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서울시 마포구 망원로 57 3층 [email protected] 02-6401-0514 47 기획기사 - Adieu! <전쟁없는세상> 오프라인 소식지를 폐간하며 전쟁없는세상 1호부터 46호까지 [특별 대담] 47호 지면을 마감하며 13년을 돌아본다 전쟁없는세상 47호 Adieu! <전쟁없는세상>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 View
    235

  • Download
    4

Embed Size (px)

DESCRIPTION

 

Citation preview

Page 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서울시 마포구 망원로 57 3층 [email protected] 02-6401-0514

47

기획기사 - Adieu! <전쟁없는세상>오프라인 소식지를 폐간하며

전쟁없는세상 1호부터 46호까지

[특별 대담] 47호 지면을 마감하며 13년을 돌아본다

전쟁없는세상 47호

Adieu! <전

쟁없는세상>

Page 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wo

rld

wit

hout

war 소식지를 내며 Editorial 1

평화주의자 노트 Essay

출소인사 - 강길모 2

메갈리안들의 반란 - 샤샤 6

참가후기

전쟁세상에 살고 있는 내 옆지기에게 보내는 편지 11

전쟁수혜자자활동에 관한 국제세미나 참가후기 16

기획기사 Special

오프라인 소식지를 폐간하며 24

전쟁없는세상 1호부터 46호까지 26

[특별 대담] 47호 지면을 마감하며 13년을 돌아본다 31

기획연재

이예다의 프랑스 생활기 - 비상사태가 선포된 파리의 풍경 40

게임과 평화 - 보드게임으로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외치다 44

재정보고 Report

후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50

전쟁없는세상 47호 소식지

차례

Page 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1소식지를 내며

승호 | 전쟁없는세상 사무국 활동가

Adieu! <전쟁없는세상>.

2003년 처음 발행한 이래로 13년 동안 ‘전쟁없는세상’을 중심에 둔 다양한 이야

기를 담아왔던 계간지가 47 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됩니다. 해서, 이번 호에서 다루

게 되는 기획기사의 주제는 <전쟁없는세상>입니다. 지금까지의 계간지 주제과 형

식, 또 앞으로의 방향을 놓고 계간지의 역대 편집자들과 함께 진행한 열띤 대담, 1

호부터 47호까지 여태껏 우리가 다뤄온 광범위한 주제들은 무엇이 있는지 찬찬히

톺아보는 기사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폐간을 앞두고 독자로, 필자로 함께 해주

신 여러분 모두에게 드리는 인사의 말도 담아봤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참혹한 테러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변해가는 프랑스의 풍경을

담은 이예다님의 글, 파코루도의 공동창업자 여지우님이 보내 온 게임과 평화, 그

리고 난영님의 그림도 마지막으로 보내드리게 됩니다.

그간 우리가 <전쟁없는세상>에 담아 온 이야기들은 개편되는 홈페이지를 통해

새로운 형식으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모아 본 이 이야기들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자극이 되고 힘이

되는 글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소식지를 내며

Page 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2

출소 인사

강길모 | 병역거부자 (2015. 8. 14. 출소)

안녕하세요, 길모입니다.

우선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어떤 경로

로든 양심적 병역거부와 함께 하시는 분들에게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온 지 이제 3주 정도가 지났네요. 그 안에서는 더디 가던 시간이 정말 미친 듯

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삶이 너무나 조급하게 느껴질 정도로. 1년 동안 멈

춰져 있던 시곗바늘이 몇 배로 빠르게 돌아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감옥에 있을 때보다 더 풍요롭고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냥 바쁠 뿐이고, 아직은 자유의 무게에 눌려 있을 뿐이지요. 그래도

오히려 감옥을 통해 비축해놓은 건강과 여유 덕에 그럭저럭 버티는 게 아닐까 싶

다는.

평화주의자 노트

Page 5: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3평화주의자 노트

어찌하다보니 운 좋게 1년 1개월 만에 바깥 공기를 마시게 됐습니다. 역대 CO

들의 감옥 사를 되짚어 봐도 이렇게 운이 좋은 케이스는 희귀했던 거 같은데, 저에

게 이런 행운이 올 줄은 몰랐네요. 저보다 먼저 들어가셨던 분들이 아직 감옥에 계

신 걸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괜히 미안함이 앞섭니다. 그리고... 왠지 가

석방으로 인생의 운을 다 날린 기분이라 모든 면에서 좋지만은 않습니다. 예상(?)

대로 바깥에 나오니 마음 먹은 대로 풀리는 일들이 별로 없거든요. 괜찮습니다. 이

런 인생이 더 익숙하니. 하하. 뭐, 이건 농반 진반이고.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직접적인 실천을 마치게 된 시점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

기억들이 스쳐갑니다. 그 동안 제 내면에서는 정말 많은 갈등과 변화들이 있었다

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일단 처음으로 돌아가 볼까요. 저는 처음부터 평화주의자였고, 군대를 거부했

던 건 아닙니다. 지금껏 살아온 삶의 기간을 되돌아보면 이런 고민을 했던 건 정

말 짧은, 근래의 몇 년에 불과했지요. 저에게 적극적 평화주의자가 될 요소가 전혀

없던 건 아니었지만, 남성으로서의 삶이 더 중요했었죠. 하지만 훈련소에 갔던 날,

그런 삶보다 ‘자유’를 더 원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훈련소에서 도중에 나온 뒤

한동안 우울증으로 고생을 했었죠. 결국 저는 병역의 문제를 반정치적, 반자유적

관점에서 접근을 했고, 여기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길을 선택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전없세 문을 두드리던 날

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넘었네요. 2013년 5월이었으니... 어찌 보면 수감된

순간이나 나온 순간보다 이 순간이 더 중요했었다는. 정말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천하던 첫 순간이 아닐까 하네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사무실에서 나온

Page 6: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4

순간이 떠오릅니다. ‘아, 이제부터 내가 정말 새로운 삶, 길을 가겠구나...’ 그 이후

에 수감되던 날까지,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저에게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잊

을 수 없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제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분들

이 저에게 응원을 보내주셨었습니다. 아마 평생 잊기 힘들 겁니다. 이 당시에 제가

얻었던 희망과 정신적인 힘들은. 감옥 생활 내내 떠올랐었고, 지금도 힘을 받고 있

으니까요. 또, 이 기간 동안 저는 평화라는 가치, 남성성이라는 가치에 대해 정말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제 삶의 많은 것들이 달라졌어요. 평화

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고, 더 이상 남자다움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를 얻게

되었으니.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원동력을 얻었다고 할까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아쉬움도 많이 남는 게 사실입니다. 너무 의욕이 앞섰고,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제가 힘들게 한 사람도 있었고, 제가 할 수 있던 일들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던 부분이 반, 변명할 수 없는 제 어리석

음이 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차분하게 생각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이 남지만 이미 시간은 지나가버렸고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리고 감옥 생활. 1년 1개월 동안 일일이 말하기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

니다. 혼자 멘붕이 와서 미칠 것 같았던 순간도, 너무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렸던

순간도 있었고, 징역이 깨지기 일보 직전까지 몰렸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자유를

박탈당했다는 무력감에 치를 떨었던 순간도 종종 있었지요.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행보를 되짚어 볼 수 있었고, 앞으로 살

아갈 힘을 비축하던 기간이었거든요. 나왔기에 하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많은 사

람들을 만날 수 있던 것도 좋았고, 건강을 되찾은 것도 좋았다는. 나름대로 그 안

의 생활을 즐긴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도 바깥이 더 좋은 것도 사실은 사실이지요.

Page 7: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5평화주의자 노트

어쨌든. 저는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실천을 직접적으로는 마치게 됐습니다. 아직

은 가석방 기간이지만. 후후후.

하지만 저에게 감옥에 들어갔던 순간보다 전없세 문을 두드렸던 순간이 더 중

요하듯이, ‘감옥에서 나온 오늘’보다는, 앞으로 제가 살아갈 삶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양심적 병역거부는 끝난 게 아닙니다. 제 삶 속에서

계속해서 이어지고 나아가야 할 일이지요.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제 자

신이 겪었던 몇 가지 제도적 절차 말고는 말이지요.

물론 제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 거라는 확신을 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 가지 삶들을 꿈꾸고 있지만 삶은 예측 불가이니까요. 그래서 몇 가지 꿈들만

살포시 내보인다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이 사회에서 살아나간다는 꿈도 있

고, 철학도에서 철학자로 업그레이드(!) 되고 싶다는 꿈도 있고, 좀 더 행복한 삶

을 살고 싶다는 꿈도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많은 일들을 꿈꾸고 원합니다. 그

리고 삶 속에서 이것들을 이루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겠죠.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 끊임없이 노력할 뿐입니다.

후원회를 맡아주었던 율장이형, 장호,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여러분, 많은 선배

CO들과 함께 감옥생활을 했던 CO들, 지금 감옥에서 고생하는 CO들, 저를 지지

해줬던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Love and Peace! 하하!

2015. 9. 10.

Page 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6

메갈리안들의 반란

샤샤 | 병역거부자

혐오는 우리가 금지하거나 회피해야 할 금기인가? 아니면 혐오 자체가 저항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여성혐오는 여성을 종속시키고 침묵시키는가? 아니면 그로

부터 어떤 가능성이 파생될 수 있는 것일까? 여성혐오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기술

매체와 결합하면서 최근 10년간 임계점에 다다를 정도로 기승을 부려왔다. 여성

주의 진영에서 이러한 여성혐오에 주목하여 문제제기를 지속적으로 해왔으며 저

항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성혐오는 그 범위와 강도의 측면에서 날이 갈

수록 줄어들기는커녕 점입가경일 따름이었다. 과연 우리는 여성혐오에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전에, 여성혐오는 어째서 여성을 침묵시켰던 것일까? 그런데 메

갈리안이 등장했다. 그들은 혐오에 침묵하지 않고 오히려 혐오를 혐오로 되돌려

줬다. ‘메르스 바이러스 + 이갈리아의 딸들’의 합성어인 메갈리안들은 극히 우연

한 계기로 인터넷 커뮤니티인 디시 인사이드의 ‘메르스 갤러리’에서 처음 등장했

다. 여성을 모욕했던 혐오발언의 주어만 ‘남성’으로 바꿔서 되돌려주는 방식은 엄

평화주의자 노트

Page 9: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7평화주의자 노트

청난 발화효과행위를 낳으며 막대한 파급력을 가지고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성

폭력 여성 피해자 비난하기, 여성의 몸에 대한 성적 대상화 등을 비롯한 각종 여성

혐오발언들은 패러디되어 전복당했다. 여성들에게 상처를 줬던 혐오발언이 버틀

러의 말을 빌리자면 “저항의 도구”가 된 것이다.

