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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재구성 _1 계급에 관하여 민 경 우 □ 문제의 제기 현재와 같은 시대적 전환기에는 그에 부응하는 새로운 관점과 태도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대의 변화에 대한 사실적인 추적과 함께 기존 관념을 배태시킨 보 다 근본적인 주제들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대체로 87년 이후 진보 진영이 암묵적으로 공유해 왔던 문제들에 대한 재검토 작업을 진행하려 한다. 그리 고 첫 작업으로 ‘계급’에 대해 거론해 보겠다. 계급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는 한국의 제조업 생산직 노동자가 사회발전의 핵심 동 력이 아니라는 점을 논증하기 위함이다. 특히 민주노총을 기본 동력으로 파악하는 견해는 시급히 청산해야 한다. 이는 전통 농민을 노농동맹 운운하며 ‘노동자의 믿 음직한 동맹군’ 따위로 규정하는 것 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08년 이후 상황은 명백해졌다. 그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 지 모르지만(가령 네 티즌, 20대 청년, 대도시 중산층, 집합지성, 영세자영업자) 민주노총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진보와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거대한 사회적 집단이 있다. 문제는 상황이 명확해졌음에도 이들을 呼名을 사회이론과 이름이 없기 때문에 진보의 발전이 지체 되고 있는 점이다. 이 글은 시론이다. 현재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진보의 발본적 재구성을 위한 백 가쟁명하는 논쟁이다. 필자는 이를 위해 성역처럼 여겨졌던 모든 전제들에 대한 재 평가 작업을 진행하려 한다. 뜻을 같이 한다면 적극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 □ 계급 1) 계급이란? 약 1만년 전 농업.신석기 혁명은 인류 역사 발전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수 십만년 동안 채집과 수렵 생활을 하며 수십명 단위로 유랑 생활을 하던 인류는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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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발본적 재구성을 위한 소고, 특집 첫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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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재구성 _1

계급에 관하여민 경 우

□ 문제의 제기

현재와 같은 시대적 전환기에는 그에 부응하는 새로운 관점과 태도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대의 변화에 대한 사실적인 추적과 함께 기존 관념을 배태시킨 보

다 근본적인 주제들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대체로 87년 이후 진보

진영이 암묵적으로 공유해 왔던 문제들에 대한 재검토 작업을 진행하려 한다. 그리

고 첫 작업으로 ‘계급’에 대해 거론해 보겠다.

계급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는 한국의 제조업 생산직 노동자가 사회발전의 핵심 동

력이 아니라는 점을 논증하기 위함이다. 특히 민주노총을 기본 동력으로 파악하는

견해는 시급히 청산해야 한다. 이는 전통 농민을 노농동맹 운운하며 ‘노동자의 믿

음직한 동맹군’ 따위로 규정하는 것 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08년 이후 상황은 명백해졌다. 그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 지 모르지만(가령 네

티즌, 20대 청년, 대도시 중산층, 집합지성, 영세자영업자) 민주노총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진보와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거대한 사회적 집단이 있다. 문제는 상황이

명확해졌음에도 이들을 呼名을 사회이론과 이름이 없기 때문에 진보의 발전이 지체

되고 있는 점이다.

이 글은 시론이다. 현재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진보의 발본적 재구성을 위한 백

가쟁명하는 논쟁이다. 필자는 이를 위해 성역처럼 여겨졌던 모든 전제들에 대한 재

평가 작업을 진행하려 한다. 뜻을 같이 한다면 적극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

□ 계급

 

1) 계급이란?

  약 1만년 전 농업.신석기 혁명은 인류 역사 발전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수

십만년 동안 채집과 수렵 생활을 하며 수십명 단위로 유랑 생활을 하던 인류는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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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목축.신석기 혁명을 계기로 정착생활을 시작했다. 농업과 목축은 생산력의 비약

적인 발전을 가져 와 생존에 필요한 활동 이외의 영역을 탄생시켰다. 수공업 등이

그런 사례인데 수공업의 발전은 역으로 농업 생산의 비약을 가져왔고 이는 다시 수

공업 발전에 필요한 전문화를 가속시켰다.

