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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웰스(DavidWells)는 최근에 일련의 책 속에서 오늘날의 기독교가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와 상당히 동떨어져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기독교의 변화를 주로 외형적인 차원에서 보기 때문이고, 그 외적인 변화가 그동안 긍정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의기독교는 외형적으로 진보하고 좋아지는 듯한 모습을 가져왔다. 더 많은 교인, 더 큰 예배당 건물, 더 좋은 시설,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교회 프로그램 등을 구비해가면서 그야말로 이전보다 성장했고,좋아졌 고 복 받았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 한 가지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아니 큰 상실이 있었다. 그것은 기독교의 핵심이 중심부에서 밀려나고 사라지는 일이 있게 되었 다. 물론 그것은 서구 교회에서 먼저 일어나고 뒤이어 우리 조국교회에서도 일어났는데 그 내용은 똑같다. 그러면 그 기독교의 핵심은 무엇인가? 세부적인 내용에 앞서서 넓게 말하면 바로 하나님의 계시된 진리, 곧 신학이다. 기독교의 중심에는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서 만들어낸 어떤 내용이 아 닌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진리가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진리가, 곧 신학이 교회의 중심부에서 변두리로 밀려나거나 사라졌다. 그렇게 된 직접적인 역사적 전환은 주로 19세기로 말하고 있 다. 곧 19세기에 이르러 찰스 피니라는 사람을 중심으로한 대각성운동이 그런 변화에 전환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그 때 이래로 기독교회는 “진리”에 대한 열정 대신 “영혼”에 대 한 열정을 크게 강조하였다. 그게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런 현상은 우리 몸에서 뼈 없이 살로만 움직이겠다는 것으로 사실 심각한 현상이요 변화였다. 그러나 기독교회는 그렇게 흘러 왔다. 그래서 크메이거의 말대로,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신학은 서서히 파산되고 그 대신 ‘종교’가 번성하게 되었다. ‘신학은 사라지는데, 종교가 번성한다(?).’ 그것은 기독교의 고 유함이 사라지고 그저 하나의 종교로 전락하게 되었음을 뜻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교회가 신학을 배제한 채, 하나의 종교로 번성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을 붙들었던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는 현상이 있게 되었고, 이 때 사람들이 취한 태도는 놀랍게도, 그 사라진 공동체 의식을 교회 밖에서 찾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이단 종파와 동양종교에 가세하 는 일이 있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서구 교회 속에서 먼저 발견된 사실이다. 그런데 그 현상이 그대로 우리 조국교회 안에서도 이동되어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고, 많이 진척되어 나타나고 있 다. 그 증거중 하나가 그동안 교회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신천지 이단 등을 비롯해서 각종 이단과 타종교에 기웃거리며 옮겨가는 현상이 전에 비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기독교의 본질을 올바로 알지 못했기에 그리 했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그동안 기독교회가 교회 안에서 “진리” , 또는 “신학”을 해체해버렸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중심에는 “신학”이 있고, 반드시 있어야 한다. 영혼에 대한 열정도 좋고, 신비스런 체험도 좋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시된 진리 안에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진리의 중심이 요 신학의 중심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있어야 하고, 그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결국 사망에서 자유하게 하시기 위해서 친히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 신 구속의 비밀에 있어야 한다. 기독교를 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바로 그 핵심을 아는 것이요 믿는 것이다.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곧 그 핵심을 믿음으로 소유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기독 교를 아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것을 알게 하지 않는 교회는 진실한 교회가 아니다. 이제 우리 조국교회는 외형에 속지 말고 이 기독교의 핵심을 회복하여 불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기독교의 본래모습을 갖는 것이요, 교회다워지는 것이며 진실한 신자들로 교회를 채울 수 있는 길이다. 그 은혜의 때가 임하길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발행처 대한예수교장로회 하늘영광교회 발행인 박순용 담임목사 발행일 2009년 2월 1일 편집부 하늘영광교회 문서편집부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1동 457-10번지 우) 134-856 ☎ 2296-1586 (교회) / 070-7449-7086 (사역자실) 하늘영광 www.GloryofGod.or.kr 담 임 목 사 Profile 10살 때 목사가 되기를 서원하여 총신대학교 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였 고, 영국 Free Church College of Edinburgh 와 The Evangelical Theological College of Wales(M.Phil 과정)에서 청교도와 영적 대각 성에 대해서 공부하였다. 호주의 Perth한인장 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던 중 조국교회 에 대한 사역의 부담을 가지고 귀국하여 “하늘 영광 교회”를 개척, 담임하고 있다. 교회를 찾아 오시려면... 집회 및 모임안내 지하철 천호역(5호선) 암사역(8호선)에서 시내버스 340번 또는 3411번 환승 양지 종합시장앞 하차 주일오전예배 오전 11:00 주일오후예배 오후 4:00 수요예배 오후 8:00 금요기도회 오후 8:00 새벽기도 (월~금)오전 6:00 유치부/유·초등부 오전 9:00 중/고등부 오전 9:00 청년부 토요일 오후 5:00 ■ 출산을 축하합니다! 어진선, 남은경 가정(득남) 신승종, 장선경 가정(득녀) ■ 담임목사 동정 목회자를 위한 독서모임 (2월 2일) 경건을 위한 독서모임 (2월 23일) ■ 선교사를 위한 기도 김수현, 박상미 선교사 가정과 남택수 선교사, 이경자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 교육부서 소식 유·초등부에서 축령산자연휴양림으로 겨울성경학교(1/12~1/13)를 은혜중에 잘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계속 기도해 주세요 신암중학교 올림픽대로에서 고덕 암사방면으로 진입 암사역(8호선) 양지종합시장 명일역 방면 천호역 방면 하늘영광교회 하늘영광교회는 처음도 과정도 마지막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그것을 선포하는 교회이어야 하고, 그것을 생명처럼 여기는 교회이어야 한다 기독교의 핵심 상실 절급한 회복 의 필요 담임목사 칼럼 복음초청잔치 교리반 성경공부 화요반 오후 18시 - 10시 수요반 오전 10시 - 12시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모임 ■ 병원전도및 지역전도 (매주 화요일 오전 10:30) ■ 토요 차전도 (매주 토요일 오후 1:30) 1 1 1 새생명출산을 위한 관계전도의 날 (5월 24일 주일) 관계전도를 위한 도전의 말씀 1차 2009년 2월 15일 2차 2009년 2월 22일 관계전도자 작정주일 1차 2009년 2월 22일 2차 2009년 3월 1일 주일 오전예배