여성들이 더이상 여성혐오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여성혐오자들의 뜻대로 고

분고분하지 않겠다는 세를 과시하고 천명했던 것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격분시

키는 말』에서 랭턴의 발화수반행위론에 반론을 제기하며 발화효과행위론을 제시

했다. 여성혐오는 여성이 말하고 들리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면서 주체를 예속

적이고 열등한 지위로 못박아 둔다고 믿는 랭턴과 달리, 버틀러는 주체에 대한 호

명은 저항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호명되는 것은

주체로 하여금 그들이 존재로 불리게 된 근거들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가능하

게 할 수 있으며, 그들의 종속적인 지위를 확고히 하도록 역사적으로 작동했던 낙

인들을 잠재적으로 되찾는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메갈리안의 미러링은 기존에 감히 그럴 권력을 소유하고 있지 못했던 여성들

도 기존의 권력을 도용하고 전복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식이다.

혐오발언에 대한 거울반사로 설명되는 미러링 스피치는 혐오발언을 발화한 화자

자체가 그 혐오발언에 의해 스스로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발화는 발화자에게 다른 형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 (…) 원래의 목적과 반대되도

록 인용될 수 있으며 효과의 전도를 수행할 수 있다.”1 언어는 이미 기존의 권력으

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은 화자만이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어행위는 과거

의 맥락으로부터 단절되는 것이 가능하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정당성과

1 ibid., p. 14.

Page 10: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8

새로운 사회적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힘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남성이 집에서 조신하게 살림이나 하지”라고 발화하는 것이나 “남자는 고분고분

한 맛이 있어야 한다”, “역시 술은 남자가 따라줘야 제맛이다”라고 발화하는 것은

그렇게 말할 권위가 없던 여성이 효과가 없어 보이는 발화를 수행하는 수행적인

모순인 것이다. 그러나 버틀러는 모든 억압적인 언어 행위들은 반항적인 저항-발

화, 즉 “권위”가 없이 행해진 언어 행위에 취약하다고 주장한다.

반란적인 언어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언어가 (언술이 모방적으로 관

련되는) “사회적 지위”에 의해 미리 기능적으로 보장하는 정적이고 폐쇄된 체계

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말의 힘과 의미는 과거의 맥락이나 “지위(position)”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말은 자신이 수행하는 맥락과의 단절로 인해 자

신의 힘을 획득한다. (145)

이런 혐오발언의 “고통을 주는 힘에 반대하여 언어 행위의 힘을 재작업할 수 있

는 가능성은 언어의 힘을 자신의 과거의 맥락들로부터 부당전유하는 데 있다.”2

이러한 버틀러의 주장은 메갈리아의 미러링 스피치와 공명한다. 미러링 스피치

는 말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받지 못했던 여성들이 감히 말하는 것으로, 혐오발

언에 대해 되받아쳐말하기(speaking back)와 혐오발언을 통해 말하기(speaking

through)의 융합이다. 그것은 혐오발언으로 하여금 스스로 혐오발언에 대립하도

록 만들면서, 혐오발언을 통해 혐오발언에 저항하는 방식인 것이다.

만일 동일한 발언이 되받아쳐 말하기(speaking back)와 그것을 통해 말하기

(speaking through)의 계기가 됨으로써 그 발언을 건네받은 자에 의해 차지되고

변하게 된다면, 인종차별 발언은 어느 정도는 자신의 인종차별적 기원으로부터

이탈되지 않을까?(92-93)

2 ibid., pp. 40-1.

Page 1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9평화주의자 노트

따라서 혐오발언은 주체를 파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서, 그것을 되받아쳐서 여성들은 ‘말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혐오발언은 비록 “건

네받은 자를 침묵시키고자 하는 일종의 행위에 해당되기는 하지만, 자신의 예측

되지 않은 잔여로서 침묵된 자들의 어휘 내에서 되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3 메갈

리안들은 여성혐오로 인해 침묵당하거나 모욕받는 것을 거부한다. 수신자는 “예

측불가능하거나 기생적인 방식으로 언어의 힘에 대응할 수 있다.”4 따라서 모욕적

인 이름으로 불리면서, 우리는 상처를 받을 수 있지만, 그 명명은 또한 “모욕적인

부름에 반박하고자 언어를 사용하게 되는 발화 내 주체를 개시하는 위험을 감수

하는” 것이다. 그같은 반란을 통해서, 즉 창피한 용어에 대한 담론적인 저항과 재

전유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담론의 호명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며, 치욕을 씻어

내는 이의제기를 통해서, 또 다른 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5

메갈리아의 미러링 스피치는 과거의 혐오발언에 대한 도용과 전복에서 자신의

힘을 도출한다. “상처를 주는 말은 그 말이 작동한 과거의 영토를 파괴하는 재사용

에서 저항의 도구가 된다.”6 어찌 보면 혐오발언에 저항하는 방법은 혐오발언 자

체에 해답이 있었는지 모른다. 메르스 바이러스처럼, 메갈리아의 미러링 스치피

는 혐오발언에 기생하여, 혐오발언을 재맥락화된 방식으로 증식시킨다. 메갈리

안의 미러링은 온라인 가상공간을 통해 영향력이 확장되었고 수많은 메갈리안들

을 탄생시켰다. 과거의 언어행위에 ‘기생’하는 방식은 혐오발언의 효과를 교란하

며 다른 사회적 효과를 ‘증식’시킨다. 따라서 혐오발언은 도용되고 기생당해 탈인

용가능한(ex-citable) 것이 된다. “상처의 힘에 반대하여 언어행위의 힘을 재작업

3 ibid., p. 160.4 Benjamin Baez, Affirmative Action, Hate Speech, and Tenure: Narratives about Race, Law, and the Academy, Psychology Press, 2002, p. 57.5 ibid., pp. 52-36 Butler(1997), op. cit., p. 163.

Page 1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할 수 있는 정치적인 가능성은 과거의 맥락들로부터 발화의 힘을 전유하는 데 있

다.”7 따라서 메갈리아는 혐오발언을 재수행하고 재의미부여하는 방식을 취함으

로써 혐오발언의 힘을 파괴한다. 이런 메갈리아의 혐오발언에 대한 기생은 재미

있게도 메르스 바이러스의 작동방식과 유사하다. 메갈리아의 미러링 스피치는 원

래 맥락의 혐오발언에 ‘기생’하여 그 혐오발언을 과거의 맥락으로부터 이탈시킴

으로써 자신의 힘을 획득한다. 이런 활약을 통해 많은 여성들은 메갈리아의 존재

를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들의 공론화와 문제제기를 통해 수치심과 침묵을 딛고

발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메갈리안들의 등장을 통해 살펴봤을 때 혐오는 양가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버틀러는 비록 “혐오발언은 언어적인 생존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며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상처의 장소가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름-부르기는 저항-운동을 개시하는 순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불

리어지는 이름은 우리를 종속시키기도 하지만 양가성으로부터 행위성의 장면을

생산함으로써 그 부름이 발생한 의도를 초월하는 일련의 효과들을 동시에 가능하

게”8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처가 되는 말 걸기는 그것이 불러 세운 주체를 고정

시키거나 마비시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예측되지 않은 그리고 무언

가를 가능하게 하는 응답 또한 낳을 수 있다.”9 메갈리안의 반란의 발화는 여성혐

오가 결코 우리를 영원히 침묵시키고 파괴하지 않음을, 오히려 떠들고 설치고 생

각하게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7 Butler(1997), ibid., pp. 41-42.8 Butler(1997), op. cit., p. 163.9 ibid., p. 2.

10

Page 1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11참가후기

전쟁세상에 살고 있는 내 옆지기에게 보내는 편지

리브가 | 초심자를 위한 6주 비폭력 기본 과정 참가자

전쟁세상을 함께 손잡고 걸어가기로 약속한 내 사랑, 고갱. 여보가 나한테 매주

목요일 저녁, 6주 동안 어디를 가서 대체 뭘 배우는 거냐고 물었었잖아. 왜 마지막

에는 2박 3일 동안이나 합숙하면서 지내는지도 궁금해했지. 그동안 조금씩 이야

기를 했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내가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나와 우리의

삶에 어떠한 변화가 생겼고 앞으로 생길 것인지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처음에 이름도 길고 어색한 “초심자를 위한 비폭력트레이닝”에 대해 듣게 된 건

엔틸드님의 페이스북이었어. 나중에서야 작년에 엔틸드님이 참여했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지. 내가 처음 화면에 뜬 소개를 좌악 읽어가는데, 내 잉여잉여한

방학을 조금은 의미 있게 만들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특히 과정 소개의 첫

문장이 좋았던 것 같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서 ‘어떻게’

그것을 하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워크숍”이라니 뭔가 두근두근 했지. 대체 여기 관

심이 있어서 모이는 사람들은 누구인지도 궁금했고 말이야.

참가후기

Page 1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여보가 그랬지? 왜 이 사람들은 영화 007처럼 코드명을 쓰고 있느냐고. 첫 시간

에 홍대에 있는 가톨릭 회관에 도착해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모두 오리, 망치, 아

침, 수영이라는 코드명(!)을 쓰고 계시더라고 했더니 여보는 꽤 신기했었나 봐. 난

제임스 본드 영화의 코드명처럼 생각했던 여보가 더 재미있었는데 말이야. 아니,

어쩌면 거기 모인 사람들은 그렇게 모두 코드명을 가진 스파이가 아닐까 싶기도

하네? 어떻게든 권력을 가지려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의 소문이 끊이지 않는 이 세

상에서 전쟁없는세상을 만들어 보겠노라고 모인 스파이말이야.

