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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Anseong 148 201003 따사함이 울려 퍼지는 고을 안성으로 떠나는 봄나들이 한 세대 전 박인희가 노래한 ‘봄이 오는 길’에는 손님이 주인공이었다. 산 너머 조붓한 오솔 길로 걸어오는 봄이 바로 손님이었다. 가인(歌人)은 봄이 찾아온다는 아지랑이의 속삭임에 하얀 새옷과 분홍신으로 단장하고 문을 나섰다. 고운 손님을 웃으며 반기려고. 오늘, 록밴드 자우림의 김윤아가 노래하는 ‘봄이 오면’에는 당신이 있다. 나와 단둘이 하얗게 핀 꽃 들녘으로, 연둣빛 고운 숲 속으로 봄을 맞으러 갈 당신이다. 경기도 안성 사람들에게 봄은 손님이며 당신이다. 들판을 가로질러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자 온기로 다정히 품어주는 당신이다. 옹기종기 담장 안에 모여 봄을 맞이하는 안성 사람들 의 이야기를 전한다. 사진 김주형 기자·장성배 기자

따사함이 울려 퍼지는 고을 안성으로 떠나는 봄나들이img.yonhapnews.co.kr/basic/svc/09_images/special201003.pdf · 있다. 두리마을 자전거 인포센터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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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An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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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함이 울려 퍼지는 고을

안성으로 떠나는 봄나들이 한 세대 전 박인희가 노래한 ‘봄이 오는 길’에는 손님이 주인공이었다. 산 너머 조붓한 오솔

길로 걸어오는 봄이 바로 손님이었다. 가인(歌人)은 봄이 찾아온다는 아지랑이의 속삭임에

하얀 새옷과 분홍신으로 단장하고 문을 나섰다. 고운 손님을 웃으며 반기려고.

오늘, 록밴드 자우림의 김윤아가 노래하는 ‘봄이 오면’에는 당신이 있다. 나와 단둘이 하얗게

핀 꽃 들녘으로, 연둣빛 고운 숲 속으로 봄을 맞으러 갈 당신이다.

경기도 안성 사람들에게 봄은 손님이며 당신이다. 들판을 가로질러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자 온기로 다정히 품어주는 당신이다. 옹기종기 담장 안에 모여 봄을 맞이하는 안성 사람들

의 이야기를 전한다.

사진 김주형 기자·글 장성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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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마을 엑스포

풍산개는 개마고원 근방 함경남도 풍산군이 원산지로 진돗개와 쌍벽을 이루는 명견이다. 예부터 ‘호랑이 잡는 개’로 소문이 났다. 우연히도 안성에는 풍산개 마을과 호랑이 마을이 지 척에 있다. 풍산개 마을에는 800마리가 넘는 풍산개가 살고, 호랑이 마을에는 수십 마리의 호랑이가 벽화와 조각으로 깃들어 있다. 풍산개와 호랑이는 간혹 마주치는 일이 있지만 서

로 무덤덤하다. 대대로 핏줄 속에 흐르던 서로에 대한 적대감과 경계심이 모두 눈 녹듯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경인년(庚寅年) 한 해를 평화와 공존의 해로 삼고 싶다면 춘삼월에 안 성을 찾아가볼 일이다. 다정하고 평안한 얼굴의 사람들과 함께 봄기운 흐드러진 들녘을 거닐면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보듬고 싶은 마음이 시나브로 움트는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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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돌리마을은 2008년 행정안전부가 주최해 전국 1천73개 마을이 경합을

벌인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콘테스트’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산골짜기

에 자리한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서당

에서 정재균 훈장에게 사자소학, 명심보감 등을 익히고 서예를 배우는 한

문 체험이 대표적이다.

