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load
others
View
0
Download
0
Embed Size (px)
Citation preview
2014년 10월 6일 월요일 제3036호
子(쥐띠)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가면 그중 한 사람
을 잃게 되고, 혼자 가면 가다가 친구를 얻게 될 것이
다. 혼자 일을 하면 도울 사람이 나타나고 여럿이 같
이 하게 되면 서로 의심하고 싸우게 될 것이다. 지나
친 것은 덜고 모자란 것은 보태어 알맞게 하라는 것이다.
丑(소띠) - 마음이 정 한 사람이 소인들에 둘러싸
여 힘을 얻지 못하는 형상이다. 그것은 임금이 간신
들에 둘러싸인 것을 뜻하기도 하고, 남편이 아내나
첩들의 꼬임에 빠져 있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
나 그러한 환경이라 하더라도 일은 잘 풀릴 것이다.
寅(범띠) - 이미 개혁의 시기가 무르익었다. 환경도
형성되었고 사람도 충분하다. 어진 사람은 그 뜻을
남김없이 펴게 될 것이며, 보통 사람들도 지금까지의
바르지 못한 태도를 고쳐 개혁에 따를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무슨 일이든 뜻 로 되지 않는 것이 없다.
卯(토끼띠) - 너무 지나쳐 정상 상태를 벗어난 격이
다. 지금은 모든 것이 뒤바뀐 세상이니 장차 있을 어
려움에 비하여 가서 머무를 곳을 찾는 것이 좋다.
이 로 가만히 있다가는 큰 환란을 당할 것이다. 어
려운 세상에서 어진 사람은 고생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는다.
辰(용띠) - 옳지 못한 무리들은 그 우두머리만 무찌
르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무찌를 상 는 안
에 있지 않고 밖에 있다. 또한 태평한 세상을 위해서
내가 나아감에 많은 어진 사람들이 나를 따른다. 그
무리들을 이끌고 바른 길을 걸어가니 하는 일이 길하다.
巳(뱀띠) - 아무것도 꾸미는 일이 없다. 굳이 잘 보
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꼭 성공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잘 보이겠다는 욕심에 억지로 비굴한
태도를 보이지 마라. 사람들은 그러한 모습에 식상해
있다. 교만해서는 안 되겠지만, 당당하게 임하라.
午(말띠) - 스스로 본분을 지킬 수 있으니 길하다.
모두가 안일과 사치에 빠져 있지만 나 자신만은 그
절개를 지킴이 돌과 같이 확고하다. 뜻을 돌처럼 굳
게 지켜라. 마음이 바르면 좋을 것이다. 어려움이 그
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未(양띠) - 달콤한 말만 가지고 아래 사람들을 한
다면 내 참된 뜻이 전해지지 않는다. 하기 어려운 일
을 내 생각만으로 약속을 한다고 해서 아래 사람들이
기뻐할 리가 없다. 그런 일이 없도록 미리 조심하면
다른 허물은 없을 것이다.
申(원숭이띠) - 내가 강유를 겸비했다. 나의 것을
덜어 아래 사람들에게 나눠주니, 하는 일마다 사람들
이 나를 돕는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따르니 마침내
큰 뜻을 얻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나아가면 이롭다.
많은 부하를 얻게 되고 크게 뜻을 펼 수 있을 것이다.
酉(닭띠) - 성질이 거칠고 버릇없이 날뛰는 재주 있
는 사람은 미리부터 날뛰지 못하도록 해 두어야 한
다. 길들여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만 그 재
주를 올바로 쓸 수 있는 일꾼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기쁜 일이 있을 것이다.
戌(개띠) - 부엌에는 손님 접할 생선마저 보이지
않는다. 방에 있는 손님을 잘 접할 생각조차 없기
때문이다. 임금이나 위에 있는 사람이 백성이나 부하
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 로 나가면 좋
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마음가짐을 바로잡아야 할 시기다.