그렇게, 스파이들의 각자 자기 소개 후에는 비폭력에 대한 이미지와 각자가 가

진 비폭력에 대한 생각들을 확인해보는 시간을 가졌었어. “평화활동가들이 군수

공장에 들어가서 전쟁에 쓰이는 무기를 파괴했다.” 이건 얼마나 폭력적인가? 그렇

지 않은가? 라는 ‘비폭력 바로미터’ 질문에 대해 여보랑도 이야기했었던 거 기억

나? 난 여보가 도시락폭탄을 던진 윤봉길처럼 전쟁에 쓰이는 무기를 파괴할 수 있

는 그런 종류의 강한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었어. 윤봉길이 한 행

동이 테러리스트와 다른 게 뭘까에 대한 궁금증도 생기고, 우리 같이 더 알아보자

고 이야기했었지. 비폭력 명언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도의 간디와 미국의

마틴 루터킹 주니어 말고 다른 한국사람의 명언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나눴던 기억도 나네. 생각해보면 우리는 항상 명언을 외국에서 수입해서 쓰고 있

었잖아. 한국 사람들도 많았을 텐데!

내가 못간 둘째 주 이야기는 지은님을 통해서 전해 들었어. 지은님이 둘째 주에

참석하고 마구 기뻐하면서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여기서 소개해볼게. “나는 내가

말을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내 목소리는 조금이라도 안전치

못하다고 느껴지면 자취를 감춰버리고 난 ‘얘가 또 숨바꼭질 시작했구나. 할 수 없

12

Page 15: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지뭐!’ 하고 말 없이 침묵한다... 근데 오늘처럼 누군가 내게 다가와 말을 잘 한다고

하면 엄청 신기하다. 대학교 때 친한 교수님과의 관계에서 이후로는 또다시 내 목

소리와 숨바꼭질의 놀이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나인데...더군다나 더 놀라운 건 잠

재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두 사람을 만난 것.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약 2분

정도의 간략한 설명에 완전 공감하는 사람들을 찾은 것이다. 앗싸! 난 쉽게 흥분하

기 보다는 항상 침착한 얼굴로 내비쳐지는 편이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쉽게 흥

분되고 주체가 잘 되질 않는 것을 보면 이게 바로 내 열정이고, 내 길인 듯 싶다.”

이 주의 주제는 “비폭력의 관점에서 바라본 권력시스템”이었거든. 어떻게 우리 편

을 찾아서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까에 대한 실제 실습을 해봤는데, 지은님이 관심

분야로 실습을 하게 된 거야. 내가 함께 참여하자고 한 거라서 지은님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행복하더라고.

그 다음주는 캠페인전략에 대한 이야기였어. 가장 기억이 나는 건, 사회운동의

여덟 가지 단계를 배우고 어떤 운동이 어떤 단계인지 생각해 본거야. 참여하기 전

에 메일로 집속탄 제조를 반대하는 허니웰 운동의 성과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김정욱씨의 인터뷰를 읽고 갔기에 조금은 준비된 마음으로 갈 수 있었어. 성공사

례를 읽는 것이 얼마나 힘이 나는지, 그리고 어떤 운동이 성공했을 때 축하하는 일

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던 것 같아.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조금

생기고, 미국 대법원이 동성결혼 합헌 결정을 하기 며칠 전이었기 때문에 결정을

기다리며 기대하는 나눔도 했었던 걸로 기억나.

4주차에는 세계 4곳의 공동체 사례를 배우고, 유토피아를 다 같이 창조해보는,

비유하자면 게임 문명 mod 만들기 같은 시간을 보냈어. 주어진 지도가 아니라 우

리가 어떤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지, 천연자원은 무엇이 있는지를 조건으로 만

13참가후기

Page 16: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들어 내는 게 mod잖아. 왜, 내가 한참 문명 게임에 빠져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유

토피아와 같은 세계를 만든다며 다섯 가지 승리 조건(시간 내에 가장 높은 점수,

로켓을 달에 먼저 쏘아 보내기, 모든 수도 점령하기, UN에서 투표해서 표를 가장

많이 받아 외교 승리, 문화 승리) 중에 최대한 전쟁을 하지 않는 방법을 써서 이기

려고 했었잖아. 전쟁하는 게임에서 전쟁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는 내 노력을 보며

여보는 어이가 없다고 하면서도 막상 다른 방법으로 이기면 묘한 표정을 짓곤 했

었지. 모둠 별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주제를 나눠서 최대한 구체적으로 상상

해 보았는데, 만들어 놓고 보니 핀란드와 굉장히 비슷한 사회가 만들어져서 놀랐

었지. 이런 국가가 가능하긴 하구나, 하는 기대감이 생겼달까?

그 다음 주는 세 가지 종류의 힘을 배웠다고 해. 나는 참여하지 못하고 자료로

만 보았는데, 파워 오버power over/파워 위드power with/파워 위드인power

within을 구체적인 사례로 다뤘더라고. 각자가 가진 힘을 자각하는 일이 중요하다

는 건 알겠는데, 나에겐 매트릭스의 네오의 이미지가 떠오르더라고. 거대한 (기계)

의 힘을 자각하고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잠깐 벗어났더라도 얼마나

쉽게 그 예전 지배-피지배 관계로 돌아가기가 쉬운지 말야.

자신이 가진 힘을 각성한 레오. 파워위든!

14

Page 17: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이 트레이닝의 마지막은 2박 3일 평화캠프로 진행되었어. 왜 민주적 조직운영

을 해야 하는지, 각자 갈등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집단 관계 역학(그룹 다이내믹)

도 배우고, 젠더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만 나에게 가장 의미가 있었던 시간은 합의

적 의사결정과정으로 회의 때 술 취한 사람을 참여시킬 지 말지에 대해 정하는 시

간이었어. 꽤 진지하게 세부회칙까지 만들었던 기억이 나네. (술은 채식!) 난 여기

서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과정을 배워서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이제 실제로 쓰기

시작했으니까.

우아, 나 생각보다 꽤 많은 걸 했는데? 밤 늦게까지 peace bar에서 함께 이야기

를 나누며 타로카드로 인생 명상을 했던 일도, 채식 라면을 끓여 먹은 일도, 쥬크

박스 엔틸드님과 함께 기타치며 쉬지 않고 평화와 저항을 노래한 일도, 빙 둘러 앉

아 레지스탕스 게임을 했던 일, 그 모든 하나하나도 참 착한 사람들의 착한 행동이

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착해 빠진 맹한 사람 말고, 히브리어 단

어에서 이야기하는 ‘착함’을 가진 사람들 말이야. 오늘 신문에서 읽은 배철현 님의

글에서 본건데, 히브리어에서 착함이란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찾아, 그것을 인내를 가지고 지키는 행위’라고 하시더라고. 같이 모여

서 트레이닝을 받았던 이 사람들처럼 평화라는 소중한 것을 찾아, 전쟁 없는 세상

을 향해 인내를 가지고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지금도 뉴스를 통해 교전 소식이 들려오네. 차라리 이 현실이 전쟁 게임이라면,

우리 둘이 마법으로 악을 무찌를 수 있을 텐데 말야. 현실을 전쟁 게임인양 여기는

권력자들에게 우리의 “착함”으로 끈질기게 평화를 이뤄갈 수 있을까? 내 옆지기

여보야, 우리 같이 전쟁세상이 전쟁(없는)세상이 되도록 같이 가자.

15참가후기

Page 1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사실 세미나의 내용과 성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 영어

까막눈인 내가 일정표를 영어로 받았기 때문...강정마을의 주간 지킴이회의 때 친

구로부터 내용을 공유 받을 때에도 아덱스라는 단어가 많이 나왔지 전쟁수혜활동

이라는 표현은 없었다! 일단 믿고 참여하는 전없세의 프로그램이니까 재미는 있

겠지!!하며 참여를 고민했을 뿐... 이 국제 세미나 일정에 참여하기 전에 강정마을

을 방문했던 팔레스타인 청년활동가 카람과 직접행동에 대한 워크샵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만 제대로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그나마도 어떻게 진행해야하는지

전혀 모르는 채 참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대책없음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하지만 원래 나의스타일이 그러함ㅋㅋ

간만에 육지로 나온 것이라 느긋하게 움직이려고 일찍 도착한 것이 그나마 다

행이었다. 영어로 진행되어 알아듣지도 못하는 주최 측 내부회의에 낑겨서 알아

전쟁수혜자자활동에 관한국제세미나 참가후기

복희 | 강정지킴이

참가후기

16

Page 19: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듣는 척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을 시작으로 그렇게 전체 일정에 빠져들었다. 다양

한 국적의 평화활동가들에게 강정의 친구들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져 말은 안

통했지만 친근함을 느꼈다. 어찌나 눈빛들이 상냥한지. 전날 저녁 한글로 된 자료

집을 받고 눈이 번쩍 뜨였는데 세미나의 모든 주제들이 놓칠 수 없는 주제들이었

기 때문이다. 내가 진행하기로 한 워크샵 준비도 안했는데 세미나를 빠질 수 없게

된 위급한 상황이 되었다.

해군기지 완공을 코앞에 둔 강정마을에서 ‘군사화’라는 화두는 매우 중요한 문

제지만 군사화에 대한 경험이 없던 내겐 막연한 문제였다. 사실 현재에도 그렇다.

전쟁 수혜자 혹은 수혜 활동이라는 표현은 아직 낯설다. 하지만 전쟁이 정권을 유

지하는데 꼭 필요한 경우도 있고 무기를 제작하고 판매/수출하면서 이윤를 축적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안다. 전쟁 수혜라는 단어는 저항활동의 대상과

목적을 분명히 알게끔 해주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좋아져서 대부분은 이미 인터넷 상으로 약간씩 접한 내용이었지만 세

부 분야의 활동을 주체로부터 직접 들으니 더 생생하고 가깝게 다가왔다. 어디 붙

어있는지도 모르는 나라들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의 원인이 같다니 그 어마어

마한 스케일에 막막함이 더해지는 듯도 하고 세계 각지에서 같은 맥락으로 함께

저항하고 있구나 싶어 힘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스페인, 델라스평화연구소의 조르디의 발표로 ‘전쟁수혜활동’의 정의를 뚜렷

하게 처음 받아들이게 되었다.

“전쟁수혜활동은 개인적 부의 축적과 방위산업의 경제적 이익 극대화를 엄격하

17참가후기

Page 20: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게 추구하는 태도를 낳고, ‘신자유주의적 군사주의’를 형성한다.”, “경제적 이윤

은 전쟁의 일부이며, 전쟁은 또한 이윤을 위해 수행된다.”