하늘영광교회 09년 02월 1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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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영광교회 09년 02월 1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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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하늘영광교회 09년 02월  111호

데이비드 웰스(David Wells)는 최근에 일련의 책 속에서 오늘날의 기독교가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와 상당히 동떨어져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기독교의 변화를 주로 외형적인 차원에서 보기 때문이고, 그 외적인 변화가 그동안 긍정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의기독교는 외형적으로

진보하고 좋아지는 듯한 모습을 가져왔다. 더 많은 교인, 더 큰 예배당 건물, 더 좋은 시설,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교회 프로그램 등을 구비해가면서 그야말로 이전보다 성장했고,좋아졌

고 복 받았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 한 가지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 아니 큰 상실이 있었다. 그것은 기독교의 핵심이 중심부에서 밀려나고 사라지는 일이 있게 되었

다. 물론 그것은 서구 교회에서 먼저 일어나고 뒤이어 우리 조국교회에서도 일어났는데 그 내용은 똑같다.

그러면 그 기독교의 핵심은 무엇인가? 세부적인 내용에 앞서서 넓게 말하면 바로 하나님의 계시된 진리, 곧 신학이다. 기독교의 중심에는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서 만들어낸 어떤 내용이 아

닌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진리가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진리가, 곧 신학이 교회의 중심부에서 변두리로 밀려나거나 사라졌다. 그렇게 된 직접적인 역사적 전환은 주로 19세기로 말하고 있

다. 곧 19세기에 이르러 찰스 피니라는 사람을 중심으로한 대각성운동이 그런 변화에 전환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그 때 이래로 기독교회는 “진리”에 대한 열정 대신 “영혼”에 대

한 열정을 크게 강조하였다. 그게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런 현상은 우리 몸에서 뼈 없이 살로만 움직이겠다는 것으로 사실 심각한 현상이요 변화였다. 그러나 기독교회는 그렇게 흘러

왔다. 그래서 크메이거의 말대로, 19세기와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신학은 서서히 파산되고 그 대신 ‘종교’가 번성하게 되었다. ‘신학은 사라지는데, 종교가 번성한다(?).’ 그것은 기독교의 고

