 몬

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비아인이라는13 점(httpwwwvisit- 그리고13 세르비아로부터13 montenegrocom)

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세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해13 나가려는13 데13 있어13 세르비아의13 강력한13

17 년13 인구조사에13 따르자면 몬테네그로13 총13 인구13 비율은13 몬테네그로인이13 약13 1991 617(

명 세르비아인이13 약13 명 무슬림이13 약13 명 알바니381000 ) 93( 57000 ) 145( 89000 )

아인이13 약13 명 기타13 인구가13 약13 명 를13 차지한다 이외에도13 세65( 40000 ) 8( 49000 )

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년13 기준으로13 몬테네그로13 자체13 방위13 병력이13 여13 명에13 불과한13 상황에서13 만3000

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세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13 분할과13 민족간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휘말릴13 가능성이13 높

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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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13: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7

근대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왕국과13 세르비아니즘2

발칸유럽의13 다른13 남슬라브족과13 마찬가지로13 몬테네그로인13 또한13 오스만13 터

키지배13 하에서13 터키의13 계획적이고13 철저한13 약탈13 경제13 정책으로13 인해13 사회 경

제적13 어려움이13 가중되게13 된다 과거13 아드리아13 해안13 상권을13 이용해13 이룩한13 왕

성한13 상업과13 무역13 활동13 그리고13 이를13 통한13 부의13 축적의13 가능하였던13 몬테네그

로인은13 이들13 분야를13 경시하고13 농업 임업 공공13 건설13 사업에13 치중하였던13 오스

만13 터키의13 정책에13 따라13 일련의13 암흑기를13 맞이하게13 되었다 또한13 오스만13 터키

의13 국력이13 쇠락해진13 세기13 말13 이후로13 세금13 부담이13 지나치게13 커지면서13 몬테17

네그로인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의13 충돌이13 빈번하게13 발생하였고 이에13 따라13 몬테

네그로인은13 상황이13 허락하는13 한13 베네치아13 등13 서구13 국가들과13 오스만13 터키13 간

의13 충돌시13 서구13 국가들을13 지원해13 아드리아의13 또13 다른13 주요13 지역인13 lsquo라구사공국오늘날13 두브로브니크 일대(Ragusa) ( (Dubrovnik) )rsquo의13 경우처럼13 이들로

부터13 자치권을13 보장받으려13 했다

이러한13 노력은13 페테르13 세1 (Peter I Petrović Njegoš 1782- 와13 페테르13 1830)

세2 (Peter II Petrović Njegoš 1830- 에13 의해13 그13 결실을13 이루게13 된다1851)

페테르13 세는13 당시13 여러13 외세의13 영향력13 하에13 흩어져13 있던13 몬테네그로13 부족들1

을13 한13 데로13 통합하고자13 노력하였고 국가13 수립과13 통치에13 필요한13 근대식13 법률

체계를13 정비하고 사법 행정의13 규율을13 정한13 사법13 행정법 과13 과거의13 관 (1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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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13 새로이13 구축하여13 놓았다 페테르13 세는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세르비아13 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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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을13 위해13 제 차13 세르비아13 봉기1 (Prvi srpski ustanak 1804- 를13 통해13 세1813)

르비아13 자치13 국가를13 건설하려던13 카라조르제13 뻬트로비치(Karađorđe Petrovi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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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13 두브로브니크를13 탈환한13 후13 몬테네그로 헤르체고비나 코토르만Kotor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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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김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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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13 수포로13 돌아가게13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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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13 년13 이룬13 남슬라브족의13 통합13 정신이13 바로13 몬테네그로의13 페테르13 Dašić)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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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13 페테르13 세의13 정신이13 이후13 약하게나마13 니콜라13 시기까지13 이어지게13 되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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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여부를13 떠나13 년13 수립된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그리고13 이13 왕국으로1918

의13 몬테네그로13 편입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이라는13 차원에서13 인식하고13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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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13 독립13 근대13 왕국을13 건설하고자13 했던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바람은13 현

대13 몬테네그로13 국가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설립자이자13 유명한13 시인이기도13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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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13 그의13 이상을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도13 확산시키고자13 여러13 노력을13 기울이고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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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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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13 코토르까지13 최초의13 근대식13 개념의13 도로와13 철도가13 설립되게13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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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히13 추진하던13 란13 오브레노비치 시기13 이(Milan Obrenović 1868~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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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왕을13 중심으로13 하는13 독립13 군주국가임을13 선포하게13 되었다(Komatina

1999 37-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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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13 세르비아13 왕위를13 엮임 를13 자신의13 장녀13 조르카 와13 결혼시켰던13 데서도13 1918 ) (Zor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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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13 움직임13 속에13 치러진13 당시13 취임식에서13 니콜라왕은13 몬테네그로13

민족의13 독자성과13 독립된13 민족13 정체성을13 그들의13 중세13 역사13 속에서13 찾을13 것을13 천명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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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13 이13 땅위에13 존재하였던13 것을13 파괴할13 수13 있었지만 이13 안에13 꿈틀대고13 있는13 자유에13

대한13 의지와13 충성스러운13 산악인들의13 뜨거운13 심장을13 파괴할13 수는13 없었다 우리는13 오랜13

역사의13 토대13 위에13 왕국13 건설의13 부활을13 시작하였고 오늘날13 이13 왕국은13 여기13 천상의13 햇

빛아래13 반짝이는13 우리의13 고대왕국에13 그13 뿌리를13 두고13 있다rdquo httpwwwmontenetorg

history

140 김철민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IV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주요13 배경과13 진행과정1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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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국가인13 lsquo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Kraljevina SHS)rsquo하로13 편입되는13 아픔을13 겪게13 된다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제 차13 세계대전이전까지13 세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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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13 연방의13 해체13 위기와13 더불어13 몬테네그로는13 매우13 불확실한13 위치에13 놓이게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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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13 연방은13 해체의13 길로13 들어서고13 있었고 이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도13 자신의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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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이13 해체되는13 과정13 속에서13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

아와13 함께13 새로운13 연방을13 구성해13 나갈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단행하게13 된다 전체13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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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13 국민은13 세르비아와13 운명을13 같이13 할13 것을13 결정짓게13 된다(Komatina 1999

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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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13 코소보13 전쟁13 등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미국과13 서유럽13 국가들로부터13

경제적 정치적13 그리고13 외교적13 고립을13 강요받아야만13 했다 결과적으로13 서구

로부터의13 고립은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13 형성과13 그13 유지에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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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13 위한13 실질적인13 논의에13 들어가게13 된다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당시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13 권력자였던13 슬로보단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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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13 대통령13 로13 쥬카노비치를13 중심으로13 제기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쥬

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세르비아13 정부에게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rsquo이13 아닌13 lsquo몬테네그로-세르비아13 연합13 국가rsquo라는13 명칭으로13 변경할13 것과13 현행13 연방13 헌법을13 폐지할13 것 그리고13 연방13 정부13 협의13 체제를13 각13 공화국간13 각료간13 협의체제

로13 전환13 할13 것13 등13 실질적인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방13 정부구성을13 제안하였다 이

후13 몬테네그로의13 요구는13 세르비아와의13 느슨한13 연방형태13 유지를13 전제로13 한13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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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년13 월에13 들어와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연방정부에13 본격적으로13 연방13 200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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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13 몬테네그로의13 향후13 국가13 목표를13 와13 에13 가입하는13 것을13 주요13 EU NATO

골자로13 하겠다는13 등의13 성명서를13 발표하였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그늘로부터13

벗어나13 독립을13 이루려던13 몬테네그로의13 의도는13 년13 월13 세르비아에서13 반2000 10

로쉐비치13 민주화13 혁명이13 일어나 민주인사인13 보이슬라브13 코슈투니짜( ) 反연방13 대통령이13 등장하게13 되자13 난관에13 봉착하게13 된다(Vojslav Koštunica) 13

13 년13 월13 일13 치러진13 유고연방의13 대선과13 총선13 투표에13 대해 선거13 위원회가13 발표2000 9 24

한13 결과와는13 달리 세르비아13 민주야당 의13 코슈투니차 (DOS) (Kos 후보13 진영에선13 tunica)

자체13 집계13 결과13 결선13 투표13 없이13 차13 투표에서13 로쉐비치를13 이겼다고13 선언하게13 된다1

이어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민주화를13 요구하는13 시위대의13 물결이13 베오그라드에13 집결하

142 김철민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취임한13 코슈투니짜13 대통령은13 ldquo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는13 하나의13 운명13 공동체이며13 더욱13 더13 강력한13 통합이13 필요하

다rdquo는13 점을13 강조하였고 이어13 이러한13 선언이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추구하고자13

했던13 미국과13 서방의13 지지를13 얻게13 됨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다소13 어

려움을13 겪게13 된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민주화13 혁명13 성공과13 대외적인13 압력에도13 불구하고 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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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극해13 코소보13 사태와13 같은13 심각한13 위험을13 초래13 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점을13 경고하였다 동시에13 ldquo몬테네그로가13 연방13 내에13 계속13 존속하기를13 강력히13 희망한다rdquo는13 메시지와13 함께 ldquo국방 외교 통화13 등에13 대한13 권한만을13 연방정부에13 이양하고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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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13 있다rdquo는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합을13 제안하게13 된다16 하지만13 이러한13 제안이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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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3 실시할13 것임을13 발표하는13 것으로 세르비아13 정부의13 제안을13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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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또한13 그13 내용에13 따라13 국제적으로는13 등13 국제기구에서13 하나의13 의석을13 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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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13 의회에서13 양13 국13 지도부들간의13 몬테네그로13 연방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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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의13 향후13 전망과13 그13 의미1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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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몬테네그로13 의회는13 몬테네그로13 출신의13 법률가13 스베토자르13 마로비치

를13 전체13 의석13 석13 중 찬성13 반대13 기권13 표로13 (Svetozar Marović) 126 65 47 14

16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13 대표적13 신문인13 보르바 참조- lsquo (Borba)rsquo httpwwwborbacoyu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제를13 구축해13 나가고13 있다 반면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이 200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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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정국은13 매우13 혼미한13 상태로13 진행되고13 있다

연합13 국가를13 계속13 유지해13 나가려는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노력들을13 뿌리치고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으로부터13 벗어나13 새로이13 독립13 국가를13 구성해13 나가려는13 몬

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는13 향후13 다소13 난항을13 겪을13 것으로13 예상된다 그러한13 분

석을13 내리는13 배경에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13 그리고13 발칸반도를13 둘러싼13 다

음과13 같은13 장애요소들이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기13 때문이다 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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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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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13 향한13 단합된13 의지를13 어느13 정도까지13 그리고13 어디까지13 보여줄13 수13 있을13 것인

가 라는13 문제이다 몬테네그로는13 지난13 년13 월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몬테네 2003 5

그로의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부야노비치13 전13 총리가13 대통령에13 당선되었지만 그13

전개13 과정이13 그리13 매끄럽지13 못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당시13 대통령13 선거13 투표율

은13 전체13 유권자의13 득표율은13 에13 불과하였는데 그13 동안13 부야노비치13 48 65

후보는13 년13 월과13 년13 월에13 치러진13 두13 차례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최다13 2002 12 2003 2

득표율을13 기록하긴13 했으나 두13 차례13 선거13 모두13 헌법상13 최저13 투표율인13 를13 50

밑돌아13 무효처리가13 되었었다 따라서13 여러13 논란13 속에13 치러진13 년13 월13 선 2003 5

거에선13 쥬카노비치의13 주도13 아래13 조정된13 새로운13 선거법13 즉 최저13 유효13 투표율13

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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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13 이슈로13 떠13 오른13 총선을13 통해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근소한13 차로13 승리하긴13

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으로13 국명이13 바뀐13 후13 몬테네그로13 최초13 대통령이13

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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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13 전체13 몬테네그로13 의원13 명13 가운데13 인13 명의13 동의가13 필요하지만77 23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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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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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비아인이라는13 점(httpwwwvisit- 그리고13 세르비아로부터13 montenegrocom)

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세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해13 나가려는13 데13 있어13 세르비아의13 강력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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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세르비아인이13 약13 명 무슬림이13 약13 명 알바니381000 ) 93( 57000 ) 145( 89000 )

아인이13 약13 명 기타13 인구가13 약13 명 를13 차지한다 이외에도13 세65( 40000 ) 8( 49000 )

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년13 기준으로13 몬테네그로13 자체13 방위13 병력이13 여13 명에13 불과한13 상황에서13 만3000

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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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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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14: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138 김철민

하겠다는13 그의13 의지를13 표방하였으나 나폴레옹의13 러시아13 침공과13 함께13 그의13

바람은13 수포로13 돌아가게13 된다

이러한13 페테르13 세의13 남슬라브족13 이상에13 대해13 미오미르13 다쉬치1 (Miomir

는13 년13 이룬13 남슬라브족의13 통합13 정신이13 바로13 몬테네그로의13 페테르13 Dašić) 1918

세로부터13 출발하고13 있다고13 주장하고13 있다 그는13 1 ldquo페테르13 세가13 세르비아인1

과13 크로아티아인13 그리고13 슬로베니아인 몬테네그로인의13 조화와13 형제애 단합

을13 강조하였던13 애국적인13 시인이자13 훌륭한13 정치가였다rdquo라고13 언급하면서 이러

한13 페테르13 세의13 정신이13 이후13 약하게나마13 니콜라13 시기까지13 이어지게13 되어1

년13 몬테네그로가13 포함된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국가가13 수립될13 수13 있었1918

다고13 말하고13 있다 무엇보다도13 이러한13 그의13 주장은13 그13 사(Dašić 1999 487)

실여부를13 떠나13 년13 수립된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왕국을13 그리고13 이13 왕국으로1918

의13 몬테네그로13 편입을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이라는13 차원에서13 인식하고13 있다

는13 점에서13 현재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주장하고13 있는13 독립13 세력들로부터13 일련의13

비판을13 받고13 있는13 상황이다

자신들의13 독립13 근대13 왕국을13 건설하고자13 했던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바람은13 현

대13 몬테네그로13 국가와13 몬테네그로13 왕조의13 설립자이자13 유명한13 시인이기도13 했

던13 페테르13 세13 시기에13 들어와서부터라13 볼13 수13 있다 반면13 세르비아인들은13 이13 2

당시13 가라샤닌이13 제창한13 세르비아니즘의13 이상에13 크게13 호응하고13 있었고 이러

한13 그의13 이상을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도13 확산시키고자13 여러13 노력을13 기울이고13

있던13 시점이었다 페테르13 세는13 오스만13 터키의13 견제와13 프랑스의13 간섭13 그리고13 2

계속되는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산13 속에서도13 몬테네그로인들의13 결속과13 단결을13

이끌어내 년13 마침내13 오스트리아등13 주변13 강대국들로부터13 독립국가로서 1842

의13 인정을13 받을13 수13 있게13 된다 이어13 그의13 왕권은13 그의13 (Petrovich 1976 232)

조카인13 다닐로(Danilo I Petrović 1852~ 에게13 계승되었으나 년13 1860) 1860

암살에13 의한13 사망으로13 인해13 왕위는13 니콜라 에(Nikola Petrović 1860~1916)

게13 승계되게13 된다

니콜라는13 년부터13 시작된13 수차례의13 오스만13 터키13 공격을13 잘13 막아내었1862

고 년13 월13 1878 3 lsquo산스테파노 조약(San Stefano) rsquo과13 동년13 월13 6 lsquo베를린(Berlin)

조약rsquo의13 결과13 비록13 국제적으로13 인정은13 받지13 못했지만 몬테네그로는13 독립13 국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9

가를13 위한13 토대를13 구축할13 수13 있게13 되었다 베를린13 조약의13 결과13 몬테네그로의13

면적은13 과거보다13 배13 더13 확장되었고 오랜13 숙원이던13 2 (4400 9475 ) rarr

바르나 울찐13 등13 해안지대를13 확보할13 수13 있게13 된다 이때13 이후13 수도인13 쩨티녜

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는13 경제 사회적13 발전을13 이루게13 되어 년에13 들어 1899

와서는13 개의13 공립학교와13 개의13 사립학교가13 설립13 되게13 되었다 또한13 러시75 26

아의13 지도13 아래13 근대식13 군대가13 창설되었고 오스트리아의13 원조13 아래13 쩨티녜

에서13 코토르까지13 최초의13 근대식13 개념의13 도로와13 철도가13 설립되게13 된다

니콜라13 하의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관계는13 같(Komatina 1999 131)

