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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주간교수 편집인 주소 창간 전자메일 홈페이지 김봉렬 양승무 선승범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회관 2층 1996년 11월 28일 [email protected] news.karts.ac.kr 2014.10.13 239 2면: 아버지의 이름으로 3면: 반복되는 입시와 수업권 침해 논란 4면: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혁과 한예종 5면: 중앙일보 대학평가 논란 6면: 최정화 개인전 « 총,천연색» 리뷰 7면: 현대음악, 아르스노바 8면: 세운상가 개방회로 인터뷰 9면: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10면: 빅데이터와 영상 11면: « 제국의 위안부» 리뷰 12면: 타자와 우리 13면: 카드캡터 사쿠라 팬클럽 이야기 14면: 웹 정키 연대기 15면: 싸이, 사이다, 싸이파이 16면: 나는 씨네마테크의 아이가 아니다

2014.10.13 제2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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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2014.10.13 제239호

발행인

주간교수

편집인

주소

창간

전자메일

홈페이지

김봉렬

양승무

선승범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회관 2층

1996년 11월 28일

[email protected]

news.karts.ac.kr

2014.10.13제239호

2면: 아버지의 이름으로

3면: 반복되는 입시와 수업권 침해 논란

4면: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혁과 한예종

5면: 중앙일보 대학평가 논란

6면: 최정화 개인전 «총,천연색» 리뷰

7면: 현대음악, 아르스노바

8면: 세운상가 개방회로 인터뷰

9면: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10면: 빅데이터와 영상

11면: «제국의 위안부» 리뷰

12면: 타자와 우리

13면: 카드캡터 사쿠라 팬클럽 이야기

14면: 웹 정키 연대기

15면: 싸이, 사이다, 싸이파이

16면: 나는 씨네마테크의 아이가 아니다

Page 2: 2014.10.13 제239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10월 13일 제239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지난 9월 27일 한 청년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정복을 입고 서울 광화문광

장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이 청년은

지난 7월 광주에서 헬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고 정성철 소방령의 아들 정비

담(연극원 연극학과 예술경영 11) 씨

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소방

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촉구하고 있

는 정비담씨를 5일에 만났다. 정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SNS를 통해서 여

러 소방공무원분들에게서 힘을 얻게

되었다. 그분들이 아버지처럼 느껴졌

고 남은 아버지들을 도와주고 싶어서

시위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자신의

시위 동기를 밝혔다.

강원도 소방본부에서 근무하던 정

씨의 아버지는 사고 당시 진도군 팽목

항에서 세월호 수색 지원 활동을 마치

고 복귀하던 중 순직했다. 정 씨는 “지

방직이라면 그 지역에서만 업무를 해

야 하는데, 통솔 체계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소방공무원들의 구조활동이 광범

위해진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소방공무원은 국가직과 지

방직으로 이원화 되어있는 기형적 구조

이기 때문에 지휘체계가 명료하지 않

다. 긴급하게 출동해야 할 소방 헬기들

이 지자체장들의 전용 헬기가 되는 경

우도 허다하다.

지휘권의 문제만은 아니다. 정 씨는

“지자체 예산이 다르다 보니 구조 서비

스에도 차별이 생긴다. 평소 아버지는

소방장갑도 아웃도어 매장에서 직접

사셨다”고 말하며 지방 재정자립도의

차이에서 나오는 장비 지원 문제도 지

적했다. 실제 소방방재청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

들이 착용하는 필수 장비 대다수가 노

후률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전라북도의 경우 가장

필수적인 장비라고 할 수 있는 공기호

흡기 1,865개 가운데 1,117개가 내구연

한이 지난 것으로 드러났다.

근무 환경 문제도 다르지 않았다. 정

씨는 “아버지의 관물대를 본 적이 있

었다. 라면 두 봉지가 나오더라. 평소

교대 환경이 좋지 않아서 식사도 제대

로 하기 힘드셨다고 들었다”고 말했

다. 실제로 한국의 소방관 1명이 담당

하는 시민 수치는 약 1400명이다. 이는

일본의 2배, 프랑스와 미국에 비해 7배

정도 많은 숫자로 소방공무원들의 열

악한 근무 환경이 보여준다.

하지만 안전행정부는 이원화되어

있는 현재의 지휘체계가 구조활동에

더 유리하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소방

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여전히 미루

고 있다. 정 씨는 이에 대해 “안전행정

부의 주장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세

월호 사건도 소방이나 경찰 쪽에서 단

독으로 지휘를 맡았으면 더 효율적이

었을 것이다.”고 동의하지 않았다. 안

전행정부가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을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예산 문제

이다. 하지만 국가직으로 일원화되더라

도 실제로 추가되는 예산은 차이가 없

을 것이라는 의견이 더 많다. 이에 대해

정 씨는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일

원화 될 경우 자신들의 권력이 분산될

것을 걱정하기 때문에 반대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와 소방헬기 추락사건

발생 후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일원화

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커져가는 추

세이다. 정 씨는 “혼자 시위를 할 때 아

무 말없이 따듯하게 바라봐주는 사람들

이 고마웠다. 음료수나 떡을 주는 아이

들도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희망을 가

질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또

소방공무원들은 아직 시도지사에 소속

되어 있다보니 제재를 받을 수 있어 시

위에 나가기 힘들다고 들었다. 그들을

대신에서 나간 것에도 보람을 느낀다”

고 말하며 1인 시위에 나갔던 소감을

밝혔다.

소방공무원의 국가진 전환에 대한

언론의 관심 역시 높아졌다. 정 씨 역

시 1인 시위 이후 여러 매체로부터 인

터뷰 요청을 받았다. 이에 대해 정 씨는

“10군데 정도의 언론에서 인터뷰를 한

것 같다. 하지만 더는 언론에 나가고 싶

지는 않다. 계속 노출될 경우에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시위에 나서는

정 씨에게 얼굴이 노출되는 것이 꺼리

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정 씨는 “얼굴

이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기보다는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닌 아버지가 말하는 것

처럼 보이길 원했다. 그래서 나의 모습

을 최대한 가리기 위해서 마스크를 쓰

고 아버지의 정복을 입었다”고 말했다.

정 씨의 행동을 비하하는 일부 네티즌

의 글들도 있었다. 정 씨는 “근거 없는

비난이라고 생각한다. 글이 올라와 있

는 게시판에 신상 공개를 하고 직접 나

를 찾아와서 말하라고 했지만 정작 그

글에는 댓글이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3학년에 재학 중인 정 씨는

“올해 예술경영전공으로 전과를 했다.

학업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스케줄이 없는 날에만 1인 시위에 나

갈 생각이다. 시위를 나갈 때는 아버

지의 아들이지만 평소에는 그냥 정비

담이라고 생각하고 싶다”고 말하며 앞

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한지윤 기자)

아버지의 이름으로

학보사 편집권, 누구의 것인가

고 정성철 소방령 자녀 예술경영전공 정비담 씨

소방공무원 국가직 촉구 1인 시위

서울 소재 학보사 4곳, 개강호 발행에서 학교 및 주간교수 쪽과 마찰 빚어

지난 9월 첫째주는 상당수 학보의 개

강호가 발행된 시기였다. 그러나 서울

소재 4개 대학이 개강호 발행 과정에

서 난관에 부딪혔다. 국민대, 성균관

대, 삼육대 학보사의 경우 주간교수나

학교 쪽과 마찰을 빚어 학보 발행이 중

단되었다. 한성대 학보사의 경우 1면의

기사가 삭제된 채로 개강호가 발행되

었다. 학보사가 편집권 문제로 충돌을

빚는 상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

지만 같은 주에 서로 다른 이유로 마

찰을 빚은 위 학교들의 상황은 해당 대

학 뿐 아니라 타 학보사들에게도 일종

의 비상 사태로 다가왔다. 특히 <오마

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성대신문>(성

균관대)과 <국민대신문>(국민대)은 각

각 지난해와 올해, 편집권 침해로 발행

을 중단하거나 연기한 적이 있음에도

다시 같은 문제가 불거진 것으로 파악

된다.(9월 5일 치 ‘학교에 좋은 기사

넣어라…대학언론 편집권 진통’ 참조)

국민대학교의 경우 외유 의혹에 대

한 기사가 이번 사태의 원인이었던 것

으로 파악된다. 고동완(국민대학교 경

영학과 12) <국민대신문> 전 기자는

“총학생회는 1주일 정도 휴식을 갖겠다

고 말하고 교비로 말레이시아를 다녀왔

다”고 말했다. 또한 고동완 씨는 “당시

총학이 다녀온 명목은 리더십 교육으

로, 총학은 이를 SGE(Sungkok Global

Exposure, 학교 해외 탐방 프로그램)라

고 해명했다”며 “그러나 그것은 학생지

원팀의 제의를 받은 셈이다. SGE에 일

반 학생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서류 심

사와 면접 등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교비 지원과 특혜 논란이 불거지자 국

민대학교 총학생회는 사과문과 함께 공

청회를 진행하고 반성과 쇄신을 약속했

다. <국민대신문>은 이러한 일련의 상황

을 1면에 다룰 계획이었다. 그러나 국민

대학교 주간실 쪽이 이에 문제를 제기

해 <국민대신문>과 마찰을 빚었다. 결

국 <국민대신문>은 총학생회 기사에서

공청회 사진을 빼고, 기사는 그대로 싣

되, 학교의 성과를 알리는 기사를 싣기

로 잠정 합의 후 개강호를 발행할 수 있

었다. 고동완 씨는 “총학생회가 이번 1

면 보도를 달갑지 않아 했다. 조판 당

일 부총학생회장이 학보사에 전화를 걸

어 해외 연수 조건에 대해 물어보았다”

며 “아마 학보사 연수와 물타기를 하려

했던 정황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또

한 “하지만 학보사 연수와 총학의 말레

이시아 방문은 성격이 다르다. 학보사는

해외 연수 부분을 미리 고지했고, 총학

은 일언반구 설명도 없이 해외로 떠났

다”고 덧붙였다.

성균관대학교의 경우 그 개강주 월

요일에 개강호가 발행되었지만, 주간

교수가 학내 사안이 적다는 이유로 학

보 16페이지 중 4페이지를 삭제하고 12

페이지로 재인쇄해 화요일에 배포할 것

을 주장했다. 그런데 <성대신문>의 경우

신문 제작주에 열리는 수요편집기획회

의에서 주간교수와 신문에 실릴 사안에

대해 논의 후, 토요일 조판 후 완료된 면

에 대해 주간교수의 허가가 나지 않으

면 인쇄가 들어갈 수 없는 구조다. 인쇄

될 신문에 대한 합의가 수요일, 토요일

에 미리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수민(성균관대학교 철학과 11)

<성대신문> 편집장은 “지금 주간교수

의 경우 본인이 해야 할 일을 학교 차

장에게 위임해 진행하고 있다”며, “개

강호 역시 본인이 일을 맡긴 차장이 수

요편집기획회의를 진행하고 허락을 냈

음에도 불구하고 월요일이 되어서야 그

런 말을 했다”고 말했다. 또한 조수민

씨는 “기자단은 이에 납득할 수 없었고

신문은 나오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현

재 <성대신문>의 상황은 수요편집기획

회의와 조판과정에 주간교수가 본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삼육대학교의 경우 주간교수가 아니

라 학교 본부와 마찰을 빚었다. 삼육대

학교 본부는 신문이 나오는 기간을 몰

라 인쇄소에 외상으로 돈을 지급하곤

했다. 이에 관해 삼육대학교 학보사는

학교 본부 쪽의 입장을 이해하고, 형식

적인 차원에서 신문 시안을 제출하고

승인받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는 이번

개강호부터 처음 도입되는 방침이었다.

그런데 송형근(삼육대학교 경영정보학

과 13) <삼육대신문> 편집장은 “학교

본부 직원이 시안을 보고 기사 제목을

바꾸어달라고 요청했다”라며 “심지어

학교 본부 직원은 본인이 인쇄하달라

는 말을 하기 전까진 인쇄를 하지 말라

고 인쇄소에 전화까지 했다”라고 말했

다. 문제가 되었던 기사는 한국장학재

단의 잇따른 실수와 학교 쪽의 실수로

국가장학금 지급에 문제가 있었던 사실

을 정리하는 내용이었다. 송형근 편집

장은 “기사 제목 자체가 어떤 관점에선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하지

만 학교 본부의 처사는 학보사의 정체

성을 훼손시키는 사건”이며,

“기사 제목을 바꾸어달라고 요구하는

행동은 주간교수에 대한 월권”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개강호 발행이 취소된

것이다. 물론 발행 취소 조치가 취해진

다음날, <삼육대신문>과 학교 본부는 대

화를 시도했다. 송형근 편집장은 “편집

권 침해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일

이 앞으로 없도록 약속 받았고, 그날

오후 정상적으로 신문을 배포하였다”라

고 말했다.

한성대학교의 경우 개강호가 정상적

으로 나오긴 했지만, 1면 기사가 삭제되

어 논란을 낳았다. 한재원(한성대학교

행정학과 12) <한성대신문> 편집장은

“학내에서 민감하게 여겨지는 이슈를 다

룬 기사가 문제가 되었다”며 “주간교수

와 그 부분을 백지로 내겠다고 타협했

다”고 말했다.

이러한 학보사들의 사태에 관해, 고

동완 <국민대신문> 전 기자는 “불합리

한 학교의 간섭에 대해 학보사가 당차

게 맞서기 위해 학생 여론의 동력이 필

요한데 여러 사회적 상황과 이유로 학

생 사회의 동력이 꺼져가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려면 학생 사회의 동력에

어떻게 불을 지필 것이며 학보사가 어떻

게 외연을 확장해 나갈지가 관건”이라

고 말했다. 송형근 삼육대신문 편집장도

“대학언론의 정체성은 학생들의 관심 정

도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며 학생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권지혜 수습기자)

Page 3: 2014.10.13 제239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10월 13일 제239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5학년도 신입생을 뽑는 입시가 10

월 한 달 동안 2015학년도 음악원·

연극원(연기과와 연극학과만 해당)·

무용원·전통예술원 신입생 모집 입시

가 진행된다. 그러나 입시가 진행되면

서 많은 수업이 휴강하거나 건물 출입

이 제한되어 일부 학생들이 불편을 겪

는 풍경이 반복되었다.

이번 입시는 4개원에서 302명을

모집하는 데에 6,632명이 지원했다.

음악원은 모집 인원 122명에 1,188명

이 지원했으며 무용원은 53명에 292

명이 지원했다. 전통예술원은 85명 모

집에 400명, 연극원 연극학과 예술경

영 전공에는 5명 모집에 155명이 지원

했다. 특히 37명을 뽑는 연기과에는

4,597이 지원하여 올해도 전체 학과 가

운데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서초캠에선 1차, 2차 입시가 진행되

는 동안 연습실이나 강의실 이용이 제

한되며 2차 전형이 진행되는 기간에는

캠퍼스 출입이 제한된다. 연기과 입시

가 대규모로 진행되는 연극원은 건물

남서쪽 출입문 통행을 제한하고 수업

도 모두 휴강한다. 연극원 행정실은 보

안상의 이유를 들어 공연 연습도 이 기

간에는 제한하기로 했다.

일부 학생들은 관례적인 휴강 조치

에 따라 개인적인 스케줄을 잡기도 하

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입시 기간

수업 결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보

강이 충실히 이루어지는지 확인할 제

도적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서보민(무용원 이론과 11) 씨는

“수업 결손에 따른 보강이 사실상 불가

능하다”며 “전공 수업에도 타과 학생

들이 있어 수업마다 보강 시간을 따로

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 씨는 “강사

의 개인적 일정으로 인한 휴강까지 겹

치다 보면 손실이 크다”고 말했다. 특

히 올해는 9월 말과 10월 초에 추석 연

휴와 한글날, 개천절이 연속적으로 몰

렸다. 대체휴일제 시행으로 추석 연휴

기간도 길었다. 2학기 초반 긴 연휴와

입시로 인한 휴강 조치가 겹치면서 수

업의 흐름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

온다. 일부 재학생들은 수업료에 따른

수업권 침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측면

도 있다.

통행 제한 조치에 대해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한 연극원 재학생은 “작년에

도 출입문을 봉쇄해 강의실을 진입할

때 연극원으로 돌아가야 했다”며 “복

도에 가림막을 두는 것 정도는 이해하

지만 출입 통로를 모두 막는 것은 재학

생들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극원 3~5층

을 사용하는 연극원 타과 수업은 정상

적으로 수업이 진행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연기과는 연극원 1층과 2층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전통예술원과 같은 건물

을 쓰는 미술원도 비슷한 경우다. 허보

윤(미술원 건축과 12) 씨는 “1층 출입

문 사용이 금지되어 다른 출입구로 통

행해야 하는 상황은 다소 불편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휴강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재학생들도 있었다. 현가영(연극원 연

기과 12) 씨는 “작년에도 휴강으로 인

해 수업 결손이 발생했지만 보강이 원

만하게 진행되었다”며 “휴강은 불가피

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혜림 전

음악원 학생회장은 “학생들은 휴강을

반기는 분위기”라며 “보강도 잘 이루

어지는 편이고 교수진도 이러한 관례

를 인지하며 커리큘럼을 짠다”고 말

했다.

학생들의 지적에 대해 입학관리과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입시 시기

를 결정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

한다”며 “우수한 학생을 뽑기 위해 다

른 대학 수시 일정도 고려해야 하기 때

문에 입시가 진행될 수 있는 시기는 한

정적”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정 때문

에 방학 기간이 아닌 학기중에 입시가

치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

자는 또한 공간 사용 문제에 대해

“기존 캠퍼스가 공간이 작다보니 입시

만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재학생들이) 이러한 사정을 헤아려주

시면 감사하겠다”고 덧붙였다.

다른 대학 상황은 어떨까? 김종연

(문예창작 11) 서울예술대학교 전 총

학생회 부회장은 “휴강 기간을 이용하

여 휴가를 떠나거나 작품 제작과 촬영

에 활용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전에 휴강을 인

지하고 이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연계열 학과의 경우 휴강 기간에도

학교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교수진도

학교에 상주하며 평상시와 큰 차이 없

이 학생들을 만난다고 한다. 이는 공연

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작업 리듬을 잃

지 않도록 배려한다는 측면에서 우리

학교가 참고할 만한 사례다. 김 부회장

은 다만 “휴강을 하더라도 수업 연한

내에 모든 과목을 보강하는 데에는 한

계가 있다”고 말했다.

종합대학교 단과대학으로 존재하는

예술대학의 경우 대대적인 휴강 조치

는 많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성신여

자대학교에 다니는 김해인(산업디자

인과 11) 씨는 “휴강으로 인한 보강을

따로 실시한다기보다는 종강을 한주

미루는 식으로 타협하는 경우가 많다”

고 말했다. 세종대학교 손구름(영화

예술학과 14) 씨는 “우리 학교도 입시

가 진행 중인데 휴강은 없다”며 “입시

에 쓰이는 강의실과 엘리베이터 사용

이 중지될 뿐 수업은 정상적으로 진행

된다”고 말했다. 손 씨는 “주로 입시 도

우미가 현장에 투입된다”고 덧붙였다.

우리 학교도 입시 기간에 보조인력을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서울

대학교 음악대학은 휴강 조치 없이 연

습실과 실기지도실 사용만 중지된다.

우리의 경우 많은 학생들은 캠퍼스

내부 공간이 협소하고 교수진이 직접

채점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휴강

자체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이었다. 그

러나 올해처럼 연휴와 공휴일까지 겹

치면서 휴강 기간이 길어질 경우 수업

권 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를 개

선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

인다. (권지혜 기자)

입시휴강, 수업권 침해 가능성은?2015학년도 10월 입시 입시에 6천6백여명 지원

재학생들 “휴강 불가피한 측면 있다” “수업권 침해” 의견 대립

9월 24일 제9차 원장회의가 총장실 부

속회의실에서 열렸다. 참석위원은 김봉

렬 총장, 민경찬 교학처장, 최준호 기획

처장, 김상욱 사무국장, 성기숙 교학제

1부처장, 김선애 교학제2부처장, 이정

민 기획부처장, 황성호 음악원장, 최상

철 연극원장, 편장완 영상원장, 허영일

무용원장, 박선우 미술원장, 민의식 전

통예술원장으로 총 13명이었다.

기획과에서는 ‘한국예술영재교육연

구원’ 운영 규멍 및 세칙 개정안을 제출

했다. 사유는 지난 2014년 1월 16일에

이뤄진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조직개편

에 따른 연구원의 연구 및 연수사업 실

무, 현장운영 및 관리 업무에 대한 근무

성적 평정 세부사항의 운영규정과 세

칙을 개정하기 위해서였다. 주요 개정

내용으로는 책임·일반연구원 근무성

적평정 개정 및 신설과 같은 책임한국

예술영재교육연구원 운영규정, 그리고

일반연구원 근무성적평정표의 ‘사업결

과 평가표’ 신설하기로 했다. 개정안은

10월 초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교무과는 2015년도 연구년제에 적

용되는 교원을 대상자에게 1년 단위

로 확정 및 통보하기로 했다. 선발인원

은 원별 재직교수 총 수의 7분의 1 이

내이며 자격요건은 ‘연구년제연구교원

규정’ 제3조에 해당하는 교원이다. 허

가신청서, 서약서 및 3년 연구계획서를

제출한 연구교원은 교원연구년제운영

위원회 심의를 거쳐 대상자를 선정한

다. 2015년 신청자 구비서류가 제출되

면 교원연구년제운영위원회를 10월 중

개최해 서면결의를 하기로 했다. 2015

년 대상자는 10월 30일에 확정 및 통보

될 예정이다. 각 원 운영계획 및 2016년

에서 2017년 대상자는 원 내부 연구교

원 운영계획 수립 차원에서 관리한다.