이 군사경제사이클은 민간부분의 지원 없이 국방차원의 지원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 또 민간무기업체의 활발한 활동을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생산

과 거래, 그리고 사용. 이 모든 단계와 경로에서 주체가 누구인지, 투입된 자본이

민간인지 공공재원인지를 꼼꼼하게 분석해야할 정도로 정교하게 얽혀져 있다. 각

단계와 경로를 추적하는 정보력에 왠지 모를 신뢰감이 상승하더라.

베네수엘라, 평화연구소의 렉시스의 ‘군사화와 채굴산업의 관계’에 대한 발표

도 매우 흥미로웠다. 이 시간에서는 ‘환경의 군사화’라는 표현이 신선하면서도 확

와닿았다.

“사회의 군사화 없이 진행되는 채굴주의란 있을 수 없다. 군사화가 그러한 경향의

일부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노천채굴이든 대규모 광산개발이든 언제나

군사화를 동반한다. 도시에 사는 이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겠지만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환경의 군사화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르디 까르보 루팡게스, 델라스 평화연구소

18

Page 2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우리는 ‘군사화’를 단지 어떤 국가에서 군대의 구성원을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군대의 가치관이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강정처럼 군대가 전면으로 들어나 명백하게 군사화에 저항하는 것을 넘어서 대

규모 광산개발 사업을 반대하는 시위 등을 ‘환경의 군사화’에 저항하는 활동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강정의 해군기지 공사와 제주도의 무제한적인

개발공사로 인해 골재를 채취하기 위해서 곶자왈 등 보전해야할 자연이 파괴되는

현상도 ‘환경의 군사화’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해군기지’ 공사

로 많은 자재들이 동나고 있는 상황이니 제주의 자연이 파괴되는 명백한 원인으

로 제주환경에 ‘군사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라틴아메리카의 반군사주

의자에게 주어진 다양한 과제들은 강정의 과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헤게모니적

발전모델로 자리잡은 채굴주의와 국가기구/지역의 군사화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

고리를 지속적으로 파헤치고 가시화하는 것”, 사회적으로는 물론 활동가들에게도

분명히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현실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또, “‘좌

파’와 ‘우파’간 이념논쟁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접근법과 분석을 제시하는 것”.

싱크로율이 높아서 소름 돋았다.

뉴욕, WRL 활동가 타라의 세미나 주제는 ‘경찰의 군대화’에 대한 것이었다. 시

민을 대하는 경찰의 군대화는 시민을 적으로 대하고 탄압하는 역할을 한다. 내부

의 적과 외부의 적이라는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다. 강정에서도 거의 매일 보게 되

는 경찰들이 떠올라 확 관심이 갔지만 미국의 경찰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군사화

된 편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너무 안일한 생각 같기도 한데 강정에서 경찰로부터

겪게 된 폭력은 너무 일상적이라 객관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어

반실드’라는 세계 최대의 경찰특공대 훈련 및 전쟁무기 박람회가 2007년부터 개

최되고 있고 올해부터 한국도 참여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19참가후기

Page 2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어반실드는 ‘인구밀도와 위험도가 모두 높은 도시지역’을 위한 ‘긴급상황 대비

훈련’이라고 홍보하면서 기후변화로 인한 긴급상황과 자연재해에 대한 두려움

을 공략한다. 하지만 어반실드는 미 국토안보부의 후원으로 개최되기 때문에 훈

련 시나리오, 워크숍의 주제, 박람회에 나오는 업체의 제품은 모두 ‘테러 위협과

의 연관성’이 있어야만 한다. 간단히 말해 어반실드는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와

신체적/정신적 응급상황에 대한 유일한 대책으로 군사주의를 홍보하는 국제 대

테러 행사다.”

어반실드저지연대는 흑인 및 중남미계 지역사회의 군사화에 저항하기 위해 다

양한 집단이 풀뿌리 차원에서 힘을 모은 특별한 사례라고 한다.

“경찰폭력과 군사화로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이들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

지만, 지역사회 조직과 전국조직이 모두 참여해 다양한 인종, 종교, 정치성향, 사

회적 배경을 가진 구성원을 포괄한다. 연대의 목표는 ‘경찰의 군대화를 저지하고

우리 지역사회를 세계적 탄압 전술의 시험장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폭력을 줄이고, 지역사회의 자기결정권을 확보하며, 지역사회 차원에서 국가폭

력과 탄압에 맞서 지속적으로 싸우는 것’이다.”

꺅 멋있어!!

타라 타바시, 전쟁저항자연맹(WRL)

20

Page 2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2014년 이 어반실드저지연대는 오클랜드 시장으로부터 더 이상 어반실드를 개

최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표를 얻어냈지만 얼마 후 근교로 장소를 살짝 옮겨 계속

개최되었다. 올해 어반실드저지연대는 ‘미국의 시정부와 카운티정부가 특정 인종

에 대한 탄압과 폭력에 협력하는 행위에 책임을 묻는다’는 목표에 따라 옮겨진 장

소인 베이에어리어 주민 조직화에 나섰으며 옮겨진 장소에서의 어반실드 개최 전

면 거부를 촉구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올해 초 강정의 군관사 저지 투쟁 즈음에

제주도정이 강정 말고 다른 마을에서 대체부지를 해군에게 제안했던 일이 떠올랐

다. 그때 강정마을반대대책위원장과 활동가들도 순간 고민에 빠졌던 것이 아무리

해당 토지의 소유자가 기꺼이 제공의사를 밝혔다고 해도 강정마을에서 옳타구나

거기다 지어라~하는 것이 옳은 입장인가? 하는 것이었다. 강정의 활동가들은 강

정 뿐만 아니라 제주도 전체가 비무장평화의 섬이 되길 바라고 있고 더 나아가 오

키나와, 제주도, 대만을 잇는 섬들의 연대 활동도 이어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

만 이 고민이 더 깊어질 기회는 없었다. 해군이 제주도정의 제안을 가뿐히 무시하

고 강정에 짓겠다고 했기 때문이다ㅋ

앞으로 완공을 앞 둔 해군기지로 인해 강정마을의 군사화는 물론 제주의 군사

화도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아 씨발 진짜 너무 무섭다 ㅠㅠ 강정에서도 이 급격

하고 큰 군사화의 흐름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더 조직적인 저항 활동과 더 넓은 연

대와 적극적인 실천들이 절실하다. ㅠㅠ 허나 그동안의 평화활동을 걍 열정적인

취미활동으로써 해왔기 때문에, 또 활동가보다는 배짱이/노는 사람의 성향이 매

우 크기 때문에 ㅠㅠ 나 스스로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해 유효한 기여를 하지 못할

것 같다는 고민이 있다. 여러분, 이런 저라 죄송염.

그래도 세계 각국의 선량하고 사랑스러운 평화활동가들을 만난 일은 나에게

21참가후기

Page 2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강정에 찾아오는 국제활동가들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의 강한 자극을 주었다. 또,

이 국제세미나를 꾸리고 진행해온 주최 측의 노력과 노련함에도 감탄하게 되었

다. 사실 강정의 활동가들은 어떤 단체에 소속되지 않아 활동만 전적으로 하기도

어렵고 전문적(?)인 저항활동으로 성장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

만 나의 자부심인 강정 사람들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고 다들 쩌는 능력으로 필요

한 것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국내(님들)는 물론 외국의 많은 활동가

와 시민들의 큰 지지와 실천, 지원도 있다. 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잘 해나가지

않을까 무턱대고 긍정부터 해본다.

뭔가 급 마무리가 되는 분위기인데 사실 위에 언급된 발표들 이외에도 필리핀

의 ‘젠더를 기반으로 한 폭력 방지 운동 - 이 운동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주제,

‘식민주의와 개발침략에 맞선 웨스트파푸아의 저항’, 영국의 ‘무기거래와 부패’,

그리고 한국의 ‘동북아시아의 지정학과 군비경쟁 - 제주해군기지를 중심으로’가

있었다. 여성플라자에서 먹고 자며 반 감금상태로 전 일정을 참여했던 것이 아마

국제세미나에서 소그룹 토의 결과를 발표하는 복희님

22

Page 25: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도 관심 있는 주제만을 선별해서 몇 개만 듣는 것보다 더 적절했던 것 같다. 모든

주제가 강정의 활동에 큰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 기억

이 점점 가물가물해지고 있지만 자료집이 있으니께ㅋ 참, 그리고 영어를 못하는

것이 이렇게 답답하고 서러웠던 적이 없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나름 알아들을 정

도의 콩글리쉬를 구사했었는데 다 말아먹었어ㅠㅠ 쉬는 시간 틈틈이 더 깊은 이

야기를 나눌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니들도 답답했겠지.. 암튼, 세미나 일정 뿐

만 아니라 이어지는 직접행동에 참여했던 경험은 변해가는 강정의 상황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던 고민을 갖고 있던 중에 개인적으로 적절한 전환의 계기가 되

어 주었다.

23참가후기

Page 26: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2003년 전쟁없는세상이 만들어진 이후 그해 8월부터 꾸준히 발간해오던 전쟁

없는세상 소식지를 이번 2015년 12월 47호를 마지막으로 폐간합니다. 폐간을 결

정하기까지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여러 고민과 논의가 있었습니다. 현재 계간지

형태로 1년에 4번, 3개월에 한 번씩 발행하고 있던 소식지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고 있는지, 제대로 된 내용으로 채우고 있는지, 종이로 된 매체를 계속 발행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에 적절한지 등 소식지가 원래의 목적과 목표에 맞게 기능하고

있는지에 대한 수차례 논의 끝에 종이로 인쇄해 우편으로 발송하는 형태의 소식

지는 더이상 발행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13년간 전쟁없는세상의 관심 주제와 활동영역이 변화해온 것만큼 병역거부에

서 시작해 군사주의와 관련한 여러 주제를 우리의 고민으로 풀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소식지를 위한 매체편집팀을 구성해 주제별로 세미나를 여러

차례 진행하고 그 결과물로 기획기사를 구성하기도 했고, 해외의 다양한 평화운

동 소식과 자료들을 번역하여 싣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꾸준히 전하기

위해 연재 꼭지를 만들었고, 활동가들 외에도 여러 필진을 섭외하기 위해 노력했

습니다. 소액이나마 원고료도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사

여옥 | 전쟁없는세상 사무국 활동가

오프라인 소식지를 폐간하며

기획기사

24

Page 27: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이즈에 변화를 주고 표지도 컬러로 바꿔보기도 했습니다. 읽어보시는 분들이 어

떻게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한 번 더 생

각해줄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활동가들 나름의 노력이 담겨있었습니다.

