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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e Sedgwick 에디 세즈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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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fe story of Edie sedgwick who Andy Warhol's muse and 1960's America It girl. 1960년대 미국을 사로 잡았던 잇걸 그리고 앤디 워홀의 뮤즈로 짧지만 강렬한 삶을 살았던 에디 세즈윅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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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딱 한 사람이 그 누구보다도 더

나를 열광시켰다. 내가 흥분했던 그 감정은

아마 사랑과 가장 흡사한 것이었으리라. ”

앤디 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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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WARH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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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워홀의 작품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 접해 봤을 강렬한 인상의 그녀,에디는 60년대 여성상과는 다르게 귀를 덮지 않는 숏컷과 긴 속눈썹으로 매력을 과시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했던 그녀는 미니멀한 드레스와 과장된 귀걸이로 자신을 한껏 드러냈다.60년대 미국의 스타일 아이콘이자 It Girl로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아 모든 것을 가진 듯한 그녀였지만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고 삶을 누리기 보다는 그저 살아간 그녀,찡그리고 있다가도 사랑한다, 사랑스럽다는 말을 들으면 금새 환하게 빛이 날 정도로 함박 웃음을 짓는 천진성과 한시간이 넘도록 핸드백 속의 열쇠를 찾는 불안한 모습 까지 모두 그녀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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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는 1943년 4월 20일 Santa Barbara의 Cottage 병원에서 태어났다. 사실 에디의 부모는 남자아이를 원했었다. 엄마는 마취제에 알러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 지만 그대로 임신을 했고 에디가 태어났을 때는 엄마는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에디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동시에 태어난 첫번째 아기였고 8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다. 이름은 아버지의 가장 친한 숙모의 이름 Edith Minturn 을 따서 Edie로 지었다. 에디는 매우 작은 아이였으나 강하고 친절하고, 울곧은 성격의 간호사 제인 윌슨이 그녀를 간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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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살무렵의 에디 세즈윅

에디의 어머니는 부끄럼이 많은 내성적인 분이셨다. 엄마는 어떤 상황이든 나서지 않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어디든 혼자 다니는걸 극도로 싫어했다. 유일 하게 엄마가 집밖에서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곳이라고는 클럽뿐이었다. 물론 그녀는 파티에서 춤을 추거나 하지 않았다. 여자는 스물 다섯이 넘어가면 춤을 추기에 꼴갑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빠도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는 활기찬 성격도 아니었고 밝지도 않았지만 진정한 숙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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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의 부모는 자식들을 엄하게 길러서 집 밖으로는 어디로도 나가지 못하게 가둬두었다. 세즈윅가는 그들의 폐쇄적인 공간에서 살았다. 심지어 집에 학교까지 만들어 놓아 외부와의 고립이 심했다. 에디는 좋은 친구를 사귈수가 없었다. 에디의 부모는 어디도 가지 못하도록 했다. 어린 에디에게 이는 큰 영향을 끼쳐서 어린 에디의 삶의 견문이 무척이나 작게 되었다. 에디는 그래서 세상물정을 모르고 자라서 다소 경제관념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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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초반 세즈윅가의 목장에서 석유가 발견되었다. 석유에 대한 부모의 반응은 미적지근해서 , 그저 펌프 근처로 가지 못하게 하였다. 새로운 목장은 정말 아름다웠다. 에디는 아이들에게 막대 말 장난감을 만들어 주고는 했는데. 말장난감의 귀가 조금 이라도 이상하게 붙어있을때 에디는 기분 나빠했다. 그런 세세함은 때로 주위 사람들을 지치게 했다. 에디가 그럴때면 수키는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했고 밖에 나가서 놀고싶었다. 에디는 좀 쓸데없고 무의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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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함에 혼란을 느끼곤 했다. 그럴 때의 에디는 완전 다른사람처럼 변했었다. 에디와 에디의 동생 수키(Suky)는 단 둘만의 비밀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모든 가족들 중에 오직 우리 둘만의 공간, 그래서 에디와 수키는 마치 쌍둥이처럼 느껴졌었다. 에디는 상상속의 가족을 “부족”이라고 불렀다. 아빠는 붉은 피부를 가진 인디언 추장이라고 생각했고, 상상속의 아빠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다정하고 이해심이 많았다. 그리고 체벌이나 꾸짖음 같은 그런게 없었다 그 세상에 엄마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에디는 열살 수키는 여덟살 이었다. 에디는 무엇이라도 되는 것을 상상했었다. 에디가 연기하는 상상속의 세상, 상상속의 세상은 둘에게는 마냥 천진 난만했다. 거리낄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악마도 없었으며 불법이 없었고 불행조차 없었다. 둘이서 상상하는 가족은 완전히 즐거운 것이었다. 둘이 놀때 모든 것은 아름다웠다. 상상속의 세계는 그저 매우 친절했으며, 부드럽고 에디가 아는 실제 가족의 모습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Corral de Quati에서 에디와 수키는 누나 Kate 와 간호사 Addie와 함께 작은 별장에서 살았다. 약간 버르장머리가 없었으나 둘은 개성이 뚜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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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는 완전 집에 갇혀서 살았다. 단지 여름에만 몇몇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오곤 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정을 붙일 쯤 되면 그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꺼려했었다. 에디와 수키는 정말 가끔 목장을 떠났다. 하지만 둘이서 골짜기의 의사를 찾아 가야만 할때 오빠인 민티가 찾아와서 우리 박제된 인형들을 이용하여 손가락인형극을 보여주곤 했다. 오빠는 애들을 웃기고 마음을 풀어주었다. 여름은 모든 아이들이 집에 오는 때였다. 그리고 아이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저녁먹고 놀았다. 그리고 이때는 밤 아홉시까지 불을 틀어줬다. 덕분에 아이들은 늦은 시간까지 놀 수 있었다. 마치 셰익스피어 식 놀이와 비교했다. 의미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희극적인 장면을 위해 일정한 간격을 둔다.어쨌거나 여름날의 놀이는 매우 재미있었고 아이들에게는 축복이었다. 계절마다 가져다 주는 느낌이 달랐다. 가을은 깊은 우울함을 가져다 줬고 겨울은 크리스마스의 느낌이었다. 선물을 받는다는게 설레이고 기다려 졌다.우리는 스타킹이 없어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기 위해 부츠를 걸어 놓았다. 에디의 Corral de Quati에서의 기억들은 잭슨 폴록 그림의 선들 처럼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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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guna, Corral de Quati보다 두배는 큰 6천에이커의 새로운 목장이었다. 이전 목장에는 소젖짜는 곳도 있었고 돼지, 닭 거위도 있었으나 새로운 목장에는 닭만 어두운 철장안에 갇혀있었다. 엄마는 밖에 나가서 돌보지 않았다. 새 목장으로 오면서 갑자기 식사가 고급스럽게 변했다. 이전 목장에서 소 젖을 짜던 윌리엄 집사는 식사시간에 다시 흰 코트를 입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보통 우유만 마셨는데 여기 와서는 식사시간에 와인을 마시고 탄산음료를 식탁에다 한 통을 가져다 놓고 마셨다. 그리고 나서 Tia maria, 브랜디, 베네딕틴주등을 마셨다. 때문에 나중에 에디가 약물 중독에 영향을 끼친다.