한문 체험은 당일치기부터 장기 체류 프로그램까지 일정이 다양하다. TV

와 게임, 학원공부가 생활의 전부이다시피 한 작금

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싸

리나무로 깎은 책대로 한문을 한 자씩 짚

어가며 읽다 보면 자세는 물론 마음가짐

까지 바로잡힌다고 한다. 경어 사용법과 식사

예절, 고누와 팔괘윷놀이 등 전통 놀이도 배울 수 있

다. 민물고기 잡기 등 생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031-672-7667, www.hindolri.com

흰돌리마을안성 금광면 석하리 양지편(흰돌리마을)은 한문을 테마로 한 마을이다. 청학동

을 연상시키는 한문 서당이 연중 운영된다.

안성에 풍산개를 처음 들여온 이는 10대째 덕산리 사람인 이기운 씨다. 농장

을 운영하는 이 씨는 1993년 북한에서 풍산개 다섯 마리를 수입해 기르기 시

작했다. 진돗개보다 골격이 크면서도 사람에 대한 공격성은 거의 없는 풍산

개의 매력에 빠져 십수 년을 지내다 보니 다섯 마리가 어느새 800여 마리로

불어났다. 이를 기반으로 풍산개 축제와 풍산개 테마파크 조성 사업이 기획

됐다. 또 풍산개 분양 및 체험 프로그램이 연중 운영된다.

풍산개 썰매는 농장 앞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탈 수 있다. 이 씨가

20여 년 전 묘목을 구해 심은 200여 그루의 메타세쿼

이아가 하늘을 덮을 듯 자라 아름다운 풍치를 만들어

낸다. 썰매는 오랜 훈련 과정을 거친 풍산, 풍국, 강

산, 금순이가 둘씩 짝을 이루거나 넷이 더불어 끈

다. 풍산개 썰매에 올라 메타세쿼이아 길을

달리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추억을 안겨

준다. 031-672-4348, http://cafe.naver.com/aspo

ongsang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포수와 몰이꾼을 동원해 한반도의 호랑이를 멸종시켰다. 1922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호랑이를 마지막으로 우리 땅에서 호랑이는 사라졌다. 호랑이마을은

한국 호랑이의 슬픈 최후와 호랑이에 얽힌 옛 이야기를 되새기는 데 안성맞춤이다. 장죽을

입에 물고 토끼와 이야기를 나누는 설화 속 호랑이부터 거대한 철제 로봇으로 부활한 21세

기 호랑이까지 감상할 수 있다.

복거마을은 옛 이름이 ‘호랑이가 엎드린 형국’이라는 뜻의 복호리(伏虎里)임에 착안해 2009

년 상반기에 아름다운 미술 마을로 조성됐다. 현재 인근 6개 마을과

함께 안성 두리마을을 구성하고

있다. 두리마을 자전거 인포센터

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튤립이 만

발한 플로랜드, 옹기체험장, 창

작 스튜디오를 지나면 호랑이가

살던 마을에 닿게 된다. 031-671-

3022, www.doori7.co.kr

호랑이마을안성 금광면 신양복리 복거마을은 ‘호랑이마을’로 불린다. 호랑이를 묘사한 그림과 조각품이 마

을을 장식하고 있다. 마을로 들어서면 어디선가 ‘어흥’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구메농사마을안성 죽산면 칠장리 신대(구메농사마을)는 우리 땅에서 복(福)이 가장 많은 마을이다. 넘쳐나는 복을

감당하지 못해 해마다 겨울이면 마을 주민들이 한데 모여 복을 지어 전국에 나눠줄 정도다.

구메농사마을은 안성 동쪽 차령산맥 줄기인 칠현산 골짜기에 자리한다. 조선시대부터 복조리 마

을로 잘 알려진 곳이다. 지금도 매년 농한기에는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복조리를 만든다. 올해는 38가구 중 25가구가 복조리 작업에 참여했는데, 1가구 당 적게

는 300만 원에서 많게는 700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고 한다. 겨우내 소일거리 삼아 하는 부업치

고는 수입이 괜찮은 편이다.

