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16 수가성 여인

  • Upload
    axasoft

  • View
    219

  • Download
    3

Embed Size (px)

DESCRIPTION

16 수가성 여인

Citation preview

Page 1: 16 수가성 여인
Page 2: 16 수가성 여인

장 1

1

“생명양식과 그 먹는 법을 논함”양식을 먹는 법 - 행동

양식을 먹는 법 - 믿음

“남편이 5+1인 수가 여인”메시아를 기다리는 여인

심은 자, 거둔 자

Page 3: 16 수가성 여인

2

제 Ⅰ 편

“생명양식과 그 먹는 법을 논함”

본 문 : 요한복음 제 4 장 제 9 ~ 10 절

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

종치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

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Page 4: 16 수가성 여인

양식을 먹는 법 - 행동

수가성 여인이 원하는 ‘물’이나 백성들이 원하는 생명의 ‘떡’은, 예수님의 말

씀과 상반되는 것이었다. 제자들도 이 ‘양식’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본문을 전후해서 ‘물’, ‘생수’라는 말이, 중심 단어로 여러 번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여인에게 달라고 하신 “물” (요4:7b)

여인이 예수께 했던 질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4:9)

예수께서 하신 말씀,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4:10b)

예수께서 여인에게 달라하셨던 ‘물’은, 보통의 물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의 우물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줄 수 있다고 하신 ‘생수’ 역시, 우리가 흔히

사다가 마시는 그런 생수가 아니었습니다.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4:14b)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여인은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나로 목마르지도 않

고, 또 여기에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소서”(15절b) 부탁합니다.

여인이 부탁한 ‘물’이란, 말 그대로 마시는 H2O 음료 그 자체를 가

리키는 것이었습니다.

3

Page 5: 16 수가성 여인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물’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에 ‘물’과 ‘생수’라는 단어가 주(主)가 되었던 것은, 여인과 예

수님이 만난 장소가 마침 우물가였기 때문입니다.

물 길러 온 여인과 자연스럽게 ‘물’이 화제로 대두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환경으로 인하여 예수님은 물로 영생을 설명하고 계셨을 뿐입

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수’는, 여인이 요구하는 그런 마실 수 있는 물

이 아니었습니다.

그 물이 제아무리 야곱의 우물물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이 주시겠다

는 ‘생수’와는 의미가 달랐습니다.

여인이 말하는 물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떡’이 화제의 대상이 되었을 때에는, 역시 떡을 가지고

영생을 논하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떡)를 먹었나이다” (요6:31b)

이 구절에 뒤이어 나오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35절)라는 말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Page 6: 16 수가성 여인

그럼에도 백성들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떡’과 ‘물’에 대한 진정한 의

미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뭐라 했습니까?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6:34)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 않고, 또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소서” (4:15)

저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의 의도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

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물’이나 ‘떡’은, 저들이 생각하는 그런 실물 양

식이 아니었습니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4:32)

『내게는 너희가 모르는 양식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도, 제자들

은 여전히 그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다는 말이 뭐였습니까?

“누가 잡수실 것을 갔다드렸는가”(33절)

서로 엉뚱한 말이나 했다는 거 아닙니까?

제자들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

5

Page 7: 16 수가성 여인

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자상하게 정리해주셨습니

다. (34절)

‘물’과 ‘생수’로 빗대어 말씀하신 ‘양식’이란, 예수님을 보내신 이의

뜻을 알리고, 보내신 일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켜 ‘양식’이라 하셨습니다.

이 양식을 먹고 마신다함은, 제자들이나 수가성 여인이 생각했던 그

런 음료나 떡을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루어드리는 것』을

가리켜, ‘생명양식과 그 먹는 법’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일에 대한 말씀을 온전히 행하

여 드리는 행동, 『말씀을 행하여 드리는 행동』을 가리켜, 『생명

양식을 먹는 방법』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영상 보기 >>>

6

Page 8: 16 수가성 여인

양식을 먹는 법 - 믿음

생명양식(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주님은

우리가 이루어드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다만 알고 믿어야 할 분이시다.

생명양식을 먹는 법에 대한, 또 다른 경우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양식의 내용, 즉 말씀의 내용에 따라서 먹고 마시는 방법도 달라지

게 마련입니다.