물론 매번 충실했다고 떳떳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여러 활동과 행사에 치

이다 보니 시기를 맞추기 위해 쉬운 주제를 선택하기도 했고, 마감에 쫓겨 다시보

기에 창피한 수준의 원고를 수정 없이 그대로 싣기도 했습니다. 섭외한 필자와 소

통이 원활하지 못해 원고가 빠진 채로 엉성한 구성이 되기도 했고, 꼼꼼한 검토를

하지 못해 오탈자도 꽤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바쁜 일상 속에서 활동가들조차 인

쇄된 소식지를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시간을 내어 읽을 만큼 내용

이 매력적이지 않아서든, 책보다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은

시대의 흐름 때문이든, 혹은 둘 다 때문이든 간에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무언가 변

화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화단체 중에 이렇게 주제와 내용이 담긴 오프라인 소식지를 내는 곳은 우리

밖에 없을 거라는 자부심도 있었고, 우리의 목소리를 몇백 명에게 전할 매체를 가

지고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이번 호에서 어떤 글이 인상적이었다, 화장실에 두

고 틈틈이 본다는 회원님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 기능을 못

하던 기존의 소식지 대신 다른 방식의 소통과 컨텐츠를 고민하려고 합니다. 정보

의 홍수 속에서 의미있고 시의적절하며 전쟁없는세상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잊지않고 응원해주시고 의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지난 13년간 필자로 참여해주신 많은 분들, 읽어주신 수많은 분들께 감

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25기획기사

Page 2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이용석 |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전쟁없는세상의 생일은 2003년 5월 15일이다. 당시 병역거부자였던 오태양,

유호근, 나동혁을 중심으로 병역거부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힘을 보탰다. 첫 소식

지도 2003년 8월에 나왔다. 하지만 사무실을 내고 상근활동가들이 활동을 시작한

건 2004년 1월부터였던 바, 소식지기 꾸준히 나오기 시작한 것도 2004년부터다.

전쟁없는세상 소식지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러 차례 변신을 해왔다. 변신

은 디자인에서부터, 매체의 성격과 그에 따른 발행주기의 변화까지 포함한다. 아

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필요에 따라 성격이 규정되고 그에 맞서 발행주기를 정하

기보다는, 다른 여러 활동들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역량이 변하는 것

에 따라 발행주기가 정해지고 발행주기에 맞는 성격을 찾아갔던 게 사실이다. 처

음 소식지는 월간이었는데, 신생 단체 전쟁없는세상의 소식을 전달하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 하지만 소식지만을 전담하는 활동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다달이 내

전쟁없는세상 1호부터 46호까지

기획기사

26

Page 29: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는 건 너무 무리하다는 판단으로 발행주기를 격월간으로 늘렸고, 대신에 단순 소

식 전달보다는 평화운동에 대한 고민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시작된 꼭지

가 ‘기획기사’였다. 하지만 격월간으로 내면서 좋은 내용까지 담기는 어려웠고 소

식지는 아주 자연스럽게 계간지로 발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무크지처럼 정기

적인 기간을 지키지 못하면서 낼 때도 있었는데, 그때가 전쟁없는세상의 활동력

이 가장 열악하던 시기다. 최근에는 다시 계간지로 꾸준하게 몇 년간 소식지를 내

왔는데, 그동안 소식지의 부침이 바로 전쟁없는세상의 부침 과정이라고 해도 될

만하다.

내용 들여다보기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소식지 한 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병역거부자들의

소견서와 수감시절 편지글, 그리고 출소인사는 전쟁없는세상의 출발이 병역거부

운동이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병역거부자들의 소견서들은 개인적인 선언일 뿐만

아니라, 각각의 병역거부자들이 병역거부 할 당시 사회 상황과 평화운동의 자리

를 보여주는데, 소견서에 실린 병역거부자들의 글만 봐도 병역거부의 추세가 어

떻게 변화했는지 알 수 있다.

기획기사를 통해서는 좀더 심도 깊은 내용을 다루고자 했는데, 5월 15일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세계 여러 나라의 병역거부 이슈를 소개하거나 병역거부

수감자들이 겪는 이야기와 함께 감옥 인권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하고(9호), 대체

복무제도를 소개하고 입법 과정이 어느 정도까지 왔는지를 살펴보기도 했다(6호).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은 아주 초기부터 대체복무 입법을 넘어서 평화운동으로

서 병역거부 운동을 펼치고 싶어 했는데, 그런 지향점이 투사되어 대체복무제도

27기획기사

Page 30: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이후를 논하는 ‘병역거부 2라운드’를 기획기사로 다루기도 했다(6호). 단체를 시작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04년 7월에 나온 소식지였고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도 대체복무제도조차도 도입되지 않았으니 너무 심하게 김칫국을 마신 거다. 당

시 최초로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오는 등 사회적인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는데, 그것과 더불어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의 평화운동 지향성이 강하게 반

영된 결과였다.

기획기사를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경향성을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위에서

말한 병역거부 운동에 대한 심화 기사들이다. 이미 밝혔듯이 해외의 사례와 한국

병역거부운동에 대한 진단 등이 이에 해당한다. 평화운동 담론에 대한 고민 평화

주의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사회를 다룬 기획기사들이 있다. 반군사주의, 반국

가주의의 시선으로 학교를 바라보고(20호) 더 심화시켜서 교과서를 분석하거나

(21,22,23호), 게임과 전쟁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기도 했다(24호). 자동차 문명에

저항하는 삶의 방식으로 자전거 타기를 소개하기도 하고(10호), 비폭력대화를 다

룬 적도 있었다(13호). 이 이야기들 가운데 여러 개는 지금에 와서는 철 지난 이야

기일 수도 있지만, 기획기사를 쓴 당시에는 무척 새로운 이야기였으며, 기후변화

와 군사주의의 관계를 살펴보는 기획기사(30,31호)처럼 다른 사회운동에서는 접

근하기 어려운 새로운 시선들도 많이 소개했다고 자평한다.

사회운동에 대한 고민 특히 평화운동의 방법론에 대한 고민과 전쟁없는세상이

참여하는 연대투쟁 현장에 대한 고민도 기획기사에서 여러 번 다뤘다. 평택 미군

기지 확장 이전 반대 운동을 함께하며 평택 싸움에 대한 전쟁없는세상의 시선을

소개하기도 하고(14호), 평택을 비롯해 전세계의 다양한 군기지 반대운동을 소개

하거나 의미를 살펴보기도 했다(11,42호). 현재 전쟁없는세상의 세 가지 주요한

28

Page 3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프로그램들이 골고루 다뤄졌는데, 앞서 말한 병역거부운동에 대한 글들과 함께,

비폭력 트레이닝을 소개하고 비폭력 직접행동의 철학적 방법론적 고민을 확장시

켜나가는 기획기사들(36, 37, 40, 44호), 무기거래를 감시하고 전쟁수혜자들에 저

항하는 활동을 소개하거나(25호) 무기박람회인 아덱스에 대한 저항 행동의 정당

성과 필요성을 알리는 기사 등을 작성했다(39호). 국가 권력이 아닌 기업과 싸우는

방법에 대한 고민(38호)들은 이후에 더 이어가 보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다.

그밖에도 주로 후원인들의 자발적(이라고 쓰고 섭외 필수라 읽는다)인 기고글

이나, 기획연재 등을 통해서 평화운동의 시선이 정치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삶의 영역에서, 예컨대 게임을 할 때나 독서를 할 때나 밥을 먹을 때와 같은 일상

적인 삶에서도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내 맘대로 평가

(이 평가는 전쟁없는세상 내부에서 진행한 평가가 아니라, 전쟁없는세상 운영

위원 이용석의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라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전쟁없는세상 소

식지를 만들 때마다 맨땅에 헤딩하면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한국 사

회에 평화운동의 담론이나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것의 방증이지 않을

까 싶다. 그나마 해외 자료들을 찾을 수 있는 주제들은 안 되는 영어 실력으로 해

외 자료 번역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어떤 이슈들은 우리조차도 아직 설익은 생각

과 부족한 논리로 기획기사를 써내야만 했다. 그 때문에 지금이라도 누군가 깊게

파주면 좋겠을 훌륭한 이슈들을 발굴하기도 했고, 반면에 그 훌륭한 이슈들을 더

잘 다루지 못한 아쉬움도 진하게 남는다. 우리는 연구자나 저널리스트가 아니고,

활동을 하는 틈틈이 공부해가면서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스스

29기획기사

Page 3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로 위안으로 삼으면서도 아쉬운 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전쟁없는세

상의 그간의 소식지를 보고 나서 “무척 흥미로운 주제들을 다뤘는데, 기대만큼 재

밌거나 풍성하지 못한 내용이다.”고 평가를 내린다면, 손을 덥석 잡고 내 생각도

그렇다며 그 사람에게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직접 채워달라고 사정을 하고 싶다.

아쉬움은 남지만 부끄러운 소식지는 아니었다. 전쟁없는세상이 아니었음 다루

지 못할 내용을 다뤘고,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47

호까지 오는 소식지를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고군분투 해왔다. 때로는 활동

가들의 역량 부족으로, 너무나 바쁜 나머지 시간이 부족해서, 아주 가끔씩은 게으

름 때문에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전쟁없는세상의 소식지

는 평화운동에 대한 잡지 하나 없는 한국 사회의 유일무이한 평화운동 매거진이

었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낀다.

이제 종이 소식지 발간을 중단하지만, 전쟁없는세상이 소식지를 통해서 해왔던

일들, 평화운동에 대한 폭넓은 고민과 공부를 중단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다른 누군가 평화운동에 관련된 잡지를 만들어주면 참 좋겠다. 욕심을 조금 더 부

려본다면, 그 잡지의 이름은 <전쟁없는세상>이라고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

겠다.

30

Page 3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기획기사

47호 지면을 마감하며 13년을 돌아본다.