은13 남슬라브족으로서13 선린관계를13 유지하고13 있었다 하지만13 세르비아13 정국13 주

도권을13 둘러싼13 오브레노비치 왕조와13 페트로비치 왕조(Obrenović) (Petrović)

간의13 계속된13 유혈13 사태는13 곧13 바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불협화음을13 초

래하게13 하였다10 특히13 세르비아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13 및13 발칸13 유럽내13 남

슬라브족13 국가들을13 통합해13 나가겠다는13 취지13 아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를13 강

력히13 추진하던13 란13 오브레노비치 시기13 이(Milan Obrenović 1868~1889)

후로13 양국은13 다소13 불편한13 관계가13 수립되었고 년13 마침내13 몬테네그로는13 1910

니콜라왕을13 중심으로13 하는13 독립13 군주국가임을13 선포하게13 되었다(Komatina

1999 37-38)11

10 이러한13 불협화음의13 또13 다른13 배경에는13 니콜라13 왕이13 세르비아13 오브레노비치13 왕조의13 정

적인13 카라조르제비치13 가문의13 페테르13 카라조르제비치(Peter I Karađorđević 1903~

까지13 세르비아13 왕위를13 엮임 를13 자신의13 장녀13 조르카 와13 결혼시켰던13 데서도13 1918 ) (Zorka)

그13 요인을13 찾을13 수13 있다

11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13 움직임13 속에13 치러진13 당시13 취임식에서13 니콜라왕은13 몬테네그로13

민족의13 독자성과13 독립된13 민족13 정체성을13 그들의13 중세13 역사13 속에서13 찾을13 것을13 천명하였

다 우리는13 과거13 제타13 왕국의13 보이슬라브 미하일로13 그리고13 보딘의13 자손이다 시간은13 ldquo

단지13 이13 땅위에13 존재하였던13 것을13 파괴할13 수13 있었지만 이13 안에13 꿈틀대고13 있는13 자유에13

대한13 의지와13 충성스러운13 산악인들의13 뜨거운13 심장을13 파괴할13 수는13 없었다 우리는13 오랜13

역사의13 토대13 위에13 왕국13 건설의13 부활을13 시작하였고 오늘날13 이13 왕국은13 여기13 천상의13 햇

빛아래13 반짝이는13 우리의13 고대왕국에13 그13 뿌리를13 두고13 있다rdquo httpwwwmontenetorg

history

140 김철민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IV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주요13 배경과13 진행과정13 1

세기13 초13 몬테네그로는13 비록13 니콜라왕의13 독립13 왕국13 선포에도13 불구하고20

복잡한13 발칸유럽의13 정세와13 더불어13 매우13 혼돈의13 시기를13 맞이하고13 있었다 몬

테네그로는13 년과13 년에13 치른13 제 차13 발칸전쟁에서의13 승전에도13 불1912 1913 1 2

구하고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종결이후13 세르비아13 주도의13 최초13 남슬라브족13 1918 1

통합국가인13 lsquo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Kraljevina SHS)rsquo하로13 편입되는13 아픔을13 겪게13 된다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제 차13 세계대전이전까지13 세르 2

비아의13 직접적인13 지배13 하에13 놓이게13 되었지만 제 차13 세계대전에서13 티토를13 중 2

심으로13 한13 파르티잔13 세력이13 승리한13 이후 사회주의13 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하에

서13 개13 구성13 공화국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6 ( -헤르체고비나 세르비

아 몬테네그로13 그리고13 마케도니아13 공화국 중13 하나인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으 )

로13 새롭게13 등장할13 수13 있었다

년13 베를린13 장벽13 붕괴로13 상징되는13 사회주의13 체제의13 몰락이후13 유고슬라1989

비아13 연방의13 해체13 위기와13 더불어13 몬테네그로는13 매우13 불확실한13 위치에13 놓이게13

된다 특히13 년에13 있었던13 다당제13 선거가13 실시된13 이후13 사회주의13 유고슬라 1990

비아13 연방은13 해체의13 길로13 들어서고13 있었고 이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도13 자신의13

진로를13 결정해야만13 했다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의13 압력과13 불확실한13 국

제적13 상황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년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형성에13 1992

가담하게13 된다12 하지만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에13 가담한13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연방13 구성국이었던13 세르비아가13 중심이13 된13 유고내전슬로베니아13 내전과13 크로(

12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이13 해체되는13 과정13 속에서13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

아와13 함께13 새로운13 연방을13 구성해13 나갈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단행하게13 된다 전체13 선

거인단의13 가13 참여하였던13 이13 선거에서13 찬성13 반대13 라는13 압도적인13 표차로13 66 96 3

몬테네그로13 국민은13 세르비아와13 운명을13 같이13 할13 것을13 결정짓게13 된다(Komatina 1999

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1

아티아13 내전과13 보스니아13 내전13 그리고13 이후13 년13 월에13 일어난13 와) 1999 3 NATO

의13 코소보13 전쟁13 등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미국과13 서유럽13 국가들로부터13

경제적 정치적13 그리고13 외교적13 고립을13 강요받아야만13 했다 결과적으로13 서구

로부터의13 고립은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13 형성과13 그13 유지에13

대한13 의구심을13 증폭시켰고 이러한13 국내13 분위기13 속에서13 년13 월13 몬테네 1999 8

그로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선출된13 로13 쥬카노비치 대통(Milo Đukanović)

령과13 그13 수뇌부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세르비아니즘의13 희생자임을13 상기시키며

독립을13 위한13 실질적인13 논의에13 들어가게13 된다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당시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13 권력자였던13 슬로보단13

로쉐비치 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에13 반발하였던13 몬테네(Slobodan Milošević)

그로13 대통령13 로13 쥬카노비치를13 중심으로13 제기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쥬

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세르비아13 정부에게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rsquo이13 아닌13 lsquo몬테네그로-세르비아13 연합13 국가rsquo라는13 명칭으로13 변경할13 것과13 현행13 연방13 헌법을13 폐지할13 것 그리고13 연방13 정부13 협의13 체제를13 각13 공화국간13 각료간13 협의체제

로13 전환13 할13 것13 등13 실질적인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방13 정부구성을13 제안하였다 이

후13 몬테네그로의13 요구는13 세르비아와의13 느슨한13 연방형태13 유지를13 전제로13 한13 독

자군대13 편성권과13 독자적13 외교권13 그리고13 독자13 통화권13 발행13 등으로13 확대되게13

된다

년13 월에13 들어와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연방정부에13 본격적으로13 연방13 2000 7

분리13 구상을13 제안하였고 몬테네그로가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존재를13 더13 이

상13 인정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점과13 그해13 월에13 치러질13 연방13 선거에13 불참할13 것13 9

그리고13 몬테네그로의13 향후13 국가13 목표를13 와13 에13 가입하는13 것을13 주요13 EU NATO

골자로13 하겠다는13 등의13 성명서를13 발표하였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그늘로부터13

벗어나13 독립을13 이루려던13 몬테네그로의13 의도는13 년13 월13 세르비아에서13 반2000 10

로쉐비치13 민주화13 혁명이13 일어나 민주인사인13 보이슬라브13 코슈투니짜( ) 反연방13 대통령이13 등장하게13 되자13 난관에13 봉착하게13 된다(Vojslav Koštunica) 13

13 년13 월13 일13 치러진13 유고연방의13 대선과13 총선13 투표에13 대해 선거13 위원회가13 발표2000 9 24

한13 결과와는13 달리 세르비아13 민주야당 의13 코슈투니차 (DOS) (Kos 후보13 진영에선13 tunica)

자체13 집계13 결과13 결선13 투표13 없이13 차13 투표에서13 로쉐비치를13 이겼다고13 선언하게13 된다1

이어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민주화를13 요구하는13 시위대의13 물결이13 베오그라드에13 집결하

142 김철민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취임한13 코슈투니짜13 대통령은13 ldquo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는13 하나의13 운명13 공동체이며13 더욱13 더13 강력한13 통합이13 필요하

다rdquo는13 점을13 강조하였고 이어13 이러한13 선언이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추구하고자13

했던13 미국과13 서방의13 지지를13 얻게13 됨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다소13 어

려움을13 겪게13 된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민주화13 혁명13 성공과13 대외적인13 압력에도13 불구하고 몬테

네그로의13 독립을13 향한13 움직임은13 계속13 지속되었다 특히13 몬테네그로는13 우선적

으로13 세르비아가13 주도하고13 있던13 연방으로부터의13 경제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갔는

데 그13 결과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의13 공식13 화폐가13 연방의13 공식화폐인13 2000 11 lsquo디나르 화(Dinar) rsquo 대신에13 독일의13 마르크화로13 지정되게13 된다 14 이어13 년13 2001 4

월에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양대13 세력 분리13 독립파와13 연방13 유지파 간13 ( )

총선13 결과13 근소한13 차이지만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승리함으로서13 독립13 추진에13 힘

을13 실어주게13 된다김철민( 2005 141)15 하지만13 총선13 직후 몬테네그로13 독립

추진에13 대한13 미국과13 의13 반응은13 EU ldquo이러한13 시도가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해칠13 수13 있다rdquo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보냈었고 마침내13 대표단이13 동년13 월13 몬 EU 4

테네그로를13 직접13 방문 몬테네그로13 독립13 반대에13 대한13 공식적인13 의견을13 분명

히13 하게13 된다 이러한13 국제13 사회의13 강력한13 반대에13 려13 몬테네그로13 정부는13

년13 월13 일13 이전에13 치르기로13 했던13 2001 7 13 lsquo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13 총선rsquo을13 철회한다는13 발표를13 해야만13 했다

년13 월13 세르비아13 총리이자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인13 정치13 구심점이었던13 2001 7

조란13 쥔쥐치 는13 (Zoran Žindjić) ldquo몬테네그로의13 독립추진이13 세르비아니즘을13 자

였고 총13 파업이13 유고13 전역에서13 시작되게13 되었다 계속된13 시위와13 민주화13 요구13 속에13

가장13 큰13 후원자였던13 러시아로부터도13 지원13 약속을13 받아13 내지13 못하자 로쉐비치는13 국

영13 에서13 자신의13 패배를13 인정하고13 정권13 이양을13 선언하게13 된다 선언내용은13 라디오TV lsquo

텔레비전13 세르비아 사이트인13 참조 뒤13 이어13 월13 일 민주13 인rsquo httpwwwrtscoyu 10 7

사인13 코슈투니차가13 마침내13 국회13 의사당에서13 대통령13 취임식을13 갖고13 정권13 인수13 작업에13

착수하기13 시작하였고 곧13 이어13 유럽연합은13 년13 코소보13 전쟁이후로13 발효된13 유고연 1999

방에13 대한13 석유금수조치를13 해제해13 주고 몬테네그로13 문제를13 비롯한13 모든13 중요13 현안들

에13 있어13 새롭게13 등장한13 민주13 정권에13 대한13 지지를13 분명히13 전달하게13 된다

14 년13 월13 이후13 공식화폐는13 유로 화로13 변경2002 1 (Euro)

15 총선13 결과 분리13 독립파지지13 세력13 를 연방13 유지파13 지지13 세력은13 를13 차지 421 407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극해13 코소보13 사태와13 같은13 심각한13 위험을13 초래13 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점을13 경고하였다 동시에13 ldquo몬테네그로가13 연방13 내에13 계속13 존속하기를13 강력히13 희망한다rdquo는13 메시지와13 함께 ldquo국방 외교 통화13 등에13 대한13 권한만을13 연방정부에13 이양하고13

나머지13 조세와13 여러13 권한들에13 대해선13 몬테네그로13 정부가13 독자적으로13 주도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합을13 제안하게13 된다16 하지만13 이러한13 제안이13

발표된13 직후13 몬테네그로13 정부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여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다

시13 실시할13 것임을13 발표하는13 것으로 세르비아13 정부의13 제안을13 거절하였다

여러13 차례의13 회담과13 논의13 끝에13 년13 월13 연방13 정부13 및13 세르비아와13 몬테2003 3

네그로13 정부간13 합의문이13 발표되었는데 주13 내용은13 년13 동안13 세르비아와13 몬테 3

네그로가13 연합한13 연방을13 계속13 존속할13 것과13 이후13 양13 공화국이13 몬테네그로13 독

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실시할13 것13 그리고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공화국(SRJ)rsquo에서13 lsquo세르비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rsquo으로13 변경할13 것13 등이었다 이

어13 이13 합의문에13 따라13 하나의13 국가연합13 체제라는13 틀13 속에서13 국방과13 외교 무

역 재정 인권부문13 등13 개13 내각은13 연방13 정부내13 합동행정기구에 나머지13 모든13 5

권한은13 각13 공화국이13 독자적으로13 운영하는13 느슨한13 연합13 국가13 탄생이13 결정되었

다 또한13 그13 내용에13 따라13 국제적으로는13 등13 국제기구에서13 하나의13 의석을13 UN

갖는13 단일13 국가로13 활동하며 현행13 조약과13 협정에13 대한13 과거13 유고연방의13 권리

와13 책임을13 승계한다는13 원칙이13 수립되게13 된다 그리고13 마침내13 년13 월13 세 2003 4

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13 의회에서13 양13 국13 지도부들간의13 몬테네그로13 연방13

존속13 안에13 대한13 협정이13 승인되게13 되면서13 현재에13 이르고13 있다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의13 향후13 전망과13 그13 의미13 2

새로운13 연합13 국가를13 구성하는13 데13 양13 국이13 합의한13 직후 년13 월13 세르 2003 3

비아-몬테네그로13 의회는13 몬테네그로13 출신의13 법률가13 스베토자르13 마로비치

를13 전체13 의석13 석13 중 찬성13 반대13 기권13 표로13 (Svetozar Marović) 126 65 47 14

16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13 대표적13 신문인13 보르바 참조- lsquo (Borba)rsquo httpwwwborbacoyu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제를13 구축해13 나가고13 있다 반면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이 2003 5

전13 로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의13 측근이자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강력히13 주장하였

던13 필립13 부야노비치 전13 총리가13 승리를13 거둠으로써 현재13 몬(Filip Vujanović)

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정국은13 매우13 혼미한13 상태로13 진행되고13 있다

연합13 국가를13 계속13 유지해13 나가려는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노력들을13 뿌리치고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으로부터13 벗어나13 새로이13 독립13 국가를13 구성해13 나가려는13 몬

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는13 향후13 다소13 난항을13 겪을13 것으로13 예상된다 그러한13 분

석을13 내리는13 배경에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13 그리고13 발칸반도를13 둘러싼13 다

음과13 같은13 장애요소들이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기13 때문이다 몬테

네그로의13 향후13 독립문제는13 아래13 요소들의13 향배에13 따라13 결정되어질13 것으로13 보

인다

우선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는13 가장13 큰13 장애13 요소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독립

을13 향한13 단합된13 의지를13 어느13 정도까지13 그리고13 어디까지13 보여줄13 수13 있을13 것인

가 라는13 문제이다 몬테네그로는13 지난13 년13 월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몬테네 2003 5

그로의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부야노비치13 전13 총리가13 대통령에13 당선되었지만 그13

전개13 과정이13 그리13 매끄럽지13 못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당시13 대통령13 선거13 투표율

은13 전체13 유권자의13 득표율은13 에13 불과하였는데 그13 동안13 부야노비치13 48 65

후보는13 년13 월과13 년13 월에13 치러진13 두13 차례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최다13 2002 12 2003 2

득표율을13 기록하긴13 했으나 두13 차례13 선거13 모두13 헌법상13 최저13 투표율인13 를13 50

밑돌아13 무효처리가13 되었었다 따라서13 여러13 논란13 속에13 치러진13 년13 월13 선 2003 5

거에선13 쥬카노비치의13 주도13 아래13 조정된13 새로운13 선거법13 즉 최저13 유효13 투표율13

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선거가13 치러지게13 되었다 이러한13 점은13 지난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이13 2001 4

주요13 이슈로13 떠13 오른13 총선을13 통해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근소한13 차로13 승리하긴13

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으로13 국명이13 바뀐13 후13 몬테네그로13 최초13 대통령이13