  그로부터 17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이전까지 인류 역사는 농업을 기반으로 발

전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농업혁명-산업혁명으로 발전하는 간극이 긴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우주, 생명체, 인류 진화의 역사를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우주, 생명체, 인류 역사를 하나의 수직선위에 죽 늘어 놓으면 후자로 갈수록 시간

대는 점점 빨라진다. 이 장구한 시간대위에서 농업혁명에서 산업혁명으로 발전하는

시기를 되짚어 보면 1만년이라는 시간은 그야말로 순간에 불과하다.

  맑스 사회역사이론의 핵심 키워드는 생산관계와 거기서 파생한 계급이다. 맑스는

일정한 생산력의 기초위에서 생산관계와 계급이 갈라지고 양자 사이의 갈등이 사회

역사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즉 맑스가 자신의 시대를 파악하고 과제를 해명하는 핵

심 키워드는 생산관계였다. 반면 생산관계를 보다 근본에서부터 규정하는 생산력의

문제는 특정한 구조로 이뤄진 시대와 시대를 구획하는 기준이다. 맑스에게 생산력

은 봉건시대와 자본주의를 가르는 역사적 범주였고 생산관계는 일정한 생산력하에

서 형성된 한 사회를 분석하는 사회경제적 범주였다. 따라서 맑스가 자본주의를 분

석할 경우, 생산력이 일정하다고 전제하고 그 안에서 생산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가를 파악하게 된다.

  그러나 현대 사회로 오면서 맑스의 생각은 무의미해졌다. 현대 사회에서는 한 인

간, 한 세대의 삶 안에 두 가지 이상의 시간대가 공존하게 된 것이다. 가령 1965년

생인 나는 부모세대와 전통 농업사회와 산업사회라는 넘을 수 없는 간극을 갖고 있

고 1993년생인 아들과는 정보통신 사회라는 전혀 이질적인 시대적 감수성과 만나고

있다. 내가 부모세대 또는 아들 세대와 느끼는 이질감은 그저 나이나 문화적 감수

성의 차이가 아니라 부모-나-아들이 체현하고 있는 시대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다. 그 만큼 인류역사의 발전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과거 농업시대에 살았던 사람

들이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았다면 현대 정보통신 사회의 사람들은 내일 일어날 변

화를 예측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떤 사회의 사회경제적 갈등을 해명하는 범주로서 ‘계급’이라는 키워드는 중

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산력이 일정하다는 전제 하에서 생산수단의 소유 관계를

중심으로 사회적 집단 사이의 갈등과 이해관계를 해명하는 분석틀이다. 생산력의

변화발전 속도가 빠른 현대사회의 경우에는 한 사회, 세대안에 생산력 차이가 큰

다른 시간대, 시대가 함축되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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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통 농업의 몰락

   한국의 경우 사회현상을 분석함에 있어 속도가 갖는 의미는 보다 각별하다. 전통

농업의 사례를 통해 이를 분석해 보자.

- 75~2005년 농림어업, 광공업 등의 취업자(통계청에서 필자구성, 백만명)  

 

  위 그림에서 보듯 75년까지만 해도 한국의 농림어업 취업자는 534만명에 달했다.

이는 전체 취업자 1177만명의 43.5%에 달하는 숫자였다. 중화학공업화가 본격화된

70년대 중반에도 한국 사회는 농업사회였다고 볼 수 있다.

90년이 되면 농림어업 취업자는 534만명에서 324만명으로 줄어든다. 15년만에

210만명이 줄어든 것이다. 전체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1.6%이다. 70~80년

대 급격히 줄어들던 농림어업 인구 비중은 90년대 중후반을 거치며 감소폭이 줄어

들었다. 이 무렵이면 청장년층의 도시 이주가 사실상 마무리되어 농촌에는 고령인

구만이 남았다. 따라서 90년대 중반이후에는 농촌 인구의 도시 이농이 마무리되어

농가 인구보다 농가 인구내에서 연령대별 인구를 살피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 05년 농가인구 중 연령대별 인구(통계청에서 필자가 구성, 백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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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에 따르면 40대 이하 연령대가 148만명인 반면 50대 이상의 인구는 195

만명이다. 핵심 연령층이라고 할 수 있는 30~40대의 인구는 70만명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한국에서 전통 농업사회는 사실상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변화가 불과 20~30년만에 진행된 것이다. 현재 40~50대만 해도 농촌에