대담자: 나동, 날맹, 덴마 | 전쟁없는세상 회원

진행/기록: 오리 | 전쟁없는세상 사무국 활동가

지금까지 전쟁없는세상의 소식지(계간지) <전쟁없는세상>은 많은 (자원)활동가들

의 노력으로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지면을 발간하며 소식지(계간지)

발간에 함께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었으면 좋았었겠지만 여러 사

정상 나동, 날맹과 함께 과거의 소회를 들어보았습니다. 이 자리에는 올해부터 전쟁

없는세상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이후 온라인으로 전쟁없는세상의 목소리를 책

임질(응?) 덴마도 함께 했습니다.

소식지(계간지)가 47호를 끝으로 지면 발행을 접는다. 소감이 어떤가? 지면

을 폐간하고 온라인으로 간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날맹 : 아무래도 종이 소식지가 있으면 사무실 방문객이나 행사, 워크숍에서 나눠

주고 설명하기 좋은데 그런 부분에서 아쉬울 것 같다.

나동 : 전쟁없는세상의 자원활동가이지만 다른 활동도 많이 하기 때문에 외부 입

31기획기사

Page 3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장에서 얘기해보고 싶은데 우리야 관심분야가 같으니까 잘 몰라도 바깥에서 보면

전쟁없는세상이 다루는 내용들이 생각보다 독특하다. 이런 얘기를 하는 단체들이

별로 없다. 비폭력, 반군사주의, 병역거부 등. 검색을 하면 대부분 이 주제에 관해

서는 전쟁없는세상에서 발간한 것들이다. 그런데 20호까지는 소식지를 열심히 읽

었는데 그 뒤로는 다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현재 웹 중심으로 가다보니까 소식지

지면은 잘 안보게 된다. 검색도 불편하고. 하지만 지면이 없어지면 애장품으로 쫙

진열할 수 없어서 좀 아쉽긴 할 것 같다. 소식지 다 가지고 있다.

날맹 : 한국적 맥락이라고 해야 하나 나동

얘기대로 외국 회의같은데 가보면 같은

나라에서도 다양한 단체들이 와서 같은

주제로 활동을 해도 조금씩 입장이 다양

하던데 한국은 전쟁없는세상밖에 없는 것

같긴 하다.

나동 : 웹으로 가도 활동이 축소되는 건 아

니니까 앞으로도 다양한 컨텐츠를 이어갔

으면 한다.

날맹 : 기획기사를 봐도 아 이런 것에 관심

이 있었구나 싶으면서 전쟁없는세상의 고

민이 유추되는 것 같다. 아 그때는 그랬지 이거에 꽂혀있었지 싶었다. 번역글도 마

찬가지. 월간평화연대나 전쟁없는세상의 지면이 독특했던 것 같다. 앞으로도 새

로운 운동의 전망을 고민하고 모색하고 그 결실이 웹상에서 드러났으면 한다.

덴마 : 전쟁없는세상이 다른 단체에 비해 굉장히 액티브해보이는 측면이 있다. 새

로운 컨텐츠를 계속 발굴했던 것이 그런 인상을 주는데 한 몫을 했던 것 같다. 그

런 면에서 볼 때 좀 아쉽기는 하지만 전없세만 생산해낼 수 있는 컨텐츠들이 있으

날맹

32

Page 35: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니 앞으로 웹을 잘 활용했으면 한다.

나동: 지면은 아무래도 마감이라는게 있으니까 미루지 않고 계속 쓰게 된다. 그러

면서 미세하게라도 사고의 발전이 있기도 하고. 웹으로 간다면 이 부분을 고민해

야 할 것이다.

날맹: 회원사업 겸 공부 이런 관점도 있었던 것 같다. 계속 스터디를 할 수밖에 없

었으니까. 그러면에서 문제의식도 더 생기고 결과로 남고.

덴마: 편집팀이 별도로 있었던 시기가 언제인가?

나동: 10년도 넘은 일이라 기억이 잘... 회원들 입장에서는 집으로 계속 소식지가

오니까 후원한다는 것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메일같은 경우에 열어보는

비율이 10%안팎밖에 안된다. 소식지의 빈 자리를 웹이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페북도 보고 하면서 소통수단이 많아졌지만 수단이 많아졌다고

꼭 소통이 잘 되는 건 아닌것 같다. 품도 많이 들고... 아이디어가 많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물론 부침이 있었지만 2003년 8월, 1호를 시작으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어졌다. 2003년 5월 전쟁없는세상을 띄우고 소식지를 발간하기로 한 것

은 왜 때문인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었나?

나동 : 1호는 유호근씨가 만들었다. 사무실도 없는 상태였다. 초기 소식지 관련한

것은 내부 학습 목표가 가장 컸던 것 같다. 단체가 정착하는 와중에서 컨텐츠도 없

고 구성원들의 합의 수준도 낮은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끼리 공부를 하자 이런 의

미가 컸다. 세미나도 하고 평화주의자들의 책읽기 등 이런 부분이 초기에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다.

날맹: 처음부터 소식지에 관여했던 건 아니지만 추측컨대 병역거부 운동 초창기

였고 담론을 만들 필요가 있었고 기자회견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얘기할 수 없

33기획기사

Page 36: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었던 것들을, 물론 수세적이었던 부분도 있

었지만, 담아내려고 애썼던 것 같다.

나동: 전업 활동가가 없었던 시기에 어찌보

면 아마추어적인 부분이 없지 않았고 이것

을 벗어나고 빨리 프로가 되고자 했던 것같

다.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고 다툼이 있었고

그에 비하면 지금은 상당히 안정적이 된 것

같다.

덴마: 그 때 구성원은 누구였나?

나동: 대부분 병역거부자들과 그 친구들, 후

원인들이었다. 나이주의는 아니지만 다 어

릴 때고 사회생활을 별로 안 해봐서 좀 어설펐다.

전쟁없는세상의 소식지팀을 하게 된 계기는? 가장 기억에 남는 글 혹은 필

자가 있다면 누구인가?

날맹: 병역거부 고민을 하면서 처음 찾아왔고 소식지팀으로 바로 결합했다. 2005

년이었다. 당시 소식지에는 명진으로 되어 있다. 기억이 새롭다.

나동: 조은과 날맹은 주목받는 신인이었다. 몇 년간 '우리 조은, 우리 날맹' 그랬다.

날맹 : 전없세에 팀이 몇 개 있었는데 새로 누군가 결합했을 때는 대부분 소식지팀

으로 결합을 했다. 학습적 목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측정할 순 없지만 팀활동이 도

움이 되었던 것 같다.

나동: 당시 대부분의 글들이 수감된 병역거부자들 편지글이나 후원인들의 글이었

기 때문에 초기에는 분명히 컨텐츠가 그리 풍요롭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매번 비슷

비슷한 내용.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그때 고민하고 배웠던 언어들이 현재

나동

34

Page 37: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의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날맹: 평택 투쟁 결합하고 그랬던 것들이 떠오른다. 지금 보니까 미군기지 반대운

동을 비폭력과 연결시키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현재 민중총궐기에서 나오고 있

는 얘기들, 고민들과 맥락을 같이 한다.

나동: 그렇다. 10년전에 우리가 했던 얘기들이 지금 다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입장에서는 예전보다 할말이 많이 생겼고 생각이 정리되었다고 생각하지만

10년 전이나 현재나 분위기는 비슷한것 같다. 비폭력=합법, 폭력=비합법 이 카테

고리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그게 아닌데 상상력이 아직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날맹: 내가 쓰고도 내가 썼는지 기억도 안나는 글들이 기억난다. 재판받고 감옥에

갈 때쯤 기분이 굉장히 우울할 때였는데 독일에서 누군가가 내가 쓴 글을 번역해

도 괜찮겠냐고 메일을 보냈던 적이 있다. 이번에 독일에 가서 그분을 만났는데 내

글을 독일어로 번역을 해서 들고 왔더라 정말 신기했다.

나동 : 조은이 초기에 들어왔을 때 쓴 글. 바퀴벌레를 사랑해란가? 처음에는 속으

로 이게 뭔가 했다. 소식지 용으로 적합한가? 사람들이 착해서... (웃음) 조은이 당

시 문제작을 다수 만들었다. 워낙 선한 눈빛으로 얘기해서 거절할 수 없었다. 아니

이런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어디서 튀어 나왔지? 이길준도 그렇다. 어디서 저런 사

람들이 나오지? 근데 글을 보고는 좀 놀랬다. 너무 잘 써서. 그러더니 문학상을 타

더라. 깜짝 놀랬다. 예전에는 그런 글들을 보면 깜짝 놀랬는데 요즘은 그냥 그러려

니 한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다양하다. 효웅이도 빼놓을 수 없다. 얘는 아주 영

리하고 똑똑한 애다. 언젠가는 대박을 칠거로 기대한다.

덴마: 지금도 같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계속 보이니까 신기하다. 계속 그

자리에 있구나.

날맹: 지금 뭐하고 있을까 궁금한 사람도 있다.

35기획기사

Page 3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소식지(계간지) 목차를 정리해서 미리 보냈다. 소식지가 한국의 평화운동,

반군사주의 운동 담론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

나동 : 우리가 얼리어답터인 듯. 현재 그 얘기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덴마 : 전없세 활동가들의 특성도 변

한 것 같다. 병역거부자들 중심에서

이제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비

폭력, 무기거래 등. 병역거부 운동이

중심적이었을 때는 여성활동가들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부차적이었던

듯 하다.

나동: 여성활동가들이 우리 운동에서

비가시적이라는 것도 매번 반복되었

던 주제이기는 하다. 노동당 활동을

하니까 전없세보다는 좀 더 전통적이

고 계몽적인 방식의 운동의 세계로 들어간건데 내가 느끼는 건 지금 새롭게 활동

을 시작하는 세대들은 전없세와 같은 마인드가 있다는 것이다. 옛날 세대들이 소

명의식이 강했다면 지금 세대들은 내 인생이 개똥이다 이런 마인드가 있는 듯. 두

려움이나 이런 감정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같다. 우리 세대는 그런 얘

기를 하기 어려웠다. 그런 감정을 표현하면 자연스레 도태되었다. 지금은 확실히

좀 달라진 것 같다. 물리력을 이용해서 우리가 공권력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다들

아는데 다른 방식이 무엇일까에 대해서는 다들 생각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

날맹: 2008년 이후에 최대로 모였다고 하지만 허무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기분이

든다. 우리는 왜 모였나, 모여서 뭘 하고자 했지?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것이

비폭력의 문제의식과 맞닿은 거 같다. 인권교육에서는 사람들이 모여서 말하고

덴마

36

Page 39: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행동할 권리가 있다. 이건 들릴 권리이기도 하다 이렇게 설명을 하는데 막상 광화

문에 모였는데 차벽 때문에 우리 목소리가 안들린다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우

리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이 든다.