Tia maria 블루 마운틴의 풍미 있는  

자마이카산 리큐어

베네딕틴주 프랑스산의 달콤한 리큐어

리큐어향주(香酒). 증류주에 과실이

나 꽃, 식물의 잎이나 뿌리 등을 

넣어 맛과 향기를 더한 술을 의

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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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의 할아버지 Babbo가 돌아가셨을 때, 에디는 열세살이었다. 이제 막 샌프란시스코 캐롤린 브랜슨 학교의 기숙사 생활을 할 무렵이었다. 그 시절의 에디는 때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아이었다. 어렸으며, 매우 어린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라나는 여자아이였다. 그리고 이미 이때부터 뭇 남성들을 완전히 매료시키는 미모를 가졌었다. 누구에게나 예쁨받았다. 그러나 목장으로 부터 벗어난 뒤 에디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학교에 간 뒤로 에디는 미라가 나오는 악몽을 자주 꾸게 되었다. 그래서 에디는 많이 울었다.아마 에디는 학교가 무척 싫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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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에디가 갑자기 학교를 나와 집으로 왔을때 여러 소문이 퍼졌다. 어머니는 에디가 백혈병에 걸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다 헛소리였다. 사실 에디의 진짜 문제는 거식증을 겪고 있었던 것이었다.에디의 가족은 두가지 방법으로 식사를 하는데 그 중 한가지가 어머니가 알러지 때문에 특별히 먹는 음식들을 먹는 건데 에디는 엄마를 따라서 날마다 특식을 먹어왔다. 심지어 흰 쥐까지 먹었다. 다른 방법은 터무니없이 많이 먹는 것이었는데 아버지가 주로 행하는 방법이었다.아버지는 에디에게 많은 양을 먹게 시켰다 그리고 아빠는 운동으로 열량을 소비했지만 에디는 그냥 토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래서 영양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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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는 목장에 부모님과 단 둘이 있을때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해주곤 했다.학교를 마친후 에디는 그림자가 드리울 때 방에 혼자 눕는다고 했다.에디는 어떻게 아빠가 에디를 가두고 마치 죄수처럼 침대에만 있게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했다. 에디는 그런 일들을 마치 19세기 소설같이처럼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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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에디는 아빠가 어떤 여자랑 파란 방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는 모습을 봤다. 에디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모습을 본 에디는 황급히 그 자리를 빠져 나왔으나 매우 화가난 아빠는 에디에게 욕을 퍼부었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따라 들어와서 에디의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바람 피는 걸 들킨 것 때문에 이성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이다.그리고 아빠는 에디를 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정신이 이상한 상태로 몰아가기 시작했다.에디를 정신병자 취급을 하여 의사를 불러와 많은 진정제를 먹이게 했다. 에디를 완전히 입막음 시켰다. 결국 졸지에 정신병자가 된 에디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에디는 마치 죄수와 같은 취급을 당했다.에디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에디는 모든 사실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아빠가 모든것을 부정했고 에디는 마음 속에 큰 상처를 받았다. 시간이 흐른 뒤 에디를 다시 보았을때 에디는 정말 이상하게 변하게 되었다.. 에디는 마치 어린 애기처럼 변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에디의 삶은 완전히 망가지게 됐다. 그리고 아빠는 에디를 다른 학교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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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에디가 15살이 되던 해 세인트 티모시St. Timothy에 왔다. 125명의 여자아이들이 다니는 메릴랜드 주의 조그마한 나무들과 주택들로 둘러 싸인 외딴진 곳에 있는 작은 학교였다. 학교의 오랜 전통에 자부심을 갖췄고 교육목표는 고루 배운 크리스천이었다. 에디가 처음 학교에 들어갔을 때,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 예로 브라우니 농구팀을 만드는데 반에서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인데, 팀을 만드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했다. 추수감사절, 큰 경기가 있는 전날 밤 신입생인 브라우니, 에디가 비밀 촛불세레머니의 원의 한 가운데로 걸어들어와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에디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런 활동들에 기뻐했다. 에디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모두들 에디를 칭찬했고 1반의 반장이었다. 에디는 반의 애들에게 매력을 마구 발산했다. 그리고 모두가 에디의 친구가 되고 싶어했다. 그런데 좋은 날도 얼마가지 못했다. 에디의 우정은 시기와 질투에 의하여 산산조각이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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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디의 우정은 시기와 질투에 의하여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에디가 몇몇 가장 친구들과만 노는 사이에 나머지 애들이 질투를 느낀 것이다. 그러다가 에디는 다른 친구들로 갈아타고 전에 같이 놀던 애들을 버렸다. 에디는 선배들을 깔봤고 그들이 접근하는 것에 대해 약간 무례하게 대했다. 인간관계를 가볍게 여겼 으며 선배들을 찍어 누르려고 했다. 에디가 워낙 예의가 없어서 주위 사람들이 많이 난처했다. 그렇지만 그래서 에디는 선배들에게 주목을 많이 끌었다. 에디를 귀여운 마스코트라고 여겼다. 그러던 어느날 에디는 문제에 휘말리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회색치마를 입고, 샌들을 신어야 되는데 에디는 파랑 치마에 스니커즈를 신었다. 그리고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에디는 사람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바가지로 얻어먹게 된다. 에디는 어두운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고, 난폭하게 굴었다. 그리고 자신을 비난 하는 사람들을 때리기까지 했다. 점차 에디는 단정하지 않고 게을러졌으며 불복종적이거나 활달하고 열정적이거나 기분에 따라 변했다. 추수감사절때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결국 다음해 가을 에디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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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가을 에디는 정신병원인 실버 힐에 보내졌다. 실버 힐은 느긋한 곳이었고 에디는 좋은 시설에서 작업 치료를 받았다. 에디는 여러 물건들을 만들었다. 접시 같은 것도 만들고는 했는데 접시의 디자인은 별로였지만 다섯 마리의 쥐를 잘 그려 놓았다. 에디는 실버힐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마음 껏 해 나갈 수 있었고, 자신이 원할 때 언제든지 나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에디는 부모님의 모함때문에 정신 병원에 온 것이지, 사실 정신병에 걸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두들 에디가 정신병자로 알고 있었지만 에디 본인 만이 실버힐에서 자신이 정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따라서 에디는 실버 힐에서 빠져나오고 싶어했다. 실버 힐에는 알콜중독을 치료 받는 중년층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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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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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에디는 실버 힐의 본관에서 지냈고 본관에서는 모두가 한달에 수천 달러씩 내고 사용하는 개인 방을 쓰고 있었다. 실버 힐에서 버지니아 데이비스Virginia davis라는 소녀와 둘이서 친하게 지냈었다.실버 힐은 마치 컨트리 클럽같은 곳이었다. 맛있는 저녁이 제공 되었고 저녁을 먹고 나면 에디와 버지니아는 시내로 나가서 수천달러 씩 쓰면서 놀았다. 에디는 구두를 사거나 옷을 사기도 하고 500달러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예술 서적들을 사기도 했다. 하나 같이 비싼 것들이었다. 그렇게 돈을 썼지만 에디는 아까워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에디는 분홍색과 흰색톤이 어우러진 피부에다가, 검은 눈에 검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에디는 이를 돋보이게 하기위해 매우 연한 톤으로 화장을 했다.