복조리 재료는 대나무다. 가을에 마을 주변 산에서 1~2년생 산죽을 베어다 여러 가

닥으로 쪼개 껍질을 벗겨 말린 후 쟁여 놓았다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꺼내 복조

리로 만든다. 대를 이어온 능숙한 손놀림으로 1인 당 하루 40개 안팎의 복조리를 만

들어낸다.

구메농사마을은 복조리 만들기 외에도 계절별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마을 고샅에 서서 주변를 둘러보면 산비탈을 개간해 만든 논밭이 눈길을 끈다. ‘구메

농사’는 작은 마을의 소규모 농사거리를 의미한다. 070-7098-3096, http://gume.invil.org

사계절 흥미진진한 농촌테마마을 풍산개마을안성 삼죽면 덕산리에는 늠름한 풍산개 석상이 세워져 있다. 마을을 거듭나게

하는 데 초석이 된 풍산개를 아끼고 사랑하는 주민들의 마음이 담긴 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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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을 깨우는 소리와 몸짓안성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은 전국 지자체 공연단 중 관객 호응도가 가장 높은 축에 든다. 한 가닥 줄 위에서 수십 가지 잔노릇과 재담

을 선보이는 신세대 어름산이 박지나(23) 씨를 비롯해 저마다 출중한 재주를 자랑하는 단원들과 흥미진진한 공연 구성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단원의 절반가량은 안성 출신으로 옛 바우덕이 남사당패의 명맥과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인기로 먹고 사는 직업적 연예인이 존재했다. 이른바 광대다. 판소리, 가면극, 줄

타기, 땅재주, 인형극 등에 내로라하는 기량을 지닌 광대들이 조선 팔도를 유랑하며 사람들을 웃기고 울렸다. 남

사당패는 그 재주꾼들의 무리로 오늘날 대형 연예기획사에 해당된다.

안성 남사당패는 조선 후기 남사당패 중 가장 출중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남사당패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성 꼭두

쇠 바우덕이 덕분이었다. 바우덕이는 안성 서운면 출신인 김암덕(金岩德)의 별칭이다. 관객, 특히 사내들의 마음

男寺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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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사로잡는 미모와 옹골찬 소리가락, 바람에 휘날리는 줄타기 재주

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조선 팔도에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미색과 재능이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바우덕이는 1847년 안성의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난다. 궁핍한 집안

사정으로 다섯 살 때 마을을 지나던 남사당패에 몸을 의탁하게 되면

서 전설이 시작된다. 열 살이 되기 전 이미 풍물(농악), 버나(대접돌

리기),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꼭두각시놀음) 등 남사당

공연의 골갱이를 꿰찼다. 안성 남사당패 내에서 절대적인 신임을 얻

은 바우덕이는 열다섯 살에 패거리의 우두머리인 꼭두쇠 자리에 오

른다. 이후 그녀가 이끄는 안성 남사당패는 조선 최고의 광대 집단

으로 평가받게 된다. 인기가 치솟아 어느 고장을 가든지 푸짐한 음

식과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받았다. 공연에 쓰이는 악기와 의상도 언

제나 최상의 것을 취할 수 있었다. 남사당패 규모 또한 점점 커져 최

대 80여 명에 이르렀다.

흥선대원군과 얽힌 이야기는 바우덕이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고종

2년(1865) 흥선대원군은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공사 독려를 위해 전

국 각지에서 일꾼과 함께 남사당패를 동원했다. 당시 안성 남사당패

는 가장 뛰어난 재주를 선보여 꼭두쇠인 바우덕이에게 정3품 당상

관 이상의 벼슬아치가 쓰던 옥관자가 내려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바우덕이의 화양연화는 그리 길지 못했다. 스물세 살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죽어 안성 청룡사 부근 개울가에 묻힌다.