나동: 전없세가 많은 걸 실험할 수 있는 집단이 되었으면 좋겠다. 폭력은 안된다는

말은 왜곡되기가 쉽고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서 논점을 바꾸는 것이 좋

다고 생각한다. 이론적인 접근은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싸울 거냐 도망갈거냐 이

런 식의 단순한 프레임으로 간다. 새로운 그룹들이 계속 새로운 실험을 해서 사람

들의 호응을 얻고 이렇게 긍정적인 방식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폭력VS비폭

력 논쟁에서 한계가 있는게 막상 현장에서는 차벽을 들이받을 거냐 걍 뒤에 서있

을 거냐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기 때문인거 같다. 내가 여기 주인공이 아니구나 이

런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이런 실험은 중요하다.

날맹: 그 느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닌데 늘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갖히게 된다.

나동: 맞다. 운동의 전술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현재의 시위 형태가 예전보다 훨씬

선택지가 적어진 듯하다. 약간 고집같은 생각마저 든다. 많이 모이면 무조건 청와

대로. 단순하다. 그래서 청와대 가면 뭐할건데?

날맹: 게엄령 내리기 좋게 한 번 뚫어주는 전술을 경찰이 취할 수도 있다는 우스갯

소리까지 떠돈다.

나동: 2003년 반전운동에서 이미 차벽은 넘어봤다. 넘어갔더니 할 게 없어서 올때

는 걍 쭈뼛쭈볏 걸어 시위대 쪽으로 왔다. 전경들이 길도 터주고. 물론 의미가 아

주 없지는 않다. 세월호 집회에서는 근래 집회에서 볼 수 없는 고양된 모습이 있었

다. 고립되어 있는 유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에 확실하고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목적이 아니었을 경우에는 청와대로 가자는 구호는 목적의식이 없

는 것이다. 가면 뭘할건지 공유된 뭔가가 없다.

날맹: 민중총궐기를 둘러싸고 이런 논쟁이 있다고 하니 독일에서 온 활동가는 예

37기획기사

Page 40: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전에 독일에서 그런 일이 있었지만 오랜세월 동안 폭력시위 해보니 바꿀 수없는

게 없다는 걸 깨닫고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많은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아쉬운 점은?

나동: 옛날에 가졌던 아쉬움은 최근엔 다 해소된 것 같다. 특히 주기적 발간. 예전

에는 감옥에도 가고 힘들어서 잠수도 타고 하면서 발간이 주기적으로 안됐다. 개

인적인 성격일텐데 속력에 대한 아쉬움은 늘 있었다. 빨리 더 많은 컨텐츠를 생산

했더라면 좋았을 걸. 지금 계간지 정도 수준이 딱 좋은 것 같다. 후반으로 갈수록

많이 안정적이 됐다.

덴마: 편집팀에서 사람들이 다 사라져서 없어진 것인가? 예비병역거부자들이 모

여서 공부하고 그렇게 시작했던 건데 이후에 받은 느낌은 공부의 결과로 소식지

가 나온다기 보다는 소식지 내야 하니까 막 공부하고 그런 느낌? 요즘은 예비병역

거부자들도 별로 없고... 그렇게 보면 전쟁없는세상의 뉴비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

간이 없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생산하는 컨텐츠의 우수성에 비

해서 많이 읽히지 못했다 정도?

나동: 그런 확실히 있는 것 같다. 근본적

으로 이 주제 자체에 관심이 없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날맹: 최근 지우씨가 연재하는 게임과

평화같은 경우 인권교육할 때 많이 도

움이 됐다.

나동: 앞으로 여지는 더욱 많아질 것이

다. 젊은 활동가들의 경우 수평적인 관계에 대한 욕구도 강하고 굳이 이론적으로

학습하지 않아도 전없세가 가진 컨텐츠나 자원들이 활용될 수 있는 여지는 앞으

38

Page 4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로 많을 것이다. 주변에 병역거부 하겠다는 사람들도 많고.

앞으로 온라인에서는 어떤 부분이 더 다뤄졌으면 하는가?

날맹: 아까 민중총궐기 얘기도 했는데 데모 잘 하는 법에 대해서 좀 더 역할을 해

줬으면 한다.

나동: 지금 상황에서는 판을 주도하는 게 민주노총인데 민주노총이 사실 토론회

등을 조직해주면 좋을텐데. 중간에 끼어서 어중간하게 방향을 못 잡고 있는 것 같

기는 하다. 나름 여러 가지 노력을 많이 하는 거 같은데 더 노력이 필요할 듯. 운동

권 문화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것 같으니 일방적으로 비판하기 보다는 상생

하는 거였으면 좋겠다. 우리 운동의 특성상 외국자료들을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그런 자료들을 좀 체계적으로 모았으면 좋겠다. 징병제 국가의 징집률, 면제율 등

을 모으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 이런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모였으면. 징병제 현황

도 계속 바뀔텐데 그런 것들을 업뎃하는 곳이 없다. 한국에선 누가 보더라도 이런

류의 질문을 할 수 있는 곳은 전쟁없는세상이다 이런 거. 국방부가 노르웨이 여성

징병에 대해 홍보글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 세미나 했던 걸 알렸는데 아

주 좋았다.

덴마: 지속적인 컨텐츠 생산이 필요하다는 점, 온라인이기 때문에 지면보다는 가

가독성이 좋았으면 한다.

지금까지 전쟁없는세상의 소식지(계간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는 온라인으로 꾸준히 연구하고 전쟁없는세상이 관심있어하는 분야의 목소리를 내

도록 하겠습니다. 대담에서 이미 언급되었던 것처럼 온라인의 장점과 단점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한국사회, 더 나아가 세계의 탈 군사화를 위한 전쟁없는세상의 노력

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39기획기사

Page 4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기획연재-이예다의 프랑스 생활기

이예다 | 프랑스에서 난민으로 살고 있는 병역거부자

UN

한국정부 인권 정기심의를 위해 제네바의 UN에 다녀왔다. 많은 한국 시민활동

가분들, NGO단체분들도 오셔서 한국의 인권상황을 알리셨고 나도 병역거부권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심의 전에 위원들을 만나서 병역거부권에 대해 설명하며 잘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하고는 했는데 관심 있는 위원분들은 현재 한국 상황에 대해

빠삭했었고 내가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심의 후 병역거부권에 대해 권고

가 내려졌다. 물론 (추가된 부분을 제외하고) 수차례 내려졌던 권고지만 여전히 개

선되지 않았다. 병역거부권이 국제기준에 근거한 인권라는게 또 한 번 인정된 셈

이기도 하다.

비상사태가 선포된 파리의 풍경

40

Page 4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파리 테러, 프랑스 공습

“파리에서 테러가 있었대!”. UN에서 돌아와 얼마 후 인 13일 금요일 밤 퇴근한

후 지인에게 받은 문자였다. 귀가를 하니 Emmanuelle 선생님이 주변 친구,지인

들에게 안부 전화를 걸고 있었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내가 가게에서 일하고

있을 때인 9시즈음 테러가 일어났다. 구체적인 내용을 찾아 보고나서 나도 주변

지인들에게 연락을 시작했다. 14일에 참가하려던 일본 집단자위권반대, 오키나와

헤노코 기지 문제, 제주도 해군기지 문제 등을 이야기하는 파리 정기 집회도 프랑

스 국가비상사태 때문에 취소 되었다. 파리 자체가 넓지 않아서 테러 피해자가 나

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하고 무서웠다. 단지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피해자들과 그들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SNS

처럼 열려 있는 공간에서는 지인들이 살아남아 다행이란 말도 할 수 없었다. 테러

2일 후 사건현장에 들러 애도를 표하고 왔다. 정부의 당분간 외출을 자제하라는

비상사태가 선포된 파리의 풍경

41기획연재

Page 4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말과 사건 현장 근처의 메트로가 닫혀있고 또한 파리 전역에 깔린 공포심(실제로

총기가 아닌 파열음을 총소리로 착각하고 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영문도

모른 채 달려 도망가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하러 왔다.

그것과는 별개로 시리아 락까에 공습을 한 프랑스의 선택에 반대한다. 테러에

의해 죽은 사람들에 대한 애도와 마찬가지로 지금 전쟁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

매일 같이 테러와 같은 참상을 겪는 사람들 그것 때문에 생기는 극단주의자들을

이해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하지 않을까.

비상사태

국가비상사태(원래는 2주인 것이 3개월로 늘어난)와 함께 집회의 자유도 2016

년 2월까지 공식적으로는 사라졌다. 때문에 집회형식으로 공습에 이의제기를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실제로 NPA ‘반 자본주의 신당’은 실제로 집회 금지령임

에도 불구하고 공습반대등의 집회를 벌여 벌금을 물고 감옥행을 감수하고 있

다. 세계기후협약 기간 동안 그것에 관련해 준비 된 커다란 집회날인 11월 29일,

République에서 같은 날에 그것과는 별개인 집회의 자유를 찾기 위한 집회도 준비

되었는데, 집회 시작 후 1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특공대에 의해 문자 그대로

청소를 당했다. 오랜만의 고향의 향기(?)를 느끼며 슬퍼졌다.

(서류나 여러행정절차가 느리기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기동경찰의 빠르고 완벽

한 대응)

실제로 집회에 참여하다가 나도 경찰에게 청소를 당하며 한대 맞았다(...욕까지

들어가며) 집회에서 기동대를 보고 무서웠다. 기동대의 2m쯤은 가뿐히 보이는 키

의 근육질과 산적 같은 얼굴(...)이 무서운 것도 있지만 제 2국민으로써, 이민자로

42

Page 45: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써 겁나는 것도 크다. 테러 이후 이주민, 난민, 국적에 관한 정책이 외국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려는 중이고 실제로 지방선거에서 극우정당이며 난민과 이주민

에게 배타적인 국민전선(FN)이 높은 득표율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런 때 일수록

무차별 시리아,이라크 공습에 반대하고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동대가 무섭고 테러가 무섭지만 테러를 일으킨 극단주의자가

생긴 원인을 고민하고 그간 중동문제에 간섭을 하며 파병을 한 국가들, 그리고 그

나라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이 조금씩은 있다. 내가 느끼는 이 테러의 공포

보다 극심한 것을 내전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은 더 심하게 느기고 있을 것이라 생

각한다. 프랑스의 공습에 반대한다. 불법시위 합법시위하며 사람들에게 집회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 되지 않길 바라며 집회금지령에도

반대한다.