유함이 사라지고 그저 하나의 종교로 전락하게 되었음을 뜻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교회가 신학을 배제한 채, 하나의 종교로 번성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을 붙들었던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는 현상이 있게 되었고, 이 때 사람들이 취한 태도는 놀랍게도, 그 사라진 공동체 의식을 교회 밖에서 찾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이단 종파와 동양종교에 가세하

는 일이 있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서구 교회 속에서 먼저 발견된 사실이다. 그런데 그 현상이 그대로 우리 조국교회 안에서도 이동되어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고, 많이 진척되어 나타나고 있

다. 그 증거중 하나가 그동안 교회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신천지 이단 등을 비롯해서 각종 이단과 타종교에 기웃거리며 옮겨가는 현상이 전에 비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기독교의 본질을 올바로 알지 못했기에 그리 했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그동안 기독교회가 교회 안에서 “진리”, 또는 “신학”을 해체해버렸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중심에는 “신학”이 있고, 반드시 있어야 한다. 영혼에 대한 열정도 좋고, 신비스런 체험도 좋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시된 진리 안에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진리의 중심이

요 신학의 중심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있어야 하고, 그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결국 사망에서 자유하게 하시기 위해서 친히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

신 구속의 비밀에 있어야 한다. 기독교를 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바로 그 핵심을 아는 것이요 믿는 것이다.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곧 그 핵심을 믿음으로 소유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기독

교를 아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것을 알게 하지 않는 교회는 진실한 교회가 아니다. 이제 우리 조국교회는 외형에 속지 말고 이 기독교의 핵심을 회복하여 불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기독교의

본래모습을 갖는 것이요, 교회다워지는 것이며 진실한 신자들로 교회를 채울 수 있는 길이다. 그 은혜의 때가 임하길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발행처 대한예수교장로회 하늘영광교회발행인 박순용 담임목사발행일 2009년 2월 1일편집부 하늘영광교회 문서편집부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1동 457-10번지 우) 134-856☎ 2296-1586 (교회) / 070-7449-7086 (사역자실)

하늘영광www.GloryofGod.or.kr

담임목사 Profile

10살 때 목사가 되기를 서원하여 총신대학교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였고, 영국 Free Church College of Edinburgh와 The Evangelical Theological College ofWales(M.Phil 과정)에서 청교도와 영적 대각성에 대해서 공부하였다. 호주의 Perth한인장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던 중 조국교회에 대한 사역의 부담을 가지고 귀국하여 “하늘영광교회”를 개척, 담임하고 있다.

교회를 찾아 오시려면...

집회 및 모임안내

지하철 천호역(5호선) 암사역(8호선)에서 시내버스 340번 또는 3411번 환승

양지 종합시장앞 하차

주일오전예배 오전 11:00

주일오후예배 오후 4:00

수요예배 오후 8:00

금요기도회 오후 8:00

새벽기도 (월~금)오전 6:00

유치부/유·초등부 오전 9:00

중/고등부 오전 9:00

청년부 토요일 오후 5:00

■ 출산을 축하합니다!

어진선, 남은경 가정(득남)

신승종, 장선경 가정(득녀)

■ 담임목사 동정

목회자를 위한 독서모임 (2월 2일)

경건을 위한 독서모임 (2월 23일)

■ 선교사를 위한 기도

김수현, 박상미 선교사 가정과

남택수 선교사, 이경자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 교육부서 소식

유·초등부에서 축령산자연휴양림으로

겨울성경학교(1/12~1/13)를 은혜중에

잘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계속 기도해 주세요

신암중학교

올림픽대로에서고덕 암사방면으로 진입

암사역(8호선)

양지종합시장

명일역 방면

천호역 방면

하늘영광교회

하늘영광교회는 처음도 과정도 마지막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그것을 선포하는 교회이어야 하고, 그것을 생명처럼 여기는 교회이어야 한다

“ 기독교의 핵심의 상실과 절급한 회복의 필요 ”

담임목사 칼럼

복음초청잔치교리반 성경공부

■화요반 오후 18시 - 10시

■수요반 오전 10시 - 12시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모임

■ 병원전도및 지역전도

(매주 화요일 오전 10:30)■ 토요 차전도

(매주 토요일 오후 1:30)

1

1

1

새생명출산을 위한 관계전도의 날

(5월 24일 주일)

관계전도를 위한 도전의 말씀

1차 2009년 2월 15일

2차 2009년 2월 22일

관계전도자 작정주일

1차 2009년 2월 22일

2차 2009년 3월 1일

주일 오전예배

Page 2: 하늘영광교회 09년 02월  111호

들어가는 말

우리는 나의 행위에 의해서 나를 규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

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이

루신 것으로 우리를 평가하고 규정한다는

것을 누리면서 사는 것에 대해 살피고 있습

니다.