학교 및 국가적인 업무를 제외한 개

인적인 사유로 인한 연구기간 변경은

연구년 시작 6개월 전까지만 허용 또는

검토하기로 했으며, 연구년 차례에 연

구년을 가지지 않을 경우 인센티브 부

여 방안 등이 검토됐다. 교수 처우 개선

차원에서 총장의 재가로 3년에 한번

6개월씩 연구년을 가지는 부분이 원칙

적으로 운영되기는 하나 가급적으로

6년에 1년 원칙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

는 점도 공지됐다. 이어 교무과는 2014

년도 하반기 교수연찬회 일정을 공지

했다. 연찬회는 10월 17일 금요일 서울

시 중구에 소재한 플라자호텔에서 개최

되며 총장과의 대화, 처·국별 현안보

고, 학교 발전 방안 토론 등 소통의 시

간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교무과는 교

수진의 많은 참석을 요청했다.

총무과에선 교수, 조교 및 원별 소속

직원을 대상으로 예산, 회계관련 유형

별 감사 사례중심 설명으로 업무능력

과 행정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실무교

육을 했다. 행정실무교육은 직원과 교

수를 구분해 별도로 진행했으며 청렴

선언은 유인물로 대체했다.

대회협력과(발전재단)은 우리 학교

발전재단 후원행사가 비교적 성공적으

로 개최되었으며, 후원자들을 대상으로

후원회를 조직, 발전방안을 모색할 방

향이라고 했다.

시설관리과는 서초동 교사 증축 및

부지와 관련해 서울시와의 협상이 필

요하고 앞으로 일정 시간이 소요될 예

상이라고 했다. 문화재청에 무용원 임

시교사 부지사용에 대한 양해 요청과

미술원 및 전통원 별관 사용기한에 대

한 충분한 입장을 표명하기로 했다. 또,

기획위원회 내 공간과 대체부지에 대

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후 지속적으

로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대전

시의 ‘한예종 중부캠퍼스 유치’ 발표에

대해서는 항의 공문 발송 등으로 대처

하기로 했다. (오온유 기자)

‘중부캠퍼스’ 유치 발표한 대전시에 항의 공문 발송키로9월 24일 열린 제9차 원장회의

서초캠 리모델링 서울시와 협의 등 논의

Page 4: 2014.10.13 제239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10월 13일 제239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2년 1월 26일 교육과학기술부

(현 교육부)는 ‘2단계 국립대학 선진

화 방안’을 확정한다. 이명박 정부가

2010년 9월 발표한 ‘1단계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의 후속판이었다. 당시

교과부는 “국립대학 대부분의 운영

경비와 사업비를 국고로 지원받고 최

근 지원 금액도 늘고 있으나 교육 성

과에 대한 비판이 점증되고 있다”며

“2010년 대학재정 지원액의 59.8%를

차지하는 국립대학이 고등교육 발전

선도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

판에 따라 국립대학의 비효율적 운영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 1단계의

핵심은 △서울대학교 법인화법 제정

△학장직선제 폐지 △성과급적 연봉

제 도입이었다. 교과부 설명에 따르

면 이는 2000년 이후 역대 정부가 국

립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

한 △국립대학 특수법인화 △국립대

학 회계제도 개선 △단과대학장 임명

제 도입 △교수 연봉제 도입 등의 연

장선상에 있는 정책 기조로서, 정부

는 2004년 ‘대학구조 개혁방안’을 통

해 18개 국립대학을 9개로 통합하고

입학 정원을 감축하기도 했다.

2년 뒤 정부가 내놓은 2단계 방안

은 △총장직선제 개선 △대학운영 성

과목표제 도입 △단과대학 학장 시범

공모제 도입 △학부 교양교육 활성화

△학사운영 선진화 △기성회회계 제

도 개선 및 운영 선진화 △성과급적

연봉제 세부 방안 마련이 주된 내용

이다. 특히 이 가운데 총장직선제 개

선과 기성회회계 건전성 항목은 정부

의 교육역량강화사업과 구조개혁 중

점 추진 국립대학 지정 평가에 반영

하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 또한 국립

대학 문제에서 전임 정부의 정책 기

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

1995년부터 본격화한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혁안

교과부가 밝혔듯 국립대학에 대한 신

자유주의적 개혁은 보수 정권의 전유

물은 아니다. 그 시작은 1995년 김영

삼 정부의 ‘5.31 교육개혁안’으로 알

려져 있다. 정식 명칭은 ‘세계화·정

보화 시대를 주도하는 신 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인데, 교

육을 사회공공재가 아닌 시장원리에

입각해 바라봄과 동시에 수요자-공

급자 논리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1998년 2월 대학별 모집단위 광역

화를 통해 학부제를 도입한 것도 같

은 맥락이다. 교육서비스의 공급자

인 대학은 수요자인 학생과 노동시장

이 원하는 전문 인력을 길러내는 기

관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대학

은 특성에 따라 입학 전형과 정원, 학

사 운영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되 연구

및 인재양성 성과를 외부 기관에 의

해 평가받아야 하며, 재정도 차등적

으로 지원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립

됐다. 초중등 교사에 대한 ‘능력 중심

승진 체계’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

권교체를 실현한 김대중 정부 또한

비케이21(BK21) 사업을 통한 대학

원 인재 육성 방안을 내놨다. 7년간

1조4천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

이었다. 그러나 세계적 수준의 대학

원을 육성하고 우수한 연구 인력을

키워낸다는 표면적 취지와 달리, 대

학 특성화를 명분으로 독과점적 대학

서열 구조를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았

다. 비케이21의 핵심은 국가가 직접

대학의 연구 프로젝트를 심의·평가

해 재정을 지원하는 것인데, 이에 대

해 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1999년 발

표된 논문에서 “연구인력 양성 사업

에 대한 재정 지원을 미끼로 하여 특

정 대학을 모든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관리·통제할 수 있는 통로를 획득

하게 된다”며 “비판적 지식의 발전을

크게 위축시키고 기능적 지식의 발전

에만 기여한다”고 비판했다. ↓

현 정부 ‘선진화 방안’,

한예종에도 하나둘 적용돼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현 정부

의 국립대학 개혁 방안으로 추진되

는 ‘2단계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도 직접적으로 적

용된다. 한예종은 정부 직제상 문화

체육관광부 소속이지만 동시에 국립

대학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교

육 정책 기조의 영향도 받기 때문이

다. 총장직선제 개선안이 대표적이다.

‘개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

상은 ‘폐지’와 다름없다.

총장직선제는 1980년대 후반 대

학민주화와 자율성의 상징으로 1991

년 도입됐다. 각 대학 교원이 선거를

거쳐 정부에 추천할 총장 후보를 뽑

는 방식이다. 그전까지는 국립대 총

장을 교육부 장관이 직권으로 제청하

여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1991년 교

육공무원법 개정으로 대학 내부 추천

절차를 거치도록 한 것이다. 이에 대

부분의 국립대학과 일부 사립대학까

지 총장직선제를 채택했지만 김영삼

정부 시기 사립대를 중심으로 총장직

선제를 폐지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정부가 ‘교육발전 5개년 계획’에 총

장직선제 폐지안을 담는 등 폐지 움

직임이 꾸준히 있어왔다.

정부는 총장직선제에 대한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선거 과열로

인한 연구 분위기 훼손 △공약 남발

로 인한 등록금 인상 △능력 위주가

아닌 논공행상에 따른 학내 인사 가

능성 △성과 검증체계가 없어 책무성

확보 한계 등의 부작용이 있다고 주

장한다. 정부 총장직선제 개선안의

핵심은 공모제 등을 통해 ‘역량 있

는 내·외부 인사’가 총장으로 선출

될 수 있도록 학칙을 개정하라는 것

이다. 현행 교육공무원법은 총장 추

천에 ‘대학의 장 임용추천위원회’를

두거나 ‘합의된 방식과 절차’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국회의 법률 개정 절차 없이

대학별로 학칙을 개정하여 전자를 선

택하면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정부의 총장직선제 ‘개선’

요구가 재정 지원과 직결된다는 점

이다. 정부는 기존 교육역량강화사업

지표에 ‘선진화 지표’를 추가하여 학

칙 개정으로 총장직선제를 폐지하거

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지 여

부를 검토해 전체 지표 가운데 5%

를 할당하기로 했다. 90%를 차지하

는 기존 교육역량 강화사업 지표는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학사관

리 △교육과정 △장학금 지급률 등

으로 대체로 경직성을 띠고 있는 항

목이고 대학마다 엇비슷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총장직선제를 폐지하면

5%의 가산점을 준다는 말과 다름없

다. 실제로 2012년 초까지 총장직선

제를 폐지하지 않은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 목포대가 대학교육역량 사업

에서 탈락했다. 특히 지역 국립대로

는 정부 재정 지원을 무시하기 어렵

다. 2012년 8월 목포대를 끝으로 전

국 38개 국립대가 총장직선제를 폐

지해, 총장직선제는 25년 만에 완전

히 사라졌다. ↖

우리 학교 차기 총장선출은

추천위원회 방식으로

한예종은 전임 박종원 총장 재임 시

기인 2012년 12월 본부가 교수회 안

건으로 ‘총장 선출방식 논의’를 올리

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교수협의회는

그해 12월 10일 발표한 성명에서 “우

리 학교가 총장 직선제 때문에 교육

과 연구 분위기가 훼손된 사례가 있

었는지, 공약을 남발해서 등록금이

인상된 사례가 있었는지 최소한의 객

관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교육

과학기술부가 제시한 국립대 총장직

선제 개선 추진배경을 우리 학교에

그대로 적용한 것은 매우 반지성적인

발상이자 억지스런 비약”이라며 “최

악의 감사 사태 이후 예전의 활발했

던 학내 여론 풍토와 창의적 분위기

가 심각하게 위축되었고 총장 직선제

마저 폐지된다면 교수들의 자율적 권

한이 더더욱 실종될 것”이라고 했다.

이후 본부 제안과 교수회의 위임

을 받아 총장후보선출제도개선준비

위원회가 구성되었으나 여러 차례 본

부와 교수진 간의 충돌이 빚어졌다.

2013년 6월 원장회의가 “총장후보자

는 직선제를 개선하여 총장임용추천

위원회에서 선정하며, 이에 관한 세

부사항은 별도 규정으로 정한다”는

학칙 조항을 신설하면서, 총장직선제

는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2014년 1월에는 기존 규정 총장

후보자 추천 규정이 폐지되고 ‘총장

임용후보자 선정에 관한 규정’이 제

정됐다. 학교가 총장 후보 2명을 추

려 정부에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하

는 큰 틀은 유지하되, 최종 2명을 선

정하는 과정을 기존 전임교원 직선제

방식이 아닌 추천위원회가 맡도록 한

것이다. 28명으로 구성되는 추천위원

회는 교원 18명(각 원별 3명씩 추천),

직원 2명(직장협의회 추천), 학생 1

명(총학생회 추천)의 학내위원 21명

과 이들이 각각 추천한 학외위원 7명

으로 구성된다. 총장 후보자로 신청

하려면 3개 원 이상에서 재직 전임교

원 15명의 추천을 받도록 했다. 총장

후보자 심의는 △후보자가 제출한 학

교발전계획의 구체성 및 실효성 △후

보의 사회적 영향력 △학교발전 의지

△도덕성 등을 평가해 최종 2명을 선

정한다. ↙

내년부터 교원 성과급적

연봉제 적용

한예종은 정부 방침에 따라 총장직선

제를 폐지한 데 이어 교원 성과급적

연봉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2014년 6

월 24일 열린 원장회의는 2015년 1월

부터 이를 전면 시행하기로 의결했다.

지금까지 교원들은 근무기간에 따라

연봉이 올라가는 호봉제의 적용을 받

았다. 성과급제가 시행되면 교원의

업적을 S·A·B·C의 4단계로 평가

해 다음 연도 성과급에 반영하고 일

정 비율이 기본 연봉에 누적된다. 기

존 교원업적평가가 해당 연도의 성과

급에만 적용됐던 것과 달리 해를 거

듭할수록 지속적으로 보수 격차가 벌

어지는 구조다. 1999년 4급 이상 일

반직 공무원에게만 적용되던 성과급

제를 국립대 교원으로 확대한 것이다.

정부는 2단계 방안에서 과도한 보수

격차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성과가

산금을 일부 완화하고, 대학별로 각

등급별 비율은 기준 비율의 ±5% 내

외에서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했다.

문병효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국립대 교원들의 보수

가 고위공무원들의 보수 체계에 비

해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라고 말한다.

2014년 2월 기준으로 공무원보수규

정에 따른 국립대학 교원 연봉의 하

한액은 2천2백만원 정도인데, 이는 7

급 계약직 공무원 연봉 하한액인 2

천3백만원보다도 낮다. 문 교수는 성

과급제 시행 이전에 교원들의 전문성

과 능력에 합당한 급여 조정이 필요

하며 국립대 교원이 민간기업이나 사

립대로 옮겨가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

다고 주장한다. 국립대 교원들이 이

미 낮은 수준의 급여를 받는 상황에

서 성과급제를 도입하면 국립대 교원

의 상대적 박탈감만 강화된다는 것이

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연구용역으로

작성한 ‘국립대학 교원 성과급적 연

봉제 도입에 따른 학문분야별 교원업

적평가 방안 연구’(2011) 또한 “기존

예산규모의 증액 없는 제로섬 방식의

성과급적 연봉제는 많은 반발을 초래

하고 있으므로 현재 예산규모보다는

더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한예종은 예술대학이라는 특

성상 기존 평가 모델을 그대로 적용

하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학교 본

부는 교육부의 ‘2014년 국립대학 교

원 성과급적 연봉제 운영지침’에 따

라 다른 대학 사례를 검토하고 8~9

월 중 학내 의견 수렴을 거쳐 자체

운영규정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성

과급제 운영안은 기존 ‘연구실적물(

실기업적) 심사기준’ 등을 참고해 마

련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실적물 심

사기준은 교수 임용과 승진에 활용되

는 기준으로, 6개원에 공통으로 적용

되는 지표와 원별·학과별 지표가 명

시돼 있다. 그러나 전면 시행을 두 달

앞둔 지금까지 성과급제 운영안은 공

개되지 않았으며 학내 공론화 과정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 15년간 정부는 꾸준히 신자

유주의적 대학 개혁을 추진해왔다.

‘세계화’를 최고 가치로 천명한 김영

삼 정부 이후 정권이 네 번 바뀌었지

만 큰 틀에서 교육에 지속적으로 시

장논리를 주입하는 방식은 큰 차이가

없다. 한예종은 “체계적인 예술실기

교육을 통한 전문예술인 양성”이라

는 설립 목적의 특수성을 인정받으며

그간 신자유주의의 광풍에서 어느 정

도 비껴나 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

나 현 정부는 어느 때보다 강력한 국

립대학 ‘선진화’를 추진하고 있다. 단

적인 예가 위에서 살펴본 총장직선제

폐지와 교원 성과급제 도입이다. 이

는 학내 공론화 과정이나 당사자의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혁과 한예종

논의에 의해 촉발되어 도입된 정책이

라기보단 정부 방침에 따라 강제적으

로 적용된 측면이 있다. 결국 국립대

학이라는 보편성과 예술학교라는 특

수성 사이에서 우리의 길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선승범 편집국장)

Page 5: 2014.10.13 제239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10월 13일 제239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날은 추워지고 입대의 계절은 다가온다.

그날이 오기 전에 축구하다가 누가 십자

인대라도 파열시켜 주길 바라겠지만, 그

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혹시나

카투사에 당첨되지 않을까 설레기도 하

겠지만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

다. 거기다 육군은 최근 군대 가혹 행위

논란의 한복판에 서있다. 그러니 우리,

공군 입대를 한번 생각해보자. 필자는

전역했으니 여러분만 한번 생각해보자.

▲간단한 정보들

공군 복무기간은 24개월이고, 휴가(외

박)는 6주마다 2박 3일 또는 8주마다 3

박 4일씩 나올 수 있다. 거기다 진급 때

마다 ‘연가’로 불리는 휴가가 10일 또는

11일씩 주어진다. ‘해리 포터’에 나오는

기숙사 점수처럼 공군도 착한 짓을 하

면 ‘가점’을 지급하는데, 그걸 모으면 포

상 휴가도 나올 수 있다. 계급별 복무

기간은 이병-일병-상병-병장 순으로

3-7-7-7개월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

하는 것이 있어 한마디 덧붙이자면, 공

군에 입대한다고 비행기를 몰지는 않는

다. 그보다는 비행기가 지나갈 활주로

를 닦는 일을 한다.

▲입대 시기

입대 시기는 언제가 좋을까? 12월 말이

나 3월, 4월이 적당해보인다. ‘칼 복학’

이 가능한 1월과 2월을 1순위로 둘 수

도 있지만, ‘서·연·고’ 재학생들이 떼

로 몰리는 시기라서 성적으로 그들을

밀어내고 합격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

서 12월 말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2

학기 종강 직후라서 입대하기엔 이르다

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른 입대가 오

히려 정신건강에 이로울 수도 있다. 그

러나 굳이 ‘정리’를 좀 하고 가고 싶다

면 3월 초를 추천하고 싶다. 좀 촉박하

지만 복학도 가능하고, 훈련 받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훈련단 입성과 몇 가지 문제들

이제 훈련단으로 가보자. 진주 금산면

속사리로 가면 ‘공군 교육사령부’ 기둥

이 떡하니 서 있다. 당신이 2년 간 뼈

를 묻어야 할 자랑스러운 공간이다. 활

주로 같지만 그냥 도로인 도로를 쭉 타

고 들어가다 왼쪽을 보면, 돌기둥이 받

치고 있는 신전 같지만 그냥 건물인 청

사 건물이 보인다(필자가 2년간 복무한

곳이다). 그 앞에 펼쳐진 거대한 잔디밭

에서 입대 행사가 시작된다. 이 행사를

끝으로 당신은 부모님과 작별하게 된다.

당신은 다시 활주로 같지만 그냥 도로

인 도로를 타고 사령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거기에 훈련단이 있다.

당신은 그날부로 ‘시간’과 다투게 된

다. 첫 주를 ‘가입단 기간’이라 해서 건

강이나 정신 상태를 검사한 뒤 최종 선

발 여부를 결정하는데(1,500명 중에 10

명 정도는 퇴출되는데 이 경우 입대 날

짜를 다시 잡고 재입대해야 한다), 아

무것도 안 시키기 때문에 앉아 있는 시

간이 굉장히 괴롭다. 똑같은 자세로 침

상에 앉아있는 빡빡이들을 보노라면 내

심정이 네 심정이고 네 심정이 내 심정

이다. 이틀쯤 지나야 전역이 728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농담을 던질 여유가 생

긴다.

그렇게 첫 주가 지나면 ‘점수’가 화두

로 떠오른다. 공군은 병사 관리 수단으

로 언제나 점수를 활용한다. 훈련 성적

을 매겨 복무 지역을 고를 특권을 주는

가 하면, 불시에 적성 검사를 치러 ‘특

기’를 고를 권한을 주기도 한다. ‘특기’

란 직업과 비슷한 개념으로, 한번 정해

지면 2년 간 맡게 된다. 그래서 이 시험

은 잘 봐두는 것이 좋다. 시험 팁을 주자

면, 어려운 문제는 버리고 쉬운 문제만

풀어 나가다가 시간이 다 되면 한 번호

로 쭉 찍는 것이다. 빨간 모자 조교들이

그러지 말라고 갖은 협박을 다 하지만,

무시해도 된다. 훗날 후임에게서 들은

절묘한 사기 팁도 있다. 세 명이 한 팀이

된다. 남들 서른 개 다 풀 때 그들은 각

자 열 개만 착실히 푼다. 그리고 조교들

몰래 서로 푼 것을 공유해 열심히 마킹

한다. 그러면 그 T.O가 드물고 일하기

좋다는 ‘회계’ 업무를 맡을 수 있다. 다

만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도 모

른다. 아무튼 적성 검사나 훈련은 적극

적으로 수행하는 편이 심신에 이롭다.

훈련단에 가면 시간과 더불어 원초

적인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식욕과

배변이다. 몸을 쓰면서 하루를 보내면

달고 시원한 것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몽쉘과 얼음 든 콜라를 위해서라

면 영혼이라도 바치고 싶은 심정일 것

이다. 배변도 문제다. 입대 첫 주, 훈련

병들은 갑작스런 환경 변화로 인한 극

심한 스트레스로 배변에 어려움을 겪

는다. 그러니까, 똥이 안 나오는 것이다.

짧으면 이틀, 길면 일주일까지도 고생

하게 된다. 최근에는 단촐하게나마 비

데가 설치되었다고 하니 조금 나을지도

모르겠다.

▲ 고난도 훈련들

그렇게 몇 가지 자잘한 훈련을 거치다

보면 고난도의 훈련 두 개를 소화하게

된다. 화생방과 행군이다. 포털사이트

에 화생방을 검색한 뒤 병사들의 표정

을 자세히 살펴보자. 그것이 석관동 캠

퍼스 후문의 ‘신품 떡볶이’ 좀 먹는다

고 나오는 표정인지, 아니면 살고 싶다

는 표정인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다

른 훈련은 몰라도 방독면 착용 훈련만

큼은 철저하게 익히는 편이 좋다. 또 하

나의 힘든 훈련은 행군이다. 행군을 하

면 15kg 남짓의 전투 배낭을 메고 적

게는 30km에서 많게는 50km에 이르는

길을 걷게 된다. 절반까지는 모두 표정

이 밝다. 행군 힘들다더니 겨우 이 정도

였어? 하지만 오후가 되면 누구도 그런

말을 입밖에 꺼내지 못한다. 팁을 주자

면, 오전에 물을 마시지 말아야 오후 일

정을 감당할 수 있다. 그리고 양말은 꼭

두 개 이상 겹쳐 신어야 다음 날 다리를

절지 않는다. 물집이 많이 잡히면 그게

터져서 살갗이 꼭 화상 입은 것처럼 다

벗겨지게 되므로, 행군도 괴롭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괴롭다.

그렇게 4주가 지난다. 오전 훈련을 마

치고 돌아오면 웬 사복 입은 장발 사내

들이 사색이 되어 얼쩡거리고 있는 모

습을 볼 수 있다. 몽쉘보다 반갑다는 당

신의 후임이다. 그날 당신은 동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한 달 차

이가 이렇게 크다는 둥, 저때로 돌아가

라고 하면 차라리 손가락을 자를 거라

는 둥, 당신은 그런 식으로 군인이 되

어간다.