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이다 실제 몬테네그로13 헌법적13 지위변화에13 관한13 국민투표가13 실행되기13 위해

선13 전체13 몬테네그로13 의원13 명13 가운데13 인13 명의13 동의가13 필요하지만77 23 52

년13 월13 선거에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석을13 얻는13 데13 그친13 실정이다 더불어13 2001 4 44

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산업13 기지와13 생산능력이13 취약해13 주력13 산업으로13 관광업을13 육성시키고13 있는13 몬

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비아인이라는13 점(httpwwwvisit- 그리고13 세르비아로부터13 montenegrocom)

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세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해13 나가려는13 데13 있어13 세르비아의13 강력한13

17 년13 인구조사에13 따르자면 몬테네그로13 총13 인구13 비율은13 몬테네그로인이13 약13 1991 617(

명 세르비아인이13 약13 명 무슬림이13 약13 명 알바니381000 ) 93( 57000 ) 145( 89000 )

아인이13 약13 명 기타13 인구가13 약13 명 를13 차지한다 이외에도13 세65( 40000 ) 8( 49000 )

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년13 기준으로13 몬테네그로13 자체13 방위13 병력이13 여13 명에13 불과한13 상황에서13 만3000

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세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13 분할과13 민족간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휘말릴13 가능성이13 높

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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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13 개요13 httpwwwmontenetorgglance

라디오 텔레비전13 세르비아 국영13 방송국13 lsquo rsquo httpwwwrtscoyu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13 사이트13 UN httpwwwunmikonlineorg

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15: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39

가를13 위한13 토대를13 구축할13 수13 있게13 되었다 베를린13 조약의13 결과13 몬테네그로의13

면적은13 과거보다13 배13 더13 확장되었고 오랜13 숙원이던13 2 (4400 9475 ) rarr

바르나 울찐13 등13 해안지대를13 확보할13 수13 있게13 된다 이때13 이후13 수도인13 쩨티녜

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는13 경제 사회적13 발전을13 이루게13 되어 년에13 들어 1899

와서는13 개의13 공립학교와13 개의13 사립학교가13 설립13 되게13 되었다 또한13 러시75 26

아의13 지도13 아래13 근대식13 군대가13 창설되었고 오스트리아의13 원조13 아래13 쩨티녜

에서13 코토르까지13 최초의13 근대식13 개념의13 도로와13 철도가13 설립되게13 된다

니콜라13 하의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관계는13 같(Komatina 1999 131)

은13 남슬라브족으로서13 선린관계를13 유지하고13 있었다 하지만13 세르비아13 정국13 주

도권을13 둘러싼13 오브레노비치 왕조와13 페트로비치 왕조(Obrenović) (Petrović)

간의13 계속된13 유혈13 사태는13 곧13 바로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간의13 불협화음을13 초

래하게13 하였다10 특히13 세르비아를13 중심으로13 몬테네그로13 및13 발칸13 유럽내13 남

슬라브족13 국가들을13 통합해13 나가겠다는13 취지13 아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를13 강

력히13 추진하던13 란13 오브레노비치 시기13 이(Milan Obrenović 1868~1889)

후로13 양국은13 다소13 불편한13 관계가13 수립되었고 년13 마침내13 몬테네그로는13 1910

니콜라왕을13 중심으로13 하는13 독립13 군주국가임을13 선포하게13 되었다(Komatina

1999 37-38)11

10 이러한13 불협화음의13 또13 다른13 배경에는13 니콜라13 왕이13 세르비아13 오브레노비치13 왕조의13 정

적인13 카라조르제비치13 가문의13 페테르13 카라조르제비치(Peter I Karađorđević 1903~

까지13 세르비아13 왕위를13 엮임 를13 자신의13 장녀13 조르카 와13 결혼시켰던13 데서도13 1918 ) (Zorka)

그13 요인을13 찾을13 수13 있다

11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13 움직임13 속에13 치러진13 당시13 취임식에서13 니콜라왕은13 몬테네그로13

민족의13 독자성과13 독립된13 민족13 정체성을13 그들의13 중세13 역사13 속에서13 찾을13 것을13 천명하였

다 우리는13 과거13 제타13 왕국의13 보이슬라브 미하일로13 그리고13 보딘의13 자손이다 시간은13 ldquo

단지13 이13 땅위에13 존재하였던13 것을13 파괴할13 수13 있었지만 이13 안에13 꿈틀대고13 있는13 자유에13

대한13 의지와13 충성스러운13 산악인들의13 뜨거운13 심장을13 파괴할13 수는13 없었다 우리는13 오랜13

역사의13 토대13 위에13 왕국13 건설의13 부활을13 시작하였고 오늘날13 이13 왕국은13 여기13 천상의13 햇

빛아래13 반짝이는13 우리의13 고대왕국에13 그13 뿌리를13 두고13 있다rdquo httpwwwmontenetorg

history

140 김철민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IV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주요13 배경과13 진행과정13 1

세기13 초13 몬테네그로는13 비록13 니콜라왕의13 독립13 왕국13 선포에도13 불구하고20

복잡한13 발칸유럽의13 정세와13 더불어13 매우13 혼돈의13 시기를13 맞이하고13 있었다 몬

테네그로는13 년과13 년에13 치른13 제 차13 발칸전쟁에서의13 승전에도13 불1912 1913 1 2

구하고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종결이후13 세르비아13 주도의13 최초13 남슬라브족13 1918 1

통합국가인13 lsquo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Kraljevina SHS)rsquo하로13 편입되는13 아픔을13 겪게13 된다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제 차13 세계대전이전까지13 세르 2

비아의13 직접적인13 지배13 하에13 놓이게13 되었지만 제 차13 세계대전에서13 티토를13 중 2

심으로13 한13 파르티잔13 세력이13 승리한13 이후 사회주의13 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하에

서13 개13 구성13 공화국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6 ( -헤르체고비나 세르비

아 몬테네그로13 그리고13 마케도니아13 공화국 중13 하나인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으 )

로13 새롭게13 등장할13 수13 있었다

년13 베를린13 장벽13 붕괴로13 상징되는13 사회주의13 체제의13 몰락이후13 유고슬라1989

비아13 연방의13 해체13 위기와13 더불어13 몬테네그로는13 매우13 불확실한13 위치에13 놓이게13

된다 특히13 년에13 있었던13 다당제13 선거가13 실시된13 이후13 사회주의13 유고슬라 1990

비아13 연방은13 해체의13 길로13 들어서고13 있었고 이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도13 자신의13

진로를13 결정해야만13 했다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의13 압력과13 불확실한13 국

제적13 상황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년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형성에13 1992

가담하게13 된다12 하지만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에13 가담한13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연방13 구성국이었던13 세르비아가13 중심이13 된13 유고내전슬로베니아13 내전과13 크로(

12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이13 해체되는13 과정13 속에서13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

아와13 함께13 새로운13 연방을13 구성해13 나갈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단행하게13 된다 전체13 선

거인단의13 가13 참여하였던13 이13 선거에서13 찬성13 반대13 라는13 압도적인13 표차로13 66 96 3

몬테네그로13 국민은13 세르비아와13 운명을13 같이13 할13 것을13 결정짓게13 된다(Komatina 1999

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1

아티아13 내전과13 보스니아13 내전13 그리고13 이후13 년13 월에13 일어난13 와) 1999 3 NATO

의13 코소보13 전쟁13 등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미국과13 서유럽13 국가들로부터13

경제적 정치적13 그리고13 외교적13 고립을13 강요받아야만13 했다 결과적으로13 서구

로부터의13 고립은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13 형성과13 그13 유지에13

대한13 의구심을13 증폭시켰고 이러한13 국내13 분위기13 속에서13 년13 월13 몬테네 1999 8

그로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선출된13 로13 쥬카노비치 대통(Milo Đukanović)

령과13 그13 수뇌부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세르비아니즘의13 희생자임을13 상기시키며

독립을13 위한13 실질적인13 논의에13 들어가게13 된다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당시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13 권력자였던13 슬로보단13

로쉐비치 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에13 반발하였던13 몬테네(Slobodan Milošević)

그로13 대통령13 로13 쥬카노비치를13 중심으로13 제기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쥬

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세르비아13 정부에게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rsquo이13 아닌13 lsquo몬테네그로-세르비아13 연합13 국가rsquo라는13 명칭으로13 변경할13 것과13 현행13 연방13 헌법을13 폐지할13 것 그리고13 연방13 정부13 협의13 체제를13 각13 공화국간13 각료간13 협의체제

로13 전환13 할13 것13 등13 실질적인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방13 정부구성을13 제안하였다 이

후13 몬테네그로의13 요구는13 세르비아와의13 느슨한13 연방형태13 유지를13 전제로13 한13 독

자군대13 편성권과13 독자적13 외교권13 그리고13 독자13 통화권13 발행13 등으로13 확대되게13

된다

년13 월에13 들어와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연방정부에13 본격적으로13 연방13 2000 7

분리13 구상을13 제안하였고 몬테네그로가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존재를13 더13 이

상13 인정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점과13 그해13 월에13 치러질13 연방13 선거에13 불참할13 것13 9

그리고13 몬테네그로의13 향후13 국가13 목표를13 와13 에13 가입하는13 것을13 주요13 EU NATO

골자로13 하겠다는13 등의13 성명서를13 발표하였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그늘로부터13

벗어나13 독립을13 이루려던13 몬테네그로의13 의도는13 년13 월13 세르비아에서13 반2000 10

로쉐비치13 민주화13 혁명이13 일어나 민주인사인13 보이슬라브13 코슈투니짜( ) 反연방13 대통령이13 등장하게13 되자13 난관에13 봉착하게13 된다(Vojslav Koštunica) 13

13 년13 월13 일13 치러진13 유고연방의13 대선과13 총선13 투표에13 대해 선거13 위원회가13 발표2000 9 24

한13 결과와는13 달리 세르비아13 민주야당 의13 코슈투니차 (DOS) (Kos 후보13 진영에선13 tunica)

자체13 집계13 결과13 결선13 투표13 없이13 차13 투표에서13 로쉐비치를13 이겼다고13 선언하게13 된다1

이어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민주화를13 요구하는13 시위대의13 물결이13 베오그라드에13 집결하

142 김철민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취임한13 코슈투니짜13 대통령은13 ldquo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는13 하나의13 운명13 공동체이며13 더욱13 더13 강력한13 통합이13 필요하

다rdquo는13 점을13 강조하였고 이어13 이러한13 선언이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추구하고자13

했던13 미국과13 서방의13 지지를13 얻게13 됨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다소13 어

려움을13 겪게13 된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민주화13 혁명13 성공과13 대외적인13 압력에도13 불구하고 몬테

네그로의13 독립을13 향한13 움직임은13 계속13 지속되었다 특히13 몬테네그로는13 우선적

으로13 세르비아가13 주도하고13 있던13 연방으로부터의13 경제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갔는

데 그13 결과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의13 공식13 화폐가13 연방의13 공식화폐인13 2000 11 lsquo디나르 화(Dinar) rsquo 대신에13 독일의13 마르크화로13 지정되게13 된다 14 이어13 년13 2001 4

월에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양대13 세력 분리13 독립파와13 연방13 유지파 간13 ( )

총선13 결과13 근소한13 차이지만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승리함으로서13 독립13 추진에13 힘

을13 실어주게13 된다김철민( 2005 141)15 하지만13 총선13 직후 몬테네그로13 독립

추진에13 대한13 미국과13 의13 반응은13 EU ldquo이러한13 시도가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해칠13 수13 있다rdquo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보냈었고 마침내13 대표단이13 동년13 월13 몬 EU 4

테네그로를13 직접13 방문 몬테네그로13 독립13 반대에13 대한13 공식적인13 의견을13 분명

히13 하게13 된다 이러한13 국제13 사회의13 강력한13 반대에13 려13 몬테네그로13 정부는13

년13 월13 일13 이전에13 치르기로13 했던13 2001 7 13 lsquo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13 총선rsquo을13 철회한다는13 발표를13 해야만13 했다

년13 월13 세르비아13 총리이자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인13 정치13 구심점이었던13 2001 7

조란13 쥔쥐치 는13 (Zoran Žindjić) ldquo몬테네그로의13 독립추진이13 세르비아니즘을13 자

였고 총13 파업이13 유고13 전역에서13 시작되게13 되었다 계속된13 시위와13 민주화13 요구13 속에13

가장13 큰13 후원자였던13 러시아로부터도13 지원13 약속을13 받아13 내지13 못하자 로쉐비치는13 국

영13 에서13 자신의13 패배를13 인정하고13 정권13 이양을13 선언하게13 된다 선언내용은13 라디오TV lsquo

텔레비전13 세르비아 사이트인13 참조 뒤13 이어13 월13 일 민주13 인rsquo httpwwwrtscoyu 10 7

사인13 코슈투니차가13 마침내13 국회13 의사당에서13 대통령13 취임식을13 갖고13 정권13 인수13 작업에13

착수하기13 시작하였고 곧13 이어13 유럽연합은13 년13 코소보13 전쟁이후로13 발효된13 유고연 1999

방에13 대한13 석유금수조치를13 해제해13 주고 몬테네그로13 문제를13 비롯한13 모든13 중요13 현안들

에13 있어13 새롭게13 등장한13 민주13 정권에13 대한13 지지를13 분명히13 전달하게13 된다

14 년13 월13 이후13 공식화폐는13 유로 화로13 변경2002 1 (Euro)

15 총선13 결과 분리13 독립파지지13 세력13 를 연방13 유지파13 지지13 세력은13 를13 차지 421 407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극해13 코소보13 사태와13 같은13 심각한13 위험을13 초래13 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점을13 경고하였다 동시에13 ldquo몬테네그로가13 연방13 내에13 계속13 존속하기를13 강력히13 희망한다rdquo는13 메시지와13 함께 ldquo국방 외교 통화13 등에13 대한13 권한만을13 연방정부에13 이양하고13

나머지13 조세와13 여러13 권한들에13 대해선13 몬테네그로13 정부가13 독자적으로13 주도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합을13 제안하게13 된다16 하지만13 이러한13 제안이13

발표된13 직후13 몬테네그로13 정부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여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다

시13 실시할13 것임을13 발표하는13 것으로 세르비아13 정부의13 제안을13 거절하였다

여러13 차례의13 회담과13 논의13 끝에13 년13 월13 연방13 정부13 및13 세르비아와13 몬테2003 3

네그로13 정부간13 합의문이13 발표되었는데 주13 내용은13 년13 동안13 세르비아와13 몬테 3

네그로가13 연합한13 연방을13 계속13 존속할13 것과13 이후13 양13 공화국이13 몬테네그로13 독

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실시할13 것13 그리고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공화국(SRJ)rsquo에서13 lsquo세르비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rsquo으로13 변경할13 것13 등이었다 이

어13 이13 합의문에13 따라13 하나의13 국가연합13 체제라는13 틀13 속에서13 국방과13 외교 무

역 재정 인권부문13 등13 개13 내각은13 연방13 정부내13 합동행정기구에 나머지13 모든13 5

권한은13 각13 공화국이13 독자적으로13 운영하는13 느슨한13 연합13 국가13 탄생이13 결정되었

다 또한13 그13 내용에13 따라13 국제적으로는13 등13 국제기구에서13 하나의13 의석을13 UN

갖는13 단일13 국가로13 활동하며 현행13 조약과13 협정에13 대한13 과거13 유고연방의13 권리

와13 책임을13 승계한다는13 원칙이13 수립되게13 된다 그리고13 마침내13 년13 월13 세 2003 4

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13 의회에서13 양13 국13 지도부들간의13 몬테네그로13 연방13

존속13 안에13 대한13 협정이13 승인되게13 되면서13 현재에13 이르고13 있다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의13 향후13 전망과13 그13 의미13 2

새로운13 연합13 국가를13 구성하는13 데13 양13 국이13 합의한13 직후 년13 월13 세르 2003 3

비아-몬테네그로13 의회는13 몬테네그로13 출신의13 법률가13 스베토자르13 마로비치

를13 전체13 의석13 석13 중 찬성13 반대13 기권13 표로13 (Svetozar Marović) 126 65 47 14

16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13 대표적13 신문인13 보르바 참조- lsquo (Borba)rsquo httpwwwborbacoyu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제를13 구축해13 나가고13 있다 반면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이 2003 5