파리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 중인 이예다님

43기획연재

Page 46: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기획연재-게임과 평화

보드게임으로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외치다

<인티파다> - 규칙과 테마의 상관관계

파코루도(Paco Ludo)1는 역사적·사회적 문제와 주제를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

해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파코루도의 첫 작품 <인티파다: 팔레스

타인에 자유를>2은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으로 고통 받는 팔레스타인을 테마로 한

보드게임입니다. 흥미와 재미를 추구하는 게임에 고통이라는 감각을 온전히 풀어

내지는 못하겠지만, 실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현실에 기반해서 가급적 사

실과 가깝게 담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1에스페란토어로 '평화게임'을 뜻합니다. 'Paco'의 원래 발음은 '파초' 또는 '파쪼'에 가깝습니다.2'인티파다'는 아랍어로 '봉기' 또는 '저항'을 뜻합니다.

용석·새라·지우 | 파코루도

44

Page 47: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1. 봉쇄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둘러싼 거대한 분리장벽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자지

구(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 지중해에 닿아

있는 지역)와 서안지구(예루살렘과 요르단

계곡 사이의 넓은 지역)는 이동이 제한되

어 있습니다. 가자지구는 2007년 하마스

정당이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한 뒤 이스라

엘이 집단적 처벌의 성격으로 이 철저히 봉쇄하고 있습니다. 서안지구 역시 8m

높이, 700km 길이의 분리장벽에 둘러싸여 있고 곳곳에 검문소가 있어 총을 든 군

인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검문합니다.

게임에서도 이를 반영하여 가자와 서안은 다른 지역보다 이동하기 어렵게 만들

었습니다. 다른 지역을 오갈 때는 행동 포인트를 1포인트만 쓰면 되지만, 서안지

구를 나가거나 가자지구를 드나들 때는 2포인트를 써야 합니다. 대신 가자와 서안

의 문제들은 해결하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승점을 얻게 됩니다. 물론 실제로 가자

지구에 출입하는 것은 게임에서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2.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겪는 고통의 구체화

<인티파다>에는 모두 44장의 문제카드가 있습니다. 각 카드는 해당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실제 물 부족이 심

각한 서안지구에는 ‘물 부족’ 카드가 있고, 예루살렘에는 ‘강제철거’ 카드가 팔레

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사회 문제를 보여줍니다. 팔레스타인의 전반적인 문제는

45기획연재

Page 4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전 지역’이라고 표시된 문제카드로 표현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무

수한 고통과 그 고통의 크기를 카드 몇 장에 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들

이 겪는 고통의 양상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는 <인티파다>를 통해서 접할 수 있습

니다.

3. 가자지구에는 자원이 없다!

봉쇄된 가자지구는 물자의 출입 역시 제한되어 있어 자원이 매우 부족합니다.

그래서 가자 주민들은 이집트와 맞닿은 국경지역의 땅굴을 통해 자원을 밀수합니

다. 땅굴을 통해서 생필품부터 석유까지 다양한 물품이 조달됩니다. 그러나 이스

라엘은 봉쇄를 풀지 않은 상태에서 이 땅굴마저 보안상의 이유로 폭파하고 있습

니다.

이를 게임에도 반영하였습니다. 다른 지역들은 기본적으로 자원이 5개씩 쌓여

있고, 그 자원을 플레이어들이 모두 가져가면 다시 5개가 채워집니다. 하지만 가

자에는 자원이 쌓여 있지 않습니다. 플레이어는 주사위를 굴려 자원을 얻을 수는

46

Page 49: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있지만, 다른 지역처럼 원하는 자원을 골라 가져가는 게 아닙니다. 주사위를 굴려

서 나온 자원을 복불복으로 가져가야 하고, 운이 없으면 가지고 있는 자원을 버려

야 할 수도 있습니다.

4. 세상이 바뀌려면 다양한 사람들의 역할과 연대가 필요하다

어느 사회든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에는 다양한 역할이 필요합니다. 활동가만

많다고 해서 사회가 더 나아지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활동가는 없는데 언론

인만 많다고 해서 세상이 좋아지지도 않습니다. 파코루도는 사회 운동이 성공하

려면 다양한 역할이 공존해야 하고, 각 역할이 각각의 이슈에서, 지역에서, 상황에

서 함께 하면서 시너지를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티파다>에는 활동가, 구호대, 언론인, 교육자, 게릴라의 다섯 가지 역할이 있

고, 역할마다 대응되는 종류의 자원이 있습니다. 각 플레이어는 하나의 역할을 골

라 게임을 진행하는데, 어떤 문제도 한 가지 종류의 자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

니다. 또한 각 플레이어는 같은 지역에 있는 다른 플레이어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이는 사회 운동에서 연대의 힘을 상징합니다.

47기획연재

Page 50: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협력게임 규칙을 따로 만든 까닭도 이러한 연대의 힘을 통한 사회 변화를 게임

으로 구현하기 위해서입니다.

5. ‘무력’에 대한 고민

팔레스타인을 테마로 게임을 만들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이 바로 게임에서 게릴

라의 자원으로 표시되는 무력이었습니다. 파코루도는 기본적으로 비폭력적인 저

항이 진정한 평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록 최근에는 과거보다

그 수와 정도가 크게 줄었을지라도 무력 투쟁은 팔레스타인에 여전히 존재하는

하나의 흐름이고, 이를 게임에 넣으면서도 무력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어떻게

담을지 고민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력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단시간 내에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것이 즉각적인 효과를 낳기도 합니다. 그래서 게

임에서는 검은색 무력 토큰을 다른 어떤 색의 자원 토큰 대용으로도 쓸 수 있게 만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력은 그 뒤에 많은 부작용을 낳습니다. 이것을 게임에서는

감점으로 표현했습니다. 손쉽게 문제를 해결했지만, 그 뒤의 부작용으로 사용한

무력 토큰 하나당 승점 1점을 감점하는 것입니다.

좋은 의미를 담은 게임들이 재미가 없거나 게임성이 떨어져서 외면 받는 경우

가 많습니다. 파코루도는 <인티파다>를 만들면서 무엇보다 게임이 그 자체로 재

미있어서 테마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즐길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

면서도 애초에 이 테마를 선택한 이유들을 게임에 최대한 담고자 한 결과가 위와

같은 규칙들입니다. 파코루도는 앞으로도 테마성이 짙고 정치적 메시지가 강한

48

Page 5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게임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하지만 늘 게임의 묘미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테마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해나가겠습니다.

파코루도와 보드게임 <인티파다: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 웹페이지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pacoludo.com

http://facebook.com/pacoludo

49기획연재

Page 5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50

전쟁없는세상을 후원해 주신 분들

강경리 강돌 강성석 강성준 강소연 강은애 경성수 고동주 고동환 고희라

구길원끌레마 구종우 권순욱 권인숙 김나희 김덕진명랑 김동주 김명섭 김미선 김미현

김민영 김박가온(김병권) 김반지 김범준 김석정 김선미 김선미 김선영 김선옥 김성배 김성현

김성희 김소현 김송이 김수경 김수용 김수정 김영준 김영진 김영환 김영효 김용엽 김은주

김일애 김정은 김조이스 김주현 김중미 김지영 김지호 김태환 김태훈 김한보람 김한상 김현정

김현정 김형수 김화목 김환희 김효진 김훈태 김희석 김희순 나동혁 나인희 날맹 남순아

노상용 덴마 동현 류동훈 류진희 명숙 문성호 박남식 박새별 박승호 박아름 박용희

박재현 박재형 박정경수 박정숙 박지선 박지훈 박진석 박창희 박채원

박현민 박호자 법무법인지향 배보람 배사은 배선영 백가윤 백승덕 서상영 설순일 성혜란

송명관 송병채 송준 수하 숲이아 시우 시와 신경미 신기현 신유아 신희권 아하 아침 아키오

안지혜 안지환 안진걸 양은혜 양지혜 에리카 여문정 여옥 여은 여지우 염창근 오리 오성민

오소영 오수환 오정록(최민) 오학준 우경환 우공 우성섭 우완 우지연 원성완 위양자 유건

유인해 유현미 윤민순 윤정하 윤정화 윤혜정 은국 은종복 이갑수 이길준 이덕현 이비함 이상길

이선영 이선옥 이세현 이연지 이연희 이영롱 이용석 이자호 이장규 이재환 이종우 이종혁 이준규

이현우 이훈 임성엽 임재성 임재화 장미희 장정혜 장하나 장현진 전길수 전범준 전영 전영욱

정명수 정우진 정육자 정인철 정주열 정창영 정현채 조은 조정의민 주관수 주홍 지은 진진 진현호

진흙 참새 채승우 최경송 최민아 최성관 최성진 최익진 최인영 최정자 최하늬 최현정 타랑

탁윤희끌레마 편설란 하동기 하승우 한광주 한광희 한욱현 한주훈 햄 허용만 허윤정 허은 허인애

현민 홍수봉 홍수영 홍이 홍창욱 황명규 황수영 황예랑 Connection e.V

재정보고(2015년 8월 ~ 2015년 11월: 자세한 내역은 홈페이지에서확인할수있습니다)

총 수입 총 지출 이월금 총계

13,834,385 13,367,656 10,634,991 11,101,720

Page 5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발행처: 전쟁없는세상발행일: 2015년 12월 15일제호: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연락처: 02-6401-0514주소: 서울시 마포구 망원로 57 3층 (03958)http://www.withoutwar.org [email protected]

인쇄기획 한울타리연락처 02-924-9641,2

평화수감자들한테 편지 써 주세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수감된 분들입니다

박유호경기도 여주우체국 사서함 30호 1408번 (12627) - 여주교도소

김경묵경남 통영우체국 사서함 17호 283번 (53034) - 통영구치소

김두원경기도 의정부우체국 사서함 99호 1868번 김두원 (11778) - 의정부교도소

Page 5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7호(2015년 12월)

전쟁없는세상 47호

Adieu! <전

쟁없는세상>

그림: 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