에디는 정말 개성이 또렷했다. 버지니아와 에디는 철학적인 토론같은 대화를 나누곤 했고 대화를 통해 서로가 마음이 잘 통한다고 느꼈었다. 그저 에디와 버지 니아는 난잡한 무대위의 같은 또래의 정신 나간 여자들과 같았다. 에디는 버지니아한테 자신이 사실 아픈 것이 아니라고 얘기하곤 했다. 단지 아빠가 에디를 제외시켰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불평을 많이 했다. 그리고 엄마에 대한 언급을 일체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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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에디는 그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가장 심취해 있었다. 피부와 몸매 관리를 정말 열심히 했었고 에디는 항상 자신의 외모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다. 버지니아와 에디는 스웨터와 치마를 입었지만 에디는 유독 검은 타이즈를 항상 입었다. 에디는 음식에 까다로워서 매 끼니마다 음식을 토해냈다. 음식을 많이 먹은 뒤에 계단위로 사라지곤 했다. 에디도 이런 행동이 자신의 몸을 망치는 것이라고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행동들이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것이었다. 버지니아와 에디는 식사 후에 산책을 하곤 했는데 에디가 빠르게 걸어서 버지니아가 따라잡기 버거워 했었다. 마른 에디에 비해 버지니아는 뚱뚱했었다. 에디의 몸무게는 실버힐에 있는 내내 40kg밑으로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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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에디는 뉴욕병원의 브루밍데일Bloomingdale로 가게 되었다. 브루밍데일은 실버 힐과는 다르게 폐쇄적이고 엄격한 병원이었다. 따라서 얄짤없이 에디의 식생활과 모든 행동들은 매우 세심하게 감시되었다. 에디는 처음 왔던 병동에서 다른 병동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이 곳에서 미모를 꽃피웠다. 에디의 삶을 통틀어서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던 시기였다. 그러나 에디는 브루밍데일에서 머무르는 끝무렵에 임신을 했고 낙태를 했다. 에디는 어머니가 낙태에 극도로 반대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괴로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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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o! Manhattan 영화의 테이프로 부터)

이 테잎은 사랑에 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고통까지도

사랑의 테잎, 나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까?

남자 : 첫사랑이었던 남자에 대해 말해주시죠.

에디 : 오 이런, 브루밍데일. 그때 포함해서. . . .(느긋한 에디 특유의 말투) 난 진짜 첫사랑이

없었던 것 같은데. . . . 난 첫사랑이 있기 전까지 꽤 오랜 기간동안 아빠한테서 육체적

으로 시달려왔어. 아빠는 내가 일곱살때부터 항상 나랑 자려고 했었으니까. . .

오직 나만 거기에 반항했었어. 몇몇 내 오빠들은 여동생들에게 성교육을 명목으로..

오빠는 여동생에게 규칙들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선 성관계를 하곤 했었지.

그리고 나는 하지 않았지만 단지 느끼기만 헀어. 느끼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 . .

어느 누구도 내게 근친상간이 나쁜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지 않았으니까.

나는 병원에 2년동안 갇혀 있었는데, 내가 스무살때 브루밍데일에서 빠져나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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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 리그 타입의 매력적인 하버드대 출신의 젊은 남자를 만났어.

그리고 우리는 내 할머니댁의 아파트에서 사랑을 나눴는데 , 엄청났지.

그게 내 첫경험이었으니까. 정말 거리낄게 아무것도 없었고, 정말 아름다웠어

그런데 그 일이 있고 월경이 멈춰서 의사한테 이야기를 했더니 임신이라 하더라고. . .

그에게 이 사실을 말하기 두려웠지만 임신했다고 이야기 했어. 아무런 언쟁없이 낙태를

받기로 했고 결국 첫경험치고는 썩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지

내 머리속은 혼란스러웠으니까...한가지 더 이 녀석이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난 화가났어... 그는 내게 물었고 나는 답했지 “나 임신했으니까 난 너한테 아무것도

묻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화내지마, 근데 임신한건 정말 불편하네, 내가 지금 뭘해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결국 그와는 헤어졌고 케임브리지 대학에 들어가기 전

여름까지 못보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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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63년 가을 에디는 케임브릿지 대학에 입학했다. 에디는 사촌 릴리 사리넨Lily saarinen과 함께 예술을 공부하기로 마음 먹었다.

에디는 정말 멋쟁이었다.

에디는 광고의 한 장면처럼 그녀의 커다란 메르세데스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케임브리지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언제나 아름다웠다. 조각을 했음에도 손이 거칠지 않고 정말 고운 편이었다. 하지만 에디는 골초였다. 손가락에는 언제나 니코틴이 묻어있었다. 어쨌거나 에디는 미칠듯한 미모의 여자였다. 에디는 그녀의 친구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점점 더 많아졌다. 마치 방청객을 모으는 것처럼 많았다.

그리고 에디는 남자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했는데 때문에 모든 남자들이 에디를 사랑했다. 에디는 언제나 시크 하고 도도했다. 조소에 재능이 있어서 에디는 미친듯이 작업을 하곤 했다. 에디는 말을 조각하기를 좋아했다.