전13 로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의13 측근이자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강력히13 주장하였

던13 필립13 부야노비치 전13 총리가13 승리를13 거둠으로써 현재13 몬(Filip Vujanović)

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정국은13 매우13 혼미한13 상태로13 진행되고13 있다

연합13 국가를13 계속13 유지해13 나가려는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노력들을13 뿌리치고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으로부터13 벗어나13 새로이13 독립13 국가를13 구성해13 나가려는13 몬

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는13 향후13 다소13 난항을13 겪을13 것으로13 예상된다 그러한13 분

석을13 내리는13 배경에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13 그리고13 발칸반도를13 둘러싼13 다

음과13 같은13 장애요소들이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기13 때문이다 몬테

네그로의13 향후13 독립문제는13 아래13 요소들의13 향배에13 따라13 결정되어질13 것으로13 보

인다

우선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는13 가장13 큰13 장애13 요소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독립

을13 향한13 단합된13 의지를13 어느13 정도까지13 그리고13 어디까지13 보여줄13 수13 있을13 것인

가 라는13 문제이다 몬테네그로는13 지난13 년13 월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몬테네 2003 5

그로의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부야노비치13 전13 총리가13 대통령에13 당선되었지만 그13

전개13 과정이13 그리13 매끄럽지13 못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당시13 대통령13 선거13 투표율

은13 전체13 유권자의13 득표율은13 에13 불과하였는데 그13 동안13 부야노비치13 48 65

후보는13 년13 월과13 년13 월에13 치러진13 두13 차례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최다13 2002 12 2003 2

득표율을13 기록하긴13 했으나 두13 차례13 선거13 모두13 헌법상13 최저13 투표율인13 를13 50

밑돌아13 무효처리가13 되었었다 따라서13 여러13 논란13 속에13 치러진13 년13 월13 선 2003 5

거에선13 쥬카노비치의13 주도13 아래13 조정된13 새로운13 선거법13 즉 최저13 유효13 투표율13

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선거가13 치러지게13 되었다 이러한13 점은13 지난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이13 2001 4

주요13 이슈로13 떠13 오른13 총선을13 통해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근소한13 차로13 승리하긴13

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으로13 국명이13 바뀐13 후13 몬테네그로13 최초13 대통령이13

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이다 실제 몬테네그로13 헌법적13 지위변화에13 관한13 국민투표가13 실행되기13 위해

선13 전체13 몬테네그로13 의원13 명13 가운데13 인13 명의13 동의가13 필요하지만77 23 52

년13 월13 선거에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석을13 얻는13 데13 그친13 실정이다 더불어13 2001 4 44

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산업13 기지와13 생산능력이13 취약해13 주력13 산업으로13 관광업을13 육성시키고13 있는13 몬

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비아인이라는13 점(httpwwwvisit- 그리고13 세르비아로부터13 montenegrocom)

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세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해13 나가려는13 데13 있어13 세르비아의13 강력한13

17 년13 인구조사에13 따르자면 몬테네그로13 총13 인구13 비율은13 몬테네그로인이13 약13 1991 617(

명 세르비아인이13 약13 명 무슬림이13 약13 명 알바니381000 ) 93( 57000 ) 145( 89000 )

아인이13 약13 명 기타13 인구가13 약13 명 를13 차지한다 이외에도13 세65( 40000 ) 8( 49000 )

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년13 기준으로13 몬테네그로13 자체13 방위13 병력이13 여13 명에13 불과한13 상황에서13 만3000

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세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13 분할과13 민족간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휘말릴13 가능성이13 높

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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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텔레비전13 세르비아 국영13 방송국13 lsquo rsquo httpwwwrtscoyu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13 사이트13 UN httpwwwunmikonlineorg

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16: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140 김철민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배경과13 향후13 전망IV

몬테네그로13 독립13 움직임의13 주요13 배경과13 진행과정13 1

세기13 초13 몬테네그로는13 비록13 니콜라왕의13 독립13 왕국13 선포에도13 불구하고20

복잡한13 발칸유럽의13 정세와13 더불어13 매우13 혼돈의13 시기를13 맞이하고13 있었다 몬

테네그로는13 년과13 년에13 치른13 제 차13 발칸전쟁에서의13 승전에도13 불1912 1913 1 2

구하고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종결이후13 세르비아13 주도의13 최초13 남슬라브족13 1918 1

통합국가인13 lsquo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Kraljevina SHS)rsquo하로13 편입되는13 아픔을13 겪게13 된다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제 차13 세계대전이전까지13 세르 2

비아의13 직접적인13 지배13 하에13 놓이게13 되었지만 제 차13 세계대전에서13 티토를13 중 2

심으로13 한13 파르티잔13 세력이13 승리한13 이후 사회주의13 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하에

서13 개13 구성13 공화국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6 ( -헤르체고비나 세르비

아 몬테네그로13 그리고13 마케도니아13 공화국 중13 하나인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으 )

로13 새롭게13 등장할13 수13 있었다

년13 베를린13 장벽13 붕괴로13 상징되는13 사회주의13 체제의13 몰락이후13 유고슬라1989

비아13 연방의13 해체13 위기와13 더불어13 몬테네그로는13 매우13 불확실한13 위치에13 놓이게13

된다 특히13 년에13 있었던13 다당제13 선거가13 실시된13 이후13 사회주의13 유고슬라 1990

비아13 연방은13 해체의13 길로13 들어서고13 있었고 이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도13 자신의13

진로를13 결정해야만13 했다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의13 압력과13 불확실한13 국

제적13 상황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년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형성에13 1992

가담하게13 된다12 하지만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에13 가담한13 이후13 몬테네그로는13

연방13 구성국이었던13 세르비아가13 중심이13 된13 유고내전슬로베니아13 내전과13 크로(

12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이13 해체되는13 과정13 속에서13 당시13 몬테네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

아와13 함께13 새로운13 연방을13 구성해13 나갈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단행하게13 된다 전체13 선

거인단의13 가13 참여하였던13 이13 선거에서13 찬성13 반대13 라는13 압도적인13 표차로13 66 96 3

몬테네그로13 국민은13 세르비아와13 운명을13 같이13 할13 것을13 결정짓게13 된다(Komatina 1999

18)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1

아티아13 내전과13 보스니아13 내전13 그리고13 이후13 년13 월에13 일어난13 와) 1999 3 NATO

의13 코소보13 전쟁13 등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미국과13 서유럽13 국가들로부터13

경제적 정치적13 그리고13 외교적13 고립을13 강요받아야만13 했다 결과적으로13 서구

로부터의13 고립은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13 형성과13 그13 유지에13

대한13 의구심을13 증폭시켰고 이러한13 국내13 분위기13 속에서13 년13 월13 몬테네 1999 8

그로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선출된13 로13 쥬카노비치 대통(Milo Đukanović)

령과13 그13 수뇌부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세르비아니즘의13 희생자임을13 상기시키며

독립을13 위한13 실질적인13 논의에13 들어가게13 된다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당시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13 권력자였던13 슬로보단13

로쉐비치 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에13 반발하였던13 몬테네(Slobodan Milošević)

그로13 대통령13 로13 쥬카노비치를13 중심으로13 제기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쥬

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세르비아13 정부에게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rsquo이13 아닌13 lsquo몬테네그로-세르비아13 연합13 국가rsquo라는13 명칭으로13 변경할13 것과13 현행13 연방13 헌법을13 폐지할13 것 그리고13 연방13 정부13 협의13 체제를13 각13 공화국간13 각료간13 협의체제

로13 전환13 할13 것13 등13 실질적인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방13 정부구성을13 제안하였다 이

후13 몬테네그로의13 요구는13 세르비아와의13 느슨한13 연방형태13 유지를13 전제로13 한13 독

자군대13 편성권과13 독자적13 외교권13 그리고13 독자13 통화권13 발행13 등으로13 확대되게13

된다

년13 월에13 들어와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연방정부에13 본격적으로13 연방13 2000 7

분리13 구상을13 제안하였고 몬테네그로가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존재를13 더13 이

상13 인정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점과13 그해13 월에13 치러질13 연방13 선거에13 불참할13 것13 9

그리고13 몬테네그로의13 향후13 국가13 목표를13 와13 에13 가입하는13 것을13 주요13 EU NATO

골자로13 하겠다는13 등의13 성명서를13 발표하였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그늘로부터13

벗어나13 독립을13 이루려던13 몬테네그로의13 의도는13 년13 월13 세르비아에서13 반2000 10

로쉐비치13 민주화13 혁명이13 일어나 민주인사인13 보이슬라브13 코슈투니짜( ) 反연방13 대통령이13 등장하게13 되자13 난관에13 봉착하게13 된다(Vojslav Koštunica) 13

13 년13 월13 일13 치러진13 유고연방의13 대선과13 총선13 투표에13 대해 선거13 위원회가13 발표2000 9 24

한13 결과와는13 달리 세르비아13 민주야당 의13 코슈투니차 (DOS) (Kos 후보13 진영에선13 tunica)

자체13 집계13 결과13 결선13 투표13 없이13 차13 투표에서13 로쉐비치를13 이겼다고13 선언하게13 된다1

이어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민주화를13 요구하는13 시위대의13 물결이13 베오그라드에13 집결하

142 김철민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취임한13 코슈투니짜13 대통령은13 ldquo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는13 하나의13 운명13 공동체이며13 더욱13 더13 강력한13 통합이13 필요하

다rdquo는13 점을13 강조하였고 이어13 이러한13 선언이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추구하고자13

했던13 미국과13 서방의13 지지를13 얻게13 됨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다소13 어

려움을13 겪게13 된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민주화13 혁명13 성공과13 대외적인13 압력에도13 불구하고 몬테

네그로의13 독립을13 향한13 움직임은13 계속13 지속되었다 특히13 몬테네그로는13 우선적

으로13 세르비아가13 주도하고13 있던13 연방으로부터의13 경제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갔는

데 그13 결과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의13 공식13 화폐가13 연방의13 공식화폐인13 2000 11 lsquo디나르 화(Dinar) rsquo 대신에13 독일의13 마르크화로13 지정되게13 된다 14 이어13 년13 2001 4

월에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양대13 세력 분리13 독립파와13 연방13 유지파 간13 ( )

총선13 결과13 근소한13 차이지만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승리함으로서13 독립13 추진에13 힘

을13 실어주게13 된다김철민( 2005 141)15 하지만13 총선13 직후 몬테네그로13 독립

추진에13 대한13 미국과13 의13 반응은13 EU ldquo이러한13 시도가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해칠13 수13 있다rdquo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보냈었고 마침내13 대표단이13 동년13 월13 몬 EU 4

테네그로를13 직접13 방문 몬테네그로13 독립13 반대에13 대한13 공식적인13 의견을13 분명

히13 하게13 된다 이러한13 국제13 사회의13 강력한13 반대에13 려13 몬테네그로13 정부는13

년13 월13 일13 이전에13 치르기로13 했던13 2001 7 13 lsquo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13 총선rsquo을13 철회한다는13 발표를13 해야만13 했다

년13 월13 세르비아13 총리이자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인13 정치13 구심점이었던13 2001 7

조란13 쥔쥐치 는13 (Zoran Žindjić) ldquo몬테네그로의13 독립추진이13 세르비아니즘을13 자

였고 총13 파업이13 유고13 전역에서13 시작되게13 되었다 계속된13 시위와13 민주화13 요구13 속에13

가장13 큰13 후원자였던13 러시아로부터도13 지원13 약속을13 받아13 내지13 못하자 로쉐비치는13 국

영13 에서13 자신의13 패배를13 인정하고13 정권13 이양을13 선언하게13 된다 선언내용은13 라디오TV lsquo

텔레비전13 세르비아 사이트인13 참조 뒤13 이어13 월13 일 민주13 인rsquo httpwwwrtscoyu 10 7

사인13 코슈투니차가13 마침내13 국회13 의사당에서13 대통령13 취임식을13 갖고13 정권13 인수13 작업에13

착수하기13 시작하였고 곧13 이어13 유럽연합은13 년13 코소보13 전쟁이후로13 발효된13 유고연 1999

방에13 대한13 석유금수조치를13 해제해13 주고 몬테네그로13 문제를13 비롯한13 모든13 중요13 현안들

에13 있어13 새롭게13 등장한13 민주13 정권에13 대한13 지지를13 분명히13 전달하게13 된다

14 년13 월13 이후13 공식화폐는13 유로 화로13 변경2002 1 (Euro)

15 총선13 결과 분리13 독립파지지13 세력13 를 연방13 유지파13 지지13 세력은13 를13 차지 421 407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극해13 코소보13 사태와13 같은13 심각한13 위험을13 초래13 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점을13 경고하였다 동시에13 ldquo몬테네그로가13 연방13 내에13 계속13 존속하기를13 강력히13 희망한다rdquo는13 메시지와13 함께 ldquo국방 외교 통화13 등에13 대한13 권한만을13 연방정부에13 이양하고13

나머지13 조세와13 여러13 권한들에13 대해선13 몬테네그로13 정부가13 독자적으로13 주도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합을13 제안하게13 된다16 하지만13 이러한13 제안이13

발표된13 직후13 몬테네그로13 정부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여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다

시13 실시할13 것임을13 발표하는13 것으로 세르비아13 정부의13 제안을13 거절하였다

여러13 차례의13 회담과13 논의13 끝에13 년13 월13 연방13 정부13 및13 세르비아와13 몬테2003 3

네그로13 정부간13 합의문이13 발표되었는데 주13 내용은13 년13 동안13 세르비아와13 몬테 3

네그로가13 연합한13 연방을13 계속13 존속할13 것과13 이후13 양13 공화국이13 몬테네그로13 독

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실시할13 것13 그리고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공화국(SRJ)rsquo에서13 lsquo세르비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rsquo으로13 변경할13 것13 등이었다 이

어13 이13 합의문에13 따라13 하나의13 국가연합13 체제라는13 틀13 속에서13 국방과13 외교 무

역 재정 인권부문13 등13 개13 내각은13 연방13 정부내13 합동행정기구에 나머지13 모든13 5

권한은13 각13 공화국이13 독자적으로13 운영하는13 느슨한13 연합13 국가13 탄생이13 결정되었

다 또한13 그13 내용에13 따라13 국제적으로는13 등13 국제기구에서13 하나의13 의석을13 UN

갖는13 단일13 국가로13 활동하며 현행13 조약과13 협정에13 대한13 과거13 유고연방의13 권리

와13 책임을13 승계한다는13 원칙이13 수립되게13 된다 그리고13 마침내13 년13 월13 세 2003 4

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13 의회에서13 양13 국13 지도부들간의13 몬테네그로13 연방13

존속13 안에13 대한13 협정이13 승인되게13 되면서13 현재에13 이르고13 있다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의13 향후13 전망과13 그13 의미13 2

새로운13 연합13 국가를13 구성하는13 데13 양13 국이13 합의한13 직후 년13 월13 세르 2003 3

비아-몬테네그로13 의회는13 몬테네그로13 출신의13 법률가13 스베토자르13 마로비치

를13 전체13 의석13 석13 중 찬성13 반대13 기권13 표로13 (Svetozar Marović) 126 65 47 14

16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13 대표적13 신문인13 보르바 참조- lsquo (Borba)rsquo httpwwwborbacoyu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제를13 구축해13 나가고13 있다 반면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이 2003 5

전13 로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의13 측근이자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강력히13 주장하였

던13 필립13 부야노비치 전13 총리가13 승리를13 거둠으로써 현재13 몬(Filip Vujanović)

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정국은13 매우13 혼미한13 상태로13 진행되고13 있다

연합13 국가를13 계속13 유지해13 나가려는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노력들을13 뿌리치고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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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는13 향후13 다소13 난항을13 겪을13 것으로13 예상된다 그러한13 분

석을13 내리는13 배경에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13 그리고13 발칸반도를13 둘러싼13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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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로의13 향후13 독립문제는13 아래13 요소들의13 향배에13 따라13 결정되어질13 것으로13 보

인다

우선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는13 가장13 큰13 장애13 요소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독립

을13 향한13 단합된13 의지를13 어느13 정도까지13 그리고13 어디까지13 보여줄13 수13 있을13 것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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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의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부야노비치13 전13 총리가13 대통령에13 당선되었지만 그13