▲ 훈련 막바지

수료까지 2주쯤 앞두면 저승사자 같

던 조교들이 친절한 천사처럼 변해간

다. 그 극적인 변화가 감동적으로 다가

올 테지만 사실 그들은 훈련병들로부터

최종 평가를 받아야 할 처지라서 그렇

다. 휴가를 잘리기 싫어서 친절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밉상 조교가 있다면 최

종 평가 때 필력을 발휘하면 된다. 아무

튼 마지막 2주가 무난하게 지나가고, 당

신은 마침내 입대 첫날 밟았던 그 잔디

밭을 다시 밟고 부모님과 재회하게 된

다. 그 길로 곧장 2박 3일 간의 외박(휴

가)을 떠나서 먹고 싶었던 음식, 그리웠

던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 부질없

는 그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당신은 다

시 진주로 돌아간다.

▲ 진짜 군생활의 시작

그때부터 당신은 6주 간 쓰지 못했던

귀한 모자 하나를 쓰게 되는데, 바로 이

병 전투모다. 갖은 설움을 다 겪으며 6

주라는 긴 시간을 보낸 뒤에 당신은 겨

우, 이병이 된다. 하지만 공군은 타군에

비해 자살자 비율이 훨씬 낮은 데다 거

의 모든 부대가 동기 생활관을 사용할

정도로 비교적 안전한 집단이므로, ‘자

대’로 향하는 길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

는 없다. 다만 98주만 더 참자. 물론 좀

길겠지만 말이다. (성민규 기자)

공군 입대 가이드

당신의 학교는 ‘몇 위’입니까?중앙일보, 학생들의 반발에도 대학 평가 강행

고려대, 연세대 등 총 8개 대학 학생회에서 언론사 대학 평가 거부 운동

지난달 22일 고대 학생회에서는 대학

본질을 훼손 시키는 대학 평가를 거부

한다’며 ‘대학 평가 거부 운동’을 공식

선언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마

음도 받지 않겠다’라는 표어로 강경하

게 대학평가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그

러나 지난 6일 중앙일보는 학생들의 반

발에도 불구하고 ‘2014년 대학 평가 순

위’를 발표했다. 중앙일보가 꼽은 2014

년 최고의 대학은 작년과 동일한 포스

텍(POSTECH)이었으며, 평가를 거부한

고려대학교(안암)도 작년에 이어 4위에

랭크되었다. 중앙일보는 총 4면에 걸쳐

대대적으로 대학 평가를 소개했다.

6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중앙일보

사옥 앞에 모인 서울권 8개 대학 학생

회(경희대·고려대·국민대·동국대·

서울대·성공회대·연세대·한양대)

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과 면담을 요

청했다. 그들은 “줄 세우기 식의 대학

평가는 오히려 대학의 질을 떨어트린다.

언론사에서 학벌주의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마구잡이 식으

로 외국인 유학생을 끌어들이고 학교의

외관을 꾸미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고

했다. 또 “커리큘럼과 대학의 자치 문

화를 비교하지 않는 평가는 오히려 대

학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는 셈”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 예로 사상 최고의 성적인 11위를

기록한 동국대를 들며, “동국대가 11위

를 기록한 까닭은 국제화 부문 평가(3

위) 때문이다. 학교는 이를 위해 학생

도, 선생님도 준비 되지 않았는데 수업

의 30% 정도를 영어강의로 무분별하게

채우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심지어

한국학 강의에서도 억지로 영어 강의를

개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

견을 위해 모인 학생들은 “대학 평가는

중요하지만 이렇게 대학의 질을 정량화

하고 효율성이 목표가 되면 안 된다. 대

학 경영이 효율성을 찾는 그 순간 상아

탑은 무너질 것” 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중앙일보 측에서는 “오히려

학문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영어강

의를 지향하기 위해 평가기준을 낮췄다”

라고 반박했다. 게다가 “지난 21년간 투

명한 평가를 했으며, 국내 대학의 교육

의 질을 높였다고 자부” 한다고 공식 입

장을 밝혔다. 그러나 면담은 “논의 후에

결정하겠다”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현

재 중앙일보는 대학평가에 대해 전국 4

년제 95개 대학을 대상으로 순위를 매

기며 ‘대학정보 공시’, 한국연구재단의 ‘

한국연구업적통합정보(KRI)’, 한국교육

학술정보원의 ‘대학공개강의(KOCW)’

등을 활용해 점수를 산출한다고 밝힌

바 있다.

평가 거부에 따른 학생회의 입장을

지켜본 박요한(고려대학교 4년) 씨는,

“나는 중앙일보 뿐만 아니라 언론사 대

학 평가 자체를 거부한다”고 말했다.

“학문의 상아탑인 대학에 평가를 한다

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

고 그 평가 기준마저 천차만별이지 않

느냐”고 말했다. ”게다가 점수가 높은

대학이라고 다 좋은 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고 하며 “학

생회의 거부 의사에 지지를 표한다”라

고 밝혔다.

이다은(한국외국어대학교 3년)씨는

“단순한 서열화를 위해 존재하는 서열

화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한

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줄 세우기 식의

피상적인 서열화는 대학 간의 위화감

을 조장하며, 학생의 대입선택을 단편

화시키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 한

다” 고 대답하며 “미국 대학과 비교를

하면 미국 대학생들이 대학을 평가함에

있어 가장 중시하는 것은 ‘교수’다. 미국

엔 그래서 미국 내 모든 대학 교수에 대

한 평가를 올리고 공유할 수 있는 오픈

된 사이트가 있다. 이는 미국 대학의 1

등부터의 서열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이 지향해야하는 대학 평

가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했다.

우리 학교는 특수목적대학으로 구분

되어 중앙일보 대학 평가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단순히 수치로 대학의 서열을

조장하는 언론사의 모습을 그저 타인의

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같

은 소식을 들은 강은경(전통예술원 한

국예술학과 14)씨는 “중앙일보로 대표

되는 언론사 대학 평가가 왜 중요한 지

조차 모르겠다.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이

냐” 고 반문하며 “사실 굉장히 쓸데없

는 평가 같다”고 밝혔다. (권라임 기자)

Page 6: 2014.10.13 제239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10월 13일 제239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빼곡한 버튼과 커다란 컴퓨터가 첨단으

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터치스크

린과 경량화된 전자제품에 둘러싸인 오

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원시시대 이야기

처럼 들리겠지만, 불과 20여년 전만 해

도 그랬다. 2000년대 이전,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등장

하기 이전에 제작된 SF영화를 본 사람

들이라면 커다란 스크린, 혹은 여러 대

의 스크린이 설치된 곳에 앉은 사람이

수많은 버튼을 누르며 컴퓨터와 상호작

용하는 이미지를 기억할 것이다. 이러

한 장면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후

반까지 SF영화에 꾸준히 등장하던 장면

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버

튼을 통해 수치를 입력하던 장면은 스

크린을 터치하는 장면으로 대체되기 시

작했다. 분리되어 있던 입력기기(키보

드)와 출력기기(모니터)는 이제 하나의

스크린에 통합되었다. 영화 속 장면만

변한 게 아니다. 이는 실제로 우리가 마

주한 인터페이스 환경, 즉 인간과 컴퓨

터 간의 상호작용 기술 변화와 맥락을

함께하고 있다.

1968년에 개봉한 스텐리 큐브릭 감

독의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면

여러 대의 스크린과 수많은 버튼이 설

치된 공간에서 버튼을 누르며 장치와

상호작용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영

화는 GUI의 선구자 앨런 케이가 같은

해인 1968년에 구상을 시작해 1972년

에 개념을 발전시킨, 아이패드의 전신

이라 할 다이나북(dynabook)이 상용화

에 이르기까지 몇 십 년도 더 이전인

시대에 이미 비슷한 디바이스를 소품으

로 쓸 정도로 시대를 앞서 갔지만, 여기

서도 아이패드를 연상시키는 이 장비를

제외한 다른 장치들의 상호작용은 버

튼을 누르는, 초기적인 방식에 머문다.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개봉한 지

20여 년 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

대 Ghost in the shell>(오시이 마모루,

1995)>가 등장한다. 여기서 인간과 컴

퓨터 간 상호작용에 대한 상상력은 훨

씬 더 진보한다. <공각기동대>에 등장

하는 인간-컴퓨터 간 상호작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기계화된 몸

을 이용하는 상호작용이고, 다른 하나

는 역시 스크린과 버튼을 매개로 한 상

호작용이다. 후자는 초기 컴퓨팅 프로

젝트부터 고수되던 전통적인 방식이지

만, 전자는 이전에 제시되지 않은 새로

운 매개 방식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에서 두

가지 방식의 상호작용이 병존한다는 것

이다. 인간의 정신이 신체를 벗어나 정

신을 통해 직접 가상세계와 매개하고자

하는, 이른바 탈신체화의 욕망이 표현

된 것이다. 이러한 탈신체화에 대한 욕

망은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과 개

념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영화가 나

올 당시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VR의

기술은 <공각기동대>에서 보여주는 완

벽한 탈신체화는 거리가 멀었다. <공각

기동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의체(기

계화된 신체)가 컴퓨터 네트워크 시스

템과 접속하며 탈신체화된 방식으로 작

동한다는 상상은 혁신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버튼과 스크린을 이용한 컴

퓨터와의 상호작용 장면은 당시 구현되

었던 인간-컴퓨터 간의 인터렉션 기술

에 훨씬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

크린에는 이미 80년대 매킨토시 리사

(Lisa)를 통해 상용화되었던 그래픽 유

저 인터페이스(GUI)는 온데간데없고,

초창기 중첩 윈도우 시스템을 연상시키

는 스크린과 쉴 새 없이 버튼을 두드리

는 오퍼레이터 역할을 하는 인물이 등

장할 뿐이다.

그 뒤에 등장한 <매트릭스>(엔디 워

쇼스키, 라나 워쇼스키, 1999)도 <공각

기동대>와 마찬가지로 이미 동시대에

는 낡은 이 되어버린 기술과 혁신적 상

상력이 양립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공

각기동대>와 마찬가지로 <매트릭스>에

서도 진보한 기술의 VR 기기를 이용해

정신이 직접 가상세계로 접속하는 모습

이 등장한다. 공각기동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기계화되지 않은 인간의 신체가

접속 단자를 통해 가상세계로 접속한다

는 것이다. <매트릭스>의 신체를 통한

가상세계 접속은 인간이 ‘기계 되기’를

시도하지 않고도 탈신체화를 이뤘단 점

에서 <공각기동대>와는 다른 비전을 제

시한다. 기계화되지 않은 신체를 접속

매체로 이용하여 신체화된 인간-컴퓨

터 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가능성을 내

보인 것이다.

VR 장치에 대한 발상은 <공각기동

대>를 앞질렀으나, 버튼과 스크린을 이

용한 상호작용은 퇴보한 모습을 보였

다. <공각기동대>에서는 초창기 중첩

윈도우 시스템을 연상시키는 스크린이

라도 등장했지만 <매트릭스>에서는 그

조차도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3년 뒤, 늘 고전적인 방식으

로만 표현되었던 스크린을 통한 인간-

컴퓨터 간의 상호작용이 비약적으로 발

전한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가 등장한

다. 바로 <마이너리티 리포트>(스티븐

스필버그, 2002)다. <마이너리티 리포

트>에서는 드디어 터치스크린과 중첩

윈도우 그리고 완벽한 GUI 시스템을

갖춘 스크린이 등장한다. 동시에 스크

린의 영원한 파트너일 것 같던 버튼들

이 일제히 사라진다.

더 이상 영화 속 인물들은 버튼을 누

르거나, 신체를 컴퓨터에 연결하지 않

았다. 스크린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건

드리거나, 스크린 앞에서 상반신을 움

직이는 것만으로도 인간-컴퓨터 간의

상호작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관객들은 신체화된 인터페이스와 마주

하게 된 것이다. 그 중 몇몇은 아마도 가

까운 미래에 터치스크린이 지배하는 세

상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후 등장하는

터치스크린은 SF영화에서 심심찮게 등

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팟과 아

이폰, 태블릿 PC의 등장으로 터치 스크

린이 직관적 인터페이스에 대한 상징처

럼 여겨지게 된 뒤, SF영화에 등장하는

인간-컴퓨터 간의 상호작용 기술은 터

치스크린을 이용하는 모습으로 뒤덮였

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GUI 인터페이스

는 세련된 인포그래픽 디자인을 보는

것처럼 정교해졌으며, 접속 단자와 같

은 복잡한 중간 매개 장치는 완전히 사

라졌다. 이러한 변화는 영화 밖의 세상

에서 벌어지는 인간- 컴퓨터 간 상호

작용 기술의 발전과 맥락을 함께한다.

터치스크린과 무선 인터넷의 발달 덕분

에 중간단자 없이 인간-컴퓨터 간의 상

호작용이 가능해지자 인간은 기계가 되

거나, 혹은 신체를 컴퓨터로 직접 연결

하는 것이 발전된 기술상이라는 생각을

버린 것이다. 인간은 신체를 컴퓨터에

묶어놓는 대신, 컴퓨터 명령어를 신체

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것이 사용자

중심적이고 투명한 상호작용 방식이라

고 여기면서 말이다.

하지만 신체화된 멍령어를 통한 인

간-컴퓨터 간의 상호작용이 실제로 사

용자를 중심으로 둔 인터페이스의 등장

인지는 의문이다. 신체화된 컴퓨터 명

령어 또한 개발자에 의해 프로그래밍

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컴퓨

터의 내적 논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어쩌면 <매트릭스>에서 제시된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다른 형태로 도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처럼

인간이 컴퓨터의 오퍼레이터 역할을 벗

어나지 못한다면 말이다. (강진수 기자)

색동무늬의 비닐가방은 거대한 탑이 되

고, 깨진 유리와, 버려진 병뚜껑들은 꽃

으로 피어났다.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

린 최정화의 개인전 «총,천연색(總,天然

色)»의 풍경. 꽃을 주제로 한 전시답게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작품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손끝에서 전신으로

사물들, 피어나다

SF영화를 통해 본 인간-컴퓨터 간의 상호작용 기술 발달

문화역서울 284 최정화 개인전 «총,천연색(總,天然色)»

전시가 열리는 문화역서울 284는 일

제시대에 지어진 경셩역을 모태로 한

공간으로, 근대화 과정의 상처를 상징

한다. 작가는 이러한 공간에 꽃을 주제

로 한 작품을 설치하여 한국의 근대성,

나아가 아시아적 근대성에 대해 새로

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

었다. 다양한 색감을 자랑하는 작품들

은 역 곳곳을 채우며 폐허에서 피어나

는 꽃의 생명력을 상징하며, 저렴한 가

격의 생활잡화를 재료 삼아 작품을 제

작했다는 점에서 공간의 재생과 버려

진 물건의 재생이라는 양가적 의미를

갖는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작품

은 ‹꽃의 페허›와 ‹꽃등›이다. ‹꽃의 폐허›는 폐허가 된 전시장 한쪽에 반짝거리

는 구슬들로 장식된 거대한 샹들리에

를 연상시키는 조형물을 설치하여, 폐

허 속에서 피어나는 꽃의 생명력을 표

현했다. 작품의 가장 윗부분에 달린 거

울은 샹들리에와 폐허가 된 바닥을 함

께 비추는데, 이는 폐허가 된 공간을 작

품 내부로 수용하여 역사적 상흔에 대

한 치유와 재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또한, ‹꽃등›의 경우 기계 장치를 이용하

여 끊임없이 피어나는 꽃의 모습을 연

출하여 생명의 영속성이 가진 힘을 전

달한다. 이처럼 치유에 대한 가능성과

생명력이 가진 힘의 표현은 서울역 노

숙인들과 함께 소쿠리를 쌓아 올려 만

든 탑과, 관객들이 기부한 버려진 플라

스틱 뚜겅으로 제작된 작품 ‹꽃의 만다

라›에서 정점에 이른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작품 몇 가지가

상업적 성격이 지나치게 강했다는 점이

다. 이러한 오브제 때문에 작가가 전시

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약

화되기도 했다. 이는 시각적 표현에 대

한 작가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

인다. 그럼에도 최정화의 «총,천연색»은 전반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는 전

시였다. 또한, 성격이 분명한 공간에 압

도되지 않고 작품이 공간과 잘 어우러

질 수 있도록 작업을 이끌어 낸 점도 성

공적이었다.

전시는 오는 10월 19일까지 열리며

관람료는 따로 받지 않는다. 문의사항

02-3407-3505, 3507 혹은 문화역 서울

블로그 (www.seoul284.org) 참조.

(강진수 기자)

Page 7: 2014.10.13 제239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10월 13일 제239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다른 음악대학과 차별화된 우리 학교

음악원의 정규 교육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것은 ‘서양음악문법’ 수

업이다. 문법[文法]은 문장을 구성하는

규칙으로, 서양음악문법은 서양음악을

구성하는 규칙이라고 볼 수 있다. 1부

터 6까지의 단계별 문법 교육 과정에

서 학생들은 자신들이 무심코 연주했

던 곡이 어떻게 쓰인 것인지, 어떤 구성

으로 이루어져 있길래 아름답게 들리는

지, 혹은 단순한 체계 속에서 작곡가들

이 어떻게 변화를 줬는지 등의 질문을

탐구하며 음악을 배워나간다. 곡을 분

석하면서 연주자들은 몇 십년, 길게는

몇 백년 전 작곡가는 어떻게 이 곡을 썼

을지 추측하면서 곡이 태어나던 그 시

간 속으로 흠뻑 빠져들어 간다. 어렵지

만 이 과정이 가능케 된 이유는 수십년

간 정립된 이론적인 뼈대, 그리고 곡 자

체가 가진 ‘틀’이 있기 때문이다. 자 이

제 우리는 완벽한 이론적 토대로 어떤

곡이 내 손에 들어와도 탄탄하게 마련

된 테크닉과 곡 이해로 연주해낼 수 있

다…! 정말?

현대음악 첫 번째 이야기

제시된 악보 첫 마디에 쓰인 «ffff

“dirty” sound, combine with voice ad

lib.»라는 작곡가의 요구사항은 클라

리넷 주자를 어안이 벙벙하게 만든다.

인상을 찌푸리면서 생각한다. 포르테

시시시시모는 크게 불면 되니까 패스,

“dirty” sound? 깔끔한 큰소리가 아니라

지저분한 큰 소리구나 생각한다. voice

ad lib.? ad lib.는 자유롭게 하라는 뜻

(adlibitum). 즉흥적으로 소리를 내라는

건가? 얼마나 길게? 혹은 얼마나 크게?

목소리로? 목으로? 말소리로? 깔끔하

게 분활되어 있는 마디 줄, 연주하기 힘

들긴 해도 적어도 ‘어떤 음’인지는 알

수 있도록 오선보에 명확히 표시되어

있는 음표 머리, 빠르게 흘러가버리지

만, 정확히 몇 분에 몇 박인지 친절하게

템포 설정까지 되어 있는 악보에 우리

는 안심한다. 하지만 위에서 보았듯이

작곡가가 적어놓은 어떤 특이한 요구사

항을 접하는 순간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모든 음악사, 음악 이론의 지식

을 총동원해도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

탄탄히 쌓아 올려놓은 서양음악문법을

다시 커다란 망치로 쳐서 산산 조각나

게 해야 한다. 여러 개의 주머니 속에

분류해 놓았던 구슬들이 데굴데굴 구르

면서 오선보조차 없는 흰 종이 위에 마

구 나열된 모습은 악보가 아니라 마치

어떤 현대 미술가가 그린 회화처럼 보

인다. 1952년 8월 29일, 뉴욕 우드스톡

에서 연주되었던 존 케이지의 ‹4분 33

초›는 그나마 양반이였던 게 그는 악

보에 ‘침묵’이라는 적어도 이해할 수 있

는 작가의 요구사항을 적어놓았으니 말

이다. 다소 전위적이었던(악기를 갑작

스럽게 부순다든지, 아무것도 하지 않

거나, 연주하다가 생뚱맞은 행동을 하

는 등의) 초기 현대음악의 형태에서 20

세기 말,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 작곡

가들은 이런 것 또한 하나의 악보에 표

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현대음악은 굉장히 다양한 갈래로

뻗어 나가고 있다. 그 몇 가지 갈래를

살펴보자면 첫째, ‘새로운 음렬 체계 개

발’이 있다. 둘째, ‘작곡가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정확한 음정과 정확한 박자

를 연주자들에게 요구하면서 생겨난 새

로운 기보법’이 있으며, 이는 전 세계

적으로 통용되는 공통언어로 자리잡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연주자들에게 많은

어려움을 준다. 셋째, 다양한 장르와의

결합과 오감의 청각화. 비디오 아트와

음향적인 부분과의 결합은 이미 많이

행해지는 퍼포먼스 류이다. 하지만 이

제는 청각과 다른 감각기관을 엮는 것

으로 모자라 다른 감각기관을 통해 청

각화된 효과를 느끼게 하는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다.

신기하다, 특이하다, 독창적이다, 이

해할 수 없다, 듣기 싫다. 현대음악의 수

식어로 붙어 다니는 대중들의 평가이

다. 필자는 한 악보를 들여다보던 중 (-

과/의 결합 =과/의 결합)이 음표 머리

곳곳에 붙어 있는 것을 보다가 몇몇 선

생님께 질문했었는데 아는 분이 없어서

작곡과 모 교수님께 찾아가서 여쭤보던

기억이 있다. 알고보니 그것은 미분음

을 표시하는 기호였는데, 같은 ‘도’라는

음정도 아주 높은 도가 있고 조금 높은

도(통칭 도샾이라 부르는 것)가 있고, 조

금 낮은 도(통칭 도 플랫이라고 부르는

것)와 아주 낮은 도가 있다는 것이다.