에디는 정말 활기 넘치고 톡톡 튀는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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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는 그 해 어느 가을밤에 바틀 불Bartle bull이라는 남자를 만났다. 바틀과 함께 어번 산Auburn moutain으로 소풍을 갔다. 어번 산은 작은 호수가 정상에 있고 부드러운 잔디로 덮여 있었고, 꽃이 만발한데다가 고목이 있어서 소풍을 가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바틀과 에디는 부드러운 잔디 위에 앉아서 두 종이가방에 든 소풍 도시락을 열어 다이커리 , 화이트 와인, 고기가 들어간 파이,캐비어, 치즈, 치킨들을 꺼냈다. 에디는 음식을 보자 입맛을 다셨다. 에디는 당시 정신 병원에서 나온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이런 자유를 만끽했다. 에디는 케임브릿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조각을 하는데 몰두했고 가족들과는 일주일에 약 세번 정도, 많이는 다섯 번 정도 시내에서 만나곤 했다.

다이커리 럼주,레몬 주스,설탕 등으로 

만드는 칵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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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는 시시각각으로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는 여자였다. 나는 오늘 어떤 종류의 생물인가? , 나는 이것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나는 저것을 좋아하는가? 정해진 자아가 없이 유동적으로 변했다. 애디는 매우 어려울 때도 있었고, 정말 온화할 때도 있었다. 또한 에디는 창조적일 수도 있었고, 조각을 할 수도, 한 주를 짜임새 있게 잘 보내기도 했다. 아니면 반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아무 계획도 하지 않고서 아무 것도 하지 않기도 했다. 그게 에디의 예측 불가능한 매력의 일부였다. 섹스에는 예민했다. 에디의 성격처럼 때때로 다르긴 했지만 에디에게 이에 대해 이야기 하면 정말 가볍게 대했다. 즉석으로 하기도 했고 하찮게 여겼다. 에디는 그래도 가벼운 남자들과는 자지는 않았는데, 그렇게 만들면 미련이 남아서 에디를 계속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우쭐대었다.

에디와 바틀은 친구들과 같이 버뮤다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에디의 피부는 정말 창백했고 피부를 태우지 않기 위해 햇볕 을 쬐지 않았다. 보스턴의 로간 공항Logan airport에서 죽치고 기다리고 있을 때 바틀과 부스에서 사진을 찍었다두 번째로 찍을 때 에디는 4장의 사진을 마치 각각 모두 다른사람 처럼 보이도록 찍었다. 에디는 완전히 다른 사진들을 찍을 거라고 말하고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그리고는 에디는 바틀과 함께가 아닌 다른 무리와 함께 공항을 나섰다. 그 이후로 에디는 바틀을 만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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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는 꿈이 컸고, 매우 세련되었으며, 에디의 몸을 건드리지 않는 똑똑한 친구들을 두었었다. 케임브리지에 있던 그 시기가 에디의 인생에 있어서 황금기였다. 케임브리지 최고의 퀸카였고, 여러 남자들을 홀리고 다녔다.

그런데 에드몬드 헤네시Ed Hennessy는 의외였다.헤네시는 무척이나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남자였다.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튀는 행동을 열심히 했었다. 헤네시는 에디를 쟁취하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했는데, 처음 에디에게 접근 할 때 하버드 대학의 신입생을 에디에게 남자친구로 소개시킨 다음 친구 웨인 척의 도움을 받아 에디의 번호를 땄고 5초마다 에디와 데이트 할 생각을 하면서 전화를 걸었다. 덕분에 에디를 몹시 화나게 했지만 이런 노력들의 결과로 남자에게 휘둘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또한 남자가 자신의 몸에 손대는 것도 싫어했으며 그리고 데이트 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던 에디와 헤네시는 가까워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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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4월 20일 에디의 스물 한 번째 생일 때 헤네시와 에디는 데이트를 했는데,에디가 막 할머니로부터 믿을 만한 기금에 가입했을 때 였다. 파티는 하버트 보트 하우스에서 했는데 거기에서 에디는 신들린 듯이 춤을 추었다. 모두가 에디와 춤을 추고 싶어했고, 저녁동안에 세번 옷을 갈아 입으면서 춤을 추었다. 옷을 계속 바꿔 입어서 못알아 보게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에디는 확실히 케임브리지에서 조금은 다른 특별한 존재였다.

 ▲에디 세

즈윅과 에

드몬드 헤

네시, 1964년

 생일 파

티에서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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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와 헤네시는 많은 것들이 비슷했다.

신문을 절대 읽지 않았다. 최신 유행에 대해 무척 아는 게 없었다. 단지 헤네시와 에디는 걸어다니면서 거리에서 본 것들이 전부였다. 에디와 헤네시는 무척이나 가까운 사이였다. 밤까지 붙어 있었고 에디는 말을 조각하는 작업을 무척 열심히 했다. 물론 둘은 그저 친구였다. 에디는 항상 책을 끼고 다녔다. “두 도시 이야기” 같은 책을 들고 다녔다. 항상 책의 첫 문장만 읽었다. 하버드 대학은 언제나 책가방을 들고 다니며 책과 공책을 펼쳐보는 풍토였기 때문에 에디도 그에 따라 책을 산 것이다.처음으로 한 사람이 이름을 물어왔을때 헤네시는 에드몬드 헤네시, 하버드대 64학번,에디는 에디스 세즈윅Edith

Sedgwick전 조각을 공부해요. 라고 답했다. 그리고 “빨갱이가 되느니 죽는게 낫다Better

Red than Dead”라는 표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에디와 헤네시는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시사에 관심이 없어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기 때문 이다. 에디의 답변이 압권이었다. 들고있던 책 “A Tale of Two Cities”을 툭툭 치며 가리켰다.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라고. 인터뷰를 하는 사람은 완전히 벙쪘다. 에디는 RED를 READ 로 알아 들은 것이었다.

Better Red than Dead 미국과 영국에서 1950년대 

공산주의를 물리치기 위해서

한창 사용하던 슬로건. 

공산주의자가 되느니 죽는게 

낫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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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64년 여름 에디는 메르세데스 벤츠에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뉴욕으로 향했다. 우선 뉴욕 71번 공원 근처 할머니의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에디는 뉴욕에서 모델을 하고자 했고 패션모임 에서 그녀의 다리를 선보였다. 에디의 다리모양은 당시에는 그리 각광받지 않는 모습이었는데 일명 피아노 다리라고 불리는 얇고 가는 다리였다. 하지만 모임이 끝날 때 즈음 에디의 다리는 예쁘다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에디는 어렸을 적 항상 옷을 어머니의 취향대로 수수하게 맞춰서 입었었다. 그랬던 그녀가 뉴욕에 와서는 붉은 여우털 조끼에 모자와 커다란 공작 깃털 귀걸이 그리고 이국적인 백에 검은 스타킹과 하이힐 부츠를 신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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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는 모델일에 열중하면서 뉴욕에서의 생활을 무척 이나 즐겼다. 1964년 가을 에디는 할머니댁을 떠나서 뉴욕의 한 아파트로 이사하게 된다.작은 아파트였는데 가끔 부엌에 정신없이 쓰레기들이 너부러져 있고는 했다. 특별한 상황이 생길 때만 깨끗하게 청소했고 막힌 싱크대는 누가 나서서 뚫어주기만 기다렸다.