요한복음 4장34절의 ‘먹고 마심’이라는 것은, ‘행하여 이루어드리는

것’, 다시 말하여 ‘행동’이라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지금부터 설명 드리려는 것은 말씀을 믿는 것, 『말씀을 믿는 것이

먹고 마시는 법』이라는 내용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가에서 만난 예수님을,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

을 내게 말하였다”(요4:39a)고 증거 했습니다.

이 증거로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믿게 되었습니

다』 (39절b)

7

Page 9: 16 수가성 여인

또한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신 줄 알아

다”(42절b)는 내용을 보건대, 예수라는 분은 우리가 행하거나 이룰

그런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만 알아야할 대상이요, 앎으로 믿어야 할 『앎으로 믿어야 할 예

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4장46절로 54절의 상황도, ‘생명양식을 먹고 마심’의 방

법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행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에 이르셨을 때, 왕의 한 신하의 아들이 병들

어 죽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마침 예수님이 갈릴리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멀리 가버나움

에 있는 자기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청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가버나움까지 가시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네 아

들이 살았다”고 하십니다. (50절)

그때 예수님이 주신 생명양식 “네 아들이 살았다”를, 그 신하는 어

떻게 받아먹었습니까?

말씀의 내용으로 볼진대, 신하가 행할 것은 없었습니다.

그저 믿는 『믿음』그것뿐이었습니다.

8

Page 10: 16 수가성 여인

그 신하는 “네 아들이 살았다”(50절)는 예수님의 말씀만 믿고 가버

나움으로 내려갑니다.

가는 도중에 만난 그의 종들로부터 ‘아이가 살았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에 그 신하는 아들이 나은 때를 물어봅니다.

종들의 대답으로, 아들이 나은 것은 예수께서 ‘살았다’고 하신 바로

그 시점이요, 자신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던 그때였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을, 신하는 어떻게 먹었던 것입

니까?

행동으로 이루어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말씀 그대로 믿었던 것뿐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생명의 열매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믿어야 했습니까?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요3:35)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를 사랑하사』, 선물로 온 우주만물

을 다 아들의 손에 다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9

Page 11: 16 수가성 여인

“만물”이라는 것은,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지배하고 다스릴 권세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받은바 그 권세로 세상을 명하시고, 자기 백성

을 구원할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또한 믿어야 합니다.

수가성 여인은 그분 메시아가 오실 것을 벌써부터 알고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자가 가로되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

노니” (4:25)

이 여인을 우물가로 찾아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여인에게 보내신

큰 선물, 『하나님의 큰 선물』이셨습니다.

영상 보기 >>>

10

Page 12: 16 수가성 여인

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께서 떡과 물을 빗대어 영생을 논하셨을 때에, 이를 듣고 있던

수가성 여인이나 제자들과 우리가 무엇이 다르겠나이까?

우리들 역시 그들처럼 주께서 말씀하시는 물과 떡이, 그냥 먹고 마

시는 일반 음식들인 줄로 알았습니다.

아니면 생수나 떡을 어디에 가야 얻을 수 있는지, 그런 것에 마음을

빼앗겼을 것입니다.

영생의 양식이란, 제자들이 알았던 떡이 아니며, 수가성 여인이 달

라고 했던 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한 명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나이다.

또한 그 거룩한 양식을 어떻게 먹고 마셔야 하는지, 그 방법도 확인

할 수 있었나이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내용에 따라서 아는 것으로 먹는 경우

가 있고, 행동으로 이루어드리는 방법도 있으며, 믿어서 열매를 맺

을 수 있는 법도 있다는 것을 알았나이다.

11

Page 13: 16 수가성 여인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명하신 것을 이루어드림으로, 영생의

말씀을 먹고 마시게 하옵소서.

주여,

이제 이후로 생명양식을 받을 때에, 알고서 믿어야 되는 것은 행하

는 것처럼 믿게 하시고, 행하여야 될 말씀을 받을 때에는 행하는 것

처럼 믿어서, 말씀이 내 양식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내 영이 살고 내 육이 살아, 장래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살게

해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구하여 기도드리

옵나이다.

아멘.

12

Page 14: 16 수가성 여인

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신자들일지라도 말씀이 영의 양식인줄은 알고 있지만, 어떻게 먹

는 것인지에 대하여는 막연해합니다.

먹은 것은 생명력(활동력)으로 나타나야 증명됩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예수를 알고 믿는 것)이 첫 번째 먹는 방법

이고, 깨달은 말씀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두 번째 양식을 먹는 법

입니다.

갈렙 목사님께서는 생명양식 먹는 법을 명쾌하게 정의해 주심으

로 해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견고히 실행될 수 있도록 해주셨습

니다.