서 태어나 어려서 농사일을 도우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부모 세대가 농업사

회에서 태어나 하루가 다르게 변화했던 산업.정보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쓸쓸

한 노년을 맞고 있는 반면 그들의 자녀 세대는 농촌.농업을 마치 역사책의 일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1만년 전 인류 역사를 통째로 뒤바꿔 놓은 혁명적인 사건이었던

농업과 목축은 21세기 한국사회에서 극적으로 퇴장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농촌과 농업의 변화는 현재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다. 첫째는

농업의 공업적 요소가 강화될 것이다. 화학비료와 종자개량을 통해 곡물의 대량생

산을 가져왔던 농업의 2차 도약은 향후에는 식물공장 따위로 발전해 갈 것이다. 특

히 기후변화, 신흥개도국의 성장과 곡물수요 및 가격의 상승 등에 따라 농업에 대

한 투자가 늘어날 것이다. 둘째는 인구의 이동 흐름이 변화할 것이다. 농촌에 동남

아시아 처녀들이 많아지고 도시 생활에 찌들은 전문직 귀농도 늘어나고 있다. 향후

영세 자영업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귀농 흐름도 강화될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변화는 농업의 부흥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농업이 지금까지

와는 전혀 다른 동기와 사람들에 의해 재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30년 기

간 동안 한국에서 30년 정도의 시간 만에 근 1만년을 유지해 왔던 전통 농업사회가

통째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변화의 기저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사회

발전의 속도이다.

 

3) 제조업 생산직의 감소

  농촌과 농업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비견될만한 사건이 제조업 생산직 노동자의 감

소이다. 사람들은 농업의 몰락과 제조업의 성장이 교차된 것이 대단히 오래 전일이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광공업 취업자가 농림어업 취업자보다 많아진 것은

85년의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25년전의 일이다.

  90~2000년 사이 농업과 함께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의 고용 감소가 본격화되기 시

작했다. 90년 505만명이었던 제조업 노동자의 숫자는 2000년 429만명으로 76만명

감소한다. 그런데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에서만 75만명이 감소한다.(203만명에서 128

만명으로 감소) 이 시기 구로와 청계천 일대에서 미싱사.재단사들 중 상당수도 사

라졌을 것이다.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의 쇠퇴와 함께 전혀 새로운 문제가 한국 사회에 대두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공장을 짓고 다리를 놓으면 일자리는 늘어나는 것이었다. 이것

이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가는 징표였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가는 과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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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규칙하거나 변칙적일 때 즉 봉건적 요소가 정상적으로 청산되지 않을 때 생기는

문제가 실업이다.(이를 대표하는 이론 체계가 식민지반봉건 또는 반자본주의론이다.

따라서 실업은 산업사회를 보다 정상화하고 발전시키면 해결될 문제였다)

  그런데 90년대가 되면 고용과 취업에서 전과는 전혀 다른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

했다. 공장을 짓고 기계를 들여 놓을 수록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든

것이다. 80년대 전 기간 한국 제조업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80년대 한국 산업을 주

도했던 것은 IT 산업과 조선.자동차 등 전통 중공업이었다. 그런데 이들 산업은 90

년대 전 기간 극적으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는 늘지 않았다. 90년 277만

명이었던 취업자는 2000년 287만명으로 10만명 늘어나는데 그쳤다.

문제는 자동화.정보화가 진행되어 해당 산업이 발전해도 고용이 늘지 않는 것이

다. 부가가치 10억원을 산출하는데 필요한 고용 인원을 의미하는 취업유발 계수라

는 것이 있다. 제조업의 경우 90년 62.3명이었던 취업유발 계수는 2000년 15.3명으

로 감소한다. 75년의 경우 이 수치는 544.1명에 달했다.

자동화의 급진전과 함께 주목해서 보아야 할 지점은 제조업 취업자라고 해서 다

생산직이 아니라는 것이다. 90년 제조업 취업자 중 80%가 생산직이었다면 07년에

는 64.2%로 줄어들었다. 그 만큼 연구.사무직 등이 늘었다는 의미이다.(지금까지 각

종 숫치는 ‘고용 탈공업화의 원인과 시사점’, 현대경제연구원)

  2000년대가 되면 상황은 더욱 극적으로 발전한다.