역사 속에 묻힌 바우덕이는 안성시가 지역 문화 계승과 발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재조명됐다. 안성시는 바우덕이에 관한

안성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이 선보이는 여섯마당은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등으로 구성된다. 신명 나는 장단과 신기에 가까운 재주로 보는 이들의 눈과 귀, 마음을 사로잡는다.

자료를 수집하는 한편 안성 남사당패 중흥을 위해 남사당전수관을 마련하고 매년 가을 바우덕이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2월 초 찾아간 바우덕이풍물단은 21세기판 종합예술극 ‘신남사당’의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신남사당’은 남사당의 전통 기예를 바탕에 두고 현대적 방식의 해학과 풍자를 가미한 작품으로 오

는 5월 1~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신남사당’에는 전체 풍물단원 30명 중

10명이 출연한다. 또 뮤지컬 등 현대 예술 전문 배우 10명이 참여한다. 류정석 단무장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준비한 작품인 만큼 ‘난타’나 ‘점프’에 뒤지지 않는 문화 상품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바우덕이풍물단의 올해 무료 상설 공연은 상반기(4월 17일~7월 31일) 매주 토요일, 하반기(8월 7

일~11월 28일) 토·일요일에 남사당전수관에서 진행된다. 오후 3시 마당공연으로 시작해 전통문

화체험교실, 틈새공연, 밤 종합공연 등이 이어진다. 특히, 하반기 공연은 올 여름 완공되는 700석

규모의 남사당 전용공연장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031-678-2518, www.namsadangnori.org

사진/안성시청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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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30대 이하 세대에게 유기는 낯선 물건이다. 반세기 전부터 자

취를 감추기 시작해 이젠 추억 속 생활용품이 되었다. 그나마 TV 사

극에서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소품 구하기가 여의치 않은지 요즘은

사극에서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유기는 좁은 의미로는 놋그릇, 넓은 의미로는 동(銅)을 기본으로 하

는 합금 기물을 말한다. 일제강점기까지 가장 보편적인 부엌 세간이

었다. 우리네 살림살이에서 빠지지 않던 필수품으로 거의 모든 음식

을 놋그릇에 담아 먹었다. 그릇 외에도 촛대, 요강, 대야, 꽹과리, 징

도 놋쇠로 만들어 썼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플라스틱,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등 새로운 재질의 생활

용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사양길에

접어들게 된다. 무엇보다

연탄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유기는 설 자리를 잃는다.

유기그릇이 연탄가스에 산화

돼 변색되고 녹이 스는 바람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밀려나게 된다.

안성 유기는 전통적으로 구리와 주석을 일정 비율로 배합한다. 구리에 주석(청동)을

넣을지, 아연(황동)을 넣을지는 무엇을 만들 것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정확한 배합과

숙련된 솜씨는 ‘안성맞춤’이라는 단어를 탄생시켰다. 조선시대 안성에서 제작된 유기

는 형태나 기능이 월등히 뛰어나 사대부들의 마음을 흡족케 했고, 그로 인해 ‘안성맞

춤’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유기장(場) 역시 한양보다 갑절 이상 규모가 컸다고 전해

진다.

관헌이나 사대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안성 유기의 명맥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

다. 현재 안성에는 유기를 만드는 공방이 하나 남아 있다. 반세기 전 20곳이 넘었던

유기공방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안성마춤 유기공방’이다. 선친인 향원(香園) 김근수

(1916~2009) 유기장의 뒤를 이어 김수영 유기장 보유자(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가

공방과 매장을 운영한다.

‘안성마춤 유기공방’은 매장이 있는 안성 시내에서 차량으로 약 5분 소요되는 안성공

단에 자리한다. 김수영 유기장의 지휘 아래 20여 명이 압연, 성형, 가질 등 단계별 작

업을 맡아 진행한다. 70대 두 명을 포함해 모두 수십 년 경력의 숙련공들이다.