13

Page 15: 16 수가성 여인

장 2

14

제 Ⅱ 편

“남편이 5+1인 수가 여인”

본 문 : 요한복음 제 4장 제 16 ~ 18절

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

대 네가 남편이 없다하는 말이 옳도다

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

Page 16: 16 수가성 여인

메시아를 기다리는 여인

수가성 여인은 남편이 5+1명이었다. 마태복음에는 일곱 남편을 둔 여인도

등장한다. 성경은 이들에 대하여 ‘율법을 철저히 지킨 여인’이라 평가한다.

예수님이 야곱의 우물가에서 만났던 수가성 여인에 대한 일반인들

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매우 정숙하지 못한 복잡한 여성’, 혹은 ‘창

녀’라고까지 비하하는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수 있는 것이 예수님과 여인의 대화 때문이 아닌가 싶습

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본문16절)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여인이 대답합니다. (17절)

이에 예수님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

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 (18절)

대화 내용을 볼 때, 어느 누구인들 그 여자더러 ‘정숙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에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거기에 더하여 지금 있는 남편까

지 ‘5+1인 경우’는, 당시나 우리들 시대에서나 실로 보기 드문 여인

인 것이 분명합니다.

15

Page 17: 16 수가성 여인

성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건대, 수가성 여인을 ‘정숙치 못한 여

인’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 정서에 입각해서 본 섣부른 판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통찰력만으로 그를 ‘창녀’라고 쉽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에 남편이 다섯 있었고 또 지금 여섯째 남편이 있다고 해서, 그를

‘창녀’라고 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거쳐 간 남자가 많더라도, 창녀는 그들 모두를 ‘남편’이라 말

하지 않습니다.

‘남편’이란 법적으로 공인된 배우자에 한해서만 부를 수 있는 호칭입

니다.

성경은 우리의 선입견을 버리고, 영적인 눈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성경을 성경대로 해석하려면, 쓰여 진 그때 그 배경과 그 시대를 살고

있던 주역들의 정서를 고려하며 읽어야만, 제대로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여인같이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또 지금은 한 사람 더 있

는 ‘남편 5+1인 경우’는, 당시나 우리들 시대에나 참으로 드문 일이

라 할 수 있습니다.

수가성 여인의 경우와 방불한 여자 하나가 또 있습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이 여자가 그 여자’라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16

Page 18: 16 수가성 여인

마태복음 22장 24절로 28절 사이에 기록된, 일곱 남편을 둔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28절)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의 남편은 여섯째이나, 예수님의 말씀에 의

하면 이 여섯째도 남편의 자격을 갖춘 마지막 남편이 아니라는 것이

니, 결국 이 여인은 ‘일곱 남자의 아내’가 될 것이 번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마태복음에 기록된 일곱 남편 둔 여인과, 본문의 수

가성 여인이 같은 인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온 여인의 경우, 남편이 일곱이나 된 사연이 소상히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

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 두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

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마22:25~27)

이 여인을 보고 ‘참 망측한 일이다. 무슨 그런 경우가 다 있단 말인

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했던 것이 당시 율법이었습니다.

엄중한 율법을 안다면,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17

Page 19: 16 수가성 여인

일곱 남편을 둘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사정은, 그녀가 율법을 철저히

지켰다는 증거였던 것입니다.

일곱 남편을 두게 된 전제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

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24절)

‘모세가 일렀으되’, 즉 율법에 기초했다는 뜻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형이 무자(無子)한 상태로 죽었을 경우, 그의 아우들

이 형수에게 들어가 형수와 더불어, 형의 후사를 만들어주어야 했습

니다.

형수가 자식을 보게 될 때까지 아우들은 형수의 남편도 아닌, 그렇다

고 해서 시동생도 아닌 채로 지내야 했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본분이요 의무였습니다.

율법에 의해서 살고 죽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엄중한 법이었습니다.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죽임을 당해야하는 그런 정서 속에 살고 있었

던 것입니다.

전에 남편이 다섯이 있었음에도 또 지금 하나 더 있는, 5+1인 수가

성 여인이나, 마태복음에서 소개하고 있는 일곱 남편을 둔 여인은, 신

앙에 준하는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8

Page 20: 16 수가성 여인

당시 사회적 자격에 충분한 여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여러 남편들을 두었다는 것은, 『신앙적으로나 율법적

으로나 사회적으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여인들』이었다는 말입니

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었다면, 그녀들은 당시 율법적 정서에 의하여

지탄받았을 것이 뻔합니다.