다른 종교와 기독교의 결정적인 차이는 신

앙생활이나 구원의 시작, 출발점이 다르다

는 데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신앙생활과 구

원의 시작을 자기에게서 출발합니다. 그러

나 기독교는 인간은 죄인이어서 스스로 하

나님께 이를 수 없고 참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오셔서 그 모든 신앙생활을 가능

케 하고 구원을 가능케 한다는 데서 시작합

니다.

정상적인 기독교 신자라면 하나님께서 예

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주신 수많은 것

들을 누리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상하게도 오늘날의 교인들은 이미 소유한

자로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뭔가를

얻으려 합니다. 기도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해서 무언가를 더 받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

렇게 해서 하나님께로 이르겠다고 하는 잘

못된 모습들이 있습니다. 마치 왕궁에서 모

든 특권과 권세와 부유함을 풍요롭게 누릴

수 있게 된 것을 잊고 그저 어떻게 해야 내

가 오늘을 먹고 살지 또 내일은 어떻게 걱

정 없이 살 수 있는가를 염려하는 것과 비

슷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를 믿어 그

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발견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또 부활하심

으로써 누리게 하신 것이 얼마나 엄청나고

부요한 것인지를 아는 것 입니다. 따라서 그

리스도인은 이방 종교인과 달리 무엇을 잘

하고, 무엇인가를 달라고 하기에 앞서서 먼

저 그 부요한 은혜와 복을 알고 누리는 자

이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 현실적인 필요

가 있고 구할 것이 있으면 자식이 아버지에

게 말하듯이 간구함으로써 얻어서 계속 하

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자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라는 신분

오늘 살필 내용은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

라는 신분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신분을

누리며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그것

을 말하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

가 되기 전에 속했던 옛 가정입니다. 누구

든지 예수를 믿기 전에는 그가 소속된 일종

의 가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가정에

속해 있었다는 거죠. 바로 마귀의 가정입니

다. 진노 아래서 노예와 같은 상태에 있었

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기 전에 요한복음 8장에서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대적하는

그들을 향해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

서 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상태에 있든

지 마귀를 아비로 둔 상태에 있든지 둘 중

의 하나라는 것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인

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구원해

내시지 않는 한 인간은 마귀를 아비로 두고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2

장에서 ‘공중권세 잡은 자, 곧 마귀’를 따를

때의 모습을 말하면서 ‘진노의 자녀’였다.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갈라

디아서 4장 5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이 아들

이 되기 전에는 ‘율법 아래 있었다’고 말하

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가 사용하는 무기

입니다. 율법을 가지고 계속 정죄하고 노예

처럼 부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했던 우

리들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

셨다고 말합니다. 아들의 명분이라고 하는

것은 1세기 당시 로마시대에 그들에게 익숙

했던 양자 삼는 것입니다. 다른 가정에서 데

려와서 버려진 아이와 같은 다른 말로 하면

마귀에게 속했던 그를 데려와서 입양시켜

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다고 말하는 것

입니다.

에베소서 2장 말씀으로 표현하면 과거에

우리들이 ‘진노의 자녀’이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권속’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

다. 이 권속이라는 말은 가족이라는 말입니

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

니다. 바로 이런 사실에 근거해서 사도 요

한은 우리가 요한일서 3장 1절에서 읽었던

말씀에서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라고 말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랑, 곧 독생자를 보

내어서 죽게 하신 그 사랑을 베푸심으로써

우리의 신분이 변화가 되었다. 아들이 되었

다. 아들로 일컬어졌다. 입양되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마귀의 자

녀요 진노의 자녀 상태에서 바로 이렇게 하

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

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마귀의 가정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서 죄와 율법과 사망의 모든 대가를 다 지

불하시고 오늘 본문 4장 5절 말씀대로 속량

하시고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으로 우리를

입양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고 말할 때 이것을 두 가지로 묘사합니다.