김수영 유기장에 따르면 안성 유기의 전성기는 일제의 공출이 사라진 해방 직후였다

고 한다. 만들기 무섭게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유기가 사양길에 들어선 뒤에는 해

외 판로를 통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안성 유기는 10여 년 전 유기의 항균 기능이 주목을 받으면서 다시금 부활의 날갯짓을

보이고 있다. 유기에 음식을 담으면 대장균 등 세균 번식이 억제된다는 사실이 밝혀지

면서 유명 한식당은 물론 일반 가정에서도 유기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오래 쓸수록

아름답고 은은한 광택이 살아나는 특성처럼 안성 유기는 옛 시절의 영화를 차츰 회복

하고 있다. 031-675-2590, www.anseongyugi.com

유기는 겉빛이 노르스름한 놋그릇을 말한다. 옛 사람들은 유기의 광택을 내기 위해 기와 빻은 가루를 짚수세미에 묻혀 문질러 닦곤 했다. 세월의

뒤안길에 밀려났던 유기가 생활수준의 향상과 전통 가치의 재발견에 힘입어 우리 곁으로 돌아오고 있다.

안성마춤 유기공방은 판매장과 함께 ‘안성마춤 유기박물관’을 운영한다. 1층은 유기 제작 과

정을 모형으로 소개하는 체험관, 2~3층은 반상기 등 각종 그릇과 종묘제례 때 왕이 손을 씻

는 관세이를 비롯한 제기 등을 소개하는 전시실이다. 고 김근수 유기장이 평생에 걸쳐 모은

청동기, 도자기 등도 감상할 수 있다.

안성 유기, 반세기 세월의 녹을 벗겨내다

안성마춤 유기공방의 유기 제작 방식은 주물과 방짜로 나

뉜다. 주물유기는 틀에 쇳물을 부어 만드는데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촛대와 신선로 등 정교한 품목에 적합하다. 방짜유

기는 망치로 놋쇠를 두들겨 만드는데 강도가 뛰어나 잘 휘어지

거나 깨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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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맛 나는 안성의 맛집을 찾아서안성에서 나는 쌀은 비싼 축에 든다. 20㎏짜리 한 포대 시중 가격이 약 4만6천 원으로 타 지역의 쌀보다 10~20% 비싸다. 비싼 이유는 밥맛이 좋

기 때문이다. 차지고 윤기가 흐르며 씹을수록 단맛에 고소함이 느껴진다. 경향 각처에서 밥맛 좋은 식당을 찾았다면 한 번쯤 물어볼 일이다. 혹시

안성쌀로 밥을 지었느냐고.

‘안성마춤’은 안성시가 1998년 쌀, 한우, 인삼, 배, 포도 등 지역 농특산물을 통합해 만든

브랜드다. 한국소비자포럼이 주최한 ‘대한민국 퍼스트브랜드’ 지자체 공동브랜드 부문

에서 4년 연속 대상을 수상했다. 온라인 소비자 투표와 전문가로 구성된 국민평가단의

투표에서 만족도, 품질, 가격, 재구매 의도, 선호도 등 모든 항목에 걸쳐 가장 높은 점수

를 받았다.

안성에서 맛집을 찾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안성마춤 브랜드, 즉 안성에서 나는 농

특산물을 음식 재료로 쓰는 식당이라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쌀의 경우, 안성시가 올

초부터 안성쌀 사용업소 인증제를 도입해 추진 중이어서 식당별 밥맛의 출처를 파악하

는 데 별반 어려움이 없다. 한우는 육질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인 마블링(살코기에 좁

쌀 모양의 지방이 박힌 상태)을 보면 된다. 안성마춤 한우는 마블링이 풍부하고 선명하

기로 이름이 높다. 안성마춤 브랜드라면 맛집 선택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음식 맛의 바탕은 재료가 좌우하는 법이다.