남편들을 여러 번 바꾸면서까지 혈통을 이어갔던 것은, 메시아의 약

속을 기다리는 이스라엘의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여러 남편들을 두면서 메시아를 기다리던 여인』들은, 비

난 받을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수가성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남편이 5+1인 여인이 자기 동

네에 살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요4:9b)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을 멀리했던 이유는, 저들을 저주받은 이방

인으로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을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적인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

었기에, 만나는 것 자체를 꺼려했던 것입니다.

19

Page 21: 16 수가성 여인

예수님과 우물가에서 대화하던 여인의 말입니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

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4:25)

‘우리’라는 복수를 쓰고 있습니다.

이는 사마리아 동네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오시면,

모든 것을 사마리아인 자기들에게도 알려주실 것을 믿고, 그분을 기

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보내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다는 말입니다.

수가성 여인은 주님(그녀는 유대인으로 알고 있었음) 앞에서 분명하

게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메시아 복음과는 상관이 없다고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과는 만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유대인으로부터 이러한 취급을 당하면서도, 사마리아인들은 메시아

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남편이 다섯 있었으나 후사를 얻지 못함으로 여섯 번째

남편까지 두면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이어가기를 소원하는 여인도

있었습니다.

20

Page 22: 16 수가성 여인

아브라함의 가계를 이어갈 자가 자기를 통하여 나올 것을 기대하여,

남편을 여섯이나 바꾸며 살고 있는 여인의 처지를 해명하는 내용이

기도 합니다.

자기 후손 가운데서 메시아가 나지 않을까, 철저한 신앙을 가지고

메시아를 기다렸던 수가여인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수가성 여인은 자기 동네로 들어가서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4:29) 외칩니다.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말한 이”이라 함은, 남편이 다섯 있었으나 지

금 있는 남편도 남편이 아니라는, 즉 5+1의 남편을 두고 있는 일까

지 다 말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외친 것을 보면, 남편 5+1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도대체 부

끄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끄러웠다면 어찌 자기의 사생활이 들통 날 그런 말을 이웃들에게

외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이해되지 않습니까

영상 보기 >>>

21

Page 23: 16 수가성 여인

심은 자, 거둔 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에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주님은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고 하신다. 그곳에 심은 자가 있었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사마리아인과, 예수님이 파악하신 사마리아

인은 크게 달랐던 것 같습니다.

이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예수님의 말씀이 누가복음에 기록되어있습

니다.

(누가복음10장30~37절 참조)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난 자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이웃,

『선한 이웃』은 저들의 제사장도 아니요 저들의 레위인도 아니었

습니다.

오직 사마리아에 사는 사람을 지칭한 자가, 이웃이 필요로 할 때에

필요한 일을 해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성경대로 율법대로 살고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라고, 드러내 칭찬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 생각하는 사마리아 사람과, 예수님이 알고 계셨던 사마리

아 사람들 간의 차이는, 요한복음에도 나타나있습니다.

22

Page 24: 16 수가성 여인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요4: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당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이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에 들

어가시려는 예수님에게 “이곳은 넉 달이 지나야 추수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던 것 같습니다.

지금 씨를 뿌려보았자 넉 달 후에나 추수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지금 사마리아 동네에는 전혀 씨가 뿌려지지 않았다’고 생각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 한 마디도 심겨지지 않은 사마리아’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언제, 누구에 의하여 복음이 전해졌는지는 몰라도, 주님께서 바라보

신 사마리아 수가성 사람들의 영적 상태는, 사람들의 말과는 전혀 다

르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23

Page 25: 16 수가성 여인

“눈을 들어 저 수가성의 밭을 바라보라. 너희 말처럼 지금 씨를 뿌려

야 넉 달 후에 거둘 그런 형편에 있지 아니하고, 누군가가 벌써 뿌린

씨가 잘 자라나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사마리아에는 벌써부터 복음이 들어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신앙의 열매가 무르익어 거둘 때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

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4:37~38)

이는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

라”고 하셨습니다. (36절b)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제자들이나 유대인의 관원들, 또한 제사장들

과 서기관들은, 자기들이 모든 것을 뿌리고 키우고 거두는 줄로 알

고 있었습니다.