그리고 방에는 환각제인 LSD가 많이 있었다. 에디는 LSD를 먹고 운전하곤 했다. 운전 중에 교통신호를 완전히 무시했고 단지 에디 자신의 규칙만을 적용했다.에디는 운전을 즐겼는데 마치 말을 타고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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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돈을 물 쓰듯이 사용했다. 에디는 6개월 동안 8천달러를 썼는데 보통 리무진 서비스에 대부분의 돈을 사용했다. 에디의 돈을 만지는 미지의 남자들이 있었다. 리무진을 탈 때면 항상 에디는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이야기 했다.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든 돈을 가지고 있지만 에디의 결정권은 없었고, 이에 대해 무척 화를 냈었다.

에디는 할머니의 아파트에 친구들을 데려오곤 했는데 정말 놀라운 곳이었다. 에디의 할머니는 식물인간이었는데 에디는 친구들에게 각성제를 대접하며 재미있게 놀았다. 그녀는 약에 완전히 취해 있었다. 그 당시 에디는 자신과 같이 미친 사람들에게 소름끼치도록 커다란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람들에 대하여 “큰 슬픔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곤 했다.” 에디는 자신의 불길한 운명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런 운명은 에디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동시에 그녀는 도덕적이지 않았고, 타고난 거짓말쟁이였다. 그리고 어느 누구라도 방탕하게 놀도록 밀어줄 수 있었다. 그리고 몸파는 여자 같을 때도 있었고 고통으로 신음을 내기도 하였고, 때로는 무척 까칠하기도 했었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린애 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에디는 잠자리에 드는 것을 무서워 했다. 그녀에게 잠드는 것이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마치 우리에 같인 짐승처럼 불안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에디는 항상 모든 것을 한계로 밀어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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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신년 전날밤 에디의 오빠 바비는 할리데이비슨을 몰다가 버스에 치여 중태에 빠졌다가 1965년 1월 12일에 생을 마감했다. 에디는 오빠 바비가 사고로 죽을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그 때 즈음 에디도 캘리포니아 외곽에서 큰 사고를 당한다. 운전 중이었다. 빨간 불인데 신호를 무시하다가 사고가 난 것이었다. 큰 세단 자동차가 오른쪽에서 받았고, 차는 박살났다. 에디는 무릎을 크게 다쳤고 동승자는 눈 오른편이 크게 찢어졌다. 에디는 아빠가 이 사고를 빌미로 다시 정신 병원에 집어 넣을까봐 무서워했다. 그래서 에디는 엄마와 함께 이 사실을 아빠에게 숨겼다. 에디는 술을 마시고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월초 에디는 언딘에서 열린 트위스트 파티에 있었다. 에디는 사고로 다리를 다친 상태에서도 나타나서 웃으며 한 발로 균형을 잡으며 춤을 추었다. 잘못하면 영원히 불구가 될 수 있는데도 에디는 밤새도록 춤을 추었다. 에디는 유혹에 무척 약했고, 상처를 잘받았다정신적으로 흐트러짐이 많았다. 그녀는 절대 문장을 마무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굴을 비추는 일이 없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주위를 배회했다. 무척이나 주의가 산만한 성격이었다. 술을 마시면 에디는 항상 아빠에 대한 험담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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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디와 척

 웨인

한편 에디의 대학친구인 척 웨인Chuck Weind은 에디에게 있어서 큰 버팀목이 되었다. 에디도 척 앞에서는 수줍은 많은 소녀처럼 행동했다. 척도 이런 에디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에디는 역시 복잡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이를 개선하기는 요원해 보였다. 그래서 척은 에디를 평생 책임진다.에디는 일상의 작은 문제들을 대처하지 못했고 항상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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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65년 레스터 퍼스키Lester Persky의 파티에서 에디는 앤디 워홀을 만났다. 그 곳에서 에디는 락앤롤을 들으며 발레풍 춤을 추었었다. 레스터는 워홀의 16살 때부터의 막역한 친구로서 파티를 자주 열었다. 레스터가 여섯 명을 워홀이 스무 명을 초대했었다.

당시에도 앤디 워홀은 슈퍼스타를 거느린 바쁜 몸이었다.레스터는 워홀에게 다가가 “넌 오늘 새로운 슈퍼스타를 만나게 될거야, 에디 세즈윅이라고 너의 새로운 슈퍼스타가 될거라고.”라고 이야기 했다.레스터는 그리고 에디를 파티에 불렀고 에디는 마침 친구 척 웨인을 끌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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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Andy와 에디Edie 운명적인 만남의 순간이었다.워홀은 숨을 깊게 내쉬며 짧은 말을 음절로 끊어가며 이야기 했다.

“오, 저 여자 진짜 예 -쁘-네!.”

워홀은 첫 눈에 에디에게 반하게 되었다.워홀은 다음날 곧장 자신의 팩토리에 척과 에디를 초대해서 함께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에디는 워홀의 팩토리 일원이 되었다. 에디가 워홀을 만난 직후 둘은 영화를 만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워홀은 에디를 지도하기 시작했고 금새 적응하도록 만들었다. 에디는 점차 특별한 카메라 속 주인공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에디는 앤디 워홀의 팩토리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에디 그리고 앤디. 둘은 같은 중류의 옷을 입었다. 보트넥, 줄무늬 티셔츠 워홀은 검은 골덴바지와 바나나 모양의 높은 굽의 부츠를 신었는데 끔찍한 부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디는 점차 앤디 워홀의 복장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같은 옷임에도 에디가 입으면 괜찮아 보였다. 티셔츠와 검은 스타킹, 긴 귀걸이는 파격적이고도 매혹적으로 아름다웠다. 에디는 워홀을 밖으로 끌고 나와서 현실 세계에 가져다 놓았다. 워홀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한 사람인데 에디는 그런 그를 인정했다. 워홀은 에디가 데려가기 전에는 절대 파티를 가지 않게 되었다. 워홀에게 에디는 뮤즈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뮤즈 Muse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9명의 학문과 예술의 여신.