하나는 다시 태어난다. 또는 거듭난다고 해

서 이 거듭남을 말하죠. 그렇게 거듭남으로

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말하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양자 삼으심으로써 자녀가 되는 것을 말합

니다. 거듭남은 성령 하나님과 관련지어서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자녀로 삼으심, 양자

삼는 것을 얘기할 때는 성부 하나님과 연관

지어서 말합니다. 그래서 성부 하나님과 특

별한 관계가 있게 되었다. 특별한 신분, 지

위를 얻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

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로

엄청난 신분의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강조

해 줍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마귀의 자녀도 아니고 진노의 자녀도

아니고 죄와 율법의 종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옛 가정과 상관이 없다는 것, 옛 소속

과 더 이상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

입니다. 따라서 옛 가정 아래서 져야 하는

어떤 책임이나 의무사항은 다 사라지고 폐

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

입니다.

골로새서 2장에서 바울이 ‘우리를 거스리

고 우리를 대적하는 모든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다 제해버렸다’고 말하고 있습

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는 옛 가정에서

져야 하는 모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런데 그것이 단순히 하나님께서 말씀 한 마

디를 하심으로써 없어져라 이렇게 해서 되

는 것이 아니고 독생자를 내어주시는 하나

님의 구체적인 사랑에 의해서 있게 된 것입

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가정에

입양되어서 그의 자녀, 바로 영광스러운 영

원하신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 부르게 된 특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얻게된 특권은 일단

우리는 영원하신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아주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자녀가 되었고 그에게 말을 하며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이고

큰 변화인지 많이 생각해 보셔야 됩니다.

종으로서 말하는 것과 아들로서 말하는 것

은 하늘과 땅 사이의 차이입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아주 사소한 것을 말하면서 안기고

편안하게 못합니다. 지나가는 아이가 저한

테 그렇게 못해요. 그런데 제 아이들은 합

니다. 아무런 막힘 없이 하죠. 로마서 8장에

서 ‘너희는 양자의 영을 받았음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바는 우리나라 말로 아빠에요. 친근한 표

시입니다. 우리는 아빠라고 편안하게 자연

스럽게 부를 수 있는 그 자녀입니다. 우리

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며 얽매임이나

주저함이나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

다는 것입니다. 설사 우리에게 단점이 있고

부족함이 있고 죄가 있어도 우리는 막힘없

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안길 수 있는,

교제할 수 있는 그런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

다.

그리스도와 형제된 특권

우리들이 하나님의 가정 안에서 곧 하나님

의 자녀가 돼서 소유한 특권은 하나님의 맏

아들로 불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한 형제

가 되어 영원한 한 가족으로 산다는 것입니

다. 히브리서 2장에 보면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바로 우리 주님이에요.-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바로 우리들입니다-이 다 하나

에서 난 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예

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시고 영화롭

게 된 제2위 하나님 이십니다. 죄가 없고 거

룩하신 분인데 추하고 더러운 우리에게 형

제라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우리

와 한 형제됨을 나누시길 원하신다는 것입

니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묘사한 것은

이름만 형제가 아니고 실제적인 관계를 갖

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그런 맥락

에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형제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런 관계 속에

서 우리를 도우시며 인도하신 것을 말해줍

니다.

영원한 기업을 받게 되는 특권

한 가지만 덧붙이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가 되어서 소유한 특권은 첫 번째 두 번째

내용에 연관된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와 맏

형 되는 우리 주님의 돌봄과 보호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가 되

어 영원한 기업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

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

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가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에 맏

형 되신 그리스도께 돌봄과 보호를 받습니

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받게 될 상속은 하

나님께 속한 모든 것입니다.

천국에서 편안하게 물질적으로 누리는 정

도가 아니라 우리의 전 인격이 하나님의 것

들을 가득 소유하고 하나님의 충만함까지

도 누리게 되는 입술로 묘사 불가능한 기업

들입니다. 여러분은 이 놀라운 특권과 복된

신분을 지금부터 알고 누리셔야 합니다.

맺음말

여러분은 마귀가 우리의 행위와 결함을 가

지고 네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느냐고 참소하며 흔들어도 무시해 버리

면 됩니다. 실제로 마귀는 예수님께서 이 땅

에 계실 때 공생에 시작 전에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렇게 시험했습니

다. 사단은 틈만 있으면 우리의 결함을 드

러내고, 죄를 범하고 문제가 있으면 네가 무

슨 하나님의 자녀냐 이렇게 시험을 겁니다.