전개13 과정이13 그리13 매끄럽지13 못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당시13 대통령13 선거13 투표율

은13 전체13 유권자의13 득표율은13 에13 불과하였는데 그13 동안13 부야노비치13 48 65

후보는13 년13 월과13 년13 월에13 치러진13 두13 차례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최다13 2002 12 2003 2

득표율을13 기록하긴13 했으나 두13 차례13 선거13 모두13 헌법상13 최저13 투표율인13 를13 50

밑돌아13 무효처리가13 되었었다 따라서13 여러13 논란13 속에13 치러진13 년13 월13 선 2003 5

거에선13 쥬카노비치의13 주도13 아래13 조정된13 새로운13 선거법13 즉 최저13 유효13 투표율13

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선거가13 치러지게13 되었다 이러한13 점은13 지난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이13 2001 4

주요13 이슈로13 떠13 오른13 총선을13 통해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근소한13 차로13 승리하긴13

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으로13 국명이13 바뀐13 후13 몬테네그로13 최초13 대통령이13

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이다 실제 몬테네그로13 헌법적13 지위변화에13 관한13 국민투표가13 실행되기13 위해

선13 전체13 몬테네그로13 의원13 명13 가운데13 인13 명의13 동의가13 필요하지만77 23 52

년13 월13 선거에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석을13 얻는13 데13 그친13 실정이다 더불어13 2001 4 44

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산업13 기지와13 생산능력이13 취약해13 주력13 산업으로13 관광업을13 육성시키고13 있는13 몬

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비아인이라는13 점(httpwwwvisit- 그리고13 세르비아로부터13 montenegrocom)

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세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해13 나가려는13 데13 있어13 세르비아의13 강력한13

17 년13 인구조사에13 따르자면 몬테네그로13 총13 인구13 비율은13 몬테네그로인이13 약13 1991 617(

명 세르비아인이13 약13 명 무슬림이13 약13 명 알바니381000 ) 93( 57000 ) 145( 89000 )

아인이13 약13 명 기타13 인구가13 약13 명 를13 차지한다 이외에도13 세65( 40000 ) 8( 49000 )

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년13 기준으로13 몬테네그로13 자체13 방위13 병력이13 여13 명에13 불과한13 상황에서13 만3000

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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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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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13 하나의13 유럽 발칸13 httpsanhufsackr~balkan

세르비아 몬테네그로13 일간지 보르바13 - httpwwwborbacoyu

몬테네그로13 역사13 httpwwwmontenetorghistory

몬테네그로13 개요13 httpwwwmontenetorgglance

라디오 텔레비전13 세르비아 국영13 방송국13 lsquo rsquo httpwwwrtscoyu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13 사이트13 UN httpwwwunmikonlineorg

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17: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1

아티아13 내전과13 보스니아13 내전13 그리고13 이후13 년13 월에13 일어난13 와) 1999 3 NATO

의13 코소보13 전쟁13 등으로13 인해13 세르비아와13 함께13 미국과13 서유럽13 국가들로부터13

경제적 정치적13 그리고13 외교적13 고립을13 강요받아야만13 했다 결과적으로13 서구

로부터의13 고립은13 몬테네그로인들에게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13 형성과13 그13 유지에13

대한13 의구심을13 증폭시켰고 이러한13 국내13 분위기13 속에서13 년13 월13 몬테네 1999 8

그로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선출된13 로13 쥬카노비치 대통(Milo Đukanović)

령과13 그13 수뇌부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세르비아니즘의13 희생자임을13 상기시키며

독립을13 위한13 실질적인13 논의에13 들어가게13 된다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당시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13 권력자였던13 슬로보단13

로쉐비치 의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에13 반발하였던13 몬테네(Slobodan Milošević)

그로13 대통령13 로13 쥬카노비치를13 중심으로13 제기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우선13 쥬

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세르비아13 정부에게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rsquo이13 아닌13 lsquo몬테네그로-세르비아13 연합13 국가rsquo라는13 명칭으로13 변경할13 것과13 현행13 연방13 헌법을13 폐지할13 것 그리고13 연방13 정부13 협의13 체제를13 각13 공화국간13 각료간13 협의체제

로13 전환13 할13 것13 등13 실질적인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방13 정부구성을13 제안하였다 이

후13 몬테네그로의13 요구는13 세르비아와의13 느슨한13 연방형태13 유지를13 전제로13 한13 독

자군대13 편성권과13 독자적13 외교권13 그리고13 독자13 통화권13 발행13 등으로13 확대되게13

된다

년13 월에13 들어와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은13 연방정부에13 본격적으로13 연방13 2000 7

분리13 구상을13 제안하였고 몬테네그로가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존재를13 더13 이

상13 인정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점과13 그해13 월에13 치러질13 연방13 선거에13 불참할13 것13 9

그리고13 몬테네그로의13 향후13 국가13 목표를13 와13 에13 가입하는13 것을13 주요13 EU NATO

골자로13 하겠다는13 등의13 성명서를13 발표하였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그늘로부터13

벗어나13 독립을13 이루려던13 몬테네그로의13 의도는13 년13 월13 세르비아에서13 반2000 10

로쉐비치13 민주화13 혁명이13 일어나 민주인사인13 보이슬라브13 코슈투니짜( ) 反연방13 대통령이13 등장하게13 되자13 난관에13 봉착하게13 된다(Vojslav Koštunica) 13

13 년13 월13 일13 치러진13 유고연방의13 대선과13 총선13 투표에13 대해 선거13 위원회가13 발표2000 9 24

한13 결과와는13 달리 세르비아13 민주야당 의13 코슈투니차 (DOS) (Kos 후보13 진영에선13 tunica)

자체13 집계13 결과13 결선13 투표13 없이13 차13 투표에서13 로쉐비치를13 이겼다고13 선언하게13 된다1

이어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민주화를13 요구하는13 시위대의13 물결이13 베오그라드에13 집결하

142 김철민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취임한13 코슈투니짜13 대통령은13 ldquo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는13 하나의13 운명13 공동체이며13 더욱13 더13 강력한13 통합이13 필요하

다rdquo는13 점을13 강조하였고 이어13 이러한13 선언이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추구하고자13

했던13 미국과13 서방의13 지지를13 얻게13 됨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다소13 어

려움을13 겪게13 된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민주화13 혁명13 성공과13 대외적인13 압력에도13 불구하고 몬테

네그로의13 독립을13 향한13 움직임은13 계속13 지속되었다 특히13 몬테네그로는13 우선적

으로13 세르비아가13 주도하고13 있던13 연방으로부터의13 경제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갔는

데 그13 결과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의13 공식13 화폐가13 연방의13 공식화폐인13 2000 11 lsquo디나르 화(Dinar) rsquo 대신에13 독일의13 마르크화로13 지정되게13 된다 14 이어13 년13 2001 4

월에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양대13 세력 분리13 독립파와13 연방13 유지파 간13 ( )

총선13 결과13 근소한13 차이지만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승리함으로서13 독립13 추진에13 힘

을13 실어주게13 된다김철민( 2005 141)15 하지만13 총선13 직후 몬테네그로13 독립

추진에13 대한13 미국과13 의13 반응은13 EU ldquo이러한13 시도가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해칠13 수13 있다rdquo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보냈었고 마침내13 대표단이13 동년13 월13 몬 EU 4

테네그로를13 직접13 방문 몬테네그로13 독립13 반대에13 대한13 공식적인13 의견을13 분명

히13 하게13 된다 이러한13 국제13 사회의13 강력한13 반대에13 려13 몬테네그로13 정부는13

년13 월13 일13 이전에13 치르기로13 했던13 2001 7 13 lsquo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13 총선rsquo을13 철회한다는13 발표를13 해야만13 했다

년13 월13 세르비아13 총리이자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인13 정치13 구심점이었던13 2001 7

조란13 쥔쥐치 는13 (Zoran Žindjić) ldquo몬테네그로의13 독립추진이13 세르비아니즘을13 자

였고 총13 파업이13 유고13 전역에서13 시작되게13 되었다 계속된13 시위와13 민주화13 요구13 속에13

가장13 큰13 후원자였던13 러시아로부터도13 지원13 약속을13 받아13 내지13 못하자 로쉐비치는13 국

영13 에서13 자신의13 패배를13 인정하고13 정권13 이양을13 선언하게13 된다 선언내용은13 라디오TV lsquo

텔레비전13 세르비아 사이트인13 참조 뒤13 이어13 월13 일 민주13 인rsquo httpwwwrtscoyu 10 7

사인13 코슈투니차가13 마침내13 국회13 의사당에서13 대통령13 취임식을13 갖고13 정권13 인수13 작업에13

착수하기13 시작하였고 곧13 이어13 유럽연합은13 년13 코소보13 전쟁이후로13 발효된13 유고연 1999

방에13 대한13 석유금수조치를13 해제해13 주고 몬테네그로13 문제를13 비롯한13 모든13 중요13 현안들

에13 있어13 새롭게13 등장한13 민주13 정권에13 대한13 지지를13 분명히13 전달하게13 된다

14 년13 월13 이후13 공식화폐는13 유로 화로13 변경2002 1 (Euro)

15 총선13 결과 분리13 독립파지지13 세력13 를 연방13 유지파13 지지13 세력은13 를13 차지 421 407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극해13 코소보13 사태와13 같은13 심각한13 위험을13 초래13 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점을13 경고하였다 동시에13 ldquo몬테네그로가13 연방13 내에13 계속13 존속하기를13 강력히13 희망한다rdquo는13 메시지와13 함께 ldquo국방 외교 통화13 등에13 대한13 권한만을13 연방정부에13 이양하고13

나머지13 조세와13 여러13 권한들에13 대해선13 몬테네그로13 정부가13 독자적으로13 주도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합을13 제안하게13 된다16 하지만13 이러한13 제안이13

발표된13 직후13 몬테네그로13 정부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여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다

시13 실시할13 것임을13 발표하는13 것으로 세르비아13 정부의13 제안을13 거절하였다

여러13 차례의13 회담과13 논의13 끝에13 년13 월13 연방13 정부13 및13 세르비아와13 몬테2003 3

네그로13 정부간13 합의문이13 발표되었는데 주13 내용은13 년13 동안13 세르비아와13 몬테 3

네그로가13 연합한13 연방을13 계속13 존속할13 것과13 이후13 양13 공화국이13 몬테네그로13 독

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실시할13 것13 그리고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공화국(SRJ)rsquo에서13 lsquo세르비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rsquo으로13 변경할13 것13 등이었다 이

어13 이13 합의문에13 따라13 하나의13 국가연합13 체제라는13 틀13 속에서13 국방과13 외교 무

역 재정 인권부문13 등13 개13 내각은13 연방13 정부내13 합동행정기구에 나머지13 모든13 5

권한은13 각13 공화국이13 독자적으로13 운영하는13 느슨한13 연합13 국가13 탄생이13 결정되었

다 또한13 그13 내용에13 따라13 국제적으로는13 등13 국제기구에서13 하나의13 의석을13 UN

갖는13 단일13 국가로13 활동하며 현행13 조약과13 협정에13 대한13 과거13 유고연방의13 권리

와13 책임을13 승계한다는13 원칙이13 수립되게13 된다 그리고13 마침내13 년13 월13 세 2003 4

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13 의회에서13 양13 국13 지도부들간의13 몬테네그로13 연방13

존속13 안에13 대한13 협정이13 승인되게13 되면서13 현재에13 이르고13 있다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의13 향후13 전망과13 그13 의미13 2

새로운13 연합13 국가를13 구성하는13 데13 양13 국이13 합의한13 직후 년13 월13 세르 2003 3

비아-몬테네그로13 의회는13 몬테네그로13 출신의13 법률가13 스베토자르13 마로비치

를13 전체13 의석13 석13 중 찬성13 반대13 기권13 표로13 (Svetozar Marović) 126 65 47 14

16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13 대표적13 신문인13 보르바 참조- lsquo (Borba)rsquo httpwwwborbacoyu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제를13 구축해13 나가고13 있다 반면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이 2003 5

전13 로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의13 측근이자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강력히13 주장하였

던13 필립13 부야노비치 전13 총리가13 승리를13 거둠으로써 현재13 몬(Filip Vujanović)

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정국은13 매우13 혼미한13 상태로13 진행되고13 있다

연합13 국가를13 계속13 유지해13 나가려는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노력들을13 뿌리치고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으로부터13 벗어나13 새로이13 독립13 국가를13 구성해13 나가려는13 몬

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는13 향후13 다소13 난항을13 겪을13 것으로13 예상된다 그러한13 분

석을13 내리는13 배경에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13 그리고13 발칸반도를13 둘러싼13 다

음과13 같은13 장애요소들이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기13 때문이다 몬테

네그로의13 향후13 독립문제는13 아래13 요소들의13 향배에13 따라13 결정되어질13 것으로13 보

인다

우선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는13 가장13 큰13 장애13 요소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독립

을13 향한13 단합된13 의지를13 어느13 정도까지13 그리고13 어디까지13 보여줄13 수13 있을13 것인

가 라는13 문제이다 몬테네그로는13 지난13 년13 월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몬테네 2003 5

그로의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부야노비치13 전13 총리가13 대통령에13 당선되었지만 그13

전개13 과정이13 그리13 매끄럽지13 못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당시13 대통령13 선거13 투표율

은13 전체13 유권자의13 득표율은13 에13 불과하였는데 그13 동안13 부야노비치13 48 65

후보는13 년13 월과13 년13 월에13 치러진13 두13 차례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최다13 2002 12 2003 2

득표율을13 기록하긴13 했으나 두13 차례13 선거13 모두13 헌법상13 최저13 투표율인13 를13 50

밑돌아13 무효처리가13 되었었다 따라서13 여러13 논란13 속에13 치러진13 년13 월13 선 2003 5

거에선13 쥬카노비치의13 주도13 아래13 조정된13 새로운13 선거법13 즉 최저13 유효13 투표율13

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선거가13 치러지게13 되었다 이러한13 점은13 지난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이13 2001 4

주요13 이슈로13 떠13 오른13 총선을13 통해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근소한13 차로13 승리하긴13

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으로13 국명이13 바뀐13 후13 몬테네그로13 최초13 대통령이13

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이다 실제 몬테네그로13 헌법적13 지위변화에13 관한13 국민투표가13 실행되기13 위해

선13 전체13 몬테네그로13 의원13 명13 가운데13 인13 명의13 동의가13 필요하지만77 23 52

년13 월13 선거에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석을13 얻는13 데13 그친13 실정이다 더불어13 2001 4 44

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산업13 기지와13 생산능력이13 취약해13 주력13 산업으로13 관광업을13 육성시키고13 있는13 몬

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비아인이라는13 점(httpwwwvisit- 그리고13 세르비아로부터13 montenegrocom)

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세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해13 나가려는13 데13 있어13 세르비아의13 강력한13

17 년13 인구조사에13 따르자면 몬테네그로13 총13 인구13 비율은13 몬테네그로인이13 약13 1991 617(

명 세르비아인이13 약13 명 무슬림이13 약13 명 알바니381000 ) 93( 57000 ) 145( 89000 )

아인이13 약13 명 기타13 인구가13 약13 명 를13 차지한다 이외에도13 세65( 40000 ) 8( 49000 )

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년13 기준으로13 몬테네그로13 자체13 방위13 병력이13 여13 명에13 불과한13 상황에서13 만3000

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세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13 분할과13 민족간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휘말릴13 가능성이13 높

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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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18: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142 김철민

유고슬라비아13 연방의13 새로운13 대통령으로13 취임한13 코슈투니짜13 대통령은13 ldquo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는13 하나의13 운명13 공동체이며13 더욱13 더13 강력한13 통합이13 필요하

다rdquo는13 점을13 강조하였고 이어13 이러한13 선언이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추구하고자13

했던13 미국과13 서방의13 지지를13 얻게13 됨에13 따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는13 다소13 어

려움을13 겪게13 된다

하지만13 세르비아의13 민주화13 혁명13 성공과13 대외적인13 압력에도13 불구하고 몬테

네그로의13 독립을13 향한13 움직임은13 계속13 지속되었다 특히13 몬테네그로는13 우선적

으로13 세르비아가13 주도하고13 있던13 연방으로부터의13 경제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갔는