소리내기 끔찍하게 어렵다. 하지만 이

것을 해냈다고 가정하자. 완벽하게 아

주 높은 도와 조금 높은 도를 구별해내

어 작곡가가 명시한 요구사항을 그대로

이뤄내어 관객들이게 들려주었다. 관객

들은 여기서 무엇을 느낄까? 아니 애초

에 모호한 음정들의 차이를 정확하게

구분 지어 낼 수 있었을까? 현대음악은

솔직히 어렵다. 이해할 수 없는 곡들도

많고, 아직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조

차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주법, 표기법

들은 우리로 하여금 자꾸자꾸 현대음악

과 멀어지게 한다. 조성음악이라는 틀

속에 가두어버린 현대의 음악교육과정

을 탓해야 할까, 속칭 음악 보수파들을

농락하는 현대음악에게 더는 멀어지지

말라고 요구해야 할까?

아홉째 해를 맞은 SPO 아르스

노바, 그리고 21세기의 Ars Nova

Ars는 Arts를 Nova는 New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아르스 노바란 ‘신예술’이란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얼마 전 김동

률의 새 앨범 ‹동행›이 발표됐다. 낮

으면서 부드럽게 귓가를 간질이는 그

특유의 목소리 곁에는 다양한 악기들

이 아름다운 화성을 이루며 함께 흘러

간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다성음악.

말 그대로 성부가 여러 개인 음악을 일

컫는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 부르던 반

짝반짝 작은 별을 기억해보자. 커다란

지 작은지, 셈여림 차이가 있었지만, 담

임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하나의 음정

으로 “도도 솔솔 라라솔 파파 미미 레

레 도” 하며 노래 부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뼘 정도 머리가 커진 아이는 생각

한다. ‘따분해 죽겠어. 뭘 해야 더 신 나

게 부를 수 있을까?’ 옆에 앉아 있는 친

구를 툭 치면서 말한다. 너는 도도 미미

파파 미 이렇게 불러봐. 기가 막힌 삼

도 화음이 쌓이면서 더 아름다운 음악

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아릅답게 받아들여지는 이

러한 형태의 다성화음이 13세기였으면

쳐죽일 사탄의 음악이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성 니콜라우스 교황은 박자

와 화성의 다양함은 가톨릭 교리에 어

긋나며, 인간의 영혼을 어지럽힐 뿐이

라고 주장했다. 중세 초기부터 만들어

진 단선율 음악이 성행하였고, 이 멜로

디는 종교적인 가사만 붙일 수 있었으

며, 악기사용 또한 엄격하게 금지되어

오로지 인간의 입으로 하나님에게 경

배드릴 뿐이었다. 이러한 단성 음악을

플레인 송 혹은 찬트라고 부른다. 당시

찬트는 여섯 가지의 리드믹 모드(리듬

형태)와 3박 계열의 박자 체계 안에서

불러야 했는데 굳이 3박 체계를 고집했

던 이유는 3박이 성부, 성자, 성령을 뜻

하며 이에 근거한 음악은 하나님의 영

광을 더욱 드높힌다는 주장하에 이루

어졌다. 그러던 와중, 14세기에 이르러

필립 드 비트리라는 사람이 나타나 2박

자와 3박자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음

악체계를 주장하였다. 그가 이런 체계

를 정리해 놓은 책의 제목이 바로 ‘아

르스 노바’이다. 이에 반하여 구식 체

계를 고집하는 가톨릭 무리(그들을 아

르스 노바의 반대되는 이름으로 아르

스 안티콰라고 부른다.)은 여전히 진리

의 ‘3’만을 추구하였지만, 14세기 음악

의 흐름은 아르스 노바의 손을 들어주

었다. 그 시절, 엄격한 음악의 틀은 부서

졌고, 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 다성

음악은 다시 그들의 틀을 견고하게 세

우기 시작했다. 조성(Key)음악이라는

틀을 가지고 수십억 수천억 가지의 음

악을 만들어내자 식상해질 무렵, 새로

운 음계가 형성되고 조성이라는 장벽

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21세기 음악

은 또 한 번의 Ars Nova를 기대하고 있

다. (김수빈 기자)

SPO Ars Nova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의 상

주 작곡가인 진은숙의 현대음악 시리즈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2014»가 지

난 4월 20일과 24일, 그리고 10월 10일

사흘간 펼쳐졌다. 오는 10월 17일 금요

일 8시에는 2014년의 마지막 아르스 노

바 시리즈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된다. 2006년부터 올해로 9년째를

맞는 아르스 노바 시리즈는 1년에 총 4

회 공연으로 실내악 및 관현악 각 2회로

구성된다. 시리즈마다 독특한 컨셉으로

매 회를 거듭하며 20-21세기의 새로운

음악들로 대중들에게 새로운 음악의 지

평을 열어주었다. 특히 공연 시작 전 진

은숙 씨는 직접 해설과 작곡과 이야기

를 하는 과정을 통해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2012년 «아르스 노바

3»에서 서예리가 도발적인 경찰복장

을 입고 리게티의 종말의 불가사의를

불렀을 때는 많은 사람이 웃음을 참느

라 힘들어했고, 망치로 피아노 안을 터

치하거나 신용카드로 피아노 줄을 긁어

연주하는 광경 등의 새로운 연주 형태

들은 관객들에게 너무 낯설기만 했다.

지난 10월 10일 연주는 ‘카니발’이라는

주제 안에서 지금까지의 시리즈보다 조

금 가볍고 신 나는 곡들로 채워져 있어

관객들의 반응은 꽤 호의적이였다. 특

히 플랑크(Francis Poulenc)의 ‹가면

무도회›는 한국 초연이라 굉장히 낯

선 곡임에도 관현악의 재즈적인 선율과

바리톤이 부르는 해학적인(혹은 다소

그로데스크한) 가사의 노랫가락은 나

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즐거

움을 주었다. 또 하나의 특이했던 프로

그램은 비버(Heinrich Ignaz von Biber)

의 ‹바탈리아›라는, 현대음악 시리즈

에 어울리지 않는 바로크 곡이었다. 일

명 ‘묘사 소나타’로 전투 장면이나 새

소리 가축소리를 표현했는데 연주자들

이 중간에 다 같이 발을 구른다든지 여

덟 개의 조성이 다른 노래를 교차시키

는 등의 현대적인 요소가 관객들을 즐

겁게 하였다.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현대음악.

이미 멀리 앞서서 뛰어가고 있는 음악

사조는 즐겨 듣기에는 아직 너무 벅차

다. 하지만 일단 쫓아 따라가 보는 수밖

에. 귀에 맴도는 저 듣기 싫은(?) 소리

를 일단 들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작곡

가가 누구인지, 지금까지 그는 어떤 곡

을 써왔는지, 그가 사용한 모티브는 무

엇인지, 왜 이런 제목이 붙여졌는지 등

의 질문의 해답을 찾아보자. 그 안에 들

어 있는 재미있는 요소와 이야기들을

생각하며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현대

음악의 매력에 쏙 빠져들게 될 것이다.

Page 8: 2014.10.13 제239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10월 13일 제239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내 맘대로 하자고 만들었다

얼마 전 <한겨레>에 난 개방회로 기사

(9월 12일 치 22면 ‘전자부품·비아그

라 간판 사이 ‘예술’이 꽃피다’ 참조)를

봤는데 지면이 얼마 안돼 아쉬웠다. 하

지만 우리는 지면이 널널하다! 자기소

개 해달라.

세현 한예종 예경과 다니고 있다. 관심

있는 분야는 도시와 공간이다.

예슬 한예종 한국예술학과 08학번이다.

지금은 지역재생 일을 하고 있는 사회

적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근하와 고

등학교 친구라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되었다. 작년에 근하가 일하고 있던 경

기창작센터에 놀러 갔다가 현인 언니를

만났고, 부전공인 예술경영과 수업을 듣

다가 세현 오빠를 알게 됐다. 우리 둘

은 학교에서 ‘지역’과 관련된 프로젝트

를 함께 했었다.

근하 한국예술학과를 2013년에 졸업했

다. 아르바이트로 한 대안 미디어 뉴스

팀에서 뉴스를 편집하고 업로드하고 있

지만 어쨌건 백수다. 지난 1년간 경기

창작센터에서 지역 기반 프로젝트 일

을 했다. 야심 차게 들어갔는데, 일을 하

며 관 주도형 커뮤니티아트에 대해 회

의를 느끼게 됐다. 보이지 않는 올가미

들이 많더라. 남의 돈을 써서 하는 일이

라는 게 내 맘대로 안 됐다. 당시 센터에

서 함께 근무하던 현인 언니와 지금은

대구에 있는 주현 언니와 얘기하며 혼

자 아등바등한다고 안 될 일이라고 느

꼈다. 그리고 내 맘대로 일을 벌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개방회로를 시작하

게 되었다.

내 맘대로라니?

근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하면서 예술

가들의 욕심, 지역주민의 무관심, 보이

지 않는 손에 의한 알력 다툼이랄까 하

는 걸 느꼈다. 게다가 1년 단위 사업으

로 지속성 없는 일회성 이벤트 같은 느

낌도 있었다. 그게 지역기반프로젝트의

현 주소가 아닐까? 구렸다. 그러다보니

지역기반프로젝트가 됐든, 그냥 아트가

됐든, 큰 돈 안 들여도 우리끼리 재미있

고 소소한 걸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

다. 내 맘대로!

참, 현인 씨도 자기소개를 해달라.

현인 이현인이라고 한다. 홍대 예술학

과 04학번이고 동대학원 예술학과를 수

료했다. 시각미술이론을 전공했고 학부

졸업 이후 계속 미술계에서 일을 했다

는 점에서, 다른 멤버들과는 기반이 조

금 다르다. 지금은 서울시립미술관 미

디어시티서울에서 전시 코디네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12월 말까지 계약되어

있다(웃음).

개방회로는 어떻게 결성됐나?

현인 근하와 주현은 경기창작센터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셋의 업무는 달랐

지만, 다들 집이 멀어 출퇴근이 힘든 탓

에 함께 살았다. 자연스레 얘기를 많이

나누며 서로 처한 상황에 대해 공유했

다. 우리끼리 합이 잘 맞았다. 월세를 1/

n하려고 멤버들을 모았다. 그래서 원래

이름을 1/n으로 지으려고 했는데, 동명

의 잡지가 있어 관뒀다. 하나의 공통된

비전이 있진 않다.

근하 (하늘을 가리키며) 저기로 함께 가

자는 사람들은 아니다(웃음).

이미 만들어진 대안공간에서 시작할 수

도 있는데 따로 꾸려 나온 이유는 뭔

가?

예슬 나는 지금 현재 주목받고 있는 어

떤 대안공간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과정을 배우고

싶었다. 개방회로는 친구들과 함께 무

엇인가를 해본다는 데 의의를 두고 참

여했다. 내가 실천적인 사람이 아니라

한번 해보자는 용기를 냈다.

세현 덩치가 큰 조직에서 발생하는 부

작용에 대해 공감을 하고 있지만 딱히

기존 공간에 대해 커다란 반감을 갖고

있진 않다. 이미 체계가 잡혀있는 큰 조

직에 들어가서 일을 한들, 그게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서부터

내 힘으로 해보고 싶었다.

내 꿈에 세운상가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0만원은 싸

다면 싸지만 비싸다면 비싸다. 다들 벌

이도 넉넉하지 않은데 인터넷이 활성화

된 요즘, 굳이 돈 들여 물리적인 공간을

구한 이유는 무엇인가?

예슬 공간이 생기면 책임감도 생겨 스

스로 강제하게 된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모여 회의를 하고 있다.

세운상가 말고 다른 후보 공간은 없었

나?

현인 없었다. 내 꿈에 세운상가가 나와

서 다른 생각 안 하고 여기로 정했다(웃

음). 근하와 처음 세운상가를 방문한 다

음 날 바로 공간을 계약했다. 여기가 주

상복합이란 얘기를 들었다. 작지만 레

지던시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었다. 세운상가는 지대도 싸고, 교통도

편리하다. 청계천이나 을지로에서 재료

구입을 하기에도 굉장히 용이하다. 상

가 공간은 작업실 겸 윈도우갤러리로,

아파트는 숙식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

면 작가들에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아

직도 세운상가에 작게나마 레지던시를

만들고 싶단 꿈을 꾼다.

근하 세운상가에 자리 잡기 전에

‘300/20’이라는 팀이 여기 들어와 있

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흘려들었다. 그

런데 어느 날 현인 언니가 꿈에 세운

상가가 나왔다며 가보자고 했다. 종로

는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다니던 길이

라 세운상가라는 곳이 있는 줄은 알았

지만, 혼자 들어오기 무서운 공간이라

안 와봤다. 죽어 있는 공간일 줄 알았

는데 막상 와보니 너무 열심히들 일하

고 있더라.

개방회로가 세운상가에서 받은 인상은?

세현 인상을 받고 있는 중이다. 세운상

가가 역사적인 맥락이 굉장히 많은데

거기에 대해 체감하는 바는 별로 없다.

그냥 종로 한복판에 있는 의외로 오래된

건물이고 조용하다는 게 다다.

개방회로가 세운상가에서 대안적인 공

간으로 자생할 수 있다고 보나? 확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혹시 목표 중 하나인가?

세현 평소 안에 들어가서 너무 주도적이고

의욕적으로 해야 한다거나 자리를 잡고 뭔

가 보여줘야한다는 생각이 폐해의 원인이

라 느꼈다. 우리는 그러지 말자 싶었다. 계

시는 분들은 계시는 대로 하고, 우리는 우

리대로 할 거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최근 뉴스기사 덕인지 부쩍 세운상

가를 둘러보러 오는 사람이 늘었다. 지

대가 싸고, 매력 있는 공간으로 주목을

받고 있기에 앞으로 확장가능성은 크다

고 생각한다. 다만, 빨간날과 평일 밤 8

시 이후로 전기가 끊긴다거나, 주변부

에 말끔한 시설이 들어오기에 제한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과는 다른 양

상으로 전개될 듯하다.

개방회로는 첫 사업으로 일본의 아티스

트 콜렉티브 올타(OLTA)의 드로잉 전

시를 했다.

현인 미디어시티서울 참여 작가 중 타

무라 유이치로 씨의 리서치 어시스턴트

로 근하를 추천했고, 올 4월부터 각종

자료 조사를 도와주게 되었다. 그 와중

에 올타라는 그룹이 한국에 와있었다.

근하 올타와 타무라 씨는 ‘도쿄원더사

이트’라는 레지던시에서 서로 알게 된

사이다. 둘 모두 지금 일본에서 주목받

고 있는 작가다. 올타는 타무라 씨와 저

녁자리에 우연히 동석하게 되어 알게

됐다. 알고보니 올타는 난지창작스튜디

오에 입주해 있어 작가 유병서 씨와 아

는 사이였는데 나는 유병서 씨가 연출

로 있는 ‘미완성프로젝트’ 단원’이었다.

그런데 지켜보니 퍼포먼스 그룹인 올타

가 드로잉부터 시작을 한다는 점이 특

이했다. 그런데 이게 발표되는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드로잉 전시를 해보지

않을래?”하고 제안을 했다.

기획하고 있는 전시가 있나?

세현 한겨레에 대안공간이라고 소개되

었지만, 우리 스스로 대안공간이라 생

각해본 적 없다. 한편 우리가 또 전시만

을 위한 공간도 아니다. 지금은 미술 쪽

만 다뤄왔지만, 애니메이션 작업과 전통

공연을 준비 중이다.

우리는 자생적인 움직임에 관심이

많다. 요즘 ‘사업자 모임’이라는 걸 갖

고 있다. 초우상회, 그로우딥, 현대쎈타,

타투이스트 황인찬, 소설가 전영조, 디

자이너 윤덕준 등이 함께 하고 있다. 덕

준 씨가 같이 술 한잔 먹자길래 편하게

갔는데, 서로 뭘 해보면 재밌을 거 같

다는 좋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

가보다. 지금은 각자 분산되어 있지만

이런 사람들이 묶이면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공유하는 것

개방회로가 추구하는 바를 한마디로 표

현하자면?

현인 누군가 우리보고 정체성이 없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이런 애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이 잘 안 나왔다. 말

로 정리를 한다고 정체성이 되는 건 아

니지만. 미션과 방향성을 정해야 하는

가 고민도 많이 했는데 억지스럽게 느

껴졌다.

근하 미션과 방향성이 모아지지 않지만,

추구하는 바는 분명 있다.

예슬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공동체라는 키워드에 관심 갖게

되었다. 자연스레 연대라는 키워드도

생각하고 있다.

현인 지금은 한 명이 잘나서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거 같다. 각자 잘하는 게 있

고 못하는 게 있다. 서로 조금씩 도와가

는 게 필요하다.

개방회로를 하나의 공동체라 불러도 될

까?

세현 공유하는 가치가 있다면 공동체

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개방회로를 예로

들자면, “이걸 향해서 가자!”는 건 없지

만, 함께 공유하며 추구하는 가치가 분

명 있다. 의견 차이가 있어도 이를 해

결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다면 공동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개방회로는 무엇을 공유하나?

세현 개방회로라는 이름부터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 여

기는 CCTV 점포였다. CCTV는 폐쇄회

로티브이의 줄임말인데, 여기서 개방회

로라는 이름이 생각났다. 그 의미를 생

각해봤다. 폐쇄회로는 스위치가 켜진

상태로, 말하자면 작동하고 있는 상태

다. 그런데 개방회로는 스위치가 꺼진

상태로,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 폐쇄회

로가 지금 작동하고 있는 체제나 기존

의 것을 의미한다면, 대안 혹은 할 수 없

는 것과 못하는 것으로 큰 방향을 잡자

고 멤버끼리 합의를 했다. 얽매이진 않

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최대한

이를 염두에 둔다.

현인 요즘 젊은 사람들이 ‘스위치 오프

(off)’ 상태가 아닐까한다. 자기 에너지

는 없이 꺼진 상태로 기존 시스템에서

요구하는 것을 좇아 억지로 살고 있다.

우리 공간과 팀 이름이 너무 부정적이

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그래도 그게

지금의 나이자 우리인 것 같아서 바꾸

지 않고 그대로 가기로 했다.

예슬 로고 모양은 옴 기호(Ω)를 닮았는

데, 저항이란 뜻이다.

세현 우리끼리 “폐쇄회로에 균열을 낼

거야!”라고 자주 말한다.

근하 말만 급진적이다(웃음).

(인터뷰어 윤희지, 박이현

사진 오병훈)

2014년 10월 5일 한적

한 일요일 오후에 ‘개방

회로’를 만났다. 개방회로

는 김세현, 이예슬, 이현인, 조근하 4

명과 지금은 대구에 있는 이주현을 더

해 다섯으로 이루어진 모임이자 세운

상가 가열 327호에 자리를 튼 공간 이

름이다.

인터뷰이보다 인터뷰어인 우리가 먼

저 왔다. 김세현을 제외하고 조금씩 늦

었다. 우리는 선물로 덴마크 과자를 사

갔는데 약속이나 한듯 조근하는 커피

를, 이현인는 귤을 사왔다.

세운상가는 평일 오후 8시 이후와

주말에는 따로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

하지 않으면 전기가 안 들어온다. 건물

이 노후해 화재위험을 우려한 탓이다.

몰랐다. 그래서 속기하려고 들고간 노

트북 배터리가 없어 큰일이다 싶었는

데 마침 건너편 전기상가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양해를 구하고 멀

티탭을 꽂아 전기를 빌려 썼다.

건너집 사장님의 너털 웃음이 좋았

다. 먹을 것도 풍성하고 날씨도 좋았

다. 마치 소풍 온 기분이었달까. 그런

편한 기분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개방회로 인터뷰

폐쇄회로에 균열을 내자

Page 9: 2014.10.13 제239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10월 13일 제239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가고싶지만...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Glen Check

일렉트로니카

1집 - Haute Couture

9 번 트랙 - 60's Cardin

뜬뜬뜬 뜨르르뜬뜬.

10/19 일요일 /올림픽 체조 경기장

15:10~16:00 (50분 동안)

언니네이발관

모던락

5집 - 가장 보통의 존재

1번 트랙 - 가장보통의 존재

이런 이런 큰일이다.

10/19 일요일 / 올림픽 수변 무대

20:40 (60분 +a)

버벌진트

랩,힙합

Go Easy 0.5 (EP)

2번 트랙 - 좋아보여

헤어스타일도 바꿨네 역시 태가 나.

10/18 토요일 / 올림픽 체조 경기장

15:20~16:10 (50분)

D'Sound

애시드/누 재즈

4집 - Doublehearted

11번 트랙 - People Are People

아이 엠 더 원.

10/18 토요일 / 올림픽 체조 경기장

17:00~18:10 (70분)

이소라

발라드

8집 - 8

8번 트랙 - 우는 듯

거룩해 .

10/18 토요일 / 올림픽 88 잔디마당

20:30 (70분+a )

주변에서 조용하다고 한다

주로 밤에 활동한다

버스를 타면음악을 듣는다

최근 이별을 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게 좋다

요즘 북유럽에 관심이간다

전자음이 나쁘지 않다

가사는 상관없다

노래를 들을 때면 자주 흥얼거린다

변하지 않는 사람이 좋다

고급스러운것이 좋다

옛날 부터 인디밴드를 좋아했다

광고음악이 좋다

광고성우가 좋다

수필이나 에세이가 좋다

나가수를 즐겨 봤다

여성보컬이 좋다

라이브 공연이 좋다

한번에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다

강남대로가 좋다

Page 10: 2014.10.13 제239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10월 13일 제239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우리는 세상의 많은 자료를 컴퓨터에

담으며 살아오고 있다. 아주 예전에는

일부나 그럴 수 있었지만 개인용 컴퓨

터(PC)가 보급된 후 가정에서 가능해졌

고, 최근에는 스마트폰으로 어디서나 주

워 담고 있다. 자료 즉 데이터는 숙제용

워드 파일부터 친구와 찍은 사진, 유튜

브에서 내려 받은 비디오까지 다양하며,

저장 장소 역시 하드디스크, SSD 등 다

양하다. 우리는 그 정보를 잃으면 안 된

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열심히 쌓아 왔

지만, 실상 많은 데이터는 활용되지 못

하고 그냥 거기에 쌓여 있을 뿐이다. 물

질화되어있었더라면 먼지가 두껍게 앉

았을 거다.