주님이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

제제기 하지 말라는 거에요. 내가 자녀 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행위로 된 것이 아니

다. 나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얻게 된

신분이다. 이 자녀라는 신분을 가지고 우리

는 행위 문제를 빌미로 얘기하는 것을 거절

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

녀 삼으셨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우리의 본

성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신분과 지

위를 바꾸는 것이니까 이 사실을 근거로 여

러분은 마귀의 고소에 대적하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 신분을 가능한 한 생생하게

가능한 한 실제적으로 가능한 한 현실적으

로 생생하게 여러분의 삶 속에서 경험하셔

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의 영광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

러분 하나님께 안기세요. 어렵고 힘들고 부

족함이 있어도 심지어 죄를 짓고도 자식이

아버지에게 기대듯이 의심 없이 주저함 없

이 담대하게 마음껏 그에게 기대십시오. 친

밀하게 편안하게 아빠라고 부르십시오. 이

게 은혜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

분이 그리스도를 믿는 이 영광과 복을 제대

로 누리시길 바랍니다.

* 전문의 1/3 분량으로 축소 편집된 것입니다.

은혜안에서 산다는 것 7은혜안에서 산다는 것 7

자녀의 신분을 누리는 것자녀의 신분을 누리는 것

“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5)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3:1)

박순용 담임목사

Preaching

Page 3: 하늘영광교회 09년 02월  111호

잠시 있다 없어질 인생길에서

여기 모인 우리에게

주님은

최고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멸망으로

달음박질 하던

수많은 무리중에서

귀를 열어 주시고

눈이 뜨게 하셔서

성령의 빛으로

십자가

구원의 비밀을 믿게 하셨습니다.

풀과 같은 인생길에서

여기 모인 우리에게

주님은

최고의 만남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포도나무에

친구따라 지체된 청년들로

옆집 집사님 복음으로 지체된 자매로

결혼의 축복으로 둥지를 튼

새색시 새신랑으로

말씀이 갈하여 천리를 달려온 부부로

장막의 이동으로 옮긴 형제로

이런 저런 방법으로

발걸음 발걸음마다

이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으로

새가족 가지로 붙여 주셨습니다.

자-

이제

우리는

천성을 향하여 가는 순례길

2008년이라는 한 노선에서

하나님이 택하사

뜻하신 바 부르심을 입고

연약한 지체가 아프면

같이 기도하고

다른 지체가 슬프면

같이 말씀으로 위로하고

한 지체가 기쁘면

서로

기뻐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 안에서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할

사랑으로 맺어진

한 공동체입니다.

하늘영광교회 지체가 되어

사랑 나눔에 초대된

환영의 이 밤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으로

교제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

값 없이 주신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

벅찬 감사의 마음

형용할 수 없어

시편 100편 감사의 시로 찬송드립니다.

온 땅이여 여화와께 즐거이 부를찌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하나님을 믿게 된 이후, 내게 생긴 버릇이 하나 있다

교회에서 개인적인 요청을 했을 때 거부를 못하는 버릇이라고나 할까? 왜냐하

면 그 요청을 개인의 요청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생각하

기 때문에 쉽게 거절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변한 또

다른 나의 모습 중 하나이다.

소식지 글을 보면서, ‘야! 이 사람들은 어떻게 글을 이리도 잘 쓸까? 대단하다!’

라며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가 가장 못하는 것이 <글쓰기>이기 때

문이었다. 그렇기에 소식지 글을 부탁 받았을 때 나는 당연히 “못합니다.”라고 했

어야 했다. 그러나 순간 머릿속에 “교회의 담당자들을 힘들게 하지 말라! 네가 거

절함으로 시간이 걸리고 계획된 일을 처리하는 담당자들이 또 누군가를 섭외해

야하고 그 사람이 허락한다는 보장이 없다. 네 선에서 끝내라” 라는 생각이 스치

고 지나갔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나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그분의 사랑하는 자

녀이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교회 안에서 이렇게 아주 가벼운 것조차 거

절한다면 (게다가 그 또한 나의 사소한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라면) 교회의 사명인

복음 전하는 길에 시간이 걸릴까 염려되었기 때문에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소식지-

신자보단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하나 하는 약간의 고민 끝에 하나님을

믿게 된 나의 간증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게 되는 동기는 세상이 주는 어려움으로 인해 누군가 의지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을 때 일어난다. 이 때 어떤 신을 의지하며 위안을 얻으려고 신앙을 갖기 마