▶안성마춤 쌀밥집

안성의 쌀밥집 다섯 곳 중 하나로 안성마춤 쌀의 진미를 느껴볼 수 있는 식당

이다. 안성마춤 완전립쌀(Head Rice)로 밥을 짓는다. 완전립쌀은 기름진 논에

서 생산된 벼를 미곡종합처리장에서 최신 도정 시설을 이용해 가공한 청결미

이다. 절미(금이 간 쌀), 분상질립(반점이 있는 쌀) 등을 골라낸 완전한 형태의

쌀이다. 메뉴는 완전립쌀로 지은 쌀밥 정식이 1만 원, 황태구이 정식이 1만3천

원이다. 밥과 된장찌개, 계란찜, 강원도산 취나물과 곰치 무침 등 30여 가지

음식이 안성마춤 유기에 담겨 나온다. 금광저수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금

광면 오흥리에 자리해 주변 풍광이 빼어나다. 031-671-1009

▶서일농원

안성 일죽면 화봉리에 자리한 농원으로 한식당 ‘솔리’를 운영한다. 2천 개가 넘

는 장독에서 익어가는 된장, 간장, 고추장, 장아찌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

다. 안성의 물과 콩을 이용해 담근 장맛이 일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된장찌

개와 청국장찌개가 각각 8천 원이다. 농원에서 재배한 콩으로 만든 손두부(7

천~1만2천 원)와 2년 이상 숙성시킨 묵은지로 만든 녹두김치전(7천~1만2천

원)도 별미다. 된장, 찹쌀고추장, 쌈장, 청국장, 간장이 옹기에 담겨 판매되는

데 가격은 양에 따라 1만~5만8천 원이다. 더덕, 가죽, 깻잎, 감, 달래, 무말랭

이, 마늘 등 장아찌는 500g 기준으로 1만5천~3만5천 원이다. 031-673-3171,

www.seoilfarm.com

▶안일옥

안성에서 3대째 80여 년을 이어온 우탕 전문 식당이다. 안성에 큰 우시장이

섰던 일제강점기에 국밥집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변치 않는 전통의 맛으로 정

평이 났다. 육질이 부드럽고 감칠맛이 뛰어난 한우를 무쇠솥에 넣고 밤새 고아

낸 육수로 탕을 끓인다. 주메뉴는 설렁탕/곰탕/갈비탕(각 6천 원), 꼬리곰탕/

도가니탕/족탕(각 1만2천 원) 등 탕류와 소머리수육(1만5천~2만5천 원), 모듬

수육(2만5천~4만 원) 등이다. 031-675-2486

▶새서울가든

안성 금광면 장죽리에 있는 붕어찜 전문 식당이다. 안성의 대표 민물고기 요리

인 붕어찜을 맛볼 수 있다. 주메뉴는 붕어찜(1만~1만5천 원), 메기매운탕(1만

원) 등이다. 붕어찜은 보양식으로 안성맞춤이다. 031-676-7787

▶시골집

안성 죽산면 두교리에 자리한 한식당으로 이름처럼 향토색 짙은 맛을 선보인

다. 고추장아찌, 무말랭이, 시래기무침 등 토속적인 밑반찬들이 입맛을 돋운

다. 직접 농사를 짓거나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구입한 농산물을 재료로 이용한

다. 주메뉴는 시골밥상(8천 원), 불고기정식(1만2천 원), 오리구이(3만5천 원),

궁중 백숙(3만8천 원) 등이다. 031-672-7444

안성 서일농원의 장대한 장독대 풍경. 안성의 햇볕과 바람에 말린

메주와 고추를 가지고 옛 방식 그대로 담근 장(醬)이 익어간다.

안성의 맛은 청정자연에서 생산된 음식 재료에 바탕을 두고 있다. 특히 전국 으

뜸 농산물 품평회에서 쌀 부문 대상을 차지한 ‘안성마춤 쌀’은 혀의 미각세포를

활성화시켜 식욕을 촉진한다.