그래서 누군가는 ‘자료를 무작정 쌓

아만 놓는 게 무슨 의미인가’란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PC가 세상에

나온 지 20년 만에 ‘데이터를 쌓아만 놓

지 말고 활용해보자’하는 움직임이 일

어나게 됐다. 이것이 우리가 요즘 신문

과 방송에서 접하곤하는 ‘빅데이터(Big

Data)’라는 움직임의 시작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노트에 펜으로 쓴

다거나 엑셀 같은 스프레드시트를 통해

가계부를 만들고 보유하고 있는 책과

비디오의 목록을 기록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책이라면 경제서인지 자

기계발서인지 구분을 할 테고, 영화자

료라면 어느 감독의 영화인지 꼬리표를

붙일 것이다. 이게 바로 데이터의 활용

이다. 빅데이터 활동에서의 데이터 분석

도 기본적으로 같다.

이제 사람들은 더 정교한 기술을 습

득해 더 많은 데이터를 정리하기 시작

했다. 바로 빅데이터다. 빅데이터에 대

한 데이터 분석 활동을 전문적으로 하

는 분야를 ‘데이터 사이언스(Data Sci-

ence)’라 한다. 데이터 사이언스를 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는 ‘아마 A는 이럴

거야.’라고 가정하거나 혹은 특정한 질

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이를 ‘가설(Hy-

pothesis)’이라하고 얻어진 해석의 틀을

‘모형(Model)’이라 부른다. 이런 일련의

활동은 과학과 매우 유사해서 과학이라

는 말이 붙었다.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

면 어떤 권위나 기성의 믿음에 얽매이

지 않고, 오로지 관찰에 의해 축적된 데

이터로만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 출

발부터 중요했다. 이런 점에서 데이터

사이언스는 과학의 본질적인 정신을 되

살리고 있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이 다루고 있

는 대부분의 데이터는, 우리가 흔히 엑

셀 화면에서 보는 표 형태의 데이터다.

이를 표 형태의 모양으로 구조화되었다

는 의미에서 ‘정형 데이터’라고 부른다.

그런데 오늘날 쌓이고 있는 방대한 양

의 데이터 대부분은 이런 표의 형태가

아니다. 따로 특별한 작업들을 거쳐야

그렇게 정리되는데, 이러한 데이터들을

‘비정형 데이터’라고 부른다. 그중 각종

의 기계가 출력하는 프로그램의 기록이

나, 우리가 방문하는 웹의 포털 사이트

에서 남는 기록 같은 걸 ‘로그(Log) 데

이터’라 부른다.

영상과 음성 데이터는 로그 데이터

와 쌍벽을 이룬다(영상은 정지영상과

동영상으로 나뉘지만, 편의상 이를 묶

어 영상 데이터라 불러보자). 영상 데이

터는 다루기도 힘들거니와 여기서 이차

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뽑아내는 데에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아직

많은 사람들이 원활하게 작업 할 수가

없다. 도대체 영상과 음성 데이터가 다

른 데이터와 무엇이 다르길래?

다른 종류의 데이터는 표로 만들었

을 때 항목의 순서를 바꾸어도 문제가

없다. 예를 들어 엑셀의 두 열(Column)

의 데이터를 맞바꾸어도 가장 위의 항

목명만 본다면 전체를 해독하는 데에

문제가 없다. 그런데 영상과 음성 데이

터는 다르다. 영상의 경우 필름이나 영

상센서 상의 위치가, 음성 데이터의 경

우 시간 순서가 매우 중요한 정보다. 예

를 들어, 어떤 그림에서 윗 부분을 잘라

아랫 부분에 갖다 붙인다거나, 악보에서

음표의 순서를 마음대로 바꾼다고 생각

해보라. 굉장히 어색해질 것이다. 영상

에서는 한 ‘지점’, 음성에서는 어떤 한

‘시점’에서 그 이웃이랄게 매우 중요하

다. 이런 특징을 두고 “마르코프 성질을

가진다”고 표현한다.

영상과 음성 데이터가 다른 데이터

와 다른 점은 이뿐이 아니다. 무엇이냐

면 ‘자리관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

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특징인데, 인

접한 위치 사이에 ‘확산(Spread)’이 잘

나타난다는 점이다. 영상의 경우 ‘블러

(Blur)’라고 하는데, 의도적으로 뿌옇게

이런 확산이 나타나게 하는 기법을 블

러링이라고 부를 때 그 블러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데이터에서도 나타나지 않

는 영상과 음성 데이터 만의 특징이다.

많은 경우 번짐은 바람직하지 않게

여겨진다. 보통 깨끗한 영상을 필요로

하니까. 그런데 이런 현상이 있기에, 우

리 인간이 세상을 학습하고 지능을 가

질 수 있었다는 시사가 학계에서 점점

퍼지고 있다. 즉 영상을 다룬다 함은 우

리가 긴 지구역사에서 무생물에서 생물

로 도약케 된 비밀의 근원, 그리고 여타

동물에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된 도

약대와 마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학 얘기가 멀게만 느껴지는가? 이

미 여러분은 이를 마주하고 있다. ‘컴퓨

터 그래픽스(Computer Graphics)’는

영상 데이터에 공학적으로 접근 이들과

예술가의 접점이다. ‘포토샵’을 제작한

어도비(Adobe) 같은 기술회사와 <아바

타>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과 등이 협력

하며 개척해온 컴퓨터 그래픽스는 많은

이들의 예술적 영감을 자극해왔다.

그에 반해 내가 하고 있는 ‘컴퓨터 비

전(Computer Vision)’이라는 분야는 아

직 대중에게 존재감이 약하다. 컴퓨터

비전이 뭐냐고? 거꾸로 세운 컴퓨터 그

래픽스라 할 수 있다. 컴퓨터 그래픽스

가 우리가 컴퓨터에 주는 명세서라 할

프로그램의 지시를 따라서 어떤 상징을

모니터 화면에 그리는 것이라면, 컴퓨

터비전은 인간의 눈과 시각계를 흉내내

어 자연 그대로의 영상에서 각종의 상

징과 사물, 그리고 이들 사이의 관계를

추리해내는 기술이다. 근래에 컴퓨터

비전이란 기술은 구글(Google)로 유명

해진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되며 비로소

주목 받기 시작했다.

다음호에서는 숨 가쁘게 발전하고

있는 컴퓨터 비전 분야와 연관되어 인

공지능(AI)의 큰 진보를 끌어줄 기술

로 각광받고 있는 기술 ‘딥러닝(Deep

Learning)’을 소개하겠다. (이동윤)

이 많은 자료를 어디다 쓸꼬? 컴퓨터 비전! 데이터로서 영상이 가지는 특징에 대하여

당신이 누군가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던

도중에 상대가 이렇게 말했다고 생각해

보자. “네 생각은 너무 비과학적이야.”

그 말을 듣고 발끈하지 않을 사람이 몇

이나 될까. 우리는 ‘과학적’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과학적 사고력

키우기’, ‘다이어트도 과학적으로’, ‘해

당 사건에 대한 과학적 규명이 필요하

다’... 과학적인 것은 대개 비과학적인

것보다 옳고, 합리적이고, 더 나은 것으

로 여겨진다. 하지만 한번쯤 이 당연하

고도 이상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

다. 우리는 정말로 ‘과학적’인 것을 추구

하고 있는 걸까? 아니 그 전에, 대체 ‘과

학적’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우선 어떤 이론이 ‘과학적’이라고 해

서 그 이론이 사실임을 담보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넘어가자. 그러나

사실이든 아니든 그 이론이 ‘과학적’이

기 위해서 갖추어야 하는 조건이 있다.

그것이 경험에 의해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조건은 반증

가능성이다. 어떤 과학 이론도 절대적

으로 확실하게 증명될 수는 없기 때문

에, 과거에 통과했던 시험에 떨어지거

나 혹은 더 나은 이론으로 대체될 가능

성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과학

은 독단과 권위가 아닌 경험적 관찰에

근거해야 한다. ‘교수가 그렇게 말했다’,

‘미디어에서 그렇게 말했다’라는 주장에

‘정말로 그런가?’라는 의문을 품는 것이

과학적 사고의 시작이다.

이와 같은 기준들에 의해 걸러지는

것이 ‘비과학적 사고’이다. 우리는 비과

학적 사고를 ‘비합리적 사고’라고 부를

수도 있다. 왜 과학적인 사고가 더 합리

적인가? 과학마저도 때때로 오류를 범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과학적

사고는 우리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염두에 둔다는 가장 중요

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과학적으로 사

고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끊임없는 의심을

통해 우리는 점점 더 나은 결론을 도출

해내며 옳은 방향으로 우리의 길을 수

정해간다.

그러나 과학이 이룩해 놓은 세계 위

에 사는 우리들은 정작 과학적으로 생

각하지 못하는 오류를 자주 범한다. 비

과학적 사고는 외계인, 심령술사, 음모

론 같은 거창한 주장들뿐만 아니라 우

리의 일상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느 날 친구가 이런 소식을 전해왔다

고 생각해보자. “너가 좋아하는 그 너구

리 라면 뉴스에서 봤는데, 발암물질 나

왔대. 이제 먹지마.” 대부분은 그런 발

암물질이 든 라면을 여태까지 먹어왔다

는 사실에 경악할 것이다. 그 발암물질

은 무엇이고 검출된 물질이 정말 위험

한 것이 맞는지, 농도와 양은 얼마나 되

는지 같은 의문을 가지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2012년 12월, 농심 너구리 라면에서

벤조피렌이 검출되었다는 뉴스가 보도

되었다. 실제로는 벤조피렌이 검출되었

다는 사실보다 그 검출량이 인체에 유

해한 정도인지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물도 너무 많이 마시면 죽는 것처럼 완

전히 안전한 물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적게 먹어도 위험한 물질인 경우도 인

체가 충분히 해독할 수 있는 미량이라

면 허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너구리 라

면의 벤조피렌은 인체가 해독 가능한

미량이었음에도, 해당 라면은 연일 뉴

스를 타며 발암물질 라면이라는 비난

을 받았다.

혹자는 의문을 제기할 지도 모른다.

“우리는 과학자도 아닌데 굳이 과학적

사고를 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과

학은 우리 삶의 모든 곳에 있다. 뉴스에

서 나오는 지구온난화 기사를 들을 때,

몸이 아플 때 일반 병원에 갈지 민간요

법을 쓸지 고민하는 것, 하다못해 장을

보러가서 카제인나트륨을 뺀 커피와 첨

가된 커피 중 무엇이 덜 해로울지를 선

택하는 것까지. 우리의 일상은 이미 과

학적 판단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가 되었다.

과학적인 사고는 우리를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사고방식이다. 문학,

음악과 같은 예술이나 사랑과 같은 감

정에도 똑같이 과학의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가 병을 치료하거나 어떤 식품을 먹을

지 선택하는 일상부터 시작해서, 어떤

사실들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릴 때, 나

아가서는 자연과 과학기술, 사회현상들

을 다룰 때 과학적 사고는 우리에게 가

장 중요한 지침이 된다.

칼 세이건은 과학을 ‘어둠을 밝히는

작은 촛불’이라고 했다. 과학은 우리 주

위의 세계에 빛을 비추어 우리로 하여

금 미신과 두려움 너머, 무지와 망상 너

머, 마법에 홀린 선조들의 생각 너머에

있는 것을 보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현

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더 이상 천둥번

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

히 우리 주위에는 그럴듯한 경험담으로

포장한 현대판 미신들이 존재하고 있

다. 이 시대에도 어둠을 밝히는 촛불들

이 필요하다.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이 터졌을 때,

어떠한 조작 증거들을 보여주어도 끝까

지 황우석은 단지 피해자일 뿐이라며

음모론을 펼치던 사람들을 기억하는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이 생겼을 때,

광우병 때문에 한국이 끔찍한 재앙에

처하는 미래를 그린 웹툰이 인터넷으로

확산되었던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

사회에 ‘정말로 그럴까?’, ‘왜 그럴까?’

라고 한 번 더 질문을 던지는 과학적 사

고가 보편화되어 있었다면 이러한 일들

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합리성의 길로 가는 방

법을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일상으로 ‘

검증’하는 사고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주장들 앞에

서 그것이 합리적인지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양자역

학과 화학결합과 대수론에 대해서 철저

히 알 필요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에게는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법’

이 필요하지 않은가.

미신과 오컬트는 역사 속으로 사라

졌다. 하지만 21세기의 현실에는 과학

의 탈을 쓴 또 다른 ‘미신’이 등장할지

도 모른다. 우리가 끊임없이 ‘정말로 그

럴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말

이다. (김초엽)

우리는 과학적으로 사고하는가?일상의 ‘비과학’에 관하여

Page 11: 2014.10.13 제239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10월 13일 제239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박유하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

를 둘러싸고 한동안 많은 논란이 일었

다. 각계각층에서 그녀의 책에 관한 비

난과 비판을 쏟아 냈으며, 지난 7월부터

는 ‘위안부’ 피해자들과 출판사간 법리

공방마저 시작되었다. 미리 고백하자면

그토록 떠들썩했던 광장의 분위기와 달

리, 이 책을 집어 들었던 당시의 나는

그러한 논쟁들에 대해 단 한마디도 들

어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논란의 중심

이었다는 ‘바로 그’ 『제국의 위안부』라

는 책을,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민

낯으로 마주해버린 셈이다. 지금에서야

느끼는 것이지만, 당시 책을 둘러싼 쟁

점들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

다. 만약 이미 전개된 논의들을 미리 습

득한 상태에서 책을 읽었다면, 나는 아

마 훨씬 더 엄하게 책 속의 이야기들을

쳐냈을 것이다.

저자는 ‘현재 ‘‘위안부’’들에게 덧씌

워진 ‘20만 명의 강제 연행된 소녀’와

‘민족의 딸’이라는 상징을 거둘 것’과 ‘

일본정부에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불

가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 책의 가

장 큰 시사점이기도 한, ‘위안부’를 직

접 모으고 관리했던 조선인‘업자’의 존

재를 부각시킨다. 또한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민족’ 차원을 넘어 ‘자본주의’ ‘

가부장제’ ‘국가주의’라고 말한다. 그리

하여 결론적으로 일본과 한국은 더 이

상 ‘정치적으로’ ‘위안부’를 이용하지

말고, 일본 정부가 도덕적 책임을 지는

선에서 논쟁을 끝낸 후 다른 사안들을

해결하는 것에 집중해야한다고 말한다.

언뜻 보기에는 너무나 ‘깔끔한’ 정리

이고, 여태 나왔던 ‘위안부’ 관련 발언

중 가장 ‘신선하고’ ‘생산적인’ 담론이

다. 그런데도 나는 이 깔끔하고 그다지

두껍지도 않은 책을 읽어내기가 영 불

편했는데, 그 이유를 상기시켜보기 위해

서는 아무래도 책에서 나온 쟁점을 조금

더 차근차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타자로 남은 ‘위안부’

주장 1. ‘20만 명의 강제 연행된 소

녀’와 ‘민족의 딸’이라는 상징을 거둬

내야 한다

저자는 ‘위안부’의 상징으로 흔히 묘사

되는 ‘20만 소녀’의 이미지가 사실은 과

장된 것이라고 말한다. ‘20만’이라는 숫

자는 ‘‘위안부’’와 ‘정신대’의 수를 혼동

해서 나온 것인데, 그것이 정확한 통계

인 양 통용되고 있다는 말이다. 또한 소

녀들이 분명 있긴 했으나, 그들이 다수

는 아니었다고 밝힌다. 그럼에도 계속

해서 위와 같은 이미지가 재생산되는

이유에 대해, 첫째, 조사과정에서 정신

대와 ‘위안부’를 혼동했고 둘째, 그러한

상상이 우리의 피해의식을 키워주고 유

지하는 데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해

석한다. 다만, 저자 또한 인정하는 것처

럼, 20만 명이 아닌 5만 명이라는 숫자

가 전체 고통을 경감시켜 줄만큼 치명

적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두 번째 이유를 조금 더 풀어 말하자

면, ‘강제로 끌려가 순결을 잃은 소녀’들

을 ‘민족의 딸’로서 남겨두는 것은, ‘순

결이데올로기’와 ‘민족주의’로부터 파

생되는 피해의식을 유지하는 데에 효과

적이라는 것이다.

현재까지 한국 사회에서 주로 다뤄

졌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논

의들은 ‘어쩔 수 없이 어린나이에 순결

을 잃어버렸던 불쌍한 할머니들’과 ‘죽

일 일본 놈들’이라는 두 가지의 공고한

큰 전제들 하에서 사회적 지지를 받아

왔다. 즉, ‘당신은 민족의 피해자이기에

잃어버린 순결에 대한 말은 더 이상 하

지 않을게요’라는 암묵적이고 폭력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선-악 구도의 민족주의가 여전히

재생산 되고 있으며, ‘‘위안부’’들은 가

부장제 아래 ‘보호받는’ ‘처녀성을 잃은

피해자’임과 동시에 예외적 ‘죄인’으로

낙인찍힌다.

‘더럽혀진’ 여성을 배척하는 순결주

의와 가부장적 인식도 오랫동안 그들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한 원인이었

다. (......) 그래서 대사관 앞 소녀상은 협

력과 오욕의 기억을 당사자도 보는 이

도 함께 소거해버린 ‘민족의 피해자’로

서의 상일뿐이다. (본책 207쪽)

한편 그러한 상징을 강화하는 것은,

정해진 틀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 ‘

돈 벌게 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 자발적

으로 업자를 따라나섰거나, 애초에 순결

하지 않았거나 소녀가 아니었던 이들을

이 운동이 함께하는 대상에서 공식적으

로 배제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위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 대상에 대한

국가폭력 문제나 여타 근본적 원인들을

볼 수 없게 만든다.

주장2. 조선인 ‘위안부’들의 ‘다른 기

억’이 배제당하고 있다

내가 울면 저희도 울고 먹던 것도 주고

그랬다. 고주부대 부대장은 나보고 고생

한다면서 안쓰러워했고 중위도 내게 잘

해주었다. (<강제2> 159쪽, 본책 70쪽에

서 재인용)

일본 사람한테 나가 압박은 많이 받았

지. 압박은 많이 받았지마는, 내 운명인

디. (...) 나를 그렇게 한 일본 사람을 나

쁘다는 소리는 안 해. 그리고 한국 사람

이지마는 한국 사람이 주인이 돼갖구는

얼마나 나를 뚜들겨패는지 몰라. (<강제

3>, 225쪽)

저자는 ‘위안부’의 증언들이 그동안 ‘이

야기를 듣는 이들’의 입맛에 맞춰 선별

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착한 일본군’에

관한 이야기, 모든 것을 운명으로 수용

하며 한국 사람을 더 원망하는 이들의

사례들은, 운동을 끌어가는 이들의 입

장에서는 드러내기보다 배제시키는 것

이 편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나 또한 ‘위안

부’의 이와 같은 ‘낯선’ 증언들을 처음

접했을 때 왠지 모를 거부감을 느꼈는

데, 혹자들은 그 이유에 대해 ‘그러한 증

언을 드러내는 것이 문제해결운동에 있

어 큰 도움이 되지 않아서’라는, 흔히 말

하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공적효과’를 고려해서라는 2차

적 이유에 앞서, 어쩌면 보다 근원적으

로는 그동안 자신의 연민/적개심을 자

극하기에 적합한 이미지들에만 익숙해

있다가, 그 틀을 벗어나는 말들을 마주

했을 때 느낀 단순한 불편함을 그렇게

치부한 것 아니었을까. 저기 저 심지 굳

게 투쟁하는 민족 투사들의 모습에 안

도하며, 그 하나의 이미지가 영원한 역

사적 진실을 알려준다는 것처럼 느끼며

말이다. ‘구경꾼’ 다수는 이제 역사적 주

체가 되기를 거부하지만, 몇몇 특정한

이들만은 하나의 위치, 하나의 시간, 하

나의 증언에 박제되어간다. 또한 이는 ‘

위안부’들을 여전히 우리 사회 안에 온

전히 끌어들이지 못하고 타자화시키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저자가 이 증

언들을 낭만화 시켜 짜깁기하며 ‘제국’

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경향은 있으나,

많은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가해져왔던 ‘위안부’들의 증언에 가한

검열과 행간읽기에 관한 성찰은 생각해

볼만한 지점이다.

저자는 이러한 증언을 드러내는 것

에서 나아가, ‘착한 일본인’을 말하는 데

에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아마도

그녀는 일본인/군 자체에 대한 오해가

한국사회 안의 민족주의를 공고히 하

며, ‘위안부’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데

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물

론 이 대목에서 저자가 문제적인 발언

을 여럿 하긴 했으나 거기에 대해 가할

비판은 잠시 접어두고 이 지점에 관련

하여 이야기 꺼내는 까닭은, 한국사회

에서 한-일간 민족주의 대립의 해결이

여전히 유효한 쟁점이기 때문이다. 직

접적인 정치의 영역이라 생각되지 않

는 상황(개인적인 교류, 관광)에서는 서

로간의 적대감이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여전히 한국사회에서는 역사적 정치적

맥락 등에 의해 ‘학습된 적대감’이 불타

오르고 있다.

일본인에 대한 악마화는 여전히 남

아있고 이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며

구조를 가린다. 게다가 그러한 악마화

는 또 다른 괴이한 폭력을 발생시키기

도 하는데, 일본정부나 민족에 대한 반

감을 가진 이들이 온/ 오프라인 상에서

“(일본 ‘놈’들이 나쁘니까) 일본여자들

을 강간하겠다”고 농담하는 것이 그 대

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국가주의, 자

본주의, 가부장제 아래 일어난 피해가

우리 안에서 ‘민족’이라는 이름을 내걸

고 재변모하여 작동되는 것을 계속해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 상징을 해체한 이후, 우리의 자세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위안부’ 피해자

가 그나마 안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

는 방법이 ‘민족투사’로서 행동하는 것

이기에, 이 중 몇몇은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여

전히 식민지배시절의 ‘저항논리’로서

민족주의를 내세우거나, 이것을 삶의

근거로 버티는 이 또한 있을 것이다. 그

러나 다른 한 편에선, 조선인 업자로부

터 받은 학대가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

고통스러워하는 이가 있고, 혹여나 동네

사람들이 자신이 과거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봐, 사람들에게 선물

로 받은 꽃을 꼭꼭 숨겨서 집에 들고 들

어가는 이도 있다.