련인데, 나의 경우는 좀 달랐기 때문이다. 나의 성장 조건은 아무런 어려움도 없

었고 오히려 그 시대적인 배경으로 보았을 때 조건적인 것은 누구보다도 풍성하

게 누렸으며 결혼생활 또한 행복했다. 그 누구보다 나를 편하게 해 주는 남편, 잘

자라나는 아이들, 문제없는 시댁, 경제적인 여건, 대인 관계 등등. 어느 것하나 부

족함 없이 시간 속에 안주하며 살았다. 그러나 언제인지 모를 그 세월이 나를 압

박하기 시작했으며 그 세월 속에서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인지 의문이 생기

기 시작했고, 그 의문이 증폭되었다. 결국은 세상 사람들이 각자 살아가는 자기의

사명이 있을 것이라 판단하였고, 주위 사람들과 책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어떤 목

적으로 자기가 태어난 이유를 가지고 사는지 알아가며 나의 살아가는 목적을 찾

으려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시간 낭비였다. 그들의 목적은 없었다. 단지 과정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 실망스러울 뿐이었다.

하나같이 공통된 것은,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가서 상류사회에서 사는 것, 남편

이 승진하여 부를 누리는 것, 더 큰 집으로 이사하는 것, 좋은 것 먹고 걱정 없이

사는 것 등 막연한 과정이 목표인 것처럼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자

신이 비참해지기 시작했다. 인간이, 아니 내가 추구할 것이 위의 모습이 전부라

면, 더 이상 사람으로서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살아갈 힘을 잃고 그 목적을 위해 헤매고 있던 어느 날, 집안이 불교 집안이었

기에 이제는 종교 쪽으로 눈을 돌려 목적을 향해 발을 딛고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불교에 관한 서적들은 닥치는 대로 뒤져보았고 절에 거의 매일 찾아가 경

전을 듣고 왔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의 갈증은 더해졌으며 속세에서는 이제 더

이상 목적 달성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아 스님이 되고자 실행에 옮겼다. 그런

데, 그 과정 속에서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성경을 들춰보니 내가 찾던 그 목적뿐만 아니라 나의 뿌리- 생물학적 태

어남이 아닌 태초에 내가 누구였으며,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왜! 현재에 이

모습으로 있고, 앞으로 살아갈 목적까지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닌가. 오! 하나님. 나

는 그 자리에서 당장 교회에 등록을 했고 인물들과 지명과 용어들의 뜻도 구분

못하는 상황 속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에 거쳐

성경 1독을 시작으로 성경을 통해 인간들의 죄를 알게 되었고 또한 내가 살면서

부딪혔던 우연들, 미래의 문제 등등 나의 막연한 삶에 종지부를 찍었다.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안타깝다. 불투명한 미래를 바라보며 가슴 조이고, 불행

이 닥치면 어찌할 줄을 모르면서 이게 내 팔자라고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

을 보는 것이 말이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보는 세상의 모습은 살얼음판 같고 사람들은 그 위를 너무

나도 용감하게 뛰어다니며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 얼음판이 언제 깨질지 그들은

모를 것이다.

다만 그들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기에 오직 주님만이 그들을 사망에서 생명

으로 건지실 분임을 믿는다.

하나님을 믿게 된 이후 새가족 환영의 밤

Confession

박은숙 고재진

Page 4: 하늘영광교회 09년 02월  111호

하늘영광교회에 등록한지 5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소식지에 글을 기재하기는 처음입니다. 이런 기회를 허락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다만 하나님

의 은혜를 풍성히 경험하는 가운데 넘치는 사랑과 감격으로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 소식지를 접할 많은 분들께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

을까 조심스런 마음이 있습니다.

제가 박순용 목사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던 것은 2003년 2월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서울 번동에서 사역을 하고 계셨던 외삼촌 집

에 놀러간 적이 있었습니다. 삼촌은 교회 부교역자로서 청년부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삼촌댁에 방문했던 그 날, 삼촌은 청년부 집회가 있으니 같

이 가자고 권유했습니다. 내심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내키지 않은 상태로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 때 강사로 박순용목사님이 오셨습니다.

