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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헤브론의 교육부 예배 공동체를 분리하게 된 것은 영적인 성숙과 성장을 위해서이다. 영적인 변화를 위해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자신의 모국어(mother tongue) 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고 영혼을 흔드는 힘을 가진 언어는 바로 어려서부터 사용하고 부모로부터 들어왔던 언어이다.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사랑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던 자녀가‘사랑해’라는 말을 들을 때와 I love you 라는 말을 들을때는 감정적인 차이를 가지게 된다. 때문에 성경번역선교회는 각 국가의 공용어가 아니라, 각 민족과 종족의 모국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있다. 영어 성경만을 가지고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통용 될 수 있지만, 의미를 파악하는 것과 감정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민감하게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 때문에 아이들에게 그들이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언어로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이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깊이 있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 의사 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아이들에게 억지로 한글로 성경을 읽고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나라고 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은 것처럼, 영어보다는 한글로 마음이 움직이는 아이들에게 무조건 영어로만 하라는 것 역시 바람직 한 것이 아니다. 예배 드리면서 영어 배워라? 한글 배워라? 교회는 영어 학교나 한글학교가 아니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은 예배와 영적인 성숙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중고등부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자아를 세우고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세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영어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 충분하다. 한글은 가정에서 배우고 한글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 충분하다. 신앙을 세워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할 절대적인 시기에 그러한 깊이 있는 만남을 방해 한다면, 오히려 아이들의 인생 전체를 망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언어적 차별 한인 교회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중의 한가지는 언어적 차별이다. 한인 사회에서도 영어로 직업을 갖는 것과 한국어를 사용하는 직업을 가질 때 연봉에서 1만불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것을 신문에서 본적이 있고, 이는 대체적으로 실제 상황인 것 같다. 교회 안에서도 한국어 사역 목회자와 영어 사역 목회자의 사례는 실제로 1만불 이상 차이가 나고 이에 대해서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한국어 사역자는 그 만큼 흔하고 찾기 쉽고 영어 사역자는 찾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와 더불어 영어를 한국어보다 우월하게 보는 언어적 차별이 그 안에 담겨져 있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2세들이 교회 안에서는 차별을 당하거나 불이익을 갖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2세 교역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어를 못한다고 해야 교회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실제로 한국어를 전혀 못한다고 하는 2세 교역자를 대하는 태도와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하려고 노력하는 2세 교역자를 대하는 태도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하는 교역자에 대해서는, 존경이나 격려보다는 불만과 불평, 그리고 무리한 요구들이 더 많이 주어진다. 문제가 생겼을 때 ‘죄송합니다’ 라고 인사하는 학생과‘Sorry’라고 하는 학생에 대한 어른들의 태도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별은 학생들로 하여금 한국어 사용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하고, 교회 안에서 혹은 한인 사회안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혹은 열등하게 인식하도록 한다. 2007년 한어부를 담당하면서 느꼈던 것들 중 한가지는 어른들이 ‘한국어 하는 학생들’을 너무 쉽게 여긴다는 것이다. 일을 위해서 도움을 부탁할 때도 ‘한국어하는 학생’에게는 당연하다는 듯이 하지만, ‘영어만 하는 학생’에게는 미안해 하면서 부탁하거나 아예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활속의 작은 예이지만, 우리들의 일상 생활 속에 깊게 뿌리 내린 언어적 차별이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어떤 학부모들은 ‘한어부’는 아직 영어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거나, 혹은 (더 높은) ‘영어부’로 가기 위해서 (기초반) ‘한어부’에 다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아직 한국에서 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영어적인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이 아이들도 몇년이면 영어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부분에서는 미국 학생들보다 월등함을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영어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언어적 차별과 영어 열등감에 빠져있는 일부 어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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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예배 드리면서 영어 배워라? 한글 배워라? 언어적 차별 헤브론의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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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36_교육부-홍석표 목사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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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브론의 교육부

예배 공동체를 분리하게 된 것은 영적인 성숙과 성장을 위해서이다. 영적인 변화를 위해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자신의 모국어(mother tongue) 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고 영혼을 흔드는 힘을 가진 언어는 바로 어려서부터 사용하고 부모로부터 들어왔던 언어이다.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사랑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던 자녀가‘사랑해’라는 말을 들을 때와 I love you 라는 말을 들을때는

감정적인 차이를 가지게 된다. 때문에 성경번역선교회는 각 국가의 공용어가 아니라, 각 민족과 종족의 모국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있다. 영어

성경만을 가지고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통용 될 수 있지만, 의미를 파악하는 것과 감정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민감하게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 때문에 아이들에게 그들이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언어로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이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깊이 있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 의사 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아이들에게 억지로 한글로 성경을 읽고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나라고 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은 것처럼,

영어보다는 한글로 마음이 움직이는 아이들에게 무조건 영어로만 하라는 것 역시 바람직 한 것이 아니다.

예배 드리면서 영어 배워라? 한글 배워라?

교회는 영어 학교나 한글학교가 아니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은 예배와 영적인 성숙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중고등부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자아를 세우고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세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영어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

충분하다. 한글은 가정에서 배우고 한글학교에서 배우는 것으로 충분하다. 신앙을 세워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할

절대적인 시기에 그러한 깊이 있는 만남을 방해 한다면, 오히려 아이들의 인생 전체를 망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언어적 차별

한인 교회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중의 한가지는 언어적 차별이다. 한인 사회에서도 영어로 직업을 갖는 것과 한국어를 사용하는 직업을

가질 때 연봉에서 1만불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것을 신문에서 본적이 있고, 이는 대체적으로 실제 상황인 것 같다. 교회 안에서도 한국어 사역

목회자와 영어 사역 목회자의 사례는 실제로 1만불 이상 차이가 나고 이에 대해서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한국어 사역자는 그

만큼 흔하고 찾기 쉽고 영어 사역자는 찾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와 더불어 영어를 한국어보다 우월하게 보는 언어적 차별이 그 안에 담겨져

있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2세들이 교회 안에서는 차별을 당하거나 불이익을 갖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2세 교역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어를 못한다고

해야 교회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실제로 한국어를 전혀 못한다고 하는 2세 교역자를 대하는 태도와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하려고 노력하는 2세 교역자를 대하는 태도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하는 교역자에 대해서는, 존경이나 격려보다는 불만과

불평, 그리고 무리한 요구들이 더 많이 주어진다.

문제가 생겼을 때 ‘죄송합니다’ 라고 인사하는 학생과‘Sorry’라고 하는 학생에 대한 어른들의 태도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별은 학생들로 하여금 한국어 사용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하고, 교회 안에서 혹은 한인 사회안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혹은 열등하게 인식하도록 한다.

2007년 한어부를 담당하면서 느꼈던 것들 중 한가지는 어른들이 ‘한국어 하는 학생들’을 너무 쉽게 여긴다는 것이다. 일을 위해서 도움을

부탁할 때도 ‘한국어하는 학생’에게는 당연하다는 듯이 하지만, ‘영어만 하는 학생’에게는 미안해 하면서 부탁하거나 아예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활속의 작은 예이지만, 우리들의 일상 생활 속에 깊게 뿌리 내린 언어적 차별이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어떤 학부모들은 ‘한어부’는 아직 영어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거나, 혹은 (더 높은) ‘영어부’로 가기 위해서 (기초반)

‘한어부’에 다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아직 한국에서 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영어적인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이 아이들도

몇년이면 영어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부분에서는 미국 학생들보다 월등함을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영어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언어적 차별과 영어 열등감에 빠져있는 일부 어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