  - ‘수출과 내수간의 연계성 분석 및 시사점’,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재인용

 

위 그림은 수출 증가율과 취업자 수 증감 사이의 관계를 보여준다. 주지하듯이

2000년대 한국경제를 주도했던 것은 IT 제조업, 수출, 대기업이었다. 그런데 위 그

림에서 보듯 02~08년 동안 수출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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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커녕 줄어들었다. 02~07년 연평균 수출 증가율이 16.5% 성장했음에도 제조업

일자리는 연 평균 2.3만개씩 줄어들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IT 제조업의 고용유발

효과가 극히 낮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나 LG 전자의 생산공정은 대부분 최첨단 설

비로 자동화되어 있고 현대자동차 생산라인은 해외로 이전하기 바쁘다. 고도 산업

사회, 정보통신 사회에서 제품의 생산공정은 대부분 인간이 아닌 기계가 대신하고

있거나 제조업과 연구.마케팅 등 서비스산업과의 연계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변화가 불과 30년만에 이뤄진 것이다. 이제 납기를 맞추기 위해 타이밍

약을 먹어 가며 밤을 새던 미싱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이미 50대 주부로

서울의 조그만 식당이나 빌딩 청소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70년대 공고를 졸업하

고 80년대 후반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청년노동자들은 은퇴를 앞두고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이 뒤를 메꾸고 있는 것은 월화수목금금금 일한다는 IT 노동자들이

다.

87년 대중적 노동조합 운동의 첫 세대들은 20년 전 섬유봉제 노동자 전태일의 삶

에서 운동의 영감을 얻었다. 그들은 모두 시골에서 올라와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렸던 동질의 삶과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던 동일한 시간대의 사람들이다. 그러

나 향후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을 나온 IT 노동자들이 87년에서 영감을 얻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87년 이후 20년은 물리적인 시간으로는 20년에 불과하지만 시간

대로는 산업자본주의와 정보통신 문명과 같은 거대한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만들어 낸 것은 물론 역사의 발전 속도이다.  

4) 노동가치설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분업의 놀라운 생산성 증대 효과

를 옷핀을 들어 설명한다. 옷핀을 만들 때 한 사람의 노동자가 제조 공정 전체를

맡으면 하루에 핀 스무 개 정도를 겨우 만들 수 있지만, 10명의 노동자들이 제조

공정을 18단계로 나누어 작업하면 하루 4만8천 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경영학을 개척한 테일러는 노동 과정을 기계적으로 세분하여 노동자들의 작

업을 표준화했다. 테일러는 생산에 불필요한 동작을 없애고 각기 분담된 작업에 필

요한 동작만을 반복하게 하여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테일러의 노동과정 표

준화에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를 결합하면 현대 산업사회의 전자 조립이나 자동차

작업공정이 된다.

  스미스, 테일러, 포드 등 현대 산업사회를 가능케 했던 인물들과 사상의 기저에

있었던 생각은 노동을 대단히 단순하고 기계적인 작업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는 것

이다. 봉건 시대의 농민이나 수공업자들과 달리 노동자들은 정해진 룰과 규칙에 따

라 하루종일 볼트를 조이거나 납땜을 해야 했다. 일단 노동이 극도로 단순하고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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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화되면 초보자나 숙련공의 차이 심지어는 남녀노소의 차이도 작아진다. 이렇게

되면 전통 농업사회에서 생산물을 두고 몇 대 몇으로 가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노

동자의 작업 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불할 수 있게 된다. 주로 제조업에서 시급 얼마

따위로 임금을 계산하는 것도 결국 노동한 시간과 그 결과물이 정비례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산업사회의 특징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론 체계가 노동가치설이다. 상

품가치가 거기에 포함된 노동의 양에 달려 있다는 간명한 논리는 상품의 가치를 노

동시간과 같은 물리적으로 측정이 가능한 방법으로 계량화할 수 있을 때라야 현실

성을 갖는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떨까?

  98년 창립되어 04년 미 증시에 상장되어 세계 최고의 IT 기업으로 성장한 구글의

본사는 일터라기보다는 놀이터(?)와 같다.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회

사 내에 휴식공간과 놀이 시설이 있고 누워서 회의를 하기도 한다. 구글의 일하는

방식은 회사의 성과가 노동의 시간에 달려 있기 때문이 아니라 창의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위 결과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애플과 삼성의 차이이다.