중세~현대에 이르러서는 작가를 

포함한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 묘사되었다. 이들에 대한 

묘사는 등장하는 작품의 개성에 

따라 각기 여러 가지 모습으로  

등장하며, 성별은 신화에서처럼  

대부분 여성이지만 때로는  

남성일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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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yl은 에디가 앤디 워홀의 영화에 출연한 첫 작품이었다. 촬영날 에디는 거의 끝날 무렵 마지막 순간에 찾아왔다. 리허설도 뭐고 아무 것도 없이 일을 망치려는 모습이었다. 앤디 워홀은 에디를 큰 트렁크 위에서 기대고 담배를 피면서 침을 찍찍 뱉으며 한 남자를 고문하는 장면을 지시했다. 촬영은 시작되었고 앤디 워홀은 에디를 영화의 마지막 몇 분에 투입시켰다. 사실 영화는 모두 남자가 출연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워홀은 말했다.

“ 괜찮아. 에디는 남자 애 처럼 보이잖아.”

그녀의 자태가 확실히 평가되기 시작했다. 에디는 가슴이 빈약한 대신에 다리가 끝내줬다. 모두가 그녀의 다리를 내내 주시했다. 그리고 에디는 차 사고로 생긴 흉터를 눈물방울 같은 장식으로 잘 가리고 촬영에 임했다. 결국 일은 잘 처리되었다. 이 작품은 에디가 유명한 스타가 되는데 견인차같은 역할을 했다. 이어서 에디는 앤디 워홀과 함께 어려편의 영화를 찍게 된다. 그 가운데 한 편의 영화에서 워홀이 질투심과 배신감에 넘쳐 영화를 찍으며 에디 세즈윅에게 심리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씬이 나오는데 이 영화가 바로 뷰티 넘버 2 이다. 이 영화에서 상류층에서 온 그녀의 배경을 토대로 에디에게 투영시켜 그녀의 정신분열적 고통을 이끌어 내는 장면이다. 분명 이것은 정신분석학적 치료에 있어서 가장 극단적이고 위험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당시 워홀의 작품 중 가장 큰 찬사를 이끌어내는 아이러니컬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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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

화 “B

eauty Part.II”의

 에디 세

즈윅, 앤

디 워

▲ 영

화 “V

inyl”의

 에디 세

즈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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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은 에디가 가장 잘 나가던 시기였다. 짧은 은빛 머리와, 예쁜 눈 그리고 나비같은 손가락 , 말아 올린 소매자락, 예쁜 다리... 모든 것이 완벽한 가장 핫한 여배우였다. 20대에 접어들면서 세드윅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은빛에 가까운 금발로 염색한다. 이와 함께 가짜 속눈썹이라던지 쌍커풀을 과장되게 올려 그리는 드라마틱한 아이메이크업을 비롯해 진한 화장법을 구사하기 시작한다. 또한 이 강렬한 눈화장에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그녀의 눈썹을 진하고 굵은 라인으로 바꿔 그린다. 여기에 입술의 색깔은 주로 밝은 핑크였다. 또한 장식이 화려 하고 오버사이즈의 귀걸이를 자주 착용했는데, 그녀의 짧은 헤어스타일에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었다. ‘쌩얼’의 에디는 굉장히 어리고 순한 이미지였지만 그녀는 이러한 강렬하고 과장된 메이크업이나 스타일을 통해 세련된 느낌을 만들어 내었다. 또한 이것은 숏커트 헤어스타일과 더불어 그녀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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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이것은 예쁘고 아름다워 보이기 위한 스타일 전략이 아니라 어린시절 오빠의 죽음으로부터 받은 심리적 충격와 내면의 우울함에서 비롯된, 즉 심리적인 반응에 가까운 것이었다. 마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연스럽게도 하나의 패션트랜드가 되었다. 그녀의 아웃핏은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과는 조금 동떨어진 것이었다. 모든 패션의 스타일이 다 있는 맨해튼에서 조차도 그녀는 유별난 패션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레오타드(몸에 달라 붙는 옷) 블랙타이즈, 보트넥혹은 스트라이프패턴, 오버사이즈의 귀걸이와 목걸이가 그녀를 상징할 수 있었던 아이템들이었다. 특히나 블랙타이즈는 그녀의 스키니함과 시크한 스타일을 상징해 주는 것이었다.이 타이즈나 레오타드 패션 역시 전략이었다기 보다는 하나의 일화로 우연히 탄생한 패션 스타일이었다.