높은 영적 자리에 앉아있던 저들은, 자기들 외에 그럴 수 있는 자격

을 가진 자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24

Page 26: 16 수가성 여인

“수확할 때가 된 밭에 열매를 거두라고 너희를 보내었으나, 사실 너

희가 뿌려서 키운 것은 아니지 않는가? 뿌리는 자가 있었기 때문에

수확이 가능한 것이 아니겠느냐? 심은 자가 따로 있고, 거두는 자가

따로 있다는 말이니라. 너희는 노력지도 아니한 밭에 들어가서 거두

는 일만 할 뿐이니, 내가 이렇게 함은 씨를 뿌린 자와 거둔 자가 함

께 즐거워하게 하려함이라”

이렇게 정리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전 세계 어디든 가보십시오.

아무도 심지 않은 곳이라 여겨 뿌릴 노력의 대상인줄 알고 갔으나,

실상 가보니 그곳은 복음을 전해야 할 곳이기 보다는, 거두어야할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교사가 파송을 받아 현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복음이 전혀 없는

곳인 줄 알고 갔다가, 막상 현지 사정에 놀라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선 공항에 맞이하는 사람이 나와 있다는 사실부터가, 그곳에도 벌

써 복음을 심은 자가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빌립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를 만난 경우도 그랬습니다.

25

Page 27: 16 수가성 여인

빌립은 그 내시를 자기가 가르칠 대상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수레에 올라 대화를 나누다보니, 바로 세례를 줄 수 있는 대

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교회에 처음 들어온 자들 가운데에도, 가르쳐야 될 대상인 줄 알고

접촉해보면,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불신자나 초신자의 수준을 넘어, 기독교에 관하여 많은 지식을 가진

자들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교회에 들어온 그날부터는, 불신자라고 말하지 않고 바

로 ‘새 신자’라고 호칭합니다.

따라서 세례를 줄 때에도 하나씩 가르쳐서 고백하게 하는 경우도 있

으나, 예수를 정확하게 알고 믿는 자에게는 바로 줄 수도 있습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4:36)

누군가가 씨를 뿌려 키워놓은 곡식이,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에 가

서 거두기만 하는 자들은, 노력도 하지 않고 다만 거두는 일에 참예

한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자들은 이미 삯도 받았다고 하십니다.

‘남들이 노력한 것에 열매 거두는 일만 담당하는 자’란 누구를 말씀

하시는 것입니까?

26

Page 28: 16 수가성 여인

그때의 제자들이요, 유대인의 지도자들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저와 같은 목사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삯도 없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노력한 자, 곧 ‘뿌린

자’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겠습니까?

온 천지에 다니며 주의 말씀을 전하여, 교회까지 인도하는 오늘날의

일반 성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희어져 거둘 밭을 만들어준 주인공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오늘날의 갈렙 목사를 비롯한 사역자들은, 주

님의 다음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4:38)

주님께 더 상 받을 대상자는 삯을 받고 일하는 목사들이기보다, 삯

도 받지 않고 상좌에 앉지도 못하며, 이름도 없이 일하는 일반 성도

들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목사들이 거둘 수 있는 밭을 만들어준, 주의 백성들이 아니겠

습니까?

영상 보기 >>>

27

Page 29: 16 수가성 여인

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마리아 수가라 하는 밭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 뿌려져 열매를 거

둘 수준에 이르렀다는 말씀을 보면서, 우리 종들이 모든 것을 다하는

것처럼 주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나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귀한 자들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나이다.

주께서는 수가성 여인을 귀하게 여기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

리네 정서로만 판단, 정숙치 못한 여인처럼 취급했던 것을 고백합니

다.

주여,

우리로 성경을 읽을 때, 당시의 정서와 환경을 바로 알게 하시어 하

나님 뜻을 그대로 받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아무런 삯도 없이 이름도 없이 골짝, 골짝 다니며, 하나님

나라를 증거 하는 백성들이 천국에 이를 그때에, 우리도 그 기쁨에

참예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8

Page 30: 16 수가성 여인

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성경을 자기 필요나 관심의 주제로 읽는 것은, 인본 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적 사고는, 자기가 선악 판단의 주체라고 착각하게 만듭니

다.

하나님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주범(主犯)이기도 합니다.

갈렙 목사님은 우리의 각인(刻印)된 인본 적 사고를 부수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달을 수 있도록 영안을 열어주십니다.

겉모습으로 평가하지 않고, 감춰진 보화를 발견하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전도한 사람은, 이미 전에 누군가가 뿌린 씨앗이 지금 열매로

추수되고 있음을 간과하지 마십시다.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