  

- 기획재정부 자료

  09년 삼성의 스마트폰 판매 댓수는 무려 2억 2700만대이다. 반면 애플의 판매 댓

수는 2500만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삼성은 4.1조원의 이익을 올린 반면 애플의

영업이익은 5.0조원이다. 삼성전자는 어떻게든 값싸고 질좋은 부품을 통해 ‘성능이

좋은’ 스마트폰을 개발하려 한 반면 애플은 스마트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서

활로를 찾았다.

  양자를 갈랐던 것은 첨단 IT 제품을 만들고 있지만 여전히 산업사회의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삼성과 스마트폰을 컨텐츠를 소비하는 단말기로 본 새로운 시대적 감성

의 충돌이다. 노동가치설과 결부지어 양자를 설명한다면 삼성전자는 얼마나 많은

노동을 투여할 것인가에 관심이 있었다면 애플은 그것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혁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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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가에 방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5) 교육의 역할

  동물의 왕국을 볼 때마다 새삼 느끼는 점이 있다. 사슴, 소 등의 새끼는 태어난

지 불과 몇 분만에 어미를 따라 걷는다. 이는 야생의 세계에서 초식 동물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일 것이다. 반면 인간은 태어나서 1년이 되어야 걷기

시작하고 걷기 시작한 지 또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제 몸 하나 간수할 정도가 된

다. 이는 인간이 야생 세계에서 우월한 지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러한 특성은 자연 세계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하여 사회생활을 하면서부

터는 더욱 극적으로 변화한다. 농업이 주로 생존 기반인 시대에는 자기 앞가림을

할 정도의 나이가 되면 논밭에 나가 일을 했다. 농업사회에서 인구는 곧 생산력이

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국가가 형성되고 보통 교육이 시작되면서 양상이 달라

지기 시작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적어도 글을 쓸 정도의 초등 교육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시작되었고 생산력이 발전함에 따라 교육수준은 질양적으로 확대되었다.

초등 교육은 점차 산업사회에 필요한 초급 기술을 보유한 기능공을 양성하는 수준

으로 발전했고 대학교육도 일반화되었다.

교육의 발전은 사회발전 속도를 가속화했다. 과거 밭에 나가 일했을 청소년들은

지금은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그리고 그 연령대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

럼에도 교육에 체현된 지식의 가치로 인해 노동생산성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노인의 경험속에 녹아있던 기술과 경험은 문자를 통해 체계화되어 학

교를 통해 대규모로 전수된다. 또한 전문적인 연구 집단은 수백년, 수천년의 시행착

오를 거쳐 만들었을 기술의 진보를 실험실에서 수십년, 수년의 시간안에 만들어낸

다.

- 통계청 교육통계에서 필자구성, 백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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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다른 요인들과 결합되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

다.  

  1970년 20~24세 인구 252만명 중 18만명이 대학생으로 그 비중은 약 7% 수준이

었다. 1990년에는 이 비율이 24%로 성장하고 2010년에는 무려 66%에 이른다. 특히

1990년 이후 저출산과 과열 교육의 영향으로 대학생 비율은 극적으로 증가했다.

  1970년은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본격화된 시기였다. 이 시기 대학생들은 해당 연

령층에서 드문 존재였다. 70년대 초중반 대학생들이 벌인 반유신 투쟁이 선구적인

측면이 있었음에도 사회전반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진보적 자유주의를

체현한 지식인.중산층의 규모 자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85~90년 한국의 (산업) 자본주의는 본격 개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무렵 100

만명 가량의 대학생들이 대도시에 집적되어 있었다. 불과 10여 년 사이에 5~6공 전

두환-노태우 정권과 같은 전근대적인 정권이 더 이상 용인될 수 없을 정도로 고학

력 지식인, 중산층이 충분히 성장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대기업의 설비투자가 본격화되면서 한국 자본주의는 노동집약

적인 구조에서 자본집약적인 방식으로 변화했고 정보통신 산업도 본격 성장하기 시

작했다. 민주-독재를 두고 쟁패했던 갈등 구도는 전혀 새로운 양상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농업사회에서 아이들은 제 한 몸 추스릴 정도가 되면 아버지 뒤를 따라 농사일을

배웠다. 아버지가 가르치는 농사일은 수백년 동안 대대로 이어져 온 기술이었고 아

버지의 기술을 전수받은 아이는 성인이 된 후 비슷한 양상으로 자녀들을 낳고 키웠

다. 이것이 농업사회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한국사회라면 양상이 달라진

다. 청소년들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제 몸 다루듯이 한다. 반면 중년 세대는 애써 공

부해야 하고 고령 세대의 다수는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다.