Page 8: 따사함이 울려 퍼지는 고을 안성으로 떠나는 봄나들이img.yonhapnews.co.kr/basic/svc/09_images/special201003.pdf · 있다. 두리마을 자전거 인포센터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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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랜드

플로랜드(Floland)는 플라워

(Flower)와 랜드(Land)가 조합

된 이름이다. 경기도와 안성시가

각각 10억 원, 5억 원의 사업비

를 지원해 한경대학교 부속 농장

9만5천여㎡를 꽃밭으로 조성,

2008년 6월 일반에 개방했다.

별다른 시설 없이 방치됐던 농장에 튤립, 양귀비꽃, 안개꽃, 수레국화 등 형

형색색의 꽃 300여 종이 식재돼 아름다운 경관농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봄

부터 가을까지 형형색색 화려한 꽃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다. 꽃밭으로 올라

가는 길 옆에는 10여 종의 허브가 자란다. 자전거 도로와 대여소가 운영돼

방문객이 자전거를 타고 플로랜드를 돌아볼 수 있다. 바이오디젤 체험장, 다

도 체험장, 안성시 홍보관 등을 갖춘 방문객 쉼터가 언덕 위에 마련돼 있다.

http://floland.hknu.ac.kr

미리내 성지

안성 양성면 마산리에 자리 잡은

천주교 성지다. 신유박해(1801)

와 기해박해(1839)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탄압을 피해 숨어들어

마을을 이룬 곳이다. 미리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밤에 천주교

신자들이 피운 불빛이 은하수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인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의 묘, 순교 103위 성전 등을 돌아보며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연중 천주교 순례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

다. www.mirinai.or.kr

안성천문대

안성의 밤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안성 미양

면 강덕리에 위치한 민간 천문대로 밤하늘 별자리 찾

기 여행이 가능하다. 16인치 천체망원경 등 첨단 장

비가 구비돼 있고, 계절별로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천체망원경의 원리와 조작법을 배우고 별

자리, 별똥별, 태양 흑점 등을 직접 관찰해볼 수 있

다. www.nicestar.co.kr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

안성은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축제로 오는 10월 14~19일 개최될

예정이다. 안성천 강변공원을 중심으로 남사당 놀이 여섯마당과 해외 6개국

공연단의 전통 민속공연 등 풍성한 볼거리가 펼쳐진다. 안성 옛날 장터 재

현, 전국 풍물 경연대회, 민속놀이 체험마당 등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 바우

덕이 축제는 2006년 유네스코 산하 CIOFF(국제민속축전기구협의회)의 회

원 축제로 공식 인증받았다. www.baudeogi.com

안성 문화관광 안내 031-677-1330, http://tour.anseong.go.kr

너리굴 문화마을

안성 보개면 신장리 비봉산 기슭에

위치한 너리굴 문화마을은 자연과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곳이다. 청

소년을 위한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

이 운영되는 자연학습 수련시설이

자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을 벌이는

복합문화공간이다. 1973년 사슴목장으로 시작해 현재 미술관, 야외공연장,

청소년수련장, 수영장, 카페, 아트숍, 금속공방, 도자기공방 등이 갖춰져 있

다. 과학의 원리를 이해하고 실제 실험을 해보는 과학교실, 경기도 무형문화

재 이경자 선생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입사박물관도 운영된다. 너리굴

은 ‘넓은 골짜기’라는 뜻의 안성 토박이 말이다. www.culture21.co.kr

칠장사

안성 죽산면 칠장리에 위치한 고

찰로 신라 진덕여왕 2년(648) 자

장율사가 창건했다. 고려 헌종 5

년(1024) 혜소국사가 크게 중수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건물이

56채나 되던 대가람으로 고려 태

조 왕건과 세력을 다투었던 궁예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1628년 인목대

비가 하사한 오불회 괘불탱화(국보 296호), 삼불회 괘불탱화(보물 1256호),

혜소국사 탑비(보물 488호) 등 다양한 유물이 전해진다. www.chiljangsa.kr

I N F O R M A T I O N

안성은 예부터 재인(才人)을 불러들이는 땅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유랑 예인

집단인 남사당패의 본거지였고 오늘날에는 무용가, 피아니스트, 시인 등 문

화예술인들의 은거지로 정평이 났다. 국가 및 경기도 지정 무형문화재도 7

명에 이른다. 서울에서 가까우면서도 골 깊은 산과 깨끗한 호수가 많아 예술

가와 장인들의 마음을 이끈 것으로 보인다. 자연과 문화예술이 어우러져 휴

일 가족 나들이 여행지로 안성맞춤이다.