데 그13 결과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의13 공식13 화폐가13 연방의13 공식화폐인13 2000 11 lsquo디나르 화(Dinar) rsquo 대신에13 독일의13 마르크화로13 지정되게13 된다 14 이어13 년13 2001 4

월에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양대13 세력 분리13 독립파와13 연방13 유지파 간13 ( )

총선13 결과13 근소한13 차이지만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승리함으로서13 독립13 추진에13 힘

을13 실어주게13 된다김철민( 2005 141)15 하지만13 총선13 직후 몬테네그로13 독립

추진에13 대한13 미국과13 의13 반응은13 EU ldquo이러한13 시도가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해칠13 수13 있다rdquo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보냈었고 마침내13 대표단이13 동년13 월13 몬 EU 4

테네그로를13 직접13 방문 몬테네그로13 독립13 반대에13 대한13 공식적인13 의견을13 분명

히13 하게13 된다 이러한13 국제13 사회의13 강력한13 반대에13 려13 몬테네그로13 정부는13

년13 월13 일13 이전에13 치르기로13 했던13 2001 7 13 lsquo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13 총선rsquo을13 철회한다는13 발표를13 해야만13 했다

년13 월13 세르비아13 총리이자13 세르비아의13 실질적인13 정치13 구심점이었던13 2001 7

조란13 쥔쥐치 는13 (Zoran Žindjić) ldquo몬테네그로의13 독립추진이13 세르비아니즘을13 자

였고 총13 파업이13 유고13 전역에서13 시작되게13 되었다 계속된13 시위와13 민주화13 요구13 속에13

가장13 큰13 후원자였던13 러시아로부터도13 지원13 약속을13 받아13 내지13 못하자 로쉐비치는13 국

영13 에서13 자신의13 패배를13 인정하고13 정권13 이양을13 선언하게13 된다 선언내용은13 라디오TV lsquo

텔레비전13 세르비아 사이트인13 참조 뒤13 이어13 월13 일 민주13 인rsquo httpwwwrtscoyu 10 7

사인13 코슈투니차가13 마침내13 국회13 의사당에서13 대통령13 취임식을13 갖고13 정권13 인수13 작업에13

착수하기13 시작하였고 곧13 이어13 유럽연합은13 년13 코소보13 전쟁이후로13 발효된13 유고연 1999

방에13 대한13 석유금수조치를13 해제해13 주고 몬테네그로13 문제를13 비롯한13 모든13 중요13 현안들

에13 있어13 새롭게13 등장한13 민주13 정권에13 대한13 지지를13 분명히13 전달하게13 된다

14 년13 월13 이후13 공식화폐는13 유로 화로13 변경2002 1 (Euro)

15 총선13 결과 분리13 독립파지지13 세력13 를 연방13 유지파13 지지13 세력은13 를13 차지 421 407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극해13 코소보13 사태와13 같은13 심각한13 위험을13 초래13 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점을13 경고하였다 동시에13 ldquo몬테네그로가13 연방13 내에13 계속13 존속하기를13 강력히13 희망한다rdquo는13 메시지와13 함께 ldquo국방 외교 통화13 등에13 대한13 권한만을13 연방정부에13 이양하고13

나머지13 조세와13 여러13 권한들에13 대해선13 몬테네그로13 정부가13 독자적으로13 주도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합을13 제안하게13 된다16 하지만13 이러한13 제안이13

발표된13 직후13 몬테네그로13 정부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여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다

시13 실시할13 것임을13 발표하는13 것으로 세르비아13 정부의13 제안을13 거절하였다

여러13 차례의13 회담과13 논의13 끝에13 년13 월13 연방13 정부13 및13 세르비아와13 몬테2003 3

네그로13 정부간13 합의문이13 발표되었는데 주13 내용은13 년13 동안13 세르비아와13 몬테 3

네그로가13 연합한13 연방을13 계속13 존속할13 것과13 이후13 양13 공화국이13 몬테네그로13 독

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실시할13 것13 그리고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공화국(SRJ)rsquo에서13 lsquo세르비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rsquo으로13 변경할13 것13 등이었다 이

어13 이13 합의문에13 따라13 하나의13 국가연합13 체제라는13 틀13 속에서13 국방과13 외교 무

역 재정 인권부문13 등13 개13 내각은13 연방13 정부내13 합동행정기구에 나머지13 모든13 5

권한은13 각13 공화국이13 독자적으로13 운영하는13 느슨한13 연합13 국가13 탄생이13 결정되었

다 또한13 그13 내용에13 따라13 국제적으로는13 등13 국제기구에서13 하나의13 의석을13 UN

갖는13 단일13 국가로13 활동하며 현행13 조약과13 협정에13 대한13 과거13 유고연방의13 권리

와13 책임을13 승계한다는13 원칙이13 수립되게13 된다 그리고13 마침내13 년13 월13 세 2003 4

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13 의회에서13 양13 국13 지도부들간의13 몬테네그로13 연방13

존속13 안에13 대한13 협정이13 승인되게13 되면서13 현재에13 이르고13 있다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의13 향후13 전망과13 그13 의미13 2

새로운13 연합13 국가를13 구성하는13 데13 양13 국이13 합의한13 직후 년13 월13 세르 2003 3

비아-몬테네그로13 의회는13 몬테네그로13 출신의13 법률가13 스베토자르13 마로비치

를13 전체13 의석13 석13 중 찬성13 반대13 기권13 표로13 (Svetozar Marović) 126 65 47 14

16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13 대표적13 신문인13 보르바 참조- lsquo (Borba)rsquo httpwwwborbacoyu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제를13 구축해13 나가고13 있다 반면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이 2003 5

전13 로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의13 측근이자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강력히13 주장하였

던13 필립13 부야노비치 전13 총리가13 승리를13 거둠으로써 현재13 몬(Filip Vujanović)

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정국은13 매우13 혼미한13 상태로13 진행되고13 있다

연합13 국가를13 계속13 유지해13 나가려는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노력들을13 뿌리치고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으로부터13 벗어나13 새로이13 독립13 국가를13 구성해13 나가려는13 몬

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는13 향후13 다소13 난항을13 겪을13 것으로13 예상된다 그러한13 분

석을13 내리는13 배경에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13 그리고13 발칸반도를13 둘러싼13 다

음과13 같은13 장애요소들이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기13 때문이다 몬테

네그로의13 향후13 독립문제는13 아래13 요소들의13 향배에13 따라13 결정되어질13 것으로13 보

인다

우선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는13 가장13 큰13 장애13 요소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독립

을13 향한13 단합된13 의지를13 어느13 정도까지13 그리고13 어디까지13 보여줄13 수13 있을13 것인

가 라는13 문제이다 몬테네그로는13 지난13 년13 월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몬테네 2003 5

그로의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부야노비치13 전13 총리가13 대통령에13 당선되었지만 그13

전개13 과정이13 그리13 매끄럽지13 못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당시13 대통령13 선거13 투표율

은13 전체13 유권자의13 득표율은13 에13 불과하였는데 그13 동안13 부야노비치13 48 65

후보는13 년13 월과13 년13 월에13 치러진13 두13 차례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최다13 2002 12 2003 2

득표율을13 기록하긴13 했으나 두13 차례13 선거13 모두13 헌법상13 최저13 투표율인13 를13 50

밑돌아13 무효처리가13 되었었다 따라서13 여러13 논란13 속에13 치러진13 년13 월13 선 2003 5

거에선13 쥬카노비치의13 주도13 아래13 조정된13 새로운13 선거법13 즉 최저13 유효13 투표율13

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선거가13 치러지게13 되었다 이러한13 점은13 지난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이13 2001 4

주요13 이슈로13 떠13 오른13 총선을13 통해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근소한13 차로13 승리하긴13

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으로13 국명이13 바뀐13 후13 몬테네그로13 최초13 대통령이13

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이다 실제 몬테네그로13 헌법적13 지위변화에13 관한13 국민투표가13 실행되기13 위해

선13 전체13 몬테네그로13 의원13 명13 가운데13 인13 명의13 동의가13 필요하지만77 23 52

년13 월13 선거에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석을13 얻는13 데13 그친13 실정이다 더불어13 2001 4 44

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산업13 기지와13 생산능력이13 취약해13 주력13 산업으로13 관광업을13 육성시키고13 있는13 몬

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비아인이라는13 점(httpwwwvisit- 그리고13 세르비아로부터13 montenegrocom)

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세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해13 나가려는13 데13 있어13 세르비아의13 강력한13

17 년13 인구조사에13 따르자면 몬테네그로13 총13 인구13 비율은13 몬테네그로인이13 약13 1991 617(

명 세르비아인이13 약13 명 무슬림이13 약13 명 알바니381000 ) 93( 57000 ) 145( 89000 )

아인이13 약13 명 기타13 인구가13 약13 명 를13 차지한다 이외에도13 세65( 40000 ) 8( 49000 )

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년13 기준으로13 몬테네그로13 자체13 방위13 병력이13 여13 명에13 불과한13 상황에서13 만3000

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세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13 분할과13 민족간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휘말릴13 가능성이13 높

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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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몬테네그로13 일간지 보르바13 - httpwwwborbacoyu

몬테네그로13 역사13 httpwwwmontenetorghistory

몬테네그로13 개요13 httpwwwmontenetorgglance

라디오 텔레비전13 세르비아 국영13 방송국13 lsquo rsquo httpwwwrtscoyu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13 사이트13 UN httpwwwunmikonlineorg

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19: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3

극해13 코소보13 사태와13 같은13 심각한13 위험을13 초래13 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점을13 경고하였다 동시에13 ldquo몬테네그로가13 연방13 내에13 계속13 존속하기를13 강력히13 희망한다rdquo는13 메시지와13 함께 ldquo국방 외교 통화13 등에13 대한13 권한만을13 연방정부에13 이양하고13

나머지13 조세와13 여러13 권한들에13 대해선13 몬테네그로13 정부가13 독자적으로13 주도할13

수13 있다rdquo는13 새로운13 형태의13 연합을13 제안하게13 된다16 하지만13 이러한13 제안이13

발표된13 직후13 몬테네그로13 정부는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여부를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다

시13 실시할13 것임을13 발표하는13 것으로 세르비아13 정부의13 제안을13 거절하였다

여러13 차례의13 회담과13 논의13 끝에13 년13 월13 연방13 정부13 및13 세르비아와13 몬테2003 3

네그로13 정부간13 합의문이13 발표되었는데 주13 내용은13 년13 동안13 세르비아와13 몬테 3

네그로가13 연합한13 연방을13 계속13 존속할13 것과13 이후13 양13 공화국이13 몬테네그로13 독

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를13 실시할13 것13 그리고13 국명을13 lsquo유고슬라비아13 연방13 공화국(SRJ)rsquo에서13 lsquo세르비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rsquo으로13 변경할13 것13 등이었다 이

어13 이13 합의문에13 따라13 하나의13 국가연합13 체제라는13 틀13 속에서13 국방과13 외교 무

역 재정 인권부문13 등13 개13 내각은13 연방13 정부내13 합동행정기구에 나머지13 모든13 5

권한은13 각13 공화국이13 독자적으로13 운영하는13 느슨한13 연합13 국가13 탄생이13 결정되었

다 또한13 그13 내용에13 따라13 국제적으로는13 등13 국제기구에서13 하나의13 의석을13 UN

갖는13 단일13 국가로13 활동하며 현행13 조약과13 협정에13 대한13 과거13 유고연방의13 권리

와13 책임을13 승계한다는13 원칙이13 수립되게13 된다 그리고13 마침내13 년13 월13 세 2003 4

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공화국13 의회에서13 양13 국13 지도부들간의13 몬테네그로13 연방13

존속13 안에13 대한13 협정이13 승인되게13 되면서13 현재에13 이르고13 있다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의13 향후13 전망과13 그13 의미13 2

새로운13 연합13 국가를13 구성하는13 데13 양13 국이13 합의한13 직후 년13 월13 세르 2003 3

비아-몬테네그로13 의회는13 몬테네그로13 출신의13 법률가13 스베토자르13 마로비치

를13 전체13 의석13 석13 중 찬성13 반대13 기권13 표로13 (Svetozar Marović) 126 65 47 14

16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13 대표적13 신문인13 보르바 참조- lsquo (Borba)rsquo httpwwwborbacoyu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제를13 구축해13 나가고13 있다 반면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이 2003 5

전13 로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의13 측근이자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강력히13 주장하였

던13 필립13 부야노비치 전13 총리가13 승리를13 거둠으로써 현재13 몬(Filip Vujanović)

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정국은13 매우13 혼미한13 상태로13 진행되고13 있다

연합13 국가를13 계속13 유지해13 나가려는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노력들을13 뿌리치고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으로부터13 벗어나13 새로이13 독립13 국가를13 구성해13 나가려는13 몬

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는13 향후13 다소13 난항을13 겪을13 것으로13 예상된다 그러한13 분

석을13 내리는13 배경에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13 그리고13 발칸반도를13 둘러싼13 다

음과13 같은13 장애요소들이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기13 때문이다 몬테

네그로의13 향후13 독립문제는13 아래13 요소들의13 향배에13 따라13 결정되어질13 것으로13 보

인다

우선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는13 가장13 큰13 장애13 요소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독립

을13 향한13 단합된13 의지를13 어느13 정도까지13 그리고13 어디까지13 보여줄13 수13 있을13 것인

가 라는13 문제이다 몬테네그로는13 지난13 년13 월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몬테네 2003 5

그로의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부야노비치13 전13 총리가13 대통령에13 당선되었지만 그13

전개13 과정이13 그리13 매끄럽지13 못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당시13 대통령13 선거13 투표율

은13 전체13 유권자의13 득표율은13 에13 불과하였는데 그13 동안13 부야노비치13 48 65

후보는13 년13 월과13 년13 월에13 치러진13 두13 차례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최다13 2002 12 2003 2

득표율을13 기록하긴13 했으나 두13 차례13 선거13 모두13 헌법상13 최저13 투표율인13 를13 50

밑돌아13 무효처리가13 되었었다 따라서13 여러13 논란13 속에13 치러진13 년13 월13 선 2003 5

거에선13 쥬카노비치의13 주도13 아래13 조정된13 새로운13 선거법13 즉 최저13 유효13 투표율13

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선거가13 치러지게13 되었다 이러한13 점은13 지난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이13 2001 4

주요13 이슈로13 떠13 오른13 총선을13 통해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근소한13 차로13 승리하긴13

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으로13 국명이13 바뀐13 후13 몬테네그로13 최초13 대통령이13

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이다 실제 몬테네그로13 헌법적13 지위변화에13 관한13 국민투표가13 실행되기13 위해

선13 전체13 몬테네그로13 의원13 명13 가운데13 인13 명의13 동의가13 필요하지만77 23 52

년13 월13 선거에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석을13 얻는13 데13 그친13 실정이다 더불어13 2001 4 44

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산업13 기지와13 생산능력이13 취약해13 주력13 산업으로13 관광업을13 육성시키고13 있는13 몬

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비아인이라는13 점(httpwwwvisit- 그리고13 세르비아로부터13 montenegrocom)

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세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해13 나가려는13 데13 있어13 세르비아의13 강력한13

17 년13 인구조사에13 따르자면 몬테네그로13 총13 인구13 비율은13 몬테네그로인이13 약13 1991 617(

명 세르비아인이13 약13 명 무슬림이13 약13 명 알바니381000 ) 93( 57000 ) 145( 89000 )

아인이13 약13 명 기타13 인구가13 약13 명 를13 차지한다 이외에도13 세65( 40000 ) 8( 49000 )

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년13 기준으로13 몬테네그로13 자체13 방위13 병력이13 여13 명에13 불과한13 상황에서13 만3000

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세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13 분할과13 민족간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휘말릴13 가능성이13 높

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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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텔레비전13 세르비아 국영13 방송국13 lsquo rsquo httpwwwrtscoyu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13 사이트13 UN httpwwwunmikonlineorg

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20: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144 김철민

새로운13 연합13 국가의13 연합13 대통령으로13 선출하는13 등13 빠른13 속도로13 연합13 국가13 체

제를13 구축해13 나가고13 있다 반면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이 2003 5

전13 로13 쥬카노비치13 대통령의13 측근이자13 몬테네그로13 독립을13 강력히13 주장하였

던13 필립13 부야노비치 전13 총리가13 승리를13 거둠으로써 현재13 몬(Filip Vujanović)