그녀에 따르면 그녀는 한 때 앤디 워홀과 함께 재즈 발레를 자주 즐겼고 그 때문에 좀더 편하게 춤을 추고자 레오타드에 타이즈, 혹은 티셔츠 위에 타이즈를 매치하고 밖으로 나갈 때는 대충 코트를 둘러 걸쳤을 뿐인데 그것이 패션계의 주목을 받은 것일 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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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충동적으로 쇼핑을 하는 스타일이었다고는 하지만 패리스 힐튼과 같은 상속녀들과는 조금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사교계의 명사이자 부모에게 엄청난 재산을 상속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럭셔리한 스타일보다는 보헤미안에 가까운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준것이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보그 매거진 역시 그녀를 주목하여 YOUTHQUAKER라는 닉네임을 붙이기 까지 했지만 그녀의 엉뚱한 행동과 약물복용등의 이유로 보그패밀리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 때 최초로 보그로 부터 It Girl 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며 모든 여성들의 목표가 되었다. 모즈룩은 이때 선보여진 커다란 흐름 중 하나였는데 60년대, 그 격동의 시대에서 에디 세즈윅은 문화라고도 할 수있는 모즈룩의 대표주자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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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1965년의 에디와 앤디의 가장 큰 업적은 워홀의 필라델피아 전시회였을 것이다. 앤디 워홀은 전시회는 가장 개성넘치는 집단들이 모인 장소였다. 젊은 전위 예술가들이 총망라하여 자태를 뽐내는 자리였다. 예고 프로그램을 찍기 위해 텔레비전 카메라들이 왔는데 필라델피아에서 일어난 가장 대단한 사건이었다. 수많은 카메라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텔리비전의 압도적인 불빛들이 그림들로 쏟아져 들어왔다.그리고 그들을 비평했다. 에디 세즈윅과 앤디 워홀에게 발 디딜틈 없이 모여들었다. 앤디 워홀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람들을 몰고 다녔다. 에디는 루디 게르나히가 디자인한 아방가르드 풍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티셔츠에 소매가 죽 늘어진 형태의 드레스였는데 소매를 말아서 손목부분에 주름을 잡아 놓았었다. 그리고 엄청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에디는 청중들을 휘어잡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소매를 내려 마치 코끼리 코처럼 만든 다음에 군중들에게 내리고 다시 소매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춤을 추고 마이크를 붙잡고 인터뷰 형식의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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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에디는 일종의 쇼 비지니스를 한 것이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모두 그런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결정적이었는데 시간이 흐를 수록 점차 통제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처음에는 전시회인데 벽에 그림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분노를 일으켰다. 앤디 워홀은 단지 두려웠다. 공포에 질려 머리가 백지 상태였고 에디 세즈윅 역시 죽음을 두려워 했지만 매 분을 마다하고 찬양을 받았다. 에디는 자신의 기질을 살려서 마이크를 가지고 40분동안에 일종의 혼잣말을 늘어놓은 것이었다. “오, 오늘밤 여러분들을 만나서 정말 기쁩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좋은 시간을 갖는게 어떻까요?, 그리고 앤디 워홀은 가장 멋진 예술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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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문제가 있었다. 팩토리의 사람들이 점차 에디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필요환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녀가 이해할수 있는 부분이었다치지만, 에디는 그에 대해서 매우 상처를 받고 있었다. 앤디 워홀과 에디 세즈윅은 점차 멀어져갈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첫번째 단서로 1965년 7월 영화 “My Hus-tler”를 찍을 무렵에 있었던 일이다.척 웨인이 구상한 영화였다. 웨인은 에디를 위한 대사를 아무 것도 적지 않았는데 놀랍지 않을 것이 남자들 끼리의 동성애를 다룬 영화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에디는 불만을 토로했다. 워홀의 사람들은 에디가 그들 사이에서 말썽꾸러기라고 느끼고 있었다. 에디는 협동을 하지 않아서 무척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들은 42번가의 술집으로 가서 잉그리드 본 세플린(Ingrid von Schefflin)이라는 여자를 찾았다.그들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며 이야기 했다. “ 이 여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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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에디처럼 생기지 않았나?, 에디한테 이 참교훈을 가르키자. 인기있는 영화배우로 만들고 에디에게 말하자. 그녀가 새로운 큰 스타라고 ” 그들은 잉그리드의 머리를 에디처럼 잘랐고 에디처럼 화장했으며 그녀의 이름은 잉그리드 슈퍼스타로 변하였다. 단지 에디를 경악시킬 발명품일 뿐이었다.잉그리드는 자신의 새 이름 잉그리드 슈퍼스타를 마음에 들어했다. 한편으로 그녀는 슈퍼스타로 길러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두려워했다. 아이와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그녀는 무척 자연미인인데다가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왜냐하면 그녀 주위에는 사회적으로 유명한 여배우들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한편 에디는 이런 잉그리드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고,위협으로 느끼고 있었다.

▲왼쪽이 에

디 세

즈윅 오

른쪽이 잉

그리드 슈

퍼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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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은 에디를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를 벙찌게 할 수 있는 그와 대립하는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에디는 당시 딜런의 근처에 있는 아첨꾼들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였다. 딜런은 언제나 여자와 적대적인 관계를 갖고 있었는데, 그는 사람을 간보는 성격이었다. 딜런은 에디의 정신을 존중했다. 딜런의 곡 “Just Like a Woman” 은 딜런이 에디에 관하여 쓴 것이었다. 밥 딜런은 에디와 영화를 찍으며 관심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앤디 워홀의 영화는 아니었다. 밥 딜런과 가까워 지면서 에디 세즈윅과 앤디 워홀은 멀어지기 시작했다.

에디는 더 이상 앤디 워홀과 작업을 하고 싶지 않아했다.

이 시기는 매우 유별난 시기였다. 앤디 워홀은 변화의 시기였다. 그는 그의 영화제작을 위한 돈을 더 벌기 위해서 새로운 디스코 클럽을 만들고 새로운 밴드. The Velvet Underground 를 결성시켰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에는 보컬이 필요했는데 마침 니코라는 여자가 들어왔다. 니코는 유럽에서 밥 딜런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실 밥 딜런은 몇개월 간 몰래 결혼을 한 상태였다. 결혼은 1965년 11월에 했었다.

▲에디 세

즈윅과 밥

 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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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비밀이었고 거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철저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밥 딜런의 간곡한 요청에 결혼식에 들러리로 참석한 니코에 의해 들통나게 되고 이 사실을 안 앤디 워홀은 끈질기게 캐물어왔다.

에디 세즈윅을 아는지, 밥 딜런이 결혼 한 것이 사실인지?..