그녀들이 ‘민족’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

이 피해원인의 전부는 아니다. 전자만

을 보았을 때, 우리는 ‘위안부’ 피해자

들을 하나의 상징에 박제시키고 각자

민족 증오에만 몰두하면 된다. 그러나

후자를 보면, 간단할 줄 알았던‘문제 해

결’은 그리 간단치 않다. 앞으로 확장되

는 논의가 더 이상 없다면 ‘위안부’ 문

제의 해결은 언제까지나 유예될 것이다.

순결이데올로기의 근원을 성찰하지 않

으면, 구조적 착취에 대한 이해가 없다

면, ‘위안부’를 공창의 연장선상이라 말

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무작위로 매장당

할 것이다. ‘가난한 여성’이라는 계급/

성의 고질적 취약점이 논의되지 않는다

면, 우리 내부로 문제제기가 들어오는

순간 ‘민족주의’가 주던 지지의 힘은 한

순간에 무너질 것이다.

본 책은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

져준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전개된

논의 안의 모순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

녀의 시각은 피해자인 ‘위안부 여성’과

제국의 시각을 계속해서 오가며 혼란

을 주기도 하고, 모든 논쟁점들에 예외

적 단서를 달아두어, 그녀의 주장들을

비판하기 애매하게 만들기도 한다. 거

대 구조들을 펼쳐 보이며, 그 틈에서 일

본제국과 군대의 책임은 슬그머니 뒤

로 빼버리거나, 일본국/군과 ‘위안부’

의 관계를 지나치게 낭만화 시키는 경

향도 보인다. 이를테면, 남성에 의한 여

성의 착취 문제를 드러내면서도, 위안

소를 구축하고 소비한 일본군과의 따

뜻한 기억들을 부각시킨다. 나아가, 전

후 ‘착한 일본군’의 도움을 받아 귀향한

몇몇의 사례를 들어, 일본군이 ‘위안부’

들을 ‘해방’시킨 주체이기도 했다고 말

한다. 애초 상정된 관계와 구조 자체가

문제였음에도 말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현존하는 피해자들에게 또 한 번의 폭

력이 될 수 있음을, 저자는 좀 더 신중히

생각해야 했던 것 아닐까.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가해지는 여

러 비판들의 초점도 주로 여기에 맞춰

진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에도 불구하

고, 저자가 제기하는, 위안부를 둘러싼

중층적 원인들에 관한 문제제기는 지

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10년 전, 경제학

과의 모 교수가 TV프로그램에서 ‘위안

부’와 공창을 연결 짓는 발언을 하여 사

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적 있고, ‘민족

의 딸’로서의 ‘위안부’ 상에 대한 문제

제기는 페미니즘 등지에서 꾸준히 있어

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사회에서는

합의되고 확장되어야 할 논의의 자율성

과, 상징 해체 이후를 위한 안전장치가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의 ‘주류적 시선’

과, 문제적 논의들이 출현하면 바로바

로 차단시키기만 하는 악습이 서로 영

향을 주고받으며 지속되기 때문이다. 법

정으로 간 『제국의 위안부』가 어떠한 ‘

심판’을 받을 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지금 우리에게 이 ‘심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독자들이 나서는 공론장이라 생

각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책 한권 불태

워버리는 것은, 사실 너무나 쉬운 일이

다. (장민경)

‘해방’과 ‘상처’의 기억투쟁 글쓰기『제국의 위안부』 서평(1)

Page 12: 2014.10.13 제239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10월 13일 제239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바르셀로나의 밑바닥을 전전하는 주인

공 욱스발은 어느 날 시한부 인생을 선

고 받는다. 그에겐 죽음의 그림자가 지

독하게 따라붙는다. 영화사에는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키루>(1952, 구로사와

아키라)의 시청 과장, 와타나베 간지가

있었다. 와타나베는 임종을 앞두고 시

민을 위한 공원을 남긴다. <이키루>가

전후 일본의 잿더미 같은 상황에서 만

들어진 영화라면 <비우티풀>(2010, 알

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은 미국

헤게모니의 끝물, 신자유주의 세계화라

는 거친 파도에 실려 우리에게 찾아온

영화다. 욱스발이 처한 곤란은 우리 세

대가 마주한 곤란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굳건했던 모든 것들이 썰물처럼 쓸려가

는 지금 시대에, 욱스발은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욱스발의 꿈은 거창하지 않다. 두 자

식에게 필요한 집세를 마련하기 위해

욱스발은 인력브로커 일을 한다. 그는

미등록이주노동자와 고용주 그리고 경

찰을 매개한다. 먹이 사슬의 가장 아래

에 구 식민지와 냉전시대의 유령 같은

미등록이주노동자가 있다. 이들의 일상

은 추방에의 공포와 꿈같은 희망 사이

에서 진동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은 더욱 희미

해지지만 공포는 현실이 된다. 스페인

국민이라는 자기동일성 바깥에 서 있는

그들은 두드려 맞고 추방당하거나 죽임

당한다. 강제단속이라는 폭력의 순간을

다른 국민들은 놀라 바라보고만 있다.

보다 욱스발은 이들을 연민하고 있

다. 동료들을 구하려다 함께 잡혀 들어

간다. 하지만 그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그의 조그만 욕심이 모든 것을 망친다.

욱스발은 끝내 무엇도 남기지 못하

는 듯하다. 임종의 순간에 딸 안나에게

남긴 다이아몬드 반지는 진위를 의심받

는다. 욱스발이 그 고생을 해가며 벌어

둔 돈은 세네갈 이주여성 이게가 훔쳐

도망간다. 그녀가 돌아오는 장면은 애

매하게 처리되어 있지만 환상에 가깝

다. 열린 결말이라고 양보해본들 본질

적으로 이 이야기는 비극이다. 욱스발

자신의 절규대로, 왜 이런 일들이 그에

게 일어났나?

욱스발은 세네갈인이나 중국인과 마

찬가지로 경계 바깥에 서 있는 사람이

다. 정확히 말하자면 욱스발은 그 자신

으로 경계인 사람이다. 그는 영매로 이

승과 저승의 경계에 서 있다. 국민과 외

국인의 경계에 서 있다. 영화에 등장하

는 수많은 타자들 중에 욱스발은 가장

비극적인 인물일 수도 있다. 타자들은

최소한 세네갈인 혹은 중국인, 게이라

는 정체성, 경계 바깥에 서있다는 동질

성을 갖는다.

하지만 욱스발은 이름을 제외하곤

어떤 정체성도 갖지 못한다. 돌아갈 고

향도 없다.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순

간 내전의 상처가 환기되며 욱스발 역

시 추방과 이주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이 뚜렷해질 뿐이다.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욱스발은 자신과 같이

경계에 서 있는 동료 영매를 제외하곤

누구에게도 울음을 터트릴 수 없다. 자

신을 피억압자로도 혹은 다른 무엇으

로 서사화할 수 없는 곤란. <비우티풀

>은 <박하사탕>처럼 주인공에게 면죄부

를 주는 영화가 아니다. <비우티풀>을

두고 중국인이나 세네갈인의 고통을 외

면하는 거짓 휴머니즘이라는 비난은 부

당하거나 최소한 적절하지 않다. 마찬

가지 이유로 (보편적인 의미에서) 숭고

한 아버지상을 그렸다는 평 역시 반쪽

짜리다.

영화 내내 어둡던 욱스발의 표정이

환해질 때는 큰돈을 챙기게 되는 순간

도, 양말에 꿍쳐둔 지폐 더미를 세는 순

간도 아니다. 바로 네 가족이 함께 모여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마람브라와 처음

사귀게 된 이야기를 나눌 때다. 코딱지

처럼 하찮을지 모르는 자기 자신의 이

야기를 전해주는 순간이다. 이 영화는

비극이지만 묵시록은 아니다. 절망스런

상황에 발버둥 치면서 그는 분명 무언

가를 남긴다. 세계와 자신 모두 종말로

치닫고 있지만 어쩌면 그는 가장 중요

한 것, 바로 이야기=기억을 남긴다.

영화의 첫 장면으로의 소급 혹은 마

지막 장면으로의 도약. 욱스발과 그의

아버지 마테오는 피레네 산맥에서 만

난다. 피레네 산맥은 그들의 가족이 떠

나고 싶어 했던 곳이지만 욱스발과 아

들 마테오가 결국 가보지 못한 곳이다.

또한 영화에서 욱스발이 안나에게 가르

친 비우티풀biutiful이란 단어가 형용하

는 유일한 대상이다. 돌이켜보건데 욱

스발이 남긴 것은 하나 더 있다. 아름답

다는 비우티풀biutiful이라는 말이다. 비

우티풀은 뷰티풀beautiful이라는 문법

즉 글의 법에서 벗어난 단어다. 비우티

풀이란 말이야 말로 영화에서 자기동일

성의 폭력에 신음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가 아닐까? 법이 그들에게 틀렸다

고 선고할지라도, 그/녀가 말하는, 그리

고 그/녀들의 아름다움이란 본질은 늘

옳다는 위로. (박이현)

타자에게 건네는 혹은 그들이 남긴 조그만 위로<비우티풀> 리뷰

<웜 바디스>(2013, 조너선 러바인)에서

인간과 좀비는 서로 분리되어 있다. 그

경계에 높은 장벽이 세워져 있어 소수

의 군인만 작전을 위해 좀비의 지역으

로 투입된다. 다른 좀비 영화에선 좀비

가 인간을 침범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각자의 영역이 명확히

구분돼 있다. 영화에서 좀비는 인간보

다 수가 많고 점점 늘어나고 있다. 좀

비는 인간을 먹어야 살고, 인간은 생존

을 위해 좀비를 소탕해야만 한다. 따라

서 좀비와 인간은 불가피한 적대 관계

를 맺고 있다. 한편, 좀비들은 버려진 공

항에서 지낸다. 왜 그곳에 모여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그저 배회할 뿐이

다. 영화는 이 좀비들이 어디서부터 비

롯되었는지 그 원인에는 관심이 없다. 8

년 전 치명적인 전염병이 퍼졌다는 것

외엔 아무런 단서가 없다.

<웜 바디스>는 목적 없이 공항 주변

을 어슬렁거리는 한 좀비의 내레이션으

로 시작한다. 이 좀비는 자신의 삶을 지

루하게 여긴다. 그는 다른 이들과 어울

리고 싶어하고 감정도 느끼고 싶어한다.

또한, 자기가 누구인지 기억해내고 싶

어한다. 그는 자기만의 공간을 꾸며 그

곳에 각종 물건을 수집해두고 음악도

듣는다. 심지어 어설프게나마 말도 한

다. 이 좀비는 인간을 사냥한 후 뇌를 먹

는 것을 좋아하는데, 뇌를 먹으면 그 사

람의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기 때문이라

고 한다. 잠을 잘 수 없는 좀비에게 이것

은 마치 꿈과 비슷한 경험이다. 이 좀비

는 감정이 없고 말을 할 수도 없으며 생

각할 수 없다는 좀비의 전형에 어긋난

일종의 돌연변이다.

이런 특이한 행동 양식을 보이는 좀

비는 상당히 난감한 존재다. 좀비를 인

간의 적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처단하는

데 죄책감을 덜어주는 이유는 바로 좀

비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진짜

인간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즉 좀비

는 생각할 수 없고 피를 흘리지 않으며

감정이 없고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

하므로 정당한 살상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인간 진영의 논리다. 하지만 이 좀

비는 그것을 뒤흔든다. 그는 비록 좀비

지만 인간다운 것에 해당하는 요건들을

갖고 있다.

줄리를 만나고 이 좀비는 한층 인간

다워진다. 그리고 줄리로부터 R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내가 그의 이름

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유명한 시구처럼 이 좀

비는 줄리의 호명으로 비로소 존재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R의 언어는 처음엔 웅

얼거리는 정도였지만 점점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어 제법 의사 표현을 할 수 있

게 된다. 이제 기온의 변화에도 반응하

고 심지어 꿈까지 꾸게 된다. 그리고 R

뿐만 아니라 다른 좀비들도 서서히 변

화를 겪는다. R과 줄리의 모습에서 자극

을 받은 다른 좀비들도 잃어버린 기억

과 감정을 되찾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

게 된다. 그들도 R처럼 다시 ‘심장이 뛰

기 시작’한 것이다.

좀비 무리가 스스로 인간다움을 되

찾아가고 영화는 이런 좀비와 인간의

화합을 도모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서로 다른 두 종(種)이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되는 과정 즉 좀비가 인간 사회로

편입되는 과정을 전개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보니Boneys’라는 또 다른 종

이 제물이 된다. 보니는 해골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좀비 중에서도 가장 포악

한 존재로 묘사된다. 살아 있는 모든 것

을 먹어 치우는 최상위 포식자인 보니

에게 영화는 절대적인 악과 맞먹는 위

상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보니

에 대한 설명은 아주 적다. R의 내레이

션으로 얻는 정보가 전부다. R에 따르면

그들은 ‘포기한 자, 희망을 잃은 자’이다.

즉 보니는 인간다움을 되찾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부류다.

보니는 갑자기 인간을 습격하는데

이때 좀비는 인간에게 그들의 아군이라

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보니에 맞서

인간과 좀비가 합심하여 싸운다. 보니

는 잔인한 식육자로 그려지지만, 인간

과 좀비가 힘을 합치자 허무하게 무너

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어떠한 양심

의 가책도 없었다는 내레이션이 흘러나

온다. R은 ‘그들은 이미 늦은 자들’이라

고 비정하게 얘기한다. 일전의 적이었

던 인간과 좀비는 보니라는 또 다른 적

에 대항하여 동지가 된다. 이렇게 좀비

라는 타자는, 보니라는 또 다른 타자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의 승인을 받게 되

고 새로운 공동체가 성립한다.

<웜 바디스>는 타자가 어떻게 ‘우리’

가 되는지에 대한 기준을 동일성에서

찾고 있다. 구체적으로 ‘인간다움’이라

는 조건이다. 좀비가 어떤 인간다운 것,

즉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고 여겼던 감

정과 기억들을 다시 찾아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인간의 승인을 받을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좀비는 인간이 아

니다. 완전히 인간이 된 것 같은 R을 제

외한 나머지 좀비들은 R처럼 피를 흘리

지도 유연하게 움직이지도 못한다. 어

쨌든 그들은 인간 사회에 섞이게 되는

데 공동체 안으로 편입될 때 그들이 인

정받은 것은 ‘인간다움’ 이라는 속성이

지 ‘좀비’가 아니다. 즉 인간과 유사한

측면 즉 동일성으로서 인정을 받은 것

이고 좀비라는 존재 자체를 포용한 것

이라고 할 수 없다.

<웜 바디스>에서 좀비/보니를 가리

킬 때 ‘치유’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데 이것은 그들을 비정상적인 혹은 병

리적인 상태임을 전제하고 있다. 즉 인

간의 입장에서 좀비에게 ‘치유’의 가능

성이 있거나 ‘치유’가 된 것처럼 보일 때

에 한정하여 받아들인다. 또한, 보니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가차 없이 제거

된다. ‘치유’된 상태는 인간과의 동질성

을 뜻하고 이것은 곧 정상적인 것이다.

이런 일련의 도식에 따라 타자를 공동

체 안으로 편입시킨 구조는 이미 그들

을 언제든지 다시 배제할 수 있는 근거

를 내포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인간

사회에 들어온 좀비를 보여주는 장면에

서도 이것을 읽을 수 있다. 새로운 공동

체에서 좀비는 인간의 배려와 보살핌이

필요한 약자의 위치에 있다. 이들은 결

코 동등한 관계가 아니다. 만일 사회화

에 실패한 좀비가 등장한다면 아마 그

는 또 다른 보니가 되지 않을까.

(김주예)

타자가 우리가 될 때<웜 바디스> 리뷰

Page 13: 2014.10.13 제239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10월 13일 제239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윈도우98 익숙한 부팅 음을 들은 뒤에,

ADSL 접속기를 실행시킨다. CPU를 썬

더버드 900으로 업그레이드했는데도,

여전히 부팅이 느리다. 테크노마트에

가서 256mb짜리 램을 하나 더 사던지

해야겠다. 투덜거리며 윈앰프로 MAYA

님의 음악방송을 틀어 놓는다. 하마사키

아유미의 ‘Free&Easy’를 들으면서 카드

캡터 체리의 팬 사이트 ‘사쿠라의 미니

홈’의 게시판에 접속한다. 학교 가기 전

에 올린 게시물에 긴 댓글이 달려서 기

분이 좋아졌다.

SBS에서 방영하는 카드캡터 체리의

후반부가 궁금해서, 카방클님이 번역한

대본을 찾았다. 그 와중에 야후 코리아

에 많은 카드캡터 체리의 팬 사이트가

등록 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서 ‘사쿠라의 미니 홈’은 특히 수준

이 꽤 높은 홈페이지였다. 무의미한 카

운터나 눈이 날리는 조잡한 자바 스크

립트는 당연히 없었으며, 유행했던 프레

임도 사용하지 않았다. 방명록의 작은

버튼에 이르기까지 모든 디자인은 통일

성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카드캡터 체

리의 고화질의 바탕화면과 모든 O.S.T

가 올려져 있었다. 그 홈페이지를 만든

리☆군이 나와 같은 또래의 중학생이라

는 것에 놀랐다. 리☆군이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친해질 방법이 떠오르지 않

았던 나는 그 게시판에서 자바 스크립

트를 악용한 팝업 창을 100번 눌러야

하는 태그(소위 폭탄태그)를 통해 반달

리즘을 저질렀다. 그 사건으로 아웅다

웅 다투게 되면서 리☆군과 친해졌다.

그녀의 게시판을 통해 다른 팬 사이트

운영자들과도 자연스레 친해졌다. 그들

은 <KANON>, <투 하트>와 같은 미소녀

게임이나 <카드캡터 체리>이외에도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디지 캐럿>과

같은 애니메이션의 팬 사이트를 운영했

었다. 나중에는 하루에 10개 정도가 되

는 홈페이지 게시판을 순례하면서 무수

한 뻘글을 올렸었다. 나중에는 그들과

ICQ메신저 개인번호를 교환하고, 각자

의 방명록에 매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댓글을 확인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

도 마찬가지여서, 1년이 지나니깐 그 홈

페이지들은 리뉴얼을 핑계로 결국 방명

록만 남게 되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소위 ‘친목질’이었다.

BoA의 ID : Peace B가 나오고 n세대

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시대였지만, 우

리는 그것이 가짜 관계라는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항상 메신

저로 대화할 수 있었지만, 펜으로 직접

쓰는 펜팔을 시작했다. 휴대폰이 없어

서 집 전화로 새벽에 몇 시간씩 통화하

기도 했다. 몇몇 사람들은 조심스레 번

개 모임을 이야기했었다. 오프라인에서

누군가를 처음 만났던 건 리☆군이었다.

반년 넘게 리☆군과 친하게 지내긴 했

지만,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알지 못했

다. 엄청난 설렘이었다. 그것은 만나지

못한 어떤 내밀한 대상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었다. 우리는 에른스트 루비치

의 어떤 톨스토이의 소설로 서로를 알

아보기로 한 것도 아니고(민망하니까),

휴대전화도 없었다. 20분 동안 수원역

근처 시네마 타운 앞에서 서로를 ‘맞을

까?’ 의심하며 서 있다가, 어색하게 그

녀가 처음 말을 걸었던 순간 나는 얼마

나 부끄럽던지. 전화 너머 리☆군의 목

소리를 통해 그녀를 상상했는데, 은테

안경을 낀 살짝 통통한 보통의 중학생

이었다. 뭐, 상관없었지만. 우리는 극장

에서 줄리엣 비노쉬가 나오는 <쵸콜릿>을

봤다. <어둠속의 댄서>의 비요크를 좋

아했지만 왠지 우울한 영화를 같이 보

면 안 될 것 같았다. 눈 덮인 수원 장안

문 주변을 걷고, 음반매장과 서점을 돌

아다녔다. 오락실에서 <비트 매니아>와

<타임 크라이시스>를 몇 판 플레이했

다. 존댓말을 쓰는 것 이외에는 온라인

에서 만난 사람도 다를 게 없었다. 이후

에 리☆군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도 만

나게 되고, A.C.A나 코믹월드와 같은 만

화행사도 몇 번 가게 되었다. 당시의 코

믹은 주로 여의도 중소기업박람회장(일

명 리버관)에서 열렸다. 여의도역에 내

리자마자 외관이 코믹월드에 온 것이

분명한 학생들이나 코스플레이어들로

북적거렸다. 여의도역 화장실에는 코스

튬으로 갈아입으려는 학생들로 가득 찼

고, 이 더운 분위기는 리버관의 내부까

지 이어졌다. 행사장 내부의 팬시와 동

인지를 판매하려는 학생들의 열기는 리

버관의 덥고 탁한 공기와 어울려져 나

를 지치게 하였다. 그날부터 애니메이

션에 관심은 많이 줄었던 거 같다. 그래

도 사람을 만나는 건 즐거웠다. 특히 온

라인에서 친하게 지내는 누군가와 실제

로 만났을 때, 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갭을 좋아했다.

<카드캡터 체리>의 SBS 방영이 끝났

다. 팬 사이트를 운영하던 그들은 수험

생이 되거나, 군인이 되었다. 애니메이

션 개인 팬 사이트들은 저작권 문제로

문을 닫거나, ‘하마사키 아유미’나 ‘모닝

구 무스메’와 같은 일본 아이돌로 옮겨

가기 시작했다. 당시 유행했던 ‘하이홈’,

‘네띠앙’, ‘인터피아98’과 같은 웹 호스

팅 업체는 점점 줄어가고 있었다. 입시

나 군 생활을 핑계로 방명록만 남았던

홈페이지들은 조금씩 방치되다가 조용

히 사라졌다. 일부는 네이버나 이글루스

에서 개인 블로그를 운영했다. 개인 홈

페이지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었고, 나

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떨어지면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을 한동

안 접었다. 내가 수험생이 되었을 때, 그

사람들과 연락은 거의 끊겼었고, 그럼

에도 나는 한동안 방치된 사이트에 정

기적으로 방문했다. 만화 <현시연>에서

애니메이션 동아리 ‘현대 시각 연구회’

의 회장인 마다라메가 졸업 후에도 동

아리방에 들락거리는 장면이 있다. 마

다라메가 짝사랑하는 사람을 보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전형적인 라이트 오타

쿠인 그에게 동아리는 평범한 자신을

다른 존재로 있게 했던 공간이라고 생

각한다. 나도 마다라메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공간들은 결국 서버에서 전부

사라지고 잊혔다.