 

6) 이데올로기

  근대 시민사회를 연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 르네상스, 지리상의 발견, 종교개혁

등이다. 이 중에서 봉건 질서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린 것은 종교개혁이다. 사회를 결

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뇌관은 그 사회의 이념체계이다. 이념체계는 유기적으로 구성

된 사회의 제 요소를 종횡으로 연결시키고 종횡으로 연결된 느슨한 구조물을 접착

시켜 하나의 단단한 구조물로 완성시키기 때문이다.

  맔스의 역사이론에 따르면 종교는 전근대사회의 경제적 토대 즉 봉건적 토지관계

를 덮어 씌우고 있는 상부구조에 불과하다. 맔스는 이 세상의 근본적인 것은 물질

이며 신과 같은 종교적 실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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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수렵과 채집 활동이었다. 인류는 수십명 단

위로 묶여 먹을 것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어 다녔다. 인류 역사의 초기로 갈수록 누

가 먹이사슬의 위에 있는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역량이 발전하면서 거대한 들소나 바닷속 물고기 등이 인간을 정점으로 한

먹이사슬에 편입되었다. 수십만년 전 어둠과 추위를 피해 숨어 든 동굴속에 그들은

그들이 점차 야생의 맹주가 되어 가는 과정을 기록해 놓았다. 동굴 벽화나 암각화

에 새겨진 소나 물고기의 그림이 그것이다. 이 과정이 점차 발전한 것이 토템과 같

은 원시신앙이다.

   1만년 전 시작된 농업혁명은 인류 역사를 혁명적인 변화로 이끌었다. 농업이 발

전하면서 지구 곳곳에 산재했던 토착집단은 갈등과 대결의 소용돌이로 빠져든다.

이 시기가 되면 갈등은 인간과 자연세계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로 발전한다.

산 너머 사슴을 숭배하는 저 인간집단은 나와 어떤 관계인가? 저 집단은 소와 물고

기와 어떻게 다른가?

  농업혁명이 만들어낸 격변은 기원 전 수백년경에서 기원 후 수백년 정도에 걸쳐

고대 제국이 형성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페르시아 제국, 중국의 진한, 지중해의

로마, 인도 亞대륙의 마우리아 왕조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들 제국의 출현과 함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유교, 기독교, 이슬람 등의 고등종교가 출현한다.

  고등종교의 출현은 농업혁명이 만들어낸 인간과 인간 집단 사이의 가혹한 대결과

갈등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한다. 대부분의 고등종교는 사슴을 믿는 집단이나 곰

을 숭배하는 집단이나 유일신 하나님의 밑에서 모두 ‘인간’이라고 선언한다. 이

제 인간을 동물처럼 취급하는 행위는 금지되었다. 또한 고등종교는 사슴을 믿는 인

간 집단에게도 자비와 덕을 베풀어야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이는 어느 수준을 뛰

어 넘는(동물처럼 취급하는 수준의) 과도한 수탈을 제한한 것이다.

  사람들은 유일신이나 보편적인 도덕관념이 매우 오래 전에 출현했다고 생각하지

만 고등종교나 도덕관념은 농업혁명이 만들어낸 인간사의 새로운 과제, 인간이 만

들어낸 잉여 생산물과 그 잉여생산물을 만들어낸 인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해답이었던 것이다. 인류 역사 전체로 보면 그다지 오랜 과거가 아닌

것이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인류 역사는 또 한번 요동치기 시작한다. 산업혁명은 자연

계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무한대의 에너지를 동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이 또다른 양상으로 비화되기 시작했다. 이제 인간은 유일

신 앞에 ‘어쨌든’ 동일한 인간이 아니라 ‘가진자’와 ‘못가진자’로 구분되었

다.