亥(돼지띠) - 송사를 하면 얻는 것이 있다. 그러나
그 얻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다. 그
것을 얻게 해 준 사람이 그의 몫으로 그것을 가로채
거나 나눠 달라고 할 것이 틀림없다. 될 수 있으면 송
사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 제공 : 지암철학원상담 및 수강문의 : 02)470-2340
<6일 ~ 12일>
‘깨우치는 자’라는 뜻의 이름인 호찌민(Ho
Ch1 Minh, 1890~ 1969년)은 베트남의 공산주
의 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호 아저씨(베트남어: Bac Ho,
박호)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호찌민은 베트남 독립운동의 가장 중요한 인
물로 일생을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바쳤으며,
베트남 공산당, 베트남 독립연맹 등을 창건하
고, 1945년 베트남 민주 공화국을 선포하고
총리(1946~1955)와 통령(1955~1969)을 지냈
다.
그는 80년의 프랑스 식민지 시 를 끝내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남북으로 갈린 베트남
을 미국과의 전쟁을 통해 통일을 이루는 초석
을 다진 인물로 그가 죽을 당시 유산으로는 옷
몇 벌과 낡은 구두가 전부 으며 한 푼의 재산
도 축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죽은 지 6년 후인 1975년 4월 30일, 사
이공이 함락되면서 1976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성립되었고 남베트남의 수도 던
사이공은 당연하다는 듯이 호찌민 시로 개칭
되었다.
베트남 화폐(VND)는 동전이 있다지만 구
경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쓰이지 않고 11종의 지
폐만 사용되는 것 같다. 지폐를 보면 모두 호
아저씨의 초상화가 들어가 있다. 호치민이 베
트남에서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를 굳이 말하
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베트남의 관공서에서 쓰는 공문의 맨 위에는
‘자유, 독립, 평등’이란 국훈이 쓰인다고 한
다. 기나긴 외세의 지배하에서 그들이 얼마나
자유 독립을 꿈꿔왔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이 국훈 또한 호치민의 독립선언서의 문장이라
고 한다.
호치민의 서민적인 행보는 여러 가지가 있
지만 호아저씨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따랐
다는 베트남인들의 무한신뢰에서 그런 존경
할만한 지도자를 가질 수 있었던 그들이 부럽
기도 하다.
우리의 70년 처럼 개발붐으로 요란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서는 순박함을 느낄 수
있다. 번돈의 한적한 포구인 까이종을 찾았을
때 낯선 나라에서 가지게 되는 이방인으로서의
경계심과 불안감은 그들의 순박함에 금새 사라
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매일 비가 쏟아지는 스콜기간 때문에 공기
가 늦어져 한 시가 급한 건설현장에서 점심시
간 외에 따로 낮잠 자는 시간을 주는 것이 낯설
었는데 이곳에서 생활해보니 이해가 간다. 조
금만 걸어도 온몸이 홈빡 땀에 젖는 한낮의 폭
염 속에서 살아야 하는 그들의 당연한 게으름
이리라.
우리나라처럼 좋은 자연환경을 가진 것도 커
다란 축복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러워지는 이곳
생활이다.
이곳의 전력사정은 220V, 50HZ를 이용하는
데 정전이 잦은 편이다. 이 을 쓰고 있는 동
안에도 다섯 번씩이나 정전이 되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천둥소리가 들리면 곧 정전이
되겠구나 하는 순간 그 기 를 저버리지 않고
정전이 된다.
그렇게 정전이 되어도 워낙 습관이 된 탓인
지 동요도 없이 조금 큰 가게들은 자가발전기
로 불을 켜고 작은 가게들은 준비한 촛불을 켜
들고 기다린다. 정전 시간도 그리 긴 편은 아니
라 이내 전기가 들어오곤 한다.