밥 딜런과 에디 세즈윅의 관계를 알게 된 니코는 창백해졌다. 그리고 이내 몸을 떨었다. 밥 딜런은 에디와 영화를 찍을때 관심있는 기색이라곤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어쨌든 이 일은 앤디 워홀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리고 에디 세즈윅은 밥 딜런과 결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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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가 앤디 워홀과 결별하고 딜런과도 파토가 난 뒤 에디는 필사적으로 모델을 하고 싶어했다. 트위기와는 다르게 에디 세즈윅은 그 당시 미모가 한 껏 물올라 있었다. 누구보다도 섹시하고 미국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였다. 에디는 무너져있었고 불운하고 폭발하기 일보직전의 불안한 상태였다. 클리블랜드에서 시작한지 얼마 안된 실험적인 성격의 브랜드 Paraphernalia의 첫번째 모델을 에디 세즈윅이 맡았다. 에디는 매우 소년같았고 당시 유니섹스 룩의 선두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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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브루클린에서 VOGUE 잡지에 쓸 사진촬영을 했는데 지안니 페나티Gianni Penati라는 사람이 에디를 촬영했다. 에디는 촬영장에 마치 보헤미안 처럼 입고왔다. 매우 자연스러운 복장이었다. 파란 청바지에 더플코트 같은 옷을 걸치고 왔다. 트위기는 항상 예쁘게 꾸몄다는 것을 티나게 하고 나타나는데 특히 머리나 손톱이, 에디는 아니었다. 꾸밈없는 모습으로 스스럼없이 왔다. 에디의 어린아이 같은 손은 귀여웠다. 그리고 때나 얼룩같은게 없이 순수한 모습이었다. 마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스튜디오에서 Penati는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마치 여자에 홀려 정신나간 이탈리안 사람같이 에디에게 장난을 쳤다. “ 아아~~ 당신은 참 아름답군요!” 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린아이처럼 장난을 걸기도 했다. 그의 이런 노력에 에디는 마음을 풀고 촬영에 임했다. 카메라 앞에서 농담에 웃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웃는 모습은 천진난만하고 매력적이었다. 몇몇 사진들은 잡지에 사용되지 않았는데 그 사진은 에디가 멜빵달린 코르셋 비슷한 검은 란제리를 입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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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66년 10월 17일 월요일, 에디는 친구의 아파트에서 놀고 난 후 친구가 에디를 그냥 재운 채로 나와버렸다.아마도 에디는 그 날 마약을 많이 하고 담배를 그냥 입에 문채로 잠에 들었나보다. 그게 발화의 원인이었다. 에디는 운좋게도 그 강렬한 화염 속에서 살아 남았다. 그리고 에디는 병원으로 실려가게 되었다. 불이 나고서 에디는 서쪽 23번가의 첼시 호텔로 이동하게 되었다. 에디의 부모님은 시내에 있는 여성전용호텔로 가기를 바랐지만 에디는 마치 예술가의 자격과 같은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첼시 호텔로 갔다. 같은 층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에디를 알고있었다. 그리고 다른 층도 금새 소문이 퍼져 나갔다. 스타가 거기 있다고...첼시 호텔의 좋은 점은 숙박비가 별로 비싸지 않아 돈 문제가 있는 사람들 한테는 최적의 장소였다. 에디는 첼시 호텔에 살면서 자신의 돈을 관리해 줄 관리자 “세이무어 로젠”을 고용했다. 중년인 그는 많은 사업가들의 자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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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하고 있는 프로였다. 에디는 1966년 크리스마스에 산타 바바라의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몇개월 간 머물렀다. 어찌됐든 첼시에 머물렀던 시간들은 에디에게 치유의 시간이었다. 에디가 캘리포니아의 집에 간 가장 큰 이유는 뉴욕에서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들이 있는 캘리포니아로 오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에서의 크리스마스를 뒤로하고 에디는 다시 첼시호텔로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날 에디가 감자를 오븐에 구우려다가 오븐이 폭발하고 화재가 났다 .에디 인생에서 두번째 화재였다. 그 때 에디는 담요 하나만 걸친 몸이었는데 간신히 구조되어서 로비바닥에 뉘어졌다. 화염에 모든 방이 타버릴 정도의 큰 화재였다. 그리고 손에 화상을 입고 한동안 붕대를 감고 지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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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은 할리우드 언덕의 매우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곳이었다. 주변 땅은 철저히 방치된 상태였다. 언덕아래의 수영장은 이끼와 녹조류가 가득 끼어있었고 정원사의 관리가 몇년째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 무렵 에디는 패트릭 틸든이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그는 예전 에디의 남자친구 밥 딜런의 절친이었다. 밥 딜런은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오기 전에 잠시 캐슬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 딜런의 노래 “Leopard-Skin Pill box Hat”은 에디를 위해 쓰여진 곡이었다. 누구나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에디가 레오파드를 가끔씩 입었기 때문이다. 밥 딜런은 매우 비꼬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노래도 상당히 찌질했다. 밥 딜런이 어찌했든 에디와 패트릭은 캐슬에서 로맨틱한 사랑을 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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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루루를 찍고나서 에디는 뉴욕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버지가 죽기 전 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암에 걸려서 위독하다고 했다. 집에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은 어머니가 아버지가 수화기 까지 갈 수 없다면서, 네가 아버지에게 했던 일들을 생각해보라고 이야기 했다. 마치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듯 했다.결국 에디는 통곡하며 울었다. 그러다 몇 분 쉬고를 반복했지만 결국 아버지는 에디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에디는 아버지에게 여러 감정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한편으로는 싫어하고... 수화기를 계속 들며 기다리며 울고 매달렸다. 그리고 때로는 성질내고 소리를 질렀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에게 당했던 안좋은 기억들이 다시 돌아오는 듯 했다. 어렸을때 아버지가 에디를 종들 앞에서 회초리질을 했었다고 한다. 어느날 밤 에디의 아버지는 에디가 태어난 Cottage Hopital에서 결국 숨을 거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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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갔을 무렵 에디는 그라시에 스퀘어 병원에 있었다. 에디의 약물중독이 심해진 탓이었다. 결국 에디는 1968년 가을 맨하튼의 병원에서 빠져나와 고향으로 돌아오게되었다. 에디는 걷지 못하고 누워있기만 했다. 의사는 뇌에 혈액이 도달하지 못하는 증상에 빠졌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말도 꺼내지 못했다. 보다 못한 에디의 오빠 조나단이 에디에게 포기하는 심정으로 말을 건냈더니 에디가 간신히 말을 꺼내었다. “나..나...나.. 알아..알..아...나.아...아.. 할..수 있는...데...어..려워... “ 가까스로 회복한 에디는 다시 마약에 손을 대었다가 경찰에게 붙들려 1969년 8월 에디가 태어났었고 아버지가 돌아간 Cottage 병원의 정신과에 들어갔다. 에디는 병원에서 행복해했지만 매일 밖으로 나가고 싶어했다. 그리고 에디가 병원 밖에 나갈때에는 바이킹이라는 폭주족들의 모임에 함께 했었는데 거기서 에디는 공주대접을 받았었다.

1971년 1월17일 부터 6월 4일까지 에디는 치료를 받았다. 전기 쇼크 치료였었다. 그 동안 단 한명 마이클 포스트라는 사람이 에디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에디에게 무척 살갑게 굴었었다. 그리고 그는 유일하게 그녀가 침대로 끌고 가지 못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스물한살까지는 숫총각으로 지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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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에디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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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7월 24일 에디는 랜치 목장에서 결혼을 했다, 더운 여름이었지만 그 날만큼은 멋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결혼을 하고서 에디는 아이를 가지기를 원했다. 그러나 검사를 해본 결과 에디는 불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은 에디에게 금주와 약을 끊게 했고, 한동안 좋은 나날들이 이어졌다. 8월의 해변에서,산타 바바라의 누드 비치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해가 지면 밖으로 나가서 춤을 추었다. 에디는 과연 엄청난 춤꾼이었다. 에디는 여전히 영화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고, 예술학교에 가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내었다. 하지만 진통제를 처방받으면서 에디는 곧 진통제와 술을 함께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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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1월 15일 밤 에디는 산타 바바라 미술관의 패션쇼에 참석을 했다. 텔레비젼쇼 An American Family의 촬영장이었다. 패션 쇼가 끝난 뒤 에디는 파티에 참석해서 보드카를 마셨다. . 분위기를 돋우려고 파티 에 손금 읽는 사람이 왔다. 그는 에디의 손금을 보더니, 특히 끊어진 생명선을 보고 흠칫 놀랐는데 그에게 세즈윅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알고 있어요.”

남편과 사랑을 나누고 다음날 아침 7시 30분, 남편이 에디를 깨웠을때 에디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사인은 사인은 ‘음주 후 약물과다복용에 의한 심장마비’ 였지만 사실상 진통제와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베게에 파묻힌 얼굴을 들 힘조차 없어 질식한 것이었다. 28세의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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