  가진자와 못가진자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려는 과제에 대한 나름의 해명이 이데올

리기이다. 이데올로기는 종교적 허울과 애매한 도덕 관념속에 숨어 있던 나이브한

관념 ‘we are the world’를 벗겨 버리고 인간 사회의 기원으로부터 가진자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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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자의 근원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홉스.루소류의 저작에 우주를 창조하고 주재하

는 신이 출현하지 않고 맑스의 사상에 인간 본성으로터 연유한 도덕 관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데올로기가 갖는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람은 맑스이다. 맑스는 1848년 공

산당 선언에서 “인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선언한다. 맑스는 가진자와

못가진자 사이의 거추장스러운 장신구를 모두 벗겨 내고 가진자와 못가진자 양자만

을 들판에 세우고 양자의 관계는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맑스가 옳든 그르든

그의 세계관은 산업혁명과 함께 출현한 인류의 새로운 이념체계인 이데올로기의 특

성을 잘 보여준다. 근대 이데올로기의 특징은 하나님 아래 모두 하나라는 애매하고

추상적인 공문구를 넘어 인간 사이의 갈등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그 해법을 제시하

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떠할까? 이 대답의 출발은 향후 정보통신사회 그리고 그 너머

사회의 이념체계가 근대 이데올로기가 당면했던 과제와 본질적으로 다른 지반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미래 인류의 이념 체계가 이데올로기적 형식을 취할 것

이라는 선입관과 가설을 부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7) 생산과 소유의 문제

인류 역사에서 생산과 소유의 문제는 대단히 연원이 깊고 오랜 주제이다. 인류가

수렵과 채집 생활을 끝낸 이후 사회적 갈등과 충돌의 중심의제였기 때문에 이를 극

복하는 것은 인류의 마지막 단계 또는 이상향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

은 생산과 소유의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하게 하는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몇가지로 나누어 검토해 보자.

첫째.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관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가 생산을 주도하고 이를 소비하는 것은

일반 대중이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리되어 있었고 생산자가 상황을 주도하는

양상이었다.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는 과정에서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고 있

다. 애플의 한국 상륙은 한국의 IT 시장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는데 이를 주도했던

것은 소비자였다. 언론의 경우 마찬가지이다. 불과 수십년전까지만 해도 조중동과

같은 거대 미디어가 의제의 설정과 확산을 주도했다면 여론의 주도권은 네티즌으로

넘어가고 있다. 미디어의 관점에서 보면 네티진은 언론의 소비자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는 단순 소비에서 나아가 생산을 주도하기도 한다. 네티즌을 그저 단순한

언론의 소비자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이들이 수동적인 차원에서 좋은 정보와 나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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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를 선별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전파하고자 하는 정보를 생산하고 이를 적

극적으로 유포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관점에서 보면 네티즌은 언론의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이다.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내놓은 앱스토어도 마찬가지이다. 앱스토어에서 사

람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어플을 구매하기도 하지만 이를 판매하기도 한다. 이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융합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는 소유의 문제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에서 향후에는 소유가 아닌 연결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IT 발전 속도가 심화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클라우드 컴

퓨팅의 세계는 소유의 개념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TV, 컴퓨터, 휴대폰은 별개의 기기였다. 우리는 각각의 기기를 구매

하여 소유하고 각각의 기기를 구매하는 기준은 기기의 성능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

나지 않아 위 세가지 기기는 하나의 단말기로 통합될 것이다. 이 단말기를 구매하

는 기준은 단말기의 성능이 아니라 단말기를 통해 사용할 수 있는 컨텐츠의 질이

다. 클라우드 컴퓨팅의 경우 컴퓨터는 그저 단말기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하드에

저장하고 있던 각종 컨텐츠와 소프트웨어는 별개의 장소에 저장되어 있고 우리는

그 장소에 연결하여 이를 사용하면 된다. 이렇게 될 경우 중요한 것은 단말기의 소

유 여부가 아니라 컨텐츠가 저장된 장소에 언제, 어떻게 접속할 수 있느냐의 여부

이다.

우리는 근대 사회가 고민했던 생산과 소유의 문제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유토피

아와 같은 미래 사회(가령 사회주의)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지금 막 우리가 딛고

선 현실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래 사회의 편린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