2년 전에 리☆군은 오랜만에 결혼한

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5년 만의 연

락이었다. 신랑은 회사의 동료라고 한

다. 그녀는 막연히 오라고 하는데, 과거

의 인터넷 친구인 내가 가는 것도 좀 그

렇고 해서 결국은 안 갔다. 너의 결혼식

때 가야만 하는 다른 결혼식이 있다는

아무도 안 믿을 핑계를 댔다. 나는 리

☆군의 결혼식 전날에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한다는 텅 빈 축복을 그녀에게 메

신저로 보냈다. 그리고 “결혼해도 우리

들의 사쿠라짱을 잊지 말아줘”라고 가

벼운 농담을 덧붙였다. 아무런 답장도

오지 않았다. (유도진)

ZOOM_REC0019.mp3

자정이 지나자 거리의 사람들이 비틀거

리며 엉키기 시작한다. 그들은 신발로

바닥을 끌면서 침을 뱉고, 하수구에 토

악질을 한다. 하수구 위에 쓰레기들이

끓고 있다. 거리에 쌓인 쓰레기 더미들

이 툭툭 떨어진다. 캔과 프라스틱들 따

위도 신발 코에 차이며 아스팔트 바닥

을 나뒹군다. 손님을 태운 택시가 도로

를 내달린다. 차바퀴가 차도를 긁고 지

나가자 맨홀 뚜껑이 사정없이 빠개진다.

불현듯 지나가는 오토바이 엔진소리가

순식간에 도시의 공기를 긁어낸다. 차,

오토바이, 발전기, 히터의 엔진소리들이

어지럽게 부닥치고 있다. 늘어선 족발

집, 횟집, 통닭집들의 열린 문 사이로 레

인지가 불을 뿜는 소리가 들려온다. 횟

집 수조 안에서 공기 방울들이 맹렬히

보글거린다. 무언가가 구워지고 튀겨진

다. 어디에선지 부술 듯이 테이블에 술

잔을 내려치는 소리가 들린다. 흥분한

누군가의 악 내지르는 소리도 들린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른다. 그것은 말

이나 대화가 아니다. 서러움에 울부짖

을 때, 큰 소리로 웃어댈 때, 분노를 내

지를 때 성대가 경련을 일으키는 소리

들. 찢겨지고 긁히는 소리들이다. 그것

들은 도시의 소음과 섞이면서 또 격렬

히 마찰하면서 싸우고 있다. 밤이 되면

거리 위의 사람들은 본래의 모습을 숨

기지 못한다. 그들은 술, 어둠, 광기 어

린 소리들에 의존하여 스스로를 내팽개

친 채로 요란함을 받아들이고 내지른다.

낮의 거리가 걷는 사람들의 격식, 정중

함, 갖은 규칙들로 잔뜩 덮여 있었다면,

밤의 도시를 가로지르는 사람들은 그것

들을 모두 무시할 수 있다. 낮의 그들이

했었던 패턴의 동작을 버리자 몸은 저

절로 예측 불가능한 쪽을 향해 춤을 추

듯이 움직인다. 걷는 듯 멈추고, 멈춘 듯

뛰며 어둠 속을 후비는 바퀴벌레들처럼

밤이 되면 그들은 그들이 움직일 때마

다 나는 괴상하고 불편한 소리들 때문

에 결코 존재를 감출 수 없다. 모든 바

퀴벌레들이 저마다의 소리를 터뜨리며

함께 볼륨을 높이며 거리를 벗겨 낸다

(scratch). 이때 거리는 벗는다(strip).

아저씨는 아줌마의 얼굴에다 삿대질

을 한다. 그리고 욕을 한다. 씨발년. 아

줌마도 욕을 한다. 개새끼. 그 옆으로 정

신을 잃은 샐러리맨이 구두 굽을 아스

팔트 바닥에 직직 끌며 지나간다. 그는

사방으로 걷는다. 골뱅이주막 골목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검붉은 얼굴로 헤헤 웃으면서 크게 트

림을 한 번 한다. 뭐라고 소리를 질러

보려다가 철푸덕 결국 바닥에 주저앉는

다. 온 몸을 베베꼬며 신음하는 그의 구

두굽과 바짓단이 아스팔트 바닥에 마구

쓸린다. 그는 두팔로 무릎을 움켜잡더

니 몸을 둥글게 해서 옆으로 눕는다. 택

시가 그를 피해 아슬아슬하게 급정거를

한다. 멀리서 병이 깨진다. 소리는 둔탁

하게 부딪힌 뒤, 청량하게 산산조각나

흩어진다. 택시 문이 벌컥 열리자 야구

잠바를 입은 남자가 로켓처럼 튀어나

온다. 그는 그대로 풀썩 엎어져 전신주

기둥에 토를 쏟는다. 뜨거운 국물이 시

멘트 바닥에 튀겨진다. 거리가 신음한

다. 야구 잠바를 입은 남자가 신음한다.

둥글게 누운 남자도 신음한다. 야구 잠

바의 애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그의 등

을 퍽퍽 두들기며 울먹인다. 앞좌석에

서 그의 친구가 뒤늦게 내리더니 급하

게 전화를 건다. 토를 멈춘 야구 잠바가

이번에는 가래침을 뱉기 시작한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침을 뱉고는

친구가 들고 있던 전화기를 빼앗아 거

꾸로 들고 욕을 한다. 이 씨빨. 세 명은

다시 택시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택시

는 문이 한꺼번에 뻑 닫히자마자 폭주

한다. 바닥의 경사로를 따라 서서히 토

사물이 흐르고 있다. 바닥에 둥글게 말

려 있던 남자가 계속해서 신음한다.

(*음원은 다음 링크에서 들을 수 있다.

http://soundcloud.com/roomoffriend)

(이정빈)

그 많던 팬 사이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스트릿-스트립 / 스크래치-스크랩 (1)

카드캡터 사쿠라 팬클럽 활동기

도시를 긁는 소리들

Page 14: 2014.10.13 제239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10월 13일 제239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이 글은 『레트로 마니아』의 독후감이어

야 했다. 현재의 팝이 재생되는 플랫폼

은 웹이라는 요지의 <토탈 리콜: 유튜브

시대의 음악과 기억> 챕터를 읽고, 인터

넷과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다가 그것이

내 유년기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글의 주제는 자연스레,

유년기의 내가 매혹됐던 인터넷으로 옮

겨갔다. 나는 92년생이다. 과거를 회고

하기에는 턱없이 어린 나이지만 지금의

자아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시간대로

돌아가보려 한다.

먼저 음악을 듣는 내가 있다. 불법 다

운로드가 아무런 제재 없이 기승을 부렸

던 소리바다와 벅스뮤직이 점차 유료화

압력을 받을 때, 네이버 지식인을 통해

서 브릿팝과 뉴메탈을 접했지만 막상 그

음악들을 듣기 위해선 다른 사이트를 클

릭해야 했다. 음악을 듣는 창구로는 악

숭이나 영국 팝같은 다음 카페가 있었

는데 거기엔 음악 말고도 블러 vs 오아

시스, 펄잼 vs 너바나 같은 자질구레한

음악정보글이 있었고 그 글들은 파편화

된 방식으로 락 음악사를 학습하게 해줬

다. 90년대 PC통신으로부터 주워온 것

같던 음악정보글들이 내 취향의 단초를

마련했고, 네이버 블로그들을 돌아다니

면서 얻은 음악가의 트리비아와 음악 감

상의 기회 덕분에 취향의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헤비 리스너인

이승진의 블로그는 에이펙스 트윈, 애시

드 마더 템플, GYBE, 그루퍼, 페네즈 같

은 듣기에 다소 곤혹스럽거나 난해할지

는 몰라도, 지적 허영을 부리는 데 있어

더없이 적절한 밴드들을 소개했다. 결정

적으로 그 블로그는 연말 정산/리스트

라는 개념과 웨이브라는 음악 비평 웹

진, 소울식(음악 공유 프로그램)을 알려

줌으로써, 음악을 듣는 방법에 있어 일

대 전환을 이루게 했다. 즉 피치포크나

메타 크리틱, 레이트 유어 뮤직이 작성

한 올해의 음악 리스트를 읽고 현재 팝

음악의 ‘최전선’을 살핀 다음, 웨이브의

리뷰를 통해 과거 음악의 지형을 익히

고, 이 모든 음악을 소울식에서 다운 받

는다. 이런 리서치 과정은 정보를 얻는

소스만 달리한 채, 처음부터 끝까지 똑

같았다. 필즈 레코드, 리드머, 엠플러그,

가슴, 보다, 음악 취향 Y, 스캐터 브레인.

음악 말고 이승진이 주된 관심을 가

졌던 분야는 철학인데, 지금 반추하면

현대 정치 철학의 언어를 가져와 제 망

상에 끼워 맞춘 중2병 환자의 헛소리였

지만, 당시 내게 이승진의 블로그는 프

랑스 철학과 청년 논객으로 이어지는 링

크였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의 프로필

엔 슬라보예 지젝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로쟈는 영화 비평의 방법론으로 수입되

어오던 지젝의 글이 정치 철학으로 인식

되는 데 기여했다. 푸근한 인상의 그는

부드러운 글솜씨로 급진적 라캉-레닌주

의를 받아들이기 편하게 만듦으로써 자

본주의를 전복하자던 급진적인 정치 철

학을 인문학의 모습으로 포장하는 데 성

공했다. 몇 년 후에 기업 주최로 연 북

콘서트에서 철학자 강신주가 자본주의

를 뒤엎어야 자신의 삶이 바뀐다는 얘

기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번역 논쟁으로 화제

가 됐던 로쟈는 매주 인문학 서적을 소

개하는 동시에, 양질의 외서들이 형편없

이 번역되는 현실을 꼬집었다. 원서를 읽

어본 적도 없는 나는, 철학 연구자들과

같이 분개하고 통탄했으며, 마지막엔 이

번역 논쟁에 참여했다는 생각에 지적 만

족감을 느꼈다.

인터넷은 논쟁의 장소였다. 한윤형,

노정태, 허지웅, 박가분 같은 청년 논객

들은 논쟁을 만들고 개입하고 비난했으

며 추종자를 몰고 다녔다. 생각나는 인

상적인 논쟁은 이글루스를 중심으로 일

어난 정신 분석/라캉/비과학 논쟁이다.

아이추판다가 이택광을 필두로 한 문화

연구계의 라캉주의를 조롱하면서 시작

된 논쟁은 철학 전공자인 한윤형이 사

회를 분석하기에 정신 분석은 유용할 수

있다는 반론을 펼치면서 불붙었고, 노정

태와 김민하가 개입하면서 덩치를 불렸

다. 논쟁의 전개 과정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글들이 쏟아져 나왔고, 여

기 저기서 관전평이 나왔지만 여느 인터

넷 논쟁과 마찬가지로 흐지부지 끝났다.

내가 관심 있게 지켜봤던 논쟁들은 정

치 철학과 관련된 주제를 다뤘고, 참여

자들 대부분은 정치적으로 좌파였다. 최

장집주의 논쟁의 참여자는 한윤형, 박가

분, 송준모, 노정태였고 입장이 어떻든

이들은 모두 진보정당의 역할이 무엇인

지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

2008년, 나는 고1이었고 촛불 집회엔

참여하지 않았지만 인터넷에 올라오는

시위 현장 사진을 보고 소식을 전해 들

으며 거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느꼈

다. 물론 느낌으로만 끝났지만, 광장에

몰린 사람들을 보고 블로그 사이의 논쟁

을 읽으며 정치적인 입장을 가지게 됐다.

열거한 청년 논객들은 내 정치적 처녀성

을 빼앗았다. 내가 속한 세대의 몇몇 역

시 분명 이들을 통해 진보적인 정치관을

갖게 됐을 것이다.

PC함(정치적 올바름)과 쿨한 취향을

내세우던 듀나의 영화 게시판은 또 하

나의 불판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그보

다 듀나의 영화 리뷰가 중요했다. 2007

년 중앙일보에 실린 손민호 기자의 듀나

인터뷰를 읽고서 들어가 본 듀나 게시판

에서 제일 놀랐던 건 가득 쌓여 있는 영

화 리뷰였다. 우습게도 나는 영화를 보

지 않은 채 리뷰를 읽어 나갔다. 마침 나

는 수행 평가로 연극을 만들어야 했는

데, 듀나의 리뷰를 뒤지며 연극 소재를

찾았다. 그 중 <지구를 지켜라>가 내 눈

에 들어왔고, 보지도 않은 영화를 리뷰

에 의존하여 연극으로 만들었다. 그 연

극은 선생이 내준 주제와 어긋난다는 이

유로 최저 점수를 받았다.

인터넷은 내게 놀이터였고, 또래 집

단을 대신했으며, 선생 역할을 했다. 서

울의 대표적인 서민 동네의 노동자 가정

에서 태어난 나는 문화적 교류를 할 수

있는 또래 집단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아

버지가 인쇄 노동자라는 이유로 남들보

다 책을 많이 읽은 게 다였을 뿐, 가정에

서 어떤 문화적 소비에 대해 배운 적도

없으며 교양은 꿈꿀 수도 없었다.

입시에 시달리면서 내가 도피한 곳은

인터넷이었다. 고물 컴퓨터와 느려터진

랜선을 통해 들여다 본 인터넷 세계야말

로 모든 것을 구비한 유토피아였다. 웹

과 웹 사이를 거닐며, 취향을 만드는 데

열중했던 나는 영화를 공부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켄 러셀의 <악령들>

의 마지막 시퀀스를 보고 영화의 꿈을

가졌다고 거짓말 쳤지만, 실상은 영화

야말로 이것 저것을 자랑할 수 있는 장

르처럼 보였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었다.

나는 입시 지옥을 헤맨 끝에 불능과

무력의 땅인 예술학교에 불시착했다. 내

가 대학에 바라던 건 공동체였다. 정치

적 입장을 동의받고 싶었고 취향을 드러

내고 공감을 살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

만 이 모든 바람은 박살났다. 나는 학교

를 다니며 시위 현장, 집회에도 참석했

고, 공연장도 가봤으며, 전시장도 들렀

으며, 종종 어떤 기획에 참여하기도 했

다. 그렇지만 어느 곳이든 나는 내가 방

문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자폐

적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저주

받은 탓인가?

대학 입학 이후 블로그가 서서히 저

물며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로 대

체 됐다. 사람들은 시위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려 상황을 알렸고, 현

장에 있던 사람들조차도 실시간으로 그

사진들과 상황을 전하는 글을 통해 움

직였다. 그 때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눈

앞에 일어나는 광경을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처럼 봤고, 현장을 트위터 타임라인

을 읽듯이 관찰했다. 2008년 촛불 집회

를 내 방에서 본 것처럼.

최신 정치 이론으로 무장한 젊은 좌

파들은 신념의 외양을 띈 기호에 따라

1917년 레닌주의, 1968년 상황주의, 알

튀세르주의, 아우또노미아로 정치적 입

장을 취했고 역사적 승패를 자신의 승

패로 착각하여, 의기양양하거나 울적해

했다. 나 역시 이런 조울의 시간을 가졌

고 그 덕분에, 이제야 메타 좌파란 유행

처럼 바뀌는 정치 이론을 덕지덕지 이어

붙인 프랑케슈타인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게 됐다.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으로, 아트시네

마에 가고 영화 얘기를 하는 것도 한순

간이었다. 취향은 과포화됐고, 누구를

지지한다는 식의 스노비즘은 지루함 이

상을 유발하지 못했다. 키노가 외국 잡

지로부터 훔쳐온 베스트 10과, 정성일의

리스트를 참조하여 만든 취향은 90년대

를 그대로 짊어지고 온 것이었다. 구전

설화처럼 내려오는 작가주의 신화를 취

향의 원점으로 지정한 채, 주절주절 인

터넷에서 구한 리스트를 펼치기 일수였

던 씨네필들은 극장을 학교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리스트의 공란을 채우

기 위해 강박적으로 영화를 볼 뿐이었다.

차라리 인터넷이 극장의 씨네필 공동

체를 대신했다. 씨네스트에서는 각종 최

신 예술 영화와 숨겨져 있던 고전 영화

의 번역 자막이 공유되었고 여타 정보

가 교환되며 나름대로의 씨네필 써클을

만들었다.

현실의 씨네필들은 몇 가지 카테고리

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아트-센티멘탈,

둘째로 인디 루져, 마지막으로 중산층

소녀 감성. 이들 모두는 영화사를 역사

로 보지 않으며, 이를 취향의 영토로 분

할하고 그 속에 틀여 박혀 매체에 대한

이해를 각자의 애호로 도배한다. 영화라

는 매체는 한편으로는 몰락했다. 20세기

그 자체였던 영화는 대중의 집단적 상

상을 대리했었지만 21세기로 들어서자

대중은 다수의 소비자로 분화했고 영화

의 역할은 끝나버렸다. 2000년대, 이렇

게 분화한 영화-소비자들은 컴퓨터 액

정과 같은, 조그마한 형식으로 영화의

죽음을 반복한다.

과연 2000년대가 무얼 남겼는지 내

게 질문한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커

뮤니티와 블로그, 인터넷 중독자들이라

고. 인터넷은 시간을 무너트렸고 역사의

소실점을 지워버렸다. 비시간성에 갇혀

있는 내 꼴은 역사를 무한한 취향으로

분쇄하여 들이마시는 중독자처럼 보인

다. 그렇다면 헤겔의 유령을 불러와 나

를 역사적 존재로 세우고, 진보를 위한

발판이 돼야 할까? 시민사회의 일원이

되기엔 너무 늦었고 공교육은 제 역할

을 망각했고 공동체는 해체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써클 적스(Circle Jerks)라는

남자들이 모여 원의 형태로 둘러 서서

각자 자위를 하는 모임을 떠올랐다. 그

것이 우리 세대에 걸맞는 비유다. 우리

모두 바닥에 깔린 정액을 밟고 미끄러

지지 않게 조심해야 할 것이다. (오세린)

과연 2000년대가 무얼 남겼는지 내게 묻는다면웹정키 연대기 2007-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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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10월 13일 제239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한국적인 것의 개념 : 싸이, 사이다, 싸이파이

텍사스 홀덤 : 당신이 무사하고 또 무샤하기를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물을 때 이제

는 우리가 입지도 않는 한복이나 즐기

지도 않는 전통 예악을 떠올리는 건 비

현실적이다. 그렇다고 외국에서 유명하

고 인기를 끈다는 이유로 “두 유 노우 싸

이?”를 매번 묻는 것도 이젠 좀 지겹다.

그보다는 오히려 한국인들‘만’이 즐기거

나 꺼려하는, 한국만의 어떤 것이 무엇

인가를 고민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래

서 나는 ‘한국적인 것’으로 가장 먼저 사

이다를 떠올린다. “두 유 노우 사이다?”

원래 ‘사이더(cider)’는 사과즙을 발

효시킨 알콜성 탄산음료를 가리키는

데,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와서는 비알콜

성 레몬향 소다 음료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 ‘사이다(サイダ—)’가 되었다. 레

몬라임 타입의 소다 음료를 ‘사이다’라

고 부르는 건 우리와 일본뿐이다. 아무

튼 전 세계 ‘사이다’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게 세븐업과 스프라이트인데, 이

둘이 전혀 발을 붙이지 못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칠성사이다’의 점유율이

80%가 넘기 때문이다. 내가 ‘스프라이트

샤워’를 하자고 유혹하는 미스에이의 수

지를 너무나 사랑하긴 하지만, 사이다는

칠성이다.

이렇게 한국만이 갖고 있거나 즐기

는 것의 목록을 찾아보면 한국적인 것

의 실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마찬가지

로 전 세계적으로 즐기고 있지만, 한국

만이 즐기지 않는 것의 목록도 큰 도움

이 되겠다. 그 중 하나가 싸이파이(Sci-

Fi), 한때 공상과학소설이라고 불렀던

장르 소설이다. 뜬금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국도 한때는 싸이파이 강

국이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아이

디어회관의 과학소설은 아동 필독서였

으니 말이다. 하지만 올해 SF 전문인 불

새출판사가 2년 만에 문을 닫을 정도로

수십 년 만에 불모지가 되고 말았다. 이

런 변화가 왜 일어났는지 나는 매우 궁

금해지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적인 것

의 현재가 들어 있지 않을까.

최근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

을 찾고 있다. 비밀은 우리가 과학소설

(Science Fiction)이라고 부르는 이 장르

가 다른 한편으로는 사변소설(Specu-

lative Fiction)로 불리기도 한다는 데 있

다. 사변소설이란 “What if”, 그러니까

‘만일 세상이 지금과 다르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궁리하는 소

설이다. 만일 일정한 주기로 성별이 바

뀌는 종족이 있다면(『어둠의 왼손』), 컴

퓨터가 자아를 갖게 된다면(『바이센테

니얼 맨』) 등등. 내 생각에 이 ‘What if’의

사고가, 한국에서는 사변소설의 즐거움

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왜냐면 이 장르를 신문이 뺏어가 버

렸기 때문이다. 자칭 일등신문이라고 하

는 C일보는 이른바 ‘~라면 사설’이라는

언론문학의 신장르를 개척함으로써 사

실 보도라는 언론의 사명과 사변적 공

상이라는 문학의 영역을 융합하는 21

세기형 글쓰기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런 식이다. “렙틸리언(파충류형 외계

인)이 지구의 정부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근거는 아직 없다. 하지만 만일

음모론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것

은 우리의 세계관 전체를 뒤흔드는 엄

청난 일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이제라

도 정부는 렙틸리언과 전혀 관련이 없다

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할 것이다.”