테네그로13 독립을13 둘러싼13 정국은13 매우13 혼미한13 상태로13 진행되고13 있다

연합13 국가를13 계속13 유지해13 나가려는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노력들을13 뿌리치고13

세르비아의13 영향력으로부터13 벗어나13 새로이13 독립13 국가를13 구성해13 나가려는13 몬

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는13 향후13 다소13 난항을13 겪을13 것으로13 예상된다 그러한13 분

석을13 내리는13 배경에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13 그리고13 발칸반도를13 둘러싼13 다

음과13 같은13 장애요소들이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기13 때문이다 몬테

네그로의13 향후13 독립문제는13 아래13 요소들의13 향배에13 따라13 결정되어질13 것으로13 보

인다

우선 독립을13 가로막고13 있는13 가장13 큰13 장애13 요소는13 몬테네그로인들이13 독립

을13 향한13 단합된13 의지를13 어느13 정도까지13 그리고13 어디까지13 보여줄13 수13 있을13 것인

가 라는13 문제이다 몬테네그로는13 지난13 년13 월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몬테네 2003 5

그로의13 독립을13 주장하는13 부야노비치13 전13 총리가13 대통령에13 당선되었지만 그13

전개13 과정이13 그리13 매끄럽지13 못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당시13 대통령13 선거13 투표율

은13 전체13 유권자의13 득표율은13 에13 불과하였는데 그13 동안13 부야노비치13 48 65

후보는13 년13 월과13 년13 월에13 치러진13 두13 차례13 대통령13 선거에서13 최다13 2002 12 2003 2

득표율을13 기록하긴13 했으나 두13 차례13 선거13 모두13 헌법상13 최저13 투표율인13 를13 50

밑돌아13 무효처리가13 되었었다 따라서13 여러13 논란13 속에13 치러진13 년13 월13 선 2003 5

거에선13 쥬카노비치의13 주도13 아래13 조정된13 새로운13 선거법13 즉 최저13 유효13 투표율13

조항을13 삭제하고13 최다13 득표자가13 대통령으로13 선출되도록13 한13 헌법13 개정을13 통해13

선거가13 치러지게13 되었다 이러한13 점은13 지난13 년13 월13 몬테네그로13 독립이13 2001 4

주요13 이슈로13 떠13 오른13 총선을13 통해13 분리13 독립13 세력이13 근소한13 차로13 승리하긴13

했으나 여전히13 상당수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세르비아와의13 분리13 독립에13 대해13

강한13 거부감을13 지니고13 있다는13 점이13 확인되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따라서13 세르비

아-몬테네그로13 연합13 공화국으로13 국명이13 바뀐13 후13 몬테네그로13 최초13 대통령이13

된13 부야노비치13 대통령이13 그의13 대통령13 취임식에서13 비록13 년엔13 반드시13 세2006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이다 실제 몬테네그로13 헌법적13 지위변화에13 관한13 국민투표가13 실행되기13 위해

선13 전체13 몬테네그로13 의원13 명13 가운데13 인13 명의13 동의가13 필요하지만77 23 52

년13 월13 선거에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석을13 얻는13 데13 그친13 실정이다 더불어13 2001 4 44

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산업13 기지와13 생산능력이13 취약해13 주력13 산업으로13 관광업을13 육성시키고13 있는13 몬

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비아인이라는13 점(httpwwwvisit- 그리고13 세르비아로부터13 montenegrocom)

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세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해13 나가려는13 데13 있어13 세르비아의13 강력한13

17 년13 인구조사에13 따르자면 몬테네그로13 총13 인구13 비율은13 몬테네그로인이13 약13 1991 617(

명 세르비아인이13 약13 명 무슬림이13 약13 명 알바니381000 ) 93( 57000 ) 145( 89000 )

아인이13 약13 명 기타13 인구가13 약13 명 를13 차지한다 이외에도13 세65( 40000 ) 8( 49000 )

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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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13 기준으로13 몬테네그로13 자체13 방위13 병력이13 여13 명에13 불과한13 상황에서13 만3000

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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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13 분할과13 민족간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휘말릴13 가능성이13 높

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번의13 보스니아13 내전을13 불러올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기13 때문이다 실제13 이전13 코슈

투니짜13 전13 유고연방13 대통령은13 취임13 직후13 가진13 기자회견에서13 ldquo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간다면 과거13 유고지역을13 둘러싼13 국경의13 재확

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전략적으로13 지지해13 왔던13 서구13 국가들13 또한13 세

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메시지를13 계속해서13 전달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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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몬테네그로13 일간지 보르바13 - httpwwwborbaco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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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13 개요13 httpwwwmontenetorgglance

라디오 텔레비전13 세르비아 국영13 방송국13 lsquo rsquo httpwwwrtscoyu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13 사이트13 UN httpwwwunmikonlineorg

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21: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5

르비아로부터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갈13 것임을13 밝혔지만 여전히13 그13 미래를13 쉽게13

단정하기는13 어렵다고13 볼13 수13 있다

두13 번째로는13 고대13 이래로13 약13 년13 가까이13 지녀13 온13 몬테네그로인과13 세르1500

비아인13 간의13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13 접한13 교류13 관계와13 그13 저변에13 깔려13

있는13 독립에13 대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어떻게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는가 하는13 점

이다 실제 몬테네그로13 헌법적13 지위변화에13 관한13 국민투표가13 실행되기13 위해

선13 전체13 몬테네그로13 의원13 명13 가운데13 인13 명의13 동의가13 필요하지만77 23 52

년13 월13 선거에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석을13 얻는13 데13 그친13 실정이다 더불어13 2001 4 44

앞서13 오랜13 역사를13 통해13 확인하였듯이13 민족 문화 종교적으로13 몬테네그로인

은13 세르비아인과13 매우13 접하고도13 거의13 유사한13 연관13 관계를13 지니고13 있다 또13

산업13 기지와13 생산능력이13 취약해13 주력13 산업으로13 관광업을13 육성시키고13 있는13 몬

테네그로는 년13 통계에13 따르자면13 외국13 관광객의13 이상이13 바로13 세르 2003 70

비아인이라는13 점(httpwwwvisit- 그리고13 세르비아로부터13 montenegrocom)

들어오는13 생활필수품을13 포함한13 상당량의13 농산13 가공물 공산품에13 대한13 경제13

의존의13 한계를13 어떻게13 극복할13 수13 있을지도13 의문으로13 남고13 있다 이와13 함께13

사회주의13 시기13 이후로13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이13 베오그라드를13 비롯한13 세르비

아13 본토13 여러13 지역에13 이주해13 와13 그들의13 가족을13 두고13 있으며 세르비아13 사회13

곳곳에13 그들이13 자리를13 잡고13 있는13 상황13 속에서 독립13 추진13 이후13 이들에게13 가

해질13 세르비아인들의13 압력에13 대한13 우려와13 불안감이13 매우13 커지고13 있는13 상황이

다17 따라서13 독립13 지지파는13 이러한13 국민들의13 우려를13 불식시키고자13 독립13 이

후에도13 계속해서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유대관계를13 지속할13 것이라13 약속하고는13

있지만 상당수13 몬테네그로인들은13 이러한13 약속에13 대해13 그리13 신뢰감을13 표시하

지13 못하고13 있는13 실정이다

세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해13 나가려는13 데13 있어13 세르비아의13 강력한13

17 년13 인구조사에13 따르자면 몬테네그로13 총13 인구13 비율은13 몬테네그로인이13 약13 1991 617(

명 세르비아인이13 약13 명 무슬림이13 약13 명 알바니381000 ) 93( 57000 ) 145( 89000 )

아인이13 약13 명 기타13 인구가13 약13 명 를13 차지한다 이외에도13 세65( 40000 ) 8( 49000 )

르비아에13 거주하는13 몬테네그로인이13 명 이13 중13 명이13 수도인13 베오그라드139299 ( 74096

에13 거주 이고 명이13 보이보디나에 그리고13 명이13 코소보에13 거주하고13 있다) 44838 20365

httpsanhufsackr~balkan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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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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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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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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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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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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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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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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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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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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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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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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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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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13 개요13 httpwwwmontenetorgglance

라디오 텔레비전13 세르비아 국영13 방송국13 lsquo rsquo httpwwwrtscoyu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13 사이트13 UN httpwwwunmikonlineorg

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22: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146 김철민

반대를13 어떻게13 무마하고13 이를13 진행해13 나갈지13 또한13 변수이다 세르비아는13 근

대13 이후13 국력13 팽창과13 국가13 발전을13 위한13 일환으로13 아드리아13 해안13 지역13 장악을13

위해13 수많은13 노력을13 기울여13 왔었다 하지만13 오스트리아13 등13 주변13 강대국들의13

반대에13 부딪쳐13 결국13 그러한13 의지를13 실현시키지13 못하였던13 경험을13 지니고13 있

다 약13 여13 의13 아드리아13 해안선을13 지니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 200 km

로부터13 떨어져13 나간다면13 세르비아는13 내륙국가로13 전락함은13 물론13 그13 동안13 국제13

무역항인13 바르를13 통해13 들어오던13 모든13 물품들에13 관세가13 매겨져13 엄청난13 물류비

용을13 감당해야13 하는13 어려움에13 처하게13 된다 현재13 독립13 움직임을13 보이고13 있는13

코소보가13 오랜13 동안13 세르비아인에게13 있어13 민족13 성지라는13 lsquo정서적13 중요성rsquo을13 지니고13 있다면 몬테네그로13 지역은13 세르비아에게13 있어13 lsquo경제적13 중요성rsquo이13 매우13 높은13 지역이라13 할13 수13 있다 따라서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연합13 유지를13 위한13

세르비아의13 여러13 양보와13 강력한13 반대에도13 불구하고13 계속13 독립을13 추진해13 나간

다면 세르비아의13 군사13 동원13 가능성도13 배제할13 수13 없는13 실정이다 실제13 2004

년13 기준으로13 몬테네그로13 자체13 방위13 병력이13 여13 명에13 불과한13 상황에서13 만3000

약13 세르비아의13 대규모13 군사13 공격이13 감행될13 경우13 강대국의13 도움13 없이13 몬테네

그로13 스스로가13 이를13 막아낼13 수13 있을지13 의문이다

네13 번째로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이13 현재13 불안정한13 평화를13 유지하고13 있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깨트릴13 수13 있다는13 분석이13 지배적인13 가운데 이러한13 우려

를13 어떻게13 불식시키고13 해결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몬테네그로13 정부의13 커다

란13 고민이라13 할13 수13 있다 이런13 우려를13 하는13 이유는13 만약13 몬테네그로가13 독립

해13 나갈13 경우 년13 코소보13 전쟁13 이후13 다소13 안정을13 찾았던13 발칸유럽의13 정 1999

세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13 분할과13 민족간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휘말릴13 가능성이13 높

기13 때문이다 즉 몬테네그로13 독립13 추진은13 현재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

을13 강력히13 주장하고13 있는13 세르비아내13 코소보13 지역의13 알바니아인들의13 독립13 의

지를13 더욱13 자극할13 것이고18 이것은13 곧13 바로13 lsquo대 알바니아주의( )大 rsquo라13 불리는13 알바니아13 민족주의를13 불러일으켜13 마케도니아의13 분할과13 발칸13 유럽내13 각13 민족

18 코소보는13 현재13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 의13 통치하에13 있으나 년13 초13 lsquo UN (UNMIK)rsquo 2006

세르비아로부터의13 분리13 독립을13 위한13 국민투표13 강행을13 서두르고13 있어 그13 파급13 효과에13

대한13 국제사회의13 관심과13 우려가13 높은13 상태이다 코소보에서의13 활동에13 대해 UNMIK

선13 참조httpwwwunmikonlineorg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위협할13 것으로13 보인다 즉 이13 문제는13 보스니아내13 세르비아계 즉13 스르프스카

공화국을13 자극해13 이들의13 보스니아로부터의13 독립과13 이에13 따른13 또13 한13 (Srp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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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비아에서13 로쉐비치의13 퇴진과13 함께13 새로운13 민주13 정권이13 수립된13 이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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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김철민

결론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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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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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김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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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13 개요13 httpwwwmontenetorgglance

라디오 텔레비전13 세르비아 국영13 방송국13 lsquo rsquo httpwwwrtscoyu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13 사이트13 UN httpwwwunmikonlineorg

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23: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7

들의13 민족분쟁을13 필연적으로13 불러올13 것이라는13 점이다 또한13 몬테네그로13 독립

은13 년13 맺어진13 데이턴13 합의안에13 따라13 국가13 체제내에서13 예전의13 조화로1995 1 2

웠던13 다 민족13 국가를13 다시13 이룩하고자13 노력하고13 있는13 보스니아의13 평화를13 ( )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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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13 논의가13 다시13 불거져13 나오는13 문제13 등으로13 발칸반도는13 다시13 한13 번13 민족과13

영토13 분쟁의13 소용돌이에13 휩싸이게13 될13 것이다rdquo라고13 언급하기도13 했었다

마지막으로13 몬테네그로13 독립13 문제를13 바라보는13 미국과13 서구13 그리고13 러시아

의13 시각이13 그리13 긍정적이지13 못하다는13 측면이다 전통적으로13 발칸유럽에13 큰13

영향력을13 행사해13 왔던13 러시아는13 몬테네그로가13 세르비아로부터13 이탈해13 나가

겠다는13 움직임을13 보인13 초기부터13 이를13 강력히13 반대한다는13 의사를13 분명히13 표명

하고13 있다 또한13 과거13 로쉐비치가13 집권할13 당시13 로쉐비치를13 견제할13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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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13 발칸유럽의13 안정을13 위해13 세르비아로부터의13 몬테네그로13 분리와13 독립13 움직

임은13 매우13 위험한13 시도가13 될13 것이며 더불어13 이를13 지원하지13 않을13 것이라는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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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13 월13 몬테네그로와13 세르비아가13 약속한13 일정에13 따라13 만약13 년13 후인13 2003 3 3

년13 몬테네그로의13 완전13 독립을13 묻는13 국민투표가13 약속대로13 시행되고 만약13 2006

몬테네그로13 국민들이13 독립을13 선택한다면13 현재의13 연합13 국가가13 사라짐은13 물론13

발칸13 유럽은13 다시13 한13 번13 영토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의13 소용돌이에13 빠질13 가능성

이13 매우13 크다고13 볼13 수13 있다 이런13 상황이13 발생할13 경우13 인구13 만13 명 의13 62 (2003)

소국인13 몬테네그로가13 세계의13 화약고라13 할13 수13 있는13 발칸반도에서13 자신의13 주권

과13 민족13 정체성을13 유지하며13 계속13 발전해13 나갈13 수13 있을지13 또한13 의문이13 남는다13

하겠다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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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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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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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참고문헌

김철민 티토의13 민족정책 유고슬라비즘 1997 (Yugoslavism 「 Jugoslavizam 의13 적용과13 )

실패 동유럽13 연구 제 권 한국외국어대학교13 외국학종합연구센터13 동유럽 6 」 985172 985173 발칸연구소 pp 157-179

150 김철민

김철민 제 차13 세계대전과13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즘과13 세르비아니즘의13 충돌 1999 2 「 」동유럽연구 제 권 한국외국어대학교13 외국학종합연구센터13 동유럽8 985172 985173 발칸연구소 pp 21-47

김철민 세르비아13 민족의13 기원과13 민족13 정체성에13 관한13 연구 동유럽발칸학 제 2003 「 」 985172 985173권13 호 한국동유럽발칸학회5 1 pp 311-343

김철민 발칸유럽13 사회와13 문화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13 출판부 2005 985172 985173두샨13 바타코비치저 정근재역 세르비아13 역사 서울 선인출판사( ) ( ) 2001 985172 985173

Bozic Ivan Sima Ćirkovic Milorad Ekmecic and Vladimir Dedijer 1973 Istorija

Jugoslavije Beograd Prosveta

Ćirkovic Sima and Ivan Bozic 1977 ldquoO Jednom shvatanju i jednoj kritici istorije