이곳에 와서 열흘이 지나 배앓이를 시작했
는데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계속되어 고생이
심했다. 석회석지 에 탄광지 여서 식수사정
이 좋지 않은 것 같다. 냉장고가 많이 보급되지
않아 식당에서는 특히 유의를 하고 있다. 끓인
음식 외에는 주의가 필요할 것 같다.
밤낮없이 내달렸던 섬진강, 지리산에 가을빛
이 곱디곱게 내려앉았겠다. 그립다고 말을 하
면 그 그리움이 너무 커져 어찌할 수 없을까 봐
그립다 말도 못하고 혼자서 속으로만 되뇌여
본다. 얼마쯤의 시간이 지나야 이 그리움이 가
라앉을지….
<2>호아저씨의나라, 베트남
호 아저씨의 초상화가 들어간 베트남 화폐.
<35>국내관광업계
‘요우커를 잡아라’
중국의 국경절이 지난 1일부터 오는 7일까지 이어진
다. 중국의 법정공휴일인 국경절 기간 동안 규모 중국
인들의 한국관광이 예상되면서 국내 관광업계의‘요우
커 잡기’도 치열해지고 있다.
요우커는 관광객을 부르는 중국어다. 그러나 국내에
서는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을 부르는 말로 잘 알려
졌다.
한국을 찾는 부분의 중국인 관광객들은 고가의 물품
을 많이 사 가는 것으로 잘 알려졌으며, 량구매 등으로
유통업계와 관광업계에서는 중요한 고객이다.
실제로 제주도나 서울 이태원 등을 걷다 보면 양 손 가
득 쇼핑백을 들고 중국어로 화하며 지나가는 이들을 어
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중국인들을 위한 전용 백화점까지 마
련됐을 정도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달 발표한‘2014 8월 한국관광통
계’에 따르면 여행 성수기인 8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 여행
객 가운데 2명 중 1명이 중국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145만4078
명이었다. 그중 중국인 관광객은 75만7683명으로 52.1%에
달했다.
이번 국경절 기간 동안에는 약 5억명의 중국인들이 관
광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총 16만명
의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관측했다.
지난해 11만8000명보다 35% 늘어난 수치다. 이 기간에
맞춘 유통업계의 요우커 책도 수립되고 있다.
백화점과 화장품 업계 등에서 다양한 할인행사와 서비
스 행사가 이어지는 것.
유통업계 등에는 중국인 관광객 증가가 반가운 일이겠
으나, 일반 시민들에게는 아주 유쾌한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 번에 많은 관광객들이 한국을 방문하다 보니 많이
방문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주차 등 다양한 문제도 발생하
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 같은 일반 시민들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먼저 도심에서 교통난을 가중시키는 관광버스 불법
주∙정차 단속을 강화키로 했다.
주요 관광지마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시간에 단속반을
투입해 단속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윤 원 기자 <ydw@>
′
′
도예가 지산(芝山) 이종능(57) 씨의 외모는 흙을
닮아서일까 다소 거친 느낌이다. 뒤로 묶은 긴 머리,
턱과 코 아래에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 살짝 드러나
는 광 뼈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그가 흙을 만
지는 예술가라는 걸 눈치 챌 수 있다.
흙의 예술가 이종능 씨가 10월 2일부터 20일까지
미국 뉴욕 한국문화원에서 열두 번째 전시회‘토흔
의 나들이’를 열고 있다.
미국에서 전시회가 열리는 탓에 사진으로 그의 몇
몇 작품을 접했다. 유독‘고향의 언덕’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층층이 흙을 쌓은 듯 결이 느껴지는 작품
인데 각 층마다 색이 제각각이었다. 문득 사진에서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사진에서 느껴지는 흙의 느낌은 강렬했다. 생각해
보니 그의 호 지산(芝山)은‘작지만 꼭 필요한 존재
가 되라’는 의미인데 그가 다루는 흙과도 일맥상통
하는 부분이 있었다.