이게 말이냐, 막걸리냐 싶겠지만, ‘렙틸

리언’ 대신 휴전선 북쪽을 불법점령하

고 있는 국가참칭 세력을 대입하고, ‘음

모론자’ 대신 우파 애국시민을, ‘정부’

대신 시위를 주도하는 반정부단체를 넣

어서 말을 바꾸어 본다면 겨울에도 식은

땀이 흐르게 하는 현실감 100%의 스릴

러 문학으로 탈바꿈한다. 근거는 없지만

종북이 아니라는 걸 밝혀야 한다니, 얼

마나 참신한 발상인가. 이런 현실감 넘

치는 사변 스릴러 앞에서 한가하게 과학

적 공상 따위가 발을 붙일 자리가 있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SF? 그런 거는 우

리한테는 있을 수가 없어.”

최근 한국 사회 전체를 거대한 싸이

파이형 농담으로 변환시키는 작업이 진

행 중이라는 강력한 추측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문학적으로나 가능한 상상

을 현실에서 실현해 보는, ‘삶의 사변소

설화’이다. 가장 가까운 사례로는, “적

자가 뻔히 예상되는데 아시안 게임을

유치해보면 어떨까?”를 실천에 옮긴 인

천시가 있다. 물론 이것은 “모든 큰 강

에서 강바닥을 퍼내고 보를 설치하면

어떻게 될까?”를 실천에 옮겼던 전 대

통령의 상상력에 촉발되어 전전 인천

시장이 내린 결단의 결과이기도 하다.

사실 문학을 현실로 옮긴다고 말을

했지만, 한국의 경우엔 독창성이 부족

한 것이 단점이긴 하다. 우리에겐 새로

운 것이 사실은 오래전에 죽은 작가의

상상력을 되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고딕 호러 소설의 대가 러브크래프

트의 크툴루 신화에 영감을 받은 친구

로 로버트 하워드라는 작가가 있다. 그

의 작품이 바로 ‘코난 시리즈’다. 일본

만화 “미래소년 코난”이나 “명탐정 코

난” 말고,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팬티

만 입고 근육질의 몸으로 칼을 휘두르

는 ‘야만인 코난’이다. 한국에 번역된

코난 시리즈는 비밀의 힘을 가진 보석

‘아리만의 심장’을 둘러싼 코난의 모험

을 다룬 것이었다. 왜 이 이야기를 길게

설명하고 있냐면, 이제는 잊힌 이 소설

이 우리의 현실을 미리 예견한 놀라운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죽은 후 오랜 시간이 흘

러 아리만의 심장 덕분에 부활한 제사

장은 그 힘을 이용해 (혼자만 과거로 가

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를 과거로 가게

만든다. 처음엔 누구도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예민한 이들은 사람들의 옷차

림이 바뀌고 있다는 걸 알아챈다. 수십

년 전의 패션이 되돌아오고 옛 관습이

부활하고 말투가 달라지고 있던 것이다.

말하자면 “(혼자서 시대를 거슬러 가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역행시킬 수 있

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력.

한국 사회에서 이 상상력을 현실로

구현하려는 야심찬 삶의 예술가들이 자

꾸 늘어가고 있다. 국론분열이 없던 시

대, 혼연일체가 되어 새마을을 만들고

새역사를 창조하고 조국 근대화에 나

서던 시대, 모두가 반공으로 일심단결

하여 국토방위에 흔들림이 없던 시대,

자유의 방종을 거부하고 검열과 감시를

일상화하던 시대 말이다.

이런 거대한 공상과학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한국의 자랑을 묻는 외국

인에게 이렇게 대답해야 할 것 같다. “두

유 노우 싸이파이?” 시간 역행 알아, 시

간 역행? (김원기)

언젠가 수신자부담으로 마카오에서 전

화가 걸려온 적이 있다. 여자 안내원은

세련된 대사 매뉴얼을 읊으며 내가 연

결을 수락하면 몇 초간 상대방의 음성

을 들려주고 내가 전화를 건 사람의 신

원을 확인하면 통화를 재개하게 된다고

했다. 마카오까지 가서 전화비까지 탕

진할만한 인물들의 얼굴이 띄엄띄엄 스

쳐 지나갔다. 하나. 둘. 셋. 넷… 아냐,

다시 셋. 난 안내원에게 그냥 연결하지

말아달라고 전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

다. 딱히 받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받아야할 이유도 없었다. 그때 나

는 20대 초반이었고, 마카오에서 걸려

온 신원 불명의 전화를 받기에 합당하

지 않은 나이였다, 라고 둘러대고 넘어

가면 안 될 것 같다. 세간의 상식에 편

승해 얼버무리는 건 이제 그만 두겠다.

당시 나는 타락한 주변인들을 배경으로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탕진하며 그런 전

화가 아무렇지도 않게 된 나를 무감하

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내

가 스물이 되기도 전에 내가 머물기로

선택한 덫이었다. 나는 한없이 자신을

바닥으로 내던지는 사람들만이 나의 사

정을 납득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은

경험으로 증명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어떤 사정에 처해있다면 그건 내가 해

결할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해결되어

야 할 존재였다면, 그래서 그들을 어떤

식으로든 변형시키고 싶었다면, 난 애초

에 그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차분히 내 안에 일었던

작은 동요를 잠재운 뒤에 느지막이 마

지막 후보를 떠올랐다. 셋. 셋… 그리고

넷. 그것은 마치 거북이 한 마리를 흐름

이랄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굼뜬 물결

에 실어 방생한 뒤 수년이 지나 생각지

도 않게 어느 바닷가에서 자상을 입고

고름을 흘리는 모습으로 재회하는 것과

같았다. 이마에 홧홧하게 전기가 튀고

후두부에선 묘한 진공이 울렸다.

나는 졌다고 생각했다. 뭘 쥐고 있었

는지도 모르는 채로 다 잃고 알몸으로

쫓겨 가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작년부터 내 주변 사람

들이 내게 다시 텍사스 홀덤 얘기를 하

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또 그런 얘기

를 해줄 사람들을 내 주변에 모아놓고

말았다. 한 명은 딱히 누가 물어본 적

도 없는데 자기가 건너 아는 사람이 빚

을 잔뜩 진 다음 크루즈에서 여는 쁘띠

도박장에서 부자들 상대로 딜러로 일하

고 있는데, 주종목이 텍사스 홀덤이라

는 얘기를 했다. 가끔은 몸을 팔기도 한

다는데, 대체 텍사스 홀덤이라는 게 뭐

냐면서. 그리고 몇 달이 지나, 지하철 광

고판에 끼어있는 명함 크기의 선박여

행 모집 찌라시의 정체를 누군가 궁금

해 했을 때 한 명이 불쑥 자기 부모님이

그 일을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한 달 정

도 유유히 크루즈 여행도 하고 원한다

면 선상에서 벌어지는 도박판에 끼어들

어 일확천금을 할 수도 있는 인생의 기

회를 주는 거라며 자랑스러워했다. 배

에 올라탄 사람들의 90% 이상이 일반

적인 크루즈 여행의 10배 이상의 돈을

앗길지언정, 그는 여행을 위한 사치에

가끔은 도박이 포함되는 게 그리 특이

한 일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아무도 죽

지 않고 모두들 무사하다며. 오히려 나

쁜 건 가끔 나타나는 태풍이라고 했다.

그는 단 한 번도 부모님을 따라 그 배

에 올라탄 적이 없었다. 나머지 한 명

은 딱히 말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친구는 평소에 티낸 적도 없는데, 아무

렇지도 않게 텍사스 홀덤을 주제로 작

품을 만들었다. 주인공은 빚을 잔뜩 진

다음 크루즈에서 열리는 쁘띠 도박장에

서 부자들 상대로 딜러로 일하고 있는

데, 주종목이 텍사스 홀덤이었고 가끔

은 몸을 팔기도 했다. 어쩌면 주인공이

탄 배는 두 번째 친구의 부모님이 운영

한다는 소위 크루즈 여행사의 소속일지

도 몰랐다.

그리고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몇 년

만에 내가 (매우 높은 확률로) 마카오

에 내팽개친 (게 분명한) 그 남자를 떠

올려버렸다. 내게 마카오에서 수신자

부담 전화를 건 장본인(으로 이젠 완전

히 단정 짓고 있는 사람)이 가장 좋아하

던 종목이 텍사스 홀덤이었으므로. 텍

사스 홀덤은 포커 중에서도 가장 보급

화 된 지류의 하나다. 당신이 포커를 친

다면 그건 (꽤나 높은 확률로) 텍사스

홀덤일 것이다.

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인 수피들에게

히자브는 가장 혹독한 벌이다. 그건 신

의 얼굴을 가린 베일을 뜻한다. 이쯤에

서 베일 하나를 걷어내 보자면, 난 텍사

스 홀덤을 이론상으로는 잘 알고 있지

만 사실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재미로

딱 한번 해본 게 텍사스 홀덤에 관한 내

실전 경험의 전부다. 사실은 걷어내야

할 베일이 하나 더 있다. 난 마카오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 당시 도

박 하면 마카오였는데도 말이다. 그것

은 마치 좋아하는 가수를 방구석에 앉

아 텔레비전으로만 감상하기로 마음먹

는 기분과 비슷했다. 실체와 더 근접해

져 괜한 실물감각에 낯설어지지 않도록

스스로 대상과의 격차를 조절하는 것.

그런데 그와 마카오를 떠올릴 때 어쩐

지 윤기가 흐르는 잎이 무수히 달린, 키

작은 나무들에게 둘러싸인 건물이 머릿

속에 제일 먼저 지어진다. 그리고 그 안

에 들어가려고 넓고 하얀 계단을 성큼

성큼 걸어 올라가는 그의 뒷모습이 덧

씌워진다. 그 이미지는 역광에 침공 당

해 드문드문 지워져있고, 애매한 각도

로 엿보이는(나는 상상 속에서조차 그

의 얼굴을 ‘엿봐야’ 하는 것이다.) 그의

얼굴은 즐거워 보인다. 아마도 청바지

에 피케 셔츠. 그리고 선글라스.

난 이 상상의 건물이 내 무의식에

서 추출된 이상적인 도박장의 원형이

라고 짐작해왔다. 내가 우매한 충정으

로 빚은, 도박의 신을 빼닮은 이콘. 그

러나 나는 영원히 그날 마카오에서 걸

려온 전화의 진실을 알지 못하니 전체

이미지가 뿌연 베일에 가려져 있는 거

라고. 그것이 전화의 거절에 대한 혹독

한 벌이라고.

히자브의 정반대 개념은 “무샤하

다(mushahadah)”다. 신을 기쁘게 하

여 야킨(yaqῑn), 즉 확실성을 확보하게

된 자가 획득하는 신의 모습. 요즘 텍

사스 홀덤을 다룬 작품들을 보면 등장

인물 중에서 꼭 한 명은 몸을 판다. 왜

다들 텍사스 홀덤에 카드 대신 비극이

눌러앉을 자리를 만들어주려고 안달일

까. 그러나 나 역시 (아마) 거기에 견줄

만한 비슷한 만행을 그에게 저질렀을지

도 모르며, 끔찍한 상상 속에서 나는 언

제나 그랬듯이 그의 신이 된다. 나는 내

가 모르는 그의 사정을 상상으로 채우

며 용서를 간구한다. 상상 속의 그 역

시 나의 사정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라

그는 나를 흔쾌히 용서할 수밖에 없다.

상상은 가난한 무지의 손에 남은 가짜

답안지다. 그래서 상상은 눈을 가린 베

일을 흡족하게 찢지 못하고. 난 바닷물

을 연거푸 들이키는 조난자처럼 상상만

을 거듭하다가 휴대폰을 든다. 아무 번

호도 누르지 않는다. 그리고 지칠 때까

지 속삭인다.

당신이 무사하기를 바란다. 당신이

무사해야 내가 무샤하다. (전문영)

Page 16: 2014.10.13 제239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발행인 김봉렬

주간교수 양승무

편집국장 선승범

편집 부국장 안가람

취재부장 오온유

취재부 권라임

취재부 권지혜

취재부 한지윤

문화부장 김수빈

문화부 강진수

사회부 성민규

사회부 권라임

학술·오피니언부장 박이현

사진부장 이주현

사진부 오병훈

사진부 이규호

편집부장 김형도

편집부 윤정빈

편집부 한지형

수습기자 전현준

수습기자 김민지

나는 ‘시네마테크의 아이들’이 아니었

다. <서울시의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

울아트시네마’ 지원을 촉구하는 관객운

동>을 지켜보며 든 생각이다. 내가 살

던 시골에는 성인영화나 틀어주는 소극

장이 하나 있을 뿐이었고 그마저도 내

가 중학생이 되는 해에 없어졌다. 처음

극장에 간 건 중3 때 포항 살던 이모부

를 따라서였다. <매트릭스2>였는데 맨

앞자리에 앉아서인지 어지럼을 느꼈다.

극장 이름은 시민극장. 얼마 지나지 않

아 멀티플랙스가 생기며 죄다 문을 닫

았다.

처음 가 본 예술극장은 대전의 선사

아트시네마다. 스무살 되던 해, 수능 마

치고 아는 대학생 형을 따라 대전에 몇

달 지낼 때였다.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상영이 끝나고 또래

몇이 모여서 영화 얘기를 나누는 게 보

기 좋았다.

얼마 안 지나 대구 동성아트홀에 다

니기 시작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상영

하기 때문이 아니라, 예술 영화나 독립

영화라는 걸 틀어준다 그래서였고, 표

값도 싸서였다. 구체적인 어떤 영화를

보고자 간 게 아니다. 포스터를 모아가

며 영화와 감독 이름을 하나둘 익혀갔

지만 종종 시간표도 없이 무작정 영화

관을 찾아가곤 했다. 동성아트홀릭이라

는 ‘영화관 팬클럽’ 활동도 했다. 여섯

일곱 살은 많은 형 누나들과 한 달에 한

번 정모를 가져 술자리를 갖고, 가끔 주

말에 노부부 사장님을 대신해 매표소나

매점 운영을 무급으로 해주는 정도의

봉사활동을 했다.

영상이론을 전공하려고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 동성아트홀과의 인연도 끝

났다. 대신 나는 예술학교에서 새로 만

난 친구들과 강의실을 빌려 매주 소소

한 상영회를 열었다. 영화는 사람 만날

구실이자 술 마실 좋은 구실이 되었다.

정작 뒷풀이에서 영화 얘기가 오가는

일은 잘 없었지만 하지만 나는 우리가

봤던 영화의 이름들과 만들었던 포스터

를 어렵지 않게 기억해낼 수 있으며, 상

영회와 뒷풀이 풍경을 종종 회상하곤 한

다. 걔 중에는 꽤 지겨운 경험도 있는데

특히 <경멸>을 볼 때 그랬다. 더운 여름

이었는데 영화 상영 전부터 장비 문제로

한참 애를 먹은데다 방은 더웠으며, 추

천자 말고는 <경멸>이 뭐하는 영화인지

이해를 못했다. 영화감독 페드로 코스타

는 고다르 영화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

은 맞아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400방은

넘게 맞아야 할 거다.

서울아트시네마도 종종 갔다. 하지

만 이상하게 낙원에서 여자친구와 영화

를 보고 나오면 꼭 싸웠다. 그래서 안 가

기 시작했고, 헤어지고도 잘 안 갔다. 자

취 생활하는 형편에 영화값이 꽤 부담

되기도 했고(그러면서 담배는 잘만 피

워댔다), 왔다갔다 하는 시간이 아깝기

도 했기 때문이다(역시 딴 짓은 잘만 했

다.) 웹하드와 토렌트로 영화를 구해보

는 게 쉬웠다.

영화를 같이 볼 이유가 없어졌다. 아

니, 같이 볼 친구들이 사라졌다고 하는

게 솔직할 거다. 상영회 모임은 책 읽기

모임으로 바뀌며 따로 영화를 보지 않

게 되었다. 함께 영화를 보고 공부하던

다른 모임도 구성원들 관계가 나빠지며

산산이 부서졌다.

내 처지가 특수하긴 하지만, 고비들

을 잘 넘겼더라도 “그 공동체들의 중심

에 꼭 영화관이, 공동의 영화 관람이라

는 경험이 있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대답하더라도, 앞으로

도 그럴지 잘 모르겠다. 영화관을 서울

아트시네마로 바꿔 물어도 대답은 “글

쎄.” 시네마테크가 2010년대에도 20여

년 전처럼 공동체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을까?

요전에 역사학자 알라이다 아스만의

『기억의 공간』을 읽다가 밑줄을 그었다.

“(저장기억은) 자연 발생적이지 않기 때

문에 오히려 문화적인 지식을 보존하고

비축하고 추론하고 순환시키는 제도를

통해 지원을 받아야 한다.” 우리 시네마

테크가, 관객이 아닌 자들의 지원을 받

아야 하는 정당성이 있다면 여기서 찾

을 수 있을까? 나는 다른 데도 아니고

왜 ‘서울아트시네마’가 지원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더 설득력 있는 대답

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 자생이 힘들어졌을까? 영화관을

떠난 관객들 탓도 있지만, 아마 영상자

료원의 프로그램 변경 이후, 특히 구로

사와 아키라 회고전 이후 재정적으로

도 점점 타격을 입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자본에 잠식된 극장환경을 개선

하고, 문화다양성과 서울시민의 영화문

화 향유권을 위해 공적 성격의 시네마

테크”를, 관이 아니라 민에서 소화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간 다소 소홀히 다

뤄진 쟁점 같다.

애시당초 관객의 관람 수입만으로는

운영이 안 되니까 지원이 필요하다. 관

객 없는 관객 운동이라는 조소를 받아

들이자는 게 아니다. 관객운동이 마주

한 곤란은 노동자운동이 마주한 곤란과

비슷해보인다.

이번 지원 중단 사태에 대응하여 관

객들은 “우리 모두는 어느 영화의 관

객이었다”라는, 관객들이 낙원의 극장

과 거기서 만난 영화들에 대한 개인적

인 기억, 즉 아스만의 말을 따르자면 기

능기억이라 할 것들의 아카이브를 만들

었다. 열심히 다니던 관객은 아니었으

나 내게도 낙원에 대한 감상은 있다. 하

지만 이런 류의, 다분히 감상주의적으

로 대응하는게 맞을까? 영화를 사랑하

는 관객이 있으니까, 관객의 사랑이 남

아 있으니까라는 논점은 얼마나 유효할

까? 간혹 종교적으로까지 보이는 엄숙

한 사랑이 어떻게 적대감으로 변이되는

지 돌이켜보자면 나는 회의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이 신앙에 의문이

라도 제기할라치면 영화의 성지에 침범

한 이교도 대하듯 하는 신도가 많다. 왜,

극장에서 소리를 내는 관객들에게 성을

내는 커뮤니티의 글들 있지 않은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지만,

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가 아니다. 그

럼 누가 나의 친구일까? 우리의 우정

이 실패로 끝난 이유를 곱씹어봐야겠다.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아! 더 이상 어리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

는 나이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아이가

아니다. (박콸리)

나는 시네마테크의 아이들이 아니다

<Character Portrait> 전시

10월 14일 화요일부터 미술원 2층에 위

치한 복도갤러리에서 개최된다. 본 전

시는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기획자는 전시 서문을 통해 “개인을 둘

러싼 환경과 집단이 요구하는 특성화된

캐릭터(character)에 함몰된 자아는 ‘관

심사’, ‘취미’, ‘직업’과 같이 명명된 자

기 투영의 노력과는 대조적으로 고유

의 인격(personality)은 은닉되고 있다.”

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개성이 제거된

채 획일화된 캐릭터를 요구하는 이 사

회 안에서, 부단히 차별화를 시도하는

개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특징

없는 기성품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현실

을 바라보고, 진정한 개인성을 찾아가

는 과정에서 오히려 개성이 파편화 되

어버리고 마는 아이러니 속에서 진정한

자기정의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

을 던지는 자리가 될 것이다.

학생심리상담소 시간관리 프로그램

학생심리상담소에서 시간관리 프로그

램 참여자를 모집한다. 프로그램은 석

관동 캠퍼스에서 10월 31일부터 11월

21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4시에서 6

시까지, 서초동 캠퍼스에서 11월 5일부

터 11월 26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4

시까지 진행된다. 신청기간은 10월 30

일까지이며, 참석인원은 각 캠퍼스 마

다 선착순 12명이다. 신청은 누리에서

신청서 양식을 다운로드 받은 후, 전화

(02-746-9037)나 이메일(psy_thera-

[email protected])로 하면 된다.

‘춤, 하나 댄스 컴퍼니’

제3회 정기발표회

우리학교 전통예술원 무용과 출신 중심

으로 창단된 ‘춤, 하나 댄스컴퍼니’가 22

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우

면당에서 제3회 정기발표회를 연다. 이

날 공연에서는 궁중무용의 꽃 ‘춘앵전

과 무산향 -궁’, 민속무용의 색 ‘태평무

- 여왕무’, 민속무용의 바람 ‘한량무와

입춤-비연가’, 신무용의 선 ‘장고춤-선

장고’, 민속무용의 흥 ‘북춤과 소고춤-

놀이판’을 선보일 예정이다. 안무는 오

정은 대표와 김유나 부대표 등이 담당

했다. 한편 이 단체는 국립국악원이 올

해 젊은 예술가 지원을 위해 진행한 ‘공

감 젊은 국악’ 공연 발표자에 선정됐다.

의릉-돌곶이 예술마을 생태문화 포럼

의릉-돌곶이 예술마을 생태문화 포럼

이 ‘도시재생과 돌곶이 예술 마을 만들

기’라는 주제로 15일 오후 2시부터 5시

까지 우리학교 본관 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참가신청은

이메일([email protected])으로 하면

된다. 신청 시, 이름, 소속, 연락처를 기

입해야 한다. 프로그램은 ‘예술과 함꼐

하는 도시재생과 마을 만들기 사례들’,

‘돌곶이 예술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비전과 계획’이란 제목의 발제와 토론

으로 이루어진다.

학내 단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