그 무렵 저의 상태는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교회도 다니기 싫고 신앙도 포기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상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군입

대를 전후로 몇 년간 겪었던 심한 강박관념으로 인한 왜곡된 신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교회는 삶의 일부분처럼 익숙했고 다

양한 활동과 봉사도 했었지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사는 것’, ‘그리스도인의 벅찬 감격과 영광됨’ 이런 단어는

저에게는 많이 생소한 것 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믿음도 없었던 제게 큰 시련이 닥쳤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해라’,

‘하지 말아라’는 명령으로 밖에 다가오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죄책감에 사로잡혀 두려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습니

다. 이건 정말 비정상적이란 생각도 했지만, 이미 왜곡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는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 속으로 저 자신을 밀어 넣

었습니다. 두려움과 억눌림 속에서 몇 년을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군대를 제대하고 이제는 불신자처럼 살자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한 시기에 우연히 삼촌 교회에서 박순용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제가 들었던 말씀은 복음에 관한 주제였습니다. 청년들을 위한 일종의 비전, 야

망 등과는 전혀 관계 없었던 ‘십자가’가 목사님이 전해 주셨던 말씀입니다.

어쩌며 너무나 당연한 말씀으로 보이는 것이었지만, 제게는 너무 큰 주님의 음성으로 들려 왔습니다. 그저 피상적으로만 생각되었던 십자가가 저에

게 너무나 가까이 다가와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사 나를 위해 피를리시며 물한방울 남기지 않으시고 죽으신 예수, 그가 바로 나의 겹에 가까

이 계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집회에 참석했던 그 날, 제 마음에 들었던 생각은 ‘다시 시작해보자!’였습니다. 마음에 소망이 생겼고 그 날 이후로 전 그 집회에 모두 참석하게 되

었습니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나고 행당동 하늘영광교회를 찾아와 예배에 참석했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하늘영광교회에 등록해서도 여러 영

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 곳에 저를 두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라고 믿습니다. 아직도 제 안에 사랑 없음은 여전하고, 상대를 잘 용납하지

못하는 연약한 상태가 있지만 서로 용납하고 아끼는 관계 속에서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고 기도하며 교회를 세워가는데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복음으로 인해 충만한 은혜를 삶 속에서 경험하고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예전에 겪었던 그 시련들이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그 분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죄 가운데 살았고, 지금도 죄를 짓고 살고 있으나 지금까지 은

혜로 삶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그네와 같은. 짧은 인생에서 공동체와 이웃을 위해 애쓰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하나님과 교

제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Confession

한 해를 보내며...

임재근

◦ 당신의 영혼을 위한 양서 111 ◦

하나님하나님 을을 경외하는 사람경외하는 사람토머스 왓슨 지음 / 조계광 옮김 / 규장

청교도 신앙의 사자후라고 불리는 토마스 왓슨의 설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서 번

역 출판되었습니다. 토마스 왓슨 목사는 영국국교회의 타협을 거부하여 목사직에서 파직당한 후 숲 속이나 헛간, 그리

고 외양간을 전전하며 설교하였다고 합니다. 설교의 황제라고 불리는 스펄전이 설교의 스승으로 삼을 정도로 그의 설교

에는 재치 있는 비유와 대조법, 그리고 잠언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생전에 왓슨이 행한 말라기 3장 16, 17절의 설교입니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받는 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입니다.그래서 책 전반부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후반부에는 경외하는 자의 받는 복이 무엇인

지에 대해 조목조목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 앞에 그 당시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신앙은 극도로 혼탁해졌고

성도의 신앙도 점점 변질되어 갔습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흔들릴 때에 왓슨은 타협을 거부하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분의 설교를 이 책을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그는 시대가 혼탁 할수록 사

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비웃고, 조롱할 때 일수록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욱더 하나님을 경외하고 대적하는 사

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 부르기를 부끄러워 말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그는

말합니다. 또한 그 복은 비할 데 없이 놀라운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를 선대하신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 대한 징계는 사랑의 시작’

이라고 또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안일한 행복을 거두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전 한 닢을 잃고 금

을 받았다면 손해를 입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건강을 거두시고 거룩한 삶을 주셨다면 어떠한가? 자식의 생명을 취하시고 그리스도를 주셨다면 또 어떠한

가? 꽃을 거두시고 보석을 주신다면 더 낫지 않은가?’ 라고 그는 질문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그의 말씀 앞에 동의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왓

슨의 표현대로 우리가 과연 ‘참된 그리스도’인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살고

싶을 것이며, 또한 동시에 지금보다 더욱 더 거룩한 자로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불 같이 일어날 것입니다.