“흙과 불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흙은 사랑,
불은 열정을 상징합니다. 흙과 불을 이용하는 도예
를 한다는 건 인간에 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맞닿
아 있죠.”
이종능(57) 씨에게 흙은 그가 살아온 삶을 관통하
는 큰 줄기다.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흙이다.
마음에 드는 흙을 찾기 위해서라면 전국 방방곡곡
을 돌아다니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흙을 채취하
고 작업장으로 돌아오면 일일이 고운 채에 거르는
‘수비(水飛)’과정을 거친다. 부드러운 흙이 좋은 작
품의 비결이다.
그가 이렇게 흙에 빠지기 시작한 건 학 2학년
때 다. 지리산으로 여행을 갔을 때 빗물에 쓸려 내
려가는 흙의 빛깔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반한 것이
다. 물기를 머금은 흙이 그에겐 흡사 무지개처럼 비
쳤다.
그게 결정적인 계기 다. 경 학을 공부하던 그
는 4학년 졸업반이 되던 해 돌연 도공이 되기로 결
심했다.
도예에는 문외한이었던 탓에 가장 먼저 이천에 있
는 백자 작업장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가 꿈꾸던 예
술의 세계는 온 데 간 데 없고 철저한 분업 시스템으
로 돌아가는 현장을 마주했다. 더 머물 필요가 없다
고 판단하고 다른 작업장으로 옮겼지만 사정은 마찬
가지 다. 결국 배낭을 둘러메고 전국으로 흙을 찾
아 나섰다.
그렇게 3년이 흘러 도자기에 익숙해질 무렵 이종
능 씨는 도예가로서 성장하기 위해 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젊음을 학업에 쏟는 것이 아까워서 을
까. 그는 학원 진학 신 해외 배낭여행을 선택했
다. 일본, 만, 중국, 태국, 몽골 등을 돌며 북방문화
와 남방문화를 몸소 체험했다. 그때 보고 느낀 것들
은 작품 활동의 밑거름이 됐다.
그 무렵 도예인생을 그만둘 뻔한 사고가 발생했
다. 일본의 유명한 가마에서 도자기 수업을 받던 중
손가락 한 마디를 잃은 것이다. 가마에 불을 때려고
쌓아둔 참나무가 무너졌는데 하필이면 오른손 중지
가 깔렸다. 설상가상으로 수술하는 일본인 의사가
그를 동남아에서 온 일용직 노동자인줄 알고 손가락
접합수술이 아니라 절단수술을 했다. 도예가에게는
생명이나 다름없는 오른손 중지를 잃고 그는 다시는
도예를 못할까 봐 덜컥 겁부터 났다고 한다. 다행히
엉덩이뼈를 절단된 부위에 옮겨 붙여 현재는 작품
활동에 지장이 없는 상태다.
이종능 씨가 지금까지 연 작품전시회는 총 11회.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2007년 9월 국 박물
관에서 열었던‘백자 달항아리 특별전’이다. 당시
우아하면서도 세상을 품은 것 같다는 평가를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이때 선보인 백자 달항아리는 일본
도쿄, 오사카에서도 연작으로 전시했고, 오사카 역
사박물관에서 작품을 소장했다.
그는 유독 소박미와 진실되다는 평가를 받는 도예
가다. 황규성 전 리움미술관 연구원은‘강렬하면서
동시에 비 칭의 소박미를 머금고 있다’고 평가했
다. 또 작가 최인호는“지산에게는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 치열함, 거짓을 모르는 참 빛이 있다”고 역설했
다.
이런 그가 10월 2일부터 12번째 전시를 시작했다.
미국 뉴욕 한국문화원 갤러리 코리아에서 열리는 이
번 전시에는 총 70여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위 용 기자 <wee@>
흙은 사랑, 사랑을 빚는 도예가2일~20일까지뉴욕서전시회여는지산(芝山) 이종능
이종능씨 작품 고향의언덕.
이종능씨 작품 봄의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