Crne Gorerdquo Jugoslovenski istorijski casopis I-II pp 107-128

Danicic Đura 1876 Istorija srpskog naroda Beograd Drzavna stamparija

Dasic Miomir 1999 ldquoO Jugoslovenskoj ideji u Crnoj Gori do stvaranja

Jugoslavenske drzave 1918rdquo In Djordje O Pljevic (ed) Jugoslovenska drzava

1918-1998 Beograd Institut za savremenu istoriju pp 457-489

Dimic Ljubodrag 1998 Srbi i Jugoslavija Prostor drustvo politika Beograd

Stubovi kulture

Komatina Milija 1999 Crna Gora i srpsko pitanje Beograd Zavet

Petrovich Michael Boro 1976 A History of Modern Serbia 1804-1918 Vol I New

York and London Harcourt Brace Jovanovich

Rudic Vujadin and Milomir Stepic 1995 ldquoEthnic Changes in the Raska Regionrdquo In

Dusanka Hadzi-Jovancic (ed) The Serbian Question in Balkans Beograd

Faculty of Geography University of Belgrade pp 227-240

Stanojevic Stanje 1996 Istorija srpskoga naroda Beograd Izdavacka knjizarnica

napredak

Vojvodic Mihailo 2000 Srbija i Balkansko pitanje (1875-1914) Novi Sad Matica

Srpska

또13 하나의13 유럽 발칸13 httpsanhufsackr~balkan

세르비아 몬테네그로13 일간지 보르바13 - httpwwwborbacoyu

몬테네그로13 역사13 httpwwwmontenetorghistory

몬테네그로13 개요13 httpwwwmontenetorgglance

라디오 텔레비전13 세르비아 국영13 방송국13 lsquo rsquo httpwwwrtscoyu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13 사이트13 UN httpwwwunmikonlineorg

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24: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148 김철민

결론V

년13 제 차13 세계대전13 이후13 최초의13 남슬라브족13 통합13 국가인13 1918 1 lsquo세르비아-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13 왕국rsquo이13 수립되고13 이13 국가가13 년13 1929 lsquo유고슬라비아13 왕국rsquo으로13 개명된13 이래로13 사회주의시기를13 거치며13 지난13 년13 동안13 발칸유럽의13 74

역사13 속에서13 주요13 국가로13 역할을13 다해13 왔던13 lsquo유고슬라비아rsquo라는13 이름은

년13 월13 맺어진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13 양국13 간의13 합의에13 따라13 역사13 속2003 3

으로13 사라지게13 되었다 그13 기간13 동안13 세르비아는13 가장13 큰13 인구수와13 오래된13

독립의13 역사13 그리고13 우월한13 정치 군사력을13 바탕으로13 연방내13 국가들13 가운데

서13 주도적인13 역할을13 수행하고자13 했고 실제13 수행해13 왔던13 게13 사실이다 세르비

아가13 이처럼13 주도권을13 장악하고자13 했던13 그13 기본13 바탕에는13 무엇보다도13 과거13

중세13 두샨왕13 시절의13 영토13 확장에13 기초한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고13

볼13 수13 있다

년13 월13 티토가13 사망하고 년13 월13 베를린13 장벽이13 붕괴된13 이후13 1980 5 1989 11

세기13 말에13 유고지역에서13 발생한13 여러13 내전들과13 민족분쟁들13 또한13 그13 배경20

중13 하나에는13 세르비아13 민족주의의13 일환인13 세르비아니즘이13 자리13 잡고13 있었다

특히13 세르비아니즘의13 확대로써13 해석되는13 코소보13 지역내13 민족13 갈등과13 그13 여파

로13 인해13 년13 월13 발생한13 일간의13 코소보13 전쟁은13 수많은13 인종학살의13 비1999 3 79

극을13 낳았고 이러한13 여파는13 곧13 바로13 세르비아와13 연방을13 이루고13 있던13 몬테네

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야기하게13 하였다

실제 년13 월13 세르비아13 공화국과13 함께13 신유고슬라비아13 연방을13 구성하 1992 4

였던13 몬테네그로는 보스니아13 내전의13 주범으로13 세르비아가13 지목된13 이후로13 같

은13 연방에13 소속해13 있다는13 이유로13 수년13 동안13 국제13 사회로부터13 가혹한13 경제13 금

수조치를13 받아야만13 했었다 또한13 코소보에서13 발생한13 세르비아인과13 알바니아

인간의13 민족13 갈등을13 계기로 년에13 일어난13 코소보13 전쟁에서13 미국을13 위시 1999

한13 군의13 무차별적인13 군사13 공격과13 국제13 사회로부터의13 고립을13 강요당해NATO

야13 만했다 이후 과거13 오랜13 세기동안13 세르비아와13 접한13 관계를13 유지해13 왔던13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참고문헌

김철민 티토의13 민족정책 유고슬라비즘 1997 (Yugoslavism 「 Jugoslavizam 의13 적용과13 )

실패 동유럽13 연구 제 권 한국외국어대학교13 외국학종합연구센터13 동유럽 6 」 985172 985173 발칸연구소 pp 157-179

150 김철민

김철민 제 차13 세계대전과13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즘과13 세르비아니즘의13 충돌 1999 2 「 」동유럽연구 제 권 한국외국어대학교13 외국학종합연구센터13 동유럽8 985172 985173 발칸연구소 pp 21-47

김철민 세르비아13 민족의13 기원과13 민족13 정체성에13 관한13 연구 동유럽발칸학 제 2003 「 」 985172 985173권13 호 한국동유럽발칸학회5 1 pp 311-343

김철민 발칸유럽13 사회와13 문화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13 출판부 2005 985172 985173두샨13 바타코비치저 정근재역 세르비아13 역사 서울 선인출판사( ) ( ) 2001 985172 985173

Bozic Ivan Sima Ćirkovic Milorad Ekmecic and Vladimir Dedijer 1973 Istorija

Jugoslavije Beograd Prosveta

Ćirkovic Sima and Ivan Bozic 1977 ldquoO Jednom shvatanju i jednoj kritici istorije

Crne Gorerdquo Jugoslovenski istorijski casopis I-II pp 107-128

Danicic Đura 1876 Istorija srpskog naroda Beograd Drzavna stamparija

Dasic Miomir 1999 ldquoO Jugoslovenskoj ideji u Crnoj Gori do stvaranja

Jugoslavenske drzave 1918rdquo In Djordje O Pljevic (ed) Jugoslovenska drzava

1918-1998 Beograd Institut za savremenu istoriju pp 457-489

Dimic Ljubodrag 1998 Srbi i Jugoslavija Prostor drustvo politika Beograd

Stubovi kulture

Komatina Milija 1999 Crna Gora i srpsko pitanje Beograd Zavet

Petrovich Michael Boro 1976 A History of Modern Serbia 1804-1918 Vol I New

York and London Harcourt Brace Jovanovich

Rudic Vujadin and Milomir Stepic 1995 ldquoEthnic Changes in the Raska Regionrdquo In

Dusanka Hadzi-Jovancic (ed) The Serbian Question in Balkans Beograd

Faculty of Geography University of Belgrade pp 227-240

Stanojevic Stanje 1996 Istorija srpskoga naroda Beograd Izdavacka knjizarnica

napredak

Vojvodic Mihailo 2000 Srbija i Balkansko pitanje (1875-1914) Novi Sad Matica

Srpska

또13 하나의13 유럽 발칸13 httpsanhufsackr~balkan

세르비아 몬테네그로13 일간지 보르바13 - httpwwwborbacoyu

몬테네그로13 역사13 httpwwwmontenetorghistory

몬테네그로13 개요13 httpwwwmontenetorgglance

라디오 텔레비전13 세르비아 국영13 방송국13 lsquo rsquo httpwwwrtscoyu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13 사이트13 UN httpwwwunmikonlineorg

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25: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49

몬테네그로는13 세르비아와의13 연방을13 파기하고13 독립의13 길을13 선택하기로13 결정

하였고 이를13 위한13 여러13 경제 정치적인13 조치를13 단행해13 나감으로서13 현재13 그13

향배에13 대한13 국제13 사회의13 주목을13 받고13 있다 하지만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

가13 불러13 올13 파장이13 매우13 크다는13 점에13 비추어13 볼13 때13 현재13 독립을13 추진해가고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어려운13 점이13 존재한다고13 볼13 수13 있다 무엇보다도13 만약13 몬

테네그로가13 독립을13 강행할13 경우 발칸13 유럽내13 또13 다른13 영토13 분쟁과13 민족간13

충돌이13 불가피하기13 때문이다 즉 평화13 정착이13 아직도13 이루어13 지지13 못하고13 있

는13 코소보에서의13 민족13 갈등의13 재현 마케도니아13 국가13 분열13 위기13 초래13 그리고13

보스니아13 세르비아계의13 독립13 추진으로13 인한13 제 차13 보스니아13 내전13 촉발13 문제13 2

등이13 연13 이어13 제기될13 가능성이13 매우13 높다고13 할13 것이다

따라서13 년13 독립13 투표를13 앞두고13 있는13 현13 시점에서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2006

문제를13 둘러싼13 세르비아와13 몬테네그로간의13 긴장은13 수면13 아래13 속에서13 여전히13

이13 지역13 분쟁의13 주요13 불씨를13 그대로13 안고13 있다고13 볼13 수13 있다 특히13 몬테네그

로13 독립문제13 논의의13 실질적인13 동기를13 부여하였던13 코소보에서의13 세르비아인

과13 알바니아인13 사이의13 민족13 갈등이13 년13 월13 이후로13 다시13 확대되고13 있고2004 3

이에13 대한13 반발로13 세르비아내13 세르비아니즘13 확대13 움직임13 또한13 가시화됨으로

써 유럽의13 화약고인13 발칸반도는13 또13 다시13 민족갈등의13 불길에13 휩싸일13 가능성

이13 더욱13 더13 크게13 증대되고13 있는13 실정이다 몬테네그로에서의13 민족13 갈등13 재현

과13 독립13 추진13 움직임은13 이13 지역이13 지니고13 있는13 오랜13 동안의13 역사 문화 종교

적13 연결13 고리에13 따라13 그13 파급효과가13 매우13 크게13 나타날13 것이다 이러한13 점이13

바로13 세르비아니즘의13 시각에서13 발칸유럽의13 여러13 국가중13 현재13 분쟁의13 첨예한13

접점에13 위치해13 있는13 몬테네그로의13 독립13 문제를13 분석해보고자13 한13 본13 연구의13

의미라13 할13 수13 있을13 것이다

참고문헌

김철민 티토의13 민족정책 유고슬라비즘 1997 (Yugoslavism 「 Jugoslavizam 의13 적용과13 )

실패 동유럽13 연구 제 권 한국외국어대학교13 외국학종합연구센터13 동유럽 6 」 985172 985173 발칸연구소 pp 157-179

150 김철민

김철민 제 차13 세계대전과13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즘과13 세르비아니즘의13 충돌 1999 2 「 」동유럽연구 제 권 한국외국어대학교13 외국학종합연구센터13 동유럽8 985172 985173 발칸연구소 pp 21-47

김철민 세르비아13 민족의13 기원과13 민족13 정체성에13 관한13 연구 동유럽발칸학 제 2003 「 」 985172 985173권13 호 한국동유럽발칸학회5 1 pp 311-343

김철민 발칸유럽13 사회와13 문화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13 출판부 2005 985172 985173두샨13 바타코비치저 정근재역 세르비아13 역사 서울 선인출판사( ) ( ) 2001 985172 985173

Bozic Ivan Sima Ćirkovic Milorad Ekmecic and Vladimir Dedijer 1973 Istorija

Jugoslavije Beograd Prosveta

Ćirkovic Sima and Ivan Bozic 1977 ldquoO Jednom shvatanju i jednoj kritici istorije

Crne Gorerdquo Jugoslovenski istorijski casopis I-II pp 107-128

Danicic Đura 1876 Istorija srpskog naroda Beograd Drzavna stamparija

Dasic Miomir 1999 ldquoO Jugoslovenskoj ideji u Crnoj Gori do stvaranja

Jugoslavenske drzave 1918rdquo In Djordje O Pljevic (ed) Jugoslovenska drzava

1918-1998 Beograd Institut za savremenu istoriju pp 457-489

Dimic Ljubodrag 1998 Srbi i Jugoslavija Prostor drustvo politika Beograd

Stubovi kulture

Komatina Milija 1999 Crna Gora i srpsko pitanje Beograd Zavet

Petrovich Michael Boro 1976 A History of Modern Serbia 1804-1918 Vol I New

York and London Harcourt Brace Jovanovich

Rudic Vujadin and Milomir Stepic 1995 ldquoEthnic Changes in the Raska Regionrdquo In

Dusanka Hadzi-Jovancic (ed) The Serbian Question in Balkans Beograd

Faculty of Geography University of Belgrade pp 227-240

Stanojevic Stanje 1996 Istorija srpskoga naroda Beograd Izdavacka knjizarnica

napredak

Vojvodic Mihailo 2000 Srbija i Balkansko pitanje (1875-1914) Novi Sad Matica

Srpska

또13 하나의13 유럽 발칸13 httpsanhufsackr~balkan

세르비아 몬테네그로13 일간지 보르바13 - httpwwwborbacoyu

몬테네그로13 역사13 httpwwwmontenetorghistory

몬테네그로13 개요13 httpwwwmontenetorgglance

라디오 텔레비전13 세르비아 국영13 방송국13 lsquo rsquo httpwwwrtscoyu

코소보13 임시13 행정임무13 사이트13 UN httpwwwunmikonlineorg

몬테네그로13 관광13 httpwwwvisit-montenegrocom

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Page 26: 세르비아니즘과몬테네그로독립문제e1... · 2020. 6. 4. · 들의폭정에 저항하기위해시작된세르비아의제 차봉기1, 2 (Srpski ustanak, 1804~1813; 1815~1830)는점차이지역에보급된민족주의

150 김철민

김철민 제 차13 세계대전과13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즘과13 세르비아니즘의13 충돌 1999 2 「 」동유럽연구 제 권 한국외국어대학교13 외국학종합연구센터13 동유럽8 985172 985173 발칸연구소 pp 21-47

김철민 세르비아13 민족의13 기원과13 민족13 정체성에13 관한13 연구 동유럽발칸학 제 2003 「 」 985172 985173권13 호 한국동유럽발칸학회5 1 pp 311-343

김철민 발칸유럽13 사회와13 문화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13 출판부 2005 985172 985173두샨13 바타코비치저 정근재역 세르비아13 역사 서울 선인출판사( ) ( ) 2001 985172 985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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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goslavenske drzave 1918rdquo In Djordje O Pljevic (ed) Jugoslovenska drza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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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pred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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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pska

또13 하나의13 유럽 발칸13 httpsanhufsackr~balkan

세르비아 몬테네그로13 일간지 보르바13 - httpwwwborbacoyu

몬테네그로13 역사13 httpwwwmontenetorghistory

몬테네그로13 개요13 httpwwwmontenetorggl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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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kilometers Montenegro after having made a joint agreement in March 2003 forms

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referendum Third the new country should be named lsquoFederation of Serbia-

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IV where I will analyze historical disputes and national conflicts over the issue of

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the relevant details Also I will analyze Montenegros present situation and the

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significance of Serbianism in the regions of Former Yugoslavia and the problems

associated with Montenegros independence

Key Words Serbianism Serbia Montenegro National Problem Independence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13 동유럽학대학13 세르비아13 크로아티아어과13 조교수경기도13 용인시13 처인구13 모현면13 왕산리13 산13 번지13 89 449-791

Tel_03113 33013 471013 13 E-mail_kminyug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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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니즘과13 몬테네그로13 독립문제 151

Serbianism and the Problem of Montenegros Independence

Kim Chul-MinAssistant Professor of the Department of South Slavic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Montenegro(Crna Gora) is a small country in South-Eastern Europe which has a

population of about 620000(2003) and the territorial expanse of 13812 squ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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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Federation with Serbia The main contents of the join agreement are as follows

First Serbia and Montenegro will keep the federation governments for 3 more years

Second Montenegro has to make a decision on their independence through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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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enegro Republics

This study will discuss historical reasons and significance that may underlie the

independence Montenegro is trying to gain from Serbia in terms of Serbianism

Chapter II observes how Serbianism has developed and affected problem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is will be the bases of discussion in Chapters III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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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identity between Montenegro and Serbia These Chapters in particular will

examine the processes of Montenegros independence that was initiated in 1999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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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prospects for its independence Finally in Chapter V I will summarize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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