안성 대덕면 내리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 입구에 세워진 박물관으로 2002년 개관

했다. 유기를 중심으로 안성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함께 접할 수 있는 테마 박물관이

다. 지상 2층, 지하 1층 구조로 유기전시실, 농업역사실, 영상실, 향토사료실, 수장

고 등을 갖추고 있다.

유기전시실은 유기의 역사, 제작 과정 모형, 제기, 반상기 등 생활 속에 쓰이는 다양

한 유기를 전시하고 있다. 농업역사실에는 안성 농업의 역사와 계절에 따른 농경 모

습, 안성의 특산물이 전시돼 있다. 또 향토사료실에선 안성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

을 통해 안성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관람 시간은 3~10월 9~17시, 11월

~이듬해 2월 9~16시이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031-676-4352, http://museum.anseong.go.kr

안성 금광면 개산리 금광산 자락에 조성된 사설 박물관이다. 박영국 관장이 십수 년 간 전

국 각처에서 모은 술 관련 자료 수만 점을 일반에 공개해 2004년 개관했다.

술박물관에선 우리 전통주의 역사와 종류를 살펴볼 수 있다. 조선시대 술 관련 고서와 함

께 전통 민속주를 빚을 때 사용하던 각종 도구들을 감상할 수 있다. 소주를 증류하는 데

이용되는 소주고리, 술을 거를 때 쓰는 체와 용수, 술병으로 썼던 청자와 백자 등이 전시

돼 있다. 20세기 술의 변천사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양조장 면허증과 밀조주 금

지 전단지, 1950〜60년대 판매된 200여 종의 소주 상표, 옛 크라운 맥주 홍보 달력 등이

눈길을 끈다. 야외전시장에는 술을 내리는 부뚜막 시설과 술방(발효, 숙성실)이 마련돼 있

어 우리술 빚기 시연과 체험이 진행된다. 031-671-3903

안성 보개면 양복리 안성시립보개도서관 3층에 조성된 혜산(兮山) 박두진

(1916~98) 시인의 자료실이다. ‘묘지송’이 수록된 문장지를 비롯해 혜산의 사진과

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혜산은 1939년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장지를 통해 등단해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했다. 신의 영원성을 노래한 자연친화적이고 구도적인 시세계

를 펼치며 20여 권의 시집을 남겼다. 활발한 시작(詩作) 활동과 함께 평론, 수필, 시

평 등을 통해 한국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보개도서관 앞에는 그의 시 ‘고향’

전문이 새겨진 시비가 세워져 있다. 그의 문학적 위상과 업적을 기리고 문학 정신을

재조명하는 문학제가 매년 가을에 개최된다. 031-678-3227 Y

이야기가 깃든 안성의 세 박물관안성은 살아 있는 박물관 겸 미술관으로 부를 만하다. 남사당패, 유기 등 전통의 유산들이 박물관 전시실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쉰다. 안성

에 터를 잡고 작품 활동을 벌이는 작가, 화가, 조각가, 무용가 등도 수백 명이다. 안성의 역사를 비롯해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박물관 세 곳을

소개한다.

〉〉 가볼 만한 곳

안성맞춤박물관

혜산 박두진 자료실

대한민국 술박물관

사진/안성시청 제공

사진/안성시청 제공

사진/안성시청 제공

사진/안성시청 제공

사진/안성